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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리스폰[Respawn] [E]

리스폰[Respawn] 1권

2015.06.10 조회 20,112 추천 248


 프롤로그-마지막 부활
 
 의학의 발달로 불치병의 수가 대폭 줄어든 근미래.
 최시우는 불치병에 걸렸다.
 발달된 의학으로도 원인조차 파악이 안 된 그 병마는 최시우의 몸을 좀먹었다.
 원래라면 매우 큰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병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최시우의 부모는 엄청난 재력가였다.
 현대 과학 기술이 집약된 가상현실 시스템을 치료에 도입, 최시우는 그 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외로운 세상이었다. 시우는 언제나 고독했고 그런 시우를 달래기 위해 가상현실 게임을 구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롭게 가상현실로 유입될 유저들과 함께 즐기며 고독을 잊을 수 있도록.
 가상현실 게임은 완성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유저가 유입되는 일은 없었다. 가상현실 접속기의 대량생산에 문제가 생겨 정상운영을 하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있는 최시우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고 더 이상의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 * *
 
 “오래 살다보니 정말 별 꼴을 다 본다. 과학으로 생명을 가지고 놀다 못해 의학으로 죽을 운명을 살려놓더니 이제는 기계가 영혼을 빨아들이네?”
 저승사자는 최시우의 몸을 둘러싼 기계를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승사자는 난감해졌다.
 “아무래도 영혼을 수거하려면 저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저승사자는 고민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의 일은 정확한 시간에 인간의 영혼을 수거하는 것.
 조금의 오차도 허용할 수는 없었다.
 저승사자는 시간이 되자 어쩔 수 없이 가상현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최시우의 영혼을 수거하려 했다.
 하지만…….
 
 띵!
 [Error!! 사용자의 데이터 보호를 위해 허용되지 않은 프로그램의 실행을 차단하였습니다.]
 “헉! 뭐야?”
 최시우는 갑자기 뜬 경고창에 놀랐다.
 뭔가 잘못 건드렸나 싶지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허용되지 않은 프로그램?”
 혹시 해킹?
 최시우는 괜히 걱정이 들었지만 현대 과학 기술의 집약체인 가상현실의 해킹 방어 기능을 믿었다.
 가상현실을 구축할 정도의 기술력을 지닌 사람들이 고작 해커에게 당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최시우는 뭔가 달라진 것이 있나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안심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두둥!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리스폰 하시겠습니까?]
 “아앗!”
 몬스터도 없는 마을 안이었는데 갑자기 캐릭터가 죽어버렸다.
 안 그래도 불치병에 걸린 게 마음에 걸려서 캐릭터가 죽는 것만큼은 최대한 피해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시우는 부활 확인 버튼을 눌렀다.
 
 R E S P A W N
 ■□□□□□□□□□
 1%.
 
 “아, 이건 또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사위가 어두워진 장소에서 영혼처럼 둥둥 떠있던 최시우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로딩 창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지쳐 드러누웠다.
 어차피 로그아웃 해봐야 아프기만 하니 이대로 한숨 잠이나 자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최시우가 깨어났을 때, 그곳은 미지의 숲 속이었다.
 “여긴 또 어디야?”
 
 
 1장. 미지의 숲
 
 시우는 당황스러웠다.
 게임 속에서 죽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부활은 사망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마을?”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은 보이지 않고 우거진 수풀만이 시우를 반겼다.
 원인을 생각해보았다. 가상현실 게임이 실제로 운영되는 것이 처음이긴 했지만 시스템적 오류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우는 어렵지 않게 에러 창이 떴던 것을 떠올렸다.
 “해킹이었나? 역시?”
 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왜 장비가 벗겨진 거지?”
 어둔 밤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있으려니 추위가 엄습했다.
 팔짱을 끼고 덜덜 떨다가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며 입을 열었다.
 “가방.”
 이상한 곳에서 부활이 되긴 했지만 시스템에 큰 피해는 없는 모양이었다.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아이템 창을 확인한 시우는 안심하며 장비 모양의 아이콘에 손을 가져갔다.
 “장착.”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해봤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시우는 처음으로 불안해지며 혹시 다른 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해 보았다.
 “능력정보.”
 시우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였다.
 “뭐야 이게!”
 그동안 죽자 사자 몬스터를 잡으며 올린 레벨이 초기화되어 있었다.
 아마 장비를 착용하지 못한 것도 이 탓인 듯했다.
 장비의 레벨 제한이 높다보니 레벨 1로 초기화된 시우가 착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
 시우는 혹시나 싶어서 스킬창도 열어보았다.
 시우가 배워둔 수많은 기술 중 대부분이 레벨 제한에 걸려 잠겨있었다.
 그림의 떡이 이런 거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아이템 창을 열어보았지만 1레벨이 착용할 수 있는 의류는 없었다. 제일 제한이 낮은 방어구가 10레벨짜리 가죽 갑옷이었다. 대신 무기 몇 종류가 레벨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시우는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시스템이 해킹을 당한 거라면 복구가 되자마자 운영자 아저씨들이 레벨을 복구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시스템이 해킹당한 걸 아직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추위에 떨며 기다릴 수는 없었다.
 “레벨 10이라.”
 레벨을 10까지만 올리면 입을 옷이 생긴다. 시우는 딱 10레벨만 찍고 쉬자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사냥을 하려면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괜히 사냥하겠다고 나대다가 고레벨 몬스터라도 만나면 낭패였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시우는 죽는 것이 싫었다.
 “지도.”
 시우는 왼눈을 손으로 가리며 미니 맵 기능을 켜봤지만 미니 맵도 해킹에 당했는지 먹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본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낯설었다.
 지형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뭔가가 달랐다.
 “디자인이 바뀌었나?”
 나무도 처음 보는 종류였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디테일하게 반짝반짝 거렸다. 무엇보다도 달이 두 개였다. 붉은 달과 푸른 달. 원래 달은 한 개인데다 노란색이었다.
 시우는 당황했다.
 이것도 해킹의 영향 중 하나겠지만 그 탓인지 여기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시우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만히 있자니 너무 추웠다.
 죽는 것은 싫었지만 눈앞에 닥친 추위가 더 싫었다.
 일단 대충 돌아다니다 몬스터와 조우하면 싸워보고 힘들면 그냥 죽어보기로 결정했다.
 다시 죽으면 이번엔 마을에서 부활할지도 몰랐다. 반팔 반바지 차림은 그대로겠지만 아무래도 숲보다는 마을이 따듯할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기던 시우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이미지도 바뀌었지만 뭔가 달라진 것이 더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내 시우는 항상 신나게 귓가를 맴돌던 배경음악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어쩐지 항상 몬스터를 사냥할 생각으로 신나던 숲이 별로 재미가 없었다.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별다른 의미 없는 숲 속 효과음중 하나겠지만 이번에 바뀐 숲의 디자인과 잘 어울려 정말 숲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시우는 손을 비비고 입김을 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레벨 10 정도는 금방 올릴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건 게임이었다. 주목적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마을 바깥에는 몬스터로 널려있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벌써 30분을 걸었지만 몬스터의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설마 밤이 깊어졌다고 기온도 더 떨어진 건가?”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기온에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게 맞는 모양이었다. 체감 온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시우는 갑자기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리고는 스킬 창을 열어보았다.
 “분명 있을 텐데.”
 시우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검사로 진로를 골라 키웠다. 하지만 시우가 배운 기술은 검술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시우의 몸은 아팠다. 로그아웃을 해봐야 절망과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는 현실은 싫었다. 시우는 말 그대로 게임에 빠져 살았다.
 시우는 빠르게 강해졌다. 게임 속에서 할 일이라고는 몬스터를 사냥해 더욱 강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시들해졌다. 그때 시우가 눈길을 준 것이 마법이었다.
 시우는 스킬창에서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템 창을 열어 [세계수의 가지]를 꺼냈다.
 이름은 범상치 않았지만 그것은 레벨 제한이 없는 연습용 마법지팡이였다.
 이름이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지금 시우에게 필요한 것은 불꽃이었다.
 시우는 걸음을 멈추고 주문을 외웠다.
 “불이여 붙어라. 플레어!”
 다행히도 세계수의 가지 끝에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불이 붙었다.
 시우는 적당한 나무를 물색해 밑동에 쭈그려 앉았다.
 불꽃은 작았지만 한기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문제는 마력이었다.
 단순히 불을 붙일 뿐인 간단한 마법이라도 마력은 소모한다. 시우는 레벨이 초기화되어 마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금방 불이 꺼질 것이 분명했다.
 시우는 아이템 창에 있는 마력회복 포션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그것도 레벨 제한이 붙어있는 아이템이었다. 혹시나 싶어 아이템 창을 확인해 보았지만 1레벨이 사용할 수 있는 포션은 없었다.
 제일 제한이 낮은 것이 10레벨용 생명력 회복 포션이었고 마력 회복 포션은 50레벨짜리가 가장 제한이 낮았다.
 시우는 마법지팡이를 바닥에 꽂으려 했다. 아무래도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이 춥다보니 손을 자유롭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바닥이 딱딱해 꽂히지 않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털썩.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돌이라도 깔고 앉았는지 궁둥이가 아팠다.
 손을 넣어보니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었다.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드의 나무는 파괴 불가 오브젝트였다.
 파괴 불가 오브젝트는 말 그대로 파괴가 불가능한 물체였다.
 부수지도 태우지도 못한다. 그래서 필드는 언제나 깔끔했었다.
 시우는 새삼 바닥을 살폈다. 나뭇가지와 낙엽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무가 파괴 불가 오브젝트인 이상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시우는 불꽃을 나뭇가지에 갖다 대 보았다.
 불이 붙었다. 나무는 더 이상 파괴 불가 오브젝트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번 해킹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엔 안심이 되었다.
 나뭇가지를 태울 수 있다면 더 이상 추위에 떨 필요는 없었다.
 시우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다가 내친김에 생가지를 꺾어보았다.
 뚜둑.
 나뭇가지는 큰 저항 없이 부러졌다.
 은근히 재미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파괴 불가 오브젝트를 부숴볼까.
 시우는 신이 나서 나뭇가지를 꺾고 다녔고 장작은 빠르게 쌓여갔다.
 나뭇가지 몇 개를 집어던지니 금방 불길이 거세졌다.
 따듯한 온기에 몸을 녹이고 있자니 몸을 움직일 생각이 사라졌다.
 30분이 넘게 걸었는데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시스템이 해킹당해 더 이상 몬스터가 없는지도 몰랐다.
 만약 있다고 해도 10레벨을 올리려면 엄청나게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시우는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치며 운영자 아저씨들이 빨리 게임을 고치기를 바랐다.
 맨발로 추운 산길을 걸은 탓에 발도 아프고 너무 지쳤다.
 자고 일어나면 게임이 고쳐져 있기를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 * *
 
 “앗따거!”
 허벅지를 찌르는 고통에 잠에서 깼다.
 산등성이로 고개를 내미는 해를 보니 아침인 모양이었다.
 시우는 잠을 깬 원인을 찾아 허벅지를 살폈다. 그곳에는 웬 기다란 가시가 박혀있었다. 얼마나 긴지 허벅지를 깊이 찌르고도 10센티미터 이상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나뭇결이 보이는 게 의도적으로 뾰족하게 깎은 나뭇가지인 모양이었다.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나무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르.
 소리가 들려온 나무 위를 올려보니 원숭이를 닮은 이상한 짐승이 보였다. 그 손에는 1미터 길이의 대나무 통을 들고 있었다.
 아마 나뭇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바람총처럼 쏘아내는데 쓰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팠다.
 병으로 고통은 충분히 맛봤다고 생각했는데 생살을 뚫고 박힌 가시는 병으로 겪는 고통과는 또 달랐다.
 게임인데 왜 고통스럽지?
 시우는 당황스럽고 억울했지만 이내 눈앞에 뜨는 경고창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띠링!
 [인두 독개구리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지속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독?!”
 시우는 무의식적으로 해독 포션을 찾았지만 이내 레벨 제한이 걸려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우는 오른쪽 눈을 가렸다.
 그러자 3개의 반투명한 유리구슬이 나타났다.
 원래라면 생명력과 마력을 나타내는 유리구슬만 나타나야 했는데 또 그놈의 해킹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시우는 가운데 유리구슬을 무시하고 생명력을 나타내는 붉은 유리구슬을 확인했다.
 
 생명력 (50/100)
 
 벌써 피가 반이나 줄었다. 빨리 해독을 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랐다.
 시우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허벅지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악!”
 마치 붉게 달군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마 독의 효과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시우는 쓰러졌다. 움직이지 않으면 괜찮은지 고통이 가라앉았다.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다시 일어나도 검이나 창 따위론 나무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 녀석을 상대할 방도가 없었다.
 시우는 나무 위의 짐승을 노려보았다.
 아마 몬스터겠지만 시우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왼쪽 눈을 가리니 녀석의 정보가 반투명한 창에 떠올랐다.
 
 회색 코리 Lv.7
 헤카테리아 대륙 전역에 분포한 몬스터로 꼬르르 하고 우는 소리에서 코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개하나마 약간의 지능이 있어 인간의 무기를 훔치거나 독바람총을 만들어 사용한다. 튼튼한 꼬리와 긴 팔다리를 이용한 나무타기가 특기이다. 기본적으로 부족 단위로 모여 살며 한 마리가 보이면 백 마리가 살고 있다는 격언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고작 레벨 7?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레벨 7이라기엔 사냥이 너무 어려운 몬스터였다.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장거리 무기로 공격해오는데 이걸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흥분하니 다시 허벅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감정은 어떻게 자제할 수가 없었다. 흥분하니 허벅지가 아파오고 아프니 더 화가 나는 악순환에 빠졌다.
 끼끼끼르르!
 코리는 불난데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시우가 반항조차 못하는 게 기분이 좋은 지 실실 웃어댔다.
 죽거나 살거나 저놈만은 길동무로 삼아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시우는 앉은 자세로 돌멩이를 주워 던졌지만 자세도 나쁘고 힘도 없었다. 게다가 코리는 재빨랐다. 시우가 돌멩이를 집어들 땐 이미 다른 나무로 이동한 뒤였다.
 끼르르 끼끼끼끼!
 코리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생명력도 20포인트밖에 남지 않았다.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것은 시우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병마와 싸우며 느낀, 생명이 경각에 달해 죽어가는 감각.
 시우는 소름이 끼쳤다.
 고작 게임일 뿐인데 정말로 죽어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가방!”
 시우는 아이템 창을 열었다. 장거리 무기가 필요했다.
 코리의 레벨은 7.
 저레벨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레벨이 7레벨 몬스터를 잡으면 단번에 레벨업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레벨업만 하면 생명력이 회복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우의 시선이 [연노궁]에 닿았다.
 크랭크식 장치로 빠른 장전이 가능한 크로스 보우였다.
 시우는 연노궁을 꺼내 들고 연노궁의 손잡이를 앞으로 넘겼다가 당겼다.
 약간의 저항감은 들었지만 실제 크로스 보우가 장전하는데 제법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연노(連弩)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장전속도였다.
 퓽!
 첫발이 빗나갔다.
 코리는 당황해서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코리는 시우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었기 때문이었다.
 손잡이를 앞으로 넘겼다가 당기자 채 10초도 걸리지 않아 볼트가 재장전되었다.
 퓽!
 이번에도 빗나갔다.
 코리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우는 보다 빨리 볼트를 재장전했다.
 연노궁이 익숙해지자 재장전도 더 빨라졌다.
 피웅! 퍽!
 후두두둑.
 멀리서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코리가 보였다.
 뒤통수를 꿰뚫은 클린샷이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렵게 손을 들어 오른쪽 눈을 가렸다.
 
 생명력 (5/100)
 
 띠링!
 [생명력의 저하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행동이 불가능해집니다.]
 시우의 오른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씨발. 왜 레벨업이…….”
 시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였다.
 푸화앗!
 띠링!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2개 자동 분배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3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 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시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일어나 눈물을 훔쳤다.
 시우는 죽는 것이 더 싫어졌다.
 죽을 뻔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고통이었다.
 지금은 거짓말처럼 상처가 사라졌지만 당시의 고통을 떠올리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시우는 심각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고쳐질 줄 알았던 오류들이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혹시 바깥에서 연락이 없었을까 쪽지 창을 확인했지만 쪽지는 오지 않았다.
 운영자 아저씨들이 아직 해킹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쪽지 창도 먹통이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운영자 아저씨의 스마트폰으로 쪽지를 보내봤다. 에러 창이 뜨며 보내지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건 꺼려졌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바깥에 연락을 취할 방법은 로그아웃을 하는 것밖에는 남지 않았다.
 “로그아웃!”
 띵!
 [Error!! 사용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씨발!”
 시우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로써 시우가 바깥에 연락을 취할 방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시우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렇게 고통이 심해서야 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몬스터가 없는 마을로 가야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지만 이미 숲 속에서 부활한 시점에서 마을에서 부활할 수 있으리라곤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고통이 너무 심했다. 고통이 없는 방법을 찾더라도 생명력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던 상황을 회상하면 꺼려지는 방법이었다.
 시우는 일단 두 발로 직접 걸어 마을을 찾아보기로 했다.
 죽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었다.
 멀리서 코리의 시체가 보였다.
 순간 시우의 뇌리로 드롭 아이템이 떠올랐다.
 코리의 레벨은 7이니 만약 아이템을 떨어트렸다면 1에서 10레벨 사이의 제한이 붙어있을 것이다.
 10레벨 제한이 걸린 아이템을 떨어트렸다면 낭패였지만 1레벨 아이템이라도 떨어졌다면 지금의 상황에선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 또…….”
 이젠 놀라는 것도 지쳤다.
 그놈의 해킹이 문제였다.
 원래 몬스터를 죽이면 그 시체는 점차로 투명해지며 이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 자리엔 몬스터를 사냥한 보상으로 아이템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코리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시체가 너무 사실적이었다.
 볼트가 꽂힌 코리의 뒤통수에서 피가 섞인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징그러웠지만 한편으론 복수를 달성했다는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시체가 사라지는데 시간이 더 걸릴 뿐인가 싶어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코리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더 많은 피가 흘러나오더니 슬슬 굳어가고 있었다.
 시우는 실망했다.
 아쉬운 마음에 다가가 시체를 툭툭 차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시우는 코리의 시체를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해가 떴기 때문인지 지난 밤 같은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시우는 연노궁을 들고 혹시 코리가 숨어있을까 나무 위를 경계하며 계속해서 걸어갔다. 딱히 방향은 정하지 않았지만 해가 뜬 방향을 감안하면 북쪽으로 걷는 듯했다.
 한참을 걸었지만 코리나 다른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다람쥐나 토끼, 도마뱀과 새, 심지어는 모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보였다.
 참 디테일한 것이 전보다 개선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이게 해킹인가 잠시 의심도 해봤다. 아마 업데이트 준비중이던 데이터가 해킹 때문에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었을 거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시우는 이미 지쳐버렸다. 아마도 레벨이 낮은 탓일 것이다.
 레벨을 생각하니 코리를 잡고 레벨업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남은 스탯 포인트를 아직 분배하지 않았다.
 “능력정보.”
 
 이름-최시우
 레벨-2
 종족-인간
 칭호-?
 
 생명력 (101/101)
 마력 (10/10)
 원력 (?/?)
 
 근력 : 5
 순발력 : 6
 체력 : 6
 정신력 : 5
 
 남은 스탯 포인트 : 3
 상세정보…….
 
 능력치가 너무 낮아 상세정보는 보나마나였다.
 스탯창을 살피던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 곳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먼저 첫째로 생명력이 이상했다.
 이번에 획득한 자동분배 스탯은 순발력과 체력이 1씩 올라갔는데 체력과 연관된 생명력 수치가 이상했던 것이다.
 생명력은 체력 스탯을 1 올릴 때마다 20씩 오른다. 그러니 체력이 기본 스탯인 5라면 생명력이 100인 것이다. 거기서 체력이 1 더 올랐다면 생명력의 정상 수치는 120이 돼야 하는데 1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스탯 포인트 하나에 생명력이 1밖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효율이 너무 나빴다.
 시우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시선을 돌렸다.
 둘째로 이상한 것은 원력이라는 능력치였다.
 이것은 기존에 없던 능력이었다. 아마 오른쪽 눈을 가리면 보이던 세 번째 유리구슬이 원력인 모양이었다.
 어디에 쓰이는 능력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우는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지능이었다.
 지능은 마력량과 깊은 연관이 있어 스킬을 사용하려면 무조건 올려야 하는 스탯이었다. 그런데 지능 스탯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정신력이라는 스탯이 새로 생겨났는데 거기에는 남은 스탯 포인트를 투자할 수가 없었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체념했다.
 화를 낸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남은 스탯 포인트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시우는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올릴 만한 것은 순발력밖에 없었다.
 원래는 코리에게 죽을 뻔했던 게 마음에 걸려 생명력을 올리려 했었다. 하지만 생명력이 1씩밖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올리나 마나였다.
 근력을 올리면 기본공격력이 상승하지만 장거리 무기인 연노궁은 근력 스탯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검을 주로 사용하는 시우로서는 근력이 제일 중요했지만 어차피 마을만 찾으면 시스템이 복귀될 때까지 그 안에서 쉴 생각이었다. 아마 검을 쓸 차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근력을 포기하니 남은 것은 순발력뿐이었다.
 시우는 순발력에 남은 스탯 포인트를 전부 투자하고 걸음을 옮겼다.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내친김에 전력으로 달려봤지만 체력이 낮은 탓인지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다. 다음에는 체력도 적당히 올리자고 생각했다.
 꾸르륵!
 허기가 졌다. 현실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인지 이것도 해킹의 영향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먹을 것이 없나 아이템 창을 열어보니 군것질 거리로 사놨던 육포가 눈에 띄었다. 원래 게임 속에선 허기가 지지 않지만 맛은 느껴지기 때문에 사놓은 것이었다.
 육포를 입에 무니 매콤한 듯 짭짤한 간이 입맛에 맞았다.
 육포는 많았다.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1,000개 묶음을 10개나 사놨다. 그것이 시우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시우는 육포를 입속에 우겨 넣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육포를 10조각쯤 먹을 때 허기가 사라지고 포만감이 들었다. 육포가 맛있어 구미가 당겼지만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시우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어쩔 수 없이 육포를 아이템 창에 돌려놓았다.
 해가 중천에 떴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정오가 지난 모양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아픈 다리를 두드리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르!
 끼르르르!
 시우는 나무 뒤로 숨었다. 잠깐 사이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코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아직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들리는 소리로 판단하면 적어도 3마리 이상이었다.
 나무 옆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았다.
 3마리는 무슨, 적어도 10마리는 되었다.
 잠깐 사이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숨어 있을까?
 도망갈까?
 본능은 그렇게 말했지만 수많은 게임 경험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독가시를 몇 방 맞더라도 아직 멀리 있을 때 나서서 연노궁을 연사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독가시의 고통을 떠올리니 마음이 흔들렸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숨어있고 싶지만 놈들의 진행방향과 수를 보아서 그것은 어려운 바람이었다.
 ‘레벨업만 하면 돼. 난사로 전부 죽여서 레벨업만 하면 해독될 거야. 괜찮아. 독이 돌기 전에 전부 죽이면 돼.’
 시우는 마른 침을 삼키고 연노궁의 손잡이를 앞으로 넘겼다가 당겼다.
 볼트가 확실히 장전된 것을 확인하고 나와 코리를 겨누고 쏘았다.
 퓽! 퍽!
 크로스 보우의 시위가 튕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쾌했다.
 끼끼끼끽! 끼르끽!
 첫발이 명중하자 기분은 좋았지만 코리의 성난 울음소리에 서둘러 나무 뒤로 숨었다. 아직 코리와의 거리는 100미터나 되었는데 코리의 독가시가 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 같은 폐활량에 난색을 표했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순식간에 볼트를 재장전한 뒤 이번엔 나무 반대편으로 고개를 내밀어 쏘았다.
 퓽! 퍽!
 “억!”
 쏘자마자 바로 숨었는데 왼팔에 독가시가 꽂혀 있었다. 기겁을 하며 바로 뽑았지만 어김없이 중독되었다.
 띠링!
 [인두 독개구리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지속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큰일이었다. 왼팔을 움직이니 화상을 입은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왼손으로 조준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명중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책으로 연노궁을 옮겨 잡아 왼손으로 방아쇠를, 오른손으로 조준을 해봤다. 자세가 어색한 덕분에 볼트는 코리를 비켜갔고 오른쪽 허벅지에 독가시를 한 방 더 쏘였다.
 “왜 레벨업이 안 되는 거야.”
 2레벨이 됐다지만 상대는 7레벨 몬스터였다.
 2마리나 잡았으면 레벨업이 될 만한데 되지 않자 조바심이 났다.
 왼쪽 눈을 가리고 고개만 빨리 내밀어 코리가 몇 마리나 남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숨어있는 코리까지 전부 10마리가 살아있었다. 그 중 2마리는 시우가 쏘아 떨어트린 코리였다. 볼트에 명중당해 움직이진 못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어려울 거라는 건 처음부터 각오하던 일이었지만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중독으로 이미 피가 반이나 날아간 상태였다. 놈들도 그런 시우의 상태를 알고 있는지 몸을 숨기고 시우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우는 도박에 나섰다. 일단 바닥에 떨어진 두 놈을 죽여 레벨업을 해야만 했다.
 볼트를 장전한 시우는 나무에서 튀어나와 절뚝이며 앞으로 향했다. 코리들이 신이 나서 독가시를 쏘아댔지만 무시하고 바닥에 떨어진 코리를 쏘았다.
 꿈틀거리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죽은 모양이었다.
 독가시에 몇 방을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전신이 불타는 듯했다.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시우는 서둘러 볼트를 재장전한 뒤 나머지 한 놈을 쏘았다.
 갑자기 시우의 전신에서 황금빛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푸화앗!
 띠링!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2개 자동분배 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3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몸이 회복되자마자 시우는 수풀에 몸을 숨겼다.
 코리들은 시우가 독에 의해 죽는 걸 기다리는지 몸을 숨기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우는 바닥에 배를 대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한 놈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렸지만 수풀에 숨은 시우를 찾을 수 없었다.
 저격할 시간은 충분했다.
 퓽! 퍽!
 이번엔 머리에 명중시켜 한 번에 죽였다.
 끼끼끼끽!
 꼬르르!
 동요했는지 놈들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볼트가 날아온 방향으로 시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한 놈이 시우를 향해 독가시를 쏘았지만 수풀에 막혔다.
 시우는 미리 장전해둔 볼트를 쏘았지만 놈은 이미 숨은 뒤였다.
 다시 장전하려고 손잡이를 넘기니 놈들도 볼트를 장전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단 걸 알고 있는지 단체로 나타나 독가시를 쏘아댔다.
 대부분이 수풀에 막혔지만 두어개가 수풀을 뚫고 시우의 어깨와 등허리에 박혔다.
 시우도 수풀에서 일어나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놈들은 몇 번 겪고도 아직 연노궁의 장전속도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퓽!
 한발을 쏘고 5초 만에 재장전을 마쳐 다시 한 발.
 퓽!
 후두두둑!
 두 마리가 떨어지고 시우의 가슴에 3개의 독가시가 박혔다.
 시우는 숨지 않고 재차 재장전해 연노궁을 쏘았다.
 퓽! 퓽! 퓽!
 백발백중이었다.
 시우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명중률이었지만 그것보다도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다. 가슴이 녹아내리는 착각이 일어나 내려다 봤지만 그냥 가시가 3개 박혀있을 뿐이었다.
 해독 포션만 사용할 수 있었으면!
 시우는 바닥에 떨어진 코리를 쏘아 레벨업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모두 수풀에 가려있어 노릴 수가 없었다.
 나무 위에 남은 코리를 마저 떨어트리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바람총의 독가시 장전이 끝났는지 한 놈씩 고개를 내밀자 그것을 노리고 볼트를 쏘았다.
 퓽! 퓽! 퓽! 퓽! 피웅!
 5발 모두 명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대가로 맞은 독가시가 5발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눈앞이 핑 돌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풀썩.
 “크으으!”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빈사상태도 아니었고, 생명력도 20포인트나 남아있었다.
 단지 고통에 못 이겨 쓰러졌을 뿐이었다.
 ‘몇 놈이나 남았지?’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이 상태로는 도저히 연노궁을 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한 놈이라도 살아있다면…….
 ‘아니야! 기어서라도 한 놈만 죽인다면, 어쩌면……!’
 시우는 연노궁도 버리고 바닥을 기었다. 다행히도 독가시는 날아오지 않았지만 숨어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독가시를 장전하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꿈틀거리는 코리가 눈에 들어왔다. 내팽개친 연노궁이 아쉬웠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시우는 아이템 창에서 검을 뽑아 열심히 기었다.
 푹!
 움찔하고 발작한 몸이 푹 늘어졌다.
 푸화앗!
 띠링!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2개 자동분배 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3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시우는 열심히 몸을 굴려 수풀에 숨었다. 코리가 몇 놈이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숨어서 눈치를 보았지만 도망을 친 것인지 나무 위에서는 더 이상 코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숨어있을 코리를 경계하며 달려 나와 내팽개친 연노궁을 집어 들었지만 날아오는 독가시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코리를 살펴보니 이미 죽은 놈이 여섯, 아직 살아있는 놈이 넷이었다.
 놀랍게도 정신없이 쏘아댄 볼트가 모두 명중했던 것이다.
 “코리 같은 새끼들!”
 시우는 진저리를 쳤다. 전투가 끝나고 안심이 되니 눈물이 다 나왔다.
 시우는 왼쪽 눈을 가리고 볼트통에 남은 볼트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남은 볼트 수 : 121발
 
 최대 열 발이나 들어갈까 싶은 작은 볼트통이었지만 그렇게 쏘아대고도 100발이 넘게 남아있었다.
 시우는 그것도 적게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것과 같은, 최대 500발까지 수용 가능한 볼트통이 아직 10개 이상 남아 있었다.
 시우는 연노궁을 아이템 창에 집어넣고 검을 뽑아들었다.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코리를 죽여야 했다.
 퍽! 푹! 찍!
 “으엑!”
 급해서 코리를 죽였을 땐 몰랐다. 검으로 살을 가르는 감촉은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몬스터는 죽이라고 있는 존재였다.
 팔뚝에 돋은 닭살을 손으로 비빌 때였다.
 푹!
 “어?”
 허벅지에 독가시가 박혔다.
 볼트에 다리를 뚫린 녀석이 대나무 통이 떨어진 곳까지 기어가 기어코 시우를 쏜 것이다. 깜짝 놀란 시우가 검을 던져 녀석의 머리를 빠갰지만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띠링!
 [인두 독개구리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지속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시우에게는 아직 레벨업을 제외한 해독법이 없었다.
 
 2장. NPC
 
 시우는 당황했다.
 중독의 지속 데미지는 1초에 1피씩이라 잠깐 당황한 사이에 생명력이 10이나 줄어 있었다.
 코리 사냥이 끝난 시우의 최대 생명력은 104.
 중독의 지속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1분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시우는 혹시 못보고 넘어간 아이템이 없을까 아이템 창을 열어보았지만 중독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시우는 이번 레벨업으로 남은 스탯 포인트가 6개인 것을 떠올렸다. 약간의 편법으로 체력 스탯을 올리면 남은 생명력이 회복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방법도 더 이상은 쓸 수 없었다. 남은 스탯 포인트를 모두 체력에 투자한들 기껏해야 수명이 6초 늘어날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조바심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된 일이 아닐까도 싶었다.
 이대로 죽어서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한 번쯤 확인해 봐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남은 생명력이 60을 찍었다.
 이대로 60초만 기다리면 시우는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시우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60초는 제법 긴 시간이었고 그 사이에 시우의 마음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게임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눈앞이 아득해지고 전신이 무기력하게 늘어지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역시 죽는 것은 싫었다.
 살아남자고 생각하는 순간 시우는 살아남을 수단을 떠올렸다.
 [리제너레이션].
 흔히 리젠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비전투시에 휴식을 취하며 생명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스킬이었다.
 마침 리젠 스킬의 효과가 1초에 생명력을 1씩 회복하는 것이었다. 극악의 효율이었다. 평소라면 이것도 쓰라고 있는 거냐며 투덜거렸겠지만 포션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그것은 시우가 생명력을 회복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시우는 리젠 스킬을 발동시켰다.
 남은 생명력이 7에서 6을 오가며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살아남았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그 생각에 시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중독효과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5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30분이 지나서야 피가 차기 시작했다.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시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스탯창을 열었다.
 
 이름-최시우
 레벨-4
 종족-인간
 칭호-?
 
 생명력 (27/104)
 마력 (11/11)
 원력 (?/?)
 
 근력 : 6
 순발력 : 9
 체력 : 9
 정신력 : 5
 
 남은 스탯 포인트 : 6
 상세정보…….
 
 “엥?”
 마력의 최대치가 올라갔다.
 혹시 자동분배로 정신력이 올라갔나 싶었지만 정신력은 여전히 기본수치인 5였다. 아무래도 정신력과 최대 마력량은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모양이었다.
 해킹이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원인도 없이 그런 적은 없었다. 시우는 잠시 생각한 뒤에 답을 찾았다.
 “리젠 때문인가?”
 의심할만한 원인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능 스탯이 사라진 상황에 마력을 올릴 방법을 찾았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었지만 생명력이 그랬듯 효율이 너무 좋지 않았다.
 30분간 리젠 스킬을 사용했는데 고작 1이 올라가다니.
 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마력에 대한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남은 스탯 포인트를 분배하는 방법이었다.
 원래 시우는 스탯 포인트를 얻으면 모든 스탯을 순발력과 체력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숲을 헤매는 사이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주변 지형을 파악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높은 곳에 올라가야 했는데 지금의 근력으로는 나무를 오르기가 여의치 않았다.
 시우는 잠시 고민한 뒤에 남은 스탯 포인트를 전부 근력에 투자했다.
 리젠으로 생명력을 마저 회복한 시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높이 자란 나무 하나를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의 정상에서 펼쳐진 광경은 시우의 말문을 틀어막았다.
 끝없이 펼쳐진 수해가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다.
 막연히 걷다보면 마을이 나오겠지 하고 있던 시우로서는 기가 막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우거진 나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한 번 죽어볼 걸 그랬나 후회하는 시우의 시선 끝에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연기였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숲에서 불을 피운 모양이었다.
 시우는 반가움이 앞섰다. 처음으로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충 방향을 확인한 시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연기는 지평선 너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이동할 지도 몰랐다.
 시우는 급하게 나무를 내려왔다. 너무 급한 나머지 가지를 헛디뎌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만나야 했다.
 시우는 달리기 시작했다.
 
  * * *
 
 월영용병단 소속 용병 모건은 하품을 쩍쩍 하며 당직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야간에 있을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 경계를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용병 생활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 있으면 지나가던 코리들도 도망간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모건으로선 긴장은커녕 그저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이 짜증날 뿐이었다.
 그때 모건의 귓가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wjrldy!”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은 코리의 숲 중앙. 가장 가까운 마을만 해도 걸어서 5일은 걸리는 장소였다. 만약 그런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게 정말 살아있는 사람인지 의심부터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dkaneh djqtdjdy?”
 모건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과 함께 앉아있던 자리에서 퍼뜩 일어났다.
 결코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몬스터는 아니라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모건은 바짝 긴장했다.
 비상종을 울릴까? 하지만 몬스터도 아닌데?
 막 용병이 된 신입처럼 허둥대던 모건은 결국 비상종을 울렸다.
 땡땡땡땡!
 천막 안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동료들이 철검과 방패, 활을 들고 뛰어나왔다.
 월영용병단의 단장 잭이 모건에게 다가왔다.
 “보고해.”
 “저, 그게, 몬스터는 아니고…….”
 모건의 대답에 잭의 눈빛이 사나워졌지만 모건은 스스로의 판단이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저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그제야 잭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 대신 그의 눈빛에 긴장이 서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런 곳에 사람이 돌아다닐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리의 숲이 어떤 곳이던가? 월영용병단처럼 인원이 많은 용병단도 코리를 상대할 활과 방패, 그리고 비싼 가격의 해독제를 바리바리 싸들지 않고는 들어서기도 두려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면 비상종을 울렸다고 비난을 할 수는 없었다.
 “월영용병단, 전원 대인 방어 대형으로!”
 잭의 명령에 코리의 습격에 대비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용병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을 가르고 한 소년이 월영용병단 앞으로 나타났다.
 흑발과 흑안을 지닌 이국적인 외모의 어린 소년이었다.
 
  * * *
 
 시우는 달렸다. 희미하지만 분명 종소리가 들렸다.
 돌에 발이 걸려 발톱이 깨지고 바닥을 굴렀다. 다시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루 종일 달린다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시우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불빛이 보였다. 장작불인 모양이었다. 곧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울먹이던 시우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검과 방패로 무장하고, 짐마차 위에서 활로 시우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
 시우가 깜짝 놀라 주저앉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어떻게 코리의 숲에서 살아남았지?>”
 “뭐, 뭐라는 거야. 한국어로 얘기해.”
 “<헤카테리아 대륙 공용어를 모르나? 누구 저놈이 어느 나라 말로 떠드는 지 아는 사람 있어?>”
 잭이 물었지만 용병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잭은 난감했다.
 보아하니 무기도 없고 아직 어린 소년이라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무기도 없는 어린 소년이 코리의 숲에서 살아남았지? 말이라도 통하면 직접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상대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어쩔 거야, 단장?>”
 모건의 질문에 잭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때 짐꾼들과 함께 짐마차 밑에 숨어있던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짐꾼들과는 다르게 로브를 입고 있는 사내였다. 그의 가슴에는 노란색 수실로 태양이 새겨져 있었다. 시우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태양신 엘라를 섬기는 사제였다.
 “<아무래도 그는 외모나 사용하는 언어로 보아 헤카테리아 사람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마 아카리나 대륙에서 넘어온 노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코리의 숲 너머에 있는 항구도시에 가면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노예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다.>”
 잭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졌다.
 “<하지만 항구도시에서 이곳까지는 걸어서 열흘이 넘는 거리이오만?>”
 엘라신의 사제, 헨리는 잭의 의문에 두 손을 모았다.
 “<아마 엘라께서 보살펴준 모양입니다.>”
 잭은 헨리의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태양과 행운의 여신인 엘라의 능력을 의심할 생각은 없지만 잭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잭이 여전히 시우를 의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자 헨리가 이어 말했다.
 “<엘리께선 자비를 베풀라 하셨습니다. 또한 베푼 자비는 갑절이 되어 행운으로 돌아온다고도 하셨으니 엘라의 비호를 받는 이 소년을 우리 일행으로 받는다면 우리 또한 엘라의 비호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헨리가 말을 마치자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 소년이 코리의 숲을 횡단한 것이 사실이라면 헨리의 말도 그럴듯하다는 게 용병들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멍청한 것들.’
 잭은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부하들을 욕했다. 행운의 여신을 섬기는 사제가 몇 마디 했다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제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코리의 숲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누가 보아도 소년은 무해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이 소년을 책임질 짐꾼은 없느냐.>”
 잭이 아직도 짐마차 밑에 숨어있는 짐꾼들에게 묻자 한 소년이 떠밀려 나왔다.
 평소 체력이 부족해 일을 못한다고 짐꾼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던 소년이었다.
 잭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빨리 이 귀찮은 일을 처리하고 눈을 붙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 앞으로 이 소년은 네가 책임을 지고 챙겨야 한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오도록.>”
 소년 메이는 얼떨결에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용병들은 잭의 빠른 일처리를 반기며 천막으로 돌아갔다. 시우는 영문도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용병들은 시우에게 눈길 한 번 던져주지 않았다.
 “<그만 두리번거리고 우리도 자요.>”
 “뭐라는 거야.”
 “<아, 어쩌면 좋담.>”
 메이는 어쩔 수 없이 시우의 팔을 잡아끌어 짐마차로 다가갔다.
 하지만 마차 위의 자리는 메이가 떠난 사이 다 채워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메이는 장작불 근처로 시우를 끌고 갔지만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짐꾼들에게 이불로 쓰라고 주어진 천 쪼가리가 제한돼 있다 보니 시우가 쓸 이불이 없었던 것이다.
 메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시우와 함께 이불을 덮었다. 천 쪼가리의 면적이 넓지 않아 메이와 바싹 붙어 누워야 했다. 순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메이의 체온은 따듯했다.
 시우는 돌아가는 상황이 어리둥절했지만 하루 종일 달린 탓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바닥에 등을 붙이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시우는 몸을 뒤흔드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손길의 주인은 메이였다.
 잠시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해 당황하던 시우는 간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코리에게 쫓기는 꿈을 꾼 시우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이제 코리 걱정을 덜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시우를 보던 메이가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신기하게 생겼네요.>”
 “미안하지만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시우의 말을 이해 못한 메이는 당황해서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스스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메이.>”
 “뭐라고?”
 “<난 메이. 당신은?>”
 시우는 메이의 손가락질에 겨우 메이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시우.”
 “체슈?”
 “최시우.”
 “체시유?”
 시우는 계속해서 메이의 발음을 교정해줬지만 메이는 끝까지 시우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했다. 시우가 체념하자 자신의 발음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는지 메이는 시우를 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와 시우가 대화를 계속할 시간은 없었다. 메이는 용병들에게 고용된 짐꾼이었고 짐꾼이 할 일은 많았다.
 취사병이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 천막을 거두고 말을 돌보는 것은 짐꾼들의 일이었다.
 시우는 메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나가던 짐꾼들이 시우에게 눈치를 줬다. 시우도 그것을 알아챘지만 굳이 모른 체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내 시우의 눈길이 닿은 것은 용병들이었다. 어제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어째서 NPC가 몬스터 필드에 있는 걸까?
 시우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스템이 해킹을 당한 이후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뿐이었다. NPC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것도 그랬다.
 시우는 왼쪽 눈을 가리고 용병들을 보았다.
 
 모건 Lv.22
 월영용병단 단원. 나무꾼이었던 아버지가 몬스터에게 죽은 직후 아버지의 도끼를 들고 그대로 용병이 되었다.
 상세정보…….
 
 “헐, NPC가 22렙?”
 NPC가 레벨을 갖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 몬스터가 아닐까 긴장했지만 어젯밤에 겪어본 바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시우는 다른 용병들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시우는 이들은 전부 월영용병단 소속의 용병이라는 것과 최소 10대 후반의 레벨에서 20대 후반의 레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중 가장 가관인 것은 단장의 레벨이었다.
 
 잭 Lv.52
 월영용병단 단장. 원력을 각성한 [익시더]로 수많은 용병으로부터 선망의 눈빛을 받고 있다. 이번 [쟈탄] 원정대에 합류한 [엘라신의 사제] 헨리를 기피하고 있다.
 상세정보…….
 
 “원력? 익시더?”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금빛으로 깜빡거리는 [익시더]라는 문자를 터치했다. 그러자 잭의 상세정보가 자동으로 열리며 설명이 들려왔다.
 
 이름-잭
 레벨-52
 종족-인간
 칭호-붉은 달의 그림자
 [칭호 효과- 붉은 달이 뜬 밤에 순발력+10]
 
 생명력 (135/135)
 마력 (3/3)
 [원력 (2/2)]
 
 근력 : 132
 순발력 : 98
 체력 : 40
 정신력 : 15
 
 [익시더(Exceeder)란 한계를 넘다(Exceed the limit)에서 따온 말로 넘은 자, 즉 초인이란 뜻이다. 모든 생명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원력이라는 힘이 잠들어 있다. 익시더는 훈련을 통해 이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자를 이르는 말이다.]
 시우는 당황했다. 단순한 오류인줄 알았던 원력에 이런 의미가 있었다니?
 시우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NPC는 유저를 해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시스템이 해킹 당하기 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이라면 NPC가 시우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우는 이미 시스템 복구를 반쯤 포기했다. 벌써 이 이상사태에 휘말린 지 30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복구는커녕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강해져야 했다. 레벨을 올려야 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했다.
 시우는 그 수단으로서 NPC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슈! 이제 출발해요!>”
 메이가 부르자 시우는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그에게 붙어있는 것이 좋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용병들이 짐마차에 궁둥이를 걸치고 앉자 짐꾼들이 말을 끌고 걷기 시작했다.
 시우도 마차 위에 앉고 싶었지만 메이가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마력량을 늘리려면 리젠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리젠은 앉아서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메이가 목소리를 줄여 꾸짖는 걸 보니 짐꾼들은 마차에 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NPC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서러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걸으면서 리젠을 쓸 수 있나 시도해 보았다. 역시나 스킬은 발동되자마자 취소되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몬스터라도 나와 주면 경험치라도 쌓겠지만 그 많던 코리들은 어딜 갔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시우는 걸으면서 계속 리젠을 시도해 보았다.
 점차로 유지되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30분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유지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뜬 시간, 시우에게도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꼬르르. 끼르르.
 소리만 들어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코리가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잭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코리부족의 영역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전투 회피는 불가한 사항이니 월영용병단, 전원 대코리 대형으로 집합!>”
 잭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병들은 재빠르게 자신의 위치에 섰다.
 철검과 방패를 든 용병은 옹기종기 모여 웅크리고 앉았고 그 뒤에 활을 든 궁병이 배치된 단순한 진영이었다.
 헨리 사제와 짐꾼들은 허둥대며 말 위로 가죽 덮개를 덮어주고 짐마차 아래로 숨었지만 시우는 숨어있을 생각이 없었다. 독바람총의 사거리가 100미터 가량인 것은 미리 겪어 아는 사실이었으니 시우는 용병들이 50미터쯤 뒤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크로스 보우는 일반적인 활보다 사거리가 길었고 그것은 연노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메이가 시우에게 다가와 다급하게 뭐라고 말했지만 시우는 아이템 창에서 연노궁을 꺼내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허공에서 나타난 크로스 보우의 모습에 메이가 말을 잃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시우를 잡아끌었다.
 어떻게 해서든 시우를 짐마차 밑으로 끌고 갈 심산인 모양이었다.
 “메이. 넌 가서 숨어있어. 나는 싸워야 돼.”
 물론 메이가 알아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우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메이가 짐마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내 짐마차에서 뭔가를 굴려 시우에게 가져왔다. 속이 빈 배럴통이었다.
 시우가 메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메이가 시우를 배럴통 뒤로 숨겼다. 굳이 싸우려면 이 뒤에 숨어서 싸우라는 모양이었다.
 시우는 고작 NPC에 불과한 메이의 배려에 당황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메이가 시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너는 짐마차에 가라니까?”
 시우는 짐마차를 손가락질 했지만 메이는 고개를 저었다.
 “<슈는 제 책임이에요. 슈가 싸운다면 저도 싸우겠어요.>”
 메이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우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우는 아이템 창에서 [연습용 철검]을 꺼내 메이에게 쥐어주었다.
 “혹시라도 코리가 가까이 다가오면 찔러버려.”
 시우는 말했지만 메이는 또 허공에서 나타난 철검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됐다.
 코리들의 수는 많았다. 얼핏 보아도 우글우글 거리는 것이 적어도 50은 넘는 수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독바람총은 용병들의 방패를 뚫을 만한 관통력이 부족했고 방패 뒤에 숨어서 쏘아대는 화살에 맞은 코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시우도 그 가운데 끼어 열심히 볼트를 쏘아댔다. 레벨업을 하면서 시우의 몸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오자 메이가 놀랐지만 그 뿐이었다.
 “슈!”
 갑자기 몸을 흔드는 메이의 손길에 시우는 당황했다.
 “왜!”
 시우가 소리치자 메이가 시우의 왼편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가죽 갑옷과 녹슨 철검을 든 코리들이 나무를 타고 접근해오고 있었다.
 전방의 코리들은 옆구리를 치기 위한 미끼였다.
 시우는 배럴통 옆으로 숨으며 검을 든 코리, 코리 검사들을 향해 연노궁을 쏘았다.
 “코리! 이쪽에서도 코리가 온다고!”
 시우는 소리쳤지만 용병들도 별 수는 없었다. 방패로 진을 친 상황에서도 쏟아지는 독가시에 맞아 해독제를 들이키기 바쁜 그들이 코리 검사를 상대할 여력은 없었던 것이다.
 연노궁의 연사 능력에 의지해 5마리의 코리 검사를 저격할 수 있었지만 10마리가 넘어가는 코리 검사들이 배럴통 앞까지 접근했다.
 메이가 눈을 꾹 감고 있는 힘껏 철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코리 검사 한 마리가 눈 먼 검에 걸려 죽었다. 하마터면 함께 목이 날아갈 뻔한 시우는 간신히 철검을 피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전방의 코리들도 대충 정리가 끝났는지 몇 궁병들이 후방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시우도 볼트 2발을 더 쏘아 코리를 쓰러트렸지만 시우를 무시하고 돌아간 코리 검사들이 짐꾼들을 노리고 있었다.
 시우는 스킬을 사용했다.
 “[나를 봐!]”
 그것은 지금까지 혼자서 사냥해왔던 시우가 사용할 일이 없던 [어그로]성 스킬이었다.
 큰 목소리로 몬스터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는 도발 스킬, [함성].
 효과는 컸다.
 남은 코리 검사의 수는 5마리였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녀석들을 향해 시우는 연노궁을 쏘아 한 마리를 더 쓰러트렸다.
 메이가 다시 검을 휘둘렀지만 요행은 두 번 통하지 않았다. 메이의 검을 피한 코리 검사가 메이의 등을 베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상처였지만 시우는 코리 검사의 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액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인두 독개구리의 독이었다.
 메이가 중독의 고통으로 바닥을 굴렀다. 시우가 연노궁으로 메이를 공격한 코리의 머리통을 뚫어버렸지만 아직 코리 검사는 3마리나 남아있었다.
 시우는 재장전을 위해 손잡이를 잡았지만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그들의 공격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우의 눈앞에서 붉은 빛이 번쩍하고 터졌다.
 잭이었다.
 원력을 사용해 순식간에 다가온 잭이 코리 3마리를 한 번에 베어 넘긴 것이었다.
 코리의 피가 시우의 얼굴을 덮었지만 시우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메이가 걱정될 뿐이었다.
 메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인두 독개구리의 독은 지독해서 한 번 중독되면 해독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독이었다.
 시우는 전투 중에 용병들이 마시던 물약을 떠올렸다. 전방의 전투가 끝난 용병들을 살펴보니 중독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용병은 없었다. 그들이 마시던 물약이 바로 해독제임에 틀림없었다.
 시우는 잭을 바라보았다.
 “해독제가 필요해. 놈들의 검에 독이 발라져 있었다고!”
 시우가 코리의 검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잭의 시선이 돌아갔다. 분명 메이의 중독 사실을 알았음이 틀림없었지만 잭은 고개를 저었다.
 “<짐꾼들이 덮개를 제대로 덮지 않아 말도 중독되었다. 짐꾼에게 사용할 해독제는 없어.>”
 잭의 시선을 따라 시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발작을 일으키는 말들에게 해독제를 먹이고 바르는 모습은 보였지만 시우가 미처 지키지 못한 짐꾼들에게 해독제를 사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짐꾼들은 굶다 못해 일당 10페니(Penny:구리동전)에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자들이었다. 마차를 끄는 말은 두당 10파운드(Pound:금화, 10파운드=2400페니)나 했다. 몸값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시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우에게는 어차피 다 같은 NPC이기는 했지만 그들에겐 같은 인간이지 않던가?
 시우는 잭을 노려보았지만 잭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노궁을 쏘아 녀석의 머리를 뚫어버리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지만 시우는 참았다. 메이를 살리려면 일단 시우 본인이 살아 있어야 했다.
 시우는 자신의 레벨을 확인했다.
 레벨 9. 1레벨만 더 올리면 해독 포션과 생명력회복 포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우는 메이가 떨어트린 연습용 철검을 들고 달렸다.
 화살에 꿰여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아직 죽지 않은 코리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놈들을 죽여 레벨업만 할 수 있다면 포션으로 메이를 살릴 수 있었다.
 시우는 미친 듯이 바닥에 떨어진 코리들을 찔러 죽였다.
 그것은 지켜보는 용병들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광기어린 모습이었다.
 그렇게 십 수 마리의 코리를 헤집은 다음에야 시우는 레벨업을 했다는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션을 들고 돌아왔을 때, 메이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3장. 탄즈 산맥
 
 메이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다.
 시우는 여전히 월영용병단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용병들은, 특히 단장 잭은 시우가 허공에서 물건들을 꺼낸 것하며 코리를 사냥하면서 보여주었던 광기어린 모습에 시우를 크게 경계했다. 그러나 무리에서 쫓아내지 못한 것은 애초에 말도 안 통할 뿐 아니라 엘라신의 사제 헨리가 시우를 두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 엘라께서 보내주신 전사입니다! 그와 함께라면 이 험난한 원정길에서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우의 함성 스킬로 목숨을 부지한 헨리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직후 코리부족의 잔당이 복수랍시고 월영용병단을 습격해왔다.
 시우는 마치 헨리의 말을 증명하듯 뛰어나가 홀로 코리들을 학살하고 돌아왔다.
 코리의 피로 전신을 물들인 그의 모습을 보고 감히 나가라고 할 수 있는 용병은 없었다.
 코리들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월영용병단을 습격했다. 코리가 이처럼 큰 집단을 공격해 오는 것은 매우 드믄 일이었지만 시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봐!]”
 이번에도 역시 가장 먼저 뛰어나가 고함치는 시우의 모습에 용병들이 몸서리를 쳤다.
 “<야, 저 검은 머리가 소리치는 게 무슨 뜻일까?>”
 “<다 죽여 버리겠다! 뭐 그런 뜻 아니겠어?>”
 “<어휴, 뭐가 됐든 좋은 뜻은 아니겠지.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식은땀이 줄줄 나는데 지난번엔 나도 모르게 칼을 뽑았다니까.>”
 용병의 너스레에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몇몇 용병들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용병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시우는 코리들이 짐마차로 향하는 낌새가 보이면 지체 없이 고함 스킬을 사용했다.
 어차피 해독 포션과 생명력회복 포션은 남아돌았다. 코리들이 짐마차를 향하게 되면 획득 가능한 경험치도 줄어들 뿐 아니라 짐꾼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시우는 메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신경질적으로 연노궁을 장전했다.
 메이는 NPC다. 어차피 유저를 서포트하기 위한 인공지능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시우라고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웠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시체를 품에 안았을 때부터 가슴 속에 생긴 응어리는 계속해서 커지기만 했다.
 시우는 멀리서 달려오는 코리 검사를 겨누고 쏘았다.
 연노궁으로는 도무지 기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시우는 레벨 10이 되면서 사용 가능하게 된 [입문용 철검]을 아이템 창에서 꺼냈다. 레벨 제한 1짜리 연습용 철검이랑 큰 차이도 없는 무기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무 위에는 더 이상 독바람총을 쏘는 코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시우는 달려 나가 코리들을 베어 넘겼다. 간혹 코리 검사의 검이 시우의 피부를 가를 때면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상관없었다.
 단지 폭력에 몸을 맡겨 그 외의 것들을 잊고 싶은 기분이었다.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우를 중심으로 붉은 웅덩이가 이루어져 있었다.
 더 이상 서있는 코리가 없음을 확인한 시우는 아직 살아 숨 쉬는 코리들을 찾아 검을 꽂아 넣었다.
 “<어차피 내버려두면 죽을 놈들을 굳이…….>”
 시우를 지켜보던 용병들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시선을 돌려버렸다. 처음에는 통쾌하던 전투도 지금에 와서는 그저 잔혹할 뿐인 광경이었다.
 푸화앗!
 띠링!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2개 자동분배 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3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시우가 짐마차로 돌아오자 짐꾼 중 한명이 헝겊을 가져왔다.
 그것을 받아든 시우는 가죽 갑옷을 뒤덮은 피를 대충 훑어냈다.
 “능력정보.”
 
 이름-최시우
 레벨-13
 종족-인간
 칭호-살육자
 [칭호 효과- 피를 볼 경우 근력+3 정신력-3]
 
 생명력 (121/121)
 마력 (111/111)
 원력 (?/?)
 
 근력 : 27
 순발력 : 22
 체력 : 26
 정신력 : 2
 
 남은 스탯 포인트 : 3
 상세정보…….
 
 시우는 남은 스탯 포인트를 순발력에 투자하고 짐마차에 올랐다. 용병들은 짐마차에 피가 묻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도 시우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짐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우는 육포를 입에 물고 리젠을 사용했다. 마차가 크게 요동칠 때면 리젠이 취소되었다. 시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열흘간 요동치는 마차 안에서 최대 마력량을 100이나 늘렸다. 효과는 분명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차 위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때워야 했다.
 리젠을 사용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시간이 잘 갔다.
 한참을 리젠에 열중하던 시우는 마차가 멈추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평소보다 해가 일찍 지고 있었다. 산에 가까워진 탓이다.
 의문을 느낀 시우가 시선을 돌리자 용병들이 정렬하고 서있었다.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부턴 탄즈 산맥에 돌입한다. 중급 몬스터인 카스탄의 영역을 피해 쟈탄을 사냥하고 다닐 예정이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탄즈 산맥은 위험한 곳이다. 아무런 피해 없이 코리의 숲을 통과한 것은 자랑스러우나 탄즈 산맥에 들어가면 지금까지보다 더욱 안전을 기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잭은 용병들을 둘러보았다. 한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시선을 마주쳤다.
 잭은 짐꾼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너희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져 왔다. 이제는 너희 자신이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다. 너희들도 들어 알겠지만 카스탄과 쟈탄은 코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 괴물들이니 우리가 너희를 돌볼 여유는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짐꾼들은 동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다.
 “<죽지 마라! 살아서 황금을 만지자! 엘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와아아아!
 공포와 탐욕이 뒤섞인 함성은 뜨거웠다.
 시우는 다시 눈을 감고 리젠을 사용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시우와는 상관없었다. 단지 마차가 일찍 멈춘 만큼 마력량을 늘리기엔 절호의 기회였다.
 
  * * *
 
 날이 밝았다.
 짐꾼 2명이 사라졌다. 탄즈 산맥에 진입한다는 공포를 못 이기고 간밤에 도망을 간 것이다. 그래봐야 사방이 코리들로 가득한 이 숲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용병들과 짐꾼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천막을 거두고 아침을 차렸다. 수프에 흑빵 한 조각, 거기에 육포까지 나온 만찬이었다.
 흑빵은 부피를 늘리려고 불순물을 첨가해 딱딱하고 육포는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그들은 맛나게 식사를 마쳤다.
 짐꾼 한 명이 웬일로 시우에게 음식을 가져왔다. 시우는 호기심에 흑빵과 육포를 한 입씩 맛봤지만 도무지 먹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시우가 다시 가져가라는 손짓을 하자 짐꾼이 곤란해 했다. 시우는 아이템 창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짐꾼에게 건넸다.
 먹으라는 시늉에 짐꾼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맛을 본 짐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었다. 짐꾼은 평생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육포는 처음 먹어 보았다. 짐꾼은 허겁지겁 육포를 입으로 가져갔다. 짐꾼의 손에서 육포가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짐꾼은 빈손을 보면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것을 지켜보던 시우가 다시 가져가라는 손짓을 하자 짐꾼은 그제야 음식을 거둬갔다. 저렇게 맛있는 육포가 있는데 굳이 맛없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용병들의 식사가 끝나자 마차는 머지않아 출발했다.
 마차는 산을 향하고 있었다. 맨 앞에선 잭이 마찻길과 몬스터의 영역이 표시된 값비싼 지도를 보며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시우는 리젠을 사용했다. 마차가 산을 오르자 시우도 호기심이 들었지만 어차피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은 시우 나름대로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오오오!
 포효가 들려왔다.
 아직 먼 곳에서 들려온 소리지만 그 막대한 존재감에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짐마차를 끌던 말들도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계속해서 이동한다.>”
 잭의 명령이 떨어지자 짐꾼들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지만 용병들이나 짐꾼들이나 긴장한 모습을 지우지는 못했다.
 시우도 리젠을 중단했다. 포효가 신경 쓰여서 도무지 리젠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시우는 왼쪽 눈을 가렸다. 그리고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나무 위에서 몬스터가 [타겟팅]되었기 때문이었다.
 
 쟈탄 Lv.35
 인간고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간혹 마을에 숨어들어 인간을 납치하곤 한다. 강인한 네 개의 팔과 튼튼한 꼬리를 이용한 나무타기가 특기. 또한 치유력이 뛰어나 웬만한 상처는 입은 자리에서 회복된다. 하체가 부실해 나무가 없는 평지에서 마주칠 경우 전력으로 도망치는 것이 좋다. 계절과 주변 환경에 맞춰 초록색, 단풍색, 흰색 등으로 털갈이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어렵다. 쟈탄의 피는 하급 회복 포션의 주된 재료이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용병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겨진다. 그 외에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쟈탄은 35레벨, 34레벨이 한 마리씩, 거기에 22레벨이 한 마리 더 있었다.
 쟈탄들은 나뭇잎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털이 나뭇잎과 흡사한 초록색이라 타겟팅이 된 시우도 놈들의 모습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우락부락한 두 쌍의 팔이 흉악했다. 무엇보다 레벨이 깡패라고 시우는 크게 긴장했다.
 혼자선 상대할 수 없었다. 30레벨이 넘는 쟈탄을 잡으려면 용병의 도움이 필요불가결 했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시우가 종종 걸음으로 잭에게 다가가자 용병들이 마차에서 일어나 시우를 경계했다.
 “<검은 머리, 네가 무슨 일이지?>”
 잭은 심기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시우는 잭과 시선을 마주치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른 용병들에겐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쟈탄.”
 잭이 경멸의 표정을 거두고 눈에 이채를 띄었다.
 잭이 알아들은 듯하자 이번에는 손가락을 세 개 들었다.
 “세 마리.”
 “<어디에 있지?>”
 말은 몰라도 잭이 무엇을 묻는지 모를 시우가 아니었다.
 시우가 쟈탄에게 들키지 않을 작은 제스처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잭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그아아!
 숨은 장소를 발각 당한 쟈탄은 잭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쾅! 콰직!
 그것만으로도 용병이 둘, 짐꾼이 한 명 죽었다.
 “<쟈탄이다! 전원 전투태세!>”
 잭이 명령을 내리면서 시우를 노려보았다. 시우는 그런 잭의 시선을 무시했다. 시우는 최대한 쟈탄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시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한 것은 잭이었다.
 시우는 잭의 시선보다 쟈탄이 더 신경 쓰였다. 시우는 벌써 용병들과 전투를 개시한 쟈탄을 훑어보았다.
 쟈탄의 키는 용병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대충 190에서 200센티미터 정도. 22레벨 쟈탄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는지 시우와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체에 비하면 하체가 짧다는 느낌이 강했다. 반대로 말하면 키에 비해 상체가 비대했다. 그 큰 상체에서 나오는 근력은 얼마나 강력한지 방패를 들이미는 용병들이 쟈탄의 주먹에 견디지 못하고 벌러덩 넘어질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용병들의 수가 쟈탄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용병들이 쟈탄에게 방패를 들이미는 사이 뒤에서 접근한 용병들이 칼을 쑤셔 넣었다. 갑작스런 고통에 쟈탄이 몸부림을 쳤지만 그때는 이미 용병들에게 포위된 뒤였다.
 시우는 감탄했다. 그것은 마치 방패로 된 우리와 같았다. 사방에서 밀어붙이는 방패에 쟈탄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쟈탄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쟈탄의 꼬리는 15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몸무게로 나무에 매달릴 수 있을 만큼 강인하며 또한 유연했다. 용병들이 흉포한 쟈탄의 공격에 위만을 경계하는 사이 쟈탄의 꼬리가 용병들의 발을 낚아챘다.
 “<으어어! 이거 놔!>”
 퍼억!
 그리고 쟈탄의 꼬리에 의해 공중에 떠오른 용병은 어김없이 목숨을 잃었다. 판금갑옷도 찌그러트리는 쟈탄의 근력을 견디기에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연약했다.
 시우는 전황을 판단하면서도 열심히 연노궁을 쏘았다.
 다행히도 다 자란 쟈탄은 방패에 둘러싸이고도 머리가 드러나 있어 저격하기가 편했다. 네 개의 팔이 볼트를 세 차례나 막아냈지만 그것도 우연의 일치였는지 연달아 쏜 볼트가 35레벨과 34레벨의 쟈탄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푸화앗!
 띠링!
 [레벨이 2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4개 자동분배 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6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열흘 동안 코리를 사냥하며 레벨을 3개 올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경험치였다. 시우는 내친김에 남은 한 마리도 처리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놈의 키가 작은 탓에 볼트로 노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 쟈탄은 고작 22레벨인 주제에 20대 중반 레벨의 용병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싸웠다. 쟈탄의 치유력은 잘린 팔도 다시 붙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레벨이 낮더라도 그런 특성 때문에 쟈탄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접전 끝에 쟈탄을 죽인 것은 잭이었다.
 잭의 검이 쟈탄의 목을 자르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배럴통을 가져와!>”
 한 용병이 외치자 짐꾼들이 배럴통을 굴려와 쟈탄을 거꾸로 매달고 피를 담기 시작했다.
 잭이 목을 벤 탓에 바닥에 흐른 피는 용병들이 흑빵을 들고 와 찍어 먹었다. 포션은 연금술사에 의해 쟈탄의 피에서 생명력을 추출해 만든다. 때문에 가공되지 않은 쟈탄의 피를 마셔도 효과는 없었지만 용병들은 쟈탄의 피가 수명을 늘려준다고 믿고 있었다.
 배럴통은 하나에 약 150리터의 용량이었다. 거기에 쟈탄 세 마리의 피를 담으니 20리터 가량이 찼다. 매우 적은 양이었지만 쟈탄의 피가 가득 찬 배럴통 하나가 500파운드에 팔리니 이번 전투로 60파운드 가량을 번 것이었다.
 그것은 용병들이 1파운드씩 나눠 가져도 남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하지만 용병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번 전투로 용병이 다섯이나 죽었다. 아무리 큰돈이 들어왔다고 해도 생사를 같이 해온 그들의 죽음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잭이 거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시우의 멱살을 잡았다. 월영용병단의 용병은 고작 쟈탄 따위에게 죽을 용병들이 아니었다. 잭은 그런 그들이 죽은 것은 시우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잭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자신의 탓이라는 걸. 시우는 말도 통하지 않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단지 잭은 이 분노를 풀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잭은 치켜든 주먹을 간신히 내리고 시우를 밀쳤다. 넘어진 시우가 얼굴을 찌푸리고 잭을 노려보았지만 잭은 시우의 시선을 피했다.
 “<시체를 모아와. 쟈탄이 먹지 못하도록 태운다.>”
 짐꾼들이 시체를 모아오자 헨리가 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용병들은 시체가 모두 타 재가 되기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 * *
 
 사냥은 순조로웠다. 기존 목표였던 배럴 5통을 전부 채웠을 뿐 아니라 물을 담아왔던 배럴통까지 사용해 쟈탄의 피를 7통이나 모을 수 있었다.
 피해도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다. 첫 전투에서 쟈탄의 꼬리가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용병들이 꼬리부터 자르고 전투를 시작한 덕분이었다.
 물론 시우의 역할도 컸다. 쟈탄이 무서운 점은 숲에서 만날 경우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은폐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시우의 타겟팅을 이용하면 숨어있는 쟈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잭은 빈 물통을 보며 턱을 괴고 고민했다. 이미 목표는 초과해서 달성했지만 피해가 적다보니 욕심이 났다.
 부하들도 이제 쟈탄과의 전투에 익숙해졌고 조심하면 아무런 피해 없이 배럴통 하나 정도는 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열성적으로 사냥을 계속하다보니 놈들의 씨가 말랐다는 것. 오늘은 아직 쟈탄의 그림자도 구경을 하지 못했다.
 잭이 갈등하는 그 순간 쟈탄의 포효가 들려왔다.
 가아아아!
 카스탄의 영역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였다.
 카스탄은 익시더가 아니면 사냥이 불가능한 괴물이었다. 때문에 잭도 카스탄의 영역을 피해왔지만 쟈탄의 피가 잭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제 막 각성한 신출내기이긴 하지만 잭도 익시더였다. 만일 카스탄과 조우하더라도 한 마리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잭은 부하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카스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단장, 진심이야? 하지만 카스탄이라니…….>”
 용병들이 술렁였지만 잭의 의지는 확고했다.
 “<카스탄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꼭 카스탄과 조우하란 법은 없지. 딱 한탕만 더 뛰고 복귀한다. 너무 걱정은 말도록. 혹시라도 카스탄이 나타나면 내가 나서면 되니까.>”
 잭의 자신만만한 말에 용병들의 걱정도 한풀 꺾였다.
 월영용병단의 단장은, 그들의 보스는 원력을 각성한 익시더였다. 익시더가 그들과 함께 하는데 카스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쟈탄 사냥이 평소보다 순조롭다 보니 사실 욕심이 나는 건 단장뿐이 아니었다. 게다가 카스탄의 피는 쟈탄의 피보다도 훨씬 비싼 포션 재료였다. 용병들 중에서는 내심 카스탄과 조우하기를 바라는 자도 적지 않았다.
 용병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이자 잭은 짐마차를 카스탄의 영역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카스탄의 영역은 지도가 부정확해 잠시 길을 헤맸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내 쟈탄 한 무리가 벼랑 끝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잭은 행운의 여신인 엘라가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벼랑 근처에는 나무도 없었다. 동굴이 있었지만 쟈탄들의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무를 타지 않는 쟈탄은 사냥이 간편했다. 굴러다니는 황금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잭은 쟈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마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했다. 그런 잭의 판단이 빛을 발해 쟈탄들은 용병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검은 머리.>”
 잭이 시우를 불렀다. 시우는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의 저격 솜씨는 월영용병단의 궁병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우의 저격으로 쟈탄의 수를 줄이는 건 이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퓽! 퍽!
 그어?
 한 놈이 별안간 쓰러지자 동요하는 쟈탄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모여 있는 용병들을 발견한 쟈탄들은 성난 포효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이쯤 되면 쟈탄들은 앞뒤 재지 않고 돌격해 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포효만 지를 뿐 다가오지 않았다.
 시우는 의아했지만 열심히 볼트를 장전해 쏘았다. 연노궁은 궁병들의 활보다 사거리가 길었다. 연노궁의 사거리가 간신히 닿는 곳에서 공격을 한 탓에 놈들이 달려오지 않는 이상 쟈탄을 공격할 수단은 시우의 연노궁 뿐이었다.
 퓽! 퓽!
 쟈탄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심지어 그렇게 계속해서 연노궁을 쏘다보니 머지않아 레벨업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가 들려왔다.
 그아아아!
 공기를 타고 전해져오는 존재감은 쟈탄 따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포효를 들은 용병들은 심까지 울리는 그 충격에 다리 힘이 탁하고 풀릴 정도였다.
 바닥에 주저앉고 오줌을 지리는 용병들이 속출했다.
 시우도 동굴에서 들려오는 그 포효에 넋을 읽고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일단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시우는 왼쪽 눈을 가렸다.
 
 카스탄 Lv.67
 쟈탄의 동종 몬스터. 그러나 털과 꼬리가 없고 덩치는 쟈탄의 5배에 이른다. 머리에 검을 박아 넣어도 활동할 정도로 강인하기 때문에 죽이기 위해선 목을 단방에 잘라 머리와 동체를 떼어내는 수밖에 없다. 움직임은 둔하나 나무를 뽑아 휘두를 정도의 완력을 지니고 있으며 가죽은 화살이 박히지 않을 만큼 탄탄하다. 쟈탄보다도 뛰어난 치유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그 피는 상급의 회복 포션 재료로 비싸게 팔린다. 그 외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67레벨?
 지금까지 용병들과 활동하면서 시우는 몇 번이나 잭에게 감탄해왔다. 그런 잭의 레벨도 52인데 카스탄의 레벨은 그보다 15나 높았다.
 동굴에서 카스탄이 나왔다. 동굴의 입구는 제법 커서 높이가 3미터나 됐는데 카스탄은 그 입구도 작아서 고개를 숙이고 나와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한 쪽 손에는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잘 자란 나무 하나를 뽑아 가지를 쳐내고 그대로 무기로 쓰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카스탄의 전신에 새겨진 흉터들이었다.
 카스탄은 상처를 입어도 즉시 낫지만 그래도 흉터는 남는다. 그렇게 전투에서 새겨진 수많은 흉터들은 카스탄들에게 있어 그들의 경험을 나타내는 휘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카스탄이 나오자 쟈탄들이 납작 엎드렸다. 마치 왕이나 신을 섬기는 자세였다. 동굴에서 나온 카스탄은 가슴을 쭉 펴고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언제든 공격해 보라는 듯 당당한 모습이었다.
 시우가 먼저 볼트를 쏘았다. 하지만 카스탄은 그것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피웅! 탁.
 카스탄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간 볼트는 위세 좋게 날아간 것이 무안할 정도로 허무하게 튕겨 나왔다.
 가죽이 너무 단단했다. 이번엔 눈을 노리기 위해 다시 볼트를 장전했다. 하지만 누군가 시우의 어깨를 붙잡으며 만류했다.
 잭이었다.
 “<그만해. 크로스 보우로는 어림도 없어.>”
 잭은 시우의 앞으로 나서더니 검을 뽑아들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선 푸른 아우라가 일어났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익시더라는 증명이었다.
 용병들은 잭의 몸에서 일어나는 존재감에 감탄했지만 시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카스탄의 레벨은 무려 67이었고 잭은 고작 52레벨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전할 수 있는 말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카스탄!”
 상대는 카스탄이다.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런 시우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잭은 검을 바투 세워 잡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나는 익시더다.>”
 잭이 먼저 뛰어나가자 용병들이 외쳤다.
 “<가자! 단장의 뒤를 따르라!>”
 와아아아!
 용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았다. 하지만 달려 나가는 용병들 사이에 시우는 없었다. 시우는 뒤에서 좀 더 전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엎드려 있던 쟈탄들이 달려드는 용병들의 기세에 벌떡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쟈탄들과는 다르게 카스탄은 코웃음을 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것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스탄이 몽둥이를 드는 것과 동시에 잭도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에는 이미 카스탄의 몽둥이가 휘둘러진 다음이었고 잭은 그런 카스탄의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퍼억!
 고함치며 달려들던 용병들에게 정적이 찾아왔다.
 카스탄은 몽둥이에 맞아 벽에 패대기쳐진 잭에게 다가갔다. 잭은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살아만 있을 뿐 검을 휘두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카스탄은 더 이상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벌레를 짓이기듯 몽둥이를 재차 내리칠 뿐이었다.
 퍼억! 퍽! 쿵! 쾅!
 잭의 몸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졌다. 고깃덩이 위에 걸쳐진 가죽 갑옷만이 살아생전 그가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웩!
 용병 하나가 그 끔찍한 광경에 참지 못하고 점심을 토해냈다. 나머지 용병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금방이라도 뱃속을 비워낼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시우는 도망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카스탄과 시우 사이에는 아직 수십의 용병들이 있었다. 이대로 그들을 저버리고 도망간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아직 시우의 레벨이 25라서 쟈탄들을 혼자 감당하긴 힘들었지만 타겟팅을 이용하면 불필요한 전투를 피해 코리의 숲으로 빠져나갈 방도도 있었다.
 시우가 용병들과 같이 행동한 것은 그들이 마을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료도 친구도 아니었다. 그냥 NPC였다. 그들을 저버리고 도망친다 해도 시우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시우는 도무지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시우의 뇌리로 메이의 얼굴이 스친 탓이었다.
 시우는 다시 뒤돌아 용병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런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시우는 본인이 가진 능력을 이용해 카스탄을 쓰러트릴 가능성을 점쳐보기 바빴다.
 시우의 시선으로 벼랑이 들어왔다. 이곳은 산의 정상에 가까운 곳이었다. 벼랑은 높았고 아무리 튼튼한 몸과 뛰어난 치유력을 가진 카스탄이라도 여기서 떨어지면 한 덩이 고깃덩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탄을 벼랑으로 떠미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연노궁의 볼트는 카스탄에게 모기만도 못한 무기였다. 그렇다고 검을 들자니 잭의 꼴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시우는 연노궁을 집어넣고 볼품없는 나뭇가지를 꺼내 들었다. 세계수의 가지였다.
 만약 시우에게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마법뿐이었다.
 시우는 평소의 경험으로 리젠을 사용해 흥분된 감정을 가다듬었다. 효과는 뛰어났다. 리젠을 사용하는 즉시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할 수 있다. 시우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꾸준히 리젠을 써온 덕분에 마력량도 충분했다.
 하지만 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잭이 죽은 탓에 용병들의 사기가 말도 아니었다. 아무리 마법을 쓴다 해도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카스탄을 물리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 시우의 옆에 나타났다.
 짐꾼인가? 시우가 놀라 돌아봤다.
 그는 헨리였다.
 “<엘라의 사제 헨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는 검이 될지어다. 검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으며, 검은 패할지언정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결코 굴하지 않는 검이 될지어다.>”
 타악!
 헨리가 주문을 외며 지팡이로 바닥을 짚자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용병들을 감쌌다.
 그러자 용병들의 공포는 사라졌다. 그리고 공포가 사라진 그들에게 남은 가장 큰 감정은 복수심이었다. 그들의 보스인 잭이 죽었다. 잭은 그들에게 훌륭한 지휘관이었고 가족이었으며 친구였다.
 시우는 그런 용병들의 변화에 깜짝 놀라 헨리를 보았다.
 용병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평범하진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헨리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였다.
 지금 사용한 기술로 그의 몸에 쌓인 성력을 모두 소모하고 말았다.
 애초에 헨리는 교단에 속하지 않은 자유사제였다. 쟈탄 원정은 험한 여정이었고 잭은 부하들을 위로할 수단으로 싼값에 자유사제인 헨리를 고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우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이것으로 조금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격하라!>”
 “<단장을 위하여!>”
 용병들은 분노에 몸을 맡겨 불나방처럼 카스탄에게 몸을 던졌다. 깜짝 놀란 시우도 덩달아 달려 나갔다. 연노궁의 사거리는 무척 길었고 마법의 사거리는 그보다 짧았다. 용병들을 지원하기 위해선 좀 더 접근한 필요가 있었다.
 시우는 몽둥이를 치켜드는 카스탄의 모습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땅이여 파여라. 디그!”
 시우의 마법에 카스탄의 발치가 돌연 가라앉았다. 카스탄이 딛고 있던 흙이 사라진 것이었다. 시우는 마법을 쓰면서도 효력을 의심했지만 카스탄은 하체가 부실했다. 발치가 불안정해지자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몇몇 용병들이 카스탄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카스탄의 가죽은 튼튼했고 상처를 입힌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소수에 의해 입힌 상처마저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회복되었다. 기껏 남긴 것은 흉터뿐이었다.
 중심을 찾은 카스탄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퍼버벅!
 한 번 휘두른 몽둥이에 세 명의 용병이 걸려 죽어나갔다. 몽둥이가 일으킨 바람이 살벌했다. 시우는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용병들은 굴하지 않고 재차 카스탄에게 덤벼들었다.
 공포를 잊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대단히 이성적이었다. 쟈탄을 상대하면서 탄즈의 약점이 하체임을 미리 알고 있던 용병들은 카스탄의 다리를 공략했다.
 아무리 치유력이 좋아도 십여 명의 용병들이 달라붙어 휘두르는 검에 카스탄은 제대로 서있을 수 없었다.
 넘어지면서도 재차 휘두르는 몽둥이에 또 세 명이 죽었지만 헨리의 성법에 걸린 용병들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쓰러진 카스탄의 눈에 검을 휘둘렀다. 화들짝 놀란 카스탄이 몽둥이를 쥐지 않은 세 개의 팔을 휘저으며 검과 용병들을 쳐냈지만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용병 한 명이 검을 카스탄의 눈에 꽂아 넣는데 성공했다. 얼마나 깊게 꽂았는지 검신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우는 혹시나 하고 기대감을 품었지만 카스탄은 그런 꼴이 되고도 허우적거리며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타겟팅하며 보았던 설명처럼 뇌를 다치는 정도론 죽지 않았다. 적어도 머리를 동체에서 떼어 놓거나 머리가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파괴되어야 했다.
 시우는 카스탄이 넘어진 사이에 주문을 외웠다.
 “불꽃마저 얼어붙는다. 프리징!”
 그것은 마법의 대상을 얼어 붙이는 마법. 하지만 대상은 카스탄이 아니었다. 카스탄을 얼려 깨부순다고 해봐야 지금까지 지켜본 치유력을 보아선 바로 회복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애초 계획했던 것처럼 카스탄을 벼랑으로 몰아붙일 수단을 찾아야 했다.
 시우의 마법에 카스탄과 벼랑 사이에 서있던 쟈탄들이 허우적대다가 쓰러졌다. 바닥이 꽁꽁 얼어 미끄러진 것이다. 시우는 그것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었다.
 “힘이여 솟아라. 스트렝스!”
 그리고 냅다 달려들어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카스탄을 밀었다.
 3미터가 넘어가는 카스탄의 무게는 800킬로그램이 넘어갔지만 일시적으로 배가된 시우의 근력은 그런 카스탄도 밀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제대로 힘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카스탄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만큼 몽둥이를 열심히 휘둘러댔다. 카스탄을 밀면서 그것을 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카스탄이 허우적거리면서도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다행히도 바닥이 미끄러워 미수에 그쳤지만 시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런 시우의 옆으로 용병이 달려들었다. 시우를 지켜보던 용병이 그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었다.
 “<카스탄을 밀어! 벼랑으로 떨어트린다!>”
 누군가 외치자 용병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잠시 정체했던 카스탄이 용병들에 의해 점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차로 가속도를 얻었고 이제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카스탄도 하나 남은 눈알로 벼랑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하고 발버둥을 쳤다. 강인한 완력을 이용해 주먹을 바닥에 꽂아버린 것이다.
 벼랑을 앞두고 미끄러지던 카스탄의 몸이 멈춰 섰다. 하지만 시우에겐 아직 마력이 남아 있었다.
 “땅이여 파여라. 디그!”
 후두두둑.
 지반이 약해 무너질 조짐이 보였다. 시우는 재차 세계수의 가지를 휘둘렀다.
 “땅이여 파여라. 디그! 땅이여 파여라. 디그! 땅이여 파여라. 디그!”
 연달아 주문을 외우자 벼랑 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우는 카스탄의 몸을 박차고 그곳에서 탈출했다. 바닥에 손을 박아 넣은 카스탄은 벼랑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다.
 시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카스탄이 시우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
 이게 아닌데.
 시우는 카스탄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우는 다급해졌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시우는 그것이 바로 지금임을 깨달았다.
 “불꽃마저 얼어붙는다. 프리징!”
 카스탄의 손가락을 얼렸다. 시우는 재빨리 세계수의 가지를 집어넣고 입문용 철검을 꺼내들고 스킬을 사용했다.
 “폭염검!”
 퍼엉!
 얼어붙은 카스탄의 손가락이 산산이 부서졌다. 덩달아 다리도 다쳤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지상이 바로 코앞이었다. 시우는 다시 철검을 집어넣고 세계수의 가지를 꺼내들었다.
 “마법의 방패를 이곳에 소환한다. 매지컬 실드!”
 그러자 시우 주변으로 반투명한 장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상과 충돌했다.
 “커헉!”
 아무리 마법의 방패를 쳤다지만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 보니 충격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시우가 피를 토했다.
 띠링!
 [급격한 생명력의 저하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행동이 불가능해 집니다.]
 띠링!
 [치명적인 타격으로 인해 기절상태에 빠집니다.]
 시우는 정신을 잃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마법의 방패는 여전히 시우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시우의 생명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추락의 충격으로 장기를 다친 탓이었다.
 따단!
 [업적 달성! 최시우님은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강력한 몬스터를 물리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칭호 = 카스탄 슬레이어가 주어집니다.]
 [획득 경험치가 가산됩니다.]
 띠링!
 [레벨이 16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업 효과로 생명력과 마력, 원력이 회복됩니다.]
 [스탯 포인트가 32개 자동분배 됩니다. 남은 스탯 포인트가 48개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회복됩니다.]
 띵!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상태이상 기절이 유지됩니다.]
 구체 모양을 한 마법의 방패가 굴러 계곡으로 빠졌다.
 시우는 물위에 둥둥 떠서 하염없이 떠내려갔다.
 
 <『리스폰』 2권에 계속>

댓글(15)

누우    
생나무는 잘 안타요...
2016.02.04 11:18
추세추종    
잼있는데?
2016.02.06 00:54
100만원    
이거 다 봤는대 상당히 재밌네요
2016.02.07 09:49
소설가인생    
연노궁은 제한이 없나봐요? 그냥 활보다 좋은게 연노궁일텐데 제한이 없다니정말 놀랍군요!!
2017.06.28 14:45
소설가인생    
자 궁금한거 한가지 있는데 독가시 맞을때는 중독뎀지 말고도 살이 꿰뚫리니깐 직접데미지도 있을텐데 처음 맞았을대 50/100 이렇게 체력 떨어졌으니깐 뭐 대충 20~30정도 떨어진다고 치면 4방만 맞아도 죽을텐데..ㄷㄷ 거의 불사신수준
2017.06.28 14:50
검은Ursa    
저승사자 부분이 가장 어이없는 ㅋㅋ 그냥 머리 비우고 시간때우기용 소설
2017.07.09 15:38
루루폐하    
이건 한권에 몇화 분량인건가요? 뭐가 좀 양이 적네요
2019.10.16 20:45
콩알이네1    
지루하네요 완결까지보기힘들어요
2021.11.06 12:51
Ginx    
100만원 댓글 때문에 낚인1인 여기있네요. 16화 이후 급마무리에 나름 수작 갈수 있었던 글인데 평작에 조금 미달한 아쉬운 글 입니다.
2021.11.09 18:17
ra******    
할말없네요 글쓰다가 무슨일이 있었는지 출판사에서 조기완결 요청했는지.. 잘나가다가 그냥 망쳐버렸네요;
2021.11.0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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