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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자

2022.04.28 조회 381 추천 2


 소환자
 
 
 
 
 “커흑!”
 자고 있던 현수는 갑작스러운 흉통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극심한 통증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통을 줄여 보고자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 봤지만, 통증은 더 극심해졌고 호흡은 불가능했다.
 “으으으···.”
 퍽! 퍽! 퍽!
 숨을 쉬기 위해 온 힘으로 가슴을 후려쳤지만,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하얗게 탈색됐다. 잠시 후, 극심했던 통증이 점차 잦아지며 평안해지려 했다. 이 평안함에 취해 눈을 감으면 두 번 다시 눈을 뜰 수 없다는 걸 현수는 명확히 느꼈지만, 왠지 이 평안함에 몸을 맡기고 안식에 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8년 짧았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름대로 부유하고 행복했던 유년기. 사업이 급격히 기울고 여기저기 돈을 융통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아버지가 얼마 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대물림된 빚을 갚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부터 겪었던 온갖 수모와 고생을 했던 최근까지.
 짧은 인생을 돌아본 후 드는 생각은 후회였다. 아직 못 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생각에 끔찍한 고통 속에서 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끄으으!”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온갖 개고생만 하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시원 바닥에서 고독사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강력한 죽음의 기운을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이겨 낼 수 없었기에 다시 점차 의식이 멀어지던 찰나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살고 싶나요?)
 감겨 있던 현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직 죽고 싶지 않다면 눈을 두 번 깜빡이세요.)
 오랜 시간 호흡을 못 해 남아 있는 힘이 거의 없던 현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눈꺼풀을 두 번 움직였다.
 끔뻑, 끔뻑.
 그 순간, 죽을 것 같던 고통이 사라지며 호흡이 뚫렸다.
 “커헉! 헉! 헉!"
 잠시 호흡을 고른 현수는 좁은 고시원 방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 문까지 열어 복도를 확인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절 찾지 마세요. 저는 실재하지 않는 존재니까요.)
 “당신 누구지? 저승사자?”
 (그건 아닙니다. 저승사자라면 지금처럼 굳이 시간을 멈추지 않고 당신의 영혼을 데려갔겠죠.)
 “시간을 멈췄다고?”
 (네. 믿기지 않으면 나가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좋아.”
 곧장 고시원 방 밖으로 나갔다. 늦은 밤이라 복도엔 아무도 없었지만, 총무실엔 총무가 라면을 먹던 중이었는지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고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멈춰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흔들어 봐도 총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동안 쌓인 감정이 있어서 뺨을 살짝 때려 봤는데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진짜 시간이 멈췄어? 꿈인가?”
 혹시 몰라 볼을 꼬집어 보니 정말 아팠다.
 (아직도 안 믿기면 밖에 나가 보세요.)
 여전히 안 믿겼기에 목소리의 말대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에 있던 모든 이들이 멈춘 상태였다. 마치 세상이 끝나 버린 것 같은 모습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말없이 방으로 돌아오며 여러 질문을 생각했지만, 가장 묻고 싶은 건 이거였다.
 “그럼··· 내 수명이 오늘까지라는 것도 사실이겠네.”
 (네.)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 자신의 죽음 때문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수명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거였어?”
 (당연하죠. 물론, 모든 사람이 수명대로 살진 않습니다. 사고나 병으로 인한 사망은 수명과 관계없으니까요.)
 “근데 난 수명이다?”
 (네. 당신 수명은 오늘로 끝입니다.)
 “···왜! 대체 왜에! 대체 무슨 기준으로 수명을 정했기에 내 수명이 28년밖에 안 되는 건데? 대체 무슨 기준이냐고!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냐?”
 (맞습니다.)
 “···응? 뭐라고? 뭐가 맞다는 거야?”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습니다.)
 “···진짜?”
 (당신이 더 잘 알 텐데요? 제 말에 거짓이 없다는 걸요. 최근에 악몽을 자주 꿨죠?)
 여자의 말대로 현수는 최근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온갖 패악을 일삼는 개새끼였다.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고 맘에 드는 여인이 있다면 유부녀라도 강제로 취했으며 자식이라도 눈 밖에 나면 가차 없이 죽이거나 쫓아냈다.
 그리고 이 중 최악의 범죄는 나라를 적에게 넘긴 거였다. 이로 인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나라는 너무도 간단히 망해 버렸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게 단순한 꿈이 아니었어?”
 (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잊혀졌던 당신의 전생 기억이 꿈에 나타난 겁니다.)
 “그럼 최근에 가축으로 살다가 죽는 꿈도 있던데 그것도 내 전생 중 하나인 건가?”
 (아뇨. 그건 당신의 미래입니다. 지은 죄가 크고 갱생할 수 없는 인간은 가축으로 태어납니다.)
 “···전생에 죄를 지었는데도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다음 생엔 가축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번 생에 내가 잘못한 게 뭔데?”
 (일단 꿈에서처럼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고 평생 떵떵거리고 살면서 온갖 패악을 저질렀습니다. 살인, 강간, 폭행, 사기, 협박, 재물 강탈 등 셀 수도 없는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태어난 건 당신의 전전생 덕분입니다.)
 “전전생은 뭐 잘한 게 있나 보네?”
 (아주 잘했었죠. 당신은 당대 최고의 의사로서 많은 사람을 살렸고 평생 재물과 권력을 멀리하며 오직 백성들만 바라보며 살았죠. 당신이 죽었을 때 온 나라 백성들이 시름에 잠겼을 정도였습니다.)
 “대박··· 근데 왜 전생엔 그 지랄을 한 거야?”
 (그야 모르죠. 아무튼,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는데 오랜 시간을 주진 않았습니다. 딱 28년. 이 기간에 전생의 업을 풀 수 있을 만큼 선업을 쌓았다면 수명이 늘었을 테지만, 당신은 그러지 못했죠.)
 책망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에 현수가 울컥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무슨 수로 선업을 쌓아?”
 (압니다. 현수 씨가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아왔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런 개개인의 사정을 다 이해해 주면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날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맞는 소리에 말문이 막힌 순간 목소리가, 여자가 처음 등장할 때 말했던 게 떠올랐다.
 “처음에 분명 살고 싶냐고 물었지? 그거 나 살려 준다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당신이 살 기회를 주기 위해 왔습니다.)
 “기회?”
 (소환자가 되십시오. 소환자가 되면 당신은 오늘 죽지 않아도 됩니다.)
 “정말?”
 (전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소환자가 대체 뭔데 살려 준다는 거야?”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자를 지칭하는 겁니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아무튼,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소환자라는 걸 하면 살려 준다는 거지? 언제까지 살려 줄 건데? 설마 한 달 이런 건 아니겠지? 최소 10년은 보장해 줘야 할지 말지 고민이라도 하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명은 결정될 겁니다. 일단 소환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한 달의 수명이 추가될 겁니다.)
 “한 달? 장난해!”
 (목숨이 달린 일이라 예민한 건 알지만 말을 제대로 들으세요. 노력 여하에 따라 수명이 결정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일종의 선행이죠.)
 “소환자가 돼서 선행 열심히 하면 한 달의 수명을 더 늘려 줄 수 있다는 거야?”
 (제가 늘리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당신이 선행을 할 때마다 일정 포인트가 쌓일 겁니다. 그 포인트로 당신이 직접 당신의 수명을 늘리면 되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그건 해 보시면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당신 말대로면 정말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수명이 결정되겠네.”
 (그렇죠.)
 “포인트는 무슨 기준으로 쌓이는 건데? 한 사람당 1포인튼가?”
 (그건 직접 경험해 보시면 알 겁니다. 그보다 소환자가 되시겠습니까? 그에 대한 답부터 먼저 해 주시죠.)
 “살려면 해야겠지. 근데 확실히 짚을 건 짚어야 하니 그렇지.”
 (그럼 짚어 보세요.)
 “선행이라는 거 매일 해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오면 씻는 것도 귀찮은데 그건 솔직히 무리야. 주말만 하는 거로 하자.”
 (선행을 언제 할지 그건 소환자가 결정하는 겁니다. 당신이 소환자가 된 후 일체의 간섭도 없을 겁니다.)
 “그건 맘에 드네.”
 (그리고 그 피로도 소환 아이템이 있으면 사라지게 될 겁니다.)
 “피로가 사라질 거라고?”
 (이걸 잡아 보세요.)
 하늘에서 검 한 자루가 서서히 내려왔다.
 그걸 본 현수가 황당해했다.
 “···무섭게 왜 이래? 갑자기 이건 뭐야?”
 (소환자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 기능 중 하나가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을 튼튼하게 해 주는 겁니다.)
 “진짜? 그럼 24시간 동안 택배 상하차해도 끄떡없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48시간 하면 조금은 피곤하긴 할 거 같네요.)
 “대박! 이 검이 뭐기에? 무슨 신검이라도 돼?”
 (신검이라고도 할 수 있죠. 소환자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이니까요.)
 “나를 특별하게 해 줄 특별한 아이템이라··· 맘에 드는데?”
 탁!
 검을 쥔 순간, 여러 지식이 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검술에 대한 지식, 인체의 근육, 골격, 혈도 등에 관한 세부 정보와 그것들을 이용해 강해질 수 있는 방법과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 수많은 전투 상황에 대한 실전 경험, 검을 보는 안목 등 직간접적으로 검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뇌리에 각인되어 갔다.
 (이것들을 모두 습득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당신 머리에 자연스레 떠오르게 될 거예요.)
 이로 인해 과부하가 걸리는 건지 서서히 두통이 심해지려 할 때 몸 안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득 차올랐다. 충만함을 느낌과 함께 오감이 확장되는 전율스런 감각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세요. 당신 몸이 워낙 엉망이라서요. 아파도 참으세요. 아마 참을 수 있을 겁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고 떨림이 잦아들 무렵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에 검을 쥔 현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카득!”
 아까 죽어 갈 때보다 더한 고통이었지만, 왜 그런지 몰라도 참을 만했다.
 투둑! 투두둑!
 최근 몇 년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일을 한 탓에 뒤틀리고 질 나빠진 근육들이 제자리를 잡고 새롭게 재생되는 과정에서 고통은 더 심해졌다.
 “끄읍!”
 시간이 흐르면서 근육통은 사그라졌지만, 곧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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