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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고백 후 먼치킨

고백으로 혼내줬다

2022.05.30 조회 88,624 추천 1,030


 내 이름은 김원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범한 남자다.
 
 키 173cm에 몸무게 63kg, 외모는 어딜 가도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디에도 섞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했고, 집안 형편은 부유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가족 구성원 또한 평범했는데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셨고, 어머니는 평범한 전업주부셨다. 나는 평범한 복학생이고, 여동생은 평범한 고3이다.
 뭐 하나 특출나게 잘나지도 않았지만 특출나게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가 바로 나다.
 
 굳이 평범하지 않은 걸 찾자면 내가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모태솔로란 걸 거다.
 군대에 가기 전까진 여자에게 관심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군대가 나를 바꿔놨다.
 매일 보던 맥심이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웠달까.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흐름일 거다.
 
 인생이 B(birth:삶)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라던데, 연속된 선택 속에서 나는 늘 평범한 선택지만을 골라왔다.
 미래엔 아마도 평범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평범한 선택지의 답으로 A(ace)를 선택할 거다.
 
 지금 난 복학 후 첫 엠티에 와 있다.
 디-데이이기 때문일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우우우우- 망설일 시간은 우우우우- 3초면 되는걸 우우우우······.”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화려한 무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내 관심사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유선아!’
 입학과 동시에 우리 과의 자타공인 미녀로 떠오른 신입생인데 청순한 외모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첫사랑 클리셰를 떠올리게 하곤 했다. 말랐지만 나와야 할 곳까지 확실히 나와 몸매까지 뛰어났다.
 난 오늘 시간디자인과의 자타공인 미녀인 선아에게 고백할 거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도 잘랐고, 새로 산 옷도 입었다.
 가사도 완벽히 숙지했으니 준비는 끝났다고 봐도 됐다.
 아마도 오늘이 내 23년 인생 중 최대 이벤트이자 최고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고백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이 하얘지고 있다.
 
 “야 떨지 말고, 용기 있는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 몰라?”
 “자신감을 가지라니까! 선아 깨톡 프사 못 봤어? 우리 조별 과제 했던 카페잖아. 너랑 갔던! 그런데 프로필에 떡하니 외롭다고 적혀있다? 이건 빼박이지!”
 “사랑은 타이밍이라니까! 뭘 망설여? 줘도 못 먹는 병신이 될 거야?”
 “너 이러다가 선아 뺏긴다니까! 지금 다른 과에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오늘 아니면 이런 어마어마한 기회가 또 올 것 같아?”
 “형 할 수 있어요!”
 
 한창 무대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긴장해서일까?
 같은 과 동기와 선후배들이 하는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은 디자인 영상학부 시각디자인과 김원준 학생의 순서네요. 김원준 학생 무대로 나와주세요!”
 나를 부르는 건가? 벌써 내 차례라고? 어떡하지?
 
 “야! 너 부르잖아! 빨리 나가!”
 누군가가 나를 일으키며 등을 떠밀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할 수 있다!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릿속까지 침범했다.
 
 오오오오오-! 킹원준! 킹원준!
 
 무대에 도착함과 동시에 다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엄청 열심히 연습했는데······.
 가사가 어떻게 됐더라?
 
 옆에서 뭐라 뭐라 떠드는 MC 때문에 더 헷갈린다.
 제발 닥쳐라!
 생각 좀 하자!
 
 “이 친구 완전히 얼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릴 거야. 똑똑! 들립니까?”
 푸하하하-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MC의 마이크가 관객들을 향하자.
 와아아아-!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나를 향했다.
 나 무대 체질인가?
 조금 진정된다.
 
 “인터뷰는 힘들 것 같고, 바로 음악 주세요!”
 
 강당의 조명이 일제히 꺼지자 내가 선곡한 멜로맨스의 사랑인가 봐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핀 조명이 머리 위로 떨어지며 나를 비췄다.
 
 “너흐와 함께 하아고 싶은 일들을 상상하는 게 요즘 내 일상이 되고호오오오······.”
 
 연습했을 때만큼 실력이 안 나왔다.
 하지만 괜찮다.
 동기들이 그랬다.
 가수도 아닌데 가창력이 뭐가 중요하냐고.
 중요한 건 진심을 전하는 거라고.
 
 선아는 내게 선톡을 보내는 유일한 신입생이었다.
 종종 뭐하냐고 물었는데 그럴 때면 난 과제 중이라고 답했다.
 여자와의 톡이 익숙지 않았지만, 선아의 배려 덕에 톡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수업이 겹치는 날은 커피가 있냐고 물었고, 없다고 답하면 내 커피까지 사 들고 왔다.
 최근엔 단둘이 밥도 먹었다.
 눈치가 없는 나는 이런 선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기와의 상담 이후로 선아의 행동이 내게 호감을 표시한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쑥스럽지만,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언제까지 모른 척하고 있을 수 있겠나.
 이제 내가 선아에게 답을 할 차례였다.
 
 나는 확신한다.
 오늘부터 선아와 나는 1일이다.
 
 ‘흐흐.’
 상상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걱정과 달리 숙지했던 가사가 술술 나오는 게 느낌이 좋다.
 미소가 더해지자 폭발적인 호응이 뒤따랐다.
 
 와아아아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러자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생겨났다.
 나는 선아를 향해 다가갔다.
 부끄러운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귀엽네.
 
 “아무래도 사랑인가 봐.”
 
 선아의 앞에 멈춰선 순간 노래가 끝났다.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등 뒤에 숨겼던 장미 한 송이를 꺼내며 고개를 들었다.
 
 꺄아아아악-!
 
 엄청난 함성이 날 응원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날 돕고 있었다.
 이게 동문인가!
 
 눈을 맞추자 선아가 몸을 배배 꼬았다.
 
 사겨라! 사겨라!
 
 장미를 들지 않은 손을 입술로 이동한 뒤, 집게손가락을 펴자 환호가 멈췄다.
 쉬잇-!
 
 “선아야 내가 많이 좋아해. 나랑 사귀어줄래?”
 
 퍼펙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보다 완벽할 순 없을 거다.
 멈췄던 함성이 강당을 무너뜨릴 기세로 폭주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선아가 몸을 떤다.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받아줘! 받아줘!
 
 답이 없는 걸까? 함성 때문에 묻힌 걸까?
 
 쉬잇-!
 
 답이 없던 게 맞나 보다.
 ‘뭔가 이상한데······.’
 기묘한 느낌과 함께 찾아온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아니다. 잠깐을 못 참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려 하다니 내가 미숙했다.
 침묵은 긍정 아니겠나.
 그래도 보는 이들이 많으니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지.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선아가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선배.”
 
 어느새 강당은 침묵만이 자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잘못 들었겠지?
 분명 남자친구가 없댔는데?
 동기 놈이 말하길 그린 라이트가 확실하댔는데······.
 선곡 미스였나?
 아!
 동기 놈이 그랬다.
 쉬운 여자로 보이면 안 되니 한 번은 튕길 거라고, 이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나 다 알아. 너도 나 좋아하잖아. 내가 정말 잘해줄게. 나랑 사귀자.”
 
 탁-!
 장미꽃이 날아갔다.
 
 “선배 미쳤어요? 제가 선배랑 왜 사귀어요? 지금 저 쪽팔려서 죽으라고 이러는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 다 보는 데서 고백을 해요! 아 진짜 짜증 나!”
 
 선아는 이 자리에 있는 게 진저리가 난다는 듯 휙 돌아섰고, 쌩하니 강당을 나가버렸다.
 나는 매몰차게 떠나는 선아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평범했던 내 대학 생활이 평범과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쾅-!
 
 강당의 문이 닫히고, 이제야 정신이 든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만감이 교차한다.
 ‘야이 씹새끼들아! 확실하다며! 그린 라이트라며!’
 
 싸늘한 정적 속에서 다양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하나둘 떠들기 시작하더니 웅성거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푸하하하하-!
 
 “와 무대를 찢었다!”
 “학교생활도 찢었쥬?”
 “진짜 미쳤나 봐! 크크!”
 “다음 무대가 우린데 저렇게 무대를 뒤집어 놓으면 어쩌란 거야? 아 짜증 나!”
 “짜증 난다면서 왜 웃고 있는데?”
 “웃기잖아 시발!”
 
 다른 과 학생들의 조리돌림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믿을 건 역시 같은 과 아니겠나.
 고개를 돌리자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야 다 찍었지?”
 “어. 설마 했는데 진짜 이게 되네.”
 “내가 말했잖아. 쟤 모태솔로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활자로 연애를 배운 놈이 호의랑 호감을 어떻게 구분하냐? 바람 좀 잡았더니 자기 혼자 온갖 의미 부여를 하더라니까. 아마 애들 이름까지 상상했을걸.”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Yeah~”
 
 가슴이 욱신거리고 머리는 띵했다.
 복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휴학이 마려운 건지.
 이젠 여자 후배들까지 가세했다.
 
 “내가 민수 오빠한테 들었는데 1학년 때부터 다들 원준 선배랑 같은 조 하려고 난리도 아니었대.”
 “왜?”
 “무임 승차해도 뭐라 안 하고 A를 보장해주는데 난리가 안 나겠어? 선아도 그 소문을 들었으니까 원준 선배랑 같은 조를 했겠지.”
 “선아 걔도 가만 보면 보통 여우가 아니라니까.”
 “여우짓 하다가 된통 당했네. 이 정도면 공개 처형 아니야?”
 “혹시 몰카 아니야? 여우짓 하는 후배, 공개 고백으로 혼내줬습니다!”
 “근데 존나 웃긴 게 뭔지 알아? 지금 남자 선배들 죄다 선아 따라갔잖아. 지금이 기회라나.”
 
 ‘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띠링-!
 
 [관심종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안내 사항을 확인하세요.]
 
 진짜 가지가지 하네. 씨발.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84)

우주귀선    
앞으로 기대됩니다. ^^ 선작 추천 남기고 가요~
2022.05.30 19:59
룰루랄라7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만인 앞에서 고백;ㅁ; 아마 원준이를 좋아했어도 저 고백은 매우 싫었을 거 같네요.. 생각만 해도 절레절레;ㅁ; 재미있어서 선작/추천하고 갑니다!
2022.06.11 12:27
어흥이라네    
고작 13화까지밖에 못봤지만 선발대입니다. 진짜 막힘없이 쭉쭉 읽히는데 진짜 재미있네요
2022.06.12 12:40
항마력    
시간디자인과는 어떤과인지 초능력자들인가
2022.06.12 14:02
꼬마고마    
진짜 혼내줬네. ㅋㅋ 만인 앞에 고백 받는거 로망 ㅋㅋ 그거 남자나 여자가 남들이 뺏고 싶을만큼 여러 조건이 좋은 남자나 여자가 고백 하는게 로망임 ㅋㅋ. 반대면 혼쭐내주는것
2022.06.19 13:58
멜러프    
와 지금 시간에
2022.06.20 00:40
디엘제르    
글이재밌네요 추천해요
2022.06.21 09:51
[탈퇴계정]    
신작연재 축하드려요
2022.06.21 13:10
문아생    
잘보고갑니다
2022.06.22 10:37
mg*****    
공개 처형 대단하네.
2022.06.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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