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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마법청년입니다 001화

2022.05.16 조회 98 추천 0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탱크가 폭발했다. 고막을 찢어 버릴 듯한 굉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자마자, 착 달라붙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쏜살같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아니, 날아올랐다고 표현하는 게 더 알맞았다.
 
 “윈드! 불을 꺼 줘! 아쿠아! 다른 곳에 옮아 붙지 않도록 주의하고! 아이언! 제어 장치는?”
 “완료했어!”
 “좋아!”
 
 바쁘게 움직이는 네 남자의 틈새에 서 있던 지윤, 아니, 어스는 눈을 끔벅였다.
 
 ‘아, 이번에도 나는 빠졌군.’
 
 새삼스럽지도 않다. 사실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이곳은 가스탱크가 가득한 공장 지대가 아닌가. 여기서 땅을 움직이다간 또 어떤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
 
 “네! 지금 마법청년 5원소가 전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윤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카메라에 큼지막하게 적힌 글자는 HVC(Hero & Villain Channel). 매일같이 보는 얼굴이라는 뜻이었다.
 
 ‘아, 자현 기자님 피곤해 보이네.’
 
 여자 기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빠르게 까닥하고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옷차림은 자다가 뛰쳐나왔다는 걸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윗옷은 정장이지만, 바지는 수면 바지였으니까.
 
 “안녕하세요. HVC 김자현 기자입니다. 오늘은 제2 공장 단지에서 일이 벌어졌는데요. 경찰 무전에 의하면 먼저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윤이 슬쩍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 기자가 그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앗! 어스가 저기 있네요! 인터뷰를 잠시 하겠습니다!”
 “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필사적으로 오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수면 바지를 입은 기자는 거침이 없었다. 악을 쓰고 싶었지만 카메라 앞이라 꾹 참았다. 참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HVC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 누구보다 지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스.”
 “아, 네. 안녕하세요. 이거 라이브인가요?”
 
 그 순간 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자아아아앙!”
 
 아이언의 괴성과 함께 거대한 기계가 윙윙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탄이 터지듯 불꽃이 펑펑 터지고,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가 잠시 지윤의 얼굴에서 뒤편의 싸움을 줌인했다.
 
 “네. 멀리서도 대장의 활약이 아주 잘 보입니다. 앗! 저기 아쿠아가 맞서고 있네요. 네, 역시 윈드가 폭발을 제어하고 있습니다. 아이언은 어디 있죠? 아, 저기. 저기 위쪽에 잡아 주세요. 네, 여기 있는 기계들을 원격 조작하고 있네요.”
 
 기자가 신나서 동료들의 활약을 줄줄이 설명하고 있는 동안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HVC 방송 댓글에 뭐라고 달리는지, 그 누구보다 어스인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얹혀 가는 어스.
 -월급 도둑.
 -이럴 거면 마법청년 4원소 해라.
 
 등등.
 
 ‘하아. 이참에 도망치자.’
 
 달리 할 일이 없다고는 해도 이렇게 뒤로 빠져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얼른 몸을 뒤로 빼려던 순간, 마이크가 그의 앞으로 불쑥 내밀어졌다.
 
 “어스. 오늘 일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오늘 일은······.”
 
 뭐 얼마나 구구절절이 설명하랴. 나쁜 놈들이 폐공장에서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래서 출동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법청년 5원소를 본 놈들이 무턱대고 무기를 난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다.
 
 그 순간 뒤쪽에서 우르릉거리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건물들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위험해!”
 
 대장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스! 잠깐만요! 어스!”
 
 자현이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달려 나갔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윙윙 소리가 났다. 지윤이 동료들에게 다가가던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놈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화끈거렸다.
 
 “젠장!”
 
 그놈이 이를 악물곤 다급히 총을 재장전했다. 아무래도 마지막 한 발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날듯이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억!”
 
 악당이 날아가 벽에 퍽 처박혔다.
 
 189에 92킬로. 안 그래도 힘이 넘쳐나는데 거기다가 마법청년까지 되었으니, 그 힘은 가히 상상 초월이었다.
 
 “끄으으······.”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을 잃고도 남을 정도의 충격이었겠지만, 역시 그는 악당답게 완전히 정신을 잃진 않았다.
 
 ‘묶을 것······.’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지윤은 가볍게 혀를 찼다. 수갑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 얼마나 좋긴 하겠냐마는, 마법청년들이 그런 것을 들고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움푹 파인 벽 아래 쓰러진 남자를 번쩍 들어 올린 그는 그대로 땅을 파냈다.
 
 어스. 말 그대로 땅을 다루는 힘을 가진 마법청년.
 
 지윤은 힘들이지 않고 꼭 맞게 땅을 파낸 후, 악당을 심었다. 허리께까지 집어넣곤 바로 땅을 다시 다져 버렸다. 모든 것이 끝난 건 약 5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땅에 박힌 남자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악!”
 
 그가 다급히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온몸을 단단히 죄고 있는 땅에서 벗어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후······.”
 
 손을 탁탁 턴 지윤은 총을 저 멀리 발로 차 내곤 또다시 달려 나갔다. 그의 앞에선 계속해서 폭발 소리와, 대장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쿠아’, ‘윈드’, ‘아이언’을 부르는 내내. ‘어스’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
 
 
 전투가 끝나고 나서 겨우 진정하고 바닥에 내려온 네 남자가 주변을 둘러봤다.
 
 “어스. 이거 전부 네가 한 짓이야?”
 “······딱히 묶을 만한 게 없어서.”
 
 지윤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허리까지 땅에 심긴 악당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맨손으로 미친 듯이 땅을 파내려는 사람, 악을 쓰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 기절한 채 그저 심겨 있는 사람 등등. 가지각색의 모습에 대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다들 고생했어. 우리 모두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끝나서 정말 다행이고. 또······.”
 
 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찍이 있던 김자현 기자와 카메라맨이 달려왔다.
 
 “대장! 잠시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말을 남긴 그가 슬쩍 피해 버리자, 윈드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뭐가 궁금하신데요?”
 
 마이크를 낚아챈 건 아이언이었다. 그는 심지어 카메라 앞에 대고 손 하트를 뿅뿅 날리질 않나, 마치 모델이 포즈를 취하듯 이런저런 자세까지 선보였다.
 
 “이번 싸움에서 특히 힘든 점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폭발이 제일 힘들었죠. 그리고 폐공장이라 기계 정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거슬렸고요.”
 “아하. 그렇군요. 그래도 멋지게 이기다니 대단하네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인걸요. 그리고 기계에 관한 한 제게 불가능이란 없으니까요!”
 
 또 손 하트. 지윤은 그것을 보다가 슬쩍 몸을 돌려 다른 이들과 함께 벗어나려고 했다. HVC에 나오는 걸 즐기는 아이언의 들뜬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 넘겼다.
 
 왱왱거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경찰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고생했어. 어스.”
 
 아쿠아가 성큼 다가와 지윤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뭘······ 고생은 너희가 다 했지.”
 
 남자가 싱긋 웃곤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직도 인터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이언을 제외하면 다들 퇴근할 시간이었다.
 
 ‘나도 이만 원래대로 돌아갈까.’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뒤에서 어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스! 어스!”
 “예, 예?”
 
 어쩐 일로 그를 다 부르는 건지.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자, 경찰들이 손짓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땅에 박아 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꺼내 주세요!”
 “······.”
 “삽도 없고, 인력도 부족하단 말입니다.”
 
 그럼 그렇지. 뭘 바랐을까. 지윤은 낮은 한숨을 쉬곤 경찰들 앞에서 범죄자들을 하나씩 다시 뽑아 주었다.
 
 오늘도 평온시는 평온했다.
 
 
 ***
 
 
 MML(Magic Man Laboratory).
 
 쉽게 표현하자면 마법청년 5원소의 연구소. 그곳에 모인 마법청년들은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이번에 영상이 잘 안 나왔어.”
 
 아이언이 짜증 내면서 히어로용 계정에 올린 편집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스. 봐 봐. 나 좀 못생기게 나온 것 같지 않아? 아, 보정해야 했는데. 인터뷰하느라······.”
 
 지윤은 평소와 같은 아이언의 얼굴을 쳐다봤다. 카메라 각도를 한껏 신경 쓴 티가 많이 났다.
 
 “잘 나왔는데?”
 “아, 됐어. 맨날 잘 나왔대.”
 
 툴툴거린 그가 밑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읽는 걸 바라봤다.
 
 Mm5iron_
 좋아요 4,827
 
 오늘도 무사한 밤이 되길.
 
 관전 포인트: 땅에 악당을 심는 어스.
 
 #마법청년5원소 #MM5 #히어로
 #빌런퇴치 #아이언 #블랙 #능력자
 #여러분굿밤 #평온시의평온한밤을위해
 #새벽에퇴근 #HVC #인터뷰
 
 -아이언 오늘도 귀여워!
 -땅에 심어 놓은 거 뭐야ㅋㅋㅋㅋㅋ
 -라이브 방송 봤어!
 -아이언 덕분에 오늘도 평온한 평온시!
 -힘내!
 
 지윤은 낯선 얼굴로 눈을 끔벅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멀어졌다. 저런 식으로 SNS를 하는 건 정말 젬병이었다.
 
 “푹 쉬었어?”
 
 윈드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의 뒤로 아쿠아가 함께 따라 들어왔다.
 
 “어제 어스가 끝까지 고생했다며.”
 “고생은 뭘······.”
 
 지윤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나름대로 악당을 묶어 놓는 방법으로 선택한 일인데,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다시 뽑아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야. 두철아.”
 
 아쿠아, 은수의 말에 아이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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