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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000군주 1-1권

2016.10.05 조회 1,282 추천 5


 # 눈치게임 - 뒤바뀐 세상
 
 ***
 
 솜사탕을 연상케 하는 하얀 구름.
 그 면적은 대략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10배는 되어 보인다.
 그 위에 무수히 많은 사람과 괴물이 대오를 이루며 서있다.
 선두에는 대략 스무 명의 사람들이 따로 둘러 앉아 있었다.
 개 중에서 머리 위에 휘황찬란한 황금빛 투구를 쓴 자.
 [황제, 이마루]
 그가 근엄한 자태를 취하며 어딘가를 응시했다.
 “저곳인가?”
 다른 이들의 시선 또한 이마루가 보는 곳으로 향했다.
 “천상계의 궁.”
 “드디어 마지막이군요.”
 쥐포를 있는 힘껏 물어뜯은 이마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최후의 심판을 하는 날이 왔다.”
 삽시간에 짙은 살기가 구름 위를 뒤덮었다.
 “옥황상제 영감탱이. 기다려라. 죽여준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인다.
 
 척.
 한 쪽 팔을 뒤로 젖혔다.
 “전군, 진격.”
 군대를 이끌고 그들은 궁을 향해 행진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든 이를 처단하기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때까지 겪었던 파란만장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지옥마에 오르며 이마루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여느 날과 다름없는 화창한 오후 수업 중.
 막 점심시간이 종료되고 5교시, 수학시간이 되었다.
 소수의 우등생들을 제외한 자들은 춘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가 새삼스럽지 않았는지 수학 선생님은 꿋꿋하게 수업을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그때.
 띠링.
 귓가를 간질이는 효과음이 났다.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반 전체가 즉각 반응을 보인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눈앞에 반투명 네모난 창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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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시대에 돌입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
 “어우 이게 뭐야!”
 누군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뒤로 내빼며 일어섰다.
 한창 수업도중 생긴 돌발행동.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한데 다들 딴 데 정신이 팔려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각자 눈앞에 생겨난 네모난 창으로 쏠려있었다.
 교실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내용자체는 복잡하지 않았으나,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그 글귀를 다 읽었다 싶은 시점.
 “뭐, 뭐야?”
 여기저기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이 커져가 종국엔 교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선생님도 한동안 넋 놓은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시끄러워진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도무지 조용히 만들기 힘든 환경, 늦었다.
 ‘다른 애들 거는 안보이네?’
 이마루.
 그는 교실에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아무것도 안 보이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뭔가를 보고있지만 그것은 개개인, 본인들만 보이는 게 분명했다.
 ====================
 << 눈치게임 >>
 - 눈치가 없는 자들은 생존시대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
 <참가인원>
 37명.
 <놀이 내용>
 숫자를 외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숫자를 외친다.
 <놀이 방법>
 숫자1부터 2, 3, 순으로 다음 숫자를 차례대로 외친다. / 한 사람당 숫자는 하나만 부를 수 있음.
 <사망 조건>
 두 사람이 숫자를 동시에 외쳤을 때.
 같은 숫자를 외쳤을 때/ 가장 마지막 숫자를 외쳤을 때.(생존인원 기준)
 1시간이 지나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을 때.
 <종료 조건>
 게임을 끝냈을 때.(눈치가 생겼을 때)
 * 이 글귀를 보는 즉시 눈치게임 ‘시작.’
 ====================
 안내창을 다 읽은 수학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저기······ 얘들아······ 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알아보고 올게.”
 침을 꼴깍 삼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마다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분단의 맨 뒷줄. 거기서도 한창 열띤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
 “이거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반장, 박종훈이 짝지인 이마루에게 떠보듯 물어보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동시다발적으로 눈앞에 이런 홀로그램이 뜨다니. 이런 기술이 아직 우리나라에서 도입화 된 것도 아닐 테고.”
 “뜬금없이 수업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도 믿기지 않아.”
 “그렇지만 명백히 꿈은 아니란 소리지.”
 “그럼 죽기라도 한다는 거야?”
 이마루의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한예원이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글쎄.”
 다들 눈치만 서로 볼뿐, 누구 하나 눈치게임을 시작하는 이는 없어보였다.
 쿵.
 뭔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로 시선을 돌리는 학생들.
 다름 아닌, 수학 선생이 소리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어, 어어. 왜 안 열리지?”
 그는 미닫이 문을 양손으로 잡아끌고 있었다. 반면 꿈쩍도 않고 딱 버티고 있는 문.
 “에이, 선생님. 이 분위기에 장난해요?”
 문과 수학선생을 번갈아보며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장난 아······ 아니야.”
 약골에 영 못 미더운 수학선생이었다. 그렇다한들, 설마 매일 열던 문 하나를 못 열까?
 뭔가 이상했다.
 수학선생이 한창 낑낑대고 있는 사이, 앞줄에 앉은 학생이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제가 한번 열어볼게요.”
 학생이 수학선생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소용없었다. 이번엔 강하게 부여잡고 재시도했다.
 결과는 동일했다.
 그때였다.
 [눈치게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이 문구는 전체 공개되어 모두가 보았다.
 마치, 수학선생의 행동이 부질없다고 나무라듯 말이다.
 “일!”
 짧고 굵은 한마디.
 마침내 누군가 눈치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눈치게임의 시작을 끊은 이는 이마루의 짝지인 반장 박종훈이었다.
 그의 정수리 위로 숫자 ‘1’의 형상이 떠올랐다.
 1은 눈부실 정도의 빛을 뿜어댔다가 사그라졌다.
 “야, 너 왜 그래?”
 이마루가 박종훈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저 안내창에 뜨는 말을 믿어서 손해 볼 건 없잖아. 또 처음 하는 게 제일 나아.”
 박종훈이 머리 위에 뜬 숫자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잡으려고 시도해보았지만 허공에 휘젓는 손짓에 불과했다.
 ‘종훈이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이마루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왕 해야 할 게임이라면 첫 번째로 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해놓고 나면 누구보다 먼저 안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이쯤 되면 이제 이게 단순한 장난질이라고 여기는 자는 없다.
 급속도로 냉각되는 분위기.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눈치를 본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각자의 입술을 주시한다.
 그 입이 조금이라도 벌려지는 걸 포착해야한다.
 이때다. 지금 해야 한다!
 “이!”
 “이!”
 엇비슷하게 울리는 두 목소리.
 소리를 낸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았다.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외쳤다.
 “야! 너! 돌았냐?”
 “미쳤냐? 네가 하면 어떡해!”
 오영호, 박남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로한테 삿대질했다.
 다가가 한 대 치고 박기라도 할 기세.
 [사망조건 : 두 사람이 숫자를 동시에 외쳤을 때.]
 그때, 오영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끄으으악.”
 갑자기 오영호가 자신의 목을 움켜잡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눈이 회까닥 뒤집히더니 고통스러운지 몸부림쳐댔다.
 쿵!
 교실바닥으로 쓰러지듯 자빠졌다.
 입이 찢어질세라 꺼억, 꺼억거리다가 이내 게거품을 물었다.
 그러기를 30초 정도.
 툭.
 그가 발작을 정지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아갔다.
 오영호뿐만 아니라 박남기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영, 영호야! 정신 차려! 임마!”
 “남기야! 괜찮아? 야! 눈 좀 떠봐!”
 “죽은 거야? 확인해 봐.”
 가까이 앉아있던 학생이 오영호의 콧구멍 앞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학생의 낯빛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로써 두 명의 학생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버렸다.
 다시 교내가 술렁거렸다.
 “얘, 얘들아······ 진정하······자······. 진······정.”
 그렇게 말하는 수학선생의 손이 극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참가인원 37명. 수학선생은 그 누구보다 그 숫자가 뜻하는 바를 익히 알았다.
 ‘나, 나도······ 참가자야······.’
 이 반 학생수는 36명이다. 나머지 1명은 보나마나 자신일 터.
 선생이라고 예외는 없다.
 한편.
 “야, 지금 다음 숫자를 외쳐.”
 박종훈이 눈치게임을 하라고 이마루를 부추겼다. 친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영호하고 남기가 죽어서 혼란스러울 때, 지금이 적기야.
 이 상황이 정리되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이마루가 힘없이 대답했다.
 “나, 솔직히 못 하겠다.”
 “뭘?”
 “이런 짓거리.”
 “뭐? 그럼 어쩔 거야. 뒤지고 싶어?”
 “무섭다. 또 동시에 외치면 어떡 하냐?”
 한 번 일어난 일.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잖아. 마지막에 외치는 사람은 죽는다잖아. 오영호하고 박남기를 봐. 진짜 죽었어.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장난이 아니니까, 더 못하겠다고.”
 이마루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
 “씨발, 그냥 외치란 말이야.”
 “닥치고 있어.”
 그가 왜 외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 누구보다 얼른 숫자 2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정작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실어증 환자가 된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숫자를 외쳤습니다.]
 [눈치게임은 초기화 됩니다.]
 [다시 1부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54분 32초]
 [시간이 종료되면 전원 사망합니다.]
 섬뜩한 문구가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박종훈이 가장 크게 반응했다.
 “왜 초기화 되냐고!”
 물어도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콰앙!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주먹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확실히 제3자가 봐도 미치도록 억울할 만했다.
 겨우 용기 내어 1을 외쳤고, 그로 인해 자신은 살았다고, 안심하고 있었을 터였다.
 헌데, 2를 두 명이 동시에 외치는 바람에 게임이 원점으로 돌아갔단다.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타인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박종훈도 다시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박종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시 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박종훈이 입을 뗐다.
 “일!”
 “일!”
 “뭐?”
 그가 벌떡 일어서며 우측을 돌아보았다. 거기에 또 한 명의 학생이 서서 박종훈을 노려보았다.
 “미쳤냐? 이 새끼야?”
 “야! 이쪽으로 와. 개새끼야.”
 죽음 앞에선 더 이상 친구도 뭣도 없다. 오직 살기 위한 발악만 남았을 뿐이다.
 어찌됐든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숫자를 토해냈다.
 “큭! 크으윽.”
 이것이 박종훈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었다.
 그의 종아리에 부딪혀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그 뒤를 따라 박종훈도 뒷걸음치다가 넘어졌다.
 그대로 머리가 깨지며 사망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깡그리 무시하는, 참으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안내창이 생겼다. 내용은 색다를 것 없이 식상했다.
 [눈치게임은 초기화 됩니다.]
 [다시 1부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51분 22초]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남은 시간이었다.
 이들이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며,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갔다.
 교실은 재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입을 열었던 친구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즉, 살고자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죽게 된 것이다.
 살고자하면 입을 닫아야 했다.
 이마루는 이에 적극 동의했다.
 ‘오히려 눈치게임을 하지 않고 있는 게 낫다. 앞서 하겠다고 난리치다가 죽은 이가 벌써 네 명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옆으로 눈을 흘겼다.
 그의 시야에 포착된 것은.
 박종훈.
 한때 그의 짝지였던 아이가 싸늘한 시체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걸 보자 이마루는 왈칵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훌쩍.
 ‘어떻게 참았던 눈물인데······.’
 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그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박종훈과 보냈던 추억들이 그의 기억 한편에서 재생되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늘 함께였던 소중한 벗.
 이제는 그와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축구도 함께 뛰지 못한다.
 앞이 캄캄해졌다.
 이 분노를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그 대상조차 막역하기 그지없다.
 휴지로 애써 눈물을 닦으며 가슴을 두드리며 진정시켜나갔다.
 남은시간은 10분 주기로 사람들한테 공개되었다.
 - 얼른 눈치게임 안 하니? 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남은 시간 : 39분 42초]
 10분이 넘도록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그 안에 숫자를 외치면 됐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도 늦지 않아 보였다.
 한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명백히 지금이 숫자를 외칠 적절한 시기였다.
 그러나, 역으로 그 점을 익히 잘 알고있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동시에 외칠 수도 있으니까.
 남은시간이 얼마가 남았든, 당장은 그게 더 두려웠다.
 눈치게임이 시작된 지 약 25분이 지났다.
 반장 박종훈의 죽음 이후로 그 누구도 면전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
 말해봤자 숫자는 10을 채 넘기지 못하고 초기화될 것이다.
 그러면 목숨을 걸고 말했던 숫자가 물거품이 된다.
 그럴 바엔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게 낫다.
 다 같이 죽는 게 나을지도?, 하는 생각을 품은 이도 나타날 정도였다.
 하여튼, 그 점이 이 상황을 만드는데 한몫했다.
 이마루의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한예원.
 그가 걱정스러워하며 뒤를 돌아봤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 몰살당하는 거 아니야?”
 “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이마루는 냉정하게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노트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가 빠르게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결심이 섰는지 펜을 노트위에 살포시 얹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이목이 집중됨을 느끼는 순간.
 “얘들아. 내 말 좀 들어줘.”
 운을 뗐다.
 그 말에 수학선생이 가장 빨리 대답했다.
 “마루야.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니?”
 “예. 들어주세요. 선생님.”
 “그래, 알았다.”
 어느새 다들 마루의 얘기를 듣기위해 집중했다.
 잠잠한 환경이 조성되자 그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눈치게임은 일종의 심리전이야.”
 “그거야 우리도 알고 있지.”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이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급함. 그걸 교모하게 파고들어, 결국 여러 사람이 동시에 숫자를 부르게 만들지. 지금은 역으로 아무도 숫자를 못 부르게 변했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마루가 말을 덧붙였다.
 “눈치게임은 엔간하면 마지막 숫자까지 외쳐지는 일은 없어. 그전에 숫자를 동시에 외치는 게 대부분이고, 그렇게 되면 초기화까지 돼버리니까.”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대로 가면, 예상한 대로 전원 죽는 수밖에 없어. 절대 숫자를 끝까지 외치지 못할 테니까.”
 얘기가 점점 늘어지는 듯하자, 몇 사람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마루도 그걸 눈치챘다. 그렇지만 애써 무시하며 할 말을 이어나갔다.
 “눈치게임의 종료 조건을 난 유심히 봤어.”
 “게임을 끝내는 것 밖에 없잖아?”
 “그래, 그렇긴 하지. 근데 자세히 보면 괄호를 쳐놓고 있는 내용이 있지.”
 “눈치가 생겼을 때?”
 “맞아.”
 이마루는 이 대목에서 약간 언성을 높였다.
 “언뜻 보면 눈치게임은 개인전처럼 보일 수 있어. 하지만 실은 우리가 힘을 합치면 살 수 있는 단체전인거지.”
 “어떻게?”
 “짜고 치는 거야. 일단, 시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손을 들어. 그리고 숫자를 말하는 거지.”
 “여러 손이 올라가면?”
 “그건 내가 중재를 할 거야. 누구, 해라. 이렇게.”
 “아······.”
 그제야 학생들과 선생님이 이마루의 작전을 파악했다.
 “정말, 그렇게 하면 중복되는 숫자를 말해서 죽거나 초기화 시키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겠구나.”
 “그래. 우린 이걸 눈치챘어야 했어. 즉, 운이나 실력이 좋아서 깰 수 있는 게임이 아니야. 그렇다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그런 이기적인 게임도 아니고. 명칭 그대로 눈치가 있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였어.”
 
 ***
 
 이마루의 대대적인 연설이 끝나고, 곧바로 눈치게임이 재개되었다.
 ‘1부터 차근차근 가보자.’
 서로 앞다퉈 숫자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질서정연하게 손들기가 진행 중이었다.
 “일.”
 1분단 제일 앞줄부터 차례대로 손을 들어나갔다.
 “이.”
 “삼!”
 “사!”
 손을 들고, 이마루의 동의가 떨어지면 그다음 숫자를 불렀다.
 앞줄부터 뒷줄까지 진행되기에 두 사람의 손이 올라오는 일도 없다. 그랬기에 중복은 작정하고 미친놈이 나타나지 않은 한 요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무사히 한 명씩 숫자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새.
 “삼십.”
 “삼십 일.”
 눈치게임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잘 진행되는 듯 했으나.
 “삼십 이.”
 32에서 막혔다.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한사람은 이마루였다.
 이 교실 내에 생존자는 33명.
 ====================
 <사망조건>
 [가장 마지막 숫자를 외쳤을 때.(생존인원 기준)]
 ====================
 이마루는 33번째 생존자였다.
 그때, 다른 학생들의 얼굴위로 느낌표가 떠올랐다.
 처음 이마루가 이 제안을 했을 때, 그가 워낙 당당하게 나왔기에 나중의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상태로 여기까지 게임을 진행했는데 마지막이 돼서야 깨달았다.
 마지막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외통수를 맞은 것이다.
 “이럴 수가. 마, 마루야.”
 한예원이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마루를 바라보았다.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루의 손을 잡는 그녀.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인다.
 “어, 어떻게······ 넌······ 넌 어떡해!”
 나름 괜찮은 분위기였는데, 다시 초상집 분위기로 탈바꿈해버렸다.
 “괜찮아.”
 이때까지만 해도 형식적으로 이마루가 내뱉는 말인줄 알았다.
 “난 말하지 않을 거니까.”
 눈물을 훔치며 한예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
 “우리가 알던 눈치게임과 약간 다른 구석이 있어. 굳이 마지막 사람이 마지막 숫자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그게 정말이야? 마지막 숫자를 말하지 않는다니.”
 “어. 안내창에 그런 말은 없었어. 자, 봐봐.”
 그가 펼쳐진 노트를 한예원 쪽으로 밀었다.
 노트에 적힌 것은 규칙내용이었다.
 ====================
 <사망조건>
 [가장 마지막 숫자를 외쳤을 때.(생존인원 기준)]
 ====================
 “생존 인원 기준?”
 “그래, 37명으로 시작해서 4명이 죽었어. 현재 생존인원······.”
 그가 노트에 펜으로 뭐라고 쓱, 하고 적었다.
 [생존인원 : 33명 / 마지막 숫자 : 33 / 내가 불러야할 숫자 : 33]
 “바로 내가 불러야할 숫자야. 자세히 봐, 사망조건이 ‘생존인원을 기준으로 가장 마지막 숫자를 외쳤을 때.’잖아. 그러면 반대로 그 마지막 숫자를 안 외치면 돼. 그 사망조건대로 하지만 않으면 살 수 있는 거지.”
 “그, 그럴 수가. 그래도 돼? 보통 눈치게임은 마지막 숫자를 외치고 그 사람이 벌칙을 받는 거였잖아.”
 눈치게임은 새로 창조된 게임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게임이었다. 안내창에 뜬 규칙도 크게 예전의 것과 달라진 건 없어보였고.
 이에 이마루가 답했다.
 “그건 보통 눈치게임일 때 그런 거지. 조금의 각색이 된 눈치게임이지.”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종료 조건을 봐. 구체적인 추가사항은 없어 오직 게임을 끝냈을 때라고 돼있어. 그리고 괄호 안을 봐.”
 ====================
 <종료 조건>
 게임을 끝냈을 때.(눈치가 생겼을 때)
 ====================
 “종료조건은 게임을 끝냈을 때이지. 눈치껏 말이야. 괄호 안을 유심히 살폈으면 될 일이었어.”
 다들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전체공개 되어 나타나는 안내창.
 [마지막 생존자의 차례입니다. 숫자를 말하지 않을 시, 카운트다운에 들어갑니다.]
 “저, 저건······.”
 불안한 눈빛으로 옆 분단의 친구가 이마루에게 말했다.
 “야! 진짜 말······ 안 해도 돼?”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이마루.
 “미쳤어? 말하게? 말하면 죽는데.”
 “하지만 저건······.”
 [6······5······4······.]
 “잘 봐. 숫자를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게 아니라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거잖아. 일부러 겁을 주는 거지. 심리적으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 마음이 촉박해지잖아. 그걸 노리고 내가 실수하기를 바라는 걸 거야. 하지만 난 더럽게 눈치 없지는 않거든.”
 겉으로 티내진 않았지만 솔직히 떨리긴 했다.
 죽든 살든 빨리 카운트다운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3······2······1.]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띠링.
 [눈치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사망자들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다른 반에서의 눈치게임은 아직 진행 중이므로 정숙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눈치게임이 종료되면 다음 지령이 하달될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세요.]
 [눈치게임 결과 정산중······.]
 [생존자 : 33 / 37]
 [신기록 달성! ]
 [시력이 0.3씩 높아집니다.]
 여기까지가 공통적으로 배분되는 안내창이었다.
 오직 이마루한테만 추가로 배당되는 것들도 있었다.
 [탁월한 안목과 재치로 눈치게임을 공동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힘, 민첩, 지력이 +5씩 상승합니다.]
 [시력이 1.0씩 높아집니다.]
 [아이템, 눈칫밥 10인분이 증정되었습니다.]
 [인벤토리의 칸이 10개 개방되었습니다.]
 [다음 놀이에 대한 단서가 주어집니다.]
 “정말 끝났어.”
 한예원이 얼이 나간 채로 읊조렸다. 다른 학생들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학선생님도 교탁 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딱히 신체적인 격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진이 빠져버린 까닭이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은 살았지만 함께 공부했던 같은 반 친구가 무려 4명이나 죽었다.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마루 역시 오랜만에 두뇌회전을 한다고 골머리를 앓았다.
 책상에 이마를 부딪치며 엎드렸다.
 ‘미안하다. 종훈아. 조금만 더 빨리 이 방법을 눈치챘다면 좋았을 것을······.’
 자신이 해한 것도 아닌데 반장에 대한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렸다고 여겼으니까.
 눈치게임은 시작부터 규칙의 허점을 안다면,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끝날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걸 뒤늦게 안 이마루로서는 먼저 간 친구들한테 미안할 수밖에.
 이마루가 참혹한 심정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
 [은빛 고등학교 생존자 전원의 눈치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눈치게임이 끝났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00 : 30 : 00]
 [쉬는 시간 30분이 주어집니다.]
 [시간 내에 각자의 교실로 돌아오길. 오지 않을 시, 대가를 치를 것.]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였다.
 [문이 열립니다.]
 앞문과 뒷문. 양쪽 문이 자동으로 휘리릭 열렸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혹은 다른 반의 친구를 만나려고, 답답한 기분을 달래려고.
 각양각색의 이유를 담은 학생들이 복도로 우르르 몰렸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이마루, 그는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제3자인 한예원의 입장에선 이마루는 그저 허공을 응시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상태창을 보고 있어.”
 “어? 그거 어떻게 보는 건데?”
 “상태창, 이라고 마음속으로 두 번 외치면 돼.”
 그도 방금 발견한 사실이었다.
 하도 가상현실게임 같았고, 또 그런 내용의 매체를 접했던 터라 시험 삼아 해본 것이다. 말도 안 되게 딱 들어맞을 줄은 몰랐지만.
 “아.”
 교실에 남아 그 얘기를 엿들은 몇 학생도 눈빛을 번뜩였다. 그들도 똑같이 상태창을 살폈다.
 [이마루]
 [체력 : 100/100] [마력 : 100/100]
 [힘 : 10]
 [민첩 : 10]
 [지력 : 10]
 [시력 : 2.8]
 [아이템 : 눈칫밥(10) / 다음 놀이에 대한 단서(1)]
 우선, 눈에 띄는 항목은 눈칫밥과 다음 놀이에 대한 단서였다.
 그는 눈칫밥과 단서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눈칫밥]
 [복용 시, 무작위로 히든 규칙을 알 수 있다.]
 [공개되는 개수는 정해져있지 않다.]
 [단, 히든 규칙이 있는 놀이에서만 사용가능.]
 [다음놀이에 대한 단서]
 [사용 시, 단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화살표가 생김.]
 ‘단서 사용.’
 즉시 벽에 검은 화살표가 생겨났다.
 화살표는 교실 밖을 향해 그어져 있었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예원한테 말했다.
 “그래. 이따 봐.”
 한예원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그녀와 함께 가면 아무래도 이동속도도 그렇고 여러모로 거치적거린다.
 혼자 행동하는 게 수월할 터였다.
 타탓.
 그는 화살표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평상시 쉬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원이보다 이것들이 더 거치적거리네.’
 벽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데 학생들로 인해 그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충 검은색이 보이긴 하는데 문제는 화살표 끝부분이 방향을 나타내는데 그 부분을 가리는 것이다.
 “야, 비켜 봐.”
 이마루가 벽에 바짝 붙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에게 시비조로 말했다.
 “어? 어.”
 그는 불쾌한 인상이었지만 별다른 반격은 하지 않았다.
 대신, 서 있던 자리를 비켜주며 벽을 바라보았다.
 이마루가 유심히 벽에 시선을 두었기에 뭔가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 학생은 친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역시 이 화살표는 나만 볼 수 있구나.’
 그는 화살표를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다.
 ‘30분 안에 돌아가야 한다.’
 열심히 뛰어가던 그가 갑자기 주춤했다.
 화살표가 가리킨 방향이 자못 그를 당황스럽게 했다.
 [여자 화장실]
 “무슨 단서를 저런 곳에······.”
 일순 만면이 화끈거렸다.
 여자 화장실이라고 단서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주위 눈치를 살폈다.
 이 화장실은 안타깝게도 사람의 발길이 뜸하지 않다.
 발길이 끊긴다싶으면 다음 여학생이 출입을 했다.
 그가 화장실 입구에 서성이고 있자, 이상한 눈길을 주며 여자들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가져와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부탁할 사람이 있기는 있다.
 한예원. 그녀라면 이마루의 부탁을 후딱 들어줄 터였다.
 ‘이 단서는 일단 비밀로 한다.’
 이마루는 이 일을 혼자 해결하기로 결정 내렸다.
 단서가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타인과 그걸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예원을 제외시키자, 아무리 묘안을 떠올려 봐도 소용없다.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보였다.
 저벅, 저벅.
 그나마 여학생이 덜 있다 싶을 시기에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살다 살다 여자화장실에 들어오게 될 줄이야.’
 화살표는 여자화장실 다섯 번째 칸을 가리켰다.
 급히 그리로 달려갔다.
 문이 열려있었기에 따로 노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칸 안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잠금 걸쇠를 걸었다.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화살표의 위치를 확인했다. 벽을 타고 내려와 변기통을 향한다.
 ‘큰일 났네. 많고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여기에······.’
 여기까지 와서 그깟 더러움 때문에 단서를 저버릴 수는 없다.
 그는 양 코볼을 꽉 집고 변기통 뚜껑을 열었다.
 탁.
 변기통 뚜껑을 열자 올라오는 악취.
 덧붙여 보이지 않았던 뚜껑의 아래쪽 면이 드러났다.
 단서가 적혀 있었다.
 [현재 각층의 사물함 안에는 아이템이 들어 있다.]
 [반 대표의 수가 많을수록 놀이에 유리.]
 [반 대표의 수에는 제한이 없다.]
 그가 내용을 다 훑자 지우개로 지워지듯 글자가 서서히 옅어졌다.
 ‘뭔 말이지? 반 대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였다.
 ‘나중에 알 수 있겠지.’
 타앙.
 변기통 뚜껑을 세게 내리치면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여학생이 이마루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변태새끼!”
 이마루는 허겁지겁 화장실 밖을 벗어나 교실 쪽으로 뛰어갔다.
 그의 귀가 새빨갛게 변해버린 뒤였다.
 ‘후. 냉정해지자.’
 
 그는 단서 중 현재 유일하게 이해가 가능한 것을 상기시켰다.
 ‘사물함에 아이템이 보관되어 있다?’
 그는 손목시계로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사물함 전체를 수색하기엔 모자라지만 절반까지는 뒤져볼 만했다.
 일단, 본인이 속한 3층부터 찾아보고, 시간이 남으면 아래층으로 향하면 된다.
 사물함은 교실이 즐비한 복도와는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교실이 있는 본관.
 과학실, 음악실 등이 있는 서관이나 동관.
 세 구역을 이어주는 다리 지점에 있었다.
 때문에 현재 상황에선 딱히 학생들이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다.
 실제로 그곳에 갔을 때, 이마루는 한적함을 느꼈다.
 그는 가까운 사물함에 접근했다.
 ‘낭패다.’
 사물함에 대해 망각했던 점이 있다.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물함은 자물쇠로 잠겨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그는 대강 눈으로 흘기며 다음 사물함으로 이동했다.
 ‘여기도······.’
 자물쇠가 없는, 그런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온통 자물쇠 천지였다.
 ‘그러고 보니, 내 사물함도 자물쇠를 채워놨지.’
 자물쇠를 일일이 박살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사물함이 보였다.
 ‘망하라는 법은 없구나.’
 문이 종잇장 구기듯 찌그러져 있었다.
 ‘아무도 쓰지 않던 사물함.’
 교체가 필요한데 미처 그 시기를 만나지 못했던 거겠지.
 이마루 입장에선 호재였다.
 저벅, 저벅.
 그는 서둘러 그 사물함 앞으로 다가갔다.
 끼이익.
 망가지긴 했지만 경첩부분은 멀쩡했다. 그런 까닭에 개폐에 무리는 없다.
 활짝.
 ‘아, 없네······.’
 사물함이 텅 비어있는 줄 알았다.
 “어?”
 헌데, 눈을 가늘게 뜨니 어딘가 반짝거렸다.
 자칫 빨리 지나쳤다간 놓쳤을 수준.
 반짝거리고 있는 구역에 그가 손을 갖다 대자, 그제야 어떤 질감이 느껴졌다.
 ‘비닐?’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와 흡사했다.
 이윽고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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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 스티커]
 [등급 : D+]
 [원하는 장비에 붙이면 자연스럽게 정체를 감출 수 있음]
 [정체를 감출 장비를 대신할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무기에 사용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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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발 늦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창도 같이 떴다.
 [아이템창에 보관하시겠습니까? Y / N?]
 직접 들고 있을 건지, 아이템창에 넣을 건지를 묻는 것이다.
 “예.”
 저걸 어따 써먹을지 난감했다.
 그러니 쓰기 전까지는 보관하는 게 맞겠지.
 직후, 열려있는 사물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의 사물함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기쁘게도 아이템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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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군의 군화(이등병용)]
 [등급 : E+]
 [20km을 다리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은 상태로 걷거나 뛸 수 있다.]
 [정해진 거리를 전부 이동한 뒤, 군화는 자동으로 소멸되니 그 전에 따로 신을 신발을 준비해둘 것.]
 [수리 불가 / 거래 불가 / 첫 주인에게 귀속됨.]
 [강화 시, 이병(20km) > 일병(40km)]
 [강화 방법 : 3개월 후, 자동으로 일병용(40km)로 변함 or 14,8000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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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함 바깥으로 군화를 끄집어냈다.
 쉽게 꺼낼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걸 신을 수 있어?’
 가벼운 신발이나 헐렁한 실내화나 신던 그였다.
 근데 군화는 생각보다 무게가 꽤 나갔다.
 바닥에 그걸 내려놓았다. 옆에 발을 갖다 대니 치수도 심하게 다른 듯했다.
 ‘겉으로 봐선 모르니까.’
 조심스레 발을 집어넣었다.
 착.
 발만 집어넣었을 뿐인데, 자동으로 신발끈이 묶이며 군화가 발에 알맞게 수축했다.
 놀라운 현상이었지만 이마루는 의외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되도 않은 게임으로 사람도 죽고 상태창이니, 안내창이니 하는 것들도 뜨는 마당에, 이 정도는 익숙해진 모양이다.
 걸어보았다.
 ‘편안하다.’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적어도 일반 운동화를 신은 급의 가벼움이다.
 손으로 들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게나 질감이나 착용감.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은 게 없다.
 ‘신기 좋아졌어.’
 반전 덕분에 더욱 군화가 마음에 들었다.
 ‘지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
 괜찮은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어째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너무 대놓고 아이템 티를 내는데?’
 고등학교에 군화를 신고 다니는 건 심각하게 어색하다.
 단번에 아이템인 걸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챌 것이다.
 ‘상당히 귀찮아지겠지.’
 어디에서 났나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알았냐. 등, 대답하기 골치 아플 테지.
 그는 군화를 벗어 아이템창에 넣을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제법 좋은 수가 떠올랐으니까.
 ‘아까 얻은 투명 스티커. 그걸 붙이면 되겠다.’
 불과 몇 분 전만해도 [투명 스티커]를 쓸 날이 올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쓰게 되다니.
 ‘참,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아이템창을 불러내 [투명 스티커]를 빼냈다.
 차악.
 끈적끈적한 스티커를 군화에 딱 붙였다.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갑자기 군화가 사라져버렸다.
 분명 뭔가를 신고 있기는 한데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투명 스티커]의 효력을 몸소 체감하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양말을 신은 채 몇 센티미터 붕 떠다니는 기이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러면 투명 스티커를 붙이느니만 못하지.’
 왜 [투명 스티커] 설명란에 대체할 장비를 준비해놓는 게 좋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사물함에서 축구화를 꺼내 신었다.
 군화를 신었음에도 그 위로 신기하게 축구화가 신어졌다.
 저벅, 저벅.
 몇 걸음 걷다가 속력을 높여나갔다.
 [행군의 군화]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정말 지치지 않고 오래 뛸 수 있는지를.
 타타타탓!
 100미터 정도를 달렸다.
 ‘발이 하나도 안 아프다. 오히려 개운한걸?’
 [행군의 군화]는 보이지 않지만, 신고 있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지만 그 효과는 확실히 전해졌다.
 
 ***
 
 덜컥.
 교실문을 열고 그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남은 시간은 약 5분.
 교실 안의 학생들을 보며 이마루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본인보다 쉬는 시간을 더 알차게 쓴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가 자리에 앉으니 한예원이 애타게 그를 불렀다.
 “마루야,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화장실 다녀온다는 사람이 25분 동안 오지 않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했다.
 이마루는 ‘변비’라는 핑계를 대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00 : 00 : 00]
 제한시간이 종료되었다.
 동시에 앞, 뒷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두 번째 놀이······ 공개 준비 중······.]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말이 놀이지, 또 목숨을 거는 행위를 할 테니까.
 ‘제발, 쉬운 거······.’
 이내, 또 다른 안내창이 생겨났다.
 ====================
 [반 대표를 선정하라.]
 [선정 방법 : 개개인의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 5위까지.]
 [1인당 1 지목권]
 [기권 인정 / 본인 지목 불가능]
 [투표 시간 : 5분]
 ====================
 얼추 교실 인원 전원이 안내창을 읽었다 싶을 쯤.
 부반장, 박용석이 운을 띄웠다.
 “시간은 10분 정도네.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대표를 뽑을 수는 없겠지. 대화를 나눠보고 판단하자.”
 모두 동의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박용석은 안경을 고쳐 쓰며 주위 사람들을 보았다.
 “대표는 5명 뽑을 수 있네. 그중에 한 명은 내가 하는 게 맞겠지?”
 답은 정해져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된다. 딱, 그런 태도를 비췄다. 그런 그를 보던 학생 한 명이 툭 튀어나왔다.
 “네가 한다는 걸 말리진 않는데. 박용석. 반 대표가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서냐?”
 키가 멀대같이 크고 얼굴엔 여드름투성이인 신부전. 그가 시비조로 투덜거렸다.
 ‘이 새끼가 또?’
 박용석이 매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신부전이 본인한테 한두 번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신부전은 늘 자신보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박용석을 시기 질투해왔다. 그랬기에 예전부터 건수만 보이면 이렇게 시비를 걸어왔다.
 한데, 이번 발언은 그 의도는 불순하나 나름 일리가 있긴 했다. 그래서인지 옆에 있던 학생들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맞아. 혹시 알아? 대표가 되면 좋지 않을지.”
 “혹시, 용석이 넌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대표가 되면 좋은 거 있지?”
 신부전의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이 몇 군데서 튀어나왔다. 또한, 박용석을 심히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기회만 오면 가만두지 않는다. 진짜.’
 박용석이 신부전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러다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할 거라는 건 알지. 안전하든 위험하든 상관없어. 난 부반장으로서 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싶을 뿐이야.”
 박용석이 떳떳하게 답했다.
 예부터 그는 나서는 걸 즐겨왔다. 그랬기에 반장 선거에 출마했고 인기도로 인해 부반장이 되었다.
 “그래, 용석이가 하자.”
 고진감이 용석의 대표 선언에 지지했다.
 “넌 안 할래? 진감아?”
 박용석의 돌발질문에 고진감이 손사래를 쳤다.
 “싫어. 난 죽어도 안 할 거야. 그런 자리······ 부담스러워.”
 박용석은 내심 고진감이 해주길 바랐다. 어쩐지 그는 본인과 합이 잘 맞았기에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쯧.”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철수가 한심한 듯 혀를 찼다.
 “그래, 하기 싫다는 애 굳이 시킬 필요는 없겠지. 마음 바뀌면 시간 다 지나가기 전에 말해.”
 박용석이 고진감의 어깨에 손을 얹어 토닥여주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고진감에게 손짓했다.
 “일단, 날 지목해줘. 알다시피 본인지목이 안 돼서.”
 “아, 알았어.”
 고진감이 조심스레 팔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끝이 박용석을 가리켰다.
 지이잉.
 검지 손톱에서 붉은 선이 뿜어져 나오더니 박용석의 얼굴에 꽂혔다. 물리적인 영향은 없으나 박용석은 움찔거렸다.
 “어, 용석이 머리 위에 숫자1이 떴다.”
 눈치게임을 할 때처럼 머리 위에 홀로그램이 생겨났다.
 한 표를 받았다는 의미이리라.
 또한, 박용석을 지목한 고진감한테 개인용 안내창이 떴다.
 [박용석 지목. 지목권 전부 소모.]
 그때, 고진감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뭐 하는 짓이야!”
 그가 평소답지 않게 성을 내며 누군가를 노려보았다.
 일진 이철수. 그가 고진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고진감과 이철수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관전했다.
 “뭐가 어때서 그래. 너도 이참에 큰일 해야지. 사내자식이 겁만 많아가지고.”
 이철수가 조소를 머금으며 고진감을 지목한 손을 거두어들였다.
 어느새 고진감의 머리 위에는 숫자 1이 두둥실 떠다녔다.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철수가 고진감을 지목을 한 것이다.
 고진감은 부반장, 박용석과는 전혀 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면전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려하며 항상 누군가의 뒤를 지키는 걸 좋아했다.
 이번에도 당연히 반 대표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를 이철수가 대표로 만들어버렸다.
 “너, 너어!”
 고진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내가 널 지목 못할 것 같아?”
 그 말에 이철수가 풋, 하고 비웃었다.
 “멍청아. 1인당 1지목권이야. 너한테는 권리가 없어.”
 이철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경고했다.
 “날 지목해도 좋아. 대신 그에 대한 책임은 묻겠어. 난 고진감, 저 새끼처럼 겁쟁이는 아니지만, 굳이 이런 데에서 힘 빼고 싶지는 않거든.”
 고진감은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이철수를 향해 뻗어가지 못했다. 감히 대적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철수는 전교에서 주먹깨나 쓰는 학생이었으니까.
 이 냉랭한 분위기를 엎고자, 박용석이 끼어들었다.
 “고진감. 이번 기회에 너도 대표 해보는 거야. 도로 물릴 수도 없잖아. 좋게좋게 생각하자.”
 “어······ 으응······.”
 고진감은 박용석의 말은 또 냉큼 수용했다.
 신부전과 이철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각자 고진감과 박용석을 주시했다.
 “자, 시간 끝나기 전에 어서 끝내자.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사람한테 지목을 하고 끝내자.
 여론이 그렇게 형성되고 있었다.
 한창 떠들썩한 교실 분위기.
 그중, 유일하게 이마루만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을 아꼈다.
 그는 홀로 사색에 잠겼다.
 쉬는 시간에 얻었던 두 개의 단서.
 [반 대표의 수가 많을수록 놀이에 유리.]
 [반 대표의 수에는 제한이 없다.]
 이를 종합했을 때.
 [선정 방법 : 개개인의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 5위까지.]
 선정방법과의 충돌이 생긴다.
 ‘반 대표의 수가 많아야 유리하고, 수에는 제한이 없는데,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가 5위까지만 인정된다라.’
 공개된 규칙과 숨겨진 규칙 사이의 모순.
 ‘이를 어떻게 해야 한담······.’
 그러는 사이.
 딩동.
 「 1-1(5명), 1-3(5명), 1-5(5명), 2-3(5명), 2-7(5명)······. 」
 실시간으로 현 상황이 보고되는 중이었다.
 다양한 학급에서 반 대표가 선출되었다.
 공통점은,
 “다 다섯 명이네.”
 반 대표의 인원이 5명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빨리 정하자.”
 대다수의 분위기는 이러했다.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빨리 정하자.
 반면, 숨겨진 규칙을 알고 있는 이마루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딩동.
 선수를 치는 안내창.
 「 1-4(5명), 1-6(7명), 1-5(9명), 2-3(5명), 2-7(5명)······. 」
 “어?”
 다들 사전에 짜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했다.
 “7명이네?”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반 대표가 7명, 9명인 반도 있다.
 기존에 알고 있던 5명을 넘었다.
 옆에서 턱을 괴고 있던 이마루가 규칙의 한 대목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 건가?’
 그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다.
 해보기 전까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강 앞으로의 그림이 그려졌다.
 현재, 박용석(11표), 한예원(7표), 고진감(3표).
 과반수의 인원이 지목을 마친 상태.
 남은 시간은 약 5분 20초.
 이마루를 비롯한 열두 명이 아직 선택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이마루가 넌지시 말했다.
 “더는 지목 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
 예상보다 쉽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이마루.
 그가 급히 주장을 내뱉었다.
 “지목권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지목을 해서, 한 사람당 1표씩 받도록 하자.”
 뜬금없이 터진 그의 발언에 전원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한 사람당 한 표씩?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3명이 반 대표 확정됐잖아. 서로 지목을 하면 지목권이 있는 12명이 전원 대표가 될 수 있어.”
 “뭐? 그게 말이 돼? 분명 규칙에는 5위까지······.”
 한창 얘기를 하던 박용석이 멈칫했다. 뭔가가 생각난 듯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마루를 응시하며 짧게 중얼거렸다.
 “설마.”
 “설마가 맞아. 규칙을 봐.”
 [반 대표 선정 방법 : 개개인의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 5위까지.]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 5위까지야. 현재 3위까지 결정됐지.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1표씩 받도록 지목을 하면······.”
 “공동 4위가 되겠네.”
 “맞아. 현 1,2,3위를 지목했던 21명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는 반 대표가 될 수 있어.”
 이마루가 언성을 높여 신뢰를 불어넣었다.
 이때, 한예원이 의구심을 토해냈다.
 “공동 4위라······ 근데 그래도 돼?”
 “확신은 못 해. 해봐야 알겠지.”
 이마루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박용석이 이마루를 거드는 듯한 말을 했다.
 “마루의 제안은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규칙상으로는 거슬릴 게 없어. 명시되어있길, 최다 지목을 받은 ‘순위’ 5위까지야. 즉, 대표의 인원수가 5명까지가 아니란 말이지.”그러면서 박용석이 썩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아, 이걸 진작 눈치챘다면 33명을 모두 반 대표로 만들었을 텐데.”
 “맞아.”
 이마루도 동감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모두가 1표씩 얻어 공동 1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무려 반대표를 33명씩이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작부터 숨겨진 규칙의 참뜻을 깨우치고 실천에 옮겨야 했으니까.
 그나마 숨겨진 규칙을 마루가 알았기에 12명이라도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옆에서 고진감이 끼어들 틈을 찾다가 간신히 말했다.
 “저······ 저기 있잖아. 반 대표라는 게 많다고 좋은 걸까? 오히려 많으면 불리해지지 않을까?”
 “흠······.”
 그의 의견은 한 번 검토해볼만한 얘기였다.
 괜히 반 대표 수를 늘려서 손해를 본다면 어떡하겠는가? 크게 후회를 하겠지.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어.”
 이마루는 여자화장실에서 찾은 단서에 대해 털어놓았다.
 
 ***
 
 지목권을 가진 12명의 학생들.
 그들은 1대1로 마주보고 서 있다.
 척.
 동시에 팔을 들어올렸다.
 상대를 지목했고 12개의 붉은 선이 서로 오고갔다.
 [지목권이 전부 소모되었습니다.]
 [다른 반의 반 대표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 3-8(15)······. 」
 기다리던 최종결과가 나왔다.
 이로써 기존의 3명과 새로운 12명, 총 15명의 반 대표가 선출되었다.
 안내창을 바라보던 한예원이 고개를 돌려 이마루를 보았다.
 “떴어. 3학년 8반. 15명.”
 “다행이다.”
 “잘했다. 마루야.”
 수학선생이 이마루를 독려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반 아이들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현재까지 반 대표수가 제일 많은 학급은 3-8이다.
 숨겨진 규칙에 따르면 매우 유리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 이후로도 다른 반 소식이 날아왔다.
 「 3-1(3)······. 」
 “이것 봐. 3학년 1반은 3명밖에 안 돼.”
 “3명? 이상하네.”
 안내창을 올려다보던 박용석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규정에 인원수 제한이 없으니 3명일 수도 있는 거지.”
 “그런가.”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어차피 남의 일.
 “신경 꺼.”
 관심은 갔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마무리 지었다.
 띠링.
 [반 대표 선정 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과연 반 대표를 뽑아서 뭘 하려는 걸까?
 의문이 막 솟구칠 무렵.
 또 다른 안내창이 생겨났다.
 그걸 본 사람들이 멍해졌다.
 “어? 반 대표 선정 기간이 끝나고 또 뜨네?”
 “오류인가?”
 「3-10(37)」
 “3학년 10반이 37명이라고?”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마루가 속한 3학년 8반(15명)의 두 배가 넘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어떻게?”
 한예원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껌뻑거렸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꼭 감았다 떠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미친놈들.’
 이마루는 너무 놀라 전신이 얼어버렸다.
 단순히 유리한 고지를 뺏겨서가 아니다.
 또한, 이 반의 두 배가 넘어서가 아니다.
 37명이라는 그 인원수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마루야 왜 그래?”
 박용석이 마루의 등을 탁, 쳤다. 그제야 침을 삼키며 마루가 정신을 차렸다. 한예원이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이마루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37명······. 저 반의 정원이야. 아니, 정확히는 학생 36명에 담임선생님 1명이지만.”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저 반이 몇 명인지?”
 “예전에 친구랑 대화를 나눈 적이 있거든, 그 반에 전학생 와서 이제 몇 명이냐고, 물었었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럴 리가. 눈치게임에서 한 명도 안 죽었다고?”
 실로 대단한 결과였다.
 “그리고 반 대표 뽑는 것도 전원이 뽑힌 거네?”
 한 명씩 한 지목을 받아, 공동1등으로 전원 반 대표 행.
 이마루가 그토록 하고 싶었지만 이상으로 그쳐야 했던 결과가 아닌가.
 솔직히 큰 자괴감에 빠졌다.
 여태껏 늘 최선을 다했고, 그랬기에 이 학교에서 가장 나은 결과물을 뽑았다고 여겼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우쭐대는 감도 적지 않았다.
 참으로 얄팍한 자만심이 아닌가.
 그런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누군가 경이로운 업적을 세웠다.
 “대체 누구 짓이지?”
 진정 알고 싶었다.
 “글쎄······ 그 반에 그럴 만한 위인이 있을까?”
 전교생을 다 알지는 않지만, 특징이 있는 인물은 거의 안다.
 그 반에 이렇게 비상한 머리를 지닌 인물이 확 생각나진 않았다.
 “3-10반은 성적도 최하위 반이야.”
 수학선생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축구대회에서도 꼴등했던 반이잖아요.”
 “싸움 잘하는 놈도 없고.”
 이철수가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이것들과 눈치게임, 반 대표 선거는 연관성이 지극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평균 이하의 반이라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 반 친구한테 문자를 보내볼게.”
 “문자 안 되더라.”
 이마루가 스마트폰을 꺼내다가 멈칫했다. 그는 그동안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디 연락해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애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건드려본 모양이다.
 “외부와의 연결이 되지 않아. 전화도 문자도······ 인터넷도 먹통이야.”
 결국 이마루는 스마트폰을 집어넣는 수밖에 없었다.
 3학년 10반의 비상한 인물.
 몹시 호기심이 일었지만 당장 이를 해결할 길은 없어보였다.
 두둥.
 “저, 저것 봐.”
 한 학생이 교실 천장을 가리켰다. 그곳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물체가 떠 있었다.
 “폭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상매체에서 보던 그것과 판박이였다.
 수박 세 개는 합친 듯한 크기. 칠흑같이 새까맣고 둥글둥글한 모양새.
 시한폭탄이 자명했다.
 빙그르르.
 그것이 갑자기 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팽이에 채찍질하듯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가만히 있어도 두려울 텐데 회전까지 하니 그 공포는 배가 되었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시한폭탄이 교실 한복판으로 수직 하강했다.
 푸아앙!
 다행히 폭탄이 터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책상과 의자가 본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이 났다.
 게다가 교과서나 각종 필기구가 찢기고 부서진 채 여기저기 내팽개쳐져 있었다.
 띠링.
 그 효과음을 들은 학생들과 선생님은 일시정지 했다.
 [두 번째 놀이······ 공개 준비 중······.]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두둥.
 ====================
 << 빵셔틀 게임 >>
 - 밖에선 약하다고 죄가 아니지만, 여기선 약하면 죄다.
 [3-8반 : 빵셔틀(15명) / 인질(18명)]
 1. 각 반 대표는 ‘빵셔틀’로 임명.
 2. 구매해야할 빵 목록, 돈의 위치, 스마트폰 문자로 통보.
 3. 빵셔틀은 매점에서 빵 구매 후, 교실로 돌아와 빵과 인질 교환.
 * 임무 완료 시, 전원 생존.
 * 첫 번째 빵셔틀 외출과 동시에 시한폭탄 작동.
 ====================
 [두 번째 놀이······ 진행 준비 중······.]
 훌쩍, 훌쩍.
 누군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좇아 이마루가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마루야. 나 어떡해?”
 최민정이 마루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살려줘. 나 인질하기 싫어. 나도 내보내 줘.”
 이마루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놀이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죽을 걱정부터 하다니, 정신 나갔구만.’
 따끔한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참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분란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언제 놀이가 시작될지 모른다.
 현재 밝혀진 내용을 통해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최민정을 위로하기로 했다.
 “그래, 나도 최대한 노력을 해볼게. 그러니까 민정아 힘내.”
 “응.”
 최민정이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루의 말이 꽤 영향력을 미친 모양이다.
 “자, 얘들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마루가 막 얘기를 시작할 무렵.
 이철수가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찌질하긴.”
 그걸 또 최민정이 들은 모양이다.
 “야, 이철수. 너 설마 나보고 찌질하다고 했냐?”
 “풋.”
 “이게? 웃어?”
 “그래, 웃었다. 내가 틀린 말 했냐? 여기 힘든 사람이 너뿐이냐? 괜히 사기 떨어지게 눈물이나 질질 짜고. 인질이면 인질답게 입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뭐? 이철수,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끝내 최민정이 울음을 터트렸다. 최민정 곁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어 위로를 건넨다.
 이 광경을 보며 이마루가 이를 바득 갈았다.
 ‘이 연놈들이 진짜······.’
 그도 사랑스러워서 최민정이 징징댈 때 좋게 넘어간 게 아니다. 그보다 한시라도 빨리 놀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우선이었기에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철수가 눈치 없이 분탕질을 해대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분위기에서 냉정하게 ‘빵셔틀 게임’에 대해 토의하기는 글렀다고 봐야했다.
 마치, 그걸 시스템이 인지라도 하듯,
 띠링.
 효과음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
 빵셔틀은 교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 1분 전······.
 ====================
 그와 동시에 반 대표, 아니 빵셔틀의 머리 위로 ‘3-8’이라는 문구가 생겨났다.
 밖에서 다른 반과 섞이더라도 한눈에 피아식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젠 이런 건 신기한 축에도 못 끼었다.
 다들 그걸 무심결에 스쳐지나가듯 보았다.
 터벅, 터벅.
 박용석이 교실 뒷문에 바짝 붙어 섰다.
 앞문과 뒷문 중 비교적 매점에 가까운 곳은 뒷문이니까.
 “준비하자. 이쪽으로 와.”
 그의 지시대로 빵셔틀 15인이 다가왔다.
 그 후미에서 이철수와 최민정의 뒤통수를 매섭게 노려보는 이가 있었다.
 ‘저것들은 진짜 도움 안 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아무 말 않기로 했다.
 ‘화를 가라앉히자.’
 아직도 방금 두 사람이 벌인 싸움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마루는 잠시나마 명상을 원했다. 두 눈을 감고 짧게 복식호흡을 진행했다.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안정적으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눈을 뜨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뭐야, 발신은 안 되지만 수신을 된다, 이건가?’
 문자가 두 통 와 있었다.
 동시에.
 ====================
 빵셔틀 게임 시작!
 ====================
 드르륵!
 박용석이 뒷문을 열었다.
 빵셔틀 게임이 시작되었다.
 열린 뒷문으로 3-8반 빵셔틀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드르륵! 드르륵!
 3-1반부터 3-10반까지 각 문이 긁히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일제히 교실에서 빠져나오는 다른 반 빵셔틀.
 그들 역시 나오자마자 좌우를 살폈다.
 복도에 나온 100여 명의 학생, 아니 빵셔틀.
 머리 위에는 각자의 소속(학년, 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위로.
 띡!
 숫자가 추가로 생성되었다.
 가던 길을 멈추며 박용석이 머리 위를 응시했다.
 [3800토픽]
 “이게 뭐지?”
 나란히 뛰어가던 수학선생이 고개를 돌렸다.
 “너 혹시 3800원 가지고 있니?”
 ‘토픽’이 적혀있는 걸 보면 돈을 나타내는 걸 알 수 있다.
 대략 추측을 한 수학선생이 물어보았다.
 “소지하고 있는 돈을 표시하는 것 일 수도 있어.”
 “아뇨.”
 박용석이 딱 잘라 말했다.
 “전 돈이 한 푼도 없어요. 저것 봐요. 원, 아니고 토픽이잖아요. 제가 토픽이 있을 리가······.”
 다시 시선이 머리 위로 향했다.
 “그렇다면 저 숫자는 뭐지?”
 “선생님은 2200토픽이네요?”
 너나 할 것 없이 빵셔틀의 머리 위에는 액수가 찍혀있다.
 차이점은 각자 적혀있는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숫자가 무엇을 기준으로 매기는 건지, 어떤 용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서, 이쪽으로 가요.”
 그가 스마트폰 액정을 한 차례 보고 소리쳤다.
 매점에 들르기 전에 우선, 돈부터 찾아야 했다.
 그들이 막 100미터 정도를 이동했을 때였다.
 퍽, 퍽!
 누군가 두들겨 맞는 소리. 사람을 사정없이 패는 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즉각적으로 한예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기 봐!”
 이에 미처 구타 소리를 듣지 못했던 박용석마저 뒤돌아보았다.
 “저것들 뭐야?”
 복도에서 한바탕 패싸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아닌가.
 당장 매점으로 가서 빵을 사도 모자랄 판국에 딴 짓이라니.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깐, 전부 3-10반 애들이야.”
 신부전이 패싸움 현장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무리엔 상당수의 3-10반 학생이 섞여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수한 선생님?”
 3-10반 담임선생님도 그 무리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수학선생님이 얼빠진 상태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수한 선생님이 어떻게 저런 일을······.”
 윤리 선생 이수한, 그는 맡고 있던 과목과 어울리게 성품이 자자하기로 소문난 양반이다. 그런 그에게 저런 폭력적인 성향이 감춰져 있을 줄이야.
 “10반 애들이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어.”
 그랬다.
 예외 없이 10반 애들이 가해자 입장에 서 있다.
 눕혀진 채 영문도 모르고 당하고 있는 9반 학생들.
 상황을 보아 9반은 나오자마자 무차별 폭력을 당했던 모양이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제, 제발······ 그만 둬.”
 몸을 웅크리며 구타당하고 있는 9반 학생.
 “어억, 어억!”
 그가 울부짖었다. 그런 절규에도 아랑곳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10반.
 “저 저건!”
 박용석이 외쳤다.
 어느새 칼을 들고 있는 10반 학생.
 서슴없이 그 칼로 9반 학생들을 찌른다.
 숙, 수욱! 솨악!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살인이 벌어졌다.
 매점으로 향하던 이들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8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들도 사색이 되어 멈춰 섰다.
 “왜 이렇게 안 죽어.”
 10반 학생의 섬뜩한 한마디.
 그는 단번에 찔러 죽이지 못하자 투덜댔다.
 그때.
 ‘저 아이는?’
 이마루의 눈에 들어온 한 남학생이 있었다.
 그 역시 10반 학생인데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벽에 기대며 사태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목이나 가슴을 중점적으로 노려. 빨리 마무리 하자.”
 이마루는 그 학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저놈이 주동자다.’
 그 학생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허공에서 이마루와 그 학생의 눈이 마주쳤다.
 ‘뭐지? 날 본 건가?’
 착각일수도 있지만 이마루는 저 학생이 자신을 빤히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죽.
 그가 기분 나쁜 미소를 흘렸다.
 ‘불길하게······.’
 이마루는 순간 움찔,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때, 앞쪽에서 박용석이 그를 툭툭 쳤다.
 “가자. 여길 벗어나야 할 것 같아.”
 박용석이 아이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잇따라 다른 반 학생들도 살인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9반 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10반. 그들의 살인이 거기서 끝나지 않을 거란 확신 때문이었다.
 어물쩡거리다간 10반의 다음 표적이 될 수도 있다.
 
 ***
 
 돈은 매점과 같은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으로 점차 나아가던 마루의 머릿속엔 방금 전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놈이 주동자다.’
 자신을 보며 히죽 웃어보이던 놈.
 비단 살인을 지시한 것만이 아닐 터였다.
 ‘일련의 기적 같은 일들. 모두 놈의 머리에서 나온 걸 거야.’
 눈치게임 생존율 100%, 반 대표선거에서 전원 선출.
 그걸 이루어낸 10반, 그 10반을 조종하는 듯한 녀석.
 ‘예사롭지 않다.’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루야.”
 한예원이 그를 불렀다. 퍼뜩 상념을 깨뜨린 마루가 어정쩡하게 말했다.
 “어으, 어? 나 불렀어?”
 “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아······.”
 그 놈에 대해서 말하는 건 이른 듯했다. 그래서 다른 화제를 끄집어냈다.
 “10반 말이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앞서가던 박용석이 이를 들었는지 길게 말했다.
 “모든 사건엔 원인이 있지. 한두 놈이 칼 들고 설쳤으면 단순한 미친 짓이겠지만, 떼거지로 합심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한예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유가 뭘까? 사람을 죽일 정도라면······.”
 “그에 합당한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겠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이마루도 눈치게임을 잘 마무리해서 아이템과 단서를 얻지 않았던가.
 놀이에 성과를 내도 보상이 있는데, 하물며 살인은 오죽하겠는가?
 ‘단체를 일시에 살인자로 만들 정도의 혜택이라······.’
 몹시 그 보상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찰나.
 “다 왔다.”
 그들은 음악실에 당도했다.
 다시 한 번 스마트폰 문자를 켰다. 거기엔 돈의 위치가 상세히 적혀 있다.
 [음악실 - 1분단 7째 줄 서랍 안]
 여기 오기까지가 시간이 걸렸지, 온 이상 돈 빼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기 있어.”
 박용석이 서랍에서 지폐 세 장을 스윽 빼냈다.
 “이건 내가 맡을게.”
 그가 지폐를 접어 고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한데, 지폐를 본 사람들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한 명이 기어코 말로 표현했다.
 “어째, 돈이 많이 모자랄 것 같은데?”
 “그러게. 우리가 사야할 빵이 몇 개인데.”
 현 시세에 비추어 볼 때, 빵 가격은 하나에 천원에 육박한다.
 주어진 돈은 단돈 3,000토픽.
 이걸로 빵을 살 수 있을지 의구심이 팍 들었다.
 이마루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돈 단위도 ‘원’이 아니라 ‘토픽’이잖아. 1000원하고 1000토픽하고 시세가 다를 수도 있잖아.”
 듣고만 있던 수학선생도 일말의 희망을 걸고 말했다.
 “일단, 매점에 가보고 걱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래, 어서 가자.”
 그들은 바삐 매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이 앞섰다.
 언제 10반 학생들과 조우할지 예측불허다.
 저들 또한 매점이 목적지일 테니 만날 확률이 적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
 
 매점 인근 구역.
 매점을 코앞에 두고 3-8반 학생들은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나무 뒤에 숨어서 매점을 주시하고 있다.
 섣불리 매점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10반 미치광이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어때?”
 “매점 안에는 없는 것 같은데?”
 매점은 통 유리 구조라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때문에 매점 안에 몇 학년 몇 반 학생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단, 학생들이 많아서 10반의 존재 유무를 가리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렸다.
 이내,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10반은 없는 듯했다.
 ‘하긴, 애초에 있었다면 피바람이 불었겠지.’
 그 미친놈들이 빵 살 때만 온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소한 매점에는 10반이 없다.
 그 다음 수순으로는 근처를 살피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10반 학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자. 지금이 적기야.”
 10반이 이미 매점을 이용했는지, 아직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8반도 더 이상 뭉그적거릴 수는 없는 노릇.
 “너희들은 남고 우리가 갔다 올게.”
 박용석이 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는 10명의 학생을 이곳에 남겨놓고, 남은 5명만 매점에 가기로 했다.
 ‘뭐, 15명씩이나 갈 필요는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혹시, 10반 놈들을 발견하면 빨리 알려줘.”
 망을 보게 하는 목적이 컸다.
 “가자.”
 박용석이 선두에 서고, 뒤따라 이마루, 한예원, 신부전, 최슬기가 따라붙었다.
 다다다다.
 주위를 경계하며 신속히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매점 안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댔다.
 마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풍경.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시끌벅적했다면 지금은 다소 적막감이 흐른다는 것.
 ‘하아······.’
 박용석과 이마루는 학생들을 밀치며 자판대로 치고 들어갔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소곤거리는 걸 들었다.
 “어? 한참 부족하잖아.”
 “큰일 났네. 어떡하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저들의 대화로 추측컨대, 빵 사기엔 돈이 부족하다는 거겠지.
 그래도 직접 눈으로 봐야했다.
 이마루가 빵 코너에 몸을 밀착시켰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빵. 각 빵 포장지에는 가격이 명시되어있다.
 빵을 뒤적거리던 박용석이 한숨을 쉬었다.
 “마루야. 어떡하냐? 돈이 턱 없이 모자란데?”
 이마루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묵묵부답이었다.
 <<<3-8, 구매해야할 것>>
 [단팥크림빵(800)]
 [초코소라빵(1,100)]
 [고로케(1,500)]
 [샐러드빵(1,500)]
 [딸기버터빵(1,300)]
 [샌드위치(2,000)]
 [소보루빵(900)]
 [땅콩샌드위치(800)]
 [우유(1,100)]
 현재 가진 돈은 3,000토픽. 구매해야할 것들은 11,000토픽.
 무려 8,000토픽이나 모자란 형편이다.
 ‘방법이 있을 거야.’
 이전에 겪었던 일들도, 앞이 막막했지만 어찌어찌 돌파했다.
 어떻게든 부족한 돈을 메울 해결책이 있을 터.
 ‘그걸 무슨 수로 찾는담······.’
 두 가지 가능성이 생각났다.
 첫 번째. 주인 없는 애먼 돈을 찾는 것이다.
 박용석이 쥐고 있는 3,000토픽도 애초에 학교 내 숨어 있었다.
 만일, 억세게 운 좋은 누군가 먼저 거길 들렀다면, 그 돈이 여기까지 흘러왔을지 장담 못한다.
 물론 이제는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찾는 과정이 수월하진 않겠지만.
 두 번째. 눈칫밥을 먹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가능성이 낮은 게, 먹는다고 바라는 정보가 나오는 건 아니다.
 무작위로 숨겨진 규칙이 뜬다고 아이템 설명에 나와 있으니까.
 현실적으로는 첫 번째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두 번째는 도박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에도 이마루는 두 번째 가능성, 눈칫밥을 먹는 걸 택했다.
 첫 번째를 선택하기엔 ‘시간’이 넉넉지 않다.
 알다시피 교실에선 인질인 친구들이 시한폭탄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자칫 어디있는지, 아니 있는지조차 모를 돈을 찾으러 학교를 돌아다니면 반드시 시간초과로 끝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마루는 눈칫밥을 고른 것이다.
 사람은 안 될 걸 알지만 복권도 사지 않는가. 바로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마루는 잠시 대열에서 빠져나와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아이템창.’
 그러자 상태창이 떴을 때와 마찬가지 현상이 전개되었다.
 불쑥.
 그의 시야에 반투명한 창이 떴다.
 아이템창은 딱 네모 칸이 다섯 개에, 그 안에 아이템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밥그릇 안에 한 숟가락 덜 되는 양의 밥이 들어있는 그림.
 얼핏 봐도 ‘눈칫밥 얻어먹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하는 거지? 눈칫밥 복용?’
 그의 속마음을 시스템이 곧장 읽었다.
 [눈칫밥을 꺼내겠습니까? Y / N?]
 ‘어.’
 그의 발 언저리에 생겨나는 눈칫밥.
 그는 그걸 들어올렸다.
 ‘한 입 거리네.’
 손으로 집어 먹었다.
 즉시, 숨겨진 규칙 몇 개가 붕 떠올랐다.
 이마루가 그걸 읽는 사이, 끔찍한 일이 터졌다.
 “꺄아아악!”
 귀를 찢어발기는 듯한 비명소리.
 그 근원지는 매점 입구 쪽이다.
 이마루가 매점 입구로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입구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학생들이 급진적으로 뒤로 밀려났다.
 그제야 입구 부근이 훤히 보였는데 학생 두 명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다.
 그 앞에는 학생 5명이 일렬로 서 있었고.
 딱 봐도 입구를 강제로 점거한 형세였다.
 개중 한 명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3,200 하나랑 2,300 획득이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쓰러진 학생 둘 중에 하나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하나는 아직 안 죽었네.”
 “아, 그래? 참 편하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바로 알 수 있어서.”
 살인자 놈은 능글맞게 말하더니 좌측에 쓰러진 학생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칼을 내리꽂았다.
 솨아악!
 그 학생의 머리 위에 있는 2,300이라는 숫자가 사라졌다.
 동시에 살인자가 중얼거렸다.
 “얻었다.”
 턱을 짓쳐들더니 매점 안을 빙 둘러보았다. 입꼬리를 슥 올리며 말을 토했다.
 “다음은 누구 차례?”
 그 말에 학생들이 소름끼치도록 벌벌 떨었다.
 모두가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밀려났다.
 시체 두 구를 중심으로 호를 그린 모양새가 되었을 무렵.
 이마루는 5명의 살인자의 소속을 알게 되었다.
 짐작대로 3-10반 학생들이다.
 그들이 복도에서의 살인을 끝으로 얌전히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미친놈들.”
 이마루는 살인사건을 목격하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광경을 대체 몇 번이나 본 것인가.
 “잠깐.”
 10반 학생들 중 한 명이 슬며시 팔을 들었다.
 그 한마디에 안 그래도 냉랭했던 분위기가 더 얼어붙는 듯했다.
 “방금 ‘미친놈’이라고 한 놈.”
 검지를 치켜 든 채 겁에 질린 학생들 무리를 가리켰다.
 “나와라.”
 학생들 무리도 ‘미친놈들’이라고 누군가 흘리는 걸 들었다.
 그 위치 또한 똑똑히 들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섰을 때였으니까.
 학생들이 몇 발자국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세의 길이 열리듯, 양 갈래로 쫙 갈라졌다.
 이마루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학생들의 뒷모습만 보였는데 이젠 매점 입구가 똑똑히 보였다.
 거기에 서 있으면서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학생도.
 ‘주동자.’
 복도에서 친구들이 살인을 저지를 때,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놈.
 그놈이 여전히 실실 쪼개며 마루를 맞이했다.
 ‘큰일 났다.’
 이마루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한 마디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주동자와 이마루,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두 번째 눈빛 교환의 순간이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주동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오란다고 나갈쏘냐.
 ‘솔직히 발이 안 떨어진다.’
 무서워서인지, 살고 싶어서인지, 둘 중에 하나가 아닌, 둘 다겠지만.
 어쨌든 그의 발은 누군가 붙잡기라도 하듯,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마루는 창백해진 낯빛이었지만 최대한 자신만만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쯤하면 됐잖아. 그만 물러나는 게 어때? 복도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이만큼 죽였으면 빵 살 만큼 충분히 얻었을 텐데.”
 떨지 않고 잘 의사전달을 했다, 싶을 때.
 주동자의 얼굴에 놀람에 떠올랐다.
 “어? 어떻게 알았지?”
 진심으로 궁금했는지, 아까와는 다르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해보이는 주동자.
 << 숨겨진 규칙 >>
 [생존자들의 머리 위에 뜨는 숫자는 몸값을 의미한다.]
 [상대를 죽이면 몸값을 받을 수 있다.]
 아직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항이다.
 동시에 이마루와 주동자만이 알고 있는 사항이기도 했다.
 이마루는 방금 전, 눈칫밥을 얻어먹어 알게 된 것이다.
 ‘죽여보지 않으면 모를 텐데? 저 자식이 살인을 한 건가?’
 그렇게 추측하다가 주동자가 조소를 지었다.
 “아, 아······ 8반······.”
 뭔가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희 반 생존자가 10명이 넘었댔지?”
 “정확히는 15명이야.”
 옆에 있던 자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그래. 15명. 그렇다면 눈칫밥을 얻었겠군. 그걸 써서 규칙을 알아낸 거야.”
 이번에 놀람을 겪은 건 이마루 쪽이었다.
 ‘저 새끼, 뭐지? 다 알고 있잖아.’
 마치 아이템창 검사라도 한 듯한 발언이 아닌가.
 ‘하긴, 눈치게임 전원 생존 반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난 여기 있는 자들을 다 죽여 버릴 거야.”
 주동자가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내었다.
 “뭐, 미친.”
 “우,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우릴 개 호구로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마, 맞아. 너희들도 죽을 각오 해야할 거다!”
 그 말이 가소로운지 주동자가 픽, 하고 웃었다.
 “그래. 아무렴, 각오를 해야지. 근데, 너!”
 또 이마루를 지목했다.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면, 너는 내가 특별히 살려주지.”
 “뭐?”
 뜻밖의 제안에 이마루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슨 속셈이지?’
 이윽고 주동자가 말을 이었다.
 “반 대표 선거 때, 누가 주도를 한 거지? 15명이 나온다는 건, 공동순위권의 법칙을 알았다는 거잖아. 그게 공동합작품일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분명 나댔던 놈이 한 명 있을 거란 말이지.”
 “아······.”
 갑자기 이마루는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나잖아.’
 반 대표 선거에서 공동순위를 제안한 건, 다름 아닌 본인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밝히면 안 될 것 같은 예감······.’
 무어라 답해야할지 꽉 막혀버렸다.
 ‘아, 일단 시간을 벌자.’
 평소 궁금했던 것 하나가 생각났다.
 “나도 질문을 하지. 그것에 답해주면 너의 질문도 답 해줄게.”
 “그래, 좋아.”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는 주동자.
 “반 대표 선거. 어떻게 전원 대표로 만든 거야?”
 “어떻게라니? 너도 알다시피 공동 1등을 만들······.”
 그 말을 잘라먹으며 이마루가 한마디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그 방법을 알아야, 가능한 결과물이란 걸 알 텐데?”
 선거를 하던 당시엔, 별 생각이 없다면 대표를 5명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마루도 도중에 겨우 눈치를 챘기에 15명의 대표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이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한들, 전원이 대표로 되기 위해선 한 사람이라도 두 표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도 석연찮았다.
 정곡을 찔린 듯 주동자가 입술을 말았다 폈다.
 ‘하아······ 참으로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주동자는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 전혀 없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말을 건넸다.
 “눈치게임에서 경험했듯, 반 대표 선거에도 뭔가 특별한 요소가 숨어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다 같이 선거를 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다. 됐냐?”
 내용에 어색하거나 얼토당토않은 건 없다. 오히려 충분히 그럴 만했고 개연성이 있다.
 허나, 이마루는 이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옆에 서 있던 같은 반 학생들이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으니까.
 눈을 흘기면서 주동자를 보았다가 서로 눈빛 교환을 했다.
 -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 솔직하게 말해도······.
 그런 무언의 대화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만족스런 대답을 했다고 느꼈는지, 주동자가 말을 걸어왔다.
 “자, 그럼. 내가 질문을 다시 하지. 3학년 8반에서 주도적으로 게임을 끝낸 사람이 누구지?”
 이마루가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나, 나!”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 열심히 관심을 끌었다.
 “내가 알아. 누가 주도했는지.”
 이마루는 그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신부전?’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부전이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주동자 앞으로 나섰다.
 “아, 신빙성이 있구만.”
 주동자는 신부전의 소속을 확인하고는 빙긋 웃었다.
 “그래, 너희 반에서 생긴 일이니까, 누구보다 잘 알겠구나.”
 “어, 그전에 부탁할게 있어.”
 “그래,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들어주지.”
 “이거 말하면, 난 살려줘. 아까 질문에 대답하면 살려준다고 했잖아. 그 대상이 꼭 마루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이마루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질렀다.
 “야! 신부전! 제정신이냐?!”
 신부전이 자신을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다.
 본인 살자고 친구를 팔아먹다니. 아무리 친한 친구가 아니라고 해도 같은 반 학우를······!
 이마루가 길길이 날뛰려 하자,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 신부전. 그는 이를 딱딱거리며 말했다.
 “저 놈이야, 이마루! 저놈 덕분에 눈치게임도 반 대표선거도 다른 반에 비해 우수한 성적으로 끝낼 수 있었어.”
 기어코 사달이 났다. 이미 터진 일, 이마루가 자신을 박살내러 오기 전에 전부 토설했다.
 “야 이 새끼야!”
 잔뜩 열에 받친 이마루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머리통을 박살낼 기세였다. 이를 행동에 옮기기 바로 직전.
 ‘안 된다.’
 잠깐 이성을 잃었다. 그 와중에 또 정신이 들었다.
 ‘신부전에게 가기 전에 죽는다.’
 본능이 그한테 경고를 내렸다. 더 이상 다가가면 죽는다고.
 타타탓!
 그는 발길을 돌려 학생 무리의 우측으로 갔다.
 “박용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박용석. 그가 ‘어······ 어?’하며 얼빠진 모습을 보였다.
 “어서 내놔! 돈! 돈!”
 당황해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박용석.
 아랑곳 않고 이마루가 그의 주머니에 손을 깊이 쑤셔 넣었다.
 즉각 3,000토픽을 꺼내며, 매점 자판대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이 광경을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저게 뭐하는 짓이지?’
 혹자는 이마루가 이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그와 가장 친했던 한예원 또한 도무지 이해가가지 않는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마루라······.”
 이름을 천천히 읊조리는 주동자.
 그때, 그의 옆에서 있던 학생이 말했다.
 “한대성. 쟤는 어떻게 처리할거야?”
 “될성부른 떡잎은 밟아야지.”
 주동자, 한대성이 이마루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죽여.”
 한대성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옆에 서 있던 학생A는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떼어 냈다.
 저벅, 저벅.
 그때까지도 이마루 마구잡이로 빵을 파헤치는 중이었다. 땅굴을 파는 두더지처럼, 아니, 그보다 더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었다.
 “빵, 빵······ 빵.”
 빵은 셀 수 없이 넘쳐났다.
 허나, 빵이라고 다 같은 빵이 아니다.
 원하는 종류가 있는지 넘쳐나는 빵들을 가 쪽으로 밀쳤다. 선택받지 못한 빵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드디어 원하는 빵을 찾았다.
 척.
 그것을 집어 들었다. 구매목록에 없는 빵이었다.
 [애플민트빵(800)]
 손끝이 빵 포장지에 닿자마자 의사를 물어온다.
 [구매하시겠습니까? Y / N]
 “어!”
 다급히 수락하자, 그의 손아귀에 있던 지폐 한 장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 처음 보는 동전 두 개가 뿅 하니 생겨났다. 거스름돈이 정확하게 돌아온 것이다.
 이마루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휙.
 공기를 타고 확 느껴지는 살의. 그 날카로운 살의의 끝은 본인한테 향해 있다. 유난히 그가 든 식칼이 반짝거렸다.
 학생A가 단단히 각오를 다진 상태로 학생들을 통과했다.
 방향은 명백히 이마루가 있는 쪽.
 이대로 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이마루는 서둘러 자리에서 이탈했다.
 [사은품이 증정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안내창이 떴다.
 ‘아이템창.’
 아이템창을 불러내자 눈칫밥 오른편에 못 보던 것이 생겼다. 그는 황급히 사은품에 손을 갖다 댔다.
 촤아앙!
 빈손에 기다란 죽창이 생겨났다.
 << 숨겨진 규칙 >>
 [빵을 사면 아이템창에 무기가 증정된다.(중복 불가능)]
 [조건 : 구매목록에 없는 빵.]
 눈칫밥으로 얻은 3개의 규칙 중 마지막.
 이 규칙이 그의 목숨을 책임질 줄이야. 쉬는 시간엔 미처 알지 못한 미래였다.
 ‘오호, 저 죽창은 어디서 난 거지?’
 한대성이 놀라움이 담긴 눈빛을 발했다. 그도 저런 죽창은 처음 본 것이리라.
 한편, 저돌적으로 나아가던 학생A가 멈칫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흐름이 뒤바뀌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이마루가 무기를 드니, 학생A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커졌다.
 그가 들고 있는 건 조그마한 식칼이다.
 반면, 이마루가 양손에 거머쥐고 있는 건 기다란 죽창.
 ‘큰일 났네.’
 학생A는 한대성의 눈치를 살폈다.
 - 저쪽이 무기를 든 이상, 못 하겠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싸우겠다.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직전, 한대성이 턱을 짓쳐들며 신호를 보냈다.
 -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 건 너다.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명령이었다.
 고개를 떨구었다. 입을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구원요청을 해봤자 한대성이 받아주지 않을 거다.
 그는 제대로 미쳤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과 동급······ 아니 그 이하로 취급하는 놈이었으니까.
 여길 가나, 저길 가나, 목숨을 거는 건 마찬가지.
 그는 이마루와 한대성을 빠르게 훑었다.
 말이 친구지 한대성 옆에서 입구를 막고 있는 것들은 충직한 부하가 된 지 오래다.
 즉, 한대성을 거역하면 네 명과 맞붙어야한다.
 그보다는 혼자인 이마루가 낫지 않을까?
 학생A가 고민에 휩싸여 일시적으로 정지한 그때.
 이마루는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죽창을 힐끗 살폈다.
 ========================================
 [농민군 대장의 죽창]
 [등급 : D-]
 [탐관오리의 횡포에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 대장의 무기.]
 [농민의 한(恨) : 체력 회복속도 30%증가(지속) / 농민군 대장의 기운을 부여받습니다.]
 [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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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루]
 [체력 : 100/100] [마력 : 100/100]
 [힘 : 10(+15)]
 [민첩 : 10]
 [지력 : 10]
 [시력 : 2.8]
 ========================================
 상당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죽창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다.
 하지만 길이나 굵기를 따졌을 때, 이렇게 가볍지는 않아야 정상.
 그런데 무게가 엄청 가볍게 느껴졌다. 얇디얇은 회초리 하나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힘이 늘어나서 그런 건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학생A가 결심을 굳힌 듯했다.
 처억.
 식칼을 고쳐 잡았다.
 그가 한 발자국 나아갔다.
 휘이잉!
 다가오는 학생A를 향해, 이마루가 죽창을 휘둘렀다. 오면 친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걸 깡그리 무시하는 학생A.
 식칼을 들이밀며 좌우로 바닥을 밟아 댔다.
 적당한 기회에 치고 들어오겠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이마루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동자만이 학생A의 현란한 움직임을 따라 요리조리 굴러갈 뿐이었다.
 ‘저러다 제풀에 지치지.’
 능력치 보정을 받았다한들 저 정도면 좀 과하다 싶었다.
 예상대로 학생A는 움직임이 날로 더뎌졌다.
 곧 스텝을 정지시키고 자세를 숙였다.
 파앗!
 뒷발로 지면을 박차며 이마루에게 돌진했다.
 오랑우탄처럼 긴팔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 손에 들린 식칼이 적을 향해 쇄도해나간다.
 이마루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시야 전체에 식칼이 훅 맺혔다.
 휙.
 동시에 옆으로 신속하게 비켜섰다.
 그 자리를 메우는 듯 들어오는 학생A.
 죽창을 위로 치켜들었다가 내리치는 이마루.
 일점 타격.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죽창은 학생A의 손목을 내리쳤다.
 촤악.
 차진 소리와 함께 얼얼한 통증이 전해졌다.
 ‘젠장.’
 학생A는 충격으로 식칼을 놓쳤다.
 서둘러 그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이마루의 죽창이 그의 턱밑에 대기 중이었다.
 “아, 어어!”
 학생A가 한발 뒤로 물러났다.
 이마루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학생A가 물러난 만큼 앞으로 갔다.
 반복되는 양상.
 한쪽은 뒤로 가고, 한쪽은 그대로 직진했다.
 콰당.
 뒷걸음질 치던 학생A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어쩔 수 없다.’
 이마루의 미간이 좁혀졌다.
 기회는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하는 법.
 빌미를 줬다간 오히려 자신이 당할 터.
 살기위해선 죽여야만 했다.
 그 마음을 품었을 쯤.
 ‘지금이다!’
 또다시 학생A는 식칼을 주우려 했다.
 그때였다.
 수우욱!
 죽창을 학생A의 신체에 찔렀다.
 복부에서 한 차례 걸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징그러웠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눈을 감아선 안 돼!’
 보기 싫었지만 회피는 금물이다.
 우세였지만 적의 숨통을 완벽히 끊기 전 까진 시선을 돌려선 안 된다.
 참고 봐야 했다.
 그때였다. 죽창이 빛을 발한 것은.
 [농민군 대장의 기운을 부여받습니다.]
 [용맹함과 삶에 대한 의지가 생깁니다.]
 그 글귀가 뜨니 전과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으으으!’
 확실하게!
 죽창을 든 손에 더 세게 힘을 가했다.
 그만큼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쑤욱!
 죽창이 앞으로 쭉 밀려들어갔다.
 아까보다 저항이 줄어든 기분. 또한, 물컹한 느낌이 드는 한편.
 “끄악!”
 학생A가 걸쭉한 피를 토해냈다.
 “하아······ 하아······.”
 이마루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서서히 힘을 뺐다.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정당방위였지만 그 점이 딱히 위안이 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기묘한 만족감이 생겨났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흥분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몸속에서 혈액이 롤러코스터처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시야가 안개 낀 듯 뿌옇게 흐려졌다.
 주위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귀가 멍해졌다.
 삐이이!
 이명이 크게 났다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초점이 잡히면서 풍경과 사람이 똑바로 보였다.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있는 학생A
 그의 몸과 이어져있는 죽창, 그리고 그걸 잡고 있는 손.
 다시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다.
 수컹.
 죽창을 빼내려 힘을 주었다. 쉽사리 그것은 빠지지 않았다.
 이마루가 빙글 돌리니 그제야 죽창이 쑥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부 거두어들였을 때.
 왈칵!
 뚫린 신체부위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이내, 학생A는 숨을 헐떡이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렸고, 머리 위에 있던 숫자가 사라졌다.
 [학생A가 사망했습니다.]
 [학생 A의 몸값, 2,500토픽을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능력치 +10]
 [원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삽시간에 불어난 알림창.
 그 너머에서 오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살인현장을 목격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학생들.
 그 뒤로 충격에 휩싸인 박용석과 한예원의 모습이 잡힌다.
 자신을 괴물 보듯 보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농민군 대장의 기운 덕분일까?
 그런 시선이 마냥 따갑지만은 않았다.
 너희들도 조만간 이렇게 변할 거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일단 할 건 해야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이 생겼다.
 학생A를 죽임으로써 추가능력치라는 게 주어졌다.
 ‘상태창.’
 그는 서둘러 능력치를 살폈다.
 ‘힘, 민, 지.’
 현재 올릴 수 있는 능력치.
 ‘죽창 덕분에 힘은 25. 민첩이랑 지력은 10씩이네.’
 별로 오래 고민할 거리도 못되었다.
 괴물이랑 싸울 것도 아닌데 힘만 무식하게 세면 뭐하겠는가.
 RPG게임도 아니고 골고루 올린다고 망캐(망한 캐릭터)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힘은 이정도면 아직 쓸 만한 것 같고, 지력보다는······ 민첩이 더 생존에 유리하겠지.’
 [민첩 : 10 -> 20]
 그가 능력치를 올리고 있는 사이.
 “멍청하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차라리 잘 죽었네. 머저리 같은 놈.”
 한대성이 한심하다는 투로 학생A를 폄하했다.
 이미 고인이 된 자에게 하기에 너무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이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 다음 제거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임무를 실패한 자를 실컷 욕했다. 이제 좀 성에 차는지 한대성이 비난의 대상을 바꾸었다.
 “이마루. 저거, 저거. 생각보다 무지 잔인한 새끼일세. 한때 같이 공부를 했던 동급생을 저리도 비참하게 죽이다니.”
 이마루가 들으라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한데, 이마루는 멍한 얼굴로 앞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는 철저한 개무시라고 볼 수밖에.
 갑자기 한대성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능력치 올리고 있다 이거냐?’
 그는 불쾌한지 입술을 얇게 깨물었다.
 순전히 무시를 당했다고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외에 그를 역겹게 하는 요소가 있다.
 뚫어져라 이마루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의 피부색을 본 것이다.
 오직 그의 시야에만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적대적 싹수 감지]
 상대가 본인의 적이 될지, 된다면 얼마만큼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가르쳐준다.
 그 위협의 가능성은 피부색으로 구분 짓는다.
 [노란색][주황색][빨간색][검은색]순으로 검은색으로 갈수록 최악이었다.
 이마루는 개 중 가장 위험하다는 ‘검은색’이었다.
 ‘싹수가 노랗다’는 부정적인 말이다.
 하나, 한대성한테 있어 차라리 그게 낫다.
 이마루는 싹수가 까맣다.
 검은색 등급이면 훗날, 한대성과 이마루는 반드시 생사결을 한다.
 물론, 당장 이마루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현재의 이마루는 그럴 만한 무력도 계기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한대성은 이마루를 살려 보내지 않을 요량이다.
 나중에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사전에 막아놓는다.
 그것이 한대성의 생존 전략이었다.
 이마루가 자신을 해칠 이유도 힘도 없는 지금이 적기였다.
 한대성은 매점 안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애초에 우리 다섯 명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검은 적대자를 만났다. 그는 한대성의 친구를 하나 골로 보냈다. 또한, 본인들의 식칼보다 더 뛰어난 무기를 손에 넣은 상태.
 좌우에 서 있는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얘들을 보내서 3대1 상황으로 만들면 이마루를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탈출을 하려는 학생들을 한대성 혼자서 막아야 했다.
 1대1로 붙는 게 아닌 한대성과 다수가 대립되는 양상이 된다면?
 한대성도 감히 입구를 막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필히 몇 명 새어나가는 것들이 존재할 터였다.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처단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을 터였다.
 ‘학생A가 이마루를 죽이기만 했어도 이런 고민은 안 할 텐데.’
 학생A가 뻔히 불안해하는 걸 보고서도 그냥 넘겼던 걸 조금 후회했다.
 지원만 해줬어도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뜨진 않았을 테니까.
 그의 빈자리는 보기보다 컸다.
 ‘현재 나까지 합쳐서 네 명. 이 인원으로는······.’
 이마루를 포함한 남은 학생들을 모조리 죽이기에 버거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지원군을 부르는 수밖에.’
 다른 구역에 있는 반 친구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3-10반의 네 사람은 철저히 입구를 틀어막았다. 위협적인 무기를 들고 있기에 아무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 선동을 해주길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이마루는 심각한 내적갈등을 겪는 중이었다.
 ‘숨겨진 규칙을 알려줄까? 안 알려줄까?’
 솔직한 심정으로 이마루는 혼자만 이 사실을 알고 싶었다.
 정보의 독점.
 그것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만큼 중요한 생존법칙이다.
 단순히 저 혼자만 살려고 독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예원이나 박용석한테는 가르쳐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가족 다음으로 소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친한 친구였으니까.
 그러나, 그는 다년간의 학창시절을 보내며 깨달은 부분이 있다.
 ‘비밀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마루한테는 두 사람이 제일 친한 친구이지만, 두 사람에겐 각자의 친한 친구가 더 있을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한테 정보를 건네주면, 그건 ‘비밀’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순식간에 주위로 퍼져나갈 것이다.
 ‘가르쳐주자.’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혼자서 저놈들을 죽일 자신이 없다.’
 입구를 막고 있는 네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본인밖에 없어보였다.
 적어도 같은 반 친구들만은 싸움에 가담하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들이 선언했듯 살아선 매점 밖을 나가지 못할 테니까.
 이대로 가다간 무차별적인 학살의 피해자밖에 더 되겠는가.
 저벅.
 이마루가 박용석, 한예원, 신부전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무기와 관련된 숨겨진 규칙을 은밀히 발설했다.
 세 사람은 자못 놀란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매목록에 있는 걸 사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돈이 주어졌다.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그 아까운 돈으로 구매목록에 없는 빵을 살 리는 없다.
 그러니까 이 규칙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고급정보인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이마루도 달라보였고,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말을 하면서도 이마루는 이게 잘한 짓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이들이 비밀로 해주고, 자신과 함께 입구에 있는 놈들과 싸워주길 바라는 수밖에.
 설령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정보 독점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
 세 사람이 빵을 사러 간 사이.
 이마루는 입구 쪽에 있는 주동자를 보았다.
 ‘한대성이라고 했던가?’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가 은근히 자신을 곁눈질 하는 걸 알고 있다.
 이마루는 면밀히 한대성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가 주동자이고 그의 손짓 발짓에 따라 무슨 짓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문자를 보내네?’
 예상대로 한대성은 어딘가로 급히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서 뒤를 힐끗 관찰한다.
 ‘뭐지?’
 이내, 그 궁금증이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다.
 입구 바깥쪽에서 열 명 가량의 학생들이 오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하나같이 3-10반이라고 적혀 있다.
 한대성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러 간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서는 3-10반 학생들.
 이마루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곧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질 거야.’
 자신 때문에 인원을 보충한다고 여태껏 잠잠했던 것이다. 추가 인원이 생겼으니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터. 조만간 일은 벌어진다.
 ‘저 많은 수를 우리 반 애들로만 막는 건 무리야.’
 다섯 명이서 열댓 명을 상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고민을 거쳤다.
 그 끝에 결정을 내렸다. 숨겨진 규칙을 폭로하기로.
 전부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건 훗날 위험을 부를 심산이 컸다.
 그렇지만, 전에도 말했듯 당장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힘을 쥐어주기로 했다.
 그 무기로 인해 터질 참상, 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걱정해도 늦지 않겠지.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한다.
 3-8반은 심하게 미친 살인자 집단이다.
 3-8반 무리만 어떻게 처리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되지 않겠는가.
 한대성이 좌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위에 든든한 아군이 포진해있다. 이들과 함께라면 매점 안에 있는 저 죽창 놈을 죽이면서 나머지 것들도 제압이 가능하다.
 저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일망타진한다!
 한대성이 막 말을 꺼내려하는데.
 “모두!”
 이마루가 선수 쳤다.
 이목이 그에게로 모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들어!”
 한대성 또한 과연 무슨 얘기인가 싶어 잠시 머뭇거렸다.
 “저기 입구 막고 있는 놈들이 이제 너희들을 죽일 거야.”
 그 말에 대중의 시선이 이마루에게서 한대성으로 잠시 옮겨갔다. 한대성이 시인하는지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구매목록에 없는 빵을 사! 그럼 아이템창에! 나처럼 무기가 생긴다!”
 갑자기 대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있던 한대성의 눈빛 또한 날카롭게 변했다.
 “그 무기를 들고 3-10반 놈들을 죽여 버리자!”
 사건의 신호탄이었다.
 3-10반 학생들이 매점 안으로 뛰어든 것과, 매점 안 학생들이 모조리 빵을 사러 뛰어든 것은.
 동시에 일어났다.
 “으아악!”
 초반은 어쩔 수 없이 3-10반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구매목록에 없는 빵을 찾아 사고, 아이템창에서 무기를 꺼내는 일련의 과정.
 그걸 하는 것보다는 이미 식칼을 쥔 자들이 한 사람씩 죽이는 게 훨씬 빨랐으니까.
 3-10반의 초기 전략은 무방비 상태인 자들부터 없애는 것이었다.
 그들은 잠재적 자원이다. 무기를 얻기 전에 그 싹부터 잘라야 했다. 그게 더 손쉽고 효율적이니까.
 실제로 무기가 없는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어갔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가 역전되는 양상을 띠었다.
 하나 둘씩, 점차적으로 무기를 획득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무기를 든 학생들이 맞서 싸웠다. 그사이, 무기가 없는 학생들이 빵을 구매하고 무기를 들었다.
 ‘무기가 각양각색이구만.’
 모두 죽창으로 무기가 통일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저마다 특색 있는 무기로 무장된 상태였다. 칼, 도끼, 철퇴, 활, 그 종류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다양했다.
 때문에 3-10반도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
 덧붙여, 이쪽이 워낙 인원이 많았던 터라, 3-10반의 통제에는 무리가 따랐다.
 3-10반 학생 하나당, 이쪽 인원 서너 명씩 달라붙으니, 대세는 확실히 뒤바뀌었다.
 이마루는 싸움에 동참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 생겼다.
 그 앞에는 익숙지 않은 알림창이 나타나 있었다.
 ========================================
 << 왕의 자격 >>
 [눈치게임에서 구원한 자(32인)] + [매점에서 고급생존정보를 알려준 자(74인)]
 [직, 간접적으로 은혜를 입힌 자, 100인 초과.]
 [왕으로 전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 왕의 자격을 얻는 방법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됩니다.
 ========================================
 “와······ 왕이라고?”
 그가 한창 당황해하고 있을 무렵.
 이번엔 매점 안의 전 인원에게 또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때문에 서로 싸우던 자들이 전부 행동을 멈추었다.
 그 틈을 타 뭔가를 해보려는 것도 불가능했다.
 ========================================
 [중요한 사건으로 인해, 일시 전투중단이 선언되었습니다.]
 [어떠한 공격이나 살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규정을 어길 시, 갖게 될 불이익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합니다.]
 ========================================
 전원 눈치를 보며 무기를 든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알림창을 보는 데에 집중했다.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다음 알림창이 떠올랐다.
 ========================================
 [‘이마루’를 왕으로 추대하려 합니다.]
 [찬성을 하는 자는 한 쪽 손을 들고, 반대를 하는 자는 손을 들지 않습니다.]
 ========================================
 덧붙여, 이마루 개인한테만 보이는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정당성을 확보하세요.]
 [개인 연설 시간, 10분이 주어집니다.]
 [10분 안에 지지세력을 모아야 합니다.]
 [왕 후보는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합니다.(그 이상의 계급도 가능)]
 ========================================
 이마루는 살면서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물론 말 그대로 ‘내가 왕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은 해보았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철없던 어린 시절 일이었다.
 ‘내가 왕이라니?’
 아직 되진 않았지만 지지를 얻으면 될 수 있단다.
 눈치게임이니 빵셔틀 게임이니 직접 겪으면서도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결단코 그것들을 꿈으로 착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참혹한 현실임을 실시간으로 깨닫지 않았던가.
 헌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진심으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일 때.
 [10 : 00]
 연설할 수 있는 10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한창 끓어오르던 전투의 열기를 식히면서까지.
 시간은 실시간으로 깎여나갔으나, 정작 주인공이 이마루는 입을 떼지 못했다.
 모두가 이마루의 입술과 눈을 쳐다보고 있다.
 과연, 그가 어떤 연설을 할지, 내심 궁금할 터였다.
 일순, 이마루의 얼굴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연설을 할 줄이야. 이런 게 두려워서 그간 반장 후보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겁이 나고 벌벌 떨렸다. 여기 서 있는 것도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고 있기에 가능 한일. 그 상태에서 당당하게 연설을 해야 한다.
 ‘이 기회는 다신 오지 않는다.’
 그의 인생에 첫 번째로 다가온 행운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걸 한순간의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만두기엔 자신이 너무 못나 보였다.
 ‘하자, 하면 된다. 무서울 것 없어. 사람도 죽였는데.’
 그때, 그의 눈앞에 익숙한 창이 생겨났다.
 [농민군 대장의 기운을 부여받습니다.]
 [용맹함과 삶에 대한 의지가 생깁니다.]
 문득, 쿵쾅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어 갔다. 두려움과 떨림이 점차 사라져갔다.
 더불어 온갖 부정적인 마음이 환기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농민군 대장의 힘이구나.’
 이제 말해야 할 때이다. 모두가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날 뽑아줘.”
 겨우 내뱉은 한 마디. 농민군 대장의 기운이 생긴다 한들 말주변이 트일 리는 없다.
 “왜?”
 한 사람이 얘기했지만 나머지도 동의할 만한 한 글자였다.
 “왜 우리가 널 뽑아야 하지?”
 마땅히 이 시기에 올라와야할 의문이었다.
 왜 뽑아야 하는가? 이건 일개 반장부터 시작해서 넓게는 대통령까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선 거쳐야할 단계였다. 왕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아니, 왕이기에 당연히 대답 해주어야한다.
 ‘뭐라고 하지? 왜 날 뽑아야 하냐니······.’
 자신이 뽑혀야할 이유?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이 자리도 그가 원해서 생긴 자리도 아니고 불쑥 얻은 게 아닌가.
 불현듯, 그의 친구 박종훈(눈치게임 때 죽은 반장)과의 대화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넌 지겹지도 않냐? 벌써 4년 연속 반장이잖아. 아니, 중학생 때는 회장도 했지? 우와.
 [대학교 가서도 학생회장 할 거야. 자신 있어.]
 - 이참에 물어보자. 대체 어떻게 매년 반장이 될 수 있는 거야?
 [그 전에, 정치인들이 언제 가장 친근하고 연약하고 국민들한테 바짝 고개를 숙이는지 알아?]
 - 선거철 아니겠냐? 그때 빼고는 지들이 꿀릴 게 뭐가 있어. 갑중의 갑 아니냐.
 [맞아. 하지만 선거철에는 유일하게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지. 투표권은 국민의 손에 들려있으니까.]
 - 그래서?
 [임시지만 갑이 된 국민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척 하는 거야. 공약을 내세워서.]
 - 원하는 걸 이루어주는 척, 을 한다는 거야?
 [그래, 실제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때의 대화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다.
 왕이 되려 하지만, 저들의 지지가 없으면 안 된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던져주면, 알아서 지지를 해줄 것이다.
 ‘뭘 원하지?’
 짧은 생각, 그렇지만 그 끝에 확신이 섰다.
 저들에게 굳이 물어볼 것도 없다.
 현재, 저들이 원하는 것과 본인이 원하는 것은 일맥상통했으니까.
 척.
 이마루는 죽창을 꼬나 쥐었다. 그대로 매점입구로 향해 달려갔다. 엄밀히 표현하자면, 거기 서있는 열댓 명의 10반 무리, 그들의 품으로.
 타타탓!
 그들 근처엔 사람이 없다. 덕분에 돌진하기에 손색없는 환경이었다.
 맹수처럼 뛰어드는 이마루를 보며, 그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펄쩍!
 이마루가 가속도 붙은 채로 달려오다가 뛰어올랐다.
 ‘우선, 한 놈.’
 위에서 아래로, 선두에 선 학생을 노려보았다. 그 학생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올 무렵.
 푸욱!
 45도 각도로 죽창을 내리찍었다.
 이마루 관점에서 우측 옆구리, 그곳을 죽창으로 관통시켰다.
 학생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각도에서의 찌르기.
 무게를 실은 힘과 내지르는 속도의 조화.
 막을 새도, 피할 새도 없이 상대에게 먹혀들었다.
 콰르르.
 괴성을 지르며 학생이 쓰러졌다.
 이마루는 잔뜩 힘을 주며 시체에서 죽창을 빼냈다. 그러고선 죽창을 바닥에 쿵쿵 찧었다.
 “뭐야, 전투 불가능이라며?”
 “그렇긴 한데, 공격하거나 죽일 수는 있는 것 같은데? 대신, 불이익은 스스로가 감당해야한다잖아.”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한 짓인가?”
 각자가 제 할 말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마루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손을 들어주면, 이놈들을 다 죽인다. 난 유일하게 살인이 허용되어 있거든.”
 
 ***
 
 전체 공개되었던 알림창.
 [어떠한 공격이나 살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규정을 어길 시, 갖게 될 불이익은 스스로가 감당해야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뜬 알림창. 거기엔 이마루의 행동을 부추기는 문구가 있었다.
 [왕 후보는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 문구의 속뜻을 파헤쳤다.
 ‘여기서 자유로운 행동이란 무엇일까?’
 손가락을 꿈틀거리거나 두 다리로 걷는 건, 저자들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그의 한계도 거기까지라면 굳이 저런 문구가 본인한테만 뜰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행동’이란 더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걸로 추정되었다.
 ‘전체 공개에선 공격이나 살인이 금지되어 있다. 그 뒤에 나한테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라는 건······.’
 공격이나 살인이 가능하다는 거겠지.
 ‘특별한 권한을 줄 테니, 왕이 되고자 한다면 물불 가리지 말고 덤벼들어라, 이건가?’
 이 살인게임을 만든 자, 그의 속셈이 드러나 보이는 구절이었다.
 100%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이마루는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
 ‘확신이 설 때만 움직인다면 수많은 기회를 놓칠 거야.’
 원하고자 하는 것이 크다면 그만한 희생이나 위험은 감수해야한다.
 
 ***
 
 저들이 원하면서, 동시에 이마루도 원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안전이었다.
 그 안전을 위협하는 자들로부터 지켜주는 것, 그거 하나면 족하다.
 그 대가로 손을 들어줄 것이다.
 방금 위험요소 하나를 제거했다.
 그리고 이마루가 대중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손을 들어주면, 이놈들을 다 죽인다. 난 유일하게 살인이 허용되어 있거든.”
 그 말에 먼저 응답을 해온 건, 3-10반 일당이었다.
 “지랄하지 마!”
 “당첨.”
 “어?”
 욕을 한 녀석이 의아스러워했다. 당첨이라니?
 이에 이마루가 속 시원하게 그 뜻을 풀이해주었다.
 “다음 사망자로 뽑혔어. 자, 10명이 손들어주면 처리하도록 하지.”
 꽤 쏠쏠한 제안이 아닌가. 본인들의 손을 더럽히지도 않고 위험인물을 처단할 수 있다.
 제안도 별로 어렵지 않다, 아니 누워서 떡먹기 수준의 난이도였다. 단지 손만 번쩍 들면 되었기에.
 아무리 본인들이 수적으로나 무기로 보나 우위에 있다지만, 결국 목숨을 건 싸움이다.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도 죽을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을 한없이 0에 가깝게 이마루가 해준다는 것이다. 마다할 리 없는 제안이다.
 곳곳에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이마루의 제안을 승낙한다는 의미였다.
 척, 척. 척.
 하나 둘씩, 손을 드는 인원이 늘어났다. 눈대중으로 인원을 점검하던 이마루가 이를 중지하는 데에 이를 정도였다.
 
 <『1인 1000군주』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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