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하여 사장까지.
하나의 점포가 천 개의 점포가 될 때까지.
성우진이라는 나의 이름을 내건 ‘Coffee is JIN’ 의 간판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되기까지, 나는 오직 사람들에게 좋은 커피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청춘을 태웠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오더라.
― 성우진이 돈에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어.
― 커피 진에서 만든 커피가 진짜 커피인가. 그냥 탄 맛에 산미 적당히 버무려서 그럴듯하게 만든 음료지. 안 그런가?
― 그러니까 말이야. 어휴! 저걸 커피라고. 대표가 커피라고는 전혀 모르는 돈 밝히는 사업가니까 어쩔 수 있나.
솔직히 화가 났다. 나름대로 대중적인 커피를 보급해 냈다는 나의 뿌듯한 업적을 그들이 뭐라고 깎아내려는 건지. 게다가, 내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커피를 만들었는데······.
말이야 쉽지, 합리적인 가격에 적당한 맛을 내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수 없이 연구하고, 수 없이 거래처와 부딪친 후에야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이란 거다.
사업가? 물론, 그건 맞지.
하지만, 커피에 대해 모른다? 그건 개소리다.
‘그래, 내가 커피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직접 증명해서 당신들에게 보여 주겠어.’
내게 커피는 자존심이자 인생의 전부였다.
해서, 도발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또한 증명해 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지금 내가 품에 안고 있는 우승 트로피가 바로 그 증거였다. 세계 대회에 나가기 위한 출전권을 따내려고 노력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 트로피를 보고도 당신들이 나한테 저번처럼 말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한국행 비행기 안, 나는 흐뭇하게 트로피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저 그런 트로피가 아니다. 이 트로피 하나가 가진 영향력은 업계에서 상당할 터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커피로 또 뭘 해 볼까?’
품질 좋은 커피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고 또한 성공해 냈다.
그리고 지금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었다.
제 자랑 같아서 이런 말 하긴 좀 부끄럽긴 하지만, 커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드 챔피언 트로피도 얻어 냈겠다. 이참에 해외 사업에 힘을 좀 더 실어 볼까?’
국내에선 몰라도 아직 해외에선 나의 브랜드보다 해외에서 먼저 시작한 브랜드들이 자리를 꽉 잡고 있다. 하지만,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된 지금이라면 한 번쯤 더 그들과 맞붙어 볼 만하지 않을까.
‘대회장에 있던 커피 산지의 관계자들만 봐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는 전혀 달랐어. 그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선도 달라졌다면, 가능성이 전보단 확실히 높을 것 같은데.’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관계자 같은 경우는 시상식 공식 인터뷰와 별개로 따로 언론 취재 요청이 오기도 했었다. 내가 월드 챔피언이 되고자 했을 때 반신반의했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국내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의 챔피언 타이틀.
타이틀 덕분에 그간 제한이 있었던 사업들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프랜차이즈 카페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이것저것 잘되면 국내에 커피 박물관이라도 하나 차려 봐? 그럼, 대중들이 커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할 계기가 될 것도 같고···.’
오랜 고생 끝에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된 덕분인지, 뭘 해도 전부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뿜뿜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흐흐! 기분도 기분인데, 가서 직원들 보너스라도 팍팍 넣어 줘야지!’
회사 직원들이 축하 파티도 준비해 뒀단다.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날, 그 기쁨을 나와 함께 고생해 온 직원들과 함께 즐기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 어?”
그런 행복한 상상들을 이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재수 없게 갑자기 기내가 흔들리는 이 느낌은 뭘까.
기내의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극도의 불안감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승무원이 안내했던 구명조끼 사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과연 살면서 기내 구명조끼를 착용할 일이 있을 리가.
시발. 근데 진짜 그런 일이 생겨 버렸다.
쿠우우웅―
비행기가 요동치듯 흔들린다. 기장의 안내 방송과 승무원의 다급한 외침들이 들려오지만, 상황이 급박한 탓인지 제대로 들리는 게 하나도 없다.
기내에 반입된 캐비닛 속 가방과 물건들이 부딪치며 떨어지는 난장판 속, 나는 품에 안고 있던 바리스타 챔피언 트로피를 놓치고야 말았다.
혼란 속에서 얼핏 들려오는 방송에 의하면, 비행기는 지금 바다를 향해 추락 중이라고 한다. 침착하게 승무원의 안내에 따르면 살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이렇게 죽는다고? 하필이면, 챔피언이 된 지금?’
데굴데굴 굴러가는 트로피 때문일까.
트로피가 멀어짐과 함께 긴장감에 숨이 막혀 왔다. 나를 증명해 줄 트로피가 시야에서 조금씩 사라질수록, 이승과 나를 잇는 끈 역시 점점 더 희미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내 커피 인생 이제 2막 시작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고 싶진 않다고!’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써 본다.
하지만 바다를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막연한 기대를 품는 것이었다. 어쩌면 희망의 빛이 한 번쯤은 나를 비춰 주지 않을까 하는.
툭―
머리 위 캐비닛에서 뭔가가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오늘처럼 타국에서의 행사가 있거나, 해외의 커피 농가를 방문할 때마다 기나긴 비행시간의 지루함을 달래 주었던 휴대용 콘솔 게임기였다.
번쩍―
게임기 화면에서 눈부신 빛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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