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헌터 스트라이크 백

프롤로그

2016.02.01 조회 14,528 추천 359


 남자는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에 서 있었다.
 언덕 아래 폐허에서는 수십 명의 헌터가 하나의 적에게 매달려 있었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
 애석하게도 이 싸움의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한탄을 했다. 왜 기회가 있을 때 준비를 하지 못했는지, 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툼을 벌일 동안, 인류 전체의 위기를 깨닫지 못했는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온 뒤였다.
 십 년…… 아니, 오 년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남자는 서른넷의 생이 끝나는 건 아쉽지 않았다. 아내를 잃었을 때, 그리고 하나뿐인 딸을 잃은 뒤로, 이미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하루를 더 살든 십 년을 더 살든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다만……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아내를, 딸을 죽인 그놈의 멱을 딸 수 있다면,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남자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목숨을 던져 최후의 성전을 벌인 헌터의 수는 이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B등급의 블란둠인 자기 하나가 가세한다고 달라질 싸움이 아니다.
 인류의 공적(公敵)은 웃는 얼굴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헌터들의 목이 잘리고 내장이 뽑혀 나왔다.
 
 한순간에 끝낼 수 있는 싸움을 놈은 천천히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파란색 구슬이 박힌 자신의 손등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마지막 메시지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용량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미 전해야 할 메시지는 모두 담았으니까.
 남자가 구슬에 대고 말했다.
 
 “20290909. 오늘이 인류 최후의 날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 네가 같은 날 나와 같은 풍경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제 내 역할은 끝이다. 나머지는 너에게 맡긴다. 부디 목적을 이루길 바라. 정태웅.”
 
 남자는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내었다. 그것으로 자기 손등에서 구슬을 도려냈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신음을 흘릴 여유가 없었다.
 손등에 핏줄로 엉겨 있던 구슬은 완전히 파내지자 저절로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남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한 차례 밝게 빛나더니, 뜨거운 물에 닿은 설탕처럼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남자는 그것을 지켜보다가 오른손을 등 뒤로 뻗어 검을 꺼내었다. 길이는 1.5미터에 달하고 폭은 15센티미터 달하는 대도(大刀).
 
 그것을 움켜쥐고 발이 푹푹 꺼지는 언덕을 내달렸다.
 
 “우와아아아!”
 
 거친 분노와 조그만 희망이 담긴 그의 절규가 모래로 가득한 허공에 메아리쳤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