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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우 1권-1

2015.10.12 조회 1,557 추천 27


 서장
 
 청랑(靑狼)이 알려 줄 것이다!
 
 
 1장 청랑(靑狼)
 
 “끄윽!”
 사내의 입에서 한 사발은 됨 직한 피가 쏟아진다.
 쨍그랑!
 그와 동시에 사내의 손에 들린 술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으으…….”
 휘청거리는 사내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마주한 여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눈빛의 변화조차 없었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렇게.
 “크윽!”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사내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러나 상대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이 의미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경악 그리고 불신!
 그런 사내를 바라보며 여인은 무심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순간 여인을 향한 사내의 눈빛이 놀라울 정도로 평온해졌다.
 그리고 사내의 입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그냥…… 죽어달라고 했으면…… 웃으면서…… 그리 해주었을 것을…….”
 “…….”
 그 순간 여인의 몸이 미세하나마 떨리며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의 몸은 썩은 통나무처럼 뻣뻣한 자세로 바닥에 쓰러졌다.
 “휴!”
 의미를 알기 힘든 한숨소리가 여인의 입에서 새어나온다.
 쓰러진 사내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흠칫.
 여인의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그리고 점점 가깝게 들려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 때문이었다.
 우오~!
 왠지 섬뜩함이 느껴지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함께 들려오는, 늑대와 함께 이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누군가의 우렁찬 음성.
 “야, 이 녀석아! 임산부가 그렇게 뛰어다니면 어떡해?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뛰어가는 거냐고?”
 
 @
 
 박투술(搏鬪術)이라 불리는 무공이 있다. 맨손으로 근접거리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무술의 한 종류로서 ‘박투’와 ‘유술’의 혼합된 명칭이다.
 박투(搏鬪)란 손, 발, 팔꿈치, 무릎, 심지어 발바닥까지, 그야말로 온몸을 무기로 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을 뜻하는데, 보통 권각술(拳脚術)이라 칭하는 무공과 거의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반면에 유술(柔術)은 상대를 자빠뜨려 ‘바닥에서 뒹굴며’ 꺾기, 비틀기, 조르기 등 관절기(關節技)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수법을 뜻한다.
 어찌 보면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무공이랄 수도 있지만, 대다수 무림인들에게 있어 제대로 된 무공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했다. 유술의 사용 때문이었다.
 나려타곤(懶驢打滾)이라는 수법이 있다.
 상대의 공격을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피하는, 그야말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최후 최악의 수단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그런 식으로 옷에 온통 흙을 묻히며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느니 차라리 상대의 공격에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단지 공격이나 수비를 위해 땅바닥을 뒹구는 행동이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는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신의(神醫)는 얼어 죽을! 친구의 다리 하나 제대로 못 고치는 놈이.”
 인적이 드문 산길. 상당히 특이해 보이는 일행이 걷고 있었다.
 두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여아(女兒)였다.
 청의를 입은 노인은 타고난 것인지 상처를 입은 것인지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었고, 황의를 입은 노인은 두 살 정도 먹어 보이는 귀여운 여아를 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까지 특이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짐승 한 마리 때문에 일행 전체를 특이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거대한 청랑(靑狼) 한 마리!
 푸른빛 털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못해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그 덩치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평범한 늑대보다 두 배 이상의 덩치를 자랑하는, 말 그대로 송아지만 한, 혹은 호랑이만 하다고 칭해도 될 정도의 거대한 늑대였다.
 배를 보건대 임신한 늑대임이 틀림없고, 그 배의 크기를 봐서는 출산이 임박한 듯 보였다.
 “거참, 또 시작이군. 이제 지겹지도 않나?”
 발을 절뚝거리는 노인의 그런 투덜거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황의 노인은 입가에 미소까지 띠우며 여유롭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 정도 되니까 이 정도지, 다른 의생 만났으면 걷지도 못했을 걸세. 어흠.”
 황의 노인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완전히 제 잘난 맛에 사는군. 야, 이놈아. 생사마의(生死魔醫)라는 거창한 별호까지 붙이고 다니는 놈이, 검에 좀 스친 상처 하나를 10년이 되도록 못 고친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의 내용은 상당히 거칠었지만, 청의 노인의 표정에서도 어느 정도 장난기는 엿보였다.
 “뭐? 검에 좀 스친 상처? 허허, 이거 정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인줄 알겠군.”
 “그럼 아니냐?”
 “예끼, 이 친구야. 세상에 검기(劍氣)도 아니고 검강(劍罡)에 당한 상처를 검에 스친 상처라고 하는 사람은 천하에 자네 하나밖에 없을 거야.”
 청의 노인의 다리가 검강에 의한 부상 때문이었다? 농담이라면 허무맹랑하고 진담이라면 엄청난 내용이다.
 검강(劍罡)!
 검 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광채!
 검을 잡은 모든 무인들이 꿈꾸고 갈망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과 동시에 실제로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전설’이나 ‘신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경지.
 현 무림에서 그저 흉내에 가깝게라도 검강을 뿜어낼 만한 고수의 숫자조차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고수들 중 하나와 청의 노인이 대결을 벌였다는 소리였다.
 물론, 청의 노인의 상태로 봐서는 그 대결에서 승리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검강을 구사하는 고수에게 그 정도 부상이라면 거의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실전에서 검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의 고수는 알려진 바로는 고작 네 명밖에 없었다.
 파천대제(破天大帝) 고력.
 무천검선(武天劍仙) 단운.
 우내쌍검(宇內雙劍).
 이 중 고력과 단운은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을 다투는 절대고수들로서 각각 강북(江北)무림과 강남(江南)무림을 대표하는 절대강자들이고, 우내쌍검은 무림맹의 지배자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인물들이다.
 “검이나 검강이나…… 뭐, 그게 그거지…….”
 차마 이번만은 우기지 못하겠는지 청의 노인은 쭈뼛거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하하. 이 친구야, 10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못 참고 그렇게 투정인가?”
 황의 노인은 청랑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청순이가 새끼만 낳으면 자네 다리쯤이야 바로 완치가 되지 않겠나?”
 청랑의 이름이 청순이었던가? 누가 지었는지 호랑이만 한 청랑의 위용에는 너무나 걸맞지 않는 이름이었다. 물론 바둑이나 누렁이보다야 백배는 나은 이름이긴 하지만.
 “정말 완치되겠지?”
 갑자기 조심스러워진 청의 노인의 말투. 그런데 황의 노인은 갑자기 자신이 없는 말투를 보인다.
 “그거야…… 그때 가보면 알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가봐야 알다니? 틀림없이 완치된다고 자신하더니 막상 닥치니까 이제 발뺌하는 건가?”
 “자네 말대로라면, 아니 자네 말의 반의반만 믿어도 충분히 완치가 되겠지.”
 왜일까? 황의 노인의 차분한 말 한마디에 청의 노인은 바로 풀이 죽고 있었다.
 “내 말의…… 반의반만……?”
 
 -청랑은 영물(靈物) 중의 영물로서 백년 정도의 주기로 새끼를 딱 한 마리만 낳는데, 그 새끼의 탯줄은 그야말로 절세의 영약으로서 전설상에서나 볼 수 있는 용의 내단, 만년설삼 등의 효능과 맞먹는다.
 
 “자네가 한 말이라네. 내 기억에 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은데, 설마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솔직히, 만년설삼도 필요 없고 천년설삼 정도의 효능만 돼도 자네의 다리는 완치가 된다네. 그거 하나는 내가 보장하지.”
 황의 노인의 말에 청의 노인은 먼 산을 바라보며 어색한 헛기침을 해대었다.
 “어흠, 그거야, 으흠. 돌아가신 사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했으니 나야 그런 줄 아는 거지, 뭐…… 그리고 솔직히, 용의 내단은 내가 갖다 붙인…… 어라?”
 말을 하던 도중 청의 노인의 고개가 크게 갸웃거렸다. 청랑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뚝.
 어슬렁거리는 동작으로 노인들과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걸어가던 청랑이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서는가 싶더니, 한참 동안이나 미동조차 없이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청순아, 무슨 일이냐?”
 그러나 주인(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지만)의 부르는 소리에도 청랑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 술 더 뜬다.
 부들부들.
 난데없이 청랑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어라? 점점?”
 노인들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청랑이 평범한 늑대였다면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근처에 호랑이 같은 동물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아니다. 노인들이 아는 한, 청랑에게 있어 호랑이는커녕, 호랑이들이 떼로 모여 있다 해도 절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청랑의 기이한 행동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달리기 시작했다.
 우오!
 난데없이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토하는가 싶더니.
 후다닥.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청랑이었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엄청난 빠름.
 “아니, 저놈이 뭘 잘못 먹은 거야? 야, 이놈아. 애 떨어질라.”
 청의 노인 역시 허겁지겁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달리는 속도.
 절름발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니, 몸이 성한 사람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
 
 ‘독살(毒殺)? 아직…… 살아 있기는 하군.’
 헐레벌떡 청랑의 뒤를 쫓아온 청의 노인은 처참한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시체라 착각한 웬 사내가 쓰러져 있었고, 청랑은 그 주위를 묘한 눈빛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술이 가득한 술 병 하나와 두 개의 술잔이 보였다. 하나는 멀쩡한 잔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입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피를 흘렸는지, 사내의 상의는 물론이고 누워 있는 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내는 대머리였다. 아니,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은 얼굴 주변의 땅바닥에 한 움큼씩 널려 있는 변색된 머리카락이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독에 중독된 것인지 결코 길지 않은 그 시간에 머리칼이 모조리 빠져버린 것이었다.
 “헉헉, 대체 무슨…… 아니?”
 뒤늦게 숨을 헐떡이며 쫓아온 황의 노인이 기겁을 하며 안고 있던 여아(女兒)를 청의 노인에게 맡긴 후, 사내에게로 달려가 상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황의 노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틀렸어. 독도 보통 강한 독이 아니야. 한 가지 방법이 있기야 하겠지만…….”
 왜일까? 생사마의는 청랑과 구자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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