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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매니저가 정치질을 너무 잘함

1.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2022.07.20 조회 25,233 추천 277


 1.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툭.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손에서 힘이 빠졌고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니 액정에 금이 가 있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지독하게 풀리지 않는 날.
 
  “또?”
 
  올해도 물먹었다.
  이번에도 나는 로드매니저 신세였다.
 
  “와, 진짜 제대로 찍혔나 봐.”
  “10년 차인데 계속 로드면 이제 그만두라는 거지, 뭐.”
 
  알고 있다.
  고졸 출신에 상사 비위 맞출 성격도 못된다.
  타고난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내게는 가진 거라고는 고작 성실 밖에는 없었다.
 
  “어제 말했듯이, 오늘 점심에 라디오. 오후에는 예능 프로그램 녹화 한 후에 바로 대구로 간다.”
 
  살인적인 스케줄.
  거의 사흘 넘게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회사에서 찍힌 몸이라 휴일마저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내게서 사직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스케줄 너무 빡센 거 아니야?”
  “밥도 제대로 못 먹겠네. 왜 하필 대구야?”
 
  지방 스케줄이 싫은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잡아주는 지방 축제는 거부권이 없었다.
  많은 돈이 들어오니 회사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중간중간 먹을 건 챙겨줄 테니, 이해해 줘라.”
 
  지금 내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은 데뷔 2년 차 ‘에잇키즈’였다.
  8명으로 구성된 남자 그룹이었으며 작년부터 서서히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한 아이돌이었다.
  올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첫 정산금을 받은 에잇키즈는 머리가 조금 커졌다.
  어쩌면 나에게만 머리가 커진 걸지도 몰랐다.
 
  “들어가면 먼저 피디님께 인사드려. 작가님도 잊지 말고.”
 
  공중파 1위를 하기 위해서는 방송 점수도 챙겨야 한다.
  그렇기에 별 소득이 없는 라디오나 예능에 일회성으로 출연한다.
  아이돌이 머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로드 매니저 말을 잘 듣지 않게 되는데, 지금 딱 에잇키즈가 그랬다.
  활동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매니저에게 푼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바가지가 안에서 새는 게 낫지, 밖에서 새면 수습하기도 힘들다.
 
  “안녕하세요! 에잇키즈입니다!”
 
  인사하기 싫다, 피곤하다, 배고프다, 별별 불만을 늘어놓던 에잇키즈는 막상 라디오 진행 중에는 프로답게 행동했다.
  지금 2년 차.
  아마 재계약 시즌이 다가오면 커진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 목이 두꺼워지며 인기에 취한 나머지 태도 논란이 터질 것이다.
  대다수 인기 있는 아이돌이 겪는 루트였다.
 
  “아, 네. 어디시라고요? 아, 티엔브이요? 네네. 일단 작가님 기획안부터 보내주시겠어요? 네. 이메일 알려드리겠습니다.”
 
  라디오를 지켜보며 걸려오는 섭외 전화를 받는다.
  케이블이었고 에잇키즈에서 비주얼 담당인 멤버를 원하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획안을 참고하는 것이 편하고 내가 에잇키즈를 담당하고 있어도 크게 권한은 없었다.
 
  - 땅을 박차고 뛰어! Run Run Run
 
  이번 에잇키즈 신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 주저앉지 마 네가 원하는 걸 쟁취해 심장이 멎을 때까지
 
  시간을 확인하고 밖에 나왔다.
  오늘 늦은 점심은 참치와 치즈가 들어간 김밥이었다.
 
  - 뛰어! Run Run Run
 
  수없이 들어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또 김밥.”
  “아이 씨.”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차 안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김밥이었다.
 
  “아니, 근처에 햄버거도 있고 하다못해 도시락도 있던데, 또 김밥이야?”
  “어제도 김밥 먹었는데······.”
  “누구는 매번 비싼 거 먹는다던데, 진짜 홀대하는 거야, 뭐야.”
 
  할 말이 없다.
  김밥이 가장 저렴해서 선택한 것도 맞으니까.
  에잇키즈가 홀대받는 게 아니라 한준수가 받고 있다.
  법인카드 하나 쓰는 것도 팀장 눈치를 봐야 했고 자연스럽게 에잇키즈에게도 영향이 가고 있었다.
 
  “스케줄 끝나고 삼겹살 사줄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묵묵히 김밥을 입에 밀어 넣던 리더 이준혁이 말했다.
 
  “뭐, 형 개인카드로 사주게?”
 
  이준혁은 내가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고 사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대접받으면서 계속 이 회사에 있고 싶어, 형은? 뭐, 로드 구하기 쉽지 않아서 해고는 안 하겠지만, 형 연차면 진작 팀장 달아야 했던 거 아니야?”
 
  이준혁은 가끔 비수를 꽂는다.
  아주 잔인하게.
 
  “김밥 먹는 건 질리지만, 나야 로드가 계속 바뀌는 거보단 낫긴 한데. 형은 진짜 비전 없는 거 알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기에 실없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준혁이 괜히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나는 연습생에게 잘해주는 매니저 중에 한 명이었고 이준혁은 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얼른 가자. 늦겠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무섭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은 비 소식이 있지만, 대구는 어떨지 모르겠다.
  비가 떨어진다고 해도 대학 축제는 이어졌다.
  에잇키즈 하나 부르는데도 천만 원 이상이 든다. 에잇키즈 하나 부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비가 내린다고 해도 축제가 취소될 일은 없었다.
 
  “안전벨트 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들을 애들이 아니었지만, 비가 오는 만큼 주의를 준다.
  고속도로에서 스케줄 소화를 하러 움직이다 보면 시간에 쫓겨 사고가 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비가 올 때마다 안전벨트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 순서 피날레야?”
  “아니, 피날레 전.”
  “헐. 우리 아직도 피날레 아니야?”
 
  당연하다.
  에잇키즈는 아직 그 수준은 아니었다. 공중파 음악방송까지 1위를 석권했지만, 톱 아이돌급은 아니었다. 물론 성장 가능성이 있기에 지금은 정상을 향해 등반하는 시기였다.
 
  “그럼 누군데?”
  “아스카.”
 
  축제 피날레를 장식할 걸그룹을 듣자마자, 입을 다문다.
  걸그룹 ‘아스카’는 에잇키즈와 같은 소속사 아이돌이었다. 에잇키즈가 서서히 반응이 들어왔다면 아스카는 데뷔하자마자 돌풍 같은 인기를 얻으며 톱 아이돌 자리에 올랐다.
  일본이나 동남아권에서도 인기가 좋았고 말 그대로 1군 아이돌이었다. 에잇키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언제 적 아스카야.”
 
  그러면서도.
  서서히 치솟은 인기에 취해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요즘 일본에서 살던데? 한국 인기 떨어지니까 그런 거 아니야.”
 
  쿵, 쿵, 쿵.
  혼자 낄낄 웃으면서 운전석을 발로 찬다.
  등에 느껴지는 울림에 미간을 좁히며 짜증을 눌렀다. 처음부터 에잇키즈가 이렇게 건방졌던 건 아니었다.
  신인 때는 잘해 보겠다고 뭐든 열심히 하는 근성을 가졌고 첫 앨범을 말아먹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았던 아이들이 에잇키즈였다.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에잇키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했었다.
 
  “잠 좀 자 둬.”
 
  내일도 스케줄은 꽉 차 있었다.
  음악방송 스케줄이 시작되기 때문에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여전히 운전석을 발로 걷어차던 멤버가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그래, 잠이 최고지.”
 
  쿵쿵, 운전석을 걷어차던 발이 불쑥 위로 올라온다. 발이 머리에 닿는다. 불쾌함이 온몸에 맴돌았지만, 이를 악물며 참아냈다.
 
  에잇키즈는 아직 2군 아이돌.
  하지만 머지않아 1군에 안착할 것이다.
  그들의 소속사는 대형이었고 자본으로 그들을 조금 더 위로 올려줄 여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기회를 받지 못했고 매니저로서 성장은 멈춘, 내게는 어떤 미래가 남아 있을까.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버스 전용차선을 타고 대구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촉박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서서히 높이던 그 순간.
 
  부아아아앙-!
 
  격렬한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드미러로 확인하니, 노란색 스포츠카가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
 
  눈 깜짝할 새에 스포츠카가 가까워졌고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버스 전용차선을 타고 있었던지라, 속도가 제법 붙은 상황이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끼어든 스포츠카를 피할 수 없었다.
 
  콰앙!
 
  아무리 비싼 차량이라고 해도, 리무진 차량을 무게로 이길 수는 없다.
  스포츠카가 속도와 충격을 못 이겨 비틀거렸고 이내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그다음은.
 
  ‘빌어먹을······.’
 
  가드레일을 박고 멈춘 스포츠카를 향해 차량이 돌진했다.
  빗길이라 도로가 미끄러웠고 과속한 것이 사고의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여기저기 끼어들기를 하며 과격 운전을 한 스포츠카에게 더 큰 과실이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살아 있을 때의 문제였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유선강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24)

ggaja    
건필하세요
2022.08.01 21:07
세비허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022.08.05 14:19
아쫌    
로드는 구하기 쉽지 않은걸 알면서 저런 대접을 받고 십년이나 버티다니 미련한거네요. 아이돌하고 끈끈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2022.08.12 10:52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2022.08.12 15:59
풍뢰전사    
너의 능력이 보여봐야 고졸이라 승진 못한다면서요 ? 건필하세요
2022.08.13 12:41
뿌아아왕    
이해가 안되넹.. 다른 직군보다 이직도 쉽고 경력도 10년이면 짧지않은데 저런취급을 받으면서 그냥 다니는건 그냥 머저리가 맞는듯 뒤짚어 엎으라는게 아니라 그냥 조용히 그만 두고 다른 기획사 다니면 되는걸,,, 정말 무능력한 주인공이넹
2022.08.15 17:08
프라텐    
운전석에 발 올리는 멤버가 진짜 착한 듯ㅋㅋ 자발적 로드 노예 자극해서 해방 시켜줄려는 큰 그림
2022.08.18 05:14
j1*******    
호구냐?
2022.08.18 19:07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2.08.20 08:18
최웅    
알람보고왔습니다 선작 박고 스따뚜!
2022.08.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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