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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코드 1화

2016.04.27 조회 2,389 추천 11


 꿈을 꾸었다.
 황량하게 펼쳐진 대지의 지평선. 시선의 영역을 끝없이 아우르는 드넓은 세상의 중심에서, 메마르게 피어나는 황혼 저편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런 꿈을 꾸었었다.
 분명, 무척이나 공허했다.
 끊어질 듯이 괴롭고, 사무치듯이 슬프다.
 폐부에 끓어오른 숨을 토해낼 때마다 가슴을 가득 채운 울분이 터져 나왔다.
 시작이 없었던 끝은 허무였으며, 허무를 담은 눈은 메마름을 흘리고, 깎이고 마모된 마음은 재로, 먼지로 승화해, 저무는 광야의 지평선 너머로 흩어졌다.
 절규는 침묵으로, 절망은 덧없이.
 그럼에도 두 다리로 오롯이 이 땅을 딛고 선 것은, 바라 마지않은 이상에 닿을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있다고 꿈꾸었기 때문에.
 그래.
 꿈을 꾸었다.
 다시 할 수 있다고.
 아직 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 끝이 오지 않았다면, 시작도 오지 않았다.
 불타는 황혼은, 흩날리는 커튼의 밤을 넘어, 타오르는 여명의 빛으로.
 흘러내리는 메마름 대신 미소를 짓고, 올려다 본 하늘에서 한없이 희미한 이상을 좇아서.
 그는 꿈을 꾸었다.
 
 ***
 
 무의식의 끝자락을 방황하던 정신을 매서운 추위가 현실로 끄집어 내렸다.
 또 ‘그 꿈’이다- 부스스한 눈을 끔뻑이며 소년은 생각했다.
 잊을 만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청 거부 불가능의 꿈. 눈앞에서 겪는 것같이 생생하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는 풍경에 단숨에 꿈이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꿈을 종종 꾸곤 했다.
 피와 먼지에 찌들어 빛이 바랜 백금색의 갑옷을 걸치고, 황금색 망토를 펄럭이는 기사. 마치 최종 보스를 때려잡은 듯한 전설의 용사가 꿈속에서의 소년이었다. 재와 먼지가 넘치는 전장의 중심에 홀로 선, 그야말로 주인공.
 즐겁지도, 기뻐 보이지도 않는 모습이었지만, 동경을 품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그 모습 때문에 꿈을 꿀 때면 한창 거기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결국 눈을 떠보면 현실은 가차 없다는 것을 다시금 두 눈으로 깨닫게 된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송송 불어 드는 신문지. 자구책으로 깔아뒀지만 맨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폐박스.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몰골은 사람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수준이고, 넝마나 다름없이 낡고 해진 옷은 이미 의복이 아니라 걸레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
 빈말로라도 멋지다고는 할 수 없는 모습. 오히려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자신이 괜스레 한심하게 느껴졌다.
 게임은커녕 소설도 접해본 적 없는 소년이 어째서 그런 장면을 꿈으로 꾸는지는 금시초문을 따름이지만, 이런 신세의 아이에게 한순간이나마 동경을 품게 만들었던 꿈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름은 이예찬.
 나이는 10살. 당연하지만 무직. 집은 없으며, 당연히 가족도 없다. 정확하게는, 있었지만 버려졌다.
 이유는 예찬도 몰랐다. 가정사라든가, 사회력이라든가 그런 개념을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가족은 온데간데없었고, 가진 것이라곤 얄팍하게 껴입은 옷이 전부인 집 없는 비렁뱅이가 되어있었다.
 “아. 오늘은 꽤 모였다.”
 본능적으로 박스 앞에 두었던 양철 깡통을 집어 든 예찬이 말했다.
 500밀리리터 정도 크기의 녹슨 통조림 깡통에는 동전이나 지폐 따위가 거의 가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쌓여있었다.
 자기만족에 가득 찬 위선덩어리들이었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런 얄팍한 위선 덕분에 소년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얻을 재화를 손에 넣었다.
 어리기만 해 노동이란 불가능한 몸뚱이지만, 동정심을 유발하는 덴 어리고 불쌍한 것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도 없다. 즉 먹혀든다는 소리였다. 가만히 앉아 불쌍하게 떨고만 있어도 동전과 지폐가 와르르. 그야말로 어린아이 만만세.
 “······하하.”
 그러고 흘러나온 웃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쉴 새 없이 주워섬겨댔지만 결국 자기합리화다. 먹혀들어? 가성비가 좋아? 웃기는 소리다······.
 ‘대체 뭐가 만만세라는 거야. 가진 거 하나 없는 거지 주제에.’
 자부심이란 건 가치가 있을 때 가지는 것이다. 이런 삶, 남한테 빌붙어 떨어지는 동전 하나에 빌빌거리는 인생 어디에도 가치는 없었다. 애초에, 그가 원한 삶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수개월 전의 일이다.
 길거리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소년.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그가 가장 처음 맞은 것은 배고픔에 의한 리타이어였다.
 위장이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에 길바닥이라는 것도 잊고 기절했다가, 주민의 신고로 근처 경찰서로 옮겨져 그 이름도 은혜로우신 민중의 지팡이 분들께 밥을 얻어먹었다.
 출신도 불분명한데다 가족도 없는 남자아이를 단박에 고아라고 판단한 순경님의 통찰력에 예찬은 곧바로 고아원으로 직행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설에 맡겨졌던 소년을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온정이 감싸주었고, 그것을 구원이라 여겼던 나머지 지친 마음에서 힘을 풀어버렸다. 모르는 사람 천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에 벌벌 떨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울타리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적어도, 한 달은 말이다.
 우연이었을까. 원인 모를 화재가 고아원에 있었다. 원인은 불명.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수 시간 만에 건물이 전소하고 사상자도 엄청나게 나왔다.
 아이를 맡을 수 없게 된 고아원은 아이들을 내보냈고, 예찬은 곧바로 다른 시설에 맡겨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연쇄가 시작되었다.
 화재. 붕괴. 폭발. 차량의 의문의 돌진 등등.
 마치 의도라도 한 것처럼 다양한 재난재해가 예찬이 있던 보금자리를 집어삼켰고, 그때마다 지낼 곳을 잃은 예찬은 다시금 발붙일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수많은 탁아시설과 입양 희망자의 손을 거쳤지만, 그 끝은 배드 엔딩. 사고는 언제나 예찬의 뒤를 쫓아와 그의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상자는 잔뜩. 재난에 가까운 피해레벨에 멀쩡한 사람보다 죽거나 다친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참으로 드라마틱하게도, 그 저주와도 같은 의문의 연쇄 사건 속에서 예찬은 단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
 건물이 불타고, 시설이 붕괴하고, 누출된 가스가 터져 온 방이 날아가도, 예찬만큼은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나왔다.
 이쯤 되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저 소년은 ‘위험’하다고.
 시설은 예찬을 꺼리기 시작했고 그 많던 입양 희망자도 사라져갔다.
 사건사고가 늘어갈 때마다 예찬에 대한 불길한 소문은 더욱 몸집을 불렸고, 얼마 안 가 예찬이 없었던 곳의 사고마저 그를 원흉으로 여기는 루머가 나돌았다.
 저주받은 아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그것이 사람들이 예찬에게 내린 이명이었다.
 
 “······칫.”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소년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는, 오고 가는 사람(호구)들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곤 곧바로 깡통을 챙겨들어 자리를 벗어났다.
 임시 거처로 삼았던 지하철 입구 구석을 벗어나자, 시야의 사방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물결과 세상 곳곳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네온사인들의 모습에 한순간 침침해진 눈을 비볐다.
 오전 오후 내내 자버렸는지 까만 하늘엔 해님 대신 달님이 체류 중이고, 1년 365일 기상 상태 나쁨을 자랑하는 서울 도심의 상공은 지상의 불빛 세례에 힘입어 별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에선 한창 울려 퍼지는 캐럴 음악.
 이리저리 뒤섞인 음악소리와 웅성거림의 난잡함 사이론 커플이며 가족들이 웃음만발의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였구나.”
 평소보다 깡통이 묵직했던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탄절 전날의 시내 거리라면 유동인구가 6자릿수는 가뿐하게 넘을 테니 말이다.
 “······.”
 수입이 높다는 사실은 확실히 고무적이었지만, 반대로 기분은 바닥을 치다가 아래로 파내려 갔다. 이유도 모를 탈력감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인파가 북적이는 거리 한가운데를 터덜터덜 걸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자기는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걸까.
 끝없이 자신을 향해 되물었지만, 버려졌던 그날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이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찬에겐 어떤 잘못도 없었으니까.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고.
 모두 타인의 의지였고 예찬은 거기에 따를 뿐이었다. 어리기만 한 소년에게 의견 피력 능력 따윈 전무했고 어른들도 들을 생각이라곤 안 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그 사고들.
 멋대로 끌려다니기만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멋대로 버려져 있었다.
 남은 건 수척한 몸뚱이와 지칠 대로 지친 마음뿐. 이게 줏대 없이 끌려다니기만 한 수동적 인간의 말로일까.
 ‘아무리 그래도 10살짜리한테 이런 짐을 짊어지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쌓이고 쌓인 불평불만이 단숨에 고개를 쳐들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소리치기 전에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이런 거리에서 터뜨려봤자 페X스북 따봉충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쏟아내기만 하던 그때, 시끄럽게 오가는 거리에서 한층 밝게 빛나는 대형 스크린의 불빛에 시선이 끌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 세계의 저편에선 절체절명의 위기가!? 현실의 유희 따윈 내팽개쳐라! 지금 당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세계가 있다!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 시행 중! 지금 바로 접속하세요!]
 
 악취미라고 밖엔 설명할 도리가 없는, 요란하기 짝이 없는 게임 광고였다. 남녀가 산타 복장을 입은 몬스터들을 썰어대는 우스꽝스러운 연출에 글러먹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예찬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방금 전에 봤던 그 게임 광고가 플래시백 되며 잠결에 보았던 그 꿈속의 장면으로 이어졌다.
 ‘용사······라.’
 신의 부름을 받아서, 멋들어진 검과 갑옷을 입고 최악 최강의 적을 멸하고 세상을 구하는, 두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하지만, 거기에 과연 자신의 의지는 있는 걸까.
 어쩌면, 달리 바라는 게 있었는데도 끌려다닌 건 아닐까.
 그런 망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으려니, 다시금 꿈속의 그 사내가 떠올랐다.
 시련과 역경에 퇴색된 모습과,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던 공허하기 짝이 없던 얼굴. 그건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던 주인공의 얼굴이라기보단, 마치 끌려다니기만 했던 자신이랑 똑같은-
 “쓰레기 새끼다!! 그래서 눈깔이 그렇냐, 이 씨발새끼야!!”
 “······응?”
 한참이고 이어지던 망상이 어떤 남자의 고함소리에 뚝- 하고 끊어졌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든 장소를 발견하곤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적은 틈으로 겨우겨우 몸을 들이밀자, 소리만 들리던 사건의 전말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싸움이었다.
 무슨 이유로 시비가 붙었는지 남자 두 명이 싸우고 있었다. 아니, 싸운다는 표현은 조금 어폐일까, 욕을 하고 멱살을 틀어쥐는 쪽은 한 명뿐이고, 상대방은 일방적으로 받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죽일 놈이라느니 새끼라느니 환상적인 조합의 욕설을 뱉어내는 주둥아리의 주인공은 주정뱅이가 어울릴 듯한 중년남성.
 그리고 묵묵히 그 언어적 폭력을 받아주기만 하는 상대는 젊고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술 너무 마셨어요, 아저씨.”
 딱 봐도 상황은 비디오였다. 취기가 잔뜩 오른 노숙자가 우연히 눈에 걸린 샌님을 붙잡고 거지 같은 삶에 대해 화풀이를 하는 것이리라. 그다지 희귀한 광경도 아니었고 예찬으로선 구경할 가치도 없는 서커스였지만, 그런 것치곤 받아주는 쪽이 꽤나 특이했다.
 얼굴이 너무나도 평온했던 것이다. 천지신명도 식겁할 사회의 폐기물 같은 인간을 눈앞에 두고도 그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보이질 않았다.
 마치 새벽마다 거리를 쓰는 환경미화원이, 오늘분의 치워야 할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그 신랄한 무표정이 예찬에게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근데 저러다 한 대 맞겠네.’
 무표정으로 사람을 도발을 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했지만 아저씨 쪽의 주먹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중년 노숙자의 울분을 담은 스트레이트 펀치가 저 조각 같은 얼굴에 작렬할 건 불 보듯 뻔한 일.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주변에 모여든 사람은 말리기는커녕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든 채 싸움판을 보며 낄낄거리기 바빴다. 하기야,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괜한 트러블에 휘말리는 것보단, 철저히 방관하면서 즐기는 게 이득이다.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유희거리도 없다고 하니까.
 그래도-
 “······.”
 마음에 안 들었다. 그 행동들이.
 개인적인 성향이든 뭐든 어쨌든 마음에 안 들었다. 표정을 구긴 예찬은 자신도 모르게 품 안의 깡통을 만지작거렸다.
 나서는 이가 없다고 해서 자신이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듣고 경찰이 달려올 테고, 그러면 이 싸움도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 크리스마스이브의 깜짝 이벤트는 막을 내린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을 베풀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로?’
 “······.”
 반박의 여지없음. 생존의 당연한 이치. 그런데도,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왜일까.
 이대로 무시해도 된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없는데, 내가 선행을 베풀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처럼 하면 된다.
 끌려다니고. 도망치고. 무시하던 평소와 같이.
 ‘정말로?’
 “······에이 씨.”
 품속의 깡통을 움켜쥐었다. 언젠가 본 적 있던 스크린 안의 야구 선수처럼 깡통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그대로 한껏 젖힌 팔을 힘껏 휘둘렀다.
 동전이며 지폐가 잔뜩 든 양철 깡통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선명한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더니, 멋지게 남자의 안면에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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