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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다시 사는 인생 [E](종료230526)

다시 사는 인생 1권 (1)

2015.07.27 조회 49,799 추천 428


 1990년.
 
 “야! 자식이 뭐가 이리 굼떠? 후딱 나와라.”
 “저도 작대기 네 개라고요.”
 “어쭈, 말년 꼬장 안 무섭나 보네. 흐흐흐.”
 “우 씨, 나갑니다. 나간다고요.”
 충북 도경 경무계 소속의 전경 숙소에선, 제대를 한 달 앞둔 김인철 수경의 독촉이 시끄럽게 퍼지고 있었다. 경무계 소속 전경의 주임무는 도경 경비로 그 인원은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오늘은 김인철 수경의 후임을 선발하기 위해 분대장인 이경환 수경과 전경대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다른 전경 부대와는 달리 도경 경비를 목적으로 한 총인원 10명의 단출한 이 부대는 하루 6시간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개인 시간과 외출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꿈의 보직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사실 이경환 수경의 경우 충북대학의 데모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염병에 부상을 당했고, 도경에서 확인서를 받는 과정에서 큰 키로 인해 고참의 눈에 띄어 후임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허황된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이 수경, 내 후임은 내가 고를 테니까 토 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또 청탁 들어왔습니까?”
 슬슬 곁눈질로 이 수경의 눈치를 보는 김 수경의 태도를 보니 분명 청탁이 들어온 게 분명해 보였지만, 이 수경은 가는 말년의 심기를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자꾸 청탁은 받고 그럽니까?”
 “야야,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러겠냐? 우리 집 노땅이 하도 난리를 피잖아. 그리고 막말로 내 후임은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냥 우리는 오는 자식 상판대기 한번 보러 가는 거구만.”
 이 수경은 입꼬리를 말아 올려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긴 했지만 김 수경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앞서 걸어 나갔다. 부대원들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한자리하는 집안의 자식들로 김 수경만 하더라도 부친이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다. 부대에서 결원이 발생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힘 있는 자식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 수경의 후임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고, 부대원들의 1차 평가 소대장의 2차 평가 계장 국장의 결재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상태로 이 수경이 이 부대로 전출되어 왔을 당시 모든 고참들은 전생에 네가 나라를 구했구나라고 놀라워할 정도였다.
 “그래도 키 180은 넘어야 합니다.”
 “줄자로 재 보자고. 하하.”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김 수경은 폴짝거리고 있었고, 그런 김 수경을 이 수경은 물끄러미 쳐다보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 좋은 김 수경의 제대는 이 수경에게도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군대란 곳이 평생 머물 수 없는 곳이었기에 오는 자가 있으면 가는 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보시게, 손금 좀 보고 가시게나.”
 걷고 있는 이 수경을 향해 좌판을 펼치고 앉아 있던 노인네가 힘없는 목소리를 뱉었다.
 “할아버지, 저는 군인이라서 돈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가? 오늘은 통 손님이 없네그려. 허허.”
 아쉽다는 듯한 노인네의 한숨에 이 수경은 맘이 저려 왔지만, 동전 하나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었기에 안타까운 표정을 노인네를 향해 지어 보였다.
 “어? 할아버지, 저 좀 봐주세요. 한 달 후면 제대하는데 잘 먹고 잘살 수 있나요? 하하.”
 옆에 있던 김 수경이 주머니에서 5천 원을 꺼내 좌판에 올려놓으며 손을 꺼내 들었다. 손바닥만 한 돋보기를 꺼내 김 수경의 손금을 살피던 노인네가 김 수경을 안경 너머로 올려다보았다.
 “허, 자네는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그려. 집안의 창고에 재물이 넉넉하니 말일세. 부모덕을 크게 볼 운세이니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이는구먼.”
 “헉, 할아버지 귀신이네요. 그럼 결혼 운은 어떤가요? 절세미녀를 얻을 수 있는지 봐주세요. 하하.”
 김 수경은 노인네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김 수경 자신도 노인네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손금으로 보는 거지 딱히 믿는 눈치는 아닌 표정이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눈 후 김 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복을 매무시하며 이 수경을 향해 어서 가자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자네는 안 보시려나?”
 “저는 돈이…….”
 없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은근 짜증이 나기 시작한 이 수경을 어깨에 손을 얹어 말을 끊은 후 김 수경이 호탕하게 웃으며 노인네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 할아버지 잔돈 주지 마시고 이 친구도 손금 봐주세요.”
 평소 마음 씀씀이가 좋은 김 수경이 이 수경에게 윙크하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고 초췌한 노인네에게 5천 원은 큰돈이라 생각한 이 수경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아 손을 내밀었다.
 “흠.”
 “이 친구는 별로 안 좋은가요?”
 노인네는 이 수경의 손금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흘렸고, 그런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김 수경이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밥값은 해 줘야 되니 말을 해 주겠네.”
 “네, 저희가 빨리 가 봐야 하기 때문에 그냥 말씀해 주세요.”
 어차피 손금이나 운세 이런 미신을 애당초 믿을 생각이 없었던 이 수경은 연신 시계를 바라보며 노인네를 재촉했다.
 “자넨 물 건너에서 살 팔자야. 그걸 거스르면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될 걸세.”
 “물 건너면 외국이란 말씀이신가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이 수경은 노인네에게 되물었지만, 노인네는 지그시 눈을 감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야, 이 수경 너 유학이라도 가야 하는 거야? 하하하.”
 ‘이 자식이! 고참만 아니면 넌 벌써 죽었어……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김 수경의 놀림에 순간 욱하고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혹시나 좋은 말을 듣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해 봤지만 역시나 라고 생각한 이 수경은 좀 허탈해졌다. 다복한 가정이긴 하지만 동생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자신이 휴학하고 군대에 올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그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업을 구해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리는 것이 최대 목표일 뿐 유학은 자신과는 동떨어진 삶 그 자체였다.
 “자네…….”
 일어나려는 이 수경을 향해 노인네가 마지막 말을 전했다.
 “꼭 한 번 기회가 올 걸세. 그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라네. 내 부탁함세.”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마지막 말을 건네고 이수경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노인네를 향해 건성으로 대답한 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수경 너 전공이 중국어라고 했지? 중국하곤 아직 수교가 되지 않아서 유학 못 갈 텐데 어쩌냐?”
 “한 번만 더 놀리면 계급장 뗍니다.”
 “아, 네, 이 수경님. 시정하겠습니다. 그래도 아쉽네, 중국에 미녀가 그렇게 많다는데. 하하하.”
 김 수경의 장난에 발끈하려 했지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상 한 번 써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저 멀리 손금으로 봐주던 노인네는 좌판을 걷고 멀리 사라지는 이 수경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 *
 
 2016년.
 
 강원도 이름 모를 산속 깊은 곳엔 중년의 사내가 나무를 등받이로 기대앉아 있었고, 주위엔 서너 병의 소주병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손에 꽉 쥔 스마트폰 화면 속엔 밝게 웃고 있는 이십 대 초반의 여자 사진이 있었고, 그 사진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사내의 눈 밑으론 굵은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희수야. 미치도록 네가 보고 싶구나. 곧 너를 보러 갈게, 일찍 왔다고 화내지 마라.’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칠 생각도 없이 사내는 주머니에서 한 움큼의 알약을 꺼내 들어 아무런 미동도 없이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후회는 없지만, 너무 아쉬운 삶이었어.’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아 별 무리 없이 승진해 나갔다. 그러나 결혼 후부터 미세하게나마 그의 인생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첫 사랑과 아픈 이별을 한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첫선을 본 여자와 물 흘러가듯 결혼을 하였지만, 결코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조용한 여자의 모습에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다.
 장남이긴 하였지만 부모님을 설득하여 분가하였고 은행 대출을 통해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기적인 와이프는 시댁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고 시댁과의 불화는 부부생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 결혼 일 년 만에 이혼을 생각하게 되었지만,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으로 인해 불안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원만하지 않은 부부생활의 여파는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사십 대를 바라보는 나이에서 조기 퇴직의 여파를 피해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기업에 다녔다는 프리미엄 덕에 중소기업에 취직은 할 수 있었지만, 열악한 조직 체계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과도한 실적 종용은 사내를 지치게 만들었고, 사내의 유일한 낙은 하나밖에 없는 딸애가 예쁘게 성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중소기업을 퇴사하고 개인 사업의 유혹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을 때도 딸애를 보며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딸은 사내의 유일한 삶의 안식처이자 삶의 전부였다. 생활고로 인해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였을 때에도 딸애는 사내를 떠나지 않고 환한 웃음을 보이며 남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딸은 일류 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저녁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였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언젠가는 잘될 거라는 희망을 말하며 사내를 북돋아 주곤 하였다.
 그런 딸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중 강도의 칼날에 살이 찢기는 고통을 받으며 숨을 거뒀다. 딸의 시신을 마주한 사내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사내의 희망도 같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래, 빨리 가자. 희수야, 아빠가 미안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아빠를 만나길 바랄게.’
 한 모금의 소주가 남을 걸 확인한 사내는 움켜쥔 약을 입에 털어 넣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는 소주 한 잔 줄래요? 이경환 씨.”
 사람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을 찾아들어 왔었기에 등 뒤에서 들리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경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뭘 그리 놀래요? 소주도 많이 마신 거 같은데 한 잔 정도 줄 수 있잖아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지만, 전혀 낯이 없는 여자였다. 이십 대 중반 정도의 여자는 볼륨 있는 몸매를 하고 있었고 산속에서는 보기 힘든 치마가 짧은 원피스 차림이었다.
 “누굽니까? 전 기억이 없는 분 같은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나요?”
 “호호호, 궁금해요? 이경환 씨에 대한 건 다 알고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여자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혀 경환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나이 50세, 이혼남, 여자 관계 나름 깨끗하고 사는 곳은 경기도 *화정, 이것저것 안 해 본 거 없지만 다 실패하셨고, 얼마 전 딸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인생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자살하려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고. 맞죠?”
 “정…… 정말 누굽니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을 다 뒤집어도 경환은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나오는 게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 이럴 정도로 알고 있다는 걸 볼 때 여기에 이 여자가 나타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삶을 정리하려는 마당에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거, 되게 비싸게 구시네. 달랑 소주 한 잔 가지고.”
 여자는 경환의 손에 들려 있던 소주병을 단숨에 낚아채 마지막 남은 소주를 입에 부어 넣었다. 알약을 먹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 둔 소주가 여자의 입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경환은 난감해했다.
 “나랑 계약 안 할래요?”
 딸애가 없는 세상에선 하루라도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계약이라니. 경환은 미친 여자 보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입술을 힘없이 터트리며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다.
 “죽으려고 하던 사람이 웃긴 하네요. 호호.”
 “아가씨, 난 아가씨하고 말장난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을 테니 조용히 떠나 주셨으면 합니다.”
 여전히 경환을 바라보며 생글거리는 여자의 모습에 경환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죽으려고 맘 독하게 먹었는데 어떤 계약인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이 아가씨가 정말.”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에 경환은 큰 소리로 여자를 다그쳤지만, 꼿꼿이 서 있는 여자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경환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경환은 어이가 없었다. 나이가 50이라도 남자는 남자였다. 젊은 여자 하나 어찌 못해 볼 정도로 허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터질 듯한 여자의 가슴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경환은 불연듯 그동안 참아 왔던 욕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마음을 접어 버렸다.
 “호호호, 경환 씨도 남자긴 남자네요. 날 엎어트릴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생각이 들켰다는 생각에 시선을 급히 돌렸지만 화끈거리는 얼굴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난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요. 아가씨가 누군지 잠시 궁금하긴 했지만, 그것 또한 나에겐 의미가 없소. 아가씨가 말하는 계약이 무엇이건 간에 내가 들어줄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괜한 고생하지 맙시다.”
 “만약 내가 경환 씨의 삶을 되돌려 준다면요? 이런 조건이라면 계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이가 없었다. 내 삶을 되돌려 준다니. 설령 내 삶이 되돌아간다 해도 죽은 딸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딸애는 경환의 삶 그 자체였기에 딸애가 없는 삶은 전혀 의미가 없음을 경환은 잘 알고 있었다.
 “푸하하하, 이봐 아가씨,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래도 아가씨 덕에 마지막으로 크게 웃을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하니 이만 서로 가던 길 갑시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경환 씨는 죽을 거 아닌가요?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는데 비싸게 굴 거 없잖아요. 나도 노망난 노친네 부탁만 아니었다면 여기 올 생각도 없었다고요.”
 ‘노망난 노친네라고?’
 경환의 부모님은 자식 걱정으로 속앓이를 하다 삼 년 전 차례로 돌아가셨고 경환은 자신 때문에 부모님까지 돌아가시게 한 것 같아 두고두고 마음속에 죄송함을 담아 두고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위해 걱정해 줄 어르신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이 아가씨가 말한 노친네가 누구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좋수다. 아가씨가 누구인지 어떻게 내 삶을 되돌려 줄지 또 아가씨가 말하는 계약이 어떤 계약인지 다 들어 봅시다.”
 “호호호, 무지 힘이 드네요.”
 조그마한 입을 살며시 열고 웃는 여자의 모습은 어디 하나 흠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우선 내 이름은 마몬이에요. 황금이나 보물을 찾아내는 걸 특기로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건 나는 인간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미친.’
 경환은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터질 듯한 가슴에 쫙 뻗은 다리며, 남자라면 한 번쯤 일탈을 꿈꾸게 만드는 외모를 가진 여자의 입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고 지껄이는 걸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합시다.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 앞에서 이런 장난은 좀 심하지 않소! 이딴 소리 하려면 그만 사라져 주시오.”
 마몬이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는 경환의 화난 목소리에 웃던 얼굴을 멈추었다. 순간 싸늘한 냉기가 경환의 주위를 포위하듯 감싸기 시작했고 마몬은 검지를 뻗어 경환의 이마를 건드렸다.
 ‘헉…….’
 경환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울창한 나무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빛조차 삼켜 버리는 어두운 하늘이 펼쳐져 있음과 동시에 검은 땅으로는 시뻘건 마그마가 쉴 새 없이 흐르다 넘치기를 반복하였고 퀴퀴한 공기는 숨 쉬기조차 버거웠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표현마저도 불가능한 완전한 죽음의 땅 그 자체였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명의 기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믿겠지요?”
 정색하며 묻는 마몬의 말에 경환은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마몬은 다시금 경환의 이마에 검지를 가져다 건드렸고 다시금 경환 자신이 죽을 장소로 선택한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컥, 컥.”
 급한 숨을 몰아쉬는 경환으로서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의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자신이 죽음보다도 더한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지옥이 그런 모습이라면 두려웠다.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닌가요? 거긴 지옥의 입구일 뿐인데 말이죠. 지옥에 비해서 아까 그곳은 파라다이스 정도면 되려나?”
 “도대체 당신은…….”
 경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을 수가 없었다. 가냘파 보이는 이 젊은 여자가 누구일지 새삼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우리 그럼 이제부터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눠도 되겠죠?”
 “좋습니다. 들어나 봅시다.”
 마몬은 다시 장난기 많은 표정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인간들은 날 악마라고 부르긴 하지만 나도 본래는 천사였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당신의 이전의 삶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말이죠. 호호호.”
 “대가는 지불해야 된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어우, 이제 좀 말이 서로 통하는데요. 물론 대가는 반드시 있어야 되겠죠?”
 경환의 가슴속 깊은 속에서 삶에 대한 애착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게 기회라면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잡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여자가 원하는 것이 자신이 줄 수 있는 건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대가를 원하시오? 평범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렇겠죠? 평범한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난 당신을 일정한 시간대로 되돌려 주려고 해요. 지금까지의 경험과 생각을 모두 가진 상태로요. 그 이후의 삶은 경환 씨 자신이 풀어나가야 되겠지만.”
 “잠깐만…….”
 경환은 서둘러 마몬의 말을 끊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딸애의 환한 웃음을 보는 거밖에 없었다. 확인해야만 했다.
 “그 시간대라는 것이 과거를 말한다면, 내가 그 시간대를 정해도 되는 거요?”
 “시간대는 경환 씨가 정할 수 없고, 어느 시간대인지도 말해 줄 수 없네요.”
 딸애를 살릴 수만 있다면 딸애가 죽기 하루 전에라도 돌아가 딸애를 살리고 싶었다. 혹시라도 딸애와 만날 수 없는 시간대라면 경환에겐 과거로 돌아갈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난 내 딸을 다시 살리고 싶소. 딸애를 볼 수 없는 시간대라면 당신과의 계약은 나에겐 무의미할 뿐이오.”
 “참! 한 고집 하십니다. 좋아요. 내가 팁을 하나 주죠. 딸애가 태어난 날짜를 잘 기억해 둬요. 그날에 맞춰 합방하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딸을 다시 볼 수 있을 거예요.”
 딸을 다시 본다는 건 경환에겐 축복이었지만 경환의 얼굴엔 살며시 그늘이 들어섰다.
 “호호호, 뭘 걱정하는지 아니 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밭에서 농사를 짓게 되더라도 당신이 원하는 똑같은 걸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마몬의 말을 들은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경환은 혹시라도 마몬의 말처럼 과거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전처와는 부부의 연을 맺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손끝조차도 건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좋소. 당신이 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어떠한 것도 줄 수 있었다. 생긋이 웃는 마몬의 얼굴을 직시하며 경환은 결심을 굳혔다.
 “당신의 정해진 수명은 92세예요. 또 실패해서 자신 스스로 죽으려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당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 당신은 나에게 영원히 종속되어 당신의 영혼을 나에게 주는 게 내가 원하는 대가예요.”
 “흠…….”
 영혼의 존재에 대해 경환은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왜 마몬이 자신의 영혼을 종속하길 원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오로지 딸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에.
 “알겠소. 당신의 계약을 받아들이겠소.”
 “호호호, 좋아요, 좋아. 화끈하시네요. 일정한 시간대로 되돌려 드리죠. 그러나 모든 건 당신 스스로 헤쳐 나가야 돼요. 행운을 빌어요. 그럼 우리 계약을 해야 하겠죠?”
 경환은 굳은 마음으로 마몬이 내밀 계약서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마몬은 천천히 경환의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입술을 벌려 경환의 입술을 덮쳤다.
 ‘흡…….’
 “이게 우리 둘만의 계약서예요.”
 마몬은 자신의 혀를 경환의 입속 깊숙이 밀어 넣으며 한 손으로 경환의 바지춤 속에 감춰진 남성의 상징을 꺼내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마몬의 행동에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끓어오르는 욕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거칠게 마몬의 가슴을 풀어헤치며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양손으로 탐험하기 시작했고, 마몬의 머리를 자신의 아랫도리로 밀어 내렸다. 묘한 웃음을 보이는 마몬은 경환의 상징을 입으로 물어 희롱하기 시작했고 마몬의 희롱이 극에 닿을 무렵 경환은 마몬의 몸 위에 올라 자신의 상징을 마몬의 아래를 향해 거칠게 밀어 넣었다. 격정의 시간을 보낸 후 경환은 마몬의 위에서 내려와 거친 숨을 들어 내쉬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슬며시 잠에 빠져 들었다.
 
 “인마, 도착했다. 빨리 일어나라. 뭔 잠을 그리 깊게 자?”
 마몬과의 찐한 정사 후에 빠져든 잠에서 좀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결에 들리는 굵은 목소리가 경환이 신경을 건드렸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강원도 산속일 텐데 이 목소리는 도대체 뭐야?’
 실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본 경환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산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고속버스 의자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경환 자신은 예비군 견장을 단 군청색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옆자리엔 같은 군복을 입고 있는 시커먼 놈이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기에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 서울 도착했다. 드디어 우리가 민간인이 된 것이야. 음하하하.”
 ‘마몬과의 계약이 허황된 꿈이 아니란 건가?’
 옆 좌석에서 자신을 흔들던 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낯은 익은 얼굴이었지만, 도통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군복 상의에 있는 명찰을 확인했다.
 
 심석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군대 동기로 전경대에서 개고생하며 군 생활을 한 동기였다. 제대 후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기억으로는 연세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군바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석우야, 오늘 90년 8월 2일이 맞냐?”
 퍽.
 경환의 뒤통수를 세차게 내려친 석우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미친놈, 정신이 나갔냐? 에휴, 군대 짬밥이 이래서 무서워요. 뭔 약을 섞었는지 짬밥만 먹으면 애들이 맛탱이가 가 버리니. 쯧쯧.”
 경환은 뒤통수가 저려 옴을 느꼈지만, 꿈이 아니란 사실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 정신이 없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도 이해도 할 수 없었기에 어떻게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상태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석우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야, 장난 그만 치고 후딱 내리자고, 27개월 만에 민간인으로 서울 공기 좀 맡아 보자고.”
 “그…… 그래.”
 석우를 따라 고속버스에서 내려 동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여섯 명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동기들의 표정에는 어서 헤어져 집으로 가려는 모습으로 들떠 있었다. 26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야,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동기 모임을 갖자. 한번 동기는 영원한 동기 아니냐.”
 “당연하지. 꼭 연락해서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피식.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낯이 익은 동기가 모임을 하자고 했고 다들 열렬히 찬성하고 있었지만, 이날 이후로 서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경환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기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경환은 쉽게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이 현실이고 사실이라면 돌아가신 부모님은 오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그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자체가 경환에게는 두렵고 당혹스러웠다.
 “자식, 왜 이리 센티해?”
 경환의 어깨에 손을 감싸 걸치며 석우가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 나가며 이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란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석우야, 우리 앞으로 종종 보자. 다른 동기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하고는 계속 보고 싶다.”
 “자식이 웃기기는. 같은 서울 안에서 못 볼 게 뭐 있냐? 너 복학해서 예쁜 후배들 보이면 형님에게 바로바로 토스해라.”
 “자식이, 네 대가리엔 온통 여자밖에 안 들어가 있냐?”
 “마, 그렇단 소리지 자식아. 자주 연락해서 술 한잔하자. 나 먼저 간다.”
 국회의원이 될 녀석. 이 녀석만큼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전생엔 자격지심으로 인해 잘난 놈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살까지 결심을 했을 때에는 자격지심, 자존심과 같은 유치한 허영심은 다 버릴 수 있었다.
 석우를 떠나보내고도 한 시간 넘게 버스정류장에 앉아 움직이질 않았다.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경환의 머릿속엔 한가지의 사실만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희수, 사랑하는 내 딸.’
 자신의 영혼까지 마몬에게 저당 잡히며 계약을 한 것은 오로지 딸을 다시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 6년, 6년 후엔 딸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고 딸애가 다시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같은 삶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전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스스로 결심을 한 경환은 머리가 맑아 오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26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새삼 과거로 왔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이었다. 골목을 걸어 올라가니 작은 동산 밑에 자리 잡은 연립주택 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처음 집을 장만하시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생히 남아 있던 곳이었다. 경환의 중학교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생활했던 이 연립주택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10년 후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경환은 추억이 사라진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놀이터를 돌아 자신의 집 앞에 섰지만 쉽게 초인종을 누를 수가 없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떨리는 손을 들어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경환이니?”
 “네, 저…… 저예요.”
 반가운 목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왔고 경환은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 어머니였다. 자신을 위해 항상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다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시고 세상을 등지셔야 했었던 어머니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직은 젊으신 어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경환을 반겼다.
 “어휴, 고생했다. 그리고 제대 축하하고.”
 눈물을 살짝 비추신 어머니는 경환을 품에 안았다.
 “오빠, 드디어 민간인이네. 축하해.”
 어머니의 뒤에서 경환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드는 여동생의 모습도 보였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여동생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원각이라는 한정식 집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기억으론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경환의 등록금 일부도 여동생의 수입에서 보태지고 있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엔 내색할 수 없었다. 다시 찾은 삶에선 여동생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경환으로서는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정아야, 엄마, 고마워요.”
 “얘가 별소리를 다 하네. 빨리 들어와서 옷 갈아입어라. 아버지도 일찍 퇴근하신다고 하셨으니까.”
 군복을 벗어 장롱에 걸어 놓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남동생과 같이 쓰는 방은 정리가 깨끗이 되어 있었다. 아마 어머니의 닦달을 받은 남동생이 투덜거리면서 정리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환아, 나와서 과일 먹어라.”
 “제대가 뭔 대수라고 엄만 오빠만 챙겨?”
 여동생의 투정도 경환에겐 너무 반갑게 느껴졌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흐뭇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포근함과 다정함에 경환은 제발 꿈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최선을 다해 보자. 다시 실패할 수는 없잖아.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쉽지는 않겠지만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자리를 잡은 경환은 정아를 바라보았다.
 “너는 데이트도 안 해? 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치, 나 좋다는 인간들 많거든? 내가 있고 싶어 있는 줄 알아? 엄마의 강압적인 독재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정아의 투정을 듣던 어머니는 손부터 올라가 정아의 등짝을 후려쳤다.
 퍽, 퍽.
 “이놈의 기집애가 뭐 어째? 독재? 강압? 너 지금까지 밥해 먹인 거 다 토해 내 기집애야!”
 “엄만 툭하면 토해 내래. 헤헤.”
 예전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지만 다시 찾은 삶 속에선 어느 하나 놓치지 싫을 정도로 지금 어머니의 정아와의 말다툼이 경환에겐 정겨움으로 비쳤다.
 “아, 참, 승연이는 방학인데 집에 없네요?”
 “고3이잖니.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한다고 요새 계속 학교에 나가고 있다.”
 “아. 네, 승연이도 공부하느라 힘들겠네요.”
 막냇동생은 대학 운이 너무 없었다. 삼수 끝에 성남에 있는 대학에 겨우 합격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대학이다 보니 대학 생활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막내를 자신은 등한시했다.
 “저도 다 잊어버리긴 했지만 승연이 공부를 좀 봐 줄게요.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핵심을 찾아내는 방법이 미숙해 보여요.”
 “어이구, 좀 그래라. 형이 가르쳐 주면 승연이도 도움이 많이 되겠네.”
 경환은 기뻐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진즉 왜 이러지 못했는지 한탄스러워했다.
 “정아 너도 아르바이트하느라 고생 많지?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없지만, 나도 노력해서 내 앞가림은 하도록 할게. 그동안 미안했다.”
 “어, 오빠 이상하네. 군대 가면 사람이 돼서 나온다는 말 틀린 거 아닌가 봐. 어른스러워진 거 같은데? 헤헤.”
 정아와의 대화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아들이 부쩍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복학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는데, 뭐 하고 지낼 생각이니?”
 아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는 어머니를 경환은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며칠 쉬면서 생각을 해 보려고요. 등록금은 제가 한번 마련해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등록금은 준비해 놨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복학 준비나 열심히 하고 여행도 좀 다니고 그래.”
 예전의 경환은 군대를 제대하고 등록금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부모님이 마련하리라 철석같이 믿었고, 자신은 부모님의 손을 빌려 학원에 등록하여 자기 개발에만 힘을 쓸 뿐 집안의 사정에 대해선 나 몰라라 했었다. 경환은 그 기억이 떠올라 너무 부끄러웠다. 다시 태어난 지금 이전의 삶 자체를 뜯어고치기 위해 경환도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다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엄마, 피곤해서 그런데 아버지 오실 때까지 방에서 좀 쉬고 있을게요.”
 “그래라. 아버지 오시면 깨워 줄 테니 어서 들어가 쉬어라.”
 경환은 방에 들어와 자리에 눕지 않고 책상에 걸터앉아 노트를 꺼내 들었다. 마몬과의 계약으로 과거로 회귀는 했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전공한 중국어와 취직을 위해 배운 영어 그리고 50세까지 겪었던 사회 경험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 사고밖에는 딱히 없었다. 맘이 급한 지금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만이라도 정리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 순서이고, 92년 중국 수교,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8년 IMF, 2001년 911테러, 이라크 전쟁, 곡물 파동, 석유 인상, 금값 폭등, 원자재 가격 상승,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애플의 스마트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폭발…….’
 대략 적어 나갔지만, 발생하는 연도만 기억할 뿐 날짜와 시간 세세한 내용까지는 다 기억해 낼 수는 없었다. 내용을 써 놓긴 했지만 갑갑했다. 이걸 써먹을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내용을 이용하려면 자신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되지만, 내년도 등록금을 준비하기도 벅찬 경환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씩 준비를 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오겠지. 긍정적으로 현실을 바라보자.’
 써 놓았던 내용을 머리에 다시 각인을 시키고 누가 볼세라 노트를 촘촘히 찢어 놀이터 옆에 있는 연립주택 공동 쓰레기통에서 불태워 버렸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은 경환은 피로가 엄습해 왔고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몸을 던졌다.
 “경환아, 경환아. 아버지 오셨다. 어서 일어나서 인사드려야지.”
 “아…… 네. 제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이불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힘껏 켠 후 방문을 열고 나갔고, 마루엔 환한 미소를 띠는 무척이나 그리웠던 아버지가 계셨다.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지만, 억지로 참으며 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제대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허허, 고생은 무슨. 어쨌든 몸 성히 제대한 널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수고했다. 와서 소주 한 잔 받아라. 술 한잔하자.”
 “형, 나도 여기 있거든? 축하해. 헤헤.”
 아버지 옆으로 막내가 눈인사를 해 왔다. 가족이 다 모였고 마루에 펼쳐진 상 위엔 어머니가 준비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다시 보게 된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 경환은 목이 메여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고맙다, 마몬. 내 영혼을 가져간다 하더라도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즐거운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TV 옆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엄마, 제가 받을게요. 일어나지 마세요.”
 전화를 받으려 일어나시려는 어머니를 막으며 경환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경환이 집에 들어왔나요?]
 ‘이 목소리는? 수…… 수정이?’
 경환이에게 가슴 시린 첫사랑의 아픔을 주었던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경환의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저…… 경환이 친구 김수정이라고 합니다. 경환이가 오늘 제대한다고 해서요. 아직 안 들어왔나요?]
 “나야. 내 목소리도 까먹었냐?”
 [야!! 이경환! 너 죽을래!]
 수화기로 수정이의 날카로운 하이 소프라노의 울려 퍼졌고 경환은 잠시 수화기를 귀에서 뗀 후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목소리 아주 우렁차네. 다짜고짜 왜 화를 내는 거야? 우리 살살 말하자고.”
 [허…… 기가 막혀. 이경환 너 아주 많이 컸다. 날 세 시간 동안이나 바람 맞추고, 넌 집에서 퍼질러 있어? 이게 말이 되냐? 군바리 불쌍해서 그동안 밥 사 주고 술 사 주면서 만나 줬더니만 제대해서 민간인 됐다고 안면 바꾼다 이거지?]
 “뭐? 내가 널 왜 바람을 맞혀?”
 26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경환의 머리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약속은 했던 건 분명해 보이는데 경환은 통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오늘 할 얘기 있다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보자고 했어, 안 했어? 방배동에서 세 시간 동안 너 기다리면서 커피만 석 잔을 마셨다고. 아주 배 터져 죽을 거 같다, 내가 지금.]
 수정이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수화기가 터져 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식사를 하던 식구들도 시선을 들어 전화기를 향했고 어머니는 뭐가 못마땅한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 오늘이 그날이구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26년 전 오늘 경환은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수정을 만났고 수정으로부터 엄청난 내용을 통보받았다. 그 당시 경환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결국 오늘 있었을 수정의 통보로 인해 경환은 수정과의 가슴 아픈 이별의 시초가 되었다.
 “수정아! 미안, 내가 죽을죄를 졌다. 군바리가 갑자기 민간인이 되다 보니 뇌에 과부하가 걸렸나 봐. 한 번만 이해해 주라. 내일 저녁같이 먹자고. 응?”
 [흥, 죽을죄 진 건 아나 보네. 내일 각오 단단히 하고 와. 6시까지.]
 “어어, 그래. 내일 6시에 어디서?”
 [야! 우리가 만나는 곳도 모르는 거야? 방배동 달빛한스푼도 까먹었냐?]
 화난 수정이를 겨우겨우 달래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아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못마땅하신지 어머니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계셨다.
 “걔는 화차를 삶아 먹기라도 했다니? 전화기 깨지는 줄 알았다.”
 오늘만큼은 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한마디를 하시고는 굳게 입을 닫으셨다.
 “제가 오늘 약속을 했는데 깜빡 잊었어요. 그래서 화가 난 거니까 엄마가 좀 이해를 해 주세요.”
 “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정이 착한 애라는 건 엄마도 아시잖아요. 오늘 한 번 눈 감아 주세요.”
 “군바리 안 버리고 그래도 꾸준히 만나 줬잖아. 성모마리아야, 수정이 언니. 오빠가 볼 게 뭐 있다고 말이지. 이화여대 미대생에 한 미모까지 하면서 오빠를 왜 여태껏 만나는지 참 알다가도 몰라, 불가사의야 불가사의.”
 정아의 지원사격에 어머니도 화가 수그러드셨는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으셨다. 경환은 정아에게 윙크를 함으로써 고마움을 표시하고 남은 식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수정과의 약속 반시간 전에 방배동 카페골목에 도착을 하였고 달빛한스푼이라는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정과의 오래된 추억이 남아 있던 곳이라 그런지 낡은 탁자 위에 놓인 메뉴판과 숟가락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회에 빠져들기 충분했다. 아직 수정이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지만, 어제의 일을 사과도 할 겸 미리 도착했고 그 당시 유행했던 레몬 소주와 안주를 간단하게 주문한 후 수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했던 레몬 소주가 탁자 위에 세팅되고 경환은 주전자를 들어 소주잔에 한 잔 따라 부었다.
 ‘이 맛이었나? 전엔 참 맛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한잔을 더 따른 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경환은 과거로 돌아온 것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순간순간 꿈이 아니기를 기원하며 자신의 손으로 뺨을 치기를 반복했다. 꿈이라면 깨지 말기를 빌면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아 연기를 내뿜으며 두 번째 레몬 소주를 마시는 순간 문이 열렸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들어오는 수정이가 경환의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수정이를 다시 본 경환은 들었던 소주잔을 탁자에 놓는 것마저 잊은 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오는 수정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자세는 되었네. 일어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오…… 오랜만이야, 수정아.”
 “야, 징그럽게 왜 빤히 쳐다봐? 오늘 각오 단단히 해. 나 아직 화 안 풀렸거든. 치.”
 수정이는 경환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맞이하고 말까지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고 착각을 하며 화났던 기분이 조금 풀려 가고 있었다.
 “술 한 잔 따라 줘. 나 술 마시고 싶어.”
 “어, 어, 그래.”
 경환은 주전자를 들어 소주잔을 채웠고 수정은 빠르게 첫 잔을 비웠다.
 “한 잔 더 줘.”
 “무슨 고민 있니? 안주 좀 먹어 가면서 마셔. 속 버린다.”
 “고민이야 있지. 술이라도 마셔야 입이 떨어질 것 같거든.”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경환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수정이의 빈 소주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경환은 수정이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려 주려고 했지만, 예전 기억으로는 수정이가 만취해서 토하기를 반복한 후에야 힘들게 말을 꺼내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 상황을 자신이 풀어 가려고 했다. 다시 만난 수정이를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우선 내가 어제 약속을 잊은 건 주둥이가 있어도 변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 주라.”
 “맨입에?”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현하는 수정이가 경환은 마냥 귀엽기만 했다.
 “오우, 맨입이라뇨. 오늘의 이 잘못은 내가 평생을 두고 갚아 나갈 텐데.”
 “정말이야? 평생 동안 갚겠다는 그 거짓말 정말이냐고.”
 “한번 속아 보는 셈 치는 것도 좋지 않겠어?”
 “치, 내가 알면서 속아 주는 거니깐 나한테 잘해.”
 긴장이 좀 풀렸는지 수정은 왼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건배를 제안했고 둘은 서로 잔을 마주쳤다.
 “늦었지만 제대 축하해. 그리고 이건 선물이야.”
 수정은 핸드백에서 자그맣게 포장된 박스를 꺼내 경환의 앞에 내놓았다. 경환은 이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뭐 이런 걸 다 준비했어? 뜯어 볼게.”
 조심스럽게 포장된 박스를 뜯고 나온 선물은 검은색 지갑이었다. 지갑 하단에 자그맣게 흰색 별이 박혀 있는 몽블랑이었다. 수정이와 헤어진 후 몇 번을 버리려고 했었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간직했었던 지갑이었기에 경환은 잊을 수가 없었다.
 “어? 뭘 이렇게 비싼 걸 샀어? 부담되잖아.”
 “비즈니스맨들의 필수품이라니까 오랫동안 써야 해. 내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레몬 소주를 한 주전자 더 주문하고서도 수정은 일상적인 얘기만 꺼낼 뿐 오늘 자신이 하려 했던 말은 꺼내지 않고 있었다. 경환은 수정이를 다시 만난 기쁨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수정아, 내가 군대 있을 2년 동안 기다려 줘서 고맙다.”
 “새삼스럽게 뭔 소리야, 애인도 아니고 친구 사인데.”
 경환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대학 1학년 미팅으로 만나 4년을 넘도록 만난 사이긴 하지만 손을 잡은 것 말고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경환은 발전된 관계를 원했지만, 수정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못을 박아 버렸다. 주위에선 이런 우리의 이상한 관계를 통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했지만, 그 당시 경환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래, 친구로서 고맙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수정이 네가 군대에 가게 되면 나도 2년 동안 널 기다려 주려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운동화 거꾸로 신지 않고.”
 “치, 내가 왜 군대엘 가냐? 군대는 아니더라도 너도 친구로서 2년은 날 기다려 줘야 서로 비슷해지겠지?”
 경환은 수정이가 뭘 고민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수정은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다. 수정은 위로 언니가 세 명인 네 명의 자매 가운데 막내딸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을 부모님은 옆에 끼고 지내길 바라셨다. 이러한 이유로 수정은 사회생활을 할 기회가 없었고 수정 스스로도 직업을 찾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수시로 들어오는 선을 거절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수정은 결혼을 미뤄야 될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직 경환이가 졸업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찾은 돌파구가 프랑스 유학이었다. 혼자서 준비를 마무리하고 반대하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은 했지만, 막상 경환이에게 통보하는 이 자리가 수정으로서는 많은 부담이 되고 있었다.
 수정 자신도 처음엔 경환을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습관처럼 만나 왔고 없으면 없는 듯 있으면 있는 듯 큰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사이였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속에 수정의 마음속엔 어느새 커다랗게 경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민도 많았고 이별도 생각해 보았지만, 수정은 경환을 저버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그 당시 경환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유학 통보를 듣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수정이에게 보여 줬을 뿐이었다. 수정과의 모든 걸 정리하고 헤어지는 마지막 자리에서 독백처럼 쏟아 내는 수정의 말을 들은 후에서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알았지만, 너무 늦어 버렸기 때문에 떠나는 수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가 수정이를 잡아 줘야 해. 미안하다, 수정아. 두 번의 실수는 없을 거야.’
 경환은 미소를 지으며 수정이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채웠다.
 “수정아. 너도 기다린 2년, 나라고 못하겠냐? 덤까지 해서 3년은 기다려 주마. 푸하하.”
 “어쭈, 말 함부로 하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으니까 딴말하기 없기다.”
 “옛썰! 그러니 말해 봐, 뭔 고민인데? 이별 통보 말고는 다 들어줄 테니까.”
 “애인도 아니면서 뭔 이별. 너 오버하지 마.”
 경환은 예전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니, 기뻐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수정이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경환아, 나 사실은…….”
 수정은 쉽게 뒷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경환은 독촉하지 않고 웃으며 기다려 주었다. 수정은 결심했다는 듯, 소주를 급히 마시고 꽉 다문 입을 열었다.
 “나…… 나 다음 달에 프랑스로 유학 가.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 정도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 듯이 빠르게 말을 꺼낸 수정은 경환의 눈치를 살피지도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혹시라도 경환이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에 경환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어…… 그래? 우 씨, 이거 말이 씨가 돼 버렸네. 괜히 기다릴 수 있다고 했구먼.”
 화를 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수정은 오히려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경환의 모습에 한편으론 다행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을 진짜 친구로밖에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 화가 나기도 했다.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 진리 그 자체였다. 수정의 뾰로통한 모습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던 경환은 이런 수정의 모습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수정아.”
 “응? 왜?”
 수정을 부른 경환은 다시 소주잔에 소주를 채우고 웃음을 띠며 수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힘들었을 텐데 유학을 결정한 거 축하해.”
 ‘…….’
 수정은 물끄러미 소주잔 위의 소주를 바라볼 뿐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수정아, 난 널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어.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리고 오히려 기쁘다. 이젠 내가 널 기다려 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잖아. 정말 다행이야, 내 진심을 너에게 보여 줄 기회가 생긴 거라서.”
 “고……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경환은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수정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수정은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잡힌 손을 빼지는 않았다.
 “잘 다녀와. 항상 너에게 미안했다. 내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나한테도 자극이 되고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네가 가 있는 동안 나도 좀 멋지게 변해 보려고 노력해 볼 테니 기대해 봐.”
 “경환아…….”
 수정은 경환의 진심을 듣게 되어 안심되면서 고마움을 느꼈다. 평소와는 다른 경환의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경환을 마음에 담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정은 다른 한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경환의 손 위에 얹어 경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서로 전화 자주 하고 편지도 자주 하자. 일주일에 하루는 지구가 망하더라도 전화하기로 약속하고.”
 “그래, 꼭 그러자.”
 Out of sight, out of mind.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만 경환은 자신이 있었다. 아니, 수정을 다시 놓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술자리를 정리하고 둘은 주점을 나와 수정의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경환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수정은 안 부리던 애교까지 떨어 가며 경환을 즐겁게 해 주었고 경환은 그런 수정의 모습을 마냥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었다.
 “근데 너 좀 이상해.”
 “뭐가?”
 “갑자기 네가 오빠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하하하, 내가 원래 오빠 맞거든? 너 일 년 일찍 학교 들어갔잖아.”
 수정은 이상하다는 듯 경환을 바라보며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덧 삼풍백화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수정의 집은 삼풍백화점 아래 삼호가든이었기 때문에 거의 도착을 할 무렵이었다. 수정은 팔짱을 낀 채로 걷고 있었고 경환은 팔짱을 끼고 있는 수정의 손을 낚아채 도로에서 떨어진 골목으로 급히 수정을 이끌었다.
 “경…… 경환아. 왜 그래.”
 “오늘은 우리에겐 새로운 날이잖아. 이날을 잊지 않고 싶다.”
 수정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경환은 그런 수정의 턱을 천천히 받쳐 올렸다. 순간 수정은 눈을 감았고 경환은 수정의 입술을 찾아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포개기 시작했다. 4년 동안 참아 왔던 첫 키스였고 수정은 입술을 벌려 경환을 받아들였다. 황홀했던 첫 키스를 마치고 둘은 수정의 집 앞에서 헤어짐에 아쉬워했다.
 “잘 들어가고,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굳이 나한테 시간 내려고 무리하지 마.”
 “통 모르겠어. 네가 이런 말까지 하다니. 그래도 시간 내도록 할게. 가기 전까지는 자주 보고 싶어.”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수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경환은 급히 수정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수정아! 저…… 그게 말이지. 그게…….”
 “뭔데?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숨기기는…… 그게 말이지…… 집 전화번호 좀 다시 알려 주라. 내가 요새 기억력이 떨어져서.”
 수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내 입술 돌려내라고 한참을 방방 뜬 후에야 집 전화번호를 다시 알려 주었고 한 번 더 까먹으면 죽여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남긴 후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젠장, 26년이 흘렀는데 전화번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고.’
 
 한 달은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수정은 제대 후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경환을 거의 매일 불러냈고 경환은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을 살려 수정의 유학 준비를 도와주었다. 이미 유학원을 통해 숙소와 모든 걸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지만 경환은 수정이 안심할 수 있도록 직접 어학원과 숙소에 전화를 걸어 일일이 확인을 해 주었다. 수정은 경환이의 내츄럴한 영어 실력에 놀라워했지만, 경환은 군대에서 틈틈이 공부해 왔다고 얼버무렸다. 휴대폰과 이메일이 대중화되려면 몇 년이 흘러야 하였기에 만 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는 은근히 경환에게 부담되었고 이를 눈치챈 수정은 전화카드를 항상 준비해 오는 센스를 발휘했다. 마지막 헤어질 때 해 주는 수정의 적극적인 키스는 경환의 피로를 씻는 청량제 역할을 했지만. 키스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뜰 시간이네.’
 경환은 시간을 확인한 후 아무것도 없는 창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보이지도 않을 비행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나가고는 싶었지만, 아직은 수정이의 부모님 앞에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수정은 바람피우면 죽여 버린다는 무지막지한 말을 남기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대 후 매일 저녁 막내인 승연이의 공부를 봐주면서 공부의 요령을 터득시켜 준 덕분인지 지금은 스스로 핵심을 찾아 대입 준비를 해 나갈 정도가 되었고 이번 치른 모의고사에서 무려 50점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일류대학은 안 되지만,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은 가능해 보였다. 과거로 회귀해 자신의 잘못을 하나씩 고쳐 가고 있지만 정작 경환 자신은 앞길이 막막했다.
 ‘미래를 알고 있으면 뭐 하냐고. 당장 내 주머니엔 천 원짜리 한 장밖에 없는데.’
 미래를 알고 있다고 떠들어 봐야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고, 수정이를 보낸 지금 서서히 앞날을 준비해 가야 할 시간이지만 당장은 등록금을 마련해야 될 상황이었다.
 ‘방법을 찾으라고. 머리를 굴려 보라고. 마몬 이 가시나, 특별한 능력이라고 하나 줬으면 좀 좋냐고.’
 머리를 쥐어짜 내고 있었지만,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아 애꿎은 마몬만 씹어 대고 있었다.
 “경환아, 전화 받아라.”
 “네.”
 친구 놈들이겠거니 생각한 경환은 달랑 천 원 한 장 가지고는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아 대충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머니께서 주시는 용돈을 더 이상은 받기 민망하기도 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어. 이 수경 살아 있었네.]
 반가운 목소리였다.
 “김 수경님이세요?”
 [그래, 인마. 자식이 제대하고 연락을 한번 안 하냐. 인정머리 없게시리.]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습니다. 제가 김 수경님하고 같은 처지도 아닌데요.”
 [자식이 주둥이는 아직도 안 죽었구먼. 나와라, 고참이 술 한 잔 받아 줄 테니까.]
 
 압구정동의 채플린이란 카페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어두운 실내로 들어섰고 카페 구석에 앉아 있는 김인철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김인철도 경환을 발견하고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인철은 이미 술 한 잔을 했는지 벌게진 얼굴로 경환을 맞이했고 인철의 맞은편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야, 이 수경. 제대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고참이 쫄따구한테 전화를 해야 쓰겠냐?”
 “김 수경님 공사가 다망하신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감히 쫄따구인 제가 어떻게 연락을 합니까?”
 둘의 대화가 웃겼는지 인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야, 먼저 인사부터 해라. 여긴 내 군대 후배 이경환이고 한양대에서 중문학 전공하는 친구야.”
 “처음 뵙겠습니다. 이경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친구들은. 에이 귀찮으니까 너희가 직접 소개해.”
 인철은 맥주병을 들어 경환의 잔에 따라 주면서 여자들을 다그쳤다.
 “김미애예요.”
 “저는 최소희예요.”
 “아. 네, 반갑습니다.”
 “미애는 성신여대에서 성악 전공하는 내 먼 친척 동생이고 소희는 미애 친구. 둘이 하도 남자 소개시켜 달라고 들들 볶아서 너 불렀다. 내 주위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못 믿을 놈들밖에 없어서.”
 경환은 별 관심이 없었다. 세련된 여대생이란 건 알겠지만 경환의 마음엔 이미 수정이가 꽉 차 있었기에 더 이상 다른 여자들이 치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여자들은 이것저것 경환에게 질문을 했지만, 경환은 단답형으로 대답을 마무리하였기에 대화는 오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에도 이 두 여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경환의 삶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음을 아직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수경, 너 숙맥이었냐? 스킬이 확 떨어진다.”
 “민간인 된 지 한 달 됐습니다. 스킬은 무슨 스킬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여성분들을 지루하게 해서야 쓰겠냐? 젠틀맨의 매너를 좀 보여 봐 봐.”
 “제가요, 머릿속이 무지 복잡하거든요. 낼모레가 복학인데 등록금 마련한 방법은 막막하고요. 애인은 공부한다고 오늘 비행기 타고 프랑스로 날아갔거든요.”
 “어? 너 애인 있었어?”
 군대 생활에선 수정이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로 했었다. 가끔씩 오는 편지도 대학 동창이라고 숨겼기 때문에 인철은 놀라며 눈을 크게 떠 경환을 바라보았다. 놀라기는 맞은편의 여대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치, 뭐야 오빠. 애인 있는 사람을 소개해 주구.”
 먼 친척이라던 미애라는 여대생은 인철을 향해 눈을 흘기며 짜증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미애의 친구인 최소희는 경환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생긋거리며 말했다.
 “애인이 떠나서 많이 속상하시겠네요. 남자들은 여자 앞에서 애인 있다고 떳떳하게 밝히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가 매력이 없어 보이는 거 같아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네요.”
 생글거리며 할 말 다하는 최소희가 당돌해 보였지만, 기분을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한가하게 여대생들과 노닥거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경환의 머릿속은 복잡했기 때문이지만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인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 개인 사정을 가지고 본의 아니게 무례했다면 사과할게요. 기분 푸시고 사과하는 의미로 술 한 잔 따르겠습니다.”
 경환은 맥주병을 두 손으로 받치고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술을 따랐고 그제야 인철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서로가 의미 없는 말들을 이어 가며 술잔을 비워 가고 있을 무렵 카운터 앞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시선이 카운터로 향했고 그중에는 경환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운터엔 가족으로 모이는 서양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듯 카운터를 지키는 여직원은 울상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한국 땅인데 영어 좀 못한다고 죄지은 표정을 하기는, 지들이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어를 배우는 게 기본이구먼.’
 경환은 심사가 뒤틀렸지만,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쩔쩔매는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고 인철을 포함한 일행은 경환의 행동을 놀랜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제가 통역을 해 드리겠으니 무슨 문제인지 말해 주십시오.”
 서양인을 향해 경환은 유창한 영어를 선보였고 서양인 가족과 카운터 여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환은 서양인과 한참을 서로 얘기를 한 후 카운터 여직원에게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별일 아니네요. 이 손님은 계산서의 금액과 자신이 계산한 금액이 다르다고 합니다. 계산서상에는 전체 금액만 표기되어 있어 확인할 수가 없으니 계산서를 세분화시켜 달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드셨는지 자세히 적어 주세요.”
 여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볼펜을 들어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여직원이 써 내려간 계산서를 들고 경환이 설명을 하자, 서양인은 한참을 계산한 후에 자신이 착각했음을 알 수 있었고, 여직원을 향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지갑을 꺼내 급히 계산을 마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고맙습니다.”
 “큰일도 아닌데요. 괜찮습니다.”
 여직원 고개를 크게 숙여 감사를 표했고 경환은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아 마른 목을 맥주로 축였다.
 “오, 영어는 언제 배운 거야?”
 “김 수경님 배 깔고 TV 보실 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경환은 전생에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신입사원 시절 영어를 잘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입사원 시절부터 3년 동안 고가의 원어민 일대일 영어를 배웠었다. 3년 후에는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자신의 부서로 찾아오는 해외 거래처 손님들의 통역과 접대는 온전히 경환의 몫이 되었다.
 “제가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잉글리쉬와 콩글리쉬는 구분은 할 줄 아는데, 오빠는 퍼펙트한 잉글리쉬던데요? 군대에서 배운 실력이 아닌 거 같은데…….”
 ‘엥? 내가 언제부터 지 오빠가 된 거야?’
 최소희는 경환에 대해 급격한 관심을 보이며 호칭 또한 저기요에서 오빠로 바꾸는 파격을 보여 줬다. 김인철이 술 한잔하자고 할 때 무턱대고 나온 이유를 말해야 할 때가 왔기에 최소희의 관심은 무시하기로 했다.
 “김 수경님 아니, 형님. 나 등록금 벌어야 해서 그런데 좋은 아르바이트 있으면 소개 좀 해 줘요.”
 “갑작스럽게 뭔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 줘?”
 난감해하는 인철을 바라보며 경환은 구차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매달리기를 포기했다.
 “그래요. 그냥 오늘은 술이나 마시고 죽을랍니다. 꺼이꺼이.”
 “야, 야. 그래 그냥 오늘은 술이나 왕창 마셔 보자고.”
 다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경환과 인철은 과한 리액션을 주고받았고 그런 둘의 모습은 최소희는 순간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최소희의 부친은 철 구조물을 제조하는 중견기업의 사장으로 마산에 큰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제2의 중동 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해외 시행사의 굵직굵직한 오더를 수주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까다로운 기준에 막혀 번번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대기업의 하청만 가지고는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감하고 있었기에 해외 시행사의 오더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시행사인 미국 업체의 일차 협상 대상자에 선정되었고 실사만을 남겨 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영문서 작성과 통역을 담당하던 직원이 경쟁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회사를 퇴사하는 바람에 얼마 남지 않은 실사를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었다. 식탁에서 부부가 나누던 이런 대화를 무남독녀인 최소희가 듣게 되었지만, 당시 자신이 도와줄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 사람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통역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럴 여유가 없었다. 자신이 듣기론 얼마 후에 미국에서 실사팀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최소희는 급히 전화를 찾아 카운터로 향했다.
 “얜 갑자기 어딜 간 거야?”
 이 자리가 영 못마땅한 듯 김미애는 종일 투덜거렸다.
 “투덜거리지 말고 미애 네가 나가 보면 되잖아.”
 인철의 따끔한 일침에 입을 쭉 내밀었지만 그래도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인상을 풀지 않고 있었다.
 “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니 제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김 수경님, 나중에 전화 한번 드리겠습니다.”
 “야, 이 수경. 너 지금 일어나면 내 입장이 뭐가 되냐?”
 계속해서 말리는 김인철을 잘 설득한 후 경환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해야 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뭐 하나 풀려 가고 있지 않으니 경환은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허탈한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에 막 도착할 즈음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아다보았다.
 “저기요! 저기, 경환 오빠!”
 저 멀리서 최소희가 미니스커트를 상관하지 않고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고, 경환은 뭔 꼬투리를 잡으러 오는 건지 몰라 내심 불안했다.
 “헉…… 헉…… 사람이 부르면 들어야죠!”
 숨을 헐떡거리며 최소희는 경환을 쏘아붙였다.
 “제가 소희 씨 기분을 또 상하게 했나요?”
 “헉…… 헉…… 그건…… 아니고…….”
 뛰어 오느라 참았던 숨이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느라 제대로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경환은 난감했다. 거의 벗은 듯한 차림의 젊은 여자가 자신의 앞에서 헉헉거리고 있는 모습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벌써부터 경환과 소희의 모습을 힐끗거리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인지 빨리 말해 줘요.”
 어떡하던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경환은 소희를 다그쳤고, 소희는 기분이 상한 듯 톡 쏘아붙였다.
 “아르바이트요, 아르바이트. 등록금 벌어야 한다면서요. 기껏 생각해 줬더니…….”
 아르바이트란 소리에 경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싸가지 없어 보이던 소희도 다시 보니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요?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하긴 했지만 어떤 아르바이트인지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근데 어떤 아르바이트인지…….”
 소희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 주려 노력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소희가 갑이었고 자신은 을의 본분에 최대한 머리를 숙여야만 할 처지였다.
 “이거 받아요.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니까 내일 아침 10시까지 찾아가 봐요.”
 종이 쪼가리 한 장을 경환을 향해 휙 던져 버리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뒤로 돌아오던 방향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아, 이 가시나 골 때리네, 뭔 아르바이트인지 말을 해 줘야 될 거 아냐. 역시 싸가지야, 싸가지.’
 경환은 몰랐다. 이 한 장의 종이 쪼가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 * *
 
 양복이 없던 경환은 최대한 점잖아 보이는 기지 바지를 입고 종이에 적혀진 주소를 찾아 20층이 넘어 보이는 삼성동의 어느 대형 오피스텔 건물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을 찾아야만 했다. 고3인 막내까지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살림에 종친회 총무로 일하시면서 한 달에 받는 백만 원 정도의 아버지 수입과 정아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는 세 명의 등록금을 부담한다는 건 답이 없는 계산이었다. 그만큼 경환은 절실했고 어떤 일이든 이 일을 꼭 따내야만 했다.
 
 15F 화성산업 서울 영업본부
 
 일찍 서둘렀기에 약속된 시간보다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 로비 인포메이션에서 위치를 확인한 경환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띵.
 엘리베이터는 도착했음을 알렸고 경환은 감았던 눈을 뜨면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화성산업에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어 누구에게 말을 건네야 할지 머뭇거렸다.
 “어떻게 오셨나요?”
 경환의 모습을 한 번 슬쩍 쳐다본 여직원이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 건넸다.
 “저…… 최승화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저는 이경환이라고 합니다. 10시에 사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확인 부탁합니다.”
 “저기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려 주세요.”
 여직원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고 경환은 의자에 앉아 회사 로고가 적혀진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 회사가 무슨 업종의 회사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회사 팸플릿을 넘기던 경환은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호, 플랜트 제작 업체구먼. 뭐 아직은 플랜트는 무리고 단순 철 구조물 제작 업체라고 해야 하나?’
 대형 공장이나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철 구조물이 제작되어야 한다. 철 구조물은 단순한 건물 외형의 구조물도 있지만, 특수합금을 이용하여 제작된 대형 튜브나 밸브 등도 플랜트 산업의 일종이였다. 90년대 초기라면 특수플랜트를 제작할 수 있는 국내 업체는 대후, 오성 등 대기업 몇 곳을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특수철판이나 특수합금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여야 할 정도로 제반 환경이 열악했지만, 특수플랜트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90년대 초부터 대기업 위주로 플랜트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화성산업이란 이 회사는 단순 노동집약형 철 구조물 제작 업체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경환은 전생에서 오성그룹 산하 오성건설 해외영업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중동 및 아시아 지역 건설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많은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건설프로젝트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플랜트 제작이었기 때문에 국내 플랜트 제작업체는 대부분 알고 있는 경환이었지만, 화성산업은 생소했다.
 “들어오시랍니다.”
 경환이 과거의 기억을 스캔하는 동안 사장실에 들어갔던 여직원이 돌아와 짤막하게 말만 전하고 다시 자신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뻘쭘해진 경환은 여직원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고 사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다짜고짜 들리는 반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졌지만, 지금 아쉬운 사람은 경환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고개부터 숙였다.
 “이경환이라고 합니다.”
 “어, 반갑네. 소희가 하도 부탁을 해서 말이지. 우선 자리에 앉게.”
 경환은 소파에 앉았지만, 최승화 사장은 경환이를 무시하고 쉬지 않고 전화통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 사장은 비즈니스맨과는 동떨어진 느낌으로 어느 공사판의 십장 같은 인상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경환도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전화기에서 들리는 말은 욕설이 반을 넘었다. 돈이 원수였다. 과거의 경환이라면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겠지만, 지금은 인내심을 가지고 최 사장의 욕설 섞인 통화를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경환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철썩 주저앉은 최 사장은 나이도 어린놈이 뭘 알겠느냐는 표정으로 경환을 바라봤다.
 “나 최승화의 무남독녀인 소희하고는 어떻게 안 사이인가?”
 ‘이런 젠장, 똥 밟은 거 아냐?’
 경환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겉으론 황당하다는 듯한 웃음을 띨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소희 그 싸가지가 어제 일을 빌미로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그게 아무 사이도 아니고…… 어제 처음 아는 형의 소개로 아주 잠시 만났을 뿐입니다.”
 최대한 아주 정중하게 당신 딸과는 아무 사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표정을 담아.
 “뭐 아무 사이 아니라니 다행이구먼. 소희 말을 듣자 하니 영어를 제법 잘한다고 하던데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나?”
 ‘나도 당신 딸 트럭으로 줘도 안 가져’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한양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만,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소희 부탁이라 만나는 봤지만, 전공도 아니고 혼자서 공부를 한 실력 가지고는 우리 일을 할 수 없네. 자네 플랜트가 뭔지는 아나?”
 일이 틀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보다 내가 더 디테일한 전문갑니다.’라고 말해 봐야 믿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최 사장 성격상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기 십상이었다. 임기응변이 필요한 때였다.
 “물론 플랜트에 대해서는 디테일한 사항은 알지 못하지만, 평소 관심이 있어 나름대로 공부는 한 분야입니다. 사장님께서도 밑져야 본전이시니 테스트를 해 주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제가 부족한 것이기에 포기하겠습니다.”
 최 사장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경환의 눈을 쳐다봤다.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군대를 갓 제대한 어린놈이 테스트를 해 달라고 하니 기도 안 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희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재떨이를 놈의 얼굴로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린놈에게 한계를 느끼게 해 주고 쫓아낸다면 소희한테도 면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한 최 사장은 소파 옆에 놓인 인터폰을 눌렀다.
 “이 부장, 오늘 미국에 보낸다는 서류하고 시방서 들고 들어와.”
 ‘됐어, 당신 죽었어.’
 경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히딩크의 어퍼컷 세리모니를 날리고 있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서류를 잔뜩 들고 사십 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와 최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부장, 서류 탁자에 놓고 자리에 앉아 봐. 이 친구가 자신을 테스트해 달라고 하더군. 참고로 대학생이네.”
 두꺼운 서류를 한 묶음 탁자에 내려놓고 꼿꼿이 허리를 세워 엉덩이 한쪽만 소파에 걸쳐 않은 이 부장은 최 사장을 향해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 사장은 경환에게 눈짓으로 서류를 한번 보라는 시늉을 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경환은 앞의 문서를 집어 천천히 넘겼다. 경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서류들이었다. 설계도면과 세부적인 시방서 화성에서 준비한 오퍼시트가 문서의 전부였다. 경환의 예상대로 단순한 공장 외형의 철 구조물이었고 시방서엔 각각의 구조물에 대한 디테일한 제작 방법 등이 적혀져 있었다. 쉽게 말해 인건비 따 먹으려고 단순한 구조물을 제작 의뢰하는 수준이었기에 특수플랜트 영업을 했던 경환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쯧쯧, 어이가 없네.’
 Simple is The Best. 서양 애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특히 비즈니스상으로 주고받는 서류들은 서로 필요한 핵심을 잡아 작성하기 때문에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구구절절 장황하게 문안 인사부터 시작해서 써 내려가는 내용을 이해해 주질 않는다. 경환 또한 입사 초기 오퍼시트를 작성하면 일 년 열두 달을 상사에게 깨져 가면서 겨우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화성산업의 오퍼시트는 한국식 사고방식과 콩글리시에 기반을 둔 최악의 문서였다. 미국 업체가 이 서류를 받는다면 ‘Shit!’이라는 소리와 함께 휴지통으로 직행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잘 봤습니다. 대단한 프로젝트를 준비하시고 계시네요.”
 “핵심을 말해 보게.”
 최 사장은 ‘네가 봐야 뭘 알겠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고 꺼지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충격 요법이 필요할 때였다.
 “알겠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하실 겁니다.”
 아주 단언을 하는 통에 최 사장은 파던 손을 멈추고 탁자를 내리쳤다.
 “이 자식! 네가 뭘 안다고 떠들고 지랄이야? 당장 꺼져! 이 새끼야.”
 다혈질인 최 사장이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고 경환은 묵묵히 참고 있었다. 앞에 앉은 이 부장이 약간 흥미롭다는 듯이 경환을 쳐다봤고 최 사장은 분을 주체 못하고 씩씩 거친 숨을 내뱉었다.
 “사장님, 고정하십시오. 젊은 학생 같은데 말을 함부로 하지 말게나. 자네는 어떤 근거로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건가?”
 충격 요법은 통했고 미끼는 물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는 이 부장이 이 자리에 동석을 한 것이 경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다혈질의 최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한 방에 끝내야 했다.
 “그럼 짧은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실패 요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설계도면에 따른 시방서가 너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인정하네. 그러나 오더를 수주한 후에 좀 더 세밀한 시방서가 올 수도 있는 거네.”
 최 사장과 이 부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도 시방서가 부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공도 아닌 젊은 휴학생이 도면과 시방서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보안을 위해 견적샘플용 시방서를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만 KBR이란 곳이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자네 KBR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경환이었다.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플랜트업체로 전 세계 플랜트업체 중에서 탑 10으로 꼽을 수 있는 막강한 맨 파워를 지닌 업체라는 것을. 오성건설 시절 해외수주를 놓고 KBR과는 매번 경쟁을 하였고 가격경쟁력 빼고는 KBR을 이길 수 없었던 경환을 수 없이 절망시켰던 업체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플랜트업계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업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국내의 대후나 오성도 이 정도로 허술한 시방서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플랜트 업계의 선두를 자부하는 KBR이라면 입만 아프죠. 예를 들어 도면상에 나온 45미터 H빔의 경우 L형과 T형으로 복잡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복잡한 컷팅작업이 들어가야 하는데 시방서엔 아무런 언급이 없이 간단히 커팅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커팅작업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건 기본인데도 말이죠.”
 “흠……, 계속해 보게.”
 최 사장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용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최 사장은 경환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대답을 독촉했다.
 “KBR은 인도에 철 구조물 하청업체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화성산업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판단으로는 화성산업을 들러리로 해서 인도 업체를 압박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최 사장은 눈을 감았다. 국내 기업의 하청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하여 해외 거래처 오더에 목을 매었고, 반년 전 NASA에서 근무하고 은퇴한 외삼촌의 도움으로 어렵게 KBR과 연결을 할 수 있었다. 경환을 대하는 태도가 한풀 꺾였다.
 “자네가 말한 두 번째 이유는 뭔가?”
 “제가 보는 두 번째 이유는 화성산업이 해외 오더를 수주할 정도의 맨 파워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오퍼시트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KBR 정도면 기본적인 오퍼시트 양식이 있을 겁니다. 그걸 화성산업에 주지 않았다는 것은 화성산업의 자격을 테스트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을 합니다. 화성산업이 작성한 오퍼시트를 KBR에 보낸다면 장담하건대 휴지통으로 직행을 하게 될 겁니다.”
 자신이 주관하여 작성을 하였기 때문에 이 부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의 고자세에서 많이 누그러진 최 사장이 몸을 일으켜 탁자에 바싹 다가섰다.
 “이 주 후에 공장실사팀이 들어오네. 그래도 기회가 없다고 보는가?”
 “뭐 인도를 가기 전에 잠깐 한국에 들러 쉬다 가는 거겠지요. 인도 업체는 바짝 긴장을 하겠지만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경환은 일부러 말을 얼버무렸다. 이제부터는 을이 아닌 갑의 입장으로 갑질을 해야 될 차례였다.
 최 사장은 기가 막혔다. 딸애가 통역할 학생을 써 보라고만 했을 때도 대충 시늉만 하고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영문과 교수에게 어렵사리 통역을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전혀 기대감 없었던 젊은 놈에게 지적질을 당했는데도 일언반구 대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예리했다.
 “방법이란 게 뭔가?”
 맨입에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 줄 정도로 미련한 경환이 아니었다.
 “저를 쓰십시오. 이번 프로젝트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KBR의 차기나 차차기 프로젝트엔 당당히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최 사장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잡혀 가고 있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는.’
 경환은 기분 좋게 화성산업을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경환에게 백기를 들었다. 이 주 후 실사팀이 방문할 때까지 모든 KBR 관련업무를 총괄하기로 했고 부장 급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비용을 받기로 했다. 혹시 오더수주에 성공하게 된다면 수주금액의 1%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는 계약과 동시에 일괄 수령하기로 했다. 일단 숨통은 틔었다. 고민했던 등록금은 마련했기에 천천히 미래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번 거에 만족하기로 했다.
 
 * * *
 
 힘든 하루를 보낸 최승화는 거래처와의 술 약속도 뒤로 미룬 채 서둘러 귀가했다. 뭐에 홀린 듯이 젊은 놈에게 사정없이 휘둘림을 당했고 결국엔 그놈의 요구 조건을 백 프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허, 천하의 최승화를 가지고 놀다니.’
 최승화는 허탈해하며 양복 윗도리를 던져 버리고는 소파 위에 너부러졌다.
 “아빠, 오셨어요? 피곤하시죠? 헤헤.”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소희가 쪼르르 달려와 어깨를 주무르며 애교를 떨었다. 자식 욕심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소희 이후로는 둘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소희에 대한 사랑은 과할 정도로 심했다.
 “허허허, 이 맛에 딸 키우는 거야. 소희 너 용돈 필요한 거구나.”
 “히히히.”
 최승화는 양복에서 지갑을 꺼내 십만 원권 수표 두 장을 소희의 손에 들려주었다.
 “역시, 우리 아빠 센스는 알아줘야 한다니깐. 아빠 고마워요. 쪽.”
 소희는 수표를 얼른 주머니에 넣고 최승화의 볼에 뽀뽀를 해 주었고, 최승화는 뭐가 좋은지 연신 허허 웃으며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 소희 너 잠깐만 앉아 봐라. 경환이라는 학생하고는 어떻게 안 사이냐?”
 “어, 맞다. 오늘 찾아 갔었죠? 어때요?”
 아들이 없는 최승화는 자신의 사업을 물려주기 위해 데릴사위까지 볼 생각이었다. 어린 나이면서도 날카로운 분석력을 가지고 있는 그놈이 사업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하고는 어제 하루 만났기 때문에 잘은 모르는데…… 아빠가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듯해서 소개한 것뿐이에요. 영어는 잘하는 거 같아서…….”
 “음…… 그랬구나.”
 “아빠가 보시기에는 어때요? 써먹을 수 있어요?”
 “제법 똑똑하긴 한 거 같더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 일은 주기로 했다. 네 부탁도 있고 해서.”
 딸 앞에서 차마 그놈한테 박살이 나도록 깨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딸 앞에서 지켜야 될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근데 소희야. 그 학생과 사귈 생각이 있어서 아빠한테 소개시켜 준 거니?”
 “아빠! 농담으로도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런 노땅을 누가 사귄다고, 그리고 그 노땅 애인도 있단 말야.”
 버럭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소희의 모습을 보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붉어지는 소희의 얼굴은 발견하지 못했다.
 “남편이 들어왔는데 네 엄마는 어째 코빼기도 안 보여?”
 최승화는 급히 말을 돌리고 있었다.
 
 * * *
 
 집에 돌아온 경환은 아르바이트를 구했으니 등록금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 한숨 돌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경환은 집에 돌아온 후부터 전화기 앞에서 종일 서성거렸다. 이미 도착할 시간은 지났고 시차를 확인해 봐도 지금쯤은 전화가 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수정의 전화는 오지 않고 있었다. 기다려야 될 2년에서 겨우 하루만 지났을 뿐인데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 수정일 놓친 거잖아. 담대하게 믿어 주자고. 나이를 50이나 처먹은 놈이.’
 오십 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경환은 초조하게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순간 창피함을 느꼈다. 우선은 내일부터 출근하게 될 화성산업의 일부터 고민해 봐야 될 것 같아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될 일이었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될지 무척 어려운 현실이었다. 경험만 가지고는 열악한 조직을 움직일 수는 없다는 걸 경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경환은 책상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오정미는 닭장 같은 지하철을 헤집고 나와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여상을 졸업하자마자 화성산업에 들어와 경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다른 직원보다 30분 전에 출근하여 책상을 닦고 재떨이를 비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고 커피에 담배 심부름까지, 직원이기보다는 사환이나 다름없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온다는 소식에 심부름 정도는 맡길 수 있겠거니 좋아했지만, 요즘 사장이 신경 쓰는 KBR이라는 회사의 일을 총괄하는 일을 한다기에 오정미의 꿈은 날아가 버렸다.
 ‘어? 어제 분명 문을 잠그고 퇴근을 했는데.’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가방에서 꺼내려는 순간 이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둑이 들었는지 걱정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순간 오정미는 없는 애가 떨어질 정도로 놀라 들어가던 발을 뒤로 뺐다.
 “누…… 누구세요?”
 “아, 놀라셨나 보네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이경환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서로 간단하게 눈인사를 나눈 후 오정미는 자리에 앉았다. 아마 아르바이트 학생인 것 같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서둘러 걸레를 챙겨 들고 물에 적신 후에 직원들의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어? 왜 다른 사람의 책상을 혼자 닦으시는 건가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쓴웃음만 보여 주고 책상을 계속 닦아 나갈 무렵 걸레를 누군가 채 가는 걸 느꼈다.
 “저도 막 출근해서 심심한데 같이 닦아요.”
 “그래도 제가 할 일인데 걸레 저에게 그냥 돌려주세요.”
 “하하, 싫은데요.”
 걸레를 돌려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고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와 신문지를 정리했다. 덕분에 일은 빨리 끝날 수 있어 좋았지만,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어요.”
 “별말씀을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근데 혼자서 청소를 도맡아 하는 것은 좀 그렇긴 하네요.”
 나이가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이 남자로 인해 오랜만에 상쾌한 하루를 보낼 것 같았다.
 경환은 여직원과 같이 청소를 마친 후에 여직원이 가져다준 시원한 냉커피를 한 잔 들이켜고 있었다. 고민을 하긴 했지만, 구색은 맞춰야 될 것 같기에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에게 부탁해 의류 할인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양복을 한 벌과 흰색 와이셔츠 세 장을 구입했고, 넥타이는 아버지 것 중에서 하나 골랐다. 예전의 기억을 살려 정아의 무스를 빌려 머리 정돈도 해 보았다. 184의 작지 않은 키 때문인지 양복은 의외로 경환에게 어울렸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을 시작하고 경환을 힐끗거리며 쳐다보았지만 경환은 가볍게 눈인사만 건넬 뿐 오정미에게 했던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진 않았다. 마침내 최승화는 경환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부터 KBR을 총괄하기로 한 이경환 팀장이고 임시직이기는 하지만 부장 대우이니만큼 이 팀장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길 바라네. 만약 이 팀장의 지시에 불응한다면 바로 해고조치 하겠네.”
 최승화의 말에 오정미를 비롯한 십여 명의 직원들이 놀란 눈을 크게 뜨고는 최승화와 경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팀장, 한마디 하게.”
 경환은 천천히 직원 모두와 시선을 교환한 후 입을 열었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나이 어린 애송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 줘야만 했다.
 “반갑습니다. 이경환입니다. 올해 나이 25살이고 군대에서 제대한 지 한 달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젖비린내도 안 가신 새파란 놈이 부장 대우 팀장이라고 자리 차고앉았으니 배알이 꼴리시겠죠. 너 한번 엿 먹어 보라고 속으로 벼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경환은 잠시 말을 끊었다. 직원들은 경환의 직설적인 화법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직원들은 불만과 냉소가 가득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실무에 들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직원들의 표정을 읽은 경환은 비웃고 있었다. 명퇴를 당하긴 했지만 오성건설 해외영업부 차장이란 직위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자리였다. 막말로 산전수전 거기에 공중전 잠수전까지 치러 내고 피범벅이 된 후에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직급이었기에 실무만큼은 경환을 따라갈 인재는 화성산업 내에는 전혀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저는 이 주 동안 KBR 프로젝트 업무를 총괄할 것이고 사장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통보를 하는 자리입니다. 나이가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즈니스맨의 능력 판단 기준은 철저하게 실적과 결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장황하게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KBR 관련 회의를 하겠습니다. 주제는 프로젝트의 분석과 대응 전략으로 하겠으니 준비 철저히 해 오시기 바랍니다. 사장님을 제외한 전 인원이 참석하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다룰 수 있으신 분 거수해 주십시오.”
 경환의 말을 듣던 직원들이 황당해하고 있었고 컴퓨터란 생소한 단어까지 꺼내자 모두를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경환 자신도 대학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만져 볼 수 있었던 286컴퓨터를, 90년인 지금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걸 경환은 알고 있었다. 일단은 기를 눌러 놔야 다루기가 편하다는 걸 경환은 잘 알고 있었다.
 “흠…… 타자를 치실 수 있으신 분은 계신가요?”
 서로 눈치를 보다 오정미와 다른 여직원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두 분이 계시네요. 불행 중 다행입니다. 오정미 씨는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제 옆으로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부장님 도착하는 컴퓨터는 한 대는 제자리에, 나머지 두 대는 타자를 치시는 분들 자리에 설치해 주십시오.”
 “그, 그럽시다.”
 이 부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맘에 없는 대답을 했고 최승화는 경환의 강압에 못 이겨 필요 없는 컴퓨터를 세대씩이나 구입한 이유를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댓글(10)

애정결핍    
댓글
2015.11.13 10:04
zi****    
쩝.. 처음에 재밌게 봤는데.. 온 사방에 적을 만들고 다니던데.. 좀 더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네요..
2015.12.24 09:41
[탈퇴계정]    
위에 글에 공감합니다
2016.02.24 20:33
bpolt    
아이고 경환아 과거로 돌아간다는데 마몬이랑 그짓하기전에 로또번호 하나는 외우고 가는게 정상 아니냐 ㅠㅠ
2017.03.06 14:43
n1*********    
수경은 근무가 짧나요?
2019.04.07 13:51
dharma    
ㅁㅁㅁ
2019.04.11 01:37
다크라이    
그냥저냥
2019.04.28 18:07
le******    
인생 루저군요 환생자가
2021.12.07 08:26
ra******    
킬링타임용이네요..
2022.01.01 11:59
fo*****    
처음에는 좀 괜찮나 했더니 여지없이 갈수록 졸작이 됩니다. 작가가 글에 끌려가는건지 그냥 정신줄 놓은건지. 떡밥회수는 어설프게 해서 오히려 앞뒤가 안맞네요
2022.06.0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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