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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1권 1화

2016.05.25 조회 1,329 추천 14


 니시수마( 是誰 ) ― 너는 누구냐
 
 
 서(序)
 
 
 일(一), 소사(小事).
 아주 작은 일이다.
 사내가 여인을 겁간한 후에 비수를 이마 한가운데 찔러 넣은 사건이 벌어졌다.
 죽인 사내나 죽은 여인, 그리고 그들과 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사건이지만 중원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이(二), 투왕지부(鬪王之斧).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 귀를 열어 들어볼 만한 사건이 터졌다.
 난부투왕(亂斧鬪王), 일명 투왕이라 불리는 절정고수가 용검문(龍劍門)을 피로 물들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용검문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용검문주를 비롯하여 한 사람 남김없이 도륙당했다. 시녀와 하인들도 용검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만 했다. 아녀자와 어린아이도 모두 죽었다. 특히 용검문 소문주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지고 찢겨져 개 먹이로 던져졌다.
 난부투왕에게는 광적인 행동을 벌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하하하핫! 복수는 했건만······ 아가, 네 모습은 볼 수 없구나. 그래도 아가······ 이제는 편히 눈을 감고 쉬어라. 이 숙부가······ 못난 숙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이런 거구나. 우하하하핫!”
 은원 관계.
 무림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런 일이야 도산검림(刀山劍林)에 파묻혀 사는 무인들에게는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단지 무림에 일석을 차지하고 있던 용검문을 단신으로 궤멸시킨 난부투왕의 놀라운 무공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삼(三), 장강지변(長江之變).
 무림인들은 용검문의 궤멸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또 다른 소식을 접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용검문을 궤멸시킨 후 장강(長江)을 넘던 난부투왕이 무림 삼 개 문파의 협공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용검문주는 성품이 온후했던 사람, 그에게는 벗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아이까지 죽이고, 사람을 개 먹이로 만든 인간 말종, 난부투왕을 살려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四), 풍운(風雲).
 용검문주에게 벗이 있다면 난부투왕에게도 벗이 있다. 호쾌했던 난부투왕이 벗으로 인정한 무인들이니, 의협(義俠)을 말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난부투왕의 죽음을 비굴한 간적들에게 당한 비통한 죽음으로 정의했다.
 간살당한 질녀의 복수가 죄란 말인가.
 손속이 잔인했던 면은 있다. 하나 그것 역시 용검문 탓이다. 용검문은 소문주를 순순히 내놨어야 한다. 그랬다면 죽는 사람은 소문주 한 사람으로 그쳤을 게다.
 무인과 무인이 무공으로 은원 관계를 해결했는데, 다수가 핍박하여 비통한 죽음을 만들다니.
 그들은 대노했고, 십여 문파가 전력을 총동원하여 장강을 건넜다.
 중원은 발칵 뒤집혔다.
 어린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작은 싸움이 시산혈해(屍山血海)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소림사(少林寺)는 급히 장로를 파견하여 중재에 나섰으나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고, 무림은 풍운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오(五), 장산지혈(章山之血).
 장강을 건넌 무림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 문파의 전멸이라는 놀라운 소식이 중원 전역을 강타했다.
 남부 무림인들이 난부투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장강을 넘자, 용검문주의 복수를 행한 삼 개 문파도 수수방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촌각을 다퉈 조력자를 구했고, 정작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들 곁에는 이십여 문파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삼십여 문파는 장산(章山), 일명 내방산(內方山)이라고도 불리는 명산(名山)에서 맞닥뜨렸다.
 고수만 백여 명, 싸움에 가담한 총인원이 무려 이천여 명에 이르는 전쟁이었다.
 패한 쪽은 남부 무림이다.
 그들은 세가 불리해진 후에도 끝내 검을 거두지 않았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장렬한 산화를 택해 무인의 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육(六), 난투(亂鬪).
 남부 무림은 술렁거렸다.
 상식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비겁한 자들에게 손을 빌려주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놈들이 똘똘 뭉치고 있어. 우리도 뭉쳐야 돼!”
 “모두 힘을 합치자. 장산지혈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어야 해.”
 남부 무인들은 장강이북 말씨를 쓰는 무인은 무조건 척살했다.
 “왜? 수적으로 불리해? 이게 너희 놈들이 한 짓이야. 인과응보. 너희가 한 짓이니 죽어도 억울해하지는 마라!”
 북부 무림도 술렁였다.
 한 사람의 죽음도 백 사람의 죽음으로 둔갑되어 번져 나갔다.
 “그놈들에게 죽은 사람이 백 명은 넘는데.”
 “그놈들이 현판을 내리고 하나의 방파로 통합했다는 소문은 들었나? 북부 무림을 초토화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나불대고 다닌다는데.”
 북부 무림은 남부 무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강이남 말씨를 쓰는 무인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도륙했다.
 중원은 장강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된 것이다.
 북부 무림은 북부 무림대로, 남부 무림은 남부 무림대로······ 복수나 은원은 퇴색되어 버렸고, 생존을 위해 싸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개방 등등 무림을 영도하는 문파의 장문인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사태를 수습해 보고자 애썼다.
 그러나 정작 무인들의 흥분을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초절정고수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신들과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변해가는 세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칠(七), 천하대란(天下大亂).
 북부 무림인들이 모여 북무림(北武林)을 탄생시켰다.
 삼백일흔다섯 개 문파, 총인원이 만여 명에 육박하는 거대 집단이 무림사 이래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침묵을 지키던 초절정고수들이 움직인 것은 그때다.
 그들은 단숨에 북무림을 장악했다.
 북부 무림인들 중에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무신(武神)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며, 무인치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북무림을 영도할 사람이 누구인지에 쏠렸다.
 감히 병기를 들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초인이 무려 일곱 명이나 되니 적어도 두세 명쯤은 죽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그런데 사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그들은 회합을 가진 지 단 반각 만에 검문(劍門) 문주를 수장으로 택했다. 그렇다고 다른 초인들이 북무림을 뛰쳐나간 것도 아니다. 그들은 너무도 쉽게 검문주의 수족을 자처했다.
 역시 초인들은 생각부터가 다른 것인가. 세상의 영리에는 초월한 사람들인가. 북무림의 수장이라면 황제만큼이나 탐이 나는 자리일 텐데.
 남부 무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북무림에 대항할 세력으로 남무림(南武林)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북무림처럼 초절정고수를 초빙하여 남무림을 맡겼다.
 소도문(素刀門) 문주, 그리고 소도문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대의 거인들 칠 인.
 북검문(北劍門)과 남도문(南刀門)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들은 장강을 경계 삼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십 년······ 삼십 년 동안이나······.
 
 
 1장 혈룡사(血龍死) ― 혈룡, 죽다
 
 
 1
 
 
 “너무 조용해도 기분 나쁘군.”
 혈이(血二)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다. 걸려도 아주 재수없게 걸렸다. 협곡(峽谷)에서 당하는 암격(暗擊)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스르릉······!
 입으로 말고삐를 물며 쌍검을 뽑아 들었다.
 혈삼(血三)은 화살을 꺼내 강궁에 재웠다.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몽롱한 눈길을 하고 있지만, 그의 활에서 바람 소리가 일어나면 어김없이 한 생명이 낙화(洛花)한다.
 단 한 대의 화살도 허공으로 흘려보낸 적이 없는 신궁(神弓)은 조용히 낙화시킬 꽃을 찾았다.
 “초장부터 난장(亂場)이란 말이지.”
 혈사(血四)는 황소의 두개골도 단숨에 갈라 버리는 대부(大斧)를 움켜잡았다.
 혈팔(血八)과 혈구(血九)는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손에는 창을 들고 좌우측으로 물러섰다. 혈오(血五)는 판관필(判官筆)을, 혈육(血六), 혈칠(血七)은 검을 뽑았다.
 단 한 번의 패배도 모르던 자들이 성명병기를 뽑아 들고 어둠으로 짙게 물든 협곡을 노려보았다.
 그때 침중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펴보던 혈일(血一), 혈귀대주(血鬼隊主)가 입을 열었다.
 “전력 질주한다. 낙오자는 버린다.”
 항거를 불응케 하는 단호한 음성이었다.
 “그러지 말고 싸워봅시다. 뱃창시에 기름기가 잔뜩 낀 놈들인데 뭐가 무서워 도망친단 말이오.”
 혈사가 대부를 윙윙 소리 나게 휘두르며 말했다.
 그는 몸집이 다른 사람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거구다. 그가 휘두르는 거대한 묵부(墨斧)도 보통 사람들은 들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는 금강역사를 연상시킨다.
 “정보가 샜다. 우연히 마주친 놈들이 아냐. 철저하게 준비하고 기다린 놈들이다. 우리 중 절반은 뼈를 묻게 될 게다. 그것도 운이 따라준다는 전제하에서.”
 혈귀대(血鬼隊), 그들에게 대주는 신이다.
 대주의 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힘들다면 힘들었고, 이긴다면 이겼다. 백사십칠전(百四十七戰) 백사십칠승(百四十七勝)의 놀라운 신화도, 이천여 명에 이르는 고혼(孤魂)을 그려낸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이 단 아홉 명이 이뤄낸 걸작이기에 혈귀대의 악명은 중원을 떨쳐 울렸다.
 사람들은 혈귀대가 천랑대(天狼隊) 십육조(十六組)였다는 사실을 잊었다. 공식적으로는 북검문(北劍門)에 삼대(三隊)밖에 없다는 사실도 망각했다.
 북검문에는 사대(四隊)가 있다. 그중에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대(隊)를 구성한 것은 혈귀대밖에 없으며, 혈귀대원들의 무공은 개개인이 다른 대의 대주와 버금간다. 혈귀대는 북검문 최강 무인들이 응집된 곳이며, 혈귀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혈귀대다.
 혈귀대주, 그가 현재의 혈귀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가 말한다. 이곳에서 혈귀대 중 절반은 뼈를 묻을 것이라고. 운이 따라준다면.
 그런 소리를 들었지만 혈귀대원들 중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혈팔, 혈구, 앞을 뚫어라. 혈삼, 뒤를 바짝 따르며 엄호. 혈이, 혈오는 좌측을 맡고, 혈육, 혈칠은 우측을 맡는다. 혈사는 나와 함께 뒤에 선다.”
 혈귀대원들이 즉시 움직였다.
 이것이 혈귀대의 율법이다. 대주의 명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것.
 그러나 이번에는 이의가 제기됐다.
 “대주, 내가 혈사하고 뒤에 서고 싶은데. 마상 싸움을 할 때마다 느낀 건데, 이놈의 판관필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고.”
 혈오가 명에 따라 좌측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대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혈오의 말이 맞다. 판관필은 근접전에서는 지닌바 세기(細技)를 십 할 이상 떨쳐 낼 수 있지만 마상 전투에서는 크게 위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나 판관필을 사용하는 사람이 혈오라면 다르다.
 백여 번이 넘는 싸움 중에서 마상 전투가 차지한 비율은 절반에 이른다.
 혈오는 제 몫을 훌륭히 해냈다. 말 등에서 솟구쳐 적을 격살하고, 새가 둥지를 찾아들 듯 치달리는 말 위로 유유히 돌아오는 모습을 보자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대주, 저놈과는 손발을 많이 맞춰봐서 저놈과 함께하면 일당백이거든. 내가 뒤에 서면 안 될까?”
 이미 우측에서 자리를 잡고 싸움 준비를 끝낸 혈칠이 말했다.
 대주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들의 염려가 무엇인지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후미를 양보할 수 없다.
 삼첨양익진(三尖兩翼陣)은 혈귀대가 애용하는 진법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펼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어느 부분을 맡겨도 완벽하게 변화를 그려낸다.
 가릴 곳이 전혀 없는 개활지에서 다수의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탈출로를 열어주는 구명진법.
 삼첨양익진은 창칼로 무장한 마차가 돌진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이끌어낸다.
 물론 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 약한 사람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진법이다.
 하나, 삼첨양익진에도 허점은 있다. 후미는 전면과 측면에 비해서 공격을 받는 압박감이 훨씬 가중된다. 탈출에 성공했다고 생각될 즈음, 적의 모든 역량은 후미로 밀려든다.
 지금까지 후미를 맡았던 사람들 중에서 몸이 성한 채로 탈출을 한 사람은 없었다. 반드시 피를 땅에 묻혀 제사를 지낸 다음에야 빠져나오곤 했다.
 하물며 지금은 협곡이다. 측면은 압박감이 훨씬 줄어드는 반면에 전면과 후미는 막대한 압력을 받게 된다. 전면은 그나마 세 명이 붙어 있고 활의 지원까지 받으니 다행이지만, 후미는 본신의 무공만으로 견뎌내야 한다.
 혈귀대 중 절반이 죽어야 한다면, 제일 먼저 죽는 사람은 후미를 맡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출(出)!”
 혈귀대주의 음성이 쩌렁 울렸다.
 
 적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사단은 벌써 일어났다.
 히히히힝! 히히힝!
 말들이 거친 울음을 토해내며 꺼꾸러졌다. 검에 찔린 것도, 화살이나 암기에 맞은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앞발을 올리더니 거품을 쏟아내며 나뒹굴었다.
 “이런 제길! 뭐야, 이거!”
 혈팔과 혈구는 말안장을 발판 삼아 허공으로 도약한 다음, 사뿐히 내려섰다.
 “광마산(狂痲散)!”
 혈육이 쓰러진 말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빌어먹을! 이놈의 영감탱이를! 감히 혈귀대에게 수작을 부려?”
 혈사가 눈을 부라리며 뒤를 쳐다봤다.
 
 말에게 여물을 먹인 객잔에서 협곡까지 오는 동안 반 시진이 걸렸다. 광마산의 잠복 시간이 반 시진이니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가.
 “진형을 흩뜨리지 마라! 급출(急出)!”
 혈귀대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협곡 위에서 한 명, 두 명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다. 양팔을 환히 드러낸 가죽 옷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무명 끈을 질끈 동여맨 자들이다.
 ‘상조문(喪弔門)······.’
 저미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북검문에 혈귀대가 있다면 남도문(南刀門)에는 상조문이 있다. 혈귀대가 지나간 자리에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면, 상조문이 지나간 자리는 시신 썩는 냄새만 풍긴다.
 서로 간에 악명은 익히 들어왔지만 부딪치기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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