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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7.02.21 조회 2,520 추천 39


 프롤로그
 
 
 
 “오오! 다 됐다. 다 됐어!”
 사이크는 힘겹게 완성시킨 아이템의 능력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움에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이 작은 것 하나를 얻기 위해 고생한 시간이 짧지 않았다.
 한참 즐거워하던 사이크는 뒤늦게 자신을 기다리던 헬파를 떠올리곤 그에게 완성된 아이템을 보여 주며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사이크의 미소에 그가 아이템을 제작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헬파는 그저 그를 따라 웃었다.
 헬파가 기뻐하는 이유는 지루한 기다림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동료이자 유일한 친구인 사이크가 만족하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다.
 누군가가 그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단순하다 못해 멍청하게 손해 본다고 할 수 있지만 헬파는 그런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리얼 월드에서 아주 드물게 솔로로도 다른 파티를 압도하는 사냥 능력 갖고 있음에도 지루함을 감수하며 사이크의 옆자리를 지킬 정도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하더라도 사이크와 함께 있는 순간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와 같이 있으면 적어도 단 하나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독.
 자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앞에 있는 친구가 알려 줬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사이크가 기뻐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도와줘 재료를 다 모았다는 것을 고마워하는 사이크의 행동까지 모두 다.
 헬파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은 단순하다.
 자신은 멍청하다.
 그렇기에 많은 것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다. 쉽게 사람을 믿어 왔고 그로 인해 그들의 손에 놀아났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을 동료라고 말하던 이들이 등에 칼을 꽂으려 할 때가 되서야 알게 됐다.
 자신을 죽이려 하다 실패해 죽음의 앞에서 자신을 괴물이라고 외치며 용서를 비는 이들의 더러운 모습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이 세상, 리얼 월드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러다 그를 바꿔 줄 사이크를 만났다.
 그를 만나 자신은 멍청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고 믿을 이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사이크가 알려 줬다.
 그것을 알게 되며 단 하나 자신의 멍청한 머리로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이크마저 자신을 버린다면 자신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자신이 미쳐 버릴지, 혹은 리얼 월드 초창기에만 존재했던 자살희망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더 이상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헬파가 느끼기에 사이크는 여태까지 그가 겪었던 이들과, 리얼 월드의 플레이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며 사이크가 자신을 위해 몇 번이고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몸을 던졌고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깨달았다.
 과거에는 그것이 고마웠지만 사이크와 함께하며 그 행동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고 배웠다.
 사이크는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도 사이크를 위해서는 몇 번이라도 목숨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슨 멍을 그렇게 때리고 있냐. 으으~ 역시나 제작하는 건 상당히 힘들어. 눈알 빠지는 줄 알았네. 뭐 막연히 기다리는 너는 더 힘들었겠지만 정말로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있어야 쭉빵 누님이랑 다시 한판 해볼 수 있겠지. 일단 익숙해질 겸 몸 좀 풀고 다시 도전하자. 이번에 새로이 얻은 속성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할 것 같다! 너도 컨트롤 연습 좀 했지?”
 이 지독한 리얼 월드에서 정말 보기 드물게도 활기찬 인물들 중 하나인 사이크의 말에 헬파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이야 계속하고 있지. 최종 보스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내 힘이 많이 부족하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 기다리느냐 한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힘 조절이 안 될 수 있으니 너는 알아서 조심해라.”
 “조심은 니가 해야지. 내가 너랑 싸워서 이겼던 거 기억 못 하냐?”
 “야야! 그건 옛날 일이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대련 한 결과로 놓고 보면 거의 비슷하거든!”
 “그건 대련이고. 목숨 걸고 싸운 건 내가 이겼잖아.”
 언제라도 사이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건 되어 있는 것은 있는 거고, 자존심이 걸린 건 별개의 일이라 생각하는 헬파는 곧 사이크와 평소같이 부딪쳤다.
 그들의 대결은 평소라면 몬스터와 조우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띠링!
 [리얼 월드의 최종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유저분들은 현실로 강제 로그아웃이 됩니다.]
 “어?”
 띠링!
 [리얼 월드의 최종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유저분들은 현실로 강제 로그아웃이 됩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는 서로를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사이크는 그 소리에 서둘러 퀘스트 창을 살폈다.
 아직 쓰러트리지 못한 최종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퀘스트는 여전히 미완료였지만 처음부터 물음표로 표기 되어 있던 또 다른 최종 퀘스트가 정체를 드러내며 완료로 떠 있었다.
 또 다른 최종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사이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만일 이것을 알았다면 더 많은 생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퀘스트를 확인했지만 혹시 자신 혼자 헛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눈으로 헬파를 바라봤지만 곧 그의 표정에서 어렵지 않게 모두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얼 월드에서 로그아웃이란 단어는 장난스럽긴 해도 언제나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이크조차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부디 현실에서도 그대들이 얻은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로그아웃을 시작합니다. 30, 29, 28······.]
 끝까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알림에 놀라기는 했지만 바로 정신을 사이크가 헬파를 바라봤다.
 “완전 어이상실이네. 그 고생을 했는데 이런 방법도 있었다니. 어찌 됐든 이 알림이 거짓을 말한 적으니 로그아웃은 되겠지. 갑작스러워서 조금 놀랍긴 하지만 이걸로 일단 리얼 월드에서는 이별이다. 나는 대전에 사는데 너는 어디 사냐? 주소는 잘 기억은 안 나네. 한우리고. 한우리 고등학교, 그 근처에 살았는데. 거기 졸업해서 그곳에서 찾으면 될 거야.”
 믿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플레이어의 특권인 알림이 거짓을 말했던 적은 없기에 사이크는 당장 헬파에게 필요한 자신의 정보를 건넸다.
 헬파가 그를 동료라 생각하듯 사이크 역시 헬파를 둘도 없는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 이 인연을 리얼 월드에서 끝내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전에 말했지만 내 이름은 이준영. 참고로 나는 귀찮아서 절대 찾아가지는 않을 거니까. 보고 싶으면 니가 찾아와라.”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현실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 리얼 월드의 암묵적인 규칙이지만 그것을 일찍이 무시하고 알려 줬음에도 헬파라면 잊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한 사이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자 헬파가 피식 웃었다.
 분명 머리가 나빠 알려 줬더라도 익숙하지 않아 충분히 잊어버릴 수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헬파는 이상할 정도로 사이크의 이름은 잊지 않았다.
 더욱이 사이크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가 했던 말과는 다르게 헬파는 반드시 사이크와 만날 것이다.
 사이크가 자신의 입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하였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찾아가면 되는 일이다.
 헬파 역시 현실로 돌아가 처리해야 할 것들을 처리하고 나면 바로 사이크, 이준영을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듯 더 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찾아갈 것이고 자신이 더 보고 싶을 것이다.
 “만일 진짜로 현실로 간다면 내가 반드시 찾으러간다! 내 이름은 강진호! 서울에 산다. 이곳에서 받은 은혜 그곳에서 반드시 다 갚는다!”
 “니 이름은 전에 들어서 알고 있어. 그보다 서울이라. 그렇게 멀지는 않네. 기차 한 번 타면 가는 곳이잖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양손 무겁게 해서 놀러 와라. 그동안 수고했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별이지만 두 사람은 태연하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치 장난을 치는 것 같은 행동이지만 다시 만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카운트다운이 끝을 알렸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리얼 월드의 곳곳에서 밝게 빛나던 빛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들의 존재도 세계에서 사라졌다.
 모든 리얼 월드 유저들이 사라진 공간.
 아무도 들을이가 없는 공허한 세상에 알림 음이 퍼져나갔다.
 [생존하신 10,071명의 유저분들의 생존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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