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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황군림보 1

2017.04.18 조회 1,590 추천 6


 序章 패황군림보(覇皇君臨步) - 절대무적보법(絶對無敵步法)
 
 
 “스승님.”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손놀림으로 책장을 넘기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백미가 꿈틀거렸다.
 “왜 그러느냐?”
 노인은 제자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 노인의 이름은 추살호(秋煞虎).
 한때 무림제일신족(武林第一神足)과 신도(神盜)로 명성이 드높았던 자다.
 그 누구도 그의 앞을 달릴 수 없었으며 그가 마음먹는다면 세상에 훔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운남의 한 산자락에 초가를 짓고 후학 양성에 힘쓰며 과거와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앞의 소년은 추살호의 하나뿐인 제자인 고단영(高端永)이었다.
 고단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스승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추살호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무엇이더냐?”
 스승과 시선을 마주한 고단영이 말을 꺼내었다.
 “스승님께서는 무림제일신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헌데 어찌하여 경공과 보법을 제외한 다른 무공은 익히지 않으셨습니까?”
 추살호는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다.”
 언제나 듣던 말이었다.
 “그 사정이 무엇입니까?”
 “말 못한다 하지 않았더냐. 네가 심심한가 보구나. 패황군림보(覇皇君臨步)는 다 익히고서 그러는 것이냐?”
 고단영이 움찔거렸다.
 생각해보니 반만 익히고 놀고 있었다.
 “그, 그럼요.”
 고단영은 실눈을 뜨며 추살호의 눈치를 살폈다.
 “정녕 사실이냐?”
 “물론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거짓말을 했다고 고했다간 비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터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추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익혔다면······ 천길 벼랑에서 떨어진다 한들 상처 하나 입지 않을 터, 정말 다 익힌 것이 맞느냐?”
 뭔가 무서운 분위기가 풍겨왔다.
 스승님이라면 정말 벼랑 끝에서 던져버릴지도 몰랐다.
 ‘에라이!’
 거짓말을 해서 맞아 죽으나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으나 매한가지라 여긴 고단영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크게 소리쳤다.
 “네, 맞습니다!”
 그 날, 천길 벼랑 아래서 구슬픈 소년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십 수 년이 흘렀다.
 
 
 第一章 은거기인(隱居奇人) - 가출한 스승과 숲 속의 제자
 
 
 패황군림보(覇皇君臨步)를 익히기 위해서는 총 이백두 가지의 보법을 극성에 이르도록 익혀야만 한다.
 현존하는 백칠십칠 수의 보법, 실전된 이십오 수의 보법을 집대성하여 창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전된 이십오 수의 보법은 모르겠으나, 백칠십칠 수는 무림에 현존하는 문파나 세가의 성문절기이다.
 그렇기에 혹여나 자칫하여 이 사실이 무림에 흘러나간다면······.
 자파의 무공을 도둑맞았다 생각한 무림인들의 성난 칼을 맞을 수도 있음이다.
 혹시나 밖에 나가서 자랑하고 다니지 말거라.
 자칫 무림공적으로 몰려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기 싫다면 말이다.
 - 스승이
 구깃!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즉 가출한 스승이 남긴 서편을 인정사정없이 짓이겼다.
 “이런 젠장.”
 * * *
 쓱쓱.
 인적 없는 깊은 산속.
 고단영은 외로이 홀로 세워진 초가의 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늦가을답게 나무가 벗어던진 낙엽이 끊임없이 날아와 마당을 어지럽혔다.
 “뭔 놈의 낙엽이······.”
 다른 곳은 별로 없는데 이곳에만 많은 낙엽이 쏟아졌던 터라 절로 화가 치밀었다.
 마음 같아서는 홧김에 전부 불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바스락.
 구시렁대며 낙엽을 쓸고 있던 고단영의 검미가 슬쩍 꿈틀거렸다.
 어디선가 낙엽을 밟아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소리.
 하지만 그것은 바람이나 축생의 기척이 아닌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틀림없었다.
 이곳은 절곡이라 불리며, 근 십 년간 사람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 곳이다.
 그런 곳이니만큼 인기척은 수상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고단영의 고개가 인기척이 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했다.
 머지않아 한 인형(人形)이 눈동자에 맺히기 시작했다.
 점점 뚜렷해지는 그는 큰 삿갓을 푹 눌러쓰고 낡을 대로 낡은 허름한 차림의 사내였다.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거지였다.
 하지만 눈에 비친 그대로 그를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에게서는 자연스레 현기가 흘러나왔으며, 손은 제법 주름이 깊었다.
 허리춤에 차여진 검이 그가 강호의 노고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무림인?’
 고단영은 그가 무림인임을 직감했다.
 무림인이 인적도 없는 이곳을 왜 찾았을까 생각하던 중 문득 스승님께서 하셨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승님은 무림 곳곳에 은원을 맺고 있다 했다. 그러니 자나 깨나 몸조심을 하라 당부하셨다.
 ‘설마······.’
 혹 눈앞의 무림인이 그런 은원을 갚으러 온 자일 수도 있음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오한이 들었다.
 고단영은 다가오는 그에게서 적지 않은 살기를 느꼈다.
 적이 틀림없다.
 ‘빌어먹을!’
 욕지거리가 절로 올라왔다.
 스승님께 배운 것은······.
 천검지세, 오색창연한 절세 검법이라든지, 천지파멸의 패도법 등······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보법과 신법.
 쌈박질에 별로 도움도 안 되는 그 둘뿐이었다.
 한마디로 걷고 뛰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 들고 설치는 피 튀기는 곳에서 걷고 뛰는 것만으로 뭘 할 수 있으리.
 그러니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병법의 삼십육계인 줄행랑으로 물러난 후 후사를 도모하는 것은 괜히 나서 목숨을 잃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고단영은 도망칠 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중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거라면.’
 사냥을 한 후, 동물의 가죽이나 내장을 발라내기 위해 항상 소지하고 있던 비수가 기억났다.
 스리슬쩍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비수를 던져 그가 피하거나 막아낼 때 잠깐 생긴 틈을 타 도망칠 작정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도망질이라면 자신이 있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죽는 것보다는 이렇게 발악이라도 하는 편이 나았다
 잠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때다!’
 살짝 그의 발끝이 움직였을 때, 고단영은 망설임 없이 비수를 날렸다.
 한 줄기 빛이 된 비수가 그에게 쏘아졌다.
 고단영은 재빨리 지면을 박차고 뛰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제······.’
 턱 아래서 이질적이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던 것이다.
 ‘큭!’
 언제 접근했는지도 모르게 그가 날카로운 검을 목덜미에 대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검을 수직으로 그어 올려 자신의 목을 허공에 띄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가 떨려왔다. 인간인 이상 죽음 앞의 공포에서 무덤덤할 수는 없다.
 “내가 벨 것 같으냐?”
 살기서린 목소리.
 그의 차가운 한 마디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감정이 배제된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부름과도 같았다.
 당연히 베려고 가져다 댄 것이니 베지 않겠는가.
 “에휴······ 이놈의 팔자.”
 고단영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빨리 끝내 주슈. 퉤.”
 그리고 체념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목숨이 중요하니 구걸하여 살려준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살아 있어야 나중에 복수라도 하지 않겠는가.
 괜히 멋있는 척하다가 죽으면 죽는 놈만 손해인 것이다.
 그런데 풍겨져 나오는 살기나 서슬 퍼런 검날로 보아 절대 살려줄 것 같지 않다.
 정말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기왕 가는 거 구차하게 굴지 말고 멋있게 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펼쳐 보지 못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운명의 장난이고 팔자소관이려니 해야지.
 고단영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저 그가 고통 없이 베어주기만을 원했다.
 “하하하!”
 그런데 그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가 검을 거두자 고단영은 믿기지 않는 듯 두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불귀의 객이 되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아직 목은 붙어 있었다.
 ‘살려······ 주는 건가?’
 혹시 변덕을 부려 다시 죽이려 할지도 몰랐기에 고단영은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여차하면 줄행랑을 칠 자세를 잡았다.
 “네가 진정 물건은 물건이로구나.”
 그가 삿갓을 벗었다.
 삿갓 아래 드러난 이는 조금 전의 지독한 살기가 거짓인 것처럼 인자한 얼굴의 긴 백염을 가진 노인이었다.
 “네가 고단영이냐?”
 그가 물었다.
 이름을 알고 있다.
 “그렇······ 습니다만?”
 고단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주시했다. 그러자 그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차 한 잔 내주지 않겠느냐? 간만에 힘 좀 썼더니 목이 타는구나.”
 “······.”
 * * *
 고단영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곁눈으로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살펴보던 중 한 가지 알 게 된 점이 있었다.
 ‘닮았네.’
 삿갓을 쓰고 있을 때는 몰랐으나 노인은 스승님과 상당히 닮은 부분이 있었다.
 닮은 것은 생김새가 아니었다.
 스승님이 그저 늙은 촌부와 같은 평범한 모습이라면 눈앞의 그는 오랜 시간 학문을 연구한 학자풍이었다.
 확연히 다른 겉모습이었지만 말투와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는 스승님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크흠.”
 그는 고단영이 아직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이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린 나이에 제법이더구나. 과연 네 스승인 추살호가 자랑할 만해.”
 “······!”
 고단영은 그의 입에서 스승님의 함자가 흘러나오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스승님을 알고 계신가요?”
 “그래. 그나저나 네 스승은 어디를 간 것이냐?”
 그는 추살호를 찾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저, 그것이······.”
 고단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답했다.
 “······가출하셨습니다.”
 “······.”
 그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급히 고단영에게 물었다.
 “지금 가출이라 했느냐?”
 “예.”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가출하는 사람이 ‘나 어디 가오.’하고 나가는 것 보셨습니까? 저도 어디 가셨는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좀 찾아주십시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뒤였다.
 그러니 일절 알지 못했다.
 “그렇구나. 여기 없는 것이로구나.”
 그가 손으로 긴 수염을 매만졌다.
 “이 노부는 단진명이라 한다. 네 스승인 추살호와는 피를 나눈 형제 같은 죽마고우지.”
 고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분위기가 비슷했다 했는데,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라니 이해가 되었다.
 ‘가만, 단진명이라······?’
 스승님께서 가끔 해 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불알친구 중에 단진명이라고, 고리타분하고 빌어먹을 늙은이가 하나 있다는.
 고단영은 뻔뻔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칼질밖에 없다는 단진명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아,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단진명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단영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영아,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그러고 싶······ 아니, 그럴 수 없어요.”
 갑자기 같이 가지 않겠냐는 물음에 고단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언제 스승님이 다시 돌아오실지 몰랐기에 한시라도 이곳을 비워 둘 수는 없었다.
 비록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굶어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이가 스승님이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스승님뿐인 것이다.
 그런 스승님이 가출하여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집을 비워둘 수는 없었다.
 “흐음.”
 단진명은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곧 품속에서 낡을 대로 낡아 날이 빠진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을 알아보겠느냐?”
 “이건······ 예.”
 비수를 보고서 고단영은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무나 눈에 익은 것으로, 스승님께서 항상 소지하던 것이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이걸 가지고 계신 거죠? 스승님이 맡겼나요?”
 “그래, 몇 년 전에 네 스승인 추 노가가 내게 찾아와 맡기더구나.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를 부탁한다는 말을 했단다.”
 고단영은 경청했다.
 “너를 두고 떠난 것은 신변에 위험을 느꼈던 까닭에 그로 인해 너를 위험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 말을 들은 고단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 스승이 무림 제일가는 보법과 신법의 달인이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신도라는 것은 알고 있느냐?”
 고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 알고는 있습니다만 확인은 못했죠.”
 스승님께서 입에 달고 사셨던 말이니 모를 리 없었다.
 실제 확인된 바는 없었지만 그리 말씀하시니 어떻게든 믿고는 있었다.
 확인할 방법도 없고 괜히 의심해봤자 머리만 아프다.
 “아무래도 네 스승의 실종은 묵천(黙天)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구나.”
 “묵천이라뇨?”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세외(世外)의 전설로, 천외천(天外天)의 힘을 지닌 고수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파(門派) 또는 혈맹이라 볼 수 있는 곳이란다. 그리고······ 오백 년 전에 혈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지.”
 세외라 함은 중원 무림이 아닌, 서장(西藏)이나 동이(東夷), 또는 그 밖의 세상을 뜻하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북해의 빙궁이나 서장의 포달랍궁 등등······.
 ‘그러고 보니······.’
 언젠가 스승님으로부터 무림이 아닌 세상 밖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대고수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세상 밖에 사는 인간들이랑 무슨 만날 일이 있을까 싶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묵천이 왜 저를······.”
 “아무래도 네 스승이 묵천의 신검(神劍)을 훔치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구나.”
 “······그런 걸 왜 또 훔치셨답니까? 신검이면 엿 바꿔 먹을 때 하나 더 준답니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스승님께서는 무슨 취미생활로 은원을 만드는 것 같다.
 전 무림을 적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세외의 세력마저 적으로 만들었다.
 정말 하늘 아래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 같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는 없었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무시무시한 곳과 은원을 족족 만들어 놓으시니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고단영은 스승님께서 왜 그렇게 위험을 자초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지듯 묻는 고단영을 보며 단진명이 혀를 찼다.
 “쯧쯧. 아직 어려 네 스승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구나. 그들은 과거 신검을 앞세우고 무림을 피로 물들였단다. 그리고 그들의 성세가 극에 달한 지금, 다시금 무림침공이 시작되려 함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추살호가 신검을 훔쳤지 않나 싶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행보에 걸림돌을 놓은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
 “무림정복에 혈안이 된 그들은 신검을 찾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몸을 숨긴 추살호를 대신해 제자인 너를 노릴 수도 있음이지.”
 듣는 순간 고단영의 등에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달음박질과 도망치는 것밖에 없으니 잡히기라도 한다면 필사(必死)일 것이다.
 그리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 너를 데려가 지켜주려 한다.”
 “······!”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따라갈 수만은 없었다.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거죠?”
 “섬서성(陝西省)의 화산(華山)이란다.”
 섬서성은 이곳 운남성(雲南省)과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섬서는 예로부터 구파일방인 화산파와 종남파(綜南派)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무림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어쩌면 섬서는 무림을 피로 물들이려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지도 몰랐다.
 “화산이라······.”
 깊은 산골에만 살았지만 고단영도 화산과 화산파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나마 들어서 안다.
 “화산파로 가는 것입니까?”
 “그래, 화산파로 간다.”
 화산파라면 정파 무림의 구파일방 중 하나로서 상당히 큰 세를 가진 곳이다.
 그곳이라면 능히 방패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가겠습니다!”
 고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진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어르신,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검을 말이냐?”
 고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운 것이라고는 걷는 법이랑 달음박질하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검이라도 배워서 몸뚱이 하나는 제 손으로 지키고 싶어서요.”
 말을 마친 고단영은 단진명의 눈치를 살폈다.
 “허허, 알겠느니라.”
 단진명은 흔쾌히 받아 들였다.
 “내 친히 검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하지만 고단영은 그 인자한 웃음 속에 가려진 또 다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옷, 먹을거리, 그리고 스승님께서 남겨주신 비수를 갈무리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챙겼지만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단영은 근 십여 년 동안 살아왔던 초가를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일 배를 올린 후, 단진명의 뒤를 따라 나섰다.
 정든 집을 떠난다는 것에 마음속 한 곳이 비는 듯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단영을 기다리고 있던 단진명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갔다.
 이곳 운남에서 섬서의 화산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첫 걸음이었다.
 단진명이 친근하게 말을 붙여 왔다.
 “영아, 혼자 사니 외롭지 않더냐?”
 고단영은 어린 나이에 깊은 산속에서 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보통의 아이라면 사람 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갈증을 느낄만한 시간.
 “글쎄요. 별로 신경 안 써서······.”
 고단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별로 외로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 전쟁 통에 굶어 죽어가던 그때가 워낙 지옥 같았기에 생활에 별다른 불평도, 불만도 없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오히려 만족하고 있었다.
 “허허. 그럼 주로 무얼 하고 지냈느냐?”
 “뭐, 잠도 자고 사냥도 하고,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보법과 신법 등을 수련했습니다.”
 귀찮은 것은 죽어도 싫어했지만 고단영은 단 하루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승님은 늘 수련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곤 했다.
 불만을 토로하면 늘 ‘꼬우면 네가 강해지던가.’라고 일축했다.
 그것이 꼬와서 견딜 수가 없었기에 반드시 강해져서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일념에 밤낮 없이 수련을 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했었다.
 그것이 자신을 수련시키기 위한 스승님의 방편임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하게 되었었다.
 ‘제법 생각이 깊구나.’
 단진명은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수련에 만족할 만한 성과는 있었느냐?”
 단진명이 말을 건네자 고단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
 당연히 부족했다.
 몇 시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실력을 얻었으며 충분히 스승님을 뛰어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진명을 만난 후 그것이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실력으로는 무림제일신족인 스승님의 발끝조차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부족이라······.”
 단진명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단영의 의도와는 다르게 부족하다는 대답은 자만하지 않고 스스로 더 정진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역시 꿈보단 해몽이다.
 “영아, 화산파에서 잘 지낼 자신은 있느냐?”
 “뭐······ 그럭저럭 잘 지낼 것 같습니다.”
 화산파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비바람을 막아줄 집과 굶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어찌하든 어렸을 적 겪었던 전쟁터보다는 나을 것이다.
 ‘허허.’
 단진명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고단영의 낙천적인 성격이나 말투, 행동거지는 스승 추살호를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었다.
 추살호는 한때 화산파의 촉망받는 기재였지만, 불운했다.
 모종의 사건으로 양팔의 근맥을 다쳐 다시는 검을 쥘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나마 익힐 수 있는 것은 보법과 신법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모든 인생을 걸었었다.
 그 결과 그는 무림에서 제일가는 보법과 신법의 달인이 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현존하는 보법과 실전된 보법을 찾아 전 무림을 떠돌아다녔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보법을 창안하기 위해서.
 그때 각 문파나 세가의 무공서적을 훔쳐내며 얻은 별호가 신도였다.
 ‘어찌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지······.’
 무림의 촉망받는 기재에서 도둑에 이르기까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추살호가 양팔을 다치지 않았더라면 현재 무림의 정세는 크게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추살호 단 한 명에 의해서.
 비록 보법과 신법에 관해서는 무림 제일가는 그였지만 항상 검을 쥐고 싶어 했고 강해지기를 원했다.
 언젠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추살호는 절세의 보법과 신법을, 그리고 자신은 검을 가르쳐 천하제일인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두 사람의 공통된 꿈의 첫 걸음인가?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묵천의 검이 중원을 향해 세워진 지금, 전 무림의 보법과 실전된 보법을 익힌 추살호의 진전을 이은 고단영의 존재는 무림에 있어 기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고단영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들기 이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무림의 존속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어쩌면 앞으로 네가 바쁠지도 모르겠구나?”
 단진명이 고단영을 보며 웃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허허, 아무것도 아니란다.”
 
 
 第二章 화산입문(華山入門) - 아무래도 속은 것 같다
 
 
 섬서성 화음(華陰)에 위치한 화산.
 서악이라 불리며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화산에는 정파의 명문인 화산파가 자리하고 있다.
 두 달 동안 걷고 뛴 두 사람은 무사히 화산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화산파의 건물들을 스쳐 지나온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외각에 동떨어진 곳이었다.
 “앞으로 이곳이 네가 지낼 곳이다.”
 고단영은 단진명이 말한 곳에 위치한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초가를 보았다.
 “이곳······ 이요?”
 “그래. 괜찮지 않느냐?”
 “······.”
 전혀 괜찮지 않았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것만 같은 부실한 초가였다.
 크고 화려한 건물들만 보며 지나쳐 왔던지라 이런 초가가 있다는 것조차 생각지 못했었다.
 기껏해야 창고로나 쓰일, 아니 창고로도 쓰일 것 같지 않은 낡은 초가였으니.
 끼이익!
 고단영은 조심스레 문을 열어 안을 보았다.
 겉보기와 달리 안은 제법 넓고 깨끗했다.
 홑이불 하나에 베개, 그리고 호롱불밖에 없어 초라하긴 했지만 아늑해 보였다.
 “마음에 드느냐?”
 단진명은 마치 대궐이라도 내준 양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낼 만은 하겠습니다.”
 이불도 있고 밤에 불을 밝혀 줄 호롱불도 있으니 지내는 것에 불편함은 없을 듯했다.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지낼 거처는 정해졌으니 이제 먹을거리 문제만 남았다.
 “크흠, 먹을 것은······.”
 단진명은 초가 뒷산을 가리켰다.
 “저기 뒷산에 나물도 많고 기타 먹을거리들이 있으니 알아서 해 먹거라.”
 알아서 해 먹으란다.
 그 이름도 유명한 화산파인데 수라상은 못 받아도 하다못해 일첩반상 정도는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
 고단영은 멀뚱히 서서 단진명을 바라보았다.
 그가 시선을 피했다.
 “지금 화산파의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니 네가 이해하거라. 입 하나 느는 것도 부담이 크구나.”
 “······.”
 이해 불가.
 그럼 주방에서 진득하게 배어 흘러나오던 온갖 산해진미의 향은 뭐란 말이며, 하나같이 휘황찬란한 비단옷과 보석으로 세검된 검을 차고 다니던 이들은 전부 허깨비란 말인가.
 “쩝······.”
 가만 생각하던 고단영은 쓴 입맛을 다셨다.
 일단 데려오기는 했으나 단진명은 화산파에서 입지가 크지 못해 이렇게밖에 자신에게 해 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측은해졌다.
 눈치를 보아 겨우 외각의 낡은 초가를 구해 준 것이고, 식사까지 해결해 주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뭐, 그러도록 하죠.”
 어차피 산속에서 혼자 살 때도 알아서 뽑아먹고 잡아먹고 그랬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해가 진 탓에 주변은 이미 어슴푸레해져 있었다.
 긴 여정 동안 쌓였던 그간의 피로가 긴장이 풀리자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일찍 쉬고 싶었다.
 “잠깐 기다리거라.”
 단진명이 고단영을 불러 세웠다.
 “옛다.”
 그리고 조그마한 호리병 하나를 던졌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고단영은 받아든 호리병을 살펴보았다.
 투박하게 만들어진 것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일단 마셔라.”
 마시라는 말에 일단 마개를 열어보았다.
 ‘뽕’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호리병 안에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뭔가 수상쩍다.
 고단영은 호리병과 단진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몸에 좋은 것이니 믿고 마셔라.”
 믿으라는 것치고 정말 믿을 것 없다는,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
 더욱이 호리병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쓴 내가 물신 풍겨 올라왔다.
 과연 이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혹시 무림고수의 필수식품 중 하나인 영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약이야, 틀림없어.’
 단진명은 분명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러니 이 호리병 안에 든 것은 틀림없는 영약일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았나.
 이토록 쓴 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그것도 효과 직빵인 영약 같았다.
 ‘그런데 영약은 비싸지 않나?’
 묵을 곳과 먹을 것을 내주는 것에 눈치를 봐야 하는 단진명이 어떻게 이처럼 비싼 영약을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머리 아프게 따지기는 싫었다.
 먹으라고 준 것이니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이다.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된다.
 꿀꺽꿀꺽!
 고단영은 단번에 호리병 안에 든 검은 액체를 들이켰다.
 끈적끈적한 것이 목 넘김이 역겨웠다.
 ‘······더럽게 쓰네.’
 그것뿐만 아니라 뭔지는 모르겠으나 역시나 뒷목이 당길 정도로 썼다.
 하지만 쉼 없이 단번에 다 들이켰다.
 “푸하!”
 크게 숨을 내쉬며 호리병에서 입을 떼었다.
 쓴맛을 참고 억지로 삼킨 탓에 위액이 역류하려 했다.
 겨우 참아내고서 입가를 소매로 닦았다.
 모두 마신 것을 확인한 단진명의 눈빛이 전과 다르게 변했다.
 “먹을 만하더냐?”
 “아니요. 절대!”
 다시 먹으라 한다면 절대 사절할 만큼 맛이 없었다.
 “다시 먹느니 차라리 흙을 퍼먹고 말죠.”
 고단영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어서 입안에 남아 있는 쓴맛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고는 언제쯤 영약의 효과가 나타나 불끈 힘이 솟아오를지 궁금했다.
 그런데······.
 “어라?”
 의지와 상관없이 팔이 처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전신의 힘이 빠져나갔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다리는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뭐, 뭐지?”
 목소리마저 힘이 없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명치 아래서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놀란 고단영은 황급히 명치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어, 없어!”
 단전에서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운기를 하며 내공을 운용하려 했다.
 하지만 산공독(散功毒)에 중독된 것처럼 내공은 모이는 족족 흩어져버렸다.
 더욱이 발목에는 천근추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나마 하나 있는 재주마저 잃었다는 느낌에 상실감마저 들었다.
 고단영은 눈을 치켜뜨고 단진명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런 신체의 변화는 조금 전 먹었던 검은 액체 때문일 것이다.
 강해지라고 영약은 못줄망정 왜 이런 것을 주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르신!”
 고단영이 힘을 짜내어 외쳤다.
 “허허. 네 표정을 보니 효과가 좋은가 보구나.”
 이미 이럴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왜 이딴 걸 저에게 먹인 거죠?”
 “허허. 검을 가르쳐 달라 하지 않았느냐? 다 수련을 하기 위한 방편이니라. 그리고 받아라.”
 단진명은 차고 있던 검을 던졌다.
 고단영은 갑자기 날아온 검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휘청.
 몸이 휘청거렸다.
 가벼워 보이는 검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조차도 들고 있기가 벅찼다.
 “이, 이 상태로 저더러 검을 익히라는 것입니까?”
 아무리 수련의 방편이라고는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쥘 힘조차 없는 몸으로 검을 배운다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일 묘시까지 태청장(太淸場)으로 나오너라. 그럼 푹 쉬도록 해라.”
 말을 마친 단진명은 몸을 돌렸다.
 “······.”
 고단영은 멀어져가는 단진명의 뒷모습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각.
 고단영은 검을 쥐고 초가를 나섰다. 어차피 벌어진 일,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겁고 힘들고, 흑흑······ 다리도 천근만근이네.”
 단 하나뿐인 자랑이던 다리는 힘이 빠진 듯 추욱 처져 있었다.
 “대체 뭘 먹인 거야······.”
 어제 먹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공을 없애는 것은 물론 근력까지 저하시켜버리는지 궁금했다.
 “에구구.”
 몇 걸음 걷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다리가 저려오고 삭신이 쑤시는 것이 오늘내일하며 관에 반쯤 몸을 걸친 노인이 된 기분이다.
 “그나저나 태청장이 도대체 어디야?”
 고단영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옮기다 보니 어느새 높고 웅장한 건물들로 주변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태청장은 화산파에서 가장 큰 연무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로 같은 건물들 사이에서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묻고 물은 후에야 겨우 태청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단영은 태청장으로 들어섰다.
 ‘넓기는 더럽게 넓네.’
 광활한 평야같이 넓은 연무장.
 과연 화산파가 자랑하는 대연무장다웠다.
 태청장 위로 올라선 고단영은 이미 와 있는 선객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올라서는 고단영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향했다.
 집중된 시선.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지?’
 고단영은 당황했다.
 단진명은 태청장으로 가라고 일러줬을 뿐 다른 것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기에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다가왔다.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었다.
 딱 봐도 ‘나 무림고수요.’하는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나는 검 스승을 맡고 있는 매화절검(梅花截劍) 조기풍(趙氣風)이라 한다.”
 매화절검 조기풍.
 그는 나름 고명한 경지를 이룩한 무인으로서 무림에 이름을 알린 자였다.
 조기풍이 초면인 고단영에게 물었다.
 “누구냐, 넌?”
 “······.”
 검 스승이라는 조기풍의 말에 고단영은 예를 갖추며 포권을 취했다.
 “고단영이라 합니다.”
 “······!”
 “······!”
 시끄럽던 태청장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 고단영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묘한 기대감과 질투심이 담겨 있었다.
 “······?”
 고단영은 왜 저들이 이런 눈빛을 보내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하. 네가 바로 그 고단영이군.”
 조기풍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은 고단영의 아래위를 빠르게 훑으며 살폈다.
 ‘이 아이가 바로 그분께서 데려온 녀석이란 말이지.’
 조기풍은 고단영이 얼마나 뛰어난 기재이기에 그분이 평생 제자를 들이지 않겠다는 일조를 번복까지 하며 제자로 삼은 것인지 궁금했다.
 잠깐 살펴본 바 고단영은 무공을 익히기에는 더없이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것뿐이었다.
 무공을 익힌 고수라면 은연 중에 흘러나와야 할 기세라든지, 무공을 연마한 흔적인 태양혈이 불룩하다든지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몸만 좋은 범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했다.
 “네게 몇 가지 물어보겠다.”
 “그러세요.”
 고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다른 내공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요.”
 있었는데 사라졌다.
 “검을 익혔느냐?”
 “전혀요.”
 보법과 신법만 죽어라 익히느라 검은 한 번도 쥐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혹 양친께서 어마어마한 갑부거나 무림고수이시냐?”
 “천애고아입니다만.”
 부모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
 조기풍은 할 말을 잃었다.
 ‘뭔가 특별한 점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수없이 많은 기재들을 내친 분이 이런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조기풍은 십여 년간 많은 아이들에게 검을 가르쳐 왔다. 그래서 한눈에 사람의 자질을 파악하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만약 고단영에게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필히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이들은 너와 함께 검을 배울 속가제자들이다. 막 입문했으니 사이좋게 지내거라.”
 “네. 그러도록 하죠.”
 조기풍이 앞으로 나섰다.
 “다 잠들은 잘 잤느냐?”
 “예!”
 “옙!”
 속가제자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럼 검을 익히기 전에 간단하게 몸을 데우겠다. 연무장 스무 바퀴를 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가제자들은 오와 열을 맞춰 연무장을 돌기 시작했다.
 어디에 껴야 할지 몰랐던 고단영은 무작정 뒤에 따라붙어 뛰기 시작했다.
 ‘뛸 수나 있을까······ 흑흑, 전 같으면 백 바퀴건 천 바퀴건 문제가 없을 텐데.’
 과연 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 연무장을 스무 바퀴나 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헉헉.”
 처음 한 바퀴는 그럭저럭 따라 뛸 만했다.
 두 바퀴째도 참고 뛸 만했다.
 그런데 세 바퀴째부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네 바퀴에 이르자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쑥 빠져나가 버렸다.
 그나마 자랑이던 달음박질조차 할 수 없는 정말 한심한 몸이 아닐 수 없었다.
 ‘주, 죽겠다.’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털썩!
 급기야 다리가 버티지 못했고 허물어지듯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오기가 있었던지라 어금니를 악물고 기어서라도 뒤를 따르려 했다.
 “뭐하는 짓이냐?”
 지켜보던 조기풍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간 수련을 하기 싫어 농땡이를 피우는 아이들을 많이 봐 왔지만, 고작 연무장 서너 바퀴 뛰었다고 쓰러지는 놈은 처음이었다.
 단단히 혼을 내줄 생각을 하고 그간 들지 않았던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조기풍이 언성을 높였다.
 “허억. 허억.”
 고단영은 거친 숨만 몰아쉴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도 일어나고 싶다고요!’
 누군들 일어나기 싫어서 일어나지 않겠는가.
 일어서고 싶어도 다리에서 힘이 풀려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을.
 몇 번이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때마다 쓰러지고 말았다.
 “끄으으윽!”
 고단영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일어났다.
 가까스로 일어나기는 했어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힘에 겨워하는 모습, 경련이 이는 근육을 보아하니 정말 힘이 없어 보였다.
 조기풍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이놈이 어떻게 하나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헌데······.
 그럴 수 없었다.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한 탓일까.
 고단영이 눈을 까뒤집고 실신해버린 것이다.
 “······.”
 조기풍은 할 말을 잃은 채 시체처럼 널브러진 고단영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으음.”
 고단영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태청장의 하늘이 아닌 초가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
 “이제 정신을 차렸느냐?”
 누군가 말을 걸었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미루어보아 단진명인 듯했다.
 “으윽!”
 고단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으니 누워 있어라.”
 고단영은 몸을 편히 뉘였다.
 “수련은 할 만하더냐?”
 “······.”
 단진명이 묻자 고단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놀리십니까?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말에 날이 세워져 있었다.
 그놈의 빌어먹을 검은 액체를 마신 탓에 모두 앞에서 고작 연무장 몇 바퀴 돌았다고 실신까지 하는 추태를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식후 간단한 운동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맨손으로 몇 번이고 오르내려도 끄떡없던 몸뚱이가 그리워졌다.
 “허허.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그 조금이 얼마죠?”
 고단영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으음, 한두 달 정도일까? 어쩌면 일 년 이상 걸릴지도 모르지.”
 “······.”
 “그건 너 하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단다.”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럼 앞으로 몇 번이고 실신을 하란 말씀이십니까?”
 “몇 번 만이겠느냐?”
 고단영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것 또한 강해지기 위한 수련의 일환이니라.”
 미심쩍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수련만 하면 돌아오는 것은 확실하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말했다시피 너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지.”
 “······.”
 * * *
 “끄, 끝이다.”
 고단영은 한 달 만에 빛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실신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 번만 더 실신했으면 서른 번을 채울 수 있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격에 북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고 고생했다.
 “에구, 그나저나 비가 오려나, 여기저기 다 쑤시네.”
 실신하지 않았다 하여 몸이 성한 것은 아니었다.
 피로에 지친 몸은 여기저기 안 쑤신 곳이 없었고 파열직전의 근육들은 부들부들 떨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처로 되돌아가는 길.
 그 뒤로 대여섯의 심상치 않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이, 지진아.”
 고단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화산파에 거금을 기부하고 속가제자로 입문한 화음 대지주의 외아들 장평(長平)이 눈에 들어왔다.
 ‘또 너냐······.’
 꼴 보기 싫은 놈이었다.
 무슨 원수가 졌는지 놈은 지난 한 달간 고단영을 죽어라 괴롭혔다.
 그래서 흘깃 쳐다보고서 제 갈 길을 갔다.
 애써 상대할 기력조차 없었고 상대해 보았자 괜히 피곤하기만 했다.
 “저 새끼가 감히 내 말을 씹어?”
 장평은 고단영에게 무시를 당하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잡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뒤에 서 있던 청년들이 궁신탄영을 펼친 듯 뛰어나갔다.
 그들은 장평의 수족노릇을 하는 이들이었다.
 청년들이 고단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
 고단영은 걸음을 멈추고서 고개를 들어 무정한 눈빛으로 청년들을 훑어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장평을 따라 괴롭힘에 앞장서던 놈들이기에 그다지 대면하고 싶지 얼굴들이다.
 “에휴.”
 고단영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앞을 막아서거나 말거나 살짝 우회하여 청년들의 뒤로 돌아 걸어갔다.
 “이 새끼가!”
 “거기 안 서!”
 청년들은 당연히 주눅이 들 것이라 생각했던 고단영이 소 닭 보듯 무시하고 지나치자 빈정이 상했다.
 재빨리 달려가 이번에는 빠져나갈 곳 없이 원을 그리며 포위했다.
 고단영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청년들을 빤히 올려보았다. 그러자 청년들의 이마에 역십자 모양의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확 뽑기 전에 눈 깔아라.”
 “먹물을 뽑아버릴라!”
 청년들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고단영의 팔다리를 분질러버리고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장평의 먹잇감에 먼저 손을 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비켜, 새꺄.”
 장평이 다가서자 청년들은 길을 내주었다.
 “네가 감히 내 말을 씹었냐?”
 장평은 자신보다 한 뼘 이상이나 작은 고단영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도 잠시.
 짜악!
 갑자기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고단영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퍼억!
 장평은 미처 추스를 새도 주지 않고 발로 고단영의 복부를 걷어찼다.
 거목도 단번에 부러뜨릴 만큼 단련된 발길질이었다.
 우당탕탕!
 고단영의 몸은 삼 장 이상이나 날아가 볼썽사납게 땅을 굴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장파열, 복강내출혈 등의 큰 상처를 입었을 만한 지독한 구타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인한 미소만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후후.”
 “좀 더 패!”
 한 달간의 경험을 통해 그들 모두는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고단영의 맷집을 알고 있었다.
 장평은 천천히 걸어간 후 쓰러져 있는 고단영의 머리를 발로 찼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단영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붉은 선혈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것을 본 장평은 입 꼬리를 올리며 더욱 신이 난 듯 구타했다.
 고단영은 몸을 웅크린 채 맞기만 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발로 차면 차는 대로 맞았다.
 ‘그래. 패라, 패.’
 괜히 반항했다간 더 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맞고 있는 것이 더 나았다.
 “으득!”
 장평은 이를 악물었다.
 지난 한 달간 단련된 자신의 주먹에 맞고도 단 한 번도 살려달라는 소리를 안 하는 고단영을 보니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다.
 불끈 쥔 주먹에는 죽여 버리겠다는 결의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이 새끼야!”
 장평은 처음 고단영을 보았을 때, 그분의 제자라는 사실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약하고 투지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고단영의 정체가 탄로 났다.
 몸이 약해 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고, 머리는 나빠 기본적인 내공심법 하나 익히지 못했다.
 그분의 제자라는 것 외에는 뒤를 봐 줄 가문이나 문파도 없던 고단영은 속가제자들 사이에서 지진아라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다.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어쩌면 처음 가졌던 기대감이 무너짐에 따라 따돌림에 더욱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장평은 왠지 모르게 고단영을 보기만 해도 열불이 났다.
 그래서인지 항상 선두에 서서 고단영을 괴롭히고 따돌리곤 했다.
 퍼벅! 퍽!
 주먹에 안면을 직격당한 고단영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새끼!”
 장평은 쓰러진 고단영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은빛 검신이 눈을 가리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떤 새끼가!”
 누군가 막아서자 장평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평은 감히 속가제자들 중 무력으로 수위를 다투며 가문의 힘 또한 막강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녀석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第三章 추화아향(醜花芽香) - 무림 제일의 추녀
 
 
 장평의 눈에 붉은빛 무복이 잘 어울리는 한 소녀가 들어왔다.
 “나란 새끼입니다만?”
 소녀가 차갑게 말했다.
 “크윽!”
 장평은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제아무리 무서울 것이 없는 장평이라도 눈앞의 그녀를 건드릴 용기는 전혀 없었다. 아니 추악한 모습을 가진 그녀는 건드리기도 싫었다.
 추화(醜花) 아향(芽香).
 그녀는 곰보투성이 얼굴과 비대칭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추녀였다.
 하지만 속가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딱히 가문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볼 때 상당한 배경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다.
 제아무리 장평이 날고 긴다 해도 아향에게만은 아니었다.
 검으로 이길 수도 없었고, 왠지 모르게 가문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칫!”
 장평은 마지못해 고단영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고단영의 동체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얘들아! 가자. 퉤!”
 장평과 아이들은 더 이상 멍청한 지진아와 추한 추녀를 보기 싫었기에 재빨리 몸을 돌려 사라졌다.
 장평이 저 멀리 사라지자 고단영은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던 도중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 했다.
 턱!
 아향이 고단영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그 덕에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고단영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고마워.”
 인사를 받은 아향은 고단영의 행동에 살짝 놀랐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추한 얼굴을 본다면 인상을 쓰거나 꺼려했다. 하지만 고단영은 그런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바보라서 그런가?’
 아향 또한 속가제자였기에 고단영에 대한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간단한 내공심법조차 익히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고, 검은 양손으로 겨우 휘두르는 허약해 빠진 몸을 지닌 녀석.
 퍼진 소문이 그러했다.
 ‘하지만······.’
 아향은 고단영의 팔을 잡았던 순간의 손의 감촉을 기억해 보았다.
 분명 단단하고 튼실한 근육이 잡혔었다. 이런 근육은 몇 번 보지 못했다.
 ‘분명······ 뭔가 있어.’
 아향은 고단영을 수상히 여겼다.
 장평에게 맞을 때마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 받는 충격을 줄이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진짜 멍청한 지진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맞는 것에 이골이 났거나······.
 ‘어쩌면 강함을 숨긴 희대의 사기꾼일 수도······.’
 아향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고단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익!
 그리고 웃었다.
 그 미소를 본 아향은 순간 자신의 생각을 모두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연무장인 태청장을 찾은 고단영은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 눈빛의 주인은 바로 아향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한시도 고단영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부릅뜬 두 눈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잡아먹으려는 것 같아 보였다.
 고단영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강렬한 눈빛을 보내는 소녀, 그것을 받는 소년. 누가보아도 의심스러운 광경이었다.
 “저것들 정분났나?”
 “그러게 말이야.”
 그런 아향과 고단영을 보며 속가제자들이 수군거렸다.
 “큭큭. 어찌 보면 잘 어울리는 벌레 한 쌍이다.”
 “그러게 말이야. 멍청한 지진아와 희대의 추녀의 만남! 이보다 더한 천생연분이 있을까?”
 서로 귓속말로 수군거렸지만 아향은 그들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여우 눈을 치켜뜨고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속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림 최악의 추녀로 일컬어지던 그녀가 사납게 인상마저 쓰니 더없이 추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속가제자들은 너나없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아향이 발길을 돌렸다.
 ‘한 번 시험해볼까?’
 아향은 고단영이 정말 멍청한 지진아인지 아니면 강함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응?”
 고단영은 아향이 다가오자 괜스레 불안해졌다. 그녀의 전신에서 드문드문 살기마저 뿜어져 나왔다.
 스윽!
 아향이 검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뿔싸!’
 고단영은 사색이 됐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짐작했다.
 그제야 살벌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속가제자들 또한 입을 닫았다.
 시끄러웠던 태청장이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냐?”
 그때 마침 검 스승인 조기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향은 걸음을 멈추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검병을 쥐었던 손을 놓았다.
 “으음.”
 조기풍은 어제와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속가제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조기풍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늘부터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수련을 하겠다. 다들 알아서 짝을 정한다. 그리고······.”
 조기풍이 아향과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단, 너희 둘은 같이 짝을 하여라.”
 “네? 왜 저희가 같이 짝을 해야 하죠?”
 아향이 놀라 반문했다.
 “그야······.”
 조기풍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아향은 비록 실력은 가장 뛰어나다 할지라도 지독하게 못생겨 다른 애들이 꺼려했고, 고단영은 키도 크고 멀쩡하게는 생겼어도 어딘가 많이 모자랐다.
 이 두 사람과는 그 누구도 짝을 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 둘이 짝을 하는 편이 나았다.
 그걸 말하려니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았기에 억지로라도 짝을 지어 준 것이었다.
 아향은 고단영과 짝을 지어야 한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왜?”
 아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고단영은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고단영은 속가제자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아향과 짝을 지어 수련하는 것이 대환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본래의 힘을 되찾는 것이 빨라지지 않겠는가.
 쌍수를 들고 기뻐했으면 했지 절대 거절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문 아향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해! 하자고.”
 이왕 이렇게 된 것, 고단영이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여겼다.
 “크흠, 오늘은······ 그만하도록 하겠다. 더 했다간 죽을지도 모르니.”
 조기풍은 수업을 종결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했다간 정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
 아향은 널브러진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쓰러져 있던 고단영이 아향을 올려보며 힘겹게 말했다.
 “주, 죽일 셈이냐?”
 “대련은 대련일 뿐.”
 대련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일방적인 구타였다.
 ‘역시 별것 없었어. 내가 착각한 건가? 에휴.’
 아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지만 고단영에게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직접 검을 맞대본 결과 아무것도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맞부딪친 검을 통해 미약하게 내공을 흘려보내 보았다.
 미처 자신이 간파하지 못한, 만약 고단영이 내공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 반탄력이 작용할 것이지만, 그런 것은 기미조차 없었다.
 정말 내공이 없다는 것이다.
 또 움직임은 어떠한가? 검을 휘두르는 것은 물론 걸음마저 어설프다.
 더 이상 아향은 고단영에게 볼일이 없었다.
 냉큼 몸을 돌려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를 고단영은 멋쩍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휙.
 저 멀리 가던 아향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고단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말도 없이 고단영을 바라보던 아향은 알 수 없는 웃음을 남기고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쩝.”
 고단영은 입맛을 다시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던 중 연무장 한편이 소란스러워졌다.
 “서, 선녀다!”
 “매화일미······.”
 속가제자들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지르며,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보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아향을 대할 때와는 전혀 반대의 반응이었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듯, 고단영도 무슨 일인가 싶어 흥미를 느끼고서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모두의 눈길이 고정된 곳에는 보라색 무복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미소녀가 고운 자태로 걷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백옥과도 같은 피부와 앵두처럼 빨간 입술은 물론 오목조목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월궁의 항아를 보는 듯했다.
 남정네라면 그 누가 보아도 군침을 흘릴 만한 미모였다.
 “누구야?”
 고단영이 물었다.
 그러자 속가제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어찌 화산파에서, 아니 전 무림에서 제일 유명한 무림사미(武林四美) 중 일미(一美)인 그녀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몰라? 장문인의 무남독녀이자 그 실력도 고명한 매화일미(梅花一美) 설화란(雪花蘭)이잖아! 무관심한 건지······ 취향이 독특한 건지······.”
 숨조차 쉬지 않고서 열변을 토했다. 가만, 고단영을 생각해보면 취향이 독특한 것 같다.
 추녀 아향을 상대하면서도 이맛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으니 독특하다면 독특했다.
 “저게 예뻐?”
 고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연하지!”
 그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고단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난 별론데.”
 어찌 저런 선녀를 앞에 두고서 별로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고단영의 뇌 속은 이해가 불가했다.
 딱!
 그때, 누군가 고단영의 뒤통수를 때렸다.
 바로 장평이었다. 장평은 흘리던 침 자국을 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감히 너 따위가 설 매의 미모를 폄하해?”
 장평은 마음 같아서는 고단영을 죽도록 쥐어 패고 싶었다. 하지만 설화란이 보는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억지로 참고 있었다.
 “야, 지진아. 넌 설 매가 예쁘냐? 추화가 예쁘냐?”
 장평이 호기심에 물었다.
 그에 고단영이 답했다.
 “당연히······.”
 모두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 하며 귀를 기울였다.
 “아향이 나은데, 왜 뭐가 이상해?”
 당연히 이상하다.
 거리낌 없이 답하는 고단영을 보며 모두 ‘그러면 그렇지.’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고단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런 녀석이 세상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그토록 고단영을 괴롭히던 장평까지 측은한 시선을 보내니 다른 사람은 오죽하랴.
 “······.”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들이 나누는 대화 전부를,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설화란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 * *
 장문인의 부름을 받고 태청장 앞을 지나가던 설화란은 기분이 퍽 상해 있었다.
 웬 어리석은 잡놈 하나가 자신의 미모를 화산파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도록 추한 추화 아향과 비교를 한 것 때문이었다.
 감히 어디다 대고 비교를 한단 말인가. 비교 당하는 자체가 불쾌했다.
 더욱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어떤 눈이 삔 녀석은 아향이 더 예쁘다고 했다.
 당장에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것이지만 보는 눈이 많았던지라 억지로 참고 넘어갔다.
 물론 그 녀석들의 얼굴은 단단히 기억해 놓았다.
 눈이 이상한 그 녀석들은 언제가 되었건 눈알을 뽑아버리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아버님, 소녀 화란입니다.”
 설화란은 장문인의 서재 앞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들어오너라.”
 설화란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재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화산파의 장문인 설중철(雪重鐵)이었다.
 “이제 오느냐?”
 설중철은 반가이 설화란을 맞이했다.
 늘그막에 겨우 하나 얻은 무남독녀라 무척이나 아꼈다.
 “허어······.”
 설중철은 설화란의 고운 아미가 찡그려져 있자 걱정이 되는 듯 말을 건넸다.
 “허허. 어찌 란이 네가 그리 기분이 상해 있느냐?”
 새침하게 서 있던 설화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여자들의 말은 그 겉과 속뜻이 다르다.
 그것은 딸자식이라 하여도 다르지 않았다. 꼭 물어봐 달라는 뜻임을 설중철은 알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 아비에게 털어놔 보려무나.”
 그러자 설화란의 고운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그녀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흑흑. 어떤 녀석들이 저보고 못생겼다고······.”
 쾅!
 설중철은 분노한 듯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두터운 손을 이기지 못한 책상은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버렸다.
 “감히 어떤 놈들이!”
 사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우락부락한 설중철을 닮아 설화란은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었다.
 무림에서 남자에게 힘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여자에게는 바로 미모였다.
 외모지상주의인 현 무림의 세태로 인해 사랑하는 딸이 상처받지 않을까 하여 설중철은 어렸을 적부터 갖은 영약과 변체역용술(變體易容術)까지 이용해 경국지색의 미모로 환골탈태를 시켜주었다.
 돈도 많이 들고 아비인 자신이 봐도 혹할 미모이건만 도대체 어떤 씹어 먹을 녀석들이 그런 망발을 내뱉었는지 화가 치솟았다.
 설화란은 눈물을 훔치며 못이기는 척 넌지시 말했다.
 “속가제자들 중에 있었어요. 흑!”
 “속가제자? 크흠.”
 그 말에 당장에라도 달려가 다 뒤집어 엎어버릴 듯 보였던 설중철이 헛기침을 하며 분을 가라앉혔다.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설화란은 갑자기 진중해진 설중철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아버님?”
 “그 녀석들이 눈이 삔 것이니, 네가 이해 하거라.”
 설종철의 어투가 사무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란아, 이 아비가 네게 부탁 한 가지만 하면 안 되겠느냐?”
 “어떤 것이요?”
 설중철은 잠시 뜸을 들였다.
 “속가제자들 중에 고단영이란 아이가 있단다. 그 아이를 네가 좀 휘둘러 주었으면 한다.”
 “예?”
 설화란이 놀란 듯 되물었다.
 “흑흑. 아버님, 저를 이용하시려는 건가요?”
 설화란이 울음을 터트리자 설중철은 당황했다.
 “아, 아니란다. 다만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 것이란다.”
 설화란은 설중철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에 한 보석상에서 예쁜 자옥석 반지를 보았는데······.”
 “좋다. 네가 이 일만 성공한다면 자옥석 반지가 아니라 보석상을 통째로 사주마.”
 “정말요?”
 “언제 이 아비가 거짓을 말하더냐?”
 설화란은 방방 뛰며 설중철의 품에 안겼다. 그것도 잠시, 설화란은 가는 눈을 뜨며 물었다.
 “고단영이라면 설마······.”
 “맞다. 그분께서 데려오신 아이다.”
 “헌데 그 녀석은 멍청한 지진아가 아닌가요?”
 화산파 전역에 고단영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기에 설화란 또한 알고 있었다.
 “물론 맞단다. 하지만 말이야, 난 왠지 그것이 그 아이의 본모습이 아니라 생각한단다.”
 “어째서죠?”
 화산파에서 모두가 공인하는 멍청한 지진아가 바로 고단영이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정사대전 이후 많은 고수들을 잃어 멸문에 치닫던 이 화산파를 일으켜 세우신 분이다. 그런 분이 제자로 삼은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음이다.”
 “······.”
 설화란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설사 멍청한 지진아라 할지라도 고단영이 단진명의 제자인 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렇단······ 말이죠?”
 “그래. 만약 아니라 하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단다. 그 녀석을 우리 쪽에 품음으로써 그분의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니.”
 현재 화산파는 고즈넉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피 튀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바로 장문인과 장로들의 권력다툼에 의해서였다.
 정사 대전 후, 어느 정도 화산파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서로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자연스레 장문인과 장로들로 파벌이 나뉘게 되었다.
 서로 힘이 비슷해 지금은 어느 쪽도 먼저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 형세가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망설임 없이 상대를 칠 것이다.
 장로들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장문인 설중철은 고단영을 이용해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단진명의 힘을 얻으려는 계획이었다.
 설중철은 품에 안긴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설화란이라면 분명 고단영도 사내인 이상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허허. 란아, 이 아비는 너만 믿겠다.”
 설화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저만 믿으세요.”
 
 
 第四章 매화일미(梅花一美) - 무림 제일의 미녀
 
 
 검 스승인 조기풍은 물론 속가제자들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앞에 서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조기풍은 소녀를 깍듯이 대했다.
 비록 자신이 나이는 많다 할지라도 그녀는 장문인의 딸이자 제자로, 자신보다 배분이 높았다.
 “호호, 말씀 낮춰 주세요. 소녀, 부담스럽답니다.”
 설화란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조기풍은 그녀가 사숙뻘 배분이라 쉽사리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배분은 생각지 마시고 그저 귀여운 조카라고만 생각해주세요. 아버님께도 허락받았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빼기도 그랬다.
 “그, 그럼 말을 놓도록······ 하지.”
 설화란은 겉모습은 웃고 있어도 속은 아니었다.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아왔느냐?”
 조기풍이 묻자 설화란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서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께 속가 제자 분들의 수련을 도와주라는 명을 받았어요.”
 “그래? 잘됐구나!”
 설화란은 아름다울뿐더러 검술 솜씨마저 뛰어났다. 그러니 당연히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없었다.
 “호호. 혹시 여기 고단영이란 분이 계시나요?”
 설화란이 묻자 조기풍은 물론 장내의 모든 이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야!”
 “······왜?”
 “그렇게 검을 쥐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이제 겨우 검을 쥐게 된 고단영은 아향으로부터 파지법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아향은 고단영이 안쓰러워서일까 아니면 죽을 만큼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그날 이후부터 친절히 검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고단영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쥐어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손에 검이 익지 않았을 뿐더러 무게는 또 더럽게 무거워 들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에휴. 널 가르치느니 차라리 지나가던 똥개에게 재주를 가르치겠다.”
 “이것 보셔!”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싸우고 있을 때였다.
 “단영아.”
 조기풍이 불렀다.
 “예?”
 그러자 고단영이 고개를 들었다.
 ‘저놈은!’
 과연 누가 고단영일까 하는 궁금함에 지켜보고 있던 설화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고개를 쳐든 녀석은 분명 자신의 미모를 폄하하던 그 빌어먹을 놈이 틀림없었다.
 설화란은 그때의 분한 감정이 되살아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호호.”
 설화란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고단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설화란이라 해요.”
 방긋 웃음 지으며 인사하는 그녀를 보던 모든 이들은 혼절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헌데 고단영만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고단영은 설화란을 무시하고서 아향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검을 쥐는 게 맞아?”
 “으, 응.”
 주변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아향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저 멸치 대가리같이 생긴 게!’
 무시당한 설화란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저보다 한 살 많으시다 들었어요. 오라버니라 불러도 될까요?”
 “난 동생 필요 없어.”
 “······.”
 누가 보아도 명백한 거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울분에 가슴을 쳤다.
 어떤 녀석은 눈물까지 흘렸다.
 저 멍청한 지진아 고단영이 뭐길래 매화일미 설화란에게 저런 관심을 받는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차이기까지 했다.
 천하의 매화일미 설화란이.
 고단영의 안중에 설화란은 없었다.
 오직 아향에게서 파지법을 배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그렇게 쥐면 되, 될 것 같네.”
 아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고단영 때문에 괜스레 난감해졌다.
 그녀도 설화란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화산파 장문인의 무남독녀로서 문 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잘못 보이기라도 한다면 생활이 고달파질 것이 분명했다.
 “······.”
 거기다 설화란이 주먹을 불끈 쥔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단영이 무시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 저기······.”
 아향은 난감했다.
 표독스러운 설화란의 눈빛을 애써 피하며 고단영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는 귓속말을 했다.
 “야. 좀 상대해줘.”
 “내가 왜?”
 “예쁘잖아.”
 “뭐가?”
 “무려 매화일미 설화란이라고.”
 설화란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 원하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난 별론데?”
 “······.”
 “내 취향이 아니야.”
 “너 취향······ 참 독특하다.”
 “그런가? 난 내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고단영과 아향이 사이좋은 듯 서로 밀담을 주고받자 설화란의 주변으로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을 느낀 조기풍과 속가제자들은 몇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설화란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향을 바라보았다.
 “호호, 고 오라버니에게 인기가 좋으시군요. 하지만 이제부터 그 관심 제가 받아도 될까요?”
 설화란은 아향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누가 보아도 깔보며 무시하는 행동.
 “······.”
 아향은 울컥했다.
 자신을 깔보는 듯한 설화란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했고, 아무리 추하다지만 아향도 어엿한 여인이었다.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불끈 치밀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서.”
 아향은 보란 듯이 고단영의 두 손을 붙잡았다.
 “검은 이렇게 쥐는 거야. 자자, 손에 너무 힘주지 말고.”
 아향이 보란 듯이 고단영의 손을 감싸 쥐자 지켜보던 설화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쩌어억!
 그녀가 밟고 있던 연무장 바닥에 금이 갔다.
 갑자기 일어난 기현상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청장의 바닥은 단단하기로 소문난 화강암이었다. 절대 그냥 갈라져버릴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란 말이다.
 “저기······ 제가 몸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설화란은 이마에 역십자 모양의 핏줄이 불거진 채 조기풍에게 말했다.
 “그, 그렇게 해라.”
 조기풍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초라하게 홀로 돌아가는 설화란의 뒷모습을 보는 뭇 사내들의 가슴은 아파왔다.
 그에 반해 아향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고단영은 가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아향은 고단영이 평소에 처음 보는 이들이라도 싹싹하게 대해온 것을 보았다.
 고단영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설사 하인이라 할지라도 높임말을 쓰며 예의를 갖췄다.
 비록 멍청한 지진아라 할지라도 하인들이나 시녀들에게 고단영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런 예의 덕분이었다.
 헌데 처음 본 설화란에게 원수 대하듯 차갑게 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째서 그렇게 한 거야? 그냥 몇 마디 정도 나눠줘도 됐잖아.”
 고단영은 슬쩍 아향을 바라보았다.
 “그냥 싫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단영은 설화란이 싫었다.
 “그냥 싫다고. 사람 싫은데 이유가 있어? 뭔지 모르게 쟤 찝찝해. 그래서 싫어.”
 오랫동안 산속에서 살아오며 키워온 동물적인 감각이 설화란을 거부하고 있었다.
 “에구구구.”
 초가로 돌아온 고단영은 오늘 하루도 무리를 하느라 온몸이 지르는 비명을 들어야만 했다.
 “아픈 것이냐?”
 단진명이 말을 건넸다.
 “보고도 모르십니까?”
 파열 직전의 근육 상태는 부르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척 봐도 상당히 아파 보인다.
 “그나저나 여긴 웬일이십니까?”
 평소엔 오지 않던 단진명이 갑자기 얼굴을 비추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허허. 내 발로 내가 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더냐?”
 “누가 불만 있다고 했습니까?”
 “옛다. 이걸 발라라.”
 단진명이 품속에 가지고 있던 근육통에 좋은 약을 꺼내 내밀었다.
 고단영은 그것을 전신에 골고루 펴 발랐다.
 효과가 직통이었다.
 뼈를 바늘로 찌르는 듯하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졌던 것이다.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누추한 이곳엔 어인 일이십니까?”
 고단영은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단진명을 반겼다.
 “허허. 역시 넌 예의가 바르구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내가 너를 찾은 것은 그저 네 안부가 궁금했을 뿐이다. 지낼 만은 하느냐?”
 처음에는 나물조차 캐먹을 힘이 없어 물배를 채웠지만 지금은 당당히 나무껍질 죽이나 풀죽 정도는 쑤어 먹을 수 있었다.
 아직 산짐승을 잡는 것은 무리였지만 차차 힘을 키워 간다면 머지않아 기름진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합니다. 다만 저녁에 뼈가 시릴 정도로 춥고, 배가 고파서 현기증이 일어나 쓰러지는 것만 뺀다면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검의 진전은 어떠하냐? 이제 검이 뭔지 좀 알 수 있겠더냐?”
 비꼰다고 비꼬았지만 단진명은 그리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휘두르는 정돈데요 뭘. 아직 멀었죠.”
 검을 들고 휘두른다는 말에 단진명은 상당히 놀란 듯했다.
 “휘두른다고? 벌써?”
 “예, 뭐가 잘못됐나요?”
 “아무것도 아니다, 크흠.”
 단진명은 헛기침을 했다.
 ‘대단하군. 나나 추가 그 녀석도 그걸 먹고 거동 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는데······.’
 단진명 그 자신이나 추살호조차도 검을 휘두르는 데는 족히 일 년은 걸렸다.
 그런데 고단영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생각보다 느리구나. 일주일 정도면 될 줄 알았더니.”
 허나 나온 말은 생각과 달랐다. 단진명은 그런 속내를 감추었다.
 “해도 안 되는 걸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자 고단영이 버럭 소리를 쳤다.
 단진명은 머쓱한 웃음을 짓다가 가지고 왔던 종이 뭉치를 던져주었다.
 받아든 고단영은 그것을 펼쳐보았다.
 종이 뭉치 속에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기가 있었다.
 고단영의 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성심성의를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허허. 네 뜻이 갸륵하니 그것으로 몸보신 좀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단진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 하십니까?”
 “그래.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되돌아가야지.”
 고단영은 단진명을 배웅하기 위해 문밖까지 따라 나왔다.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물으마.”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뭐든지 다 말해줄 기세였다.
 “화란이를 네가 찼다고 하던데, 정말이냐?”
 고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경국지색의 미가 아니더냐?”
 “전 별로입니다.”
 “아향이라는 아이가 좋더냐?”
 단진명도 풍문으로나마 고단영이 추화 아향과 찰떡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을 들었다.
 “예.”
 “거참, 취향 한 번 독특하구나.”
 “스승님만 하겠습니까.”
 단진명이 턱을 매만지며 기억을 떠올렸다.
 “하긴, 네 스승도 취향이 참 독특했지.”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그렇구나. 그럼 어서 자거라. 내일도 수련을 해야 하니.”
 “예. 살펴 들어가십시오.”
 * * *
 다음 날, 태청장을 찾은 고단영은 묘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향과 설화란이 일 장의 거리를 두고 서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자들의 싸움에 끼기가 뭐한지 주변을 돌며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니들 왜 그러냐?”
 고단영이 올라서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바로 이번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고 오라버니, 이제 오세요?”
 설화란은 눈싸움을 그만두고 냉큼 고단영에게 달려갔다.
 양팔을 벌리고 달려가는 모습이 꼭 그를 껴안으려는 듯 보였다.
 슬쩍.
 고단영은 옆으로 피했다.
 설화란을 무시한 채 아향에게 말을 건넸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야?”
 피식.
 아향은 팔 벌린 동작 그대로 굳어 있는 설화란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까드득!
 설화란은 이를 갈았다.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천하를 쥐어 잡는 것이 남자라면 그 남자를 쥐어 잡는 것이 여자라 하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어떤 남자가 되었건 포로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녀이다.
 절색의 미모를 지닌 자신이 저런 멍청한 지진아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흉한 몰골의 추녀에게 졌다는 패배감마저 들었다.
 ‘이 정도로 물러설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설중철에게 받기로 했던 자옥석 반지도 중요했지만, 그냥 물러서자니 짓밟힌 자존심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고단영을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설화란은 감춰 두었던 최후의 수를 꺼내들기로 했다.
 “흑흑.”
 설화란의 맑고 큰 눈동자에 구슬이 맺혔다.
 그리고 눈물은 이슬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설화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지자 일제히 고단영을 노려보았다.
 대체 저놈이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여자들이 이리 목을 맨단 말인가.
 추화 아향이 얽히는 것은 절대 부럽지 않지만 매화일미 설화란의 눈에서 눈물까지 흐르게 할 정도로 관심을 받는 것은 정말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저놈을 그냥!”
 “크흑! 왜 저런 놈이······. 아, 설 매여, 나에게 오라. 내 간이라도 빼어주겠나이다.”
 지켜보는 남정네들은 모두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고단영을 여드레 밤낮으로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흑흑. 오라버니는 제가 싫은 거예요?”
 설화란은 눈물에 젖은 눈동자로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그윽한 시선.
 제아무리 목석같은 사내의 얼음장 같은 마음이라도 단번에 녹여버릴 수 있을 법한 눈길이었다.
 “싫어.”
 “······.”
 순간 모든 이들은 침묵했다.
 설화란조차 예상치 못한 차가운 대답에 울음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상처받겠다.”
 아향의 말에 고단영은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건 싫어.”
 딱 잘라 거절하는 고단영을 보는 설화란의 두 눈은 화르륵 타오르고 있었다.
 ‘이 멸치 대가리 같은 새끼야. 나도 거절이다.’
 너무나 분통이 터진 나머지 설화란은 하마터면 그 말을 내뱉을 뻔했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언제나 주목받는 입장이던 설화란에게 있어 오늘처럼 치욕적인 날은 처음이었다.
 ‘널 반드시 내 포로로 만들겠어. 그렇게 만든 뒤, 죽을 때까지 괴롭혀주마!’
 설화란은 원한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고단영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더없이 잔인하게 버려주지.’
 한바탕 소란 있은 후, 태청장은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수련을 시작했다.
 “헉헉!”
 바닥에 누운 고단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른 탓에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에휴, 어떻게 넌 어제보다 오늘 더 어설퍼지는 것 같아.”
 아향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수수께끼 같지? 나도 그게 참 궁금해.”
 고단영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해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누군들 좋아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고단영은 발전이 없었다.
 어느 정도 이제 검 좀 다룬다 싶으면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대부분의 속가제자들은 기본적인 삼재검법을 떼고 화산파의 기초적인 검술인 매화검을 익히기 시작했다.
 헌데 고단영만은 아직도 삼재검법에 얽매어 있었다.
 기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걷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단영의 실력이 매화검을 익히기에는 한참 모자랐기에 조기풍이 상승검법을 익히는 것에서 제외를 시켰던 것이다.
 잠자코 지켜보던 아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 대련해야지.”
 몸을 풀고서 검을 쥔 후 고단영의 앞에 섰다.
 검술 수업이 끝난 후 남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련이었다.
 실전 같은 대련만큼 빨리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안 일어날 거야?”
 정말 움직일 힘 하나 없었던 고단영은 옆으로 돌아누우며 아향을 외면했다.
 아향의 이마에 역십자 모양의 실핏줄이 돋아났다. 곧 그녀의 다리가 거세게 고단영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퍽!
 “악!”
 고단영은 뼈가 시큰거리는 고통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해야 해?”
 고단영은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며 물었다.
 “당연하지. 놀고먹어서 언제 무림출도라도 한 번 해볼래?”
 “당장 나갈 생각도 없고, 대련은 해봤자 뻔한데······.”
 굳이 보지 않아도 대련의 결과는 뻔했다.
 아향의 압도적인 승리.
 속가제자들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인 아향과 가장 뒤떨어지는 고단영이 대련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고단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검을 쥐었다.
 “살살해.”
 “전력을 다할 거야.”
 “······.”
 “간다!”
 아향은 검을 곧추 세웠다.
 번뜩이는 두 눈은 정말 전력을 다해 고단영을 상대하려는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당하는 건 나니까.’
 다른 이들은 고단영의 어설픈 움직임만을 단편적으로 보고서 섣부른 판단을 했다.
 하지만 그간 직접 검을 맞대본 아향은 아니었다.
 처음은 어설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단영의 검은 달라졌다.
 육중했다.
 그리고 빨랐다.
 어떻게 저런 어설픈 자세와 움직임에서 이런 힘이 나올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이런 것을 보고 그분께서 이 녀석을 제자로 들이신 것일지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고단영을 보며 아향은 왜 그분께서 제자로 들인 것인지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캉!
 아향과 고단영의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크윽!’
 아향은 속으로 신음했다.
 지릿.
 단지 검을 맞댄 것뿐이었지만 손이 얼얼할 정도로 저려왔다.
 역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젓가락을 집지 못해 저녁은 먹지 못할 듯했다.
 매번 고단영과 검을 맞댈 때마다 끔찍할 정도의 손 저림을 겪어왔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주먹을 쥘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맞대는 것은 고단영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빛을 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검을 맞대면 맞댈수록 비약적으로 자신의 검 실력이 늘어가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말이다.
 퍽!
 아향의 검 끝이 고단영의 복부를 찔렀다.
 “커헉!”
 미처 방어하지 못한 고단영은 신음을 토했다.
 “실전이라면 넌 벌써 죽었어! 정신 안 차릴래?”
 아향의 따끔한 음성이 고단영의 고막을 때렸다.
 “크으윽!”
 속을 헤집는 극심한 고통이었지만 고단영은 이를 악물며 참아냈다.
 그리고 아향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살짝 옆으로 피한 아향은 재차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헌데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고단영의 검이 검로를 바꿔 자신의 목을 노리며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퇴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헌데.
 평소라면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검이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이런!’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
 균형을 잃은 아향은 자세가 무너져버렸다.
 그런 자세로는 빠른 속도로 내려쳐지는 검을 피해내거나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록 날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강한 힘이 실린 검에 맞는다면 못해도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질 것이다.
 아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쿵!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잠깐의 정적 후, 아향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살짝 눈을 떴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몸을 살펴보았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휴우.”
 아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고단영의 검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바닥을 산산조각 낸 채로 멈춰 있었다. 저 검을 만약 자신이 맞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끔찍했다.
 아향은 어떻게 검이 자신을 비껴갔는지 의문이 생겼다.
 바로 목전까지 내려쳐지던 검이었다.
 굉장한 속력과 힘이 담긴 검의 궤적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일류고수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고단영이 한 듯했다.
 아향은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잠시 후, 태청장이 떠나갈 정도의 큰 비명이 고단영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단단한 화강암 바닥을 검으로 친 탓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전해 받았던 것이다.
 “아이고, 나 죽네! 죽어!”
 난데없는 소란으로 일약 수십 쌍의 눈이 고단영에게 집중되었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고단영을 보며 그들은 저놈이 왜 또 저러냐, 바보는 별 수 없다 등등······ 저마다 한 마디씩을 했다.
 “괜찮아?”
 아향이 물었다.
 “끄윽, 이게 괜찮아 보이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바, 발을 헛디뎠어. 아쉽다. 내가 한 방 먹일 수 있었는데, 크윽!”
 아니었다.
 발을 헛디딘다 할지라도 조금 전 그런 검의 궤적은 나올 수가 없었다.
 * * *
 어느덧 해가 저무는 저녁.
 고단영은 아무도 오지 않는 외각의 초가 앞에서 홀로 검을 휘둘렀다.
 검을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순간적으로 손목을 비틀고 스승님께 배운 보법을 밟아 억지로 검로를 바꾸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아향이 크게 다칠 뻔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런 밤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열심히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휴우.”
 검을 내려놓은 고단영은 마루에 걸터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네가 제법이로구나.”
 한숨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고단영은 고개를 숙였다.
 “어째 요즘 자주 오시는 것 같습니다.”
 다소 불만이 섞인 목소리였다.
 “허허. 다 네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헌데 오늘은 또 어쩐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누가 들어도 절대로 반기지 않는 말투였다.
 “어제 보니 네 검의 이가 많이 나간 것 같아 새 검을 들고 온 것이란다.”
 그 말에 고단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단진명의 손으로 향했다.
 묵빛을 내는 검이 들려 있었다.
 “전 이걸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단진명에게 몇 번이나 당했던 고단영은 자연스레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분명 무엇인가 검에 수작을 부려놓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허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작 두 배 정도 무거워진 것 말고는 별것 없느니라.”
 “······.”
 별것 아닌 게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검의 무게가 손에 익었다.
 그런데 더 무거운 것을 쥐게 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검을 손에 익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근력이 약화되어 수업을 정상적으로 따라가지도 못했다.
 헌데 더 무거운 검을 쥐라는 것은, 수업을 아예 포기하라는 말과도 같게 들렸다.
 “어르신, 이러니 제가 다른 녀석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설마 제게 검을 가르쳐 주기 싫으셔서 이러시는 건 아닙니까? 정말 그런 겁니까?”
 머리에 열이 올랐는지 고단영이 다소 언성을 높였다.
 아직 베고 찌르는 삼재검법에 머물러 있는 자신과는 달리 다른 속가제자들은 이미 화산파가 자랑하는 검술 중 하나인 매화검을 익히고 있었다.
 차이가 나도 너무나 났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고단영은 나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먼저 앞서가는 것에 다소 불만이 있었다.
 그것을 묵묵히 참고 이제 겨우 뒤따르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는데 다시 발목을 잡아채고 족쇄마저 씌웠다.
 고단영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보이자 단진명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허허. 미리 앞서가서 무엇 하리, 뒤처져서 무엇 하리, 올라갈 높이가 처음부터 다른 것을. 태산의 초입에 이른 네가 동산의 중턱에 오른 이들을 질투해서야 되겠느냐?”
 단진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가지고 온 검을 건네주었다.
 “이제 겨우 몇 걸음 떼었을 뿐이다. 남들과는 가야할 길이 다르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거라. 개구리는 더 멀리 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낮게 웅크리는 법이란다.”
 “······.”
 정말 말 하나는 끝내준다.
 설사 황실 학사가 온다 해도 말로는 단진명을 이길 수 없으리라.
 고단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더욱 무거워진 새 검을 받아 들었다.
 외관은 똑같았으나 역시 받자마자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웠다.
 “이건 내가 가져가마.”
 단진명은 여태껏 고단영이 쓰던 검을 집었다.
 “포기하지 마라.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그것이 네게 있어 오를 수 있는 산이란 것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 * *
 단진명은 자신의 초가를 향해 하늘의 별을 벗 삼아 밤길을 걸어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읊조렸다.
 “허허, 영이는 어쩌면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인물이 될지도 모르겠네.”
 단진명은 친우 추살호의 얼굴을 그렸다.
 “그리고······ 이제 곧 무림의 존속을 위해서 영이를 이용해야 되겠네. 부디 이해해 주길 바라네.”
 
 
 第五章 용호상박(龍虎相搏) - 호랑이와 용의 싸움
 
 
 화산에 매화가 만개했다.
 고단영은 고개를 들어 피어 있는 매화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이 어제의 일같이 느껴졌지만 벌써 몇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익숙해진 것도 많았다.
 “에구구구.”
 고단영은 허리를 두드렸다.
 아직 이 약해 빠진 몸에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나아져 이제는 삼재검법 정도는 완벽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그리고 찌르기.
 그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아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른 탓에 일찍이 피곤이 몰려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나지막한 언덕에 편히 몸을 뉘었다.
 매화나무 그늘이 얼굴 위로 드리워져 꿀맛 같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들려 했다.
 딱!
 둔탁한 충격에 잠이 번뜩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구야!”
 봉변을 당한 고단영은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야.”
 아향이 목도를 들고 서 있었다.
 “······.”
 고단영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곧이어 아향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쏟아질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낮잠이나 자고 있을 때야? 남들 다 할 때 이렇게 놀고 있으니 뒤처지지. 이래야 되겠어?”
 아향이 버럭 소리를 쳤다.
 속가제자들은 이미 기본적인 검 수련을 거쳐 상승검법의 중간단계에 이르렀으며, 이제는 구슬땀을 흘리며 보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삼재검법에 머물고 있는 고단영이 누워 낮잠을 자려 하자 괜스레 화가 났던 것이다.
 “한 번 뒤처지면 끝없는 거 알지? 그러다 평생 뒤처진다.”
 “일어난다, 일어나. 에구, 저놈의 잔소리. 지가 내 마누라라도 되는지······.”
 고단영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 동안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던 탓에 기력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약한 척을 해도 꾀병을 부린다며 등을 떠밀 것이 분명했다.
 “내가 봐 줄 테니까 열심히 해.”
 아향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러는 넌?”
 “이미 끝냈지. 후후,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향은 자신만만했다.
 그녀는 속가제자들 중에 가장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검과 보법 스승들 또한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며 특별히 개인 수련을 할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고단영에게 잔소리를 하며 수련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범부터 보여줘. 보고 하는 게 낫지. 자, 그럼 지금부터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짝짝!”
 고단영은 박수를 친 뒤, 아향에게 어서 시범을 보이라는 듯 손짓했다.
 “······.”
 아향은 고단영을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턱을 괴고서는 기대가 가득 담긴 반짝이는 눈동자. 그렇게 잔소리를 했으니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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