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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름이 무엇이냐? - 1

2016.03.07 조회 4,658 추천 121


 제1장 이름이 무엇이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빛이라곤 이제 겨우 모양을 갖춘 달빛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길을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는 그런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탁한 숨소리, 거친 몸놀림으로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 아이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렸고, 해진 의복은 안쓰럽게 풀어헤쳐져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달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찼는지 걸음을 멈춘 아이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주머니를 빼 들었다.
 “후~ 큰일이네.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 아저씨 말대로라면 한참 전에 무이궁(武夷宮)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아이는 가장 높지도, 웅장함을 자랑하지도 않았지만 무이산(武夷山)에서 수려하기가 으뜸인 천유봉(天游峰)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만났던 약초꾼 사내를 떠올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기암절벽과 빽빽하게 우거진 숲뿐 사람의 인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는 아이의 눈에서 긴장의 빛이 흘렀다. 일각 전부터 들려오는, 그리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왠지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오랜 떠돌이 생활로 그것이 늑대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던 터. 자칫 놈들에게 발걸음을 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아무래도 냄새를 맡은 모양인데… 놈들하고 마주쳐서 좋을 것은 없지. 빨리 피할 곳을 찾아봐야겠다.’
 지척에서 들려오는 늑대들의 울부짖음에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아이는 즉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후각이 발달한 늑대들을 완전히 따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안전한 곳은 늑대들이 오를 수 없는 높은 바위나 나무 위뿐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도약력이 뛰어난 늑대들에겐 잔가지라도 나무를 오르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되기에 잔가지 없이 곧게 뻗은 나무가 아니라면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저기다.’
 한참 후에야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주변의 나무들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
 게다가 삼 장 높이까지는 잔가지 하나 없어 몸을 피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닌 거목이었다.
 거목을 향해 달려간 아이는 기둥에 몸을 밀착시키고는 팔다리를 적절히 교차시키며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수풀을 헤치며 일단의 짐승 무리가 달려들었다. 아이의 살 냄새를 맡고 달려온 늑대들이었다.
 크앙!
 거친 울부짖음과 함께 두 마리의 늑대가 달려들었다.
 한 마리는 미처 미치지 못했지만 다른 한 마리의 날카롭게 빛나는 이빨이 발목을 훑고 지나갔다.
 이빨이 스친 곳에서 단박에 피가 튀었다.
 “악!”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떨어지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아이는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나무를 올랐다.
 늑대들이 몇 번이고 도약을 하며 노렸으나 다행히 사정권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몇몇 늑대가 나무에 오르려고 시도를 해도 나무 기둥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만 만들어내며 번번이 미끄러져 내려갈 뿐 제대로 오르는 것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렇게 삼 장여를 올랐을까?
 횡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쉴 때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기운.
 절로 목덜미가 서늘해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늑대? 아니야.’
 늑대의 기운은 결코 아니었다.
 늑대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흉포하고 끔찍하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기운은 아니었다.
 늑대들도 그 기운을 느꼈는지 나무에서 물러나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동작을 멈추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시원스레 뻗은 나뭇가지와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잎뿐. 그러나 기분 나쁜 기운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아니, 계속되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살기!’
 그랬다. 기운의 정체는 살기였다. 그것도 결코 범상치 않은, 늑대들이 내뿜는 살기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위압감을 주는 살기였다.
 오를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살기의 정체를 모르는 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고정되었다.
 시간이라도 멈춘 듯 주변의 모든 사물이 정지되기를 일각 여. 마침내 살기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스락.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들 정도의 소음.
 그 뒤에 보이는 것은 한 쌍의 불꽃이었다.
 ‘반딧불… 일 리가 없지!’
 잠시 잠깐 그것이 반딧불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정확히 한 뼘의 간격을 두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허공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반딧불일 수는 없었다.
 애당초 반딧불은 그 정도로 밝지도, 짙은 살기를 내뿜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것이 짐승의 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문제는 어떤 짐승의 눈이냐는 것.
 의문은 잠깐도 가지 않았다.
 ‘호, 호랑이!’
 나뭇가지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수의 제왕이라는 대호(大虎)였다.
 지면을 향해 역으로 납작 엎드린 몸의 길이만 일 장에 이르고, 어른의 등짝보다도 더 커 보이는 머리의 중심에 위치한 두 눈은 지옥의 염화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한 방에 황소를 절명시킨다는 앞발과 그 거대한 몸을 나무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발톱의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크르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대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살짝 드러난 송곳니가 사신(死神)이 휘두르는 칼처럼 위압적이었다.
 “으으으.”
 난생처음 보는 대호의 위용에 압도당한 아이의 손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자연적으로 몸은 아래로 주르륵 밀려 내려갔다.
 크헝!
 천신(天神)의 호통이 이보다 더할 것인가?
 무이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에 모든 사물이 겁에 질렸다. 머리 위를 날아가던 새가 놀라 떨어지고, 이십여 장 밖에서 천적을 피해 조심스레 풀을 뜯던 사슴이 그 자리에서 덜덜 떨며 주저앉았다.
 나무 밑. 삼십여 마리가 넘는 늑대가 나름대로 으르렁거리며 대항을 했지만 존재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으악!”
 산천초목을 굴복시키는 포효를 이제 겨우 열두어 살 된 아이가 견디기란 불가능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포효에 귀를 틀어막으며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기가 죽어 있던 늑대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 순간, 대호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깽!
 늑대의 것이라곤 어울리지 않는 단말마와 함께 가장 먼저 아이를 덮쳐 가던 늑대가 나가떨어졌다.
 깜짝 놀란 늑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움직인 대호는 그때까지 꿈틀대고 있던 늑대의 머리를 앞발로 찍어 눌렀다. 그리곤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또다시 포효했다.
 자신이 찍은 사냥감을 함부로 노리지 말라는 경고. 가히 제왕으로서의 자신감과 풍모가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크르르!
 동료의 피를 본 늑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대호의 주변을 에워싸며 갈기를 세우고 적의를 드러냈다.
 늑대들의 기세를 느낀 것일까.
 대호도 살짝 몸을 낮추며 더욱 위협적인 포효성을 뱉어냈다.
 서로를 노려보며 잠깐 동안 소강상태가 있었으나 백수의 제왕인 대호와 흉포한 약탈자 늑대들의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두머리의 신호를 받은 늑대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하면서 아이를 사이에 둔 심야의 박투가 시작되었다.
 대호가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늑대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움찔하며 몸을 피하려고 하는 늑대. 그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잠시 뜸을 들인 대호의 앞발이 방향을 틀며 정확하게 늑대의 머리를 가격했다. 공격을 받은 늑대는 단박에 머리가 박살 나 절명했다.
 그럼에도 늑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옆구리를 노리고 뒷다리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어떤 놈은 엉덩이를 공격했고, 등에 올라타는 놈도 있었다.
 대호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정면으로 덤비는 늑대들은 앞발로 찍어 누르거나 휘둘러 물리치고 목덜미를 물려고 덤비는 늑대는 오히려 물어 찢어버렸다. 비록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대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사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아이가 정신을 차렸다.
 “으으으.”
 힘겹게 몸을 일으키기는 했어도 고막에 충격이 왔는지 아이는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래도 늑대들과 대호의 싸움을 보며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곧바로 파악했다.
 머뭇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이는 황급히 몸을 피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우두머리 늑대가 걸음을 막으며 위협을 가했다.
 크르르!
 우두머리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대호와의 싸움이 신경 쓰여서인지 곧바로 덤벼들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도망을 치려 한다면 금방이라도 공격하려는 듯 납작 엎드린 자세였다.
 싸울 수도, 그렇다고 도주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아이.
 아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싸움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대호를 공격했던 늑대들의 수는 어느새 반수 이상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떼로 덤빈 늑대들에 의해 대호의 부상도 상당한 듯했다. 엉덩이와 옆구리에 꽤나 깊은 상흔이 보였고,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뒷다리는 운신하기가 힘들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상처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진 탓에 공격도 날카로움이 떨어졌다.
 ‘늑대들이 이기면…….’
 대호가 쓰러지면 당연히 그 다음은 자신이 될 것이다. 물론 대호가 이겨도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왠지 늑대들보다는 덜 위험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호를 도와 싸울 생각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자신을 막고 있는 늑대를 물리치고 도주를 하겠다는 생각뿐.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해보는 거야.’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곤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다가 봇짐에서 곱게 접힌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극도로 흉포해진 늑대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치고는 참으로 보잘것없었어도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라곤 그것뿐이었다.
 크르르!
 낚싯대를 꼬나 쥐고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우두머리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살짝 드러난 이빨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것 같았다.
 “타핫!”
 아이가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낚싯대를 휘둘렀다.
 생각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에 늑대가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아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거푸 낚싯대를 휘둘렀다.
 재빠르게 몸을 트는 늑대를 잡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로운 반격에 손목을 물릴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빡!
 십여 차례의 시도 후 처음으로 공격을 성공시켰다.
 낚싯대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격하는 늑대의 머리를 정확하게 강타한 것이다.
 비명도 없이 펄쩍 뛰어 물러나는 늑대는 크게 당황한 듯했다. 하나,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아이였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회심의 일격을 가했음에도 늑대에겐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였다. 아니, 타격은 고사하고 오히려 살기만 증폭시킨 것 같았다.
 대호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아이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고 여긴 것인지 우두머리 늑대가 수하 늑대들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우두머리의 곁으로 다가오는 두 마리의 늑대를 보며 아이는 고민에 빠졌다.
 ‘어쩐다? 내공을 써야 하나?’
 아이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운지라 본신의 실력을 발휘한다면 늑대 두어 마리 정도는 능히 해치울 수 있었다.
 문제는 무공, 정확히 말하면 내공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
 
 “얽히고설켜 있는 힘의 균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온다면 네 몸이 견딜지가 의문이다. 어쩌면 그 즉시 갈가리 찢길 수도 있어. 경고하노니 정확한 원인과 치료 방법이 있을 때까지는 함부로 내공을 일으키지 말거라.”
 
 함부로 내공을 쓰면 죽거나 폐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뇌리에 맴돌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아이는 약간의 머뭇거림 후에 즉시 내공을 끌어올렸다.
 무공을 사용했을 때 닥쳐올 위험이 두렵기는 했어도 우선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늑대들의 위협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네놈들!”
 아이는 전신에 충만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낚싯대를 움켜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리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으로 몸을 흔들어 늑대들의 공격을 피하고 기묘한 낚싯대의 움직임으로 옆구리에 허점을 드러낸 늑대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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