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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구조대 1-1권

2016.09.28 조회 2,291 추천 16


 # 1화 프롤로그, 식상한 듯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이젠 조금 식상해졌을지도 모를 얘기를 해볼까 한다.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몰랐기에, 짧게 요약하자면 대강 이랬다.
 
 어느 날 갑자기 세계 곳곳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몬스터라 불리는 것들이 튀어나왔고 사람이 죽었다.
 인류 초유의 멸절 위기에 사람들은 종말을 부르짖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거대한 균열이 생겼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각성자와 마법사라는 존재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현대 화기에 내성이 있는 몬스터들을 도륙했고, 그 부산물이 굉장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증명했다.
 
 잘린 사지를 재생하는 액체,
 이와 뼈를 다시 자라게 만드는 풀,
 소량이나마 무한히 전기를 뿜어내는 가죽,
 한 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있는 고기 등.
 
 공포의 대상이었던 몬스터가 제압되고, 그 몬스터에서 돈이 되는 물건이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의 인식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 저 균열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다!
 - 인류가 진보할 길은 저 균열 안에 있다!
 
 제2의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금광을 찾아 대이주를 시작한 광부들처럼, 사람들은 너도나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중 대다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탐욕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여기까지가 그 식상한 얘기의 끝.
 이제부터 조금 덜 식상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곧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모이는 곳엔 자체적인 규칙과 사회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각성자 길드가 생겨났고, 아티팩트 전문 유통업체가 생겼으며, 마법연구 기관이 생겨났다.
 
 신시대의 부르주아로 불리는 각성자.
 아티팩트 유통 차익으로 돈을 버는 기업인.
 마법을 연구해 인류의 기술을 진보시키는 마도학자.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런 잘 알려진 직업들 말고도, 다른 직업들도 몇 개 있었다.
 조금 전에 구멍에 들어갔던 사람 중 대다수가 살아 나오지 못한다고 했던가?
 권위 있는 통계에 따르면 구멍에 들어간 각성자 생존율은 약 76%. 처음 15%에서 시작한 걸 생각하면 굉장히 높아졌으나, 여전히 4명 중 1명이 죽는다는 얘기였다.
 이를 씁쓸하게 여겨 저 생존율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구조대였다.
 이들은 균열 안에 있는 각성자들에게 구조 요청을 받아, 그들을 생환시키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이 얘기는 그 구조대원에 대한 얘기다.
 
 
 # 2화 영웅이라고 불렸던 남자
 
 과거.
 어느 건물에 커다란 불이 났다.
 사람 따윈 그 기세만으로 태워 죽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불이었다. 하지만 그 크기와 달리 원인은 아주 사소했다.
 바로 성냥과 소년이었다.
 각각 과거의 향수와 자라나는 새싹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었지만, 저 둘이 합쳐지자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먼 끔찍한 결과물이 나왔다.
 당연히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엔 사소했다.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었다.
 
 치익―!
 푸시시시······.
 
 5초쯤 되는 아주 짧은 찰나.
 염소산칼륨이 타는 특유의 냄새에 취한 것인지, 구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는 성취감에 취한 것인지는 몰랐다.
 아이는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계속 성냥을 긁었다.
 
 치익― 푸시시시.
 치익― 푸시시.
 치익― 푸시.
 
 3분 정도 지나자 금세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여러 개를 동시에 긁으면 어떻게 될까?’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판도라처럼, 아이의 머릿속에 파멸과 절망으로 가는 호기심이 서렸다.
 성냥 10개.
 아이는 손에 가득 쥐고 마찰제에 긁었고······.
 
 푸쉭―!
 
 1개와는 사뭇 다른 강력한 화력에 놀랐으며······.
 “으아아!?”
 
 툭.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냥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위치는 바로 성냥갑이었다.
 
 화아아아악―!
 
 그 순간 성냥갑은 구시대의 유물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위험한 맹수로 변해버렸다.
 “어, 어······ 어어······?”
 아이는 겁에 질렸다.
 마치 차가 달려오는 걸 보고도 멍하니 바라보는 고라니처럼, 불을 보고 굳어버렸다. 그 사이 주먹만 하던 불은 소파에 옮겨붙었고, 거기서 다시 커튼으로 옮겨갔다.
 약 10분 후 아이의 아버지가 불을 발견했다.
 소화기로 초기 진압에 나섰으나,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물건으론 불가능했다.
 “119, 119에 전화해! 빨리!”
 
 ***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후였다.
 
 솨아아아아―!
 
 소방차에서 물을 뿜어 초기진화를 한 뒤 몇몇 소방대원이 인명 구조를 위해 돌입할 준비를 했다.
 “후우, 후우······.”
 그 소방대원 중 한 명이던 우정환은 심호흡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불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사람을 집어삼켜, 통째로 태워 죽이는 끔찍한 괴물 말이다. 소방대원으로 일했기에 불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우정환은 그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손이 떨려왔고, 호흡은 진정되질 않았다.
 꾹 눌러 참았다.
 자기가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죽는다는 걸 잘 알았기에. 공기 호흡기를 차곤 외쳤다.
 “장비 착용. 준비 완료!”
 “돌입!”
 여러 소방대원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느 다른 화재 현장처럼 구조는 수월하게 진행됐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층에 있는 가족이 전부였다.
 “여기가 마지막입니까!?”
 긍정의 말이 돌아왔다.
 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와르르륵―!
 
 “꺄아아아악!”
 건물 천장이 내려앉았고, 동시에 비명이 들려왔다.
 눈앞에 하얗게 암전됐다. 천장이 내려앉았다는 것은 건물이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갈등됐다.
 분명 저 안에는 사람이 있는데······.
 저곳에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얼마나 고민했을까.
 동료 소방관이 어깨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여기 있으면 죽어! 이탈한다!”
 이탈한다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요!?”
 동료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 우리 임무엔 우리 목숨을 소중히 하는 것도 포함이야. 여기서 죽으면 앞으로 위험한 사람들은 누가 구해!?”
 맞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한들, 제 몸까지 불사르며 구할 순 없었다. 이 세상엔 온갖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소방대원들은 그들을 구출해야 했다.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는 건 앞으로 구해야 할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과 같았다.
 “팀장님, 하지만······!”
 “정신 차려. 우정환!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고, 너 이제 스물일곱이야! 여기서 죽기엔 앞으로 구할 생명이 너무 많아!”
 공포로 물든 심장과 하얗게 정전된 뇌 속에 달콤한 생각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 팀장 말이 맞아. 네가 살아야 사람도 구하는 거야. 불쌍하지만 어떡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해. 너는 최선을 다했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죽음의 순간에 나타난 달콤한 합리화는 정환의 이성을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렸다.
 
 화아아악―! 쿵!
 
 고민하는 사이에도 천장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마음에 시간제한까지 덧붙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 도망쳐. 목숨을 부지해.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솔직히 이렇게 큰불에서 어떻게 모든 사람을 구해?
 
 ‘그래, 맞아. 내가 살아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이탈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
 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듯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 늘어져 있던 심장과 뇌가 순식간에 되돌아왔고, 머뭇거리던 의사를 정확히 할 수 있었다.
 ‘미친 새끼, 방금 내가 무슨 생각한 거야! 난 구조대다. 내가 도망치면 저 사람들은 누가 구해!’
 무너진 잔해를 넘어가려는 순간 동료가 만류했다.
 “야, 우정환! 네가 100명 이상 살렸고, 여태까지 한 명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 네 목숨까지 태워가며 사람 살릴 순 없다고!”
 팀장은 보내주지 않겠다는 굳건한 태도였다.
 아마 정환을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겠지.
 이해는 할 수 있었으나······.
 
 공감은 할 수 없었다.
 
 “팀장님 말씀도 옳지만, 전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손목을 뿌리치고 달렸다
 누군가는 영웅은 특별히 용감한 사람이 아닌, 단지 남들보다 5분 더 용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정환은 영웅이 되려 했다.
 아니, 되어야만 했다.
 
 타― 타― 타― 탓, 훅!
 
 있는 힘껏 달려, 업화 같은 불을 뛰어넘었다.
 열기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아도 멈추지 않았다. 무너지는 천장과, 늘어진 잔해들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진 여자 하나와 아이가 둘 보였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의식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세, 셋?’
 숫자가 너무 많았다.
 셋은 절대 구할 수 없다.
 한 번에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둘.
 선택의 순간이 도래했다.
 
 아이를 둘 구하던가,
 여자와 아이 하나를 구하던가.
 
 구조 원칙으로 따지면 아이가 최우선. 하지만 원칙은 구조 당시만 생각할 뿐 그 이후는 전혀 생각해주지 않는다.
 만약 이 가정이 편모가정이라면?
 아이들은 하나밖에 없던 부모님을 잃고 차가운 사회에 내던져진다. 아마 그 길은 굉장히 고되고 힘든 길이리라. 정환 본인이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 없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건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결국 여자와 아이를 선택했다. 어려운 선택이었다.
 여자는 짊어지고, 아이는 품에 안았다.
 집을 반쯤 나왔을까?
 거센 화마와 함께 머리 위로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화르르륵―!
 
 정환은 방화복을 입고 있었기에 괜찮았지만, 여자와 아이는 아니었다. 아주 자그마한 불씨에도 화상을 입으리라.
 ‘빌어먹을!’
 몸을 비틀어 잔해 대부분을 왼쪽 어깨로 받아냈다.
 다행히 아이와 여자는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이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 여자와 아이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들것, 들것 가져와!”
 여자와 아이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향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아직 아이가 한 명 남아있었다.
 다시 한 번 화재 현장으로 달렸다.
 “야, 야 지금 뭐······. 저 새끼 잡아! 들어가면 죽어!”
 달려오는 동료들을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그 달음박질은 얼마 가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마지막 층 천장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아······.”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아니, 드는 생각은 많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공기 호흡기 사이로 들어온 연기를 마셔 헛것을 봤다고 믿고 싶었다.
 눈을 비벼도 보고, 뺨을 때려도 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천장은 무너졌고, 아이는······.
 
 - 네가 죽였어! 네가 죽인 거야!
 
 ***
 
 “흐어어어어억!”
 정환이 거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숨을 몰아쉬기도 잠시. 이내 방금까지 생생하던 그 순간이 악몽이라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얼굴을 쓸어내리자 손바닥 가득 축축함이 느껴졌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다.
 틈만 나면 악몽을 꿨고, 그런 날이면 왼쪽 어깨에 입은 화상 자국이 미친 듯이 아파 왔다. 아이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잔해를 받아내 생긴 흉터가 말이다.
 “으아아······ 악!”
 분명 상처는 예전에 다 나았음에도, 이 악몽만 꾸면 그 화상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마냥 고통스러웠다. 애써 움직여 옆에 있던 약통들을 집었고, 알약을 몇 개 씹어 삼켰다.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한 채 끔찍한 생각에 시달렸다.
 
 - 네가 날 죽인 거야, 네가 날 죽였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고, 구원자라 불렀으나······.
 정작 본인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려 은퇴했음은 물론, 아직까지도 죄책감에 고통받고 있었다.
 
 ***
 
 - 사건 사고 뉴스입니다. ······ ······ ······ 최근 새로 발견된 헌팅 플레이스 수정 늪지에서 김모씨를 필두로 한 헌팅팀 7명이 몰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 ······ 이에 각보청(각성자 보건안전청)당국은 헌터들에게 주의를 요함은 물론 ······ ······ ······ 구조대를 파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늘어진 의식 사이로 뉴스가 들려왔다.
 중간중간 잘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대충 헌터와 관련된 뉴스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근데 내가 TV를 틀어놨던가?’
 고통과 싸우다가 지쳐 잠든 터라 기억할 수 없었다.
 아무렴 뭐 어떻단 말인가. 일어나서 TV를 꺼야겠다 싶은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어났냐?”
 “팀장님······.”
 소방대원으로 근무했던 시절의 상사이자, 그 날 들어가지 말라며 막았던 팀장. 송덕준이었다.
 “팀장은 무슨. 이제 소방 일 때려치우고 구조대 차렸다. 무려 사장님이야 임마. 뭐, 현장에선 아직 팀장이라고 불리니 그게 그거긴 하다만. 뭐 어쨌든, 그렇다.”
 덕준은 애써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이 꼭 분위기를 띄우려 억지웃음을 지은 것 같았다.
 “예······ 근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바로 본론을 묻자 덕준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냥 잘 있나 해서 와봤다만······ 그런 것 같진 않구나.”
 그만큼 정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 사람이 딱 봐도 알아챌 정도로 말이다.
 “아닙니다, 잘 있습니다.”
 입에 뻔한 거짓을 담았다. 금방 들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밑에 신경 쓰지 말라는 의도를 담았을 뿐이다.
 에두른 축객령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너 자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계속 그 말만 반복하더라. 그게 괜찮은 거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탓 아니야, 이 자식아. 네가 죽인 거 아니라고.”
 “······나가 주시죠.”
 덕준은 한숨을 쉬는 듯하더니, 이내 호랑이 같은 포효를 뿜어냈다. 그 기세가 중년에게서 나왔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강력했다.
 “정신 차려, 우정환! 넌 영웅이야. 네가 구한 생명만 100명이 넘는다고. 근데 딱 한 명 못 구했어. 딱 한 명. 그 한 명 때문에 영웅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개소리 집어치워!”
 맞는 말이었다.
 142명 중 딱 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런 숫자와 통계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중요한 건 한 생명이 죽었다는 거였다.
 “······나가 주시죠.”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가 예수야? 네가 부처야? 너 인간이야, 사람이라고.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잖아. 전부 다 구할 수는 없어. 게다가 전부 다 도망칠 때, 너 혼자 들어와서 구해왔잖아!”
 “알겠습니다. 이제 나가주시겠습니까.”
 굳건한 태도에 덕준도 고개를 젓곤 한숨을 내뱉었다. 이후 품에서 신문 스크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정환 얘기였다.
 
 - 화재 현장서 13명 구조 소방대원에 표창장.
 - 구조된 시민은 소방대원을 일상의 영웅이라고 불러······.
 
 “봐라. 세상도 네가 영웅이라고 말한다.”
 덕준은 마지막이라 듯 입을 열었다.
 “네가 구한 그 꼬맹이 말이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했댄다. 공부도 잘해서 전교 1등이래. 꿈이 소방대원이라더라. 너 같은 영웅이 돼서, 사람들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얘기를 듣자 가슴이 뭉클했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의 형은 그러지 못했죠. 저 때문에요. 제가 더 잘했다면 둘 다 살아있었을 텐데······.”
 놓고 온 아이는 형제 중 큰 아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생 쪽이 더 가벼웠기 때문이다.
 구조수칙이네, 절차네 뭐네 말할 것도 없었다. 다 변명이었다. 적어도 정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온 이유는 간단해. 너도 이제 다시 일할 때 됐잖냐. 우리 구조대 와라. 구조팀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행정 쪽 일이라도 해봐. 난 말이다, 내가 알던 영웅이 이렇게 말년생활 조지고 있는 거 절대 못 보겠다. 꼭 내 미래 같거든.”
 덕준은 명함을 남겨놓곤 밖으로 나갔다.
 정환은 시체처럼 걸어 신문 스크랩을 집어 들었다.
 
 - ······13명 구조 소방대원······
 “난 그때 14명을 구했어야만 했다······.”
 
 
 # 3화 영웅이 돌아왔다 (1)
 
 일주일이 흘렀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나 감내했다. 그게 구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참회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후······.”
 대문 앞에 서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었기에, 생각보다 긴장됐다.
 언제부터 집 밖에 나가는 걸 긴장하게 됐을까.
 우습기도, 씁쓸하기도 한 웃음이 흘렀다.
 
 ***
 
 오래간만에 나온 밖은 활기찼다.
 물론 검은 균열의 등장 전보다 사람이 확 줄어든 게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균열이 생긴 것도 벌써 2년인가.’
 2년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무기였다.
 과거엔 죽도나 목도만 들고 다녀도 확 튀었던 것과 달리, 요즘은 아니었다.
 균열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녔는데 화기부터 냉병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꼭 전쟁터에 나온 것 같다.’
 다음엔 격벽이었다.
 지금은 건물들 사이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현재 관악구 테두리에는 높이 약 10M짜리 격벽이 세워져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균열 때문이었다.
 한국에 생긴 균열은 4개였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대전 대덕구 주거구 밀집지역.
 태백산 중턱 어딘가.
 서해안 깊은 바닷속 어딘가.
 
 저 균열들은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나마 산과 바다에 열린 건 피해가 덜했지만, 서울과 대전에 열린 균열은 아니었다.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만 명이 죽었고, 균열을 잠재우기까지 추산 500만 명이 죽었다. 약 1/10이나 되는 인구가 그 짧은 사이에 죽었다는 얘기였다.
 정환도 잘못하면 그 사망자 명단에 낄 뻔했지만, 다행히 집안에 혹시 싶어 챙겨뒀던 소방도끼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후 정부의 주도 아래 격벽 사업이 시행됐다. 건설사 선정 과정 중 뇌물과 리베이트 의혹이 있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격벽과 무기 그리고 조금 줄어든 사람.
 그걸 제외하면 여전히 똑같은 풍경이었고, 일상이었다.
 ‘인간은 이겨냈다.’
 아직 완벽하게 정리가 된 건 아니었기에 식량-전기-수도 전부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한 정도였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신 병원이었다.
 
 “요즘엔 좀 괜찮으세요?”
 푸근한 인상의 여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부터 6개월.
 정환은 아직도 과거에 발목 잡혀 있었다.
 “약은 거르지 않았구요?”
 “예. 항상 먹고 있습니다.”
 이후로 가벼운 질답이 몇 번.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 이상 투약량을 늘리기도 곤란합니다.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구요. 더 큰 병원을 찾아가 보거나, 차라리 마법 쪽을 찾아보시는 건 어떠실지······.”
 마법의학을 말하는 거였다.
 이는 마도학자들이 이루어낸 결과물 중 하나로, 고통이나 후유증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이 미친 듯이 비싼 까닭에 부자나 헌터들만 이용했지만.
 한마디로 동네 병원에선 더는 해줄 게 없다는 뜻이었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몰랐다. 내심 입원을 권하는 거라 짐작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왔다.
 이제 갈 데까지 간 건가, 라는 염세적인 생각을 하며 걷기도 잠시. 문득 평소와 알던 일상과는 괴리가 있어 보이는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망쳐!”
 무언가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끼이익―쾅!
 
 급하게 차를 몰다 가로수에 부딪치는 자동차.
 
 타타타타타탕―!
 
 고막을 때리는 날카로운 총성.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수없이 많은 현장 경험으로 단련된 감은, 지금 이 상황이 위급상황이라는 걸 급히 소리치고 있었다.
 ‘몬스터 공습?’
 아직 밝혀지진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균열이 아닌 공간에서 몬스터가 출현하는 일이 아주 가끔 일어났다.
 말 그대로 반년에 한 번꼴, 대부분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에 나타났기에 그냥 TV로 영화처럼 봤던 게 다였다.
 이번엔 달랐다.
 서울 도심.
 그것도 균열과 가까운 위치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어디지?’
 위치를 알아내는 건 쉬웠다.
 아마도 사람들이 도망 온 방향이리라.
 ‘도망쳐야 한다.’
 과거 정환은 소방대원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했지만······ 지금은 그저 은퇴 후 PTSD에 시달리는 환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불이나 취객이 아닌 몬스터였다.
 악, 깡, 배짱 같은 게 먹히는 상대가 아니다.
 멋모르고 덤볐다간 손짓 한 번에 죽었다.
 머리로는 도망가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덜덜덜······.
 
 공포에 질려 떠는 건 아니었다. 달려야 하는데, 도망쳐야 하는데 몸은 굳건히 서 있었다.
 이는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구, 구해야 하는데······.’
 동시에 드는 생각 하나.
 
 - 네가 뭔데?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주 조금이나마 뜨거웠던 가슴에 냉수를 뿌린 것 같다.
 ‘그래, 내가 뭐라고.’
 사고 현장에서 등을 돌렸다.
 다리를 움직였다.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했다.
 등 뒤로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않았다면.
 “악―! 도, 도와주세요. 거기 검은 티 입은 사람, 제발······ 제발 버리고 가지 말아요!”
 다시 한 번 몸이 덜컥거리며 멈췄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목이, 허리가, 오금에 시멘트라도 바른 양 무거웠다.
 ‘돌아봐야 하는데······ 도와줘야 하는데······.’
 몸을 돌리려 했으나, 그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무의식 속에 묻어놨던,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은 사실.
 바로 공포였다.
 
 눈앞이 암전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등 뒤로 어린아이 크기의 숯덩이가 제 몸을 끌어안는 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오는 환각이었다.
 
 - 돌아보면 도와야 해. 과연 네가 그럴 수 있을까? 나를 죽인 네가? 아니, 못할걸.
 
 검은 숯덩이가 그을음내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 넌 못 해. 아니, 안 해. 왠 줄 알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 나는 그 이유를 잘 알아. 네가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 사실을 말이야. 알려줄까?
 
 숯덩이의 입이 씩 벌어졌다. 마치 웃기라도 하듯.
 
 - 도와주다 실패하면 네가 죽인 거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면 네가 죽인 게 아니라며 합리화했잖아. 그냥 TV에 나오는 뉴스처럼, 너랑은 관련 없는 일이 될 거라고 말이야.
 
 무의식 속에 묻어둔 채 부정했던 사실이었다.
 단 한 명도 구조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던 영웅을 건 무너뜨린 바로 합리화였다. 무시하면 고통받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합리화 말이다.
 
 - 어서 저 사람을 놓고 가. 도망쳐.
 
 숯덩이는 잠시 숨을 들이마시곤, 분노를 토해냈다.
 
 - 나를 버리고 갔던 것처럼 말이야!
 - 나를 죽이고 갔던 것처럼 말이야!
 - 네가 나를 죽였어. 네가 나를 죽였다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겪었던 것 중 제일 강력한 PTSD였다.
 ‘그래······ 내가 널 죽였다. 아니, 구조하는 데 실패했다.’
 숯덩이는 신이 나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 그래. 너는 자라나는 새싹이 타게 내버려 뒀어!
 
 ‘그때 난 무서웠다. 성인 여성 한 명을 어깨에 멘 채, 초등학생을 둘이나 안을 자신이 없었어. 아니, 할 수는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 안에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넷 다 죽을 바에는, 셋이라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든 할 수 있을 법한 갈등이었지만, 정환에겐 아니었다. 본인이 영웅이었던 만큼 자신에게도 그만큼 엄격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널 포기했다.’
 
 - 그럼 이번에도 포기해.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부정하고, 도망치라고! 그러면서 고통스러워 해. 평생 날 잊지 못하고, 폐인으로 살다 죽어버리라고!
 
 숯덩이는 발광하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네 말도 옳다. 난 여태까지 계속 도망쳤어. 내게서 도망쳤고, 내가 구해야 할 사람에게서 도망쳤다.’
 이를 꽉 깨물었다.
 빠드득 소리가 나며 잇몸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젠 싫어.’
 
 근 1년.
 충분히 도망쳤다.
 충분히 참회했다.
 충분히 고통받았다.
 
 ‘그래. 내가 구조하다 실패하면 내가 죽인 거지. 근데 외면하면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까 죽인 게 아니라고? 개소리 집어치워, 이 개새끼야!’
 숯덩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욕과 악을 질렀다.
 
 -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이제 충분하잖아. 합리화하며 그냥 고통받으며 살아도 되잖아! 근데 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건데! 왜!
 
 숯덩이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며 물었다.
 이에 대한 정환의 답변은······.
 “사람 살리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커다랗게 고함을 지르자 굳어있던 몸이 풀렸다.
 재빨리 몸을 돌려 숯덩이를 마주 봤다.
 아니, 정환이 가졌던 트라우마와 마주 봤다.
 “그래. 너는 날 미워해도 좋다. 평생 증오해도 좋다. 하지만 조금만 미뤄둬라. 내가 널 구하지 못한 죄로 죽고 나서 지옥에 가거든 그때 실컷 해라. 그땐 피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전부 받아주마.”
 
 - 안 돼, 절대 못 보내. 넌 나랑 평생을 같이해야 해. 네가 날 이렇게 만든 만큼, 나도 네 가슴이 숯덩이가 될 때까지 계속 괴롭힐 거야!
 
 눈 꼭 감고,
 이 꽉 물고,
 마음속에 품어뒀던 말을 꺼냈다.
 “그래도 난 가야겠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해.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을 도울 사람이 없거든.”
 숯덩이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숯덩이 겉에 커다란 균열들이 생기더니, 이내 파스스 무너져 내렸다.
 
 솨아아아―
 
 그리고 그 검은 껍질 속에서 어린아이가 드러났다. 당시 구조하지 못했던 그 아이였다.
 아이는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아무리 힘을 써봐도 정환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내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 왜, 왜 그러는 거야······ 나는 포기했으면서 왜 저 사람은 그러지 않는건데······ 나도, 나도 살고 싶었는데······ 타죽기 싫었는데······ 근데 네가 날 버리고 갔어. 난 네가 너무 미워.
 
 - 너무나도 미워서, 네가 고통받길 바랐어······ 날 잊지 말아줬으면 했어. 그래서 널 괴롭혔어. 날 잊지 말아 달라고, 평생 품어달라고, 네 마음속에서나마 살아있고 싶어서.
 
 정환은 우는 아이를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다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구해주지 못해서.”
 여태까지 속으로 백만 번도 더 외쳤지만, 버리고 갔다는 죄책감에 꺼내지 못했던 말.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는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앞에 있는 저 아이가 진짜로 그 날 내버려 두고 온 아이인지, 아니면 죄책감이 만들어 낸 환상인지는 몰랐다. 그럼에도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진심이 통한 건지, 아니면 트라우마가 사라져 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앞에 있는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 내가 그렇게까지 널 괴롭혔는데 밉지 않아?
 
 “내가 널 구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비난이었고, 네가 할 수 있는 증오였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 그렇게나 괴롭혔는데······ 넌 변하질 않네. 이제 됐어······ 나도 이제 널 놓아줄게. 어차피 그건 사고였잖아······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넌 최선을 다해 엄마랑 동생을 구했어. 고마워. 우리 가족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서.
 
 아이는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애써 미소를 지었다.
 
 - 이제 가. 시간이 없어. 저 사람이 위험에 빠졌잖아. 어서 저 사람을 구해줘. 우리 가족을 구해줬던 것처럼. 넌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지켜볼게. ······ ······ ······.
 
 아이가 뭐라 중얼거렸으나, 너무 작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불협화음이 끼어들었다.
 
 [마음속 깊이 있던 트라우마를 이겨냈습니다. 각성 완료.]
 
 
 # 4화 영웅이 돌아왔다 (2)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암전됐던 시야가 돌아왔다.
 ‘각······. 뭐라고?’
 사람들의 비명에 섞여 무슨 얘긴지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일단은 사람이 먼저였다.
 “지금 가겠습니다! 기다리세요!”
 몸을 돌려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질주했다.
 모두가 도망치고 있던 그 순간.
 오로지 정환 혼자만 사건 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역주행이었다.
 
 무모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위험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정환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도움을 요청한 여자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빠르게 뒤처지는 풍경들 사이로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이쪽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가로수에 들이받아 부서진 자동차,
 충돌로 쓰러진 가로수에 맞아 깔린 여자.
 
 ‘차 안에 있던 사람은?’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운전대에 머리를 박은 채 의식 불명이었다. 두부 출혈로 보아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 외에 당장 손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일단 여자 먼저 구한다.’
 가로수를 피하려다 허리를 깔린 상황.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리다 추가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쓰러진 나무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으아아―!”
 충돌한 자동차가 부러진 끝 부분을 누르고 있었기에 굉장히 무거웠지만, 최선을 다해 들었다. 겨우 5cm. 5cm만 들어도 사람이 빠져나갈 틈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빠져나가요, 빨리!”
 여자는 버둥거리며 나무 밖으로 기어 나왔다. 다행히 척추 손상은 없었는지, 잘 일어섰다.
 “고, 고맙습······ 어헉!”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여자의 눈동자가 살짝 돌아갔다. 그런 여자의 눈동자 속에 끔찍해 보이는 괴물이 비쳤다.
 “다, 당신도 도망쳐요! 어서! 저, 저기 괴물이······.”
 여자는 정환의 손을 붙잡았지만, 정환은 그 손을 뿌리쳤다.
 “먼저 가십쇼. 저 사람도 구해야 합니다.”
 여자는 더 구할 사람이 있다는 말에 재빨리 도망쳤다.
 아무리 본인이 도움받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것 보다 본인의 목숨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게 정상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이 자동차를 뒤엎으며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무섭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소중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목숨 걸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영웅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정환은 여자를 보낸 뒤 바로 자동차로 접근했다.
 
 쉬이이이익―
 
 엔진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아마 충돌과 동시에 충격을 입은 모양. 머지않아 연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였기에 행동을 재촉했다.
 운전석 손잡이를 잡고는 그대로 당겼다.
 
 덜컥, 덜컥!
 
 잠겨있었다.
 ‘젠장!’
 입고 있던 재킷을 벗은 뒤, 창문 위로 대강 펼치곤······ 그대로 팔꿈치로 후려쳤다. 액션 영화에선 툭 하면 깨지는 자동차 창문일진 모르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설탕 공예가 아닌 제대로 만들어진 유리였기에 잘못하면 파편에 살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쨍!
 
 창문이 그대로 작살나며 재킷 너머로 파편이 느껴졌다.
 아끼는 재킷이 걸레로 변했다는 사실에 속이 조금 쓰렸지만, 지금은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딸깍, 벌컥!
 
 문을 딴 뒤, 차 문을 열어젖혔다.
 “이봐요, 괜찮아요!?”
 혹시 싶어 불러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기절한 것 같았다.
 먼저 남자의 머리를 당겨 두부를 먼저 살폈다. 만약 충격과 동시에 함몰됐다면, 조심스럽게 구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약간의 출혈만 있을 뿐 큰 외상은 없었다.
 추가 부상의 가능성이 없어졌기에 남자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곤 잡아당겼다. 안전띠를 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신 차려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남자의 팔을 잡아당겨 반쯤 일으키곤, 가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그대로 어깨로 짊어졌다.
 ‘안전한 장소로 가야 한다!’
 머릿속에 오로지 구조밖에 없었던 정환이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제야 사고의 원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 끄기기기긱!
 
 공간이 울리며 날카로운 진동음이 들려왔다.
 ‘저, 저게 도대체 뭔······!’
 그 포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달커스.
 국제 표준 기준 C등급 몬스터로, 크기 5M 몸무게 0.65T짜리 딱정벌레를 닮은 괴물이었다.
 녀석은 머리에 난 거대한 뿔로 코뿔소마냥 닥치는 대로 차를 뒤엎어 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탕―탕―!
 타타타타탕―!
 
 경찰들이 K2와 S&W 리볼버로 저지하려 했으나, 딱딱한 외피를 뚫지 못하고 전부 도탄 됐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무장경찰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사격 중지를 외치곤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들아! 헌터든 구조대든 빨리 부르라고! 저거 C등급이야, 우리가 어떻게 막으라고!”
 무전 너머로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부 소속 각성자 접근 중. 소요시간 10분.
 
 “10분이면 사람 열댓은 충분히 죽고도 남는다고!”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경사님, 제가 아는 구조대가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라도 부를까요?”
 구조대.
 돈을 받고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대부분은 균열 안에 들어가 사람을 구해왔지만, 간혹 재정비를 위해 지구에서 대기하는 팀들도 있었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5분이면 될 겁니다.”
 “일단 불러! 돈은 씨발, 나도 몰라. 국가에서 대주겠지!”
 비록 균열 이후 정부가 하는 짓이 대부분이 양아치와 비견될 정도로 막장이긴 했지만, 시민이 대놓고 죽어 나가는데 돈도 내주지 않을 만큼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예. 송덕······.”
 “야, 야. 저 새끼 뭐야! 왜 일반인이 저기로 들어가!”
 경위가 사건 현장으로 돌진하는 한 남성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민간인 출입하는데 안 막고 뭐 했어!”
 무전에 대고 소리치자, 풀 죽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 그, 그게 말렸지만······ 막무가내로다가······.
 
 “저거 어떡하죠!?”
 “어떡하긴, 저거 구하러 들어갔다가 네가 대신 뒤질래!? 사격! 이쪽으로 시선 끌어! 그거밖에 해줄 거 없다!”
 
 ***
 
 3분 전.
 정환은 달커스를 보곤 몸이 굳었으나, 이내 다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이상한 걸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순간 눈을 의심해 껌뻑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달커스와 약 50M 떨어진 차량 옆에 소녀가 숨어있었다.
 
 중학생쯤 되는 아이로 보였는데,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 끼이기기긱!
 
 달커스가 경찰 쪽으로 돌진하며 주차되어 있던 차를 뿔로 받았고, 들어 올렸다. 자동차가 애들 장난감마냥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휘이이익―쾅!
 
 “꺄아아아아악!”
 여중생은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하얗게 나가버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부상자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갔어야 했지만······.
 ‘빌어먹을! 그럼 저 애는 누가 구해!’
 계획이 변경됐다.
 달커스의 크기는 약 5M. 웬만한 중형차 크기였기에 좁은 공간에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마 건물과 건물 틈 사이로도 들어올 수 없겠지.
 보통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곳.
 고등학생들이 몰래 담배를 피울 때나 들어갈 법한 으슥한 공간으로 남자를 데려간 뒤, 조심스럽게 눕혔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단순 기절이니까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듣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사과하곤 다시 달렸다.
 목표는 달커스. 아니, 정확하게는 달커스보다 40M 전에 있는 여중생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뜯어말렸지만, 어차피 일반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각성한 정환을 이길 수 없었다.
 “가지 마요! 총알 빗발치는 거 안 보여요!?”
 경찰이 미친 사람 보듯 정환을 쳐다봤다.
 “저 괴물이 총알 튕겨내니까, 당신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정신 차려요. 총 맞으면 죽어. 살살 맞는다고 안 아프고 그런 거 아니라고!”
 “바쁘니까 짧게 합시다. 난 소방대원입니다. 군대도 다녀왔고요. 이런 상황에는 충분히 훈련받았다고 봅니다.”
 정확하게는 소방대원이‘었’지만, 지금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소방대원이고 나발이고 안 되니까. 빨리 대피······.”
 “미안합니다. 그냥 시말서 한 장 쓰십쇼.”
 말하고 있는 경찰을 무시하곤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등 뒤로 급하게 사격 중지 명령이 들려왔기에, 눈먼 총알에 등을 맞는 일은 없어 보였다.
 이제 달커스와 남은 거리는 약 30M.
 정환에겐 힘이 없었다. 섣불러 여중생에게 다가갔다간 달커스의 주의를 끌어 뿔에 꽂혀 즉사하겠지. 하지만 주의 정도는 끌어줄 수 있었다.
 10초에서 20초 남짓.
 하품하고 기지개 한 번 펼 그럴 시간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달랐다. 사람 하나가 도망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 그기기기긱!
 
 달커스는 이유 모를 소환에 광분했는지, 닥치는 대로 차를 엎어대고 있었다. 아마 이 상태라면 머지않아 여중생이 숨어있는 차도 뒤집히리라.
 ‘녀석이 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달커스의 눈에 인간은 신경조차 쓰지 않아도 될 아주 작은 생명체에 불과했다. 그런 녀석의 주의를 끌기 위해선 커다란 움직임을 보이거나, 강력한 공격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정환이 선택한 건 바로 도로 표지판이었다.
 원래는 공중에 고정되어 있어야 했지만, 차가 날아가는 과정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몸통만 한 표지판을 집어 들었다. 무겁다. 고정쇠를 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투포환을 던지듯, 회전 3바퀴.
 각도를 맞춰 대충 놔버렸다.
 도로 표지판이 순식간에 흉기로 변해 날아간다.
 
 쐐애액―
 
 사람이 맞았다면 그대로 중상이 됐을 법한 공격이었지만······.
 
 텅!
 
 강력한 외피를 가진 달커스는 손쉽게 튕겨냈다.
 애초에 총알도 튕겨내는 외피였다. 저깟 도로 표지판 가지곤 흠집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캬에익?”
 달커스가 순간적으로 정환 쪽을 쳐다봤다. 흑요석 같은 검은자위에 핏덩이 같은 눈동자 한 쌍이 이쪽을 향했다.
 온몸이 꿰뚫리는 것 같은 착각.
 심연에서 올라온 공포에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저 5M짜리 딱정벌레와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마치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우― 후우― ······빌어먹을.”
 3시간 같은 3초.
 공포를 이겨내곤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이쪽이다! 내가 바로 제일 맛있는 인간이다!”
 팔벌려뛰기하듯 커다랗게 손짓하자, 달커스가 정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턱, 턱, 턱, 턱!
 
 “지금이야, 학생! 도망쳐!”
 혹여 주의를 끌까, 달커스를 쳐다보며 외쳤다. 시야 구석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여중생이었다.
 ‘이제 됐다······ 해냈어······.’
 구해냈다는 생각과 동시에 드는 하나 생각이 있었다.
 
 이제 죽겠구나.
 
 아무리 빠르게 달려봐야, 한 번 사냥감을 인식한 달커스에게선 도망칠 순 없었다.
 ‘그럴 바엔 학생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는 게 좋겠지.’
 아마 입에 들어가, 씹혀 삼켜지기까지 10초는 걸리리라.
 본인 목숨이 겨우 10초짜리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속은 후련했다.
 ‘구할 수 있었다. 실패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양팔을 벌려 달콤한 죽음을 기다리려는 찰나······.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아아악! 악!”
 감았던 눈이 순식간에 떠지며 비명 쪽을 향했다. 그곳엔 도망쳐야 했을 소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왜!?’
 
 
 # 5화 영웅이 돌아왔다 (3)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으나, 소녀 앞에는 헌터로 보이는 각성자가 서 있었다.
 
 - 미친년아, 이쪽으로 오면 어떡해! 달커스가 이쪽으로 올 수도 있잖아! 우린 지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뒤지려면 혼자 곱게 뒤져!
 
 원래라면 듣지 못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헌터가 말하는 말이 귀에 박히듯 전부 들려왔다.
 동시에 분노가 끌어 올랐다.
 ‘거리에 헌터가 그렇게도 많았는데도······. 어째서 이 상황 될 때까지 내버려둔 거냐! 게다가 주의가 끌린다는 이유로 도망가던 사람까지 때려? 저 개새끼가······!’
 강남은 균열 주변에 있던지라 재정비 중인 헌터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다?
 사실 처음부터 말이 되질 않았다. 이는 곧 헌터와 각성자들이 의도적으로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됐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용병 같은 존재였다.
 돈을 위해 움직임은 물론, 제 목숨을 걸고 균열에 들어가 값비싼 부산물들을 가지고 나온다. 이러한 헌터들의 특성과 소규모 병력으론 제압하기 힘든 C등급 몬스터가 합쳐지면?
 헌터들은 상황을 지켜보되, 참전하지는 않게 된다.
 일종의 딜레마였다.
 
 사건 현장에 있는 헌터들이 모두 합세한다면 다들 피해 없이 달커스를 제압할 수 있음은 물론, 부산물도 사이좋게 나눌 수 있었다.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헌터들이 아닌 몇몇만 달커스에게 달려들었다간,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벌레 밥이 된다. 당연히 그 누구도 벌레 밥이 되고 싶진 않아 했다.
 
 아마 누군가가 먼저 달려들어 5분만 버티면 됐으리라.
 하지만 헌터들에겐 그 5분을 버틸 용기조차 없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힘이 없는 정환은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데,
 힘이 있는 헌터들은 그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용기는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키게게겍!”
 여중생의 비명을 들었기 때문일까?
 달커스의 눈이 여중생에게 향했다. 녀석의 눈엔 사냥감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본디 사냥꾼에게 있어 부상당한 사냥감은 가장 손쉬운 표적인 법.
 달커스는 본능에 따라 쌩쌩한 사냥감인 정환을 무시하곤, 여중생에게로 몸을 돌렸다.
 
 턱, 턱, 턱, 턱!
 
 몸에 비해 한없이 얇은 곤충 특유의 다리 관절이 바닥을 때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뿜었다. 마치 강철 기둥으로 때리는 것만 같았다.
 “젠장, 안 돼!”
 저 헌터들이 여중생을 위해 목숨을 걸어줄 것 같진 않았다. 무조건 달커스보다 먼저 도착해야 했다.
 발가락을 시작으로,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 어깨, 팔. 있는 힘을 모조리 쏟아 부어 움직인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특성 ······ ······발현.]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팡―!
 
 마치 주변이 급속도로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
 짙은 현기증 속 1초는 영원을 탐하듯 늘어지며,
 멈춘 시간 속 오로지 정환 혼자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타, 타, 타, 탓―!
 파, 파, 파, 팡―!
 
 한 걸음 내지를 때마다 소닉붐이 뒤따랐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엔 순간이동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정환에겐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눈동자 가득 여중생과 달커스만 보였다.
 “저―리―꺼―져!”
 정환은 달커스와 여중생 사이에 끼어들곤, 양팔을 들어 달커스를 막아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능 발동.]
 촤아아악―!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팔뚝에서 빛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방패가 만들어졌다!
 마치 빛이 한데 뭉친 것 같은 티 없이 말끔한 방패!
 
 쾅―! 기기기긱!
 
 달커스의 주둥이와 방패가 부딪쳤다.
 마치 차에 치인 것 같은 묵중함!
 “그아아아―!”
 이에 정환도 지지 않겠다는 듯 악을 쓰며 버텼다.
 “내가 버티고 있을 동안 어서 도망쳐!”
 여중생은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곤, 다시 한 번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버텼을까?
 1초, 2초. 그것도 아니면 3초?
 엔돌핀에 취한 뇌는 시간 감각을 상실해 버렸다.
 그 와중에도 통각만은 팔팔하게 살아있는지,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만이 계속됐다.
 
 그즈즈즞―!
 
 달커스의 뿔과 정환의 방패가 비벼지며 소음을 내뿜었다.
 ‘더 이상은······ 힘들다······.’
 이미 팔로만 버티고 있는 게 아니었다.
 힘에서 밀려 머리는 물론, 어깨, 몸통 전부 합쳐 막아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여기서 끝인가. 후회는 없다.’
 과도한 움직임에 이미 젖산이 쌓일 대로 쌓인 근육이었다. 뚝 소리가 나며 팔뚝에서 뭔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저 팔은 이제 쓰지 못하겠지.
 ‘이쯤이면 그 학생도 도망갔겠지. 됐다.’
 희망을 놓고 포기하려는 순간, 구원의 끈이 도착했다.
 “거기 각성자! 엎드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다. 무너지듯 자세를 낮추자······.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달커스가 휘청거렸다.
 달커스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타 도망가야 했지만, 이상하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과도한 운동을 이기지 못하고 근육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풀썩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이 가까워졌으나, 이상하게 슬프진 않았다.
 ‘구해냈다······ 이번에는······.’
 
 ***
 
 그 시각. 전장 달커스와 어느 정도 떨어진 곳.
 기자 한 명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오, 오······! 이건 특종감이다! 특종감이야!’
 기자는 머릿속으로 헤드라인을 생각했다.
 
 - 달커스에게 뛰어들어 여중생을 구한 각성자!
 
 균열이 열리고 이제 겨우 2년.
 당연한 얘기겠지만, 균열과 각성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균열 안에서 좋은 물건들이 나온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있는 사람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것들. 일반 대중들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었다.
 각성자 역시 똑같았다. 정부 압박으로 언론이 침묵해서 그렇지, 각성자 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었다.
 아무리 매스컴과 미디어에서 각성자를 포장해 신세대의 부르주아로 만들고 있다고 한들, 대중들 눈에는 언제든지 흉악범으로 변할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만약 저러한 언론이 폭발해 각성자를 차별함은 물론 균열을 매워 버리자는 의견이 나온다면?
 균열에서 가져오는 물건들은 경제적인 파급력이 강력했거니와, 각성자는 강력한 예비군이었다.
 정부 입장에선 둘 다 버리기 아까운 카드.
 까닭에 정부는 각성자와 균열에 대해 좋은 여론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만약 그 와중에 각성자가 여중생을 보호하는 기사라!’
 여자. 그리고 미성년자.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가진 ‘여중생’을 공포의 대상이었던 각성자가 ‘보호’했다. 이는 정부가 원하는 프레임에 딱 맞는 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대박, 대박이야!’
 그 순간 정환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기자는 잠깐 셔터를 멈췄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뭐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고귀한 희생. 그거 나름대로 괜찮은 주제거든. 네 한 몸 어서 불살라 봐라, 각성자놈아!’
 찰칵, 찰칵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구조대, 송덕준은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은 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균열에서 나와 재정비를 하고 있던 까닭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이유에서였다.
 “유탄발사기 갈겨!”
 송덕준이 소리치자마자 옆에서 발사음이 들려왔다.
 
 투웅―콰아아앙!
 
 비록 균열 속 몬스터가 현대 화기에 저항이 있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총기 얘기였다.
 압도적인 운동 에너지로 짓누르는 폭탄이나, 전차 주포에서 뿜어내는 대구경 포탄은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애초에 몬스터라고 한들 물리법칙까지 무시할 순 없었기에, 터져나가진 않더라도 휘청거리거나 자세를 흐트러졌다.
 “재장전!”
 M79 유탄발사기를 재장전하는 사이, 송덕준은 다시 한 번 사자후 같은 포효를 내뿜었다.
 “2번 유탄 발사! 안정권까지 계속 밀어내! 구조팀 진입!”
 
 투웅―콰아아앙!
 
 폭음 사이로 송덕준과 젊은 사람 한 명이 사건 현장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 모습에서 수없이 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직업 정신이 엿보였다.
 
 투웅―콰아아앙!
 
 ‘달커스 정도면 유탄 정도로는 절대 잡을 수 없어. 일단 민간인 대피시키고, 정부 측 각성자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생겨선 안 됐기에, 송덕준은 최대한 빨리 달커스와 맞서던 자를 끄집어내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달커스랑 힘겨루기를 해!? 뭔가 번쩍거린 걸 보니 각성자 같았는데,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로군!’
 속으로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달리길 몇 분.
 덕준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각성자를 쳐다봤다.
 “구조댑니다, 같이 이탈하시······ 어?”
 긴급한 상황임에도, 말이 나오다 끊겨버렸다. 그도 그럴게, 의외의 인물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
 
 정환이 멍한 얼굴로 덕준을 올려다봤다.
 “······팀장님?”
 “······우정환?”
 정환과 덕준이 서로를 부르며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당장 바로 옆 달커스 대가리에 유탄 터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얼씨구 반갑습니다 하고 있다간 바로 염라대왕 보러 갈 게 뻔했으므로, 덕준은 바로 정환을 짊어졌다.
 “일단 나가서 얘기해!”
 중년의 나이에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온 건지, 덕준은 정환을 짊어지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 이탈했다.
 
 ***
 
 유탄 발사기와 실탄으로 달커스를 저지하기도 몇 분.
 이내 정부 측 각성자들이 도착해 달커스를 도륙했다.
 목숨을 걸어가며 몸을 던지고, 유탄 20발 쏟아가며 간신히 버티던 정환과 덕준 일행과는 달리 너무나 손쉬운 승리였다.
 칼질 6번.
 달커스가 쓰러지기까지 겨우 6번이었다.
 주먹도끼부터 폭탄까지. 인류가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공들인 5만 년이 부정당하기까지 걸리기까지 4초가 걸렸다.
 그만큼 고등급 강성자는 강력한 동시에 힘의 상징이었으며, 모든 이의 선망이자······ 한편으론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 존재의 정점. 한국 유일의 S등급 각성자. 곽권이 얼굴을 찌푸렸다. 정부가 싸지른 똥이나 닦고 있는 신세 한탄에서 나온 감정은 아니었다.
 ‘찝찝하군.’
 권은 분명 이곳으로 이동하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력한 파장을 느꼈었다.
 여태껏 수없이 많은 각성자들을 만나왔고, 강력한 몬스터를 도륙하고 다녔음에도 처음 느낀 힘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파장을 뿜어내는 각성자가 있었는데, 달커스가 살아있다고?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권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얼마 못 가 답을 찾는 걸 포기해버렸다.
 ‘쯧, 술 좀 줄여야지. 맨날 마셔라 부어라 하니 이제 별걸 다 착각하네.’
 권이 파장의 근원을 착각으로 치부하고 있을 때, 그 파장의 주인공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6화 차가운 세상의 중심에서 온정을 외치다
 
 머리가 아팠다.
 누군가 두개골을 여는 것만 같았다.
 ‘아······.’
 정신이 들자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팔, 다리, 허리 심지어 오금까지 아파 왔다.
 ‘죽은 건가.’
 정환은 내심 본인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C등급이고 나발이고 까지 갈 것도 없이, 달커스는 크기 5M짜리 거대 딱정벌레였다.
 인간이 맨몸으로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 뭔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 잠깐. 그것도 아주 잠깐 막아섰다지만, 그게 끝이었다. 꿰뚫렸든, 밟혔든, 씹혔든 그 어떤 방법으로든 죽었으리라.
 ‘죽으면 편하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네.’
 그 외에도 시체 정도는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장례식장에 누구누구 오려나, 부조금은 누가 받지 등의 시덥잖은 생각들이 이어졌으나 이내 치워버렸다.
 ‘후회는 없다. 올바른 죽음이었어.’
 비록 본인은 죽었으나, 그로 인해 여중생이 살았다. 정신병에 휘둘려 썩어가다 자살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최후였다.
 ‘자 이제 소멸이든, 환생이든 할 걸 해야지.’
 삶에 대한 아쉬움이 감돌았으나, 떨쳐냈다. 마지막 가는 길 담배 한 대 태웠으면 했으나, 뭐 어쩌랴. 있을 리가 없지.
 “그어어어······ 억.”
 거기 누구 없습니까? 저승사자든, 천사든 간에 말입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에선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동시에 누군가가 “어, 어······ 어!?” 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거 저승사자 양반이 초짠가······ 아파 죽겠는데, 빨리 좀 끝내주지. 너무 부산스럽네.’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기다리고 있기도 몇 분.
 갑자기 환한 빛이 느껴졌다.
 “우정환 씨, 정신이 드십니까?”
 저승사자라기엔 너무나 공손한 말투였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힘겹게 눈을 뜨자······.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아, 씨! 들어오지 말라니까요! 환자분 방금 일어났는데 뭐하시는 겁니까!”
 “아, 한 장만 찍을게요! 한 장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의사와 간호사,
 기자들을 막으려 애쓰는 이름 모를 남자,
 미친 듯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쳐대는 기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혈관주사를 맞고 있는 팔뚝이 보였다.
 ‘이게 도대체 뭔······.’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살았다. 죽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기자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적진으로 돌진하는 군인처럼 남자와 간호사들을 밀치고 들어와선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우정환 씨! 보름 만에 깨어나셨는데 죄송합니다만, 매스컴의 영웅이 되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보름 만에 깨어나다, 매스컴, 영웅.
 그런 것 따윈 알고 싶지도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 아아······ 사라 이스니가······. (그 아이 살아 있습니까?)”
 스마트폰을 든 기자가 다시 한 번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특종, 이건 정말 특종감이야!’
 
 - 일어난 영웅. 처음 한 말, “여중생 무사한가.”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하는 기자들의 고함이 이어졌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말렸지만, 그들을 잠재울 순 없었다.
 결국 그들을 막던 남자이자, 정환의 옆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한숨을 푹 내쉬곤 전화기를 들었다.
 “예, 사장님. 그분 일어나셨습니다.”
 
 ***
 
 태풍 같은 기자회견이 지나가자, 이번엔 광풍을 동반한 우레 폭풍이 휘몰아쳤다.
 
 쾅―!
 
 병실 문을 작살낼 기세로 열어젖히며, 호랑이를 닮은 중년이 들어왔다. 송덕준이었다.
 “야, 괜찮아!?”
 두통으로 민감해져 있던 뇌가 커다란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군가 머리에 못을 박는 것 같았다.
 “억······! 예, 예. 소리는 조금만 작게······.”
 머리를 부여잡자 덕준이 아차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닫곤 정환 쪽으로 다가왔다.
 “묻고 싶은 게 많다만, 일단 예의상 물으마. 괜찮냐?”
 굉장히 무례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소방 일 하며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덕준은 자기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다.
 아마 속으로는 엄청 걱정했으나, 어떻게 표현하지 못해 나온 말이 저것이리라. 원래 호랑이는 걱정도 과격하게 하는 법이었다.
 “몸은 괜찮은데······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네요.”
 굳이 표현하자면 몸이 걸레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본디 과격한 배려에는 과격한 응답이 필요한 법. 가벼운 농을 던지며 웃어 보였다.
 “하이고, 보름 만에 깨어난 놈이 밥은 꿀떡꿀떡 잘 넘어가더냐? 옜다, 오다 사 왔다. 먹어.”
 덕준이 침대 위로 유명 브랜드 죽을 올려놓았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고, 뭔가 뱃속에 넣고 싶었기에 수저를 들었다.
 한술 푹 뜨자······.
 
 덜덜― 덜덜덜― 더더덜―
 
 보다 못한 덕준이 물었다.
 “······먹여주랴?”
 “됐습니다. 사내놈이 혼자 밥도 못 먹겠습니까.”
 첫술의 1/3은 흘렸지만, 몇 번 더 시도하자 괜찮아졌다.
 어색한 침묵과 함께 정환이 죽 먹는 소리도 잠시.
 “너 왜 거기에 있었냐?”
 아마 달커스 현장을 말하는 것이리라.
 죽을 후후 불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병원에 갔고, 나오는 길에 위험한 사람이 보였다. 참지 못하고 달렸다.
 덕준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겨낸 거냐?”
 목적어가 잘린 말이었지만, 둘 다 저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움직이던 수저를 내려놓곤 입을 다물었다.
 
 - 지켜볼게.
 
 숯덩이.
 아니, 이제 아이가 된 그것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래. 꼭 지켜봐라. 적어도 내 앞에선 아무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절대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직 완벽하게 이겨냈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더는 그 트라우마로 고생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정환은 이제 트라우마를 마주 보기로 했고,
 트라우마도 정환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 그것 이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예. 하지만 이겨내진 않았습니다. 같이 가는 거죠.”
 잊을 수도 없거니와, 잊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덕준은 정환의 말을 100% 이해하진 못했으나, ‘예’ 라는 대답이 나왔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난 네가 이겨낼 거라 믿고 있었다.”
 “근데 팀장님은 왜 거기에 있던 겁니까?”
 이번엔 이쪽에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덕준이 구조대를 시작했다는 건 알았지만, 원래 구조대는 균열 내부에서 대기하는 게 상식이었다. 일거리, 시간, 돈 그 어느 쪽이든 균열 쪽이 훨씬 더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람이 하나······ 뭐······ 비게 됐거든. 인력 충당도 할 겸, 장비도 점검하고, 애들 기분도 풀라고 왔어.”
 아마 쉬고 있던 도중 지인(경찰)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애들 모아서 달려왔으리라.
 “구조대라면 사람 구하는 일이죠?”
 덕준은 잠깐 얼굴을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합당한 대금을 받긴 하다만은, 일단은 그렇지.”
 합당에 힘을 준 거로 보아, 돈을 꽤 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 구조대 할 생각 없냐?”
 “그래서 말입니다, 저 구조대 시켜 주십시오.”
 
 제안과 부탁이 서로의 입을 떠나 서로의 귀에 꽂혔다.
 당황스러운 상황이 약 2초.
 둘 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자식. 내 그럴 줄 알았다.”
 “역시. 말해봐요, 팀장님. 사실 제 건강은 뒷전이고, 저 스카우트 하고 싶어서 계속 찾아오신 거죠?”
 “야, 이. 남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임마!”
 덕준은 버럭 화를 냈으나, 뒤에 조그맣게 ‘반쯤은?’ 이라며 농을 덧붙였다. 그렇게 정환은 소란스러운 첫 구조대 데뷔를 마칠 수 있었다.
 
 ***
 
 뭐 그렇다고 당장 구조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몸이 문제였다. 커다란 외상이나 장기손상은 없었지만, 근육 파열 때문에 한동안 거동이 불편했다.
 보름이나 누워만 있던 탓에 몸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고, 한동안은 병원 신세만 져야 할 것 같았다.
 굳이 문제를 하나 꼽자면, 외로움 정도?
 ‘내가 원래 이렇게 대인관계가 좁은 사람이었나.’
 부모님은 일찍 여의어 계시질 않았고, 외동이었던 탓에 형제자매도 없었다. 사촌이 있긴 했지만, 소방대원 근무 특성 탓에 명절 때조차 자주 얼굴을 비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렸다.
 뭐 굳이 따지자면 주변에 사람이야 많았다.
 기삿거리 없나 싶어 대기하는 신입 기자들 말이다.
 근데 저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받는 호의는 불쾌와 같듯, 기자들이 보내는 열정적인 시선 역시 정환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씁쓸해졌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회는 차가워졌고, 위험한 사람이 있어도 무시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심지어 길을 가다 여자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어도, 돕질 말라고 하는 세상이었다.
 
 - 야, 그러다 여자 도망치면 어쩔 건데? 그러면 네가 오히려 성폭행범한테 고소당할 수도 있어. 게다가 여자들 소문나는 거 무서워서 진술도 안 해준다며. 그냥 모르는 척해. 왜 꼭 네가 구해줘야 하냐? 하지 마. 내버려 둬.
 
 - 씁쓸하지만 어떡해. 나부터 살아야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제 남 도와주면 호구 되는 세상이야. 정신 차려. 착한 사람들이 많으면 사회가 좋아질진 몰라도, 너는 좆되는 거야.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나면 너한테 뭐가 남는데?
 
 - 잘 처리된다고 해도, 진술하라면서 여러 번 끌려다닌다. 진짜 피곤해. 하지 마, 그냥. 솔직히 그 여자 인생 조지는 거지 네 인생 조지는 거 아니잖아. 신경 쓰지 마. 그냥 그 사람이 운이 없었던 거라니까?
 
 옛날에는 사람을 돕는 게 당연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도우며 정의를 외치면 대중은 그를 호구라고 말하거나, 바보라고 매도했다.
 
 당연했던 게.
 당연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기자들이, 이 상황이 씁쓸했다.
 정환 입장에선 당연한 걸 한 건데 그게 대수라도 되는 양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질문을 던져댄다. 그게 꼭 다른 사람들이 옳고, 정환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묘하게 쓰려 왔다.
 내일이 불투명해지며 세상은 온기를 잃어버렸다.
 균열이 들어서고 나서 세상은 미쳤고, 그 세상에선 미친 사람 내지는 냉혈한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냉대와 무시를 양분으로 자란 꽃에는 잎에도 가시가 돋는 것처럼, 미친 세상의 주민들은 본인의 마음을 이기주의와 공격성으로 무장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착한 마음과 온기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누군가는 가슴 속에 온정을 품어야 한다.’
 성선설, 성악설, 성백지설 이런 지루하고 철학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단지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다면, 정환이라도 먼저 온정을 베풀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누군가는 받았던 온정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주리라.
 정환은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 7화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좋은 말로는 건강하다고, 나쁜 말로는 밍밍하다고 해야 옳을 병원 밥을 입에 넣었다. 1인실이라 퍽 적적했기에, 리모콘을 눌러 TV를 켰다.
 
 - 보츠와나에서 새로운 마법공학 가설이 발표됐습니다. ······ ······ ······ 이는 체내에 마나를 품은 몬스터를 이용해 ······ ······ ······ 이를 사용 시 현 발전체계보다 40% 좋은 효율 ······ ······ ······ 환경 및 동물 보호 단체는 극구 반대 ······ ······ ······.
 
 ‘아, 치킨에 맥주 먹고 싶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퇴원하고 싶었지만, 전문 용어 섞인 설명과 함께 ‘검사가 더 필요합니다.’ 라는 말만 돌아왔다.
 
 - 이상, 오늘의 뉴스를 마칩니다.
 
 앵커 목소리가 끝나자, 경쾌한 소리가 나며 ‘화제의 영상’이라는 짤막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옷차림에 얼굴이 보였다.
 ‘뭐야, 나잖아?’
 
 - 달커스의 공격을 막아내는 각성자의 모습.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누가 각성자란 말인가?
 ‘아니 포장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무슨 각성자야.’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노크와 함께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가 나타났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근육이 좀 아프긴 하지만, 거동에는 문제없습니다.”
 의사는 뜻 모를 전문용어를 중얼거리며 차트를 훑어봤다.
 “사실 환자분 상태가 조금 이상해서, 검사를 더 해봤습니다만. 조금 특이한 점이 있더군요.”
 이상하다는 말에 수저를 움직이던 손이 덜컥 멈췄다.
 “환자분 정도 부상이면 지금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해야 하는데, 상태가 너무 좋아요. 파열된 근육의 재생도 너무 빠르고, 근밀도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드문드문 전문용어 섞인 의사의 말이 한쪽 귀로 호로롤 들어갔다가 그대로 다른 쪽 귀로 푸시시 흘러나왔다.
 “······ ······ ······그러니까, 각성하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만 빼고.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한참을 되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검사해보라 권했지만, 의사는 피식 웃을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등급으로 보면 F인 것 같은데, 몇몇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확신할 순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미국이나 중국 쪽에 가셔서 정밀 검사를 하시는 게 좋을 듯싶군요.”
 중요한 건 각성 여부지, 등급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진중한 의사의 모습을 보자 점점 의문이 사라지고 짙은 현실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퇴원 이틀 전. 의외의 방문자가 등장했다.
 정환이 몸을 던져가며 구한 여중생과 그 가족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그녀는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어색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에서 풋풋함이 묻어나왔다.
 “늦게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원래 깨어나신 날 왔었는데, 기자들이 워낙 많아서 피곤하실까 해서요.”
 현명한 선택이었다.
 “별건 아니지만, 이거 드십시오.”
 여중생의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두유를 건넸다. 그는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사건 당사자들이었기에 잠시 물러났다.
 “아저씨 덕분에 살았어요······.”
 여중생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감사드릴 땐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거란다.’ 하고 속삭이자, 그제야 여중생이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울먹이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진짜 죽는 줄 알고······ 더 살고 싶었는데······ 연애도 해보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벌레가 다가오는 거 보고 무서워서······ 근데 비명 지르면 이쪽으로 올까 봐······ 입 꽉 틀어막고 견디다가······ 차 막 날아가서······ 나 이제 죽었다 했는데······.”
 여중생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고맙······ 힉······ 스비다······ 힉······ 지짜······ 저마······ 가사하미다······.”
 울음에 발음이 다 뭉개져도, 계속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양팔을 벌리곤 정환에게 와락 안겨버렸다.
 여자라기보단 아직 아이라고 하는 게 옳을 나이.
 부담 없이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울지 마요.”
 여자애는 괜찮다는 말에 안심됐는지, 병원복을 눈-콧물 범벅으로 만들고 나서야 얼굴을 떼어냈다.
 “고맙습니다······ 끅, 으······.”
 “있잖아요, 고마우면 내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여중생은 뭘 원하냐는 듯 쳐다봤다.
 이에 마음속에 품어뒀던,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부탁을 꺼냈다.
 “그 마음을 잊지 말아줘요. 만약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을 도와주세요. 마음에 온정을 잃지 말아 주세요. 그거면 돼요.”
 여중생은 꼭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어휴,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눈물이 너무 많아서. 현아야, 숨 쉬어. 숨. 그러다 현기증 와.”
 어머니는 여중생을 진정시키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여중생의 아버지와 정환만 남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자니, 다행히 아버지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요.”
 이제 너무 많이 들었기에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불임 끝에 간신히 얻은 늦둥이라, 저희 부부에게 현아는 정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였습니다······ 만약 현아가 그 사건에 휘말려 저희 곁을 떠났다면······.”
 아버지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눈물은 아니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장으로써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존재는 눈물을 흘릴 수도, 흘릴 줄도 몰라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이상한 비가 내렸다.
 아버지의 눈과 볼 주변에만 내리는 참 이상한 비.
 비가 내릴 동안 아버지는 계속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아마 말로 다 할 수도 없고, 표현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감정을 전부 토해내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현아는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 같네요.”
 정환은 그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호구라도 욕해도, 병신이라고 매도해도 도와주는 걸 멈출 수 없었던 이유.
 바로 보람이었다.
 만약 그 날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도망갔다면?
 아마 앞에 있는 남자는 정환 앞에서가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비를 맞고 있었겠지. 부인은 대성통곡하다 정신을 잃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다시 대성통곡과 실신을 반복했으리라.
 정환이 그 참변을 막았다.
 아버지는 이내 비를 그치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봉투였다. 저게 뭘 뜻하는지 알았기에 빠르게 거절했다.
 “받지 않겠습니다.”
 예의상 하는 거절이 아니다. 진심이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받아 주십시오.”
 “돈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몸을 던진 겁니다. 그러니까 도로 넣어 주십시오.”
 받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아버지도 꼭 건네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맘이 편할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저희 현아 구해주신 은인인데 제발 이 정도는 하게 해주십시오. 못난 애비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저 말을 듣자 몸이 멈췄다.
 딸이 없는 정환 입장에선 저게 그저 성의라고 생각했거늘, 딸 가진 사람 입장에선 저게 단순 성의가 아닌 아버지의 마음과도 연결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단순 예의상 하는 성의가 아닌, 진심.
 진심을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받고 싶진 않았지만, 이걸 거절했다간 저 이의 마음속에 커다란 짐을 지우는 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는 봉투를 건네곤 눈가 주변을 닦아낸 뒤 병실 밖으로 나갔다.
 봉투 안에는 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겐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 하지만 정환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무겁고 크게 느껴졌다.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이 얹어졌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
 
 각성자라는 게 밝혀지자 얼마 후 퇴원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매스컴에 영웅이라며 떠들었던 것도 전부 다 신기루인양 병실 앞은 쓸쓸하기만 했다. 요즘은 워낙 자극적인 뉴스가 많았기에 금방 묻혔던 까닭이다.
 ‘차라리 이게 편해.’
 이쯤 되니 얘기하는 거지만, 카메라 들이대며 ‘한 마디만!’ 할 때마다 꼭 TV 속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나가는 길 독특한 모습이 눈에 밟혔다.
 이 병원엔 독특하게도 로비에 피아노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어느 여자가 그걸 연주하고 있었다.
 감미로운 연주에 감화되어 걸음을 멈추고 감상했다.
 오랜만에 듣는 음악으로 메말랐던 가슴을 축였다.
 연주는 적당한 수준에서 끝났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하지만 적당한 아쉬움을 남길 그런 정도.
 
 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피아노를 치던 여자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피아노 소리에 정신 팔려있어 몰랐지만, 여자의 왼팔에 미세한 금 같은 게 있었다.
 사람의 손이라기엔 괴이한 모습에 뭔가 하고 있자니 의사와 공학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여자의 손을 뚝 하고 떼어냈다.
 바로 의수였다.
 ‘저게 바로 마법 공학 의수인가.’
 과거 전자공학이 의수의 미래였다면, 지금은 마법 공학 의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금은 가격이 비쌌지만, 상용화와 대중화가 된다면 조만간 장애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어.’
 정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이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피처폰의 세상은 끝나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이렇듯 마법 융합은 사람들의 의식 밑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급격한 기술 발전에 따라 여러 가지 반작용도 있었지만, 그건 윗사람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정환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힘들고 슬픈 사람들이 적어지는 건 좋은 거겠지, 뭐.’
 마법 의수에 대한 감상을 끝마치곤 병원 밖으로 나갔다.
 자동차 주행, 통화, 휠체어 등의 소음 사이로 작게나마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청명하니 맑았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가 내뱉으며 기분전환을 몇 번.
 “아직 젊은 놈이 무슨 할배처럼 구냐?”
 어찌 보면 퉁명스럽지만, 과격한 친절이 묻어있는 목소리. 과거 소방대원 시절 구조팀장이자, 곧 들어갈 구조대의 사장님, 송덕준 되시겠다.
 “어? 여긴 웬일이세요?”
 “너 오늘 퇴원이래서 찾아왔는데. 좀 늦어버렸네.”
 덕준이 흰 봉지를 내밀었다. 두부였다.
 “이게 뭡니까?”
 “출소 기념.”
 이 양반은 도대체 상식을 어디다 엿 바꿔 먹었길래, 병원이랑 감옥을 같은 선상에 놓는 걸까? 예전부터 범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 집에서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았잖냐. 그게 감옥이지 뭐야. 어찌 됐든 출소 잘했어. 귀환 축하한다.”
 덕준은 픽 웃곤 팔뚝을 두드렸다. 분명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강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과격함이었다.
 “가자.”
 “어딜요?”
 “직장. 일해야지, 임마.”
 정환은 방금 했던 생각을 취소하고 싶어졌다.
 과격한 친절을 베푸는 지인은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과격한 친절을 베푸는 상사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 8화 브리핑
 
 
 “차 아직도 이거 타십니까?”
 “잘 굴러가.”
 눈앞에 2005년식 베르나가 보였다.
 요즘 애들은 알지도 못할 올드스쿨 취향이었다.
 “구조대 하면서 돈 좀 버셨잖아요?”
 “장비 사랴, 애들 월급 주랴, 사무실 월세 까랴, 미국 가있는 우리 아들놈이랑 마누라 돈 부치랴······ 허리가 휜다, 허리가 휘어. 모르면 말을 마라, 이 자식아. 네가 기러기 아빠의 서러움을 알아? 응?”
 내버려 뒀다간 2시간 넘게 쏟아낼 것 같아 끊었다.
 “예,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출발하시죠.”
 “거 재미없는 놈. 너는 임마, 윗사람이 얘기하는데······.”
 “출발하시죠.”
 “이 녀석 봐라?”
 “출발.”
 덕준은 결국 졌다, 졌어 하곤 엑셀을 밟았다.
 “근데 말이 점점 더 짧아진다? 조금만 더 하면 욕하겠어?”
 “어휴, 역시. 팀장님. 절 너무 잘 아시네요.”
 “됐다, 이 새끼야. 됐어.”
 
 오후 2시. 시원하게 뚫린 강남대로를 달렸다.
 원래대로라면 차로 가득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다와 하늘에 생긴 균열로 인해 해로와 공로가 좁아지며, 석유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정부가 돈을 쏟아 부어서 대중교통 가격을 유지해서 그렇지, 그것도 안 했으면 정말 개판이 될 뻔했다.
 “그나저나 벌써 정리가 끝났네요?”
 저번에 사건이 발생했던 지점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균열 감시지구니까. 도로는 확실하게 관리하지.”
 여차 싶으면 균열 안으로 군병력을 파병하거나, 그 외에도 균열 감시지구 내에 무슨 사건이 어떻게 터질지 몰랐다. 아마 그 때문에 바로바로 보수하는 모양이었다.
 
 사무실은 균열 2km 지점에 있었다.
 균열 전에는 회사 사무실로 쓰였던 건물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헌팅 관련 중소 산업체로 가득가득 차있었다.
 “사무실 좋은 데 쓰시네요.”
 “좋기는 개뿔. 균열 옆인데, 뭐가 좋아.”
 그도 그럴 게 균열 주변에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만큼 가격도 과거에 비해 저렴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옆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승강기를 타고 12층에 내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넓은 사무실이 보였다.
 “······직원이 엄청 많아 보이네요? 이렇게 컸어요?”
 눈에 잡히는 사람만 30명이 넘었다.
 “그쪽 말고, 이쪽.”
 덕준이 안내한 곳은 사무실을 가로질러, 화장실 옆에 붙어있는 회의실이었다. ‘회의실-5’ 표찰 정도가 어울렸지만, 이상하게도 ‘SD구조대’라는 표찰이 달려있었다.
 “잠깐만요. 남의 회사 안에 사무실을 얻었다고요?”
 “얼핏 보면 다 같은 회사 같겠지만, 아니야. 탕비실, 휴게실, 화장실만 공용. 여덟 업체가 공간 분할해서 쓴다.”
 월세도 월세거니와, 법적으로 헌팅 업체는 무조건 균열 감시 지구 안에 꽉꽉 들어가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덕준이 5번 회의실······
 아니, SD 구조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3쌍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덕준은 인사에 “오냐.” 하며 고개만 까닥였다.
 “근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조카인가요?”
 40대 중반인 덕준과 20대 후반인 정환. 어찌 보면 그렇게도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개하마, 새로 들어온 직원. 우정환이다.”
 “안녕하십니까, 우정환입니다.”
 가볍게 묵례하자, 작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자, 그럼 이제 내 이쪽 직원들을 소개하지.”
 덕준은 제 직원들을 차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송덕준, 46세 - SD구조대 사장, 구조대원.
 “나는 뭐 굳이 말할 거 없지?”
 
 박규, 32세 - 균열 지리학자, 길잡이.
 “박―규입니다. 그냥 규라고 불러주세요. 성을 붙여서 발음하면 좀······ 아시죠? 병실에서 본 적 있으니 구면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여성구 21세 - 렉카 운전수, 차량 담당.
 “저는 노예! 는 아니고, 그냥 운전수에요. 반갑습니다!”
 
 피태희 25세 - E등급 각성자, 전투원.
 “피차 목숨 거는 입장이나 잘 합시다. 얼타지 말고.”
 
 소개가 끝나자 그나마 활달해 보이는 성구가 물었다.
 “근데 우정환이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이에 덕준이 짧게 말해줬다.
 “저번 사건 때, 달커스랑 맞짱뜨고 있던 놈 있지?”
 “아~ 그 개또라이 새끼요?”
 그 개또라이가 나다 이 새끼야.
 라고는 차마 못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걔가 바로 얘다.”
 성구는 크게 놀라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제 말은······ 어······ 굉장히 멋있어서······ 그······.”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몰랐잖아요.”
 “됐고, 그만해라. 브리핑 시작할 거야. PPT 띄워.”
 실용적인 성격인 덕준답게, 인사는 짧게 자르곤 바로 일 얘기로 넘어갔다. 규가 PC를 만지자 PT 화면이 나타났다.
 
 - 비명 숲 실종자 수색.
 
 ‘비명 숲이라면 균열에서 가까운 숲이다. 근데 실종자?’
 흥미가 돋았기에 브리핑에 집중했다.
 실종자 수색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의자 깊숙이 몸을 뉘이며 피태희가 이죽거렸다.
 “시체팔이는 별로지 말입니다.”
 귀에 드릴이라도 가져다 댄 듯 강렬한 단어였다.
 시체팔이는 헌팅 종사자들이 쓰는 일종의 은어였는데, 실종자 생환율이 채 5%도 되지 않아 붙은 말이었다. 찾으러 가봐야 시체밖에 없으니, 시체를 가져와 돈을 받는다고 하여 시체팔이라고 부르는 듯싶었다.
 “사망자가 아니라 실종자다. 아직 죽었다는 보장 없어.”
 “알 분이 왜 그러실까, 사장님. 저기는 지구가 아니라 균열이오. 거기서 실종됐으면 그냥 뒤진 거지. 유가족이 헛된 희망 품고 공고 올린 걸 덥석 물어오면 어떡합니까. 우리도 나름 구조대라고 뭔가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썩은 물건을 물어 오면 퍽 곤란한 거 모르고 그러는 거요?”
 실종자 수색은 그 특성상 일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찾는 수색이야 공권력을 이용해 각종 자료(CCTV, 카드 사용 내역, 포탈 통과 시간 등)를 모아 그나마 쉽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민간 구조대는 아니었다.
 각종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자료를 그냥 내어 줄 리도 없었거니와, 제대로 된 실종 위치도 알 수 없었다.
 비명 숲.
 이름만 봐선 서울숲 같은 아주 작은 공원 같지만, 실제로는 그 부지가 관악구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정확한 좌표 없이 사람을 찾는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덕준은 얼굴을 찌푸렸다.
 말이 날카로워 그렇지, 태희의 말은 대부분은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저게 입바른 말이라는 거였다.
 “피태희. 그렇게 불만이면 네가 직접 좋은 일 찾아와라. 그럼 나도 아무 말 없이 그거 하마.”
 사실 일을 찾으려면 굉장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지 엄청나게 어렵거나, 엄청나게 짜거나.
 둘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뭐 정 마음에 안 들면 이번에 국가 공고 난 거 가던가. 남미 페루에 균열 빵꾸나서 국가 전복 난 건 알지? 거기 하루에 사람이 천 명 넘게 죽어 나간댄다. 거기 파병 갈래?”
 A등급 몬스터가 넘쳐나는 생지옥, 페루.
 거기서 운 좋게 고등급 몬스터들을 피해, 구조 몇 번 성공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현재 페루엔 미국의 독자적 판단으로 50발 이상의 핵미사일이 꽂힌 상태였다. 방사능 피폭 문제도 심각했다.
 “미쳤수? 차라리 한강에서 뛰는 게 생존율 높겠네.”
 “아니면 대형 길드 레이드 따라가서 걔네가 싸지른 똥이나 퍼 나르던가. 엉? 이런 일 하자고? 네가 하고 싶은 게 그거냐? 돈 받고 총알받이 한 새끼들 인생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마침표 찍어 주는 거?”
 덕준이 멱살 잡을 기세로 말하자, 태희가 입을 다물었다.
 “너 이 새끼야. 헌팅하다 와서 눈에 뵈는 게 없지? 떫은 거 많으면 때려치워!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성격 개차반인 새끼랑은 같이 일 못 한다.”
 개인의 무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언행이나 전과에 문제가 있으면 같이 일하기가 굉장히 껄끄러워졌다.
 중요한 순간에 등 뒤가 쫄깃해지는 건 일상다반사에, 최악의 상황엔 동료를 버리고 이탈할지도 몰랐다.
 “······아이, 왜 그래요. 그냥 그렇다고 말이나 한 거지. 알겠수, 입 다물고 있어야겠네. 거 까칠하기는, 쯧.”
 태희는 입맛을 쩝 다시고는 팔짱을 꼈다. 더는 대화하기 싫다는 동시에 저 일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태도였다.
 ‘굉장히 예민한 녀석이군.’
 정환은 태희를 흘깃 쳐다보곤 말았다.
 “그럼 브리핑 마저 하지. 실종자 수는 넷. F등급 각성자 2명에 일반인 2명이다. 비명숲 내에서 사라졌고, 출발 전에 펑킨스를 캐러 갔다고 들었다.”
 펑킨스는 노란색 머리에 검은 반점을 가진 버섯으로, 식재료, 향정신성 약품, 화장품 등 사용처가 많은 물품이었다.
 “비명숲에 들어간 지 7일. 공고는 이틀 전에 올라왔다.”
 균열 속에 있는 숲에서 7일.
 거리를 봤을 때 식량과 물을 아무리 많이 챙겼다고 한들 3일분 이상은 챙겼을 리가 없었다.
 ‘식량은 떨어졌고,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아마 숲을 헤매고 있거나, 안전한 장소에 숨어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겠군.’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브리핑이 끝났다.
 덕준은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사장님, 질문이요! 근데 숲이잖아요, 차는 어떡해요. 도입부면 차량 가져갔을 텐데, 렉카 끌고 가요?”
 차량 담당, 성구였다.
 “차량은 포기해야지. 이번엔 ATV를 이용한다.”
 ATV(All-Terrain Vehicle)는 전지형차로써, 시쳇말로 4륜 바이크 내지는 산악 바이크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크기가 작고 신뢰성이 높아 험한 지형도 잘 헤쳐나갔다.
 “쩝― 알겠슴돠.”
 렉카가 없다는 건 제 몫이 줄어든다는 뜻이었기에, 성구는 작게 입맛을 다셨다.
 추가 질문은 없는지 고요함이 감돌았다.
 “자, 출발은 오전 6시. 균열으로 장비 챙겨와라. 해산”
 일행은 각자 알겠다고 말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정환만 빼고 말이다.
 “잠깐만요, 내일이요?”
 퇴원한 지 하루도 안 된 정환이었다. 어이가 없어져 물었으나, 덕준은 문제 있냐는 듯 쳐다봤다.
 “왜, 더 쉬고 싶어? 굳이 너 없어도 되긴 하다만. 근데 내가 봤을 땐 넌 따라올 것 같네. 네 생각은 어떻냐?”
 따라갈 생각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당장 내일 균열 들어가는데, 준비가 안 됐잖습니까?”
 균열이라는 곳은 동네 공원 산책가듯 룰루랄라 갔다간 2시간도 안 돼서 납치-강도-살인으로 피해자 올림픽 그랜드 슬램을 찍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해야지.”
 “예?”
 “가자.”
 덕준은 특유의 우레 폭풍 같은 분위기로 자잘한 설명 따윈 전부 다 잘라버린 채 가자고 재촉했다.
 “어디를요?”
 “각성자 총괄 관리부, 각성자 물품 거래소, 병원. 그 외에 기타 일반 물품 사야지. 갈 곳 많다.”
 하나하나 따라다니며 일일이 챙겨준다는 말이었지만, 정환은 오히려 가벼운 불편함을 느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어머니와 같이 장을 보는 며느리가 된 기분이랄까?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9화 구조 밑준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각성자 총괄 관리부였다.
 균열 이후 새로 생긴 행정 조직으로 정부와 관련된 일은 대부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구조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각성자 보건안전청 역시 이곳의 산하기관이었다.
 신세대의 부르주아라 불리는 각성자 관련 일을 처리하는 곳이라 그런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덕준은 익숙한 모습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각성자 정보를 등록 및 관리하는 부서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공무원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신규 각성자 등록을 하고 싶습니다.”
 “저쪽 데스크 보시면, 서류 있어요. 작성해 주세요.”
 각성자 등록이라 하여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서류는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만 적은 뒤 사인만 하면 됐다.
 
 - 각성자 관리법 1조 1항에 의거하여, 등록하지 아니한 각성자는 30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억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 외에도 본인 정보 이용에 관한 동의와 전시상황 시 강제 징병할 수 있음에 대한 동의를 요구했다.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다 읽어보기로 했다.
 덕준이 ‘어차피 다 하는데 뭘 그렇게 읽어.’ 라며 면박을 줬지만, ‘제 일이니까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곤 묵묵히 전부 읽어봤다.
 별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오른편 검사실 가셔서 검사받고 서류 가져와 주세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각성자 정보 검사실로 향했다. 마치 병원 엑스레이 비슷해 보이는 큼지막한 기계가 보였다.
 “자, 원샷하세요.”
 밑도 끝이 없이 건넨 약을 마셨다. 오줌 맛이 났다.
 오만상을 쓰고 서 있으니 우으으응― 하며 기계가 진동, 뭔가 기묘한 느낌과 함께 검사가 끝났다.
 “여기 서류 받고, 건너편에 신체 검사실로 가주세요.”
 A4 용지에는 정환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이름 - 우정환
 등급 - F등급
 
 근력 - 18
 민첩 - 15
 저항 - 17
 
 “······이게 끝?”
 간단하게 못 해 허무했다.
 TV나 그 외 다른 매체에서 귀동냥 하기론, 분명 근-민-저를 제외한 다른 능력치는 물론이오, 고유 능력 같은 것도 적혀 있었다.
 실제로 헌팅 UCC를 제작하는 각성자들이나, 연예인하는 각성자들의 프로필도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말이다.
 허탈한 표정을 읽었는지 덕준이 끼어들었다.
 “등록용이라 기본 3대 능력치만 나온 거야. 성인 남성 평균 10. 거기에 곱연산으로 계산하면 대충 네 능력이 나온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근력이 18일 경우 일반인보다 약 1.8배 힘이 세다는 얘기가 됐다.
 “인지, 마력, 이능, 잠재, 지능 뭐 이런 기타 능력치들은 정밀검사 때려봐야 알 수 있다. 고유 능력도 마찬가지고.”
 덕준은 슬그머니 정환의 능력치를 훑고는 물었다.
 “뭐야, 너 능력치 왜 이렇게 낮아?”
 전직 소방대원이었던 터라 F등급 평균 능력치보단 높았지만, 그럼에도 덕준은 알 수 없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이 능력치로 어떻게 달커스 공격을 버텼어?”
 말이 안 됐다.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정환은 달커스의 공격을 막아냈었다. 정작 본인은 당시 워낙 정황이 없었던지라 기억이 흐릿했지만, 덕준은 똑똑히 봤다.
 정환이 달커스의 뿔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글······쎄요?”
 뭔가 번적거렸던 것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제가 체감하기엔 그냥 맞고 쓰러진 것 같은데요.”
 덕준은 머리를 긁적거렸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검사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능인가?’
 이능.
 아주 소수의 각성자만 가진 고유 능력이었다.
 염력, 발화, 가속, 강화, 변이, 왜곡 등.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정작 이능을 가진 각성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까닭에 이능 각성자는 그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설마.’
 이능일 가능성이 제일 컸지만, 알아내기 위해선 정밀한 검사가 필요했다. 당장은 그럴 시간도 돈도 없었기에, 덕준은 일단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일은 실종자 수색이었다.
 큰 전투가 벌어질 일은 없었기에, 덕준은 굳이 이능 유무를 알지 않더라도 큰 상관이 없겠거니 했다.
 아마도.
 
 신체검사는 별거 없었다.
 키, 몸무게, 시력 등 일반적인 것들이었다.
 완성된 서류를 들고 돌고 가자 직원이 카드같이 생긴 물건을 하나 건넸다. 원래는 사진도 필요했지만, 가져오지 않았기에 즉석에서 캠으로 찍었다.
 
 F등급 각성자, 우정환.
 등록번호 - 012F 4325 5984
 
 주민등록증과 비슷했으나, 색깔이 옅은 회색이었다.
 검사 당시 일이 워낙 빨리빨리 진행됐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등록증을 받자 그제야 현실감이 엄습했다.
 ‘진짜로 각성했구나.’
 각성자가 됐다는 것은 곧 힘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말이다.
 
 ***
 
 등록 다음엔 예방접종이었다.
 균열은 지구와 퍽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듣도 보도 못한 희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본인만 걸리면 다행이었지만 그것보다 치명적인 경우가 있었다.
 각성자는 육체가 강력해진 만큼 면역체계 역시 덩달아 강화된다. 이에 본인은 병에 면역이었지만 몸에는 여전히 병원균을 품고 다니는 전염체가 될 수 있었다.
 각성자도 대한민국 시민이고, 국민이다.
 그 상태로 가족, 친구, 연인 등 다른 일반인과 접촉하면?
 흑사병 애들 장난이 될 대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까닭에 균열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예방접종을 받아야만 했다.
 “조금 아파요.”
 간호사가 팔뚝을 툭툭 두드리곤······.
 
 쑤욱―
 
 “으어어어어어악!”
 방금 조금 아프다고 했던가?
 무슨 살덩이째로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에 겨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자니, 간호사가 가루약을 건네줬다.
 “드세요. 안 먹으면 고생 좀 할 거에요.”
 말이 예방접종이지, 여태까지 균열에서 발생 된 질병균 엑기스였다. 각성자니까 한 번에 몰아서 놓지 일반인은 한 달에 걸쳐 여러 번 나눠서 받았다. 아마 일반인이 각성자용 예방 접종을 맞는 순간 바로 요단강을 건너리라.
 약을 먹고 5분 정도 지나자 고통이 옅어졌다.
 “오늘은 샤워하지 마시고, 큰 운동은 자제해 주세요.”
 
 ***
 
 다음으로 각성자 물품 거래소에 도착했다.
 이 장소는 각성자들이 헌팅으로 얻은 물건들을 정산함은 물론, 아티팩트도 구입할 수 있는 일종의 쇼핑몰이었다.
 헌터들이 대부분 남자였기에 백화점처럼 반짝반짝거리기 보단,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만큼 활기도 넘쳤다.
 “아티팩트는 엄청 비싸지 않아요?”
 “비싸지.”
 “근데 여긴 왜 오셨어요, 사주시게요?”
 덕준은 별 미친놈 보겠다는 듯 정환을 쳐다봤다.
 “아니. 오늘 하루 이렇게 개고생시켰으면 아티팩트 하나는 사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팀장님?”
 반쯤 농을 섞어 던지자 덕준이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네 월급 받아다 사. 늬들 월급 주느라 내 허리가 휘는데 어디 등골까지 뽑아드시려고. 내 등골엔 이미 미국 간 내 아들놈이랑 마누라 빨대 꽂혀있어서 자리가 없다.”
 말 속에 씁쓸함이 있었으나, 모른 척하고 웃었다.
 “하이고, 우리 기러기 팀장님. 어떡한답니까.”
 “그러니까 네가 일 열심히 해서 돈 벌어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굳이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둘은 1층에 있는 헌팅 용품점으로 가, 일반물품(비 아티팩트 물품) 장비를 몇 개 구입했다.
 아웃도어 등산복같이 생긴 옷과 워커 그리고 얇은 사슬로 만들어진 후드를 하나 구입했다. 험한 지형에서 손을 보호해 줄 장갑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350만 원입니다.”
 상 하의, 사슬 후드, 워커, 장갑, 보안경.
 하나에 70만 원꼴.
 어지간한 브랜드 뺨따귀 후려갈기는 가격에 속이 쓰렸으나,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장비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장비 값 아끼는 순간 죽음이 성큼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과거 소방대원 시절에도 예산 문제로 보호 장구를 사비로 샀던 기억이 났지만, 훌훌 털어버렸다.
 이미 은퇴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한 사람의 구조대원이었다.
 
 쇼핑을 마지막으로 밑준비가 모두 끝났다.
 덕준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근데 팀장님 비각성자 아니셨어요?”
 “맞는데, 왜.”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등록, 예방접종, 장비 구입.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헌터라면 사나흘은 고생했을 복잡한 절차를 덕준은 한큐에 처리했다.
 “나중에 각성하면 하려고 알아뒀지. 근데 어찌 된 게 난 각성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지나간 추억 얘기하듯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작은 슬픔이 묻어났다. 균열에 들어가는 비각성자로서 얼마나 각성자가 되길 고대했을까.
 모든 절차를 외웠지만 정작 기회는 오질 않았다.
 마치 재능 없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리라.
 “뭐 비각성자 생활도 나쁘지는 않아. 겁이 많아지거든. 그래서 방심하거나 우쭐댈 틈이 없어. 그러면 죽거든.”
 말 속에 뼈가 있다.
 뭐라고 대답하거나, 위로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내일 보자. 오전 6시. 잊지 마라.”
 덕준은 차를 몰아 사라졌고 혼자가 되자 그제야 정신없던 하루가 정리되며 피로와 함께 기대감이 찾아왔다.
 ‘구조대가······ 됐다.’
 다시 한 번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뭔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으나, 애써 누르곤 잠자리에 들었다. 출근 첫날부터 지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
 
 새벽 4시.
 일어나서 샤워와 면도를 한 뒤 냉수를 한 컵 마셨다. 커피를 마셨다면 더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사치품이었다.
 ‘반강제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린 뒤 장비를 갖춰 입었다.
 속옷 위로 사슬 후드를 입었고, 그 위로 또 아웃도어 등산복 같은 방어구를 입었다. 안감에 자잘한 철편이 붙어있어 움직이기는 불편했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내 목숨을 지켜 줄 불편함이다. 감수해야 해.’
 구조를 위해 위험한 곳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이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본인의 편안함을 대가로 남을 희생시키거나, 편안함을 위해 제 목숨을 던지거나.
 어느 쪽이든 좋지 않다.
 옷을 갖춰 입은 다음에는 등산배낭을 짊어졌다.
 안에는 로프, 휴대용 산소호흡기, 전등, 나침반, 다용도 공구, 와이어 톱, 빠루, 레펠 용품 등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언제 봐도 참 가짓수가 많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지 안 쓸지도 모를 물건을 바리바리 싸간다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구조는 최악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하는 법이었다.
 ‘될 수 있으면 안 쓰는 게 좋다. 도구가 필요 없다는 건 그만큼 가벼운 상황이라는 반증이니까.’
 배낭을 메자 꽤 무거웠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무게감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매일 하던 일인만큼 익숙해질 수도 있었기에, 이렇듯 항상 긴장의 끈을 조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드 구조대』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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