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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22.07.14 조회 51,504 추천 857


 프롤로그.
 
 
 
 드루이드.
 숲을 수호하며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현자.
 그들은 식물을 가꾸며, 동물과 우정을 나누고, 정령을 사역하여 기적을 만든다.
 
 남자의 전신에 새겨진 드루이드 문신이 강렬한 녹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녹색 빛으로 빛나고 있는 남자, 김도윤은 조화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뒤 외쳤다.
 
 “네메토나, [신록의 덩굴]이다.”
 
 온몸이 덩굴과 나뭇잎으로 이루어져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흩어져 무너져 내리는 동시에 땅에서 수백, 수천 가닥의 나무 덩굴이 솟아났다.
 그렇게 솟아난 덩굴들은 검은 기운을 두른 마계의 병사들을 꽁꽁 옭아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대자연의 힘을 품은 신록(新綠)의 기운에 마계의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마계의 주민인 그들에게 대자연의 힘은 신성력만큼이나 상극이었으니까.
 
 “역시 돈 킴이야! 드루이드 용사!”
 “이 뒤는 우리에게 맡겨요!”
 
 몸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덩굴에 얽매여 꼼짝하지 못하는 마계 병사들 위로 활과 마법, 그리고 검이 날아들었다.
 마왕군을 물리치기 위해 도윤과 함께 모인 용사 파티였다.
 
 “돈 킴이 아니라 김도윤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을 건지.”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자 어느새 다시 나타난 숲의 정령 네메토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라도 웃어라. 이름 틀리는 게 뭔 대수냐.”
 
 모든 정령의 여왕이자 세계수의 딸, 그리고 대수림의 주인인 네메토나는 반신에 가까운 정령이었다.
 운디네, 실프, 살라맨더, 노움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정령과는 격을 달리하는 존재.
 이른바 정령왕이었다.
 그리고 김도윤은 그런 정령왕과 계약을 맺은 용사이자 드루이드였다.
 
 20년 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뒤에 눈을 뜬 도윤은 갈레아 대륙에서 눈을 떴다.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지구로 돌아갈 거야.”
 
 낯선 세상에 떨어진 그는 우연히 자신에게 정령술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면 돌아갈 수 있겠어.”
 
 그것은 바로 세계수의 힘으로 차원 간의 포털을 여는 것.
 그래서 도윤은 정령술을 살리면서 세계수와 가까워질 수 있는 드루이드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갈레아에서 김도윤은 20년간 노력한 끝에 대륙 최고의 드루이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빌어먹을 마왕놈.”
 
 마계의 문이 열리며 마왕군이 갈레아 대륙을 침공했다.
 도윤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마계에서 흘러들어온 마기의 간섭으로 불가능해졌다.
 즉, 지구로 돌아가려면 마왕을 죽여야 했다.
 
 “마왕을 물리치는 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돈 킴.”
 
 그런 그에게 대륙의 희망이라 불리는 용사가 찾아왔다.
 
 “나는 돈 킴이 아니라 김도윤이야.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다면 따라가도록 하지.”
 “······어렵군요. 노력해보겠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도 용사이자 바다 너머 섬나라에서 건너온 공주는 진심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파티에서 유일하게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도윤, 당신은 지구에서 왔다고 했죠. 혹시 마왕을 죽이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건가요?”
 “······그래.”
 
 마계의 문으로 향하던 여정에서 용사와 도윤이 불침번을 서던 날이었다.
 그녀가 던진 질문에 도윤은 모닥불의 샐러맨더와 손장난 치던 것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곳에 지구가 있다는 듯이.
 
 “그리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곳은 아니었지.”
 “그런데 왜 돌아가려는 거죠?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마 없을걸.”
 
 그를 구박하던 가족들, 유약한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차갑게 그를 보던 할아버지.
 과연 그들이 사라진 자신을 찾고 있을까?
 도윤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막내 고모라면 몰라, 절대 자신을 찾을 이들이 아니었다.
 씁쓸한 도윤의 얼굴을 본 검의 용사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당신이 여기에 남는다면 제국이, 아니 갈레아 대륙이 당신을 위해······.”
 “돌아가서 하고 싶은 게 있어.”
 “······그게 뭐죠?”
 
 용사가 던진 질문에 도윤은 피식 웃었다.
 
 “자연인.”
 “자요닌? 드루이드랑 비슷한 건가요?”
 “나름?”
 
 도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검의 용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자연의 힘인 조화력을 다루며 숲의 지식을 연구하는 드루이드와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즐기는 자연인은 어찌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날 키워주셨던 할머니의 꿈이었지. 어릴 때처럼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자신의 고향이었던 남해의 섬을 그리워했었다.
 그래서 도윤은 할머니의 임종 전에 자신이라도 꼭 그렇게 살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 자연인의 삶이 이세계에서 이루어지긴 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할머니의 소원은 엄연히 지구, 그리고 한국 남해의 섬이었다.
 그러니 도윤은 돌아가야만 했다.
 돌아가서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고 싶었다.
 
 타닥, 탁!
 도윤이 미소짓자 샐러맨더가 기쁜 듯 모닥불 속에서 춤을 추었다.
 샐러맨더의 춤사위에 맞춰 피어오르는 불똥을 보며 도윤은 입을 열었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섬의 언덕에 소박한 집을 짓는 거야. 산나물과 텃밭의 푸성귀로 밥을 차리고 바다에서 낚은 해산물로 술안주를 하는 거지. 어때, 듣기만 해도 좋아 보이지?”
 
 도윤의 말에 용사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좋다고 하면 그가 진짜 떠나버릴 것 같아서.
 하지만 그의 꿈을 깎아내리기엔 도윤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조용히 자신의 희망을 담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저도 그곳에 방문하고 싶네요.”
 “얼마든지. 모리안, 너라면 대환영이야. 손님방도 넉넉히 마련할 테니 다 같이 오라고.”
 “바보 같은 남자.”
 
 김도윤은 용사 모리안의 눈에 맺힌 이슬을 모른척했다.
 그라고 왜 그녀의 마음을 모를까.
 하지만 그는 지구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왕과의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
 
 “다난의 검이여!”
 
 불사의 힘을 가진 마왕의 심장에 모리안의 검이 벼락같이 꽂혔다.
 그와 동시에 김도윤이 마지막 공격을 가했다.
 
 “네메토나! [세계수의 봉인]!”
 
 전신에서 대자연의 빛을 내뿜는 김도윤의 외침에 죽지 않는 마왕의 몸 위를 세계수의 거대한 뿌리가 뒤덮기 시작했다.
 마왕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역시 세계수의 뿌리 속에 가려져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걸로 끝이군.”
 
 길고 긴 용사 파티의 여정이 여기서 막을 내렸다.
 불사의 마왕은 봉인 당했고 갈레아 대륙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하늘을 가렸던 검은 마기가 사라지자, 김도윤은 자신이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갈 시간이야.”
 
 담담히 이별을 고하는 도윤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쓸쓸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진심으로 도윤을 축하해주기 시작했다.
 
 “내 고향 숲으로 돌아가도 돈 킴, 자네가 그리울 거야. 자네는 대자연 그 자체였으니까.”
 “난 하나도 안 아쉬워! 자네가 만들어 주던 그 지구 요리를 못 먹는 건 조금 아깝지만!”
 “쿠엉! 슬프다!”
 “차원 마법을 개발하면 놀러 갈게요. 그쪽엔 재밌는 게 많아 보이거든.”
 
 김도윤은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그의 파트너인 정령왕 네메토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세계수의 딸이자 마왕을 봉인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쓴 네메토나는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소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랜 잠을 자야 할 터였다.
 
 “잘 자.”
 
 이세계에 떨어진 뒤 계속 함께해 온 파트너의 긴 잠을 앞두고 도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의 말로도 그의 파트너는 도윤의 진심을 모두 알아줄 테니.
 고개를 끄덕이는 네메토나의 몸이 허물어져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제 너만 남았네, 모리안.”
 “······읏.”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모리안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도윤은 쓰게 웃으며 모리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목이 잔뜩 메인 그녀의 눈이 도윤에게로 향했다.
 
 “언젠간, 꼭, 지구로 갈 거예요.”
 “그래. 오면 내 집으로 초대할게.”
 “꼭이에요.”
 
 모리안의 말이 끝나는 순간, 도윤의 몸에 새겨진 아홉 개의 문신이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드루이드의 술법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세계수의 기운이 당신에게로 흘러듭니다.]
 
 도윤은 세계수의 힘을 받아들이며 차원 이동의 포털을 열었다.
 
 “이 메시지도 마지막이겠네.”
 
 처음 갈레아에 떨어졌을 때 떠오른 세계수의 메시지, 즉 상태창에 얼마나 놀랐던지.
 하지만 이제는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진 상태창과도 이별이었다.
 도윤은 세계수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너도 잘 있어.”
 
 도윤의 말이 끝나는 순간, 새하얀 광휘가 도윤의 전신을 감쌌다.
 
 [세계수가 자신의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마지막 선물을 선사합니다.]
 [잘 가요, 나의 친우여.]
 
 * * *
 
 빛에 둘러싸여 있던 도윤은 눈을 떴다.
 전혀 모르는 새하얀 병원의 천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꿈일까?
 내가 정말 돌아온 게 맞는 걸까?
 도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태창.”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제야 도윤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는 지금 지구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고, 도윤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도윤은 자신이 진짜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힐링물로 달려보려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39)

Mep    
기대됩니다.
2022.07.15 00:20
벤조    
두근두근!
2022.07.15 00:29
필독(必讀)    
해산물 술 안주라 크
2022.07.20 20:45
커튼업    
꿀고구마 하나 주이소
2022.07.22 13:56
혼돈군주    
마왕의 단말마 역시 ㅡㅡ> 마왕의 단말마의 비명 역시 단말마는 외부로 표현 되는 게 아님 그저 죽는 본인이 느끼는 것. 외부로 표현 되는 건 그 고통에 대한 비명 뿐. 단ː―말마 (斷末魔) 【명사】 ① ⦗불⦘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 ∼의 비명을 지르다. ② 죽을 때. 임종.
2022.07.23 15:16
오구진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2022.07.23 15:25
푸린이    
모리안.. 다난... ㅁㅂㄴㄱ?
2022.07.25 02:00
할짞    
dm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와...
2022.07.25 13:07
심해인    
???: 가격 문의하실 때 예쁜 인사말과 매너 부탁드릴게요~~~
2022.07.25 21:43
럽쮸    
힐링물줍줍
2022.07.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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