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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군주 1권 (1)

2016.11.18 조회 13,646 추천 102


 차원군주 1권 목차
 
 프롤로그
 Chapter 1 침대 밑 시신을 만나다
 Chapter 2 흑마법 각성
 Chapter 3 징벌의 결계
 Chapter 4 전쟁이 시작되다
 Chapter 5 새로운 시작
 Chapter 6 돈 버는 능력
 Chapter 7 병영을 건설하라
 Chapter 8 뭐든 다 점령한다
 Chapter 9 전투 결계
 Chapter 10 마룡의 반지
 Chapter 11 이기는 자가 모든 걸 가진다
 Chapter 12 군주가 원하는 방식
 
 
 
 프롤로그
 
 
 어느 날 내게 엄청난 능력이 생겼다.
 한 평짜리 고시원.
 그 고시원의 부서진 침대 밑에서 발견한 이상한 시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 이 소설의 내용은 작가의 상상이 반영된 허구이며,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인명, 상품, 기관,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Chaper 1 침대 밑 시신을 만나다
 
 
 그 날도 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곯아떨어졌을까?
 
 휘이이잉ㅡ
 
 난데없이 찬바람이 몰아쳤다.
 창문도 아니고 침대 아래쪽이다.
 
 “왜 밑에서 찬바람이?”
 
 설마 방 밑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은 아닐 테고.
 이상한 기분에 나는 매트리스를 들어 아래를 살폈는데.
 
 “헉!”
 
 바짝 말라붙어버린 시신 한 구!
 잘못 봤나 싶었지만 틀림없었다.
 
 “뭘 그리 놀라느냐? 시체 처음 보냐?”
 
 시신의 퀭한 두 눈이 음산하게 번쩍였다.
 이럴 수가! 시신이 말을 하다니?!
 꿈이다 이건!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잘 들어라. 네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환몽의 힘이 아득한 차원을 넘어 네놈을 선택했다.”
 “그보다 당신은 누구······?”
 
 시신인가? 아니면 귀신인가?
 그러나 시신은 내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물론 너는 그 힘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면 환몽의 힘은 다른 인연 있는 자를 향해 떠날 것이다. 거부하겠느냐?”
 
 순간 나는 혼란에 빠졌다.
 일단 끔찍한 시신이 말을 하는 이 기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시신이 주겠다는 환몽의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대답해라. 더 이상 말이 없으면 거부한 걸로 알겠다.”
 
 시신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기세였다.
 사실 그냥 사라지게 두는 게 바람직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 환몽의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환몽의 힘이 뭔데요?”
 
 그러자 시신이 보일 듯 말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흑마법의 정화라고 할 수 있지.”
 “흐, 흑마법?”
 
 판타지 소설을 제법 읽어봤던 내가 흑마법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악마나 마왕과 같은 사악한 존재와 계약을 맺어야 발휘할 수 있다는 어둠의 마법!
 그것이 바로 흑마법이다.
 따라서 그런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종국에는 마왕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비운의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결코 그 따위 불행한 운명을 맞고 싶지 않았다.
 
 ‘절대 받아들이면 안 돼!’
 
 아무리 꿈이라지만, 나는 절대 시신의 제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신은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큭! 뭔가 오해하고 있군. 환몽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마왕과는 아무 상관없는 독립된 힘이지. 너는 그저 선택만 하면 된다.”
 “선택?”
 “그렇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야.”
 “대가라면?”
 “이제 그게 뭔지 알려주마.”
 
 시신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쩍이는 순간 허공에 이상한 주사위 하나가 나타났다.
 각 면이 오각형으로 된 정십이면체 주사위!
 오각형들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던져라. 주사위를 던지면 너와 인연이 있는 힘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 건가?
 나는 주사위를 잡은 후 바닥에 던졌다.
 
 톡! 토르르······!
 
 주사위가 구르다 멈춰 섰다.
 그런데 주사위는 이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고 대신 그곳에 커다란 동전 하나가 나타났다.
 웬 동전인가?
 동전을 들어 살펴보니 앞면에 ‘경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시신이 입가를 비틀며 키득 웃었다.
 
 “경영이라! 네놈 역시 돈이 꽤나 절실했나보군. 하긴 이런 궁상맞고 비좁은 방에서 지내는 걸 보니 알만하긴 하지만 말이야.”
 “이게 뭘 의미하는 데요?”
 “보는 그대로다.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돈 말이야! 즉, 너의 마음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
 
 나는 시신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솔직히 돈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구나 나처럼 인생의 밑바닥에 처박혀 있는 상황이라면.
 
 “다시 말해 그 능력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네가 간절히 염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그 능력을 통해 너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
 
 엄청난 부자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었다.
 
 “이제 너의 선택만 남았다. 네가 거부한다면 지금 있었던 일은 너의 기억 속에서 지워질 것이며 환몽의 힘은 두 번 다시 너를 찾지 않을 것이다.”
 
 꿀꺽!
 
 나는 고민했다.
 분명 지금 상황은 꿈일 것이다.
 시신이 하는 말을 현실로 받아 들일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이상하게 끌렸다.
 이 세상에 돈만 많다면 못할 것이 무엇인가?
 설령 악마의 유혹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신을 노려보며 문득 물었다.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것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시신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대가로 너는 앞으로 주어지는 100개의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100개의 미션이라고요?”
 “그래. 그것들을 모두 완수하면 너는 자유다. 물론 그 후에도 네게 주어진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어떤 미션들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미션들의 종류는 물론 그 최후 목적조차도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지.”
 “최후의 목적?”
 “그건 아마도 환몽의 힘이 너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이유가 있었습니까?”
 “물론이다. 그걸 알고 싶다면 미션들을 수행해라. 모든 건 미션이 알려줄 테니까.”
 
 시신의 대답이 나의 뇌리를 울렸다.
 모든 건 미션이 알려준다!
 
 “이제 결정해라. 널 찾아온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겠느냐? 아니면 거부하겠느냐?”
 
 결정은 이미 했다.
 아마 이 상황이 설령 꿈이 아닌 현실일지라도 나의 선택은 동일할 것이다.
 
 “새 운명을 받아들이죠.”
 “잘 생각했다.”
 
 그 순간 동전의 비어있던 면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섬뜩한 붉은 색의 글자들!
 시신이 기괴한 미소를 흘렸다.
 
 “크큭! 놀랄 것 없다. 경영은 곧 전쟁! 모든 건 결국 전쟁이다. 승리하면 모든 걸 얻지만 패배하면 모든 걸 잃게 되지. 특히 환몽의 세계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이다.”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시신의 말이 이어졌다.
 
 “경영이건, 전쟁이건! 무조건 이겨라! 네놈도 나처럼 시체가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환몽의 힘을 전해줘야 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 내 말을 절대 잊지 마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흩어졌다.
 부스스 가루로 변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가루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동시에 내 눈 앞에 나타난 글자들.
 
 미션 1
 ㅡ흑마력을 모아 환몽의 문을 열어라.
 ㅡ보상 : 육체의 재구성
 
 다름 아닌 첫 번째 미션이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그 상황이 그저 꿈이라 생각했다.
 
 
 
 Chapter 2 흑마법 각성
 
 
 “아아! 하아!”
 
 어느덧 침대 밑 시신을 만난 지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강준의 일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미 흑마법이니 환몽의 힘이니 하는 건 머릿속에서 떠난 지 오래였고, 그 무서웠던 시신과의 만남도 그저 꿈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고시원 침대 밑에 시신이 있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아! 아앙ㅡ!”
 
 그나저나 이게 대체 무슨 야릇한 소리일까?
 물론 옆방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다.
 고시원에 들어와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방이라고 나뉘어봤자 거의 칸막이 수준이다.
 그야말로 판잣집보다 방음이 안 되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고시원 방.
 그런데 바로 옆방에 있는 놈이 애인을 데려와 대낮부터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젠장! 정말 저 소리 좀 안 들을 수 없나. 망할 놈! 하려면 모텔에 가서 할 것이지. 빨리 좀 끝나버려라! 제발!’
 
 강준이 처음에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재빨리 방의 모든 소음을 줄이고 벽에 귀를 댄 후 옆방의 작은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 기를 썼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알고 보면 남들의 정사 소리를 엿듣는 것은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으니!
 갑자기 옆방이 조용해진 것이다.
 평소 그들의 행태를 봤을 때 아직 끝나려면 한참이 멀었는데.
 아니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했다. 그 놈은 다른 건 몰라도 정력 하나만은 타고났으니까.
 
 “앗, 뭐야? 자기 벌써 끝났어?”
 
 반쯤은 불만이, 나머지 반은 실망이 섞인 여자의 음성.
 
 “······으응. 갑자기 힘이 빠져 버렸어. 미안해.”
 
 옆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강준은 깜짝 놀랐다.
 더 이상 듣기 싫은 신음소리가 안 들려서 좋기야 하지만 분명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가만! 설마 이게 혹시 그 흑마법의 힘?’
 
 그러나 강준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저녁 때 일 나가려면 좀 더 자두자.’
 
 강준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그때 그의 머리맡에 뭔가가 나타나 반짝였다.
 
 [흑마력 3/100]
 
 안타깝게도 그는 눈을 감고 있다 보니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그 글자들을 보지 못했다.
 
 ‘젠장! 다시 잠들려 했는데 도대체 잠이 안 오는군.’
 
 눈을 감고만 있을 뿐 잠이 든 것은 아니다.
 기분이 싱숭생숭.
 이 모든 게 다 옆방의 애정행각 때문이리라.
 대낮부터 그 짓이라니!
 아무튼 어떻게든 잠은 자야 한다.
 밤에 일을 하려면 말이다.
 그러나 그 후로도 눈을 감고 계속 잠을 청했지만 온갖 잡생각만 들뿐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두 시간 정도를 뒤척였을까?
 
 “아앗! 하아!”
 “으읏ㅡ!”
 
 옆방에서 또 난리다.
 
 ‘아놔! 저것들이 또?’
 
 강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사이 힘을 회복한 건가?
 대단한 놈 같으니! 인정은 해주마!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감탄할 때가 아니다.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강준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제발 좀 그만하라고, 아니면 당장 모텔로 가든지 하라고 소리치려 했다.
 제발 좀 그만 해!
 그러나 강준이 미처 그렇게 외치기 전에 여자의 김빠진 듯한 음성이 울렸으니.
 
 “으응?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아, 미, 미안.”
 “뭐지? 자기 오늘 이상해. 요즘 바람피우는 거 아냐?”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몸이 좀 안 좋은가봐. 붕어 즙이라도 먹어야겠어.”
 “흥! 됐어! 붕어 즙은 무슨!”
 
 옆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강준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대체 이 무슨 희한한 일인가?
 조용해지니 살 것 같긴 한데 뭔가 이상했다.
 왜 옆방 녀석의 힘이 빠진 것일까?
 그것도 연거푸 두 번씩이나.
 그러던 강준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래!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한 번은 우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속 두 번이나 그런 우연이 겹칠 리는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
 
 [흑마력 6/100]
 
 ‘엉? 이게 뭐지?’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나타난 글자들.
 
 ‘흑마력?’
 
 그러나 글자들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강준의 표정이 다시 멍하게 변했다.
 
 ‘방금 전 그것들은 뭐였지?’
 
 무슨 게임에서나 보는 이상한 설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내가 헛것을 봤나?’
 
 아무래도 잠을 못자서 헛것이 보였나 싶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단어가 아닌가.
 흑마력!
 그렇다. 어젯밤 꿈에서 본 그 단어다.
 
 ‘설마 그럼?’
 
 강준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방금 전 벌어진 현상이 정말 흑마법의 능력으로 벌어진 것이라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얘기다.
 
 “그건 말도 안 돼. 쓸데없는 망상일 뿐이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망상이라 넘기기에는 기분이 묘했다.
 
 “휴!”
 
 그러던 강준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젠장! 뭐 좋아. 그 일이 사실이고 이게 흑마법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딴 걸 어디다 써먹냐고!’
 
 무슨 난봉꾼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대체 남의 정력을 흡수해서 어쩌란 건가.
 
 ‘아니야. 그래도 흑마법이라면 분명 또 다른 능력이 있겠지.’
 
 혹시 다른 초능력이라도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강준은 온갖 상상을 동원해 보았다.
 판타지 소설에서 봤던 마법의 주문어를 외워보기도 했고 짐짓 단전에서 마나의 기운을 느껴보려는 시도도 했다.
 
 ‘상태창!’
 
 심지어 강준은 상태창 소환도 시도해봤다. 게임 소설도 제법 봤으니까.
 
 ‘후후, 진짜로 내게 흑마법이 생긴 거라면 바보처럼 살 수는 없지.’
 
 그러나 그러기를 무려 두 시간.
 어느덧 저녁 8시가 훌쩍 넘어버렸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신경을 썼더니 배만 고프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출근할 시간이다.
 그럼 그렇지. 역시 착각이었나 보다.
 
 ‘라면이나 끓여먹자.’
 
 강준은 맥 빠진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다.
 
 
 * * *
 
 
 지하철 압구정역 4번 출구.
 각종 성형외과 병원 건물들이 화려하게 늘어서 있다.
 그 건물들 뒤쪽에 위치한 골목들을 따라 200미터 가량 걷다보면 24시간 편의점이 하나 보인다.
 그 편의점 건너편으로 대략 50여 미터 들어가면 보이는 낡은 건물.
 바로 대풍 빌딩이다.
 이 건물의 1층은 순대국집, 2층은 커피숍, 3층은 PC방, 그리고 지하는 단란주점이 있다.
 특히 ‘로마 단란주점’ 이라는 붉은색 대형 간판이 있는 바로 옆에는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자그만 간판이 하나가 붙어있는데.
 고시원 4F.
 4층에 고시원이 있다는 뜻이다.
 30여 개의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고시원이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압구정동!
 아니,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남구 신사동에 이토록 허름한 건물이 있다는 게 특이할 정도다.
 건물주가 돈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법적인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건가?
 아무튼 근처에서 보기 드문 오래된 건물이다.
 더구나 고시원도 꽤 오래되다 보니 시설이 무척 좋지 않다.
 요즘은 웬만한 원룸 수준으로 지어 놓은 원룸텔 등이 즐비한데 말이다.
 하지만 근처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강준에게는 이 허름한 고시원이 더 없이 고마운 곳이다.
 한 달 25만 원.
 덕분에 인근의 다른 고시텔이나 원룸텔 등에 비하면 거의 절반 가격에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준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저녁 9시 50분쯤 나갔다가 아침 7시 좀 넘어서 돌아온다.
 몸을 씻고 좀 뒹굴 거리다 취침.
 대충 오후 5시쯤 기상.
 TV를 보거나 게임 좀 하다보면 다시 일 나갈 시간이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
 사실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힘이 좀 들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뺑소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발을 심하게 저는 강준에게 있어서 힘쓰는 일은 쉽지 않다.
 편의점 일도 간신히 할 정도니까.
 게다가 사고 이후 시작된 탈모가 최근에는 더욱 심해져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다.
 
 어느덧 저녁 9시 40분.
 그 사이 강준은 라면을 끓여먹고 샤워도 마쳤다.
 이제 출근 시간.
 모자를 눌러쓰고 고시원을 나섰다.
 편의점까지는 50미터 거리.
 그런데 편의점 안에는 처음 보는 남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카운터 앞에는 20대 초반의 예쁘장한 여자 알바생인 최유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겠구나.’
 
 그때 주차장의 검은 승용차에서 화사한 백색 정장 차림의 여자가 나왔다.
 
 “오! 강준이 왔니?”
 “예, 사장님!”
 
 40대 후반의 그녀는 이 24시 편의점의 사장이며 이 건물의 주인이기도 한 이정숙이었다.
 땅값 비싸다는 강남에 이곳 말고 다른 건물도 몇 채 소유하고 있다는 그녀는 성격이 꽤 까칠해 아르바이트생들이 무척 어려워했지만, 강준에게는 비교적 잘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강준이 요령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다.
 
 “강준아. 이쪽으로 앉아보겠니?”
 
 이정숙은 강준을 파라솔이 있는 곳으로 부르더니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바쁘니까 용건만 말하마. 갑자기 편의점이 문을 닫게 됐다. 어쩌겠니? 이제 넌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라.”
 “예?”
 “강준이 넌 성실하니 어딜 가도 잘 하겠지? 이번 달 월급은 내일 바로 입금될 거야. 그럼 난 바쁘니 이만.”
 
 이정숙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일어났다.
 
 빵빵!
 
 승용차 경적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 여보! 뭐해? 애들 배고프다고 난리야.”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외제 승용차였다.
 
 “알았어요. 이제 다 끝났어요.”
 
 이정숙은 그대로 걸어가 승용차 문을 열었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50대 초반의 남자가, 뒷좌석에는 2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이정숙의 가족들. 옷차림들을 보니 다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했다.
 차에 탄 이정숙은 안전벨트를 매고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 많이 배고프지? 우리 뭐 먹을까?”
 “한우 꽃등심!”
 “나도!”
 “얘들 봐? 이 늦은 시간에 고기를 먹자고?”
 “뭐 어때? 먹고 싶단 말야.”
 “호호! 좋아. 여보, 우리 청담동 아침집으로 가요.”
 “그래. 거긴 24시간 영업하니까 잘됐군.”
 
 남자는 엑셀을 밟았다.
 부르릉.
 강준은 멍한 표정으로 승용차가 화려한 불빛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청담동 아침집?’
 
 들어봤다. 꽃등심 1인분에 8만 원이 넘는다는 그 고기집일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곳이지만 당연히 강준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1인분의 가격이 강준의 하루 일당보다 높으니까.
 평생 놀고먹어도 돈 걱정 따위는 없는 사람들.
 저들이 바로 그 금수저들인 것이다.
 그러나 강준은 어떻게든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부터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
 
 “강준 오빠!”
 
 뒤쪽에서 웬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알바생 최유리가 서 있었다.
 
 “유리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강준이 묻자 최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안쪽을 가리켰다.
 
 “몰랐어요? 이 건물 팔렸어요.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로 바뀔 걸요.”
 “뭐? 성형외과?”
 “그 얘기 나온 지 꽤 됐어요. 새 땅주인이 이 건물 허물고 다시 짓는다고도 했대요.”
 “그래?”
 “요즘 성형외과에서 돈을 쓸어 담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개업할수록 돈을 많이 벌 테니 어떻게든 서두르는 거겠죠.”
 “그런 건가.”
 
 강준은 왠지 맥이 빠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봐야겠어.’
 
 일단 고시원으로 돌아가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강준이 고시원 건물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절름발이?”
 
 고개를 돌린 강준의 인상이 굳어졌다.
 날티 나는 머리에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진 사내.
 조상진.
 지하 단란주점에 속해 있는 삐끼이자 양아치.
 유독 강준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녀석이었다.
 조상진은 히죽 웃더니 말했다.
 
 “편의점 가서 담배 한 갑 사와라.”
 
 
 
 Chapter 3 징벌의 결계
 
 
 “편의점 영업 안 합니다.”
 “뭐 인마?”
 “편의점 문 닫았어요.”
 “이 새끼 봐라? 지금 담배 사 오기 싫어서 뻥을 쳐?”
 
 일요일은 물론이고, 설이나 추석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 바로 24시간 편의점이다.
 
 “아니면 너 죽는다.”
 “가서 확인해보시죠.”
 “새꺄! 그럼 다른 데 가서 사오면 되잖아. 편의점이 거기 한 곳뿐이야?”
 
 순간 강준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필이면 단란주점이 강준이 지내고 있는 고시원 지하에 위치해 있어 하루에 한두 번은 놈과 마주쳐야 했다.
 그동안 강준은 그냥 눈 딱 감고 담배를 사다줬다.
 힘이 약해서?
 그건 아니다.
 강준이 아무리 한쪽 발을 저는 신세가 됐지만 이 딴 양아치 하나 못이겠는가.
 강준은 태권도 3단이다.
 그러나 명목상 3단일 뿐 실력만으로 따진다면 그 이상이었다.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에 싸움이라면 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따라서 주먹 한두 방이면 조상진을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아 버릴 수 있지만 참았다.
 주먹을 쓰게 되면 여러모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건 매우 어렵다.
 특히 조상진은 그쪽으로 선수.
 틀림없이 온갖 야비한 수작을 부려 강준에게 엄청난 합의금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절대 주먹은 쓰면 안 된다.
 그럼 조상진을 그냥 무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하필이면 단란주점이 강준이 지내고 있는 고시원 지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두 번은 놈과 반드시 마주쳐야 하는 상황.
 그래서 강준은 그동안 그냥 눈 딱 감고 웃으면서 담배를 사다줬다.
 기분은 좀 더러워도 그래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용히 고시원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도 평소처럼 조상진에게 형님이라 말하며 담배 한 갑 사다주면 별 일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이 문을 닫은 이상 굳이 이곳 고시원에 머무를 이유도 없어졌으니까.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것이 고시원이고, 다른 동네 가보면 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싼 고시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리라.
 
 “인마! 뭐해? 빨리 가서 담배 안사와?”
 “그렇게 피우고 싶으면 직접 사다 피워.”
 
 강준이 갑자기 반말로 대꾸하자 조상진은 어이없어하더니 이내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어?”
 “직접 사다 피우라고. 귀먹었냐?”
 “씨X! 이놈이 오늘 뭘 잘 못 처먹었나. 너 진짜 죽고······.”
 
 조상진은 험악한 표정과 함께 다가와 손을 들어 강준을 때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으니.
 조상진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한 채 비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 왜 이렇게 갑자기 어지럽지?”
 
 그는 비틀거리다 못해 균형을 잃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강준의 시야에 환상처럼 나타난 문장.
 
 [흑마력 10/100]
 [흑마력이 모이면 환몽의 문이 열립니다.]
 
 ‘이, 이건!’
 
 강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사이 그 문장들은 다시 환영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럴 수가! 진짜였어!’
 
 강준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뛰듯이 고시원 방으로 올라갔다.
 
 ‘휴!’
 
 방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털썩.
 그러다 강준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일단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워낙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져 허둥대며 돌아왔지만 이제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온다.
 
 ‘그러니까 내가 조상진의 힘을 흡수한 거였군.’
 
 아까 옆방 녀석의 정력을 흡수한 것과 비슷한 상황.
 
 ‘분명 보였어.’
 
 그래. 이제는 선명히 기억난다.
 
 ‘흑마력 10/100’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기억에는 남아 있다.
 
 ‘즉, 내가 누군가의 힘을 흡수하면 흑마력이라는 게 쌓이고, 그 흑마력이 100포인트까지 쌓이면 환몽의 문이라는 게 열리는 게 분명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환몽의 문은 무엇일까?
 그것도 기억난다.
 
 미션 1
 ㅡ흑마력을 모아 환몽의 문을 열어라.
 ㅡ보상 : 육체의 재구성
 
 강준이 수행해야 하는 100개의 미션 중 첫 번째!
 즉, 환몽의 문이 뭔지는 모르지만, 흑마력을 모아 그 문을 열면 첫 번째 미션이 완수되는 것이다.
 
 ‘하. 이게 진짜 현실일까?’
 
 강준은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 어이가 없어 스스로의 뺨을 꼬집었다.
 
 ‘으윽!’
 
 진짜로 아프다.
 
 ‘너무 세게 꼬집었나.’
 
 그래도 이렇게 아프다는 건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강준 자신에게 이상한 능력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흑마법의 능력!
 정말로 그게 가능한 것일까?
 강준은 벌떡 일어났다.
 
 ‘그래. 나가서 다시 확인해 보는 거야.’
 
 또 누군가의 힘을 흡수해 보는 거다.
 밤거리에 조상진 같은 놈이야 널리고 널렸으니까.
 
 조상진은 그때까지도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강준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이! 절름발이! 너 이리 와봐! 너 아까 뭐라고 그랬어?”
 
 강준은 그를 무시하며 지나갔다.
 
 “어딜 도망가 이 X새끼야! 좋게 말할 때 이리 안 와?”
 “이제 그만해라, 조상진.”
 “아니, 저 X만 한 새끼가 또 반말을 하네. 진짜 뒈지고 싶냐?”
 
 그러나 조상진은 말만 거칠 뿐 안색은 창백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어 금세라도 쓰러질 듯했다
 그런 와중에도 강준을 향해 최대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뻔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말에 벌벌 기던 녀석이 갑자기 기어오르는 것에 당황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강준이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면 이렇게 당황, 아니, 분노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준은 어제까지도 고분고분했다.
 이전에는 그가 슥 노려만 봐도 눈을 깔았던 녀석이었다.
 절름발이라고 놀려도 형님이라고 하며 실실거리기만 했다.
 강준은 말 그대로 조상진의 만만한 식민지이자 담배 셔틀에 불과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놀랍게도 지금의 강준에게서는 그 어떤 고분고분한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섬뜩한 눈빛은 무엇이고 저 입가에 떠오른 냉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조상진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X만 한 담배 셔틀 새끼 주제에! 그렇게 까불다간 진짜 장기 확 털리는 수가 있다.”
 
 순간 강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담배 셔틀이라고? 장기를 뭐 어째?’
 
 담배 셔틀.
 그 말은 곧 강준이 담배를 배달하는 셔틀이라는 뜻이다. 언제든 조상진이 원하면 담배를 가져다 바쳐야한다는 의미다.
 철없는 학생들끼리 빵 셔틀이 어쩌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일단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장기를 턴다는 말은 정말 끔찍한 말이다.
 강준의 장기를 잘라내 팔아먹겠다는 얘기이니까.
 저게 어디 인간이 할 소리일까?
 아무리 욕이라 해도 할 말 못할 말은 구분해야 하는데, 조상진, 저 놈은 말 그대로 인간말종이다.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조상진 따위는 강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다.
 그런데도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참았다.
 자칫 놈의 뒤에 있는 패거리들과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다.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런데 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녀석에게 더 이상의 인내가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 없다.
 물론 주먹을 휘두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흑마법!
 흑마법을 쓰면 상대는 무서운 타격을 받지만 그것을 강준이 했다는 증거는 생기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증거를 만들 수가 없다.
 초자연적이자 초과학적인 능력인 흑마법을 어느 누가 증명해 강준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설령 강준이 조상진의 생명력을 모조리 흡수해 그를 죽여 버린다 해도 그로 인해 구속되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까지는 벌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두 번 다시 저따위 욕설을 날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혼을 내주기로 했다.
 
 ‘네 더러운 입을 탓해라, 조상진.’
 
 강준은 이제 어떤 식으로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지 감을 잡은 상태다.
 상대를 향한 강한 저주의 염원!
 즉,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증오하면 흑마법의 힘이 발동되는 것이 분명하다.
 고시원 옆방의 그 녀석도 그랬고, 조금 전 조상진이 갑자기 힘을 잃고 비틀거릴 때도 그랬으니까.
 물론 정말로 그런지는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
 
 ‘조상진! 너같이 입만 열면 더러운 욕을 하는 놈은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입을 벌릴 힘조차 모조리 빨아들여주마.’
 
 그렇게 강준은 나름대로 조상진에 대한 저주의 염원을 완성했다.
 순간 아니나 다를까.
 번쩍!
 조상진을 노려보는 강준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대상의 기력이 너무 낮습니다.]
 [흑마력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대신 당신은 대상을 징벌할 수 있습니다.]
 [흑마력 1을 소모해 징벌의 결계를 열겠습니까? Yes/No]
 
 ‘이건 또 뭐냐?’
 
 강준은 잠시 멍해졌다. 물론 눈앞에 나타난 문장의 뜻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일단 예상대로 저주의 염원을 완성하자 흑마법이 발동되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현재 조상진의 기력이 너무 낮아 흑마력을 흡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강준에게 기력을 흡수당한지 얼마 안 되서 일 것이다.
 대신 징벌의 결계라는 것을 펼쳐서 조상진을 징벌할 수 있다.
 징벌의 결계는 또 뭘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흑마력이 1포인트 소모된다고 했다.
 
 ‘어떻게 하지?’
 
 흑마력이 소모된다는데 해도 될까?
 하긴 소모된 흑마력이야 또 흡수해 보충하면 될 것이다.
 
 ‘좋아, Yes!’
 
 강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상진을 징벌하겠다는 목적보다는 징벌의 결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정말 꿈만 같군.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일이 진짜로 내게 벌어지다니.’
 
 흑마법의 힘이 게임의 방식으로 주어졌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자 강준은 가슴이 벅찼다.
 
 [흑마력이 1 소모됩니다.]
 [최하급 징벌의 결계가 열립니다.]
 
 스스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징벌의 결계]
 ㅡ등급 : 최하급
 ㅡ지속시간 : 1분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변했다.
 아무리 밤 10시가 넘었다지만 도처에 즐비한 조명들로 인해 대낮과도 같았던 거리가 갑자기 이토록 어두워지다니.
 그러나 이 어둠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완전한 암흑으로 화했던 주변이 환하게 보였던 것이다.
 캄캄한데 어떻게 시야는 밝게 트여있을까?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근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네.’
 
 압구정 밤거리를 오 다니던 수많은 여자들은 물론이고, 번쩍이는 외제차들도, 또한 화려한 건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바닥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곳은 징벌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실의 세계와는 상관없지만, 대상의 기억에는 남게 됩니다.]
 
 ‘가상공간? 그러니까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과는 상관없다?’
 
 그때 누군가 앞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냐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인간.
 다름 아닌 조상진이었다.
 그제야 강준은 비로소 징벌의 결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지금 이 기괴한 공간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이른바 아공간의 가상 결계!
 또한 여기 있는 강준과 저 앞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상진 또한 진짜가 아닌 가상의 존재임을 의미한다.
 다만 의식은 진짜이기에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징벌을 시작하십시오!]
 [대상에게 충분한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루 동안 저주가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결계의 유지시간이 60초 남았습니다.]
 [결계의 유지시간이 59초 남았습니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스윽.
 
 곧바로 강준은 조상진을 향해 다가갔다.
 가상공간이지만 여전히 그의 발은 불편했고 그래서 그는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한편 조상진은 자신이 이상한 암흑의 공간 위에 서 있자 멍해졌다.
 그러다 캄캄한 어둠 사이로 강준의 모습이 보이자 두 눈을 부릅떴다.
 
 ‘저 놈은!’
 
 조상진은 인상을 구긴 채 강준을 노려봤다.
 그에게 있어 강준은 감히 자신의 식민지이자 담배 셔틀 주제에 반항을 시도하는 건방진 녀석이다.
 
 “크큭! 이 X만 한 담배 셔틀 새끼야! 남은 다리도 절게 만들어줘? 아니면 진짜 장기 털려볼래?”
 
 조상진은 아직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짐작도 못했다.
 그가 조금만 현명했다면 일단 이 이상한 공간이 어디인지 생각해보고, 왜 이곳에 강준이 있는지도 따져봤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가 당할 징벌은 피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 그가 진정으로 현명했다면 애초부터 강준을 건드리지 않았어야 했다.
 발이 불편해 이전처럼 현란한 발차기는 불가능하지만, 조상진 따위는 굳이 발을 쓸 필요도 없다.
 
 퍽ㅡ
 
 강준은 말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정권이 조상진의 안면, 정확히 콧등에 작렬했다.
 
 우직!
 
 단번에 코뼈가 내려앉았다.
 
 “컥!”
 
 태권도 겨루기에서는 정권으로 얼굴을 가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겨루기가 아닌 실전인데 무슨 상관인가.
 특히나 징벌의 결계라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말 그대로 인정사정 봐줄 필요가 없다.
 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가 바로 이곳!
 오직 징벌을 내리는 자와 징벌을 당하는 자만 있을 뿐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당황한 조상진이 움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으아아! 자, 잠깐! 우리 마, 말로······.”
 
 천만에! 좋은 주먹 놔두고 무슨 말이 필요 있을까?
 강준은 성큼 다가가 조상진의 오른 팔을 젖힌 후 그의 손가락 하나를 뒤로 꺾었다.
 
 우득!
 
 조상진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크아악!”
 
 결투는 물론이고 심지어 실전에서도 결코 써보지 않았던 잔인한 기술이다.
 알고는 있지만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무서운 기술이 강준에 의해 펼쳐졌다.
 계속해서 강준은 조상진의 다른 손가락들도 뒤로 꺾었다.
 
 우득! 우지직!
 
 “크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줘······.”
 
 마치 지옥에서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강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상진을 넘어뜨린 후 올라타서 주먹을 마구 내리쳤다.
 
 퍽퍽퍽ㅡ
 
 아무리 한동안 운동을 안했다지만 한 때 단단한 벽돌도 깨부쉈던 정권의 무식한 위력 앞에 조상진의 안면은 처참할 정도로 뭉개졌다.
 너무 가혹한 것일까?
 물론 가혹한 것은 맞다.
 하지만 뭐 어떤가? 실제 벌어지는 일도 아닌데.
 이건 어디까지나 공포를 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조상진에게 진저리치는 공포를 선사해야 한다.
 어설프게 했다간 오히려 더욱 귀찮게 할 우려가 있으니까.
 
 ‘어쨌든 이 정도면 됐겠지.’
 
 조상진의 안면을 정신없이 강타하던 강준은 이쯤이면 충분한 징벌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시야에 나타난 내용은 예상과 달랐으니.
 
 [대상에게 충분한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계의 유지시간이 10초 남았습니다.]
 
 ‘엉?’
 
 현재 조상진의 상태는 가히 빈사 직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충분한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여기서 더 어쩌라고? 설마 죽이기라도 하라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다니?
 하지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조상진에게 충분한 징벌을 내리지 않을 경우 반대로 강준이 저주를 받게 된다.
 
 ‘하긴 진짜 죽이는 것도 아니니 뭐.’
 
 강준은 입술을 악물고는 조상진을 노려봤다.
 그 사이 힘겹게 눈을 뜬 조상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준의 두 눈에서 소름끼치는 살기를 읽은 것이다.
 
 “으어어! 사, 살려······.”
 
 그러나 강준은 그의 머리를 노려 주먹을 힘껏 내리쳤다.
 
 쾅!
 
 조금 전까지는 마구 치는 것 같아도 어느 정도 사정을 뒀다.
 그러나 지금은 전력을 다했다.
 그것도 마치 격파를 하듯 한 지점을 노려 번개처럼 내리쳤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조상진의 몸이 축 늘어졌다.
 
 ‘휴우.’
 
 강준은 숨을 몰아쉬었다.
 현실에서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젠장! 가상이라서 정말 다행이군.’
 
 오직 대상을 죽여야 하는 징벌이라니!
 정말 무서운 징벌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은 조상진에게 충분한 징벌을 내렸습니다.]
 [잠시 후 결계가 사라집니다.]
 
 스스스.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징벌의 결계에서 벌어진 전투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경험치를 얻어 강해지고 싶다면 환몽의 문을 여십시오.]
 
 ‘환몽의 문? 경험치? 강해진다고?’
 
 징벌의 결계가 사라지는 사이 다시 환영처럼 강준의 시야에 나타난 문장들.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준은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인가?’
 
 경험치를 올려 강해진다는 것은 당연히 레벨을 올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미 흑마법의 능력이 게임의 방식으로 주어졌음을 파악한 강준이기에 그 사실을 당연하듯 받아들였다.
 
 ‘레벨 업이라!’
 
 그렇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게임과 같은 성장 방식이라면 레벨 업이야말로 진리!
 
 스읏.
 
 그 사이 징벌의 결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도시의 밤거리.
 그리고 길가의 으슥한 음영이 있는 곳에 서 있는 두 사람.
 다름 아닌 강준과 조상진이었다.
 조상진은 강준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으······.”
 
 그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혀가 굳어버린 듯 이상한 신음소리만 냈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사······살려주십시오, 형님······.”
 
 그러나 강준은 조상진을 차갑게 노려봤다. 기왕 징벌을 내린 이상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할 것이다.
 곧바로 다가가 조상진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오늘은 경고였을 뿐이다. 다음에 또 한 번 내 앞에서 개소리를 지껄이면 넌 진짜 죽는다.”
 “······예, 옛.”
 
 조상진은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눈물에 콧물까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징벌의 결계가 결코 쓸모없는 것은 아니군.’
 
 앞으로 꼭 손봐주고 싶은 녀석이 있다면 방금 전처럼 징벌의 결계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 안에서는 그 무슨 끔찍한 짓을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환상 속에서 가상으로 벌어지는 일일 뿐이라 그로 인해 강준이 현실에서 제재를 받을 일은 없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지옥과 같은 공포를 주게 된다.
 과연 어떤 놈이 다음 징벌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환몽의 문을 여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100포인트의 흑마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흑마력은 9/100
 앞으로 91포인트만 모으면 된다.
 보통 한 번에 3~4포인트 정도를 흡수하게 되니 이삼십 명 정도의 기력을 흡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흑마법을 펼칠 수는 없는 일.
 강준은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의 기력까지 흡수할 만큼 막 나갈 생각은 없었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나쁜 놈들만 골라 해도 흑마력은 남아돌 거야.’
 
 하긴 그런 놈들이 어디 한둘인가.
 돈 좀 있다고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고, 힘 좀 있다고 힘없는 사람들 괴롭히는 놈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남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상관 안하는 인간 말종들.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너무 많다.
 이 흑마법의 위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준은 작게나마 다짐했다.
 가능하면 나쁜 놈들의 기력만 흡수하기로!
 그렇게 그들의 기력을 흡수하게 되면 그만큼 나쁜 짓을 못하게 될 테니, 간접적으로나마 세상에 기여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나쁜 짓에 대한 기준은 강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 반영될 것이라 당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지도 모른다.
 
 ‘흑마법을 쓰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자.’
 
 그 생각을 하며 잠시 걸었을 때였다.
 
 “꺄악! 왜 이래요?”
 “으히히히! 왜 이러긴.”
 “예쁜 아가씨, 우리랑 한잔만 하자고.”
 
 술에 만취한 남자들이 지나가는 20대 여자를 향해 수작을 거는 장면 포착.
 
 “죄송한데 전 바빠요.”
 “에이! 바쁘긴 뭐가 바빠.”
 
 여자가 싫다고 하는데도 취객들은 막무가내였다.
 사실 밤거리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예전 같으면 저러든지 말든지 신경 끄고 지나갔을 것이다.
 사태가 좀 심각하다 싶으면 경찰에게 신고해줄 수는 있어도 직접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연히 오지랖 넓게 나서 도와주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잘해야 본전!
 잘 못하면 취객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고, 그 와중에 흥분해 주먹이라도 휘두르다보면 되레 큰 낭패를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무척 비겁한 태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더구나 한쪽 발을 절게 된 이후로 강준은 더더욱 남들의 일에 무관심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절뚝. 절뚝.
 
 강준은 말없이 취객들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사이에도 취객들은 집요하게 여자에게 수작을 걸었다.
 
 “같이 좀 가자니까.”
 “이거 놔!”
 
 술김에 예쁜 여자에게 한 번 말을 걸어보는 것까지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싫다는데도 저런 진상 짓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저런 건 굳이 세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나쁜 짓에 속한다.
 그래도 최후로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자.
 물론 어차피 결론은 뻔하겠지만.
 강준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만들 하시고 집에 들어가시죠. 여자가 싫다고 하잖아요.”
 
 그러자 남자들 중 하나가 강준을 보며 버럭 외쳤다.
 
 “뭐 인마?”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기분 좋게 술을 드셨으면 그만 집에 들어가 쉬세요. 여자한테 치근대는 모습이 정말 추해보입니다.”
 “뭐야? 이런 미친 새끼가! 저리 안 꺼져?”
 “니가 무슨 상관이야? 절름발이 새끼야.”
 “다리병신 주제에 어딜 끼어들어? 뒈지고 싶냐?”
 
 예상대로 그들은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하긴 말로 해서 들을 자들이었으면 애초부터 이런 추행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술을 먹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느니, 술김에 그랬으니 참작해달라느니, 하는 헛소리들을 지껄이곤 한다.
 그러나 정상인이라면 술 좀 마셨다고 이 따위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
 대체 술이 무슨 죄가 있나, 그 술을 마시고 개가 되는 사람이 죄인 것이지.
 
 ‘술 먹고 개가 되는 놈들은 술 먹을 자격이 없어. 마신 술을 다 토해내라!’
 
 곧바로 강준의 두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강준을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들이 돌연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엎어져 토하기 시작했다.
 
 “으으! 이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쿠웨엑!”
 “우, 우웨엑ㅡ!”
 “우엑! 아, 아이고! 나 죽어······!”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로 죽을상을 하며 바닥에 입을 처박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조금 전의 험악한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흑마력 12/100]
 [흑마력 15/100]
 
 그 사이 강준은 시야에 환영처럼 떠오른 글자들로 인해 흑마력이 차오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흑마력 18/100]
 [흑마력이 모이면 환몽의 문이 열립니다.]
 
 이 글자들은 오직 강준의 눈에만 보였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 글자들이 보인다면 도처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Chapter 4 전쟁이 시작되다
 
 
 “으으ㅡ!”
 “웩! 아이고! 주, 죽겠다······!”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구토를 하던 남자들은 다급히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술기운이 약간 가시자 비로소 자신들이 무슨 추태를 부리고 있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서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봉변을 면했네요.”
 
 여자가 강준을 향해 고개를 공손히 숙이며 말했다.
 순간 강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얼굴이 환상적이다.
 보석처럼 찰랑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또렷이 반짝이는 눈빛!
 오뚝한 콧날 아래 촉촉한 핑크빛 입술!
 완벽하게 굴곡진 허리 라인까지!
 취객들이 정신 줄을 놓을 만하다.
 뭐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잠깐만요. 그래도 도와주셨는데 커피라도······.”
 “아닙니다. 아무튼 조심해서 다니세요. 밤에는 술 먹고 개가 되는 인간들이 꽤 많거든요.”
 
 그 말을 마치고 강준은 바람처럼 돌아섰다.
 그 모습을 유서린은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방금 전 강준이 용기 있게 나서주어 내심 고마웠다.
 그런데 보통 그런 일을 벌였으면 뭔가 으쓱대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정상 아닐까?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란 것처럼 지나가버렸다.
 
 ‘특이한 사람이네.’
 
 유서린은 강준이 다리를 절면서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한편 강준은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사실 내심 안타깝긴 했다.
 저렇게 예쁜 여자와 커피를 마실 기회도 흔치 않을 텐데.
 그러나 지금 그는 마음이 급했다.
 
 ‘빨리 흑마력을 모아 환몽의 문을 열자.’
 
 환몽의 문을 열면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하게 된다.
 또한 레벨 업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지금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참을 걸었을까?
 
 ‘이곳은?’
 
 다름 아닌 공원 앞이었다.
 그리고 강준의 두 눈에 새로 포착된 장면!
 공원 안쪽 으슥한 곳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패싸움이라기보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듯했다.
 
 퍽퍽ㅡ
 
 “으윽!”
 “악!”
 
 10여명의 패거리들에 둘러싸여 맞고 있는 세 명의 남학생들은 언뜻 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강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실 열혈폭주 상태의 불량학생들을 타이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10여명의 불량해 보이는 녀석들을 말이다.
 즉, 강준의 행동은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상대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아니라 불량 청소년들.
 성인들이라면 뒷일을 생각해서 적당히 몸을 사릴 줄도 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저들은 그저 현재의 감정에만 폭주하기에 상당히 위험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길거리의 불량 청소년들을 타이르던 어른들이 심하게 구타를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곤 하니까.
 또한 미성년자들은 손을 봐주기도 어렵다.
 타이르다 한 대 때리기라도 하면 무조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준은 설령 두 다리가 멀쩡했다 하더라도 그냥 경찰에 신고나 하고 말지, 직접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제까지의 강준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강준은 다르다.
 
 ‘다들 힘이 넘치니까 쓸데없는 짓들만 하고 있군.’
 
 무려 10여명이다.
 잘하면 단번에 대량의 흑마력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강준은 오히려 흐뭇했다.
 물론 단순히 흑마력만 모을 수 있어서 흐뭇한 것이 아니다.
 불의한 상황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가야 했던 비겁한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빨리 멈추지 못해!”
 
 강준이 다가가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학생들 중 몇이 고개를 홱 돌려 강준을 노려봤다.
 
 “저 새끼가 지금 뭐래?”
 “미쳤나?”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강준 혼자뿐이란 것을 확인하자 어이없어했다.
 
 “어이, 형! 그냥 가.”
 “씨X! 괜히 끼어들다가 맞는다.”
 “X나게 맞고 울지 말고 어서 꺼지라고!”
 “킥! 다리 저는 거봐. 저 꼴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에잇, 병신 새끼 주제에!”
 
 순간 강준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놈들이 진짜.’
 
 아무리 싸가지가 없다지만 저건 좀 심하다.
 생각 같아서는 징벌의 결계라도 펼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서라.
 저런 놈들이 어디 한둘이냐.
 일일이 징계하다 보면 흑마력을 모아 환몽의 문을 여는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미션 수행이 더 중요한 때다.
 강준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발작을 하고 싶은 걸 참았다.
 곧바로 그의 두 눈에서 시커먼 빛이 번쩍였다.
 순간 강준을 비웃고 있던 학생들의 몸이 일제히 벼락 맞은 듯 떨렸다.
 
 “······!”
 “······!”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학생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진저리를 치고 있지만 그 어떤 신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일단 그들은 몸이 돌로 변하기로 한 듯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입도 벌려지지 않았다.
 혀와 입술이 마비된 것 같았다.
 
 ‘으으!’
 ‘윽! 이, 입이 안 움직여!’
 
 그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유발했다.
 이렇게 영원히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버릴 것 같은 공포였다.
 아니 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밥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는 끔찍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눈앞도 캄캄하다.
 암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들리지도 않는다.
 시각에 이어 청각까지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석화(石化)!
 사람이 돌로 변한다면 이런 기분이리라.
 아아, 이 상태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부르르 떨리는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눈물을 흘리는지도 몰랐다. 그런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쯧.’
 
 강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동시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속으로 두 번 다시 욕 따위는 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저주를 퍼붓긴 했지만 정말로 입이 마비되어 버릴 줄은 몰랐다.
 아니, 입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마비되어버렸다.
 앞서 흑마력을 흡수했던 취객들 등에 비해 훨씬 강력한 위력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로 인해 조금 전까지 세상이 자신들 것이라도 되는 양 까불던 녀석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들과 같은 표정으로 기가 죽어 있었다.
 
 ‘크리티컬이라도 터진 건가?’
 
 이런 식이라면 굳이 징벌의 결계를 펼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나저나 저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야. 잠시 후면 마비는 풀린다.’
 
 그것은 직감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직감.
 흑마력을 흡수할 때마다 기괴한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왔던 것이다.
 즉, 방금 펼친 흑마법으로는 일시적인 공포만 부여할 뿐 실제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
 
 [흑마력 53/100]
 [흑마력을 모으면 환몽의 문이 열립니다.]
 
 13명의 기력을 흡수한 덕분인지 흑마력이 어느덧 절반이 넘게 찼다.
 
 “으으!”
 “이, 입이 움직인다.”
 “몸이 움직여!”
 “으헝! 눈이 다시 보여!”
 
 한편 학생들은 그제야 마비가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강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무슨 괴물이나 귀신을 보듯 두 눈을 부릅뜬 채 말이다.
 하긴 그런 엄청난 꼴을 당했으니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강준은 그들을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 왜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거냐? 그리고 아무한테든 욕이야?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거냐?”
 “자, 잘못했어요.”
 “두 번 다시 안 그럴게요.”
 
 학생들은 움찔 몸을 떨며 대답했다. 모두 주눅이 든 상태라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보였다. 강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녀석들을 대상으로 더 이상 훈계해봤자 무슨 소용일까?
 
 “너는 112! 그 옆에 너는 119! 전화해라.”
 “예?”
 “당장 전화하라고! 내 말 무슨 뜻인지 몰라?”
 “아, 압니다.”
 
 학생들은 바싹 얼어붙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했다.
 그들은 강준이 어찌나 두려운지 경찰에 전화하라는 말에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경찰서에 붙들려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인 듯했다.
 
 “경찰이 오면 너희들이 여기서 한 짓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얘기해.”
 “예.”
 “내가 다 확인해 볼 거야. 혹시라도 거짓말로 넘어가려는 놈은 영원히 아까 그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알았냐?”
 “아, 알았어요.”
 
 강준은 녀석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사납게 노려봐주고 공원을 벗어났다.
 
 에에엥ㅡ
 
 잠시 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뒤로 119구급대의 차량도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잘 알아서 하겠지.’
 
 강준이 할 일은 다했다.
 남은 건 경찰들과 119구급대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처리하라고 그들이 있는 것이니까.
 
 계속해서 강준은 밤거리를 누비며 가능한 어둠의 포스를 물씬 풍기는 녀석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일순.
 강준은 한 커다란 건물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을 발견했다.
 험악한 인상들을 보니 강준은 그들이 어떤 부류인지 단 번에 짐작했다.
 
 ‘조폭들이군!’
 
 특히 그 중에서 붉은 슈트를 입은 30대 초반 남자의 눈빛은 칼같이 매서웠다.
 꼭 붙어봐야 아는 건 아니다.
 강준은 그 붉은 슈트의 남자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긴장했다.
 
 ‘흠!’
 
 그러나 상대가 조폭이건 뭐건 두려워할 것 있겠는가.
 무적의 흑마법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흑마력을 흡수당하면 저 자는 기력이 사라져 서 있을 힘조차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오늘은 나쁜 짓을 할 수 없으리라.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겠다는 생각에 강준은 즉시 그 남자를 노려보며 흑마법을 펼쳤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내는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메시지.
 
 [대상이 저항했습니다.]
 [흑마력을 모으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럴 수가! 저항이라니!
 
 [정신력, 육체적 능력 등이 뛰어난 자들에게는 저항력이 존재합니다.]
 [그때 당신은 전투 결계를 열어 대상과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승리하면 대량의 흑마력을 흡수할 수 있지만, 패배하면 당신의 흑마력을 대량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전투 결계를 열겠습니까? Yes/No]
 [전투 결계를 여는 데는 흑마력 1이 소모됩니다.]
 
 ‘전투 결계?’
 
 그 안에서 전투를 벌여 이기면 대량의 흑마력을 모을 수 있지만, 패배하면 반대로 흑마력을 빼앗긴다니!
 그렇다면 정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안 돼! 저 자는 지금의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는 것은 미친 짓!
 강준은 전투 결계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것일까?
 붉은 슈트의 남자가 강준을 쏘아봤다.
 
 ‘이크!’
 
 강준은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했지만, 남자가 성큼 한 걸음 걸어오며 말했다.
 
 “거기. 잠깐 서봐라.”
 
 강준은 흠칫 멈춰 서고는 고개를 돌렸다.
 
 “저 말입니까?”
 “그래.”
 
 남자는 잠시 강준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옆의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저 새끼 몸에 무기 있는지 살펴봐.”
 “예, 형님.”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자들이 달려와 강준의 옷을 뒤졌다. 그들은 심지어 신발까지 벗겨 그 안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형님.”
 
 그러자 붉은 슈트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뭔가 미심쩍은 듯 강준을 잠시 노려보다 물었다.
 
 “너 뭐하는 새끼냐?”
 “예?”
 “나를 노려본 이유가 뭐야?”
 “노려본 게 아니라 쳐다봤는데요.”
 “그럼 쳐다본 이유는?”
 
 사내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지만 강준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혹시 연예인인가 해서요.”
 “연예인?”
 “옷도 화려하고 얼굴도 잘생기셔서 말입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러자 사내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 이유였다는 거냐?”
 “예.”
 “싱거운 놈이군. 풀어줘라.”
 “예, 형님.”
 
 강준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들이 힘을 풀었다.
 
 “너 이 새끼!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에 또 그랬다간 눈깔을 확 뽑아 버린다.”
 
 강준은 돌아선 후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붉은 슈트 남자는 입가에 실소를 흘렸다.
 그는 방금 전 강준이 쏘아보는 순간 전신에 알 수 없는 섬뜩하면서도 꺼림칙한 살기를 느끼고는 긴장했던 것이다.
 
 ‘고작 절름발이 따위에게 긴장하다니.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했군.’
 
 한편 강준은 속으로 가슴을 쓸었다.
 저 붉은 슈트의 남자는 흑마법이 뭔지 모르지만,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을 덮쳤던 것을 간파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하마터면 봉변을 당할 뻔했다.
 순간적인 기지로 연예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눈을 뽑히진 않았더라도 흠씬 두들겨 맞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신중하자. 앞으로는 상대를 봐가면서 흑마법을 펼치는 게 좋겠어.’
 
 흑마법의 힘은 막강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어서 환몽의 문을 열어 레벨을 올려야 한다.
 레벨이 올라 강해지면 그 붉은 슈트의 남자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강준은 가능한 만만해 보이는 녀석들만을 대상으로 흑마력을 채워나갔다.
 물론 불량배와 양아치를 대상으로 하되 그들이 눈치 챌 수 없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했다.
 그렇게 한동안 밤거리를 누볐을까?
 
 [흑마력 100/100]
 
 어느덧 흑마력이 모두 찼다.
 곧바로 새로운 메시지들이 강준의 시야에 나타났다.
 
 [흑마력이 환몽의 문을 열기에 충분할 만큼 모였습니다.]
 [환몽의 문은 당신이 잠들면 열립니다.]
 
 ‘음?’
 
 내심 환몽의 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던 강준은 전혀 뜻밖의 문장이 나타나자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잠이 들면 열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일단 그때 환몽의 문이 열린다고 치자.
 그런데 잠을 자고 있으면 그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혹시 꿈속에서?
 환몽(幻夢)!
 단어의 뜻을 생각해봐도 확실히 일리 있는 추측이다.
 강준은 서둘러 고시원의 방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몸을 씻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런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새벽 3시.
 그동안의 생활 리듬 상 보통 아침 9시 정도에나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자는 것도 쉽지 않네. 수면제라도 먹어야 되나.’
 
 수면제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른 새벽에 어디에 가서 수면제를 살 수도 없는 일.
 
 ‘모르겠다.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언젠가 잠이 들겠지.’
 
 그 후로도 한참 뒤척거리다 잠이 든 것은 새벽 5시가 넘어서였다.
 
 [환몽의 문이 열렸습니다.]
 [미션 1이 완수되었습니다.]
 
 환몽의 문이 열리고 첫 번째 미션이 완수되었다고 한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음성에 강준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지금이 꿈인가? 현실인가?
 
 ‘그보다 이곳은······?’
 
 강준은 이곳이 분명 자신의 고시원 방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비좁은 방안.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안이 텅 비어 있다.
 싱글 침대는 물론이고, 책상과 TV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찌된 것일까?
 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생소하다.
 아래위로 걸친 정체모를 천 옷의 감촉이 무척이나 거칠게 느껴진다.
 
 ‘이게 뭐지? 꿈인가?’
 
 당연히 꿈일 것이다.
 꿈이 아니라면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리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당신은 환몽의 세계에 진입했습니다.]
 
 환몽의 세계라니?!
 아, 어쩐지.
 역시 지금은 현실이 아닌 꿈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꿈이 아닌 환몽의 세계!
 
 [당신이 수행한 미션 1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환몽의 힘이 당신의 육체를 재구성합니다.]
 
 드디어 보상이다.
 대체 육체를 어떻게 재구성한다는 뜻일까?
 
 휘우우우!
 
 신비한 빛이 강준을 향해 몰아쳤다.
 그 빛은 강준의 머리에서 맴돌다 점차 아래로 내려가더니 두 발에서 머물다 사라졌다.
 
 [당신의 육체가 성공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동시에 강준은 전신에서 알 수 없는 활력을 느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왠지 몸이 개운해진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정확히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 잠깐! 오른발이 이상해.’
 
 그러던 강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방금 전까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자세였다.
 오른발에 힘을 거의 주지 못했고, 왼발에 체중이 실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지금 그는 오른발에도 힘이 실려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설마?’
 
 설마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그뿐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본 강준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아!’
 
 심한 탈모로 인해 대머리처럼 드러났던 두피 위에 머리카락이 자라나 있었던 것이다.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인가.
 아무리 꿈이라지만, 아니, 꿈과 같은 환몽의 세계라지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이야.
 
 [환몽의 힘이 당신의 상태를 표시합니다.]
 
 이강준
 Lv.1(Exp 00.00%)
 [전쟁] 초급
 생명력 150/150
 흑마력 0/100
 
 ‘레벨 1?’
 
 게임에서나 보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물론 상태창이 표시하는 상태는 게임의 캐릭터가 아닌 이강준 자신이다.
 능력인 전쟁은 초급!
 생명력은 가득 차 있지만, 흑마력은 모두 소진된 상태.
 아마도 환몽의 문을 여느라 100포인트의 흑마력이 소모된 모양이다.
 
 ‘스탯은 없나?’
 
 상태창 치고는 정보가 너무 간략하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환몽의 힘이 당신의 초기 스탯을 무작위로 생성합니다.]
 
 근력 7
 민첩 8
 지능 9
 행운 1
 카리스마 0
 
 [근력, 민첩, 지능은 레벨이 상승하면 증가합니다.]
 [행운과 카리스마는 다른 특별한 조건을 달성해야 증가합니다.]
 [이 스탯으로 결정하겠습니까? 아니면 환몽의 주사위를 굴려 새로 스탯을 생성하겠습니까?]
 [환몽의 주사위는 도합 3번의 기회가 존재합니다.]
 
 ‘흠. 이건?’
 
 강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행운과 카리스마가 너무 낮다.
 
 ‘좀 별론데.’
 
 근력, 민첩, 지능은 레벨이 오르면 알아서 상승하지만, 행운과 카리스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럼 행운과 카리스마가 무조건 높은 게 좋겠지.’
 
 근력과 민첩, 지능은 좀 낮아도 된다.
 물론 그로 인해 초반 레벨 업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고정 스탯인 행운과 카리스마가 높으면 훨씬 유리할 것임은 당연한 일.
 
 ‘바꾸자.’
 
 주사위를 굴릴 기회가 있다하니, 굳이 이런 걸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리라.
 
 “주사위를 굴린다.”
 
 [환몽의 주사위를 굴립니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되었습니다.]
 
 근력 6
 민첩 12
 지능 4
 행운 2
 카리스마 1
 
 [주사위를 굴리겠습니까? Yes/No]
 [환몽의 주사위를 던질 기회가 2번 남았습니다.]
 
 ‘이것도 별로.’
 
 근력과 지능이 떨어진 대신 민첩이 상승하고, 행운과 카리스마가 1포인트씩 올랐지만, 그다지 쓸 만해 보이지 않았다.
 아직 2번의 기회가 남았다.
 
 “주사위를 굴린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되었습니다.]
 
 근력 8
 민첩 8
 지능 1
 행운 8
 카리스마 0
 
 [주사위를 굴리겠습니까? Yes/No]
 [환몽의 주사위를 던질 기회가 1번 남았습니다.]
 
 ‘흠!’
 
 행운이 무려 8이다!
 게다가 근력과 민첩도 8!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0이니 문제.
 잠시 고민하던 강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에 편하자고 희귀한 스탯인 카리스마를 완전히 포기했다간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1번의 기회!
 제발! 이번에는 행운과 카리스마가 모두 잘 나오기를!
 
 “주사위를 굴린다.”
 
 강준은 심호흡을 한 후 필사적인 심정으로 외쳤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되었습니다.]
 
 근력 4
 민첩 5
 지능 2
 행운 6
 카리스마 8
 
 [당신은 환몽의 주사위를 굴릴 기회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스탯이 이대로 확정됩니다.]
 
 “바로 이거야!”
 
 강준은 쾌재를 불렀다. 지금껏 나온 스탯 중에 가장 훌륭했다.
 카리스마가 무려 8포인트!
 행운도 6포인트이니 나쁘지 않다.
 그로 인해 근력과 민첩, 지능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강준이 바라던 대로 되었다.
 
 이강준
 Lv.1(Exp 00.00%)
 [전쟁] 초급
 생명력 90/90
 흑마력 0/160
 근력 4
 민첩 5
 지능 2
 행운 6
 카리스마 8
 
 새로운 스탯이 반영된 상태창이 나타났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줄어들고 대신 흑마력의 최대치는 상승했다.
 
 스스스스.
 
 그때 갑자기 방에 짙은 흑색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제 당신이 속한 현실과 환몽의 세계가 서로 연결됩니다.]
 [이후로 당신이 환몽의 세계에서 강해지면 현실에서도 강해집니다.]
 [동시에 현실에서 획득한 당신의 부(富, Wealth)가 이곳 환몽의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일단 이곳 환몽의 세계에서 레벨을 올리면 현실에서도 강해질 거라는 건 이미 짐작했던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현실에서 돈을 많이 벌면 여기서도 뭔가 좋은 게 있다고 한다.
 
 [이 방 406호는 현실에서 당신이 25만 원을 지불하고 계약한 장소입니다.]
 [그로 인해 이곳 환몽의 세계에서 406호는 당신의 권역으로 인정됩니다.]
 [물론 현실에서의 계약이 유효할 때까지만입니다.]
 
 ‘권역?’
 
 현실에서 돈을 내고 사용하고 있는 고시원 방이라 여기서도 권역으로 인정된다니!
 무슨 꿈속에서 그런 걸 다 따진다는 건가.
 
 [권역에는 거점 건설이 가능합니다.]
 [406호에 거점을 건설하겠습니까? Yes/No]
 
 그런 거라면 당연히 건설해야 할 것이다.
 강준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점을 건설하겠다.”
 
 [1단계 거점을 건설합니다.]
 [완성도 0%]
 
 이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방안을 뒤덮었던 흑색 안개가 사라졌다.
 그 순간 강준은 흠칫 놀랐다.
 
 ‘이런! 문이 없어졌어!’
 
 사라진 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암흑뿐.
 
 [거점이 건설되는 이 순간부터 적들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소름끼치는 괴성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쿠아아아아!”
 
 아아, 이 무슨 살 떨리는 소리인가?
 어둠 속에서 뭔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뭐가 오는 거지?’
 
 어쨌든 방 안에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다.
 
 미션 2
 ㅡ406호의 거점이 완성되는 동안 적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ㅡ보상 : 경험치
 
 그 순간 두 번째 미션이 나타났다.
 거점을 지키라는 것!
 
 [1단계 거점 건설 중 3%]
 
 강준은 즉시 방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신기하게도 강준이 밖으로 나가자 반경 2미터 정도의 흑막이 걷히며 주변이 환하게 보였다.
 405호. 407호.
 그리고 양 옆으로 죽 이어진 방들.
 강준에게 익숙한 고시원 건물과 구조는 동일했다.
 
 ‘내가 이동한 경로는 흑막이 모두 사라졌다. 그렇다면?’
 
 PC로 이런 방식의 게임을 해봤던 강준은 재빨리 고시원 복도를 뛰어 시야를 확보했다.
 어둡지만 익숙한 건물이다 보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헉! 숨이 차네.”
 
 사실 강준은 두 발이 멀쩡해진 상태라 이보다 훨씬 빨라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게다가 체력도 마찬가지.
 어려서부터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체력 하나만은 자신 있었는데 고작 복도 좀 뛰어다녔다고 숨이 찰 줄이야.
 
 ‘근력과 민첩이 떨어져서 그런 거군.’
 
 강준은 자신의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렇게 바로 싸워야 하는 줄 알았다면 초기에 근력이나 민첩이 높은 것이 유리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준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충분히 고민해보고 선택했다.
 앞으로 레벨이 오를수록 그때의 선택이 오히려 빛을 발휘할 것이다.
 어쨌든 시야가 확보되니 답답함이 좀 가셨다.
 이제 그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강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쿠아아아아!”
 
 그때 다시금 괴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413호였다.
 
 콰당!
 
 방문이 부서질 듯 젖혀지더니 그 안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시커먼 털 사이로 번뜩이는 핏빛의 홍채.
 음침하게 벌어진 입에서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흘러나왔다.
 
 ‘으! 저게 뭐냐?’
 
 대략 1미터 정도의 키.
 쥐의 머리에 원숭이의 몸체를 가진 몬스터였다.
 
 
 
 Chapter 5 새로운 시작
 
 
 저 이질적인 것의 정체는 대체 뭔가?
 현실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
 
 “쿠아아아아! 키키키키!”
 
 그것은 손에 굵직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강준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휭! 휘잉!
 
 비좁은 복도라서 뒤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강준은 문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만! 내가 피할 필요 없지. 놈의 기력을 흡수하면 되잖아.’
 
 현실에서 양아치와 불량배들을 대상으로 발휘된 능력!
 당연히 이곳에서 그 능력이 유효할 것이다.
 강준은 쥐머리 원숭이를 노려봤다.
 그러나 순간 전혀 뜻밖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잘못된 대상입니다.]
 [흑마력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뭐야? 왜 안 되는 거냐?”
 
 왜 잘못된 대상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로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몽둥이가 사정없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강준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쥐머리 원숭이는 더욱 기세가 살아 날뛰었다.
 
 “키아아아!”
 
 급기야 그것은 훌쩍 도약해 허공에서 몽둥이를 내려쳤다.
 순간 강준의 오른발이 번쩍 올라가 몽둥이를 쥔 쥐머리 원숭이의 손목을 밀어냈다.
 연이어 그의 오른발이 쥐머리 원숭이의 복부를 찍었다.
 
 퍽ㅡ
 
 “켁!”
 
 쥐머리 원숭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별거 아니군.’
 
 아무리 몸이 둔해졌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태권도 3단인 강준이다.
 특히나 이제는 두 발이 멀쩡해졌는데 고작 저런 난쟁이 몬스터 하나쯤이야.
 무엇 때문에 흑마력 흡수가 안 되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직접 상대해 해치우면 된다.
 
 “크와아아아!”
 
 그때 413호에서 또 하나의 쥐머리 원숭이가 튀어나왔다.
 
 휭! 쒸잉!
 
 곧바로 날아드는 몽둥이의 공세!
 강준은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그 사이 바닥에 쓰러졌던 쥐머리 원숭이가 벌떡 일어났다.
 2대 1의 상황!
 강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엔 저 놈들의 흉측하고 기괴한 모습에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그러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동작도 단순하고, 키도 작기에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초등학생 둘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초등학생치고는 몸이 좀 날랜 녀석들이겠지만.
 
 “쿠아아아아!”
 
 그 사이 쥐머리 원숭이 하나가 공중으로 훌쩍 도약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쉬익!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몽둥이!
 강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의 몸이 빙글 회전함과 동시에 왼발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갔다.
 
 퍽ㅡ
 
 왼발이 쥐머리 원숭이의 복부에 정확히 박혔다.
 
 “케엑!”
 
 이번에는 작정하고 체중을 실어서 찼다.
 웬만한 어른들이라도 한 방에 졸도할 만한 일격!
 위로 솟구친 강준의 왼발이 그대로 다시 방향을 틀더니 연이어 달려들던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를 찍었다.
 
 팍!
 
 “꾸엑!”
 
 한 마리는 5미터 정도 날아가 처박혔고, 다른 한 마리는 강준의 발 앞에 널브러졌다.
 
 ‘아직 죽지 않았군.’
 
 이대로 두면 다시 일어나 공격을 할 터.
 
 퍽! 퍼퍽!
 
 강준은 먼저 발 앞의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꾸아아악!”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3노드를 얻었습니다.]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강준은 지체 없이 달려가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또 다른 쥐머리 원숭이의 안면에 정권을 박아 넣었다.
 
 퍽퍽퍽ㅡ
 
 “꾸엑!”
 
 몇 번이나 연달아 후려치자 그것은 맥없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노드를 얻었습니다.]
 
 두 마리의 몬스터를 해치우고 그것들로부터 게임처럼 경험치를 획득했다.
 
 Lv.1(Exp 20.00%)
 
 상태창을 보니 경험치가 20퍼센트 찼다.
 쥐머리 원숭이 한 마리당 10퍼센트의 경험치를 채워준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8마리만 더 해치우면 레벨이 오른다는 얘기.
 
 ‘그런데 노드는 또 뭐지?’
 
 강준은 쥐머리 원숭이 두 마리를 해치우고 모두 7노드를 획득한 상태다.
 
 [노드는 환몽의 세계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화폐입니다.]
 [노드가 많을수록 당신은 전쟁을 수행하는데 유리합니다.]
 
 ‘돈이었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게임처럼 몬스터를 해치우자 경험치와 돈을 얻은 것뿐이니까.
 7노드가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스윽.
 
 강준은 쥐머리 원숭이들이 쥐고 있던 몽둥이 중 하나를 주워들었다.
 
 ‘체력소모를 줄이려면 무기가 있는 게 좋겠지.’
 
 70센티 길이. 모양은 곤봉을 연상케 한다.
 
 ‘가볍지만 꽤 단단하네.’
 
 다행히 피했으니 망정이지 맞았으면 제법 아팠을 것이다.
 
 “쿠아아아!”
 “키키키키!”
 
 그 사이 괴성과 함께 두 마리의 쥐머리 원숭이들이 튀어나왔다.
 
 ‘또 413호! 대체 왜 저기서만 나오는 거냐?’
 
 저곳이 무슨 몬스터 소굴이라도 되는 건가?
 잠깐! 그런데 저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설마?
 
 피잉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했다.
 
 ‘헉!’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화살!
 강준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하지 않았다면 화살이 그의 정수리를 꿰뚫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쥐머리 원숭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활이었다.
 
 ‘젠장! 활을 쏘다니!’
 
 정말로 운이 좋았다.
 부지중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줄이야.
 혹시 이것이 바로 행운의 위력인가.
 그렇다면 행운을 높여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로 기뻐할 때가 아니다.
 그 사이 또 다른 쥐머리 원숭이의 손에서 발사된 화살!
 
 피잉ㅡ
 
 이번에는 작정하고 엎드려 피했지만, 동작이 늦었는지 화살이 왼쪽 팔뚝에 팍, 하고 박히고 말았다.
 
 “으윽! 제길!”
 
 강준은 몸을 떨었다.
 몸서리치도록 아픈 고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
 살면서 화살 맞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칼도 아니고 화살을!
 행운도 연속되지 않는가 보다.
 
 “으으윽······!”
 
 화살이 살을 파고드는 이 섬뜩한 고통!
 보통 꿈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환몽의 세계는 아니었다.
 이곳은 현실과 동일한 고통을 느끼는 세계.
 
 “키키킥!”
 “캬캬아아!”
 
 강준이 비틀거리자 쥐머리 원숭이들이 키득거리며 다시 화살을 시위에 넣었다.
 
 ‘으! 저 놈들이!’
 
 강준은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지체할 때가 아니다.
 저 화살들에 한 방이라도 더 맞는다면?
 강준은 문득 시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패배하면 모든 걸 잃는다. 특히 환몽의 세계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
 ‘내 말 잊지 마라. 네놈도 나처럼 시체가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환몽의 힘을 전해줘야 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 여긴 단순한 꿈속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죽음은 진짜 죽음을 의미한다.
 그 생각을 하자 전신에 소름이 끼쳐왔다.
 
 “으득! 그렇게 될 수는 없지.”
 
 강준은 왼팔의 고통을 무시한 채 돌진하듯 달려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퍽!
 
 “켁!”
 “꿔억!”
 
 한 방에 한 놈씩!
 쥐머리 원숭이들은 머리통이 터진 채 쓰러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노드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노드를 얻었습니다.]
 
 “휴우!”
 
 강준은 숨을 몰아쉬었다.
 
 ‘몽둥이를 들기 잘했군.’
 
 근력과 민첩이 하락한 탓에 권각의 위력 또한 급감했다.
 이 몽둥이가 아니었다면 한 방에 한 놈씩 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강준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긴장한 탓에 잠시 잊었지만.
 
 “으윽!”
 
 화살이 박힌 팔뚝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피도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 이걸 어쩌냐?”
 
 이대로 두면 고통은 더 심해질 텐데 응급처치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사이 다시 413호에서 튀어나온 쥐머리 원숭이들로 인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쿠아아아!”
 “키키키키!”
 
 시뻘건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놈들의 숫자는 무려 셋.
 놈들은 모두 몽둥이를 쥔 상태다.
 
 “젠장!”
 
 강준은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고시원 복도의 벽을 평지처럼 딛고 달려오던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가 강준의 몽둥이에 맞아 터졌다.
 
 “케엑!”
 
 쥐머리 원숭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3노드를 얻었습니다.]
 
 그 사이 반대쪽 벽을 타고 달려온 쥐머리 원숭이가 휘두른 몽둥이가 강준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강준은 다급히 왼팔을 들어 막았다.
 
 퍽!
 
 “크윽!”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뼈가 부러진 것 같다.
 화살에 박혀 이미 고통이 극심한 왼팔이다. 거기에 몽둥이까지 맞았으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강준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방금 전 일부러 왼팔을 희생했다. 몽둥이를 쥔 오른팔은 건재해야 하니까.
 
 퍽!
 
 “꾸악!”
 
 강준의 몽둥이에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가 박살났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노드를 얻었습니다.]
 
 경험치와 돈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걸로 기뻐할 때가 아니다.
 아직 한 놈이 남았다.
 
 “키아아아!”
 
 순간 강준의 왼발이 전방에서 달려드는 쥐머리 원숭이의 턱을 올려 찼다.
 
 “켁!”
 
 쥐머리 원숭이가 뒤로 나가떨어졌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 사이 성큼 두 걸음 걸어간 강준은 몽둥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끄윽!”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가 함몰되어버렸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노드를 얻었습니다.]
 
 강준은 숨을 몰아쉬며 그 사이 혹시 또 다른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은 없다.
 그러나 안심은 이르다.
 저 정체불명의 413호 안에 또 몇 마리의 쥐머리 원숭이가 우글대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뚝. 뚝.
 
 왼팔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바닥을 홍건하게 적셨다.
 강준은 치가 떨리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으! 젠장!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생명력 47/90
 
 왼팔의 부상 때문인지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1단계 거점 건설 중 48%]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사이 거점이 48퍼센트 완성됐다는 것.
 거점만 완성되면 어떻게든 살 길이 생길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
 
 그러던 강준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어? 저건?’
 
 마지막으로 해치운 쥐머리 원숭이의 사체 옆에서 뭔가가 환하게 반짝였다.
 붉은 빛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
 
 ‘뭐지? 설마 포션인가?’
 
 게임에서 많이 봤던 포션의 형태다.
 혹시나 싶어 재빨리 다가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최하급 생명력 회복 포션]
 [복용시 40포인트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오!’
 
 이럴 수가! 정말로 포션이었다.
 그것도 생명력 회복 포션!
 행운 스탯의 위력이 또 빛을 발휘하는 건가?
 그렇다면 주저할 필요가 있을까?
 
 벌컥! 벌컥!
 
 강준은 즉시 마개를 딴 후 포션을 마셨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쑤욱ㅡ
 
 왼 팔뚝에 박혀 있던 화살이 저절로 빠져나오더니 팔뚝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팔이 멀쩡해졌어.’
 
 죽을 것 같이 아팠던 고통도 사라졌다.
 약간 욱신거리는 걸 빼고는 거의 정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생명력 87/90
 
 그 덕분에 생명력도 거의 회복되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겠군.’
 
 포션 하나 마셨는데 화살이 저절로 빠진다?
 세상에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하긴 이곳은 꿈같은 환몽의 세계이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쨌든 정말 다행이다.
 그 상처를 병원에 가서 치료하려면 끔찍했을 테니까.
 
 ‘휴! 이제야 좀 살겠구나.’
 
 조금 전의 그 몸서리처지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또 화살에 맞지 않게 조심하자.’
 
 강준은 주변을 날카롭게 쓸어봤다.
 생명력이 회복됐지만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
 아직 거점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그 놈들이 또 나타날지 몰라.’
 
 아니나 다를까.
 
 콰당!
 
 413호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쿠아아아아ㅡ!”
 
 귀를 찢을 듯한 소리에 고시원 전체가 흔들렸다.
 
 ‘으! 뭐냐? 저건?’
 
 강준은 흠칫 놀랐다.
 형상은 쥐머리 원숭이와 같았다.
 그런데 그것의 신장이 무려 2미터가 넘었다.
 
 ‘저 녀석이 두목이라도 되는 건가?’
 
 강준의 키는 187cm로 꽤 장신에 속하는데 그런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몬스터라니.
 다름 아닌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등장이었다.
 
 “쿠아아아아아!”
 
 그것은 입을 쩍 벌리고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시뻘건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왔다.
 
 “제길! 와라!”
 
 강준은 몽둥이를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피할 수는 없다.
 죽기 살기로 싸워보는 수밖에!
 
 쿵! 쿵! 쿵!
 
 두목 쥐머리 원숭이는 덩치에 걸 맞는 커다란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휭! 휘잉!
 
 통나무처럼 두꺼워 보이는 몽둥이!
 강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피했다.
 
 ‘저거 한 대라도 맞으면 끝장이야.’
 
 천만다행인 것은 이곳이 고시원 복도라는 사실.
 비좁은 복도에서 저처럼 기다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쾅! 콰앙!
 
 역시나 몽둥이는 낮은 천장과 복도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틈을 노린 강준은 재빨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퍽!
 
 강준의 몽둥이가 정확히 머리를 가격했지만 두목 쥐머리 원숭이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쿠아아아아!”
 
 그것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몽둥이를 집어던지더니 양손으로 강준을 번쩍 들었다 내동댕이쳤다.
 
 콰앙!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크윽!”
 
 강준은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재빨리 뒤로 구르며 일어났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팠다.
 
 ‘으! 죽겠구나. 엄청 빠른 놈이네.’
 
 아무리 민첩이 하락한 상태라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당할 줄이야.
 
 쉬익!
 
 또 다시 양손이 바람같이 날아들었다.
 
 ‘이크!’
 
 미리 대비하고 있던 터라 강준은 잽싸게 피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죽엇!”
 
 퍽! 퍽!
 
 가슴과 머리를 한 대씩 강타!
 그러나 두목 쥐머리 원숭이는 끄덕도 하지 않고 오히려 양손으로 강준의 몽둥이를 움켜잡았다.
 
 “으윽!”
 
 강준이 몽둥이를 빼려 했지만 무슨 콘크리트에 고정이라도 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청난 괴력!
 무식하다. 도저히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녀석이었다.
 
 “키키키키!”
 
 두목 쥐머리 원숭이는 비릿한 조소를 흘리더니 힘을 주어 몽둥이를 빼앗아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양 손을 번쩍 들어 강준을 움켜쥐려 했다.
 순간 강준의 오른발이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복부를 찼다.
 
 팍!
 
 동시에 강준의 왼발이 회전하며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복부를 다시 강타했다.
 
 퍼억ㅡ!
 
 첫 번째 공격은 맛보기에 불과했고 두 번째 공격이야 말로 진짜였다.
 체중을 실어 전력을 다한 일격!
 
 “꾸억!”
 
 두목 쥐머리 원숭이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밀려났다.
 강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퍽! 퍼억!
 
 그의 양 발이 어지럽게 공간을 가르며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옆구리와 안면을 마구 강타했다.
 
 “죽어랏!”
 
 태권도 발차기의 현란한 테크닉!
 한낱 몬스터 따위가 그것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두목 쥐머리 원숭이는 비틀거리기만 할뿐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양손을 번쩍 움직여 자신의 안면으로 날아든 강준의 오른발을 움켜쥐고 말았다.
 
 ‘제, 제길!’
 
 저 괴력의 몬스터에게 발이 붙들리다니.
 자칫하면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긴장한 강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회전시키며 왼발로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턱을 올려 찼다.
 
 퍽!
 
 “꾸어억!”
 
 제대로 맞았는지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목이 뒤로 꺾였다.
 그 충격에 강준의 발을 놓고 비틀거렸다.
 
 ‘기회다.’
 
 강준이 훌쩍 도약해 양 발로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가슴을 밀어 찼다.
 
 콰당!
 
 커다란 덩치가 뒤로 넘어갔다.
 강준은 그 즉시 몽둥이를 집어 들고는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퍽! 파직!
 
 ‘아, 이런!’
 
 몽둥이가 부러져버렸다.
 강준은 잽싸게 다른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 두목 쥐머리 원숭이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강준은 필사적으로 몽둥이를 내리쳤다.
 
 퍽퍽! 퍼퍼퍽!
 
 지금을 놓치면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혼을 빼놓아야 한다.
 감히 반격은 꿈도 꾸지 못하게 말이다.
 죽어라! 죽엇!
 
 퍼어억ㅡ!
 
 “꾸아아아악!”
 
 급기야 뭔가가 크게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12노드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치웠다. 그리고 드디어!
 
 “오오!”
 
 강준은 경험치에 이어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를 보고 환호했다.
 Level Up!
 두목 몬스터답게 대량의 경험치를 준 것이다.
 
 이강준
 Lv.2(Exp 05.00%)
 [전쟁] 초급
 생명력 110/110
 흑마력 0/170
 근력 5
 민첩 6
 지능 3
 행운 6
 카리스마 8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하며 근력, 민첩, 지능이 각각 1포인트씩 올랐다.
 그러나 행운과 카리스마는 그대로였다.
 
 ‘역시 설명대로군.’
 
 강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행운과 카리스마는 사실상 고정 스탯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미리 올려두기 천만 다행이었다.
 근력과 민첩, 정신이 오른 덕분인지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신체의 컨디션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정신도 맑아졌다.
 상태창을 살펴보니 생명력과 흑마력의 최대치도 상승했다.
 다만 생명력은 최대치까지 회복된 반면, 흑마력은 여전히 0포인트 그대로다.
 
 ‘뭐냐? 어째서 흑마력은 차지 않는 거지?’
 
 레벨이 오르면 흑마력도 당연히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어째서 그대로인 것일까?
 그러한 의문을 가지는 순간 강준의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흑마력은 레벨 업을 통해 회복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흑마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알고 있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미 사람들의 기력을 흡수하며 흑마력을 채웠으니까.
 
 ‘뭐야? 설마 그 방법뿐인가?’
 
 그렇다면 환몽의 세계에서는 흑마력을 채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환몽의 세계에서도 흑마력의 회복이 가능하지만 아직 당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안 된다니 어쩔 수 없지.’
 
 강준은 혹시나 싶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사체를 살펴봤다.
 명색이 두목 몬스터인데 뭔가 드랍한 것이 없나 해서다.
 
 ‘생명력 회복 포션이라도 하나 없나?’
 
 아니나 다를까, 두목 쥐머리 원숭이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에서 뭔가가 반짝였으니!
 
 ‘오! 역시!’
 
 득템이다.
 둘둘 말아진 천 두루마리!
 
 ‘이게 뭐지?’
 
 뭐 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강준은 두루마리를 묶어놓은 끈을 풀고는 그것을 쭉 펼쳤다.
 
 화악!
 
 순간 두루마리로부터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라티안은 작지만 빠르고 교활하다. 자이언트 라티안은 힘이 세며 포악하다······.]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쭉 이어지더니.
 
 [라티안에 대한 하급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라티안? 하급 지식이라고?’
 
 강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뭔가?
 
 [라티안에 대한 하급 지식을 습득한 당신은 앞으로 그것들을 상대하는데 유리해졌습니다.]
 
 ‘오! 이런 거였나?’
 
 강준의 안색이 밝아졌다.
 쥐머리 원숭이들의 정체는 라티안.
 즉, 강준은 라티안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이다.
 
 [라티안에 대한 당신의 전투력이 10% 상승합니다.]
 [라티안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5% 상승합니다.]
 
 이건 대박이다.
 물론 쥐머리 원숭이 즉, 라티안에 한정되긴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보다 고급 지식을 얻기 위해서 라티안과 전투를 많이 수행하십시오.]
 
 ‘그렇군.’
 
 하급 지식이 이정도면 이보다 상위의 지식을 얻으면 어느 정도일까?
 그거야 라티안들을 계속 해치우다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저 안에 또 라티안 놈들이 있겠지?’
 
 강준은 몽둥이를 움켜쥐고 413호 앞에서 대기했다.
 
 ‘놈들이 다시 또 튀어나올 테니 이 앞에서 기다렸다가 뭉둥이를 휘두르는 거야.’
 
 그렇게 하면 보다 손쉽게 라티안들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은 문밖으로 나오는 순서대로 머리가 박살나 쓰러질 테니까.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뭐냐?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눈치 챘나?’
 
 강준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413호의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진입할 수 없습니다.]
 [진입을 원한다면 413호를 당신의 권역으로 만드십시오.]
 
 406호와 달리 413호는 강준이 돈을 내고 계약한 방이 아니다.
 다시 말해 413호에 들어가고 싶으면 강준이 꿈에서 깬 후 그 방을 계약해야 가능하다는 뜻.
 그렇게 되면 다시 환몽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413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미친! 돈이 남아 도냐?’
 
 돈을 아끼기 위해 25만 원짜리 저렴한 고시원 방에서 살고 있는 강준이다.
 그런데 406호에 이어 413호까지 계약한다면?
 합치면 한 달에 무려 50만 원!
 그 돈이면 차라리 다른 시설 좋은 고급 원룸텔을 얻는 게 나으리라.
 물론 상식적으로만 따져보면 그렇다는 거다.
 현실과 환몽의 세계가 연결된 지금은 비상식적이어 보이는 생각도 할 필요가 있다.
 즉, 413호를 계약해 권역으로 만들어두면 뭔가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들어갈 수 없으니 할 수 없지. 이 앞에서 기다려야겠군.’
 
 잠시 지났을까?
 
 쿠당!
 
 드디어 413호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덩치의 쥐머리 원숭이!
 다름 아닌 자이언트 라티안!
 
 “죽엇!”
 
 바로 이때를 위해 기다렸다.
 
 퍽퍽!
 
 강준은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러 자이언트 라티안의 머리를 후려쳤다.
 
 “쿠으으으!”
 
 자이언트 라티안이 비틀거리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강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훌쩍 도약하며 양발로 자이언트 라티안의 가슴을 밀어 찼다.
 
 콰당!
 
 자이언트 라티안이 뒤로 넘어갔다.
 강준은 따라붙으며 몽둥이를 미친 듯 내리쳤다.
 
 퍽퍽! 퍽퍽퍽ㅡ
 
 “꾸아아아악!”
 
 자이언트 라티안이 비명을 지르며 축 늘어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12노드를 얻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상승한 근력과 민첩!
 그리고 라티안에 대한 하급 지식이 주는 전투력 상승효과의 위력!
 아까와 달리 강준은 자이언트 라티안을 비교적 손쉽게 해치웠다.
 그러나 강준은 그에 기뻐하기보다 두 눈에 힘을 주고 413호를 노려봤다.
 혹시라도 라티안이 또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쿠아아아아!”
 
 또 다시 방문이 활짝 열리며 자이언트 라티안이 튀어 나왔다.
 퍽! 퍼퍽!
 강준은 같은 방식으로 자이언트 라티안을 쓰러뜨린 후 그것의 머리를 박살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14노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쓰러진 자이언트 라티안의 옆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오! 저것은?’
 
 살펴보니 두툼해 보이는 책이었다.
 
 ‘한글로 써져 있네.’
 
 뜻밖에도 책 제목이 한글로 써져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손님 끌기(하급)
 
 ‘손님 끌기?’
 
 엉, 이건 또 뭔가?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봤지만 틀림없었다.
 
 ‘이건 진짜 책이잖아?’
 
 자이언트 라티안이 설마 책을 드랍할 줄이야.
 설마 이 책을 읽고 공부라도 하라는 건가?
 강준은 무의식적으로 책장을 펼쳤다.
 그 순간.
 
 화아아악!
 
 책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와 강준의 머리로 스며들었다.
 
 파스스스ㅡ
 
 동시에 책은 이내 먼지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손님 끌기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오게 만드는 스킬입니다. 당신은 이 스킬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장문의 내용들이 빠른 속도로 머리를 스쳐 가는가 싶더니.
 
 [당신은 경영 스킬인 손님 끌기를 배웠습니다.]
 
 ‘오오! 스킬이다!’
 
 강준은 쾌재를 불렀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치기만 했는데, 스킬을 습득할 줄이야.
 그것도 경영 스킬을!
 
 ‘이걸 펼치면 손님을 끌 수 있다는 건가?’
 
 정말로 그렇다면 돈을 버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그의 시야에 나타난 또 다른 반가운 메시지.
 
 [거점 건설 100%]
 [406호에 거점이 완성되었습니다.]
 
 ‘드디어!’
 
 거점이 완성되었다.
 강준은 자신의 방인 406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미션 2가 완수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가 주어져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꿈결처럼 몽롱하게 시야에서 아른거리는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강준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으음!”
 
 눈부신 광채가 시야를 가렸다가 사라진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장소에 누워 있었다.
 
 “여, 여긴?”
 
 허름한 싱글 침대 위.
 강준은 벌떡 일어났다.
 406호.
 고시원 방이다.
 손에 쥐고 있던 라티안의 몽둥이는 사라진 상태.
 복장은 잠들기 전 입었던 간편한 추리닝 차림.
 
 “뭐야? 꿈이었나?”
 
 정말로 꿈을 꾼 기분이다.
 강준은 라티안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도, 거점이 완성된 것도 그냥 꿈처럼 느껴졌다.
 물론 기분만 그렇다는 얘기다.
 당연히 지난밤의 일들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환몽의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졌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현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12시 30분!
 새벽 5시에 잠들었으니 대략 7시간 반 정도를 잤다.
 라티안들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 현실에서도 시간이 흐른 것이다.
 
 “하암! 어쨌든 잘 잤다.”
 
 강준은 기지개를 폈다.
 환몽의 세계에서 벌어졌던 일과 별개로 몸은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지 무척 개운했다.
 
 [환몽의 문은 3일 후에 열립니다.]
 [흑마력 100이 소모되니 그 전에 충분히 흑마력을 채워두십시오.]
 [흑마력 0/180]
 
 ‘3일 후에?’
 
 매일 열리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한편으로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지만 매일 밤 환몽의 세계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건 끔찍한 일.
 앞으로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일단 3일에 한 번이면 하루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되, 그 후 이틀은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테니까.
 
 이강준
 Lv.3(Exp 00.00%)
 [경영] 초급
 생명력 130/130
 흑마력 0/180
 근력 6
 민첩 7
 지능 4
 행운 6
 카리스마 8
 
 그 사이 상태창이 허공 한쪽에 떠올라 있었지만, 그것이 시야를 방해한다거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았다.
 마치 본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미션 수행 보상으로 레벨이 한 단계 올라 Lv3.
 
 [스킬]
 ㅡ손님 끌기(하급) : 소모 흑마력 10
 
 게다가 손님 끌기 스킬에 대한 것도 보였다.
 
 ‘한 번 펼치는데 흑마력 10이 필요하군.’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강준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
 육체가 재구성되며 정상으로 회복된 다리가 현실에서도 그 상태를 유지할 줄이야.
 강준은 벌떡 일어났다.
 설마 아직도 꿈속인가?
 아니다.
 분명 꿈이 아닌 현실이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말 믿기지 않는다.
 강준은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도 보고 양발을 번갈아 올려 차보기도 했다.
 
 “하하하! 멀쩡해! 정말로 멀쩡하다고!”
 
 방안에서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는 강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보상조차 받지 못했던 뺑소니 사고로 인해 불구가 된 한쪽 다리.
 그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그로 인해 얼마나 좌절에 빠졌던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시절.
 그러나 이젠 아니다.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불구가 되어보지 않은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강준은 문득 벽의 거울에 자신의 머리를 비쳐봤다.
 
 “아······!”
 
 이럴 수가!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이후에 시작된 탈모!
 그것은 점점 심해졌고 최근에 그의 머리는 가히 대머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벗어졌다.
 누구라도 뒤에서 그의 머리를 보면 노인을 연상케 할 만큼 말이다.
 그런 그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가득 자라나 있었다.
 그것도 신비한 은빛의 머리카락들이!
 
 “은발······?”
 
 자세히 보니 은발은 은은한 하늘빛을 띠었다.
 한 올 한 올 무슨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듯하다.
 
 “허허······.”
 
 강준은 기쁘다 못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일인가?
 
 ‘강준 오빠! 내가 아무데서나 모자 좀 벗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니까 오빠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머리만 좀······. 그래, 가발 쓰는 게 어때요?’
 ‘요즘 가발 아주 잘 나와요. 그럼 여자들이 오빠 좋아할 걸요. 내 친구 소개시켜줄 수도 있어요.’
 ‘나 같으면 그냥 가발 쓰겠다.’
 
 그동안 여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녀들은 물론 강준을 뭔가 위로해준다고 했던 말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만 되었을 뿐.
 그러나 이제 그런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말들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신비로운 은발의 소유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거 너무 튀지 않을까?’
 
 물론 은발은 당연히 튈 것이다.
 헤어로 따진다면 웬만한 월드 스타 못지않은 포스가 느껴질 테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은 쳐다볼 것이다.
 
 ‘젠장! 또 모자를 써야 하나.’
 
 강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어디서나 남들의 시선을 모은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설령 그것이 혐오의 시선이 아닌 부러움과 경탄의 시선일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강준은 가능하면 모자를 쓰지 않기로 했다.
 항상 무슨 죄인처럼 모자를 쓰고 살았는데, 또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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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자까님이네여
2017.07.22 13:55
다크라이    
그냥저냥 킬링타임으로보기에 괜찮은 소설.
2017.07.26 12:05
아아웅    
너무 성의없이 쓴글
2019.03.03 15:50
글리세린    
일괄대여 아니었으면 절대 안봤을.. 4권부터는..스크롤 죽죽 내린..
2019.03.04 08:16
노애    
은발이라니... 갈치 비슷한걸 머리에 얹고 있는건가...
2021.02.16 09:46
n2************    
죄송합니다 작가님 너무 재미가 없어요 다른분들이 다른 작품 하차해도 쭉 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요 처음에는 흥미 있었는데 흑마력 얻고 별 감정이 못 받네요 다음 작품 있으면 더 좋은 작품 보고싶네요 이런 댓글 남겨서 죄송합니다
2022.02.11 23:29
ra******    
그래도 끝은 봐야지했는데.. 5권에서 하차하네요 잘생각해보고 구매하세요
2022.02.16 16:23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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