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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대박(1)

2016.02.04 조회 11,502 추천 236


 1. 완빤치
 
 “어이, 완빤치!”
 녀석이 그렇게 불렀다.
 13살의 그때, 그는 외톨이에다 왕따였다.
 그때, 녀석은 학교를 주름잡는 짱이었다.
 
 “네가 정말… 그때의 그 완빤치니?”
 14년이 흐른 후,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13살 그때, 그녀는 그와 모두의 우상이었다.
 
 ***
 
 완빤치!
 그것은 그에게 고유명사다.
 그를 특정하는!
 그리고 녀석과 그녀와 그!
 세상에서 단 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2. 눈(1)
 
 돌연히 안개에 휘감겨드는 산자락.
 좁은 산길 가운데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까치독사.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천둥소리.
 시커먼 계곡 속을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는 거대한 뱀.
 먹구름 사이로 쉴 새 없이 번쩍거리는 백색의 섬광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느 순간 생겨나는 거대한 눈 하나.
 곧장 눈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눈이 공간을 온통 점하고서 짓누를 듯이 그를 내려다본다.
 
 ***
 
 꿈이다.
 악몽이다.
 꿀 때마다 그를 가위에 눌리게 만드는!
 그러나 그는 소망한다.
 그 악몽을 또다시 꾸기를!
 엄마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도록!
 해가 갈수록 엄마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은 자꾸만 퇴색되어가고 있다.
 가끔씩이라도 엄마를 추억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그리움이 사무치는데도!
 악몽은 주로 엄마의 기일을 즈음해서 꾸게 된다.
 그리하여 마치 일 년에 한 번 주는 선물처럼 엄마의 기억을 재생시켜 주고 있다.
 그 거대한 눈을 통해 그는 엄마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그 익숙한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되살려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 거대한 눈은 그에게 악몽이자,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다.
 
 3. 제기랄!
 
 성명 김철민.
 나이 27세.
 현역 만기제대.
 작년에 대학 졸업.
 현재까지 2년째 취업 준비 중.
 
 신이시여!
 이 암담한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나가게 해주소서!
 제기랄……!
 
 4. 긍정의 힘
 
 한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그예 조금씩 잡념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분명히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엉뚱한 공상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영 산만하기만 하다. 도통 집중이 되질 않는다. 주말이라서 그런가?
 시파! 취업 준비생에게 웬 주말?
 조바심이 성큼 달려든다. 이러다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릴 것 같다. 불안이란 놈이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이내 심장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10시 가까이 되도록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버티던 철민은 이윽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가자!’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집을 나서자마자 별것도 아닌 문제가 걸음을 붙잡는다.
 사실 매번 은근히 고민되는 문제다.
 대개의 경우 그는 원룸에서 5분 거리의 후면 도로로 가서 버스를 탄다. 지하철역까지는 동네를 관통하다시피 해야 하고, 그러고도 다시 두 개의 대로를 건너가야 하니, 대략 15분쯤을 걸어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관을 갈 때는 또 얘기가 다르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서 가는 버스 노선 때문이다. 역까지 걷는 시간을 포함해서도 지하철을 타는 쪽이 오히려 10여 분이나 빠르다. 그러니 ‘역까지 15분이나 걸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고라도, 10분의 시간 절약을 위해 지하철을 탈 것인가? 아니면… 그깟 10분쯤 더 걸리더라도, 그냥 편하게 버스를 타고 갈 것인가?’ 하는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시파! 산다는 건 왜 이렇게 늘 피곤한지……!’
 결국 그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판에 자그마치 10분씩이나 낭비할 수는 없다는 괜한 조바심에다, 또 간사하지만 이럴 때마다 써먹게 되는 긍정의 힘!
 ‘오랜만에 운동도 하고 좋잖아?’
 
 5. 별남
 
 첫 번째 골목을 지나서, 막 두 번째 골목의 모퉁이로 접어들다가 철민은 멈칫 서고 말았다.
 ‘이런… 시파! 버스 탈걸!’
 번뜩하고 스쳐 가는 후회!
 그러나 이미 늦은 후회였다.
 앞쪽에서 남자 하나가 마주 걸어오고 있다. 30대 중반쯤의 그 남자는 주머니에 양손을 쑤셔 넣은 채 팔자걸음으로 건들거리는 걸음이다.
 ‘쿵! 쿵! 쿵! 쿵!’
 철민의 심장박동이 사정없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몸은 딱딱하게 굳는다.
 남자가 흘깃 눈길을 주고 있다.
 철민은 얼른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주춤 골목길의 가장자리로 붙어 선다. 아아! 자신의 다리이건만 왜 이렇게 뻣뻣한지!
 남자는 건들거리는 걸음 그대로 철민의 옆을 지나간다.
 철민은 재빨리 걸음을 놀린다.
 남자가 두세 걸음쯤 지나쳐 갔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철민은 감히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는 못한다. 다만 가늘게 안도의 한숨을 흘려낸다.
 
 “어이!”
 그 나직하고 무덤덤한 목소리에,
 쿵!
 철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음 순간 그는 누가 잡아 돌리기라도 한 듯이 황급히 뒤로 돌아선다.
 “나 알지?”
 남자는 정말로 철민을 안다는 듯이 사뭇 편한 말투다. 평소 동네를 다니면서 먼 눈길로라도 철민을 보았던 것인가? 혹은 한눈에 간파한 것일 수도 있다. 철민이 별 볼 일 없는 상대라는 것을!
 “예? 아, 예……!”
 철민은 하릴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담배 있으면 한 대만 줘 봐!”
 “예?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는 것을 철민은 생생하게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에 대해,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한 심정이 되고 만다.
 남자가 피시시! 웃더니 건들건들 다가온다.
 “이봐!”
 “예?”
 “담배 안 피워?”
 “예……!”
 “나 안다며?”
 “예……!”
 남자가 갑자기 확 인상을 그린다.
 “지금 장난쳐?”
 “예? 제가… 뭘……?
 “이런, 씨바! 애가 왜 이리 답답하냐? 야! 내가 담배 한 대만 달라는데, 네가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하면? 그럼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대체?”
 그제야 철민이 퍼뜩 염두가 돌았기에 재빨리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둔 지갑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염두가 다시 한 번 돌았고, 그는 잡았던 지갑을 슬그머니 놓고는 다시 바지 앞주머니로 손을 집어넣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 몇 장을 꺼낸 그는, 얼마인지 세어볼 것도 없이 그대로 내민다.
 “저… 이거라도……!”
 남자가 언뜻 기대를 떠올리며 지폐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잔뜩 인상을 쓴다. 지폐는 세 장이다. 천 원짜리로!
 철민은 미리 알고 있었다. 어제저녁에 편의점에서 뭘 좀 사고 남은 잔돈이었으므로.
 “이게 다야?”
 남자가 눈에 힘을 주며 묻는다.
 “동전 몇 개가 더 있는데…….”
 철민이 다시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는다.
 “됐어!”
 남자가 짜증스럽게 말을 뱉는다. 이어 그는 영 개운치 않다는 빛으로,
 “쩝!”
 …하고 소리 내어 입맛을 다시고는 건성으로 덧붙인다.
 “고마워!”
 남자가 휙 몸을 돌린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무슨 볼일이 남았다는 듯이, 몸은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뒤로 돌린다.
 “이건 내가 네 담배를 대신 사주는 거야? 나는 딱 한대만 피울 거고, 남은 건 가지고 있을 테니까, 시간 날 때 찾으러 와! 알았어?”
 “예… 예!”
 철민이 얼른 대답하며 고개까지 숙여 보인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건들거리는 팔자걸음으로 멀어져간다.
 철민은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다. 남자가 다시 불쑥 뒤돌아보며 무슨 말인가 던질 것만 같다. 이윽고 남자의 모습이 앞쪽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철민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쉰다.
 “휴우~!”
 그리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온몸의 힘이 쭉 빠진다.
 
 철민이 그 남자와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렇더라도 남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우짜튼 간에 그런 놈하고는 아예 상종을 안 하는 기 최고인기라! 그라이까네 만약에 마주치게 되모 무조건 피하고 보소!”
 2년 전 철민이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 선불인 첫 달 월세를 챙기고 나서야 주인아주머니가 해준 말이다. 이 동네에서 살자면 특별히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라며!
 그때 그가 젊은 놈 체면에 그냥 “예! 잘 알겠습니다!” 하고 말기는 또 좀 그래서,
 “제가 좀 약하게 보여도, 현역으로 만기 제대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입니다!”
 하고 어쭙잖은 허세를 부렸더니, 아주머니는 지레 손사래를 쳤다.
 “오메야! 이 총각이 클 날 소리를 다 하네? 그놈은 인간이 아닌 기라! 보소, 총각! 똥이 더러버서 피하지, 무서버서 피하는 건 아이라 안 카던교? 싸우더라도 사람하고 싸워야지, 그런 사람 같지 않은 놈하고 싸워서 뭐할라꼬?”
 이후로 철민은 동네에 도는 남자에 관한 소문을 몇 차례나 더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을 한 것이지만 그 남자를 직접 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과연 그 남자가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라는 데 대해 확실하게 공감을 하는 데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남자를 아주 사갈(蛇蝎) 보듯이 했다. 이른바, 동네 양아치! 혹은 주폭! 더러운 성질머리에다, 막무가내 막가파였다. 특히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날에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눈길만 마주쳐도 시비를 걸었다.
 이유도 없이 욕질을 하거나 위협을 하는 것쯤은 예사였다. 조금이라도 거슬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소문에 의하면 남자는 서른다섯인가 여섯쯤인데, ‘별’을 수두룩하게 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끼리는 ‘별남’이라는 별명으로 남자를 칭했다.
 소문 값을 하는지 남자, 별남은 ‘그쪽’ 계통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빠삭’했고, 용의주도한 일면까지 있었다.
 즉, 아무리 취중이라도 법에 제대로 걸릴 만한 일은 용하게도 슬쩍슬쩍 피해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피해를 당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경찰은 기껏 주의만 주든가, 혹은 파출소로 끌고 가더라도 고작 훈방 정도로 끝나기 일쑤였다. 법적으로 그 이상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별남의 집요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한 사람의 집 앞을 며칠이고 끈질기게 지키고 서 있다가 신고자나 그 가족이 나오면 아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입에 담지 못할 지독한 욕을 퍼붓고, 또 흉기 같은 걸 슬쩍슬쩍 보여주는 식으로 살벌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치가 떨리는 악몽이 아닐 수 없었다.

댓글(13)

크라카차차    
김대산님이 그 김대산님인가요?
2016.02.16 08:40
현풍    
저도 궁금합니다. 예전 잡조행의 그 김대산 님 맞나요?
2016.02.20 20:37
루테시아    
김부장이간다1부 2부 즐감햇엇는데 반갑습니다 ㅎㅎ
2016.02.23 02:41
마인천하    
이럴 때 쓰라고 저렴한 중국과 베트남 양아치들이 있는 것 뒷탈이야 본인 문제 ㅎㅎ
2016.02.23 21:13
고든램지    
김부장이간다 그분이시구나
2016.02.23 22:15
나니    
그분인가요?
2016.02.29 18:26
꼬마바둑2    
강추
2016.03.02 11:01
버거낑    
이 소설을 보면서 느낀점은........배경은 현대인데 쓰는 작가는 구시대 사람이라 약간 부조화가 느껴진달까.......배경은 2016인데 주인공 하는짓은 범죄와의전쟁 시절임
2016.03.12 07:02
번뇌중생    
이거 제목이 왜이래요!!! 제목보고 삼류인줄 알았잖아요!!! 이거 복권 300억 걸리는 이야기 입니다 진행이 처음엔 별로 지만 가면 갈수록 재미 있어 지네요~~~~ 안타깝네요 정말 재밌는데.. 처음에 확 시선을 못 끌ㅇㅕ 들었네요;; 그래도 강추!!!!
2016.03.16 12:41
왕소단    
내용 좋은대요
2016.03.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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