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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xx일째. 전쟁 장기화 조짐!
-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적 경제제재. 과연 러시아의 대응은?
- 푸틴의 러시아. 광기인가? 전략적 결단인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덕분에 술집 안은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와중에도 내 눈과 귀는 대각선 방향에 걸린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럴 거면 밖에 왜 나왔냐고?
씨발.
일단 술 한잔 걸치고 얘기하마.
도저히 맨정신엔 말 못할 것 같거든.
“크으. 푸틴 씹새끼......”
내가 소주를 글라스째로 원샷 하자 맞은 편에 있던 친구 놈이 기겁하며 말했다.
“야, 경민아. 괜찮냐?”
“어. 나 아직 안 죽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그러다 몸 상해 인마.”
“아직 멀었다. 실연의 아픔이 그리 쉽게 사라질 것 같냐? 엉?”
흔한 일이었다.
외국어 전공자가 그 나라에 애착을 가지고 잘 되길 바라는 것은.
그러다 기회가 닿으면 현지에 파견되어 새로운 인생을 꿈꿔보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근데 이건 좀 아니잖아.’
재수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유창한 러시아어와 해박한 전공지식만으로 국내 대기업 러시아 주재원 전형 최종 면접까지 다다랐건만.
전쟁이 터지고 고강도 경제제재에 한국도 동참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말았다.
지금 내 심정은 다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왜 나에 대한 기준만 엄격한 건데!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취업도 어려운데. 이젠 하다 하다 푸틴까지 지랄이야?”
내 급발진에 영환이는 당황하면서도 열심히 말을 늘어놓았다.
“누가 전쟁 터질 줄 알았겠냐. 우리 과 교수님들도 다 예상 못 했잖아.”
“씨발. 주식 차트 해석하면서 뒷북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우. 이 새끼 제대로 취했네.”
물론 푸틴과 러시아의 입장도 이해는 됐다.
조금만 눈과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푸틴의 연설문에서 미국을 비롯한 나토, 서방 세력의 압박과 그에 따른 위기감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을 이따위로 처리할 거면서 왜 하필 지금 전쟁을 벌였냐는 거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은 나는 텔레비전에 비친 푸틴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푸틴아! 우린 너 하나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인데. 정말 그랬어야 했냐! 좀만 더 참아줄 순 없었냐고! 아니면 적어도 합격이라도 시켜 놓던가!”
“저기,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하, 역시 이 심정을 알아줄 사람은 같은 노어과밖에 없나?
결국 나와 영환이는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우웩!”
어느 인적 드문 골목길.
길바닥에 질펀한 파전을 만들어 낸 나는 갑자기 술이 확 깼다.
그와 동시에 어떤 생각 하나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근데 만약에 말이야. 러시아가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체성만 제대로 확립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푸틴이 저 지랄하지 않아도 충분히 초강대국 반열에 들었을 텐데. 안 그래?”
그 말에 영환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역사 시간에 안 배웠냐? 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혁명이나 전쟁 같은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잖아.”
“잘난 놈? 황제! 그렇지.”
술기운 때문인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은 나는 손가락까지 튕기며 주절대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1세. 그 녀석이 개찐따 소인배처럼 굴지만 않았어도 러시아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을 거다. 볼셰비키 같은 빨갱이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워지거나 푸틴이 이따위 결단을 내릴 일도 없었을 거라고!”
즉위식 날 자신 또래의 청년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똥물을 끼얹은 이후.
니콜라이 1세는 변화와 저항을 철저히 억압하고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등 소인배적인 행보를 이어 나갔다.
오죽했으면 유럽의 헌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겠나.
‘하지만 그 끝은 군사적, 정치적 패배에 고독사였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그 말로는 처참했다.
만약 전쟁을 준비하다가 폐병으로 뒤지지 않았더라면 더 끔찍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겠지.
“내가 너라면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다. 역대급 러시아 황제가 되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오히려 칭송받았을 거라고!”
“야, 야. 정신 차려봐. 여기서 잠들면 어떡하라고!”
나는 경환이의 외침도 무시한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치렁치렁한 예복을 입은 나는 돌과 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씨발.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1807년 5월경.
나폴레옹과 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이 치열한 공방을 이어 나갈 무렵.
열한 살짜리 꼬맹이였던 니콜라이 1세는 황궁에서 러시아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도 모르겠다.
근데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어떡해.
“황자님. 오늘따라 집중을 못 하시군요. 혹시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그렇습니까?”
“어? 응......”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폐하와 대공께서는 분명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실 겁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옛 느낌이 물씬 풍기는 러시아어까지 들으니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내게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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