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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대학원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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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1 조회 52 추천 1


 #1. 한국진흥대학 생명학부 대학원 지침서 (1)
 
 
 
 
 
 저희 한국진흥대학 생명학부에서는 신입생들의 안전을 위한 간단한 행동수칙을 제공합니다.
 아래 내용은 외부에 누출되어서는 안 되며, 이하 항목들을 위반하여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대학의 책임소재가 없습니다:
 
 1. “공학관 6층 김 교수님 연구실에서 왔다”라면서 실험기기를 빌리려 하는 포닥을 보면 잠시 기다려달라고 얼버무린 뒤 즉시 행정실로 연락하십시오. 저희 공학관은 5층까지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주말, 특히 일요일에 동물실험실을 예약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실험복이 아닌 종교적 복장으로 어린 양이나 염소 등을 가지고 동물실험실을 방문하는 실험자가 보일 경우 즉시 행정실에 연락하십시오.
 저희 단과대에서는 해당 동물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3. 저녁 이후 공학관 2층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는 특이사항이 아닙니다. 소파에서 쪽잠 자는 대학원생들이 가위눌려 내는 소리일 뿐이므로 무시하십시오.
 그러나 웃는 소리가 난다고 하면 즉시 신고하십시오. 저희 단과대 대학원생들은 거의 웃지 않습니다.
 
 4. 학생들끼리 마시는 술자리에서 낯선 사람이 자신을 신임교수라고 밝히며 동석하고 싶다고 요구하면 정중히 거절하십시오.
 만일 어쩔 수 없이 함께 마셨을 경우, 신속히 대학에서 멀어진 뒤 빠르게 퇴학절차를 밟으십시오.
 해당 인원이 느끼는 “실험하고 싶다”라는 감정은 모두 거짓입니다.
 
 5. 활짝 웃으며 공학관을 활보하는 대학원생이 있다면 반드시 “무슨 좋은 일 있나요?”라고 물어보십시오.
 그 답변이 “졸업해서” 혹은 “논문이 어디 실려서”라면 정상적인 사례이니 가벼운 목례로 넘어가십시오.
 그러나 “연구가 너무 즐거워서” “교수님이 잘해주셔서” 같은 답변을 받을 경우 즉시 그 학생의 이름과 소속연구실을 물어보십시오.
 저희 단과대의 교수평가는 0점에 수렴하며, 그런 연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6. 단과대 내 간이침대 구입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있습니다. 취침은 기본적으로 기숙사 내, 혹은 휴게실 소파에서의 쪽잠 정도가 권장사항입니다.
 밤샘실험을 하던 도중 연구실 내 못 보던 간이침대가 생겼을 시, 절대 눕거나 다가가지 마십시오.
 만일 그 위에 자고 있는 사람이 보일 경우 절대 그를 깨우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그가 일어났을 경우, 어떤 말과 행동으로 위협해도 그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그가 문을 막았다면, 급하게 전화가 온 척하며 행정실에 연락하십시오. 이후엔 행운을 빕니다.
 
 7. 얼굴만 아는 친구가 갑자기 기숙사 식당에 몰래 들어가 밥해 먹으면서 놀자고 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하십시오.
 학부생 기숙사의 경우, 축제 등의 행사기간엔 제한적으로 조리실을 개방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학원생 기숙사 식당은 식수부족으로 2009년에 이미 폐쇄되었다는 걸 숙지하십시오.
 
 8. 저희 단과대에는 목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오. “인간목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은 바 없습니다.
 
 9. 조류독감 등의 연구를 위해 가금류를 사용하는 연구실이 있으나, 칼로 그것의 피를 내고 문양을 그리는 행위는 결코 교내 및 기숙사에서 허용된 바 없습니다.
 발견하실 경우 곁눈질로 7초 이하로만 바라보신 후, 대략적인 형태를 행정실에 보고하십시오.
 
 10. 네. 대학 내 청소부분들은 필요에 의해 타 대학과는 조금 다른 분들이 선발되었습니다.
 네. 청소부분들의 “청소”는 대학 내 대부분의 행위보다 우선됩니다.
 
 11. 위령제는 단과대 내 모든 학생들이 필참하는 행사입니다.
 개인사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는 인원의 경우, 행정실에 미리 연락하셔서 다른 날짜에 참여하십시오.
 위령제 당일 갑작스럽게 오한, 발작, 기타 초상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보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2. 대학원생이 연구하면서 겪는 고통의 9할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저희 단과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13. 아니오. 저희 단과대의 교직원 및 교수진들의 평균 연봉이 높은 건 재단의 경제적 여건과 교수님들의 연구성과 덕분입니다. 생명수당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14. 이 주의사항의 4번 항목은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어 현재 삭제되었습니다.
 혹시 해당 항목이 남아있는 판본을 보고 있을 경우, 그 지시사항의 반대로 행동하십시오.
 
 15. 물이 불어나 땅은 온통 물에 잠기고 너희는 물 위를 떠다닌다. 물은 점점 불어나 하늘 높이 치솟은 것이 다 잠긴다. 물은 너희들을 잠그고도 열다섯 자나 더 불어난다.
 
 15. 학부생, 대학원생을 포함하여 실험실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은 라텍스 장갑과 긴바지, 발이 다 가려지는 신발을 착용해야 합니다.
 치마와 반바지, 슬리퍼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핸드폰 사용 또한 금지됩니다.
 실험 중 맨살을 만지지 마십시오. 다친 인원은 가급적 실험하지 마십시오.
 
 상기 주의사항들을 지켜주신다면, 생명과학부 소속 학부생 및 대학원생분들께서 타 대학원에 비해 유의미할 정도의 더 편안하고 성취도 높은 학업과 연구활동을 진행하실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추가적인 질문은 학사지원팀으로, 주의사항 이외의 특이현상들은 행정실 및 청소근로자 휴게실에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소명은 나폴리탄이 지긋지긋했다. 파스타도 싫고 괴담도 싫었다. 나폴리탄 파스타는 누군가에겐 추억의 맛이라고 하지만 추억은 너무 주관적이고, 소명에겐 그저 ‘토마토 파스타를 얕보는 건가?’ 싶은 싸구려 맛으로 느껴졌다. 그런 이름을 내거는 장르답게 나폴리탄 괴담은 의미 없고 실체 없는 가이드라인이었다.
 실제 겪는 사람의 수고는 생각도 안 하고.
 
 “네, 교수님. 소명입니다. 지금 건물 안쪽으로 들어왔습니다.”
 [고생이군. 곧 지원인력 한 명 갈 걸세. 준비하게.]
 
 소명은 심호흡을 하고 복도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려운 일이다. 무단횡단 하나 막 하지 않는 사람이 일부러 가이드라인을 어기기란. 그게 타의라면 더욱.
 이런 달밤에 시간은 참으로 천천히 지나는 법이라, SNS에 올라온 새 글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레 창밖으로 눈이 돌아갔다. 늦여름 밤은 느지막이 계절의 순환을 알린다. 습한 밤공기가 각종 산짐승과 벌레 냄새를 품고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미지근하고 눅눅한 바람이 한 차례 불고, 시선이 날카롭게 찌른다.
 당장 해치지 않는단 걸 알아도 맹수의 눈을 들여다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소명은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참 평범한 느낌의, 실험용 랩코트를 입은 피곤한 인상의 남자였다. “저기.” 화학약품 냄새에 온통 찌들었고. “공학관 6층 김 교수님 연구실에서 왔는데요.” 산 사람 냄새는 없다.
 그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신에게 되뇌이듯 중얼거리다, 소명을 쳐다보고 말했다.
 
 “실험기구 하나 빌리러 왔는데.”
 
 준비된 대로 하자. 제발. 소명은 굳어가는 혀를 억지로 움직였다.
 
 “···제가 어디 랩 소속인 줄 알고?”
 
 불빛이 깜박거린다.
 그의 기척에 날이 섰다.
 
 “너, 왜 다르냐?”
 
 복도가 암전한다. 인공적인 불빛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견디지 못해 사그라든다. 산양의 울부짖음이 지평선 너머에서 느지막이 들려온다. 생명의 심장소리가 축제 북소리처럼 고동친다. 눈앞의 존재가 정해진 규칙을 어긴 자를 단죄하려 맹수처럼 달려온다. 꾸물거리는 칼날이 배와 정수리, 목 끝에 닿는다.
 피할 생각도 시간도 없이 소명은 살의에 감싸였다. 공간 자체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일그러지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내장 비린내에 가까운 악취들이 의식을 가득 메웠다. 곧 소명은 자신이 죽어야 이 공간이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을 긍정했다.
 왜 규칙을 안 지켜? 왜 피로 맺어진 맹약을 무시해? 왜 무지한 어린 양들의 피로 길게 그어진 경계선을 함부로 넘어오는 거야? 네가 뭐라고. 우리가 그랬잖아, 너희들에게 알려줬잖아. ‘나폴리탄’이라는 싸구려 포장을 씌우면서까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자기 것이 아닌 생각들 속에서, 그 단어 하나가 혈압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소명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 순간에 고한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라는 말을 입술을 짓이겨 멈춘다. 쓸데없는 미사여구까지 넣지 않아도 세이프 워드는 작동한다. 피맛과 쇳내가 입 안을 감돌았다. 소명의 정신이 맑아졌다.
 소명에게 들이밀린 칼끝이 멈춘다. 신념과 사상이 담긴 발언은 그들에게도 총칼과 같았다.
 
 “상태창! 아니, 행정실!”
 “소명이 넌 웹소설 좀 그만 봐라. 이 상황에 그런 말 나올 정도면 중증이야.”
 
 신화적인 어둠을 가르고, 청소부가 등장했다. 차라리 시꺼멓다고 할 만한 진홍빛 망토를 두른 채. 까만색 양복과 셔츠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반딧불이처럼.
 흩날리는 망토 밑에서 빛나는 거대한 매그넘이 한 정. 라이플탄이라도 들어갈 법한 긴 총신에 45구경 총구. 그 어금니의 끝이 사람의 형태를 이뤘던 것을 겨눴다.
 
 “죄인과 악인과 괴물은 이 땅에서 사라져라.”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에 번개가 내리쳤다.
 
 정신이 들었을 때, 소명은 익숙한 행정실 간이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전신이 다 욱신거렸다.
 
 “가만있게. 몸만 다친 게 아니라 영혼도 영향이 있는 모양이니.”
 
 미지근한 체온. 선명한 적발에 멀끔하게 차려입은 불혹 무렵의 여성이 소명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교수님.”
 “왜 그러나.”
 “저 이거 다시는 안 할 거예요.”
 “그런 소리 말게. 그래도 이걸로 논문 한 편 더 쓸 수 있어.”
 “어차피 이번에도 공표 못 될 것 같은데요.”
 “만에 하나 나올 수 있으면, 세기의 역작이지.”
 
 교수님은 그런 소리를 하며 온화하게 웃었는데, 소명은 몸만 움직인다면 그 멱살이라도 쥐고 싶었다.
 
 “몸이 움직이나 보군. 그럼 썩 꺼져. 나 거기서 자야 돼.”
 
 덜컥, 하고 행정실 문이 열리며 남자의 말이 들려왔다. 민트향 바디워시 내음이 훅 풍겼다. 검붉은 망토를 책상에 대충 걸치며 들어온 건 30대 초반쯤 되는 남성이었는데, 다 벗은 상반신에서 고양잇과 맹수를 연상시키는 몸라인이 돋보였다. 바지도 반쯤 벗고 있었다.
 
 “옷 좀 걸쳐요.”
 “싫어. 청소 한 판 뛰고 오면 엄청 덥단 말이야, 옷이 워낙 두꺼워서.”
 “아이고, 이러니까 현장직은.”
 “소명이 너는 사람도 아닌 대학원생이잖냐. 나한테 뭐라 할 처지야?”
 “아니, 쫌! 이제 사람 된다 그러거든요?”
 “그래 봤자 여기서 다친 건 4대보험 취급도 안 해주거든.”
 “그럼, 소명 군도 정신 차렸으니 난 이만 가보겠네. 빨리 오늘 관측결과 작성해야 해서.”
 “네, 들어가십쇼, 윤미명 교수님.”
 “가람 선배는 왜 교수님한테만 이렇게 깍듯해요? 나한테도 좀 잘해줘 봐요!”
 “옛 지도교수님하고 그 노예하고 대우가 같으면 이상하지.”
 “또 노예래 또!”
 
 멀리서 교수님이 행정실 특수청소과 문을 닫는 소리를 들으며, 소명은 가람 선배와 투닥대며 언성을 높였다.
 밖에선 이제서야 아침 햇살이 뒤늦게 나오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한국진흥대의 교훈을 담은 석판이 빛나고 있었다. ‘죽어도 곧 살리라.’
 혹자들은 얘기한다. 여름엔 괴담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요새 나폴리탄 괴담 재밌다고. 적어도 소명에게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리 없고.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공학관을 나오는 이는, 한국진흥대학교 미생물연구실 겸 초상현상연구실 석박통합원생 강소명. 소위 말하는 ‘나폴리탄 괴담’, 다시 말해 가이드 괴담의 실체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뚜르르르. 전화벨 소리에 소명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꼈다.
 
 “···무슨 일이신가요, 교수님. 오늘 할 건 아까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 소명 군. 깜박하고 얘길 안 했는데 내일부터 석사과정생 신입 한 명 들어오네. 자네가 교육 좀 하게나.]
 “교수님께서는···?”
 [3박 4일 출장이야. 그동안 맡긴 일 다 해놓고, 신입도 쓸 만할 정도로 가르쳐놔. 알겠지?]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소명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 개같은 곳 빨리 뜬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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