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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의 대마법사[E] 1

2016.05.29 조회 9,911 추천 87


 무림의 대마법사
 1권
 수라백 지음
 
 
 
 
 
 prologue
 
 
 검종이라고 하는 건 <검을 든 시종>을 말하는 것으로, 도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명문의 무파는 사승의 관계로 무공을 전승하고, 무공 전승은 그들의 의무였다. 무공이 후대로 전수되지 않는다면 문파 역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파가 없는 낭인은 다르다.
 낭인은 특별히 전수할 무공도 없고 문파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서 용병 일을 하거나 세상을 떠돌 뿐이다.
 하지만 간혹 특이한 사정으로 그들에게도 무공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었다.
 검종은 그렇게 나타났다.
 낭인의 검을 들고 시중을 든다. 그리고 그의 전투를 보면서 무공을 조금 배우려는 것이다.
 뭐 낭인의 무공이라는 게 별로 볼 게 없지만,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로 배우는 사람이 있는 게 바로 강호라는 냉혹한 세상이었다.
 제대로 무공을 가지고 있는 낭인이라면 검종이 아니라 제자를 데리고 다닐 것이다.
 그들 역시 제자를 통해서 자신의 무공이 후대로 전해지기를 바랄 테니까.
 
 <진월생> 역시 검종이었다.
 다섯 살 때 그의 구함을 받고 그의 검을 들고 그를 따라다녔다.
 그게 벌써 5년 전이었다.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낭인은 <귀혼살마>라고 불린다.
 별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람 좀 잘 죽이는 용병일 뿐이었다.
 특이하게 그는 낭인 중에서도 강하다. 그건 그의 별호가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에게 제자가 없는 이유는, 그에게 특별히 가르칠 무공도 없었고, 자신의 무공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후대로 전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도대체 뭐 하러 제자를 가르치겠는가?
 귀찮게.
 소년이 자신의 검을 들고 다니도록 내버려두는 이유는, 약간의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진월생은 본래라면 의원이 되었어야 할 놈이었다.
 귀혼살마는 돈을 찾아서 떠도는 금귀다. 낭인의 낭만 같은 것은 없었고 용병으로서 지켜야 할 도의 따위도 없었다.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돈을 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매우 잘 죽인다.
 
 너무 잘 죽인다.
 
 그가 배운 무공 같지도 않은 무공은 바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죽이는 기술이었다.
 원래 의원이 되었어야 할 녀석에게, 사람 죽이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그가 아무리 용병 일을 하면서 돈을 좇는다지만, 그래도 그렇게 무도한 인간은 아니었다.
 본래 귀혼살마 같은 인간이 주고받는 건 확실하게 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아······!’
 귀혼살마는 시무룩하게 자는 척하는 진월생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귀혼살마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비정함을 보고 자랐다. 그에게 인간을 향한 애정 따위는 없었다.
 그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검을 들었고, 돈을 벌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십 년을 살고 귀혼살마라는 별호를 얻었다.
 딱히 제대로 무공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사람 죽이는 기술 하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귀혼살마를 보면서 <천살성>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사람이 언제까지나 성공만 할 수 없는 법.
 특히 용병 중에서도 가장 더럽다는 살수의 일을 한다면, 매사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귀혼살마에게도 그런 위기가 닥쳤다.
 그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의원 한 명이 있었다.
 그 의원은 모든 인간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귀혼살마와는 세상의 반대편 끝에 서 있는 자였다.
 귀혼살마는 상처를 입고 의원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의원은 대범하게 이유도 묻지 않고 귀혼살마의 상처를 치료했다.
 귀혼살마의 적은 끈질겼고 무도했으며 잔인했다.
 그들은 의원의 집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마구 죽였고, 그의 상처를 치료했던 의원도 그들의 손에 죽었다.
 귀혼살마는 의원의 다섯 살이 된 아들 하나만 데리고 겨우 도망쳤다.
 그게 5년 전이다.
 귀혼살마가 진월생을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본래라면 의원이 되었어야 할 놈.
 
 지 애비를 닮아서 세상의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놈이다. 그런 놈이 자신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란다.
 다섯 살의 나이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비정함을 알아 버렸다.
 “월생아.”
 “······?”
 듣고 있으면서도 진월생은 자는 척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의술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 아저씨에게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
 언제까지 낭인으로 떠돌 수는 없는 일.
 나이가 들면 근력이 빠지고 이 일도 더는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
 귀혼살마는 그 때를 대비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었다.
 세상은 비정하다.
 그는 돈도 없이 홀로 남겨진 노인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아비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인데 진월생을 위해서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월생은 이미 의술을 버렸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월생 역시 비정한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힘이 없으면 죽는다!
 
 그가 알고 있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휙!
 자는 척하던 진월생이 갑자기 일어났다.
 비록 열 살이었지만 벌써부터 준수한 외모가 티를 내고 있었다.
 눈썹은 짙고, 눈은 맑고 깊었으며, 입술은 인상을 단단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귀혼살마와는 다르게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분위기만으로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정말 그곳으로 갈 거예요?”
 진월생은 ‘너무 위험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래!”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해요?”
 “위험할수록 돈을 많이 주거든!”
 아주 간단한 해답이었다.
 “그래도······ 그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이지 않아요? 은형문 안에는 끔찍한 마물들이 가득 있다고 하던데요.”
 중소문파에서 사냥을 떠났다가 몰살한 일도 발생했다.
 그 후로 은빛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대문파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간혹 상인들이 용병을 고용하여 안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고, 그런 경우는 대부분 대문파에서 은형문 내부의 사냥을 끝낸 후였다.
 그럼에도 그건 매우 위험했다.
 비록 처음보다는 덜 위험하겠지만, 은형문 안의 기괴한 암흑의 세상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괴물들이 계속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은빛의 문이 부서지면······ 그 안에 있던 괴물들이 세상으로 나온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대문파에서는 은빛의 문이 부서지기 전에 괴물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종종 사냥을 했다.
 상인들이 간혹 사냥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돈을 위해서다.
 그곳의 마물들은 엄청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마물은 피로 영단을 제조하고, 가죽으로 가볍고 단단하며 질긴 갑옷을 만들며, 뼈로 명검을 만든다고 한다.
 은빛의 문이 나타난 이후 낭인들의 생활도 조금 변했다. 용병의 일로 그곳 내부의 사냥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혼살마도 이번에 그 일로 뛰어들었다.
 왜냐하면 돈이 되니까.
 
 은빛 원형의 문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새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원형의 문은 매우 특이한데, 어떤 방향에서 봐도 원형의 문이 보인다. 그런데 절대로 구체는 아니었고, 정면에서 바라보는 평면의 원형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간문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정식 명칭으로 <은형문>이라고 부른다.
 귀혼살마가 도착한 곳은 무당산 근처로, 처음 나타났을 때 무당파의 무당검수들이 한 차례 사냥한 곳이었다.
 은형문의 크기는 다양한데, 클수록 내부의 공간 역시 넓었으며 더 많고 강한 마물이 나타났다.
 무당산 인근에 나타난 구체는 꽤 큰 것으로 무당검수도 열 명이나 죽었다고 알려졌다.
 귀혼살마가 그곳에 도착하자 다른 용병들도 제법 있었고, 이번 의뢰를 제안한 상단의 젊은 소단주가 있었다.
 청운상단!
 중원에서 무역과 상업을 하며 돈을 버는 전통적인 상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래 작은 상단이었지만, 최초로 은형문의 마물들을 이용하여 사업을 일으켰다.
 그것으로 그들은 중원의 십대상단 중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주업은 마물의 사냥이었다.
 사냥을 끝낸 문파로부터 마물의 부산물을 구매하기도 하고, 그건 다른 상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운상단의 특별한 점이라면 초기에 사업을 시작하여, 마물의 부산물을 연구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천당가의 암기나 독만을 연구하는 집단처럼.
 “반갑습니다. 청운상단의 소단주인 청명운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사냥해야 할 마물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청명운이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불, 불사귀!”
 불사귀는 은형문의 암흑 세계에 나타나는 요괴 중에서 꽤 강한 축에 속했다.
 물론 강한 마물일수록 더 돈이 된다. 그러나 단점도 있는데,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죽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불사귀라는 마물은 이름처럼 죽이기 정말 어려웠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여기에서 불사귀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불사귀를 다른 곳에 빼앗길 수는 없죠.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여러분들을 고용한 것입니다.”
 “불사귀는 절정의 고수 여럿이 모여도 죽이기 어려운데, 우리가 도대체 무슨 수로 그런 놈을 잡을 수 있겠소?”
 겨우 열 명의 낭인이 모여서 불사귀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그러나 청명운은 미소를 보였다.
 “물론 일반적으로 불사귀를 죽일 수는 없겠죠. 그러나 분명히 이 정도 전력으로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청명운은 두 개의 자기병을 꺼냈다.
 “청명액과 증폭단입니다!”
 두 개 모두 청운상단에서 마물의 피를 이용해서 만든 영약이었다.
 물론 어떤 마물의 피를 이용했는지 알려진 바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제조방법 역시 청운상단만의 비법이었다.
 그게 알려진다면 청운상단에 독점의 이득이 사라질 테니까.
 청운상단은 처음에 구체 안의 마물을 영물이라고 생각해서 그 피를 연구했었고, 그 결과 나온 결과물이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바로 <증폭단>이라는 환단이었다.
 붉은색의 이 환단은 모든 마물들의 피를 특별한 방법으로 정제하여 만들 수 있었다.
 효과는 내공의 증폭!
 단약과 함께 특이한 기운이 내공을 자극하고, 그 결과 잠력을 격발할 수 있다.
 무림에 그런 마공도 있었지만 그것의 폐해는 매우 크다. 그러나 증폭단은 먹고 증폭된 내공을 사용한 후 약간의 해를 입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잠력의 격발로 진원의 손상을 입는다거나 하는 단점이 없었다.
 물론 이건 매우 비싸다. 그리고 쉽게 아무렇게나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건 바로 청명액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푸른 빛깔의 액체인데 마시면 소진한 내공을 바로 회복할 수 있으며 상처에 바르면 금방 아문다. 최고의 내상약이며 금창약이었다.
 청명액에 이런 불가사의한 효능이 있는 이유는 바로 불사귀의 피를 정제하여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한 병의 청명액과 한 알의 증폭단을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불사귀 한 마리 정도는 여러분들의 힘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이의를 제기했던 낭인도 청명운의 말을 인정했다.
 한 번 도전을 해볼 만도 했다.
 더욱이 이번 의뢰는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많이 돈을 준다.
 “반대하시는 분들은 빠지셔도 됩니다.”
 청명운이 말했지만, 빠지려는 낭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은형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은빛의 원형문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약간의 광택이 감도는데, 그곳에 손을 넣으면 안으로 쑥 들어간다.
 이런 광택이 감도는데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이것도 좀 특이한 현상이었다.
 내부는 하늘과 사방이 온통 칙칙한 은색인 작은 세상이었다. 은색이었지만 검은색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곳을 <암흑 세계>라고 부른다.
 
 본래 바깥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진월생도 호기심이라는 게 있었다.
 ‘그냥 한 번 슬쩍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귀혼살마가 바깥의 야영지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만, 열 살 아이의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진월생은 본래부터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다.
 그는 은빛의 은형문을 구경했다.
 분명히 평면의 원형문인데, 어디에서 봐도 원형이었다. 그렇다고 구체는 절대로 아니었다.
 손을 넣어 보았다.
 어떤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든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는 슬쩍 은형문 안으로 들어갔다. 은빛의 암흑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사방과 하늘이 모두 칙칙한 은색이었다. 그러나 땅도 있고 산도 있는, 은형문 내부는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나타난 거야?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옥의 문이 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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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벤타도르!
 그는 판타지아 대륙의 일곱 마왕 중에서 <칠흑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다.
 
 마법!
 마나를 이용하여 우주의 법칙을 비틀어서 거대한 힘 혹은 능력을 불러오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간단히 <마나를 다루는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마나 친화력이 높아서 마나를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마나의 씨앗을 만들어 심장에 그것을 심는다. 그것이 자라면서 심장과 함께 맥동하고 주변으로 마나의 서클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이제 마법을 사용할 기본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는 당연히 마법의 지식을 배운다.
 하나의 서클로 하나의 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1클래스는 법칙을 한 번 비틀 수 있다.
 클래스를 완전히 뇌에 각인하면, 그는 그 마법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서클 마법>이라고 말한다.
 
 마법이 나타나기 전부터 <연금술>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연금술의 목표는 생명의 창조였는데, 특별한 금속을 창조하거나 등의 세상의 물질을 가공한다.
 마나의 친화력이 부족하지만 마법의 이론에는 뛰어난 현자들이 연금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연금 마법>이라는 분야가 탄생했다.
 그들에 의해서 마법진이 탄생했으며 <마법 공학>이라는 학문이 나타났다.
 그들은 연금 마법으로 아티팩트라는 마법 무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반쪽짜리 마법사였으며, 계속 마법사가 되기를 갈망하며 마법을 연구했다.
 그들은 서클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클래스를 만들어내도 뇌리에 각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클래스와 서클을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고, 연금술에 의해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클래스가 각인되는 뇌의 신비로운 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연금 마법사들은 그곳을 <카르마>라고 불렀다.
 무한대의 공간이며 인간의 전생과 후생 그리고 운명 등 모든 것이 기록되는 공간이다.
 연금술로 마나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카르마에 그것을 심었다.
 매우 위험한 시도였고, 수많은 연금 마법사들이 죽었다. 그럼에도 성공한 자가 있었으니, 이 마법을 <카르마 마법>이라고 말한다.
 가장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수련법으로, 100명이 시도하여 겨우 1명 정도 성공할 확률이었다.
 그럼에도 진짜 마법사가 되기를 갈망하는 연금 마법사들은 계속 연구를 거듭하면서 카르마 마법을 발전시켰다.
 
 연금 마법에 의해서 마법은 다양한 종류로 발전했다.
 서클 마법에서 시작하여 연금 마법, 마법 공학, 카르마 마법, 키메라 마법, 네크로멘시, 흑마법 등 마법은 아주 다양하고 방대한 학문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마법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강한 존재는 카르마 마법사였다.
 마법사들은 서로 무리를 만들고 전쟁을 했으며, 그런 와중에서 천 년도 넘게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법사가 바로 일곱 마왕이었다.
 그들은 모두 카르마 마법사였다.
 소문으로, 그들은 제자를 키우고 그 제자의 육체를 강탈하면서 천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들은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면서 계속 강해졌으며 방대한 마법적 지식을 익히고, 연금 마법으로 무구를 만들었다. 이런 마법사를 <무장 마법사>라고 불렀는데, 일곱 마왕은 그런 무장 마법사 중에서 최고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점 강해졌고, 결국 마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들은 항상 전쟁을 한다.
 더 강한 마법을 만들어내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쟁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그 전쟁의 결과로 판타지아 대륙의 차원이 붕괴되는 지경에까지 도달했다.
 <아벤타도르>는 그런 일곱 마왕 중에서 한 명이었다.
 
 
 차원 붕괴의 조짐을 보이며 차원의 틈이 발생했다.
 아벤타도르는 그 틈으로 들어왔다.
 ‘차원은 곧 붕괴된다. 그 전에 이 차원을 떠날 방법이 있으면 좋지.’
 다른 마왕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판타지아 대륙의 차원에서 도망칠 방법을 고안하고 있겠지.
 아벤타도르는 차원의 틈을 조사하다가,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을 발견했다.
 그 후에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카르마 마법사는 전쟁을 좋아하는데, 전쟁으로 그들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카르마는 어떤 한 존재의 모든 것이며, 그의 운명 혹은 일생의 기록이고, 전생과 후생까지 모두 존재하는 무한대의 소우주였다.
 카르마 마법사는 자신의 카르마를 개발하며 강해진다. 타인의 카르마를 흡수하기도 한다.
 카르마가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신의 카르마를 타인에게 옮겨서 타인의 카르마를 잡아먹고 육체를 강탈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마나의 수련보다 타인을 죽여서 카르마를 흡수하면 더 빠르게 강해지기 때문이다.
 일곱 명이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전쟁이 끝나겠는가? 전쟁을 멈추는 순간 다른 마왕에게 잡아먹힐 텐데.
 ‘다른 차원으로 내 존재를 옮기는 건 어렵다. 하지만 다른 차원의 인간을 강탈하면 가능하지.’
 은형문!
 본래 차원의 인간은 마음대로 통과하지만, 판타지아 대륙의 몬스터는 통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저건 차원의 틈새에 의해서 나타난 차원의 접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은형문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벤타도르가 그런 방법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긴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그는 다른 차원에서 이질적인 존재였고, 그의 강함을 생각하면 그 이질감 역시 거대하다.
 이것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한다.
 ‘열 살 정도가 좋겠지. 너무 어려도 곤란하니까. 카르마를 잡아먹고 육체를 강탈한다. 그러면 나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어 이질감이 희석된다. 그리고 그 차원에서 카르마 마법을 수련하여 발전시키면, 거의 이질감 없이 그 차원으로 스며들 수 있다.’
 그는 몇 개의 차원의 틈새를 탐색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그에게 남아도는 건 시간이었으니까.
 
 
 
 
 
 #1
 
 
 황무지와 우거진 숲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은형문의 암흑세계에서 이런 이질감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긴 그런 세계였으니까.
 ‘흐음, 아주 느낌이 이상하군.’
 귀혼살마는 암흑세계에서 고수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이질감을 깨달았다.
 그가 고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워낙 감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귀혼살검은 특별히 뛰어난 검술이 아니었고 그의 실력 역시 일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정의 고수를 이긴 적도 있으며, 낭인 중에서 사람을 정말 잘 죽이는 검수였으며, 천살성이라고도 불린다.
 그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월생에게 검술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무공은 검술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재능이었으니까.
 입구의 작은 황무지를 떠나서 숲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변했다.
 귀혼살마는 주변을 살폈다.
 ‘도망치기에는 유리하겠군.’
 가장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용병은, 낭인 중에서 추살에 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암흑 세계에서 몇 번 활동을 했는지 하는 모양새가 꽤 익숙했다.
 귀혼살마는 일행 중에서 유독 긴장했다.
 이질감이 주는 불쾌한 감각 그리고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 이 세계 자체가 그에게 위협적이었다.
 긴장해야 한다.
 살아서 돌아가야 하니까.
 ‘불사귀란 말이지?’
 소문은 들었다.
 검으로 베어도 상처를 금방 회복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급소를 노려야 한다. 그리고 급소의 상처를 회복하기 전에 같은 곳을 계속 공격해야 놈을 죽일 수 있다.
 ‘급소는 명치! 꽤 어렵군.’
 마물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싸울 때 급소를 공격하는 건 쉽지 않다.
 우선 급소를 공격하고, 자세가 정면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해서 급소를 가리기 때문이다.
 휙!
 길잡이가 멈추라며 손짓했다.
 그들은 몸을 바짝 낮췄고, 길잡이는 바닥의 흔적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은 어떤 마물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세계에서 숲이 움직이고 있다. 덩치 큰 어떤 마물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귀혼살마는 품에 든 두 개의 자기병을 움켜쥐었다.
 청명액과 증폭단!
 구명줄이다.
 실력은 일류였지만, 수많은 실전을 경험한 용병들이다. 그들은 불사귀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이고 놈의 위치를 대략 짐작한다.
 포위하는 진형을 갖추고, 몸을 낮추며 살금살금 들키지 않게 접근한다. 그리고 매복하여 기다린 후에 단숨에 공격해야 한다.
 귀혼살마는 청명운이라는 젊은이를 힐끔 보았다.
 그는 뒤에서 매우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인가?’
 설마?
 청운상단은 마물 사냥으로 꽤 유명한데 그런 곳의 소단주가 과연 처음일까?
 ‘병신 새끼 옆에 있다가는 같이 칼 맞아서 뒈진다던데,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귀혼살마는 고개를 흔들면서 싸울 준비만 했다.
 ‘일격에 명치를 노린다!’
 그는 평범한 철검을, 손을 비틀어서 꾸욱 쥐었다. 그러자 긴장했던 몸이 스르륵 풀렸다.
 싸울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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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색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앙상한 몸의 늙은이는, 보기와는 다르게 일격으로 불사귀 정도는 산산조각으로 박살낼 수 있는 대마법사 아벤타도르였다.
 칠흑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검은 기운이 그를 휘감아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흐음······, 저놈으로 할까?’
 그는 아래에서 불사귀를 잡으려고 준비하는 젊은이를 지켜보았다.
 그가 원하는 건 열 살 정도의 아이였다.
 성인은 인간 종족 중에서 이미 성체로 변했기 때문에 이질감을 희석시킬 수 없다. 그러나 계속 기다리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이런 장소에 들어올 리가 없으니 말이다.
 몇 년을 허비하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대마법사임에도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멍청함을 나무라면서.
 하긴 그가 사는 곳에서는 아이라도 칼만 들 수 있다면 전투에 나서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음?’
 그는 차원의 교집합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곳의 반대편 입구를 보았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오호!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딱 그가 원하던 나이의 아이였다.
 저 정도 아이면, 10년 정도 마법을 수련하면 성체가 될 것이고, 현재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적당했다.
 젊은이를 노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필요하지 않다.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지? 중요한 일을 하는데 방해를 받으면 곤란하니까.’
 카르마를 강탈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대마법사에게도 아주 위험한 작업이 바로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카르마를 옮기는 거다.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보통 이런 작업은 아무도 모르는 밀실에서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강탈의 목적이 이질감을 최소한으로 하여 다른 차원으로 스며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두 차원의 교집합!
 판타지아 차원에 속한 아벤타도르가, 반대편의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중원.
 이미 몇 사람의 카르마를 강탈하며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했다.
 ‘꽤 흥미로운 곳이야. 다른 놈들보다 내가 먼저 가서 그곳을 점령해야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는 일곱 마왕 중 다른 대마법사들도 분명히 중원이라는 차원으로 넘어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판타지아 대륙은 언제 붕괴될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곳이다.
 그는 슬쩍 자리를 이동했다.
 마치 검은 안개가 바람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소리도 없었고 기세나 흔적도 없었다.
 그는 어둠에 숨어서 조용히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중원의 사람들이 그들이 불사귀라고 부르는 <트롤>을 사냥하는 장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트롤이 깜짝 놀라며 아벤타도르가 있는 방향을 노려봤다. 눈빛만으로 트롤의 감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는 중원의 용병들이 조용히 접근하고 있었다.
 ‘재미있겠군?’
 아벤타도르는 <무공>이라는 중원의 기술에 꽤 큰 흥미가 있었다.
 본래 마법사라는 작자들이, 특히 일곱의 마왕이라는 마법사들은 매우 탐욕적이었다.
 그들은 다른 마법사의 지식을 훔치기 위해서, 산 채로 잡아서 그들의 카르마를 흡수했다. 그 정도로 잔인하고 무도하며 탐욕스러운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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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혼살마는 흠칫 놀랐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했는데, 그의 감각은 그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가 나직하게 바로 옆 사람에게 말했다.
 “들켰다!”
 귀혼살마는 자기병에서 환단을 꺼내서 입안에 넣었다.
 증폭단은 삼키는 바로 그 순간에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침이 고이며 증폭단이 천천히 녹고 있으니, 삼키는 순간에 잠력이 격발될 것이다.
 용병 중에서 귀혼살마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용병들은 순식간에 긴장했다.
 귀를 세우고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점점 불사귀가 가까이 접근하는 게 느껴지며, 용병들은 숨도 쉬지 않았다.
 숨 쉬는 소리 때문에 위치를 들킨다. 무림에서 전투의 경험이 많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청명운은 달랐다.
 알고 있다고 해도 무공을 배운 용병처럼 오래 숨을 참을 수도 없었다.
 쿠쿠쿠쿵!
 불사귀가 빠르게 달려오자, 귀혼살마는 증폭단을 꿀꺽 삼켰다.
 검을 뽑았다.
 양손을 비틀어 검병을 세게 움켜쥐었다.
 몸을 숙이고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대호처럼 날렵하고 용맹한 행동이었다.
 검을 밀어 넣었다.
 푸욱!
 정확하게 불사귀의 명치에 검을 찌른 후에, 귀혼살마는 옆으로 몸을 굴려서 피했다.
 뇌려타곤이라고 하여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체면이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체면은 고수나 챙기는 것이다.
 하수는 살기 위해서 발악해야 한다.
 ‘젠장! 엄청 질기구나!’
 손맛이 다르다는 것을 귀혼살마는 바로 깨달았다.
 마물이니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습관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 그의 검은 놈의 급소를 제대로 찌르지 못 했다.
 그의 내부에서 천둥이 치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증폭단이 능력을 발휘하면서 잠력을 일깨운다. 처음부터 잠력까지 더해서 검기를 사용했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열 명의 용병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불사귀를 공격한 후에 지나갔다.
 바로 앞에서 저 엄청난 마물을 직면하여 싸울 용기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무의미했다.
 검기를 사용해본 적 없는 용병들이다. 절정의 고수처럼 제대로 검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불사귀의 거죽은 매우 두껍고 질겼다.
 생채기 정도는 순간적으로 회복되었다.
 
 정면에서 놈의 약점인 명치를, 힘껏 깊이 찔러야 한다!
 
 귀혼살마는 첫 합전부터 실패한 후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놈은 흉악하고 살벌한 마물이었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처럼 흉폭한 기세로 용병들을 압박했다.
 더욱이 거인이며 괴력을 자랑했다. 몸놀림도 재빠른 편이었고, 몇 번의 접전 끝에 불사귀도 공격을 시작했다.
 감각도 제법 뛰어난 편인지 뒤에서 공격하던 용병의 머리통을 손으로 쥐었다.
 “허억!”
 단발의 놀람!
 그 후에는 끔찍한 장면과 함께 비명이 솟구쳤다.
 불사귀 놈이 놈의 머리통을 잡고 휙 비틀었다. 그러자 몸통에서 머리통이 한 바퀴 돌아갔고, 놈은 머리통을 뽑아 버렸다.
 놈이 몸통을 잡고 한 놈을 향해 집어던진 후, 지축을 울리며 그 사람을 덮쳤다.
 그는 놀라서 불사귀를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검격은 불사귀를 멈추지 못 했다.
 불사귀의 주먹에 그의 머리통이 폭탄처럼 터졌다.
 증폭단!
 잠력의 격발로 수준을 한 단계 올려주는 대단한 환단이다. 그러나 절정의 경지를 처음 경험하는 용병들은, 비록 검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수준은 여전히 일류였다.
 일류 열 명이 모인다고 해서 불사귀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감각과 움직임부터 달랐다.
 그리고 불사귀의 괴력!
 이 자리에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은 불사귀와 직면하여 상대해야 한다. 이기지는 못 해도 놈을 압박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귀혼살마가 나섰다.
 그는 맹수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그의 뛰어난 감각은 지금 이 순간 더욱 날카롭게 변했으며, 그의 기운은 정말 절정의 고수가 된 것처럼 기세를 토해냈다.
 그 힘이 불사귀를 압박했다.
 불사귀가 그를 노려보며 단 숨에 일격을 노리는 맹수처럼 설렁설렁 다가왔다.
 귀혼살마는 살기 같은 위협이 그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을 느꼈다.
 다시 그의 감각이 심각하게 경고했다.
 
 피해!
 
 느끼는 순간 불사귀가 몸을 웅크린 후에 궁신탄영의 수법처럼 순식간에 귀혼살마 앞에 나타나 팔을 휘둘렀다.
 귀혼살마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뛰어난 감각이 없었다면 귀혼살마 역시 머리통이 터져서 죽었으리라.
 몸을 숙이며 검을 앞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검을 명치 깊이 찔러 넣었다. 놈이 맹렬하게 앞으로 달려왔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한 뼘 정도 들어간 후 검은 더 들어가지 않았고, 불사귀의 힘에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놈의 근육이 가진 괴력 때문에 검을 뽑지도 못 하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제기랄!’
 불사귀 놈이 신경질적으로 명치에 박힌 검을 뽑아서 던져 버렸다.
 귀혼살마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놈의 약점은 명치다! 명치를 계속 공격해!”
 귀혼살마가 크게 말했다.
 그러나 용병들 중에서 앞장서서 불사귀 앞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도망칠 궁리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귀혼살마는 맹수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도망치면 모두 뒈진다!”
 경험이 많은 일류 용병들이다.
 귀혼살마가 말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두려움이 앞서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제기랄! 절정 고수 한 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이미 마물 사냥 경험이 있는 용병은 절정 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귀혼살마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었다.
 용병들이 불사귀를 포위하며 점점 간격을 좁혔다.
 불사귀가 더욱 붉어진 핏빛의 눈동자로 그들을 둘러보는데, 왠지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은 은형문 내의 마물을 짐승처럼 무시한다.
 그러나 짐승이라고 하여 모두 머리가 둔하지 않다.
 마물이라고 다를까?
 불사귀 역시 말을 하지 못하고 문명 생활과 거리가 멀지만, 수많은 마물과 싸우며 거의 정점을 찍은 놈이었다.
 불사귀는 훌륭한 사냥꾼이다.
 그가 보기에 이 작은 인간 종족의 놈들은 참으로 같잖았다. 저런 쇠붙이 정도로 위대한 자신과 싸우려고 들다니!
 
 [크아아아아아아아!]
 
 맹수와 같은, 아니 더욱 흉포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눈동자는 더욱 붉게 물들어서 마치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질 듯했으며, 벌어진 입술에서 굵은 송곳니가 시퍼렇게 예기를 토해냈다.
 거친 숨과 함께 내뱉는 살이 떨릴 정도로 강하고 난폭한 기세!
 귀혼살마는 그것을 꾹 참고 견뎠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온통 잠식하는 한 가지 생각을 없애지는 못 했다.
 ‘결국 여기서 끝인가?’
 용병은 항상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낭인은 칼 위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고, 항상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진월생과 함께 다니면서 아주 위험한 일을 하지 못했었다. 진월생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번에 꽤 돈을 많이 주는 의뢰를 받은 것이었는데, 역시 많은 돈을 주는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작은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하더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바깥에서 월생이 기다린다! 네가 죽으면, 죽어서 어찌 얼굴을 똑바로 들고 다니겠느냐?’
 도망칠 때 진월생의 부친에게, 월생을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약조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면, 저승에서 그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이냐!
 그는 단검을 꽉 쥐었다.
 힐끔 그의 검이 날아간 곳을 보았으나 그곳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등을 보이고 달리는 순간 저 괴물 놈이 뒤쫓아 와서 머리통을 날려버릴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사귀와 여덟 명의 포위한 용병들 사이에서 잠시의 대치가 이어졌고, 용병들이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증폭단의 잠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 힘이 끝나기 전에 불사귀를 잡아야 한다. 아니면 전멸일 테니까.
 파파팟!
 세 명이 먼저 움직였다.
 익숙했다.
 삼재진.
 여섯 명이 삼재진으로 차륜전을 구상했다. 눈치만으로 그런 전략을 만들어냈다.
 두 명은 그 속에서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가장 위험한 역할이다.
 귀혼살검 역시 당연히 그런 역할에 당첨되었다.
 서걱!
 세 명이 동시에 불사귀를 베면서 지나갔고, 다음 바퀴인 세 명이 다시 삼재진을 구성하며 원형으로 움직였다.
 불사귀는 작은 인간 종족들의 이런 공격에 약간의 짜증을 냈다.
 휙!
 휙!
 삼재진으로 공격을 할 때 불사귀가 주먹을 휘두르자, 용병들은 놈의 공격을 피하며 움직였다.
 그래도 한 명은 놈을 공격할 수 있었다.
 서걱!
 놈이 움직이면 삼재진도 따라서 움직인다.
 그 순간에 삼재진이 다시 공격을 했고, 그들 뒤에서 비수가 되어 귀혼살마가 움직였다.
 푸우욱!
 단검을 깊이 명치에 찔러서 넣고, 그는 바로 자신의 검이 꽂힌 곳으로 달려갔다.
 검병을 쥐고 바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쿠우웅!
 불사귀의 주먹에 굵은 나무가 단번에 부러졌다.
 ‘씨발! 역시 한 대 맞으면 끝이네!’
 정말 엄청난 힘이었다. 당연히 저런 힘을 내려면 뼈와 근육도 단단할 것이다.
 귀혼살마는 생각보다 더 힘겨울 거라고 확신하며, 역시 다른 용병들도 절망했다.
 
 ‘역시 신기하고 재미있군. 하지만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어.’
 아벤타도르는 숲 바깥을 힐끔 보다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르마 마법사는, 단지 마법만 사용하지 않는다.
 카르마에 마나의 씨앗을 심어서 카르마를 개방한다. 마나의 씨앗은 마나의 나무가 되어서 카르마에서 육체로 뿌리를 내린다.
 뿌리는 점점 자라면서 육체의 신경과 근육, 그리고 뼈까지 잠식한다.
 전신에 마나의 힘이 가득 차오른다.
 마법사임에도 기사의 오러처럼, 마나의 힘으로 육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무장 마법사>라고 불릴 수 있었으며, 카르마 마법사가 세계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으로, 트롤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없앨 수도 있었다.
 천 년 동안 마법을 수련했는데, 그 정도 능력은 마땅히 보유해야 한다. 아니면 병신인 것이다.
 검은 연기의 덩어리처럼 아벤타도르는 전장에 나타났다.
 이건 그가 항상 사용하는 마법으로, 특별한 효과는 없었다. 그저 그의 상징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뭐 생각할 여유도 없으리라.
 그는 땅에 내려오며 바로 땅을 박찼다.
 광!
 굉음과 광풍!
 공간이동처럼 보이지만, 그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마나의 힘에 의해서, 그는 이런 육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형환위>와 비슷한 움직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의 주먹이 트롤의 명치를 때렸다.
 
 [크아아아악!]
 
 트롤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강맹한 마나의 힘에 의해서 튕겨났다.
 명치로부터 균열이 일어나 살과 근육이 터지고 뼈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꿈틀거리는 트롤은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잠시 모습을 드러낸 아벤타도르!
 물론 검은 기운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마귀처럼 보였으리라. 용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단 일격!
 
 그 정도로 긴장하기에 충분했다.
 과앙!
 굉음과 함께 움직이며 아벤타도르는 주먹으로 한 놈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는 굉음에 묻혀 버렸지만, 한 사람의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광!
 다시 굉음과 함께 하나의 머리통이 터진다.
 비현실적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와 강함이었고, 청명운을 제외하고 모든 용병들이 허무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죽어 버렸다.
 그것도 머리통이 터진 끔찍한 모습으로.
 청명운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벤타도르는 청명운 앞에 나타나 히죽 웃었다. 놈을 발로 찬 후에 머리통을 짓밟았다.
 푸욱!
 놈의 머리통이 땅속으로 박혔다.
 ‘좋군! 중원으로 넘어가서 무공이라는 걸 조금 배워두면 아주 훌륭할 거야.’
 다른 사람의 카르마를 강탈하며 무공의 겉만 핥았다. 그럼에도 무공이 마법처럼 매우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하고 무식한 기사의 오러 수련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벤타도르는 무공의 그런 면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 사라졌다. 울창한 숲의 모습에 자신을 숨겼다.
 어린 놈이 차원의 접점으로 도망치면 곤란해진다.
 쉽게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라서 아벤타도르는 확실함을 기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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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진월생은 침을 삼키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들어갈까?
 조금 전까지 소리가 크게 일어나며 싸우더니, 이제는 밤의 침묵처럼 조용해졌다.
 한참 기다렸다.
 그럼에도 숲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진월생은 침착하게 기다리면서 신중하게 생각했다.
 ‘불사귀가 대단한 마물이라고는 하지만 일류의 용병 열 명인데······!’
 왜 싸움이 끝났는데도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지난 5년 동안 귀혼살마와 다니며 눈으로 본 게 있다. 그는 몸을 낮추고 천천히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하게 숲으로 들어갔다.
 중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울창한 숲이었고, 나무는 굵고 컸으며 밀림처럼 우거졌다.
 ‘피 냄새!’
 귀혼살마가 싸울 때 곁에서 맡은 적이 있는,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냄새였다. 그래서 더 쉽게 알 수 있는 냄새이기도 했다.
 사람의 피 냄새인지 마물의 피 냄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전투의 결과가 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진월생은 용병들이 모두 죽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지난 5년 동안 본 귀혼살마는 아주 강한 검수였다.
 물론 어쩌면 이건 절정의 고수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귀혼살마가 강하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그는 용병들이 졌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겨우 불사귀 한 마리라고 했다.
 진월생은 피 냄새를 맡으면서 슬금슬금 움직였고, 결국 불사귀와 용병들이 싸운 장소 근처에 도착했다.
 더욱 짙어진 피 냄새!
 그리고 불사귀가 남긴 맹수 같은 노린내의 흔적!
 진월생은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이동했지만, 시체 한 구를 발견하고 구역질을 했다.
 
 우우욱!
 
 ‘뭐, 뭐야?’
 머리통이 완전히 터진 한 구의 시신! 얼굴이 산산조각 터져서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옷을 보니 은형문 입구에서 보았던 용병 중 한 명이었다.
 진월생은 귀혼살마와 함께 다니면서 제법 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귀혼살마가 다친 적도 많았고, 적의 목을 단숨에 베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끔찍한 주검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머리통이 깨지고 뇌수가 질퍽하게 흘러내리는, 얼굴이 부서진 시신 한 구!
 진월생의 머릿속에서 섬뜩한 생각이 지나갔다.
 
 ‘아저씨!’
 
 귀혼살마는?
 진월생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러나 그는 아주 명석한 소년이었다. 움직임은 빨라졌지만 허겁지겁 소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몸을 더 낮추고 숨소리도 죽였다. 그럼에도 빠르게 움직이며 근방을 살폈다.
 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살아남은 용병들이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은밀하게 움직여서 나쁠 건 없었다.
 그가 5년 동안 귀혼살마와 함께 움직이면서 배운 게 이런 조심성이었다.
 ‘이럴 수가!’
 다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처음 발견한 시신과 똑같은 모양의 주검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월생은 계속 주변을 뒤지고 다녔다.
 툭!
 검 한 자루를 발견했다.
 ‘이건 아저씨의 검인데······!’
 진월생은 검병을 쥐면서 검을 챙겼다.
 불길한 생각이 그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귀혼살마는 검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전투가 끝나고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검부터 챙겼을 텐데.
 진월생은 결국 귀혼살마의 시신을 발견했다.
 역시 머리통이 터져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찌 귀혼살마가 지난 5년 동안 입고 있던 의복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 아저씨!”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진월생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몸은 덜덜 떨렸다.
 귀혼살마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저씨!
 
 그러나 입술만 붕어처럼 끔벅거렸고 목소리는 나오지가 않았다. 그저 귀혼살마의 손만 꽉 쥐었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그의 꽉 다문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나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진월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긴 위험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열 명의 용병들은 모두 죽었으리라!
 그렇다면 불사귀라는 괴물이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불길함에 진월생은 뒤쪽으로 몸을 돌렸고, 그는 불사귀가 아니라 기괴한 괴물을 보고 몸이 굳어 버렸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괴물이 그의 바로 뒤에 소리도 없이 나타나서, 새빨갛게 변한 눈동자로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벤타도르는 히죽 웃었다.
 이 정도면 이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을까?
 아이를 보니 꽤 맘에 들었다.
 특이한 인종이었지만, 얼굴도 꽤 미남이고 하는 행동이나 눈빛을 보면 명석한 듯했다.
 그의 몸이 될 아이다.
 잘생기고 두뇌가 명석하면 확실히 그에게 유리했다.
 그는 새빨간 눈동자를 도르르르 굴리며 몸이 굳은 아이의 머리통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칠흑을 지배하는 대마법사 아벤타도르! 너는 나의 카르마에 속하는 육체가 될 테니, 영광으로 생각하여라!]
 
 진월생은 기괴한 음성으로 이상한 말을 하는, 어두운 기운에 휩싸인 금발의 노인을 보았다.
 지금까지 딱 한 번 보았던 서역인을 닮았다.
 그러나 잘생긴 노인의 눈동자는 짐승보다 더 흉악하고 사나웠다. 세상에 진짜로 마귀가 있다면 바로 저런 눈동자를 하고 있지 않을까?
 단번에 깨달았다.
 ‘바로 이 늙은이였구나!’
 마물인지 인간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일 것이다.
 이 마귀 늙은이가 용병들을, 귀혼살마를 죽인 게 분명했다.
 진월생은 지기 싫은 마음에 분노를 담아서 마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그의 머릿속을 압박하는 기운을 견딜 수가 없었다.
 ‘침착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살아남아야 해!’
 진월생이 차갑게 이성을 회복하고 있을 때 눈앞의 마귀가 다시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나의 카르마를 마나의 씨앗으로 만들어, 너의 카르마를 잡아먹을 것이다. 너의 육체에 마나의 뿌리를 내리고, 너는 곧 위대한 대마법사 칠흑의 마왕 아벤타도르가 된다!]
 
 기괴한 음성이 진월생의 귀를 울렸고,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기운이 뇌를 마구 헤집으면서 춤을 추는 듯했다.
 두려움과 함께 참을 수 없는 희열도 느껴졌다.
 점점 세상과 멀어지는 듯했다.
 진월생의 눈동자를 보면서 아벤타도르는 즐겁게 웃었다.
 ‘카르마가 열린다! 어린 녀석이 꽤 대단한 카르마를 가지고 있군. 대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이니, 나의 육체로 삼기에 매우 훌륭하다!’
 아벤타도르는 지금까지 몇 명의 제자를 키웠고 그들의 육체를 강탈했다.
 모두 뛰어난 카르마를 지닌 제자였지만, 눈앞에 있는 이 어린 놈이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약간 흥분되는 기분이 들었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우연으로 아이가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이토록 훌륭한 카르마의 소유자라니!
 이 정도라면 5년 정도만 수련한다면, 현재의 실력으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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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설.
 호북 지역에서 유명한 낭인이며, 30대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를 안다면 누구도 그녀를 그저 미모의 여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외모와는 다르게 <호면살>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작고 갸름한 얼굴과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과 아미처럼 곱게 휘어진 눈썹까지, 달기 혹은 서시라고 불러도 좋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잘록한 허리와 터질 듯한 가슴으로, 검은색의 경장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호면살이라고 불리며, 호북에서 가장 위험한 용병 중에 한 사람이었다.
 누구도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나긋나긋하게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말투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절정!
 
 낭인이 30대의 나이에 이 경지에 도달했다면 몇 가지 요건이 있어야 한다.
 뛰어난 재능과 상승의 무공, 그리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종일 무공만 수련하는 지독하고 끈질긴 심성!
 백리설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검은색의 경장을 입고 날렵한 몸짓으로 은형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에 말은 나긋나긋하게 하지만, 역시 그녀는 거친 용병이었다.
 ‘미친 새끼! 왜 하필 귀찮게 일을 만들고 지랄이야?’
 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며, 이곳으로 오면서 속으로 계속 욕만 했다.
 청명운.
 청운상단의 소단주이며, 상단주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청운상단에 계약된 귀중한 몸이었다.
 할 일도 많은데 어린 놈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용병 중에서도 추살이 전문이고, 호북 지역에서는 거의 최고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값비싼 몸인데, 겨우 애새끼 뒤나 쫓고 있으니.
 뭐 약관이면 애새끼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은형문 안으로 들어섰다.
 절정 고수가 느끼는 감각은 일류의 수준과는 다르다. 그녀는 바로 불쾌한 이질감을 느꼈다.
 ‘여긴 언제나 재수 없는 곳이란 말이야.’
 이 불쾌한 이질감이 항상 이곳에 올 때마다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기분을 더욱 불길하게 만들었는데, 미약한 피 냄새를 느꼈기 때문이다.
 ‘씨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하여간 멍청한 새끼 돌보는 게 제일 힘들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매우 성가실 테고, 그건 곧 그녀가 귀찮은 일에 휘말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황무지 바로 앞의 숲을 본 후에 그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표정은 약간 앙칼지게 변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흉악하게 변했다.
 흉신악살!
 같은 얼굴인데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호면살!
 
 왜 이런 별호로 불리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무공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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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카르마를 강탈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카르마로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는 건 매우 조심스럽다.
 자신의 카르마를, 타인의 카르마에 심어서 육체를 점령해야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타인이 자신의 카르마를 강탈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아벤타도르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실패했던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대마법사인 그들의 카르마는 아주 강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강탈을 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자신의 카르마를 <마나의 씨앗>으로 만든다. 그리고 타인의 카르마에 씨앗을 심는다.
 타인의 카르마는 이것을 자연히 받아들인다.
 씨앗은 <마나의 나무>로 개화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아벤타도르의 카르마였다.
 그렇게 타인의 카르마를 잠식하면서 잡아먹고, 육체에 뿌리를 내린다.
 아벤타도르는 완벽하게 타인의 육체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 첫 번째의 과정으로, 타인의 카르마를 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야 마나의 씨앗을 심을 수 있으니까.
 무림인들이 이것을 봤으면 경악했을 것이다.
 타인이 강제적으로 상단전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마는 상단전의 상위 개념으로, 상단전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아벤타도르는 진월생의 카르마를 완전히 개방하면서 처음보다 더 감탄했다.
 어린 놈의 카르마가 그의 처음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기 때문이다.
 저절로 흥분되었다.
 이 육체를 강탈하면, 일곱 마왕 중 다른 놈들을 충분히 짓밟을 수 있을 듯했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강해질 거다.
 아벤타도르는 더 욕심이 생겼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일곱 마왕 중에서 한 명이었으니까.
 본래는 마나의 씨앗을 심을 정도로만 타인의 카르마를 개방하지만, 욕심이 생긴 아벤타도르는 진월생의 카르마를 더욱 완벽하게 개방했다.
 카르마를 개방한다는 건 카르마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욕심이 생긴 이유는, 아벤타도르가 진월생의 육체를 강탈했을 때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으며,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통은 인간의 한계란 명백하기 때문에 이 정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진월생의 카르마는 한 번 정도 욕심을 부릴 정도로 대단한 카르마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건 천부적인 재능이다.
 아벤타도르는 지난 천 년 동안 이 정도 카르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천운이다.
 당연히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좋다! 이제 거의 완벽하게 카르마가 개방되었다.’
 아벤타도르는 진월생의 카르마에만 완전하게 집중했다. 카르마 마법은 수련 자체가 이 정도로 집중해야 할 만큼 위험했다.
 카르마를 개방하고 자신의 카르마를 마나의 씨앗으로 만들었다. 카르마에 지금까지 수련한 마나가 가득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장 위험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벤타도르의 정신은 완벽하게 그것에만 집중했다.
 이런 작업을 밀실에서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카르마를 압축하고 가공하여 마나의 씨앗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진월생의 개방된 카르마에 심는다. 간단한 듯하지만 그건 매우 어렵다.
 카르마라는 존재 자체가 워낙 오묘하고 심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 깊은 곳에 위치하는 하나의 점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무한대의 소우주였다.
 마나의 씨앗을 정확하게 그곳에 심어야 하고, 인간의 뇌는 미로보다 더 복잡하다.
 약간의 실수로, 둘 모두 소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벤타도르는 매우 집중하여 조심하면서도 익숙하고 빠르게 길을 찾았다.
 카르마는 존재의 본질이었기 때문에, 이건 아벤타도르가 타인의 소우주를 여행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현재 진월생의 카르마 외부와 내부 모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벤타도르는 결국 진월생의 카르마를 찾아냈다.
 
 카르마!
 
 <존재의 본질>이며, 의식과 무의식이고, 전생과 후생 그리고 현재의 모든 것이 기록된 공간!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대의 장소였다.
 마나의 씨앗으로 변한 아벤타도르의 카르마는 진월생의 카르마 한가운데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쪼개지며 씨앗은 금방 작은 나무로 변하여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작은 문제가 생겼다.
 본래라면 아벤타도르의 카르마가 진월생의 카르마를 집어삼켜야 한다.
 그러나 진월생의 카르마를 최대한으로 개방한 게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아벤타도르가 뿌리를 내리면서 그의 의식을 자극했고, 결국 진월생의 카르마가 깨어났다.
 
 진월생은 어떤 자극에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넓은 평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하늘은 온통 시커먼 끝도 보이지 않는 우주였다.
 앞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옆을 보며 진월생은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뭐야? 여긴 도대체 어디야?’
 진월생은 흠칫 놀라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면서 최대한 침착해지기 위해서 마음을 다독였다.
 아벤타도르는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 마나의 씨앗이 개화하며 타인의 의식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이미 강대한 카르마의 힘을 개화했기 때문에 타인의 의식은 흐리멍덩하다.
 아벤타도르의 힘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본래 막강한 카르마를 지닌 아이였는데, 아벤타도르가 그런 카르마를 최대한 개방했다.
 그래도 아이일 텐데, 이토록 뚜렷한 의식을 회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과 약간 다르게 흘러간다.
 이건 그에게 아주 큰 불쾌감을 주었다.
 
 진월생은 바로 직전의 상황을 생각해냈다.
 온통 끔찍한 죽음이 가득한 현장, 그리고 귀혼살마의 죽음과 마지막에 본 기괴하고 섬뜩한 괴물!
 그놈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여긴 어디란 말인가?
 처음 보는 기괴한 공간에서, 직전에 보았던 새빨간 눈동자의 서역인 금발 노인이 자신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떤 부조화를 보는 것처럼 느낌이 이상했다.
 꿈이라도 꾸고 있나?
 이건 마치 꿈속에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진월생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혼살마의 주검을 생각하자, 그 생생했던 가슴을 저리게 만든 고통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정임을 진월생이 왜 모르겠는가.
 귀혼살마는 죽었다.
 저 늙은이에 의해서.
 
 ‘검!’
 
 분명히 진월생은 귀혼살마의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의 손에 검이 생겨났다.
 그걸 보며 아벤타도르는 조금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허! 역시 네 녀석의 카르마는 대단하구나?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를 텐데 단번에 이 세계에 적응하다니.]
 여긴 진월생의 카르마라는 세계다. 그 중에서도 의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월생은 묘하게 침착한 감정으로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관해서 차근차근 생각을 해봤다.
 눈앞에서 귀혼살마의 죽음을 본 감정은 여전히 생생했지만, 의외로 침착해져서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하기는 했다.
 ‘여긴 은형문 내부의 공간이 아니다!’
 주위를 힐끔 보면 이건 확실했다.
 그리고 다른 것 하나는, 저 늙은이가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귀혼살마를 살해한 자!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가 분명했다.
 서역인을 닮았지만, 사람의 눈동자가 저렇게 새빨간 색일 리는 없으니.
 그리고 그는 분명히 저 노인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기괴하고 어두운 기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 여긴 지옥인가?
 진월생은 잠시 자신의 손에 들린 귀혼살마의 검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이답지 않게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진월생이 어떤 결단을 내리는 순간 아벤타도르의 미소는 사라졌다.
 그는 흠칫 놀랐다.
 진월생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카르마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진월생의 카르마였다.
 그 속에서 아직은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벤타도르가 세계 전체가 내뿜는 적대감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의 카르마는 개화하여 마나의 나무를 심고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공간의 원래 주인은 겨우 아이일 뿐이었다.
 대단한 카르마를 가졌지만, 아벤타도르는 천 년 동안 카르마를 수련한 마법사였다.
 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쩌겠나?
 그가 선택한 상황이었다. 큰 결과를 위해서 위험부담을 자처했으니, 이 정도 위기는 감수해야 한다.
 처음 겪는 일인지라 조금 특이하기는 했지만.
 아이 하나 죽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그러나 아벤타도르는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잠시 잊어버린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여긴 진월생의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진월생의 카르마!
 진월생의 의식!
 아벤타도르가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 이곳의 주인은 진월생인 것이다.
 그리고 진월생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3세 때부터 의술을 배운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며, 세상의 비정함을 알아버린 낭인이었다.
 5년 동안 세상을 떠돌며 귀혼살마의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도 있다.
 귀혼살마에게 검술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보고 배운 바가 있어서 검을 들고 싸우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진월생은 양손으로 검병을 움켜쥐며 아벤타도르를 겨누었다. 그리고 적을 일격에 죽이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일으켰다.
 검술보다 더 중요한 것!
 살의!
 악의!
 적을 필히 죽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진월생의 마음은, 그의 세계를 움직였다.
 
 아벤타도르는 이곳에 자신의 카르마만 옮기는 게 아니다.
 자신의 마나를 압축하여 마나의 씨앗으로 만들어 옮겼다. 그건 카르마를 보호하는 껍질이 된다.
 씨앗이 개화하여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진월생의 공간이었지만, 그의 마나가 이미 뿌리를 내렸다. 즉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대마법사인 그의 힘은 심오하고 강맹했다.
 평범한 인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강함이다.
 누구도 그의 앞에서 검을 세우지 못 했다.
 누구도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일곱 마왕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는 그런 존재들이다.
 귀여운 강아지가 이빨을 들이댄다면, 호랑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을 것이다.
 아벤타도르가 그런 심정이었다.
 잠시 흠칫 놀란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크흘흘흘! 약간의 수고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평소처럼 쉽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었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정도의 카르마를 소유하고 있는데 조금의 발악도 없이 육체를 빼앗긴다면 그것 역시 허무할 것이다.
 여러 감정 끝에 아벤타도르가 도달한 것은 바로 흥미로움이었다.
 카르마를 개방했다고는 해도, 카르마 자체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이 지식만 가지고 도구가 없다면, 그 지식은 무용지물일 테니.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벤타도르는 흘깃 조소를 흘렸다.
 ‘어떻게 할 테냐? 네게 한 가닥의 기회 정도는 주마.’
 뭐 대마법사에게 이 정도의 자만심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거의 신과 비등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파앗!
 
 진월생은 귀혼살마처럼 움직였고, 귀혼살마처럼 적을 공격했다.
 깊이 들어가서 검으로 단번에 기괴한 늙은이의 허리를 베었다.
 스으읏!
 검을 쥔 손에 느껴지는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검으로 물을 베는 듯한 혹은 바람이나 베면서 허공에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히죽!
 늙은이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웃었다.
 퍼어억!
 언제 휘둘렀는지 모를 주먹 한 방에 진월생은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몇 바퀴나 뒹굴었지만, 검을 들고 금방 일어났다.
 ‘젠장! 생각을 하자!’
 여긴 도대체 어디고 저놈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러나 카르마의 존재를 모른다면 진월생은 어떤 질문에도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진월생이 생각이 더 깊었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생각보다 침착하다는 것!
 그리고 무거운 장검을 들고 마치 귀혼살마처럼 움직여 적을 공격한다는 것!
 진월생은 귀혼살마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어 했었고, 항상 그의 검술을 눈에 담고 잠을 자기 전에 그렇게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상상처럼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상한 점을 자각했다.
 그는 기괴한 금발의 서역인을 닮은, 새빨간 눈알의 마귀 아벤타도르를 노려봤다.
 조금 전의 그 감촉은 놈이 마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감각 역시 실재와 조금 달랐다.
 
 무공의 고수가 되면 어떻게 변할까?
 초절정 고수가 되면 어떻게 변할까?
 
 간혹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무공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소년이라면 그 정도 꿈은 누구나 꾸기 마련이다.
 초절정 고수의 움직임!
 초절정 고수의 감각!
 초절정 고수의 검격!
 초절정 고수의 내공!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이 진월생의 몸에 실제로 일어났다.
 물론 진월생이 초절정의 경지에 관하여 알 수는 없었으니, 이건 모든 것이 그의 평소 상상의 산물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이 마치 상상만 하던 초절정의 고수가 된 듯했다.
 일격의 검격으로 산을 쪼개고, 일장의 발경으로 바위를 산산조각으로 부수는 그런 고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저 마귀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도대체 왜?
 
 진월생에게 엄청난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대단한 힘이나 능력을 갖추지도 않았다.
 수많은 의문 속에서도 두 가지는 분명했다.
 저 마귀는 죽여야 할 적이라는 것과, 자신에게 이유는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진월생은 현명하게 이것에만 집중했다.
 내공은 내력을 만들어낸다.
 내력은 발경이나 검경 등의 힘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검날까지 도달하면 검기가 나타난다.
 이것을 절정이라고 한다.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면 검기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이 현상을 <검기성강>이라고 부르는데, 검기가 별빛처럼 찬란하고 은은하게 빛나며 검을 감싼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이것은 파괴적인 위력을 보유한 <검강>이라는 것이다.
 지금 진월생의 검에서 검기성강의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검날에 생긴 것은 바로 검강이었다.
 오로지 무림의 절대고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으로 바위도 부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다.
 
 파앗!
 
 허상처럼 부서지며 진월생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형환위처럼 진월생은 마귀의 앞에 나타나서 다시 놈의 허리를 베었다.
 그러나 마귀는 손날로 진월생의 검을 막았다.
 진월생은 깜짝 놀랐다.
 육신으로 검강을 막았다고?
 퍼억!
 잠시 번개처럼 생각이 스쳐서 지나갈 때 마귀의 주먹이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놀라기는 했지만 고통은 없었다.
 그저 고통이 있으리라 생각만 했지 실제로 고통도 없었고 진월생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귀혼살검!
 
 특별한 검로도 없는, 검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검술이었지만 진월생은 귀혼살마의 검술을 이렇게 불렀었다.
 그리고 지금 진월생은 그 움직임을 그대로, 아니 더 강하고 빠르게 좇았다.
 
 감각적으로 적의 빈틈을 찾아내고 가장 빠른 경로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강하게 벤다!
 
 귀혼살검은 이런 단순한 검술이었다. 그저 적을 빠르게 죽이기 위한 싸우는 기술일 뿐이었다.
 진월생은 그것을 그대로 실행했다.
 다시 몸을 움직여 마귀를 공격했다.
 그의 검과 마귀의 손이 몇 차례나 충돌하는 합전이 일어났지만, 마귀는 새하얀 빛을 은은하게 흩날리는 나무 앞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월생은 그 상황을 살피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나무도 이상하고 그곳을 보호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마귀도 이상했다.
 진월생은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여긴 너무 이상한 곳이야. 내가 갑자기 왜 이런 곳으로 왔지? 꿈속이라든가······ 그런 비슷한 곳인가?’
 그가 체감하고 있는 현상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면, 어쩌면 꿈과 비슷한 듯했다.
 꿈이 아니라면 본인이 초절정의 고수일 리가 없잖은가.
 
 진월생이 마나의 나무를 보는 걸 느꼈지만 아벤타도르는 히죽 웃을 뿐이었다.
 처음 카르마를 개방했을 뿐인데 과연 대단하기는 했지만, 역시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애송이였을 뿐이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한가?]
 마귀가 말을 했다.
 조금 전에도 그렇지만, 진월생이 모르는 말이었다. 따라 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말이었는데, 그 뜻을 알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여긴 카르마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흐음······ 너희들의 말대로 개념을 잡자면 상단전의 상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저 상단전이라고 말해도 될 텐데, 역시 마법사라는 직업 정신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벤타도르는 가장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카르마의 개념을 정의 내렸다.
 상단전의 상위 개념!
 ‘흐음,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적당하군.’
 [여긴 카르마 중 너의 의식 세계라고 할 수 있겠군. 그래서 네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너의 능력 부족이구나. 나는 너에게 기회를 줬으니, 나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벤타도르는 차갑게 비웃었다.
 눈은 그저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흉악하기만 했다.
 그러니 이런 말도 그저 장난 같은 가식일 뿐이었다. 미안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아벤타도르가 그런 감정을 느낄 리는 절대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마나의 나무라고 한다. 나의 카르마가 깃들어 있지. 내 모습은 나의 의지! 나의 카르마에 의해서 너의 의식 세계에 나타날 수 있다. 이제부터 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하겠지? 나는 너의 카르마를 점령하고 너의 의식을 없애고, 크흐흐흐······ 너의 육체를 내 것으로 만든다!]
 진월생은 아벤타도르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말이 아니라 마나의 나무라는 것에 온통 집중했다.
 ‘저거다!’
 이유도 없고 그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
 마치 초감각처럼, 그의 세계가 진월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마귀가 아니라 뒤쪽의 나무다.
 ‘그렇군! 저 나무가 마귀의 본체란 말이지?’
 마귀가 인간 모습인 것부터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진월생은 저 기괴한 나무가 본체이고, 저 늙은이는 본체가 인간을 닮은 놈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귀가 자신의 육체를 강탈하려고 한다!
 흔히 <마귀에 씐>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이 그런 끔찍한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아벤타도르가 만든 현실과 진월생이 생각하는 바는 분명히 달랐지만, 조금 비슷하기는 했다.
 어쨌든 아벤타도르는 마귀처럼 진월생의 육체를 강탈하려고 하고, 마나의 나무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챘다.
 진월생은 마나의 나무를 노렸다.
 아벤타도르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저 강아지의 재롱처럼 훗 하고 웃었다.
 왜냐하면 이미 뿌리를 내린 마나의 나무를, 진월생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어떻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월생이 아벤타도르의 카르마를 집어삼키고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그것은 오직 카르마를 수련하는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벤타도르는 처음의 놀람 그리고 흥분과 다르게 지금은 약간 탐욕을 더 부렸다.
 ‘어차피 나의 것이 될 육체와 카르마다. 크흐흐흐! 좀 더 강해진다면 나야 훨씬 더 좋지.’
 높은 곳에서 시작하면 훨씬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재능이라는 것이다.
 이 재능은 어떤 노력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카르마 마법에서는 더욱 명백했다.
 ‘이번에는 정말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겠군!’
 아벤타도르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진월생이 슬금슬금 접근하는 것을 보기만 했다.
 
 발악해라! 그리고 절망해라!
 
 아벤타도르는 진월생을 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더 크게 발악하면 더 크게 절망한다. 그리고 그 재능은 온전히 아벤타도르 그의 것이 되리라!
 그러나 아벤타도르는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진월생에게 더는 절망할 가치 있는 것이 없으며, 이미 절벽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진월생이 바라는 것 오직 하나는 눈앞의 마귀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높은 집중력과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일격에 돌진하는 대범함까지!
 무공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귀혼살마는 이런 훌륭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잘 가르쳤다.
 진월생은 마귀를 지나치면서 새하얗게 은은한 빛을 내뿜은 기괴한 나무를, 검강이 깃든 검으로 내리쳤다.
 검강이다.
 전신의 힘을 다해서 일격을 가했다.
 나무가 우지끈 부러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나의 나무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마나의 힘에 의해서 검이 투우웅 튕겨났다.
 검날의 진동이 손에 전해져서 검을 놓칠 뻔했다.
 퍼억!
 다시 마귀 놈이 진월생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제기랄!’
 진월생은 일어나면서 잠시 절망했다.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적은 너무 강했다.
 그리고 지금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듯했다.
 ‘이곳은 나의 의식 세계다! 도대체 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거지?’
 남의 나라를 침공한다고 하여 꼭 지키는 나라의 군대가 이기는 건 아니다.
 여기가 진월생의 의식 세계였지만, 진월생이 아벤타도르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좀 더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세계에 관하여 진월생은 아는 게 없었고, 아벤타도르는 진월생보다 더 강하면서 이 세계에 관하여 아는 게 많다는 것이었다.
 진월생은 자신의 무기력함에 치가 떨렸다.
 갑자기 부모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힘이 없어서, 폭력 앞에서 너무 무기력하게 죽어가던 그 모습······! 그리고 그걸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숨어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
 ‘정신 차려라! 뭐라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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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설은 청운상단이 장기적으로 계약한 가장 훌륭한 낭인이었다.
 그녀는 낭인 중에서도 절정의 고수였으며, 추살에 매우 뛰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하는 일이 살수는 아니었다. 물론 추적이나 살업을 하기도 했지만, 은형문 내부에서 추적이나 정찰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은형문 내부의 암흑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무척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숲은 더 위험하다.
 절정이라는 실력만 믿고 나대다가는 허무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 곁에는 도움을 줄 사람도 없이 그녀는 혼자였다.
 사냥꾼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정의 고수처럼 날렵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최근의 흔적을 추적하였다.
 짙은 피 냄새!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 피 냄새가 인간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물의 피 냄새는 독특한 독향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물 사냥을 자주 하는 사람은 두 개를 충분히 분간할 수 있었다.
 마물의 피 냄새였자면 조심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마물을 사냥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나 인간의 피 냄새라면 상황은 반대로 변했고, 그녀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너무 조용하다.’
 인간을 사냥한 마물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우적우적, 인간을 물어뜯고 씹어서 집어삼키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흉신악살 같은 표정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뭐야?’
 곳곳에 주검이 늘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끔찍했다. 그녀도 강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렇게 참혹하게 머리통이 터진 주검을 본 적은 없었다.
 휙!
 그녀는 재빨리 움직였다.
 나무 뒤로 숨어서 전방을 살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서 숨을 쉬는 존재가 있었다.
 힐긋, 상황을 살폈다.
 슬쩍 보는 것이었지만 고수답게 눈빛은 날카로웠다. 밝은 시력으로 금방 상황을 살폈다.
 ‘뭐야?’
 기괴한 옷을 입고 기괴한 기운을 두른 늙은이와, 그의 손에 머리통을 잡힌 아이였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흐음······?’
 그녀의 단전에서 시커먼 기운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진짜 흉신악살처럼 흉악하게 변했다.
 그녀가 호면살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익히고 있는 사파의 내공심법 때문이었다.
 얼굴을 변형시키는 건 아니었지만, 그 내공이 내력을 일으키면 얼굴이 이렇게 변한다.
 마음에 드는 현상은 아니었지만, 싸울 때는 적을 압박할 수 있어서 유익하기도 했고, 이 마공 덕분에 그녀는 낭인임에도 불구하고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귀마장>이라는 장법으로 유명했는데, 그 발경에 제대로 당하면 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뒤틀린다. 특히 귀마장에는 음흉하게 암력이 강해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즉사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정도 장법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녀가 호북에서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조심하면서도 자신만만하게 행동했다.
 잠시 살피다가 판단을 내렸다.
 ‘저 늙은이인가? 저런 기운을 보면 인간은 아닌 듯하고, 정말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인가?’
 은형문 안에서는 기괴한 마물이 나타나고, 누구도 이런 공간이 왜 생기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열린 문이라고 생각했으며, 마물을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그렇다고 짐승도 아닌 괴물들이 계속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런 마귀가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는 그녀의 선택이다.
 마귀를 공격하는 것과 도망치는 것,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도망쳐서 청명운 일행이 은형문 안에서 모조리 죽었다고 보고하면 된다.
 어차피 계약에 의해서 묶인 몸이었고, 그녀와 청명운이 친한 것도 아니었다.
 낭인이 용병 일을 하면서 오래 살아남는 비결?
 정말 딱 정해진 일만 하는 것이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위험이 가중된다.
 그러나 백리설은 생각처럼 그렇게 냉혹한 심성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어른이면 모르겠는데, 하필이면 아이가 마귀의 손에 붙잡혔다.
 그리고 하는 모양을 보니 조용히 그리고 재빠르게 뒤로 접근해서 귀마장으로 때리면 마귀를 죽일 수 있을 듯도 하였다.
 고민은 깊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쯧! 내 팔자가 그렇지?’
 결심한 순간 그녀는 내력을 최고로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진짜 흉신악살처럼, 아니 성난 호랑이처럼 변했다. 마치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듯했다.
 일보에 마귀의 뒤를 점했다.
 동시에 귀마장으로 발경을 사용하며 일격을 때렸다.
 퍼어어억!
 귀마장이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경은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 했다. 반발력 때문에 귀마장의 진짜 파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암경이 튕겨났다.
 그녀는 되돌아온 암경으로 인하여 뒤로 세 걸음이나 무겁게 물러났다.
 앞을 노려봤다.
 ‘뭐야?’
 반격이라도 할 줄 알고 대비했는데 늙은이처럼 보이는 마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백리설은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반탄력만 보면 엄청난 고수다.
 최소한 초절정이고, 저건 전설로만 전해지는 호신강기가 분명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을까?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마귀는 입가로 새빨간 피를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다만 몸을 움직이지 못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벤타도르는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주변을 모조리 정리했었다. 설마 백리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백리설은 끈질기고 독하다.
 다시 한 번 더 도전했다.
 귀마장을 일으키고 조금 전 바로 그 자리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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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럭! 크으으으!]
 ‘망할! 이건 생각하지도 못했군. 너무 시간을 끌었나?’
 이래서 평소 습관이 무서운 것인가?
 이곳은 외부임에도 불구하고 밀실에서 하던 것처럼 행동했다. 위험이 다가오고 나서야 자신이 너무 자만했다는 생각을 했다.
 진월생의 의식을 없애고 그의 카르마를 집어삼키고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아벤타도르의 본체는 진월생의 카르마 안에 있다. 그의 본래 육체는 마나가 저장된 껍데기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중요하다.
 육체가 죽으면 마나의 힘이 사라지고 그의 마나와 의식이 들어 있는 카르마 역시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육체에 타격을 입었는데, 진월생의 카르마 내부에 있는 아벤타도르가 충격을 받고 피를 흘린다.
 이건 아직 그가 진월생의 카르마를 완벽하게 잠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자신의 육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의 육체를 파괴하여 죽이기 전에, 완벽하게 이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런 위기는 다른 일곱 마왕과 싸울 때만 느낄 수 있는데, 겨우 어린 놈의 카르마 하나 집어삼키는데 죽을 위기라니.
 아벤타도르는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마나면 충분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일으켰다. 그리고 진월생을 죽이기 위해서 노려봤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진월생을 너무 공들여서 키웠다.
 진월생은 이미 이곳에서는 완벽한 초절정의 검수가 되어 있었다.
 ‘제기랄!’
 아벤타도르의 인상은 진짜 마귀처럼 일그러졌다.
 
 ‘뭐야?’
 갑자기 혼자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다가 피를 울컥 쏟아낸다.
 진월생은 그런 마귀를 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압박하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아마 이게 살기라는 것인 듯했다.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마귀의 손에 죽을 듯했다.
 진월생은 검을 세우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귀혼살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집중해라!
 너의 검에 정신을 집중하고, 시선은 적의 움직임을 살펴라!
 적을 죽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일격이다!
 
 적의 숨결 하나조차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일격에 적을 죽일 수 있다.
 이건 진월생도 알고 있었다.
 간혹 귀혼살마가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마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로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헛!”
 진월생은 순간적으로 눈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두르는 마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검으로 놈의 팔을 베면서 몸을 굴렀다.
 ‘뭐, 뭐야?’
 엄청나게 빠른 움직임 그리고 강한 공격이었다. 지금까지 그를 가격했던 주먹의 위력이 아니었다.
 여기가 특이하게 그의 의식의 세계였지만, 저거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니 소멸을 당한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이 세계가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진월생도 여기서 물러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 목숨을 걸고 대적해야 한다!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저 마귀 놈은 갑자기 충격을 받고 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진월생은 귀혼살마의 검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이 검에는 마치 귀혼살마의 영혼이 깃들어서 아직도 그를 지켜주고 있는 듯했다.
 검이 울음을 토해내면서 그에게 말을 했다.
 
 싸워라!
 지금이 기회다!
 
 마치 검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움직이는 것처럼, 진월생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귀혼살마의 모습 그대로!
 어지간히도 귀혼살마가 싸우는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그는 그 모습을 본능적으로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진월생이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은 바로 귀혼살마였고, 존재의 본질이며 현재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그의 카르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건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다.
 진월생의 카르마가 그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 귀혼살마의 모습으로 그의 의지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어린 놈이 무서운 줄을 모르고, 아주 같잖구나!’
 아벤타도르는 상황이 위험하게 변했음에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진월생을 무시하고 있었다.
 현재 그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는 진월생이 아니라 카르마 외부 즉 현실 세계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진월생을 죽이면 모두 끝난다!
 
 진월생과 아벤타도르는 몇 합을 싸웠다.
 아벤타도르는 인상을 찡그리며 더욱 매서운 눈빛으로 진월생을 노려보았으며, 입가로 새빨간 피를 흘렸다.
 고통은 없다.
 그저 그의 육신이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진월생은 점점 더 잘 싸우기 시작했다. 이곳은 진월생의 공간이기 때문인지, 놈은 아벤타도르의 움직임과 강한 힘에 적응했다.
 ‘망할! 나는 일곱 마왕 중 하나인 칠흑의 마왕 아벤타도르다! 이런 일이 내게 생길 리는 없어!’
 다른 마왕과 싸우고 패배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겨우 어린 놈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 해서 죽는다고?
 쪽팔려서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천 년 동안 최고의 위치에 있었고, 신의 영역에 도전했었다. 그래서 너무 자만했다, 아벤타도르는 이것을 인정했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어!’
 그는 하나의 문장만 곱씹고 있었다.
 
 저놈만 죽이면······!
 
 그러나 저 다람쥐 같은 놈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존재의 카르마 안이기 때문에 <카르마를 통해서 발현되는> 그의 마법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본래 육체 강탈에서 이런 위험은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아벤타도르가 대마법사였고 너무 강해서 이런 위험을 그 동안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빨을 세우고 달려드는 거였다.
 진월생은 사납고 흉악한 맹수처럼 공격하는 아벤타도르를 상대로 힘겹게 그러나 훌륭하게 싸우고 있었다.
 감각!
 적의 움직임에 집중해라, 귀혼살마가 아직도 검을 통해서 외치고 있었고, 진월생은 충실히 그 말을 따랐다.
 적의 움직임을 감각으로 파악하고, 공격이 도달하기 전에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미리 피할 수 있었다.
 이건 수많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전투 방법이다.
 그러나 진월생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지금 스스로 귀혼살마의 귀혼살검을, 귀혼살마보다 더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죽어라!’
 피하고 빈틈이 보이면 맹렬하게 돌진하여 일격에 적을 죽일 것처럼 공격했다!
 그렇게 한참을 싸웠다.
 진월생은 오로지 자신의 검과 적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귀의 모습이 점점 시뻘겋게 변해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한 장면이었지만, 진월생은 그를 노려보았다.
 ‘넌 내가 죽인다!’
 죽어가는 듯했지만, 진월생은 직접 마귀의 목을 베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진월생은 마귀의 목을 확실하게 베었다.
 [내, 내가······ 이렇게 어이 없게······ 사라지다니······ 그러나 기억해라, 아이야! 나의 이름은 아벤타도르! 나는 영원히 너와 함께할 것이다! 크흐! 흐흐흐! 흐흐흐흐······!]
 아벤타도르는 의식이 부서지면서도, 소멸을 당하면서도 웃었다.
 그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그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그의 카르마는 진월생의 카르마 대지 위에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아벤타도르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주체가 다를 뿐이었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소멸을 당하여 사라지는 의식을 붙잡을 방법은 없고, 그는 소멸하는 육체를 느끼며 마나를 최대한 진월생의 카르마에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더 마나의 나무를 키워야 한다.
 [지지 마라! 너는 칠흑의 마왕 아벤타도르인 것이다!]
 아벤타도르는 그렇게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진월생의 의지는 카르마 전체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우주로 나아가며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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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한 단계 높이 오를 때 전신의 감각으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히 절정에서 초절정으로 발전할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전해졌다.
 진월생은 카르마 즉 자신의 소우주를 여행하면서 이런 희열과 혼란을 느꼈다.
 어떤 존재가 그에게 계속 들어온다.
 바로 조금 전 그와 싸웠던 아벤타도르였다.
 그의 카르마!
 그의 지식!
 그의 삶!
 마치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아벤타도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진월생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벤타도르는 죽었다.
 이젠 알 수 있다.
 지금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벤타도르의 카르마였다.
 어두운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아벤타도르의 카르마를 흡수하면서 자신의 카르마를 스스로 지배하는 과정이었다.
 이미 개방된 카르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행도 끝이 다가왔다.
 갑자기 어둠이 다가온 것처럼, 빛이 그의 눈을 찔렀고, 진월생은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객잔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육체를 강탈하려는 아벤타도르의 육체를 공격했다. 그래서 아벤타도르는 오히려 역으로 당하여 내게 카르마를 빼앗긴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과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아벤타도르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진월생의 영혼은 지금 소멸되었을 것이다.
 머리가 뻐근했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며 아벤타도르도 감탄할 정도의 카르마를 개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벤타도르의 천 년의 삶을 짧은 시간에 흡수하는 건 쉽지 않다. 뇌의 한계를 초월하는 작업이었으니, 머리에서 열이 나는 건 당연했다.
 아벤타도르가 감탄했던 카르마가 아니었다면, 이미 뇌에 악영향을 미쳐서 광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아······!”
 진월생의 심사는 복잡했다.
 아벤타도르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을 소멸시켰지만, 그의 카르마를 흡수했다.
 그는 진월생이었지만, 아벤타도르가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아벤타도르의 의식은 없었지만, 그는 아벤타도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의 삶과 운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모를 대신하여 따르던 귀혼살마도 죽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귀혼살마를 죽인 것이 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구나. 아벤타도르의 영향 때문이겠지.’
 이런 영향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진월생의 삶은 겨우 십 년 그러나 아벤타도르의 삶은 무려 천 년이다.
 누구의 삶이 무거운지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진월생이었지만 삶의 무게를 따지면 아벤타도르라고 보는 게 어쩌면 옳을 수도 있었다.
 심사가 복잡하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의지할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월생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차가운 느낌이 있더니, 귀혼살마의 검을 아직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일반적인 철검이었지만, 귀혼살마는 이 검을 무척 아끼고 매일 검날을 관리했다. 그래서 검날에서는 여전히 예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진월생이다!’
 이 검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진월생이다! 나의 아들이다!’ 귀혼살마가 말하는 듯했다.
 마치 그의 영혼이 검에 깃들어 진월생을 지켜주는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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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월생은 놀란 얼굴로, 점점 다가오는 백리설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왜?
 그녀의 외모 때문에?
 ‘이런 건······ 없었는데?’
 진월생은 아벤타도르의 카르마를 흡수했다.
 그의 천 년의 삶과 함께 그가 익혔던 수많은 지식과 수련한 모든 마법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그런 일이 생겨서 마나의 나무가 완전히 육체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카르마 마법에서 가장 위험한 건 마나의 씨앗을 심고, 개화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것이 지났으니 가장 큰 위험은 사라졌고, 몇 번이나 처음부터 카르마 마법을 수련했던 아벤타도르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수련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벤타도르와 마찬가지로 마법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으며, 그의 경험까지 마치 자신의 것처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건 도대체 뭐야? 내가 미쳤나?’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진월생의 상식이 아니라 아벤타도르의 상식으로도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카르마를 강탈할 수는 있다.
 카르마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종종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혹은 다른 마법사의 마법을 훔치기 위해서.
 그러나 타인의 카르마를 볼 수는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일곱 마왕이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카르마를 빼앗겼으니. 그것 때문에 생긴 능력인가?’
 물론 타인의 카르마를 함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카르마는 존재의 본질이었으니, 분명히 그런 기묘한 감각을 느낄 테니까.
 그래도 진월생은 현재 백리설의 카르마를 계속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백리설의 입장에서는 멍한 눈으로 바보처럼 그녀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는 걸로 여기겠지만.
 진월생은 이 현상에 관하여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이다. 항상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고, 궁금한 건 밝혀내야 한다.
 그런 특성이 없는 마법사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아벤타도르를 흡수한 진월생 역시 그런 전형적인 마법사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나타나는 결과의 원인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알 수가 없네!’
 
 [호면살 백리설]
 유형: 귀면마공
 단계: 절정
 기력: 1성
 
 근력: 3성
 
 감각: 1성
 
 [전투기술]
 귀마장: 6성
 귀마보: 3성
 귀마갑: 1성
 
 타인의 카르마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건 카르마를 강탈해도 마찬가지다.
 아벤타도르의 경우에는 자신의 카르마를 마나의 씨앗으로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진월생이 천 년의 카르마를 완전히 흡수했던 것이고, 일반적인 강탈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연히 완벽하게 타인의 카르마의 정보를 살피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요약 정보를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매우 신기한 일이었다.
 더욱이 꽤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였다.
 ‘호면살 백리설!’
 귀혼살마와 함께 다니면서 종종 듣게 되는 이름이다.
 호북에서 가장 유명한 낭인 중에서 한 사람이었고, 더욱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건 여자라는 점과 절정의 낭인 중에서 가장 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미모도 명성에서 한 몫을 했다.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벤타도르의 경험이 없었다면 진월생은 ‘내가 미쳤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천 년의 경험과 지식은 그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카르마는?’
 
 [진월생]
 유형: 카르마
 단계: 마나 차크라 1단계
 마력: 1성
 
 근력: 1성
 
 감각: 1성
 
 [마법]
 화염: 1클래스
 뇌전: 1클래스
 암흑: 1클래스
 
 [전투기술]
 음속 충격파(Bow Sonic Shockwave): 1성
 귀혼살검: 1성
 
 [특수기술]
 의학: 하중
 
 ‘정말 단순하고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군. 아벤타도르가 이걸 알면 충격을 받겠는데?’
 겨우 차크라 1단계의 1성 즉 1할의 마나라는 것이다. <성>이라는 것은 순도 혹은 완성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무공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공과는 약간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는 듯했지만 비슷하기도 했다.
 뭐 뿌리를 내린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둬야겠지만.
 진월생은 우선 대략 파악한 후에 카르마에 대한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우선은 눈앞에 나타난 일이 중요했으니까.
 ‘나는 진월생이다!’
 그는 강호라는 곳이 얼마나 흉흉하고 비정한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호면살 백리설이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아벤타도르와 싸울 때 외부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분명히 호면살 백리설일 것이다.
 그러나 강호의 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움을 준 건 맞지만, 그게 그녀를 믿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친분도 없는데 도움을 줬으니, 의심하는 마음을 키우는 게 마땅했다.
 진월생이 알고 있는 강호는 그런 곳이다.
 백리설이 싱긋 웃으면서 다가왔다.
 “안녕? 몸은 괜찮니? 내가 누군지는 알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월생은 백리설이 누군지 알기 때문에 경계하는 마음을 지우지 않았다.
 백리설은 소년이 당연히 자신을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곳에 있었다면, 동네에서 작대기를 들고 칼싸움이나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즉 무림의 아이일 테고, 강호에서 살고 있다면 백리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그녀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진월생입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월생은 침상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뭐 딱히 그럴 마음으로 도와준 건 아니지만, 내가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니까. 나는 백리설이라고 한다. 강호에서는 호면살이라고 불리지.”
 그녀는 싱긋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갑게 진월생을 살피고 있었다.
 ‘애새끼가, 애새끼 같지가 않네. 어디 명문세가의 개자식인가?’
 명문세가는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예의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 관하여 교육을 받는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비범하다고 하더라도 아이일 뿐인데, 이해할 수 없는 진월생의 태도였다.
 ‘사람의 성격이나 이런 걸 파악하는 게 더 좋을 듯한데, 그런 건 카르마와 연관이 없나?’
 진월생은 무공의 수준 정도를 보여주는 건 사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차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이 현상이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군. 상대방의 카르마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는 거. 어쩌면 내 수준이 올라가면 더 깊이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거로군.’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볼까? 내가 그냥 심심해서 그곳으로 들어간 건 아니거든.”
 백리설도 진월생에게 도움을 받을 게 한 가지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녀에게 매우 중요했다.
 청운상단의 소단주 청명운이 죽었는데, 증거가 없다.
 진월생을 죽이려고 하던 그 마귀가 분명히 범인일 텐데, 그놈은 먼지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걸 눈앞에서 본 백리설도 믿을 수 없는데, 과연 청운상단의 상단주가 믿을까?
 그래서 그녀에게는 증인이 필요했고, 진월생은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에 매우 훌륭한 증인이 된다.
 ‘뭐 판단은 상단주가 하는 거겠지만.’
 백리설은 역시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청명운이 죽지 않았다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결국에는 죽고 말았으니 이번 사건이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애새끼가 혼자서 잘난 척하며 그 지랄을 하다가 뒈졌는데.’
 백리설은 잠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증거도 확보했고 증인도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먼저 진월생의 말부터 들어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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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월생이 딱히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귀혼살마의 검종이었고, 귀혼살마는 청명운의 의뢰를 받았으며 낭인 아홉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은형문 안으로 불사귀를 사냥하기 위해서 떠났고, 진월생도 호기심으로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들의 주검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귀 같은 늙은이를 만났다.
 그 마귀의 정체가 아벤타도르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카르마를 진월생이 흡수했다는 사실만 숨기면 된다. 이건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모르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백리설은 진월생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 누가 보더라도 진월생은 불쌍한 녀석이다. 사람이라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진월생은 귀혼살마의 검갑까지 챙겼고, 관 안에 귀혼살마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지만, 그는 분명히 귀혼살마였다.
 손을 꾹 쥐자 손바닥의 딱딱한 굳은살이 느껴졌다.
 백리설은 사람들을 부려서 청명운과 열 명의 낭인 그리고 불사귀의 시신까지 챙겼다.
 이미 전투가 일어난 근방을 한 차례 탐색한 후였고, 다른 마물이 없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놈만 불쌍하게 되었군.’
 청명운에게 불사귀 한 마리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만 청운상단의 상단주에게 시달림을 당할 것이다.
 “혹시 가족이 있니?”
 백리설이 물었다.
 진월생의 가족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귀혼살마의 가족을 말하는 것이었다.
 뭐 강호를 떠도는 낭인의 경우 대부분 홀몸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가족?
 진월생도 귀혼살마의 가족에 관해서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간혹 그의 인생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었다.
 간혹 귀혼살마의 부친에 관해서 이야기는 했었다.
 그의 부친도 낭인이었지만 이름 없는 용병이었을 뿐이었고, 나이가 들어 돈이 없어 고생하다가 길바닥에서 남의 칼에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모친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다.
 뭐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였기에, 진월생도 묻지 않았었다.
 진월생이 침묵을 지키자 백리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낭인의 삶이라는 게 모두 비슷하니까.
 진월생은 귀혼살마의 손이 부서지도록 꽉 쥐었다.
 ‘아저씨의 복수는 제가 하죠!’
 명석해도 전에는 귀혼살마가 말하는 가족사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이야기를 생각하자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귀혼살마의 부친을 길바닥에서 죽인 살인자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귀혼살마는 돈에 미친 금귀였다.
 그 살인자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청운상단에서 시신을 조사한 후에 적당한 곳에 묻어주마.”
 백리설이 말했다.
 나름 충분히 배려한 행동이었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에게 시신을 보내겠지만, 실상 가족도 없는 낭인이라면 더욱이 얼굴도 알아볼 수 없다면 그냥 화장해서 불태우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었으니까.
 “예.”
 “청운상단에 가면 내게 말한 걸 그대로 말하면 된다. 뭐 상단주가 믿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진월생은 청명운을 생각하며 남몰래 눈을 빛냈다.
 ‘청운상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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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설은 객잔을 떠날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관을 구입해서 시신을 염하고, 마차와 마부를 구했으며 청운상단으로 서신을 보냈다.
 “괜찮니?”
 백리설이 진월생에게 물었다.
 지금 진월생의 상황으로 보면 당연히 걱정이 앞서겠지만, 아이답지 않게 고민이 너무 많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오히려 그녀가 진월생을 걱정했다.
 여기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녀의 입장이 약간 귀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서 가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더욱이 그 돌아가는 길이 진창이라면?
 ‘에이! 하여간 멍청한 애새끼 하나 때문에 내가 뭔 고생이람? 돈도 많은 새끼가 도대체 뭔 바람이 불어서······!’
 상단주의 아들이면 천천히 일을 배우면서 가업이나 이으면 될 텐데,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고 괜히 혼자 위험한 일에 나서서,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청운상단의 주인에게 그대로 말을 할 테니까.”
 그리고 진월생도 청운상단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었다. 청명운이 아니었다면 귀혼살마가 죽었을 리도 없을 테니까.
 ‘앞으로 5년이다. 아벤타도르는 최소한 5년에서 10년의 시간을 잡았으니까.’
 5년 후면, 진월생은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있었다.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 바로 복수!
 “뭐 그거야 사실 나하고 상관은 없는 일이고, 넌 괜찮니? 청운상단에 잠시 빌붙어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백리설의 입김이면 자리 하나 정도는 빼낼 수 있다. 몇 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상단주도 그렇게 야박한 인간은 아니거든.”
 진월생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여간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다 왜 이 모양이야?’
 백리설은 잠시 진월생을 보다가 방을 나갔다.
 “내일 일찍 떠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쯧!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녀석이네? 하긴 뭐 귀혼살마라면······ 그럴 만도 한가?’
 백리설도 귀혼살마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다.
 <싸우는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호북의 낭인 세계에서는 제법 유명하니까.
 그런 사람이 데리고 다녔던 아이였으니, 귀엽거나 재미있는 구석이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귀혼소마라고 불러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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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은 복잡하고 방대한 학문이다.
 카르마 마법은 가장 위험하고 고차원적인 수련이었지만, 또한 가장 강력하기도 했다.
 진월생은 아벤타도르에게서 습득한 마법의 지식을 되새기며 침상 위에 앉았다.
 ‘마법 지식은 부족하지 않은데.’
 클래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고차원의 마법을 완성한 아벤타도르의 카르마를 흡수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클래스를 마법으로 발현할 수 있는 마나의 수련이었다.
 ‘아벤타도르가 멍청할 때도 있군.’
 하긴 <기>라는 것을 정확하게 몰라서 마나와 같은 의미를 지낸 개념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기와 마나는 분명히 다르다.
 마나는 생명의 기운이다.
 무림의 방식으로 개념을 정의하면 <선천지기> 즉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기운에 가깝다.
 선천지기를 수련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자연의 기운을 내공으로 수련하여 만들어내는 선도법이었다. 당연히 진도가 너무 느려서 지금은 사장된 수련법이었다.
 최대한 10년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차이점을 알게 되자 그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뭐 마나의 수련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우선 이 상황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는 듯했고 자신의 지식이며 경험인 듯했지만, 결국에는 타인인 아벤타도르의 지식이고 힘이었고 경험이었다.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을 해야 한다.
 아벤타도르의 지식을, 그의 삶과 경험을 되새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지식을 탐구하고 마나의 수련도 한 번 해보면서, 진월생은 밤을 보냈다.

댓글(2)

말해뭐해    
7권까지 읽었는데 무슨..8클래스 도달해놓고 뭐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성장은 했는데 목적도 없고 주변사람 좀 도와주는 정도인데 엄청 루즈하군요
2017.07.17 21:30
화쟁이    
ㅋㅋ 천년마도사가 10살에게 당하다니 이건 아닌듯 빠빠이
2018.04.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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