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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 1권

2015.07.03 조회 10,154 추천 158


 프롤로그
 
 기계 괴수들이 지구를 공격했다.
 1년간의 대전쟁.
 수많은 사람이 죽고, 뭇 도시가 파괴당했다.
 인류는 종족 연합의 지원에 힘입어 겨우 위기를 넘겼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외계 종족과의 교류, 분쟁.
 잔존한 기계 괴수 사냥.
 기술 발전이 촉발되고, 유례없는 호황이 찾아왔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외계인 시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총알이 쏟아졌다. 총알을 뒤집어 쓴 괴물들이 갈가리 찢어졌다.
 “사격 중지.”
 수한은 소총의 조정간을 단발로 옮겼다.
 아수라장이 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지렁이를 닮은 변이체의 시체만 널려 있었다.
 기습을 당했다면 모를까, 사전에 변이체 탐지기로 위치를 파악한 상태.
 현대 병기가 잘 통하지 않는 C급 이상의 변이체도 아니고, 기껏해야 E급 쓰레기들이었다. 잘 훈련된 군인이라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다.
 “좋아, 전진한다.”
 수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2개의 분대가 조심스럽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큰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이었다. 이럴 때면 변이체가 창궐하곤 했다. 그 수가 불어 저지선 밖으로 나가기 전, 적당히 소탕하는 게 필요했다.
 “11시 방향에서 변이체 감지됩니다. 수는 약 50, 거리는 500!”
 “그렇게 많아? 모두 긴장해라. 전투 준비!”
 500이면 지척이다.
 신중하게 다가가 살펴보니, 이번에는 송충이 형태의 변이체들이었다. 소나무 위에 잔뜩 매달려 있다가 괴성을 지르며 소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총을 갈기면 몽땅 작살이 난다.
 송충이 떼까지 사냥하고 나자, 더 이상 감지되는 변이체가 없었다.
 수한은 오른손을 들었다.
 “10분 간 휴식. 사주 경계 철저히 한다.”
 “휴!”
 “아우, 다리야.”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벌써 며칠 째 야영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험준한 개마고원 안을 누비며 변이체 사냥을 했더니 슬슬 한계였다.
 수한은 인근에 있는 소대장과 교신을 했다.
 [소대원들이 많이 피곤해합니다. 슬슬 작전을 종료해야겠습니다.]
 [알았다. 안 그래도 중대장님도 내일 복귀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오후까지 작전을 하고, 저녁 야영 후 내일부터 복귀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래도 수한이 작전 종료 사실을 전파하자 소대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오늘까지만 고생하면 내일부터는 좀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것이다.
 “비가 많이 오긴 왔나봅니다.”
 3분대장인 권준 병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한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발 딛는 곳마다 진창이었다. 산사태도 일어났는지 이곳저곳이 엎어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향하고 쓰러져 있는가 하면, 바위 굴러간 자리에서 지렁이와 개미들이 꿈틀거렸다.
 탐지병이 소리쳤다.
 “9시 방향에서 변이체 감지됩니다. 수는 약 30, 거리는 1000!”
 “등급은?”
 “모두 E급입니다.”
 “좋아. 우리가 제거한다.”
 30마리 정도는 어렵지 않다.
 탐지병의 보고를 실시간으로 들으며 접근했다.
 언덕을 하나 넘자 비탈길이 나왔다. 산사태가 크게 일어났는지, 온전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남은 것이라곤 파괴의 흔적뿐. 벌건 흙이 지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저건 뭐야?”
 “모르겠습니다.”
 “인공위성이라도 떨어졌나?”
 무너져 내린 산비탈에, 은색의 물체 하나가 언뜻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상당히 컸다. 둥글게 생긴 물체인데, 원룸 하나 크기는 충분히 되는 것 같았다.
 겉에 이물질이 진득하게 묻어 있어 형태는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탐지병이 수한에게 보고했다.
 “변이체들이 저 안에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 그럼 곤란한데.”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변이체들과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일격을 허용하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원거리에서 사격을 가하거나, 함정에 몰아넣는 게 최고였다.
 “일단 접근한다. 한 번 유인해보자.”
 “알겠습니다.”
 “3분대는 나를 따라오고, 4분대는 50미터 뒤에서 엄호하도록. 탐지병들은 변이체가 움직이면 즉각 알리도록 한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비탈은 무척 미끄러웠다. 습기가 다 마르지 않아 진창이라 언제 미끄러질지 몰랐다. 각도가 상당해서 넘어졌다가는 크게 다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빛 물체까지 도착했다.
 이제 보니 어떤 거대한 구조물의 일부였다. 둥글게 돌출된 부분이 산사태에 휘말려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물질을 조금 닦아내자 눈부신 은빛 벽이 나타났다. 우주선이나 비행기처럼 금속 질감이 반들거렸다. 손을 대보자, 금속 특유의 싸늘한 촉감이 느껴졌다.
 철도 아니고 알루미늄도 아닌, 처음 보는 금속.
 구조물 한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 한둘은 충분히 들어갈 크기였다.
 이게 뭘까 싶었다.
 중대장도, 소대장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구조물인데.
 삐삐삐삐삐!
 갑자기 탐지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수한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총을 들어 구멍 안을 겨누었다.
 “부소대장님! X-0가 검출됩니다!”
 “뭐? 농도는?”
 “1.3입니다.”
 X-0.
 대전쟁 당시 기계 괴수들이 지구에 풀어놓았던 유전자 변형 물질이다. 일정량 이상을 흡입할 경우 몸이 변형되면서 이성을 잃게 된다.
 1.3이면 낮은 편이다. 인체에는 거의 해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아주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X-0가 검출된다는 건 변이체가 있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
 수한은 분대를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잠깐 생각을 하다가, 수류탄을 하나 빼들었다.
 “유인해서 처치할 테니까, 모두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2개 분대를 모두 확인한 후, 수한은 수류탄을 구멍 안으로 굴려 넣었다.
 구멍 안은 수평으로 쭉 뻗어 있었다. 수류탄은 그 안으로 들어가 꽝 하고 터졌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은색 구조물이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대신 수한이 유도한 움직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탐지병이 급하게 외쳤다.
 “변이체 30, 움직입니다!”
 “방향은?”
 “구멍! 구멍으로 나옵니다! 아, 지금…….”
 “캬아아악!”
 괴이하게 생긴 변이체들이 기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눈도 귀도 없이 도마뱀을 닮은 것들.
 크기는 작은 개와 비슷하고, 메기수염 같은 촉수가 전신에 늘어져 있었다. 닭 벼슬 같은 발톱이 발끝에 매달린 채 걸쭉한 진액을 뿌렸다.
 수한은 바로 총을 들이댔다.
 “쏴!”
 타타탕!
 모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기세 좋게 달려든 변이체들이 몽땅 죽어나갔다.
 “남은 건?”
 “이제 반경 5km 안에는 살아있는 변이체가 없습니다.”
 “좋아. 시간도 늦었으니 여기까지 하자.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간단히 뒤처리를 했다.
 변이체 시체를 그냥 방치해 놓으면 안 된다. 통째로 수거하거나, 보존액을 뿌리거나, 그도 아니면 화장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변이체가 그 시체를 먹고 더 강해지는 수가 있었다.
 뒤처리까지 끝낸 후, 수한은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수고했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고?]
 [예. 추락한 비행기나 인공위성 잔해 같은데,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어서 보내주겠나?]
 [예, 알겠습니다.]
 수한은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시켰다.
 소대장이 금방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거, 내 생각인데 아무래도 기계 괴수 잔해 같다.]
 [예?]
 [대전쟁 때 개마고원에서 파괴당한 기계 괴수가 꽤 있는데, 그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진부터 봐라.]
 소대장이 사진 하나를 전송했다.
 수한은 그걸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불가사리를 닮은 기계 괴수인데, 머리 부분에 둥글게 돌출된 부분이 몇 개 있었다. 그것과 지금 수한이 보고 있는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아닐 수도 있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아. 나도 그쪽으로 가보기는 할 텐데, 그 전에 간단히 정찰할 수 있겠나? 위험한 것 같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안에 있던 변이체는 모두 죽였습니다.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좋다. 대신 무리하지는 마라. 안전이 최우선이다.]
 [알겠습니다.]
 수한은 소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간단히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저게 기계 괴수입니까?”
 “완전히 죽은 것 맞습니까?”
 “살아 있으면 진작 우릴 공격했겠지. 내가 보기엔 그 동안 땅에 묻혀 있다가, 산사태로 일부가 드러난 것 같다.”
 “어쩐지…….”
 소대원들이 은색 구조물을 힐끔거렸다.
 기계 괴수라고 생각하고 보니 새삼스레 달리 보였다.
 두려움은 없었다. 기계 괴수가 맞다면, 방치된 지 최소 10년은 지났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기계 괴수가 무섭지, 시체가 무섭지는 않았다.
 수한은 소대원들의 사기가 여전히 굴강한 것을 확인했다.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3분대는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4분대는 남는다. 10분마다 휴식을 취할 테니, 각 분대장은 서로 간에 통신 확인하고 이상 생기면 즉각 나한테 보고하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X-0 때문에 방독면과 화생방 장갑도 끼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더 진해질 테니까.
 수한이 앞장서서 들어갔다.
 구멍은 좁았지만 안은 꽤 널찍했다. 사람 두셋이 나란히 지나갈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안쪽은 참 을씨년스러웠다.
 금속 골제 구조물이 제멋대로 드러나 있었다. 금속선 다발이 덩굴처럼 늘어져 있고, 바닥에는 금속 무더기들이 벌레 시체처럼 굴러다녔다.
 완전한 죽음의 세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침묵에 잠긴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했다.
 아직 작동하는 방어 장치가 있을 수도 있고, 기계 괴수가 내뿜은 X-0에 의해 변이된 곤충이 존재할 가능성도 컸다. 방심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수한만 손해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 광선 발사기를 발견했으나 그것으로 끝. 지척까지 다가가도 움직임이 없었다.
 정말로 기계 괴수 시체가 맞는 것 같았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금방 햇빛이 차단되어 어두워졌다. 모두 소지 중인 야시경을 머리에 썼다.
 “저기 문이 있습니다!”
 한동안 걷자, 반쯤 열린 문이 보였다. 손잡이는 따로 보이지 않고, 좌우로 벌어지는 형태의 문이었다.
 수한은 탐지병을 돌아보았다. 탐지병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총을 앞세우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소대원들이 바짝 긴장한 채 그 뒤를 따랐다.
 들어선 곳은 널찍한 방이었다. 도넛처럼 둥근 형태로, 방 중앙이 유독 높게 솟아 있었다.
 높이 차이가 상당했다. 위로 올라가면 방 전체를 내려다보는 게 가능할 듯했다. 그 가운데에는 화려한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수한은 번개처럼 총을 겨눴다.
 “누구냐!”
 “부소대장님 무슨…… 헉!”
 소대원들도 이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의자 위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모두 총구를 향했다.
 그런데 미동이 없다.
 탐지병이 탐지기를 톡톡 건드리더니 수한에게 말했다.
 “부소대장님. 생체 반응이 없습니다. 시체 같습니다.”
 “아, 그래?”
 야시경을 착용한 상태라 얼른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기술이 암만 발전했어도 대낮에 육안으로 보는 것보단 못하니까.
 그런데 웬 시체?
 수한은 소총을 거두고 의자 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체를 살폈다.
 키는 2미터에 조금 못 미쳤다. 오랫동안 방치된 까닭에 근육이 다 말라붙어 미라를 연상시켰다.
 흰색 민무늬 가면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금속 질감의 은색 옷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어떤 글자 같은 것들이 시체의 왼쪽 손목을 팔찌처럼 빙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검 한 자루가 꽂혀 있다.
 붉게 달아올라 지금도 열기를 폴폴 내뿜고 있는 검.
 손잡이 끝에는 적색 보석이 박혀 있고, 날개 모양 장식이 칼날 아래에서 길쭉하게 뻗었다.
 무엇보다 검신.
 금속이 아니었다. 붉디붉은 에너지가 유형화되어 맺혀 있었다.
 수한은 신음처럼 한 마디를 뱉었다.
 “세라프의 적색 검…….”
 종족 연합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
 그들이 사용한다는 검이 왜 이 시체의 가슴에 꽂혀 있는 것일까?
 수한은 천천히 시체를 살폈다.
 언뜻 보기에는 꼭 지구인 같았다. 체형도 그렇고, 전체적인 골격도 흔히 보던 그대로였으니까.
 총 끝으로 가볍게 시체를 건드려 보았다.
 가슴, 목, 팔 등등.
 우연히 팔찌와 총이 부딪쳤다. 동시에 어떤 파장 같은 것이 수한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뭐지?’
 수한은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어째 기분이 껄끄러웠다. 총을 시체에게 겨눈 채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분대장들이 아래쪽에서 소리를 쳤다. 방독면 때문에 크게 소리를 쳐야 겨우 들렸다.
 “부소대장님! 뭐 있습니까?”
 “너희도 올라와서 직접 봐. 난 소대장님께 보고하겠다.”
 금방 두 분대장이 위로 올라왔다. 상당히 좁은 곳이라 겨우 3명만으로 꽉 차 버렸다.
 권준 병장이 시체를 보고 눈을 빛냈다.
 “이거 혹시 외계인 아닙니까? 그, 제국이라는 것들 말입니다.”
 제국.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저 기계 괴수를 대량으로 만들어, 무수히 많은 차원을 공격했다는 것밖에는…….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놈들? 맞아. 예전에도 몇 번 외계인 시체를 발굴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세라프의 검이 꽂힌 것을 보니, 제국 놈 맞는 것 같습니다.”
 수한이 듣기에도 그럴 듯했다.
 설마하니 지구인이 기계 괴수 안에서 세라프의 검에 죽어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얼른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소대장은 깜짝 놀랐다. 외계인 시체까지 있을 정도면 기계 괴수가 확실하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보고를 마치고 조용히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조금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인계 받을 부대가 도착할 것이다. 부대로 돌아가 편히 쉴 일만 남았다.
 바로 그때였다.
 모두들 방 아래쪽으로 내려와 시체에서 시선을 뗀 순간.
 시체의 왼쪽 손목에 있던 팔찌가 흐릿해졌다. 빼곡하던 글자들이 희미한 빛을 뿜으며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네들 코앞을 지나가도 무덤덤하게 주변만 경계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글자들은 등 돌리고 서 있는 수한에게 스며들었다. 수한의 살갗 위를 질주하다가 수한의 왼쪽 손목에 자리를 잡았다.
 수한은 무심코 왼쪽 손목을 긁었다.
 장갑으로 가려진 손목 위, 작은 문양들이 나타났다.
 [フ∐ΨΔЦяºワßɩɞ∏∓¥€⌸⍜]
 글자 같기도 하고, 기호 같기도 한 것들.
 게다가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문양이 자꾸만 바뀌었다. 바뀌는 속도가 하도 빨라 꼭 검은 점들이 마구 깜빡이는 것 같았다.
 수한은 자기 손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몰랐다. 곧 도착할 후속 부대를 기다리며 주위만 경계하고 있었다.
 점이 깜빡이는 게 멈췄다.
 문양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문장이 나타나 수한의 손목을 빽빽이 뒤덮었다가 차례차례 사라졌다.
 [사용자 언어 체계 분석 완료.]
 [유전자 분석 완료.]
 [사용자 인증 중…… 완료. 사용 가능.]
 [레벨 업 도우미 가동 360 시간 전.]
 레벨 업 도우미
 
 작전이 끝나자 푹 쉴 수 있었다.
 수한의 소대가 찾은 기계 괴수와 외계인 시체는 대한민국 국군 연구소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아예 도로까지 닦고 트럭들이 쉬지 않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거기에 분원을 하나 세울 요량인 듯했다.
 하긴 일부만 탐험했는데도 규모가 엄청났다. 마치 SF 영화 속의 우주선을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수한의 소대는 상당한 포상을 받았다.
 특별 수당. 특별 휴가.
 소대장은 요즘 입이 완전히 벌어졌다. 안 그래도 인사고과가 좋은 편이었는데, 다음 진급 심사에서 진급이 거의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수한은 어쨌냐고?
 안타깝게도 휴가를 못 쓸 처지가 되었다.
 외계인 시체와 직접 맞닥뜨린 탓에, 각종 검사를 하고 보안 서약을 하는 등 바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걸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난 게 문제.
 여러 일을 처리해놓고 보니 벌써 전역 날이 되어 있었다.
 ‘전역하기 전에 명한이 녀석 등록금은 다 마련해서 다행이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아직 막내 기한의 등록금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될 것이다. 공격대에 지원 요원으로 취직을 하든, 아니면 변이체 사냥꾼으로 나서든 둘 다 벌이가 괜찮은 직업이니까.
 “내일 전역이라고?”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말뚝 박는 게 어때? 내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공격대도 그렇고 사냥꾼도 그렇고 쉽지가 않아. 공격대는 언제 잘릴 줄 모르고, 사냥꾼은 요즘 변이체가 줄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무슨 소린지 알아?”
 부대 안을 걷다가 우연히 주임원사를 만났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볼 때마다 이 소리를 하곤 했다.
 수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하,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저는 돈이 필요해서요.”
 “끄응, 자네가 가장이라고 그랬지?”
 “예. 솔직히 여기 온 것도 그냥 일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줘서 그런 겁니다. 전역하고 취직도 쉽고요.”
 대전쟁 전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대전쟁 후 바뀐 것 중의 하나였다.
 주임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고 했지……. 고생이 많아.”
 “고생은요. 전쟁 막 끝났을 때보다는 훨씬 낫죠.”
 수한은 대전쟁 때 부모님을 잃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계 괴수가 뿜어낸 파괴 광선은 대피소를 가볍게 부숴버렸고, 수한은 간신히 두 동생만 챙겨서 도망칠 수 있었다.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사방이 다 잿더미였고, 동생들을 건사하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일한 보람이 있었다.
 수한은 중학교 중퇴로 끝났지만, 동생들은 대학교에 보낼 수 있었으니까.
 다섯 살 어린 둘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의 법학과에 다녔다. 그보다 한 살 어린 막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했다.
 주임원사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참 대단해. 그래, 어쩔 수 없지. 전역하고 어디 생각하고 있는 곳이라도 있나?”
 “일단 SPT(세라프어 능력 시험)부터 보려고 합니다.”
 “햐, 언제 그 공부까지 했어? 대단하다, 대단해.”
 주임원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훈련도 힘들뿐더러 작전이라도 나갔다 오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공부를 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긴 출세하려면 세라프어를 해야지. 요즘엔 대학 필요 없어. 세라프어가 최고야. 어려워서 문제지.”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모여 이루어진 종족 연합.
 이 연합을 이끄는 것은 단연코 세라프 종족이었다. 이능력자 강제 각성 방법이 그들에 의해 전파되었고, 그들의 강력한 무력에 뭇 행성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 덕에 세라프어가 종족 연합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다.
 세라프어만 잘 해도 먹고 산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했어. 어이쿠, 바쁜 사람 붙잡고 괜히 내가 주책을 떨었네. 가서 일보게.”
 주임원사가 손을 흔들었다.
 하루쯤은 금방 지나갔다.
 수한은 부대 앞에 서서 감회가 서린 눈으로 정문을 바라보았다.
 벌써 5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변이체와 대면했던 일, 피 튀기는 전투,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 모든 일을 해낸 다음 느낀 뿌듯한 성취감…….
 그것들이 이젠 다 과거의 일이라니.
 소대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 중사님! 조심히 가십시오!”
 “꼭 연락 하셔야 됩니다!”
 “모른 척 하시면 안 됩니다! 다음 휴가에 정말 찾아갑니다!”
 “하하, 알았어. 모두 잘 있어!”
 수한은 크게 손을 휘저었다.
 5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냈지만, 짐은 가방 하나가 전부.
 거의 항상 옆에 두었던 총이 없으니 조금 허전했다.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갔다.
 수한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부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전역자들을 위한 군용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사병들.
 경례를 받으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더 이상 군인 신분이 아닌데도, 수 년 간 몸에 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자 전역자 몇 명이 더 들어왔다. 그들까지 자리에 앉자 버스가 붕 하고 출발했다.
 수한은 창밖의 광경을 마음 편히 구경했다.
 이곳은 양강도 백암군.
 원래는 북한에 속해 있던 곳이다. 그러다 2004년의 대전쟁 때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에 따라 개마고원에 들끓는 변이체도 대한민국이 감당하게 되었다.
 그 주축을 담당한 것이 이능력자들과 군대.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한 변이체만 출현했다. 따라서 이능력자들은 개마고원을 떠났고, 육군이 주로 개마고원을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개마고원 출신들은 실전 경험이 매우 풍부했다. 각 공격대에서 지원 요원을 뽑을 때 가장 우대하는 게 개마고원 주둔 사단 출신 부사관들이었다.
 그만큼 위험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경쟁률이 엄청나서 뽑히기도 어려웠다.
 “집에 도착하면 거의 저녁 되겠네.”
 수한이 전역한 부대는 개마고원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집으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만도 1시간은 훌쩍 걸렸다.
 백암군의 영하역에 도착해서도 서울까지는 한 세월. 일단 평양까지 간 다음 환승해야 했다. 그나마 평양에서 서울까지는 고속철도가 다니니 다행이라고 할까.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버스는 덜컹거리며 달렸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 손목시계를 봤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응? 뭐지?”
 시계 아래쪽 피부에 검은색 글자 같은 게 써져 있었다.
 아예 손목시계를 빼고 자세히 살폈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이긴 했지만 알아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레벨 업 도우미 가동 준비 완료.]
 “어? 이건 뭐야?”
 수한은 깜짝 놀랐다.
 아침에 샤워할 때만 해도 이런 건 안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문질렀다. 그런데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글자 크기도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친 걸까?
 이것도 전역 축하 장난인가 보다. 하긴 휴가를 받아 외박하고 들어왔으니 뭔가 장난을 걸 시간도 없었지.
 수한은 픽 웃어 버렸다.
 “하여간 재주도 좋아.”
 그 잠깐 사이 자기 눈을 피해 손목에다 이런 장난을 쳐놓다니…….
 역에 도착하면 비누칠을 박박 해서 지워야겠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라?”
 막상 역에 도착한 뒤, 수한은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비치된 물비누로 벅벅 닦았는데 더 뚜렷해졌다. 거기다 크기도 3배로 커져서 아래팔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문득, 수한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한 앞에 달린 거울에, 그 큰 글자들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직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손목만 보였다.
 어리벙벙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수한은 심각한 얼굴로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기차에 타면서 다른 거울에도 실험을 했다. 슬쩍 손목을 비춰봤는데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비춰 봐도,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글자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수한의 육안 뿐.
 “뭐가 뭔지 원.”
 몸이 허해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문득, 개마고원에서 들이마신 X-0 때문에 변이가 시작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버렸다.
 저번 작전이 끝나자마자 전신 검사를 받았었다. 기계 괴수 안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정밀한 검사였다.
 결과는 완전히 정상.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만 나왔다.
 “레벨 업 도우미라…….”
 수한은 자기도 모르게 손목의 글자를 따라 읽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글자가 하얗게 달아올랐다.
 팟!
 은빛 글자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별처럼 쏟아지며 수한의 눈앞에 정렬했다.
 수한이 눈동자가 도르륵 글자들을 훑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5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92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1 계열 : 살육 계급 : 없음
 근력 13 체력 15 민첩 14 재주 16 감각 13
 초능 1 지능 11 직감 14 의지 15 위엄 12
 여유 점수 : 0 경험치 : 0%
 
 [기술]
 언어 : 한국어 11, 세라프어 3, 영어 5.
 문자 : 한글 10, 세라프 문자 3, 영문 4.
 사격 : 소총 사격 14, 권총 사격 11 산탄 사격 13, 원거리 저격 12.
 격투 : 단검 격투 12, 맨손 격투 11, 총검 격투 13.
 함정 : 함정 설치 12, 화약 함정 12.
 생활 : 삽질 11, 청소 8, 빨래 4.
 여유 점수 : 0
 
 [초능]
 [40] [80] [120]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0
 
 [장비]
 머리 : 국군 베레모(일반)
 상체 : 전투복 상의(일반)
 다리 : 전투복 하의(일반)
 손목 : 다기능 손목시계(일반)
 허리 : 전투복 허리띠(일반)
 신발 : 전투화(일반)
 
 뭐냐 이거?
 수한은 눈을 비비려고 했다.
 눈으로 가져가던 두 손이 정지했다.
 분명 눈을 감았는데도 은빛 글자들이 검은 시야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떴다. 글자가 보인다.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글자가 보였다.
 “이런 미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것들은 뭐냐?
 자세히 살펴보니, 대전쟁 전 유행했던 RPG의 정보창을 닮았다. 레벨이니 경험치니 하는 게 그렇고, 장비창과 기술창 같은 것도 그러했다.
 시야 전체를 글자들이 채우고 있으니 영 신경에 거슬렸다. 수한은 무심코 손으로 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글자들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수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이 접듯 접자, 글자들이 그대로 겹쳐졌다. 다시 펴는 것도, 축소시키는 것도, 확대시키는 것도, 창별로 분할하는 것도 손짓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짓을 해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몇 번 접자 거의 안 보일 정도가 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수한은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레벨 업 도우미?”
 눈앞에 떠 있던 글자들이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레벨 업 도우미를 외칠 때마다 글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능을 각성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버렸다.
 이능 적성 검사에서 각성 확률 1억 분의 1 이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 낮은 가능성을 뚫고 각성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왔다.
 수한은 잠시 의문을 묻어두기로 했다.
 나중에 천천히 알아봐도 될 일이었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겠나.
 일단 평양에 도착하자, 서울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때는 두 도시를 오가는데 수십 년이 걸렸지만, 고속철도가 개통된 지금은 1시간이면 충분했다.
 개성을 거쳐 서울 용산역에 도착한 다음, 지하철을 탔다.
 수한의 집은 서울 외곽, 지하철역에서도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집에 들어서자 동생들이 뛰어나왔다.
 “형!”
 “하하하, 잘 있었어?”
 수한은 걸핏하면 휴가를 반납하고 수당을 타먹었다. 대전쟁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많은 일이 있었고, 수한의 근무지가 개마고원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몇 달 만에 보는 동생들.
 수한은 둘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저녁에는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오랜만에 봤더니 할 말이 많고도 많았다.
 “공부는 잘되고 있니?”
 “응. 이번 모의고사에서 11111 나왔어.”
 “11111? 그게 뭐야?”
 “형은 그것도 몰라? 5개 과목 전부 1등급이라구.”
 수한은 막내 기한의 말에 허허 웃었다.
 “그게 그런 말이었어? 언제 수능을 본 적이 있어야 알지.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명한이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다 머리가 좋나 봐. 명한이도 그렇고, 너도 공부 잘하는 거 보면.”
 “형도 공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명한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아? 뭐, 나도 이제부턴 공부할 거야. 대학교는 안 가도 세라프어는 필요하겠더라. 이번 달 SPT도 접수해놨어.”
 “SPT? 세라프어는 언제 공부했어?”
 “그냥 틈틈이 했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밤이 늦자 자리를 치웠다. 셋이서 먹은 단출한 차림이라 금방 치울 수 있었다.
 수한은 거실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기한이 같이 자자고 했지만 수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험생이니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명한이 자기 방에서 자라고 했지만 됐다고 잘 자고 등교나 하라고 했다.
 다음날.
 수한은 몸에 밴 대로 6시에 칼 같이 일어났다.
 동생들은 모두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수한은 냉장고와 창고를 뒤져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군대 가기 전만 해도 삼시세끼 다 준비했던 수한이었다.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이고, 어제 먹고 남은 삼겹살을 고추장에 버무려 볶았다.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들을 깔자 맛깔나 보이는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어? 형. 벌써 일어났어?”
 “군대에선 항상 6시에 일어나잖아. 그래서 빨리 일어났지.”
 “내가 아침 차리려고 했는데…….”
 수험생인 기한까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둘 다 입맛이 없는지 깨작깨작 밥을 비웠다. 수한이 밥을 먹성 좋게 퍼먹다시피 하는 것과는 참 대조적이었다.
 기한이 먼저 일어났다.
 “형, 나 먼저 가볼게.”
 “그래, 열심히 해라.”
 “형, 다 먹었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너 학교까지 가려면 시간 오래 걸린다며. 그냥 먼저 가. 가서 강의 들을 준비해야지.”
 수한은 억지로 명한의 등을 떠밀었다.
 셋이 사는 집은 너무 외곽에 있었다. 명한이 학교까지 가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둘을 내보낸 후 청소를 시작했다.
 치운다고 치운 것 같긴 한데 여기저기 좀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수한은 쓸고 닦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후, 좀 깨끗해졌다.”
 대청소를 하고 났더니 벌써 점심시간.
 수한은 김치와 김에다 간단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적당한 가방 하나를 골라 책을 몇 권 넣었다.
 세라프어와 문자에 대한 책들.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길을 나섰다. 다세대 주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용 도서관이 하나 있어서, 거기 가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집에서 공부하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밤에는 그나마 조용하지만, 낮에는 온갖 소음이 집 안으로 파고들었다.
 주중인데도 도서관은 가득 차 있었다. 열람실 좌석마다 사람들이 앉아 공부 중이었다. 대충 살펴보니 수한처럼 세라프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공무원 시험이나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들 열심이네.’
 수한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소리가 안 나게 조심조심 가방을 내려놓은 뒤 책을 꺼냈다.
 그리고 공부.
 군대 있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했던 수한이었다. 아예 멍석까지 깔아 놓았으니 집중하는 일만 남았다.
 수한은 엉덩이 한 번 들지 않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글자를 익히고, 단어를 외우고, 이어폰을 이용해 발음을 들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수험생인 기한은 늦게 들어오겠지만, 명한은 슬슬 들어올 때가 됐다. 대학생이라 강의가 빨리 끝날 테고, 중간고사는 진즉 끝났으니까.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수한은 얼른 저녁을 차렸다.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 목살과 묵은지로 명한이 좋아하는 돼지김치찌개를 끓였다.
 하지만 밤이 늦도록 명한이 귀가하지 않았다.
 수한은 속으로 걱정을 하며 먼저 밥을 먹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거실에 앉아 세라프어 단어집을 꺼내들었다.
 명한은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앉아 있던 수한과 딱 눈이 마주쳤다.
 명한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아, 형? 안자고 있었어?”
 “아직 11시밖에 안 됐잖아. 잘 놀다 왔니?”
 “놀기는 무슨? 도서관 갔다 왔어.”
 명한은 얼버무리려고 들었지만, 수한은 코끝에 스치는 옅은 알코올 향을 놓치지 않았다.
 픽 웃어버렸다.
 “야, 술 마셨으면 술 마셨다고 하면 되지 뭘 거짓말까지 하고 그러냐?”
 “그게…… 형한테 미안해서…….”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공부할 때 열심히 하면 되지. 중간고사 얼마 전에 끝났다면서.”
 “으응. 난 들어갈게.”
 명한은 잽싸게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민망했는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뭔가 부스럭 거리고, 누군가와 전화하는지 작은 말소리가 나오다 그것도 끊어졌다.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명한의 태도가 어째 이상했다.
 사실 어제부터 그랬다.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 거리를 두는 느낌이라고 할까.
 수한은 10년째 아빠처럼 엄마처럼 명한을 키웠다. 왜 그런 것인지 대번에 눈치 챘다.
 ‘여자 친구 생겼나?’
 괜히 넘겨짚는 걸까?
 하지만 수한은 어딜 가나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했다. 남들의 감정이 변하는 것을 귀신 같이 알아차리곤 했다. 하물며 동생의 변화를 모를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 기한이 돌아오자, 같이 방으로 들어가 슬쩍 떠보았다.
 기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형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알게 됐어. 누구야?”
 “형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알게 될 건데? 뭐하는 사람이야?”
 “에이, 그냥 형한테 직접 들어. 내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이 녀석이…….”
 수한은 눈을 부라렸다.
 어쩌겠나. 자기가 말하기 싫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얘기는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게 낫다. 그런 생각에 수한도 굳이 닦달하진 않았다.
 간섭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사실 이건 축하할 일이지, 꾸중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임신한 여자 친구를 데려오지만 않는다면,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명한도 이미 성인.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때였다.
 다음날.
 어김없이 도서관을 찾았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끈했다. 수한도 그들 틈에 섞여 책을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나선 참이었다. 점심은 도서관 매점에서 김밥 한 줄만 사먹었다. 군대에서 마음껏 퍼먹던 위장이라 배가 좀 고팠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으아아, 어렵다!”
 수한은 도서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폈다.
 외계 종족의 언어라 무척 어려웠다. 하루 종일 붙잡고 있지만,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고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빼먹었다.
 복도에는 수한처럼 잠시 쉬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기저기서 담소를 나누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벼운 게임을 했다.
 ‘레벨 업 도우미라고 했었지?’
 그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기차 안에서 본 레벨 업 도우미.
 공부를 한다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난 김에 레벨 업 도우미를 실행했다. 왼쪽 손목이 환하게 빛나며, 수한의 눈앞에 빼곡히 글자들이 나타났다.
 별 기대하지 않고 실행한 참이었다.
 글자들을 훑어본 수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레벨이 올랐다!’
 그제는 분명 1이었는데, 지금은 2가 되었다. 경험치도 0%가 아니라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능력, 기술, 초능 이렇게 3개의 창에 여유 점수가 1씩 생겼다. 초능창은 여전히 여유 점수 말고는 아무 항목이 없지만, 능력과 기술창의 갖가지 항목들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듯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수한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글자들을 보았다.
 이걸 누르면 정말로 능력치가 올라가고, 그게 수한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까?
 알 수 없는 일.
 수한은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장 필요한 것을 골랐다.
 세라프 문자.
 세라프 문자는 기본적으로 37개의 표음 문자와 1만 개의 표의 문자를 익혀야 한다. 여기에 더해 49개의 조합 문자를 자유자재로 써야 제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다.
 기술 점수가 1개 더 있다면 세라프어까지 올렸겠지만, 일단 문자부터 올려보기로 했다.
 세라프 문자가 3에서 4로 올라갔다.
 하지만 수한이 실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픽 웃으며,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쉴 만큼 쉬었겠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책이 너무 쉬웠다. 세라프 문자 초급편이 그냥 술술 넘어갔다. 흡사 한글을 다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을 완전히 끝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끙끙 앓았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다른 책들도 그랬다.
 난이도가 비슷한 책들은 단숨에 해치울 수 있었다. 딱 1권 가져온 중급 책을 펼치니 눈앞이 캄캄해지긴 했지만.
 [붸↗이르↘쿠↓시안→쟈↑졔아∽]
 듣기는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괴상하게 들렸다.
 세라프어는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었다. 지구인의 신체 구조 상 발음이 거의 불가능한 음도 다수 존재했다. 덕분에 익히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수한은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며칠 뒤, 끝내 3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하하…….”
 수한은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들리기 시작한다.
 그저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의미가 파악된다.
 입을 벌려 아는 단어를 내뱉었다.
 [붸↗이르↘쿠↓쟈↑]
 안녕하세요.
 [샤르↘비↑호∽셍귀↗]
 좋은 아침입니다.
 발음이 된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와 →, ↓가 혀 안에서 꼬이기만 할 뿐 발음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라프어를 4레벨로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입이 터진 것이다.
 우연이 아니다.
 수한은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레벨 업 도우미.
 이건…… 진짜였다.
 지리산
 
 SPT는 5월 17일 일요일에 치러진다.
 난이도가 총 9개로 나뉘는데, 수한이 응시한 난이도는 7급이었다.
 기초적인 독해와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지 보는 시험.
 이것도 굉장히 어려웠다. 수한도 자신이 합격할 거라고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레벨 업 도우미를 얻은 것은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수한은 정신없이 공부에 골몰했다. 그 결과, 본인의 레벨을 5까지 올리고 세라프어와 세라프 문자 기술 레벨을 각각 5까지 찍을 수 있었다.
 덕분에 무난히 SPT 7급 시험을 치렀다.
 “형! 시험은 잘 봤어?”
 “응. 합격할 것 같다.”
 “우와! 진짜? 그럼 축하합니다가 세라프어로 뭐야?”
 [쟈∽자→졔↗]
 “쟈자제? 어휴, 너무 어렵다.”
 “시험 결과는 언제 나온대?”
 “2주 후에 나온대. 전부 객관식이라 그래도 좀 빨리 나오는 것 같아.”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수한은 동생들과 함께 시험장 근처 중식당에 들어갔다.
 자장면 세 그릇에 탕수육 작은 걸 시켜 같이 먹었다. 맛은 평범했지만, 동생들과 같이 먹으니 무척 각별하게 느껴졌다.
 기한이 자장 소스를 입에 묻히곤 씩 웃었다.
 “옛날 생각난다, 그지?”
 “얌마, 입에 묻은 거나 닦고 말해.”
 명한이 화장지를 기한에게 건넸다. 기한은 그걸 받아 입을 닦더니,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헤헤 웃었다.
 수한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자장면을 먹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어딜 가나 폐허뿐이었다. 그 전에 심심하면 먹던 삼겹살, 치킨, 피자, 탕수육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정부에서 배급한 묽은 죽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1년 만에 자장면 한 그릇을 셋이서 나눠먹었다.
 그때 그 자장면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명한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빠졌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기한이 입을 삐죽였다.
 “쳇, 이런 날에는 같이 좀 있지.”
 “명한이도 자기 인생이 있는 거니까. 너는 공부 안 해도 돼?”
 “고3이라고 매일 공부만 해선 안 돼. 조금씩 쉬어줘야지.”
 “하긴 그것도 그렇다.”
 집으로 돌아온 뒤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 웃었다. 명한이 돌아온 다음 불을 끄고 셋 다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를 호출했다.
 레벨 5.
 처음과 비교하여 크게 변화가 없는 4개의 창.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레벨 업 도우미 덕분에 SPT 7급은 땄다. 수한이 느끼기에는 일반인의 한계라는 4급까지는 무난하게 딸 것 같았다. 계속 공부를 한다면 원어민 수준인 1급과 2급까지도 가능하겠고.
 기왕이면 1급이 좋겠다.
 지구에선 아예 치러지지도 않는 시험이니, 세라프 종족의 고향 행성까지 가서 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세라프어 마스터가 수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세라프어는 어디까지나 수단.
 수한의 목표는 간단했다.
 동생들을 잘 건사하는 것.
 부모님이 기계 괴수에게 살해당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한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진 잘 했어.’
 극도로 암울하고 힘들었던 청소년기.
 그래도 군대를 가고 나선 형편이 폈다. 부사관 가족들을 위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하다 돈을 모아 이곳으로 이사 왔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도 월급과 수당을 악착같이 모아 해결했으니까.
 덕분에 둘 다 번듯하게 컸다. 이제 조만간 수한의 품을 떠나려고 할 것이다.
 명한은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나.
 “후아…….”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동안 목표로 했던 게 거의 해결되어서일까. 복잡 미묘한 감정이 수한의 가슴으로 기어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해 볼까?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의 네 개 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사실 수한의 꿈은 따로 있었다.
 이능력자.
 무수히 많은 외계 행성을 누비면서, 잔존한 기계 괴수들을 쓰러뜨리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들.
 기계 괴수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이능력자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그들에 대한 동경심이 자리 잡은 것이다.
 사실 굳이 공격대 취직에 가닥을 잡은 것도, 그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이능 적성 평가 후 접을 수밖에 없던 꿈.
 레벨 업 도우미를 이용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수한은 능력창만 따로 떼어냈다.
 두 가지 항목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능 1, 여유 점수 4.
 능력창의 10가지 항목 중 초능이 유독 낮다. 다른 것은 모두 10 이상인데도, 초능 항목은 겨우 1에 불과하지 않나.
 어쩌면 초능이 곧 이능을 뜻하는 게 아닐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수한의 이능 적성, 그리고 레벨 업 도우미가 보여주는 항목 중 홀로 낮은 초능…….
 이걸 10, 20으로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좋아, 해보자.”
 어차피 잃을 건 없었다.
 당장 생각하기엔 지능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이능력자에 대한 동경심이 수한의 마음을 움직였다.
 10년 전이나 5년 전이었으면 선택이 달랐겠지만, 최근 얻은 여유 때문에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4개의 여유 점수를 모두 초능에 때려 박았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수한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세라프어, 세라프 문자 때도 그랬다. 본인이 자각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관련 행동을 했을 때 알게 됐다.
 ‘최소한 이능 적성이 올라가긴 했을 거야.’
 일단 10이나 20을 찍고 적성 검사를 받아보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수한은 인근 공원으로 나왔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으로는 경험치가 슬슬 늦게 오르던 참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훅! 훅!”
 레벨 업 도우미를 아예 실행시켜 놓았다.
 능력창만 남기고 3개는 접어놓은 후, 능력창에서도 경험치 칸만 따로 떼어 시야 한쪽에 걸었다.
 계속 운동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경험치 상승을 확인했다.
 달리기, 걷기, 스쿼트, 윗몸 일으키기, 턱걸이, 팔굽혀 펴기, 줄넘기 등등.
 어려운 운동일수록, 더 집중할수록 경험치 상승이 높았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치 상승이 더 높은 것은 아니었다. 둘 다 비슷했다.
 ‘이대로는 레벨 올리는 게 한 세월이겠는데?’
 며칠 지나면 6레벨이 되겠지만, 그 위로 올라가려면 공부나 운동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었다.
 수한이 계산해보니, 한두 달 마음먹고 공부하거나 운동을 하면 10레벨까지는 올라가겠다. 그런데 10레벨이 되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때쯤 되면 SPT 결과도 나올 테고, 각 공격대들이 3분기 채용 공고를 낼 터였다. 마음 편히 운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세라프어 공부를 더 해볼까?
 아냐, 뭔가 레벨을 올리기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후!”
 수한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푸른 하늘이 환하게 펼쳐져 있었다.
 레벨 업 도우미 생각을 자꾸 해서일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보다 경험치가 느리게 올라갔다.
 급할 건 없지만, 허송세월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하는데…….
 수한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공원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가볍게 뛰는 사람, 공원의 운동 기구를 이용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사람…….
 잠깐만, 게임?
 한 가지 영감이 번개 치듯 수한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예전에 했던 RPG에서, 레벨을 어떻게 올렸더라?
 간단하다.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얻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경험치로 레벨을 올렸다.
 일상생활을 해도 경험치를 얻는 게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몬스터 사냥이 가장 중요했다. 장비 제작이나 공부, 수련으로 얻는 경험치는 사냥으로 얻는 것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 사냥!
 그걸 지금 수한의 상황에 대입하면 뭐가 될까?
 변이체 사냥이 해당한다. 비록 전역은 했어도, 꼭 군대에 들어가야만 변이체를 사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장 지리산이나 마라도 같은 곳에선 변이체 사냥꾼들이 자리를 잡고 변이체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비록 E급이나 F급의 하급 변이체에 불과하지만, 그 시체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변이체 사냥이라…….”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군대에 있을 때처럼 믿을 만한 전우들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다음날 아침, 수한은 두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 이번 주말부터 지리산 다녀올 거야. 한 달 정도 있다가 올 거니까, 나 없어도 밥 잘 챙겨 먹어.”
 “지리산? 위험하게 거긴 왜?”
 “설마 천왕봉 가는 건 아니지?”
 “천왕봉 가는 거 맞아. 3분기 채용 공고 나기 전에 사냥이나 좀 해보려고.”
 “사냥꾼? 위험하잖아. 저축 벌써 떨어졌어?”
 “그런 거 아냐.”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레벨 업 도우미에 대해 설명할까 했지만 그건 시기상조였다. 말로 설명해봐야 믿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능 하나는 각성해서 보여줘야 믿겠지.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얘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리산 사냥꾼 중에 군대 선임 한 분이 계셔. 오랜만에 한 번 뵙고 노하우도 배우려고 그래. 어차피 1달 정도는 시간이 있잖아?”
 “그렇게 하면 수습 기간이라고 돈도 잘 안 준다던데.”
 “돈 보고 하는 거 아니니까. 어차피 사냥꾼은 사양 산업이라서 지금 시작하면 안 좋아.”
 “형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도 전화는 꼭 매일 해야 돼?”
 “바쁜 수험생한테 무슨 전화냐? 문자 남길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명한이 너도 너무 걱정하진 말고.”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군대 갈 때도 그렇고, 형은 너무 혼자 다 결정하려고 해.”
 명한이가 툴툴거렸다.
 수한은 겨우 명한이를 달랬다. 항상 조심하고, 선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에야 허락 아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지리산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아무 무기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오랜 군 생활로 단련되었어도, 맨몸으로 변이체와 싸우는 건 바보짓이다.
 수한은 준비할 것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사냥꾼 허가증, 무기와 방어구 일체, 선임과 연락.
 이 정도.
 대한민국은 총포 규제 국가지만 변이체 사냥꾼은 예외였다.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가방에 넣거나 상자에 넣으면 충분히 소지할 수 있었다.
 전부 다 처리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수한은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집을 나섰다.
 집 앞의 은행에 들렀다.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약 3천만 원 정도.
 “적네…….”
 수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년에는 기한이도 대학교에 가야 한다.
 요즘 학비가 장난이 아니어서, 동생 둘을 합치면 1년에 거의 2천만 원이 넘어갔다.
 생활비 어쩌고 하면 내년에는 저축이 다 동이 나는 상황.
 지리산에 가서 경험치만 벌 게 아니라, 돈도 어느 정도는 벌어둬야겠다.
 일단 용산역으로 갔다.
 용산역 앞에는 수호자 연맹 지부가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 지부 중 규모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
 이능력자들은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이능 관련 서비스는 여의도에 있는 지부에서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신 사냥꾼 관련 업무를 이곳에서 처리해서, 변이체 사냥꾼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수한은 허가증 발급 창구로 가 서류를 작성했다.
 온갖 종류의 서류가 필요했다.
 사냥 허가 신청서, 위험 구역 진입 신청서, 도검 및 총포 소지 허가 신청서, 개인정보 조회 동의서, 공공질서 유지 동의서, 사망 시 책임 서약서, 이력서, 병적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등.
 수한은 오전 내내 서류를 썼다. 그나마 국가 행정 서류도 여기서 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 됐습니다. 부사관 출신이시니 처리는 금방 될 겁니다. 모레 정도에 찾으러 오세요. 허가가 나지 않으면 입력하신 전화번호를 통해 연락이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때까진 할 일이 없었다.
 수한은 시민 공원으로 갔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한 뒤, 해가 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틀이 지나 레벨 6이 되었을 때 다시 용산역에 들렀다.
 낯이 익은 직원이 수한에게 허가증을 내밀었다.
 “사냥꾼 허가증이에요. 예전에는 1급부터 3급까지 나눠서 발급했는데, 요즘엔 그럴 필요가 없어서 단일 등급으로만 발부해요. 참, 이걸로는 대한민국 영토 내만 출입할 수 있는 거 아시죠? 다른 나라 변이체들은 잡으시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허가증을 지갑 안에 잘 갈무리했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지부와 연결된 총포상이었다.
 수호자 연맹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
 총포상이라곤 하지만 화약 무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무기와 방어구를 팔았다. 변이체 탐지 장비 등 전자 기기도 마련되어 있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종업원이 발랄하게 수한을 맞이했다.
 다소 어색한 발음.
 수한은 종업원을 보고 멈칫했다.
 고양이 인간이었다. 영락없이 고양이를 닮은 얼굴과, 털이 복슬복슬 난 양손이 수한의 시선을 붙들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세로로 그어진 눈동자가 수한의 움직임을 쫓고, 기다란 황색 꼬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외계인.
 수한은 종업원의 수염이 유난히 짧다는 것과, 눈의 흰자위에 붉은 점이 오돌토돌하게 박혀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신기한 일이다.
 한국어를 다 할 줄 알다니…….
 그러나 곧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업원이 말을 할 때마다 목에 찬 붉은 목걸이가 빛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뭔가 통역 관련 이능이 걸린 목걸이인가 보다.
 내심 신기하게 생각하며, 슬쩍 아는 척을 했다.
 “케르베스 태생이시네요? 멀리서 오셨습니다.”
 “어머? 알아보시네요. 지구인들은 저희랑 지미안인, 도도르인을 잘 구별하지 못하던데요.”
 “전 외계 행성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런데 지구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종족 연합에서 지구는 변방 중에 변방인데요.”
 “여행 왔어요. 변방이라곤 해도 기계 괴수가 모두 잡혀서 안전한 곳은 얼마 없잖아요? 기왕 온 김에 좀 오래 있다 가려고요.”
 지금은 아르바이트 중이라고 했다. 계획보다 체류가 길어져서 돈이 부족해서라고 하던가.
 대개 외계인들은 지구에 오래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이 심하여 건강에도 좋지 않고, 특유의 기계 문명이 다른 행성과 사뭇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온다고 해도 초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에 잠깐 있다가 떠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머무르다니, 참 특이한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총과 소총을 한 자루씩 사려고 하는데, 추천하실 게 있습니까?”
 “저는 총은 잘 몰라요. 권총이랑 소총은 저쪽에 많이 있는데 직접 보시는 게 어때요?”
 “아하,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고 룬 문자 단검 사시는 건 어때요? 좋은 게 하나 들어왔는데. 할인도 하고 있어요.”
 룬 문자 단검?
 귀가 솔깃했다.
 C급 이상의 변이체는 특수한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기로는 공격이 불가능한데, 룬 문자 단검은 그렇지가 않았다.
 세라프 종족의 문자를 새기고, 거기에 힘을 불어넣어 만든 단검.
 일반인이 C급 이상의 변이체를 공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의 하나였다.
 하긴 일반인이 단검 하나 들고 그 정도 상급 변이체와 대치할 정도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예산이 허락하면 구매해놓는 게 좋았다.
 수한은 종업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비싸지 않습니까?”
 “얼마 안 해요. 5백만 원 정도?”
 “그렇게 싸요? 어디서 만들었는데요?”
 “어디…… [Made in USA]라고 적혀 있네요.”
 “그래요? 어째 싸다 했더니.”
 수한은 혀를 찼다.
 지구의 이능력 물품은 그 질이 외계 행성에 비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능력 물품 생산 역사가 무척 짧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
 종업원이 수한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드워프제랑 엘프제도 있는데 그걸로 드릴까요? 수명도 영구적이고, 위력도 세 배 정도는 더 강한데요.”
 “아뇨. 됐습니다. 미국제로 구입하죠.”
 외계 행성과 지구는 차원문으로 연결된다. 차원문은 통과시키는 물건의 무게에 따라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야 열 수 있었다. 종업원이 권하는 외계 행성 제품을 사려면 지구 제품의 수십 배를 줘야 할 것이다.
 수한은 소총에 착검이 가능한 형태로 하나 골랐다.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지구인들은 이상하네요. 좋은 장비는 목숨과도 같은데 왜 그걸 아끼죠?”
 종업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은 웃고 말았다.
 모험을 즐기는 케르베스인들은 어쩔지 모르나, 수한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단검을 쓸 정도로 접근을 허용하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효율을 따지자면 총이나 방어구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총은 이쪽에 있어요.”
 종업원은 수한을 안내해 준 뒤 계산대로 돌아갔다.
 수한은 진열된 총을 살폈다.
 권총, 소총, 기관단총, 기관총, 산탄총, 저격총, 심지어 유탄 발사기까지 진열이 되어 있었다.
 오직 사냥꾼에게만 판매하는 화기들.
 수한은 군대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것을 골랐다.
 미국제 45구경 권총. 대한민국 제식 소총.
 각각 탄창 세 개와 총알을 박스 단위로 구입했다. 이 정도면 한동안 넉넉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조끼 형태의 강화 섬유 보호복과 휴대용 변이체 탐지기도 샀다. 그 밖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좀 골라서 한꺼번에 계산대에 가져갔다.
 “1015만원입니다. 신분증과 사냥꾼 허가증을 제시해주세요.”
 역시 비쌌다.
 수한은 두 말 하지 않고 값을 치렀다.
 수한은 미리 가져온 가방에 무기들을 쑤셔 넣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짊어진 후, 상점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고양이 아가씨가 수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능숙한 세라프어.
 수한도 씩 웃으며 세라프어로 답례했다.
 [네, 아가씨도 즐거운 여행 되세요.]
 동생들에겐 오늘 출발할 거라고 얘기해놓은 뒤였다.
 수한은 동서울 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약 4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백무동 터미널에서 산장까지 가는 셔틀 버스가 있었다. 수한은 사냥꾼 허가증을 제시하고 버스에 탔다.
 버스는 한가했다.
 늙으수레한 사내들이 곳곳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가 하면, 각자 소지한 총기를 손질했다.
 수한이 들어오자 몇 명이 눈길을 주었다.
 그것도 잠시. 금방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알 것 없다는 태도.
 무관심이 절절이 묻어나왔다. 수한도 그들을 무시하고 적당히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는 산 속의 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변이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을 피해 가느라 빙빙 돌아가긴 했지만, 도로 자체는 잘 닦여 있었다.
 점심 때 쯤 천왕봉 인근의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이라고 해서 건물 하나 덩그러니 있을 줄 알았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콘크리트 담이 빙 둘러 쳐져 있고, 5층 높이의 건물들이 10채 가까이 들어서 있었다. 소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산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 수한아!”
 버스에서 내리자, 누군가 수한을 불렀다.
 덩치가 산처럼 크고 얼굴이 네모난 남자. 얼굴에 털이 많이 나 꼭 곰을 보는 듯 했다.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자동 산탄총을 오른쪽 어깨에 턱 하니 걸쳐 놓아, 언뜻 보기에도 강인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춘섭.
 수한이 막 개마고원에 배치되었을 때, 이미 부사관 말년으로 전역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다.
 미리 전화를 한 까닭에 마중 나왔나 보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한 중사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잘 있었지. 그리고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중사님이냐? 그냥 형이라고 불러.”
 “하하, 알겠습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둘은 산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앉기가 무섭게, 춘섭이 입을 열었다.
 “한 달 정도 있을 거라고?”
 “예. 7월에는 채용 공고가 나올 테니 서울에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아직 사냥꾼 허가증을 딴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렇게 짧게 같이 하는 거면 배당을 많이 줄 수는 없어.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안 줄 수도 없으니까, 반 몫으로 쳐주도록 하지. 우리 사냥패가 지금 네 명인데, 대장인 나는 두 몫, 정보 물어오는 김 씨가 한 몫 반을 받으니까 넌 우리 패 수익의 1/12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돼. 수익은 매일 투명하게 공개하고, 1달에 1번 정산하는 게 원칙이지만 원하면 아무 때나 정산해 줄 거야.”
 “생각보다 상당하네요.”
 “당연하지! 원래 너 같은 조건이면 반의 반 몫만 쳐주는 게 관행이야. 반 몫이면 정말 많이 쳐주는 거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래도 막상 정산해 놓고 보면 큰돈은 아니야. 워낙 떼가는 곳이 많아서…….”
 대충 들어보니 부산물 처리 명목으로 산장에서 20%를 가져간다고 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와 장비 수리비용, 총알 값을 대기도 버겁다던가.
 춘섭이 푸념을 했다.
 “어떨 때는 그냥 공격대 취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니까? 어휴, 그래도 사냥 시작할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계속 변이체가 줄어드니 원…….”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수한이 서울에서 산장까지 오는 동안 하루가 다 간 것이다.
 산장에서 잔 뒤, 새벽 일찍 밖으로 나갔다.
 5월 20일, 봄이었지만 지리산 위의 새벽은 상당히 싸늘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알선소 앞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 중 하나가 수한을 보고 툴툴거렸다.
 “뭐야, 새파란 애송이잖아?”
 “개마고원에서 부사관으로 전역했대. 총은 그럭저럭 쏠 거야.”
 “호, 그래? 그럼 도망치진 않겠네.”
 통성명을 나누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좋겠지만, 지형이 험하고 변이체가 자주 출현하니 그러기도 힘들었다. 그냥 걸어가는 게 상수였다.
 춘섭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오늘 목표 12마리입니다. 모두 E급 송충이 종류이고 한꺼번에 뭉쳐 있긴 한데, 거리는 좀 떨어져 있으니까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
 “12마리? 김 씨가 한 건 했네?”
 “자, 다른 패거리한테 뺏기기 전에 어서 출발하지요.”
 “신참! 신참은 우리 뒤만 따라와. 참, 이거 챙기고.”
 박 씨라는 자가 커다란 가방을 수한에게 내밀었다.
 뭘로 만들었는지 시꺼멓고 끈적끈적한 가방이었다. 시체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한은 질색하면서도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변이체 가방이야. 잡으면 잡는 대로 여기 다 쑤셔 넣으면 돼. 안에 보면 칸막이 있지? 그걸로 1마리씩 구분해 놓으면 돼. 최대 20마리까지 들어가니까 잘 쑤셔 넣어.”
 “알겠습니다.”
 이제 보니 신참들은 짐꾼 노릇을 하나 보다.
 수한은 대충 가방을 짊어졌다. 얼굴이 구겨지자,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곤 낄낄 웃었다.
 변이체들이 있다는 곳까진 세 시간이 걸렸다.
 개마고원 작전 당시를 생각한 수한은 잔뜩 긴장했다. 쉬지 않고 탐지기를 살피고, 소총을 앞장 세웠다.
 반면 다른 사냥꾼들은 태평했다.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서로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나마 총이라도 잘 잡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1킬로미터 전방이다.”
 “탐지기에도 걸리는데?”
 “좋아, 이제 조심하자고.”
 사냥꾼들이 몸을 낮췄다.
 이제까지의 방만한 모습은 없었다.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이 튀어나오고, 치켜 올린 총구가 예리하게 빛났다.
 수한도 소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조정간을 단발로 조정하고, 총구를 살짝 올린 채 앞쪽을 살폈다.
 탐지기에 표시된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조금 더 접근하자, 변이체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몸통 크기의 송충이들이었다. 몸이 단단한 각질에 싸여 있고, 커다란 입이 머리에 달려 있었다. 눈은 없고, 더듬이로 사방을 더듬었다.
 크게 자란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몸 색깔이 나무와 비슷했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에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춘섭이 소리를 죽여 말했다.
 “껍질이 단단하겠는데?”
 “그래도 송충이니까 속도가 빠르진 않을 거야. 원거리에서 처리하자고.”
 “좋아. 준비해. 3백까지 접근한다.”
 수한은 눈치를 보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적당히 나무 뒤에 숨은 채,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저격수로 뽑혀 갈 정도는 아니었어도 만발(모두 명중시키는 것)을 곧잘 하던 수한이었다. 3백 미터면 조금 멀긴 해도 충분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냥꾼들도 소총을 변이체들에게 겨누었다. 아예 저격총을 드는 사냥꾼도 있었다.
 춘섭이 짧게 외쳤다.
 “쏴!”
 탕! 탕탕!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변이체들이 꿈틀거리며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몸을 용수철처럼 통통 튕기며 사냥꾼들에게 다가왔다.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꽂아 넣었다. 그때마다 녹색 체액이 픽픽 튀었다. 20발 들이 1개 탄창을 다 비우는 동안, 최소한 10발 가까이 맞춘 것 같았다.
 ‘별로 못 맞췄네.’
 영점을 미리 맞춰 놓았지만, 며칠 만에 쏴서 그런지 평소보다 잘 안 맞은 것 같았다.
 그래도 삽질을 한 건 아니었다.
 한 번 맞출 때마다 경험치가 쑥쑥 올라갔다. 12마리 모두가 쓰러졌을 때는 레벨이 2가 올라 8레벨이 되었다.
 수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늘어난 여유 점수는 일단 보류해 두었다. 6레벨 때도 그러했으니, 능력 점수 3개와 기술 점수 3개가 남아 있었다.
 “좋아. 다 죽었어. 생체 파장 0이야.”
 “그래? 확인해보자. 혹시 주변에 감지 안 되는 놈 있을지 모르니 모두 조심해.”
 사냥꾼들은 변이체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아직 살아 있는 놈이 몇 있었다. 수한이 자청해서 권총으로 머리를 날렸다. 그때마다 경험치가 쭉쭉 상승했다.
 “가방에 담아. 돌아가자.”
 “오늘은 쏠쏠하겠는데?”
 “12마리나 되고, 산탄총이나 폭탄도 안 썼으니까. 오늘은 기대해 볼 만 하겠어.”
 사냥꾼들이 떠드는 사이, 수한은 변이체 시체를 가방에 차례차례 담았다.
 가방에 다 들어갈까 싶었는데, 힘껏 눌러 담자 12개 전부가 들어갔다. 대신 가방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수한보다 거의 2배 이상 커졌다.
 이걸 혼자 들고 가라고?
 사냥꾼들을 보았지만 자기들끼리 낄낄 대고만 있었다. 별 수 없이 수한 혼자 산장까지 가방을 들고 가야 했다.
 산장에 도착하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팔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게 내일 근육통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가방을 넘겨줬던 박 씨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산장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라도 받아라. 아가씨는 없지만 그대로 자면 내일 죽어나갈 거다.”
 “하하, 걱정 마세요. 저 이래 봬도 강골입니다.”
 “쯧, 난 말 해줬다. 내일 죽는 소리 해도 안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박 씨는 혀를 차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 국군 도수 체조를 반복하고, 산장 한쪽에 있는 운동 기구를 이용했다. 남는 시간 동안 소총의 영점도 맞췄다.
 그렇게 하고 잤는데도, 다음날이 되자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아으으으, 죽겠다.”
 끙끙 앓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 사냥 목표는 E급 변이체 8마리였다.
 어제보단 확실히 나았다. 덩치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수가 겨우 절반 남짓이었으니까.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산장까지 가방을 가져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방을 산장 직원들에게 내밀었다. 막 땀을 닦는데, 수한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항상 활성화시켜놓고 다니는 레벨 업 도우미.
 9 레벨이 된 것은 진작 확인했었는데, 그 아래 보이는 항목들에 조금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근력이 13에서 14로, 체력이 15에서 16으로 올랐다.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도 능력치가 올라가는 모양.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짐을 더 적게 들어서였을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뿐했다. 옅은 피로감만 좀 남아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수한은 큰 소리로 인사하며 합류했다.
 사냥꾼들이 팔팔한 수한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허, 완전히 적응 했나 본데?”
 “겨우 이틀 만에?”
 “대장이 괜히 반 몫 챙겨준다고 한 게 아니네. 솔직히 어제 도망갈 줄 알았는데.”
 “거 봐! 내 눈을 믿으라고 했잖아!”
 춘섭이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 후 사냥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변이체를 좀 많이 잡았다 싶으면 자기들도 한두 마리씩은 담아갔다. 말도 더 부드럽게 하고, 심심할 때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연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자기들 동료로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들고 가지요.”
 “무거울 텐데…….”
 “저 힘 좋습니다. 아시잖아요?”
 수한은 그들이 베푸는 호의 중 받을 건 받고, 필요 없는 것은 몽땅 물리쳤다.
 특히 짐은 수한이 다 들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걸을수록 근력과 체력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밤에는 공부를 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부였다.
 처음 내려올 때는 책을 안 가져왔지만, 택배와 인터넷 구매라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중급과 상급에 해당하는 책과 듣기 파일을 산장으로 배달시켰다.
 공부를 계속하자 가뭄에 콩 나듯 지능과 직감이 올랐다. 그런데 예전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밥 먹을 것 먹고, 잠 잘 것 자면서 해서는 능력치가 잘 오르지 않았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공부를 해야 효과가 좋았다. 오늘 이거 공부하고 죽어버려야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했다.
 낮에는 육체를, 밤에는 정신을 혹사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수한의 얼굴에서 살이 조금씩 빠졌다. 2주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피골이 상접하게 변했다. 해골처럼 비쩍 마른 가운데, 두 눈만 호랑이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춘섭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괜찮냐? 어디 아픈 거 아냐?”
 “전 괜찮습니다.”
 “아프면 며칠 쉬어도 돼. 공격대 지원 요원이든 사냥꾼이든 몸이 재산이야. 몸 망쳐서는 안 된다고.”
 “걱정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압니다. 제가 목표한 게 있어서 밤새 공부하느라 겉으로는 이렇게 보이지만, 속은 아주 쌩쌩합니다. 안 좋아지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끄응. 그렇게까지 말하니 넘어가지만, 본인 몸 관리에 신경 좀 더 써. 얼굴이 더 안 좋아지면 사냥에서 제외하는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요즘엔 능력치 올리는 재미에 잠도 거의 안 자고 있었는데, 이젠 조금씩이라도 자야할 성 싶었다.
 6월이 되었다.
 각 공격대들이 일제히 채용 공고를 냈다. 수한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병적증명서, 사냥꾼 허가증을 몇 개의 공격대에 등기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사냥.
 짐 나르기, 밤을 새다시피 하는 공부…….
 수한은 총 3개의 공격대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해모수, 워소드, 알바트로스.
 모두 국내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유명 공격대들이다.
 대한민국 1위를 다투는 타이탄이나 백호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긴 그 둘은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 중의 인재나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전화를 받고, 수한은 춘섭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형, 저 서류 전형 통과했어요. 이번 주까지만 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축하한다. 서류는 어디까지나 기본이고, 실기랑 면접이 진짜란 거는 알지? 서울 올라가면 무료 사격장이라도 다녀서 감 잃지 않게 노력하는 게 좋을 거다.”
 “네, 그렇게 할게요.”
 “우리 막내가 서류 전형 통과했다고? 아, 그럼 한 잔 해야지!”
 “고럼, 고럼! 오늘 먹고 죽자고!”
 수한의 송별회가 벌어졌다.
 모두 주거니 받거니, 얼큰하게 취했다.
 춘섭은 그 동안 수한이 모은 돈을 그 자리에서 정산해 주었다. 산장에 부산물을 넘기고 돈을 받을 때마다 문자로 알려주었지만, 계좌에 직접 입금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약 600만원.
 그 동안 쓴 게 있지만 상당한 액수였다.
 춘섭이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좀 고생한 것 같아서 차비를 더 넣었다. 서울 가서도 우리들 잊지 말고, 가끔 소주나 한 잔 하자.”
 “감사합니다.”
 “취업 성공하면 연락해라! 꼭 한 번 놀러가마!”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잠도 자면서 해라. 젊은 사람 얼굴이 그게 뭐냐?”
 “그래! 여기 형님들처럼 살이 좀 붙어야 여자도 붙지! 이제 예쁜 아가씨 만나서 장가도 가야 할 거 아니냐?”
 “하하하, 알겠습니다.”
 "공격대 소속이면 자유롭진 못해도 돈은 더 벌지. 일반 지원 요원으로 들어가도 우리보다 2~3배는 벌 걸?"
 "외계 행성 원정 나가는 재미도 쏠쏠해. 하긴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맞아, 맞아."
 "나중에 마라도도 한 번 가 봐. 지리산은 이제 변이체 찾아보기가 힘든데, 거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나 봐. 배 타고 유인해서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던데?"
 "그렇습니까?"
 "하긴 경험 삼아 며칠 갔다 오는 건 좋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자기들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수한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사냥꾼들에게 올라가보겠다고 아침 인사를 한 후, 가방을 들고 산장을 나섰다.
 세라프어 책 같은 무거운 짐은 이미 서울로 보낸 뒤.
 수한은 산장을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볍게 손짓을 하여, 접어두었던 4개의 창을 모두 펼쳤다.
 지리산에서의 한 달 동안 얻은 성과가 수한의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싱긋.
 수한의 입가에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레벨과 능력치.
 예전에는 무척 빈약했었는데, 1달 사이 제법 풍성하게 자라난 것이다.
 실기 시험
 
 먼저 레벨.
 정확히 20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가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처음 지리산에 오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상대라고 할 만 했다.
 능력치도 상당히 올랐다.
 많이 오른 것도 있고 조금씩 오른 것도 있었다. 최종 결과만 보자면 근력 18, 체력 19, 민첩 15, 재주 17, 감각 15, 지능 14, 직감 17, 의지 15, 위엄 13이 되었다.
 초능은 어쨌냐고?
 정확히 20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얻은 능력 점수는 몽땅 초능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세라프어와 문자도 6레벨로 올랐다. 덕분에 말도 이젠 곧잘 했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익히면 원어민 수준까지 올라가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1달 동안 수련도 잘 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지리산에 온 보람이 있는 것.
 터미널에서 내리자 두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가 수한을 맞이했다.
 동생들이 수한을 보고 기함을 했다.
 “형! 얼굴이 왜 이래?”
 “밥 안 먹고 살았어? 몸은 괜찮아?”
 하도 몸을 혹사시킨 까닭에 겉으로 보기엔 몸이 말이 아니었다. 동생들이 놀랄 만도 했다.
 수한은 짐짓 팔을 구부려 알통을 보여주었다.
 “걱정 마. 컨디션 최고니까. 힘도 많이 세졌어.”
 “안 되겠다. 고기부터 먹자. 내가 살게.”
 “돈이 어디 있어서?”
 “과외해서 열심히 벌었거든? 내가 좋은데 알아. 거기 가자.”
 명한이 수한을 잡아끌었다.
 셋이서 간 곳은 한 소갈비 집.
 저렴하고 양이 푸짐한 곳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수한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니, 내가 사야겠다. 나 지리산에서 돈 많이 벌었어.”
 “돈 벌었으면 본인 밥부터 잘 사먹지 그랬어? 산장에 식당도 있다면서. 혹시 그 선임이라는 사람이 막 부려먹은 거 아냐?”
 “어휴, 그런 거 아냐. 밤에 잠을 잘 안자서 그래.”
 “잠은 왜 안 자?”
 “공부하느라 그랬지. 밤새 세라프어 공부했어.”
 “그래서 늘었어?”
 “응, 많이 늘었어. 가끔 할 일 없을 때 지리산이나 마라도에 가는 것도 괜찮겠더라.”
 수한은 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썼다.
 충격적으로 변해버린 얼굴 때문에 둘은 잔소리를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밤이 되자 좀 조용해졌다.
 내일부터 바로 공격대들의 실기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날짜가 조금씩 달라서 모두 응시가 가능했다.
 비는 시간에 이능 적성 검사도 봐야 하니,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터였다.
 6월 22일 월요일.
 수한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실기시험이니 정장 대신 전투복을 입었다. 지리산에 갈 때 썼던 가방도 챙겼다. 거기엔 용산에서 구입한 무기와 방어구, 변이체 탐지기가 들어 있었다.
 수한이 지원한 것은 각 공격대의 지원 요원.
 이능력자들과 함께 외계 행성으로 원정을 나가는 직군이었다. 당연히 전투 능력이 중시되고, 그에 못지않게 각종 실무 능력도 중요했다. 원정 계획도, 원정 보고서도 모두 지원 요원이 작성하니까.
 동생들이 주먹을 쥐고 수한을 응원했다.
 “형! 파이팅!”
 “형, 잘하고 와야 돼?”
 “걱정하지 마.”
 수한은 보무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오늘은 해모수 공격대의 실기 시험 날.
 수한이 합격한 3개의 공격대 중 가장 이름이 높았다. 연봉도 셌다. 대신 야근에 특근이 기본이고, 복지는 좀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알바트로스가 됐으면 좋겠다.’
 3개의 공격대마다 일장일단이 존재했다.
 워소드는 업무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복지가 상당했다. 거의 타이탄이나 백호와 동급이었다. 다만 연봉을 적게 준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한은 해모수나 워소드가 아닌 알바트로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격대.
 규모는 많이 불렸지만 많은 면에서 주먹구구식이었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면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대신 뚜렷한 장점이 몇 개 존재했다.
 사이가 끈끈한 5명의 AA급 이능력자가 임원진이라는 것도 그렇고, 대한민국 공격대 중 가장 적극적으로 외계 행성에 진출한다는 것도 그랬다.
 어쨌든 나중 일.
 일단 시험부터 잘 치르고 볼 일이었다.
 해모수 공격대의 시험장은 고양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수한의 집은 서울 남쪽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시험장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도착하니 벌써 시험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시험장 입구에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가 서류 전형 합격 증서를 내밀자, 사무실 안에 앉아있던 남자가 수한을 훑어보았다.
 “실기 시험 응시하러 온 겁니까?”
 “예. 아직 안 늦었죠?”
 “시간은 충분합니다. 혹시 무기 가져온 거 있으면 모두 꺼내서 저한테 보여주시고요. 등록 안 된 무기 사용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수한은 가방에서 단검과 권총, 소총을 꺼내 보여주었다.
 남자는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명찰이 달린 목걸이를 수한에게 주었다.
 “이거 받아가세요. 시험장 안에서는 항상 차고 있어야 합니다. 응시 번호 확인하시고, 호명하면 얼른 시험장으로 가세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명찰을 목에 걸었다.
 [1번부터 5번 응시자까지 시험장으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긴 했나 보다.
 벌써 시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던 응시자들이 시험장으로 입장하는 게 보였다.
 수한의 응시 번호는 157번.
 시작하려면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총도 쏘고 생존과 환경 적응도 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다음 방송이 울렸다.
 [6번부터 10번 응시자까지 시험장으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거의 5분에 한 번씩 불러대자, 생각보다 수한의 차례가 일찍 왔다.
 수한은 안내에 따라 시험장 안으로 입장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권총을 찬 요원들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견장을 찬 남자가 응시자들을 보고 턱짓을 했다.
 “무기 가져온 거 있으면 꺼내세요. 종목은 사격, 생존, 격투, 이렇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종목마다 세부 항목이 또 있고요. 그리고 특별한 기술 있는 분은 시험이 끝나고 가시면서 말씀해 놓으세요. 따로 가산점이 부여될 겁니다.”
 “화염방사기 쓸 줄 아는데, 그것도 나중에 말하면 됩니까?”
 “화염방사기라고요? 호오, 흔하지 않은 특기네요. 맞습니다. 뭐든 재주가 있는 분은 말씀해보세요. 써먹을 수 있으면 가산점을 드립니다.”
 이거 야단났다.
 수한은 특기랄 게 없었다.
 세라프어라도 말해볼까? 이젠 6레벨이 되어 곧잘 하는데.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가방을 열고 총을 꺼냈다. 권총과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 소총을 양 손으로 들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세 종목 중 사격부터 시작입니다. 사격은 권총, 소총, 산탄총, 저격총 분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시험장마다 총기가 비치되어 있으니까, 총을 가져오지 않은 분은 그걸 쓰시기 바랍니다. 자, 모두 들어가시죠.”
 사격 시험은 간단했다.
 길쭉한 실내 사격장에서 자신의 사로에 나타나는 과녁들을 쏘면 됐다.
 고정 과녁도 있고, 움직이는 과녁도 있었다. 가끔은 몇 개가 동시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기도 했다.
 거리는 10, 15, 20, 30, 50, 75, 100까지.
 수한은 양손으로 권총을 붙잡고 신중하게 사격을 했다. 쏜다고 쐈는데, 권총 특성 상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히 명중률이 떨어졌다. 20까지는 대부분을 맞췄지만 100은 5발을 쏴서 1발을 겨우 맞춘 것 같았다.
 군대에서 근접전을 대비하여 많이 쏴봤는데도 이랬다. 역시 권총의 명중률은 굉장히 낮았다.
 그나마 수한은 아주 잘 쏜 편이었다. 거리 10을 넘어가자 1번도 못 맞힌 응시자들이 속출했다.
 다음은 소총 사격.
 수한의 전문 분야였다.
 탕탕탕!
 “100점이야!”
 누군가 수한의 점수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소총 사격에서, 수한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거리가 50, 100, 150, 200, 250, 400이었는데 깨알보다 작게 보이는 400까지 맞춰버린 것이다.
 수한도 사실 좀 얼떨떨했다.
 ‘내가 이 정도였나?’
 군대에 있을 때도 사격을 잘 하긴 했지만, 250 이상부터는 한두 발씩 놓치곤 했다. 그래서 저격수로 뽑혀 가진 않았는데, 오늘은 총이 두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산탄 사격과 원거리 저격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군대에서의 보직은 소총수였지만, 산탄총과 저격총도 조금씩은 다룰 줄 알았다.
 산탄 사격은 과녁이 아니라, 야구공을 쉬지 않고 날려 그걸 맞추는 식이었다. 하긴 산탄총은 정확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빠르게 방향을 설정하고 쏘느냐가 중요하니 그럴 법도 했다.
 원거리 저격은 사람 모양의 과녁 중 붉은 점이 칠해진 과녁만 맞춰야 했다. 푸른 점 과녁을 맞히면 감점을 받았다. 그리고 붉은 점에 정확히 맞추면 가산점을 주었다.
 둘 다 85% 이상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눈치를 보니, 이 정도면 거의 최상위권이었다.
 다음은 생존 시험.
 야산 하나가 통째로 개조되어 있었다. 마치 논산 훈련소의 모의 각개 전투장을 보는 것 같았다. 곳곳에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고, 사람 모양 과녁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시험장 입구에 서 있던 남자가 수한에게 단검 하나를 건넸다. 날이 세워지지 않은 뭉툭한 단검으로, 상당히 묵직했다.
 “생존 시험은 사막, 정글, 빙하 지대에서의 활동 능력을 보는 겁니다. 저기 장애물들 보이시죠? 저걸 죽 돌면 됩니다. 중간에 과녁들이 나타날 텐데, 그걸 공격할 때마다 가산점이 부여되니까 잘 공격해보세요.”
 “사막, 정글, 빙하라고요?”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겉으로 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장애물만 잔뜩 늘어서 있었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수한은 단검을 움켜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애물을 넘는 것은 쉬웠다. 군대에 있을 때 훈련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해본 거였다. 날렵하게 낮은 담을 뛰어넘고, 포복으로 철조망을 통과했다.
 빠르게 속도를 올리고 있는데, 어째 기온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수한은 손끝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어어?”
 어느새 5월의 싱그러운 풀들이 다 죽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흰 눈이 가득했다. 발을 내딛으면 쌓인 눈 안으로 발이 푹푹 들어갔다. 눈이 펑펑 내려서 머리와 어깨에 눈이 뭉텅이로 쌓였다.
 입구에서 봤을 때는 이런 걸 볼 수가 없었는데?
 수한은 곧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환상이구나.’
 이능 중에는 오감 전부에 작용하는 환상을 발휘하는 것도 있었다. 그걸 시험장 전체에 설치한 모양이었다.
 비용이 장난 아니게 들었을 텐데, 해모수 공격대가 이번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만 했다.
 환상이란 것을 알아챈 이상 거칠 것 없었다. 수한은 굳어오는 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애물을 넘었다. 가끔 과녁이 나타나면 몸을 날려 단검을 박고, 좀 멀다 싶으면 던지기도 했다.
 빙하 다음은 사막.
 뜨거운 열기가 수한의 몸을 태웠다. 목이 미칠 듯이 마르고,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이것도 환상.
 수한은 그것을 유념하며 차분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정글이 펼쳐졌다. 온갖 벌레들이 수한에게 달려들었다. 워낙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몇 걸음 앞으로 가기도 어려웠다.
 ‘이건 장애물일까? 아니면 그냥 환상일까?’
 그게 궁금했지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단검을 휘둘러 수풀을 헤치며 시험장을 돌파했다.
 3개의 환경을 모두 돌파했다.
 녹색 수풀들이 영화관 영상 꺼지듯 픽 사라졌다.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풀이 우거져 있던 곳에는 로프 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수한은 출구로 나와 한숨을 돌렸다.
 시험 감독관이 수한에게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기록이 굉장히 좋네요?”
 “그렇습니까?”
 “격투 시험에서 실수만 안 하시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셔도 좋겠습니다.”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수한은 단검을 반납했다.
 생존 시험장 출구 바로 앞에 커다란 체육관 같은 시설이 있었다. 바로 격투 시험장이었다.
 사실 변이체를 상대할 때 격투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주먹 날릴 시간에 권총을 뽑아 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러나 지원 요원의 업무가 변이체 상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보니 격투술도 꽤 중시되고 있었다.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자, 요원 몇 명이 응시자들과 대련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 저마다 단검을 들고 있었다. 손도끼나 망치도 비치되어 있지만, 단검을 든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단검은 여러 기능을 부여하기도 용이하고, 소총에 착검도 가능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조금 기다리자 요원들이 수한을 불렀다. 수한은 살짝 긴장이 되는 것을 느끼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걸 쓸 겁니까?”
 요원이 수한이 든 룬 문자 단검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자칫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수한은 단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근접 격투 시험장에 비치된 것 중 군용 대검을 하나 들었다.
 “이게 낫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시작할까요?”
 요원은 몸을 낮추고 단검을 수한에게 겨누었다.
 수한도 특공무술 자세를 취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매서운 기세가 풍겼다.
 한 동안 대치 구도가 이어졌다.
 다른 응시자들은 이미 결판이 났다. 다들 분전했지만, 닳고 닳은 요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요원들은 채점을 한 후 수한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이 녀석…….’
 수한 앞에 선 요원은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깡마른 생김새도 그렇고, 번뜩이는 눈도 그렇고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실전으로 단련된 감이 자칫 잘못했다간 크게 당할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수한은 투명한 눈으로 요원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는 것은 수한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슬쩍 발을 놀려 반의 반 걸음 다가갔다.
 “하!”
 경쾌한 기합 소리와 함께, 요원이 발길질을 날렸다.
 탐색용 발차기.
 수한은 다시 몸을 뺐다.
 요원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수한을 덮쳤다. 연속으로 발길질을 하고, 단검을 쥔 손을 움츠리며 기회를 살폈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갔다.
 수한은 요원이 자신보다 한 수 정도 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 년 간 실전을 겪으며 몸을 단련한 요원의 실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근력과 체력을 높이지 않았다면 진작 당했을 터.
 어차피 수한은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굳이 무리하지 않았다. 빙빙 돌며 대치하다가, 예리한 일격을 날렸다.
 몇 번은 발차기를 적중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때마다 기분이 나쁜지 요원이 얼굴을 굳혔다. 날카롭게 날아든 공격에 수한도 좀 얻어맞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견딜 만 했다.
 단기간에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자, 감독관이 손을 들었다.
 “그만! 157번 응시자의 시험은 여기서 종료한다. 157분 응시자 분, 이름이 뭡니까?”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기술을 조금만 더 연마하면 우리 회사 정식 요원들을 쓰러뜨리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훌륭합니다.”
 수한은 인사를 꾸벅 하고 나갔다.
 응시자들이 나가자 수한과 대적했던 요원이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봐, 괜찮아?”
 “말도 마. 로우킥이 이렇게 센 놈은 처음 봤다. 아이고, 벌써 멍든 것 좀 봐.”
 “맙소사. 골절된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병원은 가봐야겠어.”
 요원은 바지를 걷어 얻어맞은 부위를 보여주었다.
 벌써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생기기는 해골처럼 비쩍 말라가지고는 발차기 한 번에 이 정도 위력이라니…….
 근접 격투를 끝으로, 모든 시험이 끝났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 특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수한은 잠깐 고민했다.
 기술 점수 15점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걸 세라프어와 문자에 투자하면 10 이상으로 올라간다. 그 정도면 수한의 한국어와 비슷한 점수이니 세라프어 특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곧 고개를 저어 버렸다.
 가산점은 못 받아도 실기 시험에서 최상위권을 자신하는 참이었다. 언제 필요한 기술이 등장할지 모르니, 일단은 보류하는 게 좋을 듯했다.
 “결과는 언제 발표됩니까?”
 “2주 정도 뒤에 발표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눈에 띄는 직원에게 묻자, 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수한은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명찰은 경비 사무실에서 반납했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햇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현란한 빛을 뿌렸다. 눈이 따가워서 수한은 왼손으로 눈을 가리고 건물들을 올려다보았다.
 수호자 연맹의 대한민국 지부가 있는 곳.
 그 덕에 공격대 건물과, 각종 고층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다. 수한은 동경 어린 눈으로 상위권 공격대 사옥들을 쳐다보았다.
 세 개의 고층 건물이 나란히 올라간 타이탄, 백금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백호, 활처럼 굽어진 미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해모수, 칼 손잡이처럼 건물 윗부분이 양쪽으로 돌출된 워소드, 새의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알바트로스 등등.
 수한도 언젠가는 저곳에 들어갈 일이 있겠지.
 당장 실기 시험에 합격하고 보게 될 면접만 해도 각 공격대 사옥에서 치러지니까.
 수한은 발길을 돌렸다.
 여의도 북서쪽, 옛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는 수호자 연맹 지부를 방문했다.
 지부는 운동장을 방불케 했다. 그 규모가 엄청났다.
 가끔 외계 종족도 보이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능력자들이 곳곳을 드나들었다.
 수한은 잠시 멈춰 서서, 쌍검을 찬 이능력자 하나가 미끄러지듯 허공을 날아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D급 수호자 강혁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짧은 검을 찬 남자가 수한에게 다가왔다.
 수호자.
 다름 아니라 수호자 연맹 소속의 이능력자를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대전쟁 때는 이능력자를 모두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 이후 이능력자 범죄자도 나타나고, 수호자 연맹과는 관련 없는 이능력자도 생기면서 그들만 달리 부르는 것이다.
 “아, 이능 적성 검사 해보려고 왔습니다.”
 “이능 적성 검사요? 그건 아무 지부에서나 가능한데, 굳이 여기로 오신 이유가 있습니까?”
 “공격대 지원 요원에 지원했는데, 오늘 실기 시험을 본 김에 검사를 하려고요.”
 “아하, 공격대에서 제출하라고 했나 보네요?”
 수호자는 자기 좋을 대로 수한의 말을 해석했다.
 수한을 지부 한쪽으로 데려갔다. 검은 유리로 가려져 있어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수호자가 수한에게 당부했다.
 “여기 지부는 이능력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입니다. 일반인이 오래 있으면 몇몇 성질 더러운 것들이 시비를 걸 수도 있으니까 검사만 해보고 빨리 돌아가세요.”
 “말씀 감사합니다.”
 수한은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맹에 등록된 이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을 물어야 했다. 10년 전에 받았던 검사는 무료였지만, 재검사까지 국가에서 보조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검사실 직원이 간단히 절차를 설명해 주었다.
 “보시면 15 종류의 기계가 있을 거예요. 여기 IC칩을 드릴 테니까 이걸 각 기계에 댄 후, 잠깐 앉아 계시면 됩니다. 한 번 할 때마다 오심이나 구토, 어지럼증, 두통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검사 하나를 한 다음에는 꼭 10분 정도 쉬셔야 돼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이미 아는 사항이었다.
 직원의 말처럼, 검사실 안에는 15 종류의 기계가 늘어서 있었다. 그 중 12 종류는 의자처럼 생겼고, 3 종류는 MRI 찍을 때 들어가는 원통형 기구를 닮았다.
 수한은 원통형으로 생긴 기계부터 시작했다.
 종합 적성, 잠재 적성, 발현 적성.
 그 다음은 의자 형태의 기계.
 총 12가지로 나누는 이능 계열별로 적성을 검사하는 기계였다. 수한은 충분히 쉬어가면서 모든 검사를 마쳤다.
 그쯤 되자 진이 다 빠졌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메슥거렸다.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토할 것 같았다.
 직원이 수한을 불렀다.
 “이수한 씨! 검사 결과 나왔어요!”
 수한이 가까이 오자, 직원은 자기 앞의 홀로그램을 한 번 보았다.
 직원의 얼굴에 놀랍다는 표정을 떠올랐다.
 “10년 전에는 각성 확률이 최악이었는데, 굉장히 좋아지셨네요. 가끔 이런 분이 있다곤 들었는데, 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 말을 대충 흘려 넘기며, 결과지를 확인했다.
 
 [이능 적성 검사 결과]
 이름 : 이수한 나이 : 24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79kg
 주민등록번호 : 910315-1284953
 거력 12% 강체 12% 신속 10% 감각 12%
 정신 9% 의지 10% 구현 7% 외능 6%
 소환 6% 변조 11% 투시 8% 영혼 6%
 종합 적성 10% 발현 적성 0.2% 잠재 적성 E
 
 수한은 결과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0년 전에는 종합 적성이 0.000001%에 불과했다. 각성 확률이 1억 분의 1이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12 계열 모두가 0.01%를 가리켰다.
 지금은 종합 적성이 천만 배가 높아졌다. 아예 0%였던 발현 적성은 0.2%가 되었다. Z였던 잠재 적성도 E로 올라섰고.
 여기서 종합 적성은 힘의 결정을 사용했을 때 각성할 가능성을 가리킨다. 발현 적성은 외부 도움 없이 자연 각성하는 것으로, 지구인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잠재 적성은 각성했을 때 얻을 확률이 높은 이능의 등급을 나타냈고.
 초능 1과 20이 이렇게 차이가 컸나 보다.
 여기서 30, 40, 50 이렇게 올리면 적성이 더 올라가겠지. 나중에 돈을 모아 힘의 결정을 구하기만 하면 꿈에 그리던 이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수한은 숨을 죽여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으로 여기서 볼 일은 다 봤다.
 결과지를 곱게 접어 전투복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직원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지부를 나섰다.
 점심을 걸렀더니 배가 무척 고팠다. 그렇다고 지금 밥을 먹자니 벌써 4시가 가까워져서 시간이 애매했다. 내일 오전에 워소드, 모레 오전에는 알바트로스의 실기 시험이 있으니 집에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명한이 빨리 귀가해서 같이 밥을 먹었다.
 “형, 시험은 잘 봤어?”
 “당연히 잘 봤지. 내가 아마 10등 정도는 했을 걸?”
 “우와, 진짜? 몇 명이나 뽑는데?”
 “이건 절대 평가라서 기준 이상이면 모두 합격시켜. 진짜는 면접이니까. 그때 잘 해야지.”
 “그럼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 지원 요원이면 연줄 타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아, 그 생각을 못 했다.”
 수한은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실기야 걱정할 게 없지만, 면접에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은 세 공격대 모두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잘못하면 불합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내일부터 바로 면접 준비해야겠다.”
 “내용은 뭐래?”
 “사냥 계획 짜는 거야. 지원 요원 업무 중에 하나가 그거더라. 해당 공격대 전력으로 잡을 수 있는 기계 괴수나 변이체 한 마리를 선정해서 계획을 짜서 발표해야 돼.”
 “어렵겠다.”
 “말단 요원이면 상관없는데 승진하려면 꼭 필요한 거니까…….”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면접을 준비하는 한편, 워소드와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실기 시험을 치렀다.
 둘 다 해모수 공격대와 비슷했다.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들어가서 사격, 생존, 격투 시험을 보았다.
 수한은 워소드와 알바트로스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두 군데 모두 소총 사격은 만점을 받았다. 다른 사격도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생존 시험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돌파했다. 근접 격투에서는 상대 요원과 막상막하로 싸웠다.
 솔직히 알바트로스에서는 상대 요원을 이길 기회가 있었다. 확 질러버리려다가 겨우 참았다. 당장 점수는 높게 받겠지만, 정말 알바트로스에 취직하게 되면 그 요원과 껄끄러운 사이가 될 테니까.
 이로써 시험은 다 끝났다.
 남은 것은 2주 뒤를 기다리면서, 3차 면접을 대비하는 일뿐이었다.
 
 면접
 
 사냥 계획.
 지금껏 전혀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거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한은 인터넷에서 기존의 사냥 계획들을 찾아보았다.
 한숨만 나왔다.
 엄청나게 화려했다. 기계 괴수를 3D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이능력자와 지원 요원들을 따로 표시했다. 마찬가지로 3D로 그려진 지형 위에서, 전투 장면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수한은 그럴 재주가 없었다.
 대신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먼저 사냥 계획의 기본적인 틀부터 분석했다.
 “사냥 대상 선정, 공격대와 대상의 전력 비교, 준비물 제시, 준비 과정, 사냥 시작, 뒤처리…… 이런 순서라 이거지.”
 가장 첫 단계인 사냥 대상 선정부터 막혔다.
 일반적인 변이체를 선택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공격대의 역량으로 빠듯하거나, 조금 힘든 대상을 고르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더 강한 대상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턱없이 강한 대상을 선택했다가 계획 자체가 어그러지면 아예 탈락하겠지만.
 그러려면 해당 공격대의 전력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아야 했다. 각 행성에 존재하는 기계 괴수나 유명 변이체의 정보도 수집해야 하고.
 2주는 너무 짧았다. 제대로 하려면 정보를 수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수호자 연맹에 들어가서 세 공격대에 등록된 이능력자의 현황을 파악했다. B급 이상의 고위 이능력자는 그 능력 하나하나와 성격, 습관까지 최대한 알아냈다.
 수한의 위치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활용할 수 있는 경로는 다 써먹었다. 변이체 사냥꾼 인터넷 모임도 참고하고, 개마고원 부사관 출신들이 모이는 곳도 들락거렸다.
 가능한 한 세 공격대의 전력을 파악한 후, 대상 선정에 나섰다.
 인터넷에는 각 공격대별로 모범 사냥 대상이 올라와 있었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사냥 계획도 짜고, 면접에서도 무난하게 점수를 얻을 거라던가.
 처음에는 수한도 그걸 참고하려고 했지만, 면접은 상대 평가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남들이랑 똑같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치고 나가야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고민 끝에, 더 강한 사냥감을 물색했다.
 기계 괴수들.
 솔직히 답이 안 나왔다.
 지금까지 나타난 대부분의 기계 괴수는 격퇴 당했다. 남은 것은 출현한지 얼마 안 된 놈이거나, 수십 번의 도전을 견딘 강한 놈들밖에 없었다.
 그냥 유명 변이체로 눈을 낮춰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냐, 꼭 정공법으로 하란 법은 없잖아? 이능력자만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 보자.’
 기계 괴수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능력자다. 기계 괴수를 감싼 방어막을 뚫으려면, 이능에 담긴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병기가 영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방어막을 중화시킨 후 미사일을 쏟아 붓거나, 이능력자가 폭탄을 무더기로 들고 가 설치하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했다.
 뭐든지 활용하기 나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전차나 자주포를 외계 행성으로 가져갈 수는 없을까?
 헬기는? 전투기나 전함은?
 기반 시설이 없으니 비행기나 선박은 힘들 것이다. 그래도 기갑 장비나 헬기는 가능할 성 싶었다.
 검색해 보니 실제로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통과 절차도 복잡하고, 차원문을 대형으로 여는데 자원이 엄청나게 들어서 수지가 맞지 않아 금방 사장된 방법이지만.
 뭐 어때?
 면접에서는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실무는 입사한 뒤 배워도 될 일이었다.
 수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영감이 떠올랐다.
 꼭 지구 것만 쓰란 법 있나?
 원주민들과 협력해도 좋고, 돈을 찾아 떠도는 외계인들을 끌어들여도 좋을 것이다.
 한 탕 제대로 해보자고 하면, 쓸 수 있는 건 많았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냥감을 탐색했다. 워낙 악명이 높아서 별칭이 붙을 정도의 기계 괴수들이었다.
 기계 괴수는 크기가 클수록 강한 경우가 많은데, 소형이나 중형도 아니고 대형이나 초대형으로 분류하는 기계 괴수들을 찾아본 것이다.
 선정은 끝났지만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었다. 수한은 밤낮을 잊고 작업에 매달렸다.
 밤을 새다시피 하자 동생들이 걱정을 했다.
 “형,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좀 쉬엄쉬엄 해.”
 “하하, 걱정 마. 내 몸은 잘 챙기고 있으니까.”
 지리산에 있을 때보단 잘 먹고 잘 쉬고 있었다.
 조금씩 몸이 불었다. 얼마 전엔 피골이 상접했는데, 이젠 사람 같아 보였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전역 당시로 돌아갈 것 같았다.
 열심히 계획을 짠 탓일까. 지능과 직감이 1씩 더 올랐다. 그 덕분에 계획을 만드는 것도 더 쉬워졌다. 계획 3개를 다 완성했을 때는 작전 계획이라는 기술도 생겼다.
 고민하다가 보류해둔 기술 점수 15점 중 3점을 작전 계획에 넣었다. 머리가 더욱 민활하게 돌아가며, 3개의 계획을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도중에 레벨도 하나 더 오르고…….
 면접을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해모수, 워소드, 알바트로스 3개의 공격대에서 연락이 왔다. 수한이 기대했던 대로, 실기 시험에서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면접시험 시간은 모두 달랐다.
 가장 처음으로 잡힌 것은 알바트로스.
 수한은 중고로 양복을 한 벌 샀다. 넥타이도 하나 사고, 까만 구두도 하나 장만했다.
 동생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형, 멋진데?”
 “꾸며놓고 보니까 우리 형도 멋있다. 진작 좀 이렇게 입고 다니지, 항상 군복이랑 추리닝만 입고 다녔어?”
 수한은 그냥 쓱 웃어보였다.
 명한이 수한의 등을 팡 하고 때렸다.
 “형, 파이팅! 꼭 합격해야 돼!”
 “하하, 알았어.”
 수한은 단출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여의도.
 얼마 전 이능 적성 평가를 받으러 왔을 때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사옥이 어디 있는지 잘 알았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경비 복장을 한 남자가 수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오늘 지원 요원 면접 있지 않습니까?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아하, 빨리 도착하셨네요. 신분증 잠깐만 주시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경비는 수한의 신분증을 받아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경비 사무실의 책상 밑에서 명찰이 달린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이거 차고 다니세요. 들어갈 수 있는 곳은 1층 로비와 2층 식당가, 3층 시험장으로 제한됩니다. 로비에 앉아 계시면 방송으로 부를 테니 기다리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공격대 사옥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한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다들 명찰을 패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게, 대부분은 특색 없는 하얀 명찰을 찼는데 몇몇은 명찰 테두리를 은으로 감싸 놓았다.
 금방 그 정체를 눈치 챘다.
 ‘이능력자구나.’
 공격대의 근간은 누가 뭐래도 이능력자다. 그러다 보니 명찰에서부터도 대우를 하는 것이다.
 ‘이능력자랑 일반인 차별이 장난 아니라고 하더니 명찰부터 그러네. 좀 심하다.’
 수한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감정을 내색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으니까.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다 드러내기엔 지난 10년 세월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얼마간 기다리자 다른 응시자들도 차례차례 들어왔다.
 널찍한 로비 안이 북적거렸다. 직원들이 응시자들을 돌아보더니, 몇 명씩 짝을 지어 구석에 있는 대기실로 들여보냈다. 여기 이렇게 서 있으면 방해된다는 거였다.
 응시자들은 참 다양했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송이부터, 이마에 주름살이 그어진 중늙은이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수한처럼 깔끔하게 차려 입고 전전긍긍 발을 굴렀다.
 대기실에 앉아 있노라니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지원 요원 면접이 시작됩니다. 저희 알바트로스 공격대를 방문해 주신 응시자 여러분은 3층에 마련된 대기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대기실에는 응시자 여러분의 응시 번호가 기재된 좌석이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수한은 조금 느긋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어차피 엘리베이터는 쓸 수 없어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대기실은 최첨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개인마다 따로 앉을 수 있는 의자에, 홀로그램 생성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선 이어폰과 개인 고글이 비치되어 있어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개인적인 일을 보는 게 가능했다.
 수한은 조금씩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집에서 가져온 USB를 책상에 꽂았다. 개인 고글과 무선 이어폰을 모두 쓰고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잠깐 기다리자 방송이 나왔다.
 [응시 번호 1번부터 5번까지 응시자분들은 시험장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과연 몇 분이나 걸릴까?
 살펴보니 꽤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았다. 5명 모두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1명씩 나오고, 다음 순번 응시자가 빈 방에 입장했다.
 수한의 응시 번호는 50번.
 한참을 기다린 끝에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심사위원들이 주르륵 앉아 있었다. 이제 갓 대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청년도 보이고,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능력자와 일반인이 함께 심사를 보는 모양.
 한쪽 벽면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천장에는 홀로그램 생성기가 붙어 있었다. 스크린 옆에 PC가 있어 응시자는 그걸 이용해 발표를 하게끔 했다.
 수한이 자리에 앉자, 서류를 보던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중앙에 앉은 깐깐해 보이는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수한 씨죠?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작해 주세요.”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시작하려나 보다.
 수한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최신 사양의 컴퓨터가 금방 파일을 읽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동작 감지기가 모두 설치되어 있었다. 수한은 준비를 모두 끝내고 심사위원들을 돌아보았다.
 “50번 응시자 이수한입니다. 지금부터 사냥 계획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세요.”
 수한은 손을 튕겼다.
 컴퓨터가 그 동작을 감지했다. 천장의 홀로그램 생성기가 반짝이더니 불가사리 형태의 거대한 괴수가 그려졌다.
 몸을 두터운 철갑으로 감싸고, 다섯 개의 팔이 있는 괴수. 정육면체 몸통에는 광선 포대가 십여 개 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 남자가 몸을 쑥 내밀었다.
 눈꺼풀이 꿈틀거리는 게, 괴수의 정체를 알아본 모양.
 “제가 사냥감으로 선택한 것은 케르베스 행성의 뉴만 대륙 북쪽, 얼음의 대지에 있는 잿빛 학살자입니다.”
 “잿빛 학살자? KBB-874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눈을 빛냈다.
 평범한 차림이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의자에 기대어 놓은 커다란 칼이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계 괴수 중에서도 대형에 속해서, 나타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토벌되지 않은 놈이지요. 놈이 박살낸 케르베스 행성의 도시만 10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활동 능력이 약해져서 이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 활동을 시작할 줄도 모르고요.”
 “설마, 그 놈을 잡으라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미국의 그랜드 공격대와 중국의 천룡 공격대가 섣불리 공격을 시도했다가 인력만 잃고 물러난 게 겨우 작년 일입니다.”
 남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초거대 공격대였다. 대한민국에서는 타이탄 공격대와 백호 공격대를 합쳐도 그 중 하나와 비교될까 말까 했다.
 수한은 가볍게 웃었다.
 “규모가 큰 공격대라고 해서 항상 기계 괴수 사냥에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전략이죠.”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심사위원들은 숨을 죽이고 수한을 주목했다.
 여태 뻔한 계획만 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대상을 보니, 살짝 기대감이 들었다.
 수한은 다음 단계인 전력 비교는 간단히 표만 보여주고 넘어갔다.
 여기 앉아 있는 자들은 모두 전문가였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수한은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잿빛 학살자의 홀로그램 위로 아이콘 다섯 개가 생겼다.
 수한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단 다섯 개의 요건만 갖춰지면, 알바트로스는 잿빛 학살자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딱 한 명만은 침착한 얼굴로 수한을 보고 있었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태도.
 정장을 입은 남자.
 백발이 듬성듬성한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렸다. 눈이 독수리처럼 매섭고, 이마에 깊숙한 주름살이 패여 있었다.
 어째 오늘 한 번만 보고 말 것 같지는 않았다. 수한은 남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그래, 필요한 게 뭡니까?”
 남자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수한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답변했다.
 “헬기, 힘의 장갑, 투명 날개, 근원의 섬광, 마지막으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가 필요하네요. 어디, 하나하나 짚어 봅시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헬기가 왜 필요합니까?”
 남자가 의문을 표시했다.
 수한은 능란하게 설명했다.
 “잿빛 학살자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에는 아르마딜로처럼 단단한 갑옷에 의지하다가 갑옷에 피해가 누적되면 갑옷이 깨지면서 여러 형태의 괴물로 변형되는 겁니다. 하나하나가 매우 강력해서, 하급 이능력자로는 상대하기가 힘들지요. 그렇다고 고위 이능력자를 투입했다간 본체를 공격하는 게 힘들어지고요.”
 “그건 우리들도 알고 있습니다. 본론만 얘기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괴물들은 눈이 없어서, 소리와 진동으로 적의 위치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아하, 헬리콥터 로터음으로 괴물들을 유인하자?”
 “반만 맞추셨습니다.”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헬기로 괴물들을 유인해 봐야 얼마나 유인하겠습니까?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 헬기가 찢어질 겁니다. 여기서 힘의 장갑이 필요해집니다.”
 “힘의 장갑은 사장님 물건인데…….”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중얼거렸다.
 수한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AA급 이능력자 갈태수 사장이 목숨처럼 아끼는 다섯 개의 S급 장비.
 그 중 하나가 힘의 장갑이었다. 만약 갈태수 사장이 이걸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애초에 잿빛 학살자를 잡으라고 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맞습니다. 헬기에 사장님이 탑승하는 게 핵심입니다. 힘의 장갑을 이용해 괴물들을 밀어내고, 원거리 공격을 방어하면서 최대한 시선을 끕니다.”
 “공격은 어떻게 합니까?”
 “잿빛 학살자를 포함해서, KBB 계열 기계 괴수는 유독 지구의 재래식 병기에 약하지 않습니까? 대전차 미사일을 충분히 준비하고, 방어막 중화탄을 같이 사용하면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봅니다.”
 “그건 그렇지요. 중화탄은 비싸서 문제지 효과는 좋으니까…….”
 “그리고 투명 날개를 쓰면 대전차 미사일을 쏘는 인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KBB 계열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로는 투명 날개를 쓴 이들을 탐지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본체의 광선 폭격은 어떻게 막을 겁니까? 빛 계열 방어 이능이 없는 한, 광선 폭격은 막을 수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근원의 섬광을 사용하면 됩니다.”
 “근원의 섬광? 그건 일종의 섬광탄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천룡 공격대에서도 잿빛 학살자를 사냥할 때 근원의 섬광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근원의 섬광은 딱 5초 동안, 반경 5 킬로미터 안의 모든 빛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광선 무기가 무력화되거든요. 잿빛 학살자의 광선 포격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중년의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수한도 감을 잡았다.
 알바트로스에서도 잿빛 학살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강력하긴 하지만, 약점도 뚜렷해서 잡을 가능성이 높은 기계 괴수이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십 년이 넘게 잡히지 않은 이유가 뭘까? 지구의 공격대만이 아니라, 케르베스인들도 사냥을 시도했었는데?
 중년 남자가 수한을 보고 물었다.
 “이제 가장 큰 문제가 남았네요. 광폭화는 어떻게 할 겁니까? 그때는 대처 방법이 없는데요.”
 “간단합니다. 전면 철수합니다.”
 “예?”
 심사위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계 괴수 중, 까다로운 몇몇은 죽음 직전이 되면 특이한 기술을 발휘했다. 그걸 따로 광폭화, 혹은 폭주라고 부르는데, 잿빛 학살자의 경우엔 전신에서 회색 안개를 뿜어냈다.
 이 안개는 강력한 산성으로,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렸다. S급 이상의 방어 이능만이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더구나 가끔 쏘던 광선 포격을 무한으로 쏘아대니 방어하기가 극히 힘들었다.
 원거리 공격을 하려고 해도 힘들었다. 회색 안개로 막고, 광선 포격으로 요격해버리기 때문이었다.
 회색 안개와 광선 포격의 조합.
 KBB-874에 잿빛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주범이었다.
 수한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광폭화 때는 사장님만 들어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전면적으로 퇴각한 후, 회색 안개의 범위 바깥에서 기다립니다.”
 “아니, 사장님보고 잿빛 학살자와 1대 1을 하란 말입니까? 그것도 광폭화 상태인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사장님의 장비 5개를 생각해 보시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순간, 수한을 주시하던 중년 남자의 눈에서 빛이 뿜어졌다.
 그것도 잠시. 중년 남자가 느긋하게 말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잿빛 학살자는 사장님의 장비를 잘 활용하면 공략이 가능할 수도 있는 기계 괴수입니다. 하지만 그 위험도가 너무 큽니다. 저희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사장님이 돌아가시거나 중상을 입을 확률이 95% 이상입니다. 저희로선 감당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그 위험도를 확실하게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한은 승부수를 던졌다.
 중년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한 번 들어봅시다.”
 수한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승부수였다.
 이게 통하면 거의 합격한다고 봐야 했다.
 “케르베스인들은 흔히 다섯 개의 인종으로 나뉩니다. 그건 알고 계시지요?”
 “여기서 케르베스인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젊은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아까 다섯 가지를 꼽은 것 중에,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요? 케르베스 인들은 눈에 박힌 점의 색깔로 인종을 구분하는데, 특이하게도 각 인종마다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수한의 말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다섯 인종 중 노리베 족과 기앙카 족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간단해집니다. 노리베 족은 일정 지역을 진공 상태로 만들 수 있고, 기앙카 족은 실제와 같은 환상을 생성시키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진공 상태로 만들어 회색 안개를 없애고, 환상으로 광선 포격의 부담을 줄인다…….”
 “진공 상태면 사장님도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그 중앙에서 이동하셔야 하는데요.”
 “아니지. 사장님 허리띠에 S급 절대생존 이능 붙어 있는 거 몰라? 진공 상태 정도로는 사장님한테 위협이 안 돼.”
 “아,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알바트로스라서 가능한 작전이었다.
 노리베 족이 붙는다 해도, 관련 이능이 없으면 잿빛 학살자를 죽일 수가 없다.
 심사위원들은 한참 동안 수한의 계획에 대해 떠들었다. 가능성이 있네 없네 갑론을박하다가, 수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케르베스인들은 어떻게 끌어들일 겁니까? 그들은 우리와 교류가 없어서,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자기 행성에 있는 기계 괴수를 잡자는데 싫어할 종족은 없습니다. 기계 괴수의 부산물을 적당히 나눠주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드는 노력이 잿빛 학살자 사냥 준비에서 가장 핵심입니다.”
 수한의 말에 심사위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부산물을 독식하고 싶었나 보다.
 하긴 기계 괴수 한 마리만 잡으면 엄청난 액수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잿빛 학살자처럼 강력한 기계 괴수라면 더욱 그러했다.
 수한은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알바트로스의 연혁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고위급 변이체를 사냥했지만, 기계 괴수를 사냥한 것은 다른 공격대와 합동으로 사냥한 3번밖에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것도 주요 역할이 아니라, 보조에 불과했고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부산물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더 큰 것을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케르베스인들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주체는 어디까지나 알바트로스입니다. 동력핵은 당연히 알바트로스의 차지이고, 많은 부가효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부가효과라…….”
 “예. 당장 광폭화된 잿빛 학살자와 1대 1로 싸우는 사장님의 모습을 각종 언론에 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수십 년 묵은 기계 괴수를 처리했으니, 그 지역을 재개발해야 하는데 누가 우선권을 갖겠습니까? 다른 기업들과 연결만 시켜줘도 상당한 이권을 쥘 수가 있습니다.”
 “허어!”
 심사위원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한을 쳐다보았다.
 알바트로스는 현재 대한민국 공격대 중 10위 안에는 들지만 5위권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이능력자나 지원 요원을 뽑는 것도 아무래도 좀 힘들었다. 대부분 타이탄이나 백호를 지원하고, 그게 아니면 5위권 안의 공격대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더라도 잿빛 학살자처럼 강력한 기계 괴수를 사냥하는데 성공한다면?
 더군다나 사장이 1대 1로 잡는 듯한 장면을 홍보용으로 내보낸다면 어떨까. 이능력자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하여, 막대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5위권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알바트로스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중년 남자가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공략만 따지고 보면 훌륭한데,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네요. 수한 씨는 그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심사위원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처음부터 모두들 생각하고 있던 거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던 내용.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압니다.”
 “그게 뭡니까?”
 “비용 문제입니다.”
 남자가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수한 씨가 한 번 본인 계획의 문제점을 대답해 보세요.”
 “무게와 인원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원문을 열 때 무게에 따라 드는 자원의 양이 달라지니까요. 무게가 늘어날수록 필요한 자원의 양도 늘어나니, 기갑 장비는 거의 못 가져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예산 문제 때문에 실제로 써먹을 수는 없지만, 계획 자체는 좋았습니다. 제가 지원부에서 근무하면서 본 면접 중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짝짝짝!
 중년 남자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들도 하나둘 따라서 박수를 보냈다.
 뒤에 내용이 조금 더 있긴 하지만 자질구레한 이야기.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제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모쪼록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곧 그렇게 될 겁니다.”
 “아주 유익한 발표였습니다.”
 “이수한 씨라고 했지요? 이름을 기억해 두겠습니다.”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USB를 갈무리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발표 중에는 몰랐는데,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등줄기에도 땀이 배겨 축축했다.
 자연스럽게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수한은 심호흡을 하며 몸을 이완시켰다.
 면접이 끝났으니 이제 볼 일은 없다.
 내일과 모레, 남은 두 번의 면접만 대비하면 될 일이었다.
 간단히 커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냥 계획은 이미 완성시켜 놓았지만, 재차 검토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레벨이 올랐네?’
 면접에서 경험치를 많이 얻었나 보다.
 어느새 22 레벨이 되어 있었다. 습관처럼 능력 점수를 초능에 넣고, 기술 점수는 보류했다.
 수한은 남은 두 면접에서도 인상적인 발표를 했다.
 잿빛 학살자 급의 기계 괴수를 선정한 후,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공략을 선보였다. 심사위원들 모두 눈에서 광채를 빛내며 수한의 발표를 지켜보았다.
 비용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적 받긴 했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수한은 내심 세 개 공격대 모두 합격했다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합격 통지.
 동생들이 그걸 보고는 난리를 피웠다.
 “우와, 3개 다 합격이네?”
 “형! 축하해!”
 “하하, 고마워. 오늘은 외식이나 할까?”
 “좋아! 오늘은 내가 쏠게!”
 “너한테 무슨 돈이 있다고?”
 “나 이번에 과외해서 돈 많이 벌었는데?”
 “아, 그래?”
 저녁은 부대찌개를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일에 대해 의논을 했다.
 “난 출근 시작하면 당분간 집에 안 올 거야. 들어보니까 휴게실에서 숙식할 수 있다고 하던데, 거기서 먹고 자고 할 생각이야.”
 “너무 고생하는 거 아냐?”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어쩔 수 없지. 지하철에서 시간 다 보내게 생겼다. 그리고 돈 좀 모아서 이런 외곽 말고 강북에 전세 아파트라도 얻어야겠어.”
 “우리야 좋지만 괜찮겠어? 거기 비싸다던데.”
 “대출 끼어야지. 상급 공격대 지원 요원은 대출 받기 쉽다더라. 한도도 높고.”
 “이사 온 지 몇 년 안 됐는데 아쉽다.”
 “너 대학교 진학 생각하면 빨리 움직여야지. 지금도 명한이가 학교 다니느라 고생하고 있잖아.”
 대충 전세 가격을 알아보니 강북이면 2억 정도를 잡아야 했다. 오래된 빌라라고 해도 1억을 훌쩍 넘겼고.
 어차피 지금 있는 돈으로는 이사할 수가 없었다. 몇 년 더 돈을 모으거나, 대출을 끼는 수밖에.
 “그럼 언제 이사할 거야?”
 “너 수능 끝나면 바로 갈 거야.”
 “형 직장 근처로 가는 게 좋지 않아?”
 “여의도 근처? 하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의도는 대한민국의 노른자위 중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땅이었다. 거기 근접하거나, 연결된 지하철만 있어도 땅값이 훌쩍 솟구쳤다.
 “그런데 어디로 갈 거야? 세 군데 다 합격했다며.”
 “알바트로스로 갈 거야.”
 수한은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알바트로스.
 해모수나 워소드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다. 전력도 약했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더 높았다.
 알바트로스를 창립한 5명의 AA급 이능력자들 간 사이가 매우 끈끈하다는 게 그 첫 번째.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계 행성 진출이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었다. 해모수와 워소드도 장점이 있지만, 지원 요원으로서 외계 행성에 더 자주 나가려고 하면 셋 중에선 단연 알바트로스가 최고였다.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형 하고 싶은 대로 해.”
 수한은 해모수와 워소드에 정중하게 이메일을 보냈다.
 기회를 주어 감사하고,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거였다.
 출근 전날, 명한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명품은 아니지만 적당한 양복과 구두, 넥타이를 새로 맞췄다.
 업무용으로 노트북도 하나 구매했다. 그래픽 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사양이었다. 동작 감지기가 달린 것으로 샀더니 수백만 원이 우습게 깨졌다.
 그러는 사이 7월 1일이 되었다.
 2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위해, 수한은 설악산으로 떠났다.
 신입사원 연수
 
 대부분의 공격대는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몇 주간의 연수를 시행한다.
 과정은 다양했다.
 각종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고, 심층 면접을 본다거나, 극기 훈련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알바트로스의 신입사원 연수는 설악산의 한 연수원에서 이루어졌다.
 상당히 큰 규모였다. 수영장은 물론, 야외 골프장 및 다양한 체육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에 십(十)자 형태로 만들어진 건물이 유독 특징적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창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수한입니다.”
 수한은 주변 사람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함께 입사하는 동기들은 대략 100명.
 나이대가 꽤 다양했다. 수한처럼 20대 초반도 보이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입사 부서는 거의 결정된 상태.
 전투부, 총무부, 인사부, 지원부, 정보부, 홍보부, 가공부, 연구부, 영업부, 구매부 등등.
 수한은 지원부에 속했다.
 방금 인사를 나눈 창희도 지원부라고 했다.
 “이야, 그럼 같이 원정 나갈 때도 있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창희는 참 말이 많았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떠벌떠벌 별 이야기를 다했다.
 알바트로스 같은 상급 공격대 소속이라고 하면 클럽에서 아가씨들이 뻑 간다느니, 외계 행성 원정 다니면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느니, 죽기 전에 타이누 행성의 세르엘 종족 아가씨를 한 번 품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시껄렁한 얘기였다.
 수한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군대 복무 중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부류.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들과는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수한 자신이 여자와 만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일까?
 반응이 없자 창희도 시들해졌다. 다른 사람을 붙잡고는 또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수한은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칼이나 창, 그리고 울긋불긋 치장된 활 같은 것을 자랑스럽게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능력자.
 저 화려한 무기들은 이능력자만이 품고 있는 어떤 힘을 효과적으로 표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육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소실되기 시작한다. 때문에 많은 이능력자들이 근거리 무기를 사용했다. 원거리 무기를 쓴다 해도 활이나 투척 무기를 주로 쓰지, 총을 사용하는 이능력자는 드물었다.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효율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속성 부여 같은 이능을 쓰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대개는 그러했다.
 이능력자들을 살펴보는데,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흰 티셔츠에 흰 청바지를 입은 여자.
 언뜻 보기에도 굉장한 미녀였다. TV 속 연예인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까만 머리칼이 비단결처럼 출렁였다. 잘록한 허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후광이 어리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에서 빛이 났다.
 윤새미.
 주위에서 B급 이능력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번개 구현이 특기라던가.
 원래는 다른 중소 규모 공격대 소속이었는데, 이번에 옮겼다는 것이다.
 “장난 아니네…….”
 미모와 능력을 둘 다 갖춘 여자.
 새미를 보는 남자 직원들이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수한도 다소 혹했지만, 이내 눈을 돌려 버렸다.
 여자에 쏟을 힘이 있다면,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2주 동안 여러분의 교육을 책임질 기획실장 김규민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되자, 말끔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있어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을 풍겼다.
 규민은 연수 일정을 설명했다.
 오늘 하루는 별 것이 없었다. 갈태수 사장이 훈화를 하고, 2주 간 함께 하게 될 팀을 짠 후 숙소를 배정한다.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부터였다.
 “2주일 동안, 여러분은 공격대 하나를 운영하게 됩니다.”
 규민이 허공에 손을 젓자 강당 앞의 스크린에 ‘모의 공격대 운영 게임’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일종의 경영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 계신 102명을 20개의 팀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각 팀은 1억 코인의 초기 자본금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이 1억 코인으로 인재를 모으고, 공격대를 구성하여 기계 괴수나 변이체를 사냥해야 합니다. 사냥을 성공한 다음 그 시체를 해체하여 판매해서 수익도 얻어야 하고요. 그 과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순위를 결정합니다. 경영 게임이지만 각 과정은 미니 게임을 통해 그 효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싶은 분은 설명서를 잘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수한은 준비된 설명서를 차분히 읽어보았다.
 연수원 컴퓨터에 가상의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수십 개의 공격대가 경쟁하며 성장하는 가운데, 다섯 명이 힘을 합쳐 공격대를 창설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팀마다 다른 가상 세계에서 경영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하긴 같은 세계에서 경영을 하다간 방해 공작이 판을 칠 터였다. 나중에 분란의 씨앗이 될 지도 몰랐다. 협동심을 길러야 할 연수에서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것이다.
 규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수 기간 동안 우수한 성적을 얻은 팀에는 고급 한우 세트, 굴비 세트, 백화점 상품권 같은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부디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상품 목록을 본 수한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1등을 하면 개인 당 수십만 원에 달하는 상품을 받는다. 저걸 받으면 동생들과 며칠 동안 배가 터지게 파티를 벌일 수 있었다.
 일정 설명이 끝나고 갈태수 사장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기껏해야 20대 중반의 나이.
 본인을 상징하는 은백색 보호복을 입고 있었다. 왼손에 찬 장갑이 황금빛 광채를 뿌리고, 허리에 찬 붉은 허리띠에서 아지랑이가 폴폴 올라왔다.
 젊은 나이지만 거대 공격대를 잘 이끌고 있는 남자였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좌중을 순식간에 휘어 감았다.
 “우리 알바트로스의 가족이 된 여러분, 반갑습니다. 부족하나마 사장직을 맡고 있는 갈태수입니다.”
 훈화는 짧았다. 갈태수 사장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끝을 내고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이젠 팀을 정하는 시간.
 방식은 간단했다.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불투명 상자 안에 놓인 공을 집으면 된다. 공에 1부터 20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는데, 그 숫자가 자신의 팀이 된다.
 추첨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중간에 이능력자 두 명이 8팀에 배정되었다. 더욱이 그 중 새미까지 끼어 있어, 8팀을 보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싸, 8팀이다!”
 창희가 쾌재를 부르며 8팀 자리로 이동했다.
 새미의 옆에 자리를 잡더니 뭐라고 속삭이는 게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드디어 수한의 차례가 되었다.
 “이수한 씨, 앞으로 나오세요.”
 앞으로 나가 상자에 손을 넣었다. 대충 손에 잡히는 공을 꺼냈는데, 2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사회자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 씨는 20팀입니다. 20팀 자리로 가서 앉으세요.”
 20팀에는 이미 3명이 채워져 있었다. 신입사원 수가 약 100명이니, 이제 1명만 더 오면 다 차는 것이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최동휴라고 합니다.”
 “방유미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권준이라고 합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동휴는 뚱뚱한 몸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방유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구불구불한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권준은 작업복을 입고 홀로그램 생성기가 달린 손목시계를 찬 채 눈동자를 굴렸다.
 수한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5번째 팀원이 결정되었다. 멸치처럼 깡마른 반면, 키가 무척 커서 부지깽이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정지훈.
 그 사람이 20팀으로 결정되자마자, 권준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휴! 우리 팀은 이능력자 한 명도 없네. 보니까 8팀은 2명이나 있던데!”
 “이능력자가 없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괜히 이상한 사람 오면 곤란하잖아요? 그리고 이능력자가 필요한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설명서 보니까 모의 사냥 체험은 이능력자들이 있으면 더 쉬울 것 같아요. 컴퓨터한테 맡기면 부상자도 잘 발생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수동으로 하면 그 확률을 줄일 수 있더라고요. 필요한 전력도 줄어들고.”
 이능력자들만 모의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실전을 겪어본 이능력자들이 더 유리할 거란 사실은 뻔한 사실이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은 다른 분야에서 이점을 챙길 터. 그걸 잘 이용해야 했다.
 지훈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지훈이라고 합니다. 연구부에 지원했고, 다행스럽게 올해 합격했습니다.”
 5명이 채워졌으니, 다른 사람이 더 들어올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좀 더 심층적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동휴는 영업부, 유미는 정보부, 권준은 가공부였다. 모두 겹치지 않아서, 아쉬운 대로 구색은 갖춘 셈이다.
 추첨을 계속 지켜보았다.
 이번 분기에 입사한 신입사원 중 이능력자는 총 12명. 그 이능력자들이 20개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능력자를 확보한 팀은 총 10개.
 8팀과 11팀이 2명씩 데려갔다. 8개 팀은 1명씩 확보했고, 나머지 10개 팀은 손가락만 빨았다.
 다음은 방 배정 차례.
 20팀 팻말을 든 사람이 다가왔다.
 “20팀이시죠? 절 따라오세요.”
 팀 별로 방 2개씩 배정되었다.
 방마다 2층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었다. 혼성으로 잘 수는 없어서 남자 넷이 방 하나를, 유미 혼자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바로 모의 공격대 경영이 시작되었다.
 동휴가 팀원들에게 속삭였다.
 “일단 대원부터 모아야겠는데요?”
 “그런데 1억 코인이면 정말 적어요. 2주 만에 제대로 된 공격대를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하는 데까지 해봐야죠.”
 “흠, 제 생각에는 일단 소규모로 시작해서 차례차례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초기부터 A급, B급 이능력자를 사들였다간 죽도 밥도 안 돼요.”
 “어떻게 한다……”
 “일단 첫 번째 목표를 정하죠. 처음부터 기계 괴수를 잡을 수는 없잖아요? A급 변이체도 그렇고. 약한 놈을 안정적으로 잡고, 해체해서 부산물을 얻은 다음 팔아치우는 겁니다.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 초기 대원들도 성장할 거예요.”
 수한은 설명서를 보며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처음에는 낮은 능력치를 가진 대원도 경험을 쌓으면 능력치가 상승한다. 무작정 비싼 값을 치르고 상급 대원을 데려올 필요는 없었다.
 팀원들이 설명서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 씨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D급은 너무 낮고, C급 변이체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해볼까요? C급이면 이능력자 다섯이면 잡는다던데.”
 “제 생각은 달라요. D급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요?”
 “D급이요? 너무 약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능력자 없이도 사냥이 가능하죠. 무엇보다 지구 내에서 찾기가 쉬워요. C급은 외계 행성으로 나가야 해요.”
 “아…….”
 “D급을 잡으면서 돈을 버는 동안, 우리 중 몇 명이 C급과 B급 변이체가 풍부한 곳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수호자 연맹에 신고를 해서 차원문 사용 허가를 얻어야 해요. 원주민들과도 이야기를 끝내야 하고.”
 “그러네요. 그런 절차가 있었네요.”
 수한은 팀을 둘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지구팀과 외계팀.
 외계팀은 적당한 사냥감이 있는 외계 행성을 물색한다. 사냥에 앞서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동안, 지구팀은 공격대를 구성한다. D급 변이체를 잡으며 돈을 벌고 인재를 영입하여 다가올 외계 행성 진출에 대비한다.
 팀원들 모두 찬성했다. 수한과 동휴, 권준은 지구팀을 맡고 유미와 지훈은 외계팀을 맡기로 했다.
 동휴가 수한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원부 합격하셨다고 하셨죠? 역시 대단하시네요. 꼭 지휘관 같습니다.”
 “하하, 지휘관은요. 면접 대비해서 사냥 계획을 짜다 보니 알게 된 것들입니다. 자, 다른 팀들도 움직이고 있으니 슬슬 움직이죠.”
 외계팀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의 공격대 경영은 앉은 자리에서 모든 일이 가능하지 않았다. 연수원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중앙관은 공격대 경영, 동관은 외계 행성 정보 탐색, 서관에서는 모의 사냥, 남관에서는 사체 해체 및 부산물 가공, 북관에서는 연구 및 장비 생산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보를 가져오려면 시간 꽤나 걸릴 터.
 지구팀 셋이 머리를 맞댔다.
 “처음에는 몇 명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D급 변이체는 요원으로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좀 위험하니까 D급 이능력자 1명, 요원 3명으로 짝을 지어서 시작해보죠.”
 “나중에 C급 잡으려면 C급 이능력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보니까 동급 변이체를 3번 잡으면 승급한다는 법칙이 있네요. 그걸 활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외계팀들 돌아오기 전에 그게 가능할까요?”
 “뭐, 안 되면 부산물 팔아서 번 코인으로 구입하면 되니까요. 참, 해체 담당자랑 판매 담당자도 구해야겠네요.”
 “1팀만 돌리는 것보단 3팀 정도 돌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D급 이능력자 3명과 요원 9명을 구입했다. 그리고 회계사 1명과 경비 1명, 분석관 1명, 해체자 2명, 상인 2명을 확보했다. 일단 최소한의 구색만 갖춘 것이다.
 대원 말고도 살 것은 무척 많았다. 사옥과 차량을 먼저 구매했다. 다음으로는 이능력자와 요원에게 줄 무기도 샀다.
 그것만으로 5천만 코인이 날아갔다. 나머지는 외계 행성 진출을 위해 아껴두었다.
 “D급 변이체는 특별한 계획 없이 사냥이 가능합니다. 모두 개마고원으로 이동하죠.”
 “우리 셋 다요?”
 “자동으로 할 수는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따로 할 것도 없으니 처음에는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러네요.”
 사냥은 연수원 서관에서 이루어진다.
 연수원 중관의 컴퓨터에서 20팀의 공격대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그런 후 서관으로 가서 컴퓨터에 20팀 도착을 입력했다. 컴퓨터가 빛을 내더니, 모의 사냥 체험기 3개에 불이 들어왔다.
 외계 행성 사냥이라면 이동에도 시간이 걸리지만, 지구 내 사냥이라 이동 시간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설명서를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권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잘 할 수 있을까요?”
 “D급이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총알도 통하니까요. 요원들이 지원사격 하면서 잡으면 충분해요.”
 세 D급 이능력자는 각각 거력, 강체, 신속 계열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근접 무기로 무장했으니, 그들이 전면에 나서고 요원들이 지원하면 될 터였다.
 시작에 앞서 둘에게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셋 다 동일한 변이체를 선택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일한 전략을 사용하기로 했다.
 수한은 체험기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장갑과 고글을 착용한 뒤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썼다. 원형 발판 위에 올라서 허리를 고정한 뒤, 동작 감지기를 작동시켰다.
 선택한 무기는 총.
 모의 사냥 체험 시에는 동원한 대원 중 1명을 대신해 참가하게 된다. 자동적으로 지휘관으로 설정되며, 대원들을 지휘하여 사냥을 성공시켜야 했다.
 고글에 불이 들어왔다.
 익숙한 개마고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한은 무장 상태를 점검했다.
 대물 저격총과 자동 산탄총, 45구경 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룬 문자 단검도 하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저 앞쪽에, 늑대를 닮은 변이체 하나가 보였다.
 머리가 두 개에, 전신이 털 대신 비늘로 덮여 혐오스럽게 생긴 변이체.
 수한은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신호를 하면 오른쪽 머리를 저격한다. 최대한의 화력을 다 쏟아 붓도록. 그 후 산탄총으로 놈의 다리를 노린다. 기동력을 박탈한 후, 다시 저격으로 끝을 본다.”
 “전 뭘 하면 되겠습니까?”
 “너는 놈의 접근만 막아라. 네 이능이 순간 강화니까, 그 정도는 가능할 거다.”
 “알겠습니다.”
 전투는 순조롭게 돌아갔다.
 대물 저격총은 D급에게는 충분히 통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신중하게 사격하자, 한 발은 빗나가고 두 발이 박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명타에 가까웠다.
 늑대가 울부짖으며 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산탄총 공격으로 다리를 날린 후 저격으로 끝장냈다. 중간에 몇 번 아찔한 순간이 있었으나 이능력자가 막아서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수한은 사냥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둘은 사냥을 끝내지 못한 듯했다. 수한은 밖에서 잠깐 앉아 기다렸다.
 몇 분 뒤 둘이 체험실을 벗어났다.
 그런데 권준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하죠? 요원 둘이 부상을 입었는데.”
 “부상이요? 어쩌다가요?”
 “산탄총으로 변이체 다리 두 개는 박살냈는데, 다른 쪽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요. 변이체의 공격을 허용해 버렸습니다.”
 “이런…… 동휴 씨는 어떠셨어요?”
 “전 다행히 별 일 없이 해치웠습니다.”
 “일단 중관으로 돌아가죠. 후유증이 안 남아야 할 텐데요.”
 서둘러 중관으로 돌아가 부상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둘 다 경상 판정을 받았다. 현실 시간 하루면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권준이 뺨을 긁적였다.
 “전 아무래도 모의 사냥에는 안 맞는 것 같은데, 그냥 해체에 전념하는 게 어떨까요? 해체도 미니 게임이라서 실제로 해본 사람이 유리할 텐데요.”
 “그게 낫겠습니다. 그럼 준 씨가 해체를 다 끝내면 저는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분담하는 게 더 낫겠네요.”
 “수한 씨가 서관에서 사냥을 아예 전담하시죠. 제가 남관하고 중관을 오가면서 영업도 하고, 공격대가 귀환하는 대로 사냥을 보내겠습니다.”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다.
 수한은 서관으로 다시 이동했다.
 요원 둘이 빠져서 팀이 3개에서 2개로 줄었다. 각각 이능력자 1명과 요원 4명, 이능력자 2명과 요원 3명으로 된 팀이었다.
 차례로 변이체 사냥을 끝냈다. 복귀시킨 다음 중관의 동휴가 또 사냥을 보내고, 수한이 다시 변이체를 사냥했다.
 외계 행성에서 사냥한다면 이동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 안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중관에서 이동 명령을 내린 즉시 서관에서 사냥을 시작하는 게 가능했다.
 [수한 씨? 이제 중관으로 오세요. 외계팀이 복귀했습니다.]
 어느새 한 나절이 다 가 있었다.
 처음 마련했던 3명의 D급 이능력자는 이제 C급으로 승급했다. 오후부터는 C급 변이체 사냥이 가능할 터였다.
 20팀은 중관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모였다. 뷔페식으로 된 음식들을 양껏 퍼서 먹으며, 외계팀의 성과에 대해 들었다.
 “저희가 찾은 곳은 E27이라는 행성이에요.”
 유미가 자료를 나눠주었다.
 지구와 비슷한 기후의 행성이었다. 육지와 바다 비율도 3:7로 비슷했고, 특별한 보조기 없이 호흡이 가능했다.
 기계 괴수도 몇 마리 있고, 변이체가 아주 많았다. C급부터 S급까지 어디서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안타까운 점은 원주민의 세력이 너무 약하다는 거였다. 겨우 몇 개 정도 남은 도시를 거점으로 간신히 생존하고 있었다. 그나마 기계 괴수들이 도시를 향해 다가가고 있어 언제 멸망할지 몰랐다.
 “좀 위험한데…… 다른 곳은 없습니까?”
 “몇 군데 더 뽑아오긴 했는데, 생각 외로 행성을 선택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일단 호흡이 가능해야 하는데 거기서 거의 탈락하고, 가끔 호전적인 원주민들도 있어서요. 그나마 여긴 우리한테 호의적이어서 쉽게 진입 허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진출한 공격대도 없고요.”
 하긴 좋은 행성은 기존 공격대들이 이미 진출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느니, 아예 새로운 곳에서 출발하는 게 나을 것이다.
 최소한 사냥하기에는 좋은 곳이니까.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요. 점심 먹고 바로 허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C급 이능력자 둘을 보강하고 사냥을 나가야겠습니다.”
 “좋아요. 참, 코인은 얼마나 벌었어요?”
 유미가 묻자, 동휴가 안경을 손끝으로 들어올렸다.
 “준 씨가 완벽하게 해체해주신 덕에 쏠쏠하게 벌었습니다. 지금까지 D급 변이체 9마리를 잡았는데 그걸로 번 게 모두 합쳐서 1600만 코인이나 돼요.”
 “하하, 그게 어디 저 혼자 한 일이겠습니까? 동휴 씨가 영업을 잘 해줘서 그렇죠.”
 “어? D급이면 100만 코인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동휴가 으쓱거리며 설명했다.
 “그건 컴퓨터가 자동으로 했을 때 얘기고, 사람이 직접 하면 미니 게임을 하게 되는데 그걸 완벽하게 하면 보너스를 좀 받습니다. 3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우와! 그럼 두 분이 해체도 완벽하게 하고, 영업도 완벽하게 하셨다는 거네요?”
 “대단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수한을 비롯한 팀원들이 감탄하자, 권준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알바트로스에서 채용할 정도면 그 경력이나 실력이 상당할 것이다. 뭣도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지는 않겠지.
 슬슬 신입사원 연수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각 개인의 특기와 능력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공격대 운영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격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이런 복잡한 연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다른 팀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시는 분 계세요?”
 “아, 제가 좀 봤어요.”
 지훈이 입을 열었다.
 “몇 개는 벌써 외계 행성 진출했어요. 이능력자끼리만 넘어가서, C급 변이체 사냥한 것 같아요.”
 “우리도 서둘러야겠네요.”
 “그러죠. 다 드셨으면 일어날까요?”
 마음이 바빠졌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오후 동안 C급 변이체를 2번 잡는데 성공했다. 대원들이 E27 행성을 오가느라 시간을 보낼 때면 D급 이능력자들을 육성했다. 요원들도 사냥에 끼워 능력을 올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격대 사옥도 계속해서 확충했다. 처음에는 창고와 기본 숙소가 전부였는데, 이젠 제법 규모가 커졌다.
 덕분에 1일차는 C급 이능력자 6명, D급 이능력자 4명, 요원 15명으로 막을 내렸다. 일반 직원도 숫자를 더 불려서, 이젠 공격대 총 인원이 40명에 육박했다.
 저녁부터는 모의 경영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강당에 모여 중간 점검을 했다.
 “모두 공격대는 잘 운영해보셨습니까?”
 김규민 실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질문을 했다.
 조용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규민이 말을 이었다.
 “쉽지 않았을 겁니다. 굉장히 간략화한 프로그램이긴 합니다만, 공격대 운영 자체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시행착오를 겪는 팀도 많았습니다. 어디, 현재까지 팀별 성적을 확인해볼까요?”
 강당 스크린에 1팀부터 20팀까지의 점수가 공개되었다.
 점수는 공격대가 보유한 이능력자와 요원의 숫자 및 능력, 일반 사원들의 수, 사옥과 여러 장비, 그리고 진출한 외계 행성과 재정 상태 등을 종합하여 계산했다.
 20팀은 403점.
 수한은 다른 팀들의 점수를 훑었다.
 최하 150점에서, 높게는 430점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유미가 탄성을 질렀다.
 “우리가 3등이에요!”
 “1등이랑 겨우 30점 차이 나!”
 “잘하면 1등 할 수도 있겠습니다.”
 8팀이 431점으로 1등, 11팀이 420점으로 2등을 달리고 있었다.
 둘 다 이능력자가 두 명씩 포함된 팀이다.
 수한은 금방 그 이유를 꿰뚫어 보았다. 권준이 변이체 해체를 완벽하게 해서 코인을 더 많이 번 것처럼, 그들이 모의 사냥을 전담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실력을 살려, 이능력자 대원 한둘로 사냥을 성공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격차는 점수 경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이대로는 곤란한데…….’
 첫날이니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차이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컸다.
 수한의 생각은 다음날 바로 현실화되었다.
 이틀째 중간 점검에서 20팀은 4위로 밀려났다. 1, 2위와의 점수 차이는 70점 이상으로 벌어졌고 5위와의 점수 차이는 고작 3점에 불과했다.
 권준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오전 오후 내내 죽어라 해체만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죠?”
 “10분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다섯 명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게 나오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연수원에서 거둔 성적이 공격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왕 경쟁에 나선 거 이기고 싶은 게 사람 심리 아닌가. 값비싼 상품도 걸려 있고.
 수한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승부수를 던져야겠습니다.”
 “승부수라뇨?”
 “지금처럼 가면 우리가 하위권으로 밀려날 게 뻔합니다. 이능력자가 있는 팀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완전히 밀려나기 전에, 단판 승부를 겁시다. 기계 괴수를 잡죠.”
 “기계 괴수를요?”
 팀원들이 깜짝 놀랐다.
 기계 괴수는 변이체와는 그 격이 달랐다. S급 이능력자 몇 명에 AA급 이능력자 십여 명, 그리고 A급 이능력자 수십 명을 확보해야 도전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을 뒷받침할 요원들도 수백 명이 필요했다. 그러고도 화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소형 미사일이나 폭탄도 대량으로 준비할 때가 많았다.
 그것도 소형 기계 괴수일 때 이야기.
 지금 성장 속도로 보면 모의 경영 시작 10일은 더 지나야 기계 괴수 공략이 가능할 터였다.
 “아,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닙니다. 바로 공략을 했다간 힘도 못 써보고 전멸할 테니까요. 일단 자리부터 옮기죠.”
 개방된 강당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수한은 가방에서 USB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노트북에 USB를 꽂고, 그 안의 파일을 보여주었다.
 “이게 뭐에요?”
 “제가 면접 때 사용했던 사냥 계획입니다. 알바트로스를 대상으로 짠 거지요. 알바트로스 정도의 공격대는 보통 A급이나 AA급 변이체를 잡는데,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기계 괴수를 사냥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S급 이능력자 하나도 없이요?”
 “예. 계산해 보니까 앞으로 닷새면 AA급 5명은 만들 것 같은데, 그때 기계 괴수를 잡아 보지요.”
 수한은 유미와 지훈에게 한 가지씩을 당부했다.
 먼저 유미에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외계 행성에 분포한 기계 괴수의 정보를 모아달라고 했다. 일단 모은 정보는 저녁에라도 검토할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지훈에게는 내일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원을 모아, 변이체 연구를 시작할 것을 부탁했다. 나중에 연구소에서 이능력자가 쓸 이능 장비를 제작하기 때문이었다.
 양적인 팽창을 위주로 하는 다른 팀들과는 다른 방향.
 “괜찮을까요?”
 “괜히 늦어지는 거 아닌지…….”
 “음, 마음에 걸리시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가도 좋지요. 그래도 꼴찌는 안 할 테니까요.”
 잠깐 의논을 한 뒤, 수한이 제안한 방법대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잃을 건 없었다. 그저 게임에 불과했다. 잘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다음날부터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유미는 동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외계 행성의 정보란 정보는 모두 긁어모았다. 작전이 가능한 행성의 기계 괴수를 몽땅 가져와 수한에게 넘겼다.
 지훈은 연구에 골몰하는 한편 전체적인 일정의 조율을 맡았다. 귀환한 대원들을 수한과 의논해가며 즉각 파견하느라 바빴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권준은 이를 악물고 해체 작업을 했다. 다른 사람과 교대하거나 쉬면 버는 코인이 훨씬 줄어들 테니 좀 무리를 했다.
 그렇게 부산물을 만들어 놓으면 동휴가 모조리 팔아치웠다. 가공부와 영업부에 채용된 둘이 합작을 하자, 버는 코인이 무시무시하게 불어났다.
 수한은 이를 악물고 모의 사냥을 수십 번씩 반복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에게 맡기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가끔 대원들이 부상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수동 사냥을 했다.
 힘들어도 견딜 만 했다. 워낙 체력을 올려놓아서, 이 정도로는 쉬이 지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일을 진행하면서 레벨과 능력치가 오르고 있었다.
 연수 전에는 22레벨이었는데 지금은 24레벨이 되었다. 체력과 민첩, 감각이 1씩 오르고 의지와 위엄은 2씩 올랐다.
 작전 계획 기술도 상승했다. 모의 사냥이 영향을 미쳤는지, 새롭게 전투 지휘라는 기술도 생겼다. 가상의 대원들을 지휘하며 사냥에 골몰한 까닭이었다.
 준비기간으로 잡았던 닷새가 지났다.
 그 동안 20팀의 순위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하루에 한 계단, 지금은 9위에 불과했다. 처음에 3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하락한 것이다.
 “내일, 기계 괴수를 사냥하겠습니다.”
 수한은 팀원들 앞에서 선언했다.
 수백 마리 기계 괴수의 정보를 이 잡듯이 뒤진 끝에, 적당한 기계 괴수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알바트로스의 잿빛 학살자 사냥 계획처럼, 다양한 준비물이 필요했다. 그 준비물을 마련하는데 오전 한 나절을 다 쓸 작정이었다.
 “내일 오후에는 모두 사냥에 참여해 주세요. 저 혼자서는 역부족입니다.”
 “긴장되네요.”
 “기계 괴수 사냥에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요?”
 팀원들의 질문에, 수한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1위로 올라가는 거죠.”
 다음날 아침부터 20팀은 잽싸게 움직였다.
 수한이 요구한 물건들을 갖추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행정적으로 복잡한 절차를 몇 개나 밟아야 했다.
 점심시간 직전에 모든 준비를 끝냈다. 공격대 이동 명령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갔다.
 유미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었다.
 “휴우, 긴장되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어제 말씀드린 대로만 하면 됩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모의 사냥이라도 기계 괴수와 싸운다고 하니 손이 떨리네요. 죽을 때까지 시체만 만질 줄 알았는데…….”
 팀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했다.
 점심시간은 금방 끝났다.
 20팀의 공격대가 이동을 완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그때까지 다섯은 커피를 마시며 사냥 계획을 몇 번이나 점검했다.
 이윽고 2시가 되었다.
 서관의 컴퓨터에 20팀 사냥 개시를 입력하고, 각자 체험실로 들어가 장비를 착용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수백 명의 사진이 떠올랐다.
 이번 사냥에 참가하는 20팀의 공격대원들.
 수한은 그 중 가장 첫 번째 사진을 골랐다.
 AA급 거력 계열 이능력자.
 첫날 수한과 D급 늑대 변이체를 잡았던 이능력자였다. 어느덧 20팀 공격대를 대표하는 이능력자로 성장한 것이다.
 고글이 작동하며, 외계 행성의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암석들이 지천에 깔려 있고, 초록색 길쭉한 버섯이 나무처럼 뻗어 있었다. 세 개의 태양이 줄 지어 푸른 하늘 위를 질주했다.
 그리고 기계 괴수.
 언뜻 보면 황소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철탑 같은 다리가 육중한 몸을 지탱하고, 늠름한 뿔이 우뚝 솟아 있었다. 등에는 뾰족한 칼날이 삐죽삐죽 박혀서 시퍼런 빛을 뿜었다.
 살짝 벌어진 입에 보이는 광선 포대가 위협적이었다. 다리에 점박이처럼 언뜻언뜻 보이는 구멍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수한은 팀원들이 모두 접속을 마쳤는지 확인했다.
 [다 들어오셨습니까?]
 [전 들어왔어요!]
 [들어왔습니다.]
 [우리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잘 해봅시다!]
 [파이팅!]
 [우리도 1위 먹어보자고요!]
 팀원마다 선택한 대원의 종류가 달랐다.
 수한과 동휴, 지훈은 AA급 이능력자, 권준은 견인포 포반장, 유미는 수석 폭탄 전문가.
 이 중 수한과 권준, 유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후!”
 수한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검을 들어 올리자 검신에서 푸른빛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수한이 선택한 이능력자만이 아니고, 동휴와 지훈이 선택한 이능력자들도 동일한 검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부터 발전시킨 연구소에서 만든 검. S급이 없는 20팀의 공격대에게 필수적인 물건이었다.
 공격을 시작하기 전, 공격대 재편성부터 했다.
 이능력자와 요원들을 세 갈래로 나누었다. 청광검을 쥔 수한과 동휴, 지훈을 기준으로 삼등분한 것이다.
 권준이 조종하는 견인포는 으슥한 곳에 배치했다. 트럭으로 이동시켜야 해서 시간이 꽤나 걸렸다.
 공격대 전개가 완료되었다.
 [시작하죠.]
 수한은 검을 들었다.
 손에 힘을 주자 검에서 빛나는 청광이 짙어졌다. 시야 저 쪽에서도 청색 빛이 번뜩였다. 삼각형 모양으로 괴수를 포위하고 선 동휴와 지훈이 검을 발동시킨 것이다.
 우우우웅.
 괴수가 위협을 느꼈나 보다.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구멍들이 일제히 열리며, 동그란 물체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한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공격 개시!]
 슈슈슝! 펑펑!
 요원들이 일제히 휴대용 미사일을 꺼내 날렸다.
 신기술이 적용되어 가볍고 조작도 편한 보병용 미사일이었다. 위력도 준수했다. 거침없이 날아가 파편과 화염을 쏟아냈다.
 그 중 특이한 탄두가 몇 개 있었다.
 터진 순간, 액체 같은 것을 잔뜩 뿌린 탄두.
 방어막 중화탄이었다.
 기계 괴수의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어렸다. 대부분의 폭발을 막아냈지만, 액체를 뒤집어쓴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일순 약점을 드러냈다.
 화염과 파편이 기계 괴수의 몸체를 바로 두들겼다.
 그러나 덩치가 너무 컸다.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수한은 냉철한 눈으로 기계 괴수를 노려보았다.
 [권준 씨. 제가 신호하면 바로 쏘세요. 동휴 씨, 지원 씨도 준비하세요.]
 [예!]
 어느 순간, 기계 괴수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전신에 난 구멍에서 둥근 쇠구슬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쏟아졌다.
 [지금입니다!]
 다시 미사일들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숨어 있던 견인포가 불을 뿜었다.
 무려 155mm 구경.
 거대한 포탄이 눈 깜짝할 사이 기계 괴수에게 돌진했다. 중화된 방어막을 뚫고, 정확히 기계 괴수의 머리에 꽂혔다.
 꽈앙!
 기계 괴수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폭발과 함께 괴수의 머리가 홱 젖혀졌다.
 동시에 푸른 광선 세 줄기가 화려하게 뻗어나갔다. 막 구멍을 벗어나던 쇠구슬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가자, 쇠구슬들은 추진력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몇 번 웅웅대며 바닥을 기더니, 쾅쾅 폭발하며 금속 파편을 주위에 뿌렸다.
 저걸 뒤집어썼으면 20팀의 공격대는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다. 청광검을 준비해 온 보람이 있었다.
 치이익! 치익!
 갑자기 기계 괴수의 몸에서 흰 김이 피어올랐다.
 두 눈이 번뜩이더니, 청광검을 치켜든 수한을 노려보았다.
 [왼쪽으로 피해!]
 수한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쿵! 쿵쿵쿵쿵쿵!
 기계 괴수가 수한을 향해 돌진했다.
 그 거대한 몸이 달려오자 세상이 뒤집어질 듯 흔들렸다. 흙더미가 푹푹 비산하는 게 꽤나 위협적이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수한은 등에 멘 추진 장치를 작동시켰다. 불꽃이 뿜어지며 하늘 높이 뛰어오르자, 기계 괴수는 덧없이 수한을 지나쳤다.
 기계 괴수가 입을 벌렸다.
 그 안에 설치된 광선 포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대 앞에 빛이 어렸다.
 바로 그 순간 미사일이 기계 괴수를 뒤덮었다. 멀리서 꽝 하고 대포 소리도 들렸다.
 포탄은 정확히 기계 괴수의 머리를 때렸다. 강렬한 충격에 머리가 틀어지며 붉은 광선이 하늘 위로 뻗어나갔다.
 [유미 씨! 폭탄!]
 [네!]
 기계 괴수가 자리를 이탈한 사이, 유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오토바이 위에는 폭탄 가방이 가득 실려 있었다.
 유미는 기계 괴수 자리 아래에 폭탄 가방을 빠르게 매설했다. 몇 명의 폭탄 전문가가 그 작업을 도왔다.
 기계 괴수가 복귀하기 직전 폭탄 설치가 끝났다. 유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죽어라 도망쳤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었다.
 20팀의 공격대는 돌격하지 않고 철저히 원거리 공격을 했다. 미사일을 날리고, 견인포로 포격을 하고, 폭탄 가방을 매설했다.
 그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준비한 지구 병기가 다 떨어질 때가 되자, 어느덧 시계가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폭파시키세요.]
 수한의 지시에, 유미가 폭탄을 작동시켰다.
 우르르릉.
 지축이 흔들렸다.
 폭탄의 파괴력은 지하를 향해 집중되었다. 일직선으로 파고들어가 모든 걸 다 부수자, 기계 괴수가 빠질 만큼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기계 괴수가 허우적대며 구덩이에 빠졌다. 버둥거리며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육중한 몸무게 때문에 쉽지 않았다.
 종류에 따라서는 고양잇과 동물처럼 움직이는 것도, 별도의 추진 장치를 이용해 도약하는 것도 있지만 이 기계 괴수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돌격! 이제 끝장냅시다!]
 구덩이에 빠진 이상 기계 괴수의 전투력은 반의 반 이하로 떨어진다. 밖으로 나와 있는 머리의 광선 포대와, 등에 난 칼날 가시만 주의하면 된다.
 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기계 괴수의 반격에 얼마간 사상자가 생겼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철갑을 뜯어내고 동력핵을 정지시키는데 성공했다.
 고글의 화면 가운데에 글자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20팀 WIB-3928 기계 괴수 사냥 성공!]
 성공을 확인한 20팀이 자축하며 환희에 휩싸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캬! 정말로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생각보다 쉬운데요? 잡을 만 해요!”
 “하하. 모의 사냥이라 그렇죠. 원래는 지능 장난 아닙니다. 실제였으면 원거리 공격을 계속 맞아주지 않아요. 마구 돌진하면서 다 갈아엎었겠죠. 그리고 차원문 통과하는 비용도 실제보다 싸게 계산해주는 것 같았어요.”
 “우리한텐 좋은 일이네요.”
 어쨌든 성공은 성공이었다.
 20팀은 저녁 시간에 탄산음료를 높이 들며 건배를 외쳤다. 술을 한 순배 돌렸으면 좋겠지만, 연수원에는 술을 찾아볼 수 없으니 불가능했다.
 다른 신입사원들이 잔뜩 들뜬 20팀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요즘 계속 순위도 떨어지는데, 왜 저리 웃고 떠드나 싶은 것이다.
 그 원인은 금방 공개되었다.
 식사 후 강당에서 가진 중간점검. 거기서 20팀이 근소한 차이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뭐야 이거?”
 “말도 안 돼! 우리가 왜 3위야?”
 여태 1, 2위를 다투던 8팀과 11팀이 소리를 질렀다.
 수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계 괴수 사냥에 성공한 것만으로 1위로 올라섰다. 기계 괴수를 해체하고, 그걸 판매한 후 공격대 내실을 다지면 더욱 격차를 벌릴 수 있었다.
 “대체 비결이 뭡니까?”
 몇몇 팀이 찾아와 물었다.
 굳이 감출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많은 점수를 단번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기계 괴수를 잡았지요.”
 “예? 기계 괴수를요? 어떻게요?”
 “비밀입니다.”
 20팀은 숙소에서 모였다. 그리고 다음날 일정을 의논했다.
 다음 사냥감을 정했다. 내일 오전에는 오늘 사냥의 뒤처리와 두 번째 기계 괴수 사냥 준비를 하고, 오후에 또 기계 괴수를 잡기로 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번째 기계 괴수 사냥도 성공했다. 이번에는 S급 이능력자까지 투입하였으니 훨씬 더 쉬웠다.
 중간 점검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팀 혼자 저 멀리 달려 나가고 있었다. 김규민 실장이 그걸 보고는 중간 점검 시간에 한 마디를 할 정도였다.
 “허, 20팀은 정말 대단하네요. 이변이 없으면 20팀이 전체 1등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자 다른 팀들도 괴수 사냥에 뛰어들었다.
 9일째 되는 날부터 기계 괴수 사냥이 본격화되었다. 성공적으로 잡는 팀도 있었고, 준비가 모자라 실패한 팀도 있었다.
 1번의 실패는 치명적.
 그 와중에 20팀은 저만치 멀리 달아났다.
 가장 먼저 기계 괴수 사냥에 성공한 것을 십분 활용했다.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공격대의 규모를 늘리고, 강력한 이능력자를 육성했다.
 중형 기계 괴수를 잡고, 대형 기계 괴수도 잡았다. 하루에 1마리만 잡는 것도 아니고, 2마리 3마리씩 마구 사냥했다.
 드디어 연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최종 결산.
 당연히 20팀이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8팀이 이틀 정도 더 모의 경영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점수가 찍혀 있었다.
 “1위를 하신 20팀 분들은 단상 위로 올라와주세요.”
 상품으로 개인 당 수십만 원짜리 한우 세트와 굴비 세트, 20만원 상당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팀원들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규민이 20팀 전원과 악수를 나누었다.
 “여러분의 활약은 매우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한 씨라고 하셨지요? 면접 때 사용하신 사냥 계획 파일은 저도 보았습니다. 정말 참신하던데요? 잿빛 학살자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사장님과 이사님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하하,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최종 결산과 상품 수여가 끝나고, 조촐한 연회가 벌어졌다.
 특급 호텔 요리사들이 출장을 나왔다. 온갖 산해진미가 풍족하게 쌓였다. 2주 동안 보지 못했던 각종 주류가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다.
 “위하여!”
 수한은 다른 팀원들과 연신 잔을 부딪쳤다.
 동휴가 수한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넌 지원부로 간다고 했지? 나중에 출세한 다음에 이 형님 무시하면 안 된다!”
 “하하, 제가 왜 동휴 형을 무시하겠어요.”
 “벌써 기획실장님도 너 알아보잖아. 몇 년 쯤 뒤에 네가 이사 되어 있을 줄 누가 알아? 난 그때까지 차장도 힘들다. 무슨 말인지 알지?”
 “잘 부탁해, 미래의 이사님.”
 “너 여자 친구 없다고 했지? 연상은 어때?”
 “하하하.”
 수한은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2주 동안 동고동락 한 탓에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른 팀과도 어울렸다.
 연수가 끝난 이상 이제 경원시할 필요가 없었다. 다 같은 공격대에 속한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수한은 쉬지 않고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반가워요. 고경하라고 해요. 총무부에서 일하게 됐어요.”
 “반갑습니다. 구매부 성배주입니다.”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하, 20팀 그 분?”
 모두 수한을 알아보았다.
 특히 8팀과 11팀에 속했던 이능력자들의 눈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자기들 뇌리에 각인시켜 놓겠다는 듯 수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연수 기간 내내 남자 사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새미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처음 기계 괴수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 새미가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으로 쳐다보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빼어난 미모에 흔들릴 만도 한데, 수한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면접 때 지원부는 사냥 계획 만들어서 발표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 그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케르베스 행성의 KBB-874를 대상으로 계획을 짰지요. 그 경험을 이번에 한 번 써먹어 봤습니다.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으면, 우리 팀은 1등이 아니라 뒤에서 1등을 했을 겁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에이, 새미 씨도 모의 사냥에서 장난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사냥을 이능력자 대원 하나로 끝장냈다면서요? 그거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한은 새미와 제법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꽤나 말이 통했다. 더구나 새미는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덕분에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새미를 오래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눈에 확 띄는 미녀인지라 남자 사원들이 자꾸 말을 붙였기 때문이다. 수한은 사람이 너무 몰려들자 인사를 하고 슬쩍 자리를 떴다.
 연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연수원으로 찾아왔다. 노래를 부르고 단막극으로 분위기를 돋웠다.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연수원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2주 동안 알음알음 싹트던 갈등을 모두 풀어헤칠 수 있었다.
 서로의 사냥을 방해하거나 사냥감을 가로채고, 직접 공격이 가능했다면 불편한 감정이 남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기 독립된 가상 세계에서 모의 사냥을 실시했기 때문에 큰 앙금은 남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은 연수원에서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탔다.
 벌써 7월 15일.
 주말까지 휴식을 취한 후 20일 월요일부터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수한은 창밖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약 보름.
 많은 것을 얻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입사 동기들과 공격대 선배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연수원에서의 기록을 본다면, 그들 중 누구도 수한을 그저 그런 신입사원 A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숫자들.
 레벨 업 도우미가 표시하는 정보들이야말로, 이번 연수에서 수한이 얻은 가장 큰 것들이었다.
 첫 출근
 
 월요일 아침.
 처음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수한은 일어나는 대로 레벨 업 도우미의 정보를 확인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5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88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27 계열 : 살육 계급 : 없음
 근력 18 체력 20 민첩 16 재주 18 감각 18
 초능 27 지능 15 직감 18 의지 17 위엄 15
 여유 점수 : 0 경험치 : 35%
 
 [기술]
 언어 : 한국어 11, 세라프어 6, 영어 5.
 문자 : 한글 10, 세라프 문자 6, 영문 5.
 사격 : 소총 사격 14, 권총 사격 11, 산탄 사격 13, 원거리 저격 12.
 격투 : 단검 격투 12, 맨손 격투 11, 총검 격투 13.
 함정 : 함정 설치 12, 화약 함정 12.
 생활 : 삽질 11, 청소 8, 빨래 4.
 전술 : 작전 계획 7, 전투 지휘 5.
 여유 점수 : 19
 
 다양한 부분에서 성장했다. 가히 괄목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능과 위엄.
 육체적 능력치에 비해 다소 떨어졌었는데, 2주간의 연수 끝에 좀 보충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작전 계획도 레벨이 좀 오르고, 전투 지휘 기술도 5레벨이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동생들이 손을 흔들었다.
 “형, 조심해서 가!”
 “금요일에 온댔지?”
 “응. 그때 밖에서 밥 먹자. 둘 다 시간 비워놔.”
 “알았어!”
 수한은 새벽 같이 길을 나섰다.
 7시 지하철을 타야 9시 전까지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이 워낙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꽤 이른 시간이라 역은 한적했다. 수한처럼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몇 명만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환승해가며 여의도역을 향해 갔다. 거의 8시 반이 다 되어서야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입구의 경비 사무실에 사원증을 내밀었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받은 사원증이었다. 경비가 사원증을 조회하더니 스윽 수한을 살펴보았다.
 “처음 출근하시는 겁니까?”
 “예. 오늘부터 출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지원부는 8층에 있습니다. 거기 가시면 안내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8층으로 올라가자, 30대 초반 남자 하나가 수한을 손짓해 불렀다.
 “신입이시죠?”
 “예! 처음 뵙겠습니다.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네네. 저기 대기실에 들어가 계세요. 다른 분들 다 모이면 부장님께 인사드릴 거예요.”
 수한은 남자가 가리킨 대기실 안에 들어갔다.
 이미 남자 두 명이 와 있었다. 2주의 연수 기간 동안 얼굴과 이름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잘 계셨어요?”
 “아, 수한 씨! 전 잘 지냈습니다.”
 “며칠 안 지났는데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수한은 인사를 하고 적당히 자리에 앉았다.
 연수 때 들었던 것에 의하면 지원부 신입사원은 총 열세 명이었다. 일이 험할 때가 많다 보니 남자가 많아서, 이번 기수는 한 명을 빼곤 모두 남자였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도착했다. 그때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창희 씨. 잘 계셨습니까?”
 “아, 뭐. 잘 있었죠.”
 개 중에는 창희도 있었다.
 연수원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했던, 여자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던 남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대충 인사를 받더니, 다른 신입사원들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수한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연수원에서 자기 팀이 앞서 나갈 때는 의기양양해서 자랑을 늘어놓더니, 20팀이 기계 괴수를 잡은 뒤에는 기가 팍 죽었다. 수한을 경원시하며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안 맞는 동기다.
 뭐, 세상 살며 만나는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법이지 않나. 수한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다들 모이셨나요?”
 아까 보았던 30대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행히 늦은 사람은 없었다.
 남자는 신입사원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모두 정시에 모이셨네요. 다들 일어나세요. 부장님께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수한을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남자를 따라갔다.
 대기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장실이 있었다. 남자는 문을 정중한 태도로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어, 신입사원들인가?”
 부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붉은 기가 돌고, 어깨가 떡 벌어진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머리는 완전히 벗겨져 빛이 번들거리고, 얼굴이 꼭 두꺼비를 연상시켰다.
 수한이 조사한 바로는 10년 전 대전쟁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었다. 지금도 몸을 단련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듯했다.
 신입사원들이 분분히 인사를 하자, 부장이 손을 내저으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 거기 의자에 좀 앉지. 김 과장, 가서 일 보도록 하세요.”
 “예, 부장님.”
 수한은 부장이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부장은 신입사원들을 한번 스윽 둘러보았다. 먼저 얼굴을 보고 가슴의 사원증을 보는 게, 얼굴을 익히려는 듯했다.
 “어디, 한 명씩 자기소개 해 볼까? 그래. 자네부터 하지.”
 부장은 수한을 지목했다.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맑고 또렷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1991년 생 이수한입니다. 20세에 군대에 지원하여 5년 간 부사관으로 복무 후 올해 5월에 전역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아하, 누군지 알겠네. 이번에 면접에서 수석을 한 친구로군. 자네가 제출한 계획은 아주 잘 봤네. 군데군데 엉성한 곳이 보이긴 하지만 맥은 제대로 짚었더라고. 연수원에서도 자네 팀이 1위를 했다면서? 자네한테 기대가 커. 그래, 자네도 한 번 해볼까?”
 13명이 모두 자기소개를 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부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모두 반갑네. 나는 강준배라고 하네. 올해 마흔둘이고, 부족하게나마 지원부장을 맡고 있지. 우리 부서가 뭘 하는 줄은 다 알고 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목소리 우렁차서 좋군. 자네들이 아는 대로 우리 지원부는 전투부의 이능력자들이 변이체를 사냥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서라네. 사냥 계획을 짜고,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지.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네.”
 부장은 잠시 말을 끊고 신입사원들을 둘러보았다.
 “자네들이 이전 직장에서 어떤 직위에 있었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든 이곳 알바트로스에서는 신입사원에 불과하다는 것일세. 모든 공격대가 그렇지만, 우리 공격대도 신입사원에게 중책을 맡기지는 않아. 외계 행성에 아무나 데려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처음에는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우리 공격대에 적응하는 것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수한은 이게 뭔 소리인가 했다.
 그것도 잠깐, 금세 부장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TV 드라마나 각종 소설, 만화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나.
 신입 길들이기, 혹은 잡일.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진 신입이라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일을 주지는 않는다. 서류 복사, 커피 타오기 같은 잡일만 시켰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적응을 하면 일 같은 일을 주곤 했다.
 군대에서도 흔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수한 자신도 이등병에게 뭘 시키는 건 극도로 꺼렸으니까.
 입맛이 썼다.
 ‘지금 난 이등병이구나.’
 군대에 있을 때는 부소대장으로 잘 나가던 몸.
 더구나 레벨 업 도우미를 활용하면서 능력에 자신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졸병 신세라는 소리다.
 부장이 박수를 짝 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정장 차림의 여성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대리. 신입들 각 과에 데려다주고 오세요. 배치 목록은 뽑아 왔죠?”
 “예,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 봐요.”
 “네, 부장님.”
 수한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챘다.
 벌써 말투부터 달랐다.
 신입사원들에게는 ‘하게’하는데 앞서 봤던 김 과장이나 지금 이 박 대리에게는 ‘해요’하고 있으니까.
 수한을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박 대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박 대리는 들고 온 타블릿 PC를 들여다보며 신입사원들에게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죠. 제가 호명한 순서대로 서세요. 제준모 씨, 채동하 씨, 장기문 씨…….”
 일단 하라는 대로 줄을 섰다.
 몇 명이 미적거리자 박 대리가 짜증을 냈다.
 “뭐 해요? 시간 없다는 말 안 들려요?”
 수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벌써부터 시작한 모양이다.
 신입사원들이 줄을 다 서자 박 대리는 그들을 이끌고 복도를 걸어갔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지원 1과.
 나란히 늘어선 지원 1, 2, 3과는 뒤쪽의 과들에 비해 확연히 컸다. 창문으로 언뜻 보이는 설비도 최신식이었다. 근무할 때 하더라도 저런 곳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리가 지원 1과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지원 1, 2, 3과는 우리 공격대의 핵심이에요. 다른 과는 부서원이 8명으로 이뤄지는데, 이 세 곳은 부서원이 20명이나 돼요. 게다가 과장님들 모두 B급 이능력자시기도 하죠. 우리 공격대가 AA급 변이체를 잡을 때는 거의 대부분 이 3개 과에서 주도해요. 여러분이 1년 계약이죠? 그 동안 열심히 하면 여기 배속될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하도록 하세요.”
 이능력자가 지원 1, 2, 3과의 과장이라고?
 대부분의 이능력자는 지원부를 기피한다. 전투부에 비해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외계 행성 원정도 전투부에 비해 적게 나가므로, 수익도 훨씬 적었다.
 그렇지만 지원부를 희망하는 이능력자가 가끔 있었다.
 실전 지휘와 서류 업무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능력자는 후에 능력을 인정받으면 상위 공격대로 옮겨가거나, 해당 공격대의 이사 직위를 얻곤 했다.
 더구나 각 공격대에서도 이런 부서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다. 하위 부서가 하나부터 열까지 오만 잡일을 다할 때, 이런 부서는 정보부와 분석부가 붙어 업무를 돕는 식이었다.
 박 대리가 3개 과를 지나쳐 지원 4과 앞에 섰다.
 “준모 씨, 저 따라 들어오세요. 준모 씨는 앞으로 지원 4과에서 근무할 거예요.”
 “아, 예.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여기 잠깐 계세요.”
 박 대리는 준모만 데리고 지원 4과로 들어갔다.
 기세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신입사원들이 숨죽여 불평을 털어놓았다.
 “후아!”
 “첫날부터 장난 아니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니던데 다닐 걸 그랬어.”
 “남자한테 차였나? 뭔 놈의 히스테리를 부리고 난리야.”
 박 대리는 금방 밖으로 나왔다.
 다음은 6과, 8과, 11과…….
 창희는 11과로 들어갔다. 온통 남자밖에 없는 과라서 몇 마디 불평을 했는데, 박 대리가 째려보자 찍 소리도 못 하고 숨을 죽였다.
 수한은 지원 17과.
 박 대리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 과장님! 신입 왔어요!”
 지원 17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개중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수한은 빠르게 사원증을 살폈다.
 이지혁 과장.
 앞으로 수한의 직속 상사가 될 사람이었다.
 “아, 박 대리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럼 다른 신입들도 데려다줘야 되니까 가볼게요.”
 “네, 수고하세요.”
 박 대리가 나가자, 수한은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올해 스물다섯이고, 개마고원에서 부사관으로 5년 간 복무 후 5월에 전역했습니다. 공격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서류에서 봤어요. 개마고원에 있었으면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저도 개마고원 출신입니다. 자, 다들 모여 보세요.”
 지혁은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하자, 여섯 명의 남자가 어기적어기적 모여들었다.
 수한처럼 정장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청바지에 티셔츠 등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도 말끔하게 세탁을 해서, 지리산에서 만났던 사냥꾼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단히 인사부터 하지요. 저는 이지혁 과장입니다. 지원 17과를 공식적으로 책임지고 있지요.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혁을 필두로 한 명씩 자기 이름을 밝혔다.
 이지혁 과장, 조운재 대리, 정희윤 계장, 한신일 계장, 김강성 주임, 송일식 주임, 황준표와 이수한.
 총 8명.
 지원 17과는 과장 1명, 대리 1명, 계장 2명, 주임 2명, 사원 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사원증을 패용하고 있어 이름을 헷갈릴 염려는 없었다. 그래도 수한은 요즘 들어 왕성해진 기억력으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직책을 기억해 두었다.
 지혁이 수한을 제외한 여섯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렇지, 김 주임님이 수한 씨 데리고 다니면서 좀 가르쳐주세요. 성적은 좋은데 공격대 입사는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겁니다.”
 “끄응, 알겠습니다.”
 강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이 그걸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과 회식이 있습니다. 모두 알고 있지요? 필히 참석하길 바라고, 수한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때 봅시다. 자, 모두 일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은 뭘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강성이 얼굴을 찡그린 채 수한을 손짓해 불렀다.
 “어휴, 내 일도 바빠 죽겠는데……. 수한 씨, 이리 와보세요.”
 “예!”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자, 여기가 수한 씨 자리입니다.”
 수한의 자리는 입구 바로 앞이었다.
 기본적인 물품은 다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최신형 컴퓨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16:10 모니터가 두 개 나란히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소형 홀로그램 상영기도 보였다.
 입력 장치도 키보드, 마우스, 동작 감지기, 마이크 모두 갖춰 놓았다. IT로는 최첨단이라 할 만 했다.
 강성은 수한을 의자에 앉혀 놓고 말했다.
 “일단 처음에는 업무 파악부터 하세요. 컴퓨터에 보면 우리 공격대에서 쓰는 각종 서류 서식 있을 겁니다. 그것부터 숙지를 하세요. 그 다음에는 아무렇게나 각 서식별로 한 장씩 예시 서류를 만들어서 저한테 가져오세요.”
 “한꺼번에 드립니까? 아니면 한 장씩 드려야 합니까?”
 “완성되는 대로 가져오세요. 한꺼번에 다 하려면 몇 주는 걸려요.”
 강성은 잘해보라고 수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한은 일단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안을 뒤적여 보니 별 게 다 있었다.
 지원 1과에서 만들었던 사냥 계획, 참가했던 사냥 기록, 알려진 기계 괴수와 유명 변이체에 대한 정보, 그리고 갖가지 서류에 이르기까지.
 사냥 계획과 기록에 눈길이 갔지만 지금 그걸 볼 수는 없었다. 사수인 강성이 시킨 예시 서류 작성이 우선이었다.
 수한은 서류의 종류부터 살폈다.
 비품 신청서, 소모품 신청서, 인수 확인서, 사냥 계획서, 사냥 결과 보고서, 출장 보고서, 시말서 등등.
 ‘뭐부터 해야 하지?’
 그냥 아무 거나 해가면 될까?
 아닐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서류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서류는 사냥 계획서.
 수한은 사냥 계획서 파일들을 열었다.
 전문가는 달랐다. 초 단위로 일정이 짜여 있었다. 심지어 투입되는 이능력자와 지원 요원의 이름까지 쓰여 있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계획서에 들어간 그래픽과 동영상의 질도 상상을 초월했다. 수한 혼자 이런 계획서를 쓰려면 최소 몇 주는 걸릴 터였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냥 계획서는 지원 17과 전체가 매달려서 만드는 거였다. 아무리 신입사원의 능력을 본다 해도, 이것부터 시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뭘 먼저 작성해야 할까?
 수한은 입장을 바꿔 생각했다.
 자신이 강성, 즉 사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솔직히 처음부터 어렵고 중요한 걸 시키진 않을 것이다. 난이도는 쉽더라도 귀찮은 걸 시키겠지.
 쉽지만 귀찮은 서류.
 수한은 컴퓨터 안에 즐비한 서류 중 하나를 짚었다.
 비품 신청서.
 내용을 보니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다.
 A4 용지, 휴지, 전구, 책상, 의자, 볼펜, 컴퓨터, 찻잔, 커피믹스, 티백 등등.
 서식은 아주 간단했다. 정확한 물품명과 수량, 그리고 신청인의 부서와 이름만 기입하면 끝이었다.
 수한은 그냥 아무렇게나 써넣으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강성을 찾아갔다.
 “김 주임님, 혹시 비품관리대장 볼 수 있겠습니까?”
 “관리대장? 출입구 옆에 걸려 있어요. 그런데 그건 왜요?”
 “말씀하신 서류 작성하는 거 비품신청서부터 쓰고 있는데, 참고하려고 합니다.”
 “그래요? 잘 해 보세요. 아 참, 오후에 회의 있는데 깜빡 하고 있었네. 이것 좀 사람 수대로 복사해오고 회의 정확히 몇 시부터 시작인지 알아오세요.”
 강성은 수한에게 서류 뭉치를 하나 건넸다.
 21세기에 웬 서류?
 속으로는 의아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서류 뭉치를 받아들고 질문했다.
 “몇 부씩 복사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회의 시간은 어디서 물어봐야 합니까?”
 “기초적인 건데……. 하긴 수한 씨는 아직 모르겠네요. 오후에 과장님들 회의 있어요. 보통 2시에 시작하는데 부장님 일정 따라서 달라지니까 1과 가서 물어보세요. 참석 인원은 과장님들이랑 부장님이니까 최대 21명인데, 혹시 모르니 2부 정도 더 복사해 놓으세요. 아, 원정 나가신 분들은 빼고요.”
 “예, 알겠습니다.”
 원정 나간 사람?
 수한은 금방 그 뜻을 알아차렸다. 외계 행성에 가서 변이체를 사냥 중인 과장들을 뜻하는 거였다.
 그럼 누가 원정 나갔는지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발품을 팔려다가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것저것 사내 업무망을 건드리자, 현재 원정 중인 과장들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8과, 10과, 14과, 20과.”
 4명이 자리를 비운 것으로 나왔다.
 혹시나 싶어 조금 더 자세히, 각각 어느 행성으로 원정을 나갔는지 확인했다.
 부장의 일정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천상 지원 1과에 한 번 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복사기는 지원 17과 사무실 안에 있었다.
 자동 복사기라 간단했다. 그냥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두터운 종이 뭉치가 순식간에 쌓였다.
 강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복사기 옆의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20개는 단조로운 플라스틱 서류철이고, 하나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양장 서류철이었다.
 “여기에 깨끗하게 철하세요. 종이 각도 절대로 비뚤어지면 안 됩니다. 부사관 출신이라고 했으니까 믿어보겠습니다.”
 특히 양장 서류철에는 티끌만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다. 지원부장이 그런 걸 보면 질색한다나.
 대충 지원부장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사람에겐 꼬투리를 줘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각 맞추는 일이야 익숙했다. 5년 동안 아예 몸에 배다시피 했다. 서류에 살짝 힘을 줬다가 당겼다 하며 서류철에 꽂아 넣었다.
 강성의 말처럼 양장 서류철은 꼼꼼하게 살폈다. 살짝 빠져나온 것도 용납하지 않고 네모반듯하게 완성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30분 전, 지원 1과에 들러 회의 시간을 알아냈다.
 정확히 오후 2시.
 강성의 말과 일치했다.
 수한은 17과로 들어와 강성에게 보고했다.
 “김 주임님. 오후 2시에 회의 시작한다고 합니다. 9과, 11과, 14과, 20과 과장님들 외근 중이셔서 오늘 오후 회의에는 17분이 참석하십니다. 복사는 여벌로 2부 더 해놓아서, 총 19부를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잠깐 부장님 서류철만 가져와 볼래요?”
 “예, 여기 있습니다.”
 양장 서류철을 건네자, 강성은 꼼꼼하게 서류철을 살폈다.
 “음……. 좋아요. 이 정도면 되겠어요. 참, 예시 서류는 다 작성했어요?”
 “아직 못했습니다.”
 “벌써 오전이 다 갔는데…….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해서 가져오세요.”
 빨리 한다고 했는데 생소한 업무라 늦어진 것이다.
 강성은 책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수한은 일단 출입문 옆에 있는 관리 대장부터 확인했다. 현재 비품이 얼마나 있는지 보고, 어떤 물품을 신청해야 할지 생각했다.
 A4 용지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처럼 복사 몇 번만 하면 다 떨어질 것 같았다.
 커피믹스와 티백도 부족했다. 소모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신청은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밥 먹고 합시다!”
 아직 서류에는 손도 못 댔는데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1과끼리 모여 2층 식당에서 먹었다. 공격대 사옥 밖에도 식당들이 늘어서 있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혁이 수한을 보고 물었다.
 “어때요, 일은 할 만 합니까?”
 “아직은 어렵습니다.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 같고요.”
 “그렇지요? 사실 우리 공격대는 설립된 지 얼마 안 돼서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 있어요. 지원 1, 2, 3과는 다르지만 그 외의 부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게 많죠. 대신 그만큼 인력을 확충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겁니다. 제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가관이었어요.”
 “그렇습니까?”
 “예. 어차피 앞으로 원정 한두 번 나갔다와야 업무에 좀 익숙해질 겁니다. 이게 다 경험이려니 하고 열심히 하세요.”
 “알겠습니다.”
 식당 음식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평소 같았으면 맛있다고 더 가져다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입이 깔깔했다. 영 입맛이 없어 그냥 배만 채우고 말았다.
 점심을 먹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사내 카페에 몰려가 커피를 한 잔씩 했다. 수한은 먼저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그럴 수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시작하려는데, 강성이 수한을 불렀다.
 “수한 씨. 회의 준비합시다.”
 서류 복사 말고 또 할 게 있나?
 알고 보니 오늘은 2, 6, 15, 17과 과장들이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그러면 해당하는 과의 막내들이 회의실 준비와 정리를 도맡아 한다고 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동기들이 청소를 하는 게 보였다. 수한도 눈치껏 걸레 하나를 집어 들고 끼어들었다.
 처음 보는 비쩍 마른 남자가 이리저리 지시를 했다.
 “거기 먼지 안 보여요? 잘 좀 닦아요. 거기 안경 쓰신 분. 발밑 좀 보세요. 쓰레기 굴러다니잖아요. 컵은 다 닦았어요?”
 땍땍거리는 말투가 귀에 참 거슬렸다.
 동기 하나가 500ml 생수통을 가져왔다. 각 자리마다 올려놓은 후, 깨끗이 닦은 컵을 그 옆에 놓았다.
 스크린을 내리고, 다른 전자 기기 작동을 모두 확인했다. 부장과 과장들이 와서 USB만 꽂으면 되게 한 다음 회의실에서 물러나왔다.
 강성이 수한에게 말했다.
 “오늘은 처음이라 제가 도와줬지만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항상 회의가 언제 열리는지, 어떤 과장님이 발표하시는지 확인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일 보세요.”
 회의가 끝나면 뒷정리하라고 부를 게 뻔했다. 수한은 눈에 불을 켜고 비품신청서를 작성해 나갔다.
 하지만 마음 편히 서류나 작성할 처지는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수한을 불렀다.
 “수한 씨! 이것 좀 팩스 보내주세요.”
 “수한 씨! 정보부에 가서 제가 신청한 정보 파일 좀 받아오세요. 보안 걸려서 USB에 담아준대요.”
 “수한 씨! 저랑 잠깐 창고 좀 다녀오죠.”
 “수한 씨! 회의 끝났대요.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하도 불러 대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수한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팩스를 보내고, 1층 창고에 갔다가 8층으로 돌아왔다. 정보부에도 가고, 구매부에도 가고, 하여간 정신이 없었다.
 그러느라 퇴근 직전에 비품 신청서를 끝낼 수 있었다.
 그걸 강성에게 가져가자, 강성이 얼굴을 굳혔다.
 “음……. 고생했어요. 그런데 수한 씨.”
 “네?”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수한 씨에게 이런 서류 써보라고 지시한 건 어디까지나 서류 서식에 익숙해지라는 의미였어요. 지금 바로 쓸 수 있도록 공부하라는 게 아니고요. 그런데 보세요. 오전에 이미 끝낼 수도 있었던 것을 시간만 괜히 보냈잖아요? 어차피 비품 신청서랑 관리대장 쓰는 건 수한 씨 몫이긴 한데, 그건 제가 상황 봐서 가르쳐 줄 거예요. 그 전까진 준표 씨가 하는 거고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네, 죄송합니다.”
 “어휴, 회식 나가야 되는데 이 시간에 이게 무슨…….”
 수한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진짜 잘못을 깨달았다.
 퇴근 시간에 서류를 가져온 게 문제였다. 차라리 내일 오전 일찍 제출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늦더라도 제 시간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중요한 일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6시가 되자 사람둘이 하나둘 일어났다.
 “아직 안 끝났어요?”
 “아, 예. 금방 가겠습니다. 먼저들 가 계세요.”
 “좋아요. 회식 자리에서 봅시다.”
 과장을 위시해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강성은 투덜대며 수한에게 퇴근 시 해야 할 일을 가르쳤다.
 생각 외로 많았다.
 소등과 전자 제품 전원 내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자리마다 비치된 휴지통도 비워야 했다. 간단히 청소도 하고, 보안 잠금도 막내의 몫이었다.
 “아무리 더러워도 책상 위는 건드리지 마세요. 무슨 말인지 알죠?”
 “예, 그건 압니다.”
 간단히 청소를 마친 후 강성과 함께 나왔다.
 강성이 몇 마디 주의를 주었다.
 “회식 장소는 여기서 가까워요. 거기 도착하기 전에 건배사 같은 거 준비해 놓으세요. 잘 부르는 노래 있으면 미리 생각해 두고.”
 “건배사요?”
 “첫 회식은 신입이 건배사 하는 게 관례에요. 아마 2차는 노래방 갈 건데 거기서도 처음은 신입이 노래하고요. 아, 발라드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신나는 노래 불러야 됩니다. 1차는 어쩔 수 없었지만 2차부터는 수한 씨가 미리 장소 정해서 예약해야 되고요. 아, 직위 순서대로 술 한 잔씩 주시는 것 잊지 말고요.”
 그냥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즐겁게 놀면 될 것을 뭐 이리 신경 쓸 게 많은지 모르겠다.
 회식 장소는 상당히 비싼 한우 전문점이었다. 돈 잘 버는 공격대답게, 회식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
 수한은 고기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다. 생각나는 대로 건배사를 외쳤다. 다른 사람들이 위하여를 외치며 술잔을 비웠다.
 잔을 비우기 무섭게 이리저리 다니며 술을 따랐다. 지혁부터 바로 위 준표까지 잔을 내밀었다. 수한이 술을 권하자 금세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회식은 2차, 3차까지 이어졌다. 내일을 생각하지도 않는지, 모두들 무시무시하게 들이마셨다.
 “자, 수한 씨도 한 잔 받아야지. 쭉 들이켜요.”
 “잘 드시네. 수한 씨는 주량이 얼마나 돼요?”
 “술은 잘 안 마셔봐서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알아봅시다!”
 먹고 마시다 보니 자정이 넘어갔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이젠 끝을 내야 할 시간.
 지혁이 먼저 비칠비칠 일어났다.
 “그럼 내일 봅시다!”
 “과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조 대리도 조심히 들어가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택시를 타거나 대리기사를 불러 귀가하고, 수한만 뒤에 남았다.
 “후아!”
 수한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피곤한 하루였다.
 뭔가 열심히 뛰어다닌 것 같은데, 막상 뭘 했냐고 하면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 낭비는 아니었을까?
 하루 종일 잡일만 하지 않았나.
 쓸 데도 없는 서류를 쓰고, 짐을 나르고, 복사에 팩스에…….
 ‘아주 허탕은 아냐.’
 그나마 낙이 있다면 레벨 업 도우미였다.
 능력치는 변함이 없었지만 레벨이 1 올랐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경험치가 25%까지 차 있었다.
 이런 것도 다 경험이라는 거냐?
 수한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정 준비
 
 2주가 지났다.
 여름이 절정을 맞이했다.
 매미들이 맴맴 노래를 불렀다. 쨍쨍한 햇볕이 대기를 불사르고, 여인네들이 흰 속살을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했다.
 수한은 주말에 집을 갖다온 것을 제외하면 내내 공격대 사옥에 머물렀다.
 야근하거나 특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휴게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2주 동안 거의 그곳에서 잤다. 숙식을 아예 사옥에서 해결하니, 어느새 휴게실 죽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때쯤 되자 수한도 업무에 좀 익숙해졌다. 강성이 뭘 시키지 않아도 일을 척척 했다.
 월요일 아침, 지혁이 17과 전원을 불러 모았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과에서 제출한 계획서가 통과됐습니다.”
 “우와!”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이게 얼마만이야!”
 17과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한은 무슨 일인지 몰라 잠자코 서 있었다.
 지혁이 그걸 보고 싱긋 웃었다.
 “수한 씨는 잘 모르겠네요. 김 주임님이 잘 가르쳐주세요. 아, 아직 검사랑 연맹 서류 안 끝났죠?”
 “예, 아직 안 들어갔습니다.”
 “2주 뒤에 원정 시작입니다. 서둘러 주세요. 김 주임님은 당분간 수한 씨한테 집중하고, 다른 업무는 송 주임님이랑 준표 씨가 맡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모두 뭘 할지는 알죠? 이번 원정은 전투 3과, 지원 13과, 지원 17과가 참가하지만 우리가 모두 주도합니다. 지금부터 움직여야 해요. 계획서는 다 갖고 있을 테니, 보급부터 철저히 준비해주세요.”
 “예!”
 지원 17과는 힘차게 대답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도 무슨 일인지 눈치 챘다.
 원정, 그리고 계획서라고 했다.
 17과에서 그 동안 작업한 사냥 계획이 통과된 것 같았다. 그에 따라 조만간 외계 행성으로 나가 변이체를 사냥하게 된다.
 그 계획서의 대략적인 내용은 수한도 알고 있었다.
 외계 행성 깔루.
 그곳에서 2주 간 시간을 보내며 B급 변이체를 사냥한다. 그것들을 수거하여 공격대까지 가져오면 끝.
 수한은 가만히 날짜를 계산했다.
 오늘이 8월 3일 월요일이다. 2주 후라고 했으니 17일에 출발할 테고, 2주 일정을 잡으면 대략 8월 31일에 귀환할 것 같았다.
 강성이 수한을 툭 쳤다.
 “수한 씨, 무슨 일인지는 알겠죠?”
 “예. 계속 회의하시던 깔루 원정 건 아닙니까?”
 “맞아요. 그냥 복사만 하지는 않았나 보네요? 어쨌든 할 일이 많아요. 얼른 움직입시다.”
 차원문을 통과하려면 처리해야 할 게 많았다.
 우선 기본적인 신체검사부터 받았다. 그 다음에는 인근의 거대 종합 병원에 들렀다.
 정신 검사와 유전 변형 물질 반응성 검사, 외계 특이 파장 피폭량 검사 등등.
 필요한 검사를 받자 하루가 쏘옥 지나갔다.
 예방 접종도 맞았다.
 깔루 행성에 특화된 약이었다. 이걸 맞으면 최소 1달 동안은 각종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각종 외계 질환에 그대로 노출되겠지만.
 병원을 나오면서, 강성이 수한에게 말을 붙였다.
 “수한 씨는 이번이 첫 원정이죠?”
 “예. 생전 처음입니다.”
 “혹시 변이체 사냥꾼 자격증은 있어요? 입사 서류에서는 그런 얘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실기 시험 전에 지리산에서 1달 정도 사냥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격증은 전역하자마자 땄고요.”
 “그래요? 잘 됐네요. 차원문 통과하려면 최소한 사냥꾼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되거든요. 안 그러면 수호자 연맹에서 아예 안 들여보내요. 일거리 하나 줄었네요.”
 모든 검사가 끝나고, 강성은 파김치가 되어 퇴근했다.
 수한은 명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무슨 일이야?]
 [응. 나 17일부터 31일까지 원정 가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원정?]
 [이능력자들이랑 외계 행성으로 원정 나간대. 변이체 잡으러 가는 거야.]
 [뭐? 진짜? 위험한 거 아냐?]
 [걱정 마. 난 신입이라 선배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돼.]
 [다행이다. 절대 앞에 나서면 안 돼. 알았지?]
 [하하, 알았어.]
 [그리고 나간 김에 기념품 사와야 돼. 알았지?]
 [어이구, 왜 그 소리 안 하나 했다.]
 다음날부터는 서류를 썼다.
 차원문 통과를 위한 각종 서류를 꾸미는 중에도, 갖가지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다. 중요한 일은 과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직접 챙겼지만, 잡일은 여전히 수한의 몫이었다.
 강성이 도와주는 덕에 서류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만 더 고생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혁이 수한을 불렀다.
 “예, 과장님. 부르셨습니까?”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수한 씨 지금 무장 상태가 어떻게 됩니까?”
 “소총 1정, 권총 1정, 미국제 룬 문자 단검 1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격총이랑 산탄총은요?”
 “아직 못 샀습니다.”
 “그럼 공격대에 비치된 거 대여라도 하세요. 산탄총이야 그렇다 쳐도 저격총 영점은 반드시 맞추고요. C급 변이체부터는 방어막 때문에 총이 잘 안 통하지만, 유인하기에는 원거리 저격만한 게 없어요. 우리 이능력자가 위험할 때 잠깐 도와줄 수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강성과 함께 공격대 무기고를 찾았다.
 무기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 크게 셋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강성은 그 중 가장 큰 곳으로 수한을 이끌었다.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무기고를 지키고 있었다. 지혁이 직접 작성하고 사인한 서류를 보고, 전화를 걸어 확인한 다음에야 문을 열어주었다.
 “총이 많네요?”
 수한은 무기고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개인화기란 개인화기는 죄다 모아 놓은 듯했다.
 권총과 소총, 산탄총, 저격총, 기관총, 유탄발사기 등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대전쟁 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꿨을 일.
 단 1년 간 벌어졌던 대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긴 인류의 1/3이 사망했을 정도니…….
 강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많기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3번 무기고에 있어요.”
 “3번 무기고요?”
 “예.”
 따로 설명해줄 생각은 없나 보다.
 강성은 얼른 저격총과 산탄총 하나를 고르라고 재촉했다.
 다양한 종류의 총이 있었지만, 수한은 손에 익은 놈으로 골랐다.
 미국제 12.7mm 대물 저격총.
 12게이지 산탄을 쓰는 국산 자동 산탄총.
 부사관 시절 몇 번 만져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언제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수한이 총을 고르자 강성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명품이죠. 변이체 상대하기에 충분한 화력을 가지기도 했고. 그래도 변이체 방어막에는 효과가 없으니까 너무 맹신하지는 마세요.”
 “알겠습니다. 전투는 대부분 이능력자들이 하나 보죠?”
 “그래야죠. 그래도 방어막을 벗겨낸 다음에는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영점 맞추러 가죠.”
 “서류는요?”
 “중요한 건 거의 다 끝냈잖아요? 어차피 이번 주 내로만 끝내면 돼요.”
 영점을 잡으려면 의정부시에 위치한 알바트로스 실기시험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실내 사격장에서 영점을 맞출 수는 있지만 그러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정확한 영점(far zero)이 아닌 부영점(near zero)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저격총은 조금만 빗나가도 치명적일 수 있으니, 정확하게 영점을 맞추는 게 필요했다.
 강성이 차를 운전했다. 상당한 연봉과 배당을 받는 공격대 지원 요원답게, 값비싼 외제차를 가지고 있었다.
 “차가 멋지네요.”
 “하하, 고마워요. 제 보물 1홉니다. 공격대 들어오고 처음 산 게 차였거든요. 참, 수한 씨는 차 안 사요? 곧 있으면 첫 월급 들어올 텐데.”
 “아, 집부터 사려고요. 출퇴근하는데 2시간씩 걸립니다.”
 “아하, 그럼 오피스텔이라도 얻지 그래요? 여의도에는 힘들어도, 인근 지하철역 중에 찾아보면 괜찮은 곳 많아요.”
 “동생들이랑 같이 살아야 해서요. 오피스텔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차는 굉장히 많이 막혔다.
 대전쟁으로 서울도 타격을 입었었다. 그러나 최근의 대호황으로 인구 집중 현상은 극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지금 서울의 인구는 대전쟁 전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의정부의 실기 시험장에 도착한 것은 1시간이 훌쩍 지나간 뒤였다.
 강성이 웃으며 말했다.
 “사원이 된 다음 시험장에 돌아온 기분은 어때요?”
 “그냥 좀 묘하네요.”
 “자, 얼른 하고 돌아갑시다. 할 일이 많아요.”
 실기시험장 중, 저격 시험을 봤던 곳으로 갔다.
 강성은 컴퓨터를 조작해 600 미터 과녁만 하나 작동시켰다.
 실기시험 때와는 달리, 밋밋한 흰색 과녁이었다. 다만 동심원들이 겹겹이 그려져 있었다.
 “600으로 영점 맞추도록 하죠. 변이체 유인할 때 최소한 500은 넘는 거리에서 저격해야 안전하거든요. 안 그러면 숨기 전에 따라잡혀서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그럼 800이나 1000이 낫지 않습니까?”
 “더 근거리에서 저격할 일도 왕왕 생기니까요. 제가 해보니까 400에서 800 사이를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600이 제일 좋습니다. 200 정도는 스코프 눈금으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자세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수한은 적당한 곳에 엎드리고 받침대를 설치했다.
 강성이 한 마디 첨언했다.
 “한 발 쏘고 난 다음에는 바로 도망쳐야 합니다. 그걸 항상 염두에 두세요.”
 수한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코프에 그려진 십자 눈금 중앙을 과녁 가운데에 맞추었다. 자세를 안정시킨 후,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대기를 꿰뚫었다.
 강성은 옆에 있는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수한은 세 발 연속 사격을 했다. 강성이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 세 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대신 가운데에선 좀 벗어나서, 약간 좌상탄이 났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영점 조정을 계산했다. 모니터에 우3 하3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탄착점 훌륭하네요. 컴퓨터가 하라는 대로 조정하고 다시 쏴 보세요.”
 “네.”
 수한은 스코프를 조정한 후 다시 3발을 쐈다.
 과녁 정중앙에 구멍 세 개가 박혔다. 워낙 정확하게 쏴서, 커다란 한 점처럼 보일 정도였다.
 강성이 박수를 쳤다.
 “훌륭합니다!”
 영점을 잡는 것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1시간이 넘게 달려온 것 치고는 좀 싱거웠다.
 초장거리 저격이면 바람과 습도 등 제반 사항을 다 고려해야 하지만, 12.7mm 탄환으로 600미터 거리 저격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정 필요한 경우에는 고글에 내장된 초소형 컴퓨터로 계산하면 그만이고.
 “갑시다. 총 다시 넣어놔야 해요. 월요일에 다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절차가 복잡하네요.”
 “그러니 개인 소유 총기를 권장하죠. 본인 입맛대로 개조도 할 수 있고요.”
 도로를 달려 알바트로스 사옥으로 돌아왔다.
 일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기본적인 서류는 다 꾸며 보냈다. 나머지는 2주 동안 쓸 보급품을 준비하는 거였다.
 지혁이 17과의 막내 둘을 불렀다.
 “준표 씨, 수한 씨. 창고에 가서 ATV 11대 받아서 대기실에 갖다 놓으세요. 준표 씨,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
 “예, 압니다.”
 알바트로스에서 ATV라면 2인승 산악용 사륜 바이크를 뜻했다.
 기본적으로 차원문을 열 때는 이동하는 무게에 따라 그 부담이 커진다.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막대한 양이 소모되었다. 따라서 최대한 가벼운 운송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각 공격대에서는 ATV를 애용했다. 차체는 최대한 경량화시키고, 마력은 최대한 올린 종류였다.
 물론 기계 괴수를 사냥할 때는 ATV보다는 대형 트럭을 동원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양을 가져올 수 있고, 기계 괴수의 부산물은 막대한 가치를 가졌으니까.
 수한은 준표와 함께 창고로 갔다.
 준표는 입사한지 겨우 반년이 지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실수가 잦고 많은 것이 서툴렀다. 원정에 나가선 자기 몫을 하는데,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던가.
 창고 담당자가 둘을 보고 혀를 찼다.
 “17과가 바쁘긴 바쁜가 보네요. 신입 둘이 오셨네.”
 “전 신입이 아닌데요?”
 “6개월이면 신입이죠. 자, ATV는 다 준비해 놨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준표가 발끈했지만 담당자는 무시하고 한쪽을 가리켰다.
 녹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ATV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최대한 가볍게 만든 까닭에, 꼭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 차 같아 보였다.
 “전 뭘 하면 됩니까?”
 “아, 간단해요. 시동 걸고 한 바퀴씩 돌아보면 돼요. 이 주임님, 엔진 확인은 다 하셨죠?”
 “당연하죠. 모두 정격 출력입니다. 고장 난 것도 없고요.”
 수한과 준표는 ATV 11대를 모두 확인했다.
 사옥 출구에 가까운 대기실에 ATV를 운전해 모두 갖다 놓았다. 그 후 배터리 충전량을 확인하고, 보조 배터리도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는 짐 나르기의 연속이었다.
 2주 동안 먹을 음식은 물론 탄약, 클레이모어, C4 폭탄, 각종 수류탄, 섬광탄과 연막탄, 조명탄 및 의복, 정찰용 드론, 소모품들을 모두 챙겨야 했다.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고, 더해져서도 안 된다.
 짐을 나르고, 수량을 맞추고, 안 맞으면 지혁에게 가서 보고하고…….
 계획서도 몇 번이나 읽었다.
 아무리 신입이라 해도 수한 또한 지원 요원. 모든 계획을 다 암기하고 있어야 했다.
 지형, 식생, 변이체 분포, 깔루 행성인들의 성향…….
 그 중에는 사냥터가 될 바히냐크 평원 근처의 유명 변이체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출현 즉시 철수를 고려해야 하는 강력한 존재들.
 휘니크 산맥의 비행형 변이체 휘니크로아, 1년 주기로 바히냐크 평원을 찾는 거대 변이체 도베로이드,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생명을 잡아먹는 주체무 등등.
 수한은 머릿속에 이 정보들을 똑똑히 박아 넣었다.
 그러는 사이 17일이 되었다.
 수한의 레벨이 정확히 30을 찍은 시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저 멀고 먼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외계 행성 깔루
 
 알바트로스 사옥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투 3과와 지원 17과, 13과.
 정확히 21명이다.
 이들이 소지한 물건, ATV와 거기 실은 보급품, 그리고 이들의 육체까지 다 합친 무게가 딱 5톤이었다.
 차원문을 여는 비용을 고려할 때, B급 변이체 사냥으로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수치.
 수한은 혹시 빠진 게 있나 확인했다.
 깔루 행성은 사막 지형이 많은 곳이라, 누런 색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탄띠를 둘렀고, 탄띠에 주렁주렁 여러 물건들을 매달아 놓았다.
 탄입대, 수통, 야삽, 대검집, 손전등, 구급낭 등등…….
 그런가 하면 전투복 주머니에 1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압축 건빵 9개를 넣어놓았다. 혹시라도 조난당하면 이것들이 생명줄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 무장만 하지 않은 상태.
 수한은 다른 사람들과 통성명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전투 3과의 이능력자 중, 눈에 확 뜨이는 미인이 있었다.
 새미.
 연수 때 본 적이 있었다. 2주 내내 남자 사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지.
 지금도 주변에 남자 사원들이 잔뜩 몰렸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보려고 과장되게 웃는가 하면, 별 시답지도 않은 얘기를 커다랗게 떠들었다.
 그렇게 관심 받고 싶을까.
 수한은 그쪽을 한 번 보고는 자기 일에 열중했다.
 어색하게 웃고 있던 새미가 수한을 발견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쪽으로 총총총 걸어온다.
 “잘 계셨어요? 연수 때 보고 오랜만이네요.”
 새미가 웃으며 수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한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하긴 이능력자가 둘씩 포함된 팀들을 압도하고 월등한 성적을 냈던 20팀의 주인공이니까.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전 잘 지냈지요. 거의 2주 만인데, 잘 지내셨습니까?”
 남자 사원들에게서 피신 온 게 뻔히 눈에 보였다.
 수한은 적당히 응대해주며 시간을 벌었다.
 대충 정리가 되자, 전투 3과 과장이 지혁을 향해 말했다.
 “슬슬 출발하지요.”
 지혁이 동의를 표했다.
 “좋습니다. 10시에 차원문을 열어주기로 했으니까, 지금 출발하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전투 3과 과장이 손짓을 했다.
 기이이잉.
 ATV 11대의 전기 엔진이 일제히 돌아갔다.
 애애앵!
 선두에 선 전투 3과 과장이 ATV를 출발시켰다.
 온갖 보급품을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마력과 토크가 상당한 물건이었다.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한도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11대 중 수한만 혼자 1대의 ATV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대신 조수석까지 짐을 몽땅 실어서 좀 둔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여의도의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 마크를 새긴 ATV들이 일렬로 달려 나오자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시민들의 공격대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좋았다. 대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공격대가 한 번 출격할 때마다 막대한 재화가 들어오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만도 했다.
 수호자 연맹 대한민국 지부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우 5분 만에 ATV 11대가 모두 도착했다.
 수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과 몇 달 전 이능 적성 검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저번에는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여름의 숲과 같은 활기가 느껴졌다.
 수호자 중 한 명이 마중 나왔다.
 “딱 맞게 도착하셨네요. 알바트로스 공격대, 21명, 무게 5톤 맞지요?”
 “예. 정확합니다.”
 “전당으로 들어오세요. 10시 반에 예약이 또 있어서 바빠요.”
 차단봉을 넘어,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지부의 규모는 크다. 거의 축구 경기장이나 야구 경기장을 방불케 했다.
 여러 시설이 들어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세라프의 전당이었다.
 차원문이 열리는 곳.
 지부 중앙에 커다란 공간이 비워져 있었다. 원형의 공간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벽을 쌓아 놓았다. 군데군데 거대한 사각 기둥이 있고, 기둥의 벽에서 신비로운 빛이 스며 나왔다.
 수한은 바닥을 보고 눈을 빛냈다.
 바닥은 기본적으로 흰 대리석을 깔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대리석에 온통 금빛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요소요소에 루비며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같은 진귀한 보석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거대한 마법진.
 기둥과 바닥이 어우러져,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0시에 정확히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모두 준비하고 계세요.”
 수호자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쌩 사라졌다.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강성이 수한을 전당 구석으로 데려갔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수한 씨. 깔루 행성, 아니 외계 행성에 들어가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본인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수한은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건 당연한 말 아닌가?
 그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강성이 연이어서 설명했다.
 “처음 외계 행성에 원정가는 신입 요원들이 많이 실수를 하곤 합니다. 외계 행성은 지구와 달라요. 원정을 다니다 보면 피치 못할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언제 어떻게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으음…….”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수한 씨가 낙오되었을 때, 만약 수한 씨를 돕다가 제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전 수한 씨를 버릴 겁니다. 저 자신부터 챙길 거예요. 이건 우리 지원 17과 모두 마찬가지고, 동행하는 13과와 전투 3과도 그렇습니다. 절대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말을 하는 강성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수한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군대에서는 전우가 없이는 나도 없다고 가르친다. 수한도 동료를 구한 적이 몇 번 있었고, 반대로 목숨 빚을 진 적도 존재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개마고원에서는 서로 간의 끈끈한 정 같은 게 존재했던 것.
 그런데 위험해지면 그냥 버릴 거라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강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격대와 군대는 다릅니다. 군대는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공격대는 그냥 이익 집단이에요. 목숨을 건 의리, 전우애, 이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거 참 인간적이네요.”
 갑자기 새미가 끼어들었다.
 “김 주임님? 김 주임님이라고 하셨죠? 그럼 김 주임님은 지금 대부분의 공격대가 그러는 것처럼 외계에만 나가면 다른 공격대 뒤통수를 치고, 위험할 것 같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공격대는 이익 집단이니까?”
 “아, 그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본인부터 살고 봐야지요.”
 “흥! 어딜 가나 똑같네요. 전에 공격대도 그것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퇴사했는데.”
 새미가 고개를 흔들더니 멀찍이 가 버렸다.
 강성이 입맛을 다시더니 새미가 못 듣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미 씨는 22살인데도 좀 순진하네요. 어쨌든 수한 씨. 제 말 새겨들으세요. 외계 행성에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절대 낙오되지 말고, 최대한 몸 사리세요. 괜히 나서지 말고요. 아셨지요?”
 수한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3과 과장이 손짓을 했다.
 “자, 어서 중앙으로 모입시다. 작은 차원문이라서 중앙 부분에서만 발동할 겁니다.”
 모이는 건 간단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ATV들을 집결시켰다. 그 후 차분히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기둥 끄트머리에 붉은색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적색 빛은 기둥 전체를 휘어 감았다. 그리고 주위 지면으로 번져나가, 금세 이 넓은 공간 전체로 퍼졌다.
 “시작됐다.”
 옆에 자리 잡은 준표가 중얼거렸다.
 수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붉은빛이 지상에서 허공으로 올라왔다. 반투명한 비단 천처럼 너울거리며 눈을 가렸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때는 온 세상이 다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한은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땅이 멀어졌다.
 감각이 옅어졌다.
 스스로의 존재가 소멸하는 듯한 느낌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세상이 확 다가왔다.
 감각이 돌아왔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헉! 허억, 헉헉!”
 수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수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았다.
 “우에엑!”
 옆에서 준표가 구토를 하는 게 보였다. 언제 챙겼는지 검은 비닐봉투에 입을 벌리고 토사물을 쏟아냈다.
 수한은 고개를 흔들며 ATV에서 내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자칫 다리가 풀릴 뻔 했지만, 겨우 균형을 잡았다.
 강성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다가왔다.
 “수한 씨, 처음인데 괜찮으세요?”
 “속이 좀 안 좋습니다.”
 “휴, 처음인데 상태가 괜찮네요. 거의 대부분은 기절한 상태로 도착하는데.”
 강성이 옆의 준표를 쳐다보았다.
 “쯧, 준표 씨.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준표는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곤 씩 웃었다.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예전에는 계속 기절했잖아요. 어휴, 저쪽은 신입이 아예 기절했네요.”
 13과의 동기가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모두들 별 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ATV 조수석에 짐짝처럼 태웠다. 기절한 사람의 사수가 ATV를 운전하기로 했다.
 수한은 그걸 보며 ATV에 실은 짐을 뒤적였다.
 지구에서 가져온 무기를 꺼냈다.
 소총과 권총, 룬 문자 단검, 각종 수류탄들.
 외계 행성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본인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지원 17과와 13과의 요원들이 부산히 무장을 챙기는 사이, 이능력자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생생했다. 이능이 있으면 차원 이동 시에도 잘 견디는 모양이었다.
 “얼른 나가죠. 언제 또 차원문이 작동할지 모릅니다.”
 “좋습니다.”
 대충 뒤처리가 끝나고 ATV를 출발시켰다.
 전당은 지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크기, 모양, 재질 모두 동일했다.
 들어왔던 자리와 똑같은 곳에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외계의 신비로운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거대한 도시.
 황토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이 죽죽 솟아 있었다. 희한하게도 아래는 좁고, 위가 볼록한 형태였다. 더구나 아예 기둥이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건물도 꽤 보였다.
 “그우우!”
 괴상한 동물 하나가 묘한 소리를 냈다.
 낙타와 하마를 섞어 놓은 듯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다리가 없었다. 상부와 하부가 분리되다시피 한 채, 하부가 꿈틀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덕택에 진동이 상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깔루 행성에서 교통수단으로 흔히 쓰이곤 했다.
 “$^%^@&%&^*^(%^$”
 도마뱀 가죽 같은 황색 피부에, 토끼처럼 펄럭이는 두 쌍의 귀, 세 개의 눈을 가진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을 보고 손가락질했다.
 깔루 행성은 변이체가 많이 서식해서 지구의 공격대가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래도 전체에 흩어 놓고 보면 한 줌에 불과하니, 그들이 신기하게 여길 만도 했다.
 수한은 짐짓 태연한 척 그들을 구경했다.
 생각 같아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지만, 깔루 행성인들은 그런 행위를 매우 싫어했다. 정 찍고 싶으면 친분을 먼저 쌓은 후 정중히 부탁해야 했다.
 “자, 파견대부터 갑시다.”
 지혁이 공격대원들을 선도했다.
 이곳은 깔루 행성에서도 3번째로 큰 도시, 이그지트였다. 이그지트에는 수호자 연맹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지구의 공격대들이 변이체를 사냥하고, 원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수호자 연맹의 파견대는 차원문 근처에 위치했다.
 현대 지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금방 식별할 수 있었다. ATV를 근처에 대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키가 껑충하게 큰 백인 남자가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의 알바트로스 분들이지요? 깔루 행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선물을 좀 가져왔습니다.]
 지혁이 대표로 나섰다. 상대가 영어로 말을 걸어서, 지혁의 입에서도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미리 챙겨 온 꾸러미를 내밀자 백인 남자가 반색을 했다.
 [오! 와인과 담배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좀 바빠서요.]
 [하긴 오랫동안 체류하기는 힘드실 테니……. 바히냐크 평원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예.]
 [최근 들어 바히냐크 평원의 변이체가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간혹 변이체 잔해만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요. 위험 변이체가 진출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필이면 지금……. 알겠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남자의 경고에, 지혁은 고개를 숙였다.
 수한은 짧은 영어로 몇 마디만 겨우 알아들었다. 그래도 위험 변이체에 대한 내용은 이해했다.
 사냥 계획서에 언급되어 있던 몇 마리의 변이체.
 첫 원정인데 설마, 그런 고위 변이체를 만나게 될까?
 모를 일이다.
 대화를 마치고 파견대 밖으로 나왔다.
 바히냐크 평원은 이그지트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차원문을 통과한 게 방금 전이지만,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지혁은 쉬지 않고 ATV를 몰았다. 낙타와 하마를 섞어놓은 듯한 동물, 기추비추들의 틈을 누비며 달렸다. 수한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지구처럼 도로가 발전한 곳이 아니었기에 ATV가 계속 덜컹거렸다. 수한은 혹시라도 ATV 위에 실은 짐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공격대원들이 향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높은 탑이었다.
 특이하게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접시 같은 넓은 아랫부분은 땅에 박혀 있고, 우산 같이 생긴 윗부분이 하늘 높이 부유 중이었다. 그리고 공처럼 둥근 중간 부분이 그 사이에 떠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마치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보는 듯한 광경.
 깔루 행성에 존재한다는 비공정 탑이었다.
 “우린 여기서 비공정을 타고 바히냐크 평원으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약 열흘 간 머무르며 변이체를 사냥한 뒤, 이그지트로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는 비공정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ATV에 변이체 시체를 싣고 오겠습니다.”
 예전엔 왕복 모두 비공정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깔루 행성인들이 욕심을 부려서 이젠 편도로만 이용하게 되었다. 전리품을 싣고 귀환하는 원정대가 공격당하는 일이 왕왕 있었던 것이다.
 수한은 그 사실을 생각해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 가까이 다가가자 화려하게 치장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지혁이 두 팔을 벌려 적의가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
 [도∽니∽테르↗호↘루재↑이↑드↓]
 투박한 세라프어가 흘러나왔다.
 지혁은 지원 17과에서는 가장 세라프어를 잘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짓 발짓을 동원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비켜주자 공격대원들은 ATV를 몰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ATV나 수레가 지날 수 있도록 원형 통로가 빙글빙글 이어져 있었다. 그걸 타고 탑 하부의 끄트머리에서 기다리자, 금방 중간 부분이 아래로 내려왔다. 거기로 진입한 뒤 마법의 힘을 이용한 부유력으로 탑 상부로 들어갔다.
 탑 위에 서서 얼마간 대기하자, 근처에서 거대한 배 한 척이 접근했다.
 수한은 두 눈을 빛냈다.
 말 그대로 한 척의 배였다. 지구에서는 중세에서나 쓰였을 법한 범선이 하늘을 미끄러졌다. 갑판에는 세 개의 나무 기둥이 줄을 지어 서 있고, 마법 문자가 써진 푸른 돛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선체 양 옆에는 기다란 메기수염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흐물흐물 빛을 뿌렸다.
 쿠웅.
 비공정은 탑 한쪽에 갑판을 접안시켰다.
 두꺼비처럼 살이 찐 깔루 행성인 하나가 훌쩍 뛰어내렸다.
 [붸↗이르↘쿠↓쟈↑]
 깔루 행성인과 지혁이 두 손바닥을 세게 마주쳤다.
 전통적인 깔루 행성의 인사 방법이었다.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다.
 대화를 끝내고, 지혁이 공격대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11대의 ATV가 천천히 비공정 위로 올라탔다.
 깔루 행성인이 뭐라고 소리치자, 비공정의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곳곳에서 마법 주문을 외우니, 비공정이 빠른 속도로 하늘 위를 날아가기 시작했다.
 수한은 갑판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공정이 진행하는 방향 정면에, 가시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무수히 솟아 있었다.
 벨레즈 협곡.
 빼곡한 봉우리들 때문에, 자연적인 미로가 형성된 곳이었다. 갈 때는 편하게 가지만, 올 때는 골치 좀 썩을 것 같았다.
 지혁이 원정대 전체에게 말했다.
 “6시간 정도 후면 바히냐크 평원에 도착할 겁니다. 기상 상황이 좋아서 더 빨리 도착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그 동안 선실에 내려가서 쉬지요.”
 도착하면 잠도 안자고 사냥을 나서야 할 것이다. 이동하는 시간 동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수한은 솔직히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말똥말똥 했다.
 드르렁, 드르렁.
 지원 17과 전체가 같은 객실에 머물렀다. 덕택에 다른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깐↗뒤아∽쿠↘로↑메지↓우↓]
 도착했으니 일어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한은 세라프어 기술을 올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외계 행성에서는 공용어처럼 쓰이는 게 세라프어니까.
 모두 눈을 비비며 갑판 위로 나왔다.
 “하!”
 수한은 약하게 탄성을 질렀다.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자줏빛 뭉게구름이 위아래를 오락가락했다. 드넓은 평야에 물빛 갈대 같은 풀이 가득하고, 온갖 짐승이 어울려 풀을 뜯었다. 황금색 쟁반 같은 태양이 이글이글 저 먼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캬아앙!”
 닭을 닮은 포식자가 초식동물들을 덮쳤다.
 초식동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운한 녀석 하나가 포식자에게 잡히자, 포식자는 새 부리 같은 입으로 녀석을 뜯어먹었다.
 비공정은 하늘 위를 천천히 선회했다. 널찍한 공터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동물들이 기척을 느끼고 이리저리 도망쳤다.
 지면에서 약 2미터 정도 위에 정지했다. 그 후 갑판에서 널찍한 판자 같은 것을 지면으로 길게 걸쳤다. 각도가 좀 가파르긴 하지만, ATV가 충분히 내려갈 정도였다.
 가장 먼저 야영지부터 구축했다.
 바히냐크 평원에는 위험한 동물이 많았다. 아까 보았던 닭을 닮은 녀석도 그렇고, 변이체가 자주 출현했다. 따라서 안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수한 씨랑 준표 씨는 여기다 텐트부터 치세요.”
 지혁이 17과와 13과 막내들을 불러 텐트를 치게 했다.
 군용 24인 텐트.
 수한도 부사관 시절 작전 나가면 지겹게 쳤던 텐트였다. 준표도 텐트 치는 것은 익숙했다. 둘이 힘을 합치자 겨우 30분 만에 텐트를 칠 수가 있었다.
 그 사이, 선배들은 야영지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출입문을 만들었다. 소형 발전기로 고압 전류를 흐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식당과 창고, 화장실도 만들고, 이능력자들이 사용할 소형 텐트 두 개를 치고, 변이체 감지기와 감시 초소도 설치하고…….
 단 2주 동안이지만 안전이 제일이었다. 이 정도는 만들어 놔야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 쉬고 계세요.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보조격인 13과가 먼저 정찰을 떠났다.
 보급품은 모두 내려놓은 뒤였다. 무기와 3일 분의 식량, 그리고 무전기만 싣고 떠났다.
 수한은 계속 삽질을 했다.
 군대에서도 지겹도록 한 삽질이었다. 뚝딱뚝딱 해치웠다. 몇 시간 내내 삽질을 하고 말뚝을 박자, 겨우 야영지 공사가 끝이 났다.
 “곧 해가 질 겁니다. 13과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수한 씨랑 준표 씨는 ATV 준비해주세요.”
 “예!”
 이능력자들은 2개의 텐트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 자신은 몇 시간 째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인데, 저들은 편히 쉬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능력자들은 변이체 사냥의 핵심이었다. 목표인 B급 변이체들을 수십 마리 잡으려면 저들은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야 했다. 따라서 자신의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몇 시간 뒤, 13과가 귀환했다.
 전리품을 ATV에 제법 매달고 있었다. 운 좋게 하급 변이체 몇 마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9시 방향에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주위에는 C급 변이체도 다수가 있고요. 아마 원래는 한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암수 한 쌍입니까?”
 “예. 종류는 깔루 행성인들이 비르차라고 부르는 생물의 변종입니다.”
 “알겠습니다.”
 과장들끼리 쑥덕쑥덕 얘기를 하더니 13과는 야영지에 남고, 전투 3과와 지원 17과가 첫 사냥을 개시하기로 했다.
 “주목!”
 지혁이 전투 3과와 지원 17과를 불러 모았다.
 “사냥 계획 변이체 종류별 세부 항목 9-38a 기억하시죠? 그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지원 17과의 요원들은 모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전투 3과의 이능력자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전투 3과 과장이 이능력자들에게 고글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양 눈을 완전히 감싸는 형태에, 작은 이어폰과 마이크가 달린 형태였다.
 어차피 이능력자들은 싸움만 잘 하면 된다. 구체적인 전술 지시는 모두 지원 17과 과장인 지혁의 몫이었다.
 “출발합시다.”
 ATV 7대가 야영지를 떠났다.
 B급 변이체들은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분 정도 달리자 변이체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작은 호수였다.
 원래는 푸르렀을 호수가 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주변의 나무는 몽땅 다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였다. 괴상하게 생긴 변이체들이 호수 주위를 배회했다.
 수한은 속으로 변이체의 숫자를 세었다.
 ‘B급 2마리, C급 5마리, D급 11마리.’
 비르차의 변종.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 몸통,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이었다. 지금은 제멋대로 변형되어 머리가 둘 달린 놈도 있고, 몸이 뱀처럼 길쭉해진 놈도 보였다.
 지혁이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수가 많으니 C급 이하는 폭탄으로 날려버리겠습니다. 클레이모어부터 설치하죠.”
 기관총 포대를 구축했다.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방패를 전면에 깔고, 작은 구멍 사이로 기관총 총구만 내놓았다. 그 옆 수풀에 유탄발사기도 하나 설치했다.
 계장 둘이 지휘하여 클레이모어를 깔았다. 대전차 지뢰도 몇 개 설치하자, 삽시간에 죽음의 땅이 완성되었다.
 이능력자들은 말없이 자신의 무기만 쓰다듬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지원 17과의 요원들이 변이체들을 저격하여 유인한다. 그 중간에 지뢰와 클레이모어를 이용해 하급 변이체들을 쓸어버린다. 그러면 B급과 C급이 남을 텐데 B급 이능력자들이 B급을 상대하는 동안 C급을 처리한다. 마지막으로 B급을 죽여 사냥을 끝낸다.
 전투 3과는 B급 이능력자 2명, C급 이능력자 3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원 17과가 잘 해주어야 했다.
 “시작합니다.”
 조운재 대리가 요원 셋을 차출해 변이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수한은 남았다. 신입이라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변이체 유인은 맡기지 않은 것이다.
 “김 주임님이 유탄발사기 잡고, 준표 씨는 기관총 잡으세요. 클레이모어는 제가 직접 격발하고, 마지막 유인도 제가 합니다. 수한 씨는 소총으로 지원 사격하세요.”
 “예!”
 수한은 입안이 깔깔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났다. 보호복에 슥슥 문질러 닦았지만, 금세 땀이 맺혀 번들거렸다.
 탕!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시작됐다.
 이능력자들이 얼굴을 굳히고, 요원들은 몸을 낮췄다. 저마다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탕! 탕탕!
 다시 총소리가 울렸다.
 변이체 유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번갈아 저격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총알에 피격된 즉시 변이체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 전에 저격한 요원은 위장포와 은신 장비를 이용, 완전 은폐를 실시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저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변이체에 의해 요원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캬아악!”
 변이체가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지혁이 숨을 고르는 게 보였다. 엎드린 채 저격총을 변이체에게 겨눈 뒤,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고, 변이체의 몸 주변에서 불꽃이 튀었다.
 방어막.
 변이체들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수십 개의 눈이 기관총 포대를 노려보며 불을 뿜었다.
 “캬아악!”
 “캬아아앙!”
 괴이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자, 금세 거리가 좁혀졌다.
 B급 변이체들은 덩치도 크고 속도도 빨랐다. C급, D급 변이체를 뒤에 놔둔 채 먼저 달려왔다.
 이능력자들이 힘을 끌어올렸다.
 그들이 빼어든 무기에 각기 울긋불긋한 빛이 어렸다. 변이체의 방어막을 전문적으로 파훼하는 이능력자 전용 무기의 공능이었다.
 “내가 왼쪽을 맡지.”
 “제가 오른쪽 잡을게요.”
 전투 3과 과장이 검을 들어올렸다. 검에서 화끈한 빛이 타오르자, 변이체가 홀린 듯 3과 과장을 쫓아갔다.
 한편 새미는 두 손을 교차하더니 번개를 뿌렸다. 그 뒤 가볍게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구현 계열 이능력자이다 보니 시간을 끌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뒤이어 C급 변이체와 D급 변이체들이 뛰어들었다. 약간 거리 차이가 있긴 했지만, 클레이모어 유효 반경 안에 모두 들어와 있었다.
 지혁이 스스로 구령을 붙였다.
 “클레이모어 격발!”
 꽈과광!
 폭발이 세상을 휩쓸었다.
 후폭풍이 몰아닥치고, 쇠구슬 수천 개가 변이체들의 몸을 갈가리 찢었다.
 타타타탕! 투둥, 쾅쾅!
 동시에 기관총과 유탄 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오렌지색 빛줄기가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나갔다. 유탄이 경박한 소리와 함께 튀어나가 폭발했다.
 집중된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10마리가 넘는 D급 변이체들이 이 일격으로 몰살당했다.
 “캬아악!”
 반면 C급 변이체들은 온전했다.
 방어막이 조금 약해졌을 뿐, 여전히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두 마리가 지뢰에 걸렸다. 하지만 잠깐 멈칫했을 뿐, 별로 효과는 없었다. 내부에서 공격이 가해진다면 모를까, 방어막은 모든 방향의 공격을 다 막아내기 때문이었다.
 이능력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3대 5.
 불리한 것 같지만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었다.
 강성은 유탄 발사기를 내려놓았다. 여기서 유탄을 쏴봐야 별 효과도 없고, 이능력자들이 폭발에 휩쓸릴 가능성이 컸다.
 수한은 빈 탄창을 교체했다. 그리고 청색의 원통형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지혁이 17과 요원들에게 말했다.
 “김 주임님, 수한 씨 순으로 던집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이능력자들과 변이체들이 맞붙었다.
 진형이 적당히 형성되자, 지혁은 개중 좀 둔한 변이체 하나를 지목했다.
 “던져요!”
 강성이 수류탄을 던졌다.
 손에서 떠난 수류탄이 정확히 변이체를 직격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일어나더니, 변이체의 방어막을 잠식해 들어갔다.
 약화 수류탄.
 이능력자들의 무기처럼 방어막을 파훼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 무기에 더 약해지도록 만들었다. 이걸 뒤집어쓰면 최소 2, 3배는 큰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투 3과의 이능력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무기를 휘두르고, 이능을 발휘해 공격하자 변이체의 방어막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심지어 3과 대리도 멀리서 권총을 쏘았다.
 “다음, 수한 씨!”
 수한은 지혁이 지목한 변이체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정확히 맞았다. 더구나 수류탄을 던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강성이 던졌던 수류탄의 위력이 다했다.
 지혁의 지시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꼭 변이체 한 마리는 약화 효과가 걸려 있었다. 이능력자들이 버거워 보이면 준표에게 기관총을 쏘도록 했다.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도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유인하기 위해 나갔던 요원들도 복귀했다. 그러자 전투는 더욱 쉽게 돌아갔다. 사방에서 총을 쏴서 변이체들의 신경을 긁었다.
 찌이잉!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한 마리의 방어막이 완전히 소멸했다.
 “집중 사격!”
 7정의 소총과 1정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방어막이 없으면 변이체쯤은 그저 질긴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녹색 체액이 뿌려지며, 변이체가 바닥에 몸을 누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2마리가 남자 지혁이 사격 중지를 외쳤다.
 수한은 기계적으로 총을 들었다. 탄창이 빈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탄창을 꽂아 넣었다.
 이능력자들이 남은 변이체를 단번에 토막 쳤다.
 이제 B급 변이체 둘만 사냥하면 된다.
 “좋아, 우리 할 일은 끝났어.”
 옆에서 준표가 중얼거렸다.
 B급 변이체는 약화 수류탄도 잘 통하지 않았다. 이능력자들이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
 12.7mm 저격총으로 지원 사격 정도는 했다. 실질적인 위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눈앞의 방어막을 공격하면 불똥이 튀니 멈칫하는 효과는 있었다.
 한편 주위 경계에 철저히 했다. 가끔 변이체 시체를 먹으려고 드는 놈이 있어 주의를 요했다. 그런 식으로 시체를 먹고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약 30분 후, 모든 전투가 끝났다.
 3과 과장이 붉게 타오르는 검을 변이체의 미간에 꽂았다. 변이체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
 이능력자들도 꽤 지친 기색이었다. 주변에 대충 널브러져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지원 17과가 고생할 차례.
 지혁이 수한과 준표를 불렀다.
 “준표 씨랑 수한 씨가 D급 변이체들 심장만 가져오세요. 나머지는 모아서 불태우고요.”
 “예!”
 지구 같았으면 D급 변이체 시체를 통째로 팔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챙겨서 차원문을 통과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심장만 챙겨가곤 했다.
 수한은 커다란 가방과 기름통을 챙겼다. 준표는 전기톱과 예리한 칼을 가져왔다.
 “예전에 해체해 본 적 있어요?”
 “아뇨. 처음입니다.”
 준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전기톱을 들었다.
 “심장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죠?”
 “예, 압니다.”
 “자, 보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갈비뼈만 절단하고 심장을 꺼내면 되요.”
 준표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갈비뼈를 적당히 절단한 후 예리한 칼로 심장을 도려냈다.
 수한이 전기톱을 잡았다. 한 번 해보니 어렵지 않아서, 금방 변이체 시체들의 갈비뼈를 절단했다.
 절반쯤 한 후 역할을 바꿨다. 조금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긴 했지만, 수한은 금방 익숙해졌다.
 둘이 함께 하니 속도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D급 변이체의 심장을 모두 갈무리했다.
 “이제 불 지릅시다. 한곳으로 모으세요.”
 “네.”
 수한은 육중한 변이체들을 들어다 한데 모았다. 굉장히 무거웠지만, 근력이 최근 강해진데다 준표가 도와줘서 금방 끝을 냈다.
 대충 시체를 모은 후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까만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시체를 태웠다.
 가방은 수한이 들었다. 준표가 다른 장비를 들고, 사이좋게 기관총 포대로 돌아갔다.
 강성이 둘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꽤 빠르네요. 준표 씨도 이제 관록이 붙었나 봅니다.”
 “아, 수한 씨 손이 빨라서 덕을 좀 봤습니다.”
 “호, 그래요?”
 강성이 수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수한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이 뒤처리를 다 끝내놓고 있었다.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의 시체를 ATV 위에 실었다. 너무 큰 것 같으면 몇 개로 절단하여 싣자 충분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13과 요원들이 나와 17과를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박이네요!”
 “다친 분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정찰은 저희가 나가겠습니다.”
 13과 요원들이 반은 야영지에 남고 반은 정찰을 나갔다.
 변이체 시체를 창고에 넣고 차단막으로 꽁꽁 싸맸다. 그렇지 않으면 변이체들이 그 기운을 느끼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텐트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야영지 구축에 전투, 뒤처리까지 연달아 했더니 무척 피곤했다.
 한참을 달게 자는데, 누군가 수한을 흔들어 깨웠다.
 “수한 씨, 일어나요.”
 “으음……. 아, 과장님?”
 “불침번 차례에요.”
 “아, 예!”
 수한은 몸을 일으켰다.
 같이 불침번을 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성이었다. 강성은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쩍쩍 했다.
 “수한 씨가 모니터 보세요. 절대 졸면 안 됩니다. 알죠?”
 “네, 걱정 마세요.”
 “어휴, 중번초(불침번 중간 시간에 서는 근무자, 수면에 방해받기 때문에 기피됨)라 아주 죽겠네요.”
 “초번초(첫 근무자)랑 말번초(마지막 근무자)는 원래 선배님들이 하시나요?”
 “그런 건 아니고 돌아가서 해요. 어떻게 한 명만 계속 중번초를 시키겠어요.”
 “아하, 알겠습니다.”
 “오늘 보니까 잘 하던데요? 심장 가져오는 것도 빠른 편이었고.”
 “준표 선배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요..”
 “하긴 준표 씨는 좀 어리버리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성격은 좋아요. 원정 나왔을 때는 곧잘 하는 편이고……. 서류만 잘 처리해도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니 문제죠.”
 몇 시간 후, 13과가 귀환했다.
 13과 과장이 혀를 찼다.
 “이번에는 별 소득이 없습니다. C급 10마리를 찾은 게 전부에요.”
 “음…… 한 번 전투 3과 과장님이랑 얘기를 해보죠.”
 C급 10마리라는 말에, 전투 3과 과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C급은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정찰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 없으면 그때 잡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이번엔 저희가 정찰을 나가지요.”
 지혁은 순순히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능력자들은 기계가 아니었다. 전투 후에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야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껏 고생해서 C급을 잡았는데, 그 다음 정찰에서 B급을 발견하면 완전히 손해였다.
 ATV 4대가 야영지를 떠났다.
 지혁은 3시 방향을 선택했다. 아직 안 가본 곳이기도 했고, 변이체가 많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했다.
 1시간 정도 달린 후, 지혁이 팀을 나누었다.
 “계획서에 있는 대로 4개 팀으로 나누겠습니다. 1팀은 1시, 2팀은 4시, 3팀은 7시, 4팀은 10시 방향을 탐색해 주세요. 목표는 B급 변이체입니다. 위험하니까 항상 조심하세요.”
 “걱정 마세요. 어디 한두 번 해 봅니까?”
 “그런 분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송 주임님하고 김 주임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예!”
 수한과 강성은 4팀이었다.
 10시 방향이면 지나쳤던 방향과 거의 비슷해서 변이체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1시간 달리는 동안 변이체라곤 아예 보질 못했으니까.
 적당히 움직인 후 ATV를 멈췄다.
 “여기서 하죠.”
 수한은 싣고 온 짐에서 정찰용 드론을 꺼냈다.
 조작은 강성이 했다.
 강성이 드론을 날려 정찰하는 동안, 수한은 ATV 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감시했다. 혹시 적대적인 동물이나 변이체가 출현할 수도 있으니까.
 한참 원격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강성이 혀를 찼다.
 “아주 씨가 말랐네요. 이렇게 없을 수도 있나?”
 “C급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D급은 많고, C급도 보이긴 하는데 그거 잡아봐야 손해니까요. 정 없으면 그거라도 잡아야겠습니다만…….”
 수한과 강성은 허탕을 쳤다.
 약 1시간 정도 주위를 돌아본 후 17과에 합류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4개의 팀 모두 시간만 허비한 것이다.
 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조사했던 것보다 변이체들이 더 없네요.”
 “최소한 10마리는 잡아가야 손익분기를 넘길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일인지 씨가 말랐어요. C급하고 D급 변이체밖에 안 보이네요.”
 누군가 바닥에 홀로그램 생성기를 내려놓았다.
 생성기에서 3D 지도가 펼쳐졌다. 지혁은 그걸 보며 고민에 잠겼다.
 수한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바히냐크 평원은 끔찍하게 넓었다. 곳곳에 호수가 점점이 박혀 있고, 작은 숲이 몇 개 보였다.
 “곧 귀환해야 할 시간인데…… 일단 조금만 더 돌아봅시다.”
 2시간 정도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성과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수한은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다.
 키이이이, 하고 길게 흩어지는 소리.
 전기 모터 소리와 바퀴 소리에 묻혀 하마터면 놓칠 뻔 했는데, 최근 감각이 날카로워진 덕분에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저 하늘 높은 곳에, 점 하나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새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가던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수한을 엄습했다.
 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한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고글의 배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점의 정체가 보인다.
 거대한 익룡처럼 생긴 녀석이다.
 날개는 두 쌍으로, 큰 날개가 앞에 작은 날개가 뒤에 달려 있었다. 날개가 번갈아 펄럭이며 그 몸을 하늘 위에 띄웠다.
 머리에는 드릴 같은 뿔이 줄을 지어 나 있었다. 뻐드렁니처럼 삐져나온 송곳니가 빛을 반사시켜 흉험하게 빛났다.
 전신이 은색 비늘에 덮여 있어 상당한 위압감이 들었다. 배 아래가 붉게 빛나는 게, 아래쪽에서 보니 적색의 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놈인데…….
 수한은 금방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지원 17과가 작성한 사냥 계획에서 주의해야 할 변이체로 뽑은 놈 중 하나였다.
 수호자 연맹 파견대에서 만난 백인 남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김 주임님!”
 “무슨 일입니까?”
 황급히 옆에 앉은 강성을 돌아보자, 눈을 감고 있던 강성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수한은 하늘 위의 점을 손가락질했다.
 “저길 보세요! A급 변이체가 있습니다!”
 “뭐요? A급 변이체?”
 강성은 급히 ATV를 멈췄다.
 벗어놓았던 고글을 쓰고 하늘 위를 훑더니, 이내 낮은 신음을 흘렸다.
 “휘니크의 지배자…….”
 바히냐크 평원 북부에는 휘니크 산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써 수십 년이 넘게 A급 변이체 한 마리가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A급 변이체라면 진작 사냥당했을 터.
 지능이 높고 눈치가 빠른 게 문제였다. 강한 공격대가 사냥하러 오면 도망치고, 약한 공격대가 지나가면 습격해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다.
 깔루 행성인들이 휘니크로아라고 부르는 비행형 변이체.
 곧 휘니크로아가 날개를 휘저어 저 멀리 사라졌다.
 다른 요원들도 휘니크로아의 존재를 알아차렸나 보다. 저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하나둘 ATV를 정지시켰다.
 다들 당혹감에 젖은 채,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저놈은 휘니크 산맥에서만 활동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래요?”
 “어쩐지 변이체가 없다 했지.”
 “저놈이 싹 잡아먹은 거 아니에요? 미치겠네.”
 대부분의 변이체는 일단 활동 영역이 정해지면 거길 벗어나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수한은 금방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새끼를 낳은 거겠지.
 변이체도 생물이고, 간혹 번식이 가능한 개체가 있었다. 그런 변이체들은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고급 변이체를 사냥하곤 했다.
 악재였다.
 “일단 돌아갑시다.”
 모두 얼굴이 어두웠다.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냥인데,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몰랐다.
 너무 위험했다. 야영지에 감춰 놓은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 시체 때문이었다. 언제 그 존재를 눈치 채고 급습해 올 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차단막으로 특유의 기운을 가렸다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여전히 정찰은 나갔지만 B급 변이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휘니크로아를 발견하는 일이 더욱 빈번하게 벌어졌다.
 심지어 휘니크로아의 새끼로 보이는 변이체들도 가끔 보였다. E급이나 F급은 물론, C급도 보이는 게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새끼를 낳아 기른 듯했다.
 결국 철수 이야기가 나왔다.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 사냥한 변이체 시체라도 챙겨서 돌아가자는 것.
 그때, 수한은 깊은 장고에 빠져 있었다.
 휘니크로아를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가져온 것만으로?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휘니크로아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휘니크로아를 잡을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휘니크의 지배자라는 별칭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한이 생각해 낸 방법은 어찌 보면 아주 간단했다.
 고전적인 방법의 응용이니까.
 수한이 알기로 몇 번 성공 사례가 있었다. 위험해서 그렇지, 충분히 해볼 만 했다.
 지혁에게 가서 그 얘기를 꺼냈는데, 휘니크로아를 잡자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수한 씨는 신입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치네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아무리 A급 변이체를 잡는데 성공해도 우리 21명 중 1명이라도 죽거나 중상을 입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하하, 매사가 생각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원정대는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이미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알겠습니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더구나 수한은 이제 입사한지 겨우 1달이 넘은 신입 사원이었다. 그런 신입 사원의 말만 듣고 위험을 감수할 공격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24인 텐트를 막 철거하려는데, 13과 과장이 모든 작업을 중지시켰다.
 “무슨 일입니까?”
 “휘니크로아가 아무래도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놈이 계속 야영지 주변을 맴돌고 있어요.”
 그 말 대로였다.
 저 높은 상공 위를 휙 지나가거나, 멀리서 야영지를 보곤 어디로 날아가곤 했다.
 흡사 고양잇과 맹수들과 비슷한 태도.
 괜히 관심 없는 척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확신이 서면 확 덮치겠지.
 이 상황에서 야영지를 철거했다간 큰 일 날 터.
 최소한의 보초만 남겨놓고 회의가 열렸다.
 수한은 운 좋게 회의에 들어왔다. 13과에서 경비를 맡은 까닭이었다.
 “좋은 생각이 있는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혁이 그렇게 말했지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초조한 표정을 지은 채 주위 눈치만 살폈다.
 전투 3과 과장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일단 정면 대결은 힘듭니다. 저희 3과의 전력으로는 휘니크로아를 잡을 수가 없어요. 만약 휘니크로아를 잡으려면 최소한 사장님이나 다섯 이사님 중 한 분은 오셔야 합니다.”
 “하긴 A급 비행형 변이체니까요.”
 “비행형만 아니었어도 좋을 텐데요.”
 “그럼 도망쳐야 한다는 얘긴데…….”
 “우리 ATV 속도가 겨우 시속 60에서 70 킬로미터 정도 나오는데 도망칠 수 있나요? 휘니크로아가 그보다 최소한 서너 배는 빠를 겁니다.”
 “ATV로는 못 도망칩니다. 이그지트까지 꼬박 48시간은 걸려요. 벨레즈 협곡을 지나야 하잖습니까. 그 전에 다 잡힐 겁니다.”
 “깔루 행성의 비공정을 부르면요?”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박살이 날 걸요?”
 “하아…….”
 “어떻게 하지…….”
 막사 안이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새미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한테 B급 변이체 시체 2개가 있잖아요. 아깝긴 하지만 그걸 던져주고 도망치면 어때요? 그 시체 먹느라 우리를 안 쫓아오지 않을까요? 변이체들은 노려도 같은 변이체를 노리지, 우리를 노리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수한이 생각해낸 방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방법.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혁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휘니크로아가 악명을 떨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놈은 굉장히 똑똑하고 포악해서, 먹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안전을 확보합니다. 깔루 행성인이나 다른 행성인이 있을 때는 그들을 모조리 죽인 다음 먹이를 먹지요. 우리가 B급 변이체 시체를 내줘도, 먼저 우리를 추격해 죽인 다음 그걸 먹을 겁니다.”
 “진짜요? 몰랐어요.”
 새미가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은 채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수한은 손을 들었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침울하게 가라앉은 눈빛들이 수한을 향했다.
 지혁의 얼굴에 살짝 기대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아, 수한 씨. 아까 좋은 생각이 있다고 했지요?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좋은 생각?
 칙칙하게 죽어 있던 사람들의 눈에 옅은 기대가 떠올랐다.
 그러나 희망을 불태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는 수한은 그저 입사 1개월이 조금 지난 햇병아리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한을 주시했다.
 수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휘니크로아와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함정을 파서, 휘니크로아를 잡아야 합니다.”
 “흠, 그건 그렇지요.”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보급품 중에 클레이모어랑 C4가 있잖습니까? 그걸 휘니크로아의 입 속에 쳐넣어서, 한꺼번에 다 터뜨리는 겁니다. 방어막은 체외에 존재하니까, 내부에서 폭탄이 터지면 제아무리 휘니크로아라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허!”
 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휘니크로아의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전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한 자리 옆에 앉아 있던 강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어떻게 입에 폭탄을 넣겠습니까? 휘니크로아가 바보도 아닌데요.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기도 아니고,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수한은 슬쩍 웃었다.
 “사람이 직접 해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요.”
 그러면서 맞은편에 앉은 새미를 주시했다.
 새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두 손바닥으로 자기 무릎을 내리쳤다.
 “미끼! 미끼를 쓰면 되겠네요!”
 “미끼?”
 다른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수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가 가져온 클레이모어나 C4는 모두 무선 격발이 가능합니다. 그걸 B급 변이체 시체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런 다음 휘니크로아가 시체를 삼켰을 때, 일제히 격발시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 참!”
 “맙소사…….”
 “과장님. 이거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조운재 대리가 지혁에게 속삭였다.
 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앉아 있던 13과 과장이 두 눈을 빛냈다.
 “휘니크로아가 식사 전 주위를 청소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습니다. 수한 씨, 혹시 생각해 둔 게 있습니까?”
 “있습니다. 야영지에 불을 지르는 겁니다.”
 “예?”
 저게 무슨 소리람?
 설마 폭탄을 설치한 시체 주변에 불을 지른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랬다가 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13과 과장은 이 자식 이거 미친 거 아닌가 하는 눈으로 수한을 바라보았다.
 수한은 차분하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휘니크로아의 지능은 거의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변이체를 잡고 다른 변이체가 먹지 못하게 화장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휘니크 산맥에서 C급 변이체를 잡은 공격대가 그걸 미끼로 던지면서 불을 붙인 적도 있고요. 뭐, 결국 먹이부터 삼킨 휘니크로아의 공격에 다 전멸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의 공격대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기록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어서 알려지게 되었지요. 휘니크로아의 지능이 예상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혁의 언급에 수한은 살짝 눈인사를 보냈다.
 “불이 붙으면, 휘니크로아는 그 먹이부터 삼킵니다. 먹이가 타면 먹어봐야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는 거지요. 하지만 폭탄을 설치한 시체에다가 직접 불을 지르는 건 너무 위험하니, 그 주변에만 불을 지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폭탄과 불이라…….”
 “송 과장님, 어떻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꽤 그럴 듯해 보이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정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뭘 아나요. 지원부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죠. 하지만 괜찮게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3명의 과장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혁이 눈을 빛냈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봐야 휘니크로아의 먹이가 되게 생겼으니, 한 번 수한 씨 계획대로 움직여 봅시다. 우리 과가 변이체를 작업할 테니, 13과에서 방화 준비를 해주세요.”
 “전투부에서 휘니크로아를 감시하겠습니다. 눈 밝은 사람이 많으니 그게 더 나을 겁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회의가 끝나자마자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강성이 다가와 수한의 등을 팡팡 쳤다.
 “수한 씨!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습니까?”
 “에이, 간단한 거잖아요. 솔직히 저 아니어도 누군가는 생각해냈을 겁니다.”
 “어휴, 발상을 전환하는 건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게 쉬우면 콜롬버스의 달걀이라는 말이 생기지도 않았겠죠. 어쨌든 수한 씨 덕에 한 시름 놨습니다.”
 수한은 그저 웃기만 했다.
 17과 전원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변이체가 풍기는 특유의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차단막이 창고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안에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의 시체가 보였다. C급 변이체의 시체는 온전하지만, B급 변이체는 덩치가 커서 두 토막으로 나눠놓은 상태였다.
 지혁이 손짓을 했다.
 “휘니크로아가 뭘 삼킬지 모르니 4개 전부에 작업하겠습니다. 오기 전에 나눈 팀별로 움직이죠.”
 수한은 강성과 함께 작업을 했다.
 둘이 맡은 것은 B급 변이체의 하반신.
 허리가 잘라 놓아 작업은 쉬웠다. 내장을 파낸 후 그 안에 클레이모어와 C4를 매설했다. 그 후 내장을 그 위에 덮고, 꼼꼼하게 봉합했다.
 혹시 금속 냄새가 새어 나갈까 봐 살짝 열을 가했다. 원래는 냉동시켜 놓았는데, 온도를 올리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4팀 끝났습니다!”
 “2팀도 끝났습니다!”
 “3팀도 끝입니다!”
 금방 작업을 끝냈다.
 겉으로 봐서는 안에 치명적인 폭탄이 매설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후각으로도 마찬가지. 이만하면 휘니크로아도 속아 넘어갈 듯했다.
 밖에서 17과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흰 준비 끝났습니다! 작업은 언제쯤 끝납니까?”
 “저희도 끝났습니다!”
 일단 모두 밖으로 나왔다.
 13과가 ATV를 모두 준비시켜 놓았다. 그 동안 틈틈이 충전도 시킨 터라 달리는데 문제는 없었다.
 “보급품 챙겨요, 3일 분씩!”
 “얼른얼른 합시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식량과 탄약을 꺼냈다.
 휘니크로아가 공격해 오기 전 출발해야 했다. 수한의 계획이 맞아떨어져 휘니크로아를 사냥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최소 3일 분량의 보급품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까운 도시까지 갈 수 있으니까.
 3일 분량의 보급품을 싣고, 수한은 하늘 위를 보았다.
 휘니크로아가 하늘 저 편에서 길게 선회하고 있었다.
 누군가 수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곧 공격할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새미.
 그 예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옆에 서서 휘니크로아를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 될까요? 휘니크로아는 정말 똑똑하다던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죠. 그냥 죽어줄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래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원정대는 각자 ATV에 올라탔다.
 ATV와 창고를 감싼 차단막을 연결해 놓았다. 이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차단막이 벗겨질 것이다. 그럼 B급 변이체의 기운이 휘니크로아를 자극할 테니, 그 사이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철조망도 군데군데 벗겨 길을 냈다. 이제는 달리기만 하면 된다.
 수한은 준비를 단단히 했다.
 산탄총은 무릎 사이에 끼우고, 소총의 멜빵을 어깨에 멨다. 최악의 경우라도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강성이 옆에서 당부했다.
 “혹시 휘니크로아가 우릴 노리면 동시에 뛰어내리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제가 지구에서 했던 말 기억하죠? 본인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부분은 ATV에 2명이 같이 탔지만, 새미는 혼자 타게 되었다. 홀수 인원인 전투 2과에서 뽑은 제비에 당첨됐기 때문이다.
 지혁이 크게 소리쳤다.
 “출발합니다!”
 기이이잉!
 ATV들이 단번에 달려 나갔다.
 차단막이 벗겨졌다. 그 즉시 변이체 특유의 기운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그것을 느낀 휘니크로아가 길게 괴성을 질렀다.
 날개를 펄럭이더니, 야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11대의 ATV가 일제히 야영지를 빠져나왔다. 그 뒤에 매달려 있던 차단막이 하나둘 끊어져 땅 위를 뒹굴었다.
 13과 과장이 나가며 불씨를 던졌다.
 뿌려놓은 기름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성난 파도처럼 야영지 전체를 휩쓸었다.
 금세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격대원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운이 없어 휘니크로아가 함정을 피하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수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휘니크로아가 하늘 위에 정지해 있었다. 도망치는 공격대원들을 쫓을지, 아니면 불타는 야영지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먹이부터 삼킬지 고민하는 듯했다.
 “캬악!”
 한 번 괴성을 지르고는, 마음을 정했는지 몸을 날렸다.
 “젠장.”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계획이 빗나갔다.
 휘니크로아는 야영지를 향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공격대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수한이 탄 ATV를 향해서.
 재수가 없었다.
 ATV 11개 중에 하필 이쪽이라니?
 쌔애액!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수한의 귀청을 때렸다.
 옆에서 강성이 욕설을 내뱉었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무릎 사이 끼어놓았던 산탄총을 세게 움켜쥐었다.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아댔다.
 강성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순간, 커다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수한은 왼쪽으로 힘껏 몸을 날렸다.
 꽝!
 뭔가 수한의 오른쪽을 스쳐지나갔다.
 간발의 차이.
 육중한 물체가 ATV를 직격했다. 경량화 때문에 속이 텅텅 빈 ATV가 으깨지며 파편이 이리저리 날아갔다.
 “쿨럭!”
 수한은 몇 바퀴나 바닥을 굴렀다.
 어디에 맞아 다쳤는지, 뜨끈한 액체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글도 깨져서 앞이 제대로 안 보였다.
 얼른 고글을 벗어 던졌다.
 강성이 말했던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낸 덕에, ATV에서 금방 멀어졌다.
 어떻게 됐나?
 굳이 뒤를 돌아볼 것도 없었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하늘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익룡을 닮은 A급 변이체.
 휘니크로아.
 놈이 급강하하여 수한의 ATV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제기랄…….”
 수한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개활지에서 휘니크로아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뭔가 엄폐물이 필요한데,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휘니크로아가 다시 하늘 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또 야영지를 한 번 보더니, 뿔뿔이 흩어지는 대원들을 일별했다.
 그 시선이, ATV가 아닌 두 발로 열심히 뛰는 수한과 강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개중 더 빠르게 움직이는 수한에게 관심이 간 것일까.
 눈에 광폭한 빛이 감돌았다.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어느 순간 팡 하고 떨쳤다. 그 거대한 몸이 기울어지며 폭풍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한 씨!”
 “어떻게 해!”
 다른 대원들이 기겁했지만 그들도 자기 코가 석자였다.
 수한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망칠 수 없다.
 몸을 돌렸다.
 휘니크로아의 몸이 확대된다.
 세상 전체를 무너뜨릴 것만 같은 기세.
 너무 빨랐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비릿한 피가 배어나와 입 안을 감돌았다.
 ‘이대로 끝인가?’
 지난 10년 동안의 세월이 눈앞을 스쳤다.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서, 이제 겨우 살만해 졌는데…….
 두 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여기서 죽으면 동생들은 어떻게 하지?
 아냐, 잘 살 것이다.
 보험도 빵빵하게 들었고, 보상금도 따로 나올 테니까. 남자놈들이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나.
 그렇다고 이렇게 죽어줄 수야 없는 일.
 여기서 죽어 자빠지려고 그렇게 열심히 산 게 아니란 말이다!
 수한은 눈에서 불을 토했다.
 산탄총을 들었다.
 타타탕!
 탄창을 모두 비웠다.
 총구가 미친 듯이 불꽃을 뿜었다.
 쇠구슬 수백 개가 휘니크로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소용이 없었다. 모조리 방어막에 막혔다.
 오히려 휘니크로아가 성을 내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수한은 산탄총을 내팽개쳤다. 이를 갈며 소총을 휘니크로아에게 겨누었다.
 막 연발로 갈기려는데,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거예요! 도망치지 않고!”
 번쩍!
 번개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강맹한 전기 다발이 휘니크로아를 직격했다.
 휘니크로아가 깜짝 놀라 날개를 휘저었다. 간발의 차이로 수한을 비껴가더니, 인근 땅에 착지했다.
 ATV 한 대가 수한에게 달려오더니 앞에 멈췄다.
 여인 한 명이 그 안에 타고 있었다.
 모두 도망치는 판에, 그녀가 구하러 올 줄이야…….
 절망 끝에서 다가온 희망.
 바람에 나부끼는 검은 머리칼과 흰 얼굴, 그리고 양손에 깃든 흰 번개가 수한의 뇌리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졌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새미 씨?”
 “얼른 타요!”
 감상은 나중에.
 수한은 총만 챙겨서 ATV 뒤에 매달렸다. 새미가 페달을 꽉 밟자 ATV가 쭉쭉 달려 나갔다.
 “캬아아악!”
 흉성이 폭발한 휘니크로아가 길게 소리를 질렀다.
 뒤뚱거리며 달려오더니, 날개를 펄럭여 하늘에 몸을 띄웠다. 속도를 빠르게 올리자 금세 ATV가 휘니크로아에게 따라잡혔다.
 파직! 파지직!
 새미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번개를 날렸다.
 휘니크로아의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탕탕!
 수한은 산탄총을 쏘았다.
 휘니크로아의 눈 바로 앞을 노리고 쏜 참이었다. 눈앞에서 불똥이 튀자 휘니크로아의 몸이 더 불안정해졌다. 변이체도 생물인 이상,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니까.
 ATV를 따라오던 휘니크로아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포기한 건가?
 아니다. 장기인 급강하 공격을 하려는 거였다.
 수한은 새미에게 외쳤다.
 “금방 옵니다! 뛰어내릴 준비 하세요!”
 “알았어요!”
 새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하늘 위를 힐끔거렸다.
 수한은 ATV 위로 기어 올라갔다. 소총과 산탄총 둘 다 탄창을 간 후, 하늘 위의 휘니크로아를 살폈다.
 휘니크로아가 날개를 떨치는 게 보였다.
 벼락 치듯 맹렬하게 떨어져 내렸다. 공기가 찢어지며 비명을 지르고, 거대한 그림자가 ATV 위에 드리워졌다.
 “지금!”
 수한과 새미가 나란히 몸을 날렸다.
 둘이 거친 바닥에 뒹구는 것과 함께 ATV가 박살났다.
 몸을 가눈 뒤 산탄총을 쏘려고 했지만, 휘니크로아는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뒤였다.
 “새미 씨! 괜찮아요?”
 “네! 전 괜찮아요. 수한 씨는요?”
 “저도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저쪽으로 피하죠!”
 마침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였다.
 새미가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ATV를 몰았던 것.
 수한은 새미를 데리고 그 뒤에 숨었다. 휘니크로아가 착지해서 공격한다면 모를까, 급강하 공격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캬악!”
 다행스럽게도 휘니크로아는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했다. 불길이 거의 창고까지 다가간 까닭이었다.
 하잘 것 없는 벌레들이야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먹이를 삼킨 다음 짓밟아도 충분했다. 지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맛난 먹이를 챙기는 게 급선무였다.
 천천히 날개를 휘저어, 야영지 위로 날아들었다.
 수한과 새미는 바위 뒤에 숨어 그걸 똑똑히 지켜보았다.
 관심 없는 척, 휘니크로아의 눈알이 둘을 한 번 훑어보고 지나갔다. 수한의 등줄기에 소름이 좌르륵 돋았다.
 격발기는 지혁과 13과 과장이 갖고 있었다.
 작전이 통해야 할 텐데…….
 “잘 되겠죠?”
 새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한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사실은 수한도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휘니크로아가 창고 앞에 내려앉았다.
 그 앞에 서서 가볍게 날개를 쳐냈다. 가벼운 창고 골조들이 단번에 무너졌다. 창고가 쓰러지며, 그 안에 보관된 변이체 시체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확히 20마리.
 그 중 중요한 것은 딱 둘.
 각자 두 토막이 난 B급 변이체 시체였다.
 그걸 본 휘니크로아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게, 군침을 삼키는 것 같았다.
 “구르륵, 구륵.”
 묘한 소리를 낸 다음 그대로 변이체 시체를 집어삼켰다.
 하나, 둘, 셋, 넷.
 시체 토막 전부였다.
 성공이다.
 수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폭탄을 매설해 놓은 네 개의 시체 토막이 모두 휘니크로아의 몸에 들어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나 보다.
 휘니크로아는 남은 시체들을 몽땅 먹어치웠다. 덕분에 날렵하던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캬아악!”
 휘니크로아가 홰를 치며 묘한 소리를 질렀다.
 배가 불러 흡족하다는 태도.
 주변을 불길이 휘어 감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뻐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휘니크로아의 배가 폭발했다.
 녹색 체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고기 조각이 야영지 전역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성공이네요!”
 옆에 서 있던 새미가 환호성을 질렀다.
 수한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짜릿한 쾌감이 수한의 전신을 관통했다. 입가에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A급 변이체라도 이 정도 타격을 입으면 견디지 못한다.
 몸통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두 쌍의 날개가 찢겨 나갔다. 그나마 두 개의 다리와 머리, 목, 그 아래 가슴 정도만 온전히 붙어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죽지는 않았나 보다.
 녹색 체액 웅덩이에서 휘니크로아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머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하여간 질긴 생명력이다.
 새미가 손에 다시 번개를 만들었다.
 “저거 확인 사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버려 두세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방어막은 이미 소멸되었다.
 굳이 위험하게 가까이 가서 이능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멀리서 총알 몇 방만 박아 넣어도 끝장낼 수 있었다.
 수한의 생각대로였다.
 탕! 탕!
 멀리서 총소리가 울렸다.
 땅에 쓰러진 휘니크로아의 몸이 들썩였다.
 총알이 박힐 때마다 녹색 체액이 터졌다. 구멍도 뻥뻥 뚫려서,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수십 발의 총알을 얻어맞자,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꼼짝달싹 하지 않고 드러누운 채, 녹색 걸쭉한 체액만 진득하니 흘렸다.
 ATV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고, 야영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수한은 새미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새미 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 뭘요. 같은 공격대 소속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몸을 던져 다른 사람을 도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한은 새삼스럽게 새미를 보았다.
 강성에게 비인간적인 공격대라고 쏘아붙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그렇게 따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으로 직접, 자신이 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으니까.
 수한은 거푸 감사 인사를 했다. 새미가 부담스럽다고 그만하라고 손을 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숨 빚이다.
 뭔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수한으로서는 인사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잠시 후 바위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야영지는 아직 전소되지 않았다. 많은 손실이 발생했지만, 지금이라도 불을 끄면 아쉬운 대로 며칠 더 머무를 수는 있었다.
 그 후 휘니크로아의 시체만 잘 챙겨 가면 엄청난 이득을 챙길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B급 변이체 십여 마리를 잡아가는 것보단 낫겠지.
 원정대원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반대쪽으로 도망쳤던 강성도 합류했다.
 “새미 씨! 괜찮아요?”
 “수한 씨! 다친 곳은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전 괜찮은데 수한 씨 머리에서 피가 나요!”
 “어디 한 번 봅시다.”
 사태를 주시하던 원정대가 모두 귀환했다.
 몇 명은 둘의 상처를 살피고, 몇 명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모래를 뿌려 불을 끄느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수한은 상처를 치료하며 레벨 업 도우미의 창을 펼쳤다.
 ‘드디어!’
 저절로 환호성이 나왔다.
 40레벨이 되어 있었다.
 B급과 C급 변이체를 잡으면서 37레벨이 되었는데, 휘니크로아를 잡았더니 3레벨이 더 오른 것.
 능력치도 몇 개가 올랐다. 민첩, 감각, 의지, 직감이 각각 1씩 상승한 것이다. 며칠 동안 사냥과 정찰을 반복하고, 휘니크로아를 상대한 게 반영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능력 점수를 초능 능력치에 찍어서, 초능이 40이 되었을 때 초능창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숫자만 우르르 보였는데, 한 가지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초능]
 [개발 중]
 [80] [120]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39
 
 수한은 여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개발 중이라고?
 무엇을?
 가슴이 뛰었다.
 개발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초능, 즉 이능을 사용하게 되겠지.
 이능력자.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변이체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지금처럼 보조적인 역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다.
 새삼스레 초능창의 숫자들에 신경이 쓰였다.
 원래는 40, 80, 120, 160, 200, 300, 400, 500이라고 쓰여 있던 숫자들.
 초능이 그 숫자에 도달할 때마다 하나씩 개발되는 게 아닐까?
 두고 봐야겠지만, 추측한 게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
 초능창의 변화를 봐서일까.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결렸지만 수한의 몸놀림은 가볍기만 했다. 불을 끄는데 한 몫 거들고, 남은 물건들을 추슬렀다.
 사실 이렇게 모든 일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섣부른 생각이었다.
 하늘을 뒤덮으며 괴물들이 여럿 나타났다.
 “캬아악!”
 “캬악, 캬악!”
 익룡처럼 생긴 변이체들.
 크고 작은 두 쌍의 날개와, 붉게 발광하는 뱃가죽이 특징적이었다.
 약 1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무리.
 놈들은 야영지의 하늘 위를 떠돌았다.
 휘니크로아의 새끼들.
 그것들이 제 어미의 기색을 읽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다.
 복수를 위해서?
 아니다. 변이체들의 세상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변이체들은 야영지 구석에 놓인 휘니크로아의 시체만 노려보고 있었다.
 A급 고위 변이체의 시체.
 최고의 별미이자, 진화의 원천이었다.
 탈출
 
 대강 정리를 한 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캬악! 캬악!”
 변이체들이 울부짖는 게 참 귀에 거슬렸다.
 전투 3과 과장이 하늘을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이번 원정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대공 장비도 하나 없으니…….”
 “저놈들 참 영악하네요. 가까이 접근하면 기관총이라도 쏴서 죽일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인 것은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회수했다는 거였다.
 많은 부분이 손상되긴 했어도, 흔치 않은 A급 비행형 변이체의 시체였다.
 당초 목표를 초과해서 달성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지혁이 사냥 종료를 선언했다.
 “아직 깔루에 도착한지 나흘밖에 안 되었지만, 이번 사냥은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무사히 옮기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간단히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제대로 된 해체 작업은 지구에서 가공부가 알아서 할 터였다. 지금은 ATV에 실을 수 있도록 토막 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덩치가 너무 커서 네 조각으로 나누었다. 각자 신축성이 뛰어난 큰 보퉁이에 넣고, 마무리로 차단막까지 둘러쳤다.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지혁이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제 출발할 겁니다. 벨레즈 협곡을 통과해야 하니까, 모두 긴장하시기 바랍니다.”
 “저놈들은 어떻게 하죠?”
 “달고 가는 수밖에 없지요. 어디보자, 지금 ATV가 9대 남았으니까…….”
 ATV에 탈 인원을 재배치했다.
 막내인 13과의 신입사원과 수한이 ATV 위에 타기로 했다. 아예 기관총까지 대공 삼각대를 이용하여 거치했다.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수한은 박살난 고글을 대신해 예비 고글을 하나 착용했다. 배율을 적당히 조절하고, 하늘 위의 변이체들을 감시했다.
 원래 이그지트까지는 비공정으로 6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ATV로는 최소 48시간은 소모되었다. 바히냐크 평원은 일직선으로 주파하면 그만이지만, 벨레즈 협곡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혁이 짝짝 박수를 쳤다.
 “이제 출발합시다!”
 9대의 ATV가 차례로 출발했다.
 수한은 ATV 위에 몸을 잘 고정시켰다. 그걸 확인하고, 강성이 ATV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중간에 휴식을 취해가며 달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벨레즈 협곡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캬악! 캬악!”
 변이체들은 여기까지 따라왔다.
 C급 3마리에 D급 5마리, E급 3마리였다. 정면으로 싸우면 원정대의 필승이지만, 멀리서 소리만 질러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총을 겨누면 도망치고, 잠시 후 다시 날아와 소리를 지르고, 또 겨누면 다시 도망치고…….
 “지겨운 것들.”
 누군가 넌더리를 냈다.
 어느덧 밤이 찾아와 있었다.
 지혁이 원정대를 정지시켰다.
 이대로 벨레즈 협곡에 들어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곳곳에 소형 변이체들이 숨어 있다가 기습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야영을 하고 가겠습니다. 과장님들은 잠시 모여주세요.”
 과장들끼리 회의를 하는 동안 수한은 텐트를 쳤다.
 24인용 텐트와 이능력자용 텐트는 전소되었다. 그래도 각자 조난을 대비하여 비상용 초경량 2인용 텐트는 가지고 있었다. 설치하는 것도 간단했다.
 밤을 도와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공격해올 줄 알았는데,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원정대에겐 희소식이었다.
 야영 준비가 끝나자 식사부터 했다. 오래 준비할 시간은 없어서, 비빔밥 형태의 전투식량이 전부였다.
 해가 지자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최소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변이체 탐지기를 몇 개 설치했다. 불침번도 평소처럼 2명만 서는 게 아니라 4명으로 늘리고, 이능력자들도 참여했다.
 수한은 이번에도 중번초.
 곤히 자다 깨려니 꽤 피곤했다. 수한은 굳은 몸을 풀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하암, 잘 주무셨어요?”
 새미가 먼저 나와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지만, 은색의 보호복과 흰빛이 감도는 장갑이 유독 눈에 띄었다.
 수한의 뒤를 따라 나온 강성이 새미를 보고 반색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게 불침번이지만, 새미 같은 미인이 옆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을 터였다.
 “잘 잤습니다. 새미 씨가 3번초이신가 봅니다.”
 “3번초요? 어…… 3번째 불침번인 건 맞아요.”
 “하하, 그걸 저희는 3번초라고 합니다.”
 13과에서는 수한의 동기가 졸린 눈을 비비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넷은 모닥불 근처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더 이상 변이체들이 보이지 않아 긴장이 좀 풀렸다. 탐지기도 쥐 죽은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밤 동안에는 공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성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순찰 돌아야 할 시간이네요. 음, 어떻게 할까요?”
 “제가 돌죠. 근방 한 바퀴만 쭉 돌면 되잖아요?”
 앉아 있기 무료하던 참이었다. 수한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새미도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어, 새미 씨까지 같이 갈 필요는 없어요. 변이체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앉아 있으려니까 심심해서요. 가죠!”
 새미가 사뿐사뿐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하긴 기껏해야 10분 정도 주위를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다. 수한은 강성에게 고개를 숙이고 새미의 뒤를 따라갔다.
 “공기가 참 맑네요, 그쵸?”
 수한이 옆에 따라붙자, 새미가 말을 걸었다.
 “깔루 행성은 지구처럼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으니까요. 오죽하면 외계인들도 지구에 오는 것을 기피하겠습니까?”
 “그건 그래요. 언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외계 행성에 놀러가고 싶네요.”
 “새미 씨는 돈 많이 버실 텐데 외계 행성 여행은 충분히 다니실 수 있지 않나요? 들어보니까 헤븐이나 비스티아, 미드가르드가 유명하다던데요.”
 “많이 벌긴 하는데 그만큼 많이 써요. 힘의 결정 하나 사려면 기본이 몇 억이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원정대가 야영하고 있는 곳 주위를 쭉 돌았다.
 슬슬 방향을 틀어 돌아가려는데, 수한의 눈에 뭔가 움직임이 잡혔다.
 무심코 걸어 나가던 새미의 팔을 붙잡았다.
 새미가 깜짝 놀라 수한을 돌아보았다.
 “어…… 왜 그래요?”
 “쉿! 뭔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 어렴풋이, 거대한 닭을 닮은 물체들의 윤곽이 언뜻 보였다.
 비공정을 타고 올 때 봤던 깔루 행성의 토착 육식동물.
 다섯 마리나 될까.
 야영지에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해 온 것이다.
 수한은 산탄총을 들어올렸다.
 새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노려다보더니, 손을 들어 수한을 제지했다.
 “제가 처리할게요.”
 든 손을 그대로 쫙 펴자, 장갑 전체에 흰 빛이 어렸다.
 번갯불이 튀었다.
 장갑에서 뻗어나간 흰 번개가 어둠을 찢었다. 번개가 자기들 발밑을 훑고 지나가자, 동물들이 화들짝 놀랐다.
 “끼이익!”
 부산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뒤뚱뒤뚱 도망쳤다.
 새미가 수한을 보며 살짝 웃었다.
 “총알 쓰면 아깝잖아요?”
 “하하하.”
 수한은 그저 웃고 말았다.
 동물들이 낸 소리 때문에 강성이 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거 무슨 소리에요?”
 “기치캬들이 접근했습니다. 새미 씨가 쫓아냈어요.”
 “그래요? 새미 씨,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여기 수한 씨가 먼저 닭들을 발견했는걸요? 수한 씨가 아니었으면 전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순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보여준 뒤에는 접근하는 것들이 없었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가 2시간이 지나 불침번을 교대했다.
 “휘니크로아 새끼들은 어디 갔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2시간 내내 탐지기에는 안 잡혔습니다. 아마 멀리 간 모양입니다.”
 “그냥 포기할 리가 없는데…….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한은 텐트로 들어와 누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이번에도 전투식량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텐트를 다 걷어 ATV에 실은 후, 천천히 길을 떠났다.
 지혁이 원정대 전체에 주의를 주었다.
 “벨레즈 협곡에는 기괴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상급 변이체는 없지만, 하급 변이체는 꽤 많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특히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하곤 하니까,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수한 씨랑 준표 씨는 탐지기 계속 보고 있고요.”
 “알겠습니다.”
 원정대가 협곡으로 진입했다.
 협곡은 참으로 황량한 곳이었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친 질감의 모래가 잔뜩 깔려 있고, 보이는 것은 붉고 검은 바위뿐이었다.
 봉우리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이건 봉우리가 아니라 기둥을 보는 듯했다. 산악 지형이 아닌, 도심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수한을 사로잡았다.
 “봉우리 사이에 구멍 같은 게 가끔 있지요? 이곳 생물들은 그곳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그리고 바닥에 보면 유독 색이 짙은 곳이 있을 텐데, 그것 이곳 생물들이 파놓은 굴이니까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공격을 당할 수도 있어요.”
 지혁의 설명을 들은 다음에야 바닥의 거뭇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돌을 하나 집어 휙 하고 던졌다.
 돌이 거뭇한 부분에 닿자, 커다란 집게발이 튀어나왔다. 집게발은 돌을 잡고 금방 땅속으로 사라졌다.
 수한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저게 돌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제가 선도하겠습니다. 저 따라오세요. ATV 운전 조심하시고…….”
 지혁이 가장 앞장서고, 13과 과장이 중간을, 전투 3과 과장이 후미를 지켰다.
 바닥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전진 속도가 느렸다. ATV의 최고 속도는커녕 그 반의 반도 못 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마 내일 밤이 다 되어서야 이그지트에 도착할 듯했다.
 수한은 눈을 깜빡였다.
 탐지기 모니터에 빨간 점이 하나 찍혔다.
 변이체가 가까운 곳에 출현한 것.
 수한은 잽싸게 탐지기를 조작했다. 거리와 방향, 등급을 알아낸 후 큰 소리로 외쳤다.
 “방향 11, 거리 500, E급 변이체입니다!”
 “그래요? 그럼 수한 씨가 처리하세요.”
 강성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수한은 소총을 집어 들었다.
 11시 방향이니까 진행 방향에서 살짝 왼쪽에 변이체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고글을 찬 채 아무리 배율을 조절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한은 금방 실수를 깨달았다.
 시선을 위쪽으로 옮겼다. 과연 희끄무레한 괴물 하나가 봉우리 중간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 시점.
 탕!
 묵직한 총성이 대기를 갈랐다.
 총알은 정확히 변이체의 미간을 꿰뚫었다. 변이체가 비틀거리더니 툭 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강성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
 “굿! 원샷 원킬이네요.”
 “에이, 이 정도야 우리 공격대 요원이면 다 하지 않습니까? 겨우 거리 300에서 쐈는데요.”
 “흐흐, 보니까 못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강성은 ATV 운전에 집중했다.
 점심은 건빵과 물로 때웠다. 식사 시간마저 아까웠던 것이다.
 절반 정도 협곡을 지나자 해가 졌다.
 휘이이잉. 휭휭.
 봉우리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소리가 꼭 유령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솜털이 잔뜩 일어나고, 몸이 저절로 움츠려들었다.
 텐트를 칠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별 수 없이 ATV들을 잘 늘어놓고, 침낭만 편 채 자리를 잡았다.
 “불침번 분들 경계 잘 해주세요. 이곳은 바히냐크 평원이랑은 달라서 변이체나 육식동물의 출현이 잦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번에도 통과한 적 있잖습니까? 이번에도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수한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었다.
 차라리 계속 따라왔으면 조심을 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괜히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침낭 안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가슴이 아까부터 계속 두근거렸다.
 꼭 뭔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했다.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수한은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묵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낯선 별자리들이 빼곡했다. 지구의 밤하늘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개중 특이한 게 있었다.
 하늘 한쪽에, 붉은 별 무리가 점점이 떠 있는 게 보였다.
 꼭 핏물이 흐르는 것 같다.
 어젯밤까지는 저런 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잠깐만.
 별이 붉다고?
 수한은 재빨리 침낭에서 기어 나왔다. 벗어두었던 고글을 쓰고, 배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이런……”
 별들을 본 수한이 탄식을 토했다.
 별이 아니었다.
 익룡을 닮은 괴수였다.
 너무 높은 곳에 떠 있어, 미처 경보 장치가 발동하지 않았던 모양.
 수한은 급히 불침번 중인 지혁에게 달려갔다.
 “과장님! 하늘을 보세요!”
 “예? 하늘이라니요?”
 “하늘에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떠 있습니다!”
 “뭐라고요?”
 지혁만이 아니라, 같이 불침번을 서던 사람들이 홱 고개를 꺾었다. 각자 고글을 조작해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가 늘었잖아!”
 “서른 마리가 넘어!”
 “B급도 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소리쳤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수한은 곤히 자고 있던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냐며 묻더니 고글로 괴물들을 확인하자 잠이 확 달아난 모양이었다. 근처에 놓아두었던 무기를 집어 들고, 탄창을 몇 개씩 챙겼다.
 탐지기를 확인하여 변이체들의 수와 등급을 알아냈다.
 “거리 500! B급 2마리, C급 7마리, D급 12마리, E급 11마리입니다!”
 “이런 젠장.”
 “총 32마리나 돼?”
 “미친!”
 B급 변이체가 2마리만 되어도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것들 말고도 30마리나 있다고?
 휘니크로아가 살면서 낳았던 새끼들이 몽땅 몰려온 모양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깃들었다.
 지혁이 박수를 쳤다.
 “자, 모두 힘냅시다! 우리는 휘니크로아도 잡지 않았습니까? B급 변이체 두 마리야 휘니크로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맞아요. 지구 가서 보너스 두둑하게 받아야죠!”
 “꼭 잡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이그지트까지만 가도 됩니다. 그리고 벨레즈 협곡에선 놈들이 활동하기도 어려워요. 덩치가 커서 좁은 곳으론 들어오지도 못할 걸요?”
 “그러겠네요. 아니, 습격해달라고 고사라도 지내야겠는데요? 이런 지형에서면 우리가 훨씬 유리해요.”
 모두들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듣고 보니 그랬다.
 비행 변이체가 활동하기엔 지형이 너무나 안 좋았다. 하급의 변이체는 몸집이 작아 가능하지만, 총을 쏴 갈기면 녹아 스러질 놈들이었다.
 “캬아악! 캬악!”
 놈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기성을 질렀다.
 그래도 당장 공격해 올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원정대의 머리 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가 늘었다.
 방어막이 있는 B, C급은 아니어도 하급의 변이체들이 한 마리 두 마리씩 합류했다. 그때마다 기존의 변이체들이 기세 좋게 울음을 터뜨렸다.
 원정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었을 때, 변이체의 수는 40마리까지 늘어났다. B급 변이체는 2마리에 불과하지만, 그 수만으로도 무척 위협적이었다.
 모두 ATV에 시동을 걸었다.
 떠나기 전, 진형 조정이 있었다.
 지붕이 빈 ATV 5대에 지원 요원과 새미를 올렸다. 기관총이나 유탄발사기를 거치하고, 새미의 원거리 공격 능력을 활용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정도면 대공 전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변이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놈들의 몸집이 확연히 커 보였다. 이젠 육안으로도 놈들의 형체를 구분할 수가 있었다.
 “캬아아악! 캭캭!”
 변이체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아무래도 조만간 공격해 올 것 같았다.
 충분히 머릿수가 모였다고 생각한 모양.
 수한은 기관총을 최대한 하늘을 향해 꺾었다. 옆에서 준표가 얼굴을 굳히는 것이 보였다. 앞의 ATV 위에 앉아 있던 새미가 일어서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장 앞에서 달리던 지혁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정지합시다.”
 공격이 임박한 상태.
 이대로 달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방어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수한은 내심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벨레즈 협곡을 벗어난 다음 이그지트의 수호자 연맹 파견대에게 무전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괜히 사람들이 다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고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나았다.
 이곳에선 거리도 멀고 봉우리들 때문에 무전기의 통달거리가 무척 짧았다. 지구처럼 기지국이나 인공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곳에 멈춰 최대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기관총과 유탄 발사기를 거치한 ATV를 외곽에 십자 형태로 배치했다. 탐지기와 경보기를 작동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았다.
 수한은 기관총의 총신을 쓰다듬었다.
 탄띠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교체할 총열도 미리 충분히 꺼내놓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미친 듯이 기관총을 갈길 생각이었다.
 “옵니다!”
 누군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변이체들이 일제히 날개를 떨쳤다.
 파앙!
 먼 거리임에도, 꼭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변이체들이 날개를 접고 돌풍처럼 밀어닥쳤다. 주위를 빼곡 채운 봉우리 때문에 일렬로 주욱 늘어선 상태였다. 흡사 거대한 창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제길.”
 수한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교활하게도 B급 변이체들이 선두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기관총을 쏘든, 유탄을 발사하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믿을 것은 대열 중앙에 서 있는 새미 하나뿐이었다.
 새미가 숨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집중했다.
 두 손을 모으자 흰 번개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번개가 점차 그 위력을 더하더니, 종국에는 커다란 번개 덩어리를 만들었다.
 “하압!”
 가볍게 손을 떨치자, 번개 덩어리가 느릿하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지지직! 파직!
 번개가 사방을 휩쓸었다.
 덩어리는 변이체들을 향해 날아가며 공간 전체를 흰 번개로 물들였다. 마치 거대한 전기 그물이 허공에 생성된 것 같았다.
 전기 그물은 상공 이십여 미터쯤에서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위협을 느낀 변이체들이 급히 날갯짓을 했다. 육중한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겨우 허공에 정지하는데 성공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기껏해야 선두의 몇 마리.
 뒤이어 날아오던 변이체들은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겨우 양 옆으로 비껴 날아갔다. 혹은 앞의 변이체를 들이받아, 변이체들이 전기 그물에 걸릴 뻔 했다.
 새미가 칫 소리를 냈다.
 미완의 기술이라 속도가 너무 느렸다. 조금만 더 빠르게 쐈어도 회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수한에게 기회가 왔다.
 방아쇠를 당기자 오렌지색 빛줄기가 쭉쭉 뻗어나갔다. 예광탄이 공중에서 연소되며 빛나는 것이다.
 다른 요원들의 소총도 불을 뿜었다. 유탄도 변이체들을 노리고 날아갔다. 후미에 있다가 사방으로 퍼진 하급 변이체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캬아악! 캭캭!”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협곡을 가득 채웠다.
 녹색 체액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가 점점이 낙하했다.
 변이체들이 급히 날아올랐다.
 이미 그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뒤.
 그러나 전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B급 2마리와 C급 8마리는 온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캬아악!”
 남은 변이체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선회했다.
 전기 그물은 곧 사라졌다.
 원정대 입장에서는 한숨 돌린 셈.
 “새미 씨 덕에 살았습니다.”
 “최곱니다!”
 “B급이랑 C급이 남아 있어서 문제에요. 그물 써도 안 걸릴 것 같은데…….”
 휘니크로아의 새끼답게 모두 지능이 높은 것 같았다.
 처음 기술을 사용했을 때 결착을 봐야했다며, 새미는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변이체들이 다시 돌진했다. 새미가 또 전기 그물을 만들었다. 그새 적응했는지, 변이체들이 흩어지는 게 질서가 있었다. 상급 변이체들이 하급 변이체를 감싸며 하늘로 날아올라, 이번에는 완전히 허탕을 쳤다.
 새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전기 그물은 꽤 강력한 기술이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상당히 많은 힘을 소모했다. 이제 몇 번만 더 쓰면 새미가 탈진할 지도 몰랐다.
 “새미 씨, 괜찮아요?”
 수한이 묻자, 새미가 침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은 괜찮은데, 한 서너 번 사용하면 끝이에요. 아직 미완성이라서요.”
 변이체들도 그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또 하늘 위에 모여 급강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원정대 전체가 변이체들의 먹잇감이 될 터.
 “움직이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다 대열이 흐트러지면 우린 죽은 목숨이에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이 근처에 봉우리가 많아서 유난히 좁은 지역이 한 곳 있습니다. 그곳으로 일단 이동하는 게 어떻습니까? 워낙 좁아서, 변이체들이 공격해 오기도 힘들 겁니다.”
 과장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또 한 차례 공격이 지나갔다.
 새미의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 숨도 가쁘게 쉬는 게,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일단 그곳으로 갑시다.”
 탐지기와 경보기 중 일부만 회수하고 길을 나섰다.
 변이체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새미는 두 번 더 전기 그물을 만든 뒤 ATV 위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다행히 세 번 째 공격을 당하기 전, 목표로 삼은 곳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목이 오목한 항아리처럼 생긴 곳.
 봉우리들이 덤불처럼 엇갈려 솟아 있었다. D급 이하의 하급 변이체라면 모를까, 그 이상의 변이체는 들어오지 못할 터였다.
 “캬악! 캬악!”
 변이체들이 부산하게 소리를 질렀다.
 일단 새미부터 챙겼다.
 “물, 물…….”
 새미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적당한 곳에 눕더니 물을 찾았다. 물을 좀 마시고 난 후에야 기력을 좀 찾는 것 같았다.
 전투 3과 과장이 새미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무 무리했습니다. 최소 몇 시간은 쉬어야 해요.”
 “아직은 버틸 수 있어요.”
 “그러다가 완전히 탈진하면 어쩌려고요? 일단은 힘부터 회복합시다.”
 다시 방어 진형을 갖췄다.
 그나마 이곳으로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일단 변이체들이 공격을 멈췄다. 덕분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한은 기관총의 총열을 교체했다. 새로운 탄환 상자를 가져와 탄띠를 기관총에 연결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총을 쏜 까닭에 총열도 뜨거워졌고, 총알도 많이 소모했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죠?”
 준표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지금 원정대가 머물러 있는 곳은 벨레즈 협곡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이그지트나 바히냐크 평원으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나가야 했다.
 지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신은 불가능하고, 우리 능력으로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에요.”
 “그게 뭡니까?”
 “전투 3과에서 구원 요청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지혁의 말뜻은 간단했다.
 이능력자들이 직접 이그지트까지 가서 구원을 청하라는 것.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 원정대를 호시탐탐 노리는 변이체들도 그렇지만, 벨레즈 협곡 자체도 위험했다. 무리를 지어 다닐 때야 기습에 대처하기 쉬웠다. 그런데 일행의 수가 줄어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 3과 과장은 선뜻 수락했다.
 “좋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요. 새미 씨는 무리했으니 남기고, 저와 김 대리만 다녀오겠습니다.”
 “저랑 이 대리가 따라가겠습니다. 길잡이는 있어야지요.”
 “이 대리님까지 보호하긴 힘듭니다. 차라리 송 과장님만 같이 가시지요.”
 “그럴까요?”
 21명 중, B급 이능력자 1명과 C급 이능력자 1명, 그리고 지원 13과 과장이 떠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들이 챙긴 것은 ATV 1대.
 어차피 ATV는 변이체들의 공격에 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따로 식량과 물을 넣은 배낭을 챙겼다. 운이 좋으면 ATV를 타고 가고, 아니면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며칠 걸릴 겁니다. 몸 조심히 계세요.”
 “여러분이 더 위험할 겁니다.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가세요.”
 “걱정 마세요.”
 셋이 임시 야영지를 떠났다.
 때를 같이하여, 원정대 전원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셋에게서 변이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변이체들은 원정대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다.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노리는 탓에, 구원을 청하러 움직이는 세 명에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지혁이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됐습니다. 변이체들이 공격하지 않았으니, ATV는 무사할 겁니다. 하루 정도만 버티면 됩니다.”
 하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불안에 떨며 시간을 보냈다.
 원정대가 조금만 방심을 하는 것 같으면 변이체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봉우리 사이로 날아오기도 하고, 어떤 놈은 뒤뚱뒤뚱 걸어 접근하기도 했다.
 지형을 이용해 막아내곤 있지만, 원정대가 차츰 지치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밤이 되었다.
 조명을 이곳저곳에 장치했다. 특히 하늘 위와 이곳으로 접근하는 통로에 중점적으로 불을 밝혔다.
 “놈들이 조용하네요.”
 “어디로 간 거죠?”
 “어제도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른 놈들 데리고 왔는데…….”
 특징적인 배의 붉은 빛이 보이지 않고, 캬악 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검은 하늘 가득 맑은 별빛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언제 다시 나타나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새미 씨, 괜찮아요?”
 수한은 새미에게 다가갔다.
 새미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지 오래였다. 흐르는 땀방울이 애처로운 빛을 뿌렸다.
 “지금은 견딜 수 있어요.”
 다행히 목소리는 또렷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나. 여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혹사당하고 있는데.
 수한이 몇 마디 말을 더 건네려고 할 때였다.
 탐지기를 주시하던 준표가 소리를 쳤다.
 “변이체들이 돌아옵니다!”
 수한은 급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변이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을 환히 비춰놓은 까닭에 놈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사람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저, 저거!”
 “말도 안 돼!”
 “젠장! 비행형들이 머리가 좋다더니!”
 저 하늘 높이 떠오른 변이체들.
 두 개의 다리마다 커다란 돌을 꽉 잡고 있었다.
 그것뿐이었으면 말도 안 한다.
 B급 변이체들은 돌이 아니라 뱀처럼 생긴 하급 변이체를 잡고 날아왔다. 변이체들이 괴성을 질러대지만, 급수가 워낙 차이가 나다 보니 대항할 생각은 못하는 것 같았다.
 놈들의 생각은 뻔했다.
 돌과 하급 변이체를 던져 넣으려는 것이다.
 그것 또한 재앙.
 설마 하니 이런 식으로 공격해올 줄 누가 알겠겠나.
 장애물이 많아서 이곳으로 피했는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악수(惡手)를 둔 셈이 되었다.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쳤다.
 “조심해요!”
 “피해요!”
 돌들이 수직 낙하했다.
 땅이 진동하며, 부딪친 것은 모조리 박살내 놓았다.
 ATV 한 대가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짐을 부려놓은 윗부분이 단박에 찌그러졌다. 운전석이 침범당해 써먹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조명 하나가 깨졌다. 돌이 스치기만 한 것으로 유리 부분이 깨지고, 타닥타닥 전깃불이 드러났다.
 떨어진 변이체들도 문제였다.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혓바닥을 날름대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비록 총알 몇 방에 침묵하긴 했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입을 쩍 벌리고 독액을 사방에 뿌렸기 때문이었다. 지원 요원 몇 명이 중독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저기 불이 번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총소리가 고막을 때리고, 변이체가 기세등등하여 공격을 가했다.
 방법이 없다.
 수한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기관총을 쏴서 하급 변이체 몇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B급과 C급은 온전했고, 영악하게도 하늘 위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미를 비롯한 이능력자들의 공격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그 사이에도 돌 하나가 낙하했다. 수한의 바로 코앞에 떨어져, 어지간한 수한도 깜짝 놀랐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초능창을 펼쳤다.
 여전히 개발 중이라고 쓰인 글자가 보였다.
 한 가닥 기대가 물거품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여기서 초능을 각성했다면, 반전을 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손을 오므려 초능창을 접을 생각도 못하고, 수한은 기관총을 쏘고 또 쏘았다.
 안쪽에 있던 지혁이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 원정은 실패였다.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대거 불어난 시점에 진작 포기를 해야 했다.
 물욕에 어두워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까닭에 여기까지 질질 끌고 왔다. 그 결과 이렇게 원정대 전체가 위험에 처하지 않았나.
 이럴 줄 알았다면 휘니크로아의 시체 따위 던져버리고 달아났어야 했는데…….
 ‘아냐. 아직 늦지 않았어.’
 최소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자는 없었다.
 중독된 이들도 제때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터였다.
 문제는 시간.
 지혁은 결정을 내렸다.
 “모두 ATV에 타세요! 시체를 버립니다!”
 “예?”
 “말도 안 돼!”
 아무리 산산조각이 났어도 휘니크로아의 시체는 막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 억 이상이었다.
 공격대가 가져가는 게 크긴 하지만 개인당 수억씩은 받을 예정이었다. 몫이 큰 이능력자들만이 아니라, 지원 요원들도 쏠쏠히 받을 테고.
 그런데 그걸 포기하자고?
 힘겹게 총을 쏘던 몇몇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혁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대로 가면 모두 전멸합니다. 당장 빈 ATV 위에 오르세요! 어서!”
 일단 원정에 나선 이상, 원정대 대장인 지혁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현재까지 온전한 ATV는 총 6대.
 휘니크로아의 시체가 담긴 포대를 ATV 위에서 던졌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2대는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모두들 4대의 ATV 위에 올랐다.
 새미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수한이 탄 ATV에 자리를 잡았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해서, 수한이 기관총을 쏘다말고 새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 고마…….”
 어찌나 힘이 없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수한은 새미를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그리고 기관총의 총구를 올려 사격에 열중했다.
 지혁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전속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겁니다. 이그지트까지 단번에 달려갈 테니 잘 따라오세요. 뒤처지면 구해드릴 수 없습니다. 본인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되요. 알아들으셨습니까?”
 “예!”
 “준비됐습니다!”
 “수한 씨랑 13과 명준 씨는 출발하면 휘니크로아 시체를 쏘세요. 무슨 말인지 알죠?”
 “알겠습니다!”
 지혁이 금방 ATV를 출발시켰다.
 수한은 기관총으로 남겨둔 ATV 위의 화물을 훑었다. 차단막에 구멍이 뽕뽕 뚫리며, 휘니크로아 특유의 기운이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원정대를 공격하던 변이체들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놈들의 입가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휘니크로아의 시체에서 풍기는 기운이 그들을 자극했다. 식욕이 불끈거리며 치솟고, 본능적인 탐욕이 그들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몇몇은 도망치는 원정대를 돌아보며 고민에 빠졌다.
 저놈들을 먼저 죽여 놓고 먹이를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눈에 무척이나 거슬리는데.
 이들 또한 어미 특유의 흉포함을 물려받은 것.
 하지만 몇 마리가 먼저 시체를 향해 날아가자, 다른 놈들도 눈이 뒤집혔다. 덩치가 커서 진입하기 어렵던 B급 변이체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ATV 네 대가 항아리 같은 지점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뒤에서 변이체들이 악을 쓰는 게 들렸다.
 원정대와 싸울 때는 동맹이었지만 휘니크로아의 시체 앞에서는 달랐다. 이젠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웠다.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독차지하면 더 강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달리자 변이체들이 질러대는 괴성이 조금씩 멀어졌다. 30분 정도 달렸을 때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휴!”
 “따돌렸나 봐요.”
 그래도 ATV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지혁이 가장 선두의 ATV를 몰며, 더 빨리 가자고 독려했다.
 수한이 탄 ATV는 일행의 후미에 위치했다.
 탐지기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변이체 특유의 괴성도 들리지 않았다. 수한은 속으로 조금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나 보다.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캬아아아악!”
 분노에 차 울부짖는 소리.
 듣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수한은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붉은 그림자가 저 멀리 하늘에 떠 있었다. 검은 바람이 이는 듯한 착각과 함께, 그림자가 계속해서 커졌다.
 “B급 변이체입니다!”
 “우릴 쫓아오고 있어요!”
 수한은 고글을 조절해 변이체를 확인했다.
 날개 한쪽이 너덜너덜했다. 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뿔 하나가 뽑혀져 나갔다. 눈 한쪽을 잃었는지 어쨌는지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긴 목과 두 다리, 뱃가죽에도 온갖 상처가 자잘하게 났다.
 그럼에도 눈에서 불타오르는 광채만은 한결 같았다. 번갯불 튀기듯 번뜩이며 원정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쯧!”
 지혁이 혀를 찼다.
 변이체끼리 싸우고, 휘니크로아의 시체까지 먹고 올 테니 좀 늦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원정대를 쫓아온 것이다.
 새미가 비칠비칠 상체를 세웠다.
 “한 마리밖에 없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해야죠. 살아남으려면.”
 목소리는 흐렸지만, 거기 실린 힘은 가볍지 않았다.
 수한은 반짝이는 새미의 눈을 돌아보았다.
 강렬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자의 눈.
 그 눈에 담긴 빛을 보며, 수한은 약해지려고 했던 자신을 다잡았다.
 B급 변이체가 강하다곤 하지만 이쪽에도 B급 이능력자가 있다. 더구나 그녀를 도울 C급 이능력자도 2명이나 존재하고, 여차하면 지원 요원들이 개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승산은 이쪽에 있었다.
 변이체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캬아악!”
 또 한 번 분노에 찬 괴성을 질러댔다.
 수한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변이체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까 봤을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무심코 지혁쪽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진 몰랐는데, 지혁이 탄 ATV 위에 커다란 궤짝이 하나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어째서인지 차단막으로 빙빙 둘러놓은 궤짝.
 금방 그 정체를 눈치 챘다.
 휘니크로아의 심장.
 손해를 벌충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변이체들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인지 따로 빼돌린 것이다.
 “캬아악!”
 변이체가 다가왔다.
 강성이 조수석에서 몸을 내밀었다. 소총을 들어 신중하게 변이체를 겨눴다. 슬쩍 방아쇠를 당기자, 오렌지색 불꽃이 으르렁대며 튀어나갔다.
 역시 효과가 없었다.
 수한은 변이체의 코앞에서 불똥이 튀기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강성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또다시 속수무책.
 새미가 눈을 감고 체력을 회복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ATV 천장에 점점이 떨어졌다.
 속도를 더 올릴 수도 없었다.
 지금이 최고속도였다. 더구나 가끔씩 출현하는 하급 변이체를 처리하고 가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변이체에게 따라잡혔다.
 “캬아아악!”
 원정대 머리 위를 따라오며, 변이체가 길게 울음을 토했다.
 광폭한 눈이 원정대 전체를 훑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미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
 제법 신중하게 움직였다.
 한 동안 새미를 살핀 이후에야 날개를 활짝 펼쳤다.
 급강하 공격.
 ATV들이 일제히 거리를 벌렸다. 한 곳에 뭉쳐 있다가 당하면 다 같이 죽는 거니까.
 쌔애액!
 변이체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강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우리가 목표야!”
 “새미 씨! 어떻게 좀 해봐요!”
 수한이 기관총을 난사했지만 소용없었다.
 기댈 것이라곤 새미 하나 뿐.
 새미가 번쩍 눈을 떴다.
 몸을 튕기듯이 일어나며, 늘어놓았던 양 손을 빠르게 내밀었다.
 손바닥 중심에서 새하얀 전깃불이 번뜩였다.
 파지직!
 흰 번개가 변이체를 짧은 시간 무수히 두들겼다.
 전투력을 잃은 줄 알고 공격을 감행했던 변이체였다. 번개를 뒤집어 쓴 변이체가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캬아아악!”
 그 때문일까.
 변이체가 방향을 홱 틀었다. 노리던 ATV를 놓치고 땅바닥에 거칠게 쑤셔 박혔다. 그 와중에 날개가 펼쳐지며 수한이 탄 ATV를 후려쳤다.
 “아악!”
 “새미 씨!”
 자세가 불안정하던 새미가 ATV 밖으로 튕겨 나갔다.
 수한이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은 뒤.
 새미는 바닥을 몇 번이나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다 큰 바위에 걸려 활개를 치며 뻗었다.
 어둠에 파묻힌 새미가, 수한의 뇌리에 유독 뚜렷이 들어와 박혔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하얀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이질적이었다.
 입가에서 붉은 핏물이 점점이 흘러내렸다. 그 핏물과 함께 새미의 생명도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강성이 거품을 물고 외쳤다.
 “더, 더, 더 밟아! 더!”
 “알았어! 좀 닥쳐 봐!”
 조수석에 앉은 강성도, 운전석에 있는 송 주임도 새미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튕겨져 나가는 것을 봤을 텐데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가면 백이면 백, 변이체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기만 했다.
 자신의 목숨만 도모했다.
 한 가지 사실을 외면하고서, 저 어둠 너머에 있을 차원문을 향해 달렸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깔루 행성으로 들어오기 전, 강성이 자신을 불러다 한 얘기가 떠올랐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기라고 했지.
 낙오하면 도와줄 사람도 없다던가.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가 자기 목숨 걸어가며 다른 사람을 돕는단 말이냐. 그러다 다치거나 죽으면 자기만 손핸데.
 하지만……
 이렇게 새미를 버리고 도망치는 게 잘 하는 거냐?
 아니, 옳고 그른 것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수한의 눈앞을 꽉 채우고 있는 한 장면이 있었다.
 겨우 엊그제.
 휘니크로아에게 잡혀 죽기 일보 직전이던 그때.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수한을 구했던 한 여자의 모습.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머리칼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손에서 뻗어나간 흰 번개가 수한의 가슴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더란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외면했을 때, 유일하게 달려와 수한을 구해준 그녀.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동생들?
 이제 다 컸다.
 10년 전처럼 9살, 10살 꼬맹이가 아니다. 여기서 수한이 죽더라도 보험금과 보상금으로 먹고 살 수 있었다.
 수한의 눈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목숨 빚은 목숨으로만 갚을 수 있는 법.
 생명의 은인이자 연약한 여자를 두고 도망치라고?
 그럴 거면 거시기를 콱 떼어버려라!
 평생을 두고 오늘을 후회하느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수한은 ATV에서 뛰어내렸다.
 강성은 수한이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부사수건 뭐건 자기 목숨이 더 소중했으니까. 그게 세상인심이고, 강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ATV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이잉 하는 전기 엔진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수한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새미 씨! 새미 씨!”
 소총만 들고 새미가 떨어진 곳으로 달렸다.
 그 잠깐 사이 거리가 꽤 멀어졌나 보다. 제법 뛰어간 뒤에야 새미를 발견했다.
 새미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뜻 모를 신음을 계속 흘렸다.
 “새미 씨! 괜찮아요? 새미 씨!”
 수한은 새미의 가슴에 한쪽 귀를 올렸다.
 다행히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머리에도 특별히 상처는 없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수한이 판단하기엔 일시적인 탈진 상태 같았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크르르르…….”
 상처 입고 분노한 변이체가 둘의 앞에 내려앉았다.
 화등잔을 켠 것처럼 불타는 눈이, 기절한 새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탕탕!
 소총을 쐈지만 효과가 없었다.
 불똥만 튀고 끝이었다. 형제들끼리 싸우고, 새미의 공격을 얻어맞고도 방어막이 남아 있던 것이다.
 “키기긱, 키긱.”
 변이체가 비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싸워 이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수한은 소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탄창을 교환했다. 철컥 하는 소리가 송곳처럼 아프게 수한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변이체가 다가온다.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을 뒤로 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수한과 새미를 뒤덮었다.
 변이체가 목을 길게 뻗었다.
 흉악한 아가리가 둘을 덮치려는 그 순간이었다.
 수한의 시야 한쪽이 하얗게 물들었다.
 미처 접어두지 않은 초능창이 꿈틀거렸다.
 글자가 떠오른다.
 반딧불처럼 날아들어, 수한의 뇌리에 똑똑히 박혔다.
 겨우 네 글자.
 그러나 지금의 수한에겐 아주 큰 의미를 가진 그 무엇.
 [개발 완료]
 이제, 세상이 바뀐다.
 
 <『레이드 커맨더』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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