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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왕의 생존비법 1권

2015.11.25 조회 2,737 추천 51


 # 프롤로그
 
 올해로 28살, 아홉수를 앞두고 있는 권혁은 방구석 폐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이 없는 혼자였다. 부모님은 물론 그 흔한 친척조차 없는 혼자 몸인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부모님은 있었다. 군 전역 직전 두 분이 함께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그랬더라면 지금도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며 어설프게나마 효도라는 것을 흉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부모님은 차 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셨고… 그에게 남은 것은 40평짜리 아파트와 2억 정도 되는 재산. 그리고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걸려있던 생명 보험금 10억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혹자는 아파트에다가 12억이나 되는 재산이 있는 셈이니 그리 나쁘지는 않은 인생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것이… 그리고 감정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니까.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도, 일을 해야 할 필요도, 꿈을 꾸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 권혁은 결국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딱히 다른 사람들의 대하는 것이 무섭다던가 집밖으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다던가 하는 병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을 뿐이다.
 본래부터 그는 그런류의 인간이었으니까.
 12억이나 되는 재산이 있다면 그것을 투자해서 더 불리려고 한다던가, 하다못해 비싼 외제차를 구입해가며 돈을 쓰려 들겠지만 그에게는 그러한 욕망도 없었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한 달에 100만원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이 권혁이라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행동을 두고서 혹자는 한심하다고 할지도, 혹자는 팔자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나름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만족하고 있었다.
 방구석 폐인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백수라고 해도… 정말로 그가 무쓸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전역한 뒤 약 6년간.
 권혁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게임에 빠져들었다.
 공부도, 운동도, 예술도, 그 어느 쪽도 재능이 없던 권혁이었지만 게임만큼은 꽤나 재능이 있었던 탓에 어린 시절부터 각종 게임을 옮겨 다니며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게임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돈을 걱정할 필요도, 시간이 모자랄 걱정도 할 필요 없는 현재의 상황은 게임에 빠져들기 더없이 훌륭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현실도피의 도구로써 게임을 선택한 권혁은 마치 끝을 보겠다는 것처럼 온갖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액션, 스포츠 등등… 가릴 것 없이 모든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온라인상에서 조금씩 유명해져갔다.
 처음에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하나 둘씩 게임의 공략을 올리던 것이 나중에는 동영상 강좌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애플리카 방송까지 이어지게 되자 순식간에 인기스타가 되고 만 것이다.
 흔히 BJ라고도 불리는 이들이 진행하는 애플리카 방송은 여러 가지 종류의 재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권혁의 방송은 꽤나 독보적이었다.
 왜냐하면 권혁은 그것이 어떤 장르든, 어떤 난이도를 지녔든 반드시 최고 난이도를 선택하여 게임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는 처음부터 최고 난이도의 게임을 선택했음에도 무리 없이 게임을 진행하며 그때그때의 공략까지 덧붙이는 비범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딱히 손이 빠르다던가, 반사 신경이 뛰어나다던가 하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모든 종류의 게임을 무리 없이 공략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BJ폐인으로 활동하는 그에게 생긴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공략왕이었다.
 방송을 시작한지 족히 5년은 지난 지금. 그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만큼은 수위를 다투는 인기인이었으며, 유티비 광고 수익으로만 오천만 원 이상을 거두어가는 고소득자였다.
 그 때문일까?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 눈꺼풀을 밀어올린 순간 보인 광경에 권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챕터 1. 이건 꿈인가?
 
 “끄응!”
 정신을 차리자마자 지끈! 하고 뇌리를 눌러오는 통증에 나는 신음을 머금었다.
 동시에 내가 어제 간밤에 과음이라도 한 건가? 하는 생각을 떠올려봤지만 통증과는 무관하게 필요이상으로 생생한 머리를 굴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술을 마신 기억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 여긴 대체 어디지?
 여전히 지끈대는 미간을 주무르며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 나는 그런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흐릿한 시야로 비추어지는 방안의 전경이 기억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모텔이라도 찾은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럴 리는 없지.”
 방구석 폐인에 지난 5년째 안타까운 솔로 생활을 영위해오고 있던 그에게 원나잇처럼 달콤한 시츄에이션이 발생할 리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눈앞에 보이는 방안의 전경은 연인들이 사랑을 위해서 찾고는 하는 닳고 닳은 모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웠다.
 물론 듣기로 요즘의 모텔들은 어지간한 호텔에 버금갈 정도로 잘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앞의 전경은 너무나도 고급… 아니, 고풍스러웠다.
 잡티 하나 없는 순백색의 벽지에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앤티크한 느낌의 원목 가구들.
 도대체 세상 어디의 모텔이 저런 식의 가구를 쓴단 말인가.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자칭 강남 카사노바인 불알친구 놈은 그게 다 컨셉 모텔이라며 모텔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보자면 이곳은 절대 모텔방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호텔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껴 쓰는 것이 몸에 배어들어 이제는 제법 돈을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통 소비를 하지 않아서 지지리궁상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내가 술김에라도 호텔로 찾아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여기는 어디인 거지?”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질문을 상기하며 나는 마침내 침대를 벗어났다. 역시나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앤티크 원목 침대의 위를 말이다.
 
 ***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고!!”
 문 밖을 나서자마자 들려오는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
 아직 20세 전후로 정도 밖에는 안 보이는 약간은 앳되어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방 안의 분위기만큼이나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복도를 지나쳐 불이 밝혀져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자 플로어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마치 중세 영화 속에 나오는 연회장이라도 된 것처럼 넓은 공간의 플로어.
 높다란 천장에는 반짝이는 샹들리에마저 달려있어서 한층 더 앤티크한 느낌이 드는 플로어에는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옷차림도 다들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그들은 모두 플로어 한 가운데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코 교복 차림의 소녀였다.
 아마도 나를 불러들인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교복 차림의 소녀.
 교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벌써부터 빨갛게 물들인 머리색에 웨이브진 머리스타일에 약간은 퇴폐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섹시하게 칠해진 스모키 화장. 그리고 몸매의 굴곡을 확연히 드러내도록 착 달라붙게 줄여진 교복 차림은 그녀가 결코 모범생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봐,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일단은 좀 진정하는 게…….”
 모두의 중앙에 선 채로 빼액빼액 소리를 질러대는 소녀에게로 다가서며 차분한 중재의 말의 걸어보는 양복 차림의 중년인.
 “시끄럽고! 빨리 불라고!! 어떤 놈이야? 뭔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거잖아! 인질극이야? 그럼 아빠한테 전화해서 원하는 만큼 주라고 할 테니까 빨리 폰이나 내놓으라고!!”
 하지만 소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 씨발! 그만 닥쳐라!! 썅년이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 뭐 이렇게 시끄러워?”
 결국 참지 못한 사뭇 위험한 느낌의 시커먼 양복 사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나섰지만…….
 “뭐? 왜? 치게? 함 쳐봐 그래. 감옥에서 한 5년쯤 해줄 테니까 함 쳐보라고!!”
 “아니, 근데 이 년이!!”
 “쳐보라고!!”
 “씨발….”
 끝내는 소녀의 기세에 밀려 물러나고 마는 사내였다.
 “흥! 건들 배짱도 없는 새끼가 입만 살아가지고는….”
 그렇게 사내까지 물러나자 소녀는 더더욱 기가 살아서 난리를 피우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곁에서 팔을 잡아당기며 만류하는 다른 소녀의 말에 겨우 입을 다무는 모습이었다.
 “지, 지혜야… 그만해…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아냐. 분명히 이 안에 납치범 새끼가 있을 거라고!!”
 “하, 하지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울먹거리지 말라고! 남이 우는 꼴 보는 건 딱 질색이니까.”
 대강 그런 느낌으로 소녀가 안정이 되자 시끌시끌하던 플로어의 분위기는 소강상태로 들어서는 듯 했다.
 “크흠, 큼!”
 계단 위에서 일단의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그제야 인기척을 드러내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 새로운 사람이군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지는 가운데 먼저 나서며 말을 걸어오는 청바지와 검은색 목티라는 ‘잡스’틱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내.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을 지닌 사내는 누가 봐도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선량한 인상의 훈남이었는데 그렇기에 오히려 뭔가 더 찝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난리를 친 저 여자애와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 저렇게 태연한 기색으로 웃는 낯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수상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지만… 초장에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테니까.
 결코 좋지는 않은 첫 대면의 감상을 숨기며 나는 주춤주춤 모여든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로서 정확히 9명째네요.”
 내가 합류하자마자 곧장 확인시키듯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여는 청바지 사내.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되어진 것을 확인한 사내는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한 채로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눈썹을 가린 앞머리를 멋들어지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이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가식에 찬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서있어 봤자 더 나아질 것도 없어 보이니 우선은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
 
 “역시… 다들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모르는군요.”
 모두의 통성명이 끝나고 각자가 기억하는 간단한 상황의 설명까지 끝이 나자 청바지 사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했다.
 아, 사내의 이름은 박민혁.
 나이는 31살이라는 것 같았다.
 “다들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멍한 상태였으니까요.”
 명환의 말에 덧붙이며 동조해오는 양복 차림의 중년 사내.
 그의 이름은 전동조.
 나이는 48살로써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암묵적인 동의하에 모두들 직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겉모습과 분위기만으로도 대강의 정보는 이미 밝혀져 있는 상태.
 예를 들자면 강지혜와 윤소미라는 이름의 두 소녀는 동급생으로 이제 막 수능을 끝마친 예비 대학생이었으며, 척 봐도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검은 양복 차림의 두 사내는 조폭임이 틀림없었다.
 두 사내의 경우는 이름조차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철구나 강호 등의 가명을 댔는데 이름이 밝혀지면 곤란한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나 같은 무리에 속한 듯 은연중의 연대를 만들어 보이고 있는 20대 중반의 여성 둘은 제각기 김소윤과 이승희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서로 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갑인 듯 했다.
 그녀들은 움직이기 편하도록 입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군살 없이 잘 빠져 있는 몸매로 보건대 아마도 운동계에 종사하는 이들로 추정되었다.
 옷차림만으로 평가를 내린다는 게 참 허술하긴 했지만 서로가 암묵적인 비밀을 만들고자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이상 이런 식으로 짐작을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무튼, 그런 복장을 통해 파악해본 직업 예측에 의하면 최연장자인 전동조는 어딘가 대기업의 부장급 정도의 사람으로 보였으며, 박민혁은…….
 
 ‘애매하지.’
 오로지 그만이 직업이나 배경 등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옷차림만 봐가지고는 왠지 컴퓨터 쪽의 일을 할 것 같기도 한데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가 보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거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9명. 딱히 기준은 없으며 속 시원히 드러난 정보도 없다.’
 모두가 조금씩은 스스로를 숨긴 통성명에 이어 내뱉은 말이라고는 그저 잠들기 전까지의 평범하기 그지없던 어제의 일과와 두통과 함께 방안에서 눈을 떴다는 사실 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애매하구만.”
 “예? 뭐라고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에요. 제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혼잣말이 많아서요.”
 “하핫, 하긴 게임BJ이시라면 말이 많아야 하겠죠.”
 나는 모여든 이들 중 유일하게 정확한 직업이 밝혀진 케이스였는데……, 딱히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반짝반짝)!”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선망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자칭 골수팬 소미에게 정체가 까발려졌기 때문인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정황도 파악되지 않은 갑갑한 상황 속에서 어울리지도 않게 소녀 팬의 교복 등판으로 사인을 하고 악수까지 하는 난리를 치러야 했다.
 ‘그나저나… 정말이지 수상하기 그지없군.’
 9명이나 되는 사람이 기억도 못하는 사이에 같은 장소에 끌려왔다는 것부터가 이미 말이 안 되는데, 먼저 깨어나 주변을 돌아본 사람들의 말로는 이 저택의 모든 공간들은 다 잠겨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깨어난 방들과 그에 이어지는 복도. 그리고 지금 모여 있는 플로어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들이 굳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성질이 급한 조폭계 남자 둘은 주먹을 휘둘러서 창문을 깨고 탈출을 시도하려 해봤지만 방탄유리라도 된 것처럼 창문은 꼼짝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심지어 창문에는 짙은 검은색의 칠이 칠해져 있어서 바깥의 전경을 확인할 수 없게 되어있는 상태.
 이 쯤 되면 이 저택을 만들어낸 인간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봐야 할 지경이었다.
 요즘에는 감옥도 이런 식으로 폐쇄적으로 만들어 두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각자가 빠져나온 방안과 이 플로어 뿐. 나머지의 모든 공간은 모두 굳게 닫혀져 있는데다가 창문 역시도 방탄 소재로 되어있어서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즉, 이대로 계속해서 활로를 찾지 못하면 당장 굶어죽지 않을 걱정부터 해야 한다는 뜻.
 “일단은 서로의 주머니 속을 체크해보죠. 혹시 먹을 거라든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명환이 모두를 주도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 사이 나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합당한 활로가 되어줄 수 있는 양문형 대문을 주시했다.
 딱히 잠금 같은 건 걸려있지 않음에도 대못이라도 쳐진 것처럼 꼼짝을 하질 않는 대문.
 ‘하지만 만약 이 저택 내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단연코 저 대문이겠지.’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왠지 모르게 그런 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내가 혼자만의 가정에 빠져서 어설픈 머리를 굴려가고 있을 때였다.
 
 애애애애애앵-
 
 돌연 사방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커다란 사이렌 소리.
 모두 그에 놀라 움찔거리고 있는 사이 눈앞으로 기현상이 일어났다.
 “뭐, 뭐야 저건….”
 “…글자?”
 모두가 서있던 플로어의 중앙의 허공으로 붉은색의 글귀가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곧 증명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문이 열리면 1분 내에 밖으로 빠져나가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을 준수하지 못하면 그 대가를 받게 되니 주의하시길.』
 
 핏빛을 닮은 불길한 색채만큼이나 심란하기 그지없는 내용의 글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허공에 갑자기 글귀가 생겨났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난 오히려 글귀 내용으로부터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주의’ 라는 단어가 말하고 있는 경고가 결코 말 뿐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난 왠지 모를 한기가 온 몸을 스쳐가는 기분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바로 그 순간,
 덜커덩-
 그동안 온갖 짓을 다해도 열리기는커녕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이 굳건히 닫혀져 있던 저택의 대문이 활짝 열려졌다.
 휘이이이-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을씨년스러운 소음과 함께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외부의 공기.
 코끝이 시원해질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묘하게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공기를 온 몸으로 맞으며 나는 본능적으로 열려진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응? 자네 어디 가나!!”
 “갑자기 그렇게 혼자 가버리면 위험하단 말입니다!!”
 홀로 움직여가는 나를 발견한 전동조와 박민혁이 다급히 나를 불러 세웠지만 나는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건 예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될 것만 같은 촉.
 다년간 수없이 게임을 해나가며 불가능한 과제들을 공략하고 성공해온 나만의 특기와도 같은 감각인 것이다.
 바로 그 촉이 지금 당장에라도 문밖으로 빠져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말이지.’
 그렇게 내가 촉을 따르고 있는 사이 모두를 놀라게 했던 붉은색 글귀는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방금 단체로 환각이라도 걸려들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열려진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모두 죽기 싫으면 얼른 나와요!!”
 오로지 감각에만 의지하여 말하는 필사의 외침.
 떠오른 글귀가 말하던 대가라는 것이 실제로는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신도 없었지만 나는 경호성과 함께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니까.
 생존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사고방식 따위는 포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갑자기 뭔 소리여!!”
 예상대로 패닉하며 허둥대는 인원들.
 하지만“우선은 나가죠!” 라고 외치며 동조하는 박민혁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모두 꼬랑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후다닥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어? 아저씨! 얼른 나오세요!!”
 저택에서 깨어난 9명의 인원 중 오로지 최연장자인 전동조만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모두의 뒤를 지키며 맨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박민혁이 돌아보며 그렇게 외쳤지만 전동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고개를 저으며 강렬한 부정의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발악하듯 외쳤다.
 “난 여기서 못 나가! 밖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나간단 말이야! 게다가 갑자기 죽기 싫으면 나오라느니… 수상하잖아! 수상하기 그지없다고!!”
 이런… 너무 심하게 패닉해버린 건가?
 전동조는 겁에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재차 외쳤다.
 “너희들이야 말로 얼른 다시 들어와! 그 놈을 믿고 나갔다가 다 죽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의 외침에 일제히 내 쪽을 향해 따갑게 집중되어지는 시선들. 나는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방금 그 글자를 봤잖아요. 일단은 나오세요! 이제 10초 정도밖엔 안 남았다고요!!”
 “난 안 나가! 이런 데서 영문도 모르고 죽기는 싫다고!!”
 틀렸다. 아무래도 전동조는 완벽하게 패닉에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점점 더 문 쪽으로부터 멀어지는 전동조의 모습에 나는 낮게 혀를 찼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움직일 수 있었다면 안으로 들어가서 강제로라도 데려오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이제 겨우 10여 초 남짓 남은 시간 내에 시도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이제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저… 글귀에서 말하던 ‘대가’ 라는 것이 그리 큰 패널티는 아니기 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저택을 빠져나온 일행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 채 여전히 겁에 질려 허덕이고 있는 전동조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 사이 시간은 야속하게 지나가 커트라인을 향해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3… 2… 1….’
 처음 촉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재고 있던 1분의 제한 시간이 마침내 0을 향해 접어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냥 이 저택 안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더 좋… 켁! 커헉!!”
 모두는 동맥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싸늘한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발악하며 외쳐대던 전동조가 돌연 충격을 받으며 경직하는가 싶더니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을 토해내며 경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뚜두둑! 뚜둑!!
 “꺄아아아악!!”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팔 다리 관절들이 기이한 형태로 꺾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케헥! 컥! 케에에엑-!!”
 관절이 뒤틀리는 고통에 전동조는 억눌린 신음을 머금으면서도 한껏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찬 비명을 터뜨리는 소미.
 다른 이들 역시도 비명까지 지르진 않았지만 싸늘하게 굳어버린 표정은 마찬가지로 공포에 잠식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저택을 빠져나온 이들이 모두가 한순간에 공포라는 괴물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씨발!’
 저절로 욕설이 나올 수밖에는 없었다.
 생각해보라 바로 눈앞에서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목이 졸려 혈관이 팽창하고 눈알이 밀려나오면서 팔 다리의 관절이 꺾여 들어간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눈뜨고는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광경인데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져 더욱더 처참한 장면들이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켁! 케륵… 케르르르…….”
 이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저 억눌린 신음만을 머금고 있는 전동조의 혓바닥은 이미 잔뜩 삐져나와 목젖까지 닿아버린 상태였으며 벌어진 입과 눈, 코, 귀로부터는 쉼 없이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 뱃속에 공기라도 불어넣는 것처럼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피부층.
 그에 따라 질식에 밀려나오던 눈알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올 것처럼 앞을 향해 돌출된다 싶은 순간!
 “크흑!”
 “우욱!”
 참혹하게 변해가는 전동조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시선을 피했다.
 소미는 진작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로 돌아서 앉은 채 떨고 있었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며 상황을 주시하던 지혜는 헛구역질을 하며 곧바로 시선을 틀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반응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전동조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나는 마침내 한계점까지 부풀어 올라버린 그의 모습에 결국 얼빠진 신음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그와 동시에,
 푸화아아악-
 
 정말로 풍선이라도 된 것처럼 살점이 뜯겨지는 거북한 사운드와 함께 터져나가는 몸뚱아리.
 “우웨에엑-!!”
 나름대로의 의지인지 나와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전동조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던 박민혁이 끝내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엎드려 주저앉으며 신물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만 봐도 보통 사람들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끔찍한 일일 터인데, 팔 다리의 관절이 뒤틀리고 목이 졸린 뒤에 끝내는 피부가 부풀어서 터져서 죽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죽음에 익숙한 장의사나 용병 군인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이겨낼 수 있을만한 장면이 아니었다.
 “후웁.”
 나 역시도 역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필사의 인내로 참아내며 시선을 내리는 것으로 겨우 꼴불견을 보이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눈앞에서 진행되어진 전동조의 죽음은 끔찍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 모여든 모두를 한순간에 공포와 혼란 속에 잠겨들게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말이다.
 쿠웅-
 “!!”
 다행이련지 참혹하게 흩어져버린 전동조의 시체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양쪽으로 열려져 있던 문이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육중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혀졌기 때문이었다.
 “…….”
 “…….”
 싸늘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모두를 감싸며 내려앉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충격에서 헤어날 틈도 없이 또 다른 공포를 마주해야만 했다.
 
 애애애애애앵-
 
 예의 그 사이렌이 울리며 새로운 글귀가 다시 모두의 앞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증명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살아남은 8인의 생존자들은 곧 지급받게 될 배낭을 열어 스마트패드를 꺼낸 뒤 켜주세요. 제한 시간은 1분입니다. 제한 시간을 준수하지 못하면 그 대가를 받게 되니 주의하시길.』
 
 이번에도 제한 시간에 대한 경고문의 강조되어져 있는 글귀. 하지만 눈앞에서 전동조의 최후를 본 이들의 반응은 이전과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뭐? 배낭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이야!!”
 글귀를 읽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는 철구.
 그는 조폭이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저지르고 말 것 같은 눈빛.
 그 자연스러운 살기에 위기를 느낀 일행들이 슬금슬금 그에게서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허공에 생성되었던 글귀가 사라지며 예의 배낭이라는 것이 생성되었다.
 딱히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저택 앞의 공터로 서있던 이들의 바로 눈앞으로 각자 하나씩의 배낭이 생성된 것이다.
 별다른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갈색의 낡은 배낭을 받아든 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즉시 배낭을 열어 내부에 있던 스마트 패드를 꺼내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이, 이봐! 이거 이렇게 누르면 되는 거 맞겠지?”
 “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거짓말 아니지? 나 죽이려고 뻥치는 거 아니지? 만약 그런 거면 네놈이고 네 가족들이고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전동조의 끔찍한 죽음이 생각보다 더 큰 자극이었던 것일까. 반쯤은 미친 것처럼 보이는 철구는 옆에 있던 박민혁에게로 말도 안 되는 협박을 내뱉으며 허겁지겁 스마트 패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군.’
 그 난리통이 이는 사이 조용히 배낭을 뒤져 배낭과 마찬가지로 특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수한 스마트패드를 찾아낸 나는 전원버튼으로 추정되는 것을 꾸욱 눌렀다.
 지이잉-
 버튼으로부터 손가락을 떼어내자마자 미약한 진동과 함께 즉시 기동하는 스마트패드.
 그에 저절로 긴장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가라앉히며 묵묵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 이내 뒤집혀진 삼각뿔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점멸과 함께 어떠한 화면이 떠올랐다.
 ‘이건… 맵?’
 화면에 떠오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맵이었다.
 게임에 나오는 그것처럼 일부의 구조물들과 길목들이 표시되어져 있는 맵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의미 없는 그림처럼도 여겨질 수 있는 화면이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이것이 현재의 위치를 표시하는 맵이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의 사원이라는 게 바로 저 저택을 말하는 것일 테고… 여기 비추어지는 길목의 형태는 마침 주변의 형태와 비슷해. 그럼 이 파란 점들은 우리들인가? 그럼 녹색은… 나겠군.’
 주변의 전경과 비슷하게 구성되어진 맵의 모양.
 그 중에서도 7개의 파란 점과 1개의 녹색 점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상황을 인식하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아직 시간이 안 된 거야?”
 모두 다 스마트 패드를 켜는 것에 성공했는지 흠칫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여성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는 소미는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안타까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어디보자… 나머지 구성품은 음식이랑 물인가?’
 모두가 다음 지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배낭 속의 내용물을 한번 크게 훑어본 나는 가볍게 주변을 살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앞으로는 그보다 더 심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물스물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벌어진 죽음만으로도 이미 지금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은…, 그저 말 그대로의 경고에 불과한 퍼포먼스.
 때문에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는 훨씬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긴장감에 사로잡힌 채로 다음의 지령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삐빅- 즈으으응-
 짤막한 전자음과 함께 다시금 떨려오는 스마트패드.
 “꺄악!”
 “헉!”
 그에 놀라 각자 신음과 비명을 내뱉는 사이 스마트패드의 액정화면으로는 새로운 창이 떠올라 있었다.
 전체화면의 3분의 1정도 되는 크기의 직사각형 대화창과 함께 일단의 글귀가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허공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져버린 글귀와 똑같은 폰트가 사용되어진 글귀.
 새롭게 떠오른 대화창의 위로 새겨진 글귀의 내용은 이러했다.
 
 『포인트 A로 가십시오. 제한 시간은 사흘. 정확히 72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은 스마트패드의 TIME기능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제한 시간을 반드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두에게 건투를.』
 
 딱딱하기 그지없는 내용들 속에서 처음으로 ‘응원’ 이라는 감정이 수록되어져 있는 글귀.
 하지만 나는 반대로 더 섬뜩한 긴장감이 서려가는 것을 느끼며 창을 눌러 대화창을 지웠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대화창이 사라지자마자 재차 떠오르는 맵의 화면.
 그것의 위로 손가락을 좁혀 맵의 크기를 최대까지 끌어당긴 나는 어렵지 않게 글귀 속의 포인트 A가 어디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로군.’
 우리들이 서있는 곳으로부터 길목을 따라 쭈욱 이어지는 경로의 끝으로 붉은색의 A라는 글자가 두꺼운 폰트로 쓰여져 미세하게 발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관적이네.’
 맵의 디자인은 딱히 게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파악해낼 수 있는 편이었다.
 정말로 깊은 산골에서 문명과 동떨어져서 살아온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다들 컴퓨터 한 번쯤은 만져보곤 하니까 말이다.
 그만큼이나 맵의 디자인이 간결하고 또한 직관적이었다.
 게다가… 심지어는 친절한 편이기도 했다.
 맵의 우측 상단으로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새로운 도구창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는데, 그 중 [거리] 라는 버튼을 누르면 목적지까지의 남아 있는 직선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TIME] 버튼을 누르면 남아있는 제한시간 및 타이머식 알람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제한 시간이 사흘이나 되다보니 잠을 자는 경우에 대한 배려도 심어둔 모양이었다.
 이토록 스마트패드는 적어도 미션을 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용한 기능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여태까지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즐기는 미치광이 또라이 새끼의 유희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상황 자체가 이미 또라이 같긴 하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들을 이곳으로 끌고 온 존재는 우리들의 무고한 죽음이 아니라 미션의 클리어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지.’
 맵에 담긴 의미에 대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입맛이 쓰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혼란에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이들과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현 상황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그 중에서도 가장 예리한 시선으로 상황을 훑고 있는 것은 역시 단연코 박민혁이었다.
 “!!”
 주변을 훑다가 박민혁과 시선이 마주친 나는 의도적으로 찔끔한 척하며 시선을 내렸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다 괜히 안 좋은 상황을 불러들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름 혼신의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모두 집중해주세요!!”
 분위기를 살피던 박민혁이 마침내 무리의 중앙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여태껏 은연중의 리더 역을 맡아오고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들.
 “…….”
 “…….”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잠시 뜸을 들이며 무게를 잡던 박민혁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슬슬 조바심이라는 감정이 드러날 때쯤이 되어서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확인하셨다시피 저희에겐 새로운 목적이 생겼습니다. 이 스마트패드의 맵에 나와 있는 목적지, 포인트 A까지 사흘 내에 도달하는 것이죠. 포인트 A는 이런 식으로 맵을 크게 펼쳐보면 빛나고 있는 A마크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헐! 정말이구먼!!”
 아까 전부터 컴맹의 면모를 진하게 보여주고 있던 철구가 박민혁의 손가락을 따라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동조한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이미 다들 거기까지는 파악해낸 모양.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며 박민혁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옆에 이 버튼들을 눌러보면 남아있는 거리와 시간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이것만 있으면 무리 없이 목적지까지 나아갈 수 있을 거란 뜻이죠.”
 “저, 저기… 저흰 다시 돌아갈 순 없나요?”
 전동조가 죽은 이후로부터 극도의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던 소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리며 질문한다.
 그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박민혁.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일의 관계자가 아닌 이상 그 역시도 한 명의 희생자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박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그저 제가 아는 바는 앞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지령들을 거절해서는 안 되고 제한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단호한 박민혁의 대답에 소미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지혜는 그런 그녀를 은연중에 보듬어 안으며 보호하듯 나서며 박민혁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묘하게 사나운 지혜의 눈빛에 약간은 기분이 상한 듯 눈썹을 움찔하며 시선을 거둔 박민혁은 이내 모두를 돌아보며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들으셨겠지만 저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령에 나온 대로 따라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되겠죠. 아까 전 전동조 씨처럼 말이죠.”
 “흐읍!”
 “무, 무서워….”
 헛숨을 들이 삼키며 긴장하는 사람들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와들와들 떨어대는 소미.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 속에 몸을 숨기고서 박민혁의 시야 사각에 선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가 사람들을 통솔할만한 카리스마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일 그가 리더의 자리를 맡으려 한다면 큰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며 지원하려고 했다. 한데 그가 말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러한 마음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던 것이다.
 ‘필요이상으로 거창해.’
 박민혁은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인위적 신뢰도를 구축하고 있었다.
 아무런 증명도 보증도 없으면서 마치 자신이 메시아라도 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무사히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그것은 흡사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사이비 교주의 연설과도 닮아 있었다.
 ‘…마음에 안 드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에게 리더라는 짐을 씌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 역시도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 명의 우민에 불과하게 된 것을.
 지금이라도 나서서 모두의 생명이라는 짐을 짊어질 것이 아닌 이상에야 조용히 입을 다물고 박민혁의 치세를 따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며 박민혁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을 때였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거… 말하다보니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았네요. 긴장감을 가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안 해도 되겠어요. 하핫.”
 절묘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간 탓에 희한하게 조금은 환기되어지는 분위기.
 그 분위기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는 반대로 모두의 긴장감을 흩어버린 박민혁은 모두의 표정이 풀려들자마자 이내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지금 상당히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살아날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스마트패드의 맵과 그 기능들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를 끌고 온 누군가는 우리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지령을 클리어 하기만을 바라고 있거든요.”
 정말로 메시아라도 된 것처럼 미묘한 희망을 심어주는 말과 함께 박민혁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령에서 요구한대로 지켜내기만 하면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안 그러면 굳이 번거롭게 이런 도구까지 줘가면서 시간을 끌진 않았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렇네요?”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그의 연설의 끝마침과 동시에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틈바귀 속으로 스며들며 이질감을 지워내는 박민혁.
 마치 정치인이나 사기꾼을 연상시키는 능숙한 그의 언변에 내가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그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신뢰를 흡수했다.
 “그러니 모두 힘을 모아서 잘 해나가 보죠.”
 적어도 겉보기에는 크게 나쁘지 않게 마무리 되어진 분위기. 하지만 나는 안도감 대신 더 큰 불안과 경계심을 머금었다.
 ‘…역시 숨겼어.’
 박민혁이 드러낸 진실은 사실 절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의문의 존재가 우리들에게 미션의 클리어를 바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그를 위해 유용한 기능이 주어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의 말처럼 상황이 물렁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목적지인 포인트 A까지의 직선거리는 정확히 35Km.
 짧다면 짧고 멀다면 멀다고도 할 수 있는 애매한 거리다.
 사실 쉬지 않고 걸으면 반나절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그다지 멀지는 않은 거리인 것이다.
 한데 그런 거리를 두고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려 사흘이었다. 정확히 72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35Km의 거리를 주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라고 치기에는 과도하게 많다.
 물론 길이라는 건 항상 직선만 택할 수 없는 법이니까 이리저리 돌아간다고 치더라도 72시간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그러니까… 그만큼 앞으로 가게 될 길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
 지금까지 보여진 분위기나 기이한 현상들을 보건대 이 앞에는 분명 그만한 위험이 주어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 따위는 가볍게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 말이다.
 확신이라 말하긴 힘들었지만 수년간 단련(?)해 온 나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 앞의 맵은 온통 가려져 있으니까.’
 맵에는 분명 주변의 지형지물과 구조물들이 꽤나 상세하게 기록되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자신의 시야가 닿는 공간까지 만이었다.
 우리들의 직접적인 시야가 닿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길의 형태로 추정되는 희미한 실루엣만을 비춘 채로 모두 어둠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런 세상 속에서 밝혀지지 않은 장소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위험요소였다.
 ‘아무래도… 좀 더 집중하는 편이 좋겠어.’
 잠시라도 한 눈을 팔았다가 다음번으로 희생되는 것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경계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사이 무리는 자연스럽게 박민혁을 중심으로 뭉쳐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히 풀려진 분위기로 미션 클리어를 위한 여정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끼이이이익-
 
 저택과 이어진 넓은 정원을 지나 낡아빠진 철문을 밀어젖히자 낡은 경첩의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려 퍼진다.
 그에 저절로 어깨가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배정받은 역할에 따라 일행의 가장 뒤편에서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챕터 2. 버려진 도시
 
 저택의 밖으로 이어진 길목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었다.
 적어도 사람의 발길은 닿은 적은 있는 듯 2명은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공간의 너비로 투박하게 닦여져 있는 길목.
 자갈이나 바위조각 따위들로 구성되어진 길목을 조심조심 지나 길을 내려온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도로와 맞닿아 이어진 낡은 도시의 모습도 말이다.
 마치 거제도나 사천 등의 낙후된 지방 도시를 연상시키는 도시의 전경은 근처에 있는 바다를 짐작하게 해주는 미세한 짠 내와 함께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긴… 도시네요!”
 “그르네? 어째 우리 나와바리랑 비슷한 느낌도 들고. 안 그르냐 강호야?”
 “그렇네. 꼭 목포 같은 분위기구만.”
 이곳에 오기 전까지 현직 육상선수였다는 기록 때문인지 선두조에 편성 되어 있던 김소윤의 말에 마찬가지로 선두조인 철구와 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도시라니… 그럼 혹시 다른 사람도 있는 걸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혹시 모르니 떠들지는 말도록 하죠.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뒤이어 도달한 박민혁이 이승희의 의문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일행 모두에게로 적절한 지시를 내려 경계심을 고취시킨다.
 그의 말에 곧장 동조하며 떠들어 대려던 것을 멈추고 입을 다무는 일행들.
 “…….”
 그 뒤를 따라 마지막으로 도시의 초입으로 접어든 나는 도시치고는 너무나도 조용한 전경이 전해오는 위화감에 신경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어느새 말라붙어버린 입술이 다시금 생기를 띠며 자연스레 생성된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정말로… 심상치 않네.’
 도시라면 당연히 들려와야 할 기본적인 소음조차 들려오지 않는 고요함에 잠긴 도시.
 출발하기 전 지정된 데로 선두와 중심 후미로 무리를 구분한 우리들은 박민혁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묵묵히 도시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
 
 “으윽! 여기 분위기 되게 음산하다.”
 “그러게… 기분 나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도시의 내부로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좀 더 무거운 암담함에 사로잡혀야 했다.
 외부에서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를 눈치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긴 했지만… 역시 도시의 전경이 사뭇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일부러 만든 거라면 정말로 분위기 하나만큼은 대 성공이로군.’
 어딘가 공포 게임에 나올 법한 도시의 전경을 그대로 빼박은 듯한 분위기를 한 도시 내부의 모습에 작은 감탄을 하며 나는 좀 더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은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그늘을 씌워 시야를 답답하게 만들어주는 건물들.
 지어진지 30년은 되는 듯 80년대 특유의 촌스러운 감성을 머금은 건물들은 대게 3~5층짜리 빌라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관리를 받지 않은지 오래된 듯 여기저기 금이 가거나 페인트가 벗겨져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 외의 주변 풍경도 결코 정상은 아니었다.
 본래 거리의 미관을 담당했을 가로수들은 죄다 시들거나 아예 부러져 있었으며, 신호등은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색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고 유리 부분이 깨어진 채 기동을 멈추어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로는 종이조각이나 여타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차량이 다니는 도로 위는 여기저기 차선을 침범한 차량들이 사고의 흔적을 증명하며 엉켜있었다.
 그중 어떤 차량은 아예 도로를 벗어나 인도 안쪽의 가게 내부까지 깊숙이 틀어박은 모습으로 멎어있기도 했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이전에 커다란 혼란이 있었음을 암시하게 만들어주는 심상치 않은 전경.
 저택을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도시의 전경은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군요.”
 도시의 을씨년스러운 공기에 모두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리더 역을 맡고 있는 박민혁이 나서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일행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지시.
 무언의 수긍과 함께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혁은 재차 긴장감을 고취시키는가 싶더니 드물게 선두의 진형을 향해 앞서 나가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약 1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좁혔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아마 사흘은커녕 하루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흘이나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무언가 방해요소 같은 것이 이 앞의 길목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아아, 드디어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는 건가.
 확실히… 이 이상은 경계심 이상의 무언가를 품지 않고서 가기엔 너무나도 위험하니까 말이다.
 “바, 방해 요소라니… 이 도시 안에 뭔가가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요?”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오는 소미. 그런 소미의 질문에 박민혁이 재차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판에 박힌 대답을 내뱉어가려던 참이었다.
 “으허억!!”
 갑자기 들려오는 철구의 비명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선두조 중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걸음을 옮겨가고 있던 그에게로 말이다.
 “으히이익!!”
 꼴사납게 앞으로 엎어진 자세 그대로 몸을 일으키려다가 이내 기겁하는 비명과 함께 다급히 뒤를 향해 튕겨나듯 몸을 물리는 철구.
 그가 다급히 몸을 물린 곳에는 한 구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팔 다리가 꺾여 있으며, 신체 곳곳이 짐승이 파먹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훼손되어져 있는 시체.
 단지 그만으로도 이미 마음 약한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졸도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는데, 더 소름끼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
 시체의 참혹함과는 무관하게 그곳으로부터 묻어나는 핏물이나 살점들의 흔적들이 너무나도 생기가 넘쳤던 것이다.
 마치 방금 전에 도축을 완료하고 꺼내진 고기처럼 미세한 온기마저 머금고 있는 듯한 시체.
 그 모순됨에 모두가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싸늘하게 굳어지며 피투성이가 된 채 발악하는 철구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애애애애애앵-
 
 돌연 들려오는 사이렌의 소리.
 설마… 또 새로운 지령인가? 라며 긴장감을 되새길 틈도 없이 우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커헉!!”
 철구의 근처에서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강호가 돌연 눈앞에서 균형을 잃으며 넘어지자마자 앞 유리와 범퍼가 다 작살나버린 트럭의 아래로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돌발 상황에 대처할 틈도 없이 우리는 끔찍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마주해야 했다.
 “끄아아아악-!!”
 하체부터 끌려들어가 상체만이 밖으로 나와 있던 강호가 끔찍한 고통의 비명을 터뜨리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꺄아아악!!”
 누군가 쥐어짜내기로 한 것처럼 다량의 핏물이 트럭 아래로부터 주르륵 번지며 바깥을 향해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악! 사, 살려… 컥! 꺼헉!!”
 차마 살려달라는 말조차 끝마치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신음하는 강호.
 “가, 강호야!!”
 그에 동료인 철구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나서며 그의 손을 잡으며 힘껏 끌어당겨 보았지만……,
 
 우두두둑-
 “꺄아아아아악-!!
 
 더 큰 공포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살점과 뼈가 뜯겨져 나가는 거북한 소리와 함께 하체를 잃은 몸통만이 딸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체 중앙부는 이미 무언가에 의해 뜯어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찢겨지고 헤집어진 상태로 말이다.
 그 끔찍한 광경에 소미는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으며, 김소윤과 이승희는 파랗게 질린 채로 후들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들 중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지혜였는데 기본적으로 ‘잘나가는 애’ 같은 이미지대로 독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려고 들고 있긴 했지만 그녀 역시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건데 결코 괜찮은 상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도 사실 남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흐히이이익-!!”
 이제는 엄연히 시체로 변해버린 강호의 상체를 끌어낸 철구는 물론이거니와……,
 “……이, 이건 대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냉정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능숙하게 풀어내던 박민혁까지도 말이다.
 ‘위험하다!’
 말 그대로 위험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시체를 발견하자마자 또 벌써 한 명의 희생자가 늘어났으며, 거기에 모두들 패닉에 잠겨버린 것이다.
 “제기랄!”
 저절로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욕설을 뱉어내며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대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다 죽는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은 다음 순간 시야에 비추어진 광경을 통해 확실한 사실로써 못 박아졌다.
 끽, 끼기긱…
 크스스스…
 저 멀리서부터 기괴한 소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일단의 무리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져 있던 도시의 곳곳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어떤 존재’ 들로 인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족 보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긴 했지만 결코 인간이 될 수 있는 기이한 모양새의 존재들.
 신체 구조도, 살점도, 관절도 모두 엉망진창으로 비틀어진 채 비척대며 걸어오는 존재들은 마치 좀비와도 같아 보였다.
 “맙소사….”
 멈춰있는 사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들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존재’ 들의 확연한 모습에 나는 결국 그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죽는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결코 좀비 따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죽어버린 시체가 움직일 뿐인 좀비와는 차원이 다른 기괴함을 ‘존재’ 들은 지니고 있었다.
 “히익! 괴, 괴물이다!!”
 말 그대로 괴물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들이 모두를 포위한 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등장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고 절망에 잠길 수밖에는 없도록 만들어주는 끔찍한 존재들.
 그 안에서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혀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나는 일부러 입술을 세게 깨물어 정신을 차리며 크게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모두 뛰어요!!”
 이곳에서 깨어난 뒤로 벌써 두 번째로 내뱉어가는 대사.
 그와 동시에 당황, 놀람, 의심, 공포 등등 여러 가지의 감정을 담은 시선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본능적으로 ‘괴물’ 들의 밀집도가 적은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일단 모두 뛰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인가. 왠지 모르게 분한 기색을 머금은 박민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모두를 선동한다.
 “히익!”
 “꺄아아!!”
 그의 목소리가 방아쇠가 된 것처럼 굳어 있던 이들이 모두 저마다의 비명을 터뜨리며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은 내가 먼저 나아가기 시작한 교차로 왼쪽의 길목.
 
 크스스스…
 쿠헤에에에…
 
 그런 우리들을 추격이라도 하듯 한층 더 선명해진 울음소리와 함께 비척대며 좁혀드는 존재들.
 “히익! 아, 안 돼에-!!”
 일행 중에 가장 늦게 움직인 이는 의외로 철구였다.
 시체와 포옹을 한 것도 모자라 눈앞에서 동료의 참혹한 죽음을 맞이함으로 인해 깊은 공포에 사로잡혀 모두의 속도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발아래로는 어느새 트럭 아래에서 기어 나온 끔찍한 존재들 중 하나가 접근해 있었다.
 머리와 몸의 방향이 역전된 채로 뒤틀려진 채로 신체비율보다 두 배는 길쭉하고 가느다란 팔을 쭈욱 뻗어 철구를 노려오는 존재.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그것에게서 한 시라도 빨리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눈앞에서 시체가 되어버린 동료에 대한 충격이 그만큼이나 컸던 것일까.
 철구는 꼴사나운 비명만을 질러댈 뿐 서서히 다가오는 괴물의 손길을 피하지 못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그 역시도 처참하게 죽어간 강호의 꼴을 피해가지 못할 터.
 “아, 안 돼….”
 철구는 어느새 바로 발아래까지 도달한 괴물의 날카로운 손아귀를 보며 주춤대다가 결국 발이 꼬여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젠장! 저게 뭐하는 거야!!’
 먼저 도주로를 개척하고서 힐끔 고개를 돌려 뒤쪽을 주시하던 나는 꼴사나운 철구의 모습에 한숨과 함께 이를 갈았다.
 딱히 생존에 대한 확신이라든가 상황적인 여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인간들을 외면하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상황으로 보건대 아직도 20킬로가 넘게 남아있는 목적지까지의 여정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생존해있는 편이 유리할 것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동에 방해가 되겠지만 적당한 숫자의 인구는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늘려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는 철구의 추태에 대해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현재까지는 이 파티의 실질적인 무력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조폭에 그 사실을 숨기는 것 같지도 않은 두 명의 덩치. 그 중에서 한 명이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이상 남아있는 것은 그밖에는 없었다.
 한데 그마저도 허무하게 죽어버린다면?
 이 파티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사되어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의지는 그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니까 말이다.
 때문에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는 그가 살아있는 편이 좋았다. 공포스럽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현 상황을 지나서 다음의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를 위한 상징이 필요했다.
 만일 그가 여기서 죽어버리게 되면 나머지 인원이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곧장 절망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일행 중 가장 신체가 튼튼하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버렸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일반론적인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제기랄!”
 결국 욕설과 함께 몸을 돌려세운 나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일행들을 향해 외치며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저 앞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요!!”
 “예?”
 “아, 알겠어요!”
 나의 바로 뒤편으로 따라붙던 김소윤과 이승희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런 그녀들에게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나는 그 뒤로 바싹 따라붙고 있는 박민혁까지 스쳐가며 사건의 진원지를 향해 내달렸다.
 공포에 절어버린 철구는 물론 실신해버린 소미 탓에 움직임이 더뎌지고 있는 지혜까지 남겨져 있는 장소.
 “으아아아!!”
 언제 또 이래봤냐 싶을 정도로 있는 힘껏 전력질주를 한 나는 날카로운 손톱에 붙잡혀 찢겨지기 직전의 철구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뒤로 당겨냈다.
 가가각-
 종이 한창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빈 바닥만을 긁어내는 손톱. 그와 동시에 나는 일부러 철구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신 차려요!!”
 “히익!?”
 “정신 차리라고요. 아직 살 수 있으니까. 정신 차려요!!”
 “엉? 으…, 그, 그래! 저, 정신!!”
 횡설수설하면서도 몸에 힘이 돌아왔는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철구. 그것을 확인한 나는 기절한 소미를 힘겹게 부축한 채 낑낑대며 움직이고 있는 지혜를 향해 다가가 말했다.
 “그대로는 늦어! 그러니까… 나한테 넘기도록 해!!”
 “뭣? 그게 무슨…!!”
 “지금 따질 시간 같은 거 없어!! 빨리 넘기라고!!”
 “…크흣!”
 윽박지르는 말에 습관적인 반항심을 표출하는 지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바보라는 것은 아니었다.
 “허튼 짓 하기만 해봐!!”
 그녀 역시도 지금 이 상태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좋아. 이대로….’
 툴툴대는 지혜로부터 소미를 받아든 나는 그녀를 아예 짐짝처럼 어깨 위로 들쳐 업은 채로 재차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저 집으로 뛰어요!!”
 “그, 그려!!”
 “…….”
 사투리와 함께 여전히 질린 얼굴로 방향을 잡아가는 철구와 대답 대신 입술을 질끈 깨무는 것으로 의지를 표출하는 지혜.
 그 두 사람과 함께 나는 버려진 집까지 향하는 최단 경로를 찾아 내달렸다.
 “빨리! 어서 빨리 와요!!”
 “빨리요!!”
 이미 열려져 있던 철문을 지나 빼꼼히 고개만을 내민 채로 재촉의 말을 던져대는 김소윤과 이승희. 그리고… 그 뒤편에 서서 조금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은 표정을 하고 있는 박민혁의 모습까지 확인한 나는 연이은 전력질주로 인해 슬슬 풀려가기 시작한 허벅지 근육에 필사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으며 외쳤다.
 “곧바로 문 잠글 준비해요!!”
 철구와 지혜들을 데려오느라 나타난 존재들의 포위망은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좁혀져 있는 상태.
 버려져 있는 건물의 대문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요즘 세상에는 드물게도 견고한 철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안쪽을 향해 열리는 여닫이 형태의 문.
 그런 구조의 문이라면 일단 문을 닫아 걸기만 하면 가구나 도구 등을 이용해서 간이 바리케이트를 칠 수도 있었다.
 ‘좀비 생존 게임의 지식이 여기서 도움이 되다니 아이러니 하구만!’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곧장 여성부로 달려가서 게임의 이점에 대해 토로 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는 아슬아슬하게 좁혀드는 괴물들의 포위망을 피해 반쯤 열려져 있던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따라 곧장 따라 들어오는 철구와 지혜.
 그렇게 모두가 들어오자마자 따로 경고할 것도 없이 소윤과 승희는 힘껏 문을 닫은 뒤 잠금장치까지 닫아 걸었다.
 쿠스스스스…
 크르륵, 케헥…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울음소리.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던 것이다.
 퉁! 투둥! 퉁퉁퉁퉁!!
 “꺄아아악!!”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거는 것과 동시에 시끄럽게 철문을 울려대는 충격음들.
 그에 놀란 소윤과 승희가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소미를 내려놓은 뒤 1층 계단의 바로 앞쪽으로 본디 바리케이트를 치기 위해 늘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옷장이나 냉장고 따위의 잔해를 끌어와 철문의 앞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나도 도울게!!”
 그런 나를 따라 아예 팔을 걷어붙이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철구.
 덕분에 계단 앞의 통로 형성은 물론 정문의 바리케이트까지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우리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두들겨지고 있는 철문으로부터 천천히 물러났다.
 “…….”
 “…….”
 시끄러운 소음과는 달리 묘한 침묵에 사로잡히고 마는 일행들. 그런 모두의 시선은 어째서인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듯한 시선.
 ‘…곤란하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렵지 않게 모두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던 나는 낮게 혀를 찼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 받는 건 질색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되고 만 것을.
 결국 한숨과 함께 수긍하고만 나는 곧장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은 위층으로 향하죠. 흔적으로 보건데 아마도 열려진 구간이 있을지도 몰라요. 만일 그런 곳에 있다면 일단 숨을 돌릴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그, 그려.”
 “그럴게요.”
 짤막한 답변과 함께 움직여가는 일행들.
 그런 와중에도 박민혁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겨진 표정으로 불만을 표출하긴 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대세를 거스르려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전 곧바로 3층까지 올라가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박민혁은 사람들을 지나쳐 쌩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버렸다.
 ‘…젠장, 영 껄적지근 하구만.’
 분명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터인데도 지울 수 없는 이 찜찜함은 뭘까.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신체만은 빠르게 움직여 바리케이트의 틈으로 의자 조각 따위를 끼워 넣어 견고함을 보충한 나는 기절한 소미를 끌어안고 있는 지혜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순순히 소미를 건네어주는 지혜.
 아까 전과는 달리 공주님 안기의 자세로 소미를 곱게 안아든 나는 지혜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
 
 “…….”
 “…….”
 본디 어떤 이가 살고 있었을 원룸이었을 한 오피스텔의 방 안. 한 여름의 폭풍처럼 몰아친 재난을 피해 대피한 우리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런 일을 겪고 난 뒤니까.’
 법과 도덕이라는 테두리가 존재하는 현대의 삶을 살아가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오늘 겪은 일에 대해 무덤덤할 수 없을 것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잔혹하게 구겨지듯 죽어가고 정체불명의 괴물이 출몰하며 그로인해 또한 잔인하게 찢겨지며 먹혀버리고 마는 희생자.
 사실 아까 전에는 기절해버린 소미를 챙기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미쳐있지 않고서야 이런 일들을 겪고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응? 그럼 난 미쳐있는 건가?’
 다들 파랗게 질린 얼굴로 늘어져 있는 사이에서 나만큼은 놀랍도록 차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현실도피를 하고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버텨낼만한 것이다.
 초 인기 공포 게임을 신음 하나 없이 공략해나가는 나라고 해도 눈앞에서 진짜 사람이 죽어나자빠지는데 멀쩡할 리가 없건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현실 자체가 놀라는 것 외의 추가 데미지가 없는 것이다.
 ‘혹시 나 좀 소시오패스인가?’
 피와 살점은 물론 괴물까지 출몰한 상황에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 대해 그런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지만 난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흩어버렸다.
 아무렴 어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싸늘하네.’
 벌써 10여 분째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 거실 겸 안방의 전경을 훑으며 나는 작게 한숨을 머금다가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창가로 다가갔다.
 ‘아직 있군.’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량으로 출몰했던 괴물들은 아직까지도 우리들이 숨어든 건물의 아래쪽에 밀집되어져 있었다.
 다행히 걱정한 것처럼 완력이 강하지는 않은지 닫아 걸은 문과 임시로 생성한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놈들에게 고립되어져 있다는 점에서 결코 낙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
 ‘더군다나 우리는 계속 여기에 머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지금 이순간도 붉은 글씨가 내린 제한 시간은 착실히 줄어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특이하군.’
 창가에 비스듬히 선채로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버릇처럼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길 때마다 하는 나만의 버릇과도 같은 행위.
 ‘좀비… 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아래에 있는 괴물들은 분명 좀비와 흡사한 분위기와 비쥬얼을 지니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또한 위험했다.
 우선 손톱이 날카로워 인간의 살점 따위는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었으며 단단한 이빨과 턱 힘은 척추 뼈도 끊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생긴 것 답지 않게 속도도 그다지 느린 편이 아니란 말이지.’
 온 몸의 관절이 다 뒤틀려있는 주제에 괴물들은 꽤 빠른 편이었다. 굳이 평하자면 아무 생각 없이 성인 어른이 걸음을 옮길 때만큼의 속도 정도랄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걸음보다는 빠르고 경보보다는 느린 속도였다.
 영화 새벽에 저주에 나오는 좀비들처럼 육상선수 포스를 뽐내며 뛰어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고전물의 좀비들보다는 훨씬 빠른 것이다.
 ‘신체조건은 인간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봐야겠군. 맨손으로 상대하는 것은 절대불가다.’
 공략왕BJ로서의 직업병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건물 아래에 바글바글한 괴물체들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우리들 역시도 저택에서 첫 희생양이 되었던 그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쥐어짜져서 죽고 말 것이었으며, 대책 없이 밖으로 나섰다가는 저 괴물들의 먹잇감 밖에는 안 될 테니까 말이다.
 ‘침착하자. 그리고… 생각해라.’
 게임을 할 때마다, 또한 그 안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하는 버릇이었다. 움직여가면서도 쉼 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 생각들을 간결화 한다.
 그런 식으로 최적의 답을 떠올려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나의 방식이 가장 빛을 발할 수도 있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정말로 목숨이 걸려있다는 점이겠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 한번이면 나뿐만 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두의 목숨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목숨이었으며 나아가서는 모두의 생존이었다.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충격을 떨쳐내지 못한 모습의 사람들. 그들의 일면을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별로 좋진 않군.’
 딱히 여성비하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완력이 중요한 이 시점에서 여성 인원은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들 중 두 사람은 아직 민증조차 받지 못한 미성년자 신분의 소녀들이 아니던가. 특히나 그 중에서도 소미의 경우는 심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짐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떤가? 사실 남자라고 해봤자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무력 인원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강호가 죽어버린 탓에 이제 남아있는 남자 인원은 박민혁과 철구.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3명뿐이었다.
 헌데 셋 중 가장 강력한 신체조건을 지니고 있을 철구는 넋이 나가있는 상태였으며 아까 전의 상황을 토대로 보건데 멘탈이 약한 타입이었다.
 반면,
 ‘저 녀석은….’
 박민혁은 솔직히 썩 나쁘지 않았다.
 완력이 강하다거나 특별한 특기를 지니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고능력이 좋은 편이었으며 약삭빠르다는 점에서 아마 생존에는 특화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믿기는 힘든 녀석이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동료 따위는 가볍게 배신해버릴 것 같은 면상이니까.
 ‘골치 아프네.’
 아마 이게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었다면 과감히 동료들을 버리고 따로 떨어져 나와 솔로 플레이에 돌입했을 테지만…….
 ‘……이건 현실이지.’
 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식으로 우리들이 이 장소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안에서 우리들은 현실이었다.
 물론 꿈 중에서는 현실과 다름없는 생생함이 느껴지는 자각몽이라는 현상이 있다고 들은 적도 있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일련의 사태는 결코 꿈이 아니었다.
 차라리 끔찍한 악몽 같은 거였으면 얼른 깨어나길 빌면서 끙끙대기라도 할 텐데…….
 ‘회피할 수 없이 명백한 현실이로구만.’
 증거를 대라면 역시 대답하기 힘들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믿고 신뢰하고 있는 나만의 감각.
 수없이 많은 게임들을 수월하게 공략해나가며 공략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게이머로서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진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만큼 여기에서는…….
 ‘우선은 화합인가?’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혼자 처참히 죽고 싶지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은 협력하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어떻게도 안 되겠군. 분위기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겠어.’
 여전히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는 일행들의 분위기에 나는 들키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일부러 시선의 중심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은! …안전한 것 같으니 좀 더 주변을 돌아보는 게 어떨까요? 혹여나 지금의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밖은 역시 위험한 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반문해오는 김소윤. 그녀는 아까 전의 일이 커다란 트라우마로 박혀들었는지 정신마저 오락가락한 것처럼 주눅 들어 있는 얼굴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까지 안전한 것을 보면 아마도 바깥의 녀석들은 문과 바리케이트를 부숴낼 완력은 없는 모양이니까요. 그리고 정 걱정되면 남아있어도 돼요. 딱히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그런가요.”
 막힘없이 내뱉어가는 나의 대답에 소윤은 금세 입을 다물고는 다시 고개를 무릎 사이로 처박았다. 저건 역시 남겠다는 뜻이겠지?
 “흐음….”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다들 시선을 피하는 걸로 봐서 나머지도 탐색 작업에 동행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무력감과 두려움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수그러들어있는 모두들.
 “아무래도 같이 갈 사람은 없어 보이네요.”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과였다. 우리가 조금 전 겪고 지나온 일들은 생각해보면 사실 벌써 회복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상식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나 쌩쌩한 내가 이상한 놈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명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굳게 닫혀있던 원룸 오피스텔의 대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섰다.
 끼이이이-
 유달리 낡아있는 경첩이 을씨년스러운 사운드로써 복도를 울린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그저 고요한 침묵의 울림 뿐. 그 기분 나쁜 공기를 삼키며 나는 복도 밖으로 나와 문을 다시금 닫아 걸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니까 좀 외롭긴 하네.”
 그런 쓸데없는 독백을 삼키며 나는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뭐라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현 상황으로 보건대 앞으로의 행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마도 내가 캐리를 해야 할 가능성이 컸다.
 “…하하.”
 이런 상황에서조차 게임에서의 용어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게임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정말로 그런 것을.
 메마른 웃음과 함께 텅 빈 복도를 한번 둘러본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고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보는 것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괴물들의 특성은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다. 그 외의 특성은 나중에 추가로 확인할 방법이 있겠지.’
 예를 들자면 시끄러운 소리를 울려서 그 반응도를 체크해본다던가 옥상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놈들의 내구도를 시험해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범람하며 머릿속을 휘돌다가 다시금 상념의 파도 속으로 다시 가라앉아갔지만 나는 그것을 딱히 잡으려들지 않고서 꼼꼼히 주변을 살폈다.
 괴물에 대해서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여러 가지 테스트해볼만한 방법들이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말이다.
 “…우선은 무기를 구해야겠지.”
 겉으로 보이는 외형과 강호를 대상으로 드러내 보였던 위험도만 보더라도 괴물들은 결코 인간이 맨손으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은 좀 더 견고하게 무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하늘을 날거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초능력이라도 생기지 않고서야 저 괴물들의 밭을 아무런 충돌 없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기왕이면 길이가 긴 무기가 좋겠지.”
 사실을 말하자면 좀비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것처럼 샷 건이나 기관총이라도 손에 쥐여졌으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현실에서 그런 주인공 보정 따위가 주어질 리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아무리 봐도 뉴욕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외국 대도시의 전경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지방 어딘가의 구석진 곳에 있을 것 같은 시골 소도시와도 같은 모습.
 경찰서도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이런 곳에서 기관총은커녕 권총이라도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오피스텔에 총 같은 걸 구할 수 있을 리는 없겠지. 그러니까… 이 경우에 가장 쓸 만한 무기는 야구배트나 골프채 정도인가?”
 사실 그런 것조차도 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지만… 그런 것으로라도 무장하지 않고서는 아예 이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을 테니까.
 ‘정 안되면 싱크대 배관이나 테이블 다리라도 뽑아야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이며 탐사에 집중했다. 이런 상황을 게임에 대입해서 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타나는 현상과 처해있는 상황만을 보자면 게임 속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시츄에이션과 상당히 흡사한 상태.
 ‘……그렇다는 것은 곧 게임에서의 대처법을 똑같이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뜻도 되겠지.’
 생각을 정리해가며 나는 현재의 상태를 좀비 도시에 고립된 생존자로서의 상황으로 상정했다.
 잊혀질만하면 등장하여 난립하는 좀비물 게임의 고정 시나리오처럼 주어지는 고립과 탈출. 그리고 생존의 시나리오.
 수없이 많은 종류의 좀비 게임들을 돌파해온 만큼 무엇보다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좀비 월드에서의 생존 강령들을 떠올리며 나는 신속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
 
 “…일단 이정도인가.”
 탐사에는 생각보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층부터 5층까지의 공간은 물론 열려져 있는 옥상 위까지도 꼼꼼히 뒤져봤지만 딱히 새로운 공간 따위는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견한 것이라고는 열려있는 집 두 군데와 그 안에서 찾아낸 골프채들뿐이었다.
 “그래도 이거면 적어도 남자 3명 정도는 무장할 수 있겠지.”
 아마도 우연이었겠지만… 4층의 구석방에서 발견한 골프 가방에는 딱 3개분의 골프채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14개나 되는 골프채들 중에 하필이면 딱 3개만이 남아있다니… 참으로 공교로운 우연이었다.
 “뭐, 어쨌든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계단을 내려와 동료들이 있는 2층의 방으로 향했다.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고요함에 잠겨있는 복도. 그 우울한 길목을 지나 방 문 앞에 선 나는 손에 들린 골프채들을 돌아보며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안이 지금 어떤 분위기가 되어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50여 분은 지났을 터. 그러니 조금은 말을 하기 편할 것이었다. 거진 1시간이나 시간이 지났으니만큼 공포감도 조금은 가라앉았을 테고 판단력도 돌아왔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만큼 이제부터의 행동은 중요했다.
 앞으로의 분위기를 어떻게 끌어가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생존율 역시도 판이하게 달라지게 될 테니까.
 “개인적으로 주목받는 건 질색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라도 나대지 않으면 이대로 고사할 것 같은 분위기니까 말이다.
 “후우….”
 재차 심호흡을 한 나는 무언가 사명감과도 같은 의지를 다지며 문고리로 손을 가져갔다.
 찰칵- 끼이이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열려지는 문.
 그 사이의 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간 나는 탐사의 결과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음?”
 일행은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거실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것이 공포심을 털어내고 살아남고자하는 변화라면야 내 입장에선 더없이 기꺼운 일이었지만 그런 것과는 달랐다.
 무언가 좀 더 싸늘하고 끈적한 분위기가 일행의 중심으로 가득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의 방향은 오롯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불길한데?’
 왠지 모르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저것보세요. 이런 상황에 저런 흉기가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박민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한다.
 명백한 선동의 뉘앙스가 담겨져 있는 말투.
 “……저, 정말인가요?”
 “정말로 권혁 씨는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어서 저흴 풀어주세요. 도, 돈이라면 빚이라도 내서 드릴 테니까… 제발, 제발 저희를 죽이지 마세요!!”
 불안한 얼굴로 물어오는 소미와 약간은 실성한 얼굴로 매달리듯 다가오며 애원해오는 김소윤과 이승희.
 철구와 지혜의 경우는 나서지 않은 채로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는 감정이 결코 호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아… 그런 건가.’
 그 모든 과정을 일순 만에 받아들이고 읽어낸 나는 한순간 모여 들었던 숨을 조용히 토해냈다. 그리고 무심한 눈을 들어 박민혁이 서있는 방향을 쳐다본다.
 선동의 말을 뱉어낸 이후 교묘하게 일행의 시선에서 벗어나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서있는 박민혁.
 그 모습은 일견 내부비리를 고발한 영웅 검사라도 된 것처럼 고고해보였지만 나는 그의 표정 속에서 명백한 악의를 읽어낼 수 있었다.
 타인을 깔아보는 종류의 오만한 인간이 품고 있을 법한 전형적인 경멸과 멸시의 시선.
 아무래도 중간 중간 나서서 한순간이나마 내가 일행의 중심이 되었던 상황이 그의 마음에는 영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필 빼도 박도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왜 분란의 소지를 만들어내는 건지에 대해서 따지자면 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어차피 지금은 통하지 않겠지.
 내가 탐사에 열중하는 50분 동안 저 녀석은 나를 모함하는 데에 집중했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녀석은 나의 행동거지와 대사 등을 꼬투리 잡아 이 모든 일의 흑막과 관련이 있는 것 정도로 이야기 했을 것이었다. 오로지 감과 촉에 의거해서 움직여간 나의 행동들이 타인의 입장에서는 관련자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골치 아프군.’
 지금부터 똘똘 뭉쳐서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마당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박민혁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해서 방 안에 있는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당히 귀찮은 상황에 처한 것 같긴 했지만…….
 ‘이 정도는 어차피 예상 범위 내의 일.’
 도주하던 도중 내게 비친 박민혁의 적의를 눈치 챈 순간부터 혹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생각해 두었었다.
 ‘……설마 진짜로 벌어질지는 몰랐지만 말이야.’
 한탄과 함께 자세를 바로 한 나는 한번 크게 호흡을 가다듬어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흐음….”
 일말의 당황도 머금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써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챕터 3. 살아남기 위해
 
 “일단은! 일단은… 진정하세요.”
 우선 힘 있는 말과 그냥 놔뒀다간 함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릴 것 같은 김소윤과 이승희를 가볍게 밀어낸다.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딱히 공격성을 담지 않은 손길에 어설프게 밀려나는 소윤과 승희.
 밀어냄과 동시에 호흡을 삼켜 텀을 주었기 때문일까. 저절로 나의 입술을 향해 집중되어지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나간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강이나 예상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 확실히 대답해드리죠. 저는 결코 흑막이라던가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그런 존재였다면 당장 한 순간의 선택만 빗나가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이런 곳에 제 발로 걸어들어 왔을까요?”
 “하, 하지만… 민혁 씨가 분명…….”
 “네. 의심 가는 구석이 있다고 말했겠죠? 저도 어떤 부분일지에 대해서는 짐작이 갑니다.”
 더듬더듬 질문을 해오는 김소윤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박민혁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전히 깔아보는 듯한 태도로 조롱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박민혁. 참 어지간히 골 때리는 놈이다 저 놈도. 이 상황에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갑 질 놀이라니…….
 한숨과 함께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마도 저의 빠른 행동이나 대사에서 의문을 품었겠죠? 저택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온 것도 저고, 아까 전의 참상에서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이 저였으니까요.”
 “…그, 그래요.”
 다행히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김소윤은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사를 맺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모습이었다.
 이승희는 그런 그녀의 옆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입술만을 달싹이는 모습이었다.
 ‘…갑갑하구만.’
 차라리 달변이기라도 하면 거기에 맞춰서 착착 답변을 내뱉어가겠는데 저렇게 우물거리고만 있으니까 숨이 턱턱 막혀오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무거운 침묵을 깨며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끼어 들어왔다.
 “확실히 의심이 되지. 게임BJ인가 뭔가 인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능숙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여기 있는 모두가 공포에 질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어. 근데 넌 매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움직여갔잖아? 마치 이런 일이 닥칠 것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야.”
 끼어 들어온 것은 지혜였다. 삐딱하게 몸을 돌려 외면의 태도를 취하고 있던 그녀가 참전해온 것이다.
 처음 저택에서 보았던 첫 만남 때부터 느꼈듯이 소위 잘나가는 여자애의 포스(?)와 깡이 물씬 풍겨나는 날카로운 말투.
 하지만 나는 그에 주눅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트이는 것을 느끼며 목구멍에서 맴돌고 있던 갇힌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지혜를 똑바로 쳐다본 뒤 모두를 한 번 크게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해줄 수 있겠군요. 말했듯이 저는 게임BJ이며 나름대로 공략왕이라는 별명까지 지니고 있는 잘나가는 게이머입니다.”
 아아, 내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리 토그리!!
 “……그게 어쨌다는 거지?”
 “재차 설명하자면, 저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르의 어떤 상황이라도 그것이 게임이라면 반드시 극복해내곤 하죠.”
 “마, 맞어. 공략 왕님 플레이 완전 쩌, 쩐다?”
 친구의 눈치를 보면서도 소심하게 나서며 옹호의 말을 더해주는 소미. 그에 살짝 목례하며 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그런 게임들을 하다 보니 저에게는 한 가지 능력이 생겼습니다.”
 “…능력?”
 “시시한 잡기라고 해도 좋고, 중2병의 잔재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일단 저 스스로는 직관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능력이죠.”
 “…직관력.”
 “수없이 많은 게임을 하다보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공략법이나 숨겨진 수수께끼들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법입니다. 결국 이룰 수 있는 현실도 사람의 상상도 어떠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때 아닌 게임 강론이 모두의 흥미를 끌었던 걸까.
 모두는 물론 심드렁하던 박민혁의 시선까지도 내게로 집중되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을 이었다.
 “때문에 저는 그 경험과 기억의 누적을 통해 어떤 새로운 게임을 접해도 그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직관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본적은 공식 자체를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아무튼, 재차 설명하자면 제 능력은 그런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그에 따른 다음의 행동을 빠르게 떠올려내는 것.”
 “그러니까… 그 능력을 이용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겁니까?”
 이번에 끼어 든 것은 박민혁이었다. 왠지 모르게 방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 직접 끼어들어 다시금 파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트롤이군!’
 가라앉은 눈으로 박민혁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트롤이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등에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게임에서는 일부러 팀에 해가 가는 행동을 해서 모두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X맨과도 같은 존재를 말함이었다.
 특히나 팀 게임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이 트롤이라는 존재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화를 새기고 끝내는 암에 걸리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바로 그 암이 여기에 있군!’
 재차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서며 반론을 토해내는 박민혁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도록 대놓고 띠꺼운 말투로써 말이다.
 “그렇습니다만?”
 명백히 그를 겨냥한 적의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뒤틀린 심산을 표하는 박민혁. 하지만 찰나의 순간 만에 본래의 표정을 되찾은 그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거 참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네요.”
 “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단 거죠?”
 “우선은 그 직관력인지 하는 능력부터가 믿을 수 없지만 사람마다 잘난 점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니 있다고 칩시다. 있다고 쳐요. 하지만 게임에서나 쓸 수 있는 그 사고력이 현실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심지어 당신은 시체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더군요. 우리들 중에서 직업상으로 가장 그런 것이 가까운 이가 있다면 여기 계신 철구 씨 일 텐데… 정작 철구 씨 역시도 아까 전에는 넋이 나가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으셨습니다. 한데! 당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여갔죠. 누구보다 빠르게 말입니다.”
 말을 이어가는 동시에 적절한 제스처를 섞어 주변인의 동조까지 부추기며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박민혁.
 ‘…뭔 정치인이냐!?’
 확실히 그는 달변이었으며, 또한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자, 말씀해보시죠. 정말로 당신은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서 멀쩡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시체와 괴물이 난무하는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게임을 통해 얻어낸 직관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인간의 반응은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확실히… 무덤덤한 편이긴 했지.”
 잠자코 듣고 있던 철구 역시도 박민혁의 말에 동조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의 지지에 용기라도 얻을 걸까.
 박민혁은 나를 향해 척 하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결정타를 날리듯 입을 열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결코 게임BJ 같은 게 아닙니다. 평범한 게이머 따위가 시체를 보고도 멀쩡하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을 이어가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박민혁.
 마치 다 잡은 먹이라는 듯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이 비열함을 잔뜩 드러낸 얼굴로 나를 깔아보며 박민혁은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결정타를 가해왔다.
 “……그렇다면 결론은 정해져 있군요. 당신이 이미 피와 시체에 익숙한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던가 아니면 이 모든 일의 관련자던가 말이죠. 정확히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는 저도 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어느 쪽이라고 해도 동료로써 함께 있고 싶지는 않군요.”
 “…….”
 신랄하게 비판해오는 박민혁의 말에 나는 일순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나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게임 경험으로 인해서 뛰어난 직관력이 있다는 것도, 실제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에서의 일.
 아무리 게임에서 유능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로까지 가져와서 활약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장르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고어 장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멀쩡한 인간이라면 당장 눈앞에서 핏물만 조금 튀어도 기겁하게 될 텐데……, 온 몸의 관절이 꺾이고 구멍마다 피를 분출하며 심지어는 상하체가 절단되어 내장이 흩뿌려지는 그런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그럴 수는 없지.’
 때문에 나는 더더욱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반박의 말을 내뱉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마땅한 논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로써도 본인의 일만 아니었다면 백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박민혁의 논리에선 흠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입을 닫고서 잠자코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아무런 연고도 정보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공포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과는 별개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초능력을 지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라도 아닌 이상 이런 곳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어떻게든 남은 생존자의 무리 속에 잔류해야만 하는 것이다.
 “…….”
 싸늘하게 가라앉은 의심의 눈초리들만큼이나 무겁게 자리한 침묵 속에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이내 신음과도 같은 숨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방금의 설전으로 인해 분위기는 완전히 박민혁의 쪽으로 돌아선 상태. 그를 뒤집을만한 논리가 내게 없는 이상 더 설득하려 해봤자 무소용이었다.
 때문에 나는 결국 마지막 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어? 배 째겠다는데.’
 말을 하기에 앞선 의도적 시간 끌기에 한껏 집중되어진 시선을 만끽(?)하며 나는 어느새 말라붙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리고 이내… 위축되고 있던 분위기마저 털어내듯 어깨를 활짝 펴며 말하는 것이다.
 “마땅한 변명의 말이 떠오르질 않네요. 그 점은 저도 사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는 희생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려 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장고 끝에 과감하게 내뱉은 한 수는 정면 돌파였다.
 논리를 내세울 것이 없으니 무 논리의 진정성만이라도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제가 할 말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입을 다물고 의식적으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나머지는 모두에게 판단을 맡기고 그것을 따르겠다는 암묵적인 제스처.
 “…….”
 “…….”
 나의 이야기가 끝난 뒤로 방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만큼이나 모두의 머릿속도 복잡해지고 있다는 뜻.
 하지만 나는 금세 푸념 섞인 한탄을 머금고 말았다.
 ‘…끝이군.’
 애초부터 나를 적대하기로 작정한 박민혁과 그의 논리에 완벽하게 넘어가버린 김소윤, 이승희 두 사람의 반응이야 이미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나머지의 반응조차 이토록이나 냉담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철구 아저씨라도 데려가고 싶었는데…….’
 비록 멘탈은 약한 편인 것 같았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닌 이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철구일 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철구의 경우는 친구의 죽음에 혼이 나가있던 것을 내가 직접 달려가서 구해준 전력도 있었다.
 이른바 생명의 은인이라는 뜻.
 때문에 다른 이는 몰라도 그만큼은 내 쪽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하기도 했었는데… 역시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예 등을 돌리고 서있는 걸 보면 양심은 있는 모양이네.’
 박민혁의 논리에 완벽하게 설득된 듯 등을 돌리고 서있으면서도 면목이 없다는 듯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 철구의 모습에 위안 아닌 위안을 느끼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분위기가 되돌릴 건덕지도 없이 완벽하게 넘어갔다는 것쯤은 철구처럼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서 노려보고 있는 지혜의 매서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이 쯤 되면 체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조차도 예상 범위의 안에는 있다는 점인가?’
 도주 도중 박민혁의 눈초리로부터 불온한 분위기를 읽어낸 순간부터 나 자신이 의심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최악의 경우 어쩌면 홀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해두었었다.
 사람은 언제나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는 항상 최선을 떠올림과 동시에 최악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하지 않는 편이었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던가?
 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 경우는 아무리 준비가 철저하다고 해도 떨리지만 말이지.’
 아무리 강심장인 나라고 해도 이런 영문도 모를 세상에서 홀로 괴물들이 바글대는 밖으로 쫓겨난다고 생각하면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다면 최소한 시선을 회피하진 말아야겠지.
 “아무래도 결론은 난 모양이네요.”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싸늘하고 따갑게 쏘아지는 시선들에 완벽하게 기대를 내려놓은 나는 체념의 말과 함께 가져온 골프채들 중 2개를 내려놓았다.
 이미 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한들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다.
 계획하고 준비한데로 이제부터는 정말로 혼자만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아련하게 쳐다보는 소미의 눈망울에서 그녀만큼은 나를 믿고 싶어 한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미 결판이 나버린 게임에서 더 이상 쓸데없이 시간 끌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는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여기 이 골프채들은 제가 수색해서 발견한 무기입니다. 저도 무기는 필요하니 한 자루는 제가 가져갈게요.”
 “응? 자, 잠깐만 권혁 씨?”
 더 말을 섞을 틈도 없이 신속하게 움직여가는 나의 반응속도에 당황이라도 한 걸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깔아보던 박민혁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그를 싸그리 무시해버린 채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이곳을 벗어나 목표지점까지 향하려면 아무래도 무기가 필요할 겁니다. 가능하면 많이요. 우선은 이 골프채들을 사용하고 추가적으로 더 수색을 하면 무기로 쓸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자면… 테이블의 다리라던가 부엌 싱크대 아래의 배수관 같은 거요.”
 ……그 외에도 굴러다니는 식칼과 기다란 몽둥이 같은 걸 합치면 조잡한 창 같은 것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뒷말을 덧붙이며 나는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럼, 모두 건투를 빕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뒤로 가져가 닫아 걸었던 문을 다시 열어젖혔다.
 끼이이이-
 역시나 을씨년스러운 소음과 함께 존재감을 발하는 경첩.
 “잠깐만, 권혁 씨! 일단은 진정하시고…….”
 “오, 오빠 진짜로 가는 거예요? 그냥 같이 있으면…….”
 “…그, 그려! 기왕이면 같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원래 떠나가면 잡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 걸까.
 막상 내가 강경하게 반응하며 떠나려하자 박민혁과 소미. 그리고 철구까지 나서며 만류의 말을 걸어왔다.
 김소윤과 이승희 역시도 방금 전보다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으며 오직 지혜만이 일관성을 유지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모든 반응들에 일절 신경을 주지 않고서 열려진 문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모두를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는 낭패한 표정의 박민혁을 한번 힐끔 바라봐준 뒤에 이내 사뭇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여는 것이다.
 혼자 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준비하고 있던 회심의 대사였다.
 “이제부터는 생존게임입니다. 만약 살아남고 싶다면… 절대로 저 사람을 믿지 마세요.”
 명백하게 박민혁을 가리키며 말하는 지적.
 어차피 떠나려는 마당에 굳이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난 성격이 그닥 착하지 못해서 당한 건 꼭 갚아줘야 하거든!’
 의심자로 내정된 사람이 떠나는 마당에 이렇게 한마디 지르고 간다고 해서 뭔가 큰 영향이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뒷일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 박민혁에게 한 방 먹여줬다는 사실이면 충분한 것이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저런 식으로 말이다. 왈칵 하고 일그러지는 박민혁의 표정에 나는 썩소를 지어보이는 것과 함께 이쪽을 쏘아보고 있는 지혜를 한번 지그시 바라봐주었다.
 사실 방금 전의 대사는 박민혁의 기분을 헤집어 놓기 위한 술책이면서 동시에 지혜에게로 전하는 경고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나를 적대하고 있는 갓 20살 여자애한테 남은 일행의 미래를 맡기려는 모양새가 이상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아 있는 일행 안에서 박민혁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서 유일하게 주관을 가진 존재는 그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미 역시도 굳이 따지자면 나를 지지하는 층에 가까웠지만 그녀는 아예 주관 자체가 없는 백지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나는 지혜에게로 암묵적 의뢰를 건 것이다.
 아무리 나를 외면한 이들이라고 해도 일단 같은 장소에서 깨어난 똑같은 사람이니만큼 그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럼 모두 살아남기를!!”
 그 말과 함께 나는 곧장 문 밖으로 완전히 물러나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기왕에 이리 되어버렸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 건물을 벗어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탈출 경로를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길 시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까 전 탐색을 했을 때부터 탈출 경로 따위는 이미 머릿속으로 선연히 그려두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나의 방식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떠나는 마당까지 그런 미련을 머금어보며 나는 곧장 3층으로 향했다. 3층 집에 있던 우퍼 스피커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녀석들은 분명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지.’
 탐색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겸사겸사 실험을 해본 바에 의하면 바깥에 우글거리는 괴물들은 소리에 민감하며 시각은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직접 냄비 따위를 던져본다거나 줄에 매단 숟가락을 코앞에 가져가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확실한(?) 실험을 거친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몸이 약한 편이다.’
 기괴한 외형만큼이나 몸의 내구도 역시 단단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점에서 괴물들은 좀비와 별다를 바 없는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옥상에서 집어던진 TV에 머리를 얻어맞은 괴물 한 마리가 그대로 머리통이 으깨지며 행동을 멈추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머리는 약한 편이라는 뜻.’
 그렇게 얻어낸 정보들을 다시 복기하며 나는 어느새 골프채를 찾아냈던 3층 방에 도달했다.
 그대로 안쪽까지 달려 들어간 나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우퍼 스피커를 바깥을 향해 보도록 한 뒤 바닥에 흩어져 있던 CD케이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메탈리카Metallica]
 
 “훌륭하군.”
 메탈리카는 헤비메탈 계의 레전드와도 같은 그룹으로써 락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밴드였다.
 나 역시도 소통 없이 집중해야 하는 종류의 게임을 할 때에는 BGM대신으로 항상 쓸 정도로 즐겨듣는 밴드.
 ‘취미 참 좋네.’
 예상외의 장소에서 취미가 맞아 들어가는 상황의 희열을 느끼며 나는 곧바로 CD를 꺼내어 오디오의 내부로 밀어 넣었다.
 지이잉- 하는 소음과 함께 부드럽게 밀려들어가는 CD.
 그와 동시에 액정 화면의 위로 track 1이라는 영문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오디오의 사운드를 최대로 돌려놓은 뒤 방을 떠났다.
 
 구와아앙-! 쟌쟌쟈아안-!!
 
 우퍼 스피커의 영향을 받아 폭발할 것처럼 커다랗게 메탈 사운드.
 
 끼끽, 끼기긱-!!
 크샷, 크스스스-!!
 
 커다란 사운드에 반응한 괴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끔찍한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그와 동시에 더욱더 문 쪽을 향해 가깝게 몰려드는 인원들.
 그것은 일견 건물에 갇혀 있는 이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실험을 통해 놈들의 내구도가 약함은 물론 운동신경 역시도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탈출 계획을 짰었다.
 소리에 민감한 괴물들이 우퍼 스피커의 커다란 사운드에 취해 시선이 빼앗기고 숨어있던 녀석들까지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옥상에 있는 화재 대비용 탈출 와이어를 이용해 모두 안전하게 반대편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물론 그냥 소리만 사용해서는 오히려 앞도 뒤도 없는 완전 포위를 당할 수 있으니 꼼수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일행 중 발이 빠르고 체력이 뛰어난 이가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아예 문을 열어서 놈들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 사이에 3층에 대기하고 있던 이는 오디오를 틀고 옥상에 있던 이들은 안전한 타이밍을 찾아 차례로 탈출을 감행한다.
 괴물들의 속도와 순발력이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고안한 일종의 기동전이었다.
 거기에다가 소소한 함정들을 몇 개 준비해서 괴물들의 이동속도를 더 저하시키기만 한다면 문을 연 사람도 비교적 안전하게 후퇴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되어준다면 바깥에 있던 괴물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차게 되고 상대적으로 밖은 한산해진다. 그러는 동안 어그로 역을 맡은 사람은 최대한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괴물들을 옥상까지 인도한 다음에 옥상 문을 닫아 걸어 괴물들을 고립시킨다.
 그렇게… 괴물들이 옥상 문 앞에 나열되어지는 동안 일행들은 안전하게 지면에 착지할 수 있을 것이며 곧바로 비어버린 거리를 타고서 달아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긴 해도 지금의 상황에서 써먹기 좋은 효과적인 탈출 방법.
 일행으로부터 외면을 받은 시점부터 이 방법은 사실상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반쪽이나마 선보이는 만큼 참고는 될 테니까.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모두를 죽일 셈이여!?”
 뒤늦게 따라온 박민혁과 철구가 오디오 소리에 기겁하며 따져들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서 다리를 놀려 옥상으로 향했다.
 터엉!
 휘이이이-
 옥상 문을 박차고 뛰어 들자마자 휘몰아쳐오는 신선한 바람을 느끼며 나는 곧장 와이어와 연결된 안전벨트를 허리로 단단히 걸었다.
 그와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과연 오디오 소리 쪽으로 바글대고 움직여가는 괴물들이 보인다.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완벽한 유인책까지는 펼치지 않은 탓에 이제 내려가려 하는 아래쪽 길목으로도 몇몇의 괴물들이 움직여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탈출 와이어를 가동시키며 아래로 조용히 몸을 떨어뜨렸다.
 밑을 서성이는 괴물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했듯 놈들은 시각에 있어서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었다.
 제대로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갈 수만 있다면 놈들의 바로 옆을 지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
 물론 필연적으로 생기는 발걸음 소리라던가 와이어가 움직이는 소음 정도는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박민혁과 철구가 오디오를 꺼버리지 않은 탓에 지상으로 도달해 안전범위까지 달아날 수 있을만한 시간은 충분했다.
 ‘설마 유격 훈련에서의 경험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자동으로 줄을 아래로 내리는 와이어의 움직임에 그저 몸을 맡기지 않고서 능숙하게 벽을 딛고 반동을 쳐 아래로 향하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뭐, 뭐야 이건!!”
 “설마 참말로 혼자 내려간 거여!?”
  뒤늦게 옥상으로 올라와 와이어를 발견했는지 난간으로 달라붙은 박민혁과 철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씨익!)”
 일순간 마주치는 시선.
 당황과 혼란. 그리고 낭패감까지 골고루 뒤섞인 표정으로 난간을 잡은 채 아래를 쳐다보는 박민혁의 시선에 나는 명백히 도발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윽!”
 결국 분기를 숨기지 못하고 난간을 쥔 채 표정을 왈칵 일그러뜨리고 마는 박민혁.
 하지만 따로 손을 쓸 방법도 없이 그저 지켜볼 수밖에는 없는 무력한 상황에 박민혁은 그저 난간이 부서져라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터업-
 그 사이에 무사히 바닥에 안착한 나는 신속하게 허리의 벨트를 풀어 젖힌 뒤 골프채를 들어 올려 주변을 경계했다.
 끼기깃…
 크사사사…
 때 마침 거북한 울음소리를 내며 근처를 지나쳐가는 괴물들.
 “…….”
 하지만 역시 놈들은 소리를 죽이고 멈추어 있는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빵빵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메탈리카의 폭발적인 사운드가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주고 있는 것이다.
 ‘좋아. 여기까지는 순조롭군.’
 생각지 못한 변수나 방해가 개입하면 어쩌나 했는데 신속하게 움직인 탓에 적어도 탈출까지는 훌륭하게 성공한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일은 옥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계획했던 방향대로 차분히 움직여가는 것뿐.
 그 첫 번째 목적지는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장소는 아니었다. 본래 우리들이 있던 건물의 왼쪽 도로를 따라 약 20미터 정도만 나아가면 도달할 수 있는 모텔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힐러리 모텔이라는 왠지 소송을 당할 것만 같은 이름의 낡은 3층짜리 모텔 건물.
 내가 이곳을 최종 목표지점까지 향하는 첫 번째의 경로로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잘만 뒤져보면 쓸 만한 무기나 도구 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이 모텔 건물의 근방으로는 불과 1미터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정도의 좁은 폭만 둔 채로 이름만 다른 비슷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즉, 경로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옥상과 옥상을 통한 이동만 해도 괴물과의 조우 없이 최소한 30미터 정도는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건물 안에 괴물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움직여가는 이상 설령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회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후욱… 후욱….”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저도 모르게 거칠어져가는 숨결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인 채로 최대한 신속하게 모텔 건물로 향했다.
 끼긱, 끼이이…
 크스스스…
 지나는 와중에 곳곳에서 비틀대는 괴물들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역시나 놈들은 바로 근처를 지나쳐가는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
 
 “…후우.”
 소리를 죽여 이동한 탓에 무사히 첫 번째 포인트까지 무사히 당도할 수 있었던 나는 문이 닫혀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곧장 모텔의 내부로 잠입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신들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연인들의 쉼터가 되어주던 장소이니만큼 돌입과 동시에 외부와의 시야가 차단되며 어둑어둑한 전경이 나를 맞이해준다.
 “입구가 이래서야 손님 받긴 글렀군.”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진 시간을 증명하듯 회색빛깔로 덮여진 먼지 카펫의 위로 신발자국의 문양을 새겨놓으며 나는 시덥잖은 농담을 머금었다.
 뭐, 그만큼 살만해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시간낭비를 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돌입하자마자 주변을 살피고 약한 소리를 내서 최소한 근방에 괴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카운터 문을 열고서 들어갔다.
 괴물이 나타나던 당시의 혼란을 증명해주듯 여기저기 어질러진 채로 방치되어져 있는 카운터 방의 내부.
 그곳에는 이불이라던가, 냉장고, 컴퓨터 등등 여러 가지 생활 용품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곧장 열쇠함으로 향했다.
 돌입과 동시에 옥상으로 향하지 않고서 굳이 카운터 방까지 들어온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적어도 이 모텔 안에서는 프리패스라고도 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얻기 위해서.
 보통 모텔에는 각 방마다 열쇠가 있고 종류에 따라서 그것은 카드의 형태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곳이던 마스터키는 존재했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없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쩔렁쩔렁-
 “생각보다 더 구식인 곳이었네.”
 
 마스터키 대신에 한 아름이나 매달려있는 열쇠뭉치를 찾아낼 수 있었던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아래쪽 찬장을 열어 몇 가지 보급품들을 추가로 챙겼다.
 라이터라던가, 일회용품들로 구성된 화장품 및 치약세트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것들을 다 꺼내놓고 보자면 필연적으로 콘돔까지도 얻게 되겠지만 그런 것에 부끄러워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먹어버렸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보급품을 충원한 나는 이번에는 방의 한쪽 구석으로 연결된 화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겨우 한 사람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화장실. 비대도 장착되지 않은 낡은 양변기와 함께 한쪽 벽의 공간으로 차곡하게 세워진 청소도구들을 발견한 나는 망설임 없이 밀대를 집어 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빙고.”
 대강 이런 장소라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있다니… 오늘은 뭔가 좀 되는 날인가 보다.
 사실을 말하자면, 애초에 이런 암담한 상황에 처한 것부터가 상당히 안 된 날이었지만 말이다.
 “이것들이라면 좀 더 쓸 만한 무기를 만들 수 있겠어.”
 나는 밀대 걸레의 막대를 이용해서 떠나오기 전 일행들의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던 간이 창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창날이 되어줄 부분은 탐색도중 얻어둔 식칼들로 족하며 카운터 룸의 탐색을 통해 전기테이프는 물론 밀대 걸레의 막대까지 얻었으니 더 망설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무기라면 이미 골프채라는 가볍고 튼튼한 물건이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특히나 골프채는 어디까지나 둔기에 가까운 무기.
 완력적인 부분에서 그다지 자랑거리를 내세울 수 없는 내가 100퍼센트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내가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는 대상은 인간을 뛰어넘은 끔찍한 괴물들이니까 말이다.
 “이거라면 최소한 거리상의 이점은 얻을 수 있겠지.”
 밀대 두 개와 검은색 전기 테이프. 그리고 식칼 3자루까지 이용하여 신속하고 빠르게 조잡한 창을 만들어낸 나는 그것을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벽에 휘둘러보기도 하면서 테스트를 했다.
 “좋아. 튼튼하네.”
 전기테이프로 내구도를 향상시키고 이음매마다 추가로 테이핑을 해서 보강을 한 탓에 조잡한 외형과 달리 간이창은 어지간한 충격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이거라면 놈들의 머리통을 뚫는 정도로는 충분하겠어.”
 잠시 침묵. 이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뭔 생각을 하는 거냐, 나는.”
 날카롭게 식칼들로 구성된 창날의 예리함을 응시하며 괴물의 머리통을 호쾌하게 꿰뚫는 장면을 상상하던 나는 스스로가 아무렇지 않게 떠올려낸 끔찍한 상상력에 진저리를 치며 창날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분명 좀 더 냉정하고 잔혹해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차피 상대는 인간도 아닌 괴물들이지 않은가.
 죄책감이라든가 윤리의식 따위는 조금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후우… 좋아!”
 심호흡과 함께 다시금 각오를 다진 나는 간이창을 배낭끈에 묶어 등 뒤로 장착한 뒤 벽에 기대어두었던 골프채를 다시금 집어 들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내가 가진 무기들 중 괴물들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인 무기라면 단연코 간이창이겠지만 나는 골프채를 선택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계단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창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통밥을 굴려가며 다시 움직여갈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춘 나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올랐다.
 “……운이 좋네.”
 이런 곳이니만큼 괴물 한 마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계단을 모두 올라 옥상까지 향하는 동안 괴물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끼이이- 터엉-
 옥상 문을 열고 나아가자 예상대로 이미지를 지닌 휑한 공간이 보인다. 빨랫줄과 함께 몇몇 곳에는 이불들도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이곳은 손님이 다녀간 후의 빤 이불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말려왔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미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들은 아까 전 카운터 방안에서 대부분 습득한 상태.
 거기에다가 중거리 타격용 무기까지 얻었으니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럼 가볼까?”
 생각을 결정한 나는 곧장 옥상은 한쪽 난간 끄트머리에 올라섰다.
 옆 건물의 옥상과 불과 1미터 정도의 거리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은 난간.
 아무리 1미터라고 해도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를 발아래에 두고 있자니 뭔가 쫄아드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버릴 정도로 나는 한심한 인간은 아니었다.
 “후읍.”
 한번 심호흡을 한 뒤 곧장 몸을 던진 나는 짧은 비상을 거쳐 어렵지 않게 옆 건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난간을 잘못 밟아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넉넉하게 점프해서 아예 난간의 안쪽으로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단 쉽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도 어려울까.
 첫 번째의 점프로써 대강의 요령과 함께 용기까지 얻어낸 나는 그 뒤를 이어 족히 5개는 되는 건물을 더 이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처음의 모텔과 연결되어 있던 건물과 밀접한 끄트머리의 건물까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수월하게 이동한 것이다.
 슬쩍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자 비척대며 걷고 있는 괴물의 무리들이 보인다.
 아마도 옥상이 아닌 아래쪽의 경로를 선택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내가 지나치고 있어야만 했을 장소.
 ‘저 괴물들의 틈바귀를 지나쳐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물론 시각 체계가 엉망인 녀석들이니만큼 기도비닉의 유지를 잘만 한다면 놈들의 사이로도 어렵지 않게 지나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목숨을 걸고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 어디 중간 점검을 해볼까?”
 계획한 첫 번째 포인트까지의 일정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자신에게 만족하며 나는 곧장 배낭을 열어 스마트패드를 꺼내어 들었다.
 
 [남은 거리: 29. 8km]
 [남은 시간: 69시간 58분 31초]
 
 “……나쁘진 않네.”
 맵의 기능에 내장된 추가 기능을 통해 목표지점까지 남은 거리와 시간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돌리듯 숨을 삼키며 난간으로 다가가 주변의 전경을 크게 훑었다.
 다음의 경로를 찾기 위한 일종의 탐색 작업.
 기껏해야 3층짜리 건물의 위라 모든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뷰(view) 같은 것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이 도시의 건물들은 대개가 2~3층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저층 건물들이었기에 어렴풋이 경로를 찾는 정도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어디보자… 괴물들이 많이 몰려있지 않으면서 움직이기 편하고 퇴로까지 있는 장소…….”
 여러 가지 생존 방법들에 의거해 꼼꼼히 주변을 둘러본 나는 10여 분이 지나서야 다음의 행선지와 경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저기가 좋겠군.”
 내가 다음의 경로로 선택한 장소는 시골집처럼 생긴 단층 및 2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 구간이었다.
 길목이 좁은데다가 여기저기 얽혀있기 때문에 괴물과 마주치면 피하기 힘든 데다가 기껏 만들어 놓은 창 역시도 쓰기 힘든 장소였지만, 회피라는 타이틀만 놓고 보자면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이다.
 기본적인 이동속도가 느린데다가 딱히 점프와도 같은 운동 능력을 지니지 않은 괴물들을 상대로 복잡하게 얽힌 주택가는 퇴로를 선정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앞으로 포위가 된다고 하더라도 담벼락을 넘어서 이동을 한다든가 하는 식의 경로 개척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좋아, 그럼 다시 움직여볼까?”
 남아있는 시간만을 알 수 있을 뿐 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탓에 지금이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물어가는 태양의 기울기를 보건대 앞으로 2~3시간 안에는 어둠이 찾아올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오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이동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밤을 버틸 수 있을만한 안전한 장소를 발견해 몸을 숨겨야 했다.
 밤이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서서히 열기를 거두어가는 하늘을 보며 대강의 시간을 가늠한 나는 잠겨져있던 옥상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찰칵-
 넓은 옥상 공터의 위에 홀로 있기 때문일까.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잠금 해제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잡아 비틀었다. 정말이지 일말의 긴장감이나 의심도 품지 않은 채로 말이다.
 끼익-!!
 오랫동안 굳어 있었던 탓인지 옥상 문이 비명을 지르며 소름끼치는 사운드를 토해낸다.
 그에 움찔하면서도 곧장 아래로 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놓으려던 나는 그대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크스스스…
 
 무엇보다 선명하게 귓가로 파고드는 익숙한 신음성.
 마치 목이 졸리고 있는 도중의 사람이 억지로 토해낸 것과도 같이 잔뜩 억눌러져있는 갑갑한 신음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종류의 것이었다.
 “설마….”
 불현 듯 파고드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무심코 아래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먼지투성이의 바닥으로부터 시선의 경로를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바꾸어가는 시야.
 그것을 따라 마침내 시선을 완전한 정면까지 들어 올린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머금고 말았다.
 “…씨발.”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바로 코앞의 거리로 역한 숨결을 토해내고 있는 괴물이 서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괴물의 몸이 짓쳐들고 있었다.
 
 끼기기긱-!!
 
 포효와 함께 나의 목줄을 향해 똑바로 뻗어져 오는 손톱.
 인간의 살점 따위는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이 날카롭게 솟아있는 손톱이 날아드는 것이다.
 뭔가 움직여야겠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동공의 바로 앞까지 접근해있는 손톱의 쇄도에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일순 기이한 상태로 접어 들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 속의 세계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파고들어올 것 같던 손톱의 속도가 느려지며 그 뒤편으로 썩어문드러진 괴물의 얼굴이 쩌억 하고 입을 벌리는 모습까지 천천히 망막 속으로 파고들어왔던 것이다.
 저 정도 속도라면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슬로우 모션의 세계 속에 파고든 것은 괴물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의 움직임이 느리게 전해져오듯이 나의 몸 역시도 슬로우 모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결국은 어떤 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최후를 맞이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제기랄!’
 그렇게 허무한 최후를 예감하며 한탄을 머금으려는 순간이었다.
 “흐읍!”
 한계까지 잡아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끊어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하염없이 굳어지고 있던 슬로우 모션의 세상이 본래의 속도를 되찾으며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본래의 시나리오대로였다면 손톱이 나의 얼굴과 어깨로 파고들어 내 몸을 찢어내고 그 뒤를 잇는 괴물의 이빨이 내 머리통을 통째로 씹어먹기 시작했을 터.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빠악- 가가각-!!
 
 목석처럼 굳어져 있던 몸이 내 의지와는 달리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늘어뜨리고 있던 골프채를 들어 올려 날아드는 손톱을 튕겨낸 나는 그것을 가로로 세워 앞으로 밀쳐내며 괴물의 벌어진 입의 사이로 박아 넣었다.
 이빨과 골프채가 긁히며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까득-!
 벌어진 입의 사이로 무언가가 파고들자 악어의 그것처럼 반사적으로 닫히는 입. 동시에 여기저기 썩은 살점이 눌러 붙은 이빨이 단두대처럼 좁혀들며 골프채를 통째로 씹어서 끊어내 버린다.
 과연 인간의 뼈 따위는 손쉽게 씹어서 부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턱의 힘.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일말의 당황이나 경직도 없이 빠르게 움직여가고 있었다.
 골프채를 미는 것에 의한 반동의 힘으로 거리를 벌리는 것과 동시에 살짝 비틀대던 괴물의 자세를 회복하기도 전에 빠르게 배낭을 벗어던지고 등 뒤로 매여져 있던 간이창을 꺼내어 들며 자세를 취한 것이다.
 거기까지의 행동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남짓.
 크샤아아아-
 “스흐읍!”
 기합도 없이 그대로 자세를 잡은 나는 재차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오히려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서며 양손으로 단단히 창대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순간이나마 멀어졌던 거리가 다시 가까워지려는 순간!
 
 퍼거억-!!
 
 빗살처럼 쏘아져 나간 간이창의 창날이 쩌억 벌어진 입과 함께 괴물의 머리통을 통째로 꿰뚫었다.
 마치 어디선가 연습이라도 해본 것처럼 너무나도 능숙하게 괴물의 머리통을 뚫어낸 것이다.
 살점과 두개골이 한꺼번에 바스라 지는 사운드와 함께 괴물은 달려들려던 관성만을 간직한 채로 그대로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죽어버린 것이다.
 좀비처럼 썩어문드러져 있는 외형을 보자면 죽었다기보다는 행동을 정지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내가 괴물을 처치했다는 사실이었다.
 처절한 혈투라도 벌여야 하지 않나 했던 상상이 우스워질 정도로 너무나도 손쉽게 말이다.
 “허억!”
 괴물이 쓰러진 뒤 10여 초가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박아 넣은 창을 회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대가 괴물이건 인간이건 손바닥을 통해 살점이 찢기고 두개골이 꿰뚫리며 그 끝으로 헤집어져가는 뇌 조직들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낀 직후의 일이니 패닉에 잠길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상황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뛰어난 업적 달성! 필드 내에서 최초로 망자를 쓰러뜨렸습니다. 당신의 용기가 모두의 귀감이 됩니다.]
 [뛰어난 업적의 보상으로 ‘겁 없는’ 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집니다. 상태이상 효과 ‘공포’에 저항할 수 있는 확률이 5%상승합니다. 타이틀의 효과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유지됩니다.]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고 임무를 강요하던 붉은색의 글귀와는 사뭇 다른 깔끔한 푸른색의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챕터 4. 새로운 경로
 
 “이건 대체….”
 허물어진 괴물의 시체로부터 의식적으로 시선을 회피한 나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침음성을 머금었다. 눈앞으로 약 3초간 떠올랐다 사라져간 메시지창의 내용이 선명히 머릿속을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을 처치하자마자 눈앞으로 떠오른 푸른색의 메시지창.
 메시지창은 업적과 보상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게임?”
 ……마치 게임의 그것처럼 말이다.
 플레이어들의 도전 의식과 파고들기 식의 플레이 시간 상승을 위해 만들어진 업적 시스템.
 그것은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하는 데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지만 남이 갖지 못한 호칭을 얻을 수 있다거나 단지 업적이라는 점수를 쌓아서 비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파고들만한 요소가 충분한 시스템이었다.
 이렇듯 게임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화 되어져 있는 시스템.
 바로 그 시스템의 메시지가 방금 눈앞을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설마… 게임 속의 세계로 빨려 들기라도 했다는 건가?”
 일순 떠오른 생각. 비약적인 상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것 말고는 떠올릴 수 있을만한 가정이 없었다.
 “…….”
 한동안 굳인 채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내 어떠한 결론과 가정에 도달하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태창!”
 명백하게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불러오기 위한 명령어.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반응은 없었다.
 “…이건 아닌가?”
 친구 놈이 보던 게임 판타지 소설책에서는 이렇게 하면 대부분 상태창이나 인터페이스가 떠오르던데…….
 하기사, 책에서나 나오던 내용이랑 현실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게 현실인지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 뒤로도 나는 스테이터스, 인벤토리 등등 여러 가지 종류의 게임 관련 용어를 내뱉으며 기대를 품어봤지만 어떠한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은 그냥 덮어둬야겠군.”
 결국 포기를 선언한 나는 허물어진 괴물…, 메시지창에 적혀져 있던 내용에 의하면 망자라고 불리는 괴물의 머리통에 박혀져 있던 창을 뽑아냈다.
 푸각- 하며 썩은 살점과 함께 응고된 핏물이 튀어 올랐지만 주의해서 뽑아낸 덕분에 다행히 옷에 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킬링 포인트는 직접적인 행위에만 카운트 되는 건가?”
 분명 메시지창은 내가 필드 내에서 최초로 망자를 처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망자를 처치한 순서로 따지자면 옥상에서 TV를 집어던져서 처리한 것이 먼저인 것이다.
 아마도 직접적인 공격 행위에 의한 사살이 아니면 인정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얻어낸 타이틀 이름부터가 ‘겁 없는’ 이었으니까.”
 끔찍한 외형과는 달리 그 내구도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망자들의 데이터를 떠올려 보자면 당연한 기준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설프게 발을 헛디딘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뜨린 돌조각 같은 것을 얻어맞은 망자가 죽어서 타이틀을 얻게 된다던가 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충분히 발생하고 말테니까 말이다.
 “딱히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진짜 게임처럼 업적 노가다라도 할 것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 업적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창이 떠오르는 바람에 잠깐 혼란에 빠지기도 했지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여전히 주변에는 망자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바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는 일행에서 떨어져 나온 혼자의 몸이며 저 망자들의 틈바귀를 지나쳐 제한시간 내에 목표지점까지 가야만 했다.
 ‘그래도… 일단 타이틀을 얻게 된 이상 어떤 식으로든 도움은 되겠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달구던 게임 시스템에 대한 모든 고민을 지워버린 나는 업적의 보상으로 얻게 된 타이틀의 부가효과에 대한 정보만을 되뇌이며 다시 움직여갈 준비를 갖추었다.
 ‘……공포 저항 5퍼센트라고 했지?’
 푸른색 메시지창에 떠올라 있던 업적 보상의 내용.
 그곳에는 분명 타이틀의 효과로써 상태이상 공포에 대한 저항률에 대한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그 말은 곧 어떤 방식으로든 상태이상 공격을 사용하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
 “그 때는 이 보상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고작 5퍼센트라고도 해도 완벽한 0퍼센트에 비하면 넘치도록 유용한 증가폭이니까 말이다.
 거기까지에서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나는 창대를 내려 허물어진 망자의 시체를 치워버린 뒤에 다시금 계단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긴장감과 감각을 집중시킨 극도로 조심스러운 행보였다.
 스스로도 얼떨떨할 정도로 반사적인 움직임이긴 했지만 그래도 망자를 직접 쓰러뜨렸으며 업적과 타이틀까지 얻은 마당에 너무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 쪽은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말이지.”
 더군다나 좁은 계단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골프채는 방금 전의 난리로 인해 부서져버린 상태.
 이제 쓸 수 있는 무기라고는 간이창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망자와 싸우게 될 법한 상황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지.”
 혼자 떨어져 나온 상황 탓에 게임BJ 특유의 버릇이 나와 버린 걸까.
 누구의 대답도 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혼잣말을 중얼대며 나는 갑작스런 습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창대를 짧게 움켜쥐며 계단 아래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려놓았다.
 “…뒈지기 싫으면 말이지.”
 경고인지 드립인 모를 헛소리와 함께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
 
 “후우…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나쁜 편은 아닌 건가?”
 최대한 소리와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여간 탓일까.
 계단을 모두 내려와 밖으로 나설 때까지 나는 단 한 마리의 망자와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리로 나서서까지 망자들을 회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마저도 큰 문제는 없었다.
 철저하게 거리를 띄우고 소리 죽여 움직여가는 이상 바로 앞쪽으로 지나가도 망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두 번째 경로로써 택한 주택가까지 가는 길은 시골 도시 치고는 넓은 도로와 접해있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버려진 차량들이 많아서 설령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몸을 숨길만한 구간들이 넘쳐났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 ‘안정감 있는’ 이동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후 어떤 트러블도 없이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던 나는 예상보다도 10분이나 이른 시간 만에 주택가로 접어들 수 있었다.
 옛날 동네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구형 주택들과 좁은 골목길들이 넘쳐나는 주택가.
 망자들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탓에 이제는 을씨년스러운 폐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건물들과 여기저기 금이 가고 이끼까지 올라오기 시작한 담벼락을 지나치며 나는 주택가의 내부로 은밀히 파고들었다.
 
 ***
 
 “흐읍!”
 퍼걱-
 
 호흡을 멈춤과 동시에 있는 힘껏 찔러 넣은 창날이 정확히 망자의 머리통을 꿰뚫는다.
 별다른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크게 경련하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허물어지는 망자.
 “후우… 성공이군.”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소음이 커지지 않도록 힘을 써서 조심스럽게 망자의 시체를 늘어뜨린다.
 늘어뜨려지는 창끝을 따라 스무스하게 나뒹구는 망자의 시체. 그것을 무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의식적으로 주변을 한 번 돌아본 뒤 시체의 등짝을 밟고서 박혀 들어간 창날을 뽑아냈다.
 최소한의 소음만이 발생하도록 한껏 주의를 기울여서.
 다행히 여기까지 큰 위기 없이 잘 지나오긴 했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주택가를 지나오며 주운 천 조각으로 창날에 묻은 핏물과 살점 찌꺼기들을 대강 닦아낸 나는 답답한 숨을 토해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주택가의 진입과 동시에 골목과 건물들을 오가며 지나온 복잡한 미로 같은 거리. 하지만 덕분인지 망자들과의 조우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골 주택가의 특성 탓에 이동 경로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2층 밖에는 되지 않는 주택들의 외부 계단이나 옥상, 지붕 등을 이용하니 어지간하면 망자들과 마주칠만한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설령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소리를 죽여 이동하고 있는 이상 근처에서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지 않고서야 훌륭히 회피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처리하고 가야만 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목을 지나야만 할 경우 마주쳤을 때에는 달리 회피할 방법이 없기에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처치하는 편이 좋았다.
 어설프게 담을 넘어서 회피하려고 들다가 소음을 발생시키기라도 하면 무방비 상태의 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나는 주택가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약 1시간여를 이동하는 동안 총 5마리의 망자를 추가적으로 더 처치할 수 있었다.
 업적 시스템이라는 것이 떠오른 이상 망자들을 처치한 숫자의 누적에도 업적이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별다른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단순히 카운트를 만족시키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다시금 숨을 가다듬어 이동할 채비를 갖춘 뒤 골목길을 나섰다.
 
 크스스스…
 께륵, 께껙껙…
 
 골목을 나서자마자 익숙하게 들려오는 거북한 신음소리.
 하지만 배회하는 망자들은 골목길로부터 족히 10미터는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서 계획대로 주변을 살피며 배낭에서 스마트탭을 꺼내어 들었다.
 모텔 옥상을 내려와 주택가로 스며들 때부터 생각해두었던 계획.
 목표지점인 포인트A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경로를 모색하기 위해서 나는 나름대로 최대한의 통밥을 굴렸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위치였다.
 “…갈림길.”
 현재 나는 갈림길에 서있었다. 기나긴 주택가를 지나와 마침내 도심지의 끄트머리로 인접한 것이다.
 큰 도로를 따라 양 방향으로 갈라진 채 뻗어져 있는 길목.
 그 두 갈래의 길목 중 우측은 정확히 포인트A로 향해가는 정석적인 길목이었다.
 아직 이동범위를 확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스마트탭의 맵 상에 드러나 있는 부분은 도시의 끄트머리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도로 밖에는 없었지만 이어지는 경로와 포인트A까지의 지형도를 보건데 아마도 90퍼센트 이상은 확정이 되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하지 않고서 뜸을 들이고 있었다.
 딱히 위험을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물론 곧이어 다가오게 될 밤을 보낼 수 있을만한 건물을 찾기 힘든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도로에는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버려지거나 박살난 차의 잔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황상으로 보자면 이곳의 주민들은 망자들을 피해서 도시의 밖으로 이동하려고 했고, 최소한 옆 동네까지 만이라도 이동하려고 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공포로 얼룩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혼란과 광기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아마도 도로에는 잠을 청할 장소는 없겠지만… 최소한 몸을 은폐할만한 장소는 충분할 것이었다. 당장 차량의 뒤나 아래로만 숨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 한 망자들은 나를 인식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흐음.”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눈에 띄게 기울어져서 넘어가려 하고 있는 태양.
 어느새 붉은 그을음을 하늘 위로 입혀낸 태양은 바다 위로 인상적인 석양을 그려내며 서쪽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약 1시간 정도면 어둑해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 뒤로 또 1시간이면 완전한 밤이 다가오겠지.
 철저하게 안전위주의 판단을 해보자면 여기에서 일단 한번쯤 뜸을 들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아무리 은폐물들이 넘쳐난다고 해도 막상 어두운 밤아 다가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어딘가 근처에 있는 주택가로 숨어 들어서 하룻밤 정도는 보내고 가는 편이 옳았다. 아직까지 시간은 넉넉한 편이었으며, 거리는 아직도 25킬로미터 가량이나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도로를 타고 움직이는 것은 실로 미련한 짓이겠지. 하지만… 내가 뜸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그런 밤의 위험성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었다.
 “역시 저쪽이 신경 쓰인단 말이지.”
 내가 주목하고 있는 방향은 오히려 정석적인 루트와는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길목을 따라 이동하면 곧 해변과 맞닥뜨리게 되는 방향.
 즉, 바다로 향해 갈 수 있는 경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웬 바다타령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의 계산이 서있는 대안이었다.
 모텔 옥상 위에서 탐색을 할 때에도, 주택가를 이동하며 지붕과 옥상을 타고 다닐 때에도 주의 깊게 바다 쪽을 살피며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도시에 접어든 순간부터 느꼈던 부분이지만 이 도시는 바다와 맞닿아있는 일종의 어촌도시였다.
 방파제를 타고 쭈욱 늘어세워진 채 흔들리고 있는 어선들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판단.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비록 대도시만큼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어촌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도시의 발전도가 큰 편이며, 어울리지 않는 술집이나 음식 체인점, 모텔 등의 건물들이 많은 편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린 것이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주택가를 통해 움직이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해변의 근처로 늘어세워진 건물이나 구조물 등을 빠짐없이 체크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였지.’
 바다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팬션이나 낚시, 레저스포츠 등과 관련된 건물들이 밀집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생각했다. 저런 곳이라면 제트스키나 모터보트 정도는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바다를 통해서 이동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직접 이동하지 않은 장소는 그림자가 뒤덮여져 보이지 않는다는 맵의 특성 때문에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스마트탭의 맵은 지형의 실루엣만큼은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깨어나게 된 이 지역 전반의 지형구조 자체는 훤히 드러나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바로 그 지형도에 의하면 이 도시는 반도 형태의 구조를 띠고 있었다.
 한 쪽 면부터가 이미 바다와 맞닥뜨린 채 기나긴 해변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해변이 끊기고 난 뒤의 지형도 마찬가지로 바다와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다.
 특히나 포인트 A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뿔처럼 투욱 하고 튀어나와 있는 길쭉한 지형도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반대편의 바다와는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어선은 몰라도 모터보트나 제트스키 정도는 몰아봤으니까 말이야.”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방구석 폐인 게임돌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법 활동적인 성격에 레저 스포츠가 취미였었다.
 덕분에 우월한 신체 등급으로 군대도 무려 최전방 수색대로 다녀왔었지. 아아, 안 좋은 기억은 닫아두도록 하자.
 “자, 그럼 어쩐다?”
 선택의 요지는 간단했다.
 이대로 정석루트를 탈 것이냐, 아니면 모험을 한번 해볼 것이냐.
 쉽게 생각하자면 아직은 시간도 많은 시점이니 바다 경로를 탐색해서 새로운 루트에 대한 길을 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그것도 그리 간단한 것만큼은 아니었다.
 우선 제트스키나 모터보트의 유무부터가 문제였지만,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원이 무사한지, 그리고 정작 바다에는 위협요소가 없는가에 대해서까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말마따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해변 탐색을 하는 것 정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간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확고히 정하지도 않은 목적을 위해 위험을 자처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후우.”
 꽤나 길게 이어지던 생각 끝에 내뱉어진 한숨.
 그와 동시에 나는 마음을 결정을 내렸다.
 “좋아… 도박이다.”
 장고 끝에 내린 나의 선택은 바로 해변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곳으로 가면 안전한 생존의 길이 열릴 것 같다는 게이머로써의 촉이 발동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한 시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
 
 쏴아아아-
 해변을 타고서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며 하얀 분말을 일으킨다.
 본래는 레저스포츠나 낚시, 혹은 단순히 피서를 즐기기 위해 찾아든 관광객들로 붐볐을 해변은 파도소리를 제외한 적막만이 남겨져 있었다.
 마치 한겨울에 찾아간 밤의 해변에 선 것처럼 한산하기 그지없는 텅 빈 조경. 그 때문일까?
 쏴아아아-
 “…….”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에 일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막막함에 잠겨 들어가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지워버린 뒤 행동을 개시했다.
 예상대로 해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던 레저스포츠 가게를 탐색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제트스키는 발견했으니까.’
 해변의 구석구석을 모두 뒤져서라도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용해질 정도로 제트스키는 손쉽게 발견되었다.
 레저스포츠 가게와 이어진 해변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해변의 한쪽 끝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제트스키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바다를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수단만큼은 해결이 된 상태.
 물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열쇠가 필요했지만 나는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쪽에서는 은근히 운이 좋은 편이니까.’
 게임을 할 때에도 그랬다.
 처음 시도하는 게임도 중간에 무언가 촉이 발생해서 그리로 움직여 가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라던가 희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보물 상자를 찾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해변에 널려진 족히 10대는 되어 보이는 제트스키들 중에 최소한 한 대 정도는 열쇠가 꽂혀져 있는 개체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레저 스포츠 가게를 탐색하는 이유도 간단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인 것이다.
 바다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가정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괴물이 아닌 다른 사고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컷 바다까지 잘 나가서는 암초에 들이박아 수장 된다던가 하는 웃기지도 않은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안전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구명조끼 정도는 입어야지.’
 그 정도만 해도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탐색을 개시했다.
 
 ***
 
 “후우, 이 정도 인가?”
 레저 스포츠 가게를 탐색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아이템인 구명조끼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넘치도록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 외에 쓸 수 있을만한 물건들은 딱히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제트스키의 열쇠가 걸려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해서 샅샅이 뒤져봤지만 찾아낸 거라고는 가게 정문용으로 추정되는 열쇠와 부서져 나뒹굴고 있는 열쇠걸이 판뿐이었다.
 족히 30여 분은 되는 시간을 투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울해 할 필요는 없었다. 구명조끼뿐만 아니라 생존이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한 여러 종류의 레저 용품 및 연료통 등을 구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연료가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상태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가게 한 쪽에 꽉 채워진 휘발유 통이 일곱 통이나 있었다.
 난 그 중 한 통하고도 반 통분의 휘발유를 부어 음료수 페트병에 채워 넣고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그것을 위해서 배낭 안에 있던 간이식량마저 반쯤은 먹어치워 버려야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만약에 이 길이 성공한다면 어차피 남은 시간들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으며, 실패한다면 말 그대로 끝장이 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무언가 거사를 진행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는 느낌에서도 어느새 꼬르륵 대기 시작한 뱃속의 거지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좋아, 쌩쌩하네.”
 무겁지도 헐겁지도 않은 적당한 몸의 활력과 포만감에 만족을 표시하며 나는 배낭을 메고서 창을 집어 들었다.
 어째서인지 해변으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망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시작해서 해변부터는 완벽하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기를 소지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게다가 만약에라도 바다에서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 출몰하면 창이라도 있어야 발악이나마 해볼 수 있을 터였다.
 ‘…부디 촉이 맞기를!’
 불안한 감정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나는 제트스키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걸 고른다?”
 해안선에 접근한 나는 운집해있는 6대의 제트스키들을 한번 크게 둘러보았다. 빨강, 파랑, 노랑 등등 각양각색의 색채를 띠고 있는 제트스키들. 그 모든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나는 결국 무난한 검은색의 제트스키를 선택했다.
 원래부터 색체에 대한 감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으니만큼 검은색을 선호하는 나였지만 단지 그 이유보다는 검은색의 제트스키가 그나마 가장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열쇠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망자가 등장할 당시의 혼란을 증명시켜주듯 제트스키들에는 하나같이 다 열쇠가 꽂혀진 채였던 것이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제트스키의 앞에 선 나는 한 번 더 제대로 제트스키의 상태를 체크하고 연료주입구를 열어 기름까지 풀로 채워 넣었다.
 바다 쪽 경로로 정확히 얼마를 이동해야 할지 모르니만큼 출발 전 연료량의 체크와 갱신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제트스키의 상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쩡했다. 도로 여기저기에 방치된 차량들의 상태를 보자면 제트스키 역시도 어딘가 부서지거나 결함 부위가 생기진 않았을까 했는데 마치 새 제품처럼 번들거리는 광택마저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바다로 나아가려는 사람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준 것만 같은 위용.
 그 매끈매끈한 상태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구명조끼의 끈을 다시 단단히 조인 뒤 그 위로 무거워진 배낭을 둘러맸다.
 “참 끝장나는 비주얼이구만.”
 회색 후드티에 검은색 반바지. 일단 거기까지만 해도 심히 좋아 보이지 않는 모양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텐데 그 위로 노란색 구명조끼가 덧씌워진 상태이며 머리에는 안전용 헬멧을 뒤집어쓴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어깨끈이 잔뜩 눌릴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등 뒤로 늘어지게 맨 채 한 손에는 원시인 마냥 조잡한 창까지 쥐고 있었다.
 검은색 전기 테이프로 칭칭 감아져 보강된 밀대의 끄트머리로 제각기 다른 두 개의 식칼이 매달려 있는 조잡하기 그지없는 간이창.
 그래도 임기응변으로 만들어낸 것치고는 제법 튼튼해서 여기까지 지나오는 동안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는 한숨이 나오긴 했다.
 아무리 패션이나 색감 등 미적 감각에 대해서는 일말의 조예도 관심도 없는 나라곤 하지만 지금 내 행색이 심히 테러리스트에 가깝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패션 테러리스트 말이지.’
 “……하하.”
 스스로의 행색을 떠올리며 메마른 웃음을 내뱉은 나는 이내 잡념을 떨쳐내고서 제트스키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까 전부터 너무나도 적막한 해변의 가운데에 홀로 있다 보니 그만 잡생각이 들고 말았지만, 딱히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태양은 아까 전보다 더 아래로 기울어져가고 있었으며 하늘은 서서히 석양에 물들어 밤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인가?”
 해의 기울기로 대강의 시간의 흐름을 파악한 나는 해안선에 걸쳐 있던 제트스키를 바다 쪽으로 밀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가 저항감을 전해왔지만 썰물의 흐름에 맞춰서 밀쳐내자 그리 어렵지 않게 움직여졌다.
 물 위로 떠올라 파도의 흐름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대기 시작한 제트스키.
 드디어,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는 저 위로 탑승해서 애초에 계획했던 방향대로 이동해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밤이 오기까지 고작 1시간가량의 시간 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런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생각대로만 되어준다면 30분이면 충분할 테니까.’
 현재 목표지점까지 남은 거리는 약 25킬로미터 가량.
 바다 경로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추가 거리가 생긴다는 점은 감안하면 약 30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봐야했다. 뻥 뚫린 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자가용이라도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고작 1시간 내에 주파하기에는 솔직히 부담이 되는 거리.
 하지만 나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오래 전의 레저 경험을 통해 제트스키가 지닌 속도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트’ 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있으니만큼 제트스키의 속도는 대단히 빠른 편이었다.
 무려 최대 시속 80Km까지 낼 수 있는 것이다. 시속 80Km라고 하면 에이~ 고작 그거?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타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단순 계산상으로 봐도 30Km남짓의 거리는 20~30분 안에 충분히 주파해낼 수 있는 속도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밤이 오는 것을 걱정하는 대신 오랜만에 탑승해보는 제트스키의 위에서 자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밀착해 앉았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간이창을 제트스키 오른편에 있는 홈 같은 곳에다가 끼워 넣어 고정시켰다.
 아무런 방해 없이 오로지 제트스키의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좋아… 그럼 가볼까?”
 자신에게 되새기듯 중얼거린 나는 제트스키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위이잉, 위이이잉-
 시동을 걸자마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엔진의 소리.
 그 소리는 해변은 물론 도로를 배회하고 있는 망자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지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엔진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여태까지 얻어낸 정보를 통해 망자에 대해 새로운 가설 데이터를 새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망자들은 물에 약점이 있는 게 틀림없어. 단순한 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약점일 수도 있고.’
 어디까지나 상상만으로 도달한 가설일 뿐이었지만 나는 꽤나 신빙성 있는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대도 반응은 할지언정 해변까지 다가오는 망자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점에 사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차피 난 이제부터 바다로 나아가게 될 몸이었다.
 뭍에 있는 놈이 무엇을 하고 또 무슨 습성을 지녔던 뭔 상관이란 말인가.
 “조까! 난 보트 위에 있다고!!”
 일순 머릿속에 가수 론리 아일랜드의 “I'm on a boat” 의 음절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힘차게 손잡이를 비틀었다.
 위이이이잉-!!
 단순히 시동을 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엔진음.
 그와 동시에 파도를 타고 크게 튀어 오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제트스키의 위로 잔뜩 몸을 밀착시키며 나는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
 
 제트스키는 호쾌하게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혹여나 바다에서 다른 종류의 괴물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던 걱정과는 달리 바다 쪽의 경로는 무척이나 안전했다. 괴물은커녕 흔한 암초조차 찾아보기 힘든 평탄하기 그지없는 해역이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랐네.”
 그 덕분일까. 본디 30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나는 정확히 19분 28초 만에 목적하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목표지점인 포인트A가 위치한 지역의 뒤편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편의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암석절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별다른 등반 장비 같은 것이 없어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정도의 완만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었다.
 등반 장비는커녕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을 만큼 만만해 보이는 형세.
 게다가 절벽의 가장자리에는 마치 방파제라도 되는 것처럼 홀로 툭 튀어나온 암석언덕까지 있었기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다시 뭍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스마트탭을 꺼내어 맵을 들여다본다.
 아까 전부터 확인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목표지점인 포인트A는 거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맵 상의 글자가 빨갛게 빛나며 점멸했는데, 지금 쉼 없이 점멸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저 위의 완만한 절벽만 넘으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이란 말이지.”
 혹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그 망할 놈의 붉은 글씨가 나타나서 다른 미션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분위기상 그런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제한시간이 사흘이나 주어졌으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미션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업적 시스템에 의하면 이 게임… 같은 현실은 우리들, 즉 플레이어들 간에 차등을 분명하게 나누고 있었다.
 이른바 경쟁체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이번 이후에 또 다른 미션이 이어서 연결되어질 가능성은 적었다.
 미션을 알리는 사이렌과 붉은 글귀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동시에 알려지는 것 같았으니까.
 “즉, 이 언덕만 넘으면 이 모든 지옥도 끝이란 뜻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끝일 런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망자들이 넘쳐나는 이 장소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이른바 스테이지 클리어로서 말이지.’
 그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스마트탭을 다시 배낭 속에 밀어 넣고 제트스키에서 장착(?)해두었던 간이창을 꺼내어 등 뒤로 매었다.
 “……제발 이걸로 끝이기를.”
 간절한 소원과 함께 나는 완만한 암석 절벽을 천천히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근데… 어째 좀 불길하다?’
 게이머적인 사고로 보아하건대 새로운 경로를 개척했으니만큼 메리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런 점을 고려해도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도 쉬운 편이었다.
 사실 정석적인 길목만 해도 체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마라톤 선수들의 속도로만 쭈욱 움직여서 이동해도 어렵지 않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미션은 그리 어려운 편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사람의 인지를 넘어서는 괴물이 출몰하고 순식간에 고립되는 상황이 나오니까 늦어질 뿐이지 냉정을 찾기만 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극복해낼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인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튜토리얼 정도가 되겠군.’
 최근에 나오는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주어지는 이른바 연습게임과도 같은 스테이지.
 거기에서 유저들은 대강의 조작법과 게임의 진행법에 대해서 습득할 수 있게 된다.
 해당 게임에서 가장 기초된 부분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튜토리얼에 어울린다고 보아야 했다.
 ‘처음 시작할 때에도… 분명히 증명의 시간이라고 했으니까.’
 가장 최초로 떠올랐던 붉은 글귀에 적혀있던 내용을 새삼 떠올려보며 나는 어느새 절벽을 다 기어올라 마지막 돌부리를 잡고서 그 위쪽으로 몸을 올렸다.
 휘이이이-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듯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이마의 땀을 식히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기분 좋은 바람이 주는 청량감을 느끼며 나는 지면을 딛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온 마지막을 향해가기 위해서.
 그런 고양감과 함께 재차 움직이기 시작한 나의 눈앞에 가장 먼저 비친 것은 숲이었다.
 암석절벽과 이어진 언덕의 위로는 숲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래쪽으로 향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서 말이다.
 “이제 다리 아플 일은 없겠네.”
 관절염이 있으신 할머니도 무난히 걸어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완만한 언덕길에 나는 창을 뽑아든 채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렸다.
 지도상에 의하면 이제 포인트A까지의 거리는 불과 20미터 남짓. 이 언덕을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목표한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솔직한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전력질주해서 결승점을 통과하고 싶은 기분. 하지만 원래 가장 안심되는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른바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이다.
 ‘그것 때문에 다크소울을 처음 할 때는 나도 꽤 죽었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골수 게이머이기 때문일까. 이런 순간에도 게임과 관련된 추억만을 떠올리며 나는 혹여나 나타날지 모르는 망자를 경계하며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거진 나무들을 지나 빛을 마주했을 때,
 “……역시나!”
 나는 기쁨인지 실망인지 모를 애매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이렇게 쉽게 넘어가줄 리는 없겠지.”
 언덕이 끝나는 지점, 드디어 평평한 지면과 맞닿는 지점으로는 명백히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깔끔하게 정리되어진 넓은 공터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공터의 끄트머리에는 붉은색의 벽돌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얼핏 보아 가로세로 5미터 정도의 차고만한 크기의 구조물.
 위로 2미터쯤 솟아오른 구조물의 한쪽 벽면에는 타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있었으며, 그 옆에는 검은색의 글씨로 크게 A라고 적혀져 있었다.
 바로 저기가 최종 목적지인 포인트A라는 것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
 그대로라면 이제 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위쪽에 있는 포인트 지점에 발을 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공터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괴물체가 없었다면 말이다.
 
 “저건 또 뭐냐고.”
 공터의 가운데에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뭐라 제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녹아내린 망자의 모습과 같다고 해야 하나?
 말 그대로 눈앞의 괴물의 망자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렸을 때의 모습처럼 잔뜩 허물어진 채 지면에 들러붙어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망자보다 몸집이 2배는 크다는 점이었으며, 피부층이 갓 살갗을 벗겨낸 것처럼 번들거리는 붉은색의 점액질을 띄고 있다는 점이었다.
 “젠장, 그냥 아까 밥 먹지 말걸.”
 저절로 그런 말이 나올 만큼 눈앞의 괴물체는 충격적인 비주얼에서부터 비위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솔직한 심정에서는 이대로 고개를 돌리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기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메스꺼움을 참아 넘긴 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낮추었다.
 생긴 모양새로만 보자면 망자의 돌연변이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는 괴물체였지만, 일단은 새로 등장한 개체이니만큼 새롭게 정보를 취득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저 괴물은 시각이 퇴화되다시피한 망자들과는 달리 상당히 뛰어난 시각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로 그것이 지금 내가 자세를 낮추어 풀숲으로 몸을 숨긴 이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풀들을 해치며 제법 바스락거렸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을 보면 저 괴물은 아마도 청각능력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닐 것이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못 움직였을 수도 있지만 말이지.’
 끔찍한 외형은 둘째치고서라도 공터의 괴물은 흘러내린 상태 그대로 바닥에 들러붙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른바 고정형일지도 모른다는 뜻.
 ‘그렇다는 건…….’
 일순 어떠한 생각에 다다른 나는 수풀의 아래에 잔뜩 굴러다니고 있던 짱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후읍!”
 나는 군대시절 배웠던 수류탄 투척 자세를 활용해서 공터의 한 구석을 향해 최대한 높은 각도의 포물선을 그리도록 짱돌을 투척했다.
 인위적으로 공터 상에 소음을 발생시켜 괴물의 반응을 확인해보면서도 포물선을 그림으로 인해 본인의 위치는 숨길 수 있는 최적의 방법.
 괴물의 습성이나 특성은 물론 공격 사정거리조차 모르는 시점이니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수풀 속에 훌륭히 몸을 은닉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괴물을 주시했다.
 그 사이 천천히 힘을 잃고서 중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짱돌.
 그 가파른 포물선을 각도를 힐끗 쳐다보던 나는 간이창의 창대를 꽈악 움켜쥐며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었다.
 만약에 위치가 들켜서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최소한 발악이라도 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내가 전의를 다지는 사이,
 타닥-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던 짱돌이 공터의 구석으로 떨어지며 원한만큼의 적절한 소음을 일으켰다.
 낙하에너지의 영향으로 한번 크게 튀어 올랐다가 다시금 떨어져 내리며 데굴데굴 굴러가는 짱돌.
 그것은 정말이지 별것 아닌 광경이었지만 그 다음에 벌어진 광경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나름대로 짐작하며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욕설이 나올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투콱- 투콰콱-
 돌이 떨어졌던 위치와 재차 튕겨져 나가 굴러간 위치를 따라 불과 0.5초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딜레이를 두고서 매섭게 솟구쳐 오르는 가시들.
 거무튀튀하면서도 번들거리는 가시는 연속적으로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짱돌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아서 끝장을 냈다.
 아직 운동에너지를 다 소모하지 못한 짱돌이 원하는 위치만큼 더 나아가기도 전에 가시가 솟구쳐 오르며 짱돌을 꿰뚫어 박살내어 버렸던 것이다.
 마치…,
 “성큰이냐고!!”
 성큰콜로니의 그것처럼 말이다.
 한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계속해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전설적인 명작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저그 종족 지상타워 유닛 성큰콜로니 말이다.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비주얼은 여러모로 이쪽이 더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지면으로부터 위쪽으로 거침없이 솟구쳐 오르는 가시들은 영락없이 성큰콜로니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번의 솟구침에 일정이상의 딜레이가 존재하는 기존의 성큰콜로니와는 달리 저 괴물체의 가시는 그 호흡조차 무척이나 빨랐으며 단번에 3개까지 솟구치는 것을 확인했다.
 ‘존나 사기네. 저런 거 하나만 설치해놓으면 저글링 같은 건 한 부대가 와도 녹아 없어지겠어.’
 일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직 자세한 부분은 몇 가지 더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었지만 방금의 것으로 드러난 부분만 하더라도, 이 앞을 지나갈 수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터의 시작으로부터 사다리가 매달린 빨간벽돌 구조물까지는 약 10미터 남짓. 거기까지 내가 최대속도로 주파할 수 있는 속도는 잘 잡아야 2초 정도였다.
 즉, 내가 아무리 쌔가 빠지게 뛰어도 저 가시들을 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여러 군데로 돌멩이들을 투척해 미리 가시가 다른 장소로 솟구치도록 만든 뒤에 빠르게 지나친다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확인된 가시의 솟구침만 해도 이미 3개까지 드러난 것이다.
 그 이상 몇 개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그런 작전을 사용했다가 예측이 빗나가기라도 하면 그대로 꿰뚫려 꼬치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골치 아프게 됐군.”
 바다를 지나오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던 만큼 이 앞으로 무언가 어떤 방해물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건 난이도가 좀 심하잖아!!
 저대로라면 돌멩이를 사용해 딜레이를 발생시키더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돌파할 수 없었다.
 어떤 경로 어떤 방식을 사용하던 저 가시들은 섬전처럼 치솟아 올라 결국 나의 몸을 꿰뚫고 말테니까 말이다.
 “이런 젠장.”
 내가 욕설을 머금고 있건 말건 괴물체는 처음에 발견되었던 모습 그대로 흘러내린 채로 지면에 들러붙은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우우….”
 찌푸린 표정으로 가시 괴물의 모습을 주시하던 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바닥을 뒤져 서너 개의 짱돌을 집어 들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피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 챕터 5. 미션 클리어
 
 툭, 파각-
 투둑, 파가각-
 무작위로 떨어져 내린 자갈들이 채 튀어오르기도 전에 솟구쳐 오른 가시들에 관통되어 부서져간다.
 “대강 이 정도인가.”
 이것으로 벌써 14번째 실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향을 모두 이용하여 가시 괴물의 반응을 테스트하던 나는 놈에 대해 꽤나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놈의 반응속도나 공격사정범위는 물론 직접적인 공격에 대한 반사작용이나 한 번에 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시의 숫자까지, 대부분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정보에 의하자면 우선적으로 지면을 통과해서 가는 방법은 절대로 무리였다.
 실험 전부터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긴 했지만… 가시 괴물의 공격사정권은 놈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공터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실험삼아 공터 가장자리와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바깥 선에 맞추어서 돌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가시 괴물은 공터 안이기만 하면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불과 0.2~0.3초 만에 가시를 쏘아 올릴 수 있었다.
 즉, 공터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미 가시의 먹잇감이 된다는 이야기다.
 세계에서 최고로 빠른 남자라는 우사인볼트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런 속도라면 피해갈 수 없었다. 가시 괴물은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공터에 속하는 바닥에 떨어지는 진동을 감지하는 개체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소리에 반응하는 존재였다면, 돌멩이로 빨간벽돌 구조물의 벽을 맞혔을 때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일어나야 했는데 가시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벽을 맞힌 돌멩이가 떨어져내려 바닥에 맞닿고 나서야 비로소 날카롭게 가시를 솟구쳐 올리며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거기까지에서 나는 가시괴물이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없이 오로지 지상의 진동에만 반응하는 개체라고 판명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단 한 종류의 감각에만 의지하니 만큼 가시괴물은 아무리 가벼운 무게라고 할지라도 일단 공터 위로 떨어지기만 하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즉각 가시를 솟구쳐 올리는 섬세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말한 시점에서 혹자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지면의 진동에만 반응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먼 거리에서 가시괴물의 본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되는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무리였다.
 사실 그런 생각도 나도 안 해본 것이 아니고 실제로 시도도 해봤지만, 가시 괴물은 본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완벽한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의 형태로 보이는 곳으로 있는 힘껏 돌멩이를 집어던지자 가시괴물은 마치 성게처럼 온 몸 전체로부터 촘촘한 가시 벽을 만들어내며 반경 1미터 안까지 접근한 모든 것을 꿰뚫어 버렸다.
 ‘공방일체라니….’
 정말이지 어딘가의 게임에 대입되기라도 했다가는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 될 법한 엄청난 기능성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
 가시 괴물은 분명 지면을 딛는 적에 한해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존재이긴 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땅바닥에 들러붙어있는 모습 그대로 가시 괴물은 직접적인 이동을 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며, 때문에 공터의 바깥으로는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막말로 피할 수 없다면 그냥 다시 제트스키를 타고 섬의 외곽으로 돌아가서 다른 절벽을 타고 오르면 그만인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만들어낸 이 세상의 제작자도 바보는 아닌지 돌입한 위치가 아닌 다른 벽면은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절벽으로 만들어두었지만… 마음먹고 오르기로 결심하면 딱히 시도하지 못할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을 바에는 차라리 살 가능성이 1프로라도 더 있는 절벽 등반을 시도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공터로터 물러서지 않았다.
 굳이 절벽을 타지 않더라도 공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해냈기 때문이었다.
 찾아낸 방법은 두 가지였다.
 ‘없애버리던가, 아니면 도박을 하던가.’
 공격과 회피의 방향에서 각기 한 가지씩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진 않지만 말이지.”
 생각과 함께 나는 오른손에 들린 로프뭉치와 왼손에 휘발유 페트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는 가시괴물을 쳐다본다.
 “어쩐다….”
 고안해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들이었다.
 먼저 회피의 방법은 로프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붉은 벽돌 구조물의 바로 옆에는 건물과 비슷한 높이의 국기 게양대 같은 기둥이 있었으며, 그것은 붉은 벽돌 구조물과 수풀 지대의 나무를 엮는 훌륭한 지지대가 될 수 있었다.
 딱히 고리 같은 것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카우보이식의 조이기 매듭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둥에 로프를 걸어 조이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대로 줄을 엮어서 팽팽히 당긴 뒤 줄의 장력을 유지시키기만 하면 유격훈련에서 배웠던 것처럼 밧줄에 찰싹 달라붙어서 지나가면 된다.
 유유히 가시 괴물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통과 방법.
 십 수번의 실험으로 대강의 습성과 정보는 다 파악했다곤 하지만 직접적인 공격을 했을 때에 또 어떤 숨겨진 반응을 보여줄지 모르는 가시괴물을 일부러 건드리는 것보다는 조용히 지나가는 로프 탈출의 방식이 확실히 합리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답이 나와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결정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시괴물을 공격하여 쓰러뜨린다는 선택지에서 쉽게 눈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잘 통할 것 같단 말이지.’
 가시 괴물의 피부층을 덮고 있는 번들거리고 끈적거리는 핏빛 속살.
 나는 왠지 그 끈적한 피부층이 무척이나 불에 잘 타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뭔가 확신을 할 수 있을만한 건덕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예감이 그러했다.
 계속해서 팔아 대서 좀 뻘쭘하긴 하지만 여태껏 내가 게임을 해오면서 따라왔으며 신뢰하고 있는 특유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놈에게는 불 공격이 아주 그냥 직빵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걱정과는 달리 최초 보급한 연료를 다 소모하지도 않고서 너무나도 손쉽게 목적지에 도달한 탓에 배낭 안에는 족히 5만원치는 되는 휘발유가 가득 들어차 있는 상태.
 여기까지 무겁게 지고 온 수고가 얼만데 그냥 의미 없이 버리고 가기는 조금… 아니, 많이 아깝지 않은가!?
 “으음….”
 이제 밤이 오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흐려지는 하늘을 맞이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좀처럼 선택을 하지 못한 채 끙끙대고 있었다.
 그렇게 약 5분여가 더 지났을까.
 “에라, 모르겠다!!”
 나는 마침내 갈등에서 벗어나며 외쳤다. 가시 괴물을 직접적으로 공격해보기로 한 것이다.
 기나긴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결국 공격이었다.
 딱히 공격을 해야만 하는 타당하고도 마땅한 이유를 찾아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이런 게 내 스타일이니까.’
 지금의 상황을 평범하게 게임에 대입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지만 BJ폐인으로 활동하며 공략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도전해가던 나의 스타일은 거의 마초에 가까웠다.
 그래서 RPG게임을 할 경우 항상 선택하는 직업군 역시도 전사.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컨트롤이 필요한 캐릭터도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진심으로 잘 하는 컨트롤은 패기를 앞세운 마초 플레이였다.
 비단 RPG게임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나의 성향은 변함이 없어서 대부분의 경우 호전적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뭐가 어찌 됐던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식인 것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바로 이러한 호쾌한 진행 방식 때문에 나의 게임 방송은 인기가 많은 편이었고, 시청자들은 그런 나의 플레이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기본적인 베이스로 깔고서 가끔은 다소 무식하다 싶을 정도까지 과감한 진행을 이어가는 플레이.
 그것이 바로 나, BJ폐인 권혁의 방식이었다.
 
 ***
 
 “……지금 당장 공략해주마!”
 방송 중에 종종 내뱉어 호응을 구하던 유행어와도 같은 나만의 대사를 머금어가며,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가시 괴물을 노려보았다.
 그런 나의 양손에는 어느새 뚜껑 바로 아랫부분까지 잔뜩 차오른 채 찰랑대고 있는 휘발유 페트병이 하나씩 쥐여져 있었다.
 “좋아, 그럼 우선은…….”
 생각을 정한 이상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마치 게임 방송 중에 공략왕 모드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며 집어 들고 있던 페트병들의 그립을 바꾸어 쥐었다.
 그저 들고만 있던 자세에서 던지기 좋은 자세로 바꾸어 쥔 것이다. 언제라도 저 끔찍한 덩어리에게 한방 먹여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일단은 밑 작업부터 해보실까!?”
 의기양양하게 부끄러운 대사들을 내뱉어가며 나는 가시괴물을 향해 반대쪽 손끝을 겨냥하고 투척의 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불과 5미터 정도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으며 가시괴물의 덩치 역시도 빗나가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비대한 편이었지만 무엇이든 기왕이면 더 정확한 게 좋을 테니까.
 “간닷!”
 손끝으로 거리를 재서 완벽하게 투척의 각도를 완성시킨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오른손에 쥐고 있던 페트병을 집어던졌다.
 어설프게 포물선을 그리는 장거리 투척법이 아니라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직선 투척 법으로 던진 것이다.
 나름대로 어깨의 힘까지 더해 있는 힘껏 내던진 페트병은 파공성을 내지는 못 했지만 맹렬한 속도로 가시괴물에게 날아갔다.
 만약 상대가 괴물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어? 저거 저러다가 다치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긴 투척.
 퍼걱-
 하지만… 역시 괴물은 괴물이었다.
 투척된 페트병은 괴물의 몸체에 도달하기도 전에 성게처럼 치솟아 오른 가시들이 꿰뚫려 벌집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목표는 가시괴물이 페트병을 박살내도록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아주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군.’
 페트병은 맥없이 꿰뚫리고 말았지만 그 안에 가득 담겨있던 휘발유들은 관성의 영향을 받아 가시괴물의 몸체로 고스란히 뒤집어 씌워졌다.
 물론 거의 절반가량의 휘발유는 페트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낙오하고 말았지만 상관없었다. 성게처럼 치솟아 올랐던 가시가 재차 몸속으로 파고들면서 페트병과 함께 남아있던 휘발유 잔재까지 한꺼번에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겨주었기 때문이다.
 거진 2미터는 훌쩍 넘겨 보이는 키에 소형차 정도는 비견해야 할 정도로 옆으로 비대하게 벌어진 몸체를 생각하면 방금 묻은 휘발유로는 반의반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페트병은 아직도 6병 정도나 더 남아있으니까 말이지.’
 사실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점치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별거 없는 작전이었지만, 나는 어쨌든 계획대로 되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차 페트병을 집어들고 투척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내…,
 “후으읍!”
 9회 말까지 완투 중인 팀의 에이스 투수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부위의 장소를 향해 쉬지 않고 있는 힘껏 페트병들을 투척해대기 시작했다.
 퍼걱! 투각! 투웅! 티이익-!!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꿰뚫려 벌집 신세가 되어가는 페트병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휘발유들은 거침없이 가시괴물의 몸체 곳곳을 적셨다.
 가뜩이나 번들거리는 몸체가 이제는 기름져 보일 정도로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족히 5만원치는 되는 양의 휘발유가 가시괴물의 몸체 위로 흠씬 뒤덮인 것이다.
 저 기름들을 차에다가 집어넣으면 한 달을 타고 다니겠구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아깝다는 느낌이 살짝 들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궁상을 떨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이걸로 밑 준비는 끝이군.”
 드디어 도전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저 기름진 괴물 녀석에게 불씨를 튕겨주는 것 뿐.
 “후후후.”
 의도적으로 거만한 웃음을 머금어 보인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싸구려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들었다.
 모텔 구간을 지나오면서 습득했던 라이터의 쓰임새가 드디어 생겨난 것이다.
 딸칵, 화르륵-
 버튼을 누르자마자 라이터 구멍으로부터 화아악 하고 치솟아 오르는 불길.
 담배를 피우려고 시도했다면 앞머리를 태우고 말았을 지도 모를 정도로 화끈하게 치솟아 오르는 불길에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미리 준비해둔 마지막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앞에 던진 것들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데다가 안에 차있는 휘발유 역시도 3분의 1 정도 밖에는 들어있지 않으며 뚜껑까지 실종되어있는 헐렁하기 그지없는 페트병.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뚜껑 따윈 필요 없으니까.’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나는 미리 휘발유에 잔뜩 적셔두었던 천 조각을 페트병의 안쪽으로 길게 박아 넣었다.
 재료 부문에서 조금 차이나 나는 것 같긴 하지만… 어엿한 화염병을 만들어낸 것이다.
 천조각의 끝이 휘발유 속에 완전히 담가진 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라이터의 불길을 천조각의 위로 가져갔다.
 화르르륵-
 미리 휘발유에 절여둔 보람이 있는지 무섭게 불길이 옮겨 붙으며 타오르는 천 조각. 그로부터 전해지는 강렬한 불길의 열기가 채 번져가기도 전에 나는 페트병을 콰악 움켜쥔 채로 가시 괴물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걸로 그냥 뒈지기를!!”
 간절한 바람을 담은 외침과 함께 나는 불이 붙은 화염병을 가시괴물에게로 던졌다.
 여태까지의 페트병들과는 달리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화염병.
 그것은 비록 위력은 없었지만 그런 만큼 정확히 가시괴물의 머리통을 향해 나아갔다.
 투칵-
 앞의 페트병들과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가시들을 세우며 페트병을 아작 내는 가시괴물.
 하지만 그것은 놈이 여태껏 보여주었던 것 중 최고의 악수였다.
 
 콰하아아아아-
 
 화염병으로부터 터져 나온 불길이 고스라이 가시괴물의 몸체로 옮겨 붙으며 순식간에 대화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끼에에에에에-
 
 뭐야? 소리를 낼 수도 있는 거였어? 불길이 강렬히 번져나가자마자 멍하게 벌어져 있던 입이 더 크게 벌어지며 비명을 토해내기 시작한 가시괴물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렇게나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낸다는 것은 곧 놈이 지금 타오르고 있는 불길에 아주 제대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가시 괴물에게는 불 공격이 직빵이라는 가설은 아주 훌륭히 들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휘발유로 샤워를 했다고 해도 저렇게나 강렬하고 오랫동안 타오를 리는 없는 것이다.
 “저러다가 아주 그냥 재가 되겠군.”
 폭발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해서부터 벌써 장장 10여 분 동안이나 계속해서 불길이 꺼지지 않고서 타오르고 있는 가시괴물.
 끼에엑, 끼익-
 이제 크게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시 괴물의 모습을 나는 아예 팔짱까지 낀 채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 10여분이 더 지났을까. 슬슬 하늘도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끝없이 타오를 것 같던 불길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번들거리던 가시괴물의 피부층은 물론 그 안쪽에 있던 내부기관들까지 모두 다 불 태워버리고 나서야 불길이 멈춘 것이다.
 끝없이 움찔거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내던 가시괴물 역시도 이제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안심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초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가시괴물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참 질기네 질겨.”
 한탄과도 같은 한숨을 토해내며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바닥에 놓아져 있던 간이창을 집어 들었다.
 모텔구간에서부터 여기로 오기까지 훌륭하게 무기로써의 역할을 다해주며 고생해준 최고의 동료.
 그때그때마다 대충 문질러왔던 탓에 제대로 닦이지 않은 핏물들이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는 간이창의 창날을 응시하던 나는 이내 눈동자를 빛내며 창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손의 끝을 가시괴물에게로 향한다.
 명백한 투척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젠 정말 끝이다!”
 선언하듯 외치며 나는 창끝이 쩌억 벌어진 가시괴물의 입속으로 향하도록 정확히 겨냥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 만에 창 투척의 영점이 완전히 잡혀졌다 싶은 순간!
 “흐으읍!!”
 나는 숨을 참으며 온 몸의 근육을 사용해 있는 힘껏 창을 집어던졌다.
 쉬이익-
 짧은 파공성만을 남긴 채 빗살처럼 쏘아져 들어가는 간이창.
 내가 던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담은 간이창은 레이저처럼 가시괴물의 입속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거리가 제로를 향해 수렴하는 순간!
 
 퍼어어억-
 
 간이창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가시괴물의 입속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그야말로 치명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강력한 일격이 성공한 것이다.
 “후우… 끝인가?”
 피격의 순간 크게 경련하며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추욱 하고 처지는 가시괴물의 모양새에 나는 희망찬 미래를 예상해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는 취업준비생이 된 것처럼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조용히 곱씹어보고 있을 때였다.
 
 [위대한 업적 달성! 광역 내에서 최초로 엘리트 몬스터 ‘가시촉수’ 를 쓰러뜨렸습니다. 당신의 무용에 모두가 감탄합니다.]
 [위대한 업적의 보상으로 모든 스텟이 5만큼 상승하며 추가적으로 500마력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마침내 기다리고 있던 푸른색의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빙고!”
 누구보다 빨리 게임내의 히든 룰을 발견했을 때처럼 기쁜 순간이었다. 올 스텟이 5만큼 상승했다거나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는 500마력이 생겨났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시스템 자체가 엘리트 몬스터 가시촉수의 죽음을 공인했다는 부분인 것이다.
 정말로… 이제 내 앞길을 막을만한 것은 없었다.
 “그럼 드디어 끝을 향해 가보실까?”
 목적지인 포인트 A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남짓. 전속력으로 달릴 경우 그야말로 한 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나는 자신의 업적을 치하하듯 일부러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공터를 지나 붉은 벽돌 건물의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세이프 하우스였군.”
 포인트A로 명명된 최종 목적지는 다름 아닌 세이프 하우스였다.
 좀비물 게임에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소로써 주로 스테이지를 넘기거나 피로도를 해소하기 위해 이용하게 되는 안전가옥.
 망자들이 돌아다니는 도시의 전경이 좀비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과 흡사해 보인다는 점을 들어보면 이것은 꽤나 어울리는 클리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뭘 쓸데없이 평가하고 있는 거냐, 나는.’
 BJ이기 이전에 골수 게이머인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눈앞의 상황에 대해서 소소한 리뷰를 머릿속으로 작성해나가던 나는 이내 스스로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정신을 차렸다.
 코앞에 목적지점을 두고 있다고 해서 자신도 모르게 너무 방심했던 모양이었다.
 슬슬 하늘도 완전히 어두워지고 있는 중인데다가, 진짜 밤이 되면 또 무언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말이다.
 “더 시간 끌 건 없겠지.”
 나는 즉시 2층 공간에 마련된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철문의 위로 붉은색 A라는 알파벳만이 크게 새겨져 있는 입구. 이미 반쯤은 열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철문의 손잡을 움켜쥔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이런 건가?”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아준 것은 보통 가정집의 현관 및 신발장은 옮겨놓은 것 같은 좁은 공간과 함께 바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뚫려진 구멍. 그리고 그 구멍과 연결되어져 있는 사다리였다.
 이 세이프 하우스는 1층에 해당하는 부분에 문은 물론 창문마저 단절시킨 대신 그 모든 출입 수단을 사다리로써 구성해낸 것이다.
 만약에 2층 입구부터 고립되어진 상황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확실히 제법 괜찮은 안전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었다.
 “감탄은 이쯤 하고… 여기로 내려가면 되는 건가?”
 안으로 들어섰음에도 미션 클리어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이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는 거겠지.
 ‘좀 꺼림칙하긴 하다만…….’
 아래의 구조는커녕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어둠만이 가득한 사다리 아래의 공간이 영 꺼림칙했지만… 뭘 어쩌겠는가. 무사히 클리어 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제발 이걸로 정말 끝이기를!!’
 안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대기하고 있던 괴물이 공격해오는 다크소울식 뒤통수치기는 없기만을 바라며 나는 긴장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래로 내려와 단단한 지면을 내디뎌 가는 순간이었다.
 
 찌잉-
 “!!”
 
 일순간 관자놀이를 스쳐지나가는 짧은 통증.
 그와 동시에 나는 눈앞의 시야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지독한 현기증을 앓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몸의 통제가 빠르게 풀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위협을 느낀 내가 있는 힘껏 반발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이미 흐트러져버린 통제를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게 되는 것인가?
 “…씨발.”
 절로 토해지는 욕설을 입 밖으로 머금으며 나는 그렇게 정신의 끈을 놓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쎄~ 하도록 몰려들던 우려가 결국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대비를 하고 의심을 했어야 했다.
 불길하게 차오르는 예감을 무시하지 않고서 최후의 최후까지 대비를 했어야만 했다.
 시작부터 뭔 엘리트 몬스터 따위가 등장하는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세상이다. 마지막의 순간에 뒤통수를 칠 것이라는 가능성은 ‘만약’ 이 아니라 ‘반드시’ 의 범주로 놓고 갔어야 했던 것이다.
 바로 그 한 순간의 방심을 해버린 탓에 나의 모든 행동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열심히 키운 디아블로 게임의 하드모드 캐릭터가 결국 죽고 말았을 때처럼 허무해져 버리고만 것이다.
 이걸로 끝이다. 무언가 게임 같은 특성이 있긴 했지만… 눈앞에서 죽어간 사람만 2명 째 보았던 시점에서 이게 단순한 게임일 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세이브와 로드가 없는 최악의 게임이라는 인생처럼, 이 한 번의 실패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몸의 감각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의 의문을 품었을 때쯤에는…….
 “허억!”
 무심코 내디딘 한걸음의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난 직후와도 같은 감각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허억… 허억….”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나는 연신 거친 숨을 토해냈다.
 “뭐야… 살아있는 건가?”
 당연하게 죽음을 예상했던 나는 온 몸에 느껴지는 생동감과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주는 손발의 감각들을 만끽하며 정신의 끈을 바로 잡았다.
 “이건…….”
 약간은 흐릿하던 시야가 금세 밝아지고 습관처럼 주변을 크게 훑어본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들이 결코 기분 나쁜 악몽 같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나는 여실히 깨달았다.
 “거참… 악취미적인 방식이구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나는 그런 불만을 내뱉으며 비로소 몸의 긴장을 풀고서 늘어져 버렸다.
 그런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딱 기분 좋은 정도의 푹신함으로 등허리를 받쳐주는 소파의 감촉.
 눈을 뜬 시점에서 나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던 세이프 하우스의 내부가 아니라 넓은 거실의 최고급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소파와 마주보는 위치에는 새하얀 벽의 전체를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크기의 TV. 족히 100인치는 되어 보이는 면적의 위용을 보이고 있는 벽걸이 평면 TV가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그 커다란 검은색 액정 화면의 위로 반사되어 비친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본 나는 지친 한숨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족히 사흘 밤낮은 새고 난 뒤의 아침처럼 눈 밑이 거멓게 죽어있었던 것이다.
 하는 일이 게임 방송이고 필을 받을 때마다 밤샘 방송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눈 밑은 다크 서클에 절어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그 깊이가 심했다.
 그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소리겠지.
 아마 이런 식의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면 탈모 증세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단기간 만에 급격히 늙어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둘이나 죽고, 스스로도 죽지 않기 위해 사지를 지나서는 결국에 도착한 목적지에서 뒤통수를 맞는 상황에 처했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했다.
 아마 나처럼 멘탈이 강한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정신병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사건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모든 의심과 경계를 놓아버리고서 긴장을 풀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클리어를 했으니까.”
 죽음에 대한 절망과 함께 다시 깨어난 나의 시야에 최초로 보인 것은 족히 20평은 되어 보이는 크기의 넓고 쾌적한 거실의 전경이었다.
 눈앞에는 초대형 벽걸이 TV가 매달려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역시나 고급품이 분명해 보이는 오디오 세트 등을 비롯한 온갖 홈시어터들이 풀 세트로 갖추어져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관심이 팔릴 법한 꿈의 공간.
 하지만 내가 긴장을 풀기로 결심한 것은 그러한 물질적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눈을 뜬 내 시야의 좌측 편으로 푸른색 바탕의 스크롤 페이지가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문양도 없이 깔끔하게 문서창 정도의 서식만을 지닌 스크롤 페이지의 위로는 이러한 글귀들이 써져 있었다.
 
 [미션 클리어! 당신의 생존을 축하합니다. 당신은 훌륭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셨습니다.]
 [미션 평가 점수: 종합 S- 등급]
 ->생존력 A등급, 전투력 A등급, 판단력 A등급, 창의력 S등급, 미션 클리어 속도 S등급.
 [업적 가산: 뛰어난 업적 1회, 위대한 업적 1회로 합산 S등급의 평가가 주어집니다.]
 [미션 클리어 최종 평가 점수: S- 등급]
 
 미션 클리어에 대한 내용과 함께 나의 행동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까지 적혀져 있는 일종의 종합 평가서.
 최종적으로 나의 점수를 S-등급이라고 정의한 평가서의 아래로는 그에 해당하는 보상에 대한 내용들까지 알뜰하게 적혀져 있었다.
 
 *필드 내의 플레이어들 중 첫 번째로 미션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작은 선물이 주어집니다.
 *단기간 내에서 미션을 클리어 한 보상으로 적절한 선물이 주어집니다.
 *종합평가 S-등급에 해당하는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래도 크게 점수가 나쁘지는 않았군.”
 평가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나는 훌륭히 미션을 클리어해낸 것이다.
 적어도 여태까지 봐왔던 흐름에 의거하자면 시스템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미션을 클리어 했다는 것 역시도 명백한 사실일 터.
 게다가 눈앞에 비친 이 한가롭다 못해서 고급스럽기까지 한 공간들의 배치를 보자면… 이다음에 위험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극히 적었다.
 ‘그러니까… 이건 미션 클리어 후의 휴식시간 같은 거겠지.’
 은연중에 그런 결론을 내린 나는 평생 겪어본 일이 없었던 최고급 소파가 전해오는 안락함에 취해 10분 동안이나 늘어져 있다가 메시지 창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감았던 눈꺼풀을 다시금 밀어 올렸다.
 
 [띠링! 보상들이 정식 지불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사흘 동안은 휴식시간이니 가치를 증명한 자로서의 선물들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시간은 거실 TV 상단의 모래시계로써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차임벨이 울리는 듯한 맑은 사운드와 함께 새로운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로서 지금의 이 공간이 완벽한 안전지대이며, 미션 클리어로써의 휴식 시간이 부여된 것이 아닐까 했던 나의 가설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또 사흘이란 말이지. 거참 사흘 되게 좋아하네.”
 푸념과 함께 나는 고개를 들어 벽걸이 TV의 위를 주시했다.
 본디 아무 것도 없던 벽걸이 TV의 위쪽으로는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모래시계가 있었는데, 뒤집어진 흐름에 따라 위쪽으로 잔뜩 쌓인 모래가루들이 아래를 향해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솔직히… 뭔가 분위기는 있는데 전혀 직관적이지는 않은 두루뭉술한 시계.
 하지만 그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홀로그램 모래시계의 위쪽으로 남은 시간들이 친절하게 숫자로도 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71시간 59분 57초]
 
 모래알갱이의 낙하에 따라 일정하게 1초씩 그 숫자가 줄어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과 함께 주변을 다시 크게 돌아보았다.
 당장에 보이는 이 거실만 해도 20평은 되어 보일 정도로 널따란데 그 끝으로 이어져 있는 문이나 복도, 계단 등을 보자면 적어도 이 집은 100평 이상은 된다고 봐야 했다.
 만약에 혼자서 산다고 하면 그야말로 돈지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미 없이 크기만 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잠깐 머물러간다는 느낌의 상황이라면 오히려 갈 곳이 많다는 점에서 더없이 훌륭한 공간.
 ‘일단은 주변을 자세히 둘러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한 나는 망설임 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탐사지로 정한 곳은 거실 좌측으로 이어진 모던한 분위기의 북유럽 풍 나무 계단이었다.
 
 ***
 
 “후우, 드디어 끝이군.”
 집안을 모두 탐사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거실과 연결된 공간들이 당초의 예상보다 족히 3배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면적만으로 보자면 이 집은 저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택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라던가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 공간적 넓이만으로 보자면 어지간한 저택만한 정도의 크기는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천국이었다.
 휴식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TV, 컴퓨터, 게임기, 오디오 등등의 기본적인 여가용품들은 당연하게 갖추어져 있었으며 해당 기기들에는 즐길 수 있는 부속품들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TV로는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들이 방송되고 있었으며, 다시보기 기능을 통해 미뤄둔 하루종일 예능방송만 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컴퓨터로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으며, 무난한 고 스펙으로 구성되어져 있어서 이대로 앉아 방송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게임기와 오디오 역시도 모두다 최신품이었으며, 그 옆의 선반으로는 온갖 게임 패키지들과 음악CD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하루 종일 그것만 파고 들어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야말로 할 일 없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는 2~30대 남자라면 천국과도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라인업.
 물론 갖추어진 휴식시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도어파를 위한 것들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배려한 것인지 따로 헬스장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스쿼시를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존재했다.
 건전하게 휴가를 즐기기 위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입을 모아 칭찬을 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라인업인 것이다.
 “설마 풀장까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북유럽풍의 계단과 이어진 2층의 공간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풀장을 포함한 헬스장, 스쿼시장, 찜찔방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적인 여가시설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휴식에 대한 배려는 비단 놀이 부문에 대해서만은 아니었다.
 거실 한 편에는 넓은 주방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온갖 조리용품들과 식기들이 갖추어져 있음은 물론 3대나 되는 냉장고 속에는 온갖 요리재료들과 인스턴트식품들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하아… 지치는구만.”
 완벽한 휴식을 취하게 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그 모든 공간들을 돌아보느라 한껏 지쳐버리고만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최고급 소파의 위로 늘어져 기대었다.
 단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릴 정도로 저택의 공간은 방대했던 것이다. 대강 추론 해봐도 300평은 넘어가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었다.
 무려 300평이 넘어가는 휴식공간이라니… 그야말로 꿈의 공간이 아닌가.
 어른들을 위한 놀이동산. 정확히 말하자면 성인 남자를 위한 완벽한 놀이동산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아무리 넓다고는 해도 결국 외부로는 나갈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긴 했지만, 어차피 주어진 시간이 사흘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밖으로 나갈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뭐 하러 굳이 안 좋은 공기를 마시고 땀을 흘려가며 밖으로 나선단 말인가.
 심지어 이곳은 천장에 매달린 공기 청정 기기를 통해 쾌적하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유지되기 때문에 삼림욕을 하고 있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하아… 아깝네.”
 소파에 앉은 채로 이마를 짚은 나는 진심으로 그런 아쉬움을 토해냈다. 이토록이나 완벽에 가깝도록 준비된 휴가를 나는 아마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깝다… 아까워.”
 재차 아쉬움을 토해내며 나는 소파에서 훌쩍 몸을 일으켜 세웠다.
 100인치 평면 TV로부터는 아까 전에 틀어둔 무한도전의 특집편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흘러나오며 자연스럽게 입주변의 근육을 흐물거리게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 취해있을 틈은 없었다.
 ‘이 시간들도 사실은 모두 준비기간에 포함된 것일 테니까 말이지.’
 휴식기간이라고 말하며 보란 듯이 완벽한 휴식공간까지 제공하긴 했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냥 평범하게 휴식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들은 아닌 것이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직후에 주어지는 시간은 대개 다음 스테이지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경우가 많지.’
 아마 이게 평범한 게임 내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지난 스테이지를 지나오며 벌어들인 돈이나 아이템들을 사고팔며 장비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었을 것이었다.
 ……평범한 게임이었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건 현실이었으며, 이용하기 편한 상점 같은 시스템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상점은커녕 인터페이스도 없지.’
 미션 완료 직전 본 메시지창에서 모든 스텟이 5만큼 상승했다는 내용을 보고 이제는 상태창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상태창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인벤토리 기능 같은 것도 없었다.
 분명히 미션 클리어의 보상으로 선물 같은 것을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정작 무엇인지 확인해볼 방법도 없는 것이다.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대체 다음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를 때는 일단 뭐든 박아보는 거지.”
 암담함 속에 최대한의 긍정을 끄집어낸 나는 그 즉시 2층의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엇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위한 곳이라며 굳이 헬스장이나 풀장 등의 활동적 여가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
 만일 내 짐작이 맞다면……,
 ‘이건 분명히 수련을 위한 기간이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가며 나는 마침내 헬스장으로 도달했다. 땀내 나는 장소라는 인식과는 달리 아직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아 쾌적한 공기만이 맴돌고 있는 헬스장.
 그 안에서 호기롭게 웃통을 벗어던진 나는 곧장 런닝 머신으로 향했다.
 운동을 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준비운동과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통한 웜 업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라 잘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다행히 나는 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멍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꽤나 선호하는 편인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전까지는 망상에 빠져들 수 있는 무신경함이, 나에게는 있었다.
 “자! 그럼 달려보실까?”
 능숙하게 런닝머신을 조작해 코스 설정을 한 나는 가볍게 발걸음을 놀리며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약 2시간여가 지나갔을 때였다.
 
 [띠링! 지속적인 수련의 성과로 체력 스텟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내게 주어진 사흘의 기간은 결코 휴식시간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될지 대해서는 명확해졌군.’
 2시간 동안의 유산소 운동을 통해 나는 체력이라는 스텟이 1만큼 증가하는 효과를 얻었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종류의 운동을 할 경우 힘이나 민첩과 관련된 스텟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
 ‘전사 타입으로 성장할 거라면… 역시 힘, 민첩, 체력 이 3가지를 중점적으로 올리는 게 좋겠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올려야 할 능력치는 역시 힘이었다.
 “…흐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적당히 관절들을 풀어주며 즉각 벤치프레스 머신으로 다가가 호기롭게 100kg이나 되는 추를 올려놓았지만……,
 “끄으응!”
 업적 보상으로 5나 되는 스텟이 올랐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방구석 폐인인 나의 근력으로는 추를 눈곱만큼 들어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크흠! 그래, 운동을 하는데 무게가 다는 아니니까.”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쪽팔려서 어설픈 변명을 토해내며 나는 벤치프레스 머신의 추를 40kg으로 옮겨놓았다.
 
 ***
 
 빰빰빠빠빠, 빰빠라바밤-
 
 “허억!”
 
 심플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그만큼이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군대 특유의 기상 알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급살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뜬 장소는 다름 아닌 최고급 소파의 위.
 휴식과 진행을 반복하며 무려 8시간동안이나 쉬지 않고 운동을 하고난 뒤 누워서 TV를 감상하다가 그만 곯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당연한 순서였다. 망자들의 필드에서 눈을 뜨고 휴식 공간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웠었으니 그 피로가 뒤늦게나마 몰아칠 법도 한 것이다. 하물며 나는 8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서 운동에 전념했다.
 사실 말이 8시간이지 이 정도면 거의 무슨 보디빌딩 선수급의 운동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내용을 들여다보자면 선수와 비교를 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빈약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다. 촘촘한 계획을 따라 유산수와 무산소 운동을 번갈아하며 균형을 맞추고 지속적으로 근육에 긴장을 전해준 결과 총 도합 10만큼의 스텟 상승을 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힘 스텟이 5만큼, 민첩과 체력이 각각 2와 3만큼 상승한 증가폭이었다.
 상승한 스텟의 효과가 얼마만큼이나 실제로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한 업적을 거둔 보상으로 얻게 된 각 스텟들의 상승폭이 5만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초반에 그리 작은 폭의 상승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시간도 아직은 이틀이나 넘게 남아있는 상태인 것이다.
 ‘남은 시간은… 약 58시간인가?’
 이틀하고도 약 반나절분의 시간이었다.
 “끄응…!”
 눈꺼풀을 밀어올림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모래시계 위의 시간을 확인한 나는 신음성과 함께 힘겹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 몸이 근육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래도 운동 후 꼼꼼히 마사지를 하고 잤던 탓에 크게 무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죽겠네.”
 엄살과도 같은 말을 토해내며 나는 묵직한 어깨를 주무르며 부엌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상황에 전념하여 온 정신을 기울이다보니 여태 허기를 조금도 때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나마 망자들의 필드에서 제트스키를 타기 전 허기를 채웠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안 그랬으며 아예 운동을 하다가 힘이 빠져 쓰러져버렸을지도 몰랐을 일이니까 말이다.
 “후우~ 이제 좀 정신이 드는군.”
 물과 함께 얼음까지 한꺼번에 따를 수 있는 김과수 정수기로부터 냉수를 따라 마신 나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싸늘한 냉기에 그제야 몽롱하던 정신이 깨는 것을 느끼며 재차 몸의 상태를 체크했다.
 근육통이 있긴 하지만 몸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닌 수준.
 고작 4시간뿐이긴 해도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한 탓에 몸의 활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좋아, 오늘도 이대로 달리면 되겠어.”
 또다시 오늘 하루를 뜨겁게(?) 달구어갈 운동계획을 머릿속에 정리해가며 나는 초보자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스테이크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포장을 뜯고 전자렌지에 돌렸다.
 보통 인스턴트라고 하면 조잡한 고기 페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스테이크는 어딘가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그것처럼 고기가 두툼한데다가 심지어 크기까지 컸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음식인 것이다.
 ‘딱히 지금 몸을 만들자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앞으로의 일들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니 미리 몸을 만들 준비를 해두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스테이크와 함께 곁들어 먹을 신선한 채소들을 후라이팬 위로 조리해가기 시작하며 쉬지 않고서 여태껏 알아낸 사실들을 정리했다.
 ‘일단 이 공간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TV가 나오는걸 보면 일단 방송 전파는 통하고 있는데다가…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지.’
 영문도 모른 채로 사람을 끌고와 목숨이 걸린 게임을 강요한 주최 측(?)치고는 헐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히 배려심이 넘치는 태도.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내밀어진 당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터넷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도움을 청할만한 경찰서 등의 사이트는 모두다 [Warning]이라는 메시지에 가로막혀 있었으며, 스카이프나 카카오톡 같이 외부로의 전화를 걸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다운조차 받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게임을 까는 것에 한해서는 제약이 없는 이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게임으로 들어가 간접적인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언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단 말인가.
 게다가 게임 내에서 영문 모를 장소에 끌려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해봤자 정신병자나 중2병의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게다가 시스템은 내게로 주어진 시간이 사흘, 정확히는 72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곧 다른 곳으로 이동되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즉, 여차저차해서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 간접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쳐도 제한시간 내에 나를 구하기 위한 구조대가 이곳까지 파견될 확률 따위는 없다는 뜻.
 ‘정작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뭐.’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보통 인터넷이 연결된 PC를 통해 검색엔진에 접속하면 해당 접속지의 지역을 대강 확인할 수 있다.
 휴대폰에서 GPS를 통해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듯이 컴퓨터에서도 똑같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 설치된 컴퓨터로는 그러한 지역 정보들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완벽하게 외부와 단절된 장소임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결국엔 이것도 다 함정인거지.’
 보통 위기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히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려 들 것이고, 그것은 이내 절박함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어 스스로를 좀먹게 될 것이었다.
 스스로의 정신으로 과부하를 걸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은 결코 탈출의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절망을 안겨줄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미친놈처럼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서 소통하려 들고 발악을 했는데도 그것이 결국에는 다 헛짓거리라는 결론에 다다른다면?
 아마도 그 순간 멀쩡히 멘탈을 간수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한순간 절망에 차올라 결국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가 키운 희망이 크면 클수록 반대로 돌아오는 절망도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암담하지.”
 그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인터넷의 제약들을 깨달은 순간부터 일찌감치 외부와의 소통은 포기했다. 거기에 매달려서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느니 차라리 1분 1초라도 아껴서 다음의 미션을 대비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그래도, 나도 인간인 이상 혹시나 해서 인터넷 곳곳을 돌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검색해보았지만, 부랄 친구 놈이 즐겨 읽던 책의 장르인 생존 판타지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정보 외에는 건진 것이 없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서 번역기 노가다까지 해가며 외국 사이트들까지도 모두 뒤져봤지만 결국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도 헛수고를 하고 말았다는 결말, 데드엔드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탓에 심적인 타격은 크게 없었다. 그저 확실시 되었을 뿐이었다. 다음의 미션을 대비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가다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그 노력의 시간들이 다음번에서의 내 목숨을 살려줄 커다란 자산이 되어줄 테니까 말이다.
 치이이익-
 “이크!”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화력이 거세어 졌던 모양이었다. 후라이팬에 눌러 붙어 거멓게 탄 자국이 생겨버린 야채볶음을 보며 나는 한숨과 함께 가스렌지의 불을 껐다. 그에 맞추어 때마침 띠잉! 하는 소리와 함께 완성의 신호를 알려오는 스테이크.
 “이러면… 반 성공이라고 봐야하는 건가?”
 야채볶음은 망쳤지만 스테이크는 훌륭히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스테이크는 데워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지만.
 “아무렴 어때, 일단 먹자!”
 스테이크로부터 풍겨오는 고소한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자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식기대에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어들어 즉시 스테이크로 달려든 나는 며칠이나 굶은 산적이라도 된 것처럼 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내는 곧장 입속으로 고깃덩이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고기는 극상의 맛이었다. 두 글자로 축약하자면, 미미(美味)!!
 과연 아름다울 미(美)라는 한자가 쓰여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
 
 “후욱! 후욱!”
 수련에 집중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가 최초에 주어진 사흘의 시간도 이제는 6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수능에 대비하는 고3의 마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고작 4시간 정도의 수면 시간과 10여분 남짓의 식사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들을 수련에 투자한 탓에 나는 많은 스텟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힘, 민첩, 체력, 이 3가지의 스텟을 모두 10만큼씩 상승시켜낸 것이다.
 그것은 힘을 좀 더 중점적으로 올리려고 했던 최초의 계획과는 미묘하게 어긋난 결과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힘 스텟을 10만큼 더 성장시키게 된 순간,
 
 [해당 레벨에서의 힘 스텟이 성장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레벨이 오를 때까지 이제 더 이상 수련을 통한 힘 스텟의 증가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라는 내용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메시지마저도 함정으로 간주하고서 근력 훈련에 더 매달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깔끔하게 내용을 받아들이고서는 근력 훈련을 중단하고 헬스장을 나와 스쿼시장으로 향했다.
 힘 스텟 성장이 멈춰버린 지금 민첩과 체력 스텟을 올리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운동이 바로 스쿼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나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아서, 나는 스쿼시에 매달리는 거의 매 시간마다 민첩이나 체력 중 하나의 스텟을 랜덤하게 1씩 상승시킬 수 있었으며, 결국에는 두 스텟들까지 모두다 한계치인 10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육체능력과 관련된 모든 수치를 다 마스터한 것이다.
 물론 ‘해당 레벨’ 이라는 꼬리말이 붙었으니 만큼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노라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스텟 노가다를 하는데도 이제 나름 재미가 들린 바람에 성장 한계치 따위가 있다는 게 탐탁치는 않았지만…….
 별 수 있나, 시스템이 원래 그런 거라는데 까라면 까야지.
 게다가 한편으로는 성장 한계치를 둔 시스템에 대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에 불만은 금새 사그라들었다.
 만일 지금의 상황이 결국에는 타인과 경쟁을 해야만 하는 투쟁의 방식의 게임이라면 한계치를 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시작부터 한계이상의 능력을 지닌 존재가 나타나버리면 분명히 밸런스 붕괴와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 밸런스 조절을 실패해서 망해버린 게임들을 다수 겪어왔으며, 그 중에는 내가 직접 숨겨진 꼼수나 버그들을 발견해서 본의 아니게 망하도록 만든 케이스도 몇몇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당 게임회사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먼저 찾아냈다는 희열감에 그런 외적인 감정 따윈 떠올릴 틈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위의 예시에도 알 수 있다시피 게임에 있어서 밸런스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플레이어간의 경쟁을 장려하는 투쟁 방식의 게임에서 밸런스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
 그러니 수많은 게임들의 운영진들이 밸런스 조절에 그렇게나 애를 먹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게임에 있어서 밸런스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응? 지금 같은 상황에 웬 게임타령이냐고?
 하지만 그것이 현실인 걸 어쩌겠는가.
 혹자는 무언가 현실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게임에 빗대어서 얼렁뚱땅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해 올지도 모르겠지만, 스텟이 존재하고 시스템 메시지가 존재하고 있으며 ‘레벨’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상황은 게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플레이어 본인의 목숨이 걸려있는 생존게임이라는 것 정도겠지.
 때문에 시스템은 처음부터 경쟁자 간의 성장 밸런스가 붕괴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레벨당 성장 스텟 제한이라는 안전장치를 걸어두었다.
 남들이 모르는 길을 발견하고 혹은 별개의 노력을 기울인 선구자들이 남들보다 앞서 나아갈 수는 있어도 시야에서 사라져버릴 정도로 멀어지지는 않도록 말이다.
 이러한 밸런스 이론을 통해서 보자면 사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끝을 맺은 셈이었다.
 더 운동을 해봐야 성장할 스텟이 없는데 뭐하러 진을 빼가며 땀을 흘리겠는가. 그러니 그때부터는 괜한 고생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는 게 답이었다.
 3가지 스텟을 한계까지 찍은 시점에서 남은 시간이 26시간 정도였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사실 이 장소가 지닌 본래의 취지대로 휴식을 만끽하면 되었던 일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4시간 수면을 지키며 피곤에 절은 몸을 움직이고 땀에 절어가며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이건 현실이니까!’
 단순히 스텟이 조금 상승했다고 해서 스스로가 강해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실제로도 망자 필드에서 만났던 철구는 신체적인 전투능력으로 보자면야 나 같은 방구석 폐인보다는 훨씬 강할게 분명했지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생각조차 못한 채 추태를 보이고 말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련은 분명 쉬지 않고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
 “후욱! 후우욱!!”
 검도를 하듯 목검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려치며 나는 어느덧 턱 끝까지 차오른 숨결을 힘겹게 가라앉혔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훈련은 일종의 검술 훈련이었다.
 스텟 한계치를 달성한 이후 무언가 괴물과의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를 뒤져보다가 안방 장식장에 멋들어지게 걸려 있는 흑단 목검 한 자루를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려치기, 횡베기, 종베기, 찌르기 등등 검으로써 가능한 모든 자세를 구분동작으로 나누어 반복 숙달하며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물론 기껏 하루 반나절 정도를 집중하여 목검을 휘둘렀다고 해서 한순간에 내가 검도의 고수가 된다던가 하는 일은 없겠지만……, 수련을 한 것과 안 한 것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전자가 우수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는 없었다.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게임에서의 노력… 즉, 노가다는 곧 진리와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스를 조절한 탓에 다시 천천히 안정되어가는 숨결을 땀과 함께 토해내며 나는 연신 허공을 향해 목검을 휘둘러댔다.
 “후욱! 후욱!!”
 하루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의 수련이었지만 같은 자세를 족히 천 번은 넘게 휘둘러왔던 탓일까.
 여러 가지의 각도를 향해 매섭게 목검을 휘둘러가며, 나는 스스로의 움직임이 이전에 비해 족히 2배는 더 유연하고 위력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는 별로 바뀐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말한 적 있듯이 결국에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노가다는 배신을 하지 않으니 쓸데없이 과도한 기대를 품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크던 작던 노력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써 되돌아오니까 말이다.
 “…근데 솔직히 좀 쉬고 싶다.”
 노력의 결실과는 반대급부로 찾아드는 아릿한 근육통들이 무심코 본심을 토해내도록 만들기도 했지만, 나는 이내 게으름을 털고 가슴속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밀어 넣으며 다시금 검술 훈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5시간 남짓. 시간이 끝나가기 2시간 전부터 나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예정이니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시간 정도 밖에는 없었다.
 “후우우….”
 땅이 꺼져라 내뱉어가는 한숨과 함께 기계적으로 휘둘러져가는 목검.
 “지겹다.”
 노가다는 분명 배신하지 않지만, 누가 해도 지루하다는 점에서 사실 게임을 즐기기 위한 요소로써 추천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
 
 “드디어 가는 건가.”
 길고 길었던 사흘의 시간도 모두 소모되어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의도적으로 남긴 2시간의 순수한 휴식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찜질방과 안마기 등 신체 피로 회복과 관련된 것들만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며 알찬 시간을 보내던 나는 주어진 시간을 30분 남겨둔 시점에서 한 가지의 새로운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30분 뒤에는 전송이 시작되니 거실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시간 내에 전송 위치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포기의 의사로 받아들여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침내 다음의 장소를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미 마음의 결심을 하고 있던 나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거실로 향했다.
 미션 클리어 직후 눈을 뜨게 된 최초의 공간이며, 지난 사흘간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요람이 되어주었던 최고급 소파가 있는 장소.
 거실로 향한 나는 어렵지 않게 이전과 달라진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소파와 TV사이에 시원하게 비워져 있던 바닥의 위로 누가 봐도 마법진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전적인 디자인의 육망성 서클이 생성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한가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그야말로 한량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었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되어서 한껏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생물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늘어진 채 2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금 움직임을 개시했다.
 
 우우우웅-
 
 바닥에 그려진 육망성으로부터 잔잔한 공명음이 일며 붉은색의 빛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전송이 될 것이라는 대기 알림음 같은 거겠지.
 늘어져 있었던 만큼이나 부드럽게 이완된 몸의 근육들로 미약하게나마 긴장을 돌려놓으며 나는 육망성의 안으로 올라와 섰다.
 이제 남은 시간은 정확히 4분 하고도 20초 정도. 이제 불과 몇 분만 지나면 나는 다른 곳을 향해 전송되어 진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망자 필드 때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결코 만만한 장소는 아닐 터.
 망자 필드가 게임에서의 튜토리얼이라고 가정해보면 어쩌면 이제부터 마주하게 될 세상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이나 걱정 대신 묘한 기대감이 샘솟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둔 상태니까.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지.’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내가 지금껏 해온 모든 노력과 준비들을 다 믿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걱정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사흘간 잠도 줄여가며 노력을 해온 만큼 나는 분명히 성장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사실은 내심 믿고 있는 구석도 있었다.
 완벽한 휴식 체제로 돌아서기 직전,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검술이 나올 줄이야.’
 순수하게 전투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휴식 기간 동안 움직이는 행동 결과에 따라 스텟이 상승하는 시스템을 보고서 어쩌면 스킬도 생성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정말로 생성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킬 ‘기본검술(패시브).F’ 가 생성되었습니다.]
 
 -기본검술(패시브).F -
 *F랭크.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검술.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검술 행동시 전투력 5%상승. 같은 종류의 스킬과 효과가 중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검술 훈련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의 눈앞으로 생성된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스킬을 얻은 것이다. 검술을 사용할 시에 5%만큼의 전투력 향상 효과를 내주는 지속형의 스킬을 말이다.
 최하급이라고 할 수 있는 F랭크의 스킬인 만큼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거라도 있다는 게 어딘가. 게다가 사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에 스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꽤나 많이 큰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만큼 스킬의 존재는 있는 것만으로도 이득인 것이다.
 한마디로 개이득!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던 만큼 나는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공략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패기를 한껏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나의 능력을 시험하고 또한 한계까지 밀어붙여 올 이 영문도 모를 현상에 대해서 말이다.
 
 츠즈즈즈즈-
 “이제… 다시 시작이군.”
 
 5분이 된 시점부터 빛을 띠기 시작한 육망성의 마법진은 10초가 남은 시점부터 미약한 스파크까지 일으키며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과 함께 공기의 위로 미약한 진동을 일으키며 더욱더 짙은 붉은색의 빛으로 감싸여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카운트의 숫자가 줄어들어 가면 갈수록 더 강해지는 스파크와 진동. 그리고 마침내 카운트의 숫자가 1을 지나 0에 도달 했을 때.
 
 번쩌- 억-!!
 
 눈이 멀 것 같이 짙게 방출되는 붉은색의 빛무리와 함께 나는 일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챕터 6. 구원자의 소명
 
 “허으윽!”
 헛숨을 들이키며 의식이 깨어난다.
 동시에 드는 오한과 탈력감.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난 직후와도 같은 찝찝함에 나는 도무지 이 감각만큼은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군… 이라며 불만을 머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단순히 불만의 감상에 잡혀있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기척들이 주변으로부터 전해져왔기 때문이었다.
 막 웅성거리기 시작하며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워가는 잡음들. 그것은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의 부산함처럼 묘하게 신경을 긁는 소리였지만, 나는 그에 대한 것을 금새 털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신경을 향했다.
 
 [상태창이 개방되었습니다.]
 [인벤토리가 개방되었습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시야의 우측 아래로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시지를 읽은 즉시 나는 기다렸던 것처럼 명령어를 말했다.
 “상태창.”
 즈응-
 명령어를 뱉자마자 무언가 미묘한 효과음이 귓가로 울리며 눈앞으로 깔끔한 이미지의 상태창이 떠오른다.
 
 [상태창]
 
 이름: 권혁 (LV. 1)
 나이: 29세 (만 28세)
 직업: 미정
 상태: 건강
 
 HP: 100%
 MP: 100%
 
 고유 스킬: [게이머 감각(패시브)]
 보유 스킬: [기본 검술.F(패시브)]
 
 힘: 10(+15) 마력: 10(+5)
 민첩: 10(+15) 지력: 12(+5)
 체력: 10(+15) 맷집: 13(+5)
 
 전투력: 50
 주문력: 24
 
 “뭔가 고전적이긴 한데… 직접 보니 감회는 새롭군.”
 상태창의 내용을 한번 크게 훑은 나는 그런 시답잖은 감상을 머금으며 한 번 더 자세하게 상태창을 훑다가 스킬 란에서 시선을 멈추고는 버릇처럼 턱을 매만졌다.
 스킬란이 일반스킬과 고유 스킬 란으로 나뉜 것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것보다는 ‘게이머 감각’ 이라는 이름의 스킬 그 자체에 흥미가 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수련하여 얻어냈던 기본검술.F와는 달리 기억에 없는 스킬. 하지만 고유스킬의 범주에 속해있다는 건 본래부터 내가 지니고 있는 말 그대로의 고유한 스킬이라는 뜻이겠지.
 대강의 의미를 짐작한 나는 곧장 ‘게이머 감각’ 스킬을 클릭하여 툴 팁을 열었다.
 
 -게이머 감각(패시브)-
 *플레이어 권혁의 고유 능력이다. 게이머의 면모로 비현실에 쉽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면 순간적인 생존 대응을 합니다.
 *위험 감지 능력 및 위기 대처 능력이 눈에 띄게 상승.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30%만큼 상승.
 
 “호오? 이건….”
 꽤나 괜찮은, 아니 거의 사기급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스스로를 게임의 캐릭터라고 가정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1레벨의 입장이라고 가정해보았을 때에 처음부터 어떤 항목이던 30퍼센트나 되는 저항력 수치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항목인 순간 생존 대응만 해도 기습이나 습격 같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의 생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으며, 세 번째의 항목은 말 그대로 멘탈 그 자체를 지켜주며 판단력을 높여주는 효과까지 있는 것이다.
 고작 4줄에 가까운 설명일 뿐이었지만, 그 면면들을 보면 유용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의 순간까지 지나오며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던 묘한 이질감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스킬의 효과가 발산된 것이었다면 다 이해가 되지.’
 비현실적인 광경이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선가 미리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침착하게 유연하게 반응하며 생존경로를 짤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스킬의 효과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생성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 자신에게 감사해야겠군.’
 고유 스킬은 말 그대로 나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이나 특성에 의해서 파생되어진 스킬일 테니까 말이다.
 “좋아, 상태는 이만하면 충분히 확인했고… 다음은 인벤토린가?”
 나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의 명령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자 상태창 때와 마찬가지로 애매한 효과음과 함께 즉각 눈앞으로 펼쳐지는 인벤토리.
 총 16칸의 칸수 제한에, 200Kg이라는 한계무게를 지닌 인벤토리는 내가 생각한 딱 그대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비어있어야 할 인벤토리 안이 이미 2칸이나 채워져 있다는 정도일까?
 두 개의 아이템 품목들은 모두 투박한 나무 상자 모양의 아이콘을 하고 있었는데, 각각 [초보 모험가 무기 세트]와 [초보 모험가 방어구 세트]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이른바 초보자 세트인 것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지난번 망자 필드 때처럼 아무것도 주지 않고서 맨손으로 부려먹지는 않는다는 뜻.’
 그만큼이나 생존율 자체도 올라가게 된다고 봐야겠지만, 나는 왠지 걱정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내막도 알려주지 않고서 아무것도 없는 맨손만을 허락했던 망자 필드의 난이도가 그따위였다. 자칫 긴장을 풀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정도로 위험한 난이도인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게임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난이도는 더욱더 극악을 향해 수렴해간다.
 헌데, 이번에는 무려 방어구에다가 무기까지 제공되었다.
 튜토리얼 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실정.
 하지만… 반대로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난이도는 더 상승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맨몸일 때에 마주했던 상황이 그 끔찍한 것들인데 대체 이번에는 마주칠 상황은 얼마나 극악하고 끔찍한 난이도를 지녔다는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시점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드는 기분을 느꼈지만 이내 털어버리고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마음을 다 잡았다.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든 다가올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에 걱정하며 쫄아드는 대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편이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더 유리할 것이었다.
 “후우.”
 한숨과 함께 생각을 마무리 지은 나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며 바글바글하기까지 한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주변의 조형물과 위치로 보건데 아마도 광장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종마저 가리지 않은 다양한 군상들이 저마다의 옷차림과 저마다의 언어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어딘가의 도떼기시장에 오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상황이 그리 평화로운(?)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로군.’
 두려움, 절망, 당혹감, 분노 등등 다양한 형태의 음울한 분위기들이 광장 가득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나열한 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처한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며, 혹은 당혹감을 품거나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가 사실은 눈앞의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발생하는 반응들.
 나는 그런 이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마음속에 미약한 안타까움을 품었다.
 이 장소에 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고 온 이들이라는 뜻.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미 비현실을 경계를 익히 맛보고 지나쳐온 이상 눈앞의 현실이 결코 기분 나쁜 악몽 따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익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게 되면 애초에 이 장소까지 살아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을 테니까 말이다.
 다시금 되새기지만 이미 눈앞의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인정하고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
 “…….”
 실제로 감정을 토하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틈바귀 속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자신의 상태를 체크한 뒤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는 이른바 ‘별종’들을 보며 나는 광장에 모인 대다수의 인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심함을 동시에 품었다.
 ‘하긴…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경쟁일 테니까.’
 그러니만큼 안타까움은 들지만… 오지랖 넓게 나서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중하여 앞장선다든가 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애당초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인데 누구를 배려하고 또 받치려든단 말인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나는 연민이나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더욱더 깊이 눌러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차라리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만약 이것이 정말로 생존 경쟁의 상황이라면 1분 1초라도 더 빨리 움직임 사람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게 된다는 것은 어딜 가나 변함이 없는 부동의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금 인벤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빠르게 손가락을 뻗어 나무상자 아이콘들을 클릭해가려는 참이었다.
 “아아악! 어째서! 어째서 그런 거야! 이 쓰레기 같은 자식!!”
 날카로운 여성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광장에 가득 점철된 분위기로 보자면 딱히 별다를 것은 없는 평범한 반응들 중에 하나.
 모여든 이들도 일순 시선을 집중시키긴 했지만 금세 고개를 돌리거나 한 번씩 힐끗거리기만 하는 것이 크게 관심 있어 보이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서 나는 애당초 소리의 지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외침에는 시선을 향할 수밖에는 없었다.
 “승희는! 승희는 당신을 좋아했단 말이야!!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피를 토해내는 듯한 처절한 외침. 나는 왠지 그 목소리가 조금은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좀 더 자세히 귀를 기울이며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며 익숙해지는 목소리. 그에 나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것을 느꼈지만 딱 10보 이상의 거리를 둔 채 일정거리 이상을 다가가진 않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재수 없게 시빗거리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허용한 거리의 안쪽으로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란 말입니까? 저는 단지 최선의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여자의 절규에 비하자면 상당히 차분한 느낌을 지닌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묘하게 선명하게 들리면서도 기분 나쁜 느낌을 전해오는 목소리. 그 음성의 주인공은 말을 하며 스스로 설득력을 얻었는지 한층 더 확고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사실 소윤 씨도 큰소리를 칠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와달라며 애원하던 승희 씨를 외면하고 돌아선 것은 바로 소윤 씨가 아닙니까!?”
 “뭣? 그, 그건….”
 담담하게 쏘아붙이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예상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에 남자는 한층 더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했다.
 “만약에 제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면 그건 소윤 씨도 마찬가지인겁니다! 결국 똑같이 남의 목숨을 빌어 살아나온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아, 아니야… 나는 절대로 그런 게…….”
 남자의 말에 여자는 거의 완벽하게 설득되어진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처럼.
 하지만… 남자는 그 다음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접근하며 은근한 어조로 속삭이는 것이다. 오직 둘만이 들을 수 있을 법한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맞아요. 소윤 씨는 아마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거예요. 누가 동료를 버리고 싶겠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어쩔 수 없었던 건가?”
 “네. 어쩔 수 없었어요. 안 그랬다면 우리 모두가 다 죽고 말았을 테니까. 승희 씨 하나를 위해서 모두가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 우린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에요. 아마 승희 씨도 속으로는 이해했을 거구요.”
 “그, 그런 건가요?”
 마치 3선은 해먹은 국회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능숙한 남자의 달변에 여자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말에 완벽히 설득되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뱀과도 같이 날카롭고도 위력적인 혓바닥의 힘.
 우연찮게 남자의 얼굴과 마주하는 위치의 인파로 들어서는데 성공한 탓에 입모양을 통해 서로 간에 지나쳐간 이야기들을 모두다 읽어낼 수 있었던 나는 싸늘한 표정과 함께 입을 꾸욱 다물었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었다가는 금방이라도 욕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건 완전 악연이군.’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나는 제풀에 지쳐 주저앉고만 여자의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뱀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다시금 살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악연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존재.
 남자는 다름 아닌 나와 같은 필드를 지나왔던 최초의 동료 중 하나였던 박민혁이었다.
 혓바닥의 힘으로 나를 모함해 결국 혼자 이탈하도록 만들었던 주축인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내가 떠나올 때의 시점으로 비하자면 명백히 인원이 줄어들고만 생존자 그룹의 일원으로서 말이다.
 ‘정황상… 철구 씨랑 승희 씨는 죽은 모양이군. 그 중에서도 승희 씨는 희생당한 모양이고.’
 그야말로 일행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어 보이는 비슷한 분위기의 무리.
 그 중심에 선 박민혁은 맥이 풀린 소윤을 끌어안고 토닥이며 좋은 사람이자 훌륭한 리더의 역할을 다시금 훌륭히 연기해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서서 그를 노려보는 교복차림의 소녀, 지혜가 없었다면 아마도 완벽했을지도 모르는 그림.
 하지만 지혜는 다분히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박민혁을 쏘아보고 있었으며, 그런 지혜의 뒤편에서 소미는 여전히 유약함을 버리지 못한 모습으로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전체적인 심정적으로야 한때나마 같이 했던 이들이 다 죽지 않고서 저만큼이나 살아서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쁜 일이었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그들과 얽히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이나 우리들 간에는 많은 간극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간극을 줄여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지.’
 여기에서는 돌아서는 게 백번 이득인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결정한 나는 곧장 돌아섰다.
 어차피 시작점이 같다는 점만 제외하면 남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던 간에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모두를 외면하고 돌아서려고 했지만… 이것도 우연의 일치인 것일까?
 고개를 돌려가는 나의 시선 끝으로 희미하게나마 소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권혁 오빠!?”
 가녀리면서도 안타까운 소미의 목소리가 무겁게 나의 발목을 붙잡아 세웠다.
 이런 제길! 소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저들을 외면하고 돌아서기를 마음먹고 한 걸음을 채 떼어내기도 전에 불리고만 지금의 상황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고민했다. 이대로 부름에 응해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못 들은 척 빠르게 발걸음을 놀려 이 자리를 일단 회피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미치겠군.’
 만일 이대로 무시한 채 자리를 떠날 수만 있다면 나는 처음에 결심했던 데로 과거의 잔재를 모두 털어버린 채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자칫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위험을 자초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아마도 그 선택이 후회를 부르게 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었다.
 망자 필드에서도 익히 겪어보았다시피 냉정하게 말해 저들은 생존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저기 가증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박민혁의 경우는 오히려 관계하는 그 자체가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객관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스스로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여기서 싸늘히 돌아서는 편이 족히 백 번은 옳은 선택.
 하지만 어째서일까.
 소미의 목소리를 들은 시점부터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꼴같잖게 동정심을 품는 거냐?’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지만 생각을 거듭 반복할수록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웃기지만 왠지 모르게 소미로부터 마치 운명과도 같은 감정이 이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랑처럼 달콤한 감정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곳에서 소미를 밀쳐냈다가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는 그런 예감들이 자꾸만 신경을 자극해오고 있었다.
 이른바 ‘촉’ 이 존재감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얼른 떠나가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가 결국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오빠? 권혁 오빠 맞죠!?”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더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변한 소미가 완벽하게 나를 인식하며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으으… 결정해라! 빨리 결정해!!’
 그 와중에는 나는 쉼없는 갈등을 이어가며 고민의 늪에 빠져들어 있었다.
 사실 막말로 마음만 먹으면 소미가 붙잡더라도 그저 뿌리치고 달아나면 그 뿐이었다. 유약한 소미에게 수련으로 스텟까지 강화되어진 나를 묶어둘 수 있는 완력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래, 가버리는 거여!!’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발걸음을 부추기는 것과 동시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감정마저 억눌러가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어 마지막 상념을 떨쳐냈다.
 나는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촉을 믿고 있으며, 그것은 대개는 성공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까놓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경우들이었기 때문이 가능한 결과. 지금처럼 장점은커녕 단점만이 수두룩하게 꼽혀지는 상황은 아무리 촉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지양해야 될 부분인 것이다.
 여기서는 과감히 촉을 외면하고 이성적 판단을 따르는 편이 옳았다.
 …그러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일까.
 “후우우….”
 기다란 한숨과 함께 속내의 갈등마저 한꺼번에 토해내버린 나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모두를 외면한 채 진정한 홀로서기로써의 첫걸음을 내딛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애애애애애앵-
 
 느닷없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으악! 뭐, 뭐야!!”
 “또 괴물이 나타나는 거야?”
 “아, 안돼! 난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튜토리얼을 지나쳐왔다면 결코 모를 리 없는 섬뜩한 사이렌 소리에 광장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다시금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어 간다.
 종소리만 들어도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던 실험 속의 개처럼 우리들은 사이렌 소리가 들린 것만으로도 막연한 공포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길! 지금이라도 빨리 무기를 꺼내야 하나?’
 벌써 커다란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거나 아예 주저앉아버리고만 사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도 긴장감이 이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때 일수록 더욱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 법.
 사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펴 도주로로써 움직이기 편한 장소를 물색해가며 인벤토리창을 다시 띄워 올렸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나무 상자 모양의 아이콘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가려는 참이었다.
 
 『모두들 살아남은 것을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은 훌륭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으므로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을 만족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의미의 구원자가 되어 살아남고 또한 투쟁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벤토리의 메뉴얼북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모두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돌연 눈앞으로 떠오른 붉은색의 글귀.
 그것은 사이렌 소리만큼이나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대개는 미션의 내용을 제공하고 그에 대해 확고한 제한시간을 걸어 조급함과 긴장감을 불러오던 글귀.
 하지만 이번에 떠오른 글귀에는 미션에 대한 내용도 그에 대한 제한시간 따위도 없었다.
 단지 살아남은 모두에 대한 축하와 함께 오히려 용기를 북돋는 말들만이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엉?”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이번 글귀의 내용에는 벙 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잘 자고 있던 도중에 특수 훈련이 발생했다고 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뛰쳐나갔더니 사실 훈련일자는 내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애매한 기분에 잠겨들었던 것이다.
 일단 다시 잘 수 있게 됐다는 현실에 기뻐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결국에는 맞이하게 될 훈련에 대한 걱정과 긴장을 해야 하는 건지…….
 ‘…뭐냐고 이게!’
 왠지 모르게 놀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나는 누구인지 모를 존재를 향해 속으로나마 크게 소리 높여 불만의 외침을 토해내다가 이내 글귀에 있었던 한가지의 단어를 떠올리고는 인벤토리 창을 다시 띠워 올렸다.
 ‘그나저나 메뉴얼 북이라니… 이건가?’
 본래 두 개의 아이콘 밖에는 없었던 인벤토리 창에는 [메뉴얼] 이라는 이름의 노트 모양 아이콘이 새롭게 생겨나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메뉴얼북.
 얼핏 보이는 아이콘상의 디자인으로는 데X노트의 그것과도 닮은 메뉴얼북의 모습에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뻗어 아이콘을 클릭했다.
 촤라락-
 책장을 넘기는 듯한 사운드와 함께 순간적으로 돌출되듯 튀어나와 생성되는 검은색의 얇은 노트.
 상단에 흰색으로 [메뉴얼]이라고 적혀진 노트를 움켜쥔 나는 곧장 그것을 펼쳐 내용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곧장 이루어지지 못했다.
 꾸욱-
 어느새 돌아서있던 나의 정면까지 다가선 소미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옷깃을 단단히 붙잡아왔기 때문이었다.
 “오빠… 정말로… 정말로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져 내릴 듯 촉촉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진심 어린 기쁨의 감정을 떠올려 보이는 소미.
 그 순수하면서도 깨끗한 반응에 나는 왠지 먹먹한 기분이 되어서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소미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나의 담담함을 흉내 낸 표정이 그녀의 감정 한 곳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일까.
 울먹거리면서도 끝끝내 감정의 격류를 참아내며 나의 생존을 기뻐하는 데만 집중하려하던 소미의 표정이 일순 왈칵 무너지며 울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미안… 미안해요! 오빠를 믿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나의 옷깃을 꽉 쥔 채 파르르 떨며 소미는 시선을 내린 채 그런 고백을 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너무나도 애처로워 보여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미의 머리 위로 손을 얹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 그 처연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미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던 걸까.
 “흑, 흐윽, 흐아아아앙~!!”
 돌연 작고 가녀린 소미의 몸이 와락 안겨들며 커다란 울음소리가 광장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어, 엉?”
 순간 당황해버린 나는 허리춤에 안겨든 채로 티셔츠의 앞섬을 적셔가고 있는 소미를 때어내지도 보듬지도 못한 채 허둥대다가 순간 헙- 하는 신음을 머금고 말았다.
 전부터 도저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내게만은 유독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해오던 지혜가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는 한층 더 강렬해진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대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일단 여길 뜨죠.”
 내 억울함과는 무관하게 지혜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곳을 향해 집중되어지고 있는 수많은 시선들이 보였다.
 실제로 그런 의미로 쳐다보는 건 아니겠지만… 저렇게나 많은 시선이 집중되어지고 있다 보니 왠지 내가 여자애나 울리고 다니는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뭔가 억울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에 보여 지는 상황이 그리 되어버린 것을.
 뭔가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난감하게 꼬여들고만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는 여자애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기에도 참 애매하지 않은가.
 갑갑하긴 하지만 이리 되어버린 이상 일단은 이 광장을 빠져나가서 어디 조용한 장소까지 만이라도 같이 동행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야겠네.”
 나는 힘겹게 지혜의 의견에 동의하며 조심스럽게 소미를 때어낸 뒤 반쯤 부축하다시피 보듬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동해가는 와중에 멀어져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유독 뚫어져라 쳐다보는 박민혁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은 감정이 막연하게나마 전해져온다.
 ‘아무래도 지혜랑 소미는 무리가 나뉜 모양이군.’
 내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에게도 나름 괜찮은 지지력을 얻고 있던 박민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을 보면 관계가 틀어져도 아주 완전히 틀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들어봐야겠지만… 여태까지 지켜본 상황들과 분위기만으로도 대강이나마 짐작이 가는 시나리오는 있었다.
 떠나기 전 내가 지혜에게로 경고했던 상황 그대로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리라.
 “우선 광장을 떠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보자고.”
 “…그러죠.”
 지혜와 단답형의 삭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멀어져가는 와중에 슬쩍 고개를 돌려 박민혁과 시선을 마주쳤지만 그럼에도 그는 딱히 끼어들려는 기색은 없어보였다.
 그저 자신에게 들러붙다시피 한 소윤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보듬고만 있을 뿐.
 자상하게 등을 쓸어내리는 그 손놀림과는 달리 소윤에게 품은 의도는 그닥 좋은 것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닐 테니까.
 그대로 박민혁을 일별한 나는 소미를 부축(?)한 채로 지혜와 함께 광장을 벗어났다.
 
 ***
 
 “결국은 그렇게 됐던 거구나.”
 광장을 나서서 이야기 할 장소를 찾아 걷던 우리는 현재 마을 외곽지역에 속하는 곳에 있는 작은 통나무집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걷다보니 소미도 진정해서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낭비될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메뉴얼북을 펼쳤는데 바로 그 첫 페이지에 이러한 내용이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시작의 도시 램던트에는 빈 집들이 많이 있으니 마음껏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라는 항목이 말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근처에 있던 통나무집으로 향했고 그 이후로부터가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딱히 서로 회포를 풀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망자 필드에서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낡은 탁자를 중심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자마자 듣게 된 망자 필드 내에서의 일들은 정확히 내가 예상한데로의 방향으로 흘러갔었던 것 같았다.
 내가 난리를 치고 나간 직후 박민혁은 나를 까내리는 것과 동시에 차분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내가 했던 방법을 적당히 응용하여 탈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던 모양이지만… 그 이후로부터가 문제였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최대한 조심스레 움직여도 모자랄 마당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이동하던 도중 우연찮게 발견한 키가 꽂혀 있던 트럭을 대놓고 운용한 것이다.
 아마도 트럭의 속도라면 망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목표지점까지 빠르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택한 결정이겠지만… 문제는 도시 외곽과 이어져있는 도로의 정렬 상태였다.
 당시의 혼란을 증명하듯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그대로 멈춰서 있거나 여지저기 얽혀들어 있었고, 때문에 차량을 타고 이동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로의 초입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박민혁은 그제야 경로를 돌려 다른 방향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자동차 엔진 소리에 몰려든 망자들에게 포위가 되어버린 이상 트럭을 가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트럭의 이동경로를 고민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의 목숨에 대한 걱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박민혁이 나름대로의 지휘력과 재치를 발휘한 탓에 일행은 위기를 빠져나오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희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달리다가 발목이 삐어 넘어졌던 탓에 일행의 가장 후미에 있던 이승희가 결국 망자의 손에 걸려 허벅지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철구는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달려들어 손에 쥐고 있던 골프채를 휘둘러 대항했지만 쪽수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조폭의 세계를 허투루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는 듯이 능숙하게 골프채를 휘둘러 망자들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단번에 세 마리나 되는 망자를 힘으로 밀쳐내는 신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등 뒤와 발 아래로 접근한 망자에게 물려서 살점이 뜯겨나간 뒤로는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일행 중 가장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닌 존재가 허무하게 당해버리고만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평범한 남자 하나와 여자 네 명뿐. 그나마도 한 명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또 한 명은 언제 기절할지 모르는 비전투원이었다.
 솔직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는 상황. 하지만 거기서 박민혁은 또한번 무리하게 이동을 강행했다. 심지어는 밤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시간임에도 말이다.
 다행히도 그의 도박 수는 성공해서 일행은 최대한 망자들과 마주치지 않는 경로만을 조용히 이동해가며 남은 거리를 반이나 단축시킬 수 있었으며, 도로의 한편에 지어져 있던 주유소의 휴게실로 들어가 주린 배를 채우고 수면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날에 일어났다.
 밤사이에 많은 수의 망자들이 이동해와 주유소의 주변 지역을 빼곡하게 채운 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망자들이 소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감이 약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때까지 해왔던 대로 소리를 죽여 이동하면 그만이었지만, 망자들의 숫자가 저렇게나 많아서는 들키지 않고서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승희의 경우는 제때 지혈을 하지 않은 탓에 피를 많이 흘려서 빈혈 증세까지 있는 상태.
 그녀를 이끌고서 무사히 그 자리를 뜨는 것은 무리였다. 그저 망자들이 다시 자리를 이동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박민혁은 이동을 강행했으며… 마침내 그 잔혹한 본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동을 이어가다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망자 밀집 지역에 들어서자 돌연 호신용으로 쥐고 있던 식칼을 이승희의 허벅지 상처를 향해 깊숙이 박아 넣었던 것이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이승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그녀가 망자들의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유유히 망자들을 지나 내달린 끝에 일행은 무사히(?) 포인트 A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남아있던 모두가 제한 시간 내에 미션을 클리어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뻐하는 이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 이승희의 허벅지로 박민혁이 식칼을 박아 넣는 장면을 보지 못한 이는 없었기 때문에.
 광장에서 처음 나의 이목을 끌었던 소윤의 절규가 들렸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미션을 클리어 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저 달리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직접 이승희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박민혁의 행위를 더 이상 덮어두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혜와 소미가 박민혁으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없이 완벽하게 떨어져 나올 수 있게 된 내막이었다.
 여기까지에서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는 박민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해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었으며, 또한 일행과 내가 지나온 시간의 흐름이 분명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빠르게 미션을 클리어하고 휴식공간까지 지급받았던 나와는 달리 소미와 지혜를 비롯한 나머지 생존 인원 모두는 이제 막 미션을 클리어하고 난 직후였던 것이다.
 그것은 곧 각각의 플레이어들 간에도 명백한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
 사이렌의 메시지가 말하던 생존과 투쟁은 이미 그 전부터 진행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제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들이 어째서 그렇게나 차이가 났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미션을 클리어하고 3일이나 되는 시간을 쉬면서 마음을 안정시킨 사람들과 막 지옥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심정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는 건… 그때 광장에서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고득점자라고 봐야겠군.’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나의 강력한 경쟁자들이라는 뜻이었다. 메시지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구원자가 되어 생존하고 투쟁하라고 말이다.
 구원자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의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앞으로도 생존은 계속해서 강조될 것이며, 그것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투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도 좀 더 긴장할 필요가 있겠군.’
 이미 경쟁은 시작되었으며, 그 시작점은 모두가 같지 않다.
 그리고… 그 격차는 분명 쉽사리 좁혀지진 않을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조금 더 빨리 이 세상과 시스템에 적응하고 앞서나간 몇몇 선두권의 플레이어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 노력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나만 해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러니만큼 나 역시도 남들에 비해 조금 앞서 있다고 해서 우쭐해하거나 방심할 마음은 없었다.
 투쟁을 하는 데에 있어서 방심이나 안주하는 마음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역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생각을 정리해가던 나는 조금은 복잡해진 표정으로 소미를 응시했다.
 그리고…,
 
 ***
 
 
 “후우.”
 오두막집에 소미와 지혜를 남겨둔 뒤 홀로 빠져나온 나는 홀가분한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오던 마지막까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소미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선택을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이건 경쟁이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정심 따위는 일찍이 접어두는 편이 좋은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알려줄 수 있는 최대한의 노하우를 알려주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응용해나갈 수만 있다면 이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 체제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남 걱정은 여기까지 해두기로 하고.’
 이제는 나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만을 걱정해 나가야 할 때였다. 진정한 의미의 홀로서기를 결론지은 이상 이제 신경 쓸 대상은 오롯이 나 자신 밖에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선은 거점부터 마련하는 게 좋겠지.”
 다행히 미니맵 기능은 살아있어서 마을 곳곳을 돌며 맵상의 그림자를 다 지워내 시야를 모두 밝힌 나는 도시 북문 외곽에 위치한 자그마한 통나무집을 거점으로 선택했다.
 도시 밖으로 나가기도 편리할 뿐더러 기존의 원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상점가와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광장에 모여 들었던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족히 5000명은 되어 보였던 만큼 앞으로의 시장 경제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각종의 물품거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원주민들의 가게 밖에는 없었다.
 “자, 그럼 어디….”
 나름의 기준에 따라 거점을 결정지은 나는 버려진 통나무집의 내부로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다 털어낼 생각도 하지 않고서 곧장 의자에 앉아 메뉴얼북을 펼쳤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하는 것!
 어느새 진지한 눈이 되어 집중하기 시작한 나는 첫 페이지부터 꼼꼼히 메뉴얼북의 내용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군.”
 메뉴얼북을 모두 읽고 난 나의 첫 감상이었다.
 가장 초반부의 2~3페이지 상에서 알려주게 되는 플레이어로써의 기본적인 룰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성난 곰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죽은 척을 하라는 것만큼이나 신빙성이 없는 허접한 생존 정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 활용해도 괜찮을 법한 유용한 팁도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도달할 수 있는 상식선에 가까운 정보였기 때문에 딱히 팁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것들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메뉴얼북의 내용이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메뉴얼북의 내용은 초반부의 2~3페이지가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했다.
 이 세계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물론 플레이어들의 기본적인 목적.
 그리고 주기적으로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지는 강제 퀘스트에 대한 내용까지… 꽤나 다양한 정보들이 첫 2~3페이지 내에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내용 역시도 이미 게임이라는 틀의 세계관에 익숙한 나에게 있어서는 복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부분은 있었다.
 강제 퀘스트라는 항목이 있는 이상 플레이어가 투쟁을 하지 않고서 현실에 안주하고만 있는 다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강제’ 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만큼 강제 퀘스트는 한 달마다 주기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제공되어 지는데, 플레이어가 그것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곧바로 돌입하지 않고서 딜레이 시킬 수는 있었으며, 그 최대 제한 시간은 약 4달 남짓이었다. 강제 퀘스트는 최대 4개까지 만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제한시간이 다되면 플레이어는 무조건 가지고 있는 퀘스트들 중 하나를 반드시 클리어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하고 투쟁을 포기한 것으로 인정되어져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항상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으며, 그를 위해서라도 주도적으로 스스로의 스펙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었다.
 퀘스트가 진행되면 될수록 강제 퀘스트의 난이도는 미약하게나마 점점 더 어려워지도록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살벌하네.”
 다시금 알게 되는 시스템의 매정함(?)에 나는 살짝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절망어린 감정에 빠져 들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점만을 제외해놓고 보면 사실 이 세계의 룰은 굉장히 합리적인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틀을 제대로 지켜나가기만 한다면 넋 놓고 방심하지 않는 한 하무하게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은 아마 좀처럼 없을 것이었다.
 “뭐… 그건 지금 당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니까.”
 강제 퀘스트는 앞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시작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그때가 올 때까지는 자유시간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달리 나는 머뭇거리고 있을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직업!’
 메뉴얼 북으로부터 직업에 대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현시점의 우리들은 게임으로 따지자면 아무런 특성도 기술도 갖추지 못한 노비스(Novice) 등급의 기본 캐릭터에 불과했다.
 초심자, 무경험자, 풋내기라는 단어에 담겨진 뜻처럼 아직 기본도 만족시키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레벨을 올려 10LV를 달성하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이 쌓아온 전투방식과 성향을 토대로 랜덤하게 직업이 주어진다고 했으니 정확히 원하는 클래스를 선택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진정한 의미의 자격이라는 것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왕이면 전사 클래스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군.’
 그것은 나의 성향이 전사 타입의 플레이와 잘 맞는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사 직업군을 얻는 편이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게임이던 대부분의 경우 초반에 유리한건 전사 직업군이니까.”
 별다른 생각도 계산도 없이 일단 무기부터 휘두르고 보면 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전사는 무식하고 단순하며 심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한 직업일 런지도 몰랐지만……, 그만큼이나 초반의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사는 제법 괜찮은 클래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우선은 무기부터 선택해야겠군.”
 앉은 채로 새로 얻은 정보들을 제대로 다 갈무리한 나는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그러자 여전히 두 개의 칸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나무 상자 모양의 아이콘이 보인다.
 처음을 해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무기와 방어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들.
 그 두 가지의 사이를 오가며 갈등하던 나는 이내 마음을 결정하고는 먼저 [초보 모험가 무기 세트]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갔다.
 “음?”
 손가락을 아이콘의 바로 앞까지 가져가자,
 
 <무기는 오로지 한 가지 종류만 고를 수 있습니다. 신중히 선택해주십시오.>
 
 라는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을 대충 흘려버린 나는 곧장 손가락을 밀어 아이콘을 클릭했다.
 차컁- 촤라라라라-
 아이콘을 클릭하자마자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금속의 연쇄음. 그와 동시에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눈앞으로 크게 벌어지며 다가오는 무기 거치대의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호오?”
 그 세련된 연출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벽걸이 형식의 거치대에 고정되어 걸려 진 무기들이 지닌 디테일이 무심코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처음에 제공되는 초보 무기인 주제에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눈앞으로 진검이나 창, 도끼 등의 쇠붙이를 보는 것은 무언가 색다른 기분이 드는 게 있었다.
 “어디보자… 처음에 제공되는 무기는 이 네 가지뿐인가?”
 반쯤은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벽걸이 거치대에 매달린 무기는 총 네 종류였다.
 검, 창, 도끼, 석궁.
 이렇게 네 가지 종류의 무기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검, 창, 도끼 모두 기본을 대표하는 무기라는 것을 가정해봤을 때에 원거리 무기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코 활이 되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활은 사실 제대로 다루는 데에 꽤나 많은 숙련도를 요구했다.
 반면 석궁의 경우 조준만 잘할 수 있다면 초심자도 충분히 그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무기. 그러니 활과 화살 대신 석궁과 볼트가 나왔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편성은 아니었다.
 ‘물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나는 검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딱히 내가 검술 관련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검을 선택한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네 가지의 무기들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데다가 사용하는 방법 역시도 간편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존을 대비한 효율만 놓고 보자면 검은 썩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특히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짤막한 숏소드 따위의 무기라면 그 효용도는 더욱더 줄어든다. 사정거리가 짧으니만큼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철저히 안전만을 고려한다면 여기서는 무조건 석궁을 선택하는 편이 옳았다. 아니면 하다못해 사정거리가 긴 창을 선택하든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현시점에서의 나는 솔로플레이를 지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현 시점의 경쟁체제를 눈치 챈 이른바 선두권 플레이어들은 스스로를 감추거나 이미 알고 있는 이들끼리 최소한의 연합만을 이루며 성장해나가려 할 것이었으며, 이제 막 튜토리얼을 빠져나온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아직 정신을 추스르는 데만 해도 꽤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 밖에는 없는 것이다.
 느긋하게 휴식하며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다소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솔로플레이에 집중하던지.
 그 두 가지 중 내가 선택한 쪽은 당연히 후자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유사시 빠른 대응이 힘든 창이나, 장전시간과 볼트의 개수라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석궁은 결코 좋은 무기가 될 수 없었다.
 그나마 도끼는 다루기도 쉬운 편이고 파괴력이 있다는 점에서 숏소드보다는 나은 무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역시도 검만큼 다양한 활용도를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찌르기, 베기, 흘리기, 막기 등등 다양한 행동을 별다른 제약 없이 손쉽게 구사할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검밖에는 없으니까 말이다.
 ‘딱히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일단은 폼이 나니까.’
 생각을 결정한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터업-
 손잡이를 쥐자마자 투박하면서도 매끄러운 그립감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온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꼭 게임의 실사그래픽을 입힌 것만 같은 홀로그램식의 숏소드였지만 손아귀에 쥐여진 감각은 이것이 명백한 진짜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다.
 이제… 이 감각을 쥔 채로 손아귀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반쯤은 가상의 범주에 걸쳐있던 검 자루의 감각 역시도 완연한 실제가 되어 형성되리라.
 하지만 나는 검 자루를 쥔 손을 곧장 밖으로 당겨내지 못했다.
 “…뭣!?”
 검 자루를 쥐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사용 가능한 보상 기능이 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보상’ 이라는 명령어를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게 있으면 좀 일찍 좀 알려주라고!!
 메시지를 읽자마자 나는 왠지 기가 막혀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즉시 명령어를 내뱉었다.
 “보상!”
 명령어를 내뱉기가 무섭게 즉시 눈앞으로 떠오르는 깔끔한 디자인의 스크롤 창.
 상단에 [보상 목록] 이라는 타이틀을 매달고 있는 스크롤 창의 아래에는 여러 개의 보상 목록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채로 나열되어 있었다.
 
 [보상 목록]
 *필드 퍼스트 클리어 보상 (장비 염색 기능 1회 - 사용 가능)
 *단기간 미션 클리어 보상 (시작 무기 업그레이드 기능 1회 - 사용 가능)
 *종합평가 S-등급 미션 클리어 보상 (장비 마력 주입 기능 1회 - 사용 가능)
 
 새롭게 제공되어 진 세계와 룰에 대해 적응해나가느라 정신없이 머리를 굴려가며 매달리고 있는 사이에도 미션 클리어로 인한 보상 목록들은 온건히 남겨진 채로 사용되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게 있으면 좀 일찍 알려달라고!!”
 재차 불만을 토해가며 나는 즉시 보상 기능들을 활성화 시켰다.
 
 [시작 무기 ‘숏소드’ 를 염색하시겠습니까?]
 [시작 무기 ‘숏소드’ 를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활성 기능들. 딱히 설명의 툴팁을 읽어볼 필요도 없이 염색 기능은 선택된 장비의 색상을 변경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숏소드의 손잡이나 검신 등의 색상을 변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실용적인 기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족적 측면에서는 꽤 나쁘지 않은 기능.
 하지만 나는 우선 염색 기능의 사용은 뒤로 미루어두기로 했다.
 볼품없는 외형의 숏소드에 염색을 걸어봤자 딱히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무기 업그레이드 기능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무기 업그레이드의 기능은…,
 “…이건 완전 대박이네.”
 대박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용한 것이었다.
 “아예 무기를 바꾸어주다니……!!”
 시작 무기 업그레이드 권은 기존의 장비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기 자체를 업그레이드 시켜준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 증거로서 기능 활성화에 따라 숏소드의 옆으로 새롭게 생성된 홀로그램 창으로는 시미터, 바스타드 소드, 투핸디드 소드 등 총 3가지의 변경 가능 무기들이 떠올라 있었다.
 시작 무기 업그레이드 기능을 이용하면 나는 시작부터 숏소드 따위의 짧고 조악한 무기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검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제대로 된 무기를 든 채로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초보끼리의 대전이라는 척도를 놓고 보았을 때 손에 들린 무기의 우위가 그 길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엄청난 상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변경 가능 무기 목록을 살펴본 나는 바스타드 소드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라면 전사! 그 중에서도 대검!!’
 이라는 명언(?)을 떠올려 보자면 검신의 길이도, 그 폭도 더 큼지막한 투핸디드 소드를 선택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시작부터 투핸디드 소드 같이 커다란 칼을 든 채로 설쳐대다가는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지쳐버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반면 바스타드 소드는 ‘사생아’ 라 뜻을 지닌 무기인 만큼 상황에 따라 한손과 양손 모두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활용도가 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어중간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니만큼 바스타드 소드는 그에 어울리는 만큼의 안정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바스타드 소드를 변경할 무기로써 선택했고 그 기능을 곧장 적용시켰다.
 촤캉-
 강렬한 금속음과 함께 일순 점멸하며 사라져가는 홀로그램창들. 그 다음 순간 눈앞에는 오로지 투박한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만이 떠올라 있었다.
 “흐흐흐, 쩌는구만.”
 숏소드를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거룩함(?)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쥔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보상 목록창에는 염색 기능을 제외하고도 한 가지의 보상 기능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력 주입’ 이라는, 이름부터 그럴 듯한 이 기능은 정말이지 사기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소유한 무기나 장비 등으로 마력을 주입함으로 인해 특수한 효과들을 부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인챈트잖아, 이거!!”
 장비 마력 주입 기능에는 장비의 무게를 줄여주는 경량화 효과부터 불이나 냉기 등의 속성을 직접 부여하는 것까지… 다양한 효과들이 오픈 되어져 있었다.
 이 기능을 잘만 사용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사기급의 장비를 들고 시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그렇게나 커다란 가치를 지닌 기능이니만큼, 밸런스의 붕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함 인지 오픈 되어져 있는 효과는 사실 다소 미미한 것들 밖에는 없었지만…….
 그 기능들 중 어느 것을 꺼내어 놓아도 지금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초반의 시점에서는 하나같이 다 사기급에 준하는 유용한 효과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제약이 있는 거겠지만.’
 상상만 해도 흥분으로 콧김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사기성을 지니고 있으니만큼 장비 마력 주입 기능에는 사실 커다란 제약이 있었다.
 장비 마력 주입의 기능을 오픈 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 나열된 효과들을 직접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만큼은 마력을 따로 지불해야지만 했던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장비 마력 주입 기능은 놀이동산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입장료나 마찬가지인 기능이었다.
 놀이동산 내부의 기구들을 타기 위해서는 저마다 그에 해당하는 추가대금을 지불해야 하듯이… 장비 마력 주입 기능성에 속한 실질적인 효과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추가비용을 지불해야지만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비용으로써 쓰이는 것이 마력이고 말이다.
 때문에 사실 플레이어들은 보상으로써 장비 마력 주입 기능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은 되는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마력은 오로지 퀘스트의 완료 보상이나 업적 보상 등으로만 얻을 수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 반드시 수행할 수 있도록 드러나 있는 퀘스트의 종류는 한 달마다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지는 강제 퀘스트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뉴얼북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비단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일단 10레벨을 달성하고서 직업을 얻기만 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써 1000포인트의 마력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당장 10레벨의 경지를 달성하는 데에 얼마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확고한 가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플레이어들이 마력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의 수중에는 이미 꽤나 많은 수치의 마력 포인트가 누적되어져 있었다.
 광역 내 최초로 엘리트 몬스터 ‘가시 촉수’를 처치해낸 ‘위대한 업적’ 에 대한 보상으로써 5P만큼의 올스텟 영구 증가와 함께 500P만큼의 마력 포인트를 지급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당최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겠더니…….’
 설마 이런 식으로 가치를 알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마력은 금전과는 다른 의미의 거래 가치로써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어쨌든 지금 알게 됐으면 된 거 아니겠어? 으흐흐….”
 저절로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는 마력 주입을 통해 활성화 시킬 수 있는 효과들을 둘러보았다.
 한 가지 당 최소 100포인트에서 최대로는 500포인트만큼의 마력을 요구하는 효과들.
 전체적으로 한번 나는 그 중에서 장비 경량화(100P)와 무기 절삭력 강화(200P). 그리고 무기 내구도 강화(200P)의 기능을 선택했다.
 실전에서 제대로 써보기 전에는 그 효과를 단정할 수도 없는 속성 부여에 500P나 되는 마력을 한꺼번에 몰빵하기보다는 무기의 절삭력과 내구도에 포인트를 나누어 투자함으로써 실속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즈으으으응- 차컁-!!
 마력 투자를 결정짓자마자 선명한 공명음과 함께 푸른색의 빛무리가 번쩍 하며 튀어 올랐다가 사그라든다.
 그리고… 마침내 주입되어진 마력으로 인해 완벽하게 담금질이 되어 진 새로운 형태의 바스타드 소드가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진짜 대박이네.”
 육안 상으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는 형태로 변환된 바스타드 소드는 분명 이전보다 조금은 두터워진 것처럼 보이는 검신의 위로 서늘한 예기를 물씬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검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력주입의 영향 탓인지 본디 투박한 회색이던 검신은 번쩍거리는데다가 희미한 푸른색의 기운까지 머금고 있었다.
 기능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변화.
 그에 나는 자꾸만 입 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곧장 강화된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 즉시 나는 탄성을 토해내고 말았다.
 “키야~!!”
 사실 게임에서나 많이 써봤을 뿐이지 실제의 무기에는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나였지만, 그럼에도 지금 손에 쥐여진 바스타드 소드의 그립감이 상당하다는 것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손잡이를 쥐자마자 바스타드 소드 무게와 균형감은 물론 그 끝을 타고 향해있는 검신의 길이까지…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가 단번에 전해져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시작이 좋다 못해 아주 날아가겠구만.”
 손바닥 위로 착 달라붙어오는 매끈한 그립감을 느끼며 나는 생성된 강화 바스타드 소드를 허공에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한손으로도, 두 손으로도 별다른 무리 없이 자유자대로 휘둘러져 가는 궤적.
 ‘이 정도면... 알루미늄 배트 정도 일려나?’
 경량화 효과가 부여된 탓에 기존의 그것보다 대폭 무게가 하락한 바스타드 소드는 어린 시절 휘둘러보았던 알루미늄야구배트와 같은 정도의 무게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스타드 소드의 기본적인 무게가 대략 2~3kg정도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 무게가 거의 절반가량이나 하락한 것이다. 이 정도의 무게라면 부담 없이 휘둘러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좋구나~!!”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탄성. 그와 함께 나는 족히 10여 분 동안이나 검을 휘둘러대고 나서야 만족하고는 검신을 쓰다듬었다.
 그만큼이나 쉬지 않고 휘두른 뒤에야 몸에 열기가 오르며 무언가 워밍업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조금 곤란하겠군.”
 조금은 거칠어진 숨결을 삭이며 바스타드 소드의 검신을 들여다보던 나는 한숨과 함께 검신을 늘어뜨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득템(?)의 기쁨이 잦아들고 나자 현실적인 고민거리들이 떠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의 다양한 고민들이 떠올랐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골치가 아프게 여겨지는 부분은 역시 형평성의 문제였다.
 평상시에야 어떻게든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고 다닐 수 있다 치더라도, 전투 시에는 무조건 무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무기를 발견한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내게 시선이 끌리게 될 테고 그것은 자칫 시기나 질투와 같은 악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오롯이 생존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마당에 그런 별개의 문제들까지 끼어들게 되면 앞날이 고달파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래서 일단 임시로 조치를 취하긴 했다만….’
 검신의 위로 단지 은회색의 염색을 한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대처가 될 수 없었다. 검신이 지닌 특이함은 어떻게든 감춘다고 치더라도 기본 제공의 무기와는 확연히 다른 검의 외형만큼은 감출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검신에 대한 것마저도 조금만 사냥을 하다보면 금세 들키게 되어 있었다.
 절삭력 강화의 효과가 주입된 바스타드 소드의 검신이 예기는 분명 일반적인 검에 비해 2배는 더 우월할 테니까 말이다.
 “우선은 그냥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겠네.”
 지금이야 잔뜩 시선을 끌만한 일이라고 해도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정도의 무기는 개나소나 들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가급적 사람들의 시선이 올리지 않을 외진 곳을 위주로 돌아다니며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보다도… 우선은 검집부터 구하는 편이 좋겠군.”
 도시 내에서야 인벤토리 속에 넣어두면 된다지만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바깥의 지역으로 돌입해서까지 맨손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방침을 결정지으며 나는 보상 목록에 누적되어져 있던 기능들을 모두 소모하여 만들어낸 강화 바스타드 소드를 인벤토리 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즉시 미니맵을 펼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도시 외곽부의 길목들을 살폈다.
 “조금 시간이 애매하긴 하다만….”
 아직 해가 넘어가는 데까지는 그럭저럭 여유가 있어 보이니까… 이참에 가볍게 무기의 성능을 테스트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게다가, 아직 대부분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지만… 플레이어들은 모두다 빈털터리인 상태였다.
 시스템의 배려(?)로 인해 메뉴얼북을 읽어보기만 했다면 발품에 따라 각자 아늑한 보금자리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 것을 제외한 어떤 것도 플레이어들에게는 제공되어 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당장에 먹는 것만 해도 그러했다. 슬슬 밤에 다가오면서 이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가라앉으면 제일 먼저 배가 고파져오기 시작 할 텐데… 그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수완이 있는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기존의 원주민들과의 거래를 통해 식료품을 얻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전체적인 퍼센테이지로 놓고 보면 아마 소수집단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플레이어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도시 밖으로 나가 몬스터를 사냥하여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얻거나 마을 근방의 작은 짐승을 사냥해 직접 식료품을 조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당장에 오늘 저녁의 끼니를 지낼 가치를 습득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한시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아마 몇몇은 이미 눈치를 챘을 테니까.’
 그런 이들이 하나 둘씩 마을을 빠져나가 짐승이나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마을 근방의 개체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뒤늦은 사람들은 똑같은 가치를 얻기 위해 더 깊고 위험한 장소까지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 되기 싫으면 빨리 움직여야지.’
 반쯤 열려져 있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슬슬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태양의 기울기를 확인한 나는 곧장 나무 상자 아이콘을 클릭하여 방어구 장비들을 습득했다.
 크게 상의와 하의, 각반과 완갑 등의 세트로 이루어진 방어구 장비.
 무기 때와는 달리 방어구 장비는 선택권이 없이 일괄적으로 제공되어 지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썩 나쁘진 않네.”
 다 차려입으면 딱 게임 속의 용병 전사 캐릭터와도 같은 모습이 되는 장비들을 빠짐없이 장착한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둘러보며 만족감을 표하다가 이내 목덜미를 주무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내고 의지를 다지며 집을 나섰다.
 
 <『공략왕의 생존비법』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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