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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제왕 1-1권

2016.11.17 조회 4,972 추천 59


 # 프롤로그-방구석 폐인
 
 딸깍딸깍.
 어두운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뿐.
 쏴아아.
 창밖으론 비가 한 차례 거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방의 주인인 최민준은 방 불을 켤 생각도 못하고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안경에 모니터 불빛이 비춰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환기되지 않아 어딘가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 컴퓨터 주변에 아무렇게나 쌓인 수많은 탄산음료의 페트병, 카페인이나 타우린 따위의 성분이 대량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의 캔이 굴러다니는 것만 보아도 그 눈빛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썩은 동태눈.
 그런 민준은 방 불을 켤 잠깐의 시간조차 아끼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었다.
 민준의 안경에 비추는 광경은 하나의 게임이었다.
 5년 전 전격 오픈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롤플레잉 게임.
 최민준은 그곳에서 전 세계 랭킹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민준은 은둔형 폐인이었다.
 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민준은 등교를 거부했다.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지만 하루를 빠지니 다음 날은 학교를 가기가 더 거북해졌고, 그 마음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학교를 빠지더라도 외출도 자주 했지만 거리에서 지인을 만나면서 외출마저 거부하게 되었다.
 왜 학교를 안 나오느냐, 혹시 그 사건이 계기냐, 얼른 학교에 나와라, 모두가 기다린다.
 일부러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민준을 괴롭혔다. 지인을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그 사건에 대한 전말이 학교 전체에 퍼졌다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했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개병신이라고 생각하겠지.
 민준은 본인의 방 안에 자신만의 요새를 쌓기 시작했다.
 타인의 접근을 차단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공간.
 처음 2년은 별 시답잖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시간만 허송세월 낭비하다가 접한 것이 바로 이 게임이었다.
 최민준에게 시간은 많았다.
 그리고 민준에겐 게임에 대한 적성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그의 닉네임은 그 게임의 전설이 되어 있었고, 최민준이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더욱 늘어났다.
 지금도 그랬다.
 벌써 3일을 잠도 자지 않으며, 끼니도 거르고 에너지 드링크로 버티고 있었다.
 그 3일 동안 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사냥.
 5년간 쌓아온 업적의 마지막 한 발자국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최민준의 시선이 몬스터에서 떨어져 하단으로 내려갔다.
 Lv.999 경험치 95%.
 만렙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의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치를 쌓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민준은 자신할 수 있었다.
 ‘최초로 만렙을 찍는 유저는 바로 나다!’
 그 순간 5주년 이벤트로 최근 일주일 동안 제대로 꿀을 빨았던 경험치 50% 상승 버프가 사라졌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알 수 없는 허탈감과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심지어는 코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민준은 서둘러 근처에 있던 물티슈를 뽑아 코를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3일 연속 사냥은 좀 심했나?’
 엉덩이가 뜨겁고 허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집중이 깨지면서 무시하고 있던 몸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탓이었다.
 이럴 때는 5분이라도 쉬면서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았다.
 그것이 귀찮다면 잠깐 누워 쉬는 것도 좋았고.
 최민준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비명을 지르던 허리가 꿀 같은 휴식에 기분 좋게 나른해졌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 1분만. 1분만 더 쉬고 사냥 재개해야지.’
 민준은 그간의 경험으로 지친 몸을 누이면 그대로 잠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휴식의 유혹에 넘어갔다.
 ‘잠들면 안 돼.’
 민준은 그 말을 머릿속으로 열 번도 더 되뇌었다. 하지만 불과 1분이 다 지나기도 전에 민준은 수마의 나락 속으로 떨어졌다.
 민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진짜 나락의 구렁텅이였다.
 
 
 # 1장. 용사 소환
 
 #1
 [안타깝네요! 네. 여러분들은 죽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깊은 잠에 빠져있던 민준의 정신이 강제로 깨어났다.
 당황스러웠다.
 민준은 낯선 장소에 서 있었고 주위로는 민준과 비슷하게 당황하는 사람들이 엉거주춤 서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정말 운이 좋아요. 지구. 73억이란 엄청난 인구가 살아가는 세계. 초당 두 명꼴로, 하루 평균 17만 명씩 죽어나가는 세계에서 이 자리에 모인 100명은 두 번째 기회를 손에 넣은 거예요!]
 민준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보고 몸을 움찔 떨었다.
 그곳에는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서 있진 않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으니까.
 소년은 날고 있었다.
 등 뒤에 새하얀 날개가 돋아나 있긴 했지만 그것을 퍼덕이며 나는 것은 아니었다.
 소년의 몸에서는 줄곧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불가해의 힘으로 부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행운? 두 번째 기회?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한 중년 남성의 질문이었다.
 웬만하면 소년의 정체에 대해 질문할 법도 한데 그것보다는 이곳이 어디인지,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가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소년은 상큼하게 윙크하며 대답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여러분들은 죽었습니다!]
 “하,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
 까만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의 비명 같은 고함이었다.
 그는 머리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여러분들은 운이 좋다고. 여러분들은 죽었고 다시 되살아나 이 자리에 서 있어요.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은 거죠! 애초에 여러분들께는 죽음의 기억이 남아있을 텐데요?]
 아무도 대꾸를 못했다.
 단지 민준만이 납득할 수 없었다.
 민준은 그저 잠만 잤을 뿐이었다.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난데없이 죽었다고 선언하는데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난 그런 기억이 없어!”
 민준은 어렵사리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가 체념하고 납득하는 분위기에서 7년 간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 없는 그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일분일초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집에 대해서 떠올리자 민준의 머릿속은 자연스레 게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래. 레벨.
 민준은 아직 만렙을 찍지 못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만렙은 찍어야 했다.
 그 순간 민준의 뇌리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망을 감지했습니다. 그리드 스킬, “게이머”를 각성합니다.>
 <최초로 이능을 각성! F등급 무기를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녹슨 무쇠칼을 획득하셨습니다.>
 민준은 갑자기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난 한 자루 검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와! 벌써 이능을 각성하셨네요? 축하드려요! 하지만 이제 시간이 거의 없어요. 아직 자기소개도 못해 아쉽지만 바로 미션을 진행하도록 할게요!]
 “자, 잠깐. 미션이라니?”
 “우리가 여기서 뭘 해야 한다는 거야!”
 눈치가 빠른 이들은 벌써부터 불안에 떨고 있었다.
 민준이 무기를 보상으로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보상이랍시고 무기를 준다. 그럼 지금부터 할 일이란 건?
 <미션 발생!>
 
 Mission. 가비를 물리쳐라!
 100마리의 가비들이 몰려오고 있다.
 용사들의 힘을 합쳐 적들을 물리치자!
 달성 조건 - (파티)제한시간 내에 가비 100마리 사냥.
 실패 조건 - 제한시간까지 가비 1마리 이상 생존.
 보상 - F등급 장비(랜덤)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시야 한 편에 30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적은 100마리. 여기 모인 사람들도 100명.
 어딘가에서 컹컹하고 개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가비라는 것은 개과의 동물인 걸까?
 그런 생각에 긴장을 하는 찰나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가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2
 인간의 몸에 개, 아니 늑대의 머리를 단 괴물.
 덩치는 작았다.
 개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큰 놈이라 해도 기껏해야 130센티미터.
 초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덩치였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 하나 놈들을 얕보지 못했다.
 그 눈에 깃든 흉성, 날카로운 이빨, 무엇보다 놈들의 수는 100마리나 되었다.
 물론 따지자면 이쪽도 100명이다.
 하지만 이 다급한 순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우선적 선택지는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도, 도망가!”
 “안 돼! 뒤는 막혔어!”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아예 뒤를 돌아보고 전력으로 도망가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민준은 가장 앞에 서 있었다.
 심장이 서늘해질 정도의 공포가 전신을 잠식했다.
 뱀 앞에 개구리, 고양이 앞에 쥐가 이럴까?
 민준은 달려드는 가비를 바라보며 꼼짝달싹도 못했다.
 그런 민준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차가운 검의 감촉이었다.
 묵직했다.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민준은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생존본능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분노로 발전했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 애초에 난 죽지 않았어! 여기서 살아남아서, 저놈들을 모두 쳐 죽이고 살아남아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무려 100마리나 되는 가비들을 보았을 때는 마냥 무서웠는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점차 진정이 되었다.
 가비들은 덩치도 작고, 실제로 달려오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긴 시간이 공포감을 더욱 키우는 요소가 될 수도 있었지만 민준은 가비가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살벌하게 큰 칼도 손에 있겠다.
 잘하면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민준은 가장 앞서 달려드는 가비에게 온 힘을 다해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베었다.
 생명을 해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지금까지 배워온 도덕적 상식?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민준은 오로지 필사적이었다.
 죽여야 산다. 그러니 죽일 뿐이었다.
 민준은 가비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지만 가비는 그 짧은 순간에 민준의 공격에 반응해 회피 동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민준의 공격은 서툴렀지만 그만큼 가비의 몸놀림도 둔했다.
 무쇠칼은 가비의 어깨에 강하게 내리꽂혔다.
 가죽을 가르고 쇄골을 빠개는 감촉이 무쇠칼을 통해 전해져왔다.
 소름끼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감각보다 두려운 것은 공격당한 가비는 어깨에 검이 박혔는데도 그 공격성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민준이 당황해 다시 공격해 마무리를 지으려 했지만 검이 너무 깊게 박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반면 가비와의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가르르! 컹컹!
 침을 질질 흘리며 난동을 부렸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검이 이리저리 비틀렸고 민준의 몸도 그에 따라 들썩거렸다.
 민준은 필사적이었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가비도 필사적이었다.
 화들짝 놀란 민준은 급하게 가비의 몸뚱이를 발바닥으로 걷어찼다.
 간신히 검이 뽑혔지만 덕분에 가비도 자유가 되었다.
 민준은 바닥을 구르는 가비가 일어나기 전에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공격하는 것은 민준이었지만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질러대는 것도 민준이었다.
 민준의 무쇠칼은 이번에야말로 가비의 머리를 빠갤 수 있었다.
 <경험치를 1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1 획득하셨습니다.>
 <최초로 가비를 사냥! F등급 장비를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허름한 가죽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시끄럽게 떠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민준은 그 목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비 한 마리를 쓰러트린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적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뒤에서 덤벼든 가비에게 팔을 물렸다.
 다행인 점은 무기를 든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물렸다는 점일까.
 하지만 민준은 전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3
 아팠다.
 끔찍하게 아팠다.
 당연하지만 민준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았던 7년의 세월도 결코 위험과는 가깝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만한 중상을 입어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당연한 거지만 가비는 민준의 팔을 물고 얌전히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먹잇감을 잡아 뜯기 위해 전력으로 도리질을 쳤다.
 하마터면 민준은 넘어질 뻔했지만 순간 드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넘어지는 몸을 바로 잡았다.
 지금이야 가비들의 키가 작아 물린 곳이 팔이라지만 넘어지고 나서도 그럴까?
 주변에는 수많은 가비들이 있었다.
 아직은 민준에게 신경을 기울이는 가비가 몇 되지 않지만, 민준이 쓰러진다면 그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가비는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넘어지면 죽는다.
 그 생각이 오히려 꺼져가던 민준의 대항 의지에 불을 지폈다.
 끔찍한 고통에 민준은 눈물을 질질 짜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칼을 휘둘렀다.
 적은 너무 가깝고,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도리질을 치고 있었다. 칼로 공격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어설프게나마 검을 계속 휘둘렀다.
 “이 개새끼야아아! 뒈져! 뒈지라고!”
 한 번, 두 번, 반복되는 칼질에 민준의 팔을 물고 늘어지던 가비의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가비가 잘 다져진 한 덩이 고깃덩이가 되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비는 죽어서도 민준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민준은 무기를 든 손으로 가비의 아가리를 조심히 열어 젖혀 팔을 살폈다.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순간 평생 팔을 못 쓰는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먼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당장의 전장이 너무 격렬했다.
 가비 하나가 또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냄새나는 아가리를 쩍 벌리고 질척거리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크흐.”
 눈물이 솟구쳤다.
 대체 내가 왜?
 그런 생각에 억울하고 또 화가 났다.
 “다 죽여 버리겠어! 씨팔 새끼들!”
 칼을 휘둘렀다.
 먼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가비에게 칼을 크게 휘둘렀다.
 무쇠칼은 가비의 옆구리에 깊게 박혀 들어갔지만 그것만으로 가비는 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과다출혈이나 내장손상 따위로 죽겠지만 당장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칼이 박히고도 다가오는 가비의 모습에 민준은 익숙하게 발로 가비를 걷어차고 넘어진 가비에게 재차 칼을 휘둘렀다.
 <경험치를 1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1 획득하셨습니다.>
 <허술한 나무 방패를 획득하셨습니다.>
 아직 민준은 서툴다.
 검으로 적을 한 번에 죽이기 위해선 급소를 노려야 했지만 민준에게는 급소에 대한 지식도, 그것을 노릴 기술도 부족했다.
 하지만 서툴게나마 전투를 경험함으로서 확실히 민준은 생명의 존망을 건 싸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또 다른 가비가 민준에게 덤벼들었다.
 민준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무쇠칼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번에는 한 번에 가비를 처치할 수 있었다.
 가비가 반응할 틈도 없이 무쇠칼이 머리를 빠갰던 것이다.
 연이어 달려드는 가비에게 재차 무쇠칼을 떨쳤다.
 목을 베인 가비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가비가 쉬지 않고 연이어 달려들었다.
 무쇠칼을 내리쳤지만 칼은 어깨에 박혔다.
 민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발을 써 가비를 걷어차고 달려들어 머리를 빠갰다.
 그 순간 뒤에서 또 다른 가비가 부딪혀 왔다.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안경이 떨어졌다.
 좁은 방에 7년이나 갇혀 지내며 자연히 떨어진 민준의 시력은 바로 코앞의 인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민준의 주변에는 괴물밖에는 없었다.
 민준은 뒤에서 부딪혀온 가비에게 무쇠칼을 떨쳤다.
 <경험치를 1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1 획득하셨습니다.>
 
 #4
 마음 같아선 떨어트린 안경을 찾아 다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가비들은 민준에게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에는 이미 제법 많은 가비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피로 범벅이 된 바닥에는 안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민준의 시력은 그 정도로 심각했다.
 가비가 둘이나 덤벼들어 민준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겨야 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안경을 어디에 떨어트렸는지 짐작하기 어려워졌다.
 민준은 가비들에게 무쇠칼을 휘둘렀다.
 잘 보이지 않아 위협하듯 허공에 붕붕 휘두르자 아무리 골수에까지 흉성이 물든 가비라도 쉽사리 접근을 하지 못했다.
 민준도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벌써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7년이나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민준에게 날카로운 무기가 있다고 해도 가비를 죽이려면 온 힘을 다해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왼팔까지 크게 다쳤으니 민준의 체력은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목숨을 건 혈투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수세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민준의 적은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수많은 가비들이 민준의 옆을 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덤비고 있었고, 뒤에도 가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놈들이 언제 타깃을 민준에게 돌릴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있는 가비의 수를 되도록 줄이는 것이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이었다.
 민준은 먼저 공격에 나섰다.
 민준이 지치기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가비들은 급작스러운 공세 전환에 흉성을 터트리며 마주 덤벼들었다.
 민준은 가비의 흐릿한 체형을 어림짐작해 목을 벨 작정으로 무쇠칼을 휘둘렀다.
 먼저 한 놈을 죽이거나 행동불능 상태로 빠트리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눈먼 칼이 가비의 경동맥을 스치고 지나갔다.
 칼이 꽂히는 감각도 없이 살만 쓱 하고 베고 지나가 다른 한 마리 가비를 견제하는 것도 더욱 수월했다.
 무쇠칼을 휘둘러 먼저 달려오는 가비의 걸음을 멈춘 뒤 힘껏 들어 올린 무쇠칼을 내리찍었다. 칼은 어깨에 박혔지만 민준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발을 사용해 가비를 넘어트렸다.
 다음 수순도 정해진 대로 진행되었다.
 나자빠진 가비의 머리가 어디쯤인지 짐작되지 않아 민준은 아무렇게나 검을 내려찍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계속.
 가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민준은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안경이 없으니 신경을 써야할 것이 더욱 많았고 그것이 민준에게서 쓸데없는 잡생각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접근한 가비가 민준의 종아리를 물었다.
 고통이 심했지만 민준은 침착하게 검을 역수로 고쳐 잡아 가비를 처치했다.
 민준이 10마리째 가비를 사냥하는 순간이었다.
 <경험치를 1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1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최초로 레벨 업! F등급 장비를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너절한 완갑을 획득하셨습니다.>
 민준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를 너무 흘려 혼미해졌던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아, 아아······!”
 민준은 신음을 흘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간 탓이었다.
 이윽고 그 쾌감이 끝나자 민준은 자신의 몸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왼팔과 오른 발목에 입었던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바닥을 보이던 체력도 순식간에 회복되더니 미칠 듯한 활력이 전신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강해졌다.
 몸속에서 뼈와 근육부터 세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민준은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더 강하게 칼을 휘두를 수 있었고, 더 오래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게 레벨 업?’
 민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5
 민준이 레벨 업의 여운에 잠겨있을 여유는 없었다.
 가비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민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전보다도 여유 있는 태도로 가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민준이 가비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 위해선 한 칼 한 칼을 전력을 다해 휘둘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3할 정도의 여유를 두고 휘둘러도 지금까지 휘둘렀던 위력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민준은 가비들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목을 베고, 머리를 빠개고, 심장을 찔렀다.
 쓰러진 가비의 몸뚱이를 짓밟고 빠지지 않던 무쇠칼을 두 손으로 잡아 뽑았다.
 그 뒤에서 가비가 민준을 공격해 왔지만 민준은 가볍게 무쇠칼을 떨쳐 놈을 쓰러트렸다.
 빠창!
 무쇠칼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칼을 확인해보자 시력이 좋지 않은 민준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칼날이 짧아져 있었다.
 너무 무리하게 사용한 탓에 무쇠칼이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무쇠라고 하면 한국인에게는 단단한 금속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는 반만 맞는 소리였다.
 분명 무쇠는 단단한 금속이지만 그만큼 쉽게 부러진다.
 그것을 확인한 민준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민준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더욱 빠른 사냥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기의 존재가 컸다.
 무기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맨손으로 가비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개중에는 돌을 주워들어 싸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쇠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당연히 무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부러진 무쇠칼도 무기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가비가 덤벼들자 민준은 부러진 무쇠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빗나갔다.
 시력이 좋지 않아 거리감을 잴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무기까지 짧아진 탓에 헛손질을 했던 것이다.
 접근한 가비가 아가리를 쩍 벌리자 민준은 아가리에 무쇠칼을 처박아 주었다.
 가비는 죽지 않고 발버둥을 쳤지만 민준은 왼손으로 가비의 모가지를 붙잡고 무쇠칼을 역수로 고쳐 잡아 가비의 안면에 몇 번이고 찔러 넣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부러진 무쇠칼의 단면이 송곳처럼 날카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공격방법이었다.
 가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얼마나 심하게 발버둥을 치던지 이 전투 한 번으로 민준은 심하게 지쳐버렸다.
 가비에게서 튄 피로 전신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민준이 숨을 몰아쉬는 순간 또 다른 가비가 민준에게 덤벼들었다.
 민준은 잔뜩 지쳐있는 상태였다.
 부딪혀오는 가비에 의해 바닥을 굴렀다.
 넘어지면 위험해!
 민준은 강박 관념처럼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함께 엉켜 넘어진 가비가 워낙 난동을 부리는 탓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민준은 어쩔 수 없이 가비를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급하게 바닥을 뒹굴며 팔꿈치로 놈의 가슴을 짓눌러 고정하고 무쇠칼로 놈의 얼굴을 난자했다.
 가비는 쉽게 죽어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위협하듯 벌렸다 닫는 주둥이도 조심해야 했고 고개를 마구 흔들어 제대로 공격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힘으로도 덩치로도 유리한 것은 민준이었다.
 이내 냅다 내리꽂은 무쇠칼이 놈의 이마에 꽂히며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놈이 죽었음을 확신한 민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달려드는 가비에게 위에서 아래로 힘껏 팔을 휘둘렀다.
 역수로 쥐고 있던 부러진 무쇠칼은 가비의 정수리에 깊이 박히며 놈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민준은 무아지경으로 부러진 무쇠칼을 휘둘렀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30분이나 되었던 제한시간이 3분까지 줄어있었다.
 문득 제한시간 안에 가비를 물리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제한시간은 더 이상 줄어드는 것을 멈췄다.
 어느새 100마리 가비들을 모두 물리쳤던 것이었다.
 <미션 완료!>
 <F등급 장비(랜덤)을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튼튼한 강철 한손검을 획득하셨습니다.>
 
 #6
 [79명이나 살아남으셨네요? 대단해요!]
 미션이 시작되고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던 소년이 나타나 처음으로 한 소리였다.
 이곳에 끌려온 사람은 모두 100명.
 생존자가 79명이라는 소리는 이번 전투로 21명이나 죽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하는 소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이 빌어먹을 천사새끼야! 21명이나 죽었어! 바로 네놈 때문에!”
 화르륵!
 고함을 내지른 성인 남성의 손 위에 주먹만 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안경을 잃어버린 민준도 그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민준은 화들짝 놀랐지만 정작 당사자는 당연한 것처럼 그것을 천사의 모습을 한 소년에게 집어던졌다.
 하지만 날아간 불꽃은 천사의 가벼운 손놀림에 픽 꺼져버렸다.
 천사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불꽃을 날렸던 남성의 발밑에서 푸른 화염이 솟구쳤다. 남성의 불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뜨거운 불꽃이었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남성은 비명을 질렀다.
 처절하고 처절한 비명이었지만 그것을 듣는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남성은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듯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머지않아 남성의 비명은 멎었고 불길도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것은 사람의 형태를 한 숯덩이 한 구 뿐이었다.
 [흥! 착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이미 죽었어요. 그러니 21명이 죽은 것이 아니고 79명이 되살아난 거라고요?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위협을 가하다니! 지구의 용사님들에겐 실망이에요!]
 사람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다들 보았으니까.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의 손짓 한 번에 처절한 비명을 남기며 남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게다가 천사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다. 아무리 지옥 같은 곳에 강제로 끌려왔다지만 진짜 지옥보다는 나을지도 몰랐다.
 다만 민준만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그러니까 나에게는 죽었다는 기억이 없다고!”
 민준이라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준은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처절하게 싸우며 살아남았다.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고 무턱대고 죽일 생각은 없는지 천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민준을 바라보았다.
 [아! 최초 이능 각성, 가비 사냥, 레벨 업으로 최초 업적 삼관왕을 찍은 용사님이시군요! 좋아요. 우리는 유능한 용사님들에게는 친절하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주시면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할게요.]
 민준은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최초 업적 삼관왕.
 그에 대한 공지는 그들도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모습을.
 이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싸움을 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단지 안경을 잃어버려 자신의 싸움에만 집중한 민준만이 모를 뿐이었다.
 모이는 시선에 식은땀이 다 나왔다.
 민준은 그 시선들이 마냥 부담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버버 당황하다 간신히 들어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나는 죽지 않았어. 단지 잠만 잤을 뿐인데 이런 곳에 끌려왔다고!”
 천사는 손가락을 턱에 대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늉일 뿐 대답은 가벼웠다.
 [그럼 주무시다 죽었나보죠.]
 “뭐, 뭐?”
 민준은 당황했다.
 자다 죽었다고?
 물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준은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 권한으로는 이곳에 소환된 용사님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고요. 정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천사의 말을 듣던 사람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그들은 돌아갈 방법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여러분들은 세계를 위협하는 마수와 마족,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마왕과 마신을 쓰러트리기 위한 용사로서 이곳에 소환되었어요. 만약 여러분들 중 누군가가 마신을 쓰러트려 목표를 달성하신다면 원래 있던 지구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죠.]
 
 
 # 2장. 게임 같은 세상
 
 #1
 마왕? 마신?
 우리가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불려온 용사라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마왕이고 자시고 눈앞에 나자빠진 괴물들한테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듣자하니 마족이니 마왕이니 마신이니 하는 것들은 이런 놈들을 수없이 거느리는 대단한 괴물들인 모양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들이 희망고문 속에서 절망을 하든 말든 천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다음 미션을 진행하기에 앞서 궁금증을 해결하도록 할까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다음 미션.
 또 그와 같은 혈투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질지도 알 수 없으니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만 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용사라고 했던가? 그런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는 건가? 100명, 아니지. 이제는 78명밖에 남지 않았다만 고작 78명이 왕이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처치할 수 있느냐는 말일세.”
 이마가 반쯤 까진 중년 남성의 말이었다.
 그의 양복에 피가 잔뜩 묻은 것을 보니 그도 이번 미션에서 가비와 전투를 벌인 용사들 중 하나로 보였다.
 [일단 질문에 대답하자면, 아닙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불려온 선배 용사님들도 있고, 지구에서도 차차 용사님들을 소환하고 있으니까요.]
 천사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밝아졌다.
 용사들의 수가 많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마신을 쓰러트리고자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들이 지구로 돌아갈 확률도 늘어나는 셈이니까.
 가비를 사냥하면서 팽배해졌던 긴장감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느꼈던 것일까?
 천사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아도 남이 해주겠지.’ 따위의 나약한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그러지 말라고 조언을 해드리고 싶군요. 여러분들은 ‘용사’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적에게 도전할 정도로 ‘용기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용사가 아니면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뜻이지요. 부디 계속해서 ‘용사’로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리고 누그러졌던 긴장감이 다시 살아났다.
 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은 많았다.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자들은 누구죠? 천사······ 님은 지구로 돌려보낼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그 권한이 있는 사람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여러분들을 직접 선택해 이곳에 불러온 분들은 바로 프레아 차원 신계의 태초신 님들입니다. 그리고 물론 태초신님들이라면 여러분들을 지구로 돌려보낼 정도의 능력은 되십니다. 아니면 다시 죽음으로 되돌리는 일도요.]
 질의응답이 거듭될수록 용사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좋지만 상황을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만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질문을 던지는 자가 없자 민준은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말을 꺼냈다.
 “미션. 거기에는 제한시간이 있었는데 만약 그 제한시간 내에 미션을 완료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천사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와 아주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저는 여러분들께 용사는 용기 있는 자라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모든 용기 있는 자들이 용사인 것은 아니에요. 모든 용기 있는 자들 중에서도 능력 있는 자.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자만이 용사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미션은 그런 용사를 선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용사는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지금도 수많은 용사님들이 적들과 싸우고 있고 또 소환되고 있어요. 즉 여러분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대국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뜻이죠.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용사는 우리에게 필요가 없어요.]
 
 #2
 천사는 더 이상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다음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 충분히 준비를 해두라며 휴식시간을 주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민준은 시야 한 쪽에서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29:12
 휴식시간이랍시고 30분의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당장 싸우라고 시켜도 거부할 방법이 없는 용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민준은 솔직하게 반길 수가 없었다.
 가비와의 전투는 이번 전투만 살아남으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그럼 도대체 이 미션이라는 것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어쩌면 미션은 마신을 죽일 때까지 계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고 또 싸우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히는 용사들은 그것을 끝으로 죽을 것이고.
 결국 용사라는 것은 듣기에만 좋을 뿐 죽을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욕이 생기는 쪽이 이상한 것이리라.
 안경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데 흐느끼며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했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끔찍했다.
 인간의 시체는 가비에게 물어 뜯겨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가비들의 시체는 돌덩이로 머리가 뭉개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어서 껄떡대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도 나오고 울고 싶어지는 기분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동질감이 가슴을 진탕 뒤집어 놓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민준은 차라리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안경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떨어트렸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격하게 싸우느라 어느 방향에서 떨어트렸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곳은 동굴이었다.
 100명의 사람과 100명의 가비가 날뛰어도 전혀 비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거대한 동굴.
 그런 곳에서 안경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겨우 안경을 포기하고 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보니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나갈 길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상황을 파악한 민준도 그들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이곳은 죽은 자를 되살리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마련한 무대였다.
 솔직히 빠져나갈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동굴을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동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투명한 벽이 길을 막아섰다.
 그 벽에는 한글로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증명하는 자에게 자유를.
 
 다른 것은 모두 흐릿하기만 한데 그 문구만은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그래. 이대로 죽어줄 수는 없어.’
 자유라는 단어에 혹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민준은 참을 수 없이 분노하고 있었다.
 제깟 놈들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사람을 시험한단 말인가?
 실력을 증명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빈정이 상했다.
 분노라는 감정에 불씨가 붙자 다른 감정들도 함께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민준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기다란 창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외에도 방패나 방어구 따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션 완료 보상.
 민준은 자신이 들고 있는 부러진 무쇠칼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받은 보상은 다 어디 갔지?’
 민준이 획득한 장비는 하나가 아니었다.
 최초 업적 보상으로 획득한 장비만 해도 세 가지나 되었고 미션 완료 보상에 가비를 잡다가 드롭한 장비도 있었다.
 모두 합쳐 다섯 가지나 되는 장비들.
 그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자 민준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갑자기 나타났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얻은 장비들?’
 그것은 민준에게 대단히 익숙한 것이었다.
 게임에서 보아왔던 유저 인터페이스(UI).
 그것은 인벤토리였다.
 
 #3
 인벤토리의 슬롯은 가로 4칸, 세로 4칸으로 모두 16칸이었고 그중 4칸의 슬롯에 민준이 획득한 장비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얻은 녹슨 무쇠칼은 손에 들고 있으니 모두해서 5개의 장비.
 민준은 조심스럽게 반투명한 창으로 손을 뻗었다.
 ‘어떻게 꺼내는 거지?’
 민준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장비는 허름한 가죽부츠였다.
 민준은 현재 파란색 추리닝 차림에 맨발이었다. 물론 가비와의 전투에서 파란색이었던 추리닝은 가비의 피로 잔뜩 물이 들고 말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이 동굴이고 당연히 바닥은 울퉁불퉁하다는 사실이었다.
 가비와 정신없이 싸우기도 했고, 안경을 잃어버리기도 한 탓에 바닥에서 날카롭게 솟아오른 석순을 밟으며 발바닥을 다쳤다.
 당장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이런 사소한 조건들이 정말 크게 느껴졌다.
 민준은 인벤토리에 그려진 부츠 아이콘을 터치했다.
 
 <허름한 가죽부츠>
 등급-하찮은 F
 설명-누군가 신던 가죽부츠. 심각한 악취가 난다.
 효과-발을 보호한다. 매우 낮은 확률로 [무좀]상태에 걸린다.
 내구도-(7/24)
 
 갑자기 떠오른 설명 창에 민준은 호기심을 가졌지만 그 얼굴이 찌푸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각한 악취? 매우 낮은 확률로 무좀 상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따지기엔 사소한 것들이지만 불쾌한 것은 불쾌한 것이었다.
 이내 설명 창 위로 선택지가 떠올랐다.
 <1. 꺼낸다.>
 <2. 사용한다.>
 민준은 저도 모르게 사용을 선택하려다 멈칫 행동을 멈추고 ‘꺼낸다.’를 선택했다.
 일단 장비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알아서 신던지 판단을 내리려는 생각이었다.
 허름한 가죽부츠가 인벤토리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민준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대뜸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도 냄새지만 일단 상태부터가 민준의 생각보다 심각했다.
 밑창은 다 닳아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가죽은 헐어 구멍이 뚫리기 직전이었다.
 무엇보다 가죽이 검붉은 색으로 얼룩덜룩했다.
 마치 피가 묻어 그대로 착색되어버린 느낌.
 설명 창에서 누군가 신던 부츠라더니 이 부츠의 주인은 어떻게 되었나하는 상상이 나래를 펼쳤다.
 혹시 이 부츠의 원주인은 이곳에 불려온 선배 용사고 그가 죽어 재활용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장비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민준은 아쉬운 소리를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민준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죽부츠를 챙겨 신었다.
 사이즈는 신기할 정도로 딱 맞았다. 마치 민준을 위해서 크기가 조절된 것처럼.
 민준은 모든 장비를 챙겨 입었다.
 들고 있던 부러진 무쇠칼은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너절한 완갑, 허술한 나무 방패, 튼튼한 강철 한손검을 장비했다.
 인벤토리에서 각 장비의 아이콘을 터치하고 ‘사용한다.’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장비할 수 있었다.
 모두 F등급의 장비였지만 민준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자 민준의 머리가 그제야 조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민준은 그제야 처음 각성했던 ‘이능’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능은 무엇일까.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사에게 죽임 당한 성인 남성. 그가 천사를 해치기 위해 만들어낸 불덩어리가 아마 이능이었을 것이다.
 민준은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혹시 민준에게도 그러한 초능력이 깃들어 있다는 소리일까?
 ‘내가 뭘 각성했다 그랬지?’
 민준이 의문을 떠올리자 인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그것은 스킬 창이었다.
 스킬은 모두 네 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드, 보이드, 기프트, 노멀.
 그리고 그리드 이외에는 모두 공란이었다.
 민준은 그리드 스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게이머(Gamer) Lv.1>
 등급-유일한 F
 설명-탐욕스럽게 레벨업을 추구한 용사 최민준이 각성한 스킬.
 효과-세상을 게임화 한다.
 숙련도-(2/10)
 
 ‘세상을 게임화? 그게 뭔 소리야?’
 민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4
 아무리 보아도 민준이 각성한 이능은 그가 기대했던 종류의 초능력은 아닌 모양이었다.
 불을 피우거나, 전기를 쏘아내는 등, 전투에 도움이 되는 초능력을 각성했다면 좋았을 텐데.
 ‘게임화가 도대체 무슨 소리지?’
 혹시 가비를 쓰러트리고 레벨업을 한 것이 그리드 스킬, 게이머의 영향일까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 레벨이니 뭐니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자하니 민준을 제외하고도 10마리의 가비를 사냥해 레벨을 올린 용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민준은 내친김에 스텟 창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인벤토리도, 스킬 창도 있었다.
 레벨 업도 했으니 스텟 창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민준이 레벨이란 단어에 정신을 집중하자 당연하다는 듯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최민준 Lv.2>
 칭호-수습용사
 종족-인간
 직업-무직
 
 근력-8 민첩-7 체력-6 반응속도-17
 컨디션 게이지-89%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항목들.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능력치 중 반응속도라는 항목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컨디션 게이지라는 항목이었다.
 컨디션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하건데 현재의 몸 상태를 퍼센티지로 나타내는 항목 같았다.
 하긴 게임이면 모를까 현실에선 아무리 육체조건이 뛰어나도 그 날의 컨디션으로 최악의 상태가 되기도 하니 능력치라는 점에선 굉장히 중요한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은 납득하면서 계속해서 반짝이고 있는 반응속도 항목을 터치했다.
 그러자 설명 창이 떠올랐다.
 <반응속도 : 선천적 특수 스테이터스. 극소수만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별한 능력치. 후천적 개발이 매우 어렵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빠른 정도를 나타낸다.>
 미처 생각지 못한 능력치였다.
 민준은 아무래도 운동에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평생 운동이라곤 그다지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면 짐작 가는 일이 몇 차례 있기는 했다.
 민준이 했던 게임, 퍼스트 로드.
 민준은 그 게임에서 가장 높은 레벨로 랭킹 1위를 줄곧 유지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아바타가 가장 강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랭커들끼리는 아이템의 조합에 따라 랭킹을 뒤집는 일도 쉽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민준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1대1의 PvP에서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아이템에서 차이가 나도 컨트롤로 그 간극을 메웠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사기니 전설이니 하는 소리는 신물 나게 들었지만 민준은 항상 그러려니 생각했다.
 우연찮게 자신이 이 게임에 적성이 맞았을 뿐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컨트롤의 뿌리에는 이런 민준의 반응속도가 깔려있던 모양이었다.
 육체능력 중에서 가장 높은 근력 스텟이 8밖에 되지 않는 가운데 반응속도만이 근력의 두 배를 상회하는 17을 달성하고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되는 수치지?’
 반응속도 스텟이 높다는 것만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 외 근력과 민첩, 그리고 체력의 스텟이 얼마나 되는 수치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침 주변에선 레벨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서 능력치를 확인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무리를 이룸으로서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민준이 혼자 이것저것 추측하는 사이에 나머지 77명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무리를 이루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난 근력이 12던데 넌 몇이냐?’
 ‘10인데. 민첩이랑 체력도 10이야.’
 대충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엿들은 정보에 의하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육체 능력의 평균은 10정도인 모양이었다.
 성인 여성은 6~7정도가 평균이었으니 레벨업을 하기 전의 민준이 성인 여성 정도의 능력치를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7년이나 집안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폐인의 환경을 건강한 생활이라고 칭하기는 어려웠으니까.
 반응속도가 그러한 육체 능력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민준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헛바람을 들이켰다.
 민준은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간을 게임과 동기화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유치한 능력치 경쟁으로 실망하거나 우월감에 빠지기에는 너무나도 처절한 환경이었다.
 게임처럼 몬스터와 싸워 이기면 레벨이 올라가지만, 죽으면 그걸로 끝.
 게임처럼 되살아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본 후 민준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현실을 게임과 동기화 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 세계는 마치 게임과 같았다.
 그리고 민준은 퍼스트 로드라는 게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잘 살린다면 혹시 생존율을 높일 방법도 있지 않을까?
 민준의 사고방식이 근본부터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5
 만약 이 상황이 게임이라면 장르는 무엇이 될까?
 민준은 바로 디펜스 게임을 떠올렸다.
 밀려오는 몬스터로부터 요새를 지키는 게임.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민준 일행, 용사들의 목적은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밀려드는 몬스터와 싸운다는 점에서는 정확히 디펜스 게임과 일치하지만 이 게임의 목적은 지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공격, 마신을 쓰러트리는 데에 있었다.
 굳이 명명하자면 오펜스 게임.
 최상층의 최종 보스를 향해서 1층부터 순차적으로 탑을 점령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디펜스가 되었건 오펜스가 되었건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몰려드는 몬스터로부터 살아남는 것.
 그것이 민준의 최초 승리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민준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민준은 첫째로 기술을 꼽았다.
 비교 대상은 퍼스트 로드의 아바타였다.
 게임 속 아바타의 움직임은 현란하다.
 몬스터 앞에서 결코 당황하는 일이 없으며 스스로 가진 능력치에서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낸다.
 반면 민준은 몬스터가 두려워 몸이 굳기도 했고, 움직임은 형편없었다. 이미 죽은 시체를 향해서 불필요한 공격을 반복하기도 했고, 고통에 울부짖으며 분노하거나 위축되기도 했다.
 당연했다. 민준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에게도 감정이 있는 이상 게임 속 캐릭터와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했다.
 민준은 이미 생존을 위해 퍼스트 로드 랭킹 1위의 경험을 적극 반영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를 위한 대전제로서 완벽하게 통제된 아바타가 필요했다.
 민준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주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용사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민준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감정에 관해서 민준은 스스로를 통제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스스로의 반응속도를 반영할 기술만큼은 몸에 익히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기껏 검 몇 번 휘둘러서 어떻게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민준은 이 상황을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미션에서 살아남으면, 과연 미션은 그것으로 끝이 날까?
 민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미션은 끝없이 주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용사 본인이 죽어나가거나 결국에는 마신을 쓰러트릴 때까지.
 어차피 실전 속에서 실력이 늘어날 것이라느니, 나중에 필요할 때가 되어서 수련하면 된다느니 하는 어설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은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지언정 민준은 이 선택이 선견지명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민준은 방주를 짓는 노아라도 된 것처럼 꾸준하게 검을 휘둘렀다.
 튼튼한 강철 한손검은 그 이름처럼 튼튼했다.
 녹슨 무쇠칼이 그랬던 것처럼 녹이 슬거나 날이 상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칼의 형태도 조금은 달랐다.
 무쇠칼의 검신은 50센티미터 정도로 단검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강철 한손검은 70센티미터 정도로 무쇠칼보다 더 길었다.
 무게 자체도 더 무겁고 길다 보니까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검을 휘두르는 오른팔이 금방 지쳐왔지만 민준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면서 계속 생각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이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민준에게 부족한 둘째, 그것도 기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킬, 바로 이능이었다.
 이 게임은 평범한 오펜스 게임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디펜스, 오펜스 게임은 혼자서 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쟁자가 있었다.
 그들은 용사라는 이름의 동료였지만 민준은 굳이 그들을 경쟁자라 칭했다.
 생존율에 크게 관여하는 요소, 업적 보상.
 그것을 탐내는 자가 있다면 모두 민준의 경쟁자일 수밖에 없었다.
 
 #6
 민준은 이미 세 가지 최초 업적 보상을 독점했지만 업적 보상이 이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다른 용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 속으로는 업적 보상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어쩌면 살아남기 급급해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민준은 분명 업적 보상을 노리는 경쟁자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업적 보상을 놓고 용사들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는 이 판을 짠 신계의 신들인지 뭔지가 의도한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민준이 업적 보상을 획득할 때마다 그에 대한 공지는 모든 용사에게 전해졌다.
 마치 보상을 원하면 업적을 쌓아보라고 선동하듯이.
 그리고 그것은 통했다.
 최초 이능 각성 보상으로 무기를 얻은 민준이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덕분에 모두들 무기, 또는 장비의 중요성에 눈을 뜬 상태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업적 보상을 세 개나 독점한 민준이 독보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민준은 그렇지 않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바로 이능이라는 요소 때문이었다.
 이능을 가장 먼저 각성한 것은 민준이었지만 첫 전투를 마친 지금의 시점에서 반수 이상의 용사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능을 각성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능들 중에는 분명 전투에 특화된 이능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민준은 그것이 불안했다.
 민준의 이능은 어느 모로 보아도 전투 특화 이능은 아니었다.
 아직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이능.
 그것이 민준과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있었다.
 주변에서 들려온 이야기에 의하면 2개 이상의 이능을 각성한 용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능의 종류는 모두 세 가지.
 그리드, 보이드, 기프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민준의 스킬 창에는 분명 거기에 더해 노멀 스킬도 있었지만 그에 대해 언급하는 용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주워들은 소리를 종합해보면 용사는 세 가지 이능을 각각 하나씩 각성하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즉 그리드 스킬인 [게이머]를 각성한 민준도 아직 보이드와 기프트의 두 가지 이능을 더 각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새롭게 전투 특화 이능을 하나라도 각성할 수 있다면 민준에게는 최선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능을 각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분명 어떠한 조건이나 계기 따위가 있을 법도 한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음에도 업적 경쟁을 대비해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민준은 스스로 이능을 각성한 순간을 되짚어 보았다.
 분명 중요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능의 이름이 아무래도 각성의 조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드, 보이드, 기프트.
 그리드와 보이드의 뜻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민준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방구석에 처박힌 폐인이었다.
 실제 고등학교 1학년생과 영어 성적을 비교해 봐도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하지는 못하는 정도.
 그나마 기프트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기프트는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재능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민준은 선물이라는 뜻보다는 재능이라는 뜻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선물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프트 스킬이 재능과 연관된 이능이라면?
 ‘또 게임 관련 이능? 아니면 반사속도?’
 생각을 거듭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떤 이능을 각성할지 추려낸다 하더라도 도대체 무엇을 계기로 각성할 수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0분의 휴식시간에 끝이 났다.
 <미션 발생!>
 
 Mission. 부르를 토벌하라!
 100마리의 부르가 몰려온다.
 용사들의 힘을 합쳐 적들을 물리치자!
 달성 조건 - (파티)제한시간 내에 부르 완전 토벌.
 실패 조건 - 제한시간까지 부르 1마리 이상 생존.
 보상 - E등급 장비(랜덤)
 
 
 # 3장. 부르 사냥
 
 #1
 ‘부르? 가비가 아니야?’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미션의 난이도가 올라갈 가능성.
 시야 한 편에 30분의 제한시간이 떠오르고 부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는 가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괴물이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성인 남성과 비교하면 머리 하나는 작았지만 말이다.
 가비가 초등학생이라면 부르는 중학생 정도의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반신은 회색 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네발짐승 특유의 역관절에 발굽이 달려있었다.
 상반신은 인간과 닮았지만 여전히 머리는 짐승의 형태였다.
 납작한 코, 툭 튀어나온 주둥이, 주둥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어금니.
 부르는 멧돼지의 머리를 달고 있었다.
 단, 머리 위로 한 쌍의 뿔이 돋아났다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김새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비와는 달리 무기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기라고는 해도 조잡한 돌도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부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비와는 속도부터가 달랐다.
 머리를 상하로 흔들며 역관절의 다리로 바닥을 박차면 탄력적으로 튕겨져 나왔다.
 키는 작았지만 속도 자체는 성인 남성의 전력질주보다도 빨랐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미 가비와의 싸움으로 혈투에 익숙해진 용사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민준은 점차 빨라지는 박동을 강제로 억누르며 감정을 제어하기 바빴다.
 ‘무섭지 않아. 나는 무섭지 않아. 저런 괴물쯤 가비랑 크게 다르지 않아.’
 민준은 아바타가 되어야만 했다.
 효과는 있었다.
 큰 차이는 없었지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되새길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평온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공포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여전히 심장은 싸늘했고 여전히 괴물들은 두려웠다.
 심장을 뜨겁게 달굴 무언가가 필요했다.
 “으아아아아!”
 민준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공포심이 민준의 발목을 붙잡으려 들었지만 더 크게 고함을 지르며 가속했다.
 그런 민준의 행동을 지켜보는 용사들이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민준의 행동은 마치 두려움에 못 이겨 자포자기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준의 머릿속은 비교적 침착했다.
 민준은 부르들이 돌진하는 그 순간 그들의 전투 방법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달려드는 추진력을 이용해 적과 부딪힌 후 비틀거리는 적에게 돌도끼를 찍어 내리는 것이다.
 민준이 가비를 걷어차고 바닥을 뒹구는 사이 목숨을 끊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먼저 그 돌진력을 이겨낼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민준은 놈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돌진력을 돌진으로 파쇄하기 위해서.
 다행히도 민준에겐 허술하나마 나무 방패가 있었다.
 왼 팔뚝에 고정된 나무 방패를 어깨로 받치듯 위치하고 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들이받았다.
 부르는 머리 위로 솟은 뿔로 나무 방패를 들이받았지만 나무 방패가 뚫리거나 민준이 뒤로 밀려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밀려난 것은 부르였다.
 체중의 차이였다.
 속도가 비슷하다면 서로 부딪혔을 때 밀려나는 것은 더 가벼운 쪽!
 민준은 비틀거리는 부르에게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뀌이이이익!
 왼팔이 잘린 부르가 비명을 질렀다.
 무쇠칼로는 가비의 사지를 절단할 정도의 힘을 낼 수가 없었다.
 강철 한손검도 무쇠칼도 날카롭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무쇠칼은 무게도 길이도 부족해 강한 힘을 내기에는 부적합했다. 아마 무쇠라는 재료 자체가 쉽게 부러지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칼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강철 한손검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부르의 팔을 절단했다.
 부르의 비명은 결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지만 민준은 그것을 듣는 순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공포를 이겨내고 얻어낸 결과였다.
 지금 힘의 역학 관계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 것은 민준이었다.
 부르가 돌도끼를 휘둘렀지만 민준은 나무 방패로 가볍게 돌도끼를 막아냈다. 동시에 돌도끼가 나무 방패를 두들기는 순간 민준은 바로 강철검을 휘둘렀다.
 강철검이 부르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민준은 확신했다.
 경동맥을 잘랐다!
 민준이 살짝 뒷걸음질을 치자 부르의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부르는 살기위해 돌도끼도 내팽개치고 하나 남은 손으로 목을 붙잡아 지혈하려 들었지만 피는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경험치를 2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2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발생!>
 
 Quest. 업적을 독점하라!
 당신은 이미 3가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업적은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업적을 찾아내 달성하십시오!
 달성 조건 - 누구보다도 많은 부르를 사냥.
 보상 - E등급 장비(랜덤), [칭호]부르 사냥꾼, 100EXP, 100BC
 
 #2
 ‘퀘스트? 미션이랑은 다른 건가?’
 민준은 의문을 떠올렸지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빠르게 반투명한 퀘스트 내용을 훑어본 뒤 시스템 창을 꺼버렸다.
 뒤이어 달려든 부르의 박치기를 나무 방패로 막으면서 강철검을 휘둘렀다.
 나무 방패가 빠직하고 불길한 소리를 냈다.
 이미 한 번 장비가 파괴된 경험이 있는 민준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다행히도 나무 방패는 부서지지 않았다.
 부르가 돌도끼를 휘둘러왔다.
 민준은 방패로 막기보다 강철검을 휘둘러 무기를 맞부딪혔다.
 부르가 돌도끼를 놓치고 당황하는 사이 강철검으로 부르의 목을 베어버렸다.
 <경험치를 2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2 획득하셨습니다.>
 민준의 시선이 나무 방패에 닿았다. 그러자 마치 민준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허술한 나무 방패>
 등급-하찮은 F
 설명-엉성한 기술로 만들어진 나무 방패. 쉽게 손상된다.
 효과-공격을 방어한다. [타격]속성 공격에 약함. [불]속성 공격에 쉽게 손상됨.
 내구도-(45/50)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나무 방패의 내구도는 분명 가득 차있었다.
 그것이 벌써 10%나 줄어있었다.
 아마 부르의 돌도끼가 절단보다는 타격 속성의 공격인 것이 원인인 듯싶었다.
 어쩌면 이번 전투가 끝날 즈음이면 나무 방패는 파괴되어 있을 지도 몰랐다.
 조바심이 들었다.
 가비들과의 전투에서 그랬듯, 민준이 부르와의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놈들의 돌진 공격과 도끼 공격을 방어할 장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 방패가 없어지면 당장 다음 미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임과는 달리 현실에서 장비는 언젠가 망가진다.
 민준은 더욱 장비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장비를 소지한 것이 바로 민준이었지만 장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민준의 생각이 업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퀘스트로 이어졌다.
 민준이 생각하기에 미션과 퀘스트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실패 조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션은 실패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퀘스트는 딱히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민준은 퀘스트를 달성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퀘스트를 무시하기에는 그것이 주는 보상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가장 많은 부르를 사냥하라고?’
 민준은 한 마리 부르를 더 쓰러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에서 이능이 작렬하고 있었다.
 폭발까진 아니어도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솟구치며 부르를 불태우고 있었고 간혹 뿜어져 나온 전격이 부르를 감전시키는 것도 보였다.
 어느 곳에선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하면 어떤 용사는 엄청난 괴력으로 부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능의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강력했다.
 솔직히 저런 힘을 사용하는 경쟁자들보다 많은 부르를 사냥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할 생각도 없었다.
 민준은 다시 다음 부르를 찾아 움직였다.
 부르가 위험한 것은 단 한 순간이었다.
 처음 돌진해오던 바로 그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난전 속에서 부르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르의 가장 큰 장점은 역관절의 하반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돌적인 돌진 공격이었다. 동굴은 넓었지만 계속해서 돌진을 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한 번 난전에 빠지자 부르의 숫자는 빠르게 줄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한 번 가비와의 전투로 난전을 교육한 용사들은 더 익숙하게 부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르가 쓰러지며 남기는 돌도끼는 아직 무기가 없는 용사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미션에서 살아남은 용사들은 빠짐없이 장비를 획득했지만 모두가 무기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돌덩이를 무기로 사용하던 용사들이 돌을 내팽개치고 돌도끼를 들었다.
 사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민준은 마음이 급해졌다.
 
 #3
 용사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부르의 숫자가 너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벌써 주변의 부르는 모두 사냥되어서 사냥감을 찾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이래서는 이능을 사용하는 경쟁자에게 업적 보상을 빼앗길 것 같았다.
 그 때 민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르의 무리였다.
 협소한 공간 탓에 아직 한데 뭉쳐서 용사와 싸우지 못하는 부르들이 있었다.
 그곳은 용사들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왜? 위험하니까.
 부르들이 갇혀 있는 장소는 호리병 모양의 골짜기였다.
 가파른 벼랑으로 둘러싸여있어서 호리병의 입구 방향으로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입구가 좁았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입구를 뚫고 들어가거나 벼랑에서 뛰어내려 호리병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골짜기의 입구에는 이미 미친놈처럼 화염을 몸에 두른 경쟁자가 자리를 차지한 후였고 방법은 호리병 골짜기로 뛰어드는 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특별한 이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곳으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로 보였다.
 일단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갇힌 부르를 모두 처치하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 없어보였으니까.
 아니, 혹시라도 비행이나 이동관련 이능이라도 있다면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민준에게 그런 이능은 없었다.
 하지만 공격 특화 이능이 없는 민준이 업적 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민준은 숨을 죽였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심장이 마구 날뛰어 혹시 부르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발소리를 죽여 벼랑 끝으로 다가가 몰래 부르를 훔쳐보았다.
 부르들은 모두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입구를 틀어막고 부르를 독점하고 있는 화염 능력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용사가 워낙 화려하게 날뛰고 있었기 때문에 기척만 잘 숨긴다면 몰래 접근하는 것도 가능해보였다.
 민준은 몇 번이나 망설였다.
 한 번은 발을 잘못 디뎌 벼랑으로 돌멩이를 굴린 탓에 부르 한 놈이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민준이 재빨리 바닥에 엎드린 덕분에 놈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민준의 전신은 그 잠깐 사이에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끝내 민준은 마음을 다잡고 벼랑으로 뛰어내렸다.
 타닥.
 가죽부츠, 나무 방패, 강철검은 조금이라도 기척을 숨기기 위해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둔 상태였다.
 발이 바닥과 닿음과 동시에 무릎 관절을 굽히며 최대한 기척을 숨겼지만 작은 소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지만 민준의 존재에 눈치 챈 부르는 하나도 없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댔다.
 인벤토리의 기능을 사용해 조용히 장비를 다시 챙겨 입은 민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일격으로 죽일 수 있도록 힘을 싣되 기합은 지르지 않았다.
 뀌이이이익!
 목덜미에 검이 박힌 부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놈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민준은 두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놈의 지근거리에 서 있던 또 다른 부르를 향해 강철검을 떨친 것이다.
 꼬르륵.
 두 번째 부르는 경동맥과 기관을 함께 베여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놈은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애를 썼지만 기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경동맥에서 뿜어져 나온 피거품뿐이었다.
 민준은 세 번째 부르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이미 첫 번째 부르가 내지른 비명으로 경계를 하고 있었던 세 번째 부르는 민준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고 돌도끼를 휘둘러왔다.
 민준은 서둘러 강철검을 회수하고 나무 방패로 돌도끼를 막았다.
 그때 네 번째 부르가 민준의 우측에서 등장했다.
 나무 방패는 세 번째 부르의 공격을 막느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준은 급하게 강철검을 휘둘러 네 번째 부르를 견제했다.
 그러는 사이 다섯 번째 부르가 등장했다. 그 이상은 공간이 협소해 다가오지 못했지만 3마리 부르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민준은 역량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민준은 어느 정도의 부상을 감수하고 오히려 부르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자세를 낮추고 나무 방패로 머리를 보호하며 옆구리에 붙이듯 빼들은 강철검을 깊게 찔러 넣었다.
 
 #4
 민준의 검이 세 번째 부르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민준이 알고 있는 급소라고는 오로지 심장이나 머리뿐이었다. 부르가 저돌적인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만약 놈이 피하려고 들었다면 검이 심장을 비켜 찔러 살아남은 부르가 민준을 공격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장에 검이 박힌 부르는 그것으로 즉사했다.
 민준이 놈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자 놈의 심장에서 강철검이 뽑혀 나왔다.
 가슴과 등에서 피가 흠뻑 쏟아져 나왔다.
 <경험치를 2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2 획득하셨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르가 민준을 공격해왔다.
 민준은 네 번째 부르의 공격을 나무 방패로 막고 다섯 번째 부르의 공격을 강철검으로 막았다.
 “허억! 허억!”
 민준의 체력이 급격히 고갈되었다.
 부르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공간이 협소해서 한 번에 상대하는 부르가 세 마리 뿐이었기에 망정이었다.
 그래도 한 마리를 순차적으로 상대하는 것과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쉴 틈이 없었다. 한 놈을 처치할 때 다른 두 놈은 민준을 공격했다. 저절로 민준의 호흡은 쉽게 흩어졌고 손은 쉴 수가 없었다.
 어깨 근육이 끊어질 듯 아파왔지만 민준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다섯 번째 부르의 도끼를 날려버리고 가슴을 베었다.
 상처는 얕았지만 아주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민준은 곧바로 나무 방패를 휘두르듯 네 번째 부르의 공격을 튕겨내고 강철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버렸다.
 곧이어 여섯 번째 부르가 등장했다.
 이 순간 민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레벨 업!’
 민준은 10마리 가비를 사냥해 레벨업을 한 뒤로도 제법 많은 수의 가비를 사냥했다.
 아마 모두 합쳐 서른 마리쯤은 사냥한 것 같았다.
 추측하자면 민준의 경험치는 첫 번째 미션을 완료한 시점에서 이미 2레벨 20정도가 쌓여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경험치를 2씩 떨어트리는 부르를 사냥하면 금방 레벨이 오르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오산이었다.
 도대체 레벨 업 요구 경험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민준은 아직 레벨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병 골짜기에 남은 부르의 숫자는 이제 10마리정도.
 ‘모두 사냥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가늠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사냥할 수밖에 없다.’
 못한다면 죽을 뿐이니까.
 그리고 민준의 강철검이 다섯 번째 부르의 머리를 빠개는 순간이었다.
 전신에 쾌감이 가득 차올랐다.
 <경험치를 2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2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핫!”
 민준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신을 잠식해 들어가던 절망감은 사라지고 평생 느껴본 적도 없는 거대한 자신감만이 솟구쳐 올랐다.
 민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여섯 번째 부르는 돌도끼를 휘둘러왔다.
 민준은 나무 방패고 돌도끼를 가볍게 막아내고 강철검을 휘둘러 단칼에 여섯 번째 부르의 머리를 동체에서 떨어트려 놓았다.
 연이어 일곱 번째 부르가 뛰어들었지만 민준은 가볍게 피해내며 놈의 옆구리를 깊게 베어주었다.
 민준을 지나쳐 달려가던 일곱 번째 부르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내장이 상처 사이로 삐져나왔다. 민준은 상처를 붙잡는 놈의 등 뒤에서 심장에 검을 꽂아주었다.
 상황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호리병 골짜기에 남은 부르의 숫자는 일곱.
 그중에서 다섯 마리가 화염 이능 용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민준을 신경 쓰기에는 그의 이능이 너무나도 위협적인 탓이었다.
 이제 공포에 질린 것은 오히려 부르들이었다.
 부르의 피로 물든 민준은 여덟 번째 부르에게 달려들었다.
 여덟 번째 부르는 어설프게 뒷걸음질을 치며 민준을 상대하려 들었지만 놈들이 겁을 집어먹은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판가름이 난 상태였다.
 부르들이 민준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역관절의 하반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력과 저돌성뿐이었다.
 그 최대의 이점을 잃은 상태에서 놈들은 이미 민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덟 번째 부르의 돌도끼를 후려쳐 걷어내고 놈의 품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목을 베었다.
 아홉 번째 부르가 그 사이를 노려 민준을 공격해 왔지만 그 공격을 그냥 맞아주기에는 민준의 반응속도가 너무 뛰어났다.
 간단히 나무 방패로 공격을 막아낸 민준은 강철검을 휘둘러 아홉 번째 부르의 목을 잘라버렸다.
 
 #5
 남은 부르를 처치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부르들은 화염 이능 용사에게 겁에 질려 호리병 골짜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자연히 놈들을 처치하는 것은 민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션 완료!>
 <E등급 장비(랜덤)을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괴력의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완료!>
 <가장 많은 부르를 사냥! E등급 장비(랜덤)과 칭호를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그림자 망토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부르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경험치를 100 획득하셨습니다.>
 <배틀코인을 100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워낙 많은 시스템 창이 동시에 떠올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살아남은 것도 살아남은 것이지만 결국 업적 보상까지 획득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사실 민준은 조금 얼떨떨했다.
 전투 특화 이능도 없이 가장 많은 부르를 사냥했다니.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은 머지않아 해결할 수 있었다.
 호리병 골짜기를 빠져나오면서 확인한 화염 이능 용사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벽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능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마력이라든가 체력 따위를 소모하는 것이겠지.
 어쩐지 부르를 혼자서 사냥할 때 끼어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곤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힘을 전부 소모해 전투에 끼어들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천사가 나타났다.
 생존자가 72명이니, 정말 대단하다느니 하는 소리를 떠들어댔지만 민준은 천사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민준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특히 그것이 무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부르의 돌도끼는 정말 조잡했지만 민준의 강철검이 언제까지 멀쩡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션에서 언제 다시 무기가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민준은 최악의 사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미션에서 더 이상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장비는 모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모으는 것이 좋았다.
 민준의 인벤토리는 모두 16칸이었다.
 그중 3칸이 장비로 차 있었다.
 부러진 무쇠칼, 괴력의 반지, 그림자 망토가 그것이었다.
 민준은 괴력의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그림자 망토를 어깨에 둘렀다.
 부러진 무쇠칼은 버릴까 잠시 망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버리지 않았다. 망가진 장비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쓸모가 있었다.
 민준은 15칸의 인벤토리를 모두 돌도끼로 채운 후에야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민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력이 좋아졌어?’
 아직도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명백하게 예전보다 좋아져 있었다.
 민준은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답을 찾았다.
 <체력 : 기본 스테이터스. 육체를 지닌 모든 생물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치. 활동량의 정도 및 육체 전반의 능력을 나타낸다.>
 민준은 여기서 육체 전반의 능력이라는 문구에 집중했다.
 원래 민준이 생각했던 체력은 단순히 활동량, 즉 지구력을 나타내는 수치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체력은 육체 전반의 능력. 즉, 신장, 체중, 뼈의 강도, 가죽의 질김, 심지어 시력까지도 연관이 있는 능력치였던 것이다.
 즉 레벨업을 통해 체력이 올라간 민준의 뼈는 보다 단단해지고, 가죽은 질겨지고, 살아오면서 잃었던 시력까지도 회복된다는 의미였다.
 혹시 후각이나 청각, 미각이나 촉각까지도 연관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육체 능력을 더 올리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민준은 스스로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장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정도의 페널티였다.
 하지만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민준은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시력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레벨 업.
 민준이 남들보다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추가된 셈이었다.
 
 #6
 민준은 스텟 창을 확인해 보았다.
 
 <최민준 Lv.4>
 칭호-수습용사, 부르 사냥꾼
 종족-인간
 직업-무직
 
 근력-10 민첩-10 체력-8 반응속도-17
 컨디션 게이지-85%
 
 레벨은 2개가 올랐고 근력과 체력이 2씩, 민첩이 3개 올랐다.
 민첩의 경우는 칭호 부르 사냥꾼의 효과로 하나 올라간 것을 제하면 반응속도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레벨 하나 당 1씩 상승한 셈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반응속도의 능력치는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준은 다음으로 새롭게 얻은 장비들을 확인했다.
 이번에 얻은 장비는 E등급 장비가 두 개였다.
 
 <괴력의 반지>
 등급-마법의 E
 설명-최하급 마법 금속으로 만들어진 반지. 최하급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
 효과-마력을 소모해 최하급 전투보조 마법 [마이너 스트렝스] 사용 가능. 쿨타임 1시간. 쿨타임 동안 마법 사용 시 내구도 1소모.
 내구도-(20/20)
 
 <그림자 망토>
 등급-귀중한 E
 설명-희귀 재료 암살거미의 거미줄로 제작한 검은 망토. 쉽게 찢어진다.
 효과-뛰어난 [보온]효과. [타격]속성 공격에 강함. [불]속성 공격에 쉽게 손상됨. 어둠이 짙을수록 뛰어난 [은밀]효과.
 내구도-(12/12)
 
 민준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효과가 생각보다 좋았다.
 주변에서 투덜거리는 이야기를 듣기로는 F등급의 장신구에는 아무런 효과도 달려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매력 스텟이 몇 상승 따위의 전투에 아무 쓸모없는 효과만 가끔 달려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민준도 처음 반지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실망감이 컸는데 알고 보니 민준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템이었다.
 마법, 마법이란다.
 마법을 사용하게 해주는 장비라니.
 아직 마법의 효과까지는 몰랐지만 일단 전투보조 마법이라는 문구만 보아도 가슴이 뛰었다.
 최하급이라는 문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민준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마이너 스트렝스라는 문구를 터치해보았다.
 
 <마이너 스트렝스 Lv.1>
 등급-평범한 F
 설명-최하급 전투보조 마법의 일종.
 효과-마력을 1 소모하고 5분간 근력을 2 상승시킨다.
 숙련도-(없음)
 
 근력 스텟을 2 상승시키는 마법.
 그것은 적어도 지금의 민준에겐 굉장히 큰 수치였다.
 현재 민준의 근력 스텟은 10. 마이너 스트렝스는 5분이나마 민준이 120%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란 의미였다.
 1시간에 5분이라는 제한이 있기는 했으나 민준은 순순히 기뻐했다.
 문제는 이 마력을 소모한다는 문구였다.
 민준에게 마력이라는 능력치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마이너 스트렝스는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민준은 잠시 고민한 끝에 미리 한 번 마이너 스트렝스를 사용해 보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다음 미션이 주어져 쿨타임이 걱정되긴 했지만 급하면 반지의 내구도를 소모하고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준은 괴력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사용방법을 찾다가 중얼거렸다.
 “마이너 스트렝스.”
 <마이너 스트렝스를 사용했으나 마력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만큼의 마력을 생명력으로 충당합니다.>
 민준은 귓가를 울리는 알림과 동시에 전신에서 활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잠깐 지끈거리더니 가벼운 몸살에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발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5분의 지속효과가 끝나고 연이어 사용해도 생명력을 소모하는 탓에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동시에 민준은 전투 특화 이능을 가진 용사들의 문제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의 이능도 마력을 소모하는 능력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마력이 없는 그들은 이능의 사용조건으로 생명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민준은 소모하는 것이 체력이나 지구력이 아니라 생명력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스텟 창에 생명력이라는 스텟은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얼마나 되는 생명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민준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 4장. 그룹 미션
 
 #1
 세 번째 미션은 그룹 미션이라는 모양이었다.
 민준은 돌도끼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천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단지 민준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보다 좋은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룹 미션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힘들지만 그만큼 보상도 좋은 크로비 미션.
 두 번째는 난이도도 보상도 평범한 바트 미션.
 세 번째는 난이도는 쉽지만 그만큼 보상도 짠 셴 미션.
 미션의 이름이 곧 몬스터의 이름인 모양이었는데 당연히 이름만 들어선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아무도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미션이 바로 셴 미션이라는 사실이었다.
 난이도가 낮으면 뭐하는가.
 싸울 사람이 없는데.
 현재 생존한 용사의 수는 72명이고, 그중 중상을 입은 사람이 다섯, 아직 한 마리의 몬스터도 사냥하지 못한 사람이 스물 이상이었다.
 그리고 세 가지 미션은 각각 24명씩 나뉘어 그룹을 이루는데 2명의 용사가 리더를 자처해서 크로비 미션과 바트 미션의 참가자를 걸러내고 있었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크로비 미션의 리더는 화염 이능을 남발하던 용사였다.
 그는 크로비 미션의 참가 자격을 이능의 위력으로 제한했다.
 가장 위험한 미션이니만큼 가장 강한 용사들이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바트 미션의 리더는 근력 상승 이능을 지닌 근육질의 남성이었다.
 부르를 사냥하던 도중에 민준도 그의 싸움을 보았지만 그의 능력은 민준의 마이너 스트렝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얼마나 강한가 하면 부르의 사지를 맨손으로 찢어낼 정도의 힘이었으니까.
 그는 일단 이능을 각성했다면 그것이 전투 특화 이능이 아니라도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다. 하지만 여자나 아직 어린 용사의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룹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싸울 힘이 부족한 여자와 아이들은 가장 생존율이 높은 셴 미션에 참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지만 민준이 보기에 그는 크로비 미션의 리더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나중을 위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하려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민준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괴력 용사는 진심으로 셴 미션이 안전할 거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셴 미션에 남은 것은 아직 한 번도 몬스터를 사냥하지 못한 여자나 어린, 아직 이능을 각성하지 못한 약한 용사들뿐이었다.
 아무리 셴 미션이 가장 쉬운 미션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생존율이 그리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셴 미션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민준은 무리를 짓는 것이 불편했다.
 무리에 참가하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힘들었고 스스로를 어필하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민준은 7년간이나 방구석 폐인으로 생활했다.
 그는 대화능력이 부족했고, 대인기피증과 인간불신을 앓고 있었다.
 어차피 민준은 전투 특화 이능이 없으니 크로비 미션에는 참가할 수 없었고 바트 미션에 참가하기 위해 불편할 꼴을 당할 바에야 셴 미션에 남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물론 민준이 셴 미션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천사가 미션을 공개하는 순간 민준은 퀘스트를 받았다.
 
 Quest. 마수를 학살하라!
 당신은 두 번째 미션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의 능력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더 많은 마수를 사냥하고 더 높은 레벨을 달성하십시오.
 달성 조건 - 세 번째 미션에서 가장 많은 개체를 사냥.
 보상 - C등급 장비(랜덤), [칭호]학살자, 100EXP, 100BC
 
 처음 민준은 이 퀘스트라는 것이 미션과 마찬가지로 모든 용사들에게 공지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민준은 오래 걸리지 않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2
 민준이 두 번째 퀘스트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 셴 미션에 참가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개체를 사냥하기 위해선 당연히 더 낮은 난이도에 참가하는 것이 좋았으니까.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사람이 분명 더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만약 전투 특화 이능을 가진 용사가 셴 미션으로 몰리면 경쟁이 치열해질 테니까 틈새공략으로 바트 미션에 참가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진행되는 양상은 민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용사들은 마치 퀘스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더 높은 난이도의 미션에 참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민준은 그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 퀘스트는 민준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그때 민준이 생각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이능인 게이머였다.
 세상을 게임화 한다는 이상한 능력.
 솔직히 무슨 능력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쯤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능인 이상 분명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끝에 그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이 퀘스트라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업적의 조건을 알려주는 퀘스트.
 민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업적의 조건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었다.
 게다가 민준은 게이머의 능력이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게이머의 능력이 그것으로 전부였다면 세상을 게임화 한다느니 하는 거창한 표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준은 게이머의 또 다른 능력을 찾기 위해 동굴 구석에 앉아 홀로 사색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마수를 사냥하면 경험치와 함께 주어지는 배틀코인이라는 것.
 그것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란 말인가?
 코인이라는 이름을 보자면 화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 같았다.
 민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 하단을 확인해보니 작게 169BC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아마 이것이 배틀코인의 수량이겠지.
 민준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용 방법은 당연히 상점이었다.
 인벤토리를 가득 채운 돌도끼를 보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쓸모없는 장비를 팔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이 있다면 굉장히 유용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욕망을 감지했습니다. 게이머 스킬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게이머의 스킬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자유 상점이 오픈되었습니다!>
 ‘뭐?’
 뭐 하나 흘려들을 말이 없었다.
 욕망을 감지? 스킬 숙련도가 상승해?
 깨달음으로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상상만 했던 자유 상점이 오픈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민준은 그제야 하나 둘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첫째로 그리드 스킬, 이것은 인간의 욕망을 구체적인 능력으로 체현하는 힘이었다.
 민준은 이 능력을 각성할 때 게임을 떠올리고 있었다. 게임이 하고 싶었고 레벨이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세상을 게임으로 화하는 능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아마 화염 이능이나 괴력 이능도 민준과 비슷할 것이다.
 마수와 싸우다보니 더 강한 힘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힘의 형태가 바로 화염과 완력의 형태였을 것이다.
 거기까지 이해하니 자유 상점이 오픈된 이유도 명백했다.
 민준의 이능 게이머는 세상을 게임화 하는 능력이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나 게임에서 가능한 일을 체현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민준은 게임 속 콘텐츠 중 하나인 상점 기능을 떠올렸다.
 탐욕적으로 그것을 갈망했다.
 그로 인해 게이머의 스킬 레벨이 오르고 자유 상점이라는 기능을 실제로 체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드 스킬은 욕망의 힘이다.
 더 갈구하고 욕심을 부릴수록 성장하는 힘이었다.
 더 강해지길 바라는 사람은 더욱 강해지고, 더 욕심내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힘.
 민준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3
 민준은 새롭게 오픈된 자유 상점을 열어보았다.
 <키워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민준은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며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의 민준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였다.
 “무기.”
 민준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저 하얗기만 하던 창에 수많은 무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검 하나만 해도 종류별로 수십 가지는 존재했고 도끼, 창, 철퇴, 활, 쇠뇌 및 모든 종류의 무기를 종합하면 수 천 가지가 넘어갔다.
 거기에 떠오른 물건들의 공통점은 모든 것이 무기이며 또한 169BC로 구입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키워드를 입력하더라도 자신이 소유한 배틀코인 이상의 물건을 먼저 검색해 보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민준은 키워드에 검을 추가했다.
 그러자 검을 제외한 다른 무기들이 목록에서 사라졌고 가격 순으로 정렬해 가장 싼 검부터 차례로 살펴보았다.
 적어도 쉽게 부러지지 않으며 민준의 기준에서 쓸 만하면서 가장 싼 검을 찾아보았던 것이다.
 그 끝에 찾은 것이 50BC짜리 낡은 철검이었다.
 낡았다곤 하지만 내구도가 (72/100)이나 되는 아이템이었다.
 민준은 낡은 철검이라는 아이템 이름을 기억해둔 뒤 키워드를 리셋하고 이것저것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민준이 처음 무기라고 검색한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워드를 검색하자 떠오른 아이템은 단 하나였다.
 
 <오래된 K-2 자동소총>
 등급-희귀한 E
 설명-지구의 군인 용사가 들고 온 개인화기. 장거리 무기. 총알이 없으면 사용 불가.
 효과-[사격]속성 공격. [연사], [점사], [단발]공격 가능.
 내구도-(80/128)
 가격-154BC
 수량-1
 
 ‘있다!’
 비싸고 수량이 단 하나뿐이긴 했지만 있었다.
 민준은 처음 무기를 키워드에 입력하면서 생각했다.
 말은 자유 상점이라지만 도대체 얼마나 자유로울까.
 돈, 즉 배틀코인이 없으면 검색도 되지 않지만 반대로 돈만 있다면 핵무기라도 구입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 궁금증은 오래된 K-2 자동소총의 설명 문구를 읽으며 해결되었다.
 자유 상점은 이 세계에 있는 물건밖에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 K-2 자동소총은 민준보다 먼저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군인이 들고 온 무기이고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남이 소지하고 있는 물건이 자유 상점의 품목으로 등록되어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민준은 뒤이어 총알을 검색해 보았지만 상점에 떠오르는 품목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키워드를 리셋 했다.
 어차피 총을 사고 싶단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았다.
 총알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이 총이고, 또 그것을 소지하고 있던 군인도 결국엔 죽은 모양이니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위력이 한정되어 있는 총보다는 검을 단련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은 발휘할 수 있는 위력에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분명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가 분명 올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총이 있으면 민준의 생존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죽은 군인과는 달리 민준에겐 자유 상점이라는 총알을 수급할 방법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 자유 상점에서도 총알을 구입할 수 없다면 이야기는 끝난 것이었다.
 민준은 마음을 바로잡았다.
 민준이 다음으로 알아본 것은 돌도끼의 판매가격이었다.
 솔직히 자유 상점의 존재로 인해 이미 돌도끼는 무기로써의 가치를 잃었다.
 돌도끼를 무기로 사용할 바에야 50BC를 지불하고 낡은 철검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나았으니까.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터치하자 선택지가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3. 되팔기.>
 그것을 선택하자 재확인 창이 떠올랐다.
 <부르의 돌도끼의 판매 가격은 7BC입니다. 정말 판매하시겠습니까?>
 민준이 자유 상점에서 확인했던 돌도끼의 구입가격은 21BC였다.
 아마 판매할 때는 원래 가격의 3분의1까지 줄어드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민준에게 돌도끼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민준은 단호하게 확인버튼을 터치했다.
 15개의 돌도끼를 판매하니 소지금이 169BC에서 274BC까지 증가했다.
 민준은 애초부터 낡은 철검을 구입할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먼저 가장 궁금했던 아이템을 먼저 검색해보기로 했다.
 “키워드 포션.”
 
 <최하급 생명력 포션>
 등급-마법의 E
 설명-생명의 마나가 깃든 물약. 품질이 낮다.
 효과-1초당 생명력 0.2씩 10초간 회복.
 용량-(20/20)
 가격-250BC
 수량-10
 
 <『욕망의 제왕』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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