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플레이어 시스템 [E]

플레이어 시스템 1권

2016.03.16 조회 1,630 추천 19


 # 1화 각성
 
 1
 
 유세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를 쫓아오는 것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그 존재들로 유세하는 일단 좀비라고 부르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행동은 좀비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느릿하게 움직인다는 상식과는 달리 이것들은 매우 민첩하다는 점이었다.
 “후우, 합!”
 달리던 중이면서도 호흡을 고른 유세하가 안광을 빛내며 기합을 발했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좀비들이 마치 뭔가에 짓눌리기라도 하듯,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좀비들이 일시에 제압당하자 유세하는 기다렸다는 듯, 부엌칼을 꺼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따버렸다.
 “후우, 후우.”
 또 다시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유세하는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근처에 있는 건물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기척을 죽이고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는데 섬뜩한 기운이 유세하를 덮쳤다.
 “크르르.”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오는 낮은 울음소리.
 그것의 정체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체구를 자랑하는 새까만 개였다.
 마치 송아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개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고 유세하는 행여 들킬 새라 숨조차 쉬지 못했다.
 한동안 주변을 배회하며 유세하를 찾던 개는 포기했는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좀비들의 사체를 한 입에 먹어치우고는 자리를 떠났다.
 유세하는 개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갔나?”
 개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질 않자 유세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축 늘어졌다.
 그 상태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유세하가 낮게 읊조렸다.
 “플레이어 정보.”
 
 [플레이어 정보]
 *이름: 유세하
 *나이: 30살
 *레벨: 3 *경험치: 34%
 *보유능력: 중력제어(숙련도: 초급1 50%)
 *상태: 정상
 
 정보를 확인한 유세하는 경험치와 숙련도가 각각 1퍼센트와 2퍼센트가 올랐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보 창을 닫았다.
 “젠장! 빌어먹을!”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욕설을 내뱉으며 유세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날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던 날이었다.
 이변은 무척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이 기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옆 사람을 물어뜯었다.
 그 사태는 누군가 수습을 해보려 하기도 전에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사람이 좀비화되는 것만이 아니었다.
 짐승들도 더욱 거대해지고 광폭해졌고 좀비, 인간 할 것 없이 모조리 씹어 삼켰다.
 사실 그것은 좀비화라기 보다는 마치 무언가에 감염이 되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세하는 그런 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어느 정도 사태가 마무리가 되어 가는 시점에 그는 새로운 능력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플레이어 시스템이었다.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며 제발 이것이 꿈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플레이어 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컴퓨터로 머릿속에 입력이라도 한 것과 같은 현상이었고 유세하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플레이어 시스템을 이용해나갔다.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어찌어찌 생존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절대 죽을 수 없어!”
 입술을 깨물며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 유세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며 안전을 확인한 뒤, 조심조심 최근 거점으로 삼고 있는 아지트로 향했다.
 그곳은 도심 외곽에 있는 지하 노래방이었는데 가까운 곳에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편의점이 있었고 좀비들의 숫자가 적어서 제법 괜찮은 장소였다.
 아지트에 도착한 유세하는 문단속을 꼼꼼하게 한 뒤,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안전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한 층 더 강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유세하는 창고로 만들어놓은 룸으로 들어가서 물품의 수량부터 파악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닌 식량이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굶어죽기 마련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식량을 확보해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좋아. 이걸로 한 달은 버틸 수 있겠군.”
 아껴 먹는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유세하는 판단했다.
 어차피 내일도 밖으로 나가 좀비들을 사냥해야만 했다.
 좀비를 사냥하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고 그의 플레이어 스킬인 중력제어의 숙련도도 높일 수 있었다.
 레벨을 올리고 플레이어 스킬을 강화한다는 것은 좀비들로부터 보다 안전해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데 바보처럼 숨어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기본지침으로 삼고 행동하는 만큼 유세하는 날이면 날마다 좀비들을 사냥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았지만 지금은 제법 능숙하게 좀비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플레이어 스킬인 중력제어가 좀비를 사냥하는데 보다 효율적인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 결과였다.
 문제는 아까도 봤던 대형화와 광폭화가 진행된 짐승들이었다.
 짐승들에겐 유세하의 플레이어 스킬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유세하는 그것을 자신의 플레이어 스킬의 숙련도와 레벨이 낮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딱 봐도 좀비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함을 자랑하는 외관이었으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어쨌든 짐승들은 매우 위험한 대상들이었다.
 대형화와 광폭화가 되면서 감각은 조금 무뎌진 모양인지 냄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유세하에겐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만약 냄새까지 민감했다면 아까 개와 마주쳤을 때 그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좀비들만 사냥해서 레벨과 숙련도를 더욱 높여야 해. 적어도 짐승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현재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면 상대할 수 있게끔 강해지면 된다.
 유세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치 게임에서 탐험을 위해 맵을 밝혀놓듯, 지도를 그렸다.
 지도엔 어느 곳에서 어떤 짐승들이 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정보도 꼼꼼하게 기입하고 난 뒤, 침대로 사용하고 있는 쇼파에 몸을 눕혔다.
 “과연 살아남은 사람은 나뿐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 넓은 지구에서 유세하 홀로 플레이어 시스템을 각성했을 것이라곤 생각되질 않았다.
 다만 며칠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유세하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유세하는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살아남은 사람이 없지는 않으나 그 숫자는 무척 적은 것이라 판단했다.
 “자자. 내일도 사냥을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해.”
 유세하는 두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그는 내일도 무사히 생환할 수 있기를, 다른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도를 했다.
 
 ***
 
 유세하는 숨을 죽인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좀비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넷. 주변에 다른 녀석들은 없지?’
 신중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더 이상의 좀비가 없음을 확인한 유세하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적으로 중력제어를 통해 좀비들을 짓누르는 한편,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움직임이 느릿해지거나 바닥에 넘어져 버둥거리는 녀석들의 목을 사정없이 쑤셔 박았다.
 “케륵! 케르륵!”
 가래가 들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세하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케레레레렉!”
 유세하의 몸이 골목으로 스며들듯 사라지자마자 사방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들려오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웁, 후우!”
 심호흡을 하고난 뒤, 유세하는 신중하게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이동했다.
 행여 소리를 내서 좀비들의 이목이라도 끌까, 조심조심 움직여서 전투지역을 벗어난 유세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힘들다.”
 조그맣게 중얼거린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불러들여 레벨과 플레이어 스킬의 숙련도를 확인했다.
 아직까진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고 확인을 마친 유세하는 다음 사냥을 준비했다.
 그는 아지트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다섯 마리 이하의 좀비들만 노렸다.
 그 이상의 숫자는 부담스러운 것이 그가 중력제어로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숫자는 네 마리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간 사냥을 하면서 능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를 체크하여 얻어낸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그의 힘이 적용되는 곳은 좀비 네 마리를 나란히 세워뒀을 정도의 간격뿐이었고 그 강도도 움직임을 제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간혹 좀비가 되는 과정에서 육체가 심하게 손상된 개체의 경우에는 바닥으로 쓰러뜨려 움직임을 구속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현재로썬 상당히 약한 힘이었다.
 “케에에엑!”
 세 마리의 좀비를 또 다시 순식간에 해치운 뒤, 자리를 벗어나니 소리를 듣고 또 다시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면서 유세하는 아직 약하긴 하지만 이 플레이어 시스템이 얼마나 유용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냥 지역을 바꿔 또 다시 좀비 세 마리를 무난하게 해치우니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속된 플레이어 스킬의 사용으로 등급이 상승합니다. 플레이어 스킬 중력제어 초급2가 초급3으로 성장합니다.]
 
 이로써 유세하의 레벨은 5가 되고 플레이어 스킬은 초급3으로 성장했다.
 레벨의 상승과 플레이어 스킬의 등급 상승에 유세하는 오늘의 사냥은 이쯤에서 종료하기로 했다.
 저녁노을이 지는 것을 보니 슬슬 해가 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밤이 되면 좀비들은 더욱 강력해졌다.
 우연찮게 알게 된 사실이었고 유세하는 절대 밤에는 사냥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었다.
 아지트로 귀환한 유세하는 전신에 깃들기 시작하는 안도감에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나름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이 공간이 그래도 터전이라고 안도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서 얼굴을 매만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것이 얼마 만에 웃은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적응을 하여 여유를 되찾는 것을 보니 새삼 인간의 적응력이란 것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공감이 갔다.
 “그래…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니고 여유를 되찾으면 좋지. 좋아.”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유세하는 모처럼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사건이 발생한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궁금해졌다.
 그동안 생존에 집중하느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디 보자…. 대충… 보름… 정도 되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으면서 따져보니 대략 13~15일 정도가 지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2주일 정도가 지났는데 이제 겨우 레벨이 5라…. 나도 어지간히 게임을 못하는 놈인가 보군.”
 유세하는 중얼거리곤 혼자서 낄낄 웃었다.
 일단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고 나니 슬슬 그의 성격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란 점을 생각하면 2주일이 되었건 3주일이 되었건 레벨을 상승시키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유세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성적에 다소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다.
 게임 강국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의 자존심이 용서치 않는다는 실없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내일부터는 사냥의 속도를 좀 올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호기롭게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했지만 유세하는 곧 자신의 생각을 접었다.
 목숨은 소중한 법이었다.
 실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내일을 위해 쉬자고 생각하며 유세하가 쇼파에 몸을 눕힐 때였다.
 
 [중간 보스가 등장합니다. 변이체들이 더욱 강해집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메시지였고 그 내용을 확인한 유세하는 반사적으로 튕기듯 일어났다.
 
 2
 
 “중간보스? 변이체?”
 무슨 뜻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은 직감할 수 있었다.
 “변이체라면… 좀비들을 말하는 건가?”
 굳이 고민을 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 추리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중간보스란 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지에 관한 것이었다.
 “확인을 해봐야겠는데.”
 유세하는 아지트의 입구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확인해봤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진 것은 아니었다.
 살짝 고민이 되었다.
 중간보스가 어떤 것인지 확인만 해보고 돌아오는 것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이 찾아왔다.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얼마 전 대형화와 광폭화가 진행이 되었던 개와 스쳐갔을 때 느꼈던 감각이었고 그 강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셌다.
 
 [강력한 적의 기세에 위압당했습니다. 움직임에 제한이 생깁니다.]
 
 이른바 상태이상이란 녀석이었다.
 개와 마주쳤을 때는 조금 이런 메시지가 없었으니 중간보스란 녀석과 능력치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이란 판단이 가능했다.
 유세하는 방금 전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지트로 숨었다.
 행여 중간보스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했다.
 “후웁, 후우.”
 심호흡을 하며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상태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간보스는 이동하는 중인지 강하게 내리누르는 것 같은 위압감은 점차 옅어지며 사라졌다.
 “…….”
 유세하는 침묵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 전 여유를 가진 것을 질책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선물해주니 황당해서 화도 나질 않았다.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정보가 너무 적었다.
 현재 유세하가 중간보스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현재 자신과 능력치가 매우 차이가 나므로 마주치면 죽음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강해져야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벌써부터 이런 시련을 떡하니 던져주는 망할 게임이 세상 어디에 있나 싶었다.
 물론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이 더 빌어먹을 점이었다.
 “결론은 사냥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현재 유세하가 할 수 있는 점은 하나뿐이었고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수면을 취하고 난 뒤, 유세하는 아침 일찍부터 사냥에 나섰다.
 유세하는 어제 중간보스의 등장과 더불어 생긴 변화를 잊지 않고 있었다.
 좀비, 변이체들 역시 중간보스의 등장과 함께 강해졌다 했으니 일단은 신중하게 상황파악을 하는 것이 순서였다.
 “운이 좋군.”
 유세하는 멀지 않은 곳에서 홀로 배회하고 있는 변이체 한 마리를 발견하곤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케르르륵!”
 강하게 내리누르는 힘에 변이체가 움찔하더니 유세하를 향해 고개를 꺾었다.
 그의 위치를 확인한 변이체가 마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것처럼 유세하를 향해 달려왔다.
 “……!”
 지금까지의 변이체라면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뭔가 변화가 있었을 텐데 그런 조짐이 전혀 없었다.
 유세하는 깜짝 놀라서 움찔했지만 그간의 경험이 약이 되어 실수를 하진 않았다.
 쉬익!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변이체의 공격을 넉넉한 간격을 두고 피해낸 유세하가 녀석의 발목을 걷어찼다.
 “켁!”
 충격을 받은 녀석이 기우뚱 하는 순간을 노려 유세하는 보다 강력하게 능력을 발휘했고 다행히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변이체의 목에 칼을 박아 넣으니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간신히 한 녀석을 처치하고 나니 중간보스의 등장과 함께 변이체가 강해졌다는 뜻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케에에에에엑!”
 한 놈 겨우 보내놓고 잠깐 숨을 돌리려는데 변이체들의 괴성이 사방에서 들렸다.
 유세하가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서 변이체 한 무더기가 미친 듯이 질주해오고 있었다.
 “……!”
 아무래도 방금 전 전투를 하며 변이체가 비명처럼 내지른 소리에 반응하여 몰려오는 녀석들인 것 같았다.
 강해진 만큼 감각도 예민해졌는지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세하가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젠장!”
 욕설을 내뱉은 유세하는 일단 몸을 피하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에 자리를 박찼다.
 한 녀석을 처치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고 강해진 탓에 능력이 제대로 먹혀들질 않았다.
 지금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변이체들의 숫자는 대략 10여 마리 정도였는데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한 규모였다.
 거칠어지는 숨을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변이체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다 보니 어느덧 오전이 다 지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전혀 좋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악화가 되었는데 쫓아오는 변이체들의 괴성에 자극을 받은 다른 녀석들이 합류하는 바람에 오히려 숫자가 늘어나 버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도망을 치다 결국에는 포위가 되어버린 유세하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한순간 삶을 포기했다.
 그러는 그의 시야에 좁은 골목이 보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고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1대 다수의 싸움법이 생각나는 기연을 토해냈다.
 “좋아!”
 이왕 죽을 것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저항해보잔 생각에 유세하는 골목길로 뛰어들었다.
 변이체들이 우르르 몰려들다 골목에 치여 교통체중이 일어났다.
 제대로 뒤따르지 못하는 변이체들의 모습에 순간 이대로 골목을 통과하면 무사히 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운이 따라주진 않았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유세하는 입술을 깨물고는 몸을 돌려 변이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배수의 진을 치고 적군을 기다리는 장수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케르르륵!”
 드디어 첫 변이체가 유세하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 자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괴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의외로 유세하는 손쉽게 변이체를 상대할 수 있었다.
 좁은 골목이라 변이체가 팔을 마음대로 휘젓지 못해서 움직임에 제한이 생긴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할 수 있다!”
 첫 녀석을 손쉽게 해치우며 자신감이 붙은 유세하는 다음 변이체를 맞이했다.
 녀석도 처음 녀석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면모를 보였고 유세하는 점점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에 없는 힘까지 쥐어짜냈다.
 죽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눈앞에 닥쳐오는 변이체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였다.
 변이체가 오면 능력을 사용하거나 빈틈을 노려 찌르고 요령도 생겨서 변이체들의 시체를 바리게이트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을 올려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몰려드는 변이체들의 숫자는 조금도 줄어들 생각을 않고 있었다.
 “헉헉.”
 숨이 차서 욕설을 내뱉을 힘마저도 없건만 변이체들은 꾸역꾸역 골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낮에 가졌던 희망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스르릉. 차르릉.
 듣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돋는 쇠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굉음이 터졌다.
 콰광!
 그와 함께 변이체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녀석들은 폭죽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
 유세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눈앞에 출력된 메시지 때문이었다.
 
 [강대한 적과 조우했습니다. 강력한 적의 기세에 위압당했습니다. 움직임에 제한이 생깁니다.]
 [중간보스 살육자에게 인식되었습니다.]
 [긴급 퀘스트 발생.]
 
 -긴급 퀘스트-
 중간보스 살육자는 아직 플레이어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도주하여 생존하십시오.
 
 중간보스과의 조우.
 그것은 유세하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였고 최악의 상황이었다.
 중간보스 살육자는 이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근육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고 양손에는 피딱지가 가득한 쇠사슬과 칼을 쥐고 있었다.
 2미터는 가볍게 넘길 것 같은 체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오는 위압감이 가득했다.
 “크르르르.”
 유세하를 노려보는 살육자가 쥐고 있는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순간 변이체들이 박살이 나서 비산했다.
 변이체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쾅쾅!
 살육자는 유세하가 있는 골목을 말 그대로 때려 부수며 접근했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유세하는 죽음을 직감했다.
 “크오오오!”
 살육자가 크게 포효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순간 유세하의 심령이 크게 흔들렸다.
 일순간 눈앞이 하얗게 되고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유세하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살육자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을 휘두른 풍압만으로 먼지처럼 날려진 유세하는 온몸을 엄습하는 격통에 정신을 차렸다.
 “……!”
 고통에 입만 벙긋거리던 유세하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살육자의 검에 박살이 나도 몇 번은 났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유세하는 이성을 되찾았다.
 ‘살아야 해.’
 생존본능이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생물이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욕구였고 이 순간 유세하는 처음으로 살육자의 위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오오오!”
 유세하를 일격에 처리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 살육자가 거친 기세를 일으키며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난 죽고 싶지 않아!”
 비명 같은 일갈을 내뱉은 유세하는 거의 본능적으로 살육자를 향해 달려 나갔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가소로운 저항에 살육자는 망설임 없는 일격을 내리쳤다.
 그 순간 유세하의 활로가 열렸다.
 강한 일격을 위해 널찍이 자리를 잡고 있던 살육자의 다리 사이를 통과한 유세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크아아아아!”
 살육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세하의 뒤를 쫓았다.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조리 박살내며 뛰어오는 살육자의 존재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유세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저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한다고 해봐야 그다지 효과도 없을 것이고 그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컹컹컹!”
 유세하가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검은 그림자가 그의 온몸을 덮었다.
 “헉!”
 헛바람을 삼킨 유세하가 거의 반사적으로 슬라이딩을 했고 머리 위에서 ‘딱!’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개가 방금 전까지 머리가 있던 허공을 힘껏 물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유세하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데 살육자가 자신의 사냥감을 가로채려 한 개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퍼억!
 “캥!”
 재차 유세하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던 개가 살육자의 발길질에 처량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 처박혔다.
 하지만 괜히 거대화한 것이 아니라는 듯, 곧바로 제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흔들더니 금세 정신을 차리고 살육자에게 적의를 보였다.
 “크아아아아!”
 “컹컹컹!”
 감히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는 짐승에게 살육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보였고 개도 지지 않고 맞섰다.
 유세하의 입장에서는 두 괴물이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워주니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크아! 크아아아아!”
 “컹컹! 캐앵! 켁켁!”
 개는 나름대로 용감히 싸웠으나 애초 중간보스인 살육자의 상대는 아니었다.
 살육자의 쇠사슬과 검에 의해 온몸이 박살나다시피 하여 난도질당한 개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살육자는 개를 처리하고 난 뒤, 유세하를 놓친 것을 깨닫고 분노를 표현했다.
 어느덧 어둑해진 밤을 쩌렁쩌렁 울리는 살육자의 포효에 유세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겁에 질려 아지트를 향해 달렸다.
 
 3
 
 아지트에 도착한 유세하는 한참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자신이 아지트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세하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뒤늦게 육체를 혹사시킨 여파가 찾아왔다.
 “쿨럭, 쿨럭! 헉헉!”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전력질주를 한 탓인지, 아니면 수 시간이 넘게 변이체들과 전투를 치룬 탓인지 몸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유세하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이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하긴 했지만 중간보스 살육자와 마주친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살았…어.”
 고통을 호소하는 육체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두려운 기억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유세하는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실감했다.
 눈물이 났다.
 오늘 죽음을 바로 코앞까지 경험했건만 기어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유세하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넘쳤다.
 “난! 살았어!”
 물기가 묻어나는 외침을 토해낸 유세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누군가 본다면 시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동조차 없었고 그가 일어난 것은 하루가 꼬박 지난 뒤였다.
 “큭!”
 깊었던 수면에서 깨어난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온몸을 강타하는 격통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굳어버린 몸을 푸는 와중에도 수시로 고통이 찾아왔다.
 육체의 상황을 체크하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유세하
 *나이: 30살
 *레벨: 9 *경험치: 90%
 *보유능력: 중력제어(숙련도: 초급13 66%)
 *상태: 피로
 
 유세하는 일순간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정도로 플레이어 정보의 갱신 수치가 어마어마했다.
 “분명 사냥을 많이 하긴 했는데…레벨도 그렇고 숙련도도 그렇게 이렇게 수치가 많이 오르다니…….”
 무슨 영문인가 싶어 멍하니 플레이어 정보를 응시하고 있던 유세하는 뒤늦게 강화된 변이체들이 더욱 많은 경험치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납득은 되었다.
 “아무리 경험치를 많이 준다고는 하지만 하루만에 4업이라니… 이건 도를 지나친…….”
 그래도 영 이상하단 생각에 중얼거리던 유세하는 뒤늦게 중간보스 살육자와 마주쳤던 상황을 떠올렸다.
 “긴급 퀘스트!”
 그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었던 정보를 뒤늦게 생각해낸 유세하는 외쳤다.
 “퀘스트 정보!”
 
 [퀘스트 정보]
 1. 긴급 퀘스트 - 중간보스 살육자로부터 생존하라(완) 보상: 대량의 경험치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야 폭렙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던 유세하는 감탄사를 뱉어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생각하지 않은 보상에 어느 정도 흔들렸던 심지가 안정되어 갔다.
 상황정리를 마친 유세하는 물티슈로 간단하게 몸을 닦고 본격적인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몸을 눕혔다.
 플레이어 정보에서도 보여주다시피 그는 무척 피로한 상태였다.
 하룻밤은 꼼짝도 않고 잤다지만 죽음의 위기 속에서 혹사시킨 육체가 그 정도로 호전될 리 없었다.
 눕기 전에 잠깐 확인을 해보니 해가 져서 어차피 사냥도 불가능했으니 그냥 내친 김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유세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세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두 눈을 감고 나니 어두운 시야 속에서 살육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비춰져서 기겁하고 일어나야 했다.
 “헉헉!”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해졌다.
 “빌어먹을.”
 주먹을 꾹 쥐며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중간보스 살육자의 모습은 선명해졌다.
 이대론 안 된다고 생각한 유세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살육자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잠식될 것 같았다.
 “우선 사냥은 지금처럼은 안 돼. 좀 더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어제처럼 될 거야.”
 최대한 빨리 치고 빠지면서 안전하게 도주를 하는 한편, 중간보스 살육자와 마주쳤을 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했다.
 “새로운 무기… 그리고 도주로의 확보와 지형지물의 이용… 새로운 전투방법!”
 생각해야 할 점이 많았고 그것에 집중을 하다 보니 중간보스 살육자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희석이 되어갔다.
 유세하가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을 무렵이 되니 계획도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져서 남은 것은 실행뿐인 상태가 되었다.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시작하자.”
 아직은 육체가 완전하지 않았기에 계획을 곧바로 실행할 수는 없었지만 유세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기를 겪은 직후, 그는 한 층 더 신중해져 있었다.
 체력이 회복되는 동안 그는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가 선택한 무기는 다름이 아닌 창이었는데 긴 사정거리로 보다 손쉽게 변이체를 공격할 수가 있어서 선택한 무기였다.
 그동안은 부엌칼로도 충분했지만 능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금, 조금이라도 빠르고 안전하게 변이체를 처리하려면 긴 사정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유세하가 중간보스 살육자로부터 무사히 생환한지 3일이 지났을 무렵, 상태가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몸을 혹사시킨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몸 상태가 정상이 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일이었지만 유세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보단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에 관한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로 유세하가 아지트를 나섰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
 
 빠르게 달리는 유세하의 뒤로는 변이체 두 마리가 괴성을 질러대며 질주하고 있었다.
 유세하는 미리 봐두었던 장소가 보이기 시작하자 눈빛을 빛내며 달리는 속도를 다소 느리게 했다.
 속도가 느려진 유세하가 가까워지자 변이체들을 더욱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을 노려, 유세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며 멀리뛰기를 하는 것처럼 도약했다.
 변이체들의 공격이 등 뒤를 스치는 느낌과 동시에 녀석들의 비명이 귓가를 때렸다.
 “켁!”
 바닥에 넘어져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놓치지 않고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했다.
 변이체들은 몸을 짓누르는 힘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어댔다.
 “후우… 합!”
 기합과 함께 유세하의 새로운 무기가 변이체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비록 쇠파이프에 부엌칼을 대충 묶어놓은 조잡한 무기이긴 했지만 새로운 사냥방법엔 매우 효과적이었다.
 변이체를 함정이 설치된 장소로 유인한 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주요골자인 이 사냥방법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였고 유세하는 두 마리를 처리하자마자 곧바로 지정해둔 도주로를 이용하여 전장을 이탈했다.
 변이체들이 방금 전 전투의 소음을 듣고 몰려들었지만 이미 유세하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대피한 후였다.
 안전함을 확보한 유세하가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니 레벨은 10을 달성했고 숙련도도 초급 15로 성장해 있었다.
 유세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레벨이 오르지 않아. 어째서?”
 그의 중얼거림처럼 10레벨을 달성한 이후부터 경험치가 쌓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요구하는 경험치가 많기 때문에 더디게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하여 사냥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잘못된 판단이었다.
 경험치는 0%에서 오를 생각을 않았고 유세하는 그것에 큰 불안함을 느꼈다.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성장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생존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세하의 뇌리를 중간보스 살육자가 스쳐갔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에 영원히 녀석에게 쫓겨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속단하기는 일러. 그래도 숙련도는 오르고 있어. 도태되고 있는 건 아니야.”
 유세하는 암담함이 몰려오는 와중에 그래도 숙련도는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지금까지 악착같이 살아오지 않았던가.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커다란 불안요소였지만 숙련도 상승이 이뤄진다면 아직 성장의 요소는 있었다.
 어차피 레벨은 높아져봐야 크게 의미가 없었지만 플레이어 스킬의 숙련도는 달랐다.
 숙련도가 오르면 스킬의 효과가 강화되니 달리 생각하면 이쪽을 더욱 성장시키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었다.
 “좋아! 낙담하지 말자! 난 아직 살아있어!”
 유세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사냥을 재개했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고 중간보스 살육자와 재차 마주칠 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무사히 위기를 넘겨가며 어느덧 플레이어 스킬 숙련도를 초급20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유세하가 중간보스 살육자와 조우한지 이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늘로써 딱 한 달이 되는 날인가.”
 유세하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아지트가 있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밤에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 이주일이 지났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인 중간보스가 나타났다.
 중간보스는 너무도 강력하여 도저히 저항할 엄두도 나지 않는 괴물이었다.
 유세하는 또 다시 이주일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고 이런 유세하의 생각처럼 세상은 또 하나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달이…….”
 유세하는 하늘 위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가 알고 있는 달은 노란색의 고운 빛으로 어둠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존재였다.
 그러했던 달일진데 유세하의 눈앞에 떠있는 달은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새빨간 빛을 머금고 있었다.
 잔혹하고 요사스러운 빛깔을 뿜어내는 붉은 달이 세상을 밝히니 사방이 음습한 기운으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붉은 달이 떴습니다. 붉은 달의 효과에 의해 변이체들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중간보스 살육자가 붉은 달의 영향을 받습니다. 끊임없이 살육을 자행해온 살육자가 보다 강력한 존재로 진화합니다.]
 
 우우우우우우우!
 숨이 막힐 것 같은 울림이 가슴을 진탕시켰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살육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확신한 유세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중간보스 살육자가 보스 도살자로 진화를 완료하였습니다.]
 
 쾅!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 한복판에 우뚝 섰다.
 새빨간 빛을 내뿜고 이미 생물의 것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우람하고 흉흉한 근육.
 살의와 광기로 번들거리는 안광.
 5미터는 될 법한 거대하고도 비대한 체구.
 양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쇠사슬 역시 붉은 달의 영향을 받기라도 하듯 사이한 빛깔을 뿌리고 있었다.
 멀리 있음에도 한 눈에 보이는 그 존재를 보며 유세하는 망연자실하게 웃었다.
 “하, 하하하하하.”
 삶의 희망이 꺾였다.
 중간보스 살육자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는데 놈이 더욱 강력한 존재로 진화해 버렸다.
 “저런 놈을 상대로… 살아남으라고?”
 그것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이란 사실을 유세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자신이 그 어떠한 노력을 하던 저것은 너무도 간단하게 짓밟을 것이다.
 그 증거로 유세하의 눈앞에는 메시지가 맹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짓눌려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메시지의 내용처럼 유세하는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가 없었다.
 온 몸에서 어서 도망치라는 경고를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었지만 유세하는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숨마저도 제대로 쉬질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숨소리에 저 존재가 움직이기라도 할까, 너무나 두려웠던 탓이다.
 우우우우우우!
 도살자가 뿜어내는 울림에 심령이 흔들린 유세하의 육체가 통제를 잃었다.
 마치 실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처럼 스스로의 목을 조르기 위해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세하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도살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죽음이 선명한 형태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이었다.
 번쩍!
 빛이 번뜩였다.
 분명 폭발하는 형태로 번쩍거리는 불빛이었건만 신기하게도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았다.
 “아아.”
 유세하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짙은 무력감에 감싸여 있던 그의 육체와 정신에 점점 활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유세하의 의문은 곧 풀렸다.
 그곳에는 천사가 있었다.
 붉은 달을 등지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가로막으며 성스럽고 따뜻한 빛을 내뿜고 있는 천사가 도살자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천사가 겨누고 있던 창을 도살자에게 던졌다.
 빛도 소리도 없는 침묵 속에 천사의 손을 떠난 창이 너무도 간단하게 도살자에게 틀어박혔다.
 도살자가 무너졌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천사의 일격에 그대로 빛으로 화하여 사라져 버렸다.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펴자 붉은 달이 힘을 잃듯, 점차 원래의 노란색으로 회복되어 갔다.
 그 신비롭고도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는 유세하의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축하드립니다. 플레이어께서는 무사히 생존하여 튜토리얼을 완료하셨습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이 주어집니다.]
 
 유세하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메시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 2화 생존자
 
 1
 
 넋을 놓고 있던 유세하가 정신을 차린 것은 천사가 사라진 다음에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튜토리얼…내가 한 달 간 했던 고생은 그저 예행연습일 뿐이었단 건가.”
 도대체 지금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그 의문을 풀어줄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튜토리얼 보상이라…….”
 작게 중얼거린 유세하는 튜토리얼 보상을 확인했다.
 
 [축하드립니다. 정식 플레이어로 각성하셨습니다. 잠겨있던 플레이어 기능이 활성화 됩니다.]
 [인벤토리 기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파티를 모집할 수 있습니다.]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료 상점 이용권을 3장 지급합니다. 사용하지 않은 무료 상점 이용권은 3일 뒤에 사라집니다.]
 
 정식 플레이어가 된 것치고는 뭔가 대단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유세하는 다른 건 몰라도 인벤토리 기능은 무척이나 쓸모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조금 불만이라면 5칸의 무척 작은 인벤토리란 점이었다.
 파티 기능은 과연 사용할 일이 있을까 걱정부터 되는 기능이었다.
 일단 다른 생존자들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파티를 한다는 말인가.
 현재로썬 쓸모없는 능력인 셈이다.
 상점의 기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팔고 있나 싶어서 확인을 해봤는데 현재 유세하가 살 수 있는 물건은 무엇 하나 없었다.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는 0입니다.]
 [구매목록]
 -무기 소환 상자 *필요 포인트: 1000
 -방어구 소환 상자 *필요 포인트: 1000
 -장신구 소환 상자 *필요 포인트: 1000
 -생필품 세트 *필요 포인트: 100
 
 [레벨이 상승할 시 구매목록이 추가됩니다.]
 
 그나마 상점을 경우에는 무료 이용권을 지급받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유세하는 과연 무엇을 구입해야 할지 고민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기와 방어구는 필요할 것 같은데.”
 유세하는 앞으로 생존에 무기와 방어구가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고 이용권을 사용했다.
 
 [무료 상점 이용권을 이용하여 무기 소환 상자와 방어구 소환 상자를 구입하셨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인벤토리 창을 보니 그곳에는 두 개의 상자가 생겨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하니 상자가 요란하게 들썩거리더니 빛 무리와 함께 무기로 변화했다.
 
 [제법 튼튼한 창]
 평범하지만 튼튼한 창이다.
 -레벨제한: 10
 -특수능력: 없음
 -내구력: 100
 
 “오!”
 운이 좋게도 현재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창이 나왔고 유세하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흥이 돋은 유세하가 이번에는 방어구를 터치했다.
 
 [질긴 쫄쫄이]
 무척 질긴 쫄쫄이 옷이다.
 -레벨제한: 10
 -특수능력: 없음
 -내구력: 100
 
 소환된 방어구의 내용을 확인한 유세하는 나머지 무료 이용권을 사용할지 말지 고민했다.
 유세하는 나중에 사용한다고 해서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올 것이라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3일 뒤면 사라지니 지금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유세하가 구입한 것은 장신구였다.
 
 [모험가의 외눈 안경]
 모험가가 끼고 다니던 외눈 안경이다.
 -레벨제한: 10
 -특수능력: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단, 착용자보다 레벨이 10이상 차이가 나면 작동하지 않는다.
 -내구력: 100
 
 굉장히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작위로 나오는 소환 상자인데도 필요한 물건이 딱딱 나와 주니 운이 좋다고 유세하는 생각했다.
 그 탓인지 씁쓸했던 유세하의 기분도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튜토리얼의 보상을 모두 확인한 유세하는 옥상에서 아지트로 내려와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기 위해서 고심했다.
 유세하는 두 가지의 방안을 두고 고민했는데 하나는 아지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금까지와 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지트를 버리고 생존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두 개 다 장단점이 있었지만 유세하가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생존자를 찾아 나선다는 방안이었다.
 이 선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중간보스와 보스의 존재였다.
 “그 놈들은 나 혼자서는 절대 잡을 수 없어. 혼자 잡으려고 덤볐다간 개죽음만 당할 거야.”
 중간보스 살육자에게 죽을 위기를 겪어봤기 때문에 그 위험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스인 도살자의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방금 전 겪은 피부로 느껴지는 괴물의 강대함은 현재로써는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기만 했다.
 다른 생존자를 찾아 파티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과연 저항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유세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보스 도살자는 중간보스 살육자가 이주일 동안 변이체들을 학살하며 그 경험치를 쌓아 진화한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진화를 하기 전에 없앤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유세하가 생각하기엔 매우 약한 도살자가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약한 보스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때는 끝장이라도 생각해야 했다.
 “이주일 후에 중간보스…그리고 한 달 뒤엔 보스가 나온다는 패턴이 일정하게 반복된다면…파티를 이루는 편이 생존확률이 높은 건 당연한 이야기지.”
 덤으로 중간보스와 보스가 등장할 때마다 변이체들도 덩달아 강화되는 별로 원하지 않는 서비스까지 딸려 있으니 아무래도 혼자보단 파티가 몇 배 나았다.
 결정을 내린 유세하는 아지트 내에 남아있는 식량을 모조리 긁어모아 인벤토리에 쑤셔 박았다.
 다행히 똑같은 물품은 중복해서 인벤토리에 담을 수가 있어서 생각보다 많은 양을 챙길 수 있었다.
 
 ***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출발은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목숨을 건 여행이라면 부담감은 더욱 커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들었던 아지트를 뒤로 하고 호기롭게 생존자들을 찾아 나선 유세하의 앞을 기다렸다는 듯, 변이체들이 가로막았다.
 “지겨운 새끼들.”
 “케르르르륵!”
 유세하는 한숨 섞인 욕설이 내뱉어지자마자 변이체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덤벼들었다.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던 유세하는 곧바로 거리를 벌리면서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창을 쭉 찔러 넣었다.
 퍼석!
 운이 좋게도 변이체 한 마리가 창에 머리를 꿰뚫려 즉사했다.
 “……!”
 유세하의 두 눈이 커졌다.
 분명 운이 좋아 머리를 맞췄다고는 하지만 설마 단 한 방에 변이체의 머리통이 부셔질 줄은 몰랐던 탓이다.
 “이게 무기의 효과인가?”
 유세하는 덤벼드는 변이체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방금 전 머리가 꿰뚫린 녀석까지 포함하여 총 세 마리였다.
 한 마리가 죽어 나자빠졌으니 두 마리가 남은 셈이다.
 “한 번… 해볼까!”
 “크레레렉!”
 유세하가 도망치다말고 맞서 싸울 준비를 하자 변이체 녀석들이 분노한 것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맹렬히 덮쳐오는 변이체들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했다.
 움찔!
 “케에엑!”
 강화된 변이체들은 유세하의 성장한 능력에도 강한 저항력을 선보였다.
 초급20에 달하는 숙련도로 강화된 능력임에도 변이체들을 움찔거리게 만드는 정도에 불과했다.
 중간보스와 보스에 의해 두 단계나 강화된 녀석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합!”
 하지만 지금의 유세하에겐 잠깐의 움찔거림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변이체가 움찔거리는 찰나의 순간을 노려 창이 허공을 갈랐다.
 퍼석!
 이번에도 어김없이 변이체의 머리통이 박살났다.
 다만 조준이 약간 틀어졌는지 변이체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내진 못하고 절반만 부셨다.
 머리가 반파된 변이체가 혼란에 빠진 모션을 취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유세하에게 반격했다.
 “흥! 어림없다!”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창대로 변이체의 공격을 튕겨낸 유세하가 재차 능력을 사용했다.
 반파된 머리통이 능력을 이기지 못하고 덜렁거리다 바닥에 떨어져서 수박처럼 깨졌다.
 본의 아니게 잔인하고 역겨운 장면을 실시간 셀프로 목격하게 된 유세하가 멈칫했다.
 동료의 잔혹한 죽음이 충격이었는지 남은 한 마리의 변이체도 덩달아 움직임을 멈췄다.
 “…….”
 잠깐 동안의 침묵이 있은 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변이체가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유세하가 조금 더 빨랐다.
 퍼억!
 방금 전의 경험을 토대로 정확하게 조준을 한 결과 이번에는 일격에 변이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전투를 끝낸 유세하는 자신이 강해졌음을 실감하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핫!”
 분명 두 단계나 강화된 녀석들임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건 무기의 영향이라고 유세하는 확신했다.
 
 [변이체 세 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포인트 30을 획득합니다.]
 
 변이체들이 몰려들 것을 대비하여 몸을 피하고 있는 와중에 메시지가 떴다.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내용이었고 메시지의 알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지속적인 능력의 사용으로 중력제어 초급20이 초급21로 성장합니다.]
 
 유세하는 강화된 변이체들인 만큼 사냥할 시 제공하는 경험치의 양 또한 상당히 많아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X 4
 
 “……!”
 유세하는 순간 변이체들을 피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멈췄다.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해 보니 레벨이 무려 15였고 경험치도 80%이상 차 있었다.
 “설마… 레벨이 오르지 않았던 그 때 사냥했던 경험치가 사라졌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방금 전의 폭렙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려 숙련도가 5단계나 상승할 정도로 사냥을 했었으니 경험치의 양이 무지막지한 것은 당연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유세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우연이겠지만 보스 도살자에게 절망을 했었던 이후부터는 좋은 일만 연거푸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생존자들도 금방 만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기분 좋게 중얼거린 유세하는 변이체들의 괴성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자 깜짝 놀라서 재차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 변이체 몇몇과 마주치긴 했지만 유세하는 손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몸을 숨기고 시간을 죽이고 있자니 변이체들의 괴성이 점차 잦아들었다.
 유세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위가 완전히 조용해지자 유세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생존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이체를 쉽게 상대할 수 있으면 레벨과 숙련도를 최대한 올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군.”
 어차피 생존자들과 합류하여 파티를 결성한다고 해도 중간보스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생존자를 찾는 것은 단서조차 없는 상황이었고 찾는다고 해도 그들이 호의적이란 보장도 없었다.
 레벨과 숙련도를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릴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유세하는 변이체 사냥을 중점으로 두고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처럼 사냥을 한다면 큰 위험도 없을 테니 곧바로 행동을 시작한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할 때마다 쭉쭉 올라가는 경험치와 숙련도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신이 나서 변이체들을 학살하다시피 사냥하고 있을 때였다.
 
 [변이체들이 위기를 느낍니다.]
 [특별한 변이체가 등장합니다.]
 
 눈앞에 출력된 메시지 창의 내용을 확인한 유세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2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유세하는 너무 신을 냈다는 자책을 했다.
 일단 후회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기 때문에 유세하는 몸을 숨길 장소를 물색했다.
 막 몸을 숨기고 상황을 주시하려는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중간보스 살육자나 보스 도살자와 같은 압도적인 위압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녀석인 것은 확실했다.
 “키아아아아아악!”
 잠깐 몸을 숨기고 있자니 녀석이 모습을 나타냈는데 딱 봐도 위험한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체구는 다른 변이체들보다 훨씬 컸는데 형태는 역시 기괴했다.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팔다리의 형상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더욱 강력한 괴물이 되기 바로 직전, 인간의 형태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유세하는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꺼내 착용했다.
 
 [특별한 변이체]
 ?????
 
 정보가 출력되지 않는다는 것은 녀석의 레벨이 유세하보다 최소 10레벨 이상은 높다는 뜻이었다.
 바로 몸을 숨기지 않았으면 위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서 녀석이 다른 곳으로 가기를 기다렸다.
 “크륵, 크르륵!”
 시간이 흐르고 유세하는 식은땀을 흘렸다.
 녀석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유세하를 찾을 뿐,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또한 마치 이곳에 유세하가 있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치면 정말 다행스럽게도 유세하가 있는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할 뿐, 정확한 장소까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버틸 수만은 없는 것이 유세하는 생각했다.
 ‘차라리 위치를 들키더라도 도망칠까?’
 위험부담이 큰 방법이었지만 계속해서 이 대치상황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는 고민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판단하자는 생각을 하며 유세하가 특별한 변이체를 주시할 때, 녀석이 드디어 움직임을 보였다.
 쿵쿵!
 생각보다 중량이 나가는 편인지 녀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묵직한 굉음이 났다.
 녀석이 점점 멀어지고 완전히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낀 유세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라는 생각에 유세하는 얼른 도망쳤다.
 일단 너무 많은 변이체들을 사냥한 대가로 녀석이 나타난 것이니 마주치는 놈들은 모두 무시했다.
 한데 그것이 실수였다.
 변이체의 비명이 울리기가 무섭게 저 먼 곳에서 쿵쿵 거리는 울림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설마!”
 마치 아이를 보호하려는 엄마처럼 괴성이 들린 곳으로 맹렬하게 달려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특별한 변이체였다.
 “크아아아아아!”
 포효를 내뱉으며 달려오는 녀석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유세하는 방금 비명을 지른 변이체를 창으로 후려쳤다.
 “켁!”
 짧은 괴성을 내뱉고 죽어나자빠진 녀석을 짓밟고 유세하가 특별한 변이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쿵쿵쿵쿵!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진동은 거세어졌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특별한 변이체가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확 트인 장소에서 도망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유세하는 도주 루트를 변경했다.
 골목 사이를 빠져나가며 최대한 복합적인 움직임을 선보이자 녀석도 방금 전처럼 급속도로 유세하를 추적하진 못했다.
 “크아아아아!”
 다행히 녀석은 중간보스처럼 골목을 때려 부수면서 다닐 만한 괴력은 없는 모양인지 장애물에 가로막히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그것을 보며 유세하는 활로를 찾았다.
 녀석이 장애물에 막혀 허둥대는 사이, 유세하는 녀석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범위로 도망가서 몸을 숨겼다.
 뒤늦게 유세하의 뒤를 쫓다보니 종적을 놓친 특별한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며 주변에다 화풀이를 했다.
 쿵쿵!
 녀석이 유세하를 찾기 위해 다시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유세하는 한 가지 깨달았는데 녀석은 절대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유세하는 꼼짝도 않고 상황을 살폈고 녀석이 자신을 중심으로 배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골치 아파졌는데.”
 중간보스나 보스만큼은 아니라지만 녀석 역시도 혼자서 상대하기엔 제법 무리가 있어 보였다.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해봤다.
 레벨은 17 레벨이었고 숙련도는 초급23을 달성한 상태였다.
 “역시 이 상태로는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레벨 격차라도 줄여놓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유세하는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안타까운 점은 시간은 절대 유세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주일 뒤에 중간보스가 나타나고 한 달 뒤에는 더욱 강력한 보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여기에서 발목이 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제길… 편히 가게 내버려두질 않는군.”
 유세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유세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특별한 변이체를 달고 다니면서 탐색과 사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부담감이 많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단 점에서 유세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후로 유세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어야 했다.
 이미 각오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이득이 있다고 한다면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사냥을 지속한 덕분인지 그의 전투감각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뒤쫓아 오는 특별한 변이체를 골목으로 유도하여 움직임을 제한하고 그 사이 눈에 보이는 변이체들을 사냥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변이체를 사냥하여 또 다른 특별한 변이체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니 전투감각이 발전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러한 하루를 몇 날 며칠을 지속하다 보니 유세하는 어느덧 아지트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 있었다.
 대충 이곳이 어디인지 헤아려 보니 제법 도시의 중심부에 가까워져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로 가면 생존자가 한 명쯤은 있을 거야.”
 휴식을 취하는 와중 유세하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는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주면서도 혹시 특별한 변이체가 습격을 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동안 요리조리 도망쳐대는 유세하 덕택에 특별한 변이체도 제법 열이 많이 받은 상태였다.
 녀석 유세하를 잡기 위해 기척을 죽이거나 몰래 숨어 있다가 덮치는 둥 함정까지 파기도 했다.
 그 덕택에 유세하도 한 가지 알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본능만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변이체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성은 남아있단 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특별한 변이체의 행동들은 본능이라고 하고 넘어가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일반 변이체들은 그다지 이성을 활용하는 모습이 없었지. 그런데 특별한 변이체는 달라. 생각을 할 줄 아는 것 같아. 그렇다면 중간보스와 보스는 이성이 더 뚜렷할 수 있겠군.”
 여기까지 생각한 유세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대처방안은 생각해두는 편이 좋겠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유세하는 두 눈을 감았다.
 특별한 변이체가 주변을 배회하며 만드는 발걸음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는 숨을 죽인 채 휴식을 취했다.
 
 ***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시작 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유세하는 피가 마른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 최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을 배회하는 특별한 변이체 덕택에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벌써 일주일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쓰러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강행군이었고 유세하도 최근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런 만큼 유세하도 많이 성장해 있었다.
 레벨은 20레벨을 달성했고 숙련도도 초급 28이나 되었다.
 그쯤 되니 두 단계나 강화된 변이체들도 유세하의 중력제어의 영향에 제법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 근처에도 생존자는 없는 모양이군.”
 유세하는 점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술래잡기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생존자 탐색을 했음에도 조그만 흔적조차 찾아내질 못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남겨야 하는 흔적들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기 때문에 유세하는 희망의 불이 점점 꺼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앞으로 일주일만 더 흐른다면 중간보스가 나타날 텐데…….”
 유세하는 말끝을 흐렸다.
 중간보스가 나타났음에도 생존자를 찾지 못해 홀로 마주해야 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아냐,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애써 희망을 놓지 않은 유세하가 특별한 변이체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하려 했다.
 그 순간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동안 단련된 전투감각이 맹렬히 위험을 알렸고 유세하는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퍼억!
 몸을 낮추는 한편, 막무가내로 휘두른 창에 무언가 얻어맞았다.
 적이란 확신을 느끼고 모습을 확인하니 그곳에는 개 한마리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짐승 변이체라… 예전 같았으면 위험한 상대였겠지만!”
 유세하는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생각보다 부담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해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도망가긴 늦은 상황이었다.
 “컹컹!”
 개가 짖으며 유세하를 물어뜯으려 했다.
 당연히 순순히 당해줄 수 없으니 유세하 역시 창과 능력을 사용하며 맞상대를 했다.
 유세하는 의외로 개가 손쉬운 상대라는 것에 놀라면서도 지난 일주일 간 자신이 이룩한 성장이라면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그 증거로 개는 처음에는 용맹하게 맞섰지만 차츰 승기를 내어주기 시작하다가 결국 유세하의 창에 명을 달리했다.
 “짐승 변이체에게도 어느 정도 능력이 통하는군. 일반 변이체들보단 강하지만 앞으로는 마주쳐도 무리해서 피해갈 필요는 없겠……!”
 생각보다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끝났고 유세하는 만족하면서 말하다가 끝맺지 못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 때문이었고 그것은 그를 노려보는 살기 어린 시선이 원인이었다.
 특별한 변이체가 전투소리를 듣고 몰래 근처까지 다가왔던 것이다.
 “젠…장!”
 “크아아아아아아!”
 유세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특별한 변이체가 포효를 내뱉었다.
 “쿨럭!”
 간신히 창을 들어 방어를 하긴 했지만 워낙 힘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유세하는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온몸을 가로지르는 격통에도 불구하고 유세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특별한 변이체의 동향을 살폈다.
 “크르르르르.”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모습을 보고 유세하는 도망치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멀스멀 변이체들까지 모여들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유세하는 왠지 특별한 변이체가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기분이 더러워졌다.
 “내가 그동안 고생한 게 얼마인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거 같으냐!”
 고생한 만큼 생긴 독기와 오기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게 해줬다.
 유세하는 창을 꾹 쥐며 어떻게든 활로를 뚫을 만한 방법을 궁리했다.
 “크아아악!”
 퍽!
 이런 유세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모양인지 어림도 없다는 듯 특별한 변이체가 맹공을 퍼부었다.
 “씨…발!”
 악과 깡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특별한 변이체의 맹공을 버텨냈고 그러는 와중에 변이체들은 비어있는 유세하의 배후를 노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었고 그 순간 유세하의 독기가 절정에 달했다.
 “이런 곳에서 죽을까 보냐!”
 악을 쓰고 버럭 소리를 지른 유세하가 특별한 변이체의 공격을 무시하고 배후를 노리는 변이체들을 향해 질주했다.
 퍼억!
 등을 가격당한 몸이 크게 흔들리며 바닥에 처박혔지만 유세하는 그 반동을 이용하여 벌떡 일어난 뒤 변이체들의 포위망을 뚫어냈다.
 “카아아아아!”
 유세하의 의도를 눈치 챈 특별한 변이체가 도약하고 그의 머리 위를 지나 앞을 가로막았다.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이젠 끝이라는 조롱 섞인 눈빛을 보내는 것 같은 특별한 변이체에게 유세하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잘 있어라.”
 정면을 향해 달려 나갈 것 같던 그의 몸이 방향을 틀어서 급선회 하더니 빌딩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크아아아아!”
 당황한 특별한 변이체가 뒤쫓으려 했지만 유세하는 이미 골목 반대편으로 도주한 다음이었다.
 도망가기 직전, 유세하는 특별한 변이체를 향해 다시 한 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번엔 양손이었고 특별한 변이체의 분노에 찬 괴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3
 
 유세하는 몸 상태를 체크해봤다.
 등 뒤를 무방비하게 당한 것치곤 꽤 멀쩡한 상태였고 유세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방어구가 제 역할을 해줘서 다행이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보니 방어구의 내구력이 무려 50이나 깎여 나가 있었다.
 방금 전 있었던 전투에서 자잘하게 깎여 나간 부분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변이체의 공격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방어구만이 아니라 무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내구력이 40이나 깎여 나가 있었고 유세하는 난감함을 느꼈다.
 “어쩌지. 아직 생존자를 찾은 것도 아니고 다시 구입할 수 있는 포인트를 모은 것도 아닌데…….”
 무기와 방어구만이 아니라 점점 영악해지는 특별한 변이체 역시 큰 고민거리였다.
 개와 전투를 치르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척을 죽인 채 접근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너무 방심했었던 것도 있지만 특별한 변이체가 예상을 뛰어넘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끄응.”
 고민을 하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다 보니 몸이 뻣뻣해지면서 가벼운 통증이 생겼다.
 아까 특별한 변이체에게 얻어맞고 구르면서 여기저기 부딪치는 바람에 타박상을 입은 곳에서 느껴지는 통증들이었다.
 죽다 살아난 것도 있고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유세하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쿵쿵쿵!
 따돌렸던 특별한 변이체가 유세하의 주변에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할 뿐, 특정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녀석이 주변을 배회한다는 것으로도 유세하에겐 큰 부담이었다.
 “미치겠군.”
 몸이 아픈데 억지로 움직이는 것만큼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는 법이었다.
 유세하는 울컥하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에서 성을 내봐야 이성이 흐트러질 뿐, 상황을 타개하는데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을 하니 한 번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했다.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이 상황을 지속된다면 유세하의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었다.
 무기와 방어구의 내구력은 많은 깎이고 다시 구입할 여력은 되지 않는데다가 몸은 지쳐서 축 늘어지고 있었다.
 유세하는 모험을 강행하기로 했다.
 쉬익~딱!
 “크륵!”
 유세하가 던진 돌멩이가 정확하게 특별한 변이체의 뒤통수를 때렸고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유세하는 자신을 발견한 녀석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도발했다.
 “캬아아아악!”
 안 그래도 유세하에게 잔뜩 성이 나 있는 녀석인 만큼 도발의 효과는 발군이었다.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녀석의 반응에 만족한 유세하는 인근에 있는 건물들 중 가장 높은 빌딩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문을 박살내고 뒤따라 들어오는 특별한 변이체를 확인한 유세하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쾅쾅!
 특별한 변이체가 여기저기 부딪치거나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을 치워내는 요란한 소리가 뒤쪽에서 울렸다.
 딱히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녀석이 잘 따라오고 있다는 신호와도 같았고 유세하는 안심하고 옥상으로 질주했다.
 덜컥!
 옥상에 도착하니 특별한 변이체가 온몸을 부딪쳐 문을 박살내면서 등장했다.
 참 위풍당당한 등장이란 생각을 하면서 유세하가 슬금슬금 난간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크르르르르.”
 녀석이 유세하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곧바로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유세하는 지체하지 않고 난간 쪽으로 달렸고 특별한 변이체 역시 빠르게 몸을 날리며 쇄도했다.
 난간을 딛고 유세하가 점프하는 순간, 특별한 변이체 역시 바로 뒤를 따르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찌이이익!
 간발의 차이였고 찰나의 순간이 지났다.
 입고 있던 옷과 방어구가 찢겨나가고 등에서 핏줄기가 터졌지만 특별한 변이체의 공격을 피한 유세하가 눈빛을 번뜩였다.
 지금 유세하와 특별한 변이체는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 상황이었다.
 둘 다 중력의 영향으로 추락을 하려는 시점이었고 지금이 유세하가 노린 순간이었다.
 추락을 시작한 와중에 유세하가 몸을 회전시켜 특별한 변이체에게 창을 찔렀다.
 깡!
 제대로 힘이 담기지 않은 창이 특별한 변이체의 몸에서 튕겨 나왔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반동을 이용하여 특별한 변이체보다 위쪽으로 낙하위치를 조정한 유세하는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떠한 순간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능력을 사용했다.
 목표는 당연히 특별한 변이체였다.
 ‘땅바닥에 처박히고도 멀쩡한지 두고 보자!’
 안 그래도 중력의 영향으로 떨어지던 특별한 변이체가 유세하의 능력에 의해 추가적인 힘에 짓눌리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크아아아아아!”
 특별한 변이체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렸고 급속도로 멀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쾅!
 굉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큭!”
 과도한 능력 사용이 원인인지 눈앞에 흐릿해지고 어질해지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유세하는 가까스로 빌딩에 매달릴 수 있었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창문을 깨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유세하는 대자로 뻗었다.
 “헉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상태가 회복되었다.
 유세하는 힘들지만 억지로 일어나서 창가 앞에 서서 특별한 변이체의 상태를 살폈다.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 보기론 큰 타격을 받았는지 바닥에 처박힌 상태에서 제대로 거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의 상황이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유세하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5층 정도에서 다시 창가로 다가가 확인하니 확실히 특별한 변이체의 상황은 최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몸의 절반이 아스팔트에 틀어박혀 있었고 핏물이 온몸에서 흘렀다.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던 자동차가 박살이 나며 찌른 모양인지 관통상도 여러 군데 있었다.
 “크르르르르.”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움찔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유세하는 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녀석을 처리할 마지막 기회다!’
 유세하의 상황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녀석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창을 역수로 하고 양손으로 움켜쥔 유세하가 5층에서 뛰어내렸다.
 평범한 방법으로 녀석에게 치명타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또 다시 무리를 하려는 것이다.
 목표는 특별한 변이체의 머리!
 양손으로 내려찍는 모션을 취함과 동시에 낙하의 힘, 거기에 능력까지 더한 유세하가 지금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었다.
 퍼억!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틀어박히고 유세하는 반동에 의해 튕겨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면서 유세하는 엎드린 상태에서 간신히 고개만 들어 특별한 변이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머리에 틀어박힌 창이 진동하며 떨리고 있었고 특별한 변이체의 숨소리는 멈춰있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셨습니다.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레벨 격차가 많은 변이체를 사냥하는 위업을 달성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가 주어지고 숙련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X6
 [지속적인 능력의 사용으로 중력제어 초급28이 초급29로 성장합니다. 추가적인 숙련도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중력제어 초급29가 초급35으로 성장합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했다는 메시지가 뜨자 유세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몸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지만 녀석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에 할 수만 있다면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싶었다.
 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방금 전의 굉음을 듣고 어느덧 변이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유세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특별한 변이체의 머리에 박혀 있는 창을 회수했다.
 내구력을 확인하니 겨우 5밖에 남아질 않았고 방어구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해서 3밖에 없었다.
 “케레렉!”
 덤벼드는 변이체들을 공격하며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벗어나려는 유세하였지만 몸이 너무 무거웠다.
 “헉헉.”
 특별한 변이체와의 싸움에서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부상을 입은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평범한 변이체를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유세하는 이를 악물었다.
 특별한 변이체까지 사냥했는데 평범한 변이체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는 마음을 가지면서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달라붙는 녀석들을 떼어내고 죽이고 도망치는 것을 반복하던 유세하의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제…길….”
 너무 지쳐서 말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할 정도였음에도 유세하의 흐릿해진 시야에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잡혔다.
 유세하가 그곳으로 향한 것은 거의 본능이었다.
 천운이 따라줬는지 지하실로 통하는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유세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지하실로 숨어들어 문을 닫았다.
 문을 잠그기 위해 고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급한 대로 창을 억지로 끼워 넣어 문이 열리지 않게끔 고정시켰다.
 쾅쾅쾅! 끼리릭!
 “케에에엑!”
 문 바깥쪽에서 변이체들이 거세게 문을 때리고 긁고 괴성을 질러댔지만 유세하는 개의치 않고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처를… 치료해…야…….”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등 뒤의 상처가 따끔거렸지만 점차 감각이 무뎌졌고 지하철 문을 변이체들이 두드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어가며 유세하는 정신을 잃었다.
 
 ***
 
 고요했던 평온함이 깨지기 시작했다.
 팔다리 끝부분부터 시작된 조그만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며 심층으로 가라앉았던 유세하의 의식이 점점 회복되어갔다.
 ‘따뜻하다.’
 유세하는 통증 속에서도 따뜻하게 자신을 보듬어주는 느낌에 취하는 것 같았다.
 그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더욱 끌어당기려는데 유세하의 귓가를 날카로운 비명이 때렸다.
 “꺄아아악!”
 “……!”
 비명소리를 듣자 유세하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무기를 찾았다.
 “…아.”
 뒤늦게 변이체들에게 쫓기다 우연찮게 본 지하실로 피신하고 문을 닫기 위해 창으로 고정시켜놓은 것을 기억한 유세하가 이를 악물었다.
 ‘무기가 없더라…도?’
 변이체를 처리하는 거라면 능력만 사용할 수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려던 유세하가 멈칫했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며 혼란을 느낀 그가 천천히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여기는…….”
 그가 몸을 피했던 지하실이 아니었다.
 그곳보단 조금 더 인간미가 풍기는 장소였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방 안이었다.
 “……!”
 유세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방안을 둘러보다 자신의 몸을 양손으로 감싸 안고 울먹거리고 있는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사, 사람?”
 유세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니 소녀가 물기가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 무슨 사람이 그, 그래요? 까, 깜짝 놀랐잖아요.”
 소녀가 더듬더듬 말하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한 명의 소년이 들어왔다.
 “크큭, 깨어났군! 전사여!”
 “……?”
 소년의 말을 듣는 순간, 유세하가 느끼는 혼란은 더없이 커졌다.
 
 4
 
 소녀의 이름은 한소림으로 17살, 소년의 이름은 한소현이라고 하며 15살이라고 했다.
 유세하는 두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이 이 방안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남매는 유세하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었다.
 지하실에 갇혀 반쯤 죽어 있던 그를 구출하고 치료까지 해주고 이렇게 안전한 장소로 옮겨주기까지 해준 것이다.
 한소림은 아직도 그 당시의 상황이 잊히지 않는다는 듯, 다소 상기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랑 동생 말고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무서운 괴물들이랑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이번 전투는 워낙 격렬하다 보니 멀리까지 전투소음이 퍼졌는데 그것이 남매가 유세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상황을 파악한 유세하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은혜를 입었군.”
 유세하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예의를 표하자 한소림은 아니라는 듯, 손사래 쳤다.
 천성이 착한 모양인지 한소림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때 한소현이 말했다.
 “그대의 전투는 정말이지 굉장했다. 두 눈으로 봐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지. 물론 나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이 몸의 오른손에 봉인된 흑염룡이 해방된다면 그깟 녀석들은 아무 것도 아니지! 크큭!”
 “…….”
 그러고 보니 처음 봤을 때도 저 요상한 말투로 말한 탓에 상황설명을 들을 때까지 꽤 혼란스러웠던 걸 떠올린 유세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시선을 한소림에게 던졌다.
 한소림은 얼굴이 익은 것처럼 새빨갛게 변해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동생이 좀…아파요.”
 “이 몸은 멀쩡하다!”
 “…아파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아니…아프지 않다고 하지 않느냐!”
 “…그렇군.”
 창피해서 울 것 같은 한소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대충 이해가 되었다.
 차마 동생이 정신줄을 놓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한소림의 처지가 말이다.
 “에잇! 이 몸은 아프지 않다!”
 유세하는 한소현의 어설픈 연기를 보며 왠지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꺼내 착용한 뒤 한소현의 정보부터 확인해봤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한소현
 *레벨: 18
 *상태: 중2병
 
 “풉!”
 스스로의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는 것보단 매우 간소화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는 한소현의 상태정보를 확인하자마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외눈 안경을 꺼내더니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하는 유세하의 모습에 한소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 아저씨도 이상해졌나 봐!’
 오해였지만 한소림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유세하는 애써 웃음을 가라앉히기 바빴다.
 “흠흠.”
 간신히 웃음을 그친 유세하는 이번에는 한소림의 정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한소림
 *레벨: 16
 *상태: 정상
 
 유세하는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벗고 한소림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내 이름은 유세하라고 한다. 나이는 30살이다.”
 “……?”
 “안경을 끼고 나를 봐라.”
 한소림은 뭔가 미심쩍어하는 반응이었지만 순순히 유세하에게서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유세하의 앞에 메시지가 떴다.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타인에게 양도합니다. 동의하십니까? Y/N]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주고받을 수 있나보군.’
 혹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두 사람의 레벨을 보니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두 사람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특별한 변이체보다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남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람을 속이거나 할 정도로 독해보이지 않았고 그럴 거 같았으면 애초에 자신을 구해주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유세하는 예스를 선택했고 모험가의 외눈 안경은 무사히 한소림에게 양도되었다.
 한소림은 안경을 착용하고 유세하를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한소림에게 유세하가 동생을 보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반사적으로 한소현을 쳐다본 한소림의 눈매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던지듯 유세하에게 건네주고는 얼굴을 가려버렸다.
 “뭐, 뭐야?”
 누나의 반응과 키득거리고 있는 유세하의 모습에 한소현이 의문을 표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유세하는 홀로 휴식을 취하면서 한소림과 한소현 남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은 이 근방에는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다고 봐야 하나?”
 남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자신이 특별한 변이체와 싸우면서 낸 전투소음은 무척 컸다고 했다.
 빌딩 옥상에서 커다란 녀석을 낙하시켜가며 싸웠으니 소음이 크게 날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온 것은 한소림 한소현 남매뿐이었다.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메리트가 없으니 그다지 높은 가능성은 아니었다.
 한소림 한소현 남매도 유세하가 처음으로 본 생존자라 했으니 일단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란 것이 유세하의 판단이었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생각을 접고 시선을 주니 한소림이 고개만 내민 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자요?”
 “아니, 아직 자진 않는데. 왜 그러니?”
 “그게…….”
 한소림은 머뭇거리면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고 유세하는 손짓을 해서 일단 방에 들어오게 했다.
 유세하는 보채지 않고 한소림이 먼저 말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 배려가 닿았는지 한소림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냈다.
 “아저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떠나실… 건가요?”
 “흐음. 그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한소림은 불안함이 가득한 눈초리로 유세하가 어떤 대답을 할지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왜 묻는 거니?”
 “만약 떠나실 거면…아, 아저씨랑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솔직하게 물으마. 아저씨를 믿을 수 있니?”
 유세하의 질문에 한소림은 움찔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고 유세하는 새삼스레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진 않았다.
 지금 그가 신경 쓰는 건 한소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 아까 그 안경을 일부러 저에게 빌려주신 건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그래.”
 영특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도 유세하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것을 보니 공부를 제법 잘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아, 아직은 아저씨가 낯설고 무서워요. 그,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한소림 나름대로의 후한 평가였고 유세하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안도감을 주었는지 한소림도 지금까지처럼 긴장하지 않고 배시시 마주 웃었다.
 그 순한 미소를 보면서 유세하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남매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성인이었던 자신조차 자포자기를 할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사한 둘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유세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혹시 중간보스와 보스에 대해 알고 있니?”
 “…네.”
 안소림의 안색이 눈에 띠게 굳었다.
 그 때의 공포가 되살아난 모양인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녀석들로부터 살아남을 생각이다. 그래서 함께 싸울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생존자들을 찾아 나선 것이지.”
 “아…….”
 그러다 보니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고 한소림과 한소현을 만나게 되었다.
 유세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했고 그것을 한소림은 이해했다.
 “함께 싸울 동료가 필요하신 건가요?”
 “그래.”
 유세하의 담담한 인정에 한소림의 안색이 눈에 띠게 나빠졌다.
 아까 모험가의 외눈 안경으로 유세하의 정보를 확인했을 때 레벨이 무려 10이나 더 높은 것을 확인했었다.
 한소림도 레벨을 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고 유세하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한소림은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세하는 자신의 목적을 말했을 뿐, 그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었다.
 “노, 노력하면 안 될까요? 아저씨가 동료를 원하는 거라면…노, 노력할게요!”
 “노력이라…….”
 “제발 두고 가지 말아주세요. 아저씨한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테니까……!”
 영특하긴 하지만 말주변은 없는 모양인지 한소림은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아니, 다급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한소림은 지금껏 생존해 오면서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어린 나이이기에 한소림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고 점점 힘에 부쳐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세하가 나타났다.
 자신들은 숨어있기에도 급급한 무서운 괴물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유세하의 존재는 한소림에겐 충격적이었다.
 유세하에게서 희망을 보게 된 한소림은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러한 한소림의 절실함을 느낀 유세하는 마음을 정했다.
 “자세한 일정은 동생과 함께 정해보자.”
 “아저씨?”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중간보스가 나타날 거야. 다른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은 낮으니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에 승부를 걸어봐야지.”
 유세하의 말뜻을 알아들은 한소림이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고마워요. 아저씨. 흑흑!”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된 한소림은 서럽게도 울었다.
 유세하는 과연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할 것일까 생각을 해봤다.
 한소림과 한소현 남매의 레벨은 18과 16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음에도 레벨이 이만큼이나 올라가 있다는 것은 변이체와 싸워가며 생존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록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났다는 생각에 안도하여 약해져 있지만 한소림은 강단이 있는 소녀였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튜토리얼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동료로 삼을 조건으로는 충분했다.
 “그나저나 네 동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글쎄요?”
 울음을 그친 한소림에게 물으니 그녀도 잘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정공법으로 해보고 안 되면 그 때 대책을 생각하자는 생각에 한소현을 불러 이야기를 하니 의외로 시원하게 승낙했다.
 “그대처럼 강력한 전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야말로 영광이라 할 수 있지! 한데 전사여, 그대는 몇 레벨인가?”
 “…26이다.”
 “우아! 아저씨 레벨 높네요?! 아, 아차!”
 유세하의 레벨을 듣고 깜짝 놀란 한소현이 소리를 지르다가 컨셉이 깨졌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당황했다.
 허둥대며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옆을 보니 한소림도 소리를 죽여 웃고 있었고 한소현도 당황하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
 유세하와 한소림, 한소현 남매는 세상이 무너진 이래, 처음으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 3화 파티사냥
 
 1
 
 유세하는 우선 한소림과 한소현의 능력에 대한 것을 파악했다.
 사냥을 하기에 앞서 확인해야 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의 능력을 밝히는 것이 먼저였고 그의 능력이 중력제어란 것을 듣고 난 한소현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외쳤다.
 “멋진 능력이로다! 허나 이 몸의 능력보단 멋지진 않군!”
 이렇게 외친 한소현의 플레이어 스킬은 발화 능력이었다.
 말 그대로 불꽃을 일으키는 능력이었는데 한소현이 한 번 시현하는 모습을 보니 상당한 화력을 뿜어냈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 탓에 유세하가 다소 놀란 얼굴을 하니 한소현이 콧대가 높아져서 말했다.
 “크큭!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이 오른손에 봉인되어 있는 흑염룡이 깨어난다면 이 몸에게 대적할 존재 따윈 없다!”
 말을 마치고 한소현은 허리에 손을 얹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중2병을 폭발시켰다.
 그런 한소현을 무시하고 누나인 한소림을 확인하니 상당히 의외의 능력이 나왔다.
 한소림의 능력은 결계 생성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았고 능력도 예상대로였다.
 다만 보호를 하는 것만이 아닌 가두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꽤 여러 방면으로 사용이 가능할 법했다.
 능력을 확인하고 난 뒤, 그 다음으로 한 행동은 파티를 맺는 일이었다.
 처음 파티를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을 얻었을 때는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사용하게 되었다.
 파티가 되고 나니 묘한 소속감이 느껴졌다.
 유세하가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해보니 자신의 정보 이외에도 한소림과 한소현의 플레이어 정보가 간략하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파티를 맺고 나서 유세하는 무기와 방어구를 구입하기 위해 상점 기능을 이용했다.
 처음 얻은 무기와 방어구는 특별한 변이체와의 싸움으로 인해 내구력이 크게 손상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여 포인트도 넉넉하니 무기와 방어구를 구입하는데 부담감은 덜했다.
 
 [날카로운 롱 소드]
 바위도 손쉽게 베어내는 매우 날카로운 롱 소드이다.
 레벨제한: 25
 특수능력: 없음
 내구력: 100
 
 [질긴 가죽갑옷]
 매우 질겨서 잘 잘려지지 않는 가죽갑옷이다.
 레벨제한: 20
 특수능력: 없음
 내구력: 100
 
 상당히 괜찮은 무기와 방어구였다.
 내심 창이 나오길 기대했다가 검이 나온 것을 보고 다소 실망했던 유세하는 설명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바위마저 손쉽게 베어낼 정도면 상당히 좋은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방어구 역시 잘 잘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변이체의 공격에 보다 안전해진다는 뜻이었기에 무척 만족스러웠다.
 유세하가 이처럼 사냥준비를 하는 동안 한소림, 한소현 남매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두 사람 역시 무기와 방어구를 구입했던 모양인지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한소림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한소현은 유세하와 마찬가지로 검을 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미흡한 것이 없는지 확인한 뒤, 유세하는 사냥을 하기에 앞서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했다.
 “오늘은 첫 날이니 가볍게 가도록 하자. 우선은 평범한 변이체부터 사냥을 해보고 천천히 손발을 맞추는 걸 우선으로 하는 거야. 알았지?”
 “네!”
 “알았어요.”
 유세하의 말에 남매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중2병을 폭발시켰던 한소현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진지하게 변모했다.
 사냥을 시작하자 유세하는 남매의 전투력이 의외로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소현의 경우에는 자신의 불꽃 발현 능력에 대한 응용력이 굉장히 높았는데 단순히 불꽃을 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형태로 변환을 시켜 사용하거나 무기에 덧씌우거나 하며 자유자재로 다뤘다.
 남매의 사냥은 한소림이 결계로 막고 한소현이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걸리는 탓에 주변에 있는 변이체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었지만 한소림의 결계 때문에 큰 위험은 없었다.
 빠른 사냥은 힘들었지만 안정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사냥 방법이었다.
 남매는 오래 전부터 함께 사냥을 했기 때문에 호흡이 척척 맞는 편이었다.
 유세하는 남매의 사냥 방법을 보고 자신이 저 속에 끼어들면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조금 고민을 해보니 대답은 금방 나왔다.
 유세하는 사냥 시간을 보다 단축시키기 위한 마무리 타격을 주는 역할을 맡는 것이 좋았다.
 동시에 유세하는 이 사냥방법의 응용방법도 떠올릴 수 있었다.
 “소림아. 혹시 결계가 변이체의 공격에 뚫린 적이 있니?”
 “네. 레벨이 적었을 때 많이 뚫렸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뚫린 적이 없어요.”
 “그럼 가두는 용도라면 변이체를 몇 마리까지 가둘 수 있겠니?”
 “대충 10마리까지는 가능할 거예요.”
 머릿속으로 대충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상당히 괜찮은 사냥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하는 자신이 떠올린 새로운 사냥방법에 대해 설명했고 한소림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저씨가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나는 괜찮아. 일반 변이체들은 크게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니까.”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고 나서 폭발적인 레벨 업과 숙련도 상승을 일으킨 유세하의 전투력은 상당히 강력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저씨가 괜찮다면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한소현까지 이렇게 말을 하니 한소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새로운 사냥방법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유세하는 걱정하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조심하셔야 해요.”
 “그래, 알았다.”
 유세하는 한소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한 뒤, 곧바로 새로이 발견한 변이체에게 달려갔다.
 촤악!
 그의 검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변이체의 팔 하나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는 순간, 유세하의 검이 다시금 움직여 이번에는 두 다리를 베어냈다.
 다리를 잃은 변이체가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렸고 그러면서도 괴성을 질러대는 건 잊지 않았다.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준 덕택인지 사방에서 변이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세하는 한소림에게 눈짓했고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극을 받은 변이체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숫자가 못해도 15마리는 가뿐하게 넘어갔다.
 “이얍!”
 한소림이 낭랑한 기합을 내뱉으면서 결계를 발동시켜 변이체들을 가뒀다.
 약 7마리 정도의 변이체가 가둬졌고 이번에는 한소현이 기합을 뱉어내며 능력을 사용했다.
 결계에 가둬진 변이체들 한복판에서 일어난 불꽃이 녀석들을 맹렬히 태우기 시작했다.
 “케에에엑!”
 변이체들이 발버둥 치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결계에 가둬진 탓에 불꽃에 그대로 노출되어 타올랐다.
 결계에 가둬지지 않은 녀석들은 유세하의 몫이었다.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했다.
 “키엑?!”
 기세 좋게 덤벼들던 놈들이 느닷없이 가해지는 압력에 당황했다.
 조금씩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힘들어 보였고 유세하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숙련도가 대량으로 상승했다 하더니 능력이 상당히 강력해졌다.’
 단순히 능력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반쯤은 변이체를 제압한 것이다.
 유세하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고 그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변이체들의 목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
 
 “우와! 우와와!”
 한소현은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자신의 말투로 설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벨이 2나 올랐어요! 숙련도도 엄청 올라서 초급23이나 됐어요!”
 “저도 레벨이 2가 오르고 숙련도는 초급26이 되었네요!”
 한소림 역시 상당히 많이 오른 레벨과 숙련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남매의 두 눈에는 유세하를 향한 존경심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괜히 머쓱해진 유세하가 헛기침을 했다.
 “험험, 전부 너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지.”
 “역시 그대는 위대한 전사로다. 처음 봤을 때부터 딱 느낌이 왔었지! 아아, 위대한 전사! 그레이트 워리어여!”
 “하지 마!”
 다시 중2병을 폭발시킨 한소현의 찬양을 듣는 순간 유세하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서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가 잔뜩 경직되어 질색하는 모습을 본 한소현이 눈에 띌 정도로 시무룩해져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한소림은 그 모습을 보고 소리 없이 키득 웃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소현이 불현듯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런데 전사여. 그대는 왜 능력을 한 가지 방법으로만 사용건가?”
 팔뚝에 돋은 닭살을 가라앉히기 위해 손바닥으로 슥슥 문지르고 있던 유세하가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아까 사냥을 하면서 보니까 위에서 아래로 당기는 방법만 사용하더군.”
 유세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냐는 듯, 대답했다.
 “중력이잖아?”
 “…어? 아저씨 설마 중력은 위에서 아래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야?”
 유세하가 되물으니 한소현은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정말 놀랐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느새 말투가 또 설정을 벗어나 있었다.
 “우와, 아저씨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중력은 위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힘이 아니에요. 쉽게 설명을 하자면… 맞아. 잡아당기는 힘이라고 할까요?”
 “당기는 힘이라고?”
 한소현은 의외로 지식이 풍부했다.
 유세하에게 중력에 대해 이런저런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줬는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상당히 이해가 잘 되었다.
 
 [중력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셨습니다. 중력제어 초급 36이 38로 성장합니다.]
 
 “……!”
 유세하는 깜짝 놀랐다.
 단순히 한소현에게 설명을 듣고 중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뿐인데도 숙련도가 오른 것이다.
 그것도 오늘 사냥에서 1이 오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2나 상승했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해서 중력은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힘이 아니라는 거죠.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요?”
 “어, 그래. 고, 고맙다. 상당히 잘 아네?”
 얼떨떨한 마음에 유세하가 말하니 한소현의 콧대가 다시 높아졌다.
 “전부 설정을 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 덕분이죠. 이 짓도 치밀하고 세밀한 설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헉!”
 말하다 말고 한소현이 기겁하더니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이, 이 몸이 말실수를 했다. 하, 하하하. 사냥 때문에 피곤했나 보군. 그럼 위대한 전사, 그레이트 워리어여! 내일을 위해 이 몸을 휴식을 취해야겠네!”
 “…하지 말라고.”
 유세하가 질색하여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이미 한소현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그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한소림은 배를 부여잡고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것 참.”
 머쓱하기도 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매와 만난 덕택에 사라져 갔던 인간성이 되살아난 것 같아 기꺼운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 있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중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까지 했다.
 “중력은 잡아당기는 힘이라…….”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긴 했지만 확실히 정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연습을 좀 해봐야겠는 걸?”
 유세하는 간단하게 능력을 사용해 보면서 중얼거리곤 한소림을 향해 한마디 했다.
 “그만 좀 웃지?”
 “아, 예. 푸후훕!”
 아무래도 소녀의 섬세한 감성이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2
 
 사냥에 속도가 붙었다.
 특히 유세하가 새롭게 제안한 사냥방법이 큰 효과를 거두면서 사냥속도에 제대로 탄력이 받았다.
 덕분에 한소림, 한소현 남매의 경험치는 쭉쭉 올라가기 시작해서 유세하를 맹추격했다.
 유세하의 경우에는 레벨이 높아서 두 사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가 늦었다.
 대신 유세하는 레벨보다는 플레이어 스킬의 숙련도에 더욱 중점을 뒀다.
 어제 한소현이 해준 조언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 결과 유세하는 자신의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케에에엑!”
 지금처럼 허공에 떠서 허우적거리는 변이체들 이 유세하가 새롭게 터득한 사용법이었다.
 “당기는 힘이라는 것은 중심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렇게 허공에 띠울 수도 있다는 거지.”
 중력이 당기는 힘이라면 힘이 최초로 발생하는 중심점의 조정을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잘 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연습을 계속하니 이제는 제법 숙달되었다.
 한소현은 이것을 반중력이라 불렀고 유세하는 괜찮다는 생각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유세하가 변이체들을 농락하고 있는데 한소림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지셨네요. 이것 말고 연습하던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직 뜻대로 안 되고 있어. 숙련도가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네.”
 유세하가 반중력 이외에 새롭게 시도했던 방법이란 자신의 움직임에 맞추는 방법이었다.
 검을 내려칠 때 중력을 더한다거나 중력을 조정하여 몸놀림을 빠르게 한다거나 하는 방법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했다.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복합적으로 중력을 제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습을 하다 보면 나아지겠죠.”
 “그랬으면 좋겠지만…….”
 조그맣게 중얼거린 유세하가 반중력을 해제하고 낙하는 변이체들을 중력으로 짓눌러 처리했다.
 유세하는 해가 떠 있는 위치를 보고 대충 정오 쯤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휴식을 제안했다.
 아침부터 계속 사냥만 했기 때문에 한소림, 한소현 남매는 두말 않고 찬성했다.
 “레벨들은 잘 오르고 있어?”
 “잘 오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젠 그 전처럼은 잘 안 올라요.”
 “역시 그렇군.”
 유세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는 슬슬 사냥방법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유세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해 보자.”
 “괜찮을까요?”
 한소림의 거부감을 보였다.
 유세하가 특별한 변이체에게 쫓기다가 반죽음까지 갔었다는 걸 한소림은 잊지 않았다.
 “슬슬 그 놈을 잡을 차례라고 생각을 했었지. 크큭!”
 그에 반해 한소현도 대한민국 학생답게 게임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유세하가 말하는 바의 의미를 금세 파악하고 호응했다.
 “녀석의 행동패턴은 파악이 끝난 상태고 그 점을 잘 이용하고 우리 셋이 힘을 합친다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세하는 자신이 특별한 변이체에게 그렇게까지 내몰린 이유는 혼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때와 달리 레벨과 숙련도도 많이 올랐고 동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소림은 고민했다. 하지만 곧 유세하와의 대화를 기억했다.
 그의 동료가 된다면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의 입으로 말을 꺼낸 바 있었다.
 한소림이 마음을 굳혔다.
 “알았어요. 한 번 해봐요!”
 “고맙다.”
 “아니에요. 애초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랑 소현이가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을 거예요.”
 결정이 났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건 신속할수록 좋았다. 특별한 변이체를 소환하기 위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변이체들이 위기를 느낍니다.]
 [특별한 변이체가 등장합니다.]
 
 계속된 학살에 그 때처럼 특별한 변이체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퀘스트]
 변이체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변이체가 등장했습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세요.
 보상: 대량의 경험치
 
 유세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려 남매를 바라보니 두 아이들 역시 퀘스트가 생긴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퀘스트라니… 이런 건 처음 봐요.”
 한소림의 말에 옆에 있는 한소현도 동의한다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세하는 턱을 매만졌다.
 ‘퀘스트라… 이런 것이 떴다는 건 특별한 변이체를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퀘스트가 떴다는 건 녀석을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유세하는 계획을 정면승부로 변경했다.
 쿵쿵!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변이체는 곧바로 유세하가 있는 장소로 다가왔다.
 그 때와 다른 점은 이번에는 한소림, 한소현도 목표라는 것이었다.
 “크르르르르!”
 모습을 드러낸 특별한 변이체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세 사람을 위협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나 두려웠는데 어째서인지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았다.
 유세하는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착용했다.
 
 [특별한 변이체]
 레벨: 40
 상태: 분노
 
 짤막한 정보였지만 그것만으로 녀석을 사냥할 수 있다는 확신은 충분했다.
 쾅!
 특별한 변이체가 자리를 박찼다.
 본능적으로 한소림이 셋 중 가장 약자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그녀부터 노렸다.
 유세하는 그것을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해서 특별한 변이체를 띄웠다.
 “크륵?!”
 힘차게 달려 나가다가 뜬금없이 떠오른 몸에 특별한 변이체가 당황할 때, 한소현의 불꽃에 휘감긴 검이 작렬했다.
 치이이익!
 베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처를 지지는 일격에 특별한 변이체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다!”
 유세하는 중력의 방향을 바꿔 이번에는 특별한 변이체를 바닥에 처박았다.
 소리를 지르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녀석이 팔다리를 휘젓다가 중력을 힘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능력을 사용하는데 반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유세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엄청난 힘이군.’
 지금 유세하는 전력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숙련도가 오른 만큼 중력의 힘은 무척 강해져 있었는데도 그것을 힘으로 이겨내는 특별한 변이체의 괴력에는 살짝 기가 질렸다.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지!’
 유세하의 능력을 버티기 위해 특별한 변이체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틈을 노려서 한소림이 결계를 쳐서 녀석을 가뒀다.
 한소현이 양손을 모아 소리쳤다.
 “파이어 블라스터!”
 낯이 뜨거워지는 기술명을 외친 한소현이 양손을 활짝 펼치니 결계 안에서 새빨간 불기둥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케에에에에에에엑!”
 특별한 변이체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쾅쾅쾅!
 특별한 변이체가 결계를 벗어나기 위해 양 주먹을 쉴 세 없이 휘둘렀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유세하가 중력으로 짓누르고 있는 탓에 힘이 분산되었고 한소림 역시 이를 악물고 결계 유지에 온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더!”
 불꽃이 사그라지기 전에 한소현의 기술이 다시 한 번 작렬했다.
 특별한 변이체의 저항이 더욱 거세어졌다.
 “크… 한 번…더 받아라!”
 좁은 결계에 연거푸 세 번이나 되는 한소현의 기술이 작렬하니 안쪽은 불지옥이 되었다.
 특별한 변이체의 피부가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려 줄줄 흘렀다.
 그 순간 생물이 가지는 생존본능에 특별한 변이체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괴력을 발휘했다.
 쩌정!
 특별한 변이체의 발악에 의해 결계가 단숨에 깨졌고 유세하의 중력이 튕겨져 나갔다.
 “큭!”
 “꺅!”
 기술이 깨진 반동을 받은 두 사람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결계에서 벗어난 특별한 변이체가 한소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한소현은 다시 능력을 사용하여 특별한 변이체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연거푸 세 번이나 큰 기술을 사용한 탓에 저지력이 너무 부족했다.
 특별한 변이체는 거의 저항이 없다시피 하여 한소현의 앞에 도달했다.
 “크아아아아!”
 자신에게 고통을 준 복수를 하기 위해 주먹을 번쩍 치켜드는 특별한 변이체였지만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서걱!
 어느 틈에 접근한 유세하가 도약하여 팔꿈치를 베어버린 것이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속해서 공격을 하니 불꽃에 의해 약해진 피부와 근육은 유세하의 날카로운 롱 소드의 절삭력에 속절없이 갈라졌다.
 “크르륵!”
 “이야압!”
 한소현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러 특별한 변이체를 난도질했다.
 어떻게든 저항을 해보려 하는 특별한 변이체였지만 세 사람의 계속되는 합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헉헉헉!”
 “후우, 후우!”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던 특별한 변이체가 죽자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X5
 [지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중력제어 초급45가 초급46으로 성장합니다.]
 
 처음 특별한 변이체를 잡았을 때처럼 엄청난 경험치를 얻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이었고 거기에 퀘스트 보상이 더해지니 폭렙으로 이어졌다.
 “오오!”
 한소현도 제법 많은 보상을 받았는지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고 한소림도 놀란 눈을 했다가 기쁨이 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케르르르륵!”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며 생긴 전투소음을 듣고 변이체들이 모여들었다.
 다소 지치긴 했지만 사냥을 지속하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유세하가 말했다.
 “기쁨은 나중에 만끽하고 일단 녀석들부터 처리하자.”
 “네!”
 변이체들을 정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당초 녀석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환된 특별한 변이체도 사냥하는데 일반 변이체가 버텨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앞으로 이렇게 사냥을 하면 한동안 레벨 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럼 중간보스와 보스를 상대할 수 있겠죠?”
 중간보스와 보스를 생각하니 유세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첫 만남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아 보니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녀석들에 대한 것은 제쳐두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레벨과 숙련도를 올리는 거야.”
 “맞는 말이에요.”
 유세하는 일단 자리를 옮긴 뒤, 방금 전 있었던 전투를 되새기면서 보다 효율적인 전투방법을 시뮬레이션 해봤다.
 “일단 결계에 가두고 소현이가 강력한 기술로 타격을 입히는 연계는 굉장히 좋았어. 소림아, 내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녀석을 잘 가둬둘 수 있겠니?”
 “한 번 해볼게요. 이번에 레벨이랑 숙련도도 많이 올랐고 아까처럼 불시의 기습만 받지 않는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소현이는? 아까처럼 큰 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겠어?”
 “당연하다! 이 몸의 불꽃은 무한! 체력이 버텨주는 한 얼마든지 꺼낼 수 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굉장히 오글거렸다.
 유세하는 피식 실소하고 난 뒤 방금 전 전투에서 얻은 정보를 베이스로 사냥방법을 보다 세련되게 가다듬었다.
 “다들 사냥은 계속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어요!”
 “힘들면 이야기 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유세하가 진중하게 경고를 하니 남매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시 특별한 변이체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녀석은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였지만 경험을 쌓고 공략방법을 몸에 익히기 시작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기 시작하면서 레벨과 숙련도는 급성장을 이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뒤, 중간보스가 등장했다.
 
 
 # 4화 중간보스
 
 1
 
 유세하는 중간보스를 감시하고 있었다.
 쿵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중간보스는 예전에도 등장했었던 살육자였다.
 콰앙!
 살육자는 거리를 거닐다 자신의 시야에 닿은 변이체를 단 일격에 산산조각 냈다.
 변이체를 박살낸 살육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다음 사냥감을 찾다가 재차 이동을 개시했다.
 한동안 살육자의 뒤를 따르며 감시하던 유세하가 거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복귀했다.
 “오셨어요?”
 남매가 숨어있는 장소에 도착하니 한소림이 쪼르르 달려 나와 유세하를 맞이했다.
 “녀석은 멀리 갔으니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한소림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고 있던 도중, 중간보스 살육자가 근처에 있는 것을 알아채고 부랴부랴 몸을 숨긴 찰나, 아슬아슬하게 녀석이 등장했다.
 온몸으로 위압감을 뿌려대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던 녀석이 근처를 스치고 지나갈 때는 정말 심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혹시 상태이상 메시지가 뜨진 않았지?”
 “저는 안 떴어요.”
 “저도요.”
 남매들처럼 유세하 역시 상태이상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그 전에는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에 짓눌렸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좋은 징조였다.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해봤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유세하
 *나이: 30살
 *레벨: 45 *경험치: 11%
 *보유능력: 중력제어(숙련도: 초급55 61%)
 *상태: 정상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한 덕택에 레벨과 숙련도 모두가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한소림도 레벨은 벌써 38이나 되었고 한소현도 42레벨을 달성했다.
 유세하는 과연 이 정도 전력으로 중간보스를 상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자신감은 생기지 않는 걸.’
 불안하다고 할까, 꺼림칙하다고 할까.
 이대로 맞붙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란 느낌이 강했다.
 넌지시 남매에게도 질문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부정적이었다.
 유세하는 일단 레벨은 50까지 달성해놓고 판단을 하기로 했다.
 아직까진 특별한 변이체로 얻는 경험치가 쏠쏠했기 때문에 성장의 여지가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사냥을 하고 난 유세하는 힐끔 하늘을 올려보고는 한소림에게 말했다.
 “소현이랑 같이 아지트로 돌아가 있어.”
 “아저씨는요?”
 “중간보스를 관찰할 생각이야.”
 한소림의 얼굴이 불안으로 얼룩졌다. 혼자 중간보스를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지 예상을 해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유세하는 손을 뻗어 걱정으로 얼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소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내 몸 하나 빼는 건 이젠 일도 아니니까. 아저씨의 능력은 잘 알고 있잖아?”
 말을 하면서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해서 스스로의 몸을 살짝 띄웠다.
 중간보스에게 들킨다고 하더라도 하늘로 날아올라 도망치면 된다는 의미였다. 또한, 자신이 중간보스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중간보스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해. 보다 안전하게 녀석을 사냥하려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어.”
 “…알았어요.”
 한소림도 중간보스를 관찰해야 하는 필요성은 이해했고 자신이나 한소현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 동의했다.
 유세하는 걱정하지 말란 의미에서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한소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나는 네가 지켜야 한다.”
 “알고 있어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한소현에게 믿음직하단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세워준 유세하가 자리를 박찼다.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부유감이 전신을 감쌌다. 실제로도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숙련도가 초급 50을 넘기면서 스스로의 몸에도 조금이지만 중력을 적용할 수 있게 되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방법이었다.
 속도도 느리고 만화처럼 멋들어진 비행도 할 수 없었지만 정찰하는 것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찾았다!”
 하늘을 날아 한동안 이동하니 중간보스 살육자가 포착되었다.
 유세하는 살육자가 거닐고 있는 거리의 빌딩에 안착하고는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약점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동패턴 정도는 파악해 놓아야 해.’
 그래야 사냥을 하게 될 때 녀석의 움직임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세하는 살육자를 관찰하는 것에 집중했다.
 
 ***
 
 유세하는 낮에는 남매와 함께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고 밤에는 중간보스 살육자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유세하가 그러하듯, 살육자도 변이체를 사냥하며 점점 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간보스 살육자는 강해진다는 뜻이었고 사냥이 힘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유세하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다소 무리를 하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밤에도 사냥하는 것을 제안했다.
 살육자가 강해지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던 한소림, 한소현 남매도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야간사냥도 불사하며 강행군을 펼친 결과, 유세하가 드디어 50레벨에 달성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5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50레벨달성 기념 특전을 지급합니다.]
 [지속적인 능력의 사용으로 중력제어 초급59가 60으로 성장합니다.]
 
 “50레벨 달성기념 특전?”
 “왜 그러세요?”
 유세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한소림이 의문을 표했다.
 유세하는 방금 전 자신이 본 메시지에 대해 설명해줬고 한소현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
 “어서 개봉해 보세요!”
 안 그래도 개봉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유세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특전이 담겨 있는 상자를 터치하니 여러 개의 메시지가 한꺼번에 출력됐다.
 
 [인벤토리가 5칸이 추가됩니다.]
 [고급 장비 소환권 1장이 지급됩니다. 소환권을 사용 시 무기, 방어구, 장신구 중 무작위로 소환됩니다.]
 [숙련도 상승권 1장을 지급합니다. 사용할 시 최소1에서 최대10까지 무작위로 상승합니다.]
 [상점에 상품이 추가됩니다.]
 
 제법 푸짐한 구성이긴 했는데 유세하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언뜻 봐서는 괜찮은 보상인 것처럼 보였지만 무작위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두 개나 껴있는 것이 문제였다.
 ‘어지간히 무작위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속으로 작게 푸념을 늘어놓은 유세하는 우선 상점에 새로 추가되었다는 상품부터 확인했다.
 새로 추가된 상품은 미니맵 활성화였는데 필요 포인트가 무려 5만 포인트나 되었다.
 기가 질릴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고 유세하는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는 생각에 상점 기능을 닫아버렸다.
 “5만 포인트…….”
 “좋은 기능이고 필요한 기능이기는 한데… 비, 비싸네요.”
 유세하가 미니맵 활성화에 알려주니 남매가 질렸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정신적인 충격을 뒤로 하고 이번에 유세하가 사용하기로 것은 고급 장비 소환권이었다.
 “후우, 좋아!”
 사용하는 건 유세하이건만, 어째 긴장은 남매가 더 하는 모양인지 침을 꼴깍 삼켰다.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
 장인의 종족인 드워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전투창이다. 무기로써의 기능도 훌륭하지만 더없이 훌륭한 외관이므로 장식품으로써의 활용도도 매우 높다.
 레벨제한: 50
 특수능력: 파괴의 망치, 회전 베기
 -파괴의 망치: 강력한 일격으로 대상을 파괴한다.(재사용 시간 10분)
 -회전 베기: 크게 회전하여 주위의 적들을 베어낸다.(재사용 시간 15분)
 내구력:100
 
 “……!”
 유세하는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다.
 설명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 무기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쿵!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을 꺼내니 설명대로 외관이 무척 멋있었다.
 창과 도끼날, 망치가 조합되어 있는 모양새였는데 한소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워했다.
 “참을 수가 없군!”
 유세하는 무기를 보고 나니 성능을 실험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한소현도 어서 사냥을 나가자며 보챘고 한소림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두 사람의 뜻에 따랐다.
 변이체를 학살하고 특별한 변이체를 소환한 유세하는 녀석과 1대1로 싸워보기로 했다.
 당연히 한소림이 반대했지만 여차하면 끼어들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수긍하고 물러났다.
 “캬아아아!”
 감히 자신에게 1대1 대결을 신청하는 유세하에게 건방지다는 듯, 특별한 변이체가 포효했다.
 중간보스의 등장으로 강화되고 밤인지라 버프까지 받은 녀석은 낮보다 몇 배는 위험했다.
 특별한 변이체와 대치하면서 유세하는 무기를 꾹 쥐었다.
 마치 맞춤제작이라도 한 것처럼 손에 딱 맞았고 가볍게 휘둘러보니 너무도 편안하게 움직였다.
 “간다!”
 유세하는 특별한 변이체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면서 녀석에게 앞뒤, 위아래로 변칙적으로 중력을 걸었다.
 일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무거워지고 당겼다가 미는 시간차 공격에 특별한 변이체가 균형을 잃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촤아악!
 기본적인 공격력도 무척 높은 편인지 특별한 변이체의 살갗이 너무나 부드럽게 베여나갔다.
 “크헥!”
 유세하가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임을 인식한 특별한 변이체가 답지 않게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유세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쿵!
 “크에에엑!”
 특별한 변이체를 중력으로 짓누르면서 유세하는 전투창을 양손으로 쥐었다.
 “파괴의 망치!”
 위이잉!
 전투창의 망치부분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유세하는 창끝으로 잡는 위치를 바꾸고 마치 야구에서 스윙을 하듯, 특별한 변이체를 후려쳤다.
 퍼석!
 얻어맞은 특별한 변이체의 가슴이 움푹 함몰되며 근처 건물로 날아가 처박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겨워 버둥거리는 녀석을 보며 유세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생각 이상이군.”
 설마 단 한 방에 특별한 변이체를 인사불성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유세하는 천천히 특별한 변이체에게 다가갔다.
 고통에 꿈틀거리던 녀석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튕겨 올라 유세하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회전 베기!”
 촤르르륵!
 유세하가 또 다른 특수능력을 발휘하니 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총 다섯 바퀴 정도의 회전이 있은 후, 유세하는 본능적으로 뒤쪽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투두둑.
 “…….”
 유세하는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에 쏟아지는 특별한 변이체였던 잔해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괴, 굉장해요!”
 “아저씨 멋있어요!”
 남매가 호들갑을 떨었다.
 유세하도 놀랍고 기분이 들뜨는데 어린 남매라면 더할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이거라면……!’
 유세하는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을 바라보면서 중간보스 살육자를 떠올렸다.
 처음 만남에서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포식자.
 녀석을 떠올리면 너무도 강렬한 인상 덕택에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지금은 달랐다.
 승리를 점칠 수 있게 된 유세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2
 
 유세하는 일반 사냥에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성능 자체는 분명 더할 나이 없이 뛰어났지만 문제는 내구력이었다.
 내구력을 회복시킬 수단이 없는 이상,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숙련도 상승권도 일단은 사용을 보류했다.
 숙련도도 아직은 잘 오르고 있으니 상승권을 지금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판단했다.
 특전의 정리를 모두 끝내고 난 유세하는 초롱초롱 눈빛이 빛나고 있는 남매를 볼 수 있었다.
 “빨리 50레벨이 되고 싶어요!”
 한소현이 제대로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소림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어서 50레벨이 되어 유세하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의욕이 충만해서인지 빠르게 레벨이 상승한 남매는 중간보스가 등장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드디어 50레벨을 달성했다.
 그에 비해 유세하는 레벨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50레벨 이후부터는 요구되는 경험치량이 매우 많아지는 모양이었다.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해 봤다.
 레벨은 52였고 숙련도는 초급63이었다.
 “슬슬 구체적인 사냥계획을 잡아야겠군.”
 중간보스가 등장한지 일주일이 지났으니 7일이 더 지난다면 녀석은 보스로 진화할 것이니 그 전에 사냥을 해야 했다.
 유세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소현은 신이 나서 얼른 특전을 개봉했는데 고급 장비 소환권에서 나온 것은 불쌍하게도 장신구였다.
 “이게 뭐야!”
 유세하처럼 멋들어진 무기를 원했던 한소현이 울상이 되었지만 능력을 확인하고는 금세 중2병을 폭발시켰다.
 “크크큭! 이거야말로 내가 머나먼 과거 잃어버렸던 신기 중 하나다!”
 방금 전까지 실망해서 울먹거렸던 것은 이미 기억 너머로 내던진 모양이었다.
 “무슨 능력인데?”
 “이 몸의 능력은 보다 극대화 시켜주는 지고의 보물이지.”
 대충 설명을 들어보니 플레이어 스킬을 강화시켜주는 종류의 장신구였다.
 위력을 증폭시켜주고 제어능력을 올려준다 하니 능력에 대한 응용력이 높은 한소현에게 딱 맞는 물건이었다.
 ‘무작위치고는 제법 잘 맞는 아이템을 주네?’
 유세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한소림 역시 제법 괜찮은 아이템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얻은 것은 방어구였는데 방어구의 경우에는 착용을 해도 시각적으로 변화가 없어서 어떤 외형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1시간에 한 번씩 절대가호라는 특수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효과는 본인에게 가해지는 타격을 약 10초 동안 무시하는 것이었다.
 결계를 사용하는 한소림에겐 그다지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아이템을 양도받아 보려고 했는데 특수능력이 있는 아이템의 경우에는 귀속상태가 되어버리는 특성이 있어서 불가능했다.
 ‘저 아이템을 나나 소현이가 사용할 수 있으면 전략의 폭이 한 층 넓어질 텐데…….’
 아무래도 한소림의 경우에는 몸을 직접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니 다른 방법은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유세하는 아쉬움을 뒤로 남매가 특전의 개봉을 끝마치자마자 회의를 시작했다.
 주제는 당연히 중간보스 사냥이었다.
 유세하는 중간보스의 행동패턴에 대한 것과 공략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주의사항도 곁들였다.
 한소림과 한소현은 수시에 응하는 수험생처럼 귀를 기울였다.
 이마에 ‘열공!’이라고 써놓은 머리띠가 환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소림과 한소현의 질문과 제안을 통해 몇 번의 수정을 거친 공략방법을 최종적으로 되짚어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났다.
 중간보스 사냥은 내일 하기로 했으니 오늘은 사냥을 하지 말고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가다듬자는 취지였다.
 유세하는 아지트의 옥상에 서서 도시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
 그렇게 감회에 젖어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한소림이 바로 옆에 섰다.
 “쉬라니까 왜 왔어.”
 “진정이 되질 않아서요.”
 내일이면 중간보스를 사냥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세 사람의 삶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 한소림에게는 과도한 부담감이 주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저씨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요.”
 “그렇구나.”
 자신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한소림을 보며 유세하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남매와 파티를 맺고 중간보스를 사냥하고자 한 시점부터 운명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진 않니?”
 질문을 해놓고도 유세하는 ‘아차!’싶은 마음을 가졌으나 의외로 한소림은 담담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으니까요.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잖아요?”
 “…….”
 “아저씨도 가족을 잃었는데 저랑 소현이만 아파하는 것도 불공평하고요.”
 지극히 어른스러운 반응이었고 유세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소림이 빙긋 웃더니 유세하의 손을 잡았다.
 “…아빠 손 같아요.”
 “그래.”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는 것을 느낀 유세하가 손에 힘을 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았고 조용히 도시의 전경을 응시했다.
 
 ***
 
 중간보스 살육자가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등장한 이래 적수가 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던 살육자는 문득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조그만 생물을 발견했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살육자가 포효했다.
 조그만 생물, 유세하는 자신이 최우선적으로 노려야 하는 사냥감이었기 때문에 살육자는 곧바로 흉성을 터뜨리며 돌격했다.
 콰앙!
 살육자의 몸통박치기에 건물이 흔들렸다.
 유세하는 가뿐하게 살육자의 공격을 피한 뒤, 예정된 루트대로 이동을 개시했다.
 쿵쿵!
 살육자가 유세하를 뒤쫓았다.
 “후우, 흡!”
 가볍게 심호흡을 한 유세하가 돌연 건물과 건물의 사이를 지그재그로 뛰며 날아오르다시피 하자 살육자가 일순간 멈칫했다.
 화르륵!
 그 틈을 노려 숨어있던 한소현이 불꽃공격이 날아들었다.
 펑펑!
 살육자의 몸에 부딪친 불꽃들이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지만 그다지 타격을 주진 못했다.
 살육자는 유세하 이외에 또 다른 사냥감이 있음을 알아채고 이번엔 한소현을 노렸다.
 “파괴의 망치!”
 살육자가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세하가 무기의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의 망치부분이 새하얗게 백열되는 순간, 유세하의 혼신의 일격이 작렬했다.
 콰앙! 드드드!
 살육자가 아스팔트에 긴 족적을 남기면서 뒤로 주르륵 밀렸다.
 찰나의 틈을 노린 최선의 일격이었지만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에 유세하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걸 막다니…….”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불시의 일격을 엄청난 반응속도로 반응해낸 살육자가 낮은 울음을 토했다.
 그래도 타격이 아예 없지는 않아서 공격을 막은 팔뚝 부위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흰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크억! 크억! 크아아!”
 발 굴림을 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살육자를 본 유세하가 눈빛을 빛냈다.
 “돌격 패턴! 소림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즉각 반응이 왔다.
 살육자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려는 순간, 반투명한 구체가 생성되어 살육자를 가둬버렸다.
 미처 탄력을 받기 전인지라 살육자는 결계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크륵?!”
 녀석이 당황했지만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한소현의 공격이 결계 안에서 터졌다.
 예전에 특별한 변이체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콤보 공격이었다.
 “크아아아아악!”
 처음으로 살육자가 고통을 표하며 몸부림 쳤다.
 처음 이 콤보를 사용했을 때보다 레벨과 숙련도가 모두 상승했고 무엇보다 한소현은 고급 장신구의 효과로 플레이어 스킬이 대폭 강화되어 있었다.
 살육자에게 공격이 효과를 보이자 유세하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감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기뻐하긴 일러!’
 안도감을 애써 밀어낸 유세하가 소리쳤다.
 “이동 개시!”
 명령을 외치고 나서 유세하 역시 자리를 이탈하는데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살육자의 대검에 결계가 깨진 것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겁을 상실한 사냥감들이 도망가는 모습을 본 살육자가 눈이 뒤집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힘껏 괴성을 지른 살육자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도약 패턴!’
 이 또한 그동안의 관찰을 통해 알고 있는 패턴이었고 한소림이 곧바로 반응했다.
 쾅! 펑! 쿵!
 굉음이 연거푸 세 번이 터졌다.
 도약한 살육자가 허공에서 한소림의 결계에 부딪쳐 땅으로 추락하며 난 소리였다.
 이번에도 제법 타격을 받았는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유세하가 혼란에 빠진 녀석을 향해 덤벼들어 무기의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회전 베기!”
 팽이처럼 회전하는 유세하의 연타에 의해 살육자의 피륙이 쩍쩍 갈라지며 핏물을 쏟아냈다.
 고통에 정신을 차린 살육자가 반격했지만 이미 유세하는 멀찌감치 물러난 뒤였다.
 “크르륵! 크르륵!”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분노를 드러내던 살육자가 별안간 움직임을 멈췄다.
 유세하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얼룩졌다.
 ‘녀석이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부터가 진짜 사냥이야!’
 지금까지 실컷 당한 덕택에 이번 사냥감이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살육자가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통하던 방법은 이제부터 통하지 않을 것이니 신중하게 녀석을 공략해야 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너와 정면대결을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유세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한껏 긴장감이 고소되던 상황에서 사냥감이 별안간 도망치니 살육자도 일순간 당황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살육자가 금세 유세하의 바로 뒤쪽으로 따라붙었다.
 쩡! 쩌저정!
 한소림이 결계를 쳐서 녀석의 진로를 방해하려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화르르륵!
 그 때 살육자의 머리 위에 불꽃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비처럼 쏟아졌다.
 치이이익!
 불꽃으로 이뤄진 비가 살육자의 살갗에 닿자 매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불꽃의 구름은 집요하게 살육자의 머리 위를 떠다니며 끊임없이 비를 쏟아냈다.
 “캬아아아아아!”
 살육자가 성가시다는 듯, 불꽃의 비를 만들고 있는 것이 한소현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검을 집어던졌다.
 “이얍!”
 한소림이 결계를 쳐서 동생을 보호했다. 또한, 한소현을 노리면서 생긴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유세하가 공략했다.
 중력의 힘을 이용하여 힘을 더한 일격이 살육자의 발목을 헤집었다.
 살육자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유세하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도 한소림의 결계가 큰 역할을 했다.
 결계에 가로막혀 잠깐 멈칫하는 사이, 유세하는 냉큼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가 또 다시 거리를 벌렸다.
 “크으으으!”
 성질이 제대로 뻗친 살육자가 이번에는 한소림을 향해 돌진 패턴을 사용했다.
 살육자가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한소림이 방어구의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절대가호!”
 쩡!
 살육자의 무시무시한 돌진공격을 가녀린 소녀가 가로막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살육자의 돌진이 멈추는 순간, 유세하는 어느새 재사용시간이 돌아온 파괴의 망치를 녀석의 등짝에 선물해줬다.
 콰아앙!
 살육자의 몸이 기울어지며 그대로 땅에 처박힌 틈에 유세하가 얼른 한소림을 데리고 도망쳤다.
 돌진에 의해 잠깐 떨어져 나갔던 불꽃의 구름이 다시 살육자의 위쪽으로 따라와 비를 뿌려댔다.
 “크으…크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포효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킨 살육자가 눈빛을 새빨갛게 만드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가 명령을 외쳤다.
 “모여! 광란 패턴이다!”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에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패턴이었다.
 유세하는 한소림과 한소현을 데리고 건물 위로 피신했다.
 녀석이 아무리 미쳐 날뛴다고 해도 이렇게 멀찌감치 높은 곳으로 피해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 모두 잘 하고 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반드시 놈을 잡을 수 있을 거야!”
 “네!”
 남매도 상황이 잘 풀려가는 것에 기뻐하며 전의를 다졌다.
 미친 듯이 광분하던 살육자가 차츰 진정이 되어갈 때쯤, 세 사람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살육자는 거센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당황했다.
 살육자와 세 사람의 사이에는 거인과 개미라고 할 수 있는 격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은 살육자였고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걱!
 자잘하지만 계속해서 쌓이는 공격들이 드디어 살육자에게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개미의 반격이었다.
 
 3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계속되는 전투에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정도였지만 아직도 살육자는 건재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그것은 유세하와 남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한 방만큼은 필사적으로 피한 덕택에 큰 상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 부딪치고 구르고 긁히면서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아저씨! 불꽃구름을 다시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바로 사용해!”
 체력이 떨어져서 불꽃구름을 사용하지 못했던 한소현의 외침에 유세하가 지시를 내렸다.
 상황은 긴박했다.
 건재하다고는 하지만 살육자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유세하와 남매들 역시 더 이상 뒤는 없었으니 필사적이었다.
 “크르륵!”
 살육자가 돌진 패턴을 사용했으나 처음과는 달리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것을 느낀 유세하였지만 지쳐있는 건 자신이나 남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콰앙!
 또 다시 세 사람이 회피를 하니 살육자는 엉뚱한 곳에 처박혔다.
 “크륵! 크아아아!”
 살육자가 두 눈빛을 새빨갛게 빛내며 광란 패턴으로 전환되었다.
 유세하가 남매들을 불러 모아 다시 하늘로 도망치려는 순간,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세상이 뒤집히는 감각이 찾아왔다.
 핑!
 “윽?!”
 체력을 넘어선 능력의 사용에 의해 일어난 부작용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광란에 접어든 살육자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소현아, 아저씨랑 도망쳐!”
 “누, 누나!”
 그 때 한소림이 비장한 얼굴로 소리치며 살육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림아! 안 돼!”
 “…아, 아저씨! 가요!”
 아직 시야가 회복되지 않았지만 한소림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 챈 유세하가 소리쳤다.
 한소현이 그런 유세하를 억지로 잡아끌면서 어떻게든 살육자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 사이, 한소림은 살육자의 무자비한 공격을 결계를 중첩시켜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꺅! 읍!”
 온몸을 짓누르는 살육자의 강력한 공격이 한 번씩 이어질 때마다 한소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귀와 코에서는 피가 나고 입에서는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파. 그래도 포기… 안 해!’
 한소림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살육자는 광분한 와중에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한소림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욱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아저씨는… 멀리 도망갔구나. 나 이정도면… 도움이… 됐지?’
 챙그랑!
 결계가 깨졌다.
 유세하가 그랬듯, 한소림 역시 한계까지 능력을 사용한 탓에 더 이상 결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한소림의 몸이 날아올랐다.
 살육자가 휘두르는 마구잡이 공격 중 하나에 얻어맞은 것이다.
 털썩.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한소림을 바라보며 한소현이 절규했다.
 “누나!”
 “크륵!”
 살육자가 그 외침을 듣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유세하와 한소현을 발견했다.
 녀석의 눈빛에 희열이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전 한 놈을 쳐죽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두 놈,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살육자가 단숨에 둘을 쳐부수기 위해서 도약패턴을 사용했다.
 그 순간, 유세하가 한소현을 뿌리치고 일어나 허공을 향해 비명 같은 괴성을 토해냈다.
 “으아아아아아아!”
 쾅!
 살육자가 도약했고 유세하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아, 아저씨!”
 한소현의 당황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유세하가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죽여 버린다!’
 마치 살육자가 광란 패턴에 들어간 것처럼 유세하의 머릿속엔 오로지 녀석을 죽인다는 일념만이 가득 찼다.
 한소림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손을 아빠 손 같다 말하며 놓치지 않겠다는 듯, 꾹 움켜쥐고 있던 가녀린 소녀를 떠올리며 유세하는 일갈했다.
 “죽어라!!!!!”
 재차 능력을 사용하니 어지럼증이 찾아왔지만 유세하는 개의치 않았다.
 만약 이번 격돌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한소현이 살아남는 결과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처절한 일갈과 함께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이 새하얗게 빛을 뿜었다. 특수능력 파괴의 망치였다.
 유세하와 살육자가 격돌을 하는 그 찰나의 순간,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기이이이잉.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 찾아오고 금방이라도 구토를 일으킬 것 같은 극심한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동시에 찾아온 것은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일체감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격돌로 인해 충격파와 굉음이 터지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격돌에서의 승자는 바로 유세하였다.
 살육자는 튕겨져 나가 머리가 완전히 땅에 처박혀 있었다.
 유세하는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살육자에게 추가타를 날렸다. 허공에서 떨어지며 중력의 힘까지 더해 녀석의 가슴팍에 창을 쑤셔 박았다.
 살육자가 경련을 일으킴과 동시에 유세하가 특수능력 회전 베기를 사용했다.
 워낙 깊숙하게 박혀 회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유세하가 이를 악물며 능력을 더하니 박힌 채로 회전하여 가슴을 잡아 뜯어 놨다.
 다만 뒤를 생각하지 않은 일격이었기에 유세하 자신도 기술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해 하늘로 튕겨 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쿨럭! 하, 한소현!”
 더 이상 자신은 공격할 수 없음을 깨달은 유세하가 소리쳤다.
 이미 그 전부터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한소현이 망설이지 않고 방금 전, 유세하가 공격하여 보기 흉하게 헤집어진 녀석의 가슴에 검을 틀어박았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이 괴물아!”
 한소현의 검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폭음과 함께 살육자의 몸이 들썩거렸다.
 쾅! 쾅! 쾅! 쾅! 쾅!
 한 번, 두 번…네 번…여섯 번, 녀석이 죽을 때까지 한소현의 공격은 이어졌다.
 한 번씩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한소현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급기야 한소림이 그랬던 것처럼 동공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끄어어어어어…….”
 한소현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온몸을 들썩거리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던 살육자의 움직임이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
 쿵!
 부르르 떨리던 팔다리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미동조차 없어졌다.
 “…….”
 한소현은 공격을 멈췄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있은 후, 한소현의 눈앞에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지가 떴다.
 
 [굉장한 업적! 플레이어 한소현님께서는 중간보스 살육자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X12
 [지속적인 능력의 사용으로 인해 불꽃 발현의 숙련도가 초급57에서 초급65로 대폭 상승합니다.]
 [1만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중간 보스 살육자 사냥 보상이 지급됩니다.]
 
 “해냈…다!”
 한소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굴러 떨어지다시피 하여 살육자에게서 내려온 한소현은 가장 먼저 유세하에게 달려갔다.
 “아저씨! 우리가 해냈어요! 이겼다고요! 엉엉!”
 눈물, 콧물을 전부 쏟아내며 유세하를 마구 흔들어대는 한소현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런 기원이 통했는지 유세하의 실낱같던 호흡이 기침과 함께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소, 소림이는?”
 “아……!”
 깨어나자마자 살육자를 향해 승리했음을 직각한 유세하가 한소림부터 찾았다.
 한소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려 한소림이 쓰러져 있었던 장소를 찾았다.
 “누, 누나!”
 한소현이 허겁지겁 달렸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유세하도 절뚝거리면서 한소림이 있는 방향으로 힘겹게 나아갔다.
 한소림은 편안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한소현을 대신하여 유세하가 조심스럽게 왼쪽 가슴에 귀를 가져갔다.
 두근, 두근!
 미약하지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유세하의 얼굴엔 안도감이 생겨나며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살아 있어…….”
 “정말요? 진짜로요?!”
 “살아 있어! 큭!”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유세하가 한두 방울씩 눈물을 흘렸고 한소현도 대성통곡했다.
 두 사람의 울음 속에서 한소림의 눈매가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움직였다.
 “아저…씨?”
 “그래, 소림아. 아저씨야. 다 끝났어. 우린 이겼어.”
 “…헤헤. 무사해서…다행…이에요.”
 그 말만 하고 한소림은 다시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고른 것을 보니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다 싶어 유세하는 깜짝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유세하의 시선이 살육자를 향했다.
 지독하고 두려웠으며 강대했던 괴물은 이젠 사체가 되어 너부러져 있었다.
 승리였다.
 
 ***
 
 유세하와 남매는 살육자와의 전투에서 승리 후, 간신히 아지트에 도착하여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하루를 꼬박 잠자고 나서야 겨우 체력을 회복한 유세하는 가장 먼저 한소림의 상태부터 살폈다.
 “우웅, 아저씨?”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유세하의 인기척을 느낀 한소림이 비몽사몽 불렀다.
 유세하가 대답을 해주는 대신, 손을 꾹 잡아주자 한소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헤헤헤헤.”
 한소림이 헤픈 웃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유세하 역시 절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마지막으로 한소현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세 사람 모두 모일 수 있었다.
 잠깐 동안의 어색함이 있은 후, 세 사람 전부 특별한 이상이 없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살육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실감이 났다.
 “맞아! 보상이 있다고 했었어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와중, 한소현이 살육자를 사냥한 보상이 있음을 밝혔다.
 유세하도 그렇고 한소림도 살육자가 죽었을 당시 기절해 있다시피 해서 메시지를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한소현의 말에 크게 놀랐다.
 “녀석을 사냥했다고 보상을 줬다고?”
 “네. 저도 아직 확인은 안 했어요.”
 놀람도 잠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살육자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그런만큼 특별히 보상이 주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하는 인벤토리를 열어봤다. 그곳에는 한소현의 말처럼 살육자 사냥 보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간보스 살육자의 대검]
 살육자는 사냥을 할 때 항상 사용하던 대검이다. 무척 튼튼하고 절대 부러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레벨제한: 80
 특수능력: 혈기 흡수, 혈기 개방, 피의 광기
 -혈기흡수: 생명체를 베어내면 혈기를 흡수하여 저장한다.(패시브)
 -혈기개방
 1.흡수한 혈기를 개방하여 일격을 날린다. 흡수한 혈기가 많을수록 위력이 강해진다.(재사용시간: 10초)
 2.흡수한 혈기로 사용자의 생명력을 회복한다.(재사용시간: 10초)
 -피의 광기: 이성이 흐려지는 대신 육체의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재사용시간: 20분)
 내구력: 무한
 
 보상상자를 개봉하니 나온 아이템 정보였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굉장한 효과를 지닌 무기였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레벨제한에 걸려 사용하지를 못했다.
 보상은 딱 무기 하나가 나왔지만 유세하는 만족했다. 레벨도 급성장을 하여 현재 61이나 되었다.
 살육자를 잡으면서 8레벨이 올라간 것이고 숙련도 같은 경우에는 초급72로 급성장을 해있었다.
 ‘보상으로 주어진 장비 레벨을 보면 살육자의 레벨은 80이나 되었던 모양이지?’
 무려 30레벨이나 차이가 나는 상대를 사냥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세하는 새삼 자신과 남매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유세하가 다시는 못할 짓이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데 한소현의 환희에 찬 비명이 들렸다.
 “우와! 무기다!”
 한소현이 그토록 염원하던 멋들어진 무기가 나온 것이 이유였다. 이번에 얻은 무기는 한 쌍의 단검이었는데 옵션 자체는 유세하가 얻은 것과 비슷했다.
 다만, 유세하의 것과는 달리 피의 광기가 없었고 혈기개방도 공격능력만 있을 뿐, 회복능력은 없었다.
 한소림은 장신구를 얻었는데 혈기흡수와 혈기개방은 비슷했지만 능력 자체는 회복에 치중되어 있었다.
 ‘보상이라기 보단 사냥 특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
 유세하의 생각처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골격 자체는 비슷한 장비들이 나왔으니 특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보스인가?”
 흥겨움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 유세하는 중얼거렸다.
 중간보스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고 최종적인 목표는 보스였다. 하지만 유세하는 일단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중간보스를 사냥한 성과를 만끽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 편히 쉬기로 했다.
 
 
 # 5화 변화
 
 1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뿌득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시원해졌다.
 유세하는 어쩐지 손에 쥐고 있는 날카로운 롱 소드가 어색하단 실없는 생각을 했다.
 ‘살육자를 사냥하면서 내구력이 많이 깎였으니까… 아껴둬야지.’
 현재 인벤토리 창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의 현재 내구력은 45였다.
 단 한 번의 전투에 절반이 넘게 깎여 나갔다는 사실에 유세하는 속이 쓰렸다.
 “아저씨, 저는 준비가 되었어요.”
 “크큭! 이 몸도 끝났다!”
 남매가 준비를 마쳤다는 보고를 했다.
 쓰린 속마음을 뒤로 넘긴 유세하는 자신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보고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 사냥을 나섰다.
 “어서 모습을 나타내라, 우매한 녀석들! 이 몸의 위대함을 새겨주마!”
 자신만만한 한소현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실소를 머금었던 유세하는 문득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변이체가 안 보여요.”
 유세하가 느낀 의문을 한소림이 입에 담았다.
 평소 같았으면 변이체와 한두 번 정도는 마주쳤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거리는 너무 조용했다.
 “이상한 걸.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유세하는 말끝을 흐리면서 혹시 중간보스를 사냥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잠깐 숨어있어 봐. 정찰을 하고 올게.”
 “네. 조심하세요.”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해 하늘로 솟구치다가 깜짝 놀랐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윽!”
 살짝 겁이 난 탓에 얼른 능력을 제어하니 점점 속도가 줄었다. 하지만 유세하의 몸은 이미 도시의 상공 꽤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이게 무슨…….”
 혹시 숙련도가 올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정정했다.
 지금까지 숙련도를 쭉 올려왔지만 지금처럼 급격한 성장을 한 전례가 없었다.
 “혹시 그 때의…….”
 중간보스 살육자와 정면으로 충돌을 했을 때, 전신을 지배했던 기묘했던 감각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그 때 모종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살살 능력을 사용해 보니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수발이 자유로웠고 위력도 많이 늘은 것 같았다.
 “좋은 걸?”
 강해져서 나쁠 건 없었기 때문에 유세하는 유쾌한 기분을 느끼며 아래로 하강했다.
 빌딩의 옥상 정도의 위치에 도달하여 허공을 배회하니 변이체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로군.”
 변이체들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남매에게로 돌아온 유세하가 앞장섰다.
 “응?”
 “한 마리도 없는데요?”
 방금 전 확인했던 위치에 도착한 유세하는 크게 당황했다.
 분명 이곳에 많은 숫자의 변이체가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유세하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곳에서 확인해 보니 분명 변이체가 거리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생각하면서 유세하는 다시 남매에게로 돌아왔다.
 “저쪽 방향에 녀석들이 몰려있어. 일단 너희들끼리 그곳으로 움직여 봐.”
 “그럼 아저씨는요?”
 “나는 하늘에서 녀석들의 움직임을 관찰해볼게. 내 생각이 옳다면 이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야.”
 유세하는 자신의 가설이 틀리길 바랐다. 하지만 항상 안 좋은 예상은 적중하기 마련이었다.
 “녀석들이 우리를 피하고 있어.”
 “…정말이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관찰한 결과, 남매가 일정거리 이상 가까워지자 변이체들은 기겁하고 거리를 벌렸다.
 그 속도가 무척 재빨랐고 은밀했기 때문에 여태껏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녀석들이 겁이라도 먹었나?”
 “설마…가 아니라 가능성은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중간보스를 사냥했잖아요. 그렇죠?”
 한소림의 말은 유세하도 생각했던 부분이기에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유세하가 언급했던 것처럼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변이체들이 도망 다닌다면 속도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어떻게 하려고요?”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는데…내 능력이 제법 강해졌거든. 그래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이 있어.”
 한소림과 한소현이 의문을 표했고 유세하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씩 웃고 손을 내밀었다.
 “잡아.”
 “……?”
 두 사람은 짙은 의문을 표현했지만 그러면서도 순순히 유세하의 손을 잡았다.
 양쪽에 한 사람씩 손을 맞잡은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하자 셋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어어!”
 “꺅! 날아요!”
 부유감을 느끼고 당황해서 발을 버둥거리던 둘이 곧 적응하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세하는 장난스런 미소를 짓고는 속도를 올려 그대로 빌딩 위쪽으로 솟구쳤다.
 “으악!”
 “꺅!”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면서 당황하던 남매의 반응이 곧 신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언뜻 느끼기엔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제법 스릴이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유세하가 남매를 데리고 날아간 곳은 변이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 보이는 장소였다.
 “소림아, 결계로 녀석들을 가둬!”
 “아…! 알았어요!”
 유세하의 의도를 눈치 챈 한소림이 정신을 집중하여 광범위한 결계를 만들어냈다.
 변이체들은 순간 반투명한 막이 자신들을 감싸자 당황했고 뒤늦게 유세하와 남매를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케르르르르륵!”
 “소현아! 지져버려!”
 “아하!”
 한소현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결계 속의 변이체들을 일순간에 쓸어버렸다.
 무척 강력해진 한소현의 불꽃은 순식간에 변이체들을 학살했고 특별한 변이체를 소환해냈다.
 “크륵?!”
 제법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특별한 변이체는 나타나자마자 주변의 불꽃이 자신을 덮치는 광경이 크게 당황했다.
 곧이어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고 특별한 변이체는 나온 지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그렇게 사냥을 종료한 순간, 세 사람의 눈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변이체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합니다.]
 [특별한 변이체가 특수소환이 아닌 상시소환 상태로 전환됩니다.]
 [변이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예 변이체가 등장합니다. 앞으로 변이체들은 정예 변이체와 뭉쳐서 행동합니다.]
 
 메시지는 이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정예 변이체의 등장으로 인해 변이체, 특별한 변이체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은 해봤었지만.”
 진짜 이렇게 되어 버리니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자신이 성장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변이체들을 진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정예 변이체라니…강할까요?”
 한소림이 불안함을 내비쳤다. 그러자 한소현이 가슴을 탕치면서 말했다.
 “우린 중간보스까지 사냥했어! 강하긴 할 테지만 그 괴물 녀석보다 강할까!”
 “…그렇군.”
 정예 변이체라고는 하지만 중간보스보다 강하진 않을 테니 걱정이 너무 앞섰다 싶었다.
 “우선은 어떤 녀석인지 볼까.”
 유세하는 남매를 데리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변이체들을 찾았다.
 방금 전 메시지대로 변이체들은 한곳에 대량으로 밀집해 있었다. 비율은 특별한 변이체 한 마리 당 일반 변이체가 10마리 정도였는데 이런 그룹이 대략 5개 정도였고 그 중심에는 정예 변이체로 추정되는 녀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발견한 남매가 크게 동요했다.
 “저 놈은… 살육자?”
 “중간보스가 왜……?”
 정예 변이체의 외형이 마치 중간보스 살육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닮았던 것이다.
 유세하도 처음 봤을 때는 흠칫 놀랄 정도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우선 체구가 작았고 살육자에게서 뿜어지던 특유의 위압감 역시 없었다.
 “살육자와 특별한 변이체의 중간 정도…인가.”
 대충 녀석에 대한 평가를 내린 유세하는 빌딩의 옥상 위에 착지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까 사냥을 하긴 해야겠지. 다만 그 전에 저 정예라는 녀석의 대한 정보를 얻고 싶긴 한데…….”
 유세하는 잠깐 고민했다.
 “우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사냥을 해보자. 그러면서 정보를 모으도록 하자.”
 유세하는 무난한 방법을 선택했다.
 무리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지금 자신과 남매의 전력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의 발로였다.
 세 사람이 변이체 무리의 앞에 섰다.
 “크르르르륵!”
 변이체들은 유세하와 남매들을 발견하더니 울음소리를 내며 흉흉한 기세를 불태웠다.
 “방금 전까진 도망치기 바빴던 녀석들이…….”
 한소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유세하도 마찬가지의 심정을 느끼면서 변이체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건… 통제당하는 건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반응인지라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생존자를 발견하면 미친 듯이 덤벼들던 변이체들이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처럼 흉포함만 드러낼 뿐,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만약 통제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예 변이체의 힘일 것이라 판단한 유세하가 말했다.
 “소림이는 공격보단 방어에 치중을 해줘. 아무래도 변이체들이 강화되었다고 했으니 이전처럼 쉽게 사냥할 수 없을지도 몰라. 소현이는 특별한 녀석이나 정예 놈보단 일반인 녀석들을 상대하는데 주력해. 될 수 있으면 범위공격으로 쓸어버려.”
 “알았어요.”
 “크큭! 순식간에 정리를 해주지!”
 “그럼…간다!”
 처음 공격의 시작은 유세하부터였다.
 날카로운 롱 소드를 쥐고 변이체들을 향해 돌진하니 녀석들이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일반 등급의 녀석들은 뒤로 물러나고 다섯 마리의 특별한 변이체들이 유세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술을 사용하는 건가?!’
 확실히 막무가내로 싸워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절제된 움직임이었다.
 심지어 정예 변이체의 능력으로 강화되어 있는 녀석들이 다섯 마리나 되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유세하는 재빨리 인벤토리를 열어 무기를 교환했다.
 “초장부터 얕보일 수는 없지!”
 위잉!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이 하얀 빛에 휩싸여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폭발시켰다.
 쾅!
 기세 좋게 달려들던 특별한 변이체들이 일제히 뒤로 튕겨나가 비명을 질러댔다.
 다들 한 군데씩 부러지거나 함몰이 되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유세하는 기세를 몰아 회전 베기를 사용했다.
 촤르르르륵!
 유세하의 몸이 회전하며 특별한 변이체들을 도륙할 찰나, 일반 등급의 변이체들이 튀어나와 방패처럼 버텼다.
 그 틈을 타 특별한 변이체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유세하의 좌우, 앞뒤를 포위했다.
 깡!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고 특별한 변이체들의 공격이 가로막혔다.
 한소림이 결계를 펼쳐 보호해준 것이다. 그 순간 새까만 그림자가 비호처럼 날아들어 결계를 후려쳤다.
 쾅! 챙그랑!
 단 일격에 결계가 깨졌고 그 여세를 몰아 유세하에게까지 공격이 들이닥쳤다.
 “흡!”
 창대를 세워 공격을 막으니 몸이 주륵 밀려났다. 그러면서 자세가 무너지니 특별한 변이체들이 기다렸다는 듯 덮쳤다.
 화르르륵!
 이번엔 한소현의 견제공격이 특별한 변이체들을 막아섰다. 그 때 일반 변이체들이 남매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이 몸을 우습게보지 마라!”
 자신이 얕보였다고 생각한 한소현이 자존심이 상해 일갈했다. 그 일갈에 맞춰 일어난 불꽃의 벽이 달려오는 변이체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변이체들은 불꽃의 장벽을 무시하고 덤벼들려 했지만 한소림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불꽃의 장벽 바로 뒤에 결계를 쳤다.
 덕분에 불꽃장벽을 돌파하려던 녀석들은 결계에 가로막혀 전진을 하지 못해 피해만 입었다.
 “어떠냐, 이놈들… 흐헉!”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한소현이 어느새 접근한 정예 변이체의 공격에 기겁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하고 반격했지만 녀석은 바람처럼 움직여 이번에는 한소림을 노렸다.
 “저, 절대가호!”
 쩡!
 워낙 빠른 움직임인지라 미처 결계를 준비하지 못한 한소림이 급한 대로 방어구의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이 자식이!”
 한소현이 방심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상대하려 드니 정예 변이체는 훌쩍 몸을 날려 다른 녀석들의 뒤로 숨었다.
 홧김에 일반 변이체들을 쓸어버리려 하니 녀석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
 그 사이 가까스로 특별한 변이체를 떨쳐내고 남매와 합류한 유세하는 생각했다.
 ‘난적이로군.’
 하나, 하나는 별 거 아니지만 이렇게 그룹을 이뤄 연계하니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혈투가 예상되었다.
 
 2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세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흠!”
 깊이 숨을 마친 채, 정신을 집중한 유세하는 전력을 다해 중력으로 변이체들을 짓눌렀다.
 파직!
 유세하를 중심으로 직경 20미터 정도 되는 구간에 강대한 중력이 걸렸다.
 “크르륵?!”
 “케레레레렉!”
 일반 변이체는 짓누르는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해 무릎을 꿇었고 특별한 변이체들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제약이 걸렸다.
 멀쩡한 것은 오로지 정예 변이체뿐이었는데 녀석도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과연 그레이트 워리어! 훌륭한 솜씨다!”
 옆에서 한소현이 딴에는 칭찬하고자 하는 의도였는지 한마디 했는데 오히려 힘이 빠질 뻔했다.
 “실없는 소리 말고 녀석들을 처리해!”
 “크큭! 보아라! 폭발은 예술이다!”
 어느 만화에서 봤던 적이 있는 것 같은 대사를 외치면서 한소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작은 불씨 같은 것들이 변이체의 근처에서 수없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바로 코앞에서 터진 폭발을 직격당한 변이체들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화려한 폭발 속에서 일반 등급의 녀석들은 일거에 소거되고 특별한 등급 두 마리도 비명횡사해서 남은 건 특별한 3마리와 정예 변이체 뿐이었다.
 “형세가 역전되었군!”
 “크르르륵!”
 정예 변이체는 갑작스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물쩍거렸고 유세하는 그러한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푹!
 중력을 풀자 휘청거리는 특별한 변이체 세 마리를 회전 베기를 사용해 치명타를 입히고 유세하가 정예 변이체를 향해 파괴의 망치를 사용했다.
 쾅!
 정예 변이체가 파괴의 망치를 얻어맞은 뒤, 도망치려고 하자 한소림이 얼른 결계로 가뒀다.
 그 사이 한소현이 큰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는 특별한 변이체 세 마리를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남은 건 정예 변이체 한 마리…녀석은 고군분투했지만 혼자서는 세 사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후우, 얼마나 지난 거지?”
 생각보다 전투에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
 변이체들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한 덕분이었고 그에 따른 대응책이 시급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냥 경험치가 제법 쏠쏠하단 점이었다.
 “정예 변이체가 등장하면서 강해졌다고 했었으니 주어지는 경험치도 늘어난 모양이군.”
 경험치 뿐만이 아니라 포인트 역시 상당히 많은 양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세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5만 포인트의 미니맵 기능을 구입한 것이다.
 “미니맵 활성화.”
 유세하가 명령어를 외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생성되었다.
 가로세로 3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지도였는데 정중앙에는 유세하와 남매가 푸른 점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회색의 선들은 건물들이고…붉은 점이 변이체들이겠군.”
 유세하는 이것저것 미니맵을 조작해봤지만 현재의 위치를 중심으로 일정구역의 정보를 밝혀주는 것과 시간을 표시해주는 것 이외의 기능은 없었다.
 “시간이라…….”
 보스의 출현 시점까지의 시간을 추려본 유세하는 방금 전 얻은 경험치의 양을 토대로 가능한 레벨 업의 양을 계산해봤다.
 “아슬아슬하군.”
 유세하가 목표로 삼고 있는 레벨은 80이었다.
 80레벨이 되면 중간보스를 잡고 얻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세 사람의 전력을 급상승할 터였다.
 유세하는 보스를 잡기 위해서는 그 장비들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소림아, 소현아. 아무래도 우리는 생고생을 해야 하는 팔자인 것 같다.”
 “왜 그러세요? 서, 설마?”
 유세하는 방금 전 자신이 정리한 정보를 알려줬고 남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보스를 잡으려면 할 수 없어. 강행군이다!”
 “아, 안 돼!”
 한소림의 애달픈 외침이 공허하게 흩어졌다.
 
 ***
 
 미니맵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니 변이체들의 위치를 포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유세하가 또 다른 변이체 무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이동하려 하자 옆에서 한소림이 우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 오늘은 이제 그만해요.”
 한소림이 울상이 되어서 칭얼거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세하는 고민에 빠졌다.
 ‘사냥을 많이 하긴 했지.’
 벌써 변화가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노하우마저 생겨서 변이체 무리를 처음 전투와는 달리 수월하게 사냥했다. 그런 만큼 상당한 강행군이 되었고 남매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한 것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유세하 역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와아!”
 “쉬, 쉴 수 있다.”
 남매의 반응을 보니 급한 마음에 너무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보스가 출현하는 시간 내에 80레벨을 찍는 것은 아무리 고민해도 무리였다.
 “이럴 때 퀘스트라도 떠주면 좋으련만…….”
 저번에 특별한 변이체를 사냥하면서 나왔던 퀘스트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나오질 않고 있었다.
 퀘스트의 출현 조건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아직까진 감도 잡히질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지트에 도착한 유세하는 남매들이 먼저 휴식을 취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 누웠다.
 많이 힘들었는지 눕자마자 잠드는 남매를 보며 자신이 너무했다 싶은 측은지심은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마음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생존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한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피로했던 탓인지 유세하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지트엔 고른 숨소리만 들려오며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을 때쯤이었다.
 챙그랑!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고 유세하를 비롯한 남매가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예요?”
 한소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을 때, 유세하는 반사적으로 아지트로 들어오는 입구를 확인했다.
 “……!”
 유세하는 경악했다. 어느 틈엔가 아지트의 입구가 변이체들로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변이체는 아지트 건물을 통째로 포위하고 있었고 그 숫자가 일일이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유세하는 얼른 미니맵을 켰다.
 미니맵에는 유세하와 남매를 중심으로 사방이 붉은 점으로 가득했다.
 “전술에 이어 전략까지 구사하는 거냐…….”
 유세하는 너무 방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간보스도 사냥하고 지금까지 정예 변이체 무리를 사냥하면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탓에 너무 마음을 놓아 버렸다.
 변이체들이 아지트 안으로 물밀듯 몰려왔다.
 “탈출하자!”
 유세하는 그렇게 외친 뒤, 한소림과 한소현의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에는 변이체가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도망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 아저씨! 위에……!”
 밑에 개미떼처럼 몰려 있는 변이체들을 보고 기가 질려있는데 한소현의 경고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건물의 옥상 위에서 특별한 변이체들이 유세하와 남매를 노리고 뛰어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이런 젠장!”
 유세하는 남매를 만나고 최대한 자제하고 있던 욕설을 내뱉으며 능력을 사용했다.
 특별한 변이체들이 중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쾅쾅!
 경험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특별한 변이체의 습격을 넘기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정예 변이체의 공격이 이어진 것이다.
 “큭!”
 세 사람이나 동반한 채 정예 변이체들의 맹공을 버틸 수가 없었던 유세하가 결국 균형을 잃었다.
 변이체들의 한복판으로 떨어지자 한소림이 결계를 여러 개로 중첩하여 방어선을 펼쳤다.
 한소현도 불꽃의 벽을 둘러쳐 녀석들이 함부로 결계에 달라붙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아, 그래. 크게 다치진 않았어.”
 한소림은 울상이 되어 잔뜩 부어오른 유세하의 어깨를 응시했다.
 떨어지는 와중, 필사적으로 남매만큼은 보호한 대가로 유세하는 부상을 입어야 했다.
 어깨를 몇 번 움직여본 유세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뻐근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움직인데 지장은 없었다.
 쾅쾅!
 잠깐 시간을 지체한 사이, 특별한 변이체들이 불꽃 장벽을 뚫고 결계를 두들겼다.
 간간히 결계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정예 변이체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결계가 깨질 때마다 한소림이 얼른 보충을 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기에 유세하는 미니맵을 열었다.
 “포위망이 가장 얇은 곳을 뚫자!”
 세 사람은 방향을 정하고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가장 앞쪽엔 유세하가 섰고 가운데는 한소림, 마지막 후미엔 한소현이 자리를 잡았다.
 유세하는 한 손에는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을, 나머지 한 손에는 날카로운 롱 소드를 쥐고 가로막는 변이체를 도륙했다.
 “캬아아아아아!”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포위망을 뚫는 것에만 집중해! 특별한 변이체와 정예 변이체는 무시하고 일반 등급만 죽여!”
 유세하는 쉴 세 없이 지시를 내리면서 틈틈이 무기의 내구력을 체크했다.
 무기가 없다면 포위망을 뚫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관리를 해야만 했다.
 특별한 변이체와 정예 변이체는 튕겨 내거나 피하고 일반 등급의 녀석들만 돌파하며 포위망을 거의 다 뚫었을 때였다.
 “……!”
 갑자기 변이체들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다수의 특별한 변이체가 앞을 가로막았다.
 급히 방향을 바꿔 녀석들을 피하려는데 이번에는 정예 변이체들이 합심하여 진로를 방해했다.
 그 뒤로는 넘실거리는 파도같이 일반 변이체들이 움직여 포위망을 두텁게 형성했다.
 뚫릴 것처럼 보이던 포위망은 거짓이고 보다 완벽하게 유세하와 남매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변이체들의 함정이었다.
 유세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칫하면 이곳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별안간 한소현이 한 곳을 가리켰다.
 “아저씨, 저곳이에요!”
 한소현이 가리킨 곳은 하수도 맨홀이었다.
 워낙 당황해서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한소현 덕택에 활로가 열렸다.
 다행히 하수도 맨홀 주변에는 일반 등급의 변이체들만 자리 잡고 있어서 도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소현아! 녀석들을 치워! 소림이는 곧바로 결계를 쳐주고!”
 남매가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따라 하수도 맨홀 주변의 공간을 확보했다.
 재빨리 하수도 맨홀에 도착한 뒤, 한소현과 한소림이 맨홀을 여는 사이, 유세하가 중력의 힘을 이용하여 녀석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았다.
 유세하를 중심으로 약 5미터정도가 복합중력 공간이 되어 변이체들이 갈팡질팡 했다.
 여러 가지의 중력 변화를 일으키려 하니 금세 과부하가 걸려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아저씨, 됐어요!”
 맨홀 뚜껑이 열리고 남매를 먼저 들어가게 한 유세하가 이를 갈며 변이체들을 노려봤다.
 “캬아아아악!”
 어떻게든 도주를 막아보려 하는 녀석들의 반응을 보니 이곳만큼은 포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챈 유세하가 안도했다.
 “이번 수모는 꼭 갚아주마!”
 삼류 악당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를 던져준 유세하가 맨홀로 쏙 들어온 뒤, 입구를 부셔버렸다.
 콰릉!
 파괴의 망치로 후려치니 맨홀 입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바깥쪽에서는 변이체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미니맵을 켜보니 녀석들이 활발하게 흩어지며 유세하와 남매를 찾으려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윽, 냄새.”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고 나니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참아보려고 해도 절로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터라 세 사람은 적응을 할 때까지 고생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죠?”
 “…고민을 해봐야지.”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유세하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 6화 지하의 생존자들
 
 1
 
 유세하는 미니맵을 켰다.
 시간을 보니 저녁 8시를 막 넘긴 시점이었고 붉은 점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하수도로 피신한지 이틀이나 지났건만 상황을 여태껏 변한 것이 없었다.
 “영악한 녀석들…….”
 유세하의 중얼거림처럼 변이체들은 굉장히 영악한 움직임을 보였다.
 수색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분산되기 마련이고 그 틈을 공략당할 수도 있었다.
 마치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변이체들은 낮에는 철저히 뭉쳐 다니고 수색은 자신들이 강해지는 밤에만 진행했다.
 그 탓에 이틀 동안 유세하와 남매는 사냥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플레이어 정보]
 *이름: 유세하
 *나이: 30살
 *레벨: 71 *경험치: 11%
 *보유능력: 중력제어(숙련도: 초급76 98%)
 *상태: 피로
 
 유세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범위의 성장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대로 쉬질 못해 무척 피로했다.
 ‘만약 소림이가 사냥을 접자고 했을 때 무리했으면 큰일 날 뻔 했군.’
 그랬다면 이렇게 살아서 하수도로 도망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녀석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고민을 하며 걷던 유세하는 문득 한소현과 한소림이 멈춰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
 유세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눈앞에 처참한 몰골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 사람이에요.”
 “…….”
 “아저씨…변이체의 시체가 아니에요. 이건… 사, 사람이에요!”
 한소림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눈앞의 시체는 변이체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변이체의 시체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선 변이체는 눈앞의 시체처럼 빨간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시체가 평범한 사람의 것이라는 증거는 충분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설마… 생존자가 있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어째서 지금까지 남매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생존자들이 지하로 피신하여 몸을 숨긴 것이라면 지상을 아무리 찾아도 보일 리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유세하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좋은 의미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수색을 해보자. 생존자가 있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몰라.”
 “네. 맞는 말이에요.”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한소림이 진정했는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변이체들을 사냥하며 지금까지 견뎌온 강단 있는 소녀였다.
 비록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을지언정, 그것에 휘둘려 자신을 잃지 않아 무척 대견했다.
 “가자, 소현아.”
 유세하가 충격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한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위로했다.
 떨리는 눈망울로 올려보던 한소현의 눈빛에 굳은 심지가 되돌아왔다.
 생존자의 수색이 시작됐다.
 어둡고 습한 하수도를 돌아다니는 것은 곤혹스런 일이었지만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없던 힘도 솟았다.
 수색이 시작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앗!”
 뭔가를 발견한 한소현이 소리를 지르자 참방참방 하는 물소리가 하수도를 울렸다.
 “자, 잠깐! 기다려!”
 유세하도 물소리를 듣고 발견한 멀어져가는 실루엣을 보며 소리쳤다.
 “어서 쫓아가자!”
 “네!”
 드디어 생존자를 찾았다는 생각에 세 사람은 밝은 얼굴로 실루엣의 뒤를 쫓았다.
 도망치던 실루엣은 세 사람이 쫓아오는 것에 당황했는지 다소 허둥대는 기색이었다.
 “멈춰요! 우린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
 한소림이 애타 가서 소리를 지르자 실루엣이 멈칫하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한 움직임으로 도망쳤다.
 “일단 잡고 봐야겠군!”
 아무래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멈출 것 같지가 않아 유세하는 다소 강경한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유세하가 능력을 사용하자 도망치는 실루엣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으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고 공황에 빠진 것 같은 그에게 접근한 유세하가 일단 제압부터 했다.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부탁드립니다!”
 “진정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남자의 말에 유세하가 인상을 찌푸릴 때, 뒤늦게 도착한 한소현이 불을 밝혔다.
 “……!”
 유세하와 남매가 경악했다.
 피골이 상접하고 뼈만 남은 남자가 살려 달라 외치고 있었다.
 도대체 남자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유세하의 낯빛이 딱딱해졌다.
 ‘뭔가 있군.’
 그것도 좋지 못한 종류의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남자가 진정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남자의 몰골이 너무 안쓰러워서 먹을 것을 주었더니 허겁지겁 씹어 삼키는 것이 상당히 오랜 시간 굶은 것 같았다.
 그 덕분에 가까스로 진정된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쉽게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유세하가 낯빛이 잔뜩 굳어서 물으니 스스로를 박한솔이라 밝힌 그가 얼굴을 끄덕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한소림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큰 충격에 빠졌다.
 박한솔의 말에 의하면 지하 하수도에는 생존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구역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역은 어떤 남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한 자들은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플레이어로 각성한 것은 아니었던 건가?”
 유세하의 중얼거림에 박한솔이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모두 플레이어로 각성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은 힘을 잃은 거죠?”
 “그게…어느 날을 기점으로 플레이어로써의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어째서인지는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유세하는 잠깐 고민을 했다가 다시 질문했다.
 “혹시 플레이어 레벨은 몇 까지 올렸습니까?”
 “…5였습니다. 그 이상은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이 지하로 도망쳐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튜토리얼이군!’
 유세하는 남자와 사람들이 어째서 플레이어 시스템을 잃었는지 알 수 있었다.
 튜토리얼을 완료 했을 때, 단순히 생존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10레벨을 달성한 이후 한동안 레벨 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10레벨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플레이어 시스템을 잃은 거로군.’
 놀라운 사실이었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이런 처참한 몰골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안쓰러울지언정 동정심은 생기지 않았다.
 박한솔이 이 몰골이 된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세하는 일단 생존구역이라 칭한 장소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박한솔로부터 끌어냈다.
 박한솔은 유세하가 묻는 말에 성실하게 대꾸를 해주며 힐끔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그곳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유세하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이야기만 들어서는 당장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게다가 남매와 의견을 나눠봐야 했다.
 “저는 아저씨의 뜻에 따를 거예요.”
 한소림이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마음이 측은지심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유세하의 뜻에 따르겠다 말했다.
 한소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 나름대로의 판단을 마친 모양인지 누나와 같은 말을 했다.
 결국 화살은 다시 유세하에게 돌아왔다.
 그 때 박한솔이 외쳤다.
 “그, 그 악마로부터 그곳을 구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세하는 생각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박한솔이 허겁지겁 유세하를 붙잡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발 구해주세요! 더, 더 이상은 그 악마에게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악마 때문에 죽게 될 거예요!”
 유세하를 구명줄이라도 여긴 것일까, 박한솔은 처절할 정도로 매달렸다.
 얼마나 절실하던지 독한 마음을 먹었던 유세하도 차마 냉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저희가 그곳을 구원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군요.”
 “사,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저와 이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희가 왜 하수도를 헤매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박한솔은 설득할 말이 궁색해져서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악마로부터 벗어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생존구역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악마의 충실한 부하가 되었지만요.”
 “……?”
 유세하는 이건 또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인가 싶어서 박한솔을 응시했다.
 박한솔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으로는 확실하다는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생존구역을 지켜주던 플레이어들이 그 악마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건가요?”
 “비슷한 느낌입니다.”
 유세하의 미간이 파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존구역을 지배하고 있다는 자는 필시 세뇌나 비슷한 힘을 가진 플레이어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위험하군요.”
 “…….”
 박한솔은 자신이 너무도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
 ‘조종당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라…….’
 유세하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현재 세 사람만으로 지상 위의 변이체들을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한 사람이라도 많은 동료가 필요하긴 했다.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자칫하면 세뇌를 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으니 판단이 서질 않았다.
 유세하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침묵 역시 길어졌는데 그 상황에서 한소현이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그 악마라는 사람의 레벨은 얼마예요?”
 “레, 레벨? 글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높아봐야 30레벨 언저리일 것 같은데…….”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은요?”
 “조종당하는 플레이어들이 그 정도였거든. 그리고 녀석은 플레이어들을 조종하기 시작한 뒤 사냥을 나선 적이 없었어.”
 “그렇군요.”
 여기까지 말한 뒤 한소현은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고 유세하는 머릿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레벨! 그렇군! 너무 현실적으로만 생각을 했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자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유세하는 고맙다는 뜻으로 한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박한솔에게 말했다.
 “우선 생존구역으로 안내를 해주시죠.”
 “그, 그럼!”
 “일단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한솔은 몇 번이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소림이 곁으로 다가와 손을 꾹 쥐어주며 예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저씨라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필요에 의해서 하는 행동일 뿐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하진 않으셨잖아요?”
 한소림의 말에 유세하는 무슨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만 대꾸할 것이라 생각한 유세하는 피식 웃은 뒤, 한소현에게 말했다.
 “고맙다.”
 “제가 뭘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한소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는 하수도를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안내했고 유세하와 남매는 생존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2
 
 생존구역으로 가는 내내 유세하는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과연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원해줄 가치가 있는 곳인지, 조종당하고 있다는 플레이어들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
 유세하는 그러한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시체들을 모아놓은 장소라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지독한 환경이었다.
 유세하는 오랜만에 머리에 열이 올랐다.
 “이걸… 이런 짓을 같은 사람이 했다는 겁니까?”
 유세하의 질문에 박한솔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으으.”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피골이 상접에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말랐는데 살아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었다.
 썩은 동태와 같은 눈으로 유세하와 남매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생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곳이었다.
 “…녀석은 어디에 있습니까?”
 “따라오십시오.”
 박한솔의 안내를 받아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온갖 악취가 다 났다.
 그런 악취 속을 지나 도착한 곳은 생존구역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그곳에 박한솔이 악마라 칭한 존재가 있었다.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모를 의자에 깊숙이 누워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 마냥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저 놈입니까?”
 “네.”
 박한솔의 대답을 듣고 난 유세하는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며 모험가의 외눈안경을 꺼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박상구
 *레벨: 40
 *상태: 정상
 
 유세하는 중년남자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천천히 살펴봤다.
 박한솔의 정보대로 그들의 레벨도 30에서 32의 사이였는데 총 열 명이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상태가 세뇌로 표기되고 있었고 그들이 박한솔이 말한 인물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다섯은 애초 저 놈의 동료였거나 부하였던 모양이군.’
 껄떡대고 있는 모양새가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도 그다지 좋은 인물들은 아니지 싶었다.
 상대의 전력을 대충 파악하고 난 유세하는 남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일단 나 혼자 나설게. 혹시 내가 세뇌를 당한 낌새가 보이면 놈을 해치워.”
 “알았어요.”
 한소림의 대답을 듣고 유세하가 걸음을 뗐다.
 뚜벅.
 유세하는 일부러 큰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어둠에서 빠져나왔다.
 “…응? 넌 뭐냐?”
 유세하를 발견한 박상구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 강력한 중력이 일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
 
 박상구는 최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지배 아래 놓여있는 노예들이 구해오는 식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그 점이 박상구를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쥐어짜냈고 반항하는 것들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애초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도 사채업이 생업이었기 때문에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자신 덕택에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면서 허약하고 게으르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했다.
 ‘슬슬 이곳을 떠야 하나?’
 노예들이 더 이상 식량을 구해오지 못한다면 이 냄새나는 하수도에 더 머무를 필요도 없었다.
 안 그래도 하수도에서 생활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터라 이 기회에 터를 옮기고 싶어졌다.
 부하들도 있고 이곳을 접수하며 세뇌하여 얻은 인형들도 있으니 지상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상의 상황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박상구는 문득 발자국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응? 넌 뭐냐?”
 늘 그랬던 것처럼 한껏 거드름을 피우던 박상구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건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느낀 다음이었다.
 “큭! 이게 무슨!”
 크게 당황한 박상구가 뭐라 외치려고 했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힘에 바닥에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쓰러졌다.
 “큭! 이, 이놈!”
 박상구가 분노하면서 자신의 플레이어 스킬인 정신제어를 사용했다.
 
 [정신제어가 저항 당했습니다.]
 
 박상구는 눈을 부릅떴다.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눈앞의 젊은 남자와 자신 사이에 있는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 있는 법이다.”
 유세하는 눈앞에 출력되어 있는 메시지를 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정신제어가 시도됩니다. 압도적인 레벨의 격차로 인해 저항합니다.]
 
 미리 예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었기 때문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유세하의 눈빛이 한 층 더 싸늘해졌다.
 “너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의 기준을 너무 넘어서 버렸어.”
 눈앞의 박상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유세하는 개의치 않았다.
 어른도 어른다워야 대접을 해주는 법이다.
 눈앞의 박상구는 이미 어른이 아니라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해충이었다.
 “크아아! 놈을 죽여!”
 박상구는 포기하지 않고 악을 썼다.
 핏!
 유세하의 얼굴이 가느다란 실선이 그어졌다.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박상구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짓눌려 있는 놈들 중 하나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어떻게 멀쩡하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레벨의 차이가 높으면 플레이어 스킬도 별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을 하며 유세하는 녀석을 향해 한 층 더 강력한 중력을 선물해줬다.
 “끄으으으읍!”
 갑자기 가중된 압력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이 된 놈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됐다.
 “…….”
 너무도 쉽게 박상구를 비롯한 부하들을 제압하는 모습에 박한솔이 입을 쩍 벌렸다.
 새삼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제압할 것이면서 여기로 오는 것에 무슨 생색을 그리 냈는지 싶었다.
 유세하도 나름 놀란 입장이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흠, 이대로 죽일 수도 있지만…….”
 유세하는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세뇌가 된 이들을 제외한 놈들의 팔다리는 부셔놓기로 했다.
 뿌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사람의 몸이란 이렇게나 물렁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뼈가 부러졌다.
 유세하는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얻었는지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을 상처 입혔는데 정신적인 동요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중간보스를 사냥하기까지 유세하가 겪었던 고난들이 그의 정신을 철벽처럼 만들어준 덕택이었다.
 ‘의외로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유세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소림을 불렀다. 그녀가 쪼르르 달려왔다.
 “이놈들을 가둬줘.”
 “네.”
 한소림이 팔다리가 부러져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는 놈들을 결계로 가뒀다.
 놀랍게도 결계로 녀석들을 가두니 주변을 시끄럽게 울리던 고함소리가 뚝 멈췄다.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결계를 더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훌륭해. 노력했구나.”
 한소림을 칭찬해준 유세하는 아직도 넋이 나가있는 박한솔에게 손짓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유세하의 질문에 박한솔은 얼떨떨해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죽여야죠.”
 무척 담담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어조로 말하는 그를 보며 유세하는 일순간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유세하는 한상구를 쳐다봤다.
 결계 속에 갇혀 뭐라 말했는데 그다지 좋은 소리는 아니라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놈들은… 편히 죽여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잔인하게…그렇게 죽여야 합니다.”
 “직접 하시겠습니까?”
 유세하가 재차 물으니 박한솔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세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과…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그러시죠. 시간은 많으니…천천히 상의를 하고 결정을 해주세요.”
 유세하의 말에 박한솔은 다시 한 번 귀기어린 눈빛으로 한상구를 노려보다가 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귀기어린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유세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고민을 했다.
 ‘과연 그들이 순순히 동료가 되어줄까?’
 오랫동안 세뇌를 당하고 있었던 탓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랐고 안면몰수하고 나 몰라라 나올 수도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을 해봤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우선 우리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최대한 어필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생각을 마친 유세하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남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것이 좋겠다.”
 “…여기에 있을래요.”
 아이들이 보기엔 잔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지만 한소림은 거부했다.
 살짝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한소림은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은 채, 또박또박 자신의 뜻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여기에서 전부 지켜볼래요.”
 “…소림아.”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 거잖아요. 그런 거잖아요, 아저씨.”
 “…….”
 한소림이 하는 말에 유세하는 일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소림은 이번 일을 가슴 속에 새기려는 것이다.
 자신이 사람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침으로 삼기 위해서 일부러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소현이도 같은 생각이니?”
 “네. 그래요.”
 한소현의 긍정을 들으면서 유세하는 안 닮은 것 같으면서도 두 사람이 남매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
 유세하도 더 이상 말리지 않는 대신, 한마디 경고를 했다.
 “나중에 후회해도 늦을 거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는 거야.”
 “…알고 있어요.”
 대화가 끝났고 타이밍에 딱 맞춰서 이곳으로 오며 봤었던 생존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나 같이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완전히 제압당해 있는 한상구와 일당을 보며 화산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당장이라도 박상구와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려던 사람들을 만류한 것은 박한솔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응징하기에 앞서, 먼저 은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
 박한솔의 외침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어했다.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전의 분노 속에서도 그들은 사람으로써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사람의 존엄을 확인하게 된 유세하는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기분이었다.
 “도,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복수의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박한솔이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울음을 터뜨리며 가족의 원한을, 친구의 원한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며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놈을… 풀어주세요.”
 박한솔이 귀화가 피어오르는 눈으로 결계를 제거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소림의 손짓에 의해 결계가 사라지자 박상구가 바락바락 악을 썼다.
 “네깟 놈들이 감히 반항을 해?!”
 “크윽?!”
 박상구의 외침과 동시에 몇몇 사람이 머리를 부여잡고 이상 행동을 보이려는 조짐이 보였다.
 유세하는 볼 것도 없이 중력으로 놈을 들어올렸다가 있는 힘껏 바닥에 패대기쳤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박상구가 피를 왈칵 내뱉었고 세뇌를 당할 뻔했던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알아채곤 이성을 잃고 박상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
 유세하와 남매들은 묵묵히 제자리에서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피의 복수가 시작되었고 박상구의 악에 바친 고함이 처절한 비명으로 바뀌는 것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눈앞의 광경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목격한 한소림의 안색은 창백했다.
 옆에 있는 한소현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용케도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진한 피비린내가 하수도를 진동시켰다.
 잔혹한 복수의 시간을 마친 박한솔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수야…….”
 박한솔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읊조리며 슬픔에 잠겼다.
 복수를 이뤘지만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진한 공허함에 넋을 잃었다.
 “으음.”
 박상구가 죽음을 맞이하고 나자 세뇌 당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딘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은 초점이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유세하가 모험가의 외눈 안경으로 상태를 확인했다.
 “…젠장.”
 유세하는 혀를 찼다. 모험가의 외눈 안경을 통해 상태정보를 확인하니 모두 세뇌 후유증이라고 표시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세뇌를 당한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아무래도 정신이 망가진 모양이었다.
 “불쌍한 녀석들…….”
 “우리를 지키려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사람들은 다섯 명의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섯 플레이어들은 이곳의 사람들을 지키려다 박상구와 일당에게 패배했고 그 탓에 세뇌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만 아니었다면 도망쳐서 저들끼리도 잘 살았을 녀석들이었습니다.”
 “바보 같이 우리를 지키겠다고 고집만 부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겪지도 않았을 텐데.”
 유세하는 묵묵히 그들의 푸념을 들어주다가 대충 진정되었다 싶었을 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입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짙은 음울함이 느껴지는 그들의 분위기를 보며 유세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만 쉬고 싶네.”
 사람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고 나머지는 그에 동조했다.
 “어, 어째서… 나쁜 사람은 이제 사라졌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소림의 외침이었다.
 그런 한소림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 미소는 너무 애잔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알 때가 올 거란다.”
 “때로는 살아있는 것이 죽음보다 힘들 때도 있는 법이지. 우리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 더 이상은 버틸 기력도 없고…….”
 한소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알고 싶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유세하는 그런 한소림을 진정시킬 겸, 품에 안아주면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생각하실 순 없으십니까?”
 “…이미 결정을 굳혔습니다. 다만, 저들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희 때문에 저 지경이 된 불쌍한 녀석들입니다.”
 “그러실 거면 직접 챙겨주십시오!”
 유세하가 외치니 박한솔을 비롯한 사람들은 또 다시 처연하게 웃었다.
 “비겁하다 욕해도 좋고 원망해도 좋고 저주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었고 유세하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들은 시선을 마주하고 유세하를 향해 정성스럽게 고개 숙여 인사하곤, 할 걸음씩 하수도의 어둠 속을 향해 나아갔다.
 “아, 아저씨. 저 사람들을 잡아야 하잖아요. 저 사람들을 저렇게 가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 사람들… 너무 불쌍하잖아요.”
 “누나.”
 한소현이 조용히 부르는 말에 한소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미 살아갈 의지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같다는 말이 유세하의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이 모두 하수도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흘렸다.
 겨우 진정한 한소림은 끝끝내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는 되지 않지만…그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
 납득은 하지 못했지만 이해는 한 듯, 한소림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유세하는 이 사건이 한소림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기억될 것이란 것을 알고 어떻게든 보지 못하게 말렸어야 했나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어쩔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이 사람들…어떻게 하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함인지 한소현이 아직도 바닥에 너부러져 초점 없는 눈빛을 하고 있는 5인방을 쳐다봤다.
 비슷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다섯 명의 남자들은 한소현이 다가오자 일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윽!”
 한소현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적의가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초점 없는 눈빛이 다섯 쌍이나 향하니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보, 보지 마세요.”
 당황한 마음에 한소현이 소심한 저항을 하는데 다섯 사람이 일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설마?”
 유세하는 그런 남자들을 보고 혹시 싶은 마음에 명령을 내려 봤다.
 “일어나세요.”
 부스럭.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들은 충실하게 명령을 따랐고 유세하와 남매들은 크게 놀랐다.
 “세, 세뇌는 풀린 것이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너무 오랜 시간동안 세뇌를 당하고 있었던 탓에 거의 반사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건가 본데.”
 “그럴 수가…….”
 이것이 세뇌의 무서움이었다.
 세뇌가 풀렸다고 한들, 후유증으로 인해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유세하는 솔직한 심정으로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정신이 망가진 다섯 명의 플레이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려나 고민이 되는 처지인지라 명령에 따른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었다.
 잠깐 그에 대한 상념에 잠겼던 유세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던 하수도 방향을 응시한 뒤, 일부러 반대로 진행방향을 잡았다.
 “우선 이곳을 벗어나자. 다음 일은 그 때 생각하자.”
 “…네.”
 잔혹한 시체와 피비린내가 가득한 공간에서 언제까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유세하와 남매는 다섯 플레이어들을 동반한 채 걸음을 옮겼다.
 막 그 장소를 벗어나기 직전, 한소림은 뒤를 돌아 사람들이 사라져갔던 방향을 쳐다봤다.
 잠시 그곳을 응시하던 한소림은 몸을 돌려 유세하를 쫓아갔고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유세하는 다섯 명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남자들의 이름은 김성진, 박유선, 한진우, 이주영, 홍정석이란 이름이었고 나이는 신기하게도 전부 동갑내기로 22살이었다.
 이름을 확인하면서 그들이 가진 능력도 같이 확인을 했는데 김성진은 바람을 다룰 줄 알았고 박유선은 염동력을 쓸 수 있었다.
 한진우는 육체파 능력인지 인간으로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신체능력을 보유했고 이주영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홍정석은 한소현과 마찬가지로 불꽃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전부 다른 능력을 가진 것만은 아닌 모양이군.”
 유세하는 다섯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고 나서 과연 어느 정도 선까지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지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간단한 키워드만 제시해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수행한다는 점이었다.
 변이체를 향한 공격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는 스스로 판단한다는 뜻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모양인데? 잘하면 망가진 정신이 복구될 수도 있겠어.”
 “정말이요?”
 “그래. 우리가 가진 플레이어 시스템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원래대로라면 철저한 재활치료를 통해서만 망가진 정신을 복구할 수 있겠지만 플레이어 시스템의 힘이 있다면 제정신을 차리는 것의 가능성은 충분했다.
 “게다가 서로 호흡도 잘 맞는 편이고.”
 박상구에게 세뇌를 당하기 전부터 함께 사냥을 하며 사람들을 지켰다고 하더니 명불허전이었다.
 유세하와 남매는 이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훈련에 돌입했다.
 흐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 합류한 다섯의 힘이 있다면 지상 위의 변이체들과 싸워볼 만 했다.
 “소림아. 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주도록 해.”
 “재활훈련의 일종이군요. 소현이도 같이 하자.”
 “응. 알았어.”
 한소현이 순순히 동조하며 한소림과 함께 하기로 했다.
 하수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모습을 본 이후, 한소현은 많이 의젓해져 있었다.
 이상했던 설정놀이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상태정보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금 아쉽긴 한데…….’
 질색하긴 했지만 어릴 적 유세하도 그러고 놀아봤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소현이 어른이 된 것 같아 묘한 서운함을 느꼈다.
 ‘아니지. 잘된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자신이 무슨 실없는 생각을 하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이것 말고도 생각할 건 많았다.
 우선 간단한 단어로도 다섯 사람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명령어를 만들어야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니 이 또한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유세하와 남매는 다섯 사람과 호흡이 점점 맞아갔다.
 ‘다행이다. 시간이 많이 허비되지 않았어.’
 유세하는 미니맵을 열어서 보스의 출현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해봤다.
 안타깝게도 겨우 4일 정도의 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 안에 80레벨을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유세하는 남매를 불러 회의를 열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보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4일밖에 남지 않았어.”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마치 유세하가 회의를 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한소현이 대답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연습을 하면서 느낀 건데 꼭 아저씨 혼자만 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역할을 분담하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한소림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바로 한소현의 의견에 동의했다.
 유세하 역시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한소림이나 한소현이 전투 중 제대로 된 명령을 하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점이었다.
 “잘할 수 있어요. 그동안 아저씨가 하는 걸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까요.”
 “부족한 것이 있으면 바로 지적해 주세요. 바로 고칠게요.”
 얼마 전 겪었던 사건 이후, 남매는 한 층 더 성숙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한 유세하는 믿어보기로 했다.
 “저랑 성진 형이랑, 정석이 형의 궁합은 굉장히 잘 맞는 편이에요. 제가 두 형이랑 팀을 짤게요.”
 한소현은 바람의 힘을 다루는 김성진과 자신과 같은 불꽃의 힘을 사용하는 홍정석을 선택했다.
 “저는 유선 오빠랑 진우 오빠와 함께 해볼게요.”
 한소림은 염동력을 사용하는 박유선과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한진우와 팀을 짰다.
 남아있는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자, 이주영은 유세하와 함께 하게 되었다.
 “좋아. 너희들에게 내가 그동안 정해놓은 명령어들을 알려줄게.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겠지만 알아두면 좋을 거야.”
 “네!”
 “맡겨만 주세요!”
 남매는 의욕적으로 나섰고 유세하는 명령어를 모두 알려준 뒤, 다시 미니맵을 열었다.
 “…너희들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 중간보스를 사냥하고 얻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되야 보스를 상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남매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굉장히 힘들어질 거야. 아마 쉬는 타임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
 “각오하고 있어요.”
 “그것조차 견딜 수 없다면 보스는 사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믿고 따라와 주는 남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유세하는 다섯 명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만나자마자 가혹한 사냥에 함께 하게 되었지만 너무 원망은 하지 마. 우리도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희들을 우리에게 믿고 맡기고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도 우린 반드시 살아야 해.”
 말을 마친 유세하는 다섯 명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여주었다.
 한소림과 한소현도 한마디씩 했다.
 “내일부터 잘 부탁드려요, 오빠들.”
 “우리 멋진 팀이 되어 봐요.”
 당연하게도 다섯 명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세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고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 믿었다.
 “그럼 오늘은 쉬자. 내일부터는 바빠질 거야.”
 유세하의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났다.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엔 장소가 좋지 않았지만 결의를 다진 세 사람, 그리고 다섯 명에게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 7화 반격, 그리고 보스
 
 1
 
 하수도를 나오니 상쾌한 공기가 맞이해줬다.
 “이게 공기의 소중함인가 보다.”
 “그러게요.”
 농담 삼아 우스갯소리를 하니 한소림이 동의한다는 듯, 열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하수도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느껴야 했던 만큼 상쾌한 공기의 소중함이 크게 다가왔다.
 “케에엑!”
 공기의 상쾌함을 만끽하고 있는 찰나의 순간조차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사방에서 변이체들의 괴성이 들렸다.
 주변을 확인해보니 언제 온 것인지 한 녀석이 유세하 일행을 발견하곤 방방 뛰고 있었다.
 “계획대로 행동하자!”
 “네!”
 유세하 일행이 지상으로 올라와서 가장 먼저 하기로 한 것은 진지의 구축이었다.
 어차피 변이체들은 가만히 기다려도 끊임없이 몰려올 터이니 안정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최적이라 판단되는 곳을 찾기까지가 험난한 여정일 터이지만 진지구축만 완료한다면 사냥은 훨씬 안정적이 될 테니 해볼 만한 시도였다.
 “그럼 가볼까?”
 유세하는 양손에 무기를 꺼냈다.
 날카로운 롱 소드는 이미 내구력이 간당간당했으니 얼마 버틸 수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과 같이 사용하려는 것이다.
 파바밧!
 유세하가 몰려오는 변이체들을 향해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정면으로 부딪쳤다.
 중력의 힘을 응용한 돌진 공격이기 때문에 부딪친 변이체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사방이 포위된 유세하를 중심으로 새빨간 불꽃이 동그란 원을 그렸다.
 한소현과 홍정석의 불꽃 공격이었다.
 여기에 김성진의 바람을 다루는 힘이 합쳐지니 불꽃의 화력은 이전과 비교가 불허했다.
 “케에에에엑!”
 처절한 변이체들의 비명이 들려오며 순식간에 박살나자 특별한 등급의 녀석들이 등장했다.
 “유선 오빠! 염동력 주박!”
 그 순간 한소림의 낭랑한 외침이 터졌고 박유선의 염동력이 특별한 변이체들을 꽁꽁 싸맸다.
 “케르륵?!”
 사방이 조여 오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특별한 변이체들이 당황한 듯, 기묘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유선의 레벨과 숙련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금세 염동력에서 벗어났다.
 물론 그 틈을 노린 한진우의 주먹이 사정없이 특별한 변이체를 후려쳤다.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고 그저 균형을 무너뜨리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결정타는 유세하의 몫이었다.
 콰직!
 중력이 가미된 강력한 일격에 특별한 변이체 역시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이쯤 되니 정예 변이체들도 상황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깨닫고 전술을 바꿔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몰래 접근해서 기습을 하려는 정예 변이체가 별안간 눈알을 도려내는 고통에 괴성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엑!”
 몸을 숨길 수 있는 이주영이 은신을 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정예 변이체들을 견제한 것이다.
 레벨의 특성상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 쉽지 않지만 방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소를 노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제야 은신해 있던 이주영을 파악한 모양인지 녀석들이 눈을 부라렸다.
 텅!
 정예 변이체들이 반격이 한소림의 결계에 의해 가로막혀 튕겨졌다.
 그 사이, 특별한 변이체를 처리한 유세하가 일반 등급의 변이체들을 순식간에 지워내면서 정예 변이체들을 덮쳤다.
 “크르악!”
 유세하의 공격력을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녀석들은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슬슬 뒤로 뺐다.
 “어딜!”
 그것을 두고 보지 않고 한소림이 결계로 도주로를 막았고 한소현과 홍정석 역시 불꽃의 장벽을 펼쳤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박유선의 염동력 주박 견제가 이어졌고 그 사이의 몰려드는 일반 변이체들을 한진우과 이주영, 김성진이 힘을 합쳐서 막았다.
 ‘생각 이상으로 편하고 좋군!’
 다른 걱정 없이 마음껏 정예 변이체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된 유세하의 몸이 회전했다.
 드워프 장인의 전투창이 가진 특수능력 회전 베기가 발동되고 정예 변이체들이 일제히 썰렸다.
 그래도 괜히 정예가 아닌 듯, 치명타만큼은 간신히 피하고 반격까지 하는 녀석들이었지만 한소림과 한소현이 두고 보지 않았다.
 세 사람이었으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일반 변이체들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을 시간이 지났지만 유세하 일행의 우위는 변함이 없었다.
 정예 변이체들도 큰 상처를 입었고 특별한 변이체는 이미 유세하에게 박살이 났다.
 일반 등급의 녀석들은 다섯 명이 힘을 합쳐 처리하니 전투는 점점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콰직!
 마지막 남은 한 녀석의 머리통을 박살해놓는 것으로 전투를 끝마친 유세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하셨어요, 아저씨!”
 “너희들도 고생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싸우긴 했지만 확실히 전투가 이전보다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니 경험치와 숙련도가 제법 많이 올라가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얼른 움직이자. 녀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
 미니맵을 보고 변이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가 말했다.
 진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고 그것 이외에도 레벨과 숙련도도 잔뜩 올려야 했기 때문에 할 일들이 많았다.
 
 ***
 
 계속되는 사냥을 통해 제법 괜찮은 진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유세하 일행은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5인방의 성장이 눈부셨는데 강화된 변이체들과 특별한 변이체, 정예 변이체들을 상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레벨이었던지라 폭렙을 거듭했다.
 5인방은 단순히 레벨이 오른 것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그들의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레벨을 한 단계 올릴 때마다 조금씩 눈빛이 돌아오고 있었고 명령도 보다 잘 이해했다.
 “계속 레벨을 올리다 보면 아저씨 말처럼 형들이 정신을 차릴 것 같네요.”
 “정말 다행이다.”
 남매의 말을 들으면서 유세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제정신을 차린 이들이 협조적일지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 상태가 지속되길 바란다면 그 놈이랑 다를 바 없는 거지.’
 유세하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뤘다.
 이제 보스가 출현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2일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80레벨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사냥을 해야 했다.
 “게다가 무기도 준비해야 하고.”
 유세하는 어느새 잔뜩 쌓인 포인트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수도를 올라온 이래 쉬지도 않고 사냥을 하다 보니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누적되어 있었다.
 일반 변이체가 10, 특별한 변이체가 50, 정예 변이체가 100의 포인트를 주니 어느덧 30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번 해볼까?”
 계속되는 사냥에 지친 몸을 달래느라 휴식을 취하던 중이라 할 것도 없었고 죽어서 포인트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니 이참에 소모하기로 했다.
 “흐음.”
 유세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질 않았다.
 상점을 이용하여 무기를 구입하다 보니 자신이 그동안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은 유세하는 무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방어구를 구입했다.
 
 [엘프 장인의 사슬 갑옷]
 엘프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엮은 최상급의 갑옷이다. 엘프 기술의 정수가 깃들어 있어 예술적인 가치는 물론 방어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
 레벨제한: 70
 특수능력: 순간 가속(재사용시간: 2분)
 -순간가속: 사용 시 두 배로 가속한다.
 
 “호오!”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유용한 방어구가 나왔다.
 특수능력은 순간 가속 하나 밖에 없었지만 재사용시간이 무척 짧아서 활용성이 높았다.
 유세하는 내친 김에 장신구까지 구입해봤다.
 
 [철벽수호의 반지]
 철벽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반지로 착용자의 몸을 단단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레벨제한: 75
 특수능력: 철벽수호(재사용시간 30분)
 -철벽수호: 사용 시 15분 동안 몸을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것도 좋군.”
 유세하는 무기에서 공친 보상을 여기에서 받는다고 생각했다.
 남은 포인트를 확인해 보니 방어구와 장신구가 좋은 물건이 빨리 나와 준 덕택에 상당한 양이 남아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유세하는 전부 사용하기로 했으니 무기를 다시 구입했다.
 그렇게 나오는 무기를 사고팔고를 반복하다 포인트를 거의 다 소모할 때쯤, 반쯤 포기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휘양 찬란한 효과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무한의 검 인피니트]
 한 자루이며 무한이기도 한 검이다. 언제, 어디에서 탄생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난 신화 속의 검이다.
 레벨제한: 00(착용자의 레벨에 따라 변화한다.)
 특수능력: 무한의 검(재사용시간: 없음), 검기 생성(재사용시간 10분), 신검합일(재사용시간: 30분)
 -무한의 검: 검을 생성한다. 착용자의 레벨에 따라 생성할 수 있는 숫자와 공격력이 정해진다.
 -검기 생성: 5분 동안 검기를 생성한다.
 -신검합일: 25분 동안 검을 의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단, 조종할 수 있는 검은 무한의 검을 통해 생성한 검뿐이다.
 내구력: 무한
 
 “…….”
 유세하는 넋이 나가서 무기 정보를 바라봤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이건…대박이군.”
 30만을 넘었던 포인트 중 대부분이 무기를 구입하는데 들어가긴 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정도의 능력이면 게임으로 따지면 유니크, 내지는 전설 등급이라도 해도 될 정도로 굉장히 좋은 무기였다.
 오히려 싸게 먹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저씨?”
 한껏 들뜬 기분 덕택에 웃음을 짓고 있자니 한소림이 그 소리를 듣고 왜 그러냐는 시선을 줬다.
 “좋은 무기가 나와서.”
 “아, 무기를 샀던 거예요? 어떤 게 나왔는데요?”
 안 그래도 유세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폈다 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하는 건가 싶었던 한소림이었다.
 그가 밝은 얼굴로 말하는 것을 보니 좋은 무기가 나왔구나 싶어서 물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상당히 좋아 보이긴 했다.
 잘 모르겠어서 동생의 반응을 살피니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두 눈에서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나, 나도 살래요!”
 제대로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한소현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한소현 역시 상당한 포인트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는데 얼굴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으아아! 될 놈만 되는 더러운 세상!”
 시간이 지나고 한소현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우울함이 가득한 절망을 내뱉었다.
 한소현도 제법 좋은 장비들을 많이 건지긴 했지만 유세하처럼 획기적인 무기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좋은 장비를 많이 얻었잖아. 그걸로 만족해야지.”
 동생의 좌절이 안쓰러워 토닥여주는데 별안간 한소현이 벌떡 일어나 의욕을 불태웠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아하니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쉬고 있을 틈이 없어요! 사냥, 사냥을 해야 합니다!”
 “…….”
 유세하와 한소림은 황당함이 담긴 시선을 던졌지만 한소현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는다고 하기 보단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는 표현이었다.
 “기다려라! 포인트들아!”
 반드시 신화 속의 무기를 얻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유세하와 한소림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2
 
 의욕이 충만한 한소현의 보챔은 의외로 괜찮은 효과를 냈다.
 곁에서 따르는 유세하와 한소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이기도 했지만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결과는 확실했다.
 여기에 이번에 유세하가 새롭게 얻은 무기, 무한의 검 인피니트의 위력이 더해지니 레벨이 상승하는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무한의 검! 신검합일!”
 유세하의 명령에 따라 그의 주변에 약 70개 정도의 검이 생성되어 떠다녔다.
 유세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검들이 중력의 도움을 받아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했다.
 촤아아악!
 일반 변이체들은 단 1초도 버틸 수 없었고 특별한 변이체도 쉽게 받아내지 못했다.
 정예 변이체의 경우에는 나름 방어도 하며 선전했지만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순식간에 썰렸다.
 “진짜 볼 때마다 사기네요. 양민학살 용으로는 제대로인데요.”
 한소현이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유세하가 쥐고 있는 검에서 돌리지 못하면서 말했다.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은 세련된 레이피어의 형태의 검.
 한동안 검을 응시하던 한소현이 좌절하여 바닥에 엎드렸다.
 “난 아마 안 될 거야. 응, 안 될 거야.”
 지금까지 포인트가 모이는 족족 무기를 구입하는 한소현이었지만 결국 원하는 장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유세하는 인피니트가 얼마나 극악한 확률로 당첨된 장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던 건 아니잖아. 네가 얻은 장비들의 숫자를 생각해 봐.”
 유세하가 계속 잡다한 무기만 나오다가 한 방에 인피니트가 뜬 것이라면 한소현의 경우에는 반대로 고급 무기들이 굉장히 날 나오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소현의 인벤토리에는 고르고 골라 보관한 고급 무기 다섯 종이 있었다.
 하나씩만 따지면 인피니트에 비해 모자라지만 그 무기들을 번갈아 가며 사용할 시, 그 위력이 상당할 터였다.
 “무엇보다 이 검을 사용하는 것도 제약이 심해.”
 “두통 말이군요.”
 유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피니트의 특수능력들은 강력한 만큼 정신력의 소모량이 어마어마했다.
 그 탓에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이 검으로 전투를 계속한다고 가정하면 대충 30분 정도가 한계로군.”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네요.”
 “그래. 하지만 이 검만 계속 사용하지 않는다면 되는 문제니까.”
 유세하는 이번에 80레벨을 달성하며 사용할 수 있게 된 살육자의 대검을 꺼냈다.
 쿵!
 이름 그대로 커다란 크기의 대검이었는데 직접 휘둘러보면 의외로 무게감은 심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있으니까.”
 가볍게 몇 번 휘둘러보니 묵직한 바람소리가 나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참으로 고생스러웠지만 어쨌든 목표했던 레벨을 달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스가 출현하기까지 약 6시간 정도, 해가 지면 놈이 나타날 터였다.
 “사냥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괜찮을까요?”
 “어차피 여기에서 더 사냥을 한다고 해도 그다지 레벨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무엇보다 보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만약을 대비해서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두는 편이 좋을 거 같아.”
 한소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동의했다.
 
 ***
 
 붉은 달이 떴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붉은 달을 바라보는 유세하 일행의 얼굴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보스 도살자가 등장합니다.]
 
 붉은 달이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도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봤을 때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지만 그 때와는 확실히 와 닿는 위압감이 달랐다.
 무엇보다 튜토리얼에서 봤던 도살자보다 체구가 무척 작았다.
 ‘이것이 살육자가 진화하는가, 못하는가의 차이인가?’
 도저히 항거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도살자였건만 상대 못할 정도로 느껴지진 않았다.
 
 [보스의 등장으로 주변 변이체들이 강화합니다. 붉은 달이 떴습니다. 변이체들이 강화됩니다.]
 [변이체들이 보스의 지배에 들어갑니다.]
 [보스 도살자가 플레이어를 포착했습니다.]
 
 “……!”
 보스의 등장으로 변이체들이 강화할 것이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도살자의 지시에 따른다는 사실에 유세하는 깜짝 놀랐다.
 그것만이 아니라 도살자는 등장하자마자 잠깐의 공백 후, 곧바로 유세하 일행을 포착하고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쳇!”
 유세하는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소림과 한소현에게 눈빛을 던졌다.
 “꼭 살아남는 거야.”
 “네! 물론이죠!”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진 뒤, 유세하가 인피니트를 높이 치켜들었다.
 “무한의 검!”
 유세하를 중심으로 80개의 검이 등장하여 허공을 유영했다. 거기에 신검합일을 사용한 유세하가 인피니트를 도살자가 있는 방향으로 겨눴다.
 ‘목표는 도살자 주변의 변이체들!’
 검들이 마치 화살처럼 쏘아졌다. 거기에 중력을 더하자 눈으로는 쫓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가속되더니 일제히 변이체들을 꿰뚫었다.
 검들은 단순히 꿰뚫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방향을 선회하여 변이체들을 도륙했다.
 “후우!”
 유세하는 머리 위에 점점 무거운 돌을 하나씩 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빠르게 정신력이 소모되고 있다는 소리였고 유세하의 안색이 점차 굳어갔다.
 변이체들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몰려드는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인피니트의 능력을 백분 이용해서 빠르게 제거하고 있긴 하지만 이래서야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냥 두고 볼 수만도 없으니!’
 유세하가 검을 제어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빨라졌지만 아직까지 도살자와의 거리는 충분히 떨어져 있어 다소 무리를 했다.
 80개의 검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변이체를 사정없이 도륙하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빠르게 내리꽂혔다.
 도살자의 등이며 어깨며 검이 사정없이 틀어박혔다가 먼지처럼 스러져 사라졌다.
 “크아아아아!”
 도살자의 고통어린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정신력이 급격히 소모된 유세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깐 쉴게.”
 “맡겨만 두세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한소림이 유세하의 주변에 몇 겹의 결계를 쳤다.
 그 사이 한소현과 홍정석의 불꽃 공격이 도살자와 변이체들에게 작렬했다.
 계속되는 원거리 공격에 변이체들이 많이 줄었지만 계속 합류하는 탓에 숫자가 줄지 않았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슬슬 이동해야 해요!”
 “후우, 괜찮아.”
 잠깐의 휴식 동안 어느 정도 두통을 가라앉힌 유세하가 인피니트를 집어넣었고 살육자의 대검을 꺼냈다.
 “가자!”
 “네!”
 보스 도살자의 사냥방법은 이전 중간보스 살육자를 잡았을 때와 같이 기동타격이 주요골자였다.
 다만, 위험요소가 있었는데 도살자가 등장하자마자 유세하 일행을 포착하여 덤벼드는 바람에 패턴 분석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살육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할 수 있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맹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세하는 전술을 크게 바꿨다.
 “우선 공격보단 견제에 치중하도록 해. 녀석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야.”
 유세하의 말에 남매들이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쿵쿵쿵!
 어느새 바로 지근거리까지 도착한 도살자가 흉성을 내뱉으며 추적에 박차를 가했다.
 그 순간 한소현이 씩 웃었다. 양손의 들려있는 쌍검이 요사스런 붉은 기운을 흩뿌렸다.
 “혈기 개방!”
 한소현의 외침이 토해지는 순간, 붉은 기운이 증폭되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빨간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콰르르르릉!
 거센 회전을 일으키며 닿는 것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불태우는 불기둥에 직격당한 도살자의 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케에에에에에에엑!”
 도살자의 주변에 뭉쳐 있던 변이체들이 봉변을 당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와…….”
 자신이 날리긴 했지만 이 정도의 화력을 내뿜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한소현이 감탄했다.
 한소현이 혈기 개방을 통해 도살자에게 타격을 주는 틈을 타서 유세하가 진형에서 이탈했다.
 이주영의 능력을 통해 은신까지 한 덕분에 도살자는 그의 은밀한 행동을 눈치 채지 못했다.
 유세하가 빠진 이후에도 일행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불기둥에서 벗어난 도살자가 성이 잔뜩 나서 뒤를 쫓았다.
 도살자가 지나간 다음, 유세하는 변이체들의 무리 속을 홀로 뛰어들었다.
 “크륵?!”
 갑자기 자신들 한복판에서 유세하가 나타나니 녀석들이 크게 당황했다.
 “으랏차!”
 양손으로 대검을 움켜쥐고 있는 힘껏 휘두르니 걸리는 족족 반 토막이 났다.
 유세하와 대검이 춤을 췄다. 변이체들의 비명이 난무했고 그럴 때마다 살육자의 대검에 서린 붉은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이쯤이면 되었다는 생각에 유세하가 중력을 이용해서 날아올랐다.
 밑에서 변이체들이 아우성을 쳐댔지만 무시하고서 곧바로 도살자를 향해 날아갔다.
 “크륵?!”
 뒤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유세하의 기척을 눈치 챘는지 도살자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유세하는 이미 혈기를 개방하고 중력까지 더한 일격을 날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쾅!
 도살자의 고개가 꺾이고 거구가 거꾸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도살자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철벽수호!”
 방어를 하면서 유세하가 반사적으로 이번에 얻은 장신구의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쩡!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유세하의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으윽!”
 몇 번이고 바닥을 뒹굴고 간신히 균형을 되찾고 일어서는데 그림자가 드리웠다.
 “……!”
 유세하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도살자가 도약하여 바로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하는데 이번에는 변이체들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화르르르르륵!
 타이밍이 좋게 한소현과 홍정석의 구원이 이어졌다.
 불꽃들이 변이체들을 집어삼키고 맹렬히 타오르는 한편, 도살자의 시야까지 가려줬다.
 그 틈을 타서 유세하는 얼른 자리를 피했고 이번에는 한소현이 또 다시 혈기 개방을 이용하여 도살자를 타격했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난 유세하가 또 다시 이주영의 능력을 빌어 은신했다.
 도살자의 시야를 피해 변이체들을 도륙하여 혈기를 충전한 유세하가 재차 공격을 날리려다 도살자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세하는 반사적으로 이주영을 붙잡고 허공으로 도망쳤고 한소림이 결계를 몇 겹으로 중첩시켜 일행을 보호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도살자가 거센 포효를 뱉어내며 웅크렸던 몸을 펼쳐내는 순간, 강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큭!”
 공중으로 날아오른 바람에 충격파에 그대로 노출된 유세하와 이주영이 이리저리 흩날리다 건물에 부딪쳐 추락했다.
 “충격파에 의한 전 방위 공격……!”
 다행히 아직 철벽수호의 유지시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치명타는 면할 수 있었다.
 이주영의 경우도 유세하가 떨어지며 보호해줬기 때문에 큰 부상은 없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접근하는 변이체들을 처리하면서 재차 날아오른 유세하가 남매의 상태를 살폈다.
 결계가 몇 겹 벗겨지긴 했지만 무난하게 충격파 공격을 방어해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데 도살자가 돌진 패턴을 이용하여 결계를 갈아엎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놈!”
 돌진에 의해 결계가 유리처럼 부셔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유세하가 혈기 개방을 이용하여 또 다시 도살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콰아앙!
 돌진하다말고 가격당한 도살자가 이번에는 저항할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유세하는 인상을 썼다.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도살자가 큰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실제로도 도살자는 큰 타격이 아니었단 듯, 벌떡 일어나서 유세하를 노려봤다.
 “…….”
 생각 이상으로 튼튼한 몸뚱이였다.
 혈기 개방을 이용하여 날린 공격들은 지금 유세하나 한소현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도살자에겐 결정타를 주지 못했고 그것은 전투가 길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고 갈 길이 멀다고 유세하는 생각했다.
 
 3
 
 유세하는 인피니트를 꺼냈다.
 “검기 생성!”
 인피니트에 검기가 맺히자마자 망설임 없이 도살자에게 파고들어 검격을 날렸다.
 단단한 바위처럼 느껴지는 가죽이 종이처럼 손쉽게 잘려나갔다.
 검기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이 특수능력을 무한의 검에 입힐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엄밀히 따지자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유세하의 정신력이 버티질 못했다.
 한 번 시도했다가 온 몸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두통을 겪고 나서부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격을 가하는 도살자의 공격을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것처럼 피하고 나니 검기 생성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인피니트를 집어넣은 유세하가 살육자의 대검을 양손에 쥐고 혈기 개방을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악!”
 도살자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검기 생성으로 입힌 상처에서는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니 제법 타격이 심해 보였다.
 유세하는 이 잠깐의 대치 상황 동안 남매들과 5인방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침 변이체들을 상대로 혈기 충전을 마친 한소현이 도살자에게 혈기 개방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소현의 공격은 강력하면서 범위가 넓었으니 유세하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쾅! 화르르르륵!
 연이어 두 번이나 강대한 타격이 들어오니 도살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저씨, 교대요!”
 “그래.”
 이번에는 유세하가 변이체를 상대하러 가고 한소현과 한소림이 도살자를 맡았다.
 도살자가 유세하를 뒤쫓으려 하자 결계와 불꽃으로 진로를 가로막고 자신들을 상대하게끔 했다.
 ‘다섯 명이 없었으면 보스 사냥은 엄두도 내지 못했겠군.’
 지속적인 사냥을 통해 성장한 5명이 정말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유세하와 남매들이 도살자를 상대하는 동안, 그들은 변이체들의 파도로부터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그렇기에 이처럼 자유롭게 공수를 교대하며 도살자를 공략할 수 있었다.
 다시 변이체들을 사냥하고 혈기를 충전하고 있는데 도살자가 충격파 패턴을 사용했다.
 몇 번이고 당했던 패턴이기 때문에 모두들 침착하게 대응했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타격이 누적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도살자는 지칠 줄 모르고 있었다.
 어느새 검기에 의해 당한 상처로 어느 정도 아물어서 출혈이 멈춰 있는 상태였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니 이대로 가다가 먼저 지치는 것은 유세하 일행이었다.
 유세하는 살육자의 대검이 가진 특수능력 중에서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피의 광기를 떠올렸다.
 이성이 흐려지는 대신 신체적인 능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특수능력이었다.
 이성이 어느 정도 흐려지는지 파악하지 못해 지금껏 사용할 수 없었던 능력이기도 했다.
 ‘만약 광란 패턴처럼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거라면 사용했다간 죽음뿐일 거야.’
 유세하는 일단 피의 광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으니 그 안에 도살자를 쓰러뜨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한소현을 향해 외쳤다.
 “교대하자!”
 유세하의 외침에 남매가 뒤로 빠졌다.
 이제는 도살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남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곧바로 몸을 돌리며 유세하의 공격에 대비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거든?!”
 그 모습을 보고 일갈하며 한소현이 새로운 무기를 꺼냈다. 그것은 커다란 활이었는데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생김새였다.
 활의 이름은 화염의 대궁.
 능력은 불꽃 화살을 만들어내 쏠 수 있었고 화살의 위력을 크게 증폭시키는 특수능력이 있었다.
 한소현이 활시위를 겨누자 화염의 화살이 생성되었다.
 “정석이 형. 충전!”
 명령이 떨어지자 홍정석이 달려와 화염의 화살에 양손을 대고 힘을 불어넣었다.
 화염의 화살이 보다 진한 빛깔을 내뿜기 시작했고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소현이 활시위를 놓았다.
 핑!
 한줄기의 선이 되어 날아간 화살이 도살자의 등에 틀어박히고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화살이 박힌 주변이 파여 나간 도살자가 기겁하고 고통에 몸부림 쳤다.
 그 모습을 본 유세하의 두 눈이 번뜩였다.
 약점이 생겼다면 그곳을 공략하는 것이야말로 사냥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혈기 개방!”
 살육자의 대검이 혈기를 개방하여 새빨간 빛을 흩뿌렸고 유세하의 의도를 파악한 한소림이 소리쳤다.
 “유선 오빠! 염동력 주박!”
 유세하의 공격이 성공할 수 있게 박유선에게 속박을 명령하면서 자신도 결계를 이용하여 도살자의 몸을 구속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결계를 보다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한소림은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허리와 목 부분에만 부분적인 결계를 생성하여 도살자의 움직임을 철저히 제압했다.
 결계의 설치 범위가 좁아지는 만큼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을 응용한 방법이었다.
 물론 도살자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무리지만 지금은 유세하의 공격이 성공할 때까지의 시간만 벌어주면 되었다.
 콰아아아앙!
 유세하의 일격이 도살자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헤집었고 도살자가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소림아, 녀석을 계속 잡고 있어줘!”
 “얼마 못 버틸 거예요!”
 “괜찮아!”
 상처 때문에 도살자가 힘을 집중하지 못해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유세하가 승부수를 띄웠다.
 “피의 광기!”
 시야가 붉어졌다.
 지쳤던 온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이 흐릿해지는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큭!”
 점점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눈앞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도살자의 피를 보고 싶다는 욕구만이 간절해졌다.
 “크아아아!”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을 내뱉으며 유세하가 대검으로 도살자를 난도질했다.
 질겼던 가죽이 너무도 쉽게 찢겨졌다.
 마치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연신 괴성을 내뱉으며 칼질을 해대는 유세하의 모습에 한소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크륵! 크아아아아!”
 목숨의 위기를 느낀 도살자가 속박을 뜯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미친 듯이 난도질하는 유세하에게 반격에 나섰다.
 쾅쾅! 콰직!
 이성이 흐릿해진 유세하는 정면승부는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무식하게 도살자와 맞섰다.
 “아, 안 돼! 아저씨!”
 한소림이 결계를 이용하여 최대한 도살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려 했지만 한 번 기세가 오른 도살자를 막기엔 조금 부족했다.
 그 때 한소현의 화살 공격이 다시 한 번 도살자의 상처를 헤집었다.
 “크헉! 크아아악!”
 “헉헉!”
 특수능력의 효과가 끝나고 다시 이성이 되돌아온 유세하는 온몸을 가로지르는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혈기…개방!”
 이번에 사용한 혈기 개방은 공격용이 아닌 회복용이라 요사스런 붉은 기운이 육체에 스며들었다.
 격통이 차츰 가라앉았다.
 ‘위험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성과가 좋다.’
 도살자의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깊게 파여 나간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하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길었던 사냥의 끝이 보였다.
 유세하가 살육자의 대검을 집어넣고 인피니트를 꺼내든 뒤, 검기 생성을 이용하여 재차 도살자를 공격했다.
 동시의 무한의 검과 신검합일까지 사용해서 도살자의 상처를 있는 대로 헤집어 놨다.
 “크아아아아악!”
 펑! 치이이이이익!
 도살자의 시선이 유세하를 향하자마자 한소현의 화살 공격이 날아왔고 뒤이어 혈기 개방으로 인한 불꽃 공격이 전신을 뒤덮었다.
 도살자의 거대한 체구가 흔들렸다.
 녀석의 체력이 거의 다되었다는 증거였고 유세하는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한 손에는 인피니트를, 나머지 손에는 살육자의 대검을 쥐고 도약했다.
 “크아아아아아악!”
 도살자가 그대로 당하지 않겠다는 듯,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괴성을 내뱉었다.
 서로의 무기가 서로 충돌할 찰나의 순간, 유세하가 외쳤다.
 “순간 가속!”
 팟!
 지금까지 숨겨왔던 최후의 카드가 발동했다.
 일순간이긴 하지만 속도가 두 배로 상승하는 특수능력의 의해 유세하가 공격이 먼저 도살자에게 닿았다.
 녀석이 이 특수능력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보람이 느껴지는 깔끔한 일격이었다.
 도살자가 충격파 패턴을 사용했다.
 지쳐있었던 유세하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그의 몸이 바닥에 충돌할 찰나, 한진우가 몸을 날려 유세하를 받아냈다.
 “아, 고맙다.”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당연한 일을 했다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유세하는 잠시 한진우를 응시하다가 아직 사냥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세를 잡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충격은 피했다고 하지만 충격파에 얻어맞은 타격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도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순간에 타이밍에 치고 들어온 데미지가 워낙 크다보니 쉽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유세하는 입술을 깨물고 무한의 검을 사용했다.
 80개의 검이 재차 등장하는 순간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에 비틀거렸다. 그러자 한진우가 그를 지탱해줬다.
 “…….”
 모양새는 다소 꼴사납지만 참 든든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세하는 준비하고 있는 마지막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하늘 높이 솟구친 검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중력의 힘이 더해진 검들이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도살자의 몸에 닿을 찰나, 일제히 우유빛깔의 빛을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검기 생성으로 모든 검에 검기를 두른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유세하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고 코와 귀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푸우우우욱!
 “크아아아아악!”
 80개의 검이 도살자를 관통하고 녀석 역시 입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하얗게 백열된 유세하가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가누려 하며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눈에 힘을 잔뜩 주니 흐릿하게나마 도살자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한소현과 홍정석, 박유선의 합공을 받고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주변의 변이체들은 한소림과 이주영이 힘을 합쳐 접근을 막고 있었다.
 유세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겼다.’
 도살자는 더 이상 저항할 기력이 없었다.
 “가서… 도와줘.”
 “…….”
 유세하가 명령을 내리니 한진우가 조심스럽게 그를 바닥에 눕혀주곤 일행의 공격에 합세했다.
 바닥에 대자로 엎어진 상태에서 유세하는 승리를 확신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치켜세웠다.
 
 [강대한 적, 보스 도살자를 사냥하셨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플레이어께 대량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X10
 [지속적인 능력의 사용으로 인해 중력 제어가 초급90에서 초급95로 성장합니다.]
 [도살자를 사냥하여 5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보스 도살자 사냥 보상이 지급됩니다.]
 
 타이밍에 딱 맞춰 도살자가 죽음을 맞이했다.
 주륵 올라오며 사냥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면서 유세하는 미소를 지었다.
 “성공이에요! 보스를 사냥했어요!”
 한소현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한소림이 얼른 달려와 유세하를 보호했다.
 아직 전투는 끝난 것이 아니고 주변에는 변이체들이 한가득 몰려 있었다.
 그 때, 새로운 메시지가 등장했다.
 
 [보스가 사냥 당했습니다. 붉은 달이 기능을 잃고 사라집니다.]
 [중간 보스 살육자가 필드 보스로 격하됩니다. 보스 도살자가 중간 보스로 격하됩니다.]
 [현 시간부로 필드보스가 등장합니다.]
 [보스가 사냥 당함에 따라 변이체들의 위기의식이 짙어집니다. 장군 변이체가 등장합니다.]
 [장군 변이체의 등장으로 변이체들이 강화됩니다. 장군 변이체가 변이체들을 불러 모아 세력을 형성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난 뒤의 또 다른 위기가 시작되려 했고 유세하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보스를 사냥하시면서 안전 에어리어를 획득하셨습니다.]
 [안전 에어리어 내의 변이체들이 일제히 소거되고 접근하지 못합니다.]
 
 희소식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발생!]
 
 -안전 에어리어에서는 문명의 기능이 회복됩니다. 안전 에어리어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십시오.
 
 “……!”
 문명의 회복,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유세하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 8화 안전 에어리어
 
 1
 
 안전 에어리어로 확보한 장소의 크기는 초등학교 부지정도였다.
 임의로 위치를 선정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도살자를 사냥한 장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문명의 복구가 가능하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쓰던 물건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긴 한데… 과연 그렇게 쉽게 될까?”
 기대에 찬 한소림의 말에도 유세하의 반응은 약간 회의적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마 우리의 편의에 마냥 좋게만 해놓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유세하의 말을 듣고 한소림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건물로 들어가 보자.”
 안전 에어리어로 활성화 된 장소에는 몇 채의 빌딩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상태가 좋은 곳으로 들어가 봤다.
 우선 화장실로 가서 상수도의 기능이 회복되었는지부터 확인해 봤다.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상수도 기능이 파괴되었습니다. 수리가 필요합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메시지가 출력됐다.
 혹시 싶었지만 역시나 싶어서 유세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대에 가득 차 있던 한소림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으으, 샤워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아무래도 세상이 무너진 이래 물티슈로 몸을 닦는 것 이외에는 씻는다는 행위 자체를 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찝찝함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의 회복이란 말을 듣고 가장 크게 기대를 했던 부분이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니 실망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다 보니 그쪽으로 가장 먼저 관심이 가는 모양이구나.’
 왠지 웃음이 나는 것을 참으면서 유세하는 과연 상수도의 기능을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 방법을 궁리했다.
 우선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외쳐봤다.
 “상수도 수리.”
 
 [관리자 권한이 필요합니다. 아직 안전 에어리어의 관리자가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명령어를 외치다 보니 새로운 메시지가 출력 되었고 유세하는 이거다 싶었다.
 “음? 그럼 관리자 지정!”
 
 [안전 에어리어의 관리자를 지정합니다. 현재 관리자 지정 가능한 플레이어는 유세하, 한소림, 한소현, 김성진, 홍정석, 박유선, 한진우, 이주영 입니다.]
 
 원하는 것을 찾아낸 유세하는 씩 웃고는 남매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말하고 누가 관리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상의를 하자고 하니 남매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유세하를 지목했다.
 “아저씨가 하셔야죠!”
 “이 파티의 리더는 아저씨인데 당연히 아저씨가 해야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상의를 하는 편이…….”
 “아저씨가 아니면 안 돼요!”
 단호한 한소림의 말과 동의한다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한소현의 모습에 유세하도 더 이상 토 달지 않았다.
 ‘자꾸 감투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플레이어 유세하가 관리자로 추대 되었습니다. 투표가 시작됩니다. 찬성 2표, 기권 5표로 플레이어 유세하가 안전 에어리어 관리자로 임명됩니다.]
 
 관리자로 임명되자 권한에 대한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안전 에어리어 관리자는 모든 것을 총괄책임을 지는 막중한 자리입니다. 안전 에어리어 관리자가 사망 시, 안전 에어리어는 해제되니 유념해 주세요.]
 [안전 에어리어 관리자는 명령어 안전 에어리어 관리를 통해 구역 내의 모든 것을 제어가 가능합니다.]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유세하는 명령어를 외쳤다.
 
 [안전 에어리어 관리]
 -해체: 안전 에어리어 내의 건물들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해체된 건물들은 포인트로 환산됩니다.
 -건설: 건물을 건설합니다. 건물 건설 시,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수리: 낙후된 시설들에 대한 수리가 가능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유세하는 대략적으로 어떻게 안전 에어리어를 관리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일행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유세하는 건물 벽에 손을 대고 외쳤다.
 “해체!”
 파스슥!
 건물들이 먼지처럼 흩날리더니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떴다.
 
 [빌딩을 해체하셨습니다. 포인트로 환산되어 정립됩니다.]
 
 상점을 열어 포인트를 확인해 보니 건물 하나에 대략 20만 포인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방금 전 해체한 건물 같은 경우에는 빌딩이었으니…….”
 유세하는 일단 안전 에어리어 내에 있는 모든 건물들을 해체했고 그로 인해 도시 한복판에 공터가 생겼다.
 “좋아. 건설!”
 
 [건물을 건설합니다. 기본적으로 10만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건물의 종류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건물의 추가적인 기능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추가기능-
 지하수 개발, 상수도 설치, 하수도 설치, 정화 시설 설치, 전기 시설 설치, 냉방 시설 설치, 난방 시설 설치, 자력 발전시설 개발
 
 유세하는 볼 것도 없이 모든 기능을 때려 박았다. 그러자 금액이 쭉쭉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100만 포인트는 가뿐하게 넘어 버렸다.
 “…….”
 기가 질릴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건물들을 해체하며 얻은 포인트가 있어 아슬아슬하게 건설이 가능했다.
 잠깐 고민하던 유세하는 과감하게 건설했다.
 드드드드드!
 마치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건물 하나가 뚝딱 지어져서 눈앞에 등장했다.
 “…….”
 비현실적인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단연코 오늘이 가장 압권이었다.
 “이게 뭐야…….”
 한소현의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중얼거림이 일행의 심정을 대변했다.
 유세하가 지은 건물은 3층짜리의 대저택이었다.
 한소림이 어째서 이런 집을 지었냐고 물으니 유세하가 멋쩍게 대답했다.
 “길드 하우스 같은 개념을 생각했었거든.”
 “아항!”
 한소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인 한소림이지만 저택의 디자인이 무척 깔끔하고 예뻐 보였기 때문에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화려한 내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들어와.”
 유세하가 몸을 돌려 손짓하니 한소현이 신이 나서 냉큼 뛰어들었다.
 쾅!
 “으악!”
 그 순간 한소현은 투명한 벽에 부딪쳤고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뭐, 뭐야?!”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한소현이 의문을 보였다. 그런 그의 의문을 풀어주듯, 메시지가 떴다.
 
 [건물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어, 아저씨의 허가가 필요하대요.”
 한소현의 말을 듣고 유세하가 관리자 권한을 열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거다. 입주 허가. 대상은 한소현, 한소림, 김성진, 홍정석, 박유선, 한진우, 이주영.”
 유세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입주대금을 설정해 주십시오.]
 
 “…너희들 보고 월세 내라는데?”
 “엑?!”
 “그냥 들어 보내주는 게 아니었나 보네요.”
 유세하는 조금 고민하다가 한도를 최저로 설정했고 이번엔 한소현과 한소림의 앞에 메시지가 떴다.
 
 [입주대금 10포인트를 지불하시겠습니까? Y/N]
 
 “이거 하루에 한 번씩 나가는 거죠?”
 “맞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정 변경이 안 되는 모양이야.”
 하루에 10포인트면 일주일이면 70, 한 달이면 300의 포인트였다.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유세하가 한도를 최저로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능은… 훗날을 위한 것이라고 봐야겠네.’
 안전 에어리어는 성장이 가능했다.
 아까 관리자 권한을 훑어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안전 에어리어는 성장시킬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지금은 잠겨 있어서 사용할 수 없는 기능도 쓸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생각을 해보면 관리자 혼자서 포인트를 모으고 안전 에어리어를 성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건물의 입주뿐만이 아니라 안전 에어리어에 들어오는 것 자체도 포인트를 요구할 수 있었다.
 관리자 권한으로 해제할 수 있는 기능이지만 나중에 필요할 것이라고 유세하는 판단했다.
 멀뚱히 서있기만 하던 다섯 명에게도 명령을 내려서 입주시킨 유세하는 각자의 방을 배정해줬다.
 “무, 물이 나온다! 그것도 따뜻한 물!”
 한소현의 감탄사가 터지기가 무섭게 한소림이 얼른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
 한소현도 스스로의 몸을 킁킁 대더니 인상을 찡그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유세하는 문득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씻어도 갈아입을 옷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꺄아아아악! 안 돼!”
 한소림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문이 열렸다.
 뒤늦게 유세하가 생각했던 점을 생각해낸 그녀의 얼굴은 잔뜩 시무룩해져 있었다.
 
 ***
 
 정말 다행스럽게도 유세하 일행은 의복을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해답은 다름이 아닌 상점의 기능인 생필품 세트의 구매였다.
 그동안 잘 사용하질 않았으니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레벨이 상승할수록 생필품 세트의 기능 역시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생필품 세트를 구매해 보니 기존에 나왔던 물건들에 간단한 의복과 속옷 세트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면도구들까지 함께 나왔는데 1회용이라는 점이 참 아쉬웠다.
 덕분에 좌절했던 마음을 딛고 다시 씻으러 들어갔던 것이 한참 전의 일이었다.
 유세하는 벌써 다 씻고 개운한 마음을 만끽하며 안전 에어리어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흠, 전체적으로 건물은 지으면 내구 인테리어는 기본적인 것들만 제공해주는 것 같은데.”
 저택의 이곳저곳 살펴보니 방 이외에도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창고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옷장이라든지, 책상과 같은 필요물품들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에 유세하는 고민에 빠졌다.
 “분명히 이것들을 구할 방법이 있을 텐데.”
 혹시 레벨을 올리면 생필품 세트가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가구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엔지니어에 관한 말이 나왔었지.”
 처음 상수도를 수리하려고 했을 때, 전문 엔지니어라면 무료로 수리할 수 있다고 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 뒤로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술자가 관건이군.”
 단순히 안전 에어리어의 관리자 권한과 상점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문명을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전 에어리어가 주어지고 이 안에서는 비상식적인 힘으로 문명을 복구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을 생각한 유세하의 의문은 깊어졌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언제나 그렇고 해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 너무 행복해요.”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한소현과 한소림이 씻는 것을 마치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머리에 묻는 물기를 탁탁 털어내며 걸어 나오는 남매의 외관은 그야말로 이전과는 천지차이였다.
 “너희들…….”
 “……?”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유세하를 보면서 남매가 의문을 표했다.
 “우월한 유전자들이었구나.”
 어딘지 짙은 음울함이 깃들어 있는 유세하의 한마디에 한소림의 얼굴은 붉어졌고 한소현은 다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토닥여줬다.
 
 2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보스를 잡으면서 얻은 보상을 확인할 겸, 앞으로의 일정을 잡으려면 서로가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뤘는지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기에 모인 자리였다.
 한 번씩 일행을 훑어본 한소현이 말했다.
 “…무슨 NPC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세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격하게 공감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덟 명이 흰 티셔츠에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면 누구라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한소림도 이 말의 뜻을 알아듣고 살포시 웃음을 터뜨렸다.
 씻지 못해서 몰골이 엉망이었을 때는 몰랐는데 말끔해진 한소림이 웃으니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정산 하자.”
 자칫하면 시선을 사로잡힐 것 같아, 유세하는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세하는 우선 보스의 사냥 보상부터 확인했다.
 상자를 여니 이번에 나온 것은 생뚱맞게도 하나의 동전이었다.
 
 [보스 사냥의 징표]
 첫 보스를 사냥한 자에게 주어지는 징표이다.
 레벨제한: 없음
 특수능력: 장비의 특수능력 및 플레이어 스킬을 사용 시 효과가 10%상승한다.(보유 시 효과 발동)
 내구력: 없음
 
 별 것 없는 능력인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굉장한 장비였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동한다니 가면 갈수록 강력해지는 장비의 특수능력과 플레이어 스킬을 생각해보면 효율성이 굉장히 높았다.
 “난 이런 장비가 나왔는데 너희는 어때?”
 “저도 똑같은 장비가 나왔어요.”
 “저도요.”
 한소림과 한소현 역시 마찬가지의 장비가 나왔으니 다섯 명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유세하는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했다.
 레벨이 무려 92였고 숙련도도 초급95나 되었다. 그 순간 그동안 재워놓았던 숙련도 상승권이 떠올랐다.
 “너희들 숙련도가 어떻게 돼?”
 유세하가 물어보니 한소림은 초급88이었고 한소현은 초급 90이었다.
 “흐음. 숙련도 상승권을 사용하기엔 소림이는 애매하고 소현이는 해볼 만한데?”
 “아… 그게 있었죠!”
 잊고 있었던 숙련도 상승권을 기억한 한소현이 탄성을 내뱉었다.
 유세하는 다섯 명의 청년들을 힐끔 쳐다봤다.
 그들 역시 숙련도 상승권이 있었지만 현재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파악할 수가 없어 그들이 사용하게 하는 건 미루기로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숙련도 상승권을 사용했다.
 
 [숙련도 상승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숙련도가 4단계 상승하여 초급99가 되었습니다.]
 
 “흐음.”
 유세하의 미간이 파였다.
 적어도 5 이상만 나와 주길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4밖에 오르지 않았다.
 유세하가 실망하는데 한소현이 옆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오! 10 올랐어요! 앗!”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한소현의 몸이 별안간 빛에 휩싸였다.
 어딘지 따뜻한 느낌이 나는 빛이었고 차츰 잦아질 때쯤, 한소현이 어딘지 몽롱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현아?”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인지라 한소림이 걱정스러움을 담아서 부르니 녀석이 정신을 차렸다.
 “플레이어 스킬이 중급으로 진화했어요.”
 “뭔가 달라진 것 같아?”
 “음, 자세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더 강해지고 쉽게 쓸 수 있어졌어요. 그 전보다 더 통제가 잘 되는 느낌이네요.”
 손가락에 불꽃을 만들거나 이리저리 실험을 해보면서 한소현이 말했다.
 중급으로 성장한 만큼 한소현의 불꽃은 더욱 뚜렷한 형태와 강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아저씨는 안 올랐어요?”
 “1 모자라.”
 턱걸이에 걸렸다는 말에 한소현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인피니트를 뽑으면서 평생치 운을 다 쓴 건 아니겠죠?”
 “…….”
 한소현이 농담처럼 던지는 말에 유세하는 어쩐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섬뜩함을 느꼈다.
 “농담으로도 그런 말 하지 마라.”
 “헤헤헤.”
 장난이었다는 듯, 한소현이 머쓱하게 웃었고 유세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충 정산이 끝나자 유세하는 다음 화제로 전환했다.
 “너희들도 장군 변이체에 관련된 메시지 봤지?”
 “네, 봤어요.”
 “장군 변이체가 세력을 형성한다고 했었어요.”
 남매 역시 자신이 본 것과 마찬가지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안전 에어리어를 확보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가 생긴 것 같아.”
 “다른 변화…. 맞아, 필드 보스가 나온다고 했죠.”
 장군 변이체 이외에 필드 보스에 대한 내용까지 떠올린 한소현의 말이었다.
 한소림은 조금 딱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약해졌다고 하기는 했는데…여러 가지로 걱정이네요. 출현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없고요.”
 “그것도 걱정이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녀석들이 안전 에어리어로 침공을 해올 경우에 대한 거야.”
 “아……!”
 유세하의 말에 남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는 반응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문제인데요. 만약 저번처럼 사방에서 포위를 하고 공격을 해온다면…….”
 한소현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 때와는 달리 아지트를 포기한다는 선택도 할 수가 없어.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전 에어리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 돼.”
 겨우 여덟 명의 인원으로 하기에는 다소 일손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여덟 명 중 다섯은 세뇌에 대한 후유증으로 아직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어 일을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형들이 정신을 차려주면 좋을 텐데.”
 “그러게.”
 유세하는 대꾸하면서 속으로 협조적으로 나와 주면 더 좋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 후로도 유세하와 남매는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으면서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토론을 나눴다.
 “정보가 부족하네요.”
 “이주일 뒤에 중간보스, 한 달 뒤에 보스가 또 나타날 건데…빠듯하네요.”
 아직 장군변이체가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만큼,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안전 에어리어를 확보한 것은 분명 희소식이지만 아직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 사람의 토론은 밤이 늦도록 계속 되었다.
 
 ***
 
 지난밤이 늦도록 토론을 했지만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예측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유세하는 결국 정찰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날이 밝자마자 거리로 나섰다.
 “으음.”
 안전 에어리어 밖으로 나오니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얇은 막으로 안전 에어리어와 일반 지역이 구분되는 모양이었다.
 쉬익.
 이제는 익숙해진 중력제어를 이용하여 유세하가 가뿐하게 거리를 내달렸다.
 안전 에어리어 덕택인지 주변에는 변이체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변이체들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날아올랐다.
 하늘로 솟구쳐 도시를 한 눈에 내려 보니 안전 에어리어가 형성되어 있는 구획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만 넓은 공터와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저택이 있으니 당연했다.
 “이상한 걸?”
 유세하는 안전 에어리어를 중심으로 천천히 탐색을 하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변이체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예 변이체가 출현한 이후, 어딜 가도 변이체가 바글바글 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물량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척 봐도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
 묘한 불안함을 느끼면서 유세하는 천천히 공중을 배회하며 변이체들을 탐색했다.
 그 결과 도시 내에서는 단 한 마리의 변이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조짐이지?”
 불안함이 온 몸을 엄습했다.
 유세하는 일단 탐색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많은 물량이 전부 사라지려면 만만치 않은 공간이 필요할 텐데… 도시 내에 그런 공간은 없어. 그렇다면…….”
 유세하의 시선이 도시 외부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빌딩과 건물들이 서 있는 도시 외부의 공간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궁금해졌다.
 어디를 탐색할지 정한 유세하가 다시 날았다.
 빠르게 하늘을 이동하니 도시를 벗어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도시를 벗어나고 얼마 날아가지 않고 유세하는 그 많던 변이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
 유세하는 경악한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변이체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마치 하나의 물결처럼 보일 정도의 밀집이었다.
 “이, 이 많은 녀석들이 대체 왜…….”
 언뜻 봐도 도시에서 사라졌던 변이체들이 전부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리고 있는 유세하의 두 눈에 또 다른 광경이 잡혔다.
 녀석은 무척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우람한 체구와 온몸에는 단단한 갑옷과도 같은 껍질에 둘러싸인 녀석의 머리에는 뿔이 있었다.
 유세하는 놈이 장군 변이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강력한 포효가 터져 나오고 변이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장군 변이체가 오연한 눈빛으로 변이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세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쿵!
 녀석이 발을 크게 굴리자 변이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정예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고 특별한 변이체가 호응하여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에 일반 변이체들이 어색하지만 일사분란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
 그것을 본 유세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쿵쿵!
 장군 변이체가 또 다시 발 굴림을 하니 변이체들의 움직임에 변동이 생겼다.
 지금까지 본능에 의해 전투를 벌이던 변이체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정교한 지휘체계였다.
 ‘장군! 그렇군! 장군 변이체란 지휘관이었던 건가!’
 자신 스스로의 강함도 상당할 것 같지만 장군 변이체가 가진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유세하는 깨달았다.
 이건 굉장히 위험했다.
 차라리 강력한 하나의 적이 늘어나는 것이 낫지 이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인류의 문명의 복구…그에 따른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는 건가.’
 두려움이 물밀듯 몰려왔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변이체들이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일사분란하게 안전 에어리어를 함락시키려 덤벼드는 상상을 하니 오한에 몸이 떨렸다.
 반사적으로 인피니트를 꺼냈다.
 공격을 하려는 찰나,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시도에 그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야 유세하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변이체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다.
 “절대 평범한 방법으로는 놈들을 이길 수 없어.”
 유세하는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곧바로 몸을 돌려 귀환하려 했다.
 그 때 그의 시야에 기묘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저건…뭐지?”
 장군 변이체의 지휘를 받는 변이체들의 모습에 워낙 충격을 받아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시선을 집중해서 자세히 쳐다보니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무언가 싶었던 그것의 정체는 온몸이 구속되어 있는 살육자였다.
 살육자는 변이체들의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여 구속당해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중간 보스에서 필드 보스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세하가 얼른 모험가의 외눈안경을 꺼내 정보를 확인했다.
 확실히 레벨이 낮아서 60 언저리였고 그 탓에 약해져 변이체들에게 포획된 모양이었다.
 “…도대체 변이체와 보스들은 무슨 관계지?”
 저번 보스를 보면 변이체들을 마치 수속처럼 부렸었다. 그런데 그 전의 중간 보스를 보면 변이체들을 사냥하고 자신의 성장재료로 사용했다.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궁금해졌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잡념을 털어냈다.
 한 번 변이체들을 살펴보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유세하가 몸을 돌려 도시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한시라도 빠르게 이 소식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 9화 길드
 
 1
 
 유세하가 알아온 소식은 남매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안전 에어리어의 확보 후,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요.”
 한소림이 어두워진 얼굴로 중얼거렸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한소현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안전 에어리어 안에 있다면 안전은 확실하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녀석들이 공격을 할 때, 안전 에어리어 안에서 사냥을 하면 될 것 같은데요.”
 “흐음. 나도 그 생각은 해봤는데…….”
 유세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로 편의성 좋게 일이 흘러가진 않을 것 같았다.
 “안전 에어리어를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뭔가 방법이 있는 거겠지.”
 “…그것도 그러네요.”
 한소현은 순순히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절대 플레이어들만 유리하게 일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한소현의 의견에는 심각한 맹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
 “함정을 설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응?”
 한소림의 의견에 유세하와 한소현이 귀가 솔깃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지대한 관심에 한소림이 당황하더니 우물쭈물 말했다.
 “그게… 아저씨 말대로라면 지금 도시 안에는 변이체가 하나도 없단 소리잖아요. 그럼 함정을 설치하기 정말 좋은 여건이 아닐까 싶어서요.”
 “괜찮은데?”
 유세하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함정을 설치해놓는다면 변이체들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문제는 있었다.
 “녀석들이 언제 침공할지 모르고 우리끼리 함정을 설치해봐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흐음, 일단 안전 에어리어 부근에만 중점으로 설치를 하는 것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중세시대의 성처럼 안전 에어리어 주변에 참호나 해자 같은 것들도 좀 만들어두고요.”
 점점 본격적인 의견이 나왔다.
 확실히 현재로써 유세하 일행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이라 할 수 있었다.
 “참호나 해자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안전에어리어에 성벽을 쌓는건 어떨까?”
 “포인트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건 벌어봐야지. 녀석들이 언제 움직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뭐하니 최대한 방해를 해보려고.”
 “흠, 이른바 게릴라라는 거죠?”
 한소현이 말했고 유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포인트도 벌고 조금이라도 녀석들의 훈련을 방해를 겸하는 사냥이 시작되었다.
 유세하가 사냥을 하는 동안, 한소현과 한소림은 안전 에어리어에 남아 해자를 만들기로 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유세하는 인피니트를 꺼냈다.
 무한의 검을 사용하여 주변에 약 20개 정도의 검을 생성한 유세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쉬이이익!
 벼락처럼 떨어진 검들이 변이체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고 잘랐다.
 비명이 연달아 터지고 뒤늦게 유세하를 발견한 녀석들이 광폭한 흉성을 토해냈다.
 장군 변이체의 시선도 유세하를 향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장군 변이체는 유세하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분노의 포효를 내뱉고는 그 자리에서 도약했다.
 녀석의 등짝이 활짝 열리고 그 안에서 얇은 날개 3쌍이 튀어나왔다.
 “……!”
 녀석이 하늘로 날아오른 것을 확인한 유세하의 두 눈이 커졌다.
 그러는 사이 빠르게 유세하에게 접근한 장군 변이체가 날카로워 보이는 뿔로 공격했다.
 공중을 선회하여 공격을 피한 유세하는 생각보다 일이 힘들어질 거라 판단하고 검을 회수했다.
 변이체 몇 마리 사냥하여 포인트를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장군 변이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유세하는 재차 돌격해오는 장군 변이체의 날개를 중력으로 눌러봤다.
 “크륵!”
 녀석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지만 이내 다시 균형을 잡고 방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생각보다 날개 힘이 강한데?’
 곤충의 날개처럼 얇아서 힘이 별로 강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유세하는 이리저리 장군 변이체의 공격을 피하면서 이것저것 공격을 감행해봤다.
 무한의 검을 이용해서 몸을 찔러보기도 하고 날개를 베어보려 하기도 하며 알아낸 것은 장군 변이체의 방어력이 상상을 웃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번은 검기 생성을 이용해서 녀석의 껍질을 공격해봤는데 놀랍게도 한 번에 잘려지지 않았다.
 물론 몇 번씩 연거푸 같은 장소를 공격하니 베어지긴 했지만 정말이지 놀라운 강도가 아닐 수 없었다.
 ‘쉽지 않은 상대로군. 게다가 녀석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유세하가 탐색을 하고 있듯, 녀석도 비슷한 느낌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한동안 장군 변이체와 신경전을 계속하던 유세하는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판단되자 행동을 바꿨다.
 무한의 검으로 검 20개를 더 생성한 유세하가 일반 변이체들을 노렸다.
 “크아악!”
 장군 변이체가 그것을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유세하가 나머지 20개의 검으로 견제를 하며 방해를 하는 덕택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여태껏 폼으로 살아남은 건 아니란 말이다, 이 자식아!”
 유세하는 장군 변이체가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 판단하고 도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군 변이체의 눈빛이 새빨갛게 돌변하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세를 내뿜었다.
 ‘이거 아슬아슬하군.’
 유세하는 20개의 검과 중력을 이용하여 장군 변이체를 상대하는 한편, 나머지 20개의 검은 사냥에 이용했다.
 제어하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다.
 위험한 줄타기 같은 행동이었지만 그런 만큼 유세하는 빠르게 무한의 검을 다루는 노하우도 같이 터득하고 있었다.
 “후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걸 느낀 유세하는 생각보다 포인트가 모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상을 썼다.
 “크르르르!”
 유세하가 검을 회수하자 장군 변이체도 공격을 멈추고 사태를 주시했다.
 한동안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먼저 움직인 것은 유세하 쪽이었다.
 돌연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하는 유세하를 장군 변이체가 빠르게 뒤쫓았다. 그 순간,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던 유세하의 몸이 회전 했다.
 쉬이이이이익!
 다섯 줄기의 섬광이 번뜩였다.
 검기가 덧씌워진 무한의 검 다섯 자루가 일제히 장군 변이체의 몸을 꿰뚫었다.
 중력에 의해 가속도가 붙었음에도 관통하지 못하고 박히기만 한 검을 보며 유세하가 혀를 찼다.
 ‘그래도 아예 상처를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로군.’
 어느 정도 장군 변이체에 대한 견적을 낸 유세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봤다.
 우웅!
 모든 힘을 다해 유세하가 중력을 집중시키자 아지랑이 같은 것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장군 변이체를 짓눌렀다.
 “크아아아악!”
 안 그래도 검이 몸에 박혀 고통스러운 장군 변이체가 강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곤두박질 쳤다.
 쿵!
 제법 높은 상공에 떠있었기 때문에 장군 변이체가 땅에 처박히는 소리는 작게 들렸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유세하가 또 다시 무한의 검을 생성했다.
 방금 전 검기를 두른 공격으로 인해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어 어질어질 했다.
 “후우! 이것도 무난하게 막는지 두고 보자!”
 우웅!
 검기가 생성된 무한의 검을 들고 유세하가 보다 높을 곳으로 솟아올랐다.
 약간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까지 급격하게 상승하니 어지럼증이 더욱 심해졌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안 좋다고 판단한 유세하는 멈춰선 뒤, 무시무시한 속도로 급 하강했다.
 맞바람에 의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한동안 하강을 계속하던 유세하가 몸을 빙글 돌려 원심력까지 더해 검을 힘껏 집어던졌다.
 핑!
 공기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검기가 둘러진 무한의 검이 쏘아졌다.
 거기에 유세하가 중력을 더했다.
 ‘더! 더! 한 번 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번이고 중첩하여 중력의 힘을 더하니 무한의 검은 급기야 한줄기의 빛이 되었다.
 “…….”
 장군 변이체는 바닥에 처박힌 상태에서 멍하니 자신의 복부를 바라봤다.
 검 한 자루가 관통한 자국이 선명했다.
 유세하는 장군 변이체의 몸을 꿰뚫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지상 깊숙이 사라져 버린 무한의 검이 남긴 흔적을 확인해보고 가능성을 가늠했다.
 “이 정도면 너무 과하단 거군.”
 “크륵! 크헉!”
 장군 변이체가 핏물을 게워내면서도 용케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지만 방금 전의 충격 때문인지 쉽사리 몸을 가누지는 못했다.
 유세하를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유세하는 이번 접전을 통해 얻고 잃은 것을 정산해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슬슬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라서 비행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유세하는 철수를 하며 마지막으로 장군 변이체가 있는 곳을 훑어봤다.
 녀석은 미동조차 없이 유세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처음 접전이 있었던 날 이후, 유세하와 장군 변이체의 기묘한 신경전은 계속 되었다.
 유세하가 포인트를 얻기 위해 나타나면 장군 변이체가 어김없이 맞상대를 하러 나왔다.
 첫 날의 경험 때문인지 장군 변이체는 자신의 방어력을 맹신하지 않았고 점점 유세하의 패턴에 익숙해졌다.
 유세하 역시 장군 변이체에게 익숙해졌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유세하 쪽의 손해였다.
 ‘녀석은 분명 뭔가를 감추고 있는데…….’
 언뜻 보면 호각이거나 나름 유리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유세하는 방심하지 않았다.
 녀석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는 이상, 될 수 있으면 이쪽도 패는 보여주지 않는 편이 좋았다.
 계속되는 장군 변이체와의 드잡이 질 덕택에 포인트도 원하는 대로 쌓지 못하게 되자 유세하는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한소림과 한소현을 대동했다.
 누나 쪽과 대동한 날에는 한소림이 결계로 장군 변이체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변이체를 사냥했다.
 동생과 짝을 맞추면 유세하가 장군 변이체를 맡았고 한소현이 변이체들을 쓸어버렸다.
 포인트가 쌓이는 속도는 그다지 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냥하니 경험치는 빠르게 쌓였다.
 ‘나와 남매들뿐만이 아니라 그 다섯도 레벨을 올리긴 해야 하는데…….’
 앞으로 가혹한 싸움이 예상되는 만큼 될 수 있는 만큼 성장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장군 변이체의 지능이 뛰어나다 보니 능동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다섯 명을 동원하기엔 다소 위험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이래저래 고민이 깊었지만 일단 자신부터 레벨을 올리고 판단하자는 생각을 하곤 유세하는 사냥에 박차를 가했다.
 성벽을 쌓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많다 보니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것도 이런 판단을 하는데 한 몫 했다.
 그렇게 장군 변이체와의 실랑이가 약1주일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유세하가 100레벨을 달성했다.
 
 [축하드립니다. 100레벨을 달성하여 1차 한계 레벨이 되었습니다. 이후 레벨 상승을 위해서는 한계 돌파를 하셔야 합니다.]
 [100레벨을 달성하셔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됩니다. 현 시간부로 길드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100레벨을 달성한 기념으로 칭호가 주어집니다. 칭호 (한계 레벨을 달성한 자)가 주어집니다.]
 
 100레벨을 달성하자 두 가지의 새로운 변화가 생겼는데 길드 설립과 칭호였다.
 “칭호라.”
 유세하는 칭호의 능력부터 확인해봤다.
 
 [칭호-한계레벨을 달성한 자]
 효과: 장비의 특수능력 및 플레이어 스킬을 사용 시 효과가 5% 상승합니다.
 
 보스사냥 보상과 비슷한 능력이었지만 효과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보스사냥의 징표와 중복되어 적용되어서 그 능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2
 
 유세하는 곧바로 길드에 대한 것도 확인해봤다.
 길드는 파티와 비슷한 개념이었으나 꽤 여러 가지의 추가된 이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길드원들끼리 사냥을 하게 되면 파티와는 달리 경험치를 분배하지 않았다.
 하나의 변이체를 사냥하면 그것에 대한 경험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레벨 업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이점이었다.
 ‘그만큼 100레벨 이후에는 많은 경험치를 요구하게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겠지.’
 두 번째 이점은 포인트의 공유였다.
 길드마스터부터 평범한 길드원에 이르기까지 길드 자체에 포인트 기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인 포인트는 길드마스터와 길드부마스터의 합의 하에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마지막 이점은 놀랍게도 스킬 슬롯이었다.
 여태껏 유세하를 비롯한 일행들은 각자 능력을 임의대로 사용했다.
 이것은 효율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플레이어 스킬을 원하는 형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정신집중이 필요했다. 그러니 급박할 때는 아무래도 사용패턴이 단조로워졌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스킬 슬롯이었다.
 능력의 패턴을 지정하여 스킬로 저장해두면 명령어로 스킬을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효율적인 측면에는 비교를 불허했다.
 “대박이네요! 지금 바로 길드를 창설할 수 있는 거예요?!”
 길드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나니 한소현이 신이 나서 물었다.
 “당장 가능하기는 한데… 포인트가 좀 부족해서 말이지.”
 성벽을 쌓기 위해 제법 많은 포인트를 축적해뒀음에도 길드 창설 하는데 조금 부족했다.
 “얼마나 들어가는데요?”
 “50만 포인트가 필요해. 길드를 창설하는 것에만 말이지.”
 “…….”
 “그, 그래도 길드 창설을 하게 되면 길드 하우스를 지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럴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은 길드 하우스까지 짓는 걸로 포함하면 적어도 150만 포인트는 들어가야 한다는 거네요?”
 “…스킬 슬롯을 해방하려면 50만 포인트 추가.”
 도합 200만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양이 필요하단 최종결론에 한소림이 머리를 짚었다.
 “아저씨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구조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는 수 없죠.”
 기가 질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긴 하지만 그 유용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사냥에 조금 더 집중해야겠네요.”
 “…….”
 어쩐지 오한이 돋는 느낌이었지만 유세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 날부터 유세하의 사냥은 보다 활발해지고 집요해졌다.
 오죽하면 유세하를 막기 위해 항상 앞을 가로막는 장군 변이체가 당황할 정도였다.
 평상시에는 어느 정도 사냥을 하고 나면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기를 쓰고 덤벼드니 그럴 만도 했다.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단 말이다!”
 유세하의 일갈이었지만 장군 변이체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길이 없어 분노만 폭발시켰다.
 상대가 죽자 살자 덤벼든다고는 하지만 마냥 밀리기만 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사냥은 보다 위험해지고 치열해졌지만 다시 5일이 지났을 때, 간신히 50만 포인트를 채울 수 있었다.
 “길드 창설!”
 유세하가 명령어를 외치자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길드가 창설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길드를 창설하셨습니다. 길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길드 하우스가 필요합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건물 1채가 있습니다. 길드 하우스로 지정하시겠습니까? Y/N]
 
 유세하가 예스를 선택하니 저택에 기묘한 파장이 생겨났다.
 
 [길드 하우스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길드 하우스에는 길드원 이외의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유세하는 곧바로 남매와 다섯 명을 길드원으로 등록시켰다.
 저택이 길드 하우스가 되며 매일 차감되어 사라지는 포인트의 압박에서 해방된 한소현이 말했다.
 “월세에서 전세가 된다는 건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내 집 마련이라 할 수 있지.”
 대한민국 남자들만 가질 수 있는 공감대에 한소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세하는 곧바로 한소림을 길드 부마스터로 임명했다.
 한소림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동생인 한소현마저 누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짜를 부리니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열심히 할게요!”
 “이렇게 되면 아저씨가 아빠고 누나가 엄마인가? 우리는 한 가족이니까!”
 “소현아!”
 한소현의 장난기 어린 말에 한소림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한소현이 ‘이크!’하는 얼굴로 얼른 도망가니 한소림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슬쩍 유세하의 눈치를 봤다.
 “……?”
 유세하는 그런 한소림의 시선에도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에효.”
 한숨을 내뱉고 한소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니 유세하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우리 길드의 이름은 패밀리가 어때요?”
 그 때 한소현이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조금 생각해본 유세하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패밀리…좋네.”
 진부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좋다는 느낌이 컸다.
 특히 유세하는 새로 합류한 다섯 명은 몰라도 남매만큼은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크게 공감했다.
 길드의 이름까지 정하고 난 다음, 한소림과 한소현이 포인트를 기부했고 그것을 이용해서 스킬 슬롯을 열었다.
 
 [스킬 슬롯이 해방 되었습니다. 스킬 슬롯 2칸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로 지정할 수 있는 슬롯은 겨우 2칸이었지만 포인트를 통해 업그레이드를 하여 더 늘릴 수 있었다.
 “다음에 필요한 포인트가 100만…….”
 부마스터의 권한으로 길드의 상황을 열람할 수 있는 한소림이 기가 질린 얼굴이 되었다.
 스킬 슬롯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에만 100포인트가 필요하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길드 레벨을 올려야 했다.
 길드 레벨을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또 100만 포인트이니 또 다시 200만 포인트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기부도 있으니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치면 금방 모을 수 있을 거야!”
 유세하가 애써 용기를 불어넣고 나서야 한소림의 표정이 그나마 나아졌다.
 스킬 슬롯을 얻었으니 그 다음에는 당연히 능력을 저장하는 것만 남았다.
 유세하는 가장 효율적인 스킬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신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면서 강력한 위력을 내는 행위는 무기에 중력을 부여하는 방법이었다.
 무한의 검이나 다른 공격을 할 때, 중력을 가미하여 하는 공격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일단 방향을 정한 유세하는 스킬을 지정해봤다.
 
 [플레이어의 특정 행동을 저장하여 스킬로 지정합니다. 이름을 정해주세요.]
 
 유세하는 이 스킬의 이름을 중력 부여라 지었다.
 일단 유세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킬이 지정되었는지 확인해 봤다.
 우선 무한의 검을 하나 소환하여 허공에서 날아다니게 하다가 스킬을 사용했다.
 “중력 부여!”
 핑!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무한의 검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검이 건물 벽에 부딪치자 자루만 남기고 깊숙이 박혔다.
 “이건…….”
 생각지 못한 효과였고 유세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위력이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중력을 부여하여 공격을 해봤지만 지금처럼 위력이 증폭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혹시 스킬화 하면서 뭔가 변화가 일어난 건가?”
 유세하가 스킬 슬롯을 열어 저장되어 있는 스킬의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중력 부여]
 원하는 대상에 중력을 부여한다. 스킬지정의 효과로 위력이 100% 증가된다.
 
 “……!”
 유세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설명대로라면 유세하가 부여하고자 했던 것보다 두 배나 강력한 힘이 부여된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스킬의 진정한 효과라는 것을 깨달은 유세하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랬군. 그러니 그렇게 비싼 거였어.”
 단순히 스킬로 만드는 것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에는 없었던 특수효과가 있었다.
 소모되는 정신력은 줄어들고 위력은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 바로 스킬 지정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우와아아아앗!”
 유세하처럼 뒤늦게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한소현의 환호 섞인 비명이 들렸다.
 “아저씨, 이거 진짜 대박이에요!”
 “나도 확인했어.”
 “히히히!”
 한소현은 신이 나서 나머지 하나 남은 스킬도 지정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미소를 지은 유세하가 한소림 쪽을 확인해보니 뭔가 잘 되지 않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급할 것 없으니 편하게 생각을 해.”
 “그래도… 최대한 좋게 해야죠.”
 “어차피 스킬은 초기화 시키고 다시 지정해도 되는 거니까.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도 있잖니?”
 “네, 그러네요.”
 조금 생각에 빠졌던 한소림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싶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세하는 그런 한소림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앗!”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한소림이 이내 베시시 웃으면서 유세하의 손길을 즐기듯, 눈을 감았다.
 “어머머, 분위기 좋으시네요?”
 “이게?!”
 언제 다가온 것인지 한소현이 불쑥 튀어나와 짓궂은 한마디를 던지니 이번에는 한소림도 참지 않고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으악!”
 별로 세게 쥐어박은 것 같지 않은데 한소현이 기겁하고 머리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
 “결계를 뾰족하게 만들어서 씌웠거든요.”
 유세하가 뭐가 그리 아픈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자 한소림이 웃으면서 설명해줬다. 그러고는 아까 참았던 몫까지 응징하려는 듯, 한소현을 콕콕 쥐어박았다.
 처절한 한소현의 비명을 뒤로 한 채, 유세하가 슬금슬금 남매에게서 멀어졌다.
 ‘명복은 빌어주마.’
 자신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유세하는 나머지 스킬 지정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 유세하가 스킬로 지정한 것은 그동안 가장 많이 써왔던 중력으로 사방을 짓누르는 방법이었다.
 이름은 압살이라고 지어줬다.
 
 [압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공간을 중력으로 짓누른다. 스킬 지정의 효과로 위력이 500%증가한다.
 
 기분 좋게 스킬의 효과를 확인한 유세하가 그대로 굳었다.
 능력이 단순히 두 배가 아니라 다섯 배로 뻥튀기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범위 또한 무시무시했다.
 반경 50미터라는 것은 직경으로 치면 100미터 되는 것이 강력한 중력으로 짓눌린단 소리였다.
 유세하가 전력으로 중력으로 짓누르면 장군 변이체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 다섯 배의 위력이라면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잘 잡히지 않았다.
  이번 스킬 또한 정신력의 소모는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능력 두 개가 부담감이 사라졌다는 건, 그만큼 무한의 검 인피니트를 사용하는데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군.”
 스킬을 통해 강화된 능력과 이번에 마련한 함정들을 이용한다면 변이체의 대군도 그다지 두렵지만은 않았다.
 유세하는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한소림이 동생의 버릇을 고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유세하는 마치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왠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의 다섯 명이 보이고 있었다.
 
 3
 
 이주영은 혼란스러웠다.
 눈앞을 하얗게 가리는 안개 속을 정신없이 헤매다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황당한 광경이 펼쳐져 있는 상황이었다.
 한 소년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있는 소녀.
 조금 떨어진 곳으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내.
 마지막으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소년.
 도대체 이게 무슨 광경인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여긴 또 어디고… 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마치 블라인드로 가려놓은 것처럼 과거의 일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데 옆을 보니 친우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어쩐지 말소리를 내면 좋지 않을 것 같아 침묵을 유지한 채 이주영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너희들은 알고 있어?’
 ‘아니, 나도 몰라.’
 ‘나도…….’
 ‘그럼 아무도 모르는 거네?’
 대충 이러한 느낌의 눈빛이 오고갔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만 되새긴 청년들이 문득 자신들을 향하는 시선을 느꼈다.
 “……!”
 이주영을 비롯한 다섯 명의 청년들이 기겁했다.
 유세하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흐음.”
 묘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온 유세하가 청년들을 자세하게 살폈다.
 어쩐지 식은땀이 나서 엉거주춤 서있는데 유세하가 활짝 웃었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요!”
 “아…….”
 부드러운 음성과 분위기에 그제야 긴장의 끈이 놓인 다섯 청년들이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탄성을 내뱉었다.
 “어째서 갑자기…아, 길드 가입 때문에 그런 건가? 어디 보자.”
 유세하는 다섯 명의 청년이 느닷없이 제정신을 차린 것에 의문을 품고 길드의 기능에 대해 재차 조사했다.
 그 결과, 길드 하우스에는 상태 이상이나 소모된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버프가 걸려 있음을 알아냈다.
 “과연… 그랬던 거로군.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많이 부족했었는데 적당한 타이밍에 정신을 차려주셨네요.”
 “…저, 저기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는데요?”
 다섯 명 중, 항상 리더의 역할을 맡아왔던 이주영이 하는 말에 유세하도 동의했다.
 방금 전까지 세뇌 후유증을 앓고 있다가 제정신을 차렸고 그 때와는 많은 시간이 지났고 변했다.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소림아, 소현아. 이쪽으로 와 봐. 다섯 명이 정신을 차렸어.”
 “어? 진짜요?”
 “사, 살았다.”
 유세하의 외침을 듣고 난 한소림이 응징을 멈추고 반색했고 한소현도 안도했다.
 남매가 다가오자 유세하는 자신과 두 사람을 청년들에게 소개했다.
 “제 이름은 유세하, 그리고 이 아이들은 한소림과 한소현이라고 하고 남매입니다.”
 “아…그렇군요. 저는…….”
 이주영을 시작으로 다섯 명 역시 자신을 소개했는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유세하는 차분하게 기다려줬다.
 서로 통성명이 끝나고, 유세하는 곧바로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작자를 유세하가 제압하고 사람들이 죽인 일이며, 그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일이며 전부 알게 된 청년들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되려는 찰나, 한진우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진우야!”
 “가만히 있어 봐. 나도 이런 말 하는 건 달갑지 않은데 저 사람 말을 마냥 믿는 것도 웃기잖아? 우리가 어쩌다가 그 놈한테 당했는지 잊었어?”
 “…….”
 한진우의 지적에 나머지 넷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딱히 내색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제 말을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증거는 없네요.”
 “그럼 저희도 쉽게 믿을 수 없습니다.”
 한진우는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긴 하지만 막상 이런 식으로 나오니 유세하도 입맛이 썼다.
 “거짓말 하는 게 아니에요!”
 “제 입으로 나쁜 놈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꼬마야.”
 한소현이 소리쳤지만 한진우는 요지부동이었다.
 유세하는 잠깐 고민했다.
 ‘다섯 명의 레벨은 70대 후반…….’
 그동안 레벨이 많이 오른 상태였고 그것이 다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저들을 납득시키려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이 좋은가?’
 다소 악역을 자처해야 하지만 어차피 이 기회에 저들을 휘어잡지 못한다면 계속 갈등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세하는 조금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고민을 해본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머리를 쓰는 것은 유세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말입니다.”
 유세하의 눈빛이 변하고 분위기가 급변하자 다섯 명이 거의 본능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큭?!”
 다섯 명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갑자기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원인이었다.
 “제가 당신들을 상대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무, 무슨…….”
 “거짓말처럼 느껴지십니까? 지금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데… 그걸 누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평온하게 말하는 유세하를 보며 다섯 명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압!”
 육체파 능력을 보유한 한진우가 기합과 함께 괴력을 선보였다.
 중력으로 짓눌리는 가운데 유세하를 향해 돌진하여 어깨치기를 감행했다.
 한진우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안타깝게도 유세하에게 닿지 않았다.
 눈앞에 있었던 유세하가 사라졌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한진우의 시야가 크게 회전했고 이변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이익!”
 당황한 가운데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한진우가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의 순간.
 촤자자자작!
 어느새 유세하가 뽑아든 인피니트에 의해 생성된 검들이 마치 족쇄처럼 한진우를 구속했다.
 목과 양손목과 발목, 마지막으로 허리를 엑스 자로 교차하여 박힌 검들을 보며 한진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 만약 저 검들이 땅이 아니라 내 목을 노리고 박혔다면…….’
 저항이고 뭐고 순식간에 죽어나자빠졌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당신들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한진우는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유세하의 말을 인정했다.
 “알겠으니…이 검과 압력 좀…….”
 유세하가 순순히 구속을 풀어주자 한진우는 일어나서 얼른 친구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합류하자 이주영이 속삭였다.
 “야, 저 사람 괴물이다.”
 “뭐?”
 “너 당할 때 유선이가 염동력 걸고 정석이랑 성진이도 공격하려 했고 나도 도와주려고 했었거든.”
 여기까지 말한 이주영은 말 대신 몸에 나있는 상처를 보여줬다.
 핏물이 살짝 묻어나고 있는 상처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자국이었다. 이주영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인원들에게도 전부 비슷한 상처가 나있었다.
 “설마?”
 “그래. 너를 제압했던 검들이 우리도 제압했었다. 정확하게 살짝 찌른 상태에서 멈추더라.”
 “…….”
 자신을 제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짧은 틈을 타서 친구들까지 위협했다는 말에 한진우는 다시 한 번 등골이 서늘해졌다.
 심지어 그런 짓을 벌여놓고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땀방울조차 나지 않았다.
 그제야 한진우는 유세하를 완벽하게 인정했다.
 “강하…시군요.”
 “이해해 주셨다니 다행입니다.”
 다행히 자신의 방법이 효과를 거두자 유세하는 이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조건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멋있다.”
 한소현은 순식간에 다섯 명을 제압하고 여유롭게 대화를 유도하는 유세하의 모습을 보고 어른의 관록을 느꼈다.
 “응…….”
 누나인 한소림의 경우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한소림의 눈빛이 조금 몽롱해진 것을 확인한 한소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저씨는 둔탱이.’
 속으로 조금 투덜거려보는 한소현이었지만 그것을 표현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한소현은 학습 능력이 매우 좋은 학생이었고 방금 전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
 
 상황을 정리한 유세하는 다섯 명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현재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떠나느냐, 남느냐…군요.”
 유세하는 대답보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당신들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저희가 독단적으로 보호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과를 하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당신들을 노예처럼 부린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아니요. 결과적으로 그 탓에 저희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목숨의 빚을 진 쪽은 저희들입니다.”
 이주영은 뚜렷한 자신의 주관이 있는 성격인 듯, 유세하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 점이 유세하는 더욱 기꺼웠다.
 남는다는 선택을 하든, 떠난다는 선택을 하던 자신의 말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할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유세하는 말했다.
 “떠난다는 선택을 하신다면 지금껏 저희가 쌓아온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하죠.”
 “만약 남는다면 어쩌실 거죠?”
 “함께 생존을 하기 위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아까도 설명을 했다시피 저희는 지금 길드를 창설한 상태입니다. 길드 시스템을 이용하고 안전 에어리어를 성장시킨다면 적어도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만들 수 있겠지요.”
 유세하의 말에 이주영은 고민을 하다가 의견을 구하는 눈빛을 친우들에게 던졌다.
 “…나는 남았으면 해.”
 “진우야?”
 “강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직접 유세하에게 당했기 때문에 한진우는 누구보다 그의 강함을 직접적으로 체감했다. 그렇기에 이처럼 단순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의견은 그렇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참고해야지.”
 한진우는 그 말만 하고 물러났고 나머지 청년들은 고심하다가 이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저희는…남아서 함께 하겠습니다.”
 이주영 역시 크게 다른 심정이 아니었던 터라 남는다는 선택지를 선택했다.
 그들이 떠나지 않고 남는다는 결론을 내자 유세하는 한시름 놓아 안도했고 남매의 표정 역시 환해졌다.
 안 그래도 정이 들어서 그들이 떠나면 아쉬울 거란 마음이 강했던 탓에 이런 결과가 기꺼웠다.
 “그럼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말을 편히 하도록 할게.”
 “네, 그렇게 하세요. 그…길드장님.”
 “…음?”
 생각지 못한 칭호에 유세하가 얼떨떨해 하는 반응을 보이자 이주영이 설명했다.
 “마땅히 부를 칭호도 마땅치 않고…어차피 길드는 길드장님이 창설하신 거잖아요. 게다가 위계질서를 확립한다는 취지에서도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흐음.”
 딴에는 전체를 생각한 의견이었지만 유세하는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길드의 이름은 패밀리…가족이지.’
 생각을 정리한 유세하가 말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겠지만 될 수 있으면 조금 더 편한 칭호가 좋겠다.”
 “그런가요?”
 “우리 길드의 이름은 패밀리…가족처럼 지내자는 의미야.”
 이주영은 유세하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확실하게 이해했다. 하지만 그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훗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고 그의 뜻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으니 절충안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길드장님 말씀대로 조금 편하게 대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허, 녀석.”
 생각보다 사리분별이 빠른 이주영이었고 유세하가 기특하단 생각을 하는데 한소현이 끼어들었다.
 “그럼 저한테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셔야 해요!”
 “……?”
 “저 길드 간부라고요?”
 콧대를 세우고 외치는 한소현을 보고 피식 웃은 유세하가 말했다.
 “너 평길드원인데?”
 “…네?”
 “나는 길드마스터, 소림이는 부마스터, 너는 평길드원. 다섯 명이랑 같이.”
 그 순간 한소현이 말도 안 된다고 외쳤고 사람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다섯 명은 정식으로 길드원이 되어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시스템』 2권에 계속>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