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마이다스의 손

제1화 코드 원

2015.10.12 조회 41,376 추천 841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평생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 중 15퍼센트에 해당하는 부분만 사용했다고 한다.
 
 * * *
 
 “육!”
 남자가 내민 손에 들린 공에는 ‘육’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네 번째 행운의 숫자는 육입니다. 자, 다음에 나올 행운의 숫자는 무엇일까요? 기대하십시오. 이제 곧 밝혀집니다.”
 화창한 토요일, TV 화면에는 미국에서 최대 당첨금을 자랑하는 파워볼의 추첨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회자는 1등 당첨금액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번 주와 이번 주, 연달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중첩된 당첨금이 무려 일억 이천만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당첨자가 나올지 결과가 기대됩니다. 그럼 이 등 당첨자를 결정하는 다섯 번째 번호를 공개하겠습니다.”
 두두두두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일에서 오십구가 새겨진 하얀 공이 투명한 통에서 뒤섞이며 빠르게 회전했다.
 또르르르!
 한참을 회전하던 공이 투명 통을 빠져나오자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구! 다섯 번째 행운의 숫자로 구가 나왔습니다.”
 물끄러미 화면을 보던 해일은 탁자로 눈길을 돌렸다. 탁자에는 열 장의 복권이 당첨을 기다리며 늘어져 있었다.
 
 17. 28. 33. 6. 9.
 
 오늘 파워볼의 당첨 번호들이다.
 그런데 탁자에 늘어져 있는 열 장의 복권 중 다섯 개의 숫자가 일치하는 복권이 있었다. 그것도 두 장이나 있었다.
 이 등 당첨금은 한 장당 백만 달러.
 두 장이면 이백만 달러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일해도 모으지 못할 금액이었다.
 환호성을 터트리며 기뻐할 만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파워볼만 맞는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거머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해일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나른한 눈빛을 유지한 채 손에 들린 금화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며 일 등 당첨을 결정짓는 마지막 파워볼의 등장을 기다릴 뿐이었다.
 혹, 당첨 번호를 확인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 드디어 고대하던 일 등! 최종 파워볼을 추첨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아나운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두두두둥!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음악소리와 함께 새로운 투명 통에서 일에서 삼십오까지 새겨진 붉은 공이 뒤섞이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두 번 연속 당첨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 누적된 당첨금은 무려 일억 이천만 달러! 과연 이번 주에는 파워볼의 주인이 나올 수 있을지? 자, 이제 공개합니다.”
 또르르르!
 드디어 여섯 번째 공이 당첨 통을 빠져나왔다.
 “십구! 오늘의 파워볼은 십구입니다.”
 사회자가 십구라는 숫자가 새겨진 공을 들어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해일의 시선이 다시 탁자에 놓인 복권으로 향했다.
 있었다.
 이 등에 당첨되었던 두 장의 복권 중 한 장에 십구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17. 28. 33. 6. 9. 19.
 
 열 장의 복권 가격은 총 20달러, 20달러가 일억 이천만 달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의 환호 따위는 없었다.
 넓은 방에는 화면에서 떠드는 사회자의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띵!
 TV화면이 꺼지고 그나마 들리던 목소리마저 사라졌다. 완벽한 방음 장치 덕분에 깊은 침묵만이 넓은 방을 메꿨다.
 해일은 일 등에 당첨된 복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것도 지겹군.”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해일의 눈에 나른함이 짙어졌다.
 해일에게 매주 두 번, 복권의 숫자를 고르는 것은 일종의 훈련이자 게임이었다. 다른 이에게는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저 감을 키우는 훈련과 무료함을 잠깐이라도 달래는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삐이익!
 인터폰을 누르자 비서실에서 대기 중이던 비서실장 로닌이 들어왔다. 감색 양복을 단정하게 걸친 로닌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해일이 탁자에 놓인 복권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처리해.”
 “예. 마스터.”
 로닌이 탁자에 놓인 복권을 챙겼다.
 매주 하던 일이라 질문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는 시리아 난민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예. 마스터.”
 로닌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껏 해일이 맞춘 복권은 액수에 상관없이 익명으로 기부를 해왔다. 드물기는 하지만 오늘처럼 일 등에 당첨된 복권도 있었고 이 등이나 삼 등에 당첨된 복권은 꽤 많았다. 이번 주 파워볼의 일 등 당첨금 일억 이천만 달러는 시리아 난민의 구호금으로 쓰이게 될 것이었다.
 로닌이 나가자 해일은 눈을 감고 뇌를 활성화시켰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숫자와 기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와 함께 해일의 뇌는 천천히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평생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 중 15퍼센트에 해당하는 부분만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해일은 무려 30퍼센트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 능력을 높이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 * *
 
 “으하하함!”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투자자문사 골드 시크리트의 수석 보좌관 월슨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길게 폈다. 그러고는 피곤을 풀려는 듯 목을 좌우로 연신 돌려댔다.
 정책팀에서 올린 보고서를 걸러내느라 밤을 지새운 탓도 있었지만, 갑작스런 장거리 출장 덕분에 생긴 시차도 피로를 더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피곤하면 좀 쉬고 오는 게 어때?”
 로닌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월슨이 얼굴을 찌푸렸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하긴…….”
 월슨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린 로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책상에는 아직 분류를 끝내지 못한 보고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가 세계 경제 흐름에 파급력을 가지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였다. 모두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마스터에게 그대로 올릴 수는 없었다.
 급하지 않은 내용은 뒤로 미루고 급한 내용이라면 간결하게 요약을 해서 읽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것이 수석 보좌관 월슨이 할 일이었다.
 물론 이것 외에도 수많은 일이 있지만 말이다.
 월슨이 건네받은 커피 잔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더욱 피곤한 것 같군.”
 “피곤이 누적되어서 그럴 거야. 어지간하면 며칠이라도 휴가를 내도록 해.”
 “그러고 싶지만…….”
 월슨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보고서를 젖히더니 다시 보고서 내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로닌이 혀를 찼다.
 “쯧쯧, 그나저나 오늘은 어째 피터가 조용한 걸?”
 “후후! 가뜩이나 바쁜데 피터마저 징징거리면 난 몸살이 나고 말걸세.”
 월슨은 백악관의 경제정책 보좌관 피터를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피터는 하버드 대학 동기로 일찍부터 정치 쪽으로 눈길을 돌린 친구였다. 덕분에 지금은 미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 보좌관을 맡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음에 월슨이 휴대폰을 힐끗거렸다. 휴대폰 액정에는 반갑지 않은 인물의 이름이 빨리 받으라는 듯 깜박거리고 있었다.
 월슨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어째 조용하다 했어.”
 로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후후! 어쩌겠나. 피터 입장도 이해를 해야지.”
 월슨은 까칠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피터, 내일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이런, 때가 안 좋았나 보군.”
 “이렇게 자꾸 보챈다고 해결이 나는 게 아니잖아. 이러면 나도 곤란해.”
 “오늘은 독촉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 아니네.”
 “그럼 왜 한 건가?”
 “코드 원이 자네 회장과 통화하기를 원하시네.”
 “코드 원?”
 순간 월슨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코드 원.
 백악관에서 말하는 코드 원은 대통령을 뜻한다.
 곁에 있던 로닌의 표정도 굳어졌다.
 
 * * *
 
 해일이 셔츠를 벗자 탄탄한 가슴이 드러났다. 약간 마른 듯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근육으로 뭉친 가슴이었다.
 “후우!”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며 양손을 모으자 팔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철사 줄을 꼬아놓은 듯한 근육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뭉쳤다가 풀어졌다.
 주먹을 말아 쥔 해일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팡! 팡!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물에 젖은 수건을 힘껏 털어낼 때 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쉭! 쉭!
 이번에는 바짝 날이 선 수도가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음이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잔영이 남기는 섬뜩함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스르륵!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을 따라 해일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후욱, 후욱.”
 시간이 지날수록 해일의 움직임은 격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댓글(39)

happymind    
로또, 나 주지...ㅠ.ㅠ
2015.10.14 02:01
큐비트30    
쥔공은 코드제로인가요?ㅎㅎㅎ 건필하세요^^
2015.10.17 08:38
파천황검    
이 작품, 출간된거 같은데? 그것도 꽤 오래전에?
2015.10.18 18:00
ChuckLee    
비밀글입니다.
2015.10.27 13:12
조르크    
언젠가 본듯한 내용이....
2015.10.28 12:58
[탈퇴계정]    
아인슈타인이 저렇게 말햇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2015.10.29 23:39
자만쉽    
퍼센테이지가 적을 수록 좋은거라는 가설도 있어요 ㅎㅎ
2015.10.30 00:02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15.10.31 12:34
무르무르무    
오오 재밌어 보이네요!!!
2015.10.31 22:16
물물방울    
로또 기다리는 독자가 많아요.
2015.11.02 15:26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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