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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마스터 1권 (1)

2016.08.22 조회 7,997 추천 67


 #Prologue
 
 
 
 
 제기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저기에 있다!”
 “붙잡아! 그걸 뺏겨서는 안 돼!”
 무수히 쏟아지는 총알 세례에 벽 뒤로 숨었지만 이거 참······ 꽤 난감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죽을 것 같았으면 이미 수년 전에 죽고도 남았을 나다.
 그러나 지금처럼 최악인 경우도 드물다.
 “내 손에 남은 거라곤 이 빌어먹을 AK-47과 수류탄 하나군.”
 빌어먹을 FSB(러시아 연방 안전국) 새끼들! 이 새끼들 의뢰를 받을 때면 항상 이렇다.
 그들은 완벽하지만 나처럼 ‘전장의 들개’라고 불리는 용병들을 부릴 때면 항상 말썽이 일어난다. 특히 지금처럼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의뢰를 맡길 땐 말이다.
 일주일 전, 북한에서 러시아로 망명한 과학자가 있다.
 뭘 개발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러시아 입장에선 그 깡패 국가인 부카니스탄 과학자의 망명을 받아 줄 정도로 꽤 대단한 것을 개발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쨌든 내 의뢰는 어떤 테러리스트 단체에서 그 과학자를 납치했으니 되찾아 달라는 거였고, 이렇게 성실하게 의뢰를 수행해 주고 있는데······ 니미럴, 알고 보니 이쪽은 미끼였나 보다.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인당 선금으로 3백만 루블Rub을 준다기에 좋아라 했던 것은 젠장맞을 일이다.
 덕분에 옆에 팔······ 그것도 한 조각도 안 될 만큼 남아 있는 프랑스 출신의 보리스 녀석도 불안하다고 했지만 다 내 탓이오라고 해야지. 왜냐면 이 의뢰를 받자고 한 게 나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체코 출신의 리더인 안토니오 자식이 하자고 했고, 내가 힘을 실어 준 것뿐이지만.
 어쨌든 우리 쪽은 미끼였고, FSB 새끼들은 제대로 침투한 모양인데······ 그쪽도 썩 결말이 좋지가 않은 듯했다.
 왜냐면 납치된 과학자 자식은 이미 죽은 다음이었고, 내 옆에 비교적 온전하게 대가리가 뚫려 죽은 자식이 남긴 이 작은 상자 안에 과학자가 남긴 유품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우릴 미끼로 만들었으면 임무라도 잘 수행하든가!
 전멸이다, 전멸!
 저쪽도! 이쪽도!
 왜 이쪽도 전멸이냐고?
 “빌어먹을······ 시야가 뿌옇군.”
 복부에 총알 한 방, 다리에 한 방······.
 옆구리엔 수류탄의 파편이 박혀 있다.
 조사했을 땐 이딴 거지 같은 AK-47 따윌 사용하는 가난한 테러리스트 집단인 줄 알았는데, 막상 침투하니까 이 새끼들 장비가 보통이 아니다.
 하나 정도는 뺏어 보고 싶긴 했지만······ 워낙 최신 장비여서 그런지 난 차라리 AK 같은 이쪽의 빌어먹을 장비가 손에 익다. 총알이 떨어지고, 분명히 테러리스트의 손에 쥐인 장비를 뺏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최신과 낙후된 두 개의 장비 중 이 빌어먹을 장비를 먼저 손에 집었으니 말이다.
 “이젠 끝이다, 시바Shiva.”
 “이 개호로 잡놈의 새끼가! 날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6년 전.
 인도 쪽에 볼일이 있어서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재수가 없었는지 하이재킹Hijacking을 시도하려는 놈들과 부딪쳤다. 그때 내가 맨손으로 열여섯 명을 몽땅 제압한 것 때문에 인도의 파괴신의 이름을 붙여 날 그렇게 부르는 놈들이 많아졌다.
 아니, 이 얼굴 허연 놈의 새끼들은 얼굴 노란 사람 인종도 구분 못 하나!
 그리고 시바라니! 발음이 안 좋다고! 난 대한민국 사람이야! 내게 시바는 욕이라고!
 “나왔다!”
 “이런 썅!”
 시바라고 부르기에 얼떨결에 모습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죽어 줄 순 없다.
 ‘총알이 있는 한 일단 다 죽이고 본다!’
 총을 난사한다.
 하지만 결코 허투루 쏘진 않았다.
 내게 사격을 가르쳐 준 사람은 정말 쪼잔한 인간이었다.
 멕시코 출신의 흑인이었는데,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사격을 가르치고 세 번째 의뢰를 받던 그 해에 테러리스트의 총질에 머리가 뚫려 죽었으니까. 하지만 그 인간이 가르쳐 준 건 확실하게 기억한다.
 총알 한 발에 한 새끼!
 그게 자신 없으면 숨어서 벽 뒤에서 손가락만 빼 놓고 쏘라고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크억-!”
 “억-!”
 총질에 두 놈이 쓰러진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아, 아하하······.”
 니미럴! 총알이 두 발밖에 없다!
 이 얼마나 지랄맞은 일인가!
 “끝났군.”
 발목에 스페츠나츠 나이프가 있긴 하지만 총질하는 놈들을 다 죽이고 도주할 수 있으면 그게 신이지 인간이겠는가? 뭐······ 내 위치가 들키지 않았고, 몸만 정상이었다면 반 정도는 썰어 버릴 자신이 있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아니다.
 “젠장······ ‘큰어른’이 보고 싶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난 지금쯤 매우 잘나가는 집안에서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었겠지.
 아, 큰어른이 누구냐고? 그건 우리 ‘일가’에서 제일 큰어르신을 부르는 호칭으로 내게 있어선 할머니가 되시는 분이다. 못 본 지 10년······ 아니, 15년인가? 아니면 훨씬 그 이상? 제기랄, 기억도 잘 안 나네.
 어쨌든 이젠······ 큰어른도 만나게 되겠지.
 “크큭······ 그냥 갈 순 없지. 이 새끼들아, 그 거지 같은 별명이 붙기 전에 내 별명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나 본데.”
 크레이지 칠드런Crazy Children.
 전장에 버려져 용병이 된 ‘로스트 차일드Lost Child’들 중에서 10대 초반에 적들을 도륙하며 활동했던 미친 꼬맹이들 중에서도 제일 미친 꼬맹이가 바로 나였다고!
 네놈들은 나처럼 수류탄 까고, 적들에게 개돌할 수 있어?
 “잡았다. 그만 항복······ 허, 헙! 도망가!”
 “어딜 도망가게? 같이 가자고.”
 지금처럼 말이야!
 콰콰쾅-!
 그렇게 내 손에 들린 수류탄은 나와 적 그리고 과학자가 남긴 유품까지 한 번에 날렸다.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에휴······ 찾았다.”
 DMZ 지역에서 몰래 산삼이나 캐고 다니는 심마니······가 아니라 현역 군인.
 중사(진)을 달고 싶은······ 아니, 제대로 달고 싶었던, 장기에 실패한 현역 하사.
 하사 도나리. 그게 지금의 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크······ 빌어먹을, 여기가 어디야?”
 정신을 차려 보니 정체 모를 산중이다.
 “두통이 장난 아니군.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데······.”
 산중이라는 것까진 확실하게 알겠고, 한 가지 확실하게 더 알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의뢰를 받은 모스크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면 모스크바는 이렇게 더울 리가 없으니까.
 “내가 산 것이 확실하다면 수류탄을 안고 살아난 것이 이번이 두 번째가 되는 건가? 나란 놈은 운도 좋군.”
 과거 납치를 당하고 해외로 팔려 가게 되었을 때, 한 테러리스트 단체가 그를 구해 준 적이 있었다.
 무슨 테러리스트가 사람을 구해 주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거기에 사연이 있다면 다르다.
 그가 팔려 간 곳은 중국 연변.
 그곳엔 어린아이를 사고팔아 장기를 매매하고 인육을 만들어 돈을 버는 병원이 있었다. 그가 팔려 간 곳이 그러한 곳이었는데, 운이 좋은지 나쁜지 아이를 거래하는 곳에 테러리스트 수장의 아들이 납치되어 오는 기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그곳에 납치된 모든 아이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구출되었고······.
 훗날 그 아이들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세뇌되어 크레이지 칠드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살 테러 및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암살자가 되어 전장의 악몽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크레이지 칠드런 중 여덟 번째로 수류탄을 이용한 자살 테러에 이용되었고, 그때 운 좋게 살아남아 어떤 용병에게 ‘제대로’ 구출되었지만 결국 그때 배운 살인 기술로 전장을 떠도는 용병이 되고 만다.
 후에 듣자 하니 크레이지 칠드런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아! 그 정보는 그에 의해 테러리스트가 전부 몰살당하면서 알아낸 것이다.
 “그땐 운 좋게 살아남았다지만 이번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아니, 그보다 누군가 살려 준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돌봐나 줄 것이지 왜 산중에 버려두고······ 응?”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목소리.
 마치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맑은 소년의 목소리는 확실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 목소리가 왜······ 이, 이 팔은 왜 이리 가늘어? 그리고 내 가슴의 상처는 어디로 갔고! 서, 설마 뭔가 인체 실험을 당하고 버려진 거야?”
 당황하던 찰나에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기억이 떠오른다.
 “익숙해, 여긴 익숙해······ 여기로 가면······ 에, 에이······ 서, 설마······.”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이, 있다.”
 그는 발견했다.
 “사, 산삼! 시, 심봤다······?”
 산삼이라니?
 갑자기 산삼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내가 어렸을 적에······.”
 그것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속의 일이다.
 
 강원도 태백시 외진 곳의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는 장뇌삼을 심고 재배해 판매하는 일가가 존재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중국과 일본으로 장뇌삼을 수출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꽤 유명한 그곳에는 외부 사람들이 모르는 치열한 후계 다툼이 있었다.
 일가의 다음 큰어른으로 지정된 장남 도명학이 지난날 교통사고로 아내와 함께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아들이 있긴 했지만 그 아들은 너무나도 어렸고, 차남 도명운과 삼남 도명수, 장녀 도명희 역시 장남 도명학이 사고로 죽기 전에 후계자의 자리에 있었기에 그들에게 먼저 후계가 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가의 큰어른은 그들을 제쳐 두고 손자인 도나리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 이유인즉 차남 도명운은 서울에서 큰 회사를 차려 이미 자수성가를 한 다음이었고, 삼남 도명수는 지나친 도박 중독으로 일가를 망하게 할 수도 있었으며, 장녀는 해외로 유학을 다녀와 이미 디자이너로서 성공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일가의 큰어른 자리는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후계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 수백억에 달한다. 거기에 일손도 별로 쓰지 않기에 그 큰돈을 분할하지도 않고 큰어른이 전부 가져간다.
 차남 도명운은 일가에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었고, 삼남 도명수는 도박 중독 때문에 큰 빚을 져서 돈이 필요했으며, 장녀 도명희는 유명한 남자 아이돌 그룹에 빠져서 그들과 나날이 육욕의 파티를 벌이다가 지금은 디자이너로서의 감을 잃고 망해 가는 도중이었기에 돈이 필요했다.
 사실······ 그랬다.
 왜 장남 도명학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했을까?
 왜 상대 트럭이 설 수 있었음에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은 큰어른 몰래 사악한 계획을 세웠다.
 바로 후계인 도명학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그들은 사악한 계획으로 도명학을 죽이고, 후계 자리를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큰어른은 그들이 한 짓을 간파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큰어른이 그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도 그녀의 자비심 때문이었다.
 장남을 죽였어도······ 그들 역시 큰어른의 자식이기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음 비극을 만들어 냈다.
 독······.
 바로 독이다.
 자식들의 비열하고 잔악한 행동에 고뇌를 하던 큰어른은 너무나도 심력을 소모하는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주치의가 항상 붙어 있었는데, 그들은 주치의를 매수하여 큰어른이 먹는 약에 독을 풀었다.
 큰어른은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고 말았고······ 차남이 후계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 큰어른과 어린 도나리를 허름한 별장에 가둬 두었다.
 형제를 살해하긴 했지만 부모인 큰어른과 아직 어린 조카마저 죽이려니 양심의 가책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안하긴 했다.
 의식불명이긴 하지만 큰어른이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그들은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바로 도나리 납치 계획.
 최소한 큰어른이 깨어났을 때, 진짜 후계자인 도나리가 없다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흔들 수 있을 테니까.
 전에도 그러했듯이 큰어른은 자신들을 용서할 테니까!
 그들은 그렇게 잔인한 세 번째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는 이루어지는 일이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도나리가 쓰러진 큰어른과 함께 일가에서 내쫓기듯이 물러나 별장에 갇혀 살 때, 큰어른의 건강을 회복시켜 드리겠다고 몰래 별장에서 뛰쳐나와 일가의 선산先山을 오르게 만들었다.
 그곳은 일가의 사유지였기에 잠입이 쉽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는 의외로 그런 것을 쉽게 해내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수월하게 선산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틀을 해맨 끝에 진짜 산삼을 발견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을 큰어른에게 드리진 못했지.”
 산삼을 캐고 내려오던 중에 납치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있던 지옥······.
 “뭐야······ 설마 그 과학자가 발명한 것이 타임머신이라도 된다는 거야? 설마······ 그 부카니스탄 인간이?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선 설명이 되지 않았다.
 기억 속에 확실히 존재하는 이곳의 지형 그리고 산삼.
 그리고 자신의 팔과 다리는 아무리 봐도 아이의 것.
 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자 그 얼굴도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무엇보다 가슴의 상처.
 수류탄을 안고 자살 테러를 했을 때 생긴 거대한 상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쿡쿡 쑤시고 아팠는데······ 지금은 그런 상처조차 없다.
 “놀랍군. 타임머신이라니, 대단해! 그런데······.”
 타임머신이 맞는다면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하산하게 되면 분명히 성인 장정의 남자 셋이 자신을 납치하여 중국으로 팔 것이고, 팔려 간 이후엔 테러리스트에 구출되어 크레이지 칠드런이 되고 만다.
 “그럴 순 없지. 난 다신 크레이지 칠드런이 되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여기서 잡혀가면 큰어른의 생존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장담하며 짐작하건대, 자신의 납치는 분명히 일가의 그들이 벌인 짓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흠······ 하지만 지금의 몸이라면 성인 남자는 감당할 수 없어. 아무런 대책 없이 내려갔다간······ 아!”
 그는 씨익 웃었다.
 “방심······ 그래. 방심은 악마가 내린 최악의 약점이지.”
 
 그는 하산을 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날 찾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군. 그때 마주친 녀석들은 세 놈이었지만 실제로 날 찾으러 돌아다닌 녀석들은 수십 명이야.’
 몰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 숨어서 확인한 그는 현재 선산에 있는 장정들의 숫자가 세 명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세 명을 만난 것도 적은 숫자였군. 그러면 세 명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생각한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천천히 하산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를 발견한 세 명의 장정이 다가왔다.
 “어이쿠, 도련님.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일가의 모든 사람들이 걱정했잖습니까.”
 ‘배영식······.’
 그는 일가에서 고용한 남자로 아버지인 도명학의 측근이었던 자의 아들이다. 평소에 그를 도련님, 도련님 하고 부르며 친한 척을 했지만 과거 이곳에서 그를 발견한 자신은 어린아이의 발달된 촉(?)으로 그가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그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납치되었다.
 “배 아저씨!”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는 산중에서 길을 잃었다가 친한 아저씨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달려갔다.
 “도련님!”
 배영식은 그를 반기는 척 양팔을 벌렸고, 그는 달려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남겼다.
 “어, 어어어어······.”
 고통의 신음조차 내뱉지 못할 막강한 충격!
 남자라면 절대 버티지 못할 그 충격의 낭심 차기(!)에 맞은 그는 자신의 국부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 이 꼬맹이가-!”
 다른 두 놈은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 일가의 다른 후계자가 보낸 깡패 정도라고 인식하면 될 것이다.
 “핫-!”
 그는 주머니에 숨겨 놓은 주먹만 한 돌을 그들에게 던졌다.
 원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배운 암살 기술로 나이프를 던져 미간에 꽂는 기술이지만 나이프가 없으니 돌로 대신한 것이고, 나이프를 대신한다고 해도 위력은 충분히 보장된다.
 “크, 크억!”
 ‘어이쿠, 아프겠다.’
 미간에 던졌는데 둘 다 눈에 맞았다.
 어렸을 때 배운 기술이라 어린아이에게도 꽤 적합한 기술이긴 하지만 잔인한 살인 기술은 사용한 지 꽤 오래되었기에 실수로 표적이 빗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 좋았다.
 “너희도 똑같이 돼라!”
 작은 파워로 성인이라도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는 낭심 차기를 두 장정에게 날린 그는 재빨리 달아났다.
 어린아이라고 주변에 원호를 바라는 외침을 내지르지 않은 것이 그들이 한 최고의 실수였다.
 ‘좋아, 이젠······ 큰어른을 데리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다른 후계들이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음이 확실하니 큰어른을 데리고 달아나야만 했다.
 수중에 산삼도 있겠다, 그것으로 도망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테지. 하지만 어린아이의 손으로 산삼을 판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후계자 수업을 받은 기억이 조금씩 살아나 확신하건대 지금 수중에 있는 산삼은 최소 1백 년에서 최대 110년은 된 값비싼 것으로, 요즘처럼 백 년 근 산삼이 거의 씨가 말랐을 시기인 지금은 그 등장 자체가 요란하기 그지없으니 제대로 처분하지 못했다간 필시 다른 후계자들에게 도주가 들키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그렇지!’
 고민하던 차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밑에서 일하던 자들 중에는 배영식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배신을 한 자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도명학은 평소에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라도 있었다는 듯이 항상 같은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를 믿으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선 그 말을 따르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말밖에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여차하면······ 그를 죽여서 도망치기라도 해야지.’
 어린아이의 몸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어렸을 적에 배운 살인 기술밖에 없다.
 그것은 원래 어린아이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기술들은 아니지만, 피가 증발하고 뼈가 깎일 정도로 훈련을 받았으니 몸이 아니라 영혼이 그 기술을 기억하고 있다.
 
 
 
 “도, 도련님! 그, 그리고 큰어른까지?”
 일가의 외진 곳에 있던 추복구라는 이름의 늙은 남자는 큰어른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아버지에게 엄청 충직했던 자라고 들었다. 특히 일가의 가세가 흔들려 직원들이 모두 떠나갔을 때에도 그만큼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는 얘긴 그에 대한 신뢰도를 매우 높여 주었다.
 “추 할아버지, 우릴 도와주세요.”
 “이, 이게 무슨 일······ 어, 어쨌든 들어오시죠.”
 추복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재빨리 그들을 방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고, 도나리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 이런 몹쓸······! 영식이 그놈이······ 그놈이 감히 도련님을 배신하다니!”
 “추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목소리가 너무 커요.”
 “이, 이런······ 죄송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추복구는 그래도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들었다는 듯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휴우······ 예전에 명학 어른(어른 : 일가를 이끄는 사람을 총칭하는 호칭)께서 저에게 수십억이 들어 있는 통장과 함께 열쇠를 한 개 맡기신 적이 있습니다. 훗날 무슨 일이 생기면 도련님께 그것을 전달하라고 말이지요.”
 “아버지께서요?”
 “예. 그리고 명학 어른은 수십억이 든 통장으로 시골 외딴 곳에 다른 사람 몰래 고아원과 요양원을 지어 지원을 하라고 명하셨고, 반드시 그곳은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군요.”
 “그 이유라면······.”
 그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추복구는 통장과 열쇠를 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도련님과 큰어른께서는 이제 서로 떨어져 지내셔야 합니다. 도련님은 강원도 철원에 있는 고아원에······ 그리고 큰어른께선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요양원으로 말이지요. 모두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로 일가의 배신자들이 찾기 어려운 곳입니다.”
 “큰어른과······ 떨어져야 하는 겁니까?”
 “예.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
 큰어른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게 어떻게 얻은 두 번째 기회인데 다시 떨어지게 되다니······ 하지만 두 사람 모두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곳에 가고 난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서로 떨어진 사이에 큰어른이 깨어나셔야 할 것인데······ 아마 큰어른이 깨어나지 못하시면 영원히 일가를 되찾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서류상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들은 법적 서류상으론 완벽하게 일가를 물려받았고, 그것이 조작된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원래 일가의 주인이었던 큰어른이 깨어나야만 한다.
 “아, 혹시 이것이 큰어른의 회복에 도움이 될 순 없을까요?”
 “이, 이건-! 사, 산삼이 아닙니까? 이 크기! 이 향! 이 정도라면 백 년이 넘은······ 도련님! 이걸 어디에서 찾으신 겁니까?”
 “큰어른의 건강을 회복시켜 드리기 위해서 몰래 일가의 선산에 들어가서 찾았어요.”
 “허······ 백 년 이상의 산삼은 하늘이 내려 주어야만 얻는 것이 가능할 터인데······ 혹시 도련님은 꿈에서 무언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무슨 소릴 들으시고 자기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하시진 않았습니까?”
 “······그런 비슷한 느낌은 받았습니다.”
 “허허······ 이런 우연이······ 도련님은 혹시 일가의 시조 어른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잘 모릅니다.”
 추복구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일가의 시조이신 남소명 어른께선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땅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남사고南師古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남사고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역학易學, 풍수風水, 천문天文, 복서卜筮, 관상觀相의 비결에 도통하여 그의 예언은 꼭 들어맞았다고 합니다. 특히 풍수학風水學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으로, 전설에 의하면 그가 여우에게 정기를 빼앗겨 스승에게 조언을 청하니 스승은 여우가 입맞춤을 할 때 입에 무언가 들어오거든 그대로 달아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사고는 스승의 조언대로 여우가 입맞춤을 하여 입속에 무언가를 넣자 바로 달아났고, 그러던 도중에 넘어져 그 무언가를 삼키고 땅을 바라본 후에 땅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무슨······.”
 “일가의 시조 남소명 어른은 그 남사고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그 능력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알려졌고, 그 능력으로 천년백삼千年白蔘이라고 불리는 삼의 씨앗을 얻어 다른 장뇌삼처럼 인삼의 씨앗이 아닌 영초靈草의 씨앗으로 장뇌삼을 재배하니 일가가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전설에 불과한 것이지만······ 도련님께서 남사고와 남소명 어른의 능력처럼 땅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어쩌면 도련님께선······.”
 “이, 일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 추복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천년백삼을 천년백삼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산삼이 정말 천 년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형적으로 수명이 길게 된 3백~4백 년 묵은 산삼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니 씨앗의 효력이 영원히 지속될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천년백삼 씨앗의 기운이 점점 쇠하여 일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 천년백삼을 얻어 일가를 무너트릴 정도는 아닙니다. 거기에 제일 중요한 건 요즘은 백 년 근 산삼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아닙니까? 북쪽으로 올라가 북한처럼 인적이 드문 낙후된 곳의 산이나 비무장지대처럼 반백 년이 넘게 사람이 다닌 적이 없는 곳이 아니고서야······.”
 ‘비무장지대!’
 북한이라면 모를까, 비무장지대는 아예 갈 수 없는 곳은 아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 열쇠는 뭔가요?”
 그의 물음에 추복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명학 어른의 이야기를 기억해 보면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선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일도 있고 하니 당분간 선산의 경계는 매우 엄해지겠지요. 열쇠를 쓰기 위해선 훗날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열쇠를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잘 알겠어요.”
 그는 추복구가 데려온 사람과 함께 트럭을 타고 일가의 땅을 벗어났다.
 ‘내······ 지금은 떠나지만 언젠가 일가의 땅을 되찾고야 말겠다. 목을 씻고 기다려라. 천년백삼······ 그것이나 그 이상이 되는 물건을 가지고 정당한 주인이 그 땅을 되찾을 테니까.’
 그는 그렇게 일가의 땅을 떠났다.
 
 그리고 그 시각······.
 빵빵-!
 차가 무수히 돌아다니는 도심의 거리에서 한 차가 클랙슨Klaxon을 울리며 급브레이크를 밟고 제자리에 섰다.
 “사, 사람을 친 거 아냐?”
 쿵-! 하는 느낌을 받았기에 사람을 친 줄 알고 크게 놀라 차에서 내리니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무언가를 받았는데······ 심지어 차의 범퍼조차 무언가에 부딪친 상처가 없었다.
 “요새 내가 과로했나······.”
 그는 눈을 비비며 다시 차에 탑승했고, 길을 떠났다.
 
 그 시간······.
 그와 같은 일이 사람이 다니는 도심 속에서도 많이 일어났다. 그것은 지하철, 버스를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거리를 걷던 사람도 무언가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고 넘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있었다.
 파직-!
 무언가의 형상이 일그러지더니 마치 전기가 새어 나가 스파크가 일듯 번쩍이면서 그 형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반투명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약 수년······.
 그것은 시간이 흐르자 완벽한 형상을 이뤄 냈고, 기괴한 생명체가 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은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
 하늘, 바닷속, 땅속, 깊은 산중과 같은 곳이었고······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 일.
 하지만 그것은 서서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각 국가의 기밀 단체들이나 대기업 산하의 민간 기업들이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놈은 뭐야?
 
 
 
 
 “하······ 제기랄.”
 그에게 있어서는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기회였다.
 하사 도나리.
 그는 인적이 닿지 않는 비무장지대에서 일가의 시조처럼 천년백삼과 같은 삼의 씨앗을 얻어 일가와 경쟁을 한다면 언젠가 가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육군 부사관 시험을 봐서 입대했다.
 사실 일가의 땅을 되찾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 그에게 있어서 미래이자 과거에 있었던 ‘전장의 들개’였던 삶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지식을 주진 못했다.
 특히 공부에 있어선 최악이었다.
 기초 상식 결여에 용병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던 그는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뇌가 망가져 있었고, 학교의 수업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기에 공부는 진작 포기하여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처음부터 생각했던 군 입대를 통해서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부사관은 4년.
 그에게는 매우 특별한 능력인 ‘땅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었기에 천년백삼은 4년 안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천년백삼은커녕 백 년 근 산삼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땅의 목소리를 들어 40~50년 근 산삼은 수도 없이 찾았고, 다른 영초도 제법 많이 찾았지만······ 하아······ 결국 찾아내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진급을 하여 장기를 노리고 있었는데······.
 설마 그런 사고가 터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급시험을 앞둔 며칠 전.
 똘아이 같은 한 신병이 들어왔다.
 사실 그 녀석이 처음부터 똘아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겉보기엔 너무 평범해서 그냥 평범한 신병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녀석의 이상한 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중대장은 도나리에게 그는 관심 사병이니 유심히 지켜보라고 몰래 언질을 주었다.
 그래서 잘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개자식이 사격 훈련 날 그만 총구를 돌리고 만 것이다.
 도나리는 전장의 들개로서의 삶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총구가 노려지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 녀석의 총을 걷어차고, 그 자식을 개 패듯이 패 버렸다.
 그땐 당연히 소대장도, 중대장도, 심지어 연대장도 잘했다고 했다. 총기 사고가 나는 것보단 차라리 그 녀석 하나를 패는 것이 나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설마 그 개자식이 그 일 때문에 휴가 날에 집에서 유서를 써 놓고 자살 소동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러 가지 정황상 또 평소 그 자식의 성격상 그놈은 절대 자살을 할 만한 놈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을 때린 도나리를 엿 먹이려고 벌인 연기다. 하지만 사회에서 뭘 알아주겠는가?
 안 그래도 군에 대한 이미지가 좋질 않다 보니 ‘옳다구나’ 하고 물어뜯기만 바빴다.
 그 때문에 유서에 언급된 도나리부터 연대장, 심지어 사단장까지 줄줄이 옷을 벗거나 어디 후방으로 좌천되어 평생 진급을 노릴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진급을 하기 위해서 도나리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가?
 과거의 경험으로 그 삼엄한 경계를 뚫고―도나리에겐 그다지 삼엄하지 않았다― 몰래 비무장지대로 들어가 산삼을 캐 와 연대장과 사단장에게 바쳐서 샤바샤바(?)하여 좋게 보이고, 사단장의 딸이 수능을 앞두고 있기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네이티브Native 악센트로 영어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연대장이 옷을 벗고, 사단장이 후방으로 좌천되어 샤바샤바의 모든 것이 무효가 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 사건으로 도나리는 진급에 대한 자격을 잃게 되었고 불명예 전역을 안 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아······ 그 개자식······ 사회에 나가서 마주치기만 하면 죽었다.”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비무장지대에서 발견한 머리 두 개의 쌍두사······를 뛰어넘는 삼두사三頭蛇로 담근 술을 병째로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전 세계에서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거의 유일한 곳이다 보니 기괴한 생명체들이 많았다.
 쌍두사는 들어 봤어도 삼두사라니?
 더구나 이 녀석은 잡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빠르기는 프로 복서가 날리는 잽처럼 빨랐고, 움직임은 얌체 공처럼 예측할 수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머리가 세 개다 보니 한 손씩 양손으로 머리를 제압해도 한 개의 머리가 남았기에 물릴 뻔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물릴 뻔한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는 화가 나서 바로 삼두사로 술을 담가 버렸고, 가끔 이 녀석을 꺼내서 마시다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힘과 정력이 수십 배는 솟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을 겪곤 했다.
 전에 약간 마셨다가 넘치는 파워를 주체하지 못하여 새벽까지 완전군장으로 돌았는데 체력이 남아돌았고, 비×그라 뺨치는 효능 때문에 아래 물건이 몇 시간 동안 전혀 죽질 않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제쳐 두더라도 술에 취하고 싶었다.
 사실 뱀술만큼 독한 것도 없기에 그런 거라도 먹으면서 좀 기분이라도 풀어야지······ 어려서부터 좇아 온 일가의 땅을 되찾는 꿈이 여기에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냔 말이다.
 “어이, 도 하사.”
 “김 소위님 아니십니까?”
 자작을 하고 있을 때 그가 혼자 살고 있는 BEQ(Bachelor Enlisted’s Quarter : 부사관 숙소)로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김영광 소위가 들어왔다.
 “쯧쯧, 몰골 하고는······.”
 그가 BEQ에서 이러고 있을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김영광 소위는 혀를 끌끌 차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봉투에서 맥주와 마른안주를 꺼냈다.
 “숙소에선 금주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눈앞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자네가 할 소린가? 쯧, 같이 한잔하세나. 난 소준 별로니까 맥주로 바꾸자고.”
 김영광 소위의 말에 도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뱀술을 장롱 안에 넣었다.
 “쯧쯧, 한 잔 받게나.”
 “예······ 김 소위님.”
 김영광 소위가 한 잔을 따라 주자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곤 잔을 받아 바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 인생 참 거지 같습니다, 김 소위님.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그 개 같은 새끼가 총기 사고 일으킬 뻔한 걸 막은 게 죕니까?”
 “나도 아네. 그걸 누가 모르겠나? 제길, 상황 판단 못 하고 특종이나 잡았다고 생각한 빌어먹을 기자 새끼들 때문에 우리만 엿 먹은 거지.”
 김영광 소위도 혀를 끌끌 차며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사실 김영광 소위도 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물먹은 사람 중 하나다.
 자살 소동을 벌였던 관심 사병이 그의 소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관심 사병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명예 전역······ 즉, 며칠 후면 이등병으로 전역하고 만다.
 하······ 정말 개 같은 일이다.
 몇 주 후면 그는 중위로 진급할 수 있는 중위(진)을 달 수 있는 상태고, 그보다 더 몇 주 뒤면 전역을 앞둔 상태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김 소위님······ 애는 어떡합니까?”
 “안 그래도 전역 준비하느라 벌여 둔 일이 있어서 애들 먹고살 길은 생겼는데······ 하아······ 사실 나도 죽겠네. 퇴직금을 받아야지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니미럴······ 그 개 같은 새끼가 여럿 물먹이는군요.”
 그 둘은 한동안 ‘씨발’이니 ‘개 좆 같은 놈’이니 하는 욕설을 마구잡이로 내뱉은 후 진탕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일가의 땅을 되찾기 위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길이 막혀 버린 도나리와, 전역을 앞두고 불명예 전역을 해서 애들 먹고살기가 막막해진 김영광 소위······.
 사실 이유야 어쨌든 모든 일의 시발점이 도나리에게 있는 이상 원망도 할 법한데, 그래도 김영광 소위는 그를 크게 원망하진 않는 듯했다.
 그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고, 심지어 자신이라면 더 심하게 패 죽여 놨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자넨 할 일 있나? 이번 사건으로 장기도 안 되었으니······.”
 김영광 소위는 도나리의 개인 사정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고아 출신으로 자원하여 부사관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고아 출신이니만큼 전역을 하면 갈 곳도 없어지고 먹고살 길이 더 막막할 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뭐, 굶어 죽기야 하겠습니까?”
 “쯧쯧, 갈 곳이 없으면 나와 같이 일을 해 보든가. 안 그래도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하긴 했네.”
 “예? 무슨 일을 한다는 겁니까?”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김영광 소위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도나리의 방인 것을 알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혹시, ‘신미래대체에너지개발부’라는 곳을 아는가?”
 “예? 저는 처음 듣는 곳입니다만······ 뭐 하는 뎁니까? 간판을 들어 보니 공무원인 것 같은데······ 뭐,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에이, 내가 설마 그런 걸 하겠다고 했겠는가? 그런 게 아니라 신미래대체에너지개발부는 자네도 잘 아는 국내 그룹 부동의 1위인 신성그룹에서 만든 곳이라네.”
 “신성그룹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나리의 숙소에도 신성그룹이 만든 전자 제품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전자와 같은 반도체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1~10위 사이를 오가고 건설, 화학, 의료 기기 등등 손을 안 댄 부분이 없다는 대기업이기도 했다.
 “그렇다네. 그 신성그룹에서 많은 하청 업체들과 은밀하게 손을 잡는데, 이상하게도 그 하청 업체들이 평범한 회사 같지가 않았단 말이야.”
 “하청이면 하청이지 뭐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도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영광 소위가 더욱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네도 28사 81연대에 있던 강진혁 중사에 대해서 들은 적 있지?”
 “아······ 그 사람 꽤 유명하지 않습니까.”
 강진혁 중사는 1년 전에 일어난 GOP에서 사격전을 벌인 북한의 도발에 용맹하게 맞서 싸운 사람이다. 들리는 얘기론 북쪽에서 총성이 들려오자 바로 대응사격을 날렸고, 그가 쏜 총으로 북한군 일곱 명이 크게 다쳤다나?
 도발을 하기 위해서 단 몇 발의 총질을 했다가 반대로 수 명이 다치게 되어 북한이 개망신을 당한 바로 그 사건의 주인공으로, 국가 위상을 높였다 하여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까지 받았다.
 “그래. 그 양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나? 바로 신성그룹의 하청 업체에 있어!”
 “예?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곳에 하청으로 갔답니까?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면 앞날이 아주 그냥 쫙- 뚫린 고속도로일 텐데.”
 “그래! 내가 그게 이상해서 조사를 해 봤더니 군인들 중에서 수십 명이나 신성그룹의 하청에 들어갔더군.”
 “하······ 신성그룹에서 이젠 군수물자까지 담당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야. 그들은 전쟁을 하고 있네.”
 “······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쟁이라니?
 “자네 몰래 비무장지대로 삼 캐러 나갔지?”
 “그, 그거야······ 연대장님하고 사단장님이 그렇게 성화를 부리시니······.”
 진급 때문에 잘 보이려고 삼을 한번 주었더니 몰래 비무장지대로 나가는 것을 완전히 묵인하여 자주 나가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완벽하게 그 행동을 허락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보니 몰래 다녀오는 것만 허용해 주었는데, 김영광 소위는 이미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했나?”
 “아, 가끔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땅의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가끔 비무장지대에서 무언가 기괴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긴 했는데, 그냥 땅의 목소리가 이상한 소릴 내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전쟁을 하는 소리였다네.”
 “예에-? 에이, 김 소위님, 많이 취하신 모양입니다.”
 “아, 글쎄! 진짜라니까!”
 김영광 소위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자네가 믿질 않으니 내가 알아낸 것을 확실하게 바로 말하겠네. 그들이 벌이는 전쟁은 외계 괴물과의 전쟁이네. 정확하게 외계에서 온 외계인인지 우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괴물들과 싸우고 있다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괴물들의 정체가 아니야. 바로 그 괴물들이 죽을 때 떨어뜨리는 에너지지.”
 “에너지요?”
 “그렇다네, 에너지! 괴물들은 죽으면 신체의 일부분을 제외하곤 몽땅 재가 되어 사라지는데, 그 신체의 일부분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물질이며 과학적으로도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고 할 수 있네. 무엇보다 재가 된 시체에서 가끔 다양한 색을 지닌 돌이 발견되는데 그게 아주 중요하네. 그것은 거대한 공장이 1년 동안 아무런 걱정 없이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만큼의 전기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속성의 에너지를 품고 있어서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 중이라고도 하지.”
 “······.”
 “아니! 자네 지금 내 말을 못 믿는 건가? 난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네! 에잉······ 믿기 싫음 관두시게.”
 “아, 아뇨. 믿습니다. 믿죠.”
 사실 도나리는 이 허무맹랑한 소릴 믿지 않았지만 김영광 소위의 표정이 워낙 심각했던지라, 여기서 믿지 않는다 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을 걱정하여 믿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믿는다니 다행이네. 어쨌든 신성그룹에선 그 괴물들을 사냥할 수 있는 용맹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네. 하청 업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제가 김 소위님이 말한 그 용맹한 사람이라는 겁니까?”
 “자네가 용맹하지 않으면 누가 용맹한 사람인가? 비무장지대를 제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그리고 자네만 한 인재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다네.”
 “그게 무슨······.”
 김영광 소위는 빙긋 웃었다.
 “비무장지대의 지리를 자네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나? 지도? 물론 지도도 좋긴 하지.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본 것과는 또 다르지 않은가?”
 “그야 뭐······.”
 도나리도 그 넓은 비무장지대 전부를 다녀 본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만 다녀온 것뿐이지만 그가 띄워 주니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자, 잠깐만요, 김 소위님. 혹시 비무장지대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시다고 한 겁니까?”
 “내가 지금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 그거 아닌가?”
 “서, 설마······ 그 신성그룹의 하청이 되면 비무장지대를 오갈 수 있는 권한이라도 생기는 겁니까?”
 “그렇다네. 국가에서 신성그룹에만 허락한 특권이지.”
 “허, 헙-!”
 그 소릴 듣는 순간 번개가 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과 함께 생각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지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하, 하겠습니다! 같이하겠습니다!”
 “하하, 이 사람 이거, 사람 말 안 믿을 때는 언제고······ 그런데 말이야······.”
 김영광 소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조금 투자를 해야 되는데······.”
 
 김영광 소위는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되어 퇴직금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적금을 들어 모아 놓은 돈이 2천만 원가량이 있었고, 도나리의 퇴직금 약간을 합치면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 도나리는 무슨 수주 같은 것을 받는 줄 알았다. 아니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사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성그룹의 신미래대체에너지개발부는 하청 업체로 등록을 요청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이력을 조사한다고 한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일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서 ‘괴물’이라고 부를 정도의 생명체를 사냥할 수 있는 정도인지 검토한 후에 자격증을 내준다고 한다.
 김영광 소위는 전직 군인이면 가산점이 꽤 되고, 도나리처럼 개 같은 관심 사병이 돌린 총구를 민첩하게 걷어찰 정도면 거의 합격은 당연하다며 좋아라 했다.
 그렇다면 돈은 어디에 쓰는가?
 그건 바로 장빗값이다.
 
 -장비······라면 총을 쓰는 겁니까?
 -이 사람이 미쳤나? 비무장지대에서 총질이라니! 북한 놈들 귀가 뻥 하고 뚫려 있을 텐데 총질을 했다가 전쟁이 나게?
 -상대는 괴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들어 보니 맹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터인데, 그러면 무슨 칼로 사냥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네.
 
 김영광 소위가 말하길 괴물을 사냥하는 데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초 괴물들이 발견되었을 당시엔 비무장지대에서 벗어난 장소였다는데, 그 괴물을 죽이고 나니 사체에서 기괴한 물건이 떨어졌다고 한다.
 바로 전에 언급했던 괴물의 신체 일부와 다양한 색을 지닌 돌이다.
 다양한 색을 지닌 돌은 하청 업체의 계약으로 신성그룹에서 회수해 가고 괴물의 신체는 하청 업체들이 수거해 가는데, 그 괴물들의 신체로 물건을 만들면 훌륭한 사냥 도구가 완성된다고 한다.
 
 -대부분 칼이나 활이네. 요즘 시대에 무슨 칼이나 활이냐고 말하고 싶지만 전쟁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더구나······.
 
 한 하청 업체가 대량의 사냥 욕심을 부려 엽총을 들고 비무장지대에 깊숙이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무장지대에서 일정 거리 이상 깊숙이 들어가면 총기나 화기 모두가 망가졌다고 한다.
 그것을 조사하던 신성그룹은 비무장지대 안쪽에 무언가 특이한 에너지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물질을 ‘분해’시키는 현상이 일어나며, 생명체가 아닌 이상 모든 물건이 망가진다고 발표했다.
 생명체가 아닌 물건······ 그러니, 괴물의 신체로 사냥 도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최고의 무기가 된다.
 ‘푸젠福建성 우이武夷산(복건성 무이산)에서 벌였던 생존 전투와 얼핏 비슷하구먼.’
 어렸을 적 테러리스트에게 구출되어 지독한 훈련을 받던 곳이다.
 그 당시 그곳에서 구출된 아이는 여섯. 우이산엔 그들을 포함한 쉰다섯 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고, 마지막 생존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숫자는 열일곱 명뿐이다.
 생존 전투라는 이름답게 아이들의 손에 쥐인 것은 칼 한 자루.
 그리고 적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곳에는 테러리스트들과 거래를 하다 배신을 한 마피아 같은 놈들이 있었는데, 마지막 훈련이라는 이유로 칼 한 자루만으로 열흘 밤낮으로 그들과 싸웠다.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칼로 온갖 부비 트랩들을 만들었고, 그들 중엔 조금이라도 멀리서 적의 움직임을 제압하기 위해서 활을 만든 아이도 있었다.
 도나리의 경우엔······ 간단하고 현명하게도 마피아의 총을 빼앗아서 싸웠지만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것과 같이 낙후된 사냥 도구만으로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무슨 장빗값이 몇천이나 하는 겁니까?
 -생각을 해 보게. 괴물들의 신체가 많겠나? 없겠지? 그러니까 그것으로 만든 무기들이 얼마나 있겠나? 그나마 그 무기를 파는 유일한 곳인, 비무장지대 근처에 자리 잡은 암시장에 나온 것이 전부라네. 그것도 대부분 낡고 망가지기 직전의 물건들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없는 것보다 낫다면 차라리 그냥 식칼이라도······.
 -자넨 지금 그 괴물들을 얕보는 건가? 평범한 칼은 그놈들의 피부에 박히지도 않는다고 들었네.
 -그건 그냥 소문이지 않습니까? 괴물도 생물이라면 칼 박히고 무사할 것 같지는 않은데······.
 -하아······ 괴물이라고 하니 감이 오질 않나? 그럼 식칼 하나로 호랑이나 멧돼지를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
 
 없는 것보다 나은 수준이라면 그거나 식칼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 말을 더 했다간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빗값에 사용되는 돈은 김영광 소위가 대부분 내질 않던가?
 도나리의 퇴직금은 지금까지 그가 모아 놓은 돈에 비하면 그냥 살짝 얹혀 가는 수준이다.
 뭐······ 당분간은 딱히 돈에 구애받는 몸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통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금액을 추복구가 고아원과 요양원을 짓는 데 사용했지만 지금은 다른 후원자들도 꽤 있고, 남은 돈은 학비나 생활비로 지출했지만 그것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니 꽤 많은 돈이 남아 있는 셈이다.
 도나리에게 있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일가의 땅을 되찾는 것.
 아껴서 쓰면 수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어도, 일가의 땅을 되찾는 금액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반드시······ 반드시 천년백삼을 찾겠어. 그리고······ 일가를 빼앗은 자들을 무너트리겠다.’
 그렇게 다짐한 도나리는 조용히 전역 날을 기다렸다.
 당분간은 말이다.
 
 
 
 “자네가 도나리 하사인가?”
 “필승! 그렇습니다.”
 전역일을 몇 달 앞둔 시기에 일개 하사에 불과한 도나리를 새로 부임한 연대장이 직접 지명까지 하며 찾아왔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은 용무가 있어도 엉덩이가 무거운지라 자기가 있는 곳으로 부르는 법인데······ 왠지 입맛이 썼다.
 “반갑네. 난 새로 부임해 온 연대장 김무옥이라고 하네.”
 김무옥 대령이 악수를 청하자 도나리는 입맛이 쓴 것을 느끼면서도 손을 뻗어 그의 악수를 받았다.
 “하사 도나리입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흠흠, 그게 말일세······.”
 그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살짝 돌렸고, 도나리는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평소 앙숙이었던 3소대의 소대장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 저 같잖은 자식이······.’
 3소대 소대장 민철중은 가끔 보는 유머 사이트에서나 볼 법한 대단한 놈이다.
 부대 발령받은 지 사흘 만에 행보관(행정보급관)에게 ‘자네가 행보관인가? 반갑네.’라고 말한 전설적인 인물. 더구나 도나리의 중대에 있는 행보관은 말년에 병사들 작업이나 시키고 대충 관리만 하여 편하게 보내기 위해서 육본(육군 본부)에서 스스로 그 자리로 내려온 무려 ‘원사(진)’님이셨다(드물긴 하지만 실제로 있는 일).
 처음 그의 발언에 행보관은 황당하고 기가 차 무슨 말을 잇지도 못했고, 혹시 그의 가까운 혈연에 장성급의 인물이 있나 먼저 곰곰이 생각을 했지만 그 자식은 그냥 멍청한 녀석이었다.
 당연히 행보관은 넌지시 대대장에게 살짝 한숨만 쉬며 그 얘길 했다. 모든 장교들에게 진돗개 1호급의 비상이 걸렸고 모든 부사관들이 그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도나리 역시 그 멍청한 자식과 연관되지 않으려 무시를 하는 둥 무난히 애를 썼지만, 한 번은 훈련 중에 대외비급의 기밀을 흘리는 그를 발견하고 앞에서 온갖 욕설로 마구 깠다가 서로 앙숙이 되었다.
 하지만 더욱 앙숙이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 멍청한 놈이 촉이 꽤 좋은지 도나리가 비무장지대로 가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싫어하던 도나리가 월북을 했다고 판단,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바로 사단장에게 그것을 찔렀고······ 뭐, 어떻게 되었겠는가?
 자신의 몸보신을 위해서 비무장지대로 산삼을 캐러 간 도나리인 것을 뻔히 아니 처벌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고 체계를 무시한 그만 엄청 까였다. 그의 행동이 자신을 엿 먹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에 도나리는 그를 증오하다시피 싫어했고, 그 일로 엄청 까인 민철중 소위 역시 도나리라면 치를 떨면서 싫어했다.
 그 앙숙 관계의 끝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민철중 소위의 승리였다.
 관심 사병 자살 소동으로 인해서 온갖 매스컴이 미쳐 날뛰었을 때, 음성변조에 모자이크 처리까지 하면서 도나리의 평소 행실에 대해서 ‘거짓’ 인터뷰를 한 장교가 그라는 것을 도나리도 얼핏 짐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증만이 아니라 물증까지 있었다면 반대로 도나리의 승리가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심증밖에 없었기에 어떻게 복수는 할 수가 없었다.
 “자네······ 흠흠, 비무장······ 흠흠······.”
 “여긴 사람 귀가 많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얘기하시죠. 아, 커피 한 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흠흠, 그러세.”
 도나리는 연대장이나 사단장을 접대(?)했던 경험이 많은지라 능숙하게 그를 대했다.
 ‘저 같잖은 놈.’
 커피를 타러 가던 도중 민철중 소위를 노려보았다.
 아마 이번 연대장에게 몰래 언질을 주어 전역까지 남은 시간 동안 엿을 먹이려고 월북이니 뭐니 그딴 헛소리를 지껄였겠지. 하지만 그런 말을 쉽게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무도 없다. 거기에 사실 이번에 부임해 온 연대장은 전 연대장과 육사 동기로 친분이 깊은 사이라고 들었다.
 전 연대장에게 몇 마디 언질을 들었다면 도나리를 비무장지대에서 산삼을 잘 캐는 우수한 심마니······라고 먼저 기억할 것이다.
 “들어가겠습니다.”
 도나리는 양손에 하나씩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자넨 잠깐 나가 보게.”
 “필승! 수고하십시오.”
 중대장은 눈치를 슬슬 보며 밖으로 나갔고, 도나리가 의자에 앉자 김무옥 대령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무거운 입을 떼기 시작했다.
 “흠······ 자네······ 비무장지대로 자주 ‘임무’ 수행을 하러 나간다고 들었네.”
 “이 대령님께 들으신 겁니까?”
 “그 친구에게는 자네에 대해서 정확하게 듣지 못했네. 하지만 민 소위가 얘기해 준 덕분에 자네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었지.”
 ‘역시······.’
 도나리는 짜증이 나서 머리를 긁적이려고 했지만 대령 앞에서 무례한 행동은 할 수 없었기에 주먹을 살짝 쥐었다.
 “연대장님께서도 ‘그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요즘엔 매스컴에서 군 사고로 인해 워낙 말이 많다 보니 보는 눈이 많아져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30년 근이라면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런 건 내 위치에 있으면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 있네. 은밀히 뇌물로 바치려는 놈들도 있었고.”
 “그렇다면······.”
 도나리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졌다.
 “백 년 근을 구해다 주게.”
 “······!”
 김무옥 대령의 말에 도나리는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런 욕심 많은 인간을 봤나! 백 년 근 산삼을 날로 처먹으려고 해? 이런 욕심이 많은 인간에겐 산삼은 절대 줄 수 없어!’
 그건 산에 대한 모독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백 년 근 산삼도 산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천년백삼의 씨앗으로 장뇌삼을 재배했던 일가의 자손으로 산을 존중하고 산신을 믿는 도나리에게 있어선 백 년 근 산삼은 절대로 욕심이 많은 인간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불가능합니다. 제가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적이 꽤 있다지만 백 년 근 산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진 않았을 거 아닌가?”
 “······.”
 이 인간 미친 건가?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북한군도 가끔 군사훈련 및 수색 정찰로 그곳을 돌아다닌다. 그곳을 ‘군인’이 돌아다닌다······?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사살이다. 아니, 사살되지 않더라도 납치되어 북한에서 남한의 도발이라고 국지전을 벌일 수 있는 계기를 주게 될 것이다.
 뭐······ 그곳에 들어갈 사람이 도나리인 이상 발각되어도 쉽게 잡혀 주진 않겠지만 어쨌든 남한의 군인이 북쪽으로 가까이 갔다는 것 자체가 군 헌법으로 재판을 받을 만한 일이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네. 하지만······ 부탁하네.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네.”
 “사정이라면······.”
 도나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무옥 대령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신분이라면 그저 ‘명령’만 내려도 해야 하는 일인데, 도나리에게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부탁하고 있다.
 “이 사진을 봐 주겠나?”
 김무옥 대령은 도나리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 주었다.
 “부인······ 되시는 분입니까? 그리고 옆의 여성분은······.”
 사진에는 김무옥 대령의 아내로 보이는 나이 든 여인과 젊은 여성이 함께 찍혀 있었다.
 “맞네. 내 아내와 딸일세.”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더 있었다.
 이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치고는 밝다고 볼 수 없었다. 왜냐면 사진의 배경은 병원이었고, 소녀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가족의 사진이네. 하지만 이렇게 따로 찍을 수밖에 없었지.”
 “······부인과 사별하신 겁니까?”
 “······.”
 도나리의 말에 김무옥 대령은 입을 다물었다.
 ‘부인과 사별을 했는데······ 어째서 손녀와 딸이 함께 찍은 사진이 아닌 것을 가족사진으로······ 아!’
 잠깐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김무옥 대령의 딸이 죽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고······인 겁니까?”
 “아니네. 그건······ 내 아내 쪽 가계에 있던 희귀한 병 때문이라네.”
 “희귀한 병요?”
 “후우······ 병명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병일세. 발병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아무런 일이 없지만 한번 발병하고 나면 몸의 기력이 점점 사라져 죽고 마는 희귀한 병······ 아내와 딸은 비슷한 시기에 같이 발병했고, 같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
 “······.”
 “그리고······ 그리고 이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그 병이 발병하고 말았다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 작고······ 작은 아이가 말이야!”
 김무옥 대령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도나리는 그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 비슷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 독일에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술이 개발되었다고 들었네. 몇 년 전의 과거와는 달리 드디어 수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지. 하지만 그 수술을 버티기 위해선 최소한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어야 한다네. 내 손녀는······ 그러기엔 너무 늦었지.”
 “그래서 산삼을 원하신 것이군요.”
 “그렇다네. 기력 회복을 위해서 다양한 것을 먹이고, 이런 저런 일도 다 해 보았지만 산삼만이 그나마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네. 하지만 평범한 산삼을 수십 개 먹어도 그 이상의 건강은 회복되질 않았네. 백 년 근 산삼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그 어떤 시장에서도 그런 것은 쉽게 팔질 않더군.”
 김무옥 대령에게 있어서 도나리는 손녀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 때문에 전부터 전 연대장에게 계속 도나리의 정체를 물어보았지만 전 연대장은 매정하게도 그것을 알려 주지 않았다. 뭐······ 자신의 안위와 도나리를 걱정한 것일 테지만······.
 ‘내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건가?’
 도나리는 솔직히 거절을 하려고 했다.
 아무리 사람 생명을 위해서라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북쪽으로 간다고 해도 백 년 근 산삼이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가족’이라는 단위로 생각하면······ 거절을 할 용기도 없어진다.
 ‘큰어른······.’
 문득 큰어른이 생각났다.
 가짜 후계자들에 의해서 중독되어 쓰러지고 다신 눈을 뜨지 못했던 큰어른······.
 ‘내가 거절을 하면······ 그래서 저 아이가 죽게 된다면······ 김 대령은······ 나와 똑같이 되겠지?’
 세상에 홀로 남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일가친척이라도 있겠지만······ 중요한 팩트는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젠장······ 과거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전장의 들개로서의 삶은 꽤 많은 도덕심을 희생시켜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돈을 위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현대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직업이니 말이다. 하루하루 의뢰 한 개를 끝낼 때마다 도덕심은 사라져만 가고, 아주 어려서부터 살인 교육을 받아 왔던 도나리는 그러한 도덕심 및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도와 공감력이 거의 떨어진 상태였는데, 어쩐 일인지 과거로 돌아오고 난 이후론 조금씩 그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산삼이 있다고 확신할 순 없습니다.”
 “자네······!”
 도나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휴가를 주십시오. 한······ 일주일 정도면 되겠군요. 한번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끙······ 미쳤지. 내가 왜 이렇게 성실해진 거냐.”
 김무옥 대령이 준 휴가로 한동안 자유로워진 도나리는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아닌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군으로 향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에선 아무리 북쪽으로 향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도나리가 다닌 비무장지대의 환경으론 백 년 이상 묵은 산삼이 쉽게 발견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죽겠구먼. 이번엔 정말 목숨을 걸어야 될 거야.”
 정말이지 이번 일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군인들의 근무 현황 및 감시초소 위치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그나마 안전하게 비무장지대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인데, 이쪽은 그러한 정보가 아예 없다.
 처음부터 정보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곳이라면 애초에 군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을 정도니 말이다.
 테러리스트의 크레이지 칠드런으로, 그리고 전장의 들개가 되어 전장을 떠돌아다닌 들개였더라도 분단국가의 탄탄한 국경선을 아무런 정보 없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딱 한 번이라면······ 딱 한 번이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진짜 이번 한 번만이야. 전역만 하면 자격을 얻고 드나들 테니까.”
 도나리는 신발 끈을 꽉 조이며, 허리에 묶어 놓은 작은 배낭 안에 든 장비를 다시 확인했다.
 딱히 장비가 많은 것은 아니다. 복귀 날까지 그곳을 탐색할 수 있게 버틸 수 있는 육포와 같은 간단한 식량과 물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나이프 한 개뿐이다.
 별거 아닌 장비지만 그 이상을 기대할 수도 없다.
 무게도 무게일뿐더러, 다른 장비는 사용했다간 금방 흔적을 남길 테니까.
 “자, 그럼 가 볼까?”
 민간에서 파는 지도의 한계까지 도달한 이후론 모든 것이 미지다.
 이 이후엔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마주치는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북한군은 당연하고······ 심지어 남한군까지도.
 
 “하아······ 또 아니네.”
 도나리는 선조 남사고와 일가의 시조 남소명 어른의 능력을 이어받은 특이체질을 지녔다.
 여우가 남긴 무언가를 삼키고 얻은 땅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 전설, 전승, 비과학의 끝을 달리는 허무맹랑한 소리 혹은 정신병에 걸린 것과 같은 일을 체험하지만 실제로 땅의 목소리는 산신이 내리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가득한 영초로 다다를 수 있는 길까지 안내해 준다.
 “적하수오······ 40년산 정도인 것 같은데, 거기에 자연산이라고 치면 시중에서도 꽤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도나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40년산 적하수오를 그냥 지나쳤다.
 확실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이런 것이 굉장히 쉽게 발견된다. 아니, 40년 동안 살며 영초가 되어 가는 도중에 있는 적하수오가 사람은 물론이요 야생동물에게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쉽게 발견된다고 하기 어렵지만, 땅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는 도나리는 벌써 이런 약초만이 아니라 백 년 근 산삼처럼 이미 영초가 된 것들도 꽤나 발견했다.
 “흠······ 김 소위님의 말에 의하면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괴물들로 인해 괴물 사냥꾼들이 꽤 몰린 모양인데······ 그런데도 영초가 이렇게나 많다니······.”
 도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도나리는 그들과 방문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괴물을 사냥하여 부산물을 얻기 위한 사냥꾼과 약초를 캐기 위한 심마니와 같은 부류들은 똑같은 풍경에서도 보는 것이 다르고, 무엇보다 군인들과 같은 자들이 대부분 괴물 사냥꾼이 된다면 산삼을 봐도 단순한 풀때기 정도로밖에 인식이 안 되니 보고도 지나치게 된다.
 “뭐, 많으면 좋지. 거의 빈 가방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가방의 70%가 전부 영초니까.”
 도나리의 가방 안에는 전부 향이 그윽한 영초가 가득했다.
 야음을 타 휴전선 철망을 넘어 출발한 지 사흘, 그 짧은 시간에 발견한 것들이 모두 영초지만······ 아쉽게도 김무옥 대령이 요구한 백 년 근 산삼은 발견되지 않았다.
 “슬슬 위험한데······.”
 백 년 근 산삼을 발견하기 위해서라지만 북쪽으로 너무 접근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라면 북한군이 도나리를 발견할 수도 있는, 위험이 매우 높은 수준까지 도달했다. 영초들을 찾아내느라 꽤 시간이 걸렸다곤 하나 군인으로 단련된 도나리의 신체 조건이라면 이 정도 속도도 매우 느리게 온 것이다.
 거기에 도나리는 군인으로서만 단련된 것이 아니다.
 고아원에서 고아로 위장하여 살아가던 중 도나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위험한 전장에서 살아온 도나리는 평화를 잘 모른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다른 고아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움찔 놀라서 깨어날 정도로 민감했으니, 평화의 시간도 그에겐 계속 위기를 느끼는 연장선상에 놓여 어려서부터 매일같이 신체 단련을 하며 몸을 긴장시키고 발달을 시켜 왔다.
 그 때문에 과거 때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월등히,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그 어떤 국가의 특수부대 요원보다 뛰어난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리고 곤란한데······.”
 도나리는 가방 안에 숨겨 놓은 나이프를 꺼내 꼬나 쥐었다.
 ‘뭔가 붙었군. 북한군인가?’
 바짝 긴장했다.
 북한군이라면 꽤 곤란하다.
 이쪽의 장비라곤 나이프 한 자루가 끝. 반대로 북한군의 경우엔 화기를 소지하고 있다. 화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남한군도 위험도가 비슷하지만 남한군은 그나마 얘기가 통하니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기절시키면 그만이다.
 ‘총을 쓰게 할 순 없지. 총소리가 들렸다간 바로 국지전이 시작될 수도 있는 곳이 이곳이니까.’
 도나리는 능글맞게 자신을 좇는 시선을 모른 척했다.
 기회를 봐서 등을 잡는다.
 처음 생각했던 방법도 쓸 만하지만 될 수 있으면 아예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상대의 시선이 자신의 등으로만 향하게 하다, 기회를 잡으면 모습을 감춰 등을 잡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
 ‘가만······ 그런데 이상하잖아?’
 느껴지는 시선은 하나다.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는데 고작 한 명이 움직인다고?
 최소 분대 단위로 움직일 텐데, 어째서 시선이 하나일까?
 도나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슬쩍 위로 올리며 허공에 물었다.
 “동업잡니까?”
 “······.”
 상대는 도나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동업자.
 정부로부터 비무장지대 출입의 허가를 받은 사람. 바로 괴물 사냥꾼을 뜻하는 말이다. 도나리는 아직 괴물 사냥꾼은 아니지만 일단은 그렇게 믿게 하는 것이 중요했고, 전역 이후의 진로를 그렇게 잡았기에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괴물 사냥꾼인 모양이군. 이쪽에서 먼저 물었는데, 암구호로 응대하지 않으니 말이야.’
 혹시나 낙오된 북한군이나 남한군일 가능성을 생각했는데, 암구호를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상대는 괴물 사냥꾼이 분명했다.
 “초보에 초행이라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남쪽으로 가는 길을······.”
 아직 시간이 있기에 비무장지대에서 나갈 생각은 없지만 상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때, 상대가 빠르게 적의를 품고 도나리에게 달려들었다.
 ‘왜······!’
 왜라는 생각을 하며 잠깐 방심했지만 머리로 방심한 것과는 달리 몸은 이미 달려드는 상대로부터 민첩하게 피했다.
 “큭-!”
 분명히 거리를 벌려 두었는데 옆구리가 살짝 베였다.
 그리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달빛이 비쳐, 적의를 가진 자가 가진 기다란 곡도가 달빛에 반사된다.
 ‘칼······ 꽤 커. 곡도曲刀의 일종인가? 제길, 괴물 사냥꾼들이 시대착오적인 무기를 사용한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역시 총보다 살벌하군.’
 전장에서 총을 자주 봐서 그런지 총보다 칼이 더 살벌하게 느껴진다.
 물론 위험도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지만······ 도나리의 손 한 뼘보다 조금 큰 나이프에 비해 상대의 곡도가 압도적으로 더 크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괴물 사냥꾼이라는 놈들은 이렇게나 신체 능력이 좋은 놈들인가? 얼핏 보이는 형상으론 키가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놈인 것 같은데.’
 어려서부터 단련한 신체보다 괴물 사냥꾼의 능력이 더 우수하게 느껴졌다.
 특히 폭발적인 도약력으로 품에 파고드는 능력만큼은 도나리의 신체 능력보다 수배는 뛰어나다.
 ‘이런 긴장감은 오랜만이군. 마치 블랙 아이Black Eye와 마주친 느낌이야.’
 전장의 들개로 살다 보면 좋든 싫든 국가 단체나 테러리스트들과 안 좋은 연으로 자주 얽힌다.
 블랙 아이는 IS(Islamic State)의 숨겨진 하부 조직 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도나리가 크레이지 칠드런이었던 시절과 다를 것 없는 병사들을 키워 놓는 것에 성공했다.
 감정을 최대한 죽이고, 오로지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살인 병기.
 그들은 크레이지 칠드런 때와는 달리 특수한 약물을 주입받아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어 전장에서 만나면 총알이 무수히 박혀도 죽을 때까지 싸우던 괴물들이다.
 고통을 모르기에 전장에서 극한으로 단련된 병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발휘하던 블랙 아이.
 눈앞의 상대는 그 블랙 아이의 일원들과 닮았다.
 ‘젠장! 괴물 사냥꾼들은 원래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은 거야? 제 밥줄 때문에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 근방에 있던 휴전선 철책을 넘어 비무장지대로 넘나든 지 수년.
 그사이 도나리는 괴물이라고 부를 존재와는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것은 최초에 도나리가 김영광 소위의 말을 부정했듯이 ‘괴물’이라는 존재는 없다는 증거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괴물의 숫자가 적다는 뜻이리라.
 전자라면 모를까, 후자라면 경쟁자들은 눈엣가시다.
 경쟁자의 숫자가 줄어야 그만큼 자신이 괴물을 발견하여 사냥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서 살인이라는 행위를 하기에 최적화된 장소다.
 자격을 가진 극히 소수만 들어올 수 있는 지역.
 사람을 죽여서 은밀하게 묻어 버리면 그 시체는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발견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
 상대는 곡도를 꼬나 쥐고 다시 한 번 폭발적인 도약력으로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다.
 ‘도약력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위라······.’
 도나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감이 전신을 감싼다. 하지만······ 그것은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전장······!’
 고아원에서 지내던 평화의 시기는 오히려 무한의 긴장감만 쌓게 만드는 장소였다.
 실제 위협이 없는 곳에서 쌓여 가는 긴장감······ 발산할 기회가 없는 긴장감은 계속해서 쌓여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긴장감이 발산되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결국 들개란 소린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상대의 폭발적인 도약력.
 “신체 능력으로 압도당해서 죽을 정도였으면 이미 예전에 죽었어!”
 도나리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곡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나리의 신체가 앞으로 휘어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푹-!
 도나리의 나이프가 상대의 목덜미에 박혔다. 그리고 나이프를 한번 비틀자 상대는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풀썩 쓰러졌다.
 “흥, 신체 능력에 비해서 경험이 미숙하군······ 어?”
 상대가 쓰러지자 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초······ 하지만 어디······ 억! 큰일 날 뻔했다!”
 상대를 죽이면서 한 걸음만 더 앞으로 갔어도 영초를 발로 밟을 뻔했다.
 전투의 긴장감에 땅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땅의 목소리에 신경을 썼다면 그의 목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을 정도로 상대는 강자였다.
 “어디 보자······ 이, 이 모양은······ 삼이군. 꺼내서 볼까? 이 정도 크기면 몇 년······ 헙!”
 삼을 꺼낸 도나리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2, 2백 년!”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지를 뻔했다.
 천년백삼을 얻기 위해서 정갈한 신체로 산의 정기를 받으려면 귀한 삼을 발견하면 큰 소리로 외쳐야 하지만 삼 앞에서 사람을 죽인 주제에 무슨 ‘심봤다!’를 외칠 수 있겠는가? 이미 부정한 기운을 받은 상태라면 차라리 다른 괴물 사냥꾼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나 숨기는 것이 낫다.
 “이런 귀한 삼이······ 끙······ 주긴 정말로 아깝지만······.”
 김무옥 대령이 원한 것은 백 년 근의 산삼이지만 그것도 발견하기 쉬운 게 아니고, 여기선 아쉬워도 이것을 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가족을 잃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도나리는 2백 년 근 산삼을 따로 분류하여 소중히 품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괴물 사냥꾼을 처리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경악할 만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시, 시체가 재가 되고 있어?”
 괴물 사냥꾼의 시체가 점점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 사냥꾼의 시체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게 되자 그 밑엔 인간의 정강이뼈로 보이는 물건과 적색의 돌멩이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괴물의 신체······ 그리고 돌······.”
 김영광 소위가 한 말이 떠올랐다.
 괴물은 죽으면 신체의 일부분과 가끔 희귀한 확률로 다양한 색의 원석을 떨어트린다고.
 “이게······ 그 괴물?”
 괴물······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사람의 형상이었다. 키가 조금 작고, 약간 독특한 체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것은 사람이었다.
 
 
 
 
 #마지막 정리
 
 
 
 
 “큰어른, 오랜만이에요.”
 도나리는 여수의 한 납골당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지난 며칠간의 이야기를 했다.
 김무옥 대령의 부탁을 받고 백 년 이상 묵은 산삼을 찾아 비무장지대로 떠난 이후, 생각보다 빨리 산삼을 구하게 되어 짬을 내서 큰어른의 유골을 봉안한 곳에 인사차 온 것이다.
 2년 전.
 가짜 후계자들에게 독에 당해 쓰러진 큰어른은 결국 독을 이겨 내지 못했다.
 일가의 전설에서나 나오는 천년백삼 같은 산삼이 아닌 백 년 근 산삼은 나이 지긋한 큰어른의 생을 조금 더 연명시켜 주기만 했을 뿐, 결국 그 눈을 뜨게 하진 못했던 것이다.
 이로써 도나리는 신뢰할 수 있는 혈육을 완전히 잃게 된 셈이었고, 일가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막히게 된 셈이다.
 “예정이 빠듯했으면 전역 이후에나 찾아뵈려고 했지만······ 운 좋게도 산신령이 도운 끝에 산삼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도나리는 대답 없는 큰어른의 유골 앞에 2백 년 근 산삼을 꺼내어 그것을 잠깐 보여 주곤 바로 품에 넣었다.
 “하지만 천년백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천년백삼······ 시조 남소명 어른처럼 발견한다고 해서 일가와 겨루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노력할 거예요. 사람 죽이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결심한 제 목표니까요. 그러니······.”
 도나리는 반드시 일가를 되찾고 큰어른의 유골을 일가의 땅으로 옮기겠다는 말을 목구멍 안으로 다시 삼켰다.
 천년백삼도 발견하지 못한 주제에 이미 목표를 달성한 양 입으로 주절거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 이 2백 년 근 산삼의 주인에 대해서 설명 안 했죠? 이건 결코 부정한 사람에게 넘기진 않을 물건이에요. 아직 어리고 순수한 한 소녀에게 줄 것이죠.”
 시조 남소명이 일가의 가계를 돕기 위해서 천년백삼으로 장뇌삼을 재배한 것이 크게 돈이 되어 후대엔 그게 주가 되었다. 하지만 풍수와 천문은 버렸을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그 정신까지 버리진 않았다. 그래서 산의 정기나 산신령의 존재를 믿었고, 그 존재를 믿기에 산신령이 축복을 하여 속세로 보내는 산삼과 같은 영초는 절대로 부정한 사람에게는 건네주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일가에 있었다. 도나리 역시 과거로 돌아오면서 그 가르침을 가끔 고아원으로 찾아온 추복구에게 다시 배웠기에 그 뜻을 따라 부정한 자에게는 영초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저 장하죠? 사람을 죽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제가 그런 것을 하나둘씩 배워 가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을 구하려고 하다니. 아하하······ 전장의 들개인 제가 말이에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도나리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런데 왜 그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큰어른이 아닌 거예요. 돌아왔잖아요. 제가 다시 돌아왔잖아요. 조금만 더 참으시지. 왜 하필 지금이에요, 왜······.”
 그것은 계속 참아 왔던 눈물이다.
 큰어른이 결국 눈을 뜨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 그땐 울지 않았다.
 함께였던 추복구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큰어른······ 제가 우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 다음에 올 때는 큰어른을 일가의 땅으로 옮기고 웃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나약한 모습은 여기서 끝이다.
 도나리는 괴물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고, 괴물이 있으니 괴물 사냥꾼의 존재도 확실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군인의 신분 때는 비무장지대로 들어갈 때 눈치를 보며 조심해야 했지만, 국가에서 인증한 자격이 있다면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 있을 테니 천년백삼을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아직 출발선에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
 하지만 희망만큼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이것이 배, 백 년······!”
 휴가를 마치기 전, 개인적으로 김무옥 대령이 사는 집에 들른 도나리가 2백 년 근 산삼을 건네주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령 정도 되는 위치에 있으면, 그것도 다음 계급인 준장(진)의 계급이 보장되어 있는 그라면 싫어도 산삼 몇 뿌리 정도는 자주 보게 되지만 이 정도는 그도 난생처음 보는 크기다.
 2백 년.
 현 시대에선 백 년 근 산삼도 거의 영초 취급을 받는데, 2백 년이라니? 도나리는 괜히 허세를 부리기 싫고 귀찮은 일이 생길까 싶어 백 년 근 산삼이라고 속였지만 김무옥 대령의 눈은 옹이구멍이 아니다.
 처음엔 백 년 근 산삼이라고 생각하고 받았다가 느껴지는 향과 크기에 도저히 백 년 근 산삼임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 배인 2백 년 근 산삼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으나 도나리의 마음을 읽고는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백 년 근이든 2백 년 근이든······ 아니, 2백 년 근이면 훨씬 좋은 일이 아닌가?
 “정성껏 잘 달이셔야 할 겁니다. 적당한 불 온도를 유지하고······ 기왕이면 직접 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좋은 한의사가 달이면 효과야 더욱 좋겠지만 백 년 근 산삼은 영초라고도 불리는 약초이니, 직접 정성을 담는다면 그 효능이 배가될 것입니다. 아, 그리고 약 효능이 강해 전부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워 조금씩 먹게 하면 나중에 먹은 산삼의 효능이 줄어들 것이니, 부담되더라도 한 번에 다 먹게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자네 덕분에 내 손녀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
 “손녀분이 무사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전 이만······.”
 “자, 잠깐! 자넬 이렇게 그냥 보낼 순 없지 않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언론사에 알고 있는 사람이 있네. 지난번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여 재조명시키면······.”
 “그건 오히려 부담됩니다. 대령님께서 위험해지시지 않겠습니까?”
 관심 사병 자살 소동 사건은 이미 군에선 쉬쉬하여 마무리 지은 사건이다.
 어정쩡하게 끝나서 관심 사병 한 명만 승자로 남고 모두 패자가 된 일이지만, 그 일을 다시 조명시키는 것은 군의 입장에선 벌집을 쑤시는 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무옥 대령이 그 일을 다시 꺼내게 되면 이미 보장된 그의 진급은 당연히 백지화가 될 것이 뻔하니, 독일에서 치료를 받을 손녀의 치료비도, 그리고 그 이후에 손녀가 자랄 때까지의 생활비 등도 모두 날아가게 된다.
 그래서야 본말전도이지 않은가?
 도나리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무옥 대령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가족사가 마치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녀의 건강부터 챙기십시오. 딱히 바라는 건 없습니다.”
 “이, 이보게!”
 도나리는 꽤 피곤해져서인지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그의 집에서 나왔다.
 
 “후우······.”
 가방을 방 한편에 던져 버린 도나리는 이불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던 도나리는 몸을 뒤척이다가 시선에 가방이 들어오자 데굴데굴 굴러서 가방의 옆까지 도착했고, 가방의 지퍼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인간을 닮은 괴물의 정강이뼈와 적색의 돌멩이를 꺼냈다.
 “이게 신성그룹에서 조사한다는 그거지?”
 적색의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던 도나리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이 돌멩이 안에 공장에서 사용할 1년분의 전기에너지가 들어 있다니······ 하는 신비함은 있었지만 정작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 도나리에겐 그냥 적색의 돌멩이, 그 자체의 가치 정도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멩이와는 달리 정강이뼈는 꽤 흥미로웠다.
 인간의 것과 비슷한 형체의 정강이뼈······ 괴물은 이 정강이뼈와 돌멩이만 남겨 두고 재가 되었다.
 “이걸로 괴물 사냥꾼의 도구를 만든다지? 이걸 갈아서 뼈칼이라도 만드는 건가?”
 크레이지 칠드런 시절엔 너무 잔혹한 기술을 배워 미쳐 버린 아이들도 몇 명 있었다.
 감정을 죽이는 세뇌와 훈련을 받아 대부분 감정이 없지만, 감정을 버리지 못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감정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에 이성을 잃어버린 부류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희열을 느끼든가 인간 신체의 일부를 수집하여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는 기괴한 수집벽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손가락뼈를 모았던 아이도 있는데, 그 아이는 결국 테러리스트들에게 그 행위를 들키자 손가락뼈를 가늘고 길게 갈아 예리한 바늘처럼 만들어 독을 발라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뭐, 어쨌든 간에 도나리를 제외하고 모두 죽게 되는 아이들이고, 이번 미래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쯤이라면 분명히 모두 죽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이런 뼈 정도라면 내 완력으로도 부러트릴 수 있을 텐데······ 그럴 바엔 차라리 식칼이 훨씬 낫지 않나?”
 도나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힘으로 정강이뼈를 부러트리려고 해 보았다.
 “······응?”
 뼈를 부러트리려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휘어······? 뼈가?”
 어린아이의 뼈라면 약간 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휘다니?
 그것도 마치 유연한 고무인 것처럼 휜다.
 “무게가 있어서 막 휘진 않는데. 이 정도 탄성이라면······.”
 이 뼈를 얇게 갈아 예리하게 만들고, 휘두른다면······ 그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것이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결코 끊어지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채찍과도 같은 무기. 하지만 채찍으로 만들기엔 너무 짧고, 차라리 이 형태 그대로 몽둥이처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칼로······ 베이려나?”
 주방 싱크대에 올려져 있던 식칼로 뼈를 썰어 보았지만 썰리지 않았다.
 “방검복 같은데?”
 유연하지만 베이지 않는 물건.
 그렇다고 흐느적거리는 수준도 아니고······ 순수하게 이 정강이뼈로 가격을 해도 각목에 맞는 느낌으로 맞을 것이다.
 “흠······ 사용 방법을 전혀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휘두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아, 그 암시장이라는 곳에 가면 이걸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자들도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한 도나리는 일단 정강이뼈를 다시 가방에 넣고 나중에 살펴보기로 했다.
 지식 없이 무언가 하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도나리는 디지털보단 아날로그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 새로운 것에 약한 편이다.
 “흠······ 술이나 한잔하자.”
 지난번에 김영광 소위 때문에 마시지 못한 뱀술이 생각났다.
 삼두사로 담근 뱀술을 먹으면 쓸데없는 정력이 샘솟지만 뱀술 특유의 독한 맛이 꽤나 좋기에 생각난 김에 전부 마셔 버리고 싶어졌다.
 “······어?”
 병에 담가 놓은 삼두사가 없다.
 뱀 중엔 지독한 생명력을 지닌 놈들이 있어서 산 채로 술로 담가도 죽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뚜껑을 잘 닫아 놓은 상태로 있는 병에서 탈주라니?
 뱀에게 손이 달린 것도 아니고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젠장······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제기랄, 재탕해서 두 번 담그려고 했는데. 이걸로 끝이겠군.”
 짜증이 났다.
 그리고 뱀술을 들이켜며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그냥 집어 던졌고, 그것은 벽에 맞아 정확하게 뱀술을 담은 병 안으로 쏘옥 하고 들어갔다.
 “아! 이건 또 뭐야!”
 일이 안 풀리려면 이런 식으로도 안 풀리나?
 짜증이 더욱 밀려와 병 안으로 들어간 것을 빼내려고 하는데······.
 “돌······?”
 병 안에 돌멩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적색, 하나는 적색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주황색이다.
 “내가 던진 게 적색의 돌멩이였나? 그렇다면 주황색 돌멩이는 또 뭐야?”
 도나리는 이게 뭔가 싶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돌멩이가 빛을 내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어, 어?”
 도나리가 당황하여 뒤로 슬쩍 물러나자 술병이 깨졌고, 도나리의 의식도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술병에 담긴 술이 두 색의 돌멩이와 섞이며 젤리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것······ 본래 있어야 할 것, 그것의 성분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술에 녹아 버린 주황색 돌멩이의 성분이 있는 곳.
 그곳은 바로 도나리의 입속이었다.
 
 “끙······ 두통이야. 내가 어제 뭘 했더······ 끄악!”
 깨어나 보니 집 안이 엉망진창이다.
 왠지 모르게 지독한 악취를 뿜고 있는 더럽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바닥을 엉망진창으로 적시고 있었고, 자신은 그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젠장! 나 어젯밤에 뭘 한 거야? 뱀술을 꺼낸 거까진 기억이 나는데······ 설마 몇 잔 마시고 맛탱이가 간 건가?”
 도나리는 어젯밤의 기억이 몽땅 사라져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술을 마시고 기억이 증발한 거라고 생각했고, 투덜거리면서 바닥을 청소하고 더러워진 몸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끙······ 몸에 냄새가 잔뜩 뱄어. 방 안에 탈취제를 뿌려 두긴 했는데, 오래가겠는걸.”
 샤워를 하면서도 툴툴거린 도나리.
 짜증이 밀려와 있기 때문일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덜미에 적색과 주황색의 문신이 은은하게 빛나다가 사라진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 말이다.
 
 ‘이상한데······.’
 샤워할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문신을 느낀 것이 아니라 묘하게 신체에 활력이 생기고 피부가 새하얗게 변한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행보관의 명령으로 매일 땡볕 아래 병사들과 함께 작업을 하던 도나리의 몸은 체질적으로 피부가 잘 타지 않으면서도 구릿빛을 띠었지만 오늘 아침따라 왠지 매끈매끈하고 탄력이 있는 여성의 피부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대한민국 남자의 90% 이상이 느끼는 샤워 후 거울을 보고 ‘오늘 좀 잘생겨진 듯?’의 기분 정도라고 여겼지만, 보통 그 기분은 밖으로 나오면 사라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 기분이 좀 오래갔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한다면 그 이상의 이상한 것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도나리가 제일 이상하게 느낀 것은 바로 활력.
 아침에 느꼈던 짧은 두통 이후로 몸에는 활력이 계속 충만한 상태다. 오래된 단련으로 몸 상태를 항상 베스트로 해 놓는 버릇이 있지만······ 이건 그 이상이다.
 거기에······.
 ‘아······ 오늘따라 장난 아니게 여자 생각이 나는데······.’
 정력을 지독하게 향상시켜 주는 뱀술을 마셔서일까?
 남자보다 훨씬 군인처럼 행동하여 군인으로서는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던 의무대의 신 하사가 묘하게 매력적으로 보였고, 이미 결혼하여 애까지 셋이 딸려 군인이 아니라 동네 아줌마가 된 본부 중대의 최 대위도 여자로 느껴질 정도였다.
 동물이 발정이 나면 이런 느낌일까?
 전력으로 남성호르몬인지 페로몬인지를 팍팍 내뿜고 있는 도나리는 하루 종일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자기도 모르게 여자 하사나 장교 등에게 눈길이 심하게 갔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일과 후에 같이 한잔 어때요?”
 작년 통신중대로 배치받은 한예지 소위는 부대에서도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여자 장교다.
 도나리와 악연으로 연결된 민철중 소위는 그녀에게 수작을 부렸다가 한 방에 쌍욕(?)을 먹고 격추당했으며, 부대 내에서 제일 잘생기고 육사 출신으로 뒷배가 좋아 장래까지 촉망받는 유진성 대위도 군인이 여자 꼬실 생각이나 한다며 한 소리를 들은 이후 처참한 패잔병이 되었다.
 그중 제일 걸작은 한 병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녀에게 너무 반한 일병 하나가 스토커라고 생각될 정도로 쫓아다녔다. 그것을 귀찮게 여긴 한예지 소위는 부사관으로 임관된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준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믿은 그는 온갖 노력을 해서 부사관이 되었지만 결국 차였다는 슬프면서도 웃긴 전설도 있다.
 부대의 대부분 독신인 장교, 하사 등이 그녀에게 처참하게 격추당하여 안 좋은 말이 들릴 법도 한데 군인치곤······ 아니, TV에 나오는 배우들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들 정도의 미모는 그녀의 모든 행동을 용서하게 해 줬다.
 뭐······ 애초에 그 전설의 웃픈(?) 병사를 제외하곤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은 딱히 없었다. 그것도 일과까지 빼먹고 스토커 짓을 하던 병사가 벌받았다고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어쨌든 그런 그녀가 도나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술 약속을 언급하며 말이다.
 ‘나한테? 내가 왜? 내가 뭐 볼 게 있다고?’
 도나리는 유진성 대위보다 잘난 것이 없는 평범한 하사다. 그보다 조금 잘난 것이 있다면 훤칠하게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신체 비율이 매우 좋아 보이면서, 눈썹이 진하여 남자답게 쾌남형으로 생겼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관심 병사 자살 소동 사건의 장본인으로 미래가 매우 침울한 상태다.
 그런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다. 생긴 것만 조금 잘났을 뿐―그것도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남자가 닮고 싶어 하는 쪽으로―, 돈, 미래,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거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도나리와 한예지 소위와의 사이에는 그 어떤 접점도 없었으니 더욱 이상한 일이다.
 “시간은 내 보죠.”
 일과 후에 딱히 할 것도 없고, 부대의 아이돌 같은 존재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데 거절을 하면 그것이 더 웃긴 일이다.
 “그래요? 그럼 터미널 앞에서 봐요.”
 빙긋 웃으며 사라지는 한예지 소위를 본 다른 병사 및 장교 등의 입은 턱관절이 떨어져 나갈 듯 쩌억 하고 벌어졌다.
 ‘무슨 만화영화도 아니고 저게 돼?’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던 작업을 마저 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멱살을 잡았다.
 “너, 너! 한 소위하고 무슨 관계야!”
 “하······ 이거 놓으십쇼. 확 쳐 버리기 전에.”
 도나리의 멱살을 잡은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철중 소위였다.
 도나리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사람이 민철중 소위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얼굴이 일그러졌고, 민철중 소위도 바로 주먹이 날아갈 기세로 도나리를 힘으로 밀었다.
 “그, 그만들 하십시오!”
 한예지 소위 사건(?)으로 인해서 다들 넋이 나간 상태였지만, 눈앞에서 싸움이 벌어질 법한 광경은 정신을 차릴 만한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그 둘은 부대 내 최고의 앙숙이 아닌가?
 “놔라, 안 싸워.”
 도나리의 후배인 배문수 하사가 그 둘 사이에 끼어 말렸지만, 정확하게는 도나리를 중심으로 말렸다.
 둘 사이에 폭력이 끼어들게 되면 어찌 되었든 간에 도나리가 계급상 아래에 있기에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배문수 하사는 도나리를 제법 잘 따르는 후배이자 계급이 위에 있다고 부사관들을 깔보는 애송이 장교 민철중 소위를 증오하듯 싫어하니, 전역 날이 멀지 않은 도나리를 걱정하여 그쪽을 먼저 말리게 된 것이다.
 “안 싸워? 하사 주제에 감히 상관을 깔보는 듯한 말투로군!”
 도나리는 민철중 소위를 같잖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지만 주변의 다른 부사관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부사관과 장교는 장교가 계급상 위에 있지만 상호 존칭 관계가 더 옳은 소리다. 그런데 민철중 소위는 그것을 무시하고 부사관 전체를 깔보는 듯한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저 망할 자식이······!’
 ‘지난번에 된통 깨졌는데도 반성이 하나도 없군!’
 ‘자네가 행보관인가?’의 전설의 사건을 저지르고도 반성 하나 없는 민철중 소위의 행동과 발언은 모든 부사관들의 증오를 사기에 충분했다.
 지난 행동으로 누적된 것과 이번 발언으로 인해서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도록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 같은 새끼가! 야, 이 씨발 놈아. 너는 씨발, 쌀밥, 짬밥 얼마나 처먹었기에 이렇게 말투가 싸가지가 없냐?”
 평소 FM(Field Manual) 열혈 중사라고 불리던 우강태 중사가 민철중 소위의 멱살을 잡고 언성을 높였다.
 “이거 안 놔? 중사 찌끄레기가······!”
 “중사 찌끄레기? 이런 개념을 똥 국에 말아 먹은 새끼가!”
 결국 참지 못한 우강태 중사의 주먹이 민철중 소위의 안면을 강타했고, 민철중 소위는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퍽퍽-!
 쓰러진 민철중 소위를 군홧발로 계속 걷어찼다.
 말만 많았지 책상에 앉아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한 민철중 소위가 현역 중사를 실제 싸움으로 못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 야! 말려!”
 같이 작업을 하던 병장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치자 다른 병사들이 우강태 중사에게 달려들어 막으려 했지만, 크게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말리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소란을 듣고 온 중대장과 행보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것이······.”
 씩씩거리는 우강태 중사 대신 배문수 하사가 모든 상황을 그들에게 전달했고, 중대장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허허······ 그렇다는군요, 중대장님.”
 “그게······.”
 행보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대장을 보았다.
 “중대장님, 이번 일은 서로 묵인하도록 하지요. 서로 알려서 좋을 것 없는 일 아닙니까?”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아니, 중대장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시겠습니까? 다 ‘우리’ 애들이 잘못한 탓이지.”
 행보관은 손짓만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군 생활 수십 년의 짬밥은 괜히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 중대장님. 진급시험이 머지않았었지요?”
 행보관의 말에 중대장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부디 합격하셨으면 좋겠군요.”
 행보관은 육본에서 온 사람이다.
 더구나 그와 함께 군 생활을 한 동기들은 별나라 세계에 있는 장군급들.
 이로써 중대장의 진급 누락이 결정되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흐린다더니, 쯧쯧······.”
 행보관의 말에 우강태 중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단순한 말싸움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을 폭력 사건으로 확대시킨 자신의 잘못을 확실히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사단 주임 원사와 거의 동급의 존재.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다.
 “으으음······ 우 중사가 왜 고갤 숙여. 잘했어, 우 중사.”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일이 크게 번질 뻔했는데······.”
 “아냐, 아냐, 잘했어. 내가 젊었을 때라도 그랬을 거야. 장교라고 무조건 부사관을 깔보면 안 되지. 잘못한 건 도 하사야.”
 “······.”
 행보관의 말에 도나리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렸다.
 “자네가 하지 그랬나? 병사도 아니고, 전역이 코앞이라고 떨어지는 낙엽이라도 조심하려고 했던 건가?”
 “아닙니다.”
 “쯧쯧······ 내가 자네 하나 못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나? 도 하사는 우리 부대의 보물 같은 존재인데. 그리고 기왕이면 자네가 해야지 속이라도 시원해지지.”
 행보관은 철저히 부사관들의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꾸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나리는 연대장이나 사단장급들과 많이 친했다. 때문에 사고를 쳐도 장교들과 어느 정도 서로 중재가 가능하지만 우강태 중사는 워낙 강직한 성품 탓인지 장교와 마찰이 많았다.
 그렇기에 서로 중재가 가능한 도나리와는 달리 우강태 중사의 징계는 확실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서로 모른 척 넘어가자고 하더라도 보는 눈이 제법 있었던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렇게 된 걸 어쩌겠나? 그 미꾸라지 같은 놈을 욕해야지.”
 행보관은 혀를 끌끌 찼다.
 이번 일로 민철중 소위가 반성하거나 확실한 징계를 받으면 좋겠지만······ 아마 이번 징계는 편협하게 우강태 중사가 독박 쓸 가능성이 높았다.
 민철중 소위의 가계에는 군인이 하나도 없다.
 그건 ‘전설의 사건’ 이후로 조사를 하면서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무언가 수상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그 수상한 정보란 바로 민철중 소위에게 신성그룹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직계는 아니지만 몇 다리 건너뛰면 신성그룹 가계의 피를 지니고 있기에 안하무인으로 날뛴 것이라는 수상한 정보.
 관심 사병 자살 소동 사건으로 대부분의 장교나 부사관은 인터뷰를 한 장교가 민철중 소위인 것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그 수상한 정보에 신빙성을 주었다.
 만약 이번 일로 우강태 중사만 징계를 받는다면······ 그 수상한 정보는 이제 확실한 정보가 될 것이다.
 “뭐 해? 다들 나가 봐. 해 떨어지기 전엔 작업을 마무리해야지.”
 “알겠습니다.”
 부사관들이 밖으로 나가자 행보관은 혀를 끌끌 차며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보았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많이 온화해졌어. 옛날엔 미친개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되는 건가?”
 행보관은 종이를 수납장에 다시 넣었다.
 종이에 쓰인 것은 곽신 원사(진)의 이름이었고······.
 발신지는 신성그룹 신미래대체에너지개발부였다.
 
 ‘조용히 지내려고 했더니 말년에 살짝 꼬이는군.’
 이래서 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
 민철중 소위와 우강태 중사가 싸운 이후로 부대는 일과 내내 한기가 흐를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솔직히 민철중 소위에게 전부 잘못을 돌려도 되지만 우강태 중사의 폭력으로 인해 장교들도 일방적으로 부사관의 편에 설 수 없게 되었고,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장교와 부사관 간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제일 고생하는 것은 병사들이다.
 장교와 부사관 들은 병사들에게 은근히 압박을 넣고, 병사들은 그들에게 휘말려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병사들은 결국 부사관들의 편에 선다.
 장교들과는 달리 부사관들은 실질적으로 병사들과 작업을 거의 같이하고 생활관도 같이 쓰는 일이 많기 때문에 상급 병사, 즉 일병 5호봉 이상부터 병장까지는 전부 부사관 편으로 돌아서게 되고, 계급 체제‘만’ 이해하고 있는 아래 계급의 병사들은 처음엔 장교의 편에 기웃거리다가 결국 같이 생활관을 살아가는 선임들의 눈치를 보며 부사관의 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까지 가게 된다면 정말 갈 데까지 간 상태다.
 장교와 부사관이 본격적으로 갈라서게 되면 부대는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최전방에 있는 그들이라면 서로 사이가 나쁜 것이 상부에 알려지자마자 모든 지휘관들이 징계를 받는 공멸······.
 같이 공멸하기 싫다면 여기서 끝내는 것이 옳지만······.
 행보관 곽신 상사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이번 사건으로 우강태 중사만 독박을 쓰게 될 경우 공멸을 하는 한이 있어도 본격적으로 전면전에 들어설 각오가 되어 있음이 확실했다.
 그렇게 되면 도나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전역 이후 김영광 소위와 함께 괴물 사냥꾼이 되려고 하는데, 커리어에 흠집이 나서 자격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돈이야 걱정은 안 되는데······ 그놈의 자격증이······.’
 부사관 퇴직금 정도야 아버지가 물려주신 통장의 남은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자격증은 해결할 수가 없다.
 ‘민철중······ 이 개자식. 진짜 죽여 버려야 되나?’
 할 수만 있다면 수십 번은 더 죽였겠지만······ 이런 일도 생긴 판국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다.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전역하면 남이고, 크게 손해 본······ 아니지. 아예 손해를 본 것도 없으니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 봐준다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오늘은 우리 부대 최고 스타와 만나는 날이잖아? 술이나 마시면서 기분이나 풀어야지.’
 부대는 난리가 났지만 기분은 풀어야겠다.
 까짓것 전역 때까지 큰 사고만 안 터지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은 편해진다.
 
 “늦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도나리는 잠깐 넋이 나갔다.
 터미널 앞에 서 있는 미모의 여성······ 처음에 잘못 보았나 싶었지만 먼저 다가와 내뱉는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오늘 약속을 한 한예지 소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이 정도 변신이면 사기다.
 화장을 안 하고 너저분한 군복만 입어도 남자들이 빛을 본 나방처럼 꼬이는데, 화장을 하고 나온 그녀의 미모는 넋이 나갈 정도로 대단했다.
 주변에 여성이 없는 환경에서 수년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군이라는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랫동안 주변에 여자를 둔 적이 없던 도나리에게는 그녀의 미모가 거의 여신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전장의 들개로 살았을 때에도 도나리의 곁에 있었던 여자라곤 하나같이 람보(?) 같은 여인들뿐이었다.
 전장의 최전방에서 근육질로 무장한 전차와 같은 이미지의 여자들만 항상 곁에 있었으니 도시의 미녀라는 지적 이미지와 청순한 이미지가 섞인 한예지 소위를 보자 ‘그동안 헛살았구나.’ 하고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쪽도 방금 전에 왔으니까 용서해 줄게요.”
 “아, 아하하······.”
 도나리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 그럼 어디로 갈까요? 둘이서 술을 마시기엔 꽤 이른 시간이죠?”
 “그럼 저녁부터 먼저 먹을까요? 근처에 기가 막히게 잘하는 추어탕집이 있는데······.”
 도나리의 말에 한예지 소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그러면 거기로 가죠.”
 하지만 미간이 찌푸려진 것은 잠깐이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서 도나리는 그냥 상황을 넘어갔고, 둘은 그가 아는 추어탕집으로 갔다.
 “아이고, 도 하사, 오랜만이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도나리는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했다.
 이 가게의 추어탕은 도나리의 입맛에 꽤 맞았기에 자주 들러 단골이 된 것이다.
 “그나저나 옆의 아가씨는 누군가? 설마······ 이거?”
 주인아저씨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새끼손가락을 보이자 도나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녀는 통신중대 한예지 소위예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무, 뭐? 저 아가씨가 통신중대 한예지 소위라고? 그럴 리가······.”
 주인아저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도나리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곤 몰래 물었다.
 “왜요? 뭐가 이상해요?”
 “당연히 이상하지, 이 사람아. 한예지 소위는 전에 이곳에 와서 추어탕을 먹은 적이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 후에 얼굴이 창백해져서 돌아갔다고.”
 “······예?”
 “알레르기야, 알레르기! 한예지 소위는 미꾸라지 알레르기가 있어.”
 “허, 헙!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그때가 실제로 처음 보는 거였어. 에이그! 자네, 데이트 장소를 잘못 선택했어. 하지만 알레르기가 있는데 자넬 따라온 것을 보면······ 으흐흐······ 저 아가씨도 보통이 아닌데?”
 주인아저씨는 능글맞게 도나리의 어깨를 툭 때렸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 알레르기가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 줘야지 잠자코 따라올 건 뭐람?
 도나리는 툴툴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 소위님, 미꾸라지 알레르기가 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어, 없어요! 전 미꾸라지 알레르기 같은 거 절대로 없어요!”
 잔뜩 붉어진 채 말하는 한예지 소위의 얼굴은 꽤나 귀여웠다.
 ‘미꾸라지를 못 먹는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건가? 아니, 알레르긴데 못 먹을 수도 있지.’
 “아······ 뭐, 그럼 없는 걸로 생각하죠. 그런데 제가 갑자기 다른 것이 먹고 싶어졌거든요? 번거롭지 않다면 다른 가게로 갈까요? 제가 잘 아는 순댓국······.”
 “이보게, 도 하사! 잠깐 나 좀 보게!”
 주인아저씨는 황급히 도나리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갔다.
 “이보게, 도 하사!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데이트 중에 추어탕에 순댓국이라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하······ 도 하사 정말 꽝이군. 이러니까 남자들이 눈치 없다는 소릴 듣는 거야. 도 하사, 잘 듣게. 여자는 초반엔 잘 대해 줘야 되는 거야. 그리고 여자가 자신에게 빠졌을 때 천천히 나쁜 남자처럼 행동해야 되는 거지. 그렇게 주도권을 잡아 가야지 여자한테 사랑받는 남자가 되는 거야.”
 “아저씨······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내 과거 이야길 해 주지.”
 “아니, 저······ 전 아저씨 과거 얘기엔 관심이 없는······.”
 “내 마누라와 처음 만났을 땐, 단풍이 떨어지는 가을이었어.”
 주인아저씨는 멋대로 회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러니까 처음엔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잘해 주는 척해야 된다는 거야. 주도권 승부는 그렇게 밑밥을 깔아야지 성공할 수 있어. 나만 믿으라니까? 내가 바로 이 동네 최고의 제갈공명이라고 불렸던 사람······.”
 “여보! 손님이 왔는데. 구석에서 무슨 잡담질이에욧!”
 “어이쿠-!”
 “아저씨······.”
 도나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어쨌든 파이팅이네. 아하하! 갑니다~ 가요~.”
 씁쓸한 듯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도나리는 중얼거렸다.
 “이겼다면서요······. 제갈공명이라면서요······.”
 그렇게 중얼거린 도나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별생각 없이 나온 건데, 괜히 오기가 생기네. 하지만 이 근방에 레스토랑 같은 건 없는데······ 그렇다고 위수 지역을 이탈할 수도 없고······.’
 머리를 긁적이던 차에 외박을 나갔다 들어온 부대의 병사에게 무언가 들은 것이 떠올랐다.
 ‘분명히 조금 외진 곳에 스파게티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어디인지 기억이 잘······ 아, 거기였지?’
 여자 친구와 함께 다녀왔는데 꽤 호평을 받았다고 했다.
 위치를 기억해 낸 도나리는 한예지 소위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고, 다행히도 그녀는 그곳이 꽤 마음에 든 듯했다.
 “신기하네요. 부대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저도 선 일병에게 들은 얘기라 살짝 위치가 기억이 안 났는데, 이제야 기억이 나더군요.”
 “그건 다행이네요.”
 도나리는 한예지 소위와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잘 안 났다. 하지만 뭐, 같은 부대이니 대화를 나눌 화제는 많지 않던가? 꽤 지루한 얘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상대도 직업군인이라 그런지 크게 지루한 눈치는 아니었다.
 “도 하사는 왜 부사관으로 임관을 하려고 했어요? 솔직히 남자는 군에 입대하는 것을 완전 싫어하잖아요.”
 한예지 소위는 도나리가 고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솔직하게 물었다.
 고아는 ‘고아 사유’라는 것으로 군 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딱히 다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남자니까 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도나리는 일가를 되찾기 위해 천년백삼을 찾으려 입대했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벼운 거짓말로 속여 넘겼다.
 “남자라서요? 남자라서 피하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렇게 대답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아, 말꼬리를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후훗, 그런 의미로 한 소리는 아니에요. 그냥 다른 남자들과는 꽤 다른 대답이어서 잠깐 놀란 것뿐이에요.”
 한예지 소위는 의외로 도나리의 말이 마음에 든 듯했다.
 “다른 남자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민철중 소위는 스펙이라고 말했어요. 자기는 면제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죠. 정말 싫은 대답이죠, 스펙이라니. 군대가 작게는 가족을 크게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곳인데 개인의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는 것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싫은 말이에요.”
 아······ 그래서였던가?
 저 고운 입으로 쌍욕을 내뱉었다고 하더니. 민철중 소위는 그 한마디로 그녀의 비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던 듯하다.
 “유진성 대위님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어요. 유진성 대위님의 아버님은 육본 인사참모부장 유강호 소장님이시잖아요. 그걸 어떻게든 어필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우와······ 완전 재수 없······ 핫! 제가 이 말을 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제게 뭐 떨어질 것이 있다고 그걸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한 소위님은 군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느껴져요?”
 “예. 말투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죠.”
 도나리의 말에 한예지 소위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댓글(5)

싱크로율    
헐 내가 있던 곳에서도 갓들어온 소대장이 군단 최고참 주임원사한테 반말했었는데 ㅋㅋ
2016.09.22 07:40
vkfksdh    
전직 복수에 불타는 인성 최악의 용병이라는 새끼가 졸라 착하네 하는 짓이 졸라 착해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왜이리 착하냐고 하면 속으로 자신이 최악의 들개니 어쩌니 하며 어이없어 하는데 누가 봐도 졸라착해 작가가 첫작품인가 설정이 개판이네 복수하려다가 복수대상의 직원들 생각하며 복수도 안하고 처음본 사람들이 괴물하테 죽으니 살릴려고 발악을 하는데 뭐냐 이거
2017.01.26 05:45
피냥    
악바리독종이 리셋되더니 ㅂㅅ으로 너프됬네
2018.03.30 21:29
sylvain    
난 이소설을 예전에봤지만 작가보단 17권이나낸 출판사가 더대단한듯.
2018.04.01 07:14
스마트라    
용두사미 글
2018.04.0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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