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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엔드 1화

2017.02.13 조회 9,234 추천 114


 “CNN입니다. 뉴욕, 라스베이거스, 애틀랜타에서 전신에서 검은 피를 쏟아 내며 죽은 환자들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으며 신종 바이러스 질환으로 추정 중입니다. 감염성이 있을 수 있으니 인근 주민들은······.”
 “두바이에서 검은 피를 토해 내며 죽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현지 의사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며······.”
 “영국에 이어 북경,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검은 피를 흘리며 죽은 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미 국토안보국과 UN은 이 질환을 데드 블러드라 명명하며 생화학 테러 여부를······.”
 “삿포로, 히로시마, 이스탄불에서도 데드 블러드 환자가 다수 발생했으며 데드 블러드가 상처에 들어간 사람도 감염됨을 확인했고······.”
 『데드 블러드 감염자 확대 중!』
 『현재까지 사망률 100%, 치료 방법 없어······.』
 『전 세계 감염률 29% 추산. 계속해서 증가 중.』
 『뉴욕 감염률 79%. 도시 기능 마비.』
 『러시아, 계엄령 선포!』
 『미 대통령 핵무기 승인까지 카운트다운!』
 『이스탄불 감염률 90%에서 내전 발발!』
 『일본 감염률 98%. 사실상 국가 기능 정지!』
 『뉴욕, 라스베이거스, 애틀랜타에 핵무기 투하!』
 『미국, 감염 저지 실패. 시애틀을 비롯한 전 지역에 데드 블러드 확산 중.』
 “속보입니다. 데드 블러드 발생지가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공항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 국토안보국은 특수 부대를 파견해 감염원을 조사키로······.”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생존자는 지하 대피소나 높은 산으로 올라가······.”
 『전 세계 감염률 97%. 인류, 이대로 멸망하는가?』
 “마지막 방송입니다. 아직 이 뉴스를 보고 계신 여러분. 모두 생존하십시오. 구원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 * *
 
 “거참 드으럽게 춥군. 오, 이곳은 남극이니 당연한 건가? 하하. 독일 아자씨들이랑 있다 보니 이상한 농담이 늘어 버렸네. 다들 잘 있었지? 블리자드 때문에 쪼끔 늦었어.”
 손태환은 펭귄 마을이 있는 나레브스키로 낚시를 갔다가 그만 눈보라를 만나서 근처에 있는 독일 관측 기지로 며칠간 피신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세종 기지로 돌아오는 데 며칠이 더 걸렸고 누가 뭐랄까 봐 혼자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생활관동의 외부 덧문을 닫고 안쪽 문으로 들어 왔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거참 싸람들 섭하네. 다들 대답도 안 하는 겨? 아무튼 독일 아자씨들이 소시지랑 스팸 깡통을 가져가라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팸을 좋아하는 게 이상하다나?”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무안해진 손태환은 반사적으로 더욱 너스레를 떨었다.
 “뭐야, 내가 좀 딴 데 가서 길게 있었다고 삐진 거야, 다들? 무전으로 말했잖아? 낸들 그렇게 오래 못 올 줄 알았냐고? 그냥 낚시 좀 하다가 바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웬걸, 좀 지독한 블리자드를 만났어야지. 거기다가 스노모빌이 또 고장 나서 애를 먹었다고. 이놈의 배터리는 먹통이지, 블리자드는 그칠 생각이 없지. 독일 아자씨들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다니까?”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손태환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눈을 탈탈 털었다. 보통 외부 덧문만 열려도 삐로리- 하는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눈을 털다 말고 안쪽을 쳐다봤다.
 “잠깐······ 불은 왜 죄다 꺼 놓고 다들 뭐 하는 거? 설마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낸장할 내 생일도 아니지만 그런 거 당해도 한 개도 안 기쁘다고. 어이, 이봐요들?”
 안쪽 문 유리창은 새카맸고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세종 기지는 과학 기지였고 어떤 경우에도 전원이 전부 정지하는 일이 없었다. 과학 기지가 아니더라도 남극에서 전원이 전부 정지하면 얼어 죽었다.
 “아아, 환장하겄네. 또 발전기 해 먹은 거여? 아니, 그래도 예비 전력이 있을 텐데? 설마 또 고전력 기기 사용하다 뻑난 건가? 과학자 양반들은 우리 엔지니어들의 고생을 도무지 모른다니까. 당신들 제발 작작 좀 하라고.”
 엔지니어로 남극에 온 손태환은 또 발전기가 고장 난 거라고 생각했다. 모종의 이유로 발전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손태환뿐이라 더더욱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겉옷에 붙은 얼음 조각까지 알뜰하게 털어 낸 후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니, 쏴람들아. 발전기가 고장 났으면······.”
 손태환이 안쪽에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춥다’는 거였다. 퍼뜩 일주일 전 낚시 및 탐험을 떠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월초라 칠레에서 배편을 통해 충분한 유류를 보급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발전기가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전기와는 상관없는 석유난로나 난방 시설은 돌아가야 했다.
 “······.”
 그는 장갑을 벗고 꽝꽝 언 음료수병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는 병에서 흘러나온 물이 얼어서 빙판처럼 되어 있었고 과학동에서 가져온 휴대용 탐측 장비 몇 개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세종 과학 기지에 파견된 과학자들은 자신의 몸이 얼어붙는 한이 있어도 컴퓨터나 장비를 얼리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엔지니어인 손태환과 자주 부딪히는 이유도 언제나 전기와 장비 때문이었다. 시설이 노후화 된 탓인지 과학동으로 가는 전기 라인이 말썽이었고 그때마다 과학자들은 손태환에게 달려와서 난리를 피웠다. 세종 기지는 과학 기지였고 여기에 온 사람들은 남극 관광 온 것이 아니었다. 왠지 손태환은 얼어붙은 실내를 보면서 소름이 좍 돋는 것 같았다.
 “젠장······ 재미 하나도 없는데 이딴 웃기지도 않는 깜짝쇼는 집어치워 주시지? 대장님! 현수 형!”
 손태환은 반사적으로 펜 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이곳의 상황이 흡사 괴담집에 나오는 ‘필라델피아 실험’에 나오는 이야기 같았다. 사람들이 사라진 배에는 방금 식사를 하려한 흔적이 남아 있고 사람만 뿅 하고 사라져 버린다. 바로 이곳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테이블에는 한국에서 공수한 군것질 따위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고 저쪽에는 술안주로 쓰려고 했는지 갓 딴 통조림이 땅땅 얼어 있었다. 마치 얼음의 여왕이 휩쓸고 간 듯 사람들이 있던 흔적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
 “내가 휴가를 받는다니 그렇게도 싫었던 거야? 이봐요들! 당신들 좋아하는 소시지도 받아 왔다고! 대장님? 대장님! 충분히 놀랐으니 그만하시죠!”
 가장 무서운 것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손태환이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이 생활관동이었고 이곳에는 비번인 사람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했다. 아무리 서프라이즈 파티를 계획했다고 해도 세종 기지의 특성상 그렇게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자신이 언제 돌아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블리자드가 끝나고 언제 복귀할지 알고 모든 전기를 내린 채 ‘장시간’ 대기한단 말인가.
 “현수 형! 장난치지 마! 나 놀래 준다고 밥도 안 짓고 있던 건 아니지? 그건 말도 안 되잖아!”
 김현수는 세종 과학 기지의 요리사였다. 벌써 시간은 점심때였고 적어도 요리사 김현수는 이곳에 있어야 했다. 손태환은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어붙은 실내.
 어디론가 사라진 사람들.
 ······.
 손태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일단 식당으로 가 보자.”
 손태환은 침을 꿀꺽 삼키고 역시 냉기가 느껴지는 식당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뭔가 붉은 머리통 같은 것이었다. 손태환은 깜짝 놀라서 뒤로 몸을 기댔다.
 “뭐, 뭐야. 포기김치?”
 얼핏 피 묻은 사람 머리통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아직 칼로 자르기 직전의 포기김치였다. 손태환은 조리대 주변을 플래시로 훑다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저 밖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온통 땅땅 얼어 있었다.
 주방의 분위기는 특식을 준비하기 직전 같았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있을 때는 비번인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거나 좀 더 특식을 먹는 경우가 있었다. 저 뒤에 바비큐용 그릴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고기를 먹을 때 곁들이기 위해 자르려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전기가 끊어지고 사람들이 사라진 건 저녁일 확률이 높았다. 탐측하고 분석할 게 많은 대낮부터 고기를 굽고 하는 일은 없었다. 바깥에 나뒹구는 1.5리터짜리 소주병 역시 일과가 끝난 저녁에 일이 벌어졌다는 걸 뒷받침하고 있었다.
 “······일단 불부터 켜자. 불 꺼 두니 더 무섭네.”
 손태환은 엔지니어인 만큼 어디를 손봐야 할지 알고 있었다. 좀 무섭긴 했지만 적어도 이렇게 추위와 무서움에 덜덜 떠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는 조심스레 생활관동의 전원 패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블리자드 때문에 다른 기지로 피신한 건가?”
 손태환은 자신의 발목을 잡은 그 엄청난 블리자드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예전 이 남극 세종 기지가 틀을 잡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세종 기지는 생활관동과 과학 1, 2동을 포함한 17개동 이상의 건물로 이뤄진 거대 기지였다.
 또한 생활관동 역시 최신 장비로 꾸며진 곳이라 만약 이곳이 그 블리자드로 절단 났다면 손태환이 잠시 몸을 피신한 독일 관측 기지가 먼저 작살났어야 했다.
 “블리자드 때문은 아니란 건데······.”
 손태환은 조심조심 생활관동의 관리실 문 앞에 섰다. 그 순간 안에서 뭔가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손태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다시 알겠다는 듯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이 쏴람들······ 하여튼 신참 골리기는 너무 잘한다니까? 난 이제 신참도 아닌데······ 안 무서우니까 엽니다?”
 벌컥 문이 열리고 손태환은 비명을 지를 정신도 없이 뒤로 넘어졌다. 안쪽에는 방한복을 입은 시체가 쓰러져 있고 누군가가 그 위에서 오독오독 손가락을 뜯어먹고 있었다.
 손태환은 깜짝 놀라서 펜 라이트를 떨어트려 버렸고 시체를 뜯어먹는 누군가의 발치만이 비쳤다.
 “이······ 이봐요. 자, 장난이라면 너무 심한······.”
 손태환이 더 말할 사이도 없었다. 갑자기 실루엣만 보이는 누군가가 확 하고 손태환에게 달려들었고 뒤로 우당탕 넘어졌다. 스노모빌을 타고 밖에서 복귀한 데다 난방이 끊겨 있어 두꺼운 방한복을 벗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팔목에서 콱 하고 깨무는 촉감이 느껴졌다.
 “뭐, 뭐야! 왜 무는 건데! 염병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두꺼운 방한복이었지만 누가 엄청난 힘으로 문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손태환은 뒤로 넘어진 충격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 저도 모르게 위에 있는 사람을 세게 밀쳤다. 다시 어둠 속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고 밀쳐진 사람은 어디론가 처박혔다.
 “아무리 서프라이즈라도 이건 정도가 좀······!”
 손태환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방금 전의 격투로 튕겨 나간 펜 라이트가 관리실 안에 있던 시체를 비춘 것이다.
 “대, 대장님?”
 누가 봐도 그건 대장님의 시체였다. 눈알은 빠져나왔고 얼굴은 땅땅 얼어붙어 있었다. 동상에 걸린 것처럼 표정이 새파란 것이 딱 봐도 얼어 죽은 시체였다. 방한복 덕분에 얼어붙지 않은 배에서는 영화 에일리언처럼 내장들이 튀어나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장난? 서프라이즈? 이건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사람 시체였다.
 “화, 환장하겄네······ 이, 이게 무슨 지랄이야?”
 누구에게 물어볼 사이도 없었다. 손태환이 내던진 녀석이 어느새 머리맡으로 기어와서 끼에엑 하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손태환은 방한복을 입고 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아아!”
 그는 잽싸게 펜 라이트를 잡고 일어서서 냅다 발로 킥을 먹였다. 다시 꾸엑 소리와 함께 우당탕 소리가 나고 손태환은 그 정체불명의 뭔가를 펜 라이트로 비췄다.
 “하, 한영 씨?”
 이한영. 비슷한 20대 후반이라 제법 친해진 기상청의 직원 아가씨였다. 얼굴도 곱상하고 제법 남자다운 구석도 있어서 간간히 술도 마시고 제법 친해진 사람이었다. 어쩌면 한창 때인 손태환도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이 남극에 왔으니 인연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반쪽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고 방한복 대신 푸르딩딩한 살결이 무슨 외계인을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손태환을 놀라게 했던 건 이한영의 가슴에 박혀 있는 각목 조각이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큰 각목 조각이 찔려 있는데도 살 수는 없었다. 이 여자 역시 시체였다.
 걸어 다니는 시체.
 그 순간 손태환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뿐이었다.
 “좀······ 비?”
 남극에 있는 손태환으로서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단어였다. 남극에 좀비라니? 손태환이 어이가 없어하는 것도 잠시, 좀비가 된 이한영이 낮게 그르렁거리면서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맹수가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댓글(11)

옐로우보이    
시작이 멋지군요^^
2017.02.26 22:05
난독    
현실감각 1도 없는 주인공이네요 이쯤이면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끼지 못하는건가? 지능수준을 의심해바야 할정도네요
2017.10.31 15:55
금요일.    
꺄악...2부 나오는 건가요??? 꺄악!!!느므 좋아!!!
2017.11.22 17:36
hwanx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줜공 같네요.
2017.11.28 15:44
인천짱둥어    
지금부터 정주행 하겠으요!
2017.12.16 13:14
Mustio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18.01.07 23:25
[탈퇴계정]    
남극기지에서는 뉴스도 안보나요?
2018.01.19 09:43
혓바늘    
소재는 좋으나 필력이...
2018.04.23 00:35
마스터컷    
남극에서 좀비가 돌아다닐수 ㅣ있을까 의문이네 ㅋ
2018.08.19 18:32
[관리자]    
일본기준 98% 전멸이면 누가 생존자 집계하고 누가 보고해서 뉴스를 내보내는가?
2021.08.0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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