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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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4.01.04 조회 334 추천 2


 1화
 
 
 
 
 第 一 章
 
 1
 
 사람들은 날 보지 못했다.
 배 아파 낳은 어미조차 날 못 봤으니 말 다 했다.
 처음 몇 년간은 그들이 나에게 말하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 그들로부터 없는 존재였다.
 
 “일아.”
 “남궁 소공자.”
 “남궁 소협.”
 “남궁일 대협!”
 
 모두가 이리 불렀지만, 대답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난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존재하기만 했다. 주위에 날 알리는 방법 따윈 없었다.
 남궁일이라 불린 그놈의 자식도 날 몰랐다.
 내 몸이었던 살덩어리는 세상 밖에 나오자마자, 강보에 싸여 땅속에 묻혔으니까.
 어째서 그렇게 됐냐고?
 이게 다 천기자의 예언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천하를 말아먹는다.>
 
 내일 날씨도 못 알아맞히는 작자의 말을 뭐 그리 맹신하는지 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데 말이다.
 그 빌어 처먹을 늙은이의 예언 때문에, 놈들은 날 가묘가 아닌 이름 모를 야산에 묻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금물이다!
 죽임을 당한 건 아니었다.
 명문세가인 남궁세가에서 그럴 리가 없지.
 난 어미 배 속에서 이미 죽었다. 한데 죽은 이유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궁일 그 도적놈이 피와 양분을 다 가져가는 바람에 내 기력은 갈수록 쇠약해졌고, 반면에 그 도적놈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기력이 달리니 뭘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도태된 것이다.
 영양실조로 죽다니, 그것도 엄마 배 속에서!
 이게 말이 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의 원인은 그 도적놈이다.
 내 피와 양분까지 게걸스럽게 다 처먹고, 내가 누려야 할 것을 남김없이 가로채 간 남궁일, 이 자식!
 한데 웃기게도 천하는 그를 인의대협이라고 부르며 물고 빠느라 정신없었다.
 
 한심한 새끼들.
 그 도적놈이 한 짓을 모르니 그러는 거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날 때부터 도적놈이었는데 커서는 오죽하겠어?
 태어나자마자 천하의 갖은 영약(내 몫이 분명한!)을 처먹는 것도 모자라서 몸에 처발라 댔다.
 그 비싼 걸, 아깝게시리!
 또 천하의 산해진미로 목구멍과 위장에 기름칠까지 해 댄 놈이다.
 거기다가 겉만 뻔지르르한 외모와 말발, 집안발로 여인네들의 마음을 숱하게 훑고 다녀 댔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어찌나 여인네들의 방심을 찔러 댔는지, 다 터져 못 먹을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
 이것만 따져도 걘 대역죄인이다.
 삼족을 멸해도 할 말 없지.
 
 어찌 됐든!
 뭐만 했다 하면 주위에서 하늘이 내린 재목이라며 치켜세워 주고, 역시 남궁일이라며 갈채를 보내는데 이놈이 어디 제대로 된 정신머리가 박혔겠어? 방귀만 뀌어 대도 향기롭다며 난리 칠 사람이 성안 한가득인데!
 
 치졸한 새끼들.
 사실 고백하건대 걘 주위에서 칭송해 주면 희열을 느끼는 이상 성욕자다. 남들이 박수 보내고 환호해 주면 정말 흥분한다니깐? 침만 안 흘렸다 뿐이지, 몸이 부르르 떨리고 심장은 펄떡거리며 뛰어 댔다고.
 
 “역시 대단하십니다!”
 “남궁일 대협의 인품은 강호제일이십니다!”
 “대협은 강호의 귀감입니다. 후세에도 그 이름이 영원토록 이어질 겁니다!”
 
 이렇게 물고 빨아 대니.
 나설 데 안 나설 데 구분 못 하고, 평생을 협객행 다니느라 정신없었지.
 환갑에 이른 나이에야 비로소 철 좀 드나 싶었는데.
 놈은 또다시 협객행을 떠난단다. 깨달음을 얻어 면벽구년, 아니 반년, 아니 한 달만 정진해도 초절정이란 벽을 허물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남궁일 대협, 제발 도와주십시오!”
 
 놈은 이 말 한마디에 두 팔 걷어붙이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게 저를 위해 준비된 함정인 줄도 모르고.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새끼 같으니.
 도적놈이면 도적놈답게 남의 집 담장 밑에 가만히 누워서 떨어지는 감만 받아먹을 것이지. 뭔 희열과 흥분을 또 느끼겠다고 기어 나가는 건지, 원!
 그러니 이런 꼴 당하는 거다.
 
 울컥울컥.
 내 배, 아니 남궁일의 전신에서 피가 뭉텅이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런 남궁일을 내려다보는 열 명의 복면인들.
 남궁일의 애검도 복면인들 앞에 뚝 부러져 있었다.
 
 “너희는······!?”
 
 남궁일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피로 물든 붉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복면 위로 드러난 눈매만 봐도 누군지 알 정도인 가까운 인물들이니 당연했다.
 
 “······어째서냐?”
 
 구태의연하게 물을 것도 없거늘.
 다 죽어 가는 목소리엔 매가리가 없어서일까? 남궁일의 눈동자가 처연해서일까?
 복면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대협의 존재를 눈엣가시로 보는 분이 계시오.”
 
 인망이 두터운 남궁일을 눈엣가시로 본다고? 난 듣자마자 딱 누군지, 또 왜 그런지 알겠는데.
 남궁일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는 정신머리가 참으로 한심하다.
 
 “어흐흑!”
 
 사람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남궁일은 피눈물까지 흘려 댔다.
 
 부스스.
 받은 충격이 대단했는지 남궁일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다.
 순식간에 늙어 버린 그의 모습에 복면인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개중에 웃기게도 죄책감이란 감정을 내비친 놈도 있었다.
 
 “이만 가시오. 고이 보내 드리리다.”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러면서 복면인 중 하나가 남궁일의 단전에 일장을 꽂아 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남궁일이었다.
 
 주르륵.
 
 어마어마한 내력이 담긴 일장에 남궁일의 단전이 박살이 났다. 절명하지 않은 게 용했다.
 
 “······.”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허물어져 가는 남궁일의 모습이 보기 어려웠을까.
 복면인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마지막 한 명이 남았을 때.
 그가 다가와, 남궁일의 완맥을 잡았다. 진기를 흘려 상세를 돌봐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가한 파상공세가 제대로 먹혔나 확인차 잡은 것이다.
 심각한 부상에 이어 전신의 심맥이 가닥가닥 끊어졌고, 거기다 단전도 박살 났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언컨대 전설의 화타, 아니 대라신선이 와도 당신을 못 살릴 것이오.”
 
 그놈의 말대로 남궁일의 상태는 그 정도로 위중했다.
 
 “참으로 안됐소. 인의대협으로 이름난 일세의 대협께서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할 최후를 맞이하다니. 천하의 그 누구도 당신의 최후가 짐승들의 밥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오.”
 
 복면인은 말하는 와중에도 남궁일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잘 가시오, 남궁일 대협. 세상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소. 너무 원망치 마시오.”
 
 복면인은 그리 말하고는 신형을 날렸다.
 적막해진 숲속.
 
 아오오오!
 
 때맞춰 들려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
 멀지 않은 곳이다.
 복면인도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짐승들의 기척을 미리 알아채고 간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최후만큼은 제 손을 쓰고 싶지 않은 심경의 발로였다.
 
 ―치졸한 새끼.
 
 손은 있는 대로 다 써 놓고 마지막에는 손을 쓰지 않겠다니! 짐승들 덕에 자신들이 가한 무공의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을 테고, 일거양득이라 여기는 거지.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지. 안 그러느냐?
 ―······.
 
 내가 묻는 말에 남궁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궁일은 처음으로 혼이 빠져나온 상태라 그런지 정신머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넋이 나간 게다.
 이런 쪽에서 선배인 내가 친절히 알려 주는 수밖에······.
 
 찰싹!
 
 따귀를 냅다 후려갈겼지만,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석상처럼 멍청히 있었다.
 
 ―생전에도 못 보더니, 죽어서는 아예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군. 이걸 사흘 밤낮으로 쥐어패서 내 존재를 각인시켜 줘?
 ―······.
 
 주먹을 들며 위협해도 놈은 백치처럼 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느닷없이 들려오는 귀곡성.
 남궁일의 영혼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
 난 자주 봐 왔던 광경이었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저러다가 하늘로 떠오르고는 사라졌으니 말이다.
 절세의 대협, 인의대협이란 거창한 별호로 불리던 남궁일.
 그 최후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여느 필부들처럼, 남궁일의 영혼도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사라졌다.
 숙주인 남궁일이 죽었으니, 다음은 셋방살이나 하던 기생령인 내 차례겠지.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뭐야?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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