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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나이 1

2017.05.04 조회 3,242 추천 28


 기적의 사나이 1 - 기적
 
 
 프롤로그(Prologue)
 
 
 기적(奇蹟, miracle).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의 힘이 있어서 작용했다고 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하고 놀라운 사건을 말한다.
 또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고들 한다.
 그런 기적적인 일이 바로 당신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우리 주변에는 작지만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인생역전을 하거나 꿈과 희망 등을 전부 접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 인생이 찾아오는 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복권의 1등에 당첨되는 거 보다 훨씬 희박하고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적인 일이 문득 당신을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럼 그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바로 나처럼.
 - 기적을 꿈꾸는 이의 독백에서 -
 
 
 제1장 그의 일상
 
 
 짹짹짹 짹짹!
 알람시계에서 새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침대의 이불 속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오더니 주위를 더듬거리다가 알람시계를 눌렀다.
 “아함, 벌써 아침인가?”
 이불을 젖히면서 튀어나온 머리는 놀랍게도 복면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복면인은 상하의가 붙어 있는 동일한 회색의 패턴으로 된 한 벌짜리 점프수트를 입고 있었다.
 알람시계를 보니 아침 6시였다.
 절뚝거리면서 현관문으로 걸어가서 우유와 요구르트, 신문을 집어 들었다.
 거실 테이블에 신문을 내려놓고 우유와 요구르트는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약간 열려진 베란다의 문틈 사이로 산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그의 우측 어깨에 내려앉았다.
 보통 산새들은 겁이 많아서 사람을 무서워하기에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산새는 특별한 것인지 아님 그가 특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산새가 우측 어깨에 내려앉자 씨익 웃으며 오른 손바닥을 내밀었다.
 산새는 그의 오른 손바닥으로 이동했다.
 “녀석, 맛있는 거줄게.”
 접시에 좁쌀과 해바라기 씨를 덜어 주었다.
 산새는 맛있게 쪼아 먹었다.
 정수기 물도 소주잔에 부어주었다.
 잠시 산새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명상을 했다.
 8시가 되자 명상을 멈추고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산새는 날아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물을 틀어 놓고는 다시 나와 아침식사를 위해 우유와 요구르트, 식빵과 과일을 꺼내어 천천히 음미하면서 씹어 먹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의 거울 앞에 선 그는 입고 있던 점프수트를 벗자 온몸이 놀랍게도 심한 화상 흉터였다.
 심한 화상으로 피부의 표피와 진피, 지방과 근육, 뼈에까지 손상을 입었다.
 괴사한 피부 일부는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신경 말단이 깊이 손상되면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었다.
 손을 떨면서 그는 복면을 벗었다.
 놀랍게도 얼굴의 절반이 화상으로 인하여 녹아내려 끔찍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수십 개 정도 삐죽 나 있었다.
 머리 쪽에도 심한 화상을 입어 두피가 손상을 입었다.
 그 흉터로 인하여 심한 정신적, 정서적 장애를 초래했었다.
 “흐흐흐, 이게 나의 얼굴이란 말인가? 난 인간이 아니고 괴물이야. 괴물!”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는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욕조에 들어가 누웠다.
 미지근한 물에 들어갔더니 한결 마음이 편하였다.
 얼마 후에 샤워하고 나온 그는 다시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 놓여 져 있는 알람시계를 잠시 보더니 신문을 펼쳐 읽었다.
 다 읽은 신문을 내려놓고는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증권거래소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시작했다.
 정규 증권거래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며 시간외 시장이라는 게 있는데 정규 증권거래 시간 이외의 시간에 매매를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코스피지수와 증권거래 현황을 보더니 개별종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두 시간 만에 그는 한주에 만 원하는 세븐 럭키전자의 주식을 천주를 매입했다.
 천만 원 어치의 주식을 샀는데도 전혀 동요가 없었다.
 사이트를 나온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만든 폴더를 열었다.
 놀랍게도 로또복권 기계와 45개의 공이 있었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로또복권 기계 속에 공이 들어가 휘돌다가 공이 튀어나왔다.
 당첨된 번호를 수첩에 기록하였는데 모두 열 번의 추첨을 하였다.
 알람시계를 보니 정오였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를 끄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 점심은 김치라면이다.”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는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키더니 요즘 유행하는 인기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유선방송이기에 채널을 바꾸어가면서 보았다.
 저녁때가 되자 밥과 된장찌개, 김치로 저녁을 먹고는 다시 텔레비전을 보았다.
 밤 12시가 되자 보던 텔레비전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이 사람의 하루 일과가 좀 이상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리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였다.
 인터넷 증권거래소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하였지만 어제처럼 주식을 매입하지는 않았다.
 나머지는 크게 다르지 않는 시간이었다.
 어제와 크게 다를 거 없는 즉,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같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자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해 놓았던 로또복권 번호를 분석하더니 로또용지를 두 장 꺼내었다.
 검정색 사인 팬으로 번호를 신중하게 칠하였는데 한 장에 5회 즉, 두 장이니 전부 10회였다.
 점프수트 주머니에 지갑과 로또복권 용지를 집어넣고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다.
 완벽하게 변장을 하고서야 그는 원룸을 나섰다.
 24시 편의점 앞에 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비벼서 불을 끈 남자의 눈이 커지면서 외쳤다.
 “허엇, 저기 로또 외계인이다.”
 “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오후 4시 정각에 나타나는군?”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에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남자가 절뚝거리며 24시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밖에 서 있던 사람들도 우루루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손님들이 점프수트의 남자를 힐끔거렸다.
 그는 음료수와 각종 먹을거리를 사더니 돈과 함께 주머니에서 로또복권 용지를 꺼내어 주인에게 내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인의 손에 들려 있는 로또복권 용지에 집중되었다.
 주인은 살짝 손을 떨면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긴장했는지 이마에서 땀을 한 방울 흘리더니 아쉽다는 표정으로 기계에 로또복권 용지를 넣었다.
 로또복권 두 장과 로또복권 용지를 그에게 건 내고 잔돈도 내밀었다.
 그는 로또복권 두 장의 뒷면에 인적사항을 적었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 강제로 빼앗지 못한다.
 로또복권 두 장과 잔돈을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서자 주인이 재빨리 말했다.
 “그냥 가십니까?”
 “3번 그리고 27번.”
 두 개의 번호를 말하고는 24시 편의점을 나갔다.
 주인과 천 명이 넘는 많은 손님들이 각자 로또복권 용지에 재빨리 3번과 27번을 칠하였다.
 아르바이트생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아르바이트생은 이제 겨우 일한지 3일 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사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말 시키지 마. 나 바빠.”
 고심하여 번호를 칠한 손님들이 줄을 서더니 로또복권을 구입해 사라졌다.
 마치 밀물처럼 24시 편의점으로 몰려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아르바이트생은 멍한 표정이었다.
 태연하게 로또복권을 뽑은 사장이 그제야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오늘은 운이 좋아서 번호 하나를 보았어. 기본 3개는 일치하니 최소 5등은 따 놓았다.”
 “사장님,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궁금해도 참아, 그런 게 있어.”
 “예?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도대체 뭡니까?”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치는데?”
 “사장님!”
 “알았다.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예, 물론이죠.”
 “모자 눌러쓰고 선글라스 낀 사람이 들어 왔었지?”
 “예, 그럼요.”
 “그 사람이 그 유명한 로또 외계인이야.”
 “예? 로또 외계인? 그게 뭡니까?”
 “아나, 이거야 참···너 정말 로또 외계인을 몰라?”
 “답답하니까 속 시원하게 알려주십시오.”
 “로또 외계인이 뭐냐 하면 말이······.”
 주인은 턱을 만지면서 지난날을 떠올렸다.
 약 3년 전부터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편의점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강도가 아닌가 하는 착각도 했지만 복면을 약간 들어 올려 화상을 입은 흉터를 보여 주었고 그제야 주인은 이해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변장한 모습으로 외출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에도 음료수와 각종 먹을거리를 사더니 돈과 함께 주머니에서 로또복권 용지를 꺼내어 주인에게 내밀어 로또복권을 구입해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정각에 나타나 음료수와 각종 먹을거리를 사고 로또복권을 구입해갔다.
 주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로또복권의 3등과 2등이 자주 나왔다.
 주인의 예상으로는 그가 로또복권을 구입해 가면 어김없이 3등 2개 이상은 당첨되는 거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2등에도 당첨되었다.
 비록 1등 당첨은 한 번도 되지 않았지만 2등이나 3등이 자주 당첨되다보니 어느새 로또명당이라 소문이 났다.
 언제부터 인가 로또복권 구입을 하러 온 손님들이 그를 보고는 로또 외계인이라고 불렀다.
 “예? 2등 52번에 3등이 3백번이 넘게 당첨되었다고요?”
 “그렇다니까.”
 “에이, 농담이시죠?”
 “얌마, 내가 너랑 농담이나 하겠어?”
 “그럼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손님들이 우리 편의점에 몰려드는 거야. 로또 외계인에게 번호 두 개를 얻으려고 말이야.”
 아르바이트생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 사장님께서 그래서 긴장하고 로또복권을 사고했었구나.’
 “사장님, 저도 로또복권 5장을 사겠습니다.”
 “뭐? 이게 벌써부터 요령을 부리네?”
 “저도 번호 두 개를 아는데 사고 싶습니다.”
 “으음, 좋다. 특별히 구입하도록 해줄 테니 다른 곳에 가서 헛소리 하면 안 된다.”
 “예, 사장님.”
 아르바이트생은 번호를 고민하다가 5장을 구입했다.
 로또복권을 확인하고는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사장님, 그런데 로또 외계인이 어디에 사는 겁니까? 제가 보기엔 이 근처에 사는 모양인데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길 건너에 있는 빌라나 아파트, 원룸 중에 난 원룸에서 살고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해.”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언제 화상을 입은 사람이 원룸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아, 그렇군요.”
 “이제 물건을 채워야 되니 서두르자.”
 “예, 사장님.”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은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어 진열을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는 긴장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다섯 번째 당첨번호는 파란색 볼 34번입니다.
 “좋았어. 이제 하나 남았다.”
 3번·28번·16번·27번·34번이 나왔는데 전부 맞았다.
 이제 마지막 하나의 당첨번호 볼만 맞으면 1등이었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그는 로또복권을 매주 토요일에 구입하였고 2등 52번과 3등 306번이나 당첨되었다.
 4등이나 5등에 당첨된 것은 천 번이 넘어갈 것이지만 당첨금이 작아서 아예 계산에 넣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은 기분이 좋았기에 잘하면 1등에 당첨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긴장되었다.
 이때 정신없이 휘돌던 당첨 볼이 툭 튀어 나왔다.
 -여섯 번째 당첨번호의 볼이 나왔습니다. 아, 노란색 볼 9번입니다.
 “으하하하, 1등이야, 1등!”
 그토록 노력해도 이제까지 1등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드디어 오늘 1등에 당첨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똑같은 1등 당첨번호를 3회 구입하였고, 다른 번호로 2회와 5회를 각각 구입했었다.
 1등에 당첨되더라도 다른 사람이 1등이 나오면 그만큼 당첨금이 줄어든다.
 최대한 많은 당첨금을 타기 위하여 그는 잔머리를 썼는데 역시나 1등에 3회나 걸렸으니 당첨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1등 누적당첨금이 120억 원 정도라고 했으니 월요일 당첨금을 타러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오늘은 최고로 기쁜 날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나만의 자축을 해야지.”
 그는 아껴두었던 로제 샴페인을 꺼내었다.
 그리고 낮에 사두었던 족발을 가져와 티 테이블에 놓았다.
 주우욱!
 로제 샴페인을 잔에 붓고 음미하면서 한 모금 마시고는 족발을 입에 넣고 씹었다.
 토요일마다 로또복권 방송을 보면서 2등에 당첨되면 준비해 두었던 와인을 마시면서 자축하였고 3등이면 그냥 캔 맥주를 마셨다.
 오늘 딴 로제 샴페인은 그가 6개월 전에 구입해 놓은 것이었다.
 “쿡쿡쿡···박 훈, 오늘 같이 기쁜 날. 널 축하해주는 사람하나 없구나.”
 오늘따라 이상하게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로제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운 훈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화상을 입기 전을 떠올렸다.
 박 훈은 23살이며 187센티미터의 큰 키이다.
 하지만 화상으로 인하여 왼쪽 다리의 피부가 녹아내리고 신경까지 다쳐 절뚝거리게 되었다.
 화상을 입은 사건은 5년 전인 2000년 10월이며 당시에 훈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제주도 3박4일 여행 중이셨는데 훈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공부하다가 피곤하여 잠깐 졸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밤에 옆집에서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면서 그 불이 훈의 2층 단독주택으로 옮겨 붙었다.
 잠깐 졸지만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었는데 그만 훈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긴급후송 되었지만 너무 화상이 심하여 의사들도 거의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운이 좋은 건지 훈은 9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그동안 세 번의 수술과 화상치료가 있었다.
 온몸의 화상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왼쪽 다리가 신경까지 다쳐서 심하게 절뚝거리게 될 거라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리고 얼굴 절반과 머리에 심한 화상으로 피부가 녹아내려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다행이 화재보험에 들어 있어서 보상은 많이 받았다.
 병원에서 1년6개월이나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부모님들은 서로 죄책감과 성격차이로 서로 다툼이 많았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훈은 흉측한 외모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면서 결국 부모님들은 서로 합의이혼을 하셨다.
 훈은 ‘틀어박히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수 년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한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가족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
 대화도 없다.
 밀폐된 방안에서 오로지 혼자만의 생활을 한다.
 이불솜처럼 뭉쳐지는 먼지와 머리카락, 방바닥에는 먹다버린 온갖 종류의 쓰레기로 가득하다.
 세상과 단절을 하는데 학창시절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 많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불화와 폭력, 부모와의 대화단절, 인터넷 게임 중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훈은 그런 이유가 아니고 심한 화상 때문에 아파트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식사도 하고 인터넷 게임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들은 서로 합의이혼을 하기 전에 각자 바람이 나서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
 합의이혼을 하고나면 훈이 문제였다.
 서로 맡아서 기르려고 하지 않았지만 당사자인 훈에게는 아들이라서 차마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합의이혼을 하기 직전에 서로 싸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훈도 상황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훈은 20살이 되었고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독립하여 살겠다고 부모님께 말하였다.
 지금 훈이 살고 있는 그랜드 원룸을 약 3년 전에 부모님들이 합의이혼을 하시면서 사주셨다.
 15층짜리 그랜드 원룸의 15층 1501호는 59.504평방미터 즉, 18평이었다.
 훈의 시중 은행통장에 1억 원도 넣어주셨다.
 부모님들은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약 20억 원 정도의 재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하루 갑갑하게 원룸에서만 지내던 훈이 우연히 로또추첨 방송을 보면서 로또복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옛날부터 훈은 이상하게 숫자 맞추는 걸 잘했는데 자신감도 있었다.
 그랜드 원룸을 나가서 5분 정도의 거리에 24시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곳에 로또복권을 팔았다.
 그렇게 훈은 로또복권과 인연이 되었고 예상대로 첫 번째 구입한 로또복권이 2등에 당첨되었다.
 자신이 구입하고서도 잘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은행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을 생활비로 조금씩 쓰다 보니 점점 돈이 줄어들고 있었다.
 훈은 외출을 잘하지 못하고 원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어야 하기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로또복권은 자신에게는 직업이며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번씩 당첨금을 수령하려고 은행에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택시를 타고 은행에 갔다 오곤 했다.
 로또복권을 구입하여 당첨금을 수령하는 것을 부모님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에 24시 편의점에 가서 로또복권을 구입하였고 당첨이 많이 되었다.
 일 년에 약 12억 원 정도의 고소득을 올렸지만 작년 2004년 8월부터 로또복권이 천원으로 인하되어 당첨금도 크게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훈은 평균 한 달에 1억 원 정도 벌었다.
 지금 훈의 은행통장에는 30억 원이 약간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부모님들이 합의이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자주 연락이라도 했었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안부전화만 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생신이나 명절 때만 잠깐 안부전화를 했다.
 심한 화상 때문에 훈은 군 면제되었다.
 인터넷 주식거래는 약 1년 전부터였으며 자본금은 로또복권 당첨금의 일부로 시작하였다.
 주식거래에도 재능이 있는 것인지 손해는 없고 첫 달부터 약 3백만 원 정도 벌더니 올해에 들어와서는 월 2천만 원 이상씩 벌었다.
 이상하게 훈은 돈을 버는 재능은 타고 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심한 화상으로 인하여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고 있었다.
 여자 친구도 없이 혼자서 살다보니 점점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되었다.
 그나마 친구라고 한다면 매일 아침에 날아드는 산새가 유일했다.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훈은 눈을 감고 잠들었다.
 “어머, 저 사람 또 왔어.”
 “이번에도 당첨된 모양인데?”
 “정말 대단해. 로또 외계인이라고 하더니 비결이 뭘까?”
 은행 여직원들이 속삭이면서 은행으로 들어오는 훈을 쳐다보았다.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은행으로 들어왔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은행의 청원경찰들이 수상하게 생각하여 달려들어 체포했었다.
 하지만 훈이 심한 화상을 입어 변장을 하고 은행에 나타난 것을 알고는 그 다음부터는 체포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이상을 한 달에 두세 번 월요일 오후 2시 정각에 훈이 나타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안경을 쓴 김 대리가 눈을 번뜩이며 훈에게 말했다.
 “놀랍습니다. 이번에는 드디어 1등을 하셨군요. 그런데 3회나 되는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번의 1등 누적당첨금이 120억 원입니다. 1등이 4명인데 고객님께서 3회나 당첨되어 3명의 당첨금을 타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고요? 전 고객님처럼 매주 운이 좋으신 분은 처음입니다.”
 훈이 어깨를 으쓱 거리자 김 대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1등에 3명이니 90억 원에 세금을 제하면 70억2천만 원입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20억 원은 이 은행의 주 거래계좌로 넣어주시고 50억 원은 5개 시중은행의 계좌로 10억 원씩 입금해 주세요. 나머지 2천만 원은 만 원권으로 주세요.”
 “예, 바로 처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김 대리는 신속하게 처리하고는 2천만 원을 건 내었다.
 훈이 점프수트의 주머니에 2천만 원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히 가십시오.”
 “수고하세요.”
 훈이 은행 주차장으로 들어가더니 주차되어 있는 은색 중형차의 차문을 열고 탔다.
 불법이지만 짙은 선팅을 해서 밖에서는 차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당첨금을 타려고 은행에 가려면 택시잡기도 어렵고 해서 로또복권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구입하여 지금까지 타고 다니고 있다.
 1등은 한 번도 당첨되지 못하였지만 2등이나 3등에 많이 당첨되었다.
 혹시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신변안전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급할 게 없었기에 천천히 운전하여 미행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으응? 왠지 불길한데?”
 룸 밀러로 누군가 뒤에서 미행을 하는지 살펴보았지만 수상한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랜드 원룸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평소에 한 번씩 정비를 하러 가는 번개 3급 자동차정비소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동기 최 덕만의 아버지가 하는 곳이었는데 덕만이 대학을 가지 않고 아버지 밑에서 정비 일을 하였다.
 “어? 훈아.”
 “덕만, 반갑다.”
 “한 달 만인가? 갑갑해서 외출 나왔냐?”
 “어, 그렇게 되었다.”
 “차에 어디 이상 있냐?”
 “느낌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한 번 봐줘.”
 덕만은 친구 훈이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는 걸 알기에 늘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한 번씩 차를 정비하려고 찾아오면 신경을 더 써줬다.
 “훈아,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차 밑에 이런 게 붙어 있었어.”
 “브레이크는 한 달 전에 새로 교체했는데?”
 “맞아. 내가 교체를 해주었잖아.”
 “그런데 벌써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차를 타는데 이상이 있다면 말이 안 되지. 누군가 장난을 쳤어.”
 “장난이라면 고의적으로 그랬다는 말이야?”
 “어, 그런 거 같아. 그리고 차 밑에 붙어 있던 건 추적 장치 같아.”
 “으음,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그건 나도 모르지. 너 누군가에게 잘못한 거 있어?”
 “내가? 너도 알겠지만 집안에서만 사는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할 일이 뭐가 있어. 안 그래?”
 “그럼 누구지?”
 “이상하게 오늘 기분이 찝찝하다고 했어. 다른 곳도 꼼꼼하게 살펴봐줘.”
 차 뒷좌석의 구석진 곳에 은밀하게 숨겨진 추적 장치가 하나 더 발견되었다.
 이건 누군가 고의적으로 한 짓이 분명했다.
 훈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노리는 게 분명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간 훈은 물을 마시면서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생각했다.
 ‘으음, 그냥 조심만 해서는 안 되겠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예, 넘버원 보디가드입니다.
 “원룸에도 가능합니까?”
 -예, 물론이죠.
 “누가 원룸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몰래카메라 같은 거 설치해 놓은 것도 찾아내 줍니까?”
 -예, 그럼요. 크게 4가지 서비스를 해드려요. 첫째 출입통제 서비스라고 해서 현관문 출입통제 시스템을 설치해 줘요. 둘째 무인경비 서비스로 원룸 내 설치된 각종 감지기를 통하여 24시간 이상신호를 감지해요. 외부인 침입 혹은 원룸 내 이상 신호 발생 시에 순찰 대원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세 번째는 비상통보 서비스라고 해서 긴급 상황 발생 시 비상 통보 스위치로 출동대원의 현장 출동 및 경찰 지원을 요청하여 고객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드려요. 마지막 네 번째로 안심플러스 특약이라고 해서 사고로 인한 재산피해나 시설물 파손, 범죄발생, 생명 또는 신체 상해 등 모든 손해를 약관에 따라 최고 5억 원 한도 내에서 보상해 드려요.
 “그럼 오늘 당장 가입하고 싶은데요. 그리고 신변이 불안해서 그러니 보디가드 5 명을 당장 보내줄 수 있습니까? 하루 동안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그동안 원룸에 설명해 주셨던 보안시스템도 설치하고 싶습니다.”
 -그곳이 어디죠?
 “내가 있는 곳은 용산구의 이촌역 부근의 번개 3급 자동차정비소입니다.”
 -예, 그럼 장난 전화일 수도 있으니까 몇 가지 질문을 하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훈은 넘버원 보디가드에서 질문하는 걸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핸드폰의 통화를 종료했더니 다시 연락이 왔다.
 -확인 감사합니다. 바로 그곳으로 보디가드 5명을 출동시키겠어요. 늦어도 한 시간 이내에는 현장에 도착할 거예요.
 “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핸드폰 통화를 종료한 훈은 사무실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젠장, 들키고 말았어.”
 “저 자식 오늘따라 원룸에 안 들어가더니 결국 추적 장치를 찾아내었군. 어쩌지?”
 “그래도 우리의 계획은 변함없어.”
 “추적 장치를 찾아내었는데 일단 물러서야 하는 거 아닐까?”
 “한 달을 지켜보고 계획했는데 여기에서 물러나자고? 그건 안 돼.”
 “그럼 어쩌자고?”
 “오늘 밤에 놈의 원룸을 쳐들어가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거야.”
 “아, 알았어.”
 70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 입구에 정차해 있는 은색 중형 승용차 안에 두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 달 전에 로또복권을 구입하려고 명당이라 소문난 24시 편의점에 갔었다.
 그곳에서 나타난 훈을 보고는 은밀히 계획했다.
 로또 외계인에 대하여 좀 알아보니 1등에는 비록 당첨되지 않았지만 2등 당첨이 50번이 넘고 3등도 3백번 이상이었다.
 그동안 생활비와 돈을 좀 썼다고 하더라도 최소 20억 원 이상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훈이 원룸에서 외출할 때마다 은밀히 따라 다니면서 지켜보았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 국민은행 본점으로 로또복권 당첨금을 타려고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상을 입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훈이지만 한결같은 시간에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폭력이나 협박, 절도 등등 전과 5범으로 교도소 동기였다.
 출소한 후에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훈을 보고 돈을 빼앗으려고 계획하고 노렸다.
 훈이 외출 하였을 때 원룸으로 침입하여 초소형 몰래카메라도 3개나 설치해 놓고 감시했다.
 갑자기 짙은 선팅이 되어 있는 승합차 한 대가 번개 3급 자동차정비소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훈이 전화했던 넘버원 보디가드에서 나온 보디가드들이었다.
 여자 하나에 남자 4명이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훈이 보디가드들을 손짓하여 불렀다.
 “혹시 넘버원 보디가드에서 나온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박 훈씨?”
 “예, 제가 박 훈입니다. 얼굴과 몸에 화상이 있어서 이런 모습이니 이해를 바랍니다.”
 “예, 그렇군요.”
 훈이 자신의 차에서 나온 추적 장치를 보디가드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차 밑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한 달 전에 철저하게 정비를 하고 새로 부품도 교체했는데 누군가 브레이크에 손을 대어 문제가 있다더군요. 사실 나는 몸이 이렇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잠깐 차를 운전하거든요.”
 “으음, 그럼 작정하여 계획하고 노리는 거 같습니다.”
 “예, 그래서 불안하여 이렇게 의뢰를 한 것입니다.”
 “예, 일단 우리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지켜드리겠습니다.”
 “저게 내차인데 점검했지만 불안해서 타고오신 승합차에 내가 타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요원 하나가 저차를 운전해서 따라오면 됩니다.”
 이렇게 하여 훈은 안전하게 보디가드의 경호를 받으면서 그랜드 원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덕만, 나 그만 갈게.”
 “어, 그래.”
 보디가드의 승합차에 훈이 타고 보디가드 하나가 훈의 중형차에 타고 뒤따라왔다.
 골목 입구에 정차해 있는 승용차의 남자들도 미행을 시작했다.
 승합차를 타고 온 넘버원 보디가드에 이들도 긴장했다.
 용산구 용산동 이촌역 부근에 있는 그랜드 원룸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1501호로 들어갔다.
 보안시스템을 설치하려고 사람들이 원룸 앞에 와 있었다.
 넘버원 보디가드의 직원들이 나서서 철저하게 원룸 안을 수색했다.
 그리고 일부는 보안시스템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직원이 초소형 몰래카메라 3개를 찾아내어 보여주었다.
 혹시나 했었는데 이런 것이 원룸 안에 설치되어 있다는 걸 알고는 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만약 오늘 느낌이 이상하여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몰라 섬뜩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보디가드들의 대장 이 정우가 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설마 했었는데 원룸을 수색해보니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3개나 설치되어 있었다니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으음, 기분이 이상해서 의뢰를 하였는데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안시스템은 설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작동을 할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 저희 보디가드들이 원룸에 며칠 같이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랜드 원룸 부근에 정차한 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수석에 앉은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자가 노트북의 영상을 보다가 말했다.
 “젠장, 원룸에 설치해 놓은 몰래카메라 3개가 전부 드러났어.”
 “놈이 영악하게도 보안업체에 의뢰했군.”
 “그럼 어쩌지?”
 “상황을 보니 당분간 멀리에서만 지켜보자. 놈의 곁에 보디가드들이 없으면 그때 납치하자.”
 “좋아. 어차피 놈은 혼자이니 말이야.”
 “보디가드들에게 들킬 수도 있으니 오늘은 그만 여길 떠나자.”
 “어, 알았어.”
 차를 출발시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2장 우연히 찾아온 기적
 
 
 일주일이나 보디가드들이 원룸에 같이 있으면서 훈을 지켜주다가 돌아갔다.
 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외부인이 이제 함부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훈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분간 외출을 일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결심이 얼마나 강한지 로또복권을 구입하러 24시 편의점으로도 가지 않았다.
 짹짹짹!
 욕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새소리가 났다.
 아침에 산새가 날아와 모이를 주었는데 해가 질 때 베란다로 날아든 건 처음이었다.
 “어? 짹짹아.”
 원래 산새는 이름이 없었는데 훈이 그냥 부르기 편하게 짹짹이라 했다.
 배를 보이고 누워 바르르 떠는 게 이상했다.
 훈이 손바닥에 짹짹이를 올려주었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축 늘어졌다.
 짹짹이가 죽었다.
 그런데 짹짹이의 발톱에는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의 기이한 반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발견한 반지를 훈에게 주려고 발톱으로 움켜쥐고 날아온 모양이었다.
 짹짹이의 마음이 전해졌기에 훈의 눈에서 갑자기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훈을 위로해주고 친구였던 짹짹이였는데 죽었다고 생각하니 이젠 진짜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3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아주 가끔 연락하거나 연락이 오는 정도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녀석이 아닌데 왜 죽어?”
 죽은 짹짹이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던 훈이 발톱으로 콱 움켜쥐고 있는 반지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다른 문양은 없는데 무지개 색이라서 기이하고 특이한 반지였다.
 호기심으로 왼손 약지에 껴보았다.
 파지직!
 느닷없이 반지에서 엄청난 고전압이 흘러나왔다.
 “끄으으···이게?”
 털썩!
 훈이 뒤로 넘어가 기절했다.
 우우웅!
 공명음이 훈의 몸속에서 일어났다.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피부 속으로 스며든 반지가 액체로 변하더니 핏줄의 피를 따라 이동하면서 훈의 몸속을 돌아다녔다.
 죽은 거처럼 꼼짝하지 않았던 훈이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이 밝아오고서야 기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환한 햇살이 복면을 내리비추고 있었다.
 “으···머리야. 어찌된 거지?”
 머리를 옆으로 흔들면서 정신을 차린 훈이 상체를 일으켰다.
 기억을 떠올렸다.
 그제야 기억이 나면서 고개를 돌렸더니 바닥에 짹짹이가 배를 보이고 쓰러져 있었다.
 왼손을 들었는데 왼손 약지에 꼈던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 반지가 어디 갔지?”
 반지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었는데 사라졌기에 이상했다.
 약지를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반지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보안시스템을 점검해보니 누군가 침입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듯 했다.
 그렇지만 짹짹이가 죽어 있었기에 환상은 아니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반지가 이상했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절했다가 깨어난 상황이기에 어찌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 머리아파.”
 머릿속이 마치 누군가 콕콕 찌르는 거 같았다.
 죽은 짹짹이를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었기에 일단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적당한 곳에 묻어줄 생각이었다.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젠 어지러웠다.
 “으···너무 어지러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우려고 하였는데 그만 침대에 엎어져 다시 기절했다.
 액체로 변하여 피를 따라 이동하던 반지가 훈의 뇌에 도착하자 다시 빛나는 반지로 변하였다.
 대뇌의 전두엽에 자리를 잡더니 파란색 빛이 일어났다.
 츠츠츠츠!
 대뇌의 전두엽은 기억력과 사고력 등의 고등 행동을 관장하며 다른 연합 영역으로부터의 정보를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곳이다.
 대뇌의 전두엽에 집중적으로 파란색 빛이 한 시간을 비추더니 순간 사라졌다.
 이번에는 황금색 빛이 반지에서 일어나더니 훈의 대뇌와 소뇌, 뇌간까지 비추어 강제로 발달시켰다.
 이 작업이 끝이 나자 황금색 빛도 사라졌다.
 번쩍!
 무지개 색 빛이 반지에서 일어나 훈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우두둑, 쩌쩍!
 놀랍게도 기절한 훈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깊은 화상으로 인하여 피부가 녹아내리고 처참했던 몸에서 무협에서 말하는 환골탈태현상이 일어났다.
 몸속에 있던 각종 불순물이 모공을 통하여 밖으로 흘러나오고 피부는 각질처럼 떨어졌다.
 그 자리에는 새 피부가 돋아났다.
 불과 30분 만에 기절한 훈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반지에서 일어난 무지개 색 빛이 점점 줄어들더니 순간 사라졌다.
 반지는 임무를 완수했는지 이번에는 진짜로 반지가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반지의 성분은 피를 타고 떠내려가 훈의 영양분이 되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기절에서 깨어난 훈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머리까지 상쾌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적은 화상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아, 상쾌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똥차가 똥을 부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얼굴을 찌푸리다가 여기가 자신의 원룸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알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복면을 벗었더니 각질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입고 있는 점프수트를 벗었더니 엄청난 양의 각질이 떨어졌다.
 아직도 훈의 몸에 붙어 있는 각질이 엄청났다.
 “이, 이게?”
 황당해서 눈이 커졌다.
 이미 속옷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액체로 축축했다.
 속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 머리까지 물속에 담궈 얼굴에 묻은 각질을 손으로 대충 씻고는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생긴 모습의 남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만져보고는 모든 사고가 순간 멈추었다.
 욕조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의 거울을 보았다.
 “허엇, 이게 나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얼굴의 피부가 녹아내려 처참했던 자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몸을 살펴보았더니 역시나 화상 자국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믿어지지 않아.”
 생각해보니 이건 모두 죽은 짹짹이가 발톱으로 움켜쥐고 가져온 반지 때문이었다.
 손가락에 꼈던 반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속으로 스며든 것이라는 걸 느꼈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여 샤워기로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검고 건강한 검은색 모발이 찰랑거리는 잘생긴 모습이었다.
 온몸의 화상 자국은 사라지고 희고 매끄러운 피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건 왼쪽 다리의 피부가 녹아내리고 신경까지 다쳐 절뚝거렸는데 이젠 아니었다.
 정상인들처럼 바로 걸을 수 있었다.
 187센티미터였던 키도 조금 더 커져 190센티미터는 되는 거 같았다.
 다만 온몸이 잘 발달된 근육질은 아니었고 호리한 군살이 없는 그런 몸이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진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울다가 다시 웃었다.
 꼭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다행이 욕실에는 혼자였기에 상관없었다.
 점프수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복면과 점프수트, 속옷을 빨았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그냥 휴지통에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냥 빨았다.
 각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에 욕실도 청소했다.
 얼마 후에 욕실에서 나와 코를 킁킁거리더니 몸속에서 흘러나온 불순물이 묻은 침대시트를 벗겨서 세탁기에 넣었다.
 이미 빨아놓은 복면과 점프수트, 속옷도 함께 넣고 돌렸다.
 청소기를 틀어 원룸 대청소를 하였다.
 예전의 몸이라면 대청소를 하기도 힘들었지만 몸이 변하고 나서는 전혀 지치지도 않아 너무 신기했다.
 자신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었다.
 누가 보았다면 실없이 웃는 것이기에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빨래는 다되어 깨끗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고약한 냄새는 약간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세탁기에 다시 물을 받아서 섬유유연제를 듬뿍 넣고 그대로 두었다.
 내일 아침에 탈수하여 말리면 고약한 냄새는 사라지고 대신 향긋한 냄새가 날 것이었다.
 알람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었다.
 서둘러서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서 드라마를 보고 예능프로도 보다가 밤 12시가 되자 보던 텔레비전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금발의 소년이 언덕의 나무 밑에 앉아 푸른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간이 이지러지며 로브를 입은 은발의 노인이 나타나자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노인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씨익 웃자 소년도 따라 웃었다.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는 거 같았지만 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였다.
 “아론, 아직도 엄마가 보고 싶으냐?”
 “예, 마스터. 너무 보고 싶어요.”
 “그럼 오늘 집에 갔다 올까?”
 “예, 정말 요?”
 “그래. 내가 어디 허튼소리 하더냐?”
 “히히, 고맙습니다.”
 노인이 아론의 손을 잡고 흩어지듯이 사라지더니 어느 중세 도시 같은 곳의 외곽에 다시 나타났다.
 노인과 아론은 손을 잡고 도시를 가로질러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근육질의 중년인과 금발의 미녀가 건물에서 나오더니 아론을 껴안았다.
 이들은 즐겁게 식사하고 하룻밤을 자고나서 어느 섬으로 돌아왔다.
 이 섬은 길이가 겨우 2백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었다.
 말을 타거나 배를 타지도 않고 빛에 휩싸여 순간이동으로 이동해왔는데 이게 마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섬의 가운데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한쪽에는 돌을 깎아 굴로 만든 동굴집이 있었다.
 아론은 노인에게서 마법을 배우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름다운 미녀와 결혼하고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다가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었다.
 노인이 된 아론이 무지개 색이 나는 기이하고 특이한 반지를 만들었다.
 아론이 어느 날 손짓만으로 공중의 한곳이 쩌억 갈라지더니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반지에 보호막을 치고 공간 속으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반지를 삼킨 공간이 줄어들더니 사라졌다.
 빛을 내는 반지가 갑자기 총알처럼 날아왔다.
 “허억!”
 깜짝 놀라 훈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이상하고 신기한 꿈이었다.
 아론이 소년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의 인생이 담긴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했다.
 그리고 아론이나 그의 스승이 한 말들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훈은 신기하게도 모두 알아들었다.
 “뭐지 이 꿈은?”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 훈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이지만 죽은 짹짹이가 발톱으로 움켜쥐고 가져왔던 무지개 색이 나는 특이한 반지와 똑같은 걸 보았다.
 이상하게 꿈속에서 보았던 반지와 기적이 일어난 그 반지가 똑같은 거 같았다.
 알람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잘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몸이 피곤하지도 않고 해서 오늘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은둔형 외톨이의 삶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당당하게 외출하여도 누구하나 괴물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문제는 원룸에 초소형 몰래카메라 3개를 은밀히 설치하고 차에도 숨겨놓은 추적 장치와 고의적인 브레이크에 조작을 해놓은 자들이었다.
 보디가드가 나서서 원룸 주변을 수색하였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원룸에 보안시스템을 설치해 놓았기에 아직 무단침입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왠지 불안했다.
 “난 새롭게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오늘부터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겠어.”
 샤워하고 옷장을 열어보니 마땅하게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점프수트 30벌이 걸려 있었지만 그렇다고 늘 입던 점프수트를 입을 생각은 없었다.
 화상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었던 티셔츠와 청바지가 보였기에 그걸 꺼내어 입었다.
 그때보다 키가 약간 더 커졌지만 호리한 몸이기에 티셔츠와 청바지가 입을 만 했다.
 “어쩔 수 없군. 나가서 새 옷으로 사 입어야겠어.”
 오전 10시가 되자 무인경비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원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여자 둘이 훈을 쳐다보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갔다.
 잘생기고 키 큰 남자였기에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랜드 원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외출을 하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차림으로 원룸을 나서는 것이기에 마음이 새로웠다.
 그리고 너무 외모가 바뀌었기에 사람들이 훈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훈을 감시하는 자라고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백여 미터 떨어진 길가에 정차한 자동차 안에 있던 자들이 그랜드 원룸을 살펴보고는 있었지만 훈을 알아보지는 못하였다.
 훈이 길가에 서서 빈 택시를 잡아타고 청담동으로 향하였다.
 청담동의 명품거리에 내린 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최고급 명품 매장으로 들어갔다.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훈의 모습에 여직원의 눈이 반짝였다.
 보기엔 이런 곳에 나타날 남자가 아니었는데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선이 갔다.
 화상의 상처 때문에 그동안 이런 쇼핑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목까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명품 양복과 와이셔츠, 구두까지 한꺼번에 구입해 갈아입고 신었다.
 옷이 날개라고 하더니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큰 키에 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는 훈도 멋지게 변신했다.
 여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명품 매장을 나선 훈은 이번에는 부동산중개소로 들어갔다.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고급빌라를 얻으려는데 매물 좀 볼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매입하실 겁니까? 아님 전세?”
 “전세로 하죠. 며칠 내로 입주했으면 좋겠는데요.”
 “얼마를 예상하고 있으십니까?”
 “15억 원에서 30억 원까지 봅시다.”
 “아, 그러시다면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미스 김, 여기 시원한 차 좀 내와요.”
 “예, 김 과장님.”
 김 과장이 노트북을 테이블로 가져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청담동 월드 청담 빌라입니다. 전세는 20억 원이고 준공은 2004년 5월에 했기에 이제 겨우 2년 정도 되었습니다. 분양면적은 104평이고 실면적은 57평입니다. 방이 5개이고 욕실이 3개입니다. 지하 3층부터 지상 9층까지 총 45세대인 고급빌라입니다. 철저한 신분을 지켜주는 보안시스템과 일반인들과는 다른 럭셔리 주거환경입니다.”
 김 과장의 설명대로 실내 인테리어가 럭셔리했다.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더 좋은 곳은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다만 전세가 좀 더 비쌉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럼 이번에 보실 빌라는 전세 27억 원짜리이며 청담동에 위치해 있는 청담 아시아 빌라입니다. 준공은 2003년 6월이기에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분양면적은 180평이며 실 면적은 95평입니다. 방 5개이며 욕실 4개입니다. 16층짜리 건물이며 연예인들이 7명이나 사는 곳으로 유명하며 강남권 안에서도 상위에 드는 고급빌라입니다. 내부는 럭셔리하게 최고급으로 마감하였으며 엔틱한 인테리어에 한강 및 영동대교를 한 폭의 그림처럼 조망이 가능하며 층당 1세대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9층이 비어 있기에 바로 입주가 가능합니다. 철저한 신분을 지켜주는 보안시스템은 거론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강남과 강북을 손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입주민들을 위해 커뮤니티 시설 또한 최상으로 해놓았습니다. 품격과 격조가 있는 고급빌라이기에 적극 추천합니다.”
 동영상으로 비어 있는 9층 내부를 살펴보니 마음에 들었다.
 “지금 9층이 비어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약 열흘 정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현장으로 가서 구경해보고 결정해도 되지요?”
 “예, 물론입니다.”
 훈은 김 과장과 함께 차를 타고 청담 아시아 빌라로 갔다.
 직접 살펴보니 동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보안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신변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예, 마음에 듭니다. 당장 계약하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사무실로 가시죠.”
 김 과장은 한 건 했다는 생각에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훈이 입주할 청담 아시아 빌라의 9층은 비어 있는 상태이기에 사람을 불러 바로 대청소를 시작하였다.
 훈은 3일 뒤에 입주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자동차도 한 대 있어야 하기에 인근의 벤츠 매장에 들어가 검은색 벤츠를 한 대 계약했다.
 딜러가 알아서 등록까지 하여서 가져오기로 했다.
 그랜드 원룸은 불안하기에 당분간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남의 특급호텔인 퍼스트 호텔에 객실 예약을 하고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괴물을 보는듯한 시선은 아니지만 다른 테이블의 여자들이 쳐다보았다.
 ‘젠장, 칸막이가 있는 곳에 앉아야 했나?’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훈이었다.
 훈은 이유를 잘 몰랐지만 여자들이 쳐다보는 이유는 비슷했다.
 잘생긴 남자가 명품 정장을 입고 있는데 혼자 식사를 하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 택시를 타고 퍼스트 호텔로 갔다.
 그랜드 원룸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화상 사건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도 설레고 좋았다.
 샤워부터 하고 나서 늘 그렇듯이 텔레비전을 자정까지 보고 침대에 누웠다.
 백색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의 아론이 양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불길이 이글거리고 지름이 2미터나 되는 초대형 파이어 볼이 연속으로 열 개나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병사들이 십만 명은 넘는 거 같았다.
 아론이 던진 파이어 볼이 연속으로 폭발하면서 약 3백 미터가 폐허로 변하였다.
 엄청난 공격마법이었다.
 아론의 공격마법에 당한 상대방에서는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여기저기 부상을 입고 고통에 울부짖는 병사들이 지옥을 연상시켰다.
 아론을 향해 상대방에서 수십 발의 화살을 쏘았다.
 방패 병들이 방패를 치켜들어 아론을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론이 눈을 번뜩이며 50미터 뒤로 순간 이동해 화살을 가볍게 피하였다.
 아론을 호위하는 방패 병들도 방패로 날아온 화살을 막았다.
 아론이 양팔을 옆으로 벌리더니 천천히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에 먹구름이 생겨나 뒤덮였다.
 상대방 병사들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하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양팔을 밑으로 내렸다.
 우르르 콰쾅!
 먹구름에서 천둥이 일어나더니 이윽고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그냥 비가 아니라 불의 비였다.
 약 천 미터나 되는 광범위한 지역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병사들과 기사, 말들까지 울부짖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로도 쉽게 끌 수 없는 마법의 불꽃이기에 대량살상을 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공격마법이었다.
 와아아아!
 아론 측의 병사들이 대기해 있다가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갔다.
 이미 아론의 광범위 공격마법으로 인하여 전투의 승패는 결정 나 버렸다.
 제법 지친 아론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지만 얼마나 생생한지 그 어떤 전쟁영화를 보더라도 이렇게 박진감 넘치지는 않았다.
 아론이 펼친 마법이 정말 멋있고 엄청나 훈은 매료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훈이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깜빡거렸다.
 어제와 똑같은 꿈을 꾸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그래도 아론이 나오는 꿈이었다.
 “아론의 공격마법이 정말 대단했어.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판타지 소설의 마법과는 약간 달라.”
 판타지 소설의 마법을 마법사가 펼치려면 수식과 주문을 외우고 심장을 휘돌고 있는 서클을 돌려 시동 어를 외치면서 마법을 펼쳤다.
 그런데 아론은 시동 어를 외치지 않고 의지로써 마법을 펼쳤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파이어 볼도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했다.
 지름이 2미터나 되는 초대형 파이어 볼이 아론보다 더 컸다.
 마법지팡이도 없고 대마법사나 펼칠 수 있을 거 같은 화염의 비 마법도 펼쳤다.
 꿈속에서 본 아론은 마법실력이 대단하지만 결코 대마법사는 아니었다.
 심장을 휘도는 서클은 6개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훈도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었다.
 그렇기에 판타지 소설의 마법에 관하여 제법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아론이 펼치는 마법은 판타지 소설의 마법과는 여러 가지로 차이점은 있었지만 마법이라는 것은 똑같았다.
 연이어서 아론의 꿈을 꾸는 것은 짹짹이가 가져온 반지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 몰랐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아론의 꿈을 꾼다면 반드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약간 넘었다.
 평소에는 6시에 일어나는데 아론의 꿈을 꾸다보니 오늘은 4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룸서비스를 시켜서 먹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고 나왔다.
 어제 명품 매장에서 구입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이게 나의 모습이라니 믿어지지 않아.”
 지난 3년이 넘게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었는데 갑자기 도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훈 자신을 노리는지 알지 못하기에 조심해야 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고는 호텔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예, 주식회사 에메랄드 피스입니다.
 “거기가 유골을 영롱한 사리로 만들어 주는 곳입니까?”
 -예, 맞습니다. 유골 분을 가져오시면 단 10여분 만에 보석처럼 영롱한 사리로 만들어 드립니다. 요즘 사리성형이 장안의 화제예요.
 “그런데 사람의 유골이 아니라 애완용 새가 죽은 것도 사리로 만들어 줍니까?”
 -예, 물론이에요. 사리로 만들어 보석함에 넣어 드립니다. 고객님께서 원하시면 브로치나 펜던트로도 제작을 해드려요.
 “그곳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고양시에 있는 화장터 경내에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훈은 죽은 짹짹이를 냉동실에 넣어 놓았는데 그냥 그대로 계속 둘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에 사리성형으로 만들어 소장용 보석함에 담아 보관할 생각이었다.
 객실을 나선 훈은 프런트에 체크아웃하고 핸드폰매장에 들어갔다.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그대로 두고 새 번호로 핸드폰을 한대 구입했다.
 혹시라도 추적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존의 핸드폰은 발로 밟아서 박살내 버렸다.
 택시를 타고 도심을 달려 그랜드 원룸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여자가 훈을 힐끔거리고는 그냥 지나갔다.
 깔끔하게 정상을 차려입은 훈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어디에선가 자신을 노리는 자가 지켜볼지도 모르지만 외모가 크게 변하였기에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는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원룸으로 들어가 보니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냉동실 문을 열었더니 밀폐용기에 짹짹이가 담겨 있었다.
 기적을 선물하고 죽었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쇼핑백에 밀폐용기를 넣고 원룸을 나섰다.
 빈 택시를 타고 고양시에 있는 화장터 경내로 갔다.
 직원에게 짹짹이를 넘겼더니 신속하게 화장하고 사리성형으로 만들어 소장용 보석함에 담아 훈에게 내밀었다.
 소장용 보석함에 담긴 짹짹이의 사리를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기뻤다.
 아무렇게나 땅에 묻거나 버리지 않고 이렇게 사리성형으로 만들면 늘 곁에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랜드 원룸으로는 들어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훈은 여행자용 하드케이스 가방을 하나 구입하고는 쇼핑을 하였다.
 당분간 갈아입을 속옷과 와이셔츠, 정장과 구두까지 전부 구입해 호텔로 들어갔다.
 훈은 호텔 객실에서 나오지 않고 룸서비스로 식사를 해결하고는 2일을 더 묵었다.
 그랜드 원룸 주위에 잠복하고 있는 자들은 자동차 안에서 며칠째 지내다 보니 피곤했다.
 훈의 원룸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당황했다.
 이제껏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눈치를 챈 훈이 보안시스템까지 설치한 원룸에 무단침입을 할 수도 없었다.
 로또복권을 사려고 외출할 때 납치할 생각이었는데 벌써 2주째 24시 편의점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아, 미치겠어.”
 “놈이 원룸에서 나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데 어쩌지?”
 “지금은 놈이 겁을 먹고 조심하는 것이니 원룸에서 나오지 않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올 거야. 로또복권도 구입해야 하고 먹을거리도 사야하기 때문이지.”
 “그렇겠지?”
 “물론이지.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놈을 납치만 하면 우린 부자가 되는 거야.”
 이들은 어차피 훈을 납치하여 돈을 빼앗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웠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들이 이런 착각을 하면서 잠복하고 있을 때 훈은 호텔에서 나와 청담 아시아 빌라로 입주했다.
 다른 짐은 없고 달랑 여행자용 하드케이스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사람들을 시켜서 대청소를 했기에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다.
 훈이 잔금을 지불했더니 부동산 중개소에서 신속하게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해주었다.
 훈은 청담동에서 가구와 침대, 전자제품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려고 매일 쇼핑했다.
 은둔형 외톨이였다가 이젠 마음껏 외출할 수 있었기에 매일 매일이 새로웠다.
 주문했던 검은색 벤츠도 훈에게 인도 되었다.
 
 
 제3장 꿈을 꾸고 마법을 배우다
 
 
 금발의 소년 아론의 머리를 쓰다듬던 로브를 입은 은발의 노인이 말했다.
 “아론아, 이제부터 나를 마스터라 불러라.”
 “예, 할아버지. 아니 마스터.”
 “허허···녀석. 오늘부터는 내가 너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
 “정말 요?”
 “그렇다니까. 힘들고 엄마가 보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예, 마스터.”
 6살의 어린 아론이 은발의 노인으로부터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인이 마법의 기초이론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하자 아론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직 6살에 불과하지만 총명한 아론이었고 노인의 설명이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론아, 마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마나를 느껴야 한다.”
 “마스터, 마나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데요?”
 “마나를 그냥 느끼려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보다 손쉽게 마나를 느끼려고 마법사들이 방법을 연구하여 만들었다. 그게 바로 마나집적 진이라는 것이다.”
 “마나집적 진?”
 “쉽게 설명하자면 마법 진으로 마나를 끌어당겨 일정한 범위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을 말한다. 물 컵의 물에 술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거의 술이 들어간 줄 모르지만 수십 방울의 술을 떨어뜨리면 어찌되겠느냐?”
 “그럼 술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렇다. 그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그냥 느끼려고 하면 힘들지만 마나집적 진을 이용하여 농축된 마나를 가두어 놓은 곳에 앉으면 금방 마나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몸속으로 흡수하는 양도 많고 말이다.”
 “아, 정말 그렇겠어요.”
 “그러나 단점도 있단다.”
 “어떤 단점이죠?”
 “마나집적 진을 설치하려면 재료비가 많이 들어간다. 처음 마법에 입문하는 것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설치하여 시도하지만 서클을 하나 형성하기만 하더라도 굳이 마나집적 진으로 마나를 끌어 모을 필요가 없다. 직접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몸속으로 흡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나집적 진을 계속 사용하면 훨씬 빠르고 많은 양의 마나를 모을 수가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서클이 없을 때에는 마나집적 진에서 수련하는 게 훨씬 마나를 많이 모을 수가 있다. 하지만 1서클이 되면 마나집적 진에서 마나를 흡수하는 양과 비슷하다.”
 “예? 마나집적 진에 많은 마나가 계속 모이는 거 아니에요?”
 “물론 마나집적 진에 모인 마나를 몸속으로 흡수하면 다시 채워진다. 다만 직접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흡수하는 거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예? 그런 것이었어요?”
 “생각해 보거라. 마나집적 진에 계속 막대한 마나가 유입된다면 누가 마나집적 진을 설치하지 않겠느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서클 형성이 빠른데 어느 마법사가 하지 않겠느냐?”
 “정말 그렇겠네요.”
 “그러니 굳이 막대한 재료비가 들어가는 마나집적 진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나집적 진의 용도는 마나를 느끼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마법에 입문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기초 마법 진이라는 뜻이다.”
 “예, 무슨 말이신지 알겠어요. 마스터.”
 이렇게 하여 은발의 노인이 직접 마나집적 진을 설치하였다.
 마나집적 진이 새겨진 동판을 깔고 그 위에 아론이 앉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나를 느끼는데 집중했다.
 아론은 불과 하루 만에 마나를 느꼈다.
 마나집적 진위에서 은발의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마나를 몸속으로 끌어당겨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을 궤도처럼 휘돌게 하였다.
 그렇지 않고 마력을 그대로 두면 자꾸 흩어지려는 성질 때문에 몸 밖으로 다시 빠져 나가 버린다.
 그걸 막기 위하여 서클이 필요했다.
 “심장을 휘도는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매일 꾸준히 마력을 끌어 모아야 한다.”
 “예, 마스터.”
 아론은 은발의 노인이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마력을 끌어 모아 한 달 만에 서클을 형성하여 1서클이 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훈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기에 마법을 배우는 아론이 너무 부러웠다.
 “으음, 어쩌면 꿈에서 보았던 대로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비록 꿈속에서 보았던 마나집적 진에 들어가는 각종재료들은 비쌌지만 훈은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었다.
 마나스톤이 없지만 자수정을 대체해도 되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루비, 에메랄드와 사파이어가 필요했다.
 훈은 특별주문재작을 하여 방 하나에 마나집적 진을 설치했다.
 동판에 직접 자신의 피를 받아 놓은 것을 붓으로 마법의 룬문자를 그렸다.
 준비한 각종 보석을 지정된 자리에 놓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집적 진의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나집적 진에 각인을 시켜 작동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우우웅!
 마나집적 진에서 공명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대로 하였는데 그게 실제로 똑같이 재현되자 멍한 표정이 되었다.
 “허엇, 진짜였어.”
 정신을 차린 훈이 컵에 받아 놓았던 자신의 피를 마나집적 진의 한곳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피를 흡수한 마나집적 진에서 더욱 공명음이 커졌다.
 번쩍!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사라졌다.
 너무나 강렬한 빛이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만 훈은 눈을 감았다.
 빛과 공명음이 사라지자 다시 눈을 떴는데 마나집적 진에는 변화가 없는 거처럼 보였지만 훈은 성공했다는 걸 느꼈다.
 “아, 내가 마나집적 진을 각인시켰어.”
 마나집적 진을 각인시키면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아론이 살던 세상에서는 하루를 그냥 두었다가 아론이 마나집적 진위에 앉았었다.
 하지만 지구는 아론이 살던 세상과 달랐기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똑같이 하루를 그냥 두기로 했다.
 마나집적 진의 각인이 성공했기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동은 되기에 마나를 느끼면 마법을 배울 수 있었다.
 팬티만 입은 훈이 마나집적 진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꿈속에서 아론이 은발의 노인에게서 배운 마나심법을 똑같이 따라 운용하였다.
 그런데 불과 일 분도 되지 않아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어? 이게 뭐지?”
 꿈속의 아론은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기에 하루 만에 마나를 느꼈지만 훈은 불과 일 분도 지나지 않아서 마나를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론의 반지 덕분에 변한 몸 즉, 바디 체인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쉽게 마나를 감지한 훈은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그랬는데 역시나 이질적인 기운 즉, 마나를 느꼈다.
 “으음, 이게 마나인 모양이야. 그런데 이렇게 빨리 느끼는 게 맞나?”
 훈의 곁에 누가 있거나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머리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해보니 짹짹이가 가져온 반지의 영향인 거 같았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예상보다 일찍 마나를 느꼈기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몸속으로 마나를 흡수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을 궤도처럼 휘돌게 하면 되었다.
 훈은 단전호흡을 하는 거처럼 차분하게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몸속으로 마나를 흡수하였다.
 몸속으로 흡수한 마나는 마치 허브차를 마신 거처럼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제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면 되지?’
 머리로 생각하는 거만큼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지 잘되지 않았다.
 마법의 가장 핵심은 의지 즉,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몸속으로 흡수한 마나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했다.
 훈은 마법을 자동차로 비유했다.
 즉 마나는 원유라 할 수 있고 이것을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공하여 휘발유로 만드는데 휘발유를 마력으로 표현하면 맞았다.
 마력을 심장에 띠처럼 휘돌게 했다.
 이렇게 하기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자꾸 시도를 해보니 3시간 만에 처음으로 마력을 심장에 휘돌게 할 수 있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헤매지 않고 성공했다.
 심장을 휘도는 마력이 점점 많이 모이면 나중에 서클을 형성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을 해야 했다.
 서클은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이라 할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의 발현은 마법 공식이나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캐스팅을 하여 시동 어를 외치면서 마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론의 마법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론의 마법은 의지로써 자신의 서클을 휘돌리면서 몸 밖의 마나와 공명시켜 재배열하여 바로 마법을 펼친다.
 그렇기에 마법 발현이 빠르고 훨씬 위력적이었다.
 다만 서클의 수가 적으면 그만큼 위력적이거나 상위의 마법을 펼치기엔 어려웠다.
 마나를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을 휘돌게 하는 게 너무 재미가 있었다.
 불과 반나절 만에 마나집적 진에 모여 있던 농축된 마나를 다 흡수해 버렸다.
 훈은 어쩔 수 없이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심장을 휘도는 마력이 느껴졌다.
 “아, 이게 마력이구나. 앞으로 서클을 형성하면 마법을 펼칠 수 있겠는데?”
 벌써부터 그것을 생각하면 흥분되었다.
 얼마나 정신을 집중하였는지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했더니 겉과 속이 상쾌해졌다.
 번쩍!
 화살촉 모양으로 빛나는 마법 화살이 아론의 손끝에서 쏘아졌다.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마법 화살이 백 미터 떨어진 나무에 명중되었다.
 콰앙!
 나무가 충격을 받아 심하게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론아, 정말 대단하구나.”
 “마스터, 감사합니다.”
 “허허, 녀석.”
 금발의 아론이 20살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심장에 4개의 서클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힘차게 휘돌고 있었다.
 똑같은 마법 화살이라고 하더라도 서클 차이에 따라서 그 위력과 유효거리, 파괴력까지 달라졌다.
 아론의 스승은 7서클이기에 마법 화살 한발로 나무를 박살낼 수도 있다.
 “아론아, 저기 날아가는 새를 맞추어 보아라.”
 “날아가는 새를 말입니까?”
 “그렇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맞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움직이는 표적을 잘 맞추어야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연습을 하면 할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각종 공격마법을 익혀두면 나중에 영지 전에 참여하더라도 공을 세울 수 있다.”
 “마스터, 마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연구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영지 전 같은 것에 참여해야 합니까?”
 “물론이다. 영지 전에 참석하여 공격마법을 시험하고 경험도 쌓으면 좋다. 거기에다가 공을 세워야지 귀족들과도 친분이 생긴다. 그래야 앞으로 네가 마법연구를 하는데 연구비를 지원받을 거 아니냐.”
 “아티팩트를 재작하여 연구비를 충당하면 안 됩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높은 수준의 아티팩트를 재작하긴 어렵다.”
 “마스터께서 도와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까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으냐? 너도 빨리 독립을 하여야지.”
 “예? 제가 독립을 말입니까?”
 “그래. 너의 재능이라면 3년 이내로 5서클에 오를 수 있다. 그럼 나로부터 독립 하 거라. 너도 짐작을 하고 있겠지만 난 수명이 5년 정도 남았다.”
 “아···마스터.”
 “남은 수명 동안 넌 나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는 각종 공격마법을 펼쳤다.
 수박 만 한 불길이 이글거리는 파이어 볼을 생성하여 던졌다.
 그리고 유도기능이 있는 빛나는 매직 미사일도 펼쳤다.
 끝이 뾰족한 얼음덩이와 마법의 창도 생성하여 던져보았다.
 상대방에서 쏜 화살이 날아왔다고 가정하고는 블링크 마법을 펼쳐 피하였다.
 50미터를 순간 이동하였기에 얼마든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플라이 마법을 펼쳐 공중으로 떠올랐다.
 적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투명화 마법도 펼쳐 모습을 감추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마법을 연속으로 펼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지치지도 않았다.
 매일 미친 듯이 공격마법을 펼치면서 연습하고 소비한 마력을 다시 보충하고 하면서 능숙해졌다.
 짹짹짹, 짹짹!
 알람시계에서 새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꿈에서 깨어난 훈이 상체를 일으켰다.
 “아, 아론의 공격마법이 정말 대단했어. 그리고 투명화 마법이나 플라이 마법, 블링크 마법 같은 것은 실생활에서도 아주 유용하겠어.”
 분명한 목표가 생기자 훈은 더욱 열심히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로또복권과 주식투자는 중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당분간은 오직 마법 수련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으음,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아론의 세상보다 이 세상의 마나 분포가 적은 거 같아. 오염된 서울의 도심이라서 그런가?”
 판타지 소설에서 보면 숲속이나 높은 산으로 들어가 수련하는 내용이 있었다.
 훈도 그럴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직은 사람이 무섭고 혼자 생활하는 게 편했다.
 더구나 새로 이사한 청담 아시아 빌라는 넓어서 지내기에 좋았다.
 “마나집적 진에 마나가 모이는 게 너무 느려. 아예 몇 개 더 재작해 볼까?”
 훈이 생각하기에 마나집적 진에 농축된 마나가 모여 가득 채워지려면 3일 정도 걸렸다.
 하지만 훈이 매일 마나집적 진속에서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흡수하다보니 3시간 만에 마나가 다 몸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럼 3일을 기다려야 했기에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마나집적 진의 용도는 마나를 느끼는 것이 주목적이고 마법에 입문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기초 마법 진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돈이 좀 들어가겠지만 마나집적 진을 3개만 만들어도 번갈아 가며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왕 만드는 거 아예 열 개를 만들어 버릴까?”
 보석을 구입하고 동판을 만드는데 비용이 좀 들어가지만 흠집이 있는 보석은 생각보다는 저렴했다.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훈이 이렇게까지 서두르고 집중적으로 수련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노리는 자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자신을 지켜줄 것은 마법이었다.
 제대로 익혀 놓으면 누구도 상대가 아니었다.
 마법 화살 한발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가능하며 플라이 마법을 펼치면 공중을 날수도 있었다.
 투명화 마법을 펼치면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찾을 수도 없다.
 그리고 블링크 마법을 펼치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유용한 게 마법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거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었다.
 이제까지 꾸었던 꿈을 떠올려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아론이 마법을 수련하는 것을 여러 번 떠올렸다.
 감았던 눈을 떠 벽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최고 철공소입니다.
 “사장님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누구시죠?
 “며칠 전에 동판을 특별주문재작한 사람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아아, 누구시라고? 기억합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어서 전화한 게 아니라 추가로 주문을 하려고요.”
 -추가 주문이요?
 “그렇습니다. 앞전과 똑같은 동판으로 열 개를 만들어 주십시오. 며칠이나 걸리겠습니까?”
 -점심 먹고 바로 재작에 착수하면 늦어도 3일이면 됩니다.
 “그럼 재작을 해주십시오. 계좌이체로 바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확인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원형에 지름이 2미터이고 두께가 30센티미터 맞죠?
 “예, 맞습니다. 표면이 매끄럽게 잘 다듬어 주시고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택도 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신경 써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훈은 동판 열 개를 주문했으니 마나집적 진에 들어갈 보석을 구입하면 되었다.
 어차피 오늘 나가서 쇼핑도 하고 당분간 먹을 식재료도 구입해야 했다.
 강남 킹 백화점의 청바지 매장으로 들어갔다.
 흰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여직원이 눈을 번뜩이더니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청바지 좀 보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요즘 인기 있습니까?”
 “진열되어 있는 거중에 이게 인기예요.”
 “한번 입어 봐도 됩니까?”
 “물론이죠. 허리가 어떻게 되세요?”
 “그게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세요? 치수 좀 봐드릴게요.”
 여직원은 재빨리 줄자를 가지고 오더니 훈의 허리 치수를 재었다.
 “어머, 32인치로 날씬하시네요?”
 “그렇습니까?”
 “키가 어떻게 되세요?”
 “190센티미터 정도 될 겁니다.”
 “190센티미터요? 정말 크시네요?”
 “그렇습니까?”
 “다리가 길어서 청바지가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탈의실로 들어가셔서 한 번 입어보세요.”
 “예, 감사합니다.”
 훈이 청바지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어머, 정말 잘 어울리세요.”
 굳이 여직원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훈이 보기에도 잘 어울렸다.
 “같은 치수로 두벌을 주세요. 그리고 가죽 벨트와 양말도 주세요.”
 “예, 알겠어요.”
 여직원이 쇼핑백에 넣어주자 그걸 들고 훈이 걸어갔다.
 그걸 쳐다보는 여직원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와 한번 사귀어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훈은 백화점을 돌면서 캐주얼과 정장, 구두와 운동화까지 구입했다.
 그리고 식품매장으로 가서 한동안 먹을 식재료를 구입했다.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훈이 벤츠 트렁크에 물건을 넣었다.
 그리고 운전하여 천천히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차를 멈추고 내린 훈은 뒤로 가보니 빨간색 페라리가 살짝 들이박은 것이었다.
 약간 흠집이 생겼지만 범퍼를 교체할 정도는 아니었다.
 페라리에서 세련되고 날씬한 미녀가 내렸다.
 입고 있는 옷과 모습이 부유한 집안의 딸로 보였다.
 페라리를 타고 다니는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미녀가 눈을 번뜩이며 훈에게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어디 다치시지는 않았어요?”
 “예, 괜찮습니다. 그리고 범퍼를 교체할 정도는 아닌 거 같으니 그냥 가십시오.”
 “그래도 흠집이 났는데 어떻게 그래요. 핸드폰 좀 줘보세요.”
 “예? 핸드폰을 말입니까?”
 “예, 어서 줘보세요.”
 훈이 핸드폰을 주자 그녀가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자신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그걸 보여주면서 훈의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댁의 핸드폰에 저의 번호가 남았지만 이거 제 명함이니 수리하고 연락주세요.”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가면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꼭 연락주세요.”
 미녀가 먼저 페라리를 타고 떠나 버렸다.
 황당했지만 훈은 피식거리며 다시 벤츠를 타고 출발하였다.
 끼이익!
 페라리가 길가에 정차했다.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했다.
 “김 비서님, 나 기획 1팀장 오미란이에요.”
 -미란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누군가의 뒷조사를 좀 해주세요.”
 -갑자기 뒷조사를 말입니까?
 “예, 내가 급해서 그래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2006년형 검은색 벤츠이고 차번호는······.”
 미란이 훈의 벤츠 차번호로 뒷조사를 부탁했다.
 -언제까지 조사하여 알려드리면 됩니까?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미란은 강남 킹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 내려가는데 6층에서 훈이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탔다.
 키도 크고 잘생긴데다가 몸도 호리한 게 옷걸이도 좋아서 입고 있는 명품 정장이 잘 어울렸다.
 남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어린아이 피부처럼 부드럽고 광택이 날 정도로 좋았다.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외모만으로도 부티가 나는 게 멋졌다.
 주차장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앞에 서 있던 훈이 먼저 내려 걸어갔다.
 걸어가는 뒷모습도 멋진 남자는 처음이었다.
 ‘어머, 완벽한 외모를 가진 남자야.’
 2006년형 신형 검은색 벤츠의 트렁크를 열고 쇼핑백을 넣었다.
 신형 벤츠를 타는 걸 보니 20대 초반의 나이답지 않게 재력도 있어 보였다.
 훈이 벤츠에 타고 출발하자 미란이 씨익 웃으며 뒤따라가서 살짝 접촉사고를 고의적으로 일으켰다.
 명함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느낌인지 모르지만 연락을 하지 않을 거 같아서 김 비서에게 뒷조사를 부탁했던 것이다.
 “호호, 제법 멋졌어. 뒷조사를 해보면 그에 대하여 알게 되겠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한 페라리는 도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청담 아시아 빌라로 돌아온 훈은 식재료를 먼저 냉장고에 넣고 구입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제 한동안 외출할 일이 없기에 마법수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동판이 완성되어 배달되어지면 마나집적 진을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어서 좋았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훈은 평소 같으면 텔레비전을 보았을 텐데 이제는 시간이 날 때면 무조건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한다.
 꼭 수련에 중독된 사람 같아 보였다.
 백색 로브를 입은 아론과 검은색 로브를 입은 자가 후드를 눌러쓴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자가 후드를 벗자 얼굴이 드러났는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90살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켈켈켈, 나의 영원한 적수 아론이여, 오늘은 널 반드시 죽여주겠다.”
 “흥, 로렌스 넌 나의 상대가 아니다.”
 “뭐라고? 7서클의 흑마법사인 내가 너의 상대가 아니라고?”
 “그렇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면 살려줄 수도 있다.”
 “켈켈켈, 너도 나와 같은 7서클인데 흑마법사인 내가 더 강하다.”
 “헛소리 하지 마라. 난 최근에 깨달음을 얻어 8서클에 올랐다.”
 “흥, 내가 그 거짓말을 믿을 거 같으냐?”
 “안 믿는다면 할 수 없지. 와라!”
 아론과 로렌스가 서로 공격마법을 펼치면서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의 공격마법과 피하거나 방어마법도 대단했다.
 둘은 공격하고 방어를 번갈아 가면서 하였지만 문제는 이들 주위가 폐허로 변하였다.
 쉽게 끝날 거 같지 않아 보였는데 역시나 수백 번의 공격마법과 방어마법을 펼치면서 결말이 다가왔다.
 아론이 펼친 잿빛 광선에 맞은 로렌스가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끄으으···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푸스스스!
 로렌스의 몸이 순간 재가 되어 휘날렸다.
 “우욱!”
 아론도 그제야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비틀거렸다.
 7서클 흑마법사를 상대로 아론은 정말 잘 싸워 승리했다.
 짹짹짹 짹짹!
 알람시계에서 새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훈이 꿈에서 깨어나 알람시계를 보니 오전 6시였다.
 비록 꿈속이지만 훈은 엄청난 싸움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단편적인 꿈이 아니라 오늘은 아론의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모습까지 꾸었다.
 압권은 흑마법사 로렌스와 싸운 장면이었다.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아론의 공격마법과 방어마법에 푹 빠진 훈이었다.
 자꾸만 동기부여가 되는 거처럼 마법수련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훈이 한번 꾼 꿈은 신기하게도 떠올리면 바로 기억이 났다.
 이젠 매일 꾸는 꿈이 어떤 것일지 기다려질 정도였다.
 “젠장, 알람을 맞추지 말걸 그랬나?”
 꿈꾸는데 방해가 되기에 내일부터는 알람을 맞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서클만 생성되어도 당장 마법을 펼칠 수 있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너무 아쉬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아!
 세찬 찬물을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잡생각이 많으면 마법수련에 방해만 될 뿐인데 이렇게 물을 맞는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마나집적 진에 앉아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나집적 진에 모여 있던 마나가 전부 훈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마나집적 진에 모인 마나가 너무 적다는 걸 알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펼치던 마나심법을 중지하고 꾸었던 꿈을 떠올리며 아론이 펼친 마법을 분석하였다.
 빰빠라빰빰빰!
 느닷없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리자 훈이 깜짝 놀랐다.
 핸드폰의 액정화면을 보니 낯선 번호였다.
 “누구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미란이에요.
 “예? 누구시라고요?”
 -미란이에요. 절 모르세요?
 “예, 모르겠는데요? 누구시죠?”
 -강남 킹 백화점 주차장의 접촉사고 모르세요?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차를 수리 맡기고 연락주세요라고 하면서 명함까지 드렸는데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수리까지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난 신경 쓰여서 안 되겠어요.
 “어쩌라고요?”
 -저녁에 만나요. 그냥은 넘어갈 수 없어요. 내가 식사라도 사야겠어요.
 “으음, 알겠습니다. 어디로 나가면 되지요?”
 -뭐 좋아하세요?
 “난 아무거나 좋습니다.”
 -그럼 나 갈비 먹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난 좋습니다.”
 -그럼 저녁 7시에 청담동에 있는 청 돌담 집에서 봐요. 내가 예약을 해놓을게요.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훈은 멍한 표정이었다.
 “뭐지 이 기분은?”
 미란의 일방적인 말에 휘말려 저녁약속을 했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강남 킹 백화점의 기획 1팀장 미란은 팀원들과 회의 중이었다.
 책상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모두들 알겠지만 이번 2005년도 겨울 시즌에는 기획을 잘 해서 매출을 20% 올려야 한다는 걸 알죠? 다음 회의할 때 한 가지씩 좋은 아이디어를 준비하세요.”
 “예, 팀장님.”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어요.”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미란도 서류를 들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와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뒤돌아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팩스 용지를 꺼내어 다시 펼쳐 읽어보며 생각했다.
 회의를 하기 전에 김 비서가 훈의 뒷조사 한 것을 팩스로 보내와서 그걸 읽어본 미란은 너무 황당했다.
 일단 회의부터 하고 나서 이렇게 다시 꺼내어 읽어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름 박 훈, 나이는 23세, 신장 187센티미터, 5년 전인 2000년 10월에 집에 불이 나서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여러 번의 수술과 화상치료를 하고 1년6개월이나 입원해 있다가 퇴원. 온몸에 화상이 있지만 얼굴의 절반이 화상으로 인하여 흉악하고 왼쪽 다리의 신경을 다쳐 절뚝거림. 3년 전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독립하여 용산구 이촌역 부근의 18평 그랜드 원룸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음. 특이사항으로는 약간의 주식투자와 로또복권을 매주 구입함. 놀라운 것은 약 3년 만에 30억 정도의 재산을 보유함. 한 달에 약 1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데 로또복권 당첨금임. 약 3년 동안에 로또복권으로 2등 52번과 3등 306번을 당첨됨. 한번도 1등에 당첨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1등에 한꺼번에 3회나 당첨되어 70억 원을 수령. 사람들은 그를 로또 외계인이라고 부르는데 점프수트를 입고 복면을 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외출하기에 그런 별명이 붙음.]
 김 비서가 엉터리로 뒷조사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약간의 화상이면 모르지만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멀쩡할 수는 없었다.
 “벤츠 소유자가 그가 아닌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건 말이 안 돼.”
 벤츠를 빌려서 운전하였다면 말이 되었다.
 그런데 심한 화상을 입은 박 훈이라는 사람이 은둔형 외톨이인데 어떻게 벤츠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걸 그가 빌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이 서로 친구인가?”
 어차피 오늘 저녁에 식사자리를 약속해 놓았으니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제4장 미란
 
 
 청담동 청 돌담 집.
 저녁 7시에 빨간색 페라리가 입구로 다가와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미란이었는데 역시나 세련되고 화려했다.
 직원이 다가와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페라리를 빈자리에 주차시켰다.
 3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었다.
 미란이 주차장을 살펴보니 훈의 검은색 벤츠가 주차되어 있었다.
 “벌써 와서 기다리는군?”
 직원이 차키를 가져와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미란이 안으로 들어갔다.
 여직원이 미란을 알아보고는 특실로 안내하였다.
 “특실에 손님이 왔어요?”
 “예, 멋진 남자 분께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 왔나요?”
 “한 20분 정도 되었어요.”
 “알았어요.”
 여직원이 특실의 문을 열어주자 미란이 안으로 들어갔다.
 앉아 있던 훈이 일어났다.
 “앉으세요.”
 미란이 감색 재킷을 벗고 앉았다.
 녹색 실크 블라우스에 검은색 스커트를 입었는데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러난 다리의 각선미가 아름답고 가슴은 크면서도 몸은 날씬했다.
 거기에다가 갈색으로 염색한 웨이브 헤어스타일이 여성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얼굴은 너무 예뻐서 제대로 마주쳐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훈이 앉아 미란을 쳐다보지 못하고 테이블에 시선을 주었다.
 ‘호오? 보기보단 순진한 거 같은데?’
 드르륵!
 특실의 문이 열리면서 여직원 두 명이 들어오더니 각종 반찬과 생 갈비를 테이블에 차렸다.
 마블링이 살아있는 1등급 한우 생 갈비였다.
 “일단 생 갈비로 시켰는데 괜찮아요?”
 “예, 좋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통성명도 하지 않았죠? 전 미란이라 해요. 그쪽은요?”
 “박 훈입니다.”
 ‘어? 이름이 똑같네?’
 뒷조사를 한 벤츠 소유자의 이름과 똑같았다.
 “전 23살인데 몇 살이세요?”
 “저도 23살입니다.”
 “어머, 그러세요? 우리 나이도 같은데 서로 말을 놓을까요?”
 “예, 그러세요.”
 “그럼 지금부터 말을 놓을게. 왜 흠집 난 범퍼를 교체하지 않아?”
 “살짝 긁힌 거뿐이라서 그냥 타고 다니려고.”
 “혹시 대학생이야?”
 “아니, 그냥 백수야.”
 “너 어디에서 살아?”
 “청담동의 빌라에서 살고 있어.”
 ‘뭐야? 뒷조사로는 용산구 이촌역 부근의 그랜드 원룸에 산다고 했는데?’
 “부모님들과 함께 살아?”
 “아니, 독립하여 혼자 빌라에서 살고 있어.”
 “혹시 타고 다니는 벤츠 빌린 거야?”
 “아니, 얼마 전에 내가 구입한 거야.”
 ‘이상한데? 뒷조사 제대로 한거 맞아? 혹시 동명이인인가?’
 미란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 꼬치꼬치 물어볼 수가 없어서 구운 갈비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훈,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친구할까?”
 “친구? 난 상관없지만 괜찮겠어?”
 “뭐가?”
 “친구하는 거 말이야.”
 “난 상관없어.”
 “좋아, 친구하자.”
 미란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훈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마주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미녀의 손이라서 그런지 희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미란은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 느낌이 이상해.’
 이제껏 남자와 악수하면서 짜릿한 느낌을 받은 건 훈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잘생기고 피부도 좋아 보였다.
 키도 크고 어쨌든 외모적으로는 어떤 남자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헤어스타일이 세련되지는 않았다.
 ‘헤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보여.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서 손질해줘야겠어.’
 보통 남자들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는데 훈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게 인상적이었다.
 성격도 차분한 모양이었다.
 훈은 화상을 입은 후부터는 음식을 먹을 때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하여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다.
 수 년 간을 그렇게 식사하다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생 갈비를 먹고 나자 된장찌개와 밥이 나왔는데 그것도 다 비웠다.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가 나왔다.
 “훈, 내일 뭐할 거야?”
 “내일? 특별한 일은 없어. 그냥 빌라에 있을 거야.”
 “그럼 오후에 청담동으로 나와.”
 “청담동에는 왜?”
 “헤어가 손질되지 않아서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그러고 보니 훈은 바디 체인지 과정을 겪어 머리카락이 새로 돋아났는데 그게 좋아서 아직 제대로 손질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란의 말을 듣고 보니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로 바꾸어도 좋을 거 같았다.
 “좋아.”
 “그럼 오후 5시에 청담동에서 만나는 것으로 해.”
 미란이 식사비를 계산하고 입구로 나오자 훈이 서 있었다.
 “오늘 잘 먹었어.”
 “접촉사고 수리비라 생각해.”
 “그래 알았어.”
 훈이 먼저 벤츠를 타고 출발하자 미란도 페라리에 탔다.
 벤츠와 페라리는 약 2백 미터의 거리차이를 두면서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빌라에 산다고 하더니 청담동에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훈의 벤츠가 청담 아시아 빌라로 들어갔다.
 미란의 페라리는 청담 아시아 빌라 옆에 있는 월드 청담 빌라로 들어갔다.
 미란은 약 1년 전에 독립하여 전세 20억의 월드 청담 빌라에 입주해 살고 있다.
 그런데 훈의 벤츠가 청담 아시아 빌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살짝 놀랐다.
 미란이 알기로는 청담 아시아 빌라는 전세가 25억 이상이었다.
 뒷조사 한 것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훈은 화상도 없고 이촌역 부근의 원룸에서 사는 것도 아니었다.
 페라리를 주차하고 빌라로 들어서는데 핸드백에 넣어 놓았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미란아, 엄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아니, 궁금해서 했어. 너무 일에만 몰두하는 거 아냐?
 “기획 1팀장으로 승진한지 겨우 한 달인데 열심히 해야지.”
 -강남 킹 백화점을 물려받으려고 경영수업을 받는 것인데 너무 부하직원들 눈치 볼 필요가 뭐 있어?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그러지 말고 좋은 남자를 만나.
 “남자? 이번에는 어떤 남자야?”
 -성국 그룹의 3째 아들이야, 어때?
 “흥, 순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남자잖아.”
 -그래도 매너는 좋잖아.
 “그래도 바람둥이는 싫어.”
 -그럼 네가 직접 남자를 꼬셔봐. 너의 미모로도 남자하나 사귀지 못해?
 “알았어. 내가 멋진 남자로 조만간 엄마에게 인사시킬게.”
 -뭐? 누구 있어?
 “아직은 몰라.”
 -있구나. 누구야?
 “오늘 첫 데이트라서 다음에 말해줄게.”
 -호호호, 맨 날 바쁘다고 하더니 언제 남자를 만난거야?
 “엄마, 나 이제 씻을 거야.”
 -알았다. 꼭 엄마에게 소개시켜야 돼.
 “알았어요.”
 핸드폰을 종료한 미란은 피식거렸다.
 옷을 갈아입고는 욕실 욕조에 물을 받았다.
 미란은 매일 거품목욕을 하는데 이게 피로를 푸는데 좋았다.
 욕조에 등을 기대어 와인 한잔을 마시면서 훈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멋진 남자야.”
 벌써 내일의 데이트가 기다려졌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간 미란이 난간에 서 있는 비서실의 김 비서 옆에 섰다.
 “뒷조사 제대로 한 건가요?”
 “예?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알아보려는 남자와 달랐어요.”
 “그렇습니까? 다시 조사를 해볼까요?”
 “오늘 오후 5시에 청담동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 남자의 얼굴을 몰래 찍어서 조사를 해보세요. 그리고 청담 아시아 빌라에 살고 있는 거 같으니까 잘 알아보고요.”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 비서가 먼저 사라지자 미란은 손에 들고 있는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훈의 얼굴을 떠올라 당황했다.
 이상하게 어제 밤부터 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분은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아, 내 마음이 왜 이러지?”
 애써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획실로 돌아갔다.
 기획실에서도 미란은 이상하게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아 어떻게 업무를 본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렸고 4시30분이 되자 핸드백을 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퇴근할게요.”
 “예, 팀장님.”
 미란이 페라리를 운전하여 약속장소로 가니 길가에 훈이 서 있었다.
 감색 정장에 티셔츠,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멋졌다.
 키가 크고 호리하며 잘생긴 외모덕분이었다.
 미란도 172센티미터의 키에 하이힐을 신었기에 큰 편이었다.
 페라리가 멈추면서 차창이 내려갔다.
 “훈, 어서 타.”
 “어, 그래.”
 조수석에 훈이 타자 페라리가 다시 출발하여 유명한 유미 헤어 건물에 주차했다.
 유미 헤어의 원장 유미는 인기연예인들의 머리손질을 많이 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여자 지배인이 미란을 보고 아는 채 했다.
 “오셨어요?”
 “안녕, 원장님은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세요.”
 여자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유미 원장이 반갑게 말했다.
 “미란씨 어서와.”
 “안녕하세요. 오늘은 내가 아니라 이쪽이에요.”
 “그래? 어서 오세요.”
 훈이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유미 원장이 순간 눈을 번뜩였다.
 “어머, 정말 잘 생겼다. 우리 집은 처음이죠?”
 “예, 그렇습니다.”
 “이쪽에 앉으세요. 오늘은 내가 직접 멋진 헤어스타일로 만들어 드릴게요.”
 “예, 부탁합니다.”
 유미 원장이 훈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 남자분의 머리카락이 너무 매끄럽고 좋다. 어떻게 관리했어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샴푸로 감았는데요?”
 “정말 놀랍네요. 여자 분들도 이 정도 머리카락을 유지하려면 힘든데.”
 유미 원장이 가위를 들더니 현란한 솜씨를 선보였다.
 지켜보던 헤어 디자이너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보통은 보조들이 샴푸를 해주는데 유미 원장이 직접 훈의 샴푸를 해주었다.
 드라이를 하고 헤어 젤을 살짝 바르자 눈부셨다.
 “너무 멋있다. 어때요?”
 “멋지게 된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잡지를 보고 있던 미란이 다가와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너무 멋져.’
 헤어스타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을 때에는 뭔가 조금 부족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스타일이 살아나자 정말 멋있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오늘 밥은 내가 살게.”
 “좋아. 어디로 갈까?”
 “난 잘 모르니 네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
 “어, 알았어.”
 유미 헤어에서 나온 미란과 훈은 페라리를 타고 삼성동에 있는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나에 대해 궁금한 거 없어?”
 “없는데.”
 “뭐라고? 정말 없어?”
 “응, 없어.”
 “나 같은 미녀에게 관심이 없다니 놀라워.”
 “그냥 보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다른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야?”
 “넌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구나.”
 미란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쳐다보았다.
 “너 한 번도 연애 안 해봤지?”
 “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 같은 미녀에게 궁금한 게 없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
 “놀고 있다고 했는데 언제부터 일할거야?”
 “당분간은 없어. 바쁘거든.”
 “백수가 바쁘다고?”
 “넌 모르는 그런 게 있어.”
 이렇게까지 말하자 미란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지 미란은 자신의 직장생활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은 이야기를 하였고 훈은 그걸 들어주었다.
 훈이 식사비를 계산하고 둘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어디 갈 거야?”
 “빌라로 돌아갈 거야.”
 “뭐? 이제 9시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라니 들어가야 돼.”
 “그럼 내가 태워줄게. 차 안 가져 왔으니 말이야.”
 “그래 고맙다.”
 둘이 페라리를 타고 출발했다.
 “집이 어디야?”
 “청담 아시아 빌라.”
 “정말?”
 “어, 901호에 살아.”
 “그렇구나. 난 청담 아시아 빌라 옆에 있는 월드 청담 빌라 702호에서 살아.”
 “어? 그럼 이웃사촌이네?”
 “호호···그런가?”
 페라리가 청담 아시아 빌라 입구에 멈추었다.
 훈이 차에서 내리더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미란은 다시 페라리를 출발하여 월드 청담 빌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주차했다.
 빌라 안으로 들어오니 김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사해 보았어요?”
 -예, 청담 아시아 빌라 901호에 전세 입주해 있고 전세권설정 등기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벤츠도 그의 소유가 맞았습니다.
 “인적사항은 요?”
 -어제 보고 드린 것과 같았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인가요?”
 -예, 저도 동명이인인가 하고 조사를 다시 해보았는데 그가 확실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그는 절뚝거리지도 않고 멀쩡했어요.”
 -그게 저도 이상합니다. 분명 인적사항은 보고 드린 것과 일치합니다.
 “그럼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심한 화상으로 1년6개월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람이 비록 퇴원을 했다고는 하지만 완치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내가 알기로는 얼굴이 심하게 화상을 입어서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원상태는 될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더구나 첨부된 사진을 보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수준이던데요?”
 -으음, 그렇다면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쌍둥이가 아닐까요?
 “쌍둥이라니요? 그런 건 없었잖아요?”
 -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심한 화상 환자가 멀쩡해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분이 똑같고 이상 없다고 하면 쌍둥이가 분명합니다.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이름이 똑같지는 않아요.”
 -예,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호적이 없는 쌍둥이 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그럼 심부름센터를 이용하여 뒷조사를 확실히 해보세요. 그들이 미행을 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죠.”
 -예,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종료한 미란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으음, 쌍둥이라고? 사실일까?”
 청담 아시아 빌라 901호로 돌아온 훈은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미란을 떠올리고는 피식 거렸다.
 너무 뛰어난 미녀라서 훈은 사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친구라 생각하였고 그녀가 나오라고 해서 나갔을 뿐이었다.
 보통의 여자만 되었어도 훈이 용기를 내었겠지만 미란은 엄청난 미녀라서 기가 죽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마나집적 진의 농축된 마나를 다 흡수해 버렸기에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거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마나를 느낀 이후에 매일같이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마나를 몸속으로 흡수하였기에 이젠 익숙해진 일이었다.
 2시간 정도 마나심법을 운용한 훈은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자야 꿈을 꿀 수 있었고 아론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스슷!
 갑자기 어둠에서 환한 공간이 나타났다.
 훈이 꿈의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넓고 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온통 병사들로 가득했다.
 2백 미터의 거리를 두고 양측의 병사들이 집결해 있었는데 넓은 들판을 채울 정도였다.
 파란 뱀이 칼을 입에 물고 있는 문장의 깃발을 든 진영은 켈튼 왕국 군으로 약 20만 명이고 사자 머리 문장의 깃발을 든 진영은 찰스턴 왕국 군으로 약 10만 명으로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둥둥둥둥!
 켈튼 왕국 군 진영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갔다.
 찰스턴 왕국 군 진영에서는 병사들이 달려 나가지 않고 방패 병들이 긴 사각 방패를 치켜들었다.
 켈튼 왕국 병사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서로 충돌했다.
 팽팽하던 균형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졌다.
 병사들의 수가 적은 찰스턴 왕국 군 진영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찰스턴 왕국 군 진영에서 백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5백여 명이 파이어 볼을 생성하여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파이어 볼에 켈튼 왕국 병사들은 공포에 질렸다.
 콰콰콰콰쾅!
 여기저기 파이어 볼이 떨어져 폭발하면서 켈튼 왕국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켈튼 왕국 진영에서도 빨간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천 명이 나서더니 파이어 볼을 생성하여 던졌다.
 이번에는 반대로 찰스턴 왕국 진영의 병사들이 더 많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양측의 마법사들은 위력적인 공격마법을 퍼부었기에 병사들의 피해가 커졌다.
 양측의 일부 마법사들도 부상을 입거나 죽었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찰스턴 왕국 진영이 불리해졌다.
 30명의 마법사들과 기사들의 경호를 받고 있는 사령관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이런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때 공간이 이지러지며 백색 로브를 입은 자가 나타났다.
 “아, 드디어 오셨구나.”
 “그분이 오셨다.”
 와아아아!
 갑자기 찰스턴 왕국 진영에서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옆으로 물러나면서 없던 길이 생겼다.
 모두들 일제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마법사 무리 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오는 사람은 백색 로브를 입은 금발의 노인이었는데 놀랍게도 아론이었다.
 마법사의 탑을 세우고 아론 학파를 출범시킨 아론은 제자들만 백 명이나 되었고 아론 학파 출신의 마법사는 2천 명이 넘었다.
 켈튼 왕국 진영에서 찰스턴 왕국 진영을 공격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공격을 중지하고 뒤로 물러났다.
 두둥실 공중으로 떠오른 아론이 외쳤다.
 “어리석은 켈튼의 병사들이여, 나 아론이 너희들을 막고자 이렇게 왔노라. 지금이라도 물러간다면 용서해주마.”
 “으아아, 대마법사 아론이 나타났다.”
 “도망쳐야 돼.”
 “난 죽기 싫어. 으아아!”
 공포에 질린 켈튼 왕국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동요하는 병사들이 늘어나자 백인대장이나 천인대장들이 당황했다.
 “물러서지 마라.”
 “도망치는 놈들은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슈가각!
 장교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병사들을 베어 버렸다.
 자신들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장교라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었다.
 아론이 양팔을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갑자기 하늘에 번개 폭풍이 생겨났다.
 “허엇, 썬더 스톰이다.”
 “으아, 도망쳐.”
 “후퇴하라, 후퇴!”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생겨나 번개를 뿌리면서 켈튼 왕국 병사들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갔다.
 콰콰콰콰!
 엄청난 회오리바람에 휘말린 것은 말이나 병사들 할 거 없이 다 재가 되어 흩어졌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멸시키는 거 같았다.
 썬더 스톰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로 변하였다.
 이 광범위 공격마법 한 방 만으로도 켈튼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달아나는데 정신없었다.
 아론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씨익 웃더니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다.
 뜨거운 고열로 뭉쳐진 지름 2미터의 마그마 탄이 고속으로 날아갔다.
 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반경 백 미터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하였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순간 충격파에 쓰러졌다.
 아론은 마치 장난처럼 마그마 탄을 연속으로 생성하여 도망치는 켈튼 병사들을 공격했다.
 이런 엄청난 공격마법에 모두들 경악했다.
 켈튼 왕국의 마법사들이 공중에 떠 있는 아론을 향해 공격마법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론이 펼친 빛의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수십 발의 공격마법이 폭발했지만 빛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였다.
 아론에게 전혀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아론은 적 진영 마법사들이 가소로운지 피식 거리며 양팔을 내뻗었다.
 콰쾅!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반경 2백 미터가 순간 폐허가 되었다.
 공중에 뜬 상태에서 켈튼 왕국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광범위 공격마법을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연속으로 펼치는 아론의 능력에 찰스턴 왕국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한없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도망치는 켈튼 왕국 병사들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공격하라!”
 와아아아!
 찰스턴 왕국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하여 켈튼 왕국 병사들을 공격하였다.
 이미 사기가 크게 꺾인 켈튼 왕국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아론의 맹활약으로 인하여 찰스턴 왕국이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8서클 대마법사 아론은 이 전쟁으로 인하여 대륙 전역에 빛나는 큰 별이 되었다.
 마법사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아론의 마탑으로 몰려들었다.
 아론은 세월이 흐르면서 제자들과 수련 마법사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조심해서 이쪽으로 놓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 다섯 명이 조심하면서 동판을 훈이 지정해준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바닥에 싸인 펜으로 지름 2미터의 원형 표시를 해놓았기에 동판을 내려놓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흠집이 날 수도 있었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동판 다섯 개를 룸 안의 바닥에 설치했다.
 이런 거대한 동판을 집안에 설치하는 걸 작업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집주인 마음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옆 룸에도 똑같이 다섯 개의 동판을 설치해 주세요. 내가 별도로 점심값은 챙겨드릴 테니 각별히 신경을 써주세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작업자들은 훈이 점심값을 별도로 챙겨준다는 말에 힘이 났다.
 거대한 동판을 집안에 설치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역시 돈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했다.
 두 개의 룸에 각각 다섯 개의 거대한 동판이 설치되었다.
 그냥 지정된 자리에 흠집 없이 조심스럽게 내려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단순했지만 신경은 더 쓰였다.
 무거운 동판이기에 자칫 실수하면 동판에 흠집이 생기고 룸의 바닥도 깨질 수 있다.
 어쨌든 열 개의 거대한 동판 설치가 끝이 나자 훈이 작업자 다섯 명에게 각각 10만원씩 주었다.
 “아이고, 이렇게나 많이 주십니까?”
 “수고하셨는데 맛있는 거 사드세요.”
 “예,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작업자들을 돌려보낸 훈은 설치해 놓은 동판 옆에 직접 자신의 피를 받아 놓은 컵을 놓았다.
 붓으로 피를 듬뿍 찍어 마법의 룬문자를 조심스럽게 새기고 준비해 놓은 보석도 지정해 놓은 자리에 정확하게 놓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마나집적 진이 실패하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작업해야 했다.
 이번에는 마법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마나집적 진에 각인을 시켰다.
 이렇게 해야 마나집적 진이 작동이 된다.
 우우웅!
 마나집적 진에서 공명음이 일어났다.
 훈이 컵에 받아 놓았던 자신의 피를 마나집적 진의 한곳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피를 흡수한 마나집적 진에서 더욱 공명음이 커졌다.
 번쩍!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사라졌다.
 마나집적 진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농축된 마나가 마나집적 진에 모일 것이다.
 “휴우, 각인시키는데 성공했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물러났다.
 남아 있는 9개의 동판에 마나집적 진을 새기고 각인시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일단은 좀 쉬었다가 다시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난간에 미란이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비서실의 김 비서가 다가와 옆에 섰다.
 “이번에는 뒷조사를 제대로 했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번의 조사와 같았습니다.”
 “뭐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조사한 바로는 저번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박 훈은 쌍둥이는 아니었습니다. 3년 전에 부모가 이혼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각자 재혼하였습니다. 아들 박 훈과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통화를 한다고 합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의학적으로 깨끗하게 원상태로 될 수가 있는 건가요?”
 “제가 그래서 고문 외과의사인 닥터 최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은 뭔가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고 황당한 상황이지만 박 훈이라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나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원상태로 된 거 같습니다.”
 “그럴 리가?”
 “상식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으니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용산구 이촌역 부근에 있는 그랜드 원룸을 소유하고 있지만 살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얼마 전에 박 훈이 벤츠를 구입하고 청담 아시아 빌라를 전세 얻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박 훈이 특별한 직업이 없는데 약간의 주식투자와 로또복권 투자하는 게 직업이라는 말인가요?”
 “예, 저의 판단으로는 직업적으로 로또복권을 매주 투자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주식투자도 조금씩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만 최근 몇 주 동안에는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일체 주식투자와 로또복권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알았어요. 그만 가보세요.”
 “예, 그럼.”
 김 비서가 먼저 걸어가 사라졌다.
 커피를 마시면서 미란은 생각했다.
 “호호호, 심한 화상을 입어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나 상처를 깨끗하게 완치하고 새로 태어났단 말이지? 그리고 특이하게 주식투자와 로또복권 투자로 억대 수익을 올리고 말이야.”
 정말 재미있고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거기에다가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순진하기에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미란이 만났던 남자들은 시시하고 재미없고 그랬었다.
 하지만 박 훈은 색다른 매력으로 미란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정말 신기해. 주식투자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로또복권을 어떻게 매주 구입하고 당첨되는 거지?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
 매주 로또복권을 당첨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박 훈은 2등 52번과 3등 306번이나 당첨되었고 최근에 들어와서는 1등 3회에 당첨되어 70억 원을 수령하였다.
 개인 재산이 백억 원이나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미란의 집안은 수천억 재산가이기에 박 훈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특이한 능력이 신선했다.
 핸드폰을 꺼내어 박 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미란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츠츠츠츠!
 농축된 마나가 훈의 코를 통하여 몸속으로 흡입되었다.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되어 심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심장을 궤도처럼 휘도는 마력의 띠는 제법 굵고 선명했다.
 감았던 눈을 뜨며 씨익 웃었다.
 “이거야, 이거.”
 마나집적 진에 농축되어 있는 마나를 전부 흡수한 훈은 마치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 삼림욕을 하고 나온듯한 그런 상쾌함을 느꼈다.
 꿈속에서 본 아론의 세상보다 지구가 마나의 분포도가 훨씬 떨어지는 거 같았다.
 판타지 소설에서 주로 나오는 말도 그랬었는데 일치하니 그건 정말이지 신기했다.
 마법을 익히고 자신감이 생기면 숲속에서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마나를 흡수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훈이 제법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든 마나집적 진 11개를 2개의 룸에 나누어 각각 설치하고는 번갈아 가며 마나를 흡수했다.
 마나집적 진속에 들어 있는 마나는 훈이 마나심법을 운용하면 3시간 만에 다 흡수되어 버린다.
 그럼 3일을 기다려야 다시 마나집적 진에 마나가 가득 채워진다.
 그렇다보니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그런데 이제 11개의 마나집적 진이 룸에 설치되어 있으니 계속 풀가동으로 수련을 해도 될 거 같았다.
 물론 마나집적 진 하나의 마나를 3시간 만에 다 흡수하고 잠시 쉬었다가 식사도 하면서 다시 수련하는 식으로 하면 될 거 같았다.
 미친 듯이 수련하여 서클을 형성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미란에게서 전화가 올까봐서 핸드폰까지 꺼놓았다.
 이제 수련에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컵에 시원한 물을 붓고 그것도 부족한지 얼음을 넣었다.
 타는 목을 위해 시원한 얼음물을 단숨에 들이키자 속까지 시원해졌다.
 “아···시원하다.”
 수련하고 마시는 한잔의 얼음물이 너무 좋았다.
 장시간 가부좌를 틀고 있었기에 스트레칭으로 굳어진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도 시켜주었다.
 이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더 끌어 모을 수 있었다.
 훈은 5번이라 번호표가 붙어있는 마나집적 진 앞에 섰다.
 정신없이 수련을 하다보면 착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하여 마나집적 진에 번호표를 붙이고 벽에는 시간표까지 걸려 있었다.
 시간표에 표시를 하고 5번 마나집적 진에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뭐야? 또 전화를 꺼놓고 안 받는 거야?”
 벌써 열흘째 훈이 핸드폰을 꺼놓고 받지 않아서 미란은 짜증이 났다.
 이렇게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란으로서는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훈이 미란의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월드 청담 빌라에 미란이 살고 있기에 훈의 청담 아시아 빌라와는 이웃사촌이라 할 수도 있지만 차마 찾아가지는 못하였다.
 훈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미란에게 알려주었지만 말도 없이 무작정 빌라로 찾아가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럼 둘의 사이가 깨어질 수도 있었다.
 그건 미란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열흘이나 되도록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인내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미란도 잘 알지 못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를 펼쳤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짜증나.’
 미란이 안절부절 해 하자 팀원들도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핸드폰을 꺼낸 미란이 여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다.
 이것도 모르고 훈은 여전히 마나집적 진에 가부좌를 틀고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우우웅!
 갑자기 훈의 몸속에서 공명음이 일어났다.
 심장을 힘차게 휘도는 마력의 띠가 굵고 많이 짙어져 있었다.
 서클을 형성할 만큼 마력이 모였기에 맹렬하게 휘돌고 있다.
 “헉헉,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훈은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이미 온몸은 식은땀으로 번들거렸고 속옷이 흠뻑 젖었다.
 파파팟!
 훈의 심장을 힘차게 휘돌던 마력의 띠가 황금빛을 내뿜으면서 서클로 변하였다.
 마치 토성처럼 심장 겉에 띠를 형성한 것이었는데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훈은 분명히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서클을 형성하여 이제 진정한 1서클이 되었다.
 마법에 입문한지 불과 22일 만에 이루어진 일로 이건 한 달 만에 서클을 형성한 아론보다 더 빠른 일이었다.
 그렇다고 훈이 아론보다 마법적인 재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아론이 살던 세상보다 서울의 훈이 살고 있는 세상이 더 교육수준이 높은 덕분이었다.
 또한 부족한 마나에도 불구하고 훈이 잔머리 즉, 마나집적 진을 11개나 만들어 집중적인 수련을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훈은 그토록 노력했던 일이 성공하자 희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제 서클이 형성되었기에 1서클 마법을 펼쳐보아도 되지만 하루 정도 서클을 안정시킨 후에 시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표에 표시를 하고 일어난 훈은 옷과 속옷을 전부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비누칠로 깨끗하게 씻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씨익 웃었다.
 “하하하, 내일 1서클 공격마법을 펼친다고 생각하니 이거 설레는군?”
 목욕가운을 입고 거실로 나온 훈은 벽시계를 보니 밤 9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다.
 꺼놓은 핸드폰을 켜보니 백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확인했다.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니 전부 미란이 건 전화였다.
 “무슨 일인데 전화를 이렇게나 했지?”
 머리를 갸웃거린 훈이 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박 훈 너 정말 이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왜 그동안 전화를 안 받았어?
 “아, 미안. 그동안 명상수련을 한다고 핸드폰을 꺼놓았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흘이나 명상수련을 했단 말이야?
 “어, 그랬어. 그리고 특별히 나에게 전화 올 때도 없고 해서 말이야.”
 이렇게까지 말하자 미란은 말이 막히는지 대답이 없었다.
 약간 미안해진 훈이 말했다.
 “시끄러운 걸 보니 집은 아닌 거 같은데 어디야?”
 -압구정동의 노래방이야.
 “노래방? 혼자?”
 -아니, 여자 친구들과 같이 왔어.
 “그럼 재미있게 놀아.”
 -그러지 말고 여기로 올래?
 “노래방으로?”
 -응, 친구들이 훈을 보고 싶어 해. 나와.
 훈은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서클을 형성해 기분이 좋았기에 마음이 바뀌었다.
 “좋아, 어디로 가면 돼?”
 -일단 압구정동으로 와서 전화해.
 “알았어. 15분 내로 갈게.”
 -알았어. 기다릴게.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은 훈은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빌라를 나섰다.
 청담 아시아 빌라 입구가 보이는 이면 도로에 은색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차 안에는 두 명의 남자들이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으며 이들의 시선은 청담 아시아 빌라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훈의 그랜드 원룸을 감시하는 그자들이었다.
 “허엇, 저기 한 놈이 나왔다.”
 “뭐라고? 어디?”
 조수석에 앉은 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훈이 청바지에 재킷을 입고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조수석에 앉은 자가 재빨리 디지털카메라를 들어 훈의 모습을 연속으로 찍었다.
 찰칵찰칵!
 “찍었어?”
 “어, 찍었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봐야 돼.”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훈의 얼굴과 모습이 잘 찍혔다.
 “저자는 박 훈이 아니잖아?”
 “젠장, 키가 비슷해서 찍었는데 말이야.”
 “놈이 영악하게 청담 아시아 빌라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니 놀랐어.”
 “나도 그래.”
 이들은 며칠 동안 훈의 그랜드 원룸 주위에 잠복하면서 지켜보았지만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피자배달원으로 변장하여 벨을 수십 번이나 눌렀지만 훈은 대답조차 없었다.
 그래서 훈이 원룸에 없다는 걸 알았다.
 뭔가 이상해서 알아보았더니 놀랍게도 청담동에 있는 청담 아시아 빌라 901호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확인해보니 전세권설정 등기가 되어 있었다.
 박 훈의 그랜드 원룸이 밤에 불이 켜지지 않고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게 이제야 확실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즉시 청담 아시아 빌라로 달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청담 아시아 빌라가 강남권 안에서도 상위에 드는 고급빌라라서 철저한 신분을 지켜주는 보안시스템이 있어서 어찌해 볼 수 없었다.
 방문자나 배달원까지도 철저하게 경비원들이 입주민에게 확인하여 출입을 시켰기에 이들은 청담 아시아 빌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3일 동안 이곳에 잠복하면서 청담 아시아 빌라의 남자 출입자들 중에 박 훈과 키가 비슷한 자를 보면 얼굴과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들은 아직 훈이 변한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알았다면 조금 전에 찍었던 모습과 얼굴을 지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렇게 훈은 신변의 큰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지만 그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
 훈을 납치하려는 자도 아직은 훈의 변한 모습을 모르기에 누가 먼저 알고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였다.
 
 
 제5장 첫 마법시현
 
 
 덜컹!
 노래방의 룸 문을 열고 훈이 들어왔다.
 “어, 왔어?”
 양주를 마시던 미란이 손을 치켜들었다.
 미란 옆에는 세련되고 예쁜 여자들이 둘이나 더 있었다.
 친구들은 잘생기고 키도 큰 훈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미란의 손짓에 훈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야, 미란 소개 좀 시켜봐.”
 “어, 그럴까? 이쪽은 박 훈이고 나이는 23살이야. 너, 키는 얼마나 되지?”
 “잘은 모르겠는데 190센티미터 정도 될 거야.”
 훈의 대답에 미란의 친구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어머, 크다.”
 “미란아, 키가 커서 그런지 옷걸이도 좋아 보인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젠 너희들의 소개는 직접 해.”
 가장 왼쪽 소파에 앉아 있던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미녀가 말했다.
 “어, 나부터 할게. 난 김 아영이고 미란이와 같은 23살, 케이 대학 동창이에요. 그리고 빅토리아 패션에 입사하여 신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빅토리아 패션은 우리나라 기업 순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승리 그룹의 자회사이지만 대기업이었다.
 “아영이의 아버지가 빅토리아 패션의 부회장이셔.”
 미란의 추가 설명에 훈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란이 이번에는 아영이 옆에 앉아 있는 미녀에게 눈짓을 주었다.
 “난 한 슬하이고 23살, 같은 케이 대학 동창이에요. 지금은 케이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고 있어요.”
 아영은 디자이너이기에 옷을 어울리게 잘 입었다.
 빨간 블라우스에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인지 각선미가 좋고 섹시한 외모라면 슬하는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었고 무릎 위 까지 오는 길이였지만 잘 어울렸다.
 외모는 미란이 워낙 예뻐서 돋보였고 다음이 섹시한 아영, 마지막이 슬하였다.
 하지만 훈의 개인적인 선호도나 호감도 라면 단연 여성스러운 슬하였다.
 사실 슬하만 하더라도 어디 나가면 킹카로 대접 받았다.
 집안은 아직 살아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들이 전부 대학교수이며 슬하의 외모는 인기 탤런트와 비슷했다.
 명문 케이 대학을 졸업하였기에 머릿속에 든 게 많아서 지성미까지 어느 거 하나 빠지지는 않았는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오빠가 둘 있는데 하나는 대학교수, 또 하나는 치과의사였다.
 일단 소개가 끝이 나자 미란이 훈에게 양주잔을 내밀었다.
 “일단 한잔 마셔.”
 훈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양주를 마셨다.
 아영이 벌떡 일어나더니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불렀다.
 제법 노래 부르는 실력이 좋았다.
 이번에는 미란이 마이크를 건 내 받아서 노래를 불렀는데 가수를 해도 될 만큼 노래를 잘 불렀다.
 이번에는 슬하가 마이크를 쥐고 발라드를 불렀다.
 외모가 청순하면서 여성스러운데 노래와 잘 어울렸다.
 훈은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미란 보다는 슬하가 더 끌렸다.
 짝짝짝짝!
 슬하의 노래가 끝이 나자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훈, 이제 노래 한곡 해야지.”
 “어, 그래.”
 분위기상 훈도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훈은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기타를 배우고 노래도 잘 불렀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이기에 그게 더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어 끌어 당겼다.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난 이후에는 제대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지만 요즘 유행가의 가사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대는 아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스치는 바람에도 갈대처럼 흔들리는 그대 마음잡으려고 난 오늘도 기도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이 목숨 다 받치도록 당신만을 사랑해요. 영원히.]
 짝짝짝짝!
 “어머, 너무 잘 부른다.”
 “너무 멋져.”
 “아···가수해도 되겠다.”
 훈의 노래에 미녀들은 푹 빠져 버렸다.
 잘생긴 얼굴과 키만으로도 호감을 보이는 미녀들인데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른 사랑 노래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미녀들의 뜨거운 눈빛에 훈도 순간 당황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훈이 소파에 앉자 미란이 양주를 내밀었다.
 “한잔 마셔.”
 “어, 고맙다.”
 아영이 미란에게 물었다.
 “둘은 어떻게 만난 거야?”
 “얼마 전에 내가 강남 킹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그만 실수로 접촉사고를 일으켰어.”
 “다치지는 않았어?”
 “어, 다행이 살짝 부딪쳤어. 수리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그냥 됐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냥은 양심상 넘어갈 수 없어서 밥을 샀어. 그래서 친구 하기로 했어.”
 “그럼 사귀는 건 아니었구나.”
 아영은 미란이 훈과 단순히 친구라는 말에 좋아했다.
 술을 마시던 슬하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좋아했다.
 “뭐, 그렇지.”
 미란은 아영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이게 지금 내 남자를 넘보는 거야?’
 아영은 비록 자신보다 약간 미모가 떨어지고 집안도 차이가 있지만 그건 자신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이고 남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재벌인 승리 그룹의 일가이고 섹시한 매력으로 많은 남자들의 인기를 받는 아영이었다.
 결코 미란이 무시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훈이 더 멋져 보였다.
 모두들 술을 몇 잔 더 마시자 미란이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그냥 가면 아영이 훈에게 작업을 할 거 같아서 눈짓을 하였고 아영은 어쩔 수 없이 미란을 부축하면서 화장실을 따라갔다.
 혼자 남은 슬하는 훈과 눈이 마주쳤다.
 ‘아, 우수에 찬 그런 눈빛이야. 빨려 들어갈 거 같아.’
 오늘 처음 보는 훈이었지만 이상하게 빠져드는 슬하였다.
 “연락처 좀 찍어주세요.”
 “예? 저의 연락처를 요?”
 “예, 밥을 같이 한 번 먹고 싶어서요.”
 슬하가 내민 핸드폰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훈이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찍어 주었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요.”
 약간 어색해졌지만 슬하가 먼저 웃자 훈도 따라 웃었다.
 슬하가 친구들이 돌아오기 전에 핸드백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훈에게 양주를 내밀었다.
 “같이 마셔요.”
 “예, 그러죠.”
 슬하와 훈이 서로 잔을 살짝 부딪치고는 양주를 마셨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아영이 들어왔다.
 “슬하, 넌 화장실 안가?”
 “안 그래도 지금 가려고 했어.”
 슬하가 아영의 눈짓에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제야 아영은 씨익 웃으며 훈에게 말했다.
 “미란이와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죠?”
 “예, 그냥 친구입니다.”
 “그럼 핸드폰 줘 봐요.”
 “예? 저의 핸드폰 말입니까?”
 “그래요. 전화할 때가 있어서 그래요. 어서요.”
 아영이 다그치자 훈도 얼떨결에 자신의 핸드폰을 건 내었다.
 아영이 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아영이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 울리자 아영이 씨익 웃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훈에게 보여주었다.
 “전화번호 찍었으니 연락할 게요.”
 아영이의 약간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나쁘게 보이지 않고 귀엽게 보였다.
 “나와 밥 한 번 먹어야 되요. 알았죠?”
 “예, 그러죠.”
 “약속 지켜야 해요.”
 아영이 훈의 핸드폰을 돌려주고 자신의 핸드폰을 핸드백에 넣었다.
 아영과 훈이 양주를 마시고 있을 때 슬하와 미란이 함께 룸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양주병을 비우고 나서 노래방을 나오기 전에 대리기사를 불렀다.
 술값은 미란이 계산하였고 노래방 입구로 나왔다.
 차를 가지고 온 것은 미란뿐이기에 그녀가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어느새 대리기사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페라리에 탔다.
 “먼저 청담 아시아 빌라 입구에 세워주고 월드 청담 빌라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리운전기사가 페라리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훈이 미란에게 말했다.
 “친구들 먼저 내려주고 난 나중에 내려도 되는데.”
 “그러지 않아도 돼. 아영과 슬하는 나와 같은 월드 청담 빌라에 살아.”
 “그럼 이웃이네?”
 “그래. 넌 독립하여 청담 아시아 빌라에 살고 나도 독립해서 월드 청담 빌라에 살지만 아영과 슬하는 부모님들과 같이 살고 있어.”
 “내가 그걸 몰랐었군?”
 그제야 이해를 한 훈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영과 슬하는 훈이 청담 아시아 빌라에 산다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좋아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내색해봐야 미란의 눈치만 보일 뿐이었다.
 페라리가 먼저 청담 아시아 빌라에 멈추자 훈이 내렸다.
 “오늘 잘 마셨다. 다음에는 내가 한잔 살게.”
 “당연하지. 꼭 사야 돼.”
 머리를 끄덕인 훈이 미란과 아영, 슬하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들어갔다.
 페라리는 다시 출발하여 월드 청담 빌라로 들어갔다.
 훈을 납치하려는 자들은 차안에서 쌍안경으로 술을 마신 훈을 쳐다보고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쌍안경을 내렸다.
 “젠장, 이래서 언제 놈을 찾지?”
 “지루해도 참아. 놈이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납치할 거야.”
 “그래도 무작정 이렇게 기다려야 돼?”
 “딴 방법 있어?”
 “당연히 없지.”
 “그럼 잔말 말고 있어. 놈을 납치하기만 하면 수십억이 우리 꺼야.”
 “흐흐흐···그건 그래.”
 한탕만 하면 바로 인생역전이라는 생각에 이들은 씨익 웃으며 콜라를 마셨다.
 츠츠츠츠!
 마나집적 진에 앉아 마나를 몸속으로 흡수한 훈이 눈을 떴다.
 “심장에서 휘도는 서클이 이제 안정되었으니 마법을 펼쳐도 되겠어.”
 가부좌를 풀고 일어난 훈은 이제 처음으로 마법을 펼쳐 보아야 하는데 어떤 마법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빌라의 룸이기에 공격마법을 펼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라이트 마법이었다.
 이 라이트 마법은 빛을 내는 마법이기에 주위에 일체 피해가 없어서 마법을 시험하기엔 최적이었다.
 쉼 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라이트!”
 파팟!
 훈의 전방에 주먹 만 한 빛의 구가 생성되었다.
 횃불 정도의 밝기인데 너무나 신기했다.
 “라이트 마법은 유효거리가 36미터이며 지속시간은 5분이라고 했으니 지켜보면 알겠지.”
 룸 안이라서 유효거리는 잘 모르겠지만 횃불 정도의 밝기는 맞았다.
 벽시계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빛의 구를 번갈아보았다.
 정말 5분 정도 되자 빛의 구가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의 발현은 마법 공식이나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캐스팅을 하여 시동 어를 외치면서 마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론의 마법을 배운 훈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론의 마법은 의지로써 자신의 서클을 휘돌리면서 몸 밖의 마나와 공명시켜 재배열하여 바로 마법을 펼친다.
 그렇기에 마법 발현이 빠르고 훨씬 위력적이었다.
 훈은 속삭이듯이 시동 어를 말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밋밋하게 마법을 펼치는 거 보다는 시동 어를 외치는 게 멋있을 거 같아서 한 번 외쳐본 것이었다.
 이건 마치 구구단을 모르는 아이라면 손가락으로 더해서 답을 구해야 하겠지만 구구단을 외운 아이는 바로 계산되어 답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렇기에 다른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아론의 마법은 빠르고 훨씬 위력적이었다.
 첫 마법시현이었는데 간단하게 성공하자 훈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에는 훈이 시동 어를 외치지 않고 손짓만으로 빛의 구를 생성했다.
 역시나 실패 없이 빛의 구가 공중에 생성되었고 횃불처럼 밝았다.
 살랑살랑!
 이번에는 굳이 5분이 지나 자동소멸하게 두지 않고 강제 소멸시켰다.
 물건에 라이트 마법을 걸어도 그 물건이 빛을 발한다고 알고 있기에 백 원짜리 동전에 시험 삼아서 라이트 마법을 걸어보았다.
 신기하게도 백 원짜리 동전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훈은 비록 자신이 펼친 라이트 마법이지만 정말이지 신기했다.
 “겨우 1서클 마법인데 신기해. 수준이 더 높은 서클마법을 펼치는 기분은 어떨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벌써 연속으로 3번이나 마법을 펼쳤지만 지치지 않았다.
 마력이 서클로 변하였기에 소비되는 건 아니었다.
 서클은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이라 할 수 있었다.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는 원유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의지로써 끌어다 쓸 수 있었다.
 마나를 그냥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서클을 휘돌려 마나와 공명시켜 재배열하여 마법을 펼치는 것이었다.
 다만 보통의 마법사는 체력이 약하기에 여러 번 이런 마법을 펼치면 정신적인 피로도와 육체적인 피로 도를 심하게 느껴 지친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훈은 운동을 해서 체력도 키울 생각이었다.
 서클이 많으면 그만큼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많이 끌어다 쓸 수 있는데 지금은 1서클이라서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첫 마법시현이었는데 실패 없이 성공하여 훈은 기뻤다.
 심장을 휘도는 마력이 많이 모이면 나중에 서클을 또 형성할 수 있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부르르르!
 매너모드로 해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던 훈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나예요.
 “예? 누구 시죠?”
 -한 슬하에요. 기억하세요?
 “아, 그럼요. 안녕하세요.”
 -지금 뭐하세요?
 “그냥 거실에서 드라마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보통 남자들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그럼 제가 이상한 겁니까?”
 -아니요.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상한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 점심이나 같아 먹을래요?
 “나는 좋습니다. 어디로 나갈까요?”
 -한 시간 후에 월드 청담 빌라 입구에서 만나요.
 “예, 그럼 그때 보죠.”
 훈은 보던 드라마를 끄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고 나왔다.
 슬하와 첫 데이트이기에 신경이 쓰였다.
 정장을 입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캐주얼 복이 좋을 거 같아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감색 재킷을 걸쳤다.
 거울을 보니 잘 어울렸다.
 “내가 보기에도 이정도면 잘 어울려 보여. 이런 날이 나에게 올 줄은 몰랐었는데 말이야.”
 짹짹이에게 모이를 주고 정을 주었던 게 기적이 되어 돌아왔다.
 갑자기 짹짹이가 보고 싶어서 거실에 놓아두었던 소장용 보석함을 열었다.
 이제는 사리성형이 되었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게 보기 좋았다.
 “짹짹아, 오늘 미녀와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어. 이 모든 게 너의 덕분이야. 잊지 않을게.”
 소장용 보석함 뚜껑을 닫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벤츠를 운전하여 빌라를 나서더니 월드 청담 빌라 입구로 가서 멈추었다.
 마침 슬하가 걸어 나왔는데 살구핑크 가디 건에 허리 가운데로 리본을 묶는 흰색 블라우스, 청바지를 입었는데 여성스럽고 슬하의 청순함과 잘 어울렸다.
 벤츠에서 내린 훈이 손을 들어 말했다.
 “슬하씨!”
 슬하가 고개를 돌려 훈을 확인하고는 다가왔다.
 “언제 왔어요? 오래 기다렸어요?”
 “방금 왔습니다.”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슬하가 탔다.
 운전석에 훈이 타면서 말했다.
 “어디로 갈까요? 뭐 좋아 하세요?”
 “가까운 곳으로 가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건 어때요?”
 “전 좋습니다.”
 벤츠가 출발하여 강남역 부근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벤츠를 미행하는 자가 있었다.
 청담 아시아 빌라 주위에 대기하면서 박 훈을 노리던 그자들이었다.
 그들은 훈이 벤츠를 타고 나오는 걸 보고는 즉시 미행에 나섰다.
 벤츠가 박 훈의 소유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이 월드 청담 빌라 입구에 멈추고 내리는 걸 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키는 비슷한데 외모는 화상을 입지 않은 모습이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단은 박 훈의 벤츠를 운전하였기에 충분히 의심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박 훈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사진을 찍고 미행을 해보면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강남역 부근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네치아 주차장에 벤츠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행해온 자들은 길가에 멈추더니 내리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레스토랑 안의 실내 인테리어가 이태리 풍이었다.
 창가에 앉아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를 주문하였다.
 “오늘 다시 이렇게 보니 새롭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어제는 자세히 듣지 못하였는데 나이를 보니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공부하는 대학생인가요?”
 “으음, 아닙니다. 군은 면제되었습니다.”
 “면제? 어떻게요?”
 “그, 그게······.”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꼬치꼬치 캐물었죠?”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집에 불이 나서 화상을 입어 군 면제 되었습니다.”
 “화상이오? 이젠 괜찮아요?”
 “예,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흔적도 없습니다.”
 “예? 그게 가능해요? 화상은 상처자국이 남는다고 하는데?”
 “나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기적이 일어나 깨끗해졌습니다.”
 “그럼 무슨 일 하세요?”
 “증권투자를 조금 하였는데 지금은 잠시 중지하고 명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앞으로는 뭘 하실 생각인가요?”
 “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
 “증권투자를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직업적으로 말입니까?”
 “예, 직업적으로요.”
 “아닙니다. 증권투자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깊이 생각하고 할 겁니다.”
 “예, 그럴 거 같았어요.”
 웨이터가 김이 모락 피어나는 피자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 맛있겠다.”
 “그렇게 보이네요.”
 훈과 슬하는 피자를 접시에 덜어서 먹기 시작했다.
 “저 놈은 누구인데 박 훈의 벤츠를 타고 다니는 거지?”
 “키와 나이는 박 훈과 비슷해 보이는데 말이야, 누굴까?”
 “나도 아직은 모르지.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박 훈과 관계가 있어.”
 둘은 훈이 자신들이 납치할 박 훈인 것을 아직 모르기에 정체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화상 자국이 전혀 남지 않을 만큼 깨끗해졌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들도 지켜보면서도 훈인 것을 몰랐다.
 둘은 구운 오징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훈을 기다렸다.
 훈은 슬하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전체적으로 잘 맞는 거 같았다.
 슬하도 훈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남자라는 걸 알았다.
 훈은 첫 데이트였기에 슬하와 너무 오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점심만 먹고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식사비를 계산한 훈이 먼저 주차장에서 벤츠를 몰아 입구로 나왔다.
 베네치아 입구에 슬하가 서 있다가 벤츠 조수석에 탔다.
 “오늘 점심 잘 먹었어요.”
 “나도 그랬습니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요.”
 “예, 그러세요.”
 벤츠를 타고 월드 청담 빌라로 향했다.
 “놈이 나왔어. 따라가.”
 “알았어. 젠장, 데이트나 하는 놈의 뒤나 따라 다니다니.”
 “일단 저놈에 관하여 좀 알아봐야겠어.”
 “납치할 상대는 박 훈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저놈이 박 훈과 무슨 사이인지 알면 대응하기가 더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알았어. 그렇게 하자.”
 이들은 미행이 발각당하지 않도록 제법 거리를 두고 미행하였다.
 월드 청담 빌라 입구에 벤츠가 멈추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예, 나도 그랬습니다.”
 벤츠에서 내린 슬하가 훈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빌라로 들어갔다.
 훈은 그냥 빌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이왕 외출하였으니 한적한 곳에서 마법이나 펼쳐볼 생각이었다.
 벤츠를 출발시키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누구지? 여보세요?”
 -나 김 아영이에요.
 “예? 누구시라고요?”
 -어제 미란이와 함께 노래방에서 만난 친구 김 아영이라고요.
 “아, 이제야 누구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입니까?”
 -저녁에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해서요.
 “···!···”
 방금 슬하와 점심을 먹고 헤어졌는데 또 미녀와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어찌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였다.
 -왜 싫어요? 선약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무조건 만나서 같이 저녁 먹어요.
 적극적인 아영의 말에 훈은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어디에서 만날까요?”
 -그냥 편하게 청담동에서 저녁을 먹어요. 시간은 저녁 7시로 하고 장소는 문자로 찍어 줄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봐요.
 훈이 핸드폰을 종료하자 아영의 문자가 들어왔다.
 ‘저녁 7시에 청담동에 있는 초밥 집 청솔에서 만나자고?’
 차안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약간 넘었다.
 빌라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약속장소인 청솔로 가기에도 어중간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다.
 훈의 벤츠를 미행하는 자들은 짜증난 얼굴이었다.
 “또 어딜 가는 거야?”
 “저기로 가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인데?”
 “혹시 저놈이 영화 보러 가는 거 아냐?”
 “그런 모양인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잖아?”
 지하 주차장에 벤츠를 주차하고 매표소로 걸어갔다.
 “어떤 영화를 보실 건가요?”
 “영원한 사랑으로 주세요.”
 “혼자세요?”
 “예, 한 장 주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세요.”
 영화표를 발급받은 훈은 감회가 새로웠다.
 화상을 입기 전의 고등학생일 때에는 가끔이지만 영화도 보러가곤 했었다.
 하지만 화상을 입은 이후에는 사람들 있는 곳에는 일체 가지 못하였다.
 마치 괴물을 쳐다보는 듯한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원한 사랑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였는데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훈의 5열 앞에 앉은 남녀가 영화는 집중하여 보지 않고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었다.
 부럽기도 하면서도 괜히 질투가 났다.
 ‘안 그래도 영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수면마법이나 펼쳐볼까?’
 상대를 강제로 잠들게 하는 수면마법은 유효거리가 50미터이며 지속시간은 10분에서 한 시간까지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나 그보다 작은 크기의 생명체에게 효과가 있으며 사람보다 더 큰 동물은 연속으로 걸어야만 가능한 마법이었다.
 ‘잠들어라, 슬립!’
 정신을 집중하여 살짝 손가락을 튕겼다.
 츠츠츠!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던 남녀가 갑자기 서로의 머리를 부딪치면서 잠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팝콘은 바닥에 떨어뜨려 쏟아졌다.
 강제로 잠들게 하는 수면마법은 처음 펼쳐보는 것이기에 실패할 줄 알았는데 한 번에 성공하자 기분이 좋았다.
 일단은 지속시간을 10분으로 하여 펼쳤기에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윽고 10분이 지나자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 머리야.”
 “깜빡 잠들었군?”
 당황하는 그들을 지켜보던 훈은 피식거렸다.
 서로 머리가 부딪쳤기에 그곳이 아픈지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수면마법은 성공했고 그들은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더 걸어봐야지. 이번에는 20분이다. 슬립!’
 또 수면마법에 걸린 남녀는 순간 머리가 흔들리더니 등받이에 뒤통수를 살짝 부딪치며 잠들었다.
 비록 1서클에 불과한 마법이었지만 이런 게 진짜로 사람에게 통하는 걸 보니 정말 신기했다.
 어린아이에게 칼자루를 넘겨준 거처럼 자칫 마법을 잘못 사용하면 큰 재앙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래도 자신만 사용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화가 끝이 났는데 수면마법에 걸려 잠들어 있던 남녀도 그제야 깨어났다.
 훈은 입가에 미소를 보이면서 먼저 일어나 상영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화장실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소변을 보고나서 손을 씻는데 뒤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자연스럽게 벽거울을 보았다.
 두 명의 남자가 소변을 보면서 훈을 힐끔거렸다.
 ‘처음 보는 자들인데 날 왜 힐끔거리는 거지? 느낌이 좋지 않아.’
 그들의 몸에 있는 기운을 감지해보니 차고 어두운 느낌이 전해졌다.
 훈은 1서클이 되면서 10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 있는 기운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따뜻했다.
 그런데 이들은 차고 어두운 느낌이 전해졌는데 그건 범죄자나 깡패같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부류라는 뜻이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기운은 지문처럼 약간씩 달랐기에 훈은 이들의 기운을 잘 기억하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놈이 우리의 얼굴을 보았는데 괜찮을까?”
 “괜찮아, 우리가 어찌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건 그래.”
 “놈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 가보자.”
 이들이 차를 타고 훈의 벤츠를 따라 갔다.
 
 
 제6장 여난
 
 
 끼이익!
 훈의 벤츠는 초밥 집 청솔 입구 옆에 마련되어 있는 줄을 그어 놓은 곳의 빈자리에 주차했다.
 핸드폰을 꺼내어 액정화면을 확인해보니 6시20분이었다.
 약속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조금 일찍 도착한 거다.
 “차안에서 기다리기도 그러니 들어가서 기다려야겠군.”
 벤츠에서 내린 훈이 차문을 닫으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길 건너편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길 건너편에 정차해 있는 은색 중형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눈을 번뜩였다.
 은색 중형 승용차에 타고 있는 남자들이 영화관의 화장실에서 보았던 자들이었다.
 10미터 이내에 그들이 있었다면 기운까지 감지할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3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바디 체인지를 겪은 이후의 훈은 눈의 시력이 좋아져서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을 바로 알아보았다.
 청솔로 들어가니 아영이 특실을 예약해 놓아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생수를 마시다가 머릿속에 뭔가 번뜩였다.
 “으음, 혹시 그들이 그랜드 원룸과 나의 차에 추적 장치를 달아 놓은 자들이 아닐까?”
 한 번 의심이 들자 수상한 점들이 떠올랐다.
 화장실에서 분명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기분 나쁘게 힐끔거렸었다.
 그건 분명 자신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사이에 주차해놓은 벤츠에 추적 장치를 달아 놓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특실의 문을 열고 아영이 들어왔다.
 블랙과 네이비 각각의 배색컬러에 프릴 장식으로 세련된 이중 프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시원한 느낌의 짧은 소매와 프릴 장식이 달린 상의로 볼륨감 있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더욱 섹시했다.
 드러난 허벅지도 희고 매끄럽게 보였다.
 긴 머리카락과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영은 섹시함도 엿보였다.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몰라도 옷도 세련되게 잘 입었다.
 미란과 슬하와 함께 있을 때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오늘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노래방에서는 섹시한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웠구나?’
 ‘호호호, 나에게 반한 얼굴인데?’
 아영이 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일찍 왔네?”
 “어, 나도 조금 전에 왔어.”
 “빌라에 있었어?”
 “아니, 전화 왔을 때 밖으로 나오는 길이라서 영화관에 들러 영화 한편 보았어.”
 “어떤 영화?”
 “영원한 사랑이라는 영화였는데 좀 지루했어.”
 “그런 줄 알았으면 나와 함께 보았으면 좋았잖아?”
 “그런가?”
 마침 특실의 문을 열고 여직원이 들어와 주문했던 요리를 차렸다.
 둘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여직원이 요리를 탁자에 다 차리고 나가자 그제야 아영이 말했다.
 “갑자기 식사하자고 해서 놀랐지?”
 “응, 조금.”
 “아빠와 엄마가 여행을 같이 가버리셔서 혼자 저녁을 먹으려고 하니까 쓸쓸해서 전화했어.”
 “그렇다면 전화 잘 했어.”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난 훈에 대하여 아는 게 너무 없는데 혹시 대학생이야?”
 “아니.”
 “그럼?”
 “아직은 직업 없이 놀면서 명상에 집중하고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르바이트 삼아서 주식투자를 조금 하고 로또복권도 사고했었어.”
 “주식투자는 이해가 되는데 황당하게 로또복권은 뭐야?”
 “제법 잘 맞아서 매주 샀었어.”
 “잘 맞아봐야 얼마나 잘 맞겠어?”
 “너 아직 모르는구나.”
 “내가 뭘?”
 “내가 로또복권 당첨으로 이렇게 잘 먹고 살아.”
 “뭐? 호호호···정말 웃겨.”
 훈은 자신이 얼마나 로또복권 당첨을 많이 하였는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것까지 다 알려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영이 회를 한 점 간장에 살짝 찍어서 훈에게 내밀었다.
 “먹어봐.”
 “어, 고맙다.”
 회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훈이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 내밀었다.
 아영은 입가에 미소를 보이면서 그걸 받아먹었다.
 아영은 순간 훈이 마치 애인처럼 느껴졌다.
 아영은 훈을 이제 고작 두 번 보았다.
 한번은 노래방에서 미란이 불러서 처음보고 지금이 두 번째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편했다.
 어쩌면 미란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서 더 그런지 몰랐다.
 미란은 아무 남자나 사귀는 그런 값싼 여자가 아니었다.
 집안과 재력, 미모까지 다 갖춘 미란이기에 더욱 그랬다.
 아영은 훈과 저녁 약속을 하기 전에 훈에 관하여 뒷조사를 부탁하였다.
 내일 오후에나 결과가 나온다는데 벌써 조급해졌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순진하면서 사회에 대한 때가 덜 묻어 있었다.
 달아빠진 그런 바람둥이나 흔한 남자가 아니었다.
 훈은 키도 크고 잘생겼기에 아영은 더 마음이 갔다.
 “앞으로 뭘 할 거야?”
 “아직은 계획이 없어. 명상이나 더 하면서 천천히 생각할 거야.”
 “그렇게 놀고 있으면 부모님들이 아무 말 안 해?”
 “나 독립하여 혼자 살아.”
 “그런데 럭셔리하고 넓은 청담 아시아 빌라에 살고 있어?”
 “어, 나 능력 되니까.”
 “혹시 부모님에게 유산을 물려받았어?”
 “아니, 난 물려받을 그런 유산 없어.”
 “뭐야 그럼? 내가 알기로 청담 아시아 빌라는 전세가 27억 원인데?”
 “비밀.”
 “뭐? 궁금하니까 말해 봐.”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살고 있다면 믿겠어?”
 “로또복권? 그게 아무나 당첨되는 거야?”
 “그건 모르겠고 난 비교적 잘 맞더라고.”
 아영은 멍한 표정으로 훈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농담 같고 또 어찌 보면 진담 같아서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
 “믿기 힘들겠지만 모두 사실이라니까.”
 훈의 얼굴을 보니 농담이나 장난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럼 정말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단 말이야?”
 “그래.”
 ‘이쯤에서 물러나야겠어. 어차피 내일 오후에는 뒷조사 한 것이 나오니까 말이야.’
 “우리 식사하고 나서 노래방에 갈까?”
 “아니, 빌라에 들어가서 명상할 거야.”
 “나 같은 미녀와 데이트를 마다하고 들어간다고?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응, 오늘은 식사만 하자.”
 아영이 탁자에 부착되어 있는 버튼을 누르자 특실의 문이 열리면서 여직원이 말했다.
 “부르셨어요?”
 “소주 한 병 주세요.”
 “어제 술 마셨는데 오늘은 조금만 마셔.”
 “알았어.”
 여직원이 소주를 가져오자 훈이 한잔 부어 주었다.
 아영이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자 훈이 재빨리 회 한 점을 내밀었다.
 아영은 회를 받아먹고는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
 아영이 훈에게 소주잔을 내밀었지만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아영이 혼자서 소주 반병을 마셨다.
 술기운이 약간 오른 아영의 눈빛이 촉촉해서 빨려 들어갈 거 같아 훈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그런 훈의 모습이 귀여운지 아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왜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거야?”
 “그, 그냥.”
 “그만 나가자.”
 “차 가져왔어?”
 “아니, 집까지 태워줘.”
 “어, 알았어.”
 계산대에 서 있는 주인에게 훈이 계산하려고 하자 아영이 신용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오늘은 내가 살 거야.”
 주인은 훈과 아영을 번갈아 보다가 아영의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잘 먹었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
 “응, 그래.”
 훈이 아영과 같이 밖으로 나왔다.
 벤츠 조수석 문을 열고 아영을 먼저 태웠다.
 그리고는 훈이 운전석으로 걸어가면서 살짝 길 건너편을 보니 여전히 그곳에 은색 중형 승용차가 정차해 있었다.
 훈은 모른 채하며 벤츠를 운전하여 월드 청담 빌라로 달려갔다.
 차안의 룸 밀러로 보니 제법 거리를 두고 은색 중형 승용차가 따라오는 걸 확인했다.
 ‘으음, 분명 미행하는 거야.’
 혹시라도 자신이 아니라 아영을 미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월드 청담 빌라 입구에 벤츠를 멈추자 아영이 차문을 열고 내렸다.
 취할 정도로 소주를 마신 게 아니었기에 부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잘 가.”
 “어, 다음에 봐.”
 머리를 끄덕인 아영이 빌라로 들어갔다.
 훈은 벤츠를 다시 출발하여 유턴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훈을 미행하던 자들은 유턴하여 청담 아시아 빌라로 당연히 향할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었기에 순간 당황했다.
 “저놈 어디 가는 거야?”
 “혹시 박 훈을 만나러 가는 건지 몰라. 따라가.”
 “어, 알았어.”
 은색 중형 승용차가 따라오는 걸 확인한 훈은 잠시 고민했다.
 화장실에서 확인한 느낌으로는 결코 좋은 자들이 아니었다.
 단정하기는 그렇지만 그랜드 원룸에 살 때에도 미행한 자들로 생각되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느낌으로는 그들인 거 같았다.
 훈은 1등 당첨금을 타고 그랜드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고등학교 동기인 덕만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번개 3급 자동차정비소에 들렀다가 추적 장치가 차에 은밀히 설치되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랜드 원룸에도 뭔가 있을 거 같아서 넘버원 보디가드에 의뢰를 하였고 수색한 결과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3개나 은밀히 설치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짹짹이가 가져온 반지로 인하여 우연히 찾아온 기적 덕분에 바디 체인지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훈이었다.
 청담 아시아 빌라로 옮기고 벤츠를 새로 구입하여 한동안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훈이 거주하는 곳까지 알아낸 거 같았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무서운 자들이었다.
 아직은 운이 좋아서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도 그렇다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경부고속도로 진입로가 보였다.
 ‘으음, 놈들이 내가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해도 계속 따라오면 먼저 공격해야겠어.’
 언제까지 불안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예전의 은둔형 외톨이였다면 바디 체인지를 겪고 나서는 아니었다.
 마음가짐도 크게 변하였다.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들어가 빈자리에 주차했다.
 매점으로 들어가 캔 커피를 사서 밖으로 나와 마셨다.
 역시나 은색 중형 승용차가 훈의 벤츠와 약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만 앉아 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자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역시나 소변을 보고 나온 자가 한가하게 캔 커피를 마시고 있는 훈을 보고는 차를 향해 뛰어갔다.
 그제야 운전석에 타고 있던 자가 화장실로 뛰어갔다.
 “으음, 날 미행하는 자들이 분명해. 이 사실을 안 이상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결심이선 훈은 독한 마음을 먹고 다시 벤츠를 운전하여 고속도로를 달려 나갔다.
 훈을 미행하던 자들도 즉시 뒤따라왔다.
 훈이 달리는 벤츠의 속도를 높여보았다.
 역시나 은색 중형 승용차도 속도를 높여 따라왔다.
 벤츠가 1차선을 바꾸어 달리자 그들도 1차선으로 차선을 바꾸어 추격해왔다.
 적당한 기회를 엿보던 훈이 재빨리 2차선으로 바꾸었다.
 미행해오던 자들이 순간 당황했다.
 은색 중형 승용차가 2차선에서 달리는 벤츠를 추월하게 되었다.
 훈은 씨익 웃으며 재빨리 1차선으로 바꾸어 은색 중형 승용차의 뒤에 붙었다.
 앞서 달리던 자들은 훈이 눈치를 챈 것을 알고는 더욱 당황했다.
 은색 중형 승용차가 2차선으로 바꾸어 달렸다.
 나란히 달리던 벤츠가 속도를 높이면서 앞서 나갔다.
 “미안하지만 잘 가. 슬립!”
 강제로 잠들게 하는 수면마법은 유효거리가 50미터이기에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걸 수 있었다.
 훈이 나직하게 중얼거린 것에 불과하기에 상대방은 전혀 그걸 몰랐다.
 수면마법에 걸린 운전자가 순간 잠들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자는 동료가 잠들면서 운전대가 마음대로 움직여 차가 기우뚱하자 눈이 커졌다.
 “정신 차려, 안 돼!”
 잘 달리던 은색 중형 승용차가 순간 휘청 거리더니 나뒹굴었다.
 십여 번 이상 뒹군 차는 너덜너덜해져 길가에 처박혔다.
 끼이이이익!
 뒤따라오던 차들이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이 추돌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룸 밀러로 확인한 훈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벤츠는 안성분기점에서 빠져 나와 다시 진입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그래요?”
 “초소형 몰래카메라입니다.”
 넘버원 보디가드에서 나온 직원들이 훈의 은색 중형차를 뒤져 차 밑에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먼저 발견하였다.
 그리고 차 내부에서도 방금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찾아내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훈의 벤츠에도 똑같은 걸 찾아내었다.
 훈은 번개 3급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하는 동창 덕만에게 부탁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직 훈 자신의 화상 상처가 완치 된 줄 모르기에 다음 기회에 알리기로 했다.
 그래서 넘버원 보디가드에 연락하여 출동한 직원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추적 장치와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찾아낸 것이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그랜드 원룸 내부를 수색하여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넘버원 보디가드 직원들이 그랜드 원룸 1501호로 올라가 수색을 시작하였다.
 18평으로 그리 넓은 것이 아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초소형 몰래카메라 2개가 은밀히 설치되어 있는 걸 찾아내었다.
 넘버원 보디가드 직원이 찾아낸 초소형 몰래카메라 2개를 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침실과 거실에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으음, 외출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찝찝했었는데 이것 때문이었군?”
 “누군지 몰라도 대담한 자들입니다. 원룸에 이런 것을 몰래 설치하다니 말입니다.”
 “예,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누군가 자꾸만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설치할 정도면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수색한 건 정말 잘하신 겁니다.”
 “모두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의뢰비는 입금했지만 이건 밥이라도 사드시라고 드리는 것이니 부담가지지 말고 받으십시오.”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넘버원 보디가드 직원들은 훈이 내민 수고비를 받고 좋아하면서 떠났다.
 훈은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원룸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랜드 원룸을 처분할까 했었지만 이혼하면서 부모님들이 사주신 것이기에 의미가 있어서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살지도 않기에 관리하기가 어려울 거 같았다.
 “으음, 이번 기회에 중형차와 원룸을 팔아버려야겠어.”
 결심이 서자 부동산중개소에 가서 원룸을 매물로 내어 놓았다.
 시세보다 조금 싸게 급매물로 내어놓았기에 며칠 이내로 팔릴 것으로 보였다.
 부동산중개소에서도 그렇게 예상하였다.
 그리고 중형차도 중고차매매시장에 가서 돈을 받고 바로 팔아 버렸다.
 지난밤에 미행하던 자들에 관하여 알아보니 죽지는 않았지만 중상을 입고 6개월 이상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이제 한동안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마법수련에 박차를 가하여 좀 더 서클을 끌어 올릴 생각이었다.
 부르르!
 매너모드로 해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화면을 보니 미란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훈이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미란이.
 “어, 무슨 일이야?”
 -오늘 시간 있어?
 “오늘? 왜?”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하고.
 “오늘은 내가 바빠서 안 돼.”
 -그럼 내일은?
 “그러지 말고 우리 다음 주에 만나자. 이번 주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말이야.”
 -좋아, 그 대신에 다음 주에는 나와 데이트도 해야 돼.
 “그, 그래.”
 훈은 이상하게 미란이 부담스러워졌다.
 슬하를 몰래 만나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슬하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 슬하에요. 뭐하세요?
 “그냥 빌라에서 명상을 하려고 하다가 전화 받는 겁니다.”
 -또 명상하세요?
 “예, 저에게는 이게 가장 편하고 좋거든요.”
 -그러지 말고 나올 수 있어요?
 “오늘은 좀 그렇습니다.”
 -그럼 내일 만날까요?
 “이번 주에는 집중적으로 명상 수련을 해야 하니까 다음 주에 만나요.”
 -알았어요. 그럼 다음 주에 봐요. 명상 잘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훈은 한숨이 나왔다.
 또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번에는 또 누구야?”
 액정화면을 보니 아영이었다.
 “여보세요?”
 -나 아영.
 “응, 어쩐 일이야?”
 -오늘 만나.
 “오늘은 내가 바빠서 힘든데?”
 -그럼 내일은?
 “내일도 힘들 거 같아. 이번 주에는 개인적인 일들로 바쁘니까 다음 주에 보는 거 어때?”
 -정말 이번 주에 시간을 낼 수 없는 거야?
 “어, 정말 미안해.”
 -나와 만나는 거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지?
 “어, 그건 아니야.”
 -좋아, 그렇다면 다음 주에는 꼭 만나.
 “응, 그러자.”
 핸드폰을 내린 훈은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훈이 미란과 밥을 먹고 노래방에서 만날 때만 하더라도 너무 미녀라서 사귄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슬하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슬하도 훈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런데 적극적인 아영이 만나자고 해서 초밥 집에서 식사했다.
 노래방에서는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초밥 집에서는 단둘이 식사를 하였기에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섹시함에 귀엽고 활발한 적극적인 성격에 끌렸다.
 사실 미란이나 슬하, 아영이는 외모나 몸매, 집안까지 부족한 게 없을 정도의 미녀들이었다.
 세 미녀들이 전부 매력적이었다.
 “은둔형 외톨이일 때에는 사람을 만나는 거 자체가 어렵더니 이제는 미녀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
 깊은 화상 자국 때문에 소극적인 마음이었는데 바디 체인지를 겪고 난 이후에는 자신감도 되찾았다.
 소극 적에서 적극적인 그런 마음으로 크게 바뀌었다.
 미란이나 슬하, 아영이는 훈에게 관심이 있는 거 같았는데 문제는 훈이었다.
 세 미녀들이 전부 매력적이라서 누구와 사귀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지금은 서로 친구라고 하지만 이성적으로 끌리는 상대들이었다.
 “으음, 내가 어쩌다가 여난에 휘말린 거지?”
 세 미녀들을 떠올리면 머리가 복잡해졌다.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는 옷을 훌훌 벗었다.
 팬티만 입고 마나집적 진에 가부좌를 틀었다.
 우우웅!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반지에서 공명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폭삭 늙은 아론이 양팔을 내뻗고 있다.
 자신의 마력을 제법 많이 쏟아 붓고 있었기에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렸다.
 내뻗고 있는 양팔에 잔 떨림을 보일 정도로 의지를 쏟아 붓고 있었다.
 번쩍!
 갑자기 반지에서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사라졌다.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의 반지를 손으로 집은 아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오랜 만에 제대로 힘을 써보는군?”
 대마법사에 올라 왕국 간의 전쟁에 참여하여 광범위 공격마법을 난사한 이후에 이렇게 제대로 힘을 써보는 건 수백 년 만이었다.
 마법사의 탑을 세우고 학파도 출범시켜 많은 제자들과 수련 마법사들을 배출하여 존경을 받고 있는 아론이었다.
 마법으로 인간이 올라갈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갔고 모든 걸 이루었다.
 여러 번의 바디 체이지로 인하여 수명이 크게 늘어나 천살이 넘도록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가 왔다.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수명을 알고 있는 아론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특별한 반지를 하나 만들게 되었는데 그 반지가 이거였다.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아론이 씨익 웃었다.
 당부하고 싶은 말과 영상을 마법으로 저장하였기에 물리적인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배리어를 이중으로 치고 차원의 벽을 뚫었다.
 차원의 벽을 뚫는 것은 드래곤들도 많은 힘을 쏟아 부어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설사 차원의 벽을 뚫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쓸모가 있는 게 아니었기에 시도하는 자는 없었다.
 위험도 크고 모든 걸 다 버리고 모험을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론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수명이 다 되었는데 차원이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론은 수명이 다 되었고 호기심에 몸에 있는 힘을 좀 과하게 썼다.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차원의 벽이 뚫리자 즉시 반지를 튕겼다.
 반지가 차원의 벽 속으로 들어가자 유지하고 있던 힘을 거두었다.
 약간 뚫려있던 차원의 벽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스르르 원상태로 복원되었다.
 훈이 1서클에 오른 이후에 아론의 꿈을 많이 꾸고 있었다.
 이전에는 1회 분량을 꾸었다면 이제는 열배나 많은 10회분 분량이었다.
 파파팟!
 갑자기 회색 공간에 로브를 입은 아론이 나타났다.
 [인연자여,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본다면 그건 지성을 가진 생명체일 것이다. 다른 차원의 인간이면 더 좋겠지만 그건 나의 바램 일 뿐이고 어쨌든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인연자여, 호기심에 이 반지를 보내었지만 나의 특별한 선물로 삶이 좋은 쪽으로 변하였으면 좋겠다. 인연자의 세상에는 마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없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지에 저장해놓은 마법지식으로 수련하면 5서클까지는 시간이 지나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깨달음을 요하는 일이기에 나도 도와줄 수는 없다. 그리고 몸이 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지에 나의 마력 일부를 저장해 놓았으니 충분히 한 번의 바디 체인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 특별한 선물로 기적을 이루길 바란다. 어쨌든 인연자의 인생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거처럼 인연자도 후일 희망이 없는 자들에게 기적을 선물해 준다면 좋겠다.]
 할 말을 다한 아론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촤르르르!
 그동안 뒤죽박죽으로 꾸던 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거대한 마법서가 등장했다.
 5층짜리 건물 만 한 거대한 마법서가 펼쳐지더니 1서클부터 9서클까지의 모든 마법이 황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아론의 말대로 5서클까지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허나 6서클부터는 깨달음이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경지였다.
 꿈에서 깨어난 훈은 이제야 짹짹이가 발톱으로 움켜쥐고 온 반지가 차원이동을 하여 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론의 의도까지도 알게 되었다.
 청담 천사 커피 점.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린 훈의 눈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란이 들어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미란을 향했다.
 훈의 맞은편 자리에 미란이 앉으며 말했다.
 “언제 왔어?”
 “응, 조금 전에.”
 “명상은 많이 했어?”
 “잠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는 명상만 했어.”
 “뭐? 그렇게 하고도 괜찮아?”
 “어, 아직은 젊으니까.”
 “훈처럼 심하게 명상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그건 그렇고 오늘은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돼.”
 “뭐할 건데?”
 “오늘은 쇼핑하고 밥 먹고 술도 한잔 마실 거야.”
 “미안하지만 금방 들어가 봐야 돼.”
 “뭐? 이제 만났는데 들어간다고? 안 돼.”
 “미안, 조금 전에도 명상을 하다가 나왔어.”
 “오늘은 무조건 안 돼. 말 안 들으면 나 화낸다.”
 나 화났어하는 표정으로 미란이 노려보자 훈도 어쩔 수 없이 말을 들어야 했다.
 사실 훈은 집중적인 수련을 하여 단기간에 3서클까지 끌어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란과 슬하, 아영이 수시로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였기에 피곤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엔 다시 만나기 어려운 미녀들이라서 몸과 마음이 이렇게 따로 놀았다.
 결국 훈은 미란과 함께 쇼핑을 먼저 하게 되었다.
 미란은 강남 킹 백화점에서 일하기에 그곳에서 쇼핑을 할 수 없어서 이름난 디자이너의 의상실로 갔다.
 패션쇼도 하고 방송에도 가끔씩 출현하는 디자이너이기에 이름만 말해도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훈, 이 옷 한번 입어 볼게.”
 “어, 그래.”
 미란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핑크리본 원피스였는데 심플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에 포인트로 리본타이가 있었다.
 허벅지 절반까지 내려오는 짧은 원피스였는데 미란과 잘 어울렸다.
 “어때?”
 “여성스럽고 잘 어울려 보여.”
 “정말?”
 “어, 여신 같아.”
 ‘워낙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 아무거나 입어도 어울려.’
 훈의 칭찬에 미란은 기분이 좋아 화사하게 웃었다.
 미란은 신상으로 나온 옷들을 번갈아 가며 입어보았다.
 열 번 이상이나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때마다 약간씩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여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훈은 속으로 이제 그만하고 나가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미란의 모습에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였다.
 결국 미란은 원피스 한 벌과 잘 어울리는 구두 한 켤레를 선택했는데 계산은 훈이 했다.
 미란이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분위기상 남자인 훈이 선물로 사주어야 했다.
 “고마워.”
 “아냐, 오히려 다양한 이미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호호, 아무튼 자기는 사람 기분 좋게 말해서 좋아.”
 쪼옥!
 갑자기 미란이 훈의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으음, 이래서 남자들이 미녀들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군?’
 이태리 레스토랑으로 이동한 미란과 훈은 그곳에서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간단하게 맥주도 한잔씩 한 후에 빌라로 돌아왔다.
 미란과 슬하, 아영은 서로 친구였지만 각자 비밀리에 훈과 만나 데이트를 했다.
 매일 세 미녀들과 번갈아 가며 데이트를 즐긴 훈은 파김치가 될 정도로 피곤했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마법수련은 할 수 없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세 미녀들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명상수련을 한다고 하면 말릴 것이기에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벤츠 트렁크에 넣어 남해로 향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수련의 최대적은 여자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제7장 마법수련
 
 
 경남 남해와 거제도 사이에는 작은 섬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훈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작은 무인도에서 당분간 생활하면서 마법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텐트와 침낭, 담요, 취사도구와 식량과 과일까지 한 동안 먹을거리를 구입하여 배에서 내렸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오전 9시와 오후 4시경에 지나가니까 필요하면 불러.”
 “예, 알겠습니다.”
 훈을 내려준 배가 떠났다.
 해안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간 곳에 야영하기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바위가 있는 곳의 밑이었는데 텐트 하나를 치고 야영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신속하게 텐트를 치고 필요한 물건들을 안으로 옮겼다.
 불과 30분 만에 잠자리와 생활할 물건들이 정리되었다.
 훈이 굳이 빌라를 두고 이렇게 무인도에서 마법수련을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 없이 실전을 익히려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거대한 마법 서에 나온 아티팩트 때문이었다.
 마나집적 진 보다 무려 백배나 많은 막대한 마나를 흡수하는 아티팩트였다.
 이미 이곳으로 오기 전에 아티팩트를 만들었고 마지막 공정이라 할 수 있는 각인작업만 남았다.
 이건 달빛이 내리비추는 깊은 밤에 해야 하기에 일단은 해가 지기 전에 무인도를 한 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이 무인도에 낚시꾼이라도 있으면 마법수련에 방해를 받기에 필히 확인 작업을 거쳐야 했다.
 배낭에서 쌍안경을 꺼낸 훈은 무인도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 무인도에는 산이 없고 언덕만 있었기에 30분도 안되어서 정상에 올라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치가 참 좋았다.
 쌍안경으로 보니 멀리 남해와 거제도가 다 보였다.
 작은 배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무인도를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낚시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흐음, 낚시꾼도 없으니 이 무인도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이야. 오늘밤에 아티팩트를 완성하여 내일 오전부터 본격적인 마법수련을 하면 되겠어.”
 비릿하지만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훈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텐트로 돌아온 훈이 서둘러서 저녁을 먹고 기다렸더니 밤 9시가 되었다.
 밤하늘에는 달도 떠올라 달빛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금을 녹여서 만든 별모양의 판에 각종 마법의 룬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가 각각 박혀 있었다.
 푸욱!
 침으로 다섯 손가락을 전부 찌르자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재빨리 별모양의 판을 움켜쥐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법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바가야테리아···투드타가니시라···라야미차바시니마···그라하···.”
 우우웅!
 별모양의 판에서 공명음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각인 작업이 실패하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훈의 피를 빨아들인 별모양의 판에서 더욱 공명음이 커졌다.
 번쩍!
 눈부신 황금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별모양의 판이 끌어 당겨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나집적 진 보다 백배나 많은 엄청난 양이었다.
 “하하하,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훈의 다섯 손가락에서 각각 흘러나온 피는 별모양의 판을 흠뻑 적실 정도였는데 한 방울의 피도 묻어 있지 않았다.
 별모양의 판이 전부 흡수해버린 것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어느새 훈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왔던 피는 각인에 성공하면서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별모양의 판을 한쪽에 두었다.
 마나가 모일 때까지 하루 정도는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잠들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오염이 되지 않은 무인도라서 그런지 마나가 빌라보다는 풍부했다.
 파파팍!
 간편한 복장의 훈이 무인도의 정상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마법수련에 들어갈 생각이다.
 먼저 아침에 이렇게 조깅으로 몸을 풀었다.
 1서클 마법을 펼칠 것인데 누가 보면 안 되기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3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빛나는 화살 모양의 매직 미사일이 생성되어 쏘아졌다.
 퍼억!
 나무가 크게 흔들렸다.
 훈이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다.
 한 뼘 정도의 두께를 가진 나무였는데 관통되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읽었던 매직 미사일은 이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1서클 마법이기에 화살 정도의 위력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훈의 큰 착각이었다.
 “흐음,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위력적이군? 매직 미사일로 돌멩이를 뚫거나 깨뜨릴 수 있을까?”
 주먹 만 한 돌멩이를 하나 놓고 30미터를 물러났다.
 정신을 집중하여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도 빛나는 매직 미사일 한 발이 생성되어 쏘아졌다.
 퍼엉!
 놀랍게도 굉음이 나면서 돌멩이가 박살났다.
 나무가 관통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나무에 구멍이 나고 돌멩이가 박살날 정도의 위력이기에 사람을 얼마든지 살상할 수 있었다.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위력적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연습을 여러 번 해야 할 거 같았다.
 일단 매직 미사일을 펼치는 건 성공하였기에 다른 마법을 떠올렸다.
 타오르는 손이라는 마법인데 이건 자칫 불이 날수도 있었기에 여기에서 펼치지 못하고 해안으로 내려갔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타오르는 손!’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의지를 일으켰다.
 화르르르!
 전방에 손바닥 모양으로 활활 타오르는 손이 생성되었다.
 크기는 2미터나 되고 유효거리는 10미터, 지속시간은 20초였다.
 천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타오르는 손이었다.
 20초의 지속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높은 온도의 타오르는 손이었기에 물건이나 사람을 움켜쥐면 바로 활활 타버릴 거 같았다.
 의지로 한 번 더 생성하여 바닷물에 집어넣어 보았다.
 순식간에 꺼져 버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아니었다.
 타오르는 손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또한 김이 수면 위로 치솟았다.
 지속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마법으로 생성한 불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물에 넣어도 꺼지지 않았다.
 너무 신기해서 한 번 더 펼쳐 바닷물에 넣어 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꺼지지는 않았다.
 “으음, 이 수법은 위험할 때 벗어나기 위해 펼치면 아주 효과적이겠어.”
 비록 1서클에 불과한 마법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매직 미사일 마법과 타오르는 손 마법을 시험적으로 펼쳐보고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스 볼트라는 마법을 펼칠 것이었다.
 주먹 만 한 얼음의 공에 얼음의 속성을 부여한 마법으로 유도탄처럼 유도기능이 있고 상대에게 명중되면 순간 얼어버린다.
 얼음의 속성 영향으로 인하여 10분 동안 몸이 마비되어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지속시간이 끝나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상대방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제압하기에 아주 적합한 마법이었다.
 해안가의 바위 위에 선 훈이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쩌쩡!
 헤엄치던 볼락 한 마리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수확이었다.
 훈이 손짓만으로 볼락을 끌어당겼다.
 마나를 다루다보니 약간의 염력과 비슷한 수법은 얼마든지 펼칠 수 있었다.
 볼락의 몸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볼락의 몸이 풀리기 전에 서둘러 집어 들고 텐트로 가져갔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회를 떴다.
 혹시나 해서 초고추장을 산 게 있었는데 회를 찍어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으으···여기가 어디지?”
 “어머, 이제 정신이 드세요?”
 “누, 누구?”
 “전 간호사에요. 교통사고 난 거 기억나세요?”
 “교통사고? 내가 말입니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세요?”
 “으···머리가 아프고 뒤죽박죽 복잡합니다.”
 “김 일상 환자는 긴급 뇌수술을 하고 나서 의식불명으로 계시다가 12일 만에 깨어나셨어요.”
 “으···제가 말입니까?”
 “예, 이제 깨어나셨으니 곧 기억도 날 거예요.”
 “여긴 어디입니까?”
 “서울 넘버원종합병원 중환자실이에요.”
 “강남구 서초동에 있는 그 넘버원종합병원 말입니까?”
 “예, 맞아요. 이제 안심하셔도 되요.”
 “예, 고맙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지자 일상은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오후 4시까지 한잠 푹 자고 깨어난 일상은 머리가 많이 맑아졌다.
 깨질듯이 아프던 두통도 이제는 사라졌다.
 어제 간호사의 말로는 의식불명으로 있다가 12일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그제야 일상의 머릿속에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거까지 생각났다.
 “가만 동수는?”
 차를 운전한 동료 이 동수가 갑자기 잠들면서 운전대가 마음대로 움직여 차가 나뒹굴었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동수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온몸에 타박상까지 입었지만 다행히 3개월 정도면 퇴원이 가능하기에 일반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하지만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일상도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기에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문제는 차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면서 뇌출혈이 일어나 긴급 뇌수술을 하여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12일 만에 깨어났다.
 이제 깨어났으니 내일쯤에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었기에 치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상이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동수가 휠체어를 타고 중환자실로 찾아왔다.
 “일상아, 깨어났구나.”
 “그래. 넌 어때?”
 “나야 이렇게 다리가 부러졌어.”
 “하나만 묻자. 너 그때 왜 그런 거야?”
 “뭐가?”
 “놈을 추적하다가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왜 잠들었냐고?”
 “그게 나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돼. 놈을 추격하다가 깜빡 잠든다는 게 말이 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잠든다는 게 말이 돼?”
 “병원에 실려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것을 생각해보았는데 모르겠어. 마치 수면제를 마신 거 같이 순간 정신을 잃어버렸어.”
 “으음, 그때 놈이 옆 차선에서 나란히 달리면서 씨익 웃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려.”
 “나도 그랬어. 놈은 마치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아는 거처럼 말이야.”
 “나 내일쯤이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테니 같은 병실에서 지내자.”
 “어, 그건 나도 좋아.”
 “그럼 내일 보자.”
 “어, 그래.”
 동수가 자신의 병실로 돌아가자 일상은 지난 일을 다시 떠올렸다.
 츠츠츠츠!
 텐트 안에 훈이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별모양의 판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속에 들어 있는 농축된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불과 하루 동안의 충전에 마나집적 진보다 백배나 많은 엄청난 양이 들어 있었다.
 마나집적 진 하나는 고작 3시간이면 마나를 전부 흡수할 수 있었는데 별모양의 판은 아니었다.
 아침밥을 먹고 시작한 마나심법이 해가 질 때가 되어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석상처럼 가부좌 상태를 계속 유지했는데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는 것만 보였다.
 훈이 감았던 눈을 뜨자 푸르스름한 안광이 내뻗어졌다.
 “아,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마나가 충만해졌어.”
 마나집적 진 열 개의 마나를 한꺼번에 흡수한 듯한 포만감이었다.
 몸속으로 흡수한 마나를 먼저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을 휘돌도록 띠를 이루었다.
 이미 훈은 심장을 휘도는 서클이 하나 있었다.
 그 서클 옆에 띠를 형성하여 휘돌고 있었는데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제 겨우 수련한지 3일에 불과했다.
 일차 목표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서클을 하나 더 생성하여 2서클에 오른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2서클 마법과 3서클 마법은 달달 외워 두었다.
 서클만 생성되면 언제든 마법을 펼칠 수 있을 거 같았으며 무인도에서 봄이 올 때까지 3서클에 오른다는 계획이었다.
 별모양의 판이 있는 이상 서클 형성의 시간은 단축될 것으로 보았다.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밤하늘엔 달도 뜨지 않아서 더욱 어두웠다.
 배낭에서 단팥빵을 하나 꺼내어 먹으면서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서클을 형성한 이후에는 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보일 정도였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으니 마법이나 펼쳐볼까?”
 손가락을 튕기자 빛나는 화살모양의 매직 미사일이 쏘아졌다.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치던 물고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명중시킬 수 있었는데 너무 아까웠다.
 ‘타오르는 손!’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의지를 일으켰다.
 화르르르!
 전방에 2미터나 되는 거대한 손바닥이 활활 타올랐다.
 훈의 손짓대로 움직였다.
 지속시간 20초가 지나자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매직 미사일과 타오르는 손 마법은 이젠 익숙해져서 실패 없이 잘 펼쳐졌다.
 머리를 끄덕이던 훈이 오른손을 내뻗었다.
 주먹 만 한 얼음의 공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화살처럼 백여 미터를 날아가자 훈이 끌어당겼다.
 공중을 선회하여 얼음의 공이 되돌아왔다.
 손가락을 휘돌리자 얼음의 공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크게 돌았다.
 손가락을 움켜쥐는 동작을 취하였다.
 퍼엉!
 풍선이 터진 듯한 굉음이 나면서 얼음의 공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흐음, 이제 1서클 마법을 펼치는 건 익숙해져서 실패 없이 성공하니 기분 좋군.”
 내일은 매직 미사일이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가는 지와 파괴력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오늘밤은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강의실을 걸어 나오던 슬하가 핸드폰을 꺼내어 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 또 전화를 꺼놓았네?”
 아침에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꺼져 있었다.
 같이 밥도 먹으면서 데이트를 했었는데 마음이 가고 편안해지는 게 좋았다.
 그래서 친구인 미란에게는 미안하지만 사귀어볼 생각이었다.
 훈이 전화를 꺼놓은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명상 수련에 들어간 것이었다.
 “내가 보고 싶다고 명상 수련을 방해하면 안 되겠지? 며칠 참고 있으면 전화 줄 거야.”
 슬하는 아쉽지만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편, 남성 정장을 스케치하던 아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스케치하던 남성 정장이 훈이 입으면 잘 어울릴 거 같았다.
 “호호, 한 벌 만들어 선물해야겠어.”
 훈과 식사하면서 데이트 한 게 자꾸만 떠올랐다.
 친구 미란에게는 미안하지만 훈과 진지하게 한 번 사귀어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미란이는 훈이 친구라고 했으니 말이야.”
 훈의 뒷조사를 해보니 제법 흥미로웠다.
 초밥 집 청솔에서 훈이 아르바이트 삼아서 주식투자 조금하고 로또복권도 산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로또 외계인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는데 제법 그쪽으로는 유명했다.
 보통 사람은 한 번도 당첨되기 어렵다는데 2등 52번과 3등 306번이나 당첨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1등 3회에 당첨되어 70억 원을 수령하여 개인 재산이 백억 원이나 되었다.
 불과 3년이 약간 넘는 기간 동안 이렇게 로또복권에 많이 당첨되는 게 아영은 정말 신기했다.
 “호호, 개인 재산이 백억이라면 나쁘지 않아. 아직 주식투자는 소규모로 하고 있지만 월 3백만 원 정도 벌다가 올해에 들어와서는 월 2천만 원 이상씩 벌고 말이야.”
 이상하게 훈은 돈을 버는 재능은 타고 난 모양이었다.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 이 정도면 능력도 있고 개인 재산도 풍족하니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이런 조건이 아니더라도 아영은 자꾸만 훈에게 마음이 가는 걸 느꼈다.
 “전화를 또 꺼놓았네?”
 미란이 얼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내렸다.
 오늘 저녁에 훈과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하였는데 또 전화를 꺼놓아서 실패였다.
 전화를 꺼놓은 걸 보니 또 명상을 하는 모양이었다.
 결혼상대자로는 훈의 조건이 자신과 너무 차이가 나기에 그냥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고 자꾸만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머리는 친구, 마음은 애인이었다.
 이렇게 미란과 슬하, 아영은 서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훈과 사귀는 걸 비밀로 했다.
 ‘매직 미사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의지를 일으켰다.
 화살 모양의 매직 미사일 한 발이 생성되어 쏘아졌다.
 화살처럼 빠르게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나무에 맞았다.
 뻐억!
 지름이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나무에 구멍이 났다.
 뛰어온 훈이 확인해보니 150미터 밖에서 쏘아진 매직 미사일이었는데 그 위력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걸 보니 정말 대단했다.
 충분히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위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유효거리도 150미터나 되다니 놀라워.”
 1서클 마법이기에 아주 기본에 속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놀라웠다.
 마법이라는 것이 펼치면 펼칠수록 아주 매력적이었다.
 ‘실드!’
 츠츠츠!
 투명한 보호막이 생성되어 훈을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게 안았다.
 보호막이 얼마나 튼튼한지 실험해 보기 위하여 훈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나무와 부딪쳤다.
 터엉!
 나무가 크게 휘청거렸고 훈이 뒤로 주루룩 밀려났다.
 살짝 민 거 같은 느낌만 받았을 뿐 충격은 거의 없었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튼튼한데?”
 30미터를 물러난 훈이 빠르게 뛰어와 다시 나무와 충돌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뒤로 주루룩 밀려났지만 충격은 없었다.
 마법 서에는 쏘아진 화살을 튕겨낼 수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권총이나 소총이 있다면 실험해 보고 싶었다.
 위급 시에 즉시 생성하여 물리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지속시간은 10분이었다.
 푸스스스!
 지속시간이 끝난 보호막이 소멸되었다.
 해안가에 있는 바위로 내려온 훈이 파도치는 수면을 바라보다가 오른 손바닥을 뒤집어 하늘로 보이게 하면서 중얼거렸다.
 ‘아이스 볼트!’
 츠츠츠!
 주먹 만 한 구가 생성되었는데 마치 얼음으로 만든 공처럼 보였다.
 얼음의 속성을 부여한 마법으로 속도는 매직 미사일보다 더 빠르다.
 빠른 만큼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능숙하게 펼치고 목표물에 명중시키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목표물에 명중되면 충격뿐만 아니라 움직임이 크게 둔화되는 장점이 있다.
 훈이 의지로 쏘아 보내었다.
 파앙!
 수면에 충돌한 얼음의 구가 폭발하면서 반경 5미터의 수면이 얼어버렸다.
 그 충격파에 3마리의 물고기가 수면으로 둥둥 떠올랐다.
 훈이 기절한 물고기를 가리키자 빨려들듯이 물고기가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하하하, 오늘은 운이 좋게도 물고기 3마리가 생겼으니 생선구이로 해먹으면 되겠어.”
 물고기를 손질하여 프라이팬에 구웠다.
 그리고 김치와 밑반찬 몇 가지로 밥을 먹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훈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별모양의 아티팩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역시나 마나집적 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마나의 양이 많았다.
 마나심법을 운용하는 것에만 온통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뭐야? 벌써 아침이야?”
 잠을 자지도 않았는데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가볍게 느껴졌다.
 매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했다.
 마법수련하고 밥 먹고 밤에는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흡수한 마나를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을 휘돌고 있는 서클 옆에 휘돌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거 같았는데 아니었다.
 조금씩 몸속에 쌓이는 마력의 양이 높아졌다.
 그리고 매일 마법을 펼치다보니 점점 능숙해졌다.
 통통통통!
 오전 9시경에 작은 배가 무인도로 접근했다.
 접안 시설이 전혀 없는 무인도인데도 불구하고 작은 배는 경험이 많아서 손쉽게 무인도의 바위에 멈추었다.
 후덕한 인상의 선장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어이 젊은 친구, 오랜 만이야.”
 “예, 선장 아저씨. 벌써 열흘이 지났네요.”
 “무인도에서 혼자 지낼 만하던가?”
 “예,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남해로 나가려고요.”
 “어서 배로 올라와.”
 “예, 고맙습니다.”
 훈이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가볍게 도약하여 배에 내려섰다.
 선장은 즉시 뱃머리를 돌려 남해로 향하였다.
 “젊은 친구는 무인도에서 뭘 하고 지냈나? 내가 보기엔 낚시도 하지 않는 거 같던데?”
 “예, 그냥 명상을 하고 지냈습니다.”
 “명상? 난 글 쓰는 작가인줄 알았는데?”
 “그랬습니까? 그냥 백수입니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럴 시절이 좋을 때야. 나 같이 나이를 먹으면 배운 게 이거라고 고기나 잡고 살 수밖에 없어.”
 “그렇습니까?”
 “그럼, 나이 먹어봐 그럼 이해를 하게 될 거야.”
 선장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남해였다.
 “선장 아저씨, 남해에는 자주 오십니까?”
 “일이 있거나 손님에게서 연락이 오면 오지.”
 “그렇군요. 수고 하십시오.”
 훈이 선장 아저씨에게 돈을 주고 배에서 내렸다.
 먼저 주차장으로 갔다.
 열흘 동안 주차해둔 검은색 벤츠는 먼지가 쌓여 지저분했다.
 트렁크를 열어 배낭을 집어넣었다.
 주차장 주인이 다가왔다.
 “이제 나가십니까?”
 “예, 그런데 차가 지저분해서 손세차 되지요?”
 “그럼 되지요. 하지만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손세차 좀 부탁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훈은 손세차를 부탁하고 인근에 있는 대중목욕탕에 들어갔다.
 손님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20여 명은 되었다.
 훈이 무인도에서 수련을 하면서 바닷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기도 하였지만 목욕은 오랜 만이었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니 좋았다.
 싸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몸에 문신을 한 남자가 탕에 들어왔다.
 두 눈에 쌍꺼풀이 없고 쭉 찢어지고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험악한 얼굴인데 몸에 문신까지 있어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겁을 먹었다.
 탕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다.
 이제 탕에는 훈과 문신 남자만 남았다.
 ‘이 싸한 분위기는 뭐야?’
 문신 남자가 훈을 쳐다보자 모른 채 하며 눈을 감았다.
 괜히 시비에 휘말리면 피곤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분 좋게 목욕을 하려 왔는데 짜증이 났다.
 “카악, 퇴!”
 교양 없게 탕 밖으로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콸콸 틀었다.
 ‘우욱!’
 탕의 물이 따뜻해서 좋았는데 이젠 물이 뜨거워졌다.
 예전의 훈이었다면 사람들을 피하고 참았겠지만 지금은 힘이 생기다보니 점점 참기가 어려웠다.
 기분 같아서는 한 대 먹이고 싶었다.
 그것도 모르고 문신 남자는 탕에서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훈은 참고 인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가 많이 났다.
 그때 문신 남자가 탕에서 일어나더니 걸어 나갔다.
 ‘어디 맛 좀 봐라.’
 “어어···.”
 꽈당!
 느닷없이 문신 남자가 크게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는지 축 늘어지며 기절해 버렸다.
 목욕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기절한 거 같은데?”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냐?”
 훈은 여전히 탕에서 소리 없이 씨익 웃었다.
 문신 남자가 크게 넘어진 것은 훈이 마력을 일으켜 확 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목욕탕 바닥에는 항상 물기가 있고 미끄럽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훈은 혹시나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기절한 문신 남자를 살펴보았더니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잠시 기절한 거였다.
 ‘내가 너무 위험하게 세게 밀었나? 다음부터는 일반인에게 함부로 힘을 사용하면 안 되겠어.’
 “119 불러, 어서.”
 목욕하던 사람들이 나서서 기절한 문신 남자를 들고 나가려고 하였는데 신음소리를 내면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흩어졌다.
 워낙 인상이 더러워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은 태연히 탕에서 나와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목욕탕에서 옷을 입고 나온 훈이 배가 출출하여 인근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갈비탕을 한 그릇 시켜 먹고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손세차가 다 되어 검은색 벤츠는 깨끗해져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예, 수고하세요.”
 훈이 벤츠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하였다.
 1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니 섬진강이 보였다.
 훈이 무인도에서 수련을 해보았더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불편함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련 장소를 무인도가 아닌 지리산으로 택하였다.
 숲이 울창한 지리산이기에 마나도 풍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쌍계사 쪽으로 갔더니 펜션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황토로 지은 펜션이 눈에 들어왔다.
 “저 펜션이 마음에 드니 오늘은 저곳에서 지내면 되겠군.”
 훈이 검은색 벤츠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펜션으로 들어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평일이고 비수기이기에 빈방이 많았다.
 펜션 바로 앞에는 계곡이었다.
 섬진강과 만나는 화개천 상류이다.
 산 능선에 걸쳐 있는 안개와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장관이었다.
 자연 속에 푹 파묻혀 복잡한 일상은 잊고 푹 쉬었다 가면 좋을 거 같았다.
 ‘아, 마나도 풍부하고 좋아.’
 식사는 펜션에서 제공하기에 돈만 주면 숙식은 해결되었다.
 펜션 바로 앞이 계곡이기에 수련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훈은 하루만 보내려고 하였다가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면서 수련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졸졸졸!
 화개천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물은 보는 거만으로도 시원해 보였다.
 훈은 계곡 한쪽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하였다.
 무인도보다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의 양이 더 많았다.
 티셔츠 주머니에 넣어놓은 금을 녹여서 만든 별모양의 아티팩트도 마나를 끌어 당겨 충전되고 있었다.
 츠츠츠츠!
 훈이 마나를 코로 흡입하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이기에 사람들이 보면 명상을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훈이 몸속으로 끌어당긴 마나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심장에 휘도는 서클에 불어넣었다.
 현재 훈은 1서클인데 2서클이 되려면 1서클에 도전할 때보다 무려 4배의 마나가 필요했다.
 그리고 3서클은 2서클 마나의 16배가 있어야 했다.
 이렇게 서클이 늘어나는 것은 막대한 마나를 필요로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클을 안정시키고 숙련되어야 하며 의지대로 통제가 이루어져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만큼 아론의 마법은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마법사들의 마법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론이 살던 세상보다 지구는 마나의 분포도가 훨씬 떨어지기에 마법을 수련하기가 더 어렵고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하면 첩첩산중이라 할 수 있었다.
 훈은 한걸음씩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매일 착실하게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한참 마나심법을 운용하던 훈이 중지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아···정말 상쾌하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었다.
 가부좌를 틀고 마나심법을 운용한지 6시간이나 되었다.
 훈의 기분으로는 한 시간 정도 마나심법을 운용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별모양의 아티팩트를 꺼내어 살펴보니 마나가 많이 충전되어 있었다.
 황토 펜션으로 돌아온 훈은 식사시간을 기다리면서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켜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해지면서 수련에 방해만 될 거 같았다.
 펜션에는 비디오와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편리했지만 훈은 그것들을 일부러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2서클에 올라야 하는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심한 화상으로 인하여 은둔형 외톨이였던 훈은 이제 정상인들처럼 화상 자국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마법이라는 엄청난 힘도 보유하였다.
 정상인들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밤에 잠이 오지 않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늘 이렇게 고민하는 훈이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면서 펜션 주인아줌마의 목소리도 들렸다.
 “손님, 식사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훈은 고민하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공용 거실로 내려갔다.
 훈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주인아줌마가 무친 각종 산나물과 된장찌개가 일품이었다.
 보통 한 그릇을 먹는데 이 펜션에 와서는 세 그릇씩 먹는 훈이었다.
 훈이 밥을 먹는 모습을 주인아줌마는 흐뭇하게 쳐다보곤 했다.
 “아주머니, 잘 먹었습니다.”
 “호호···언제 봐도 맛있게 먹네요.”
 “너무 맛있어서 말입니다.”
 훈이 빈 그릇을 부엌까지 날라다주자 그동안 주인아줌마는 사과와 배를 깎았으며 주인아저씨는 국화차를 탔다.
 밥 먹고 나서 후식으로 과일과 차를 마시는 게 훈은 너무 좋았다.
 훈은 황토 펜션에서 이주일째 머물고 있었다.
 5일째 되던 날 훈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주인아저씨에게 한 달 숙박비를 지불하였다.
 주인부부는 40대 중반인데 서울의 케이대 2학년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었다.
 훈이 주인부부와 같이 밥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과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 위에 놓인 작은 액자에 있는 사진에는 주인부부와 교복을 입은 딸이 함께 활짝 웃는 모습으로 펜션 앞에서 찍은 거였다.
 딸이 고등학생일 때 찍은 모양이었다.
 며칠 있으면 방학이라서 집에 내려온다고 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훈은 문을 걸어 잠그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별모양의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츠츠츠츠!
 마나심법을 운용하자 별 모양의 아티팩트에서 막대한 마나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훈은 온통 마나를 흡수하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가 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최근에는 별모양의 아티팩트에 들어 있는 농축된 마나를 흡수할 때면 이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나심법에 푹 빠졌다.
 막대한 마나를 몸속으로 흡수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으로 가공하여 서클에 저장하면 활력이 넘쳤다.
 그래도 약간의 잠은 자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가부좌를 풀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감았던 눈은 뜨지 않고 생각에 젖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없는 마법이라는 독특한 힘을 훈이 보유하게 되었다.
 세상을 위해 이 힘을 써야 하는데 아직은 자신이 대담하지 못하였다.
 예전의 은둔형 외톨이때 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했다.
 “이 힘을 좋은 곳에 써야 하는데 어디에 써야 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도 아직은 뚜렷한 목표가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 때문일 수도 있었기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오늘도 명쾌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일단은 올해 안에 2서클에 오르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제8장 기 치료
 
 
 사륜구동 에스유브이(SUV)차량이 황토 펜션으로 들어와 빈자리에 주차했다.
 주인아저씨가 시장에 다녀오거나 할 때 사용하는 차였는데 오늘은 조수석에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여대생이 내렸다.
 “엄마!”
 “연화야, 어서 와.”
 앞치마를 걸치고 있던 주인아줌마가 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여름 방학 때 보고 몇 개월 만에 보는 거라서 아주 반가웠다.
 주인아줌마가 딸을 힘껏 안았다.
 “엄마, 저 벤츠는 뭐야?”
 “손님 차야.”
 “저런 고급 차를 가진 손님이 펜션에 왔다고?”
 “그렇다니까. 어서 들어가자.”
 “응, 엄마.”
 오늘 딸이 펜션으로 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주인아줌마는 푸짐하게 한상을 차려 놓았다.
 딸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여러 가지 쌈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화개천 상류의 바위에 앉아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마나를 흡수하던 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추워서 오래 있지를 못하겠는데?”
 공기가 맑고 상쾌했지만 기온이 낮아서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황토 펜션에 주차해놓은 벤츠 트렁크에 들어 있는 오렌지색 등산 재킷을 꺼내어 입을 생각이었다.
 방수 기능이 있고 오리털이 들어 있어서 따뜻한 재킷이었다.
 황토 펜션으로 향하던 훈은 불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코로 스며들자 머리를 갸웃거렸다.
 “주인아저씨가 시내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이제 돌아왔나?”
 황토 펜션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점심을 먹고 있던 주인부부와 딸 이 연화가 쳐다보았다.
 “벌써 오세요?”
 “점심은 먹었습니까?”
 “예, 먹었습니다.”
 연화는 키 크고 잘생긴 훈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엄마, 누구?”
 “손님이야.”
 초겨울이라서 황토 펜션에 묵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주말이나 휴일에는 손님이 세 팀 정도는 있었지만 평일에는 훈이 혼자였다.
 방으로 들어간 훈은 침대 옆에 놓아둔 여행자용 하드 케이스 가방을 열어 벤츠 자동차 키를 꺼내었다.
 황토 펜션을 나온 훈은 벤츠 트렁크를 열어 대형 등산 배낭을 꺼내었다.
 야영을 해도 될 정도로 각종 등산 장비들이 들어 있었지만 등산 티셔츠와 등산 바지, 오렌지색 등산 재킷을 꺼내었다.
 등산 제품은 모두 고급이고 방수기능이 있었다.
 등산 배낭을 다시 트렁크에 넣고 황토 펜션 방으로 들어갔다.
 얇은 옷만 입고 있었던 훈은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더니 따뜻하고 좋았다.
 훈이 방을 나서는데 식사를 마친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오.”
 “예, 감사합니다.”
 급한 일도 아니었기에 훈은 티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아저씨가 전기주전자에서 물을 끓이는 동안에 주인아줌마와 딸 연화가 과일을 깎아가지고 왔다.
 “우리 딸이에요. 방학이 되어서 집에 내려왔어요.”
 “아, 케이대에 다닌다는 따님 말이군요.”
 “예, 그래요.”
 연화는 165센티미터의 키에 날씬하고 제법 예뻤다.
 피부도 희고 트러블도 없어서 좋은 편이었지만 아랫배가 제법 튀어 나왔다.
 조금 전에 밥을 먹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법 많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종아리도 굵어 보였다.
 훈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연화는 사과를 먹으면서 훈을 힐끔거렸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23살이라는 것과 밖에 주차되어 있는 벤츠가 훈의 것이라는 것에 놀랐다.
 겨우 23살의 남자가 소유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인데 만약 부자 부모를 두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벤츠를 소유한 것도 그렇고 얼굴에서 귀티가 나는 것을 보니 부자 집 아들이 분명해.’
 훈이 잘생기고 키도 크고 부자 집 아들이라는 것에 연화는 관심이 갔다.
 “잘 마셨습니다.”
 “또 명상하러 가는 겁니까?”
 “예, 이 재킷을 입으려고 잠시 들렀던 겁니다.”
 훈이 밖으로 나가자 연화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저 사람 어디 가는 거야?”
 “화개천 상류에 있는 바위에 앉아 명상하러 가는 거야.”
 “명상을 왜 그곳에서 하는 거야? 펜션 안에서 해도 될 텐데 말이야.”
 “그곳이 경치가 좋아서 그런 모양이야.”
 “여름이나 가을이면 모를까 지금은 초겨울이라서 너무 추울 텐데?”
 “그래서 등산 재킷을 입고 나간 건가봐.”
 “얼마나 더 여기 있을 건데?”
 “글쎄. 일단은 한 달 숙박비를 지불했으니 그때까지는 있겠지.”
 “한 달에 얼마를 받았는데?”
 “원래 하루 숙박비는 7만원이고 식사비는 별도이지만 포함하여 8만 원으로 계산하면 240만 원이기에 그 정도를 받으려고 하였는데 4백만 원을 주더라고.”
 “엄마, 4백만 원이면 많이 받은 거 아냐?”
 “나도 너무 많이 받는 거 같아서 150만 원은 돌려주려고 하였는데 밥을 많이 먹으니 그냥 받으라고 해서 받았어.”
 “그래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먹는 건 제법 많이 먹어. 식사 때마다 세 그릇씩 먹고 과일과 차도 마시니까 말이야.”
 “키가 크고 하니까 좀 많이 먹어야 할 거야.”
 “그건 그래. 숙박비를 많이 받았기에 식사에 신경 쓰고 있어.”
 머리를 끄덕인 연화가 오리털 점퍼를 입고 펜션을 나와 화개천 상류로 걸어갔다.
 졸졸졸!
 물소리가 나는 화개천 상류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훈이 마나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연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다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훈을 발견했다.
 ‘어머, 저기에 있었네?’
 연화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지켜보니 훈이 명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훈은 변함없이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훈의 명상을 방해할 수 없어서 그만 뒤돌아 펜션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자 훈은 감았던 눈을 떴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니 그만 펜션으로 돌아가야겠어.”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간단하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저녁식사를 하려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걸으면서 황토 펜션으로 돌아왔다.
 황토 펜션 입구에서 연화가 훌라후프를 하고 있었다.
 훈은 말없이 펜션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연화가 불만인지 입이 튀어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 피어나는 저녁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주인부부와 딸 연화가 나누는 대화를 훈은 듣기만 하였다.
 말없이 조용히 식사하고는 과일과 차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저 사람 원래 말이 없어?”
 “아니, 말이 많지는 않지만 약간은 하는데 오늘은 한 마디도 하지 않네?”
 “연화가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지.”
 “네가 있어서 말하지 않는 거야?”
 “우린 이주일이나 대화를 나누었기에 특별히 더 나눌 이야기가 없어.”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연화가 머리를 끄덕였다.
 방으로 들어간 훈은 침대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별 모양의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훈은 이렇게 잠자고 식사하고 나머지의 시간들은 마나심법을 운용하거나 별 모양의 아티팩트에 농축되어 있는 마나를 흡수하는데 투자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축적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났다.
 예상했던 거보다는 좀 더 일찍 2서클에 도전해도 될 거 같았다.
 시간은 흘러내려가는 시냇물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연화가 황토 펜션으로 내려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고 날짜는 12월에 접어들었다.
 훈은 변함없이 식사하고 마나심법을 운용하는데 시간을 보내었다.
 화개천 상류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심법을 운용하고 있던 훈은 정수리에 눈이 쌓이는 느낌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으응? 벌써 눈이 내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데 내리는 눈이 뺨에 부딪쳤다.
 내리는 눈을 직접 보는 게 몇 년 만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좋아진 기분도 잠시 점점 눈발이 거세어졌기에 빨리 황토 펜션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았다.
 아직 눈이 많이 쌓인 것이 아니었기에 걸어가는데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황토 펜션으로 돌아온 훈은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을 수도 없었기에 별 모양의 아티팩트를 꺼내었다.
 주인부부가 청소하려고 방에 들어올 수도 있었기에 수련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방문을 잠궜다.
 침대도 있었지만 그냥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별 모양의 아티팩트에 농축되어 있는 마나를 흡수하던 훈은 서클에 마나가 가득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은 그렇게 마나를 흡수하였지만 언제나 부족한 느낌을 받았었다.
 심장을 휘도는 서클 옆에 새로운 마력의 띠가 휘돌면서 점점 짙어졌다.
 갑자기 찾아온 서클 도전에 흥분이 되었지만 호흡을 하면서 가라앉혔다.
 우우웅!
 훈의 몸속에서 공명음이 일어났다.
 서클을 형성할 만큼 마력이 모였기에 맹렬하게 휘돌았다.
 정신이 분산되면 위험하기에 집중했다.
 처음으로 서클을 형성할 때에는 경험이 없어서 당황도 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온몸이 땀으로 번들거렸고 속옷까지 젖었다.
 그래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파파팟!
 심장을 힘차게 휘돌던 마력의 띠가 황금빛을 내뿜으면서 서클로 변하였다.
 극치의 쾌감을 느끼듯이 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영원할 거 같았던 황홀한 순간이 지나가고 현실로 정신이 돌아왔다.
 심장을 힘차게 휘도는 서클 두 개가 느껴졌다.
 ‘으하하···이제 2서클이 되었어.’
 올해가 지나기 전에 2서클에 오를 목표를 세우고 수련했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성공했다.
 아직 12월 초에 불과 한데 이렇게 빨리 2서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별 모양의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훈은 2서클 마법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대부분이 실생활에 접목할 수 없었지만 투명화 마법과 투시 마법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실생활에서 쓸모가 많은 것은 3서클 마법이었다.
 위험할 때 펼치는 블링크 마법, 하늘을 나는 플라이 마법, 돌풍 마법, 빨리 달릴 수 있는 가속 마법, 꼼짝 못하게 만드는 홀드 퍼슨 마법, 손끝에서 마법의 번개를 쏠 수 있는 라이트닝 볼트 마법까지 다양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유령 말을 소환할 수 있는 팬텀 스티드 마법도 있었지만 자동차가 있기에 굳이 필요할 거 같지 않았다.
 예상보다 2서클에 오른 것도 빠르기에 3서클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밤이 깊었지만 훈은 기분이 좋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 형성한 서클을 안정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아침 7시 정각에 훈이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알람시계를 맞추지도 않았는데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몸이 시계처럼 정확해졌다.
 새벽 5시가 다되어서 잠들었는데 겨우 2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난 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몸속에서는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기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찬바람이 방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정말 상쾌하다.”
 밤사이에 제법 눈이 내려 쌓였고 설국을 연상시켰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어제 아침이나 오늘 아침이나 특별히 다를 게 없었지만 훈은 아니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1서클이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2서클이었다.
 훈도 겉으로는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력이 충만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시력도 더 좋아진 거 같았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도 훤하게 잘 보였다.
 창문을 열어놓고 밖을 잠시 내다보았기에 방안 공기가 바뀌었다.
 훈은 창문을 닫고 턱을 만지면서 고민하다가 마력을 일으켰다.
 츠츠츠츠!
 벽을 투시를 해보았더니 옆방의 모습이 흑백화면처럼 보였다.
 칼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약간 아쉬웠지만 이렇게 보이는 거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투시를 얼마나 펼칠 수 있고 거리는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 보려고 펜션의 거실과 곳곳을 살펴보았다.
 주인아저씨는 진공청소기를 돌리면서 거실 청소를 하고 있었고 주인아줌마는 주방에서 한창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인부부의 딸인 연화는 뭘 하는지 살펴보니 방안에는 없었다.
 아직 아침 7시 밖에 되지 않았기에 펜션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는 곳곳을 살펴보니 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허엇, 샤워 중이었구나.”
 여대생의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본다는 게 도의적으로 잘못된 행동이지만 남자들의 호기심 상위에 있는 것이 여자들이 목욕하는 모습이었다.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볼 정도였기에 남자들의 호기심과 욕망은 어쩔 수 없었다.
 투시를 거두어야 하지만 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연화의 샤워하는 모습을 좀 더 훔쳐보았다.
 가슴은 에이 컵으로 작은 편이었고 날씬하지만 아랫배에 지방이 많았다.
 “가슴이 작고 아랫배에 지방이 많아서 고민이겠어.”
 훈은 마나를 의지로 움직이다보니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나 지방을 얼마든지 뺄 수 있었다.
 1서클 때에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투시를 할 수 없어서 상대의 몸속을 살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2서클이 되면서 투시가 가능해졌다.
 훈이 마음만 먹으면 연화의 아랫배에 있는 지방을 몸 밖으로 빼거나 아님 가슴에 불어넣어 커지게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지방을 엉덩이에 불어넣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할 수도 있었다.
 투시가 가능하기에 몸속을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갑자기 훈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으음, 어쩌면 이것으로 사업을 할 수도 있겠는데?”
 나쁜 식습관으로 현대인들은 비만 환자가 많아졌다.
 그들의 문제는 운동도 잘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몸속에 지방이 쌓이면서 각종 병들이 유발된다는 거였다.
 몸속에 쌓인 지방을 몸 밖으로 빼주기만 하더라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을 가진 훈이었지만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납득이 되어야 하기에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 기로써 몸속의 지방을 빼준다고 하면 되겠어. 기 다이어트라고 하는 게 좋겠어.”
 특별히 의료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었지만 기를 믿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많았다.
 원적외선이 나오느니 어쩌니 하면서 가짜 옥 장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도 있었다.
 훈은 마력을 이용하여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하도록 하는 것이기에 효과는 확실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에게 실습을 한 게 아니었기에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도 훈은 수십억 원을 가진 부자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우선 돈을 버는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힘을 좋은 곳에 쓸 생각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곳에 자신의 힘을 써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의 2서클로써는 무리였다.
 “우선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자. 그러면서 수련을 하여 3서클이나 4서클이 된다면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약자들을 도울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기본적인 계획이 서자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이 필요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 훈은 당혹스러웠다.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연화를 보면 자꾸만 샤워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주인아저씨와 같이 차를 마시는데 그가 훈에게 말했다.
 “밖에 눈이 쌓였는데 명상하러 갈 거요?”
 “아닙니다. 오늘은 그냥 펜션 주위를 산책만 할 겁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명상을 열심히 하는 겁니까?”
 “그냥 명상이 좋아서요.”
 훈이 명상이 좋아서 한다고 하자 주인아저씨도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였다.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잡종인 한 살짜리 누렁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호기심에 훈이 투시를 해보니 배에 지방이 많았다.
 풀어놓지 않고 개목걸이를 채우고 키우면서 밥을 많이 먹다보니 뚱뚱해진 모양이었다.
 밥을 다 먹은 누렁이가 훈을 보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황토 펜션에서 3주째 지내다보니 훈을 알아보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훈이 실험을 해봐야 하기에 묶인 개목걸이를 풀어 손에 쥐었다.
 누렁이를 데리고 백여 미터를 이동하여 나무 사이로 들어가자 펜션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주위에 누군가 있다면 들킬 염려도 있었기에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훈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에서 하면 되겠군. 슬립!”
 누렁이는 영문도 모르고 잠들었다.
 정신력이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정신력이 높으면 잠들게 하는 슬립마법에 잘 걸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지만 지능이 높지 않은 잡종 개라서 바로 걸렸다.
 츠츠츠!
 훈이 누렁이의 몸속을 투시하여 배를 살펴보았다.
 “으음, 생각했던 거보다 지방이 훨씬 많은데?”
 오히려 이렇게 지방이 많은 게 실험해보기는 더 좋았다.
 우선 마력을 누렁이의 배에 불어넣어 지방덩어리를 기름 짜듯이 짜서 액체 상태로 만들어 몸 밖으로 배출시켜 보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잘되지 않았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누렁이의 몸 밖으로 액체 상태의 지방이 쌓인 눈에 똑똑 떨어졌다.
 한꺼번에 왕창 지방을 액체 상태로 만들어 몸 밖으로 배출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조금씩 정밀하게 작업했다.
 불과 5분 정도 만에 훈의 주먹 정도의 양을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었다.
 의도하였던 대로 되자 이번에는 지방덩어리를 액체 상태로 만들어 엉덩이로 이동시켜 보았다.
 마치 풍선에 바람을 집어넣는 거처럼 그렇게 엉덩이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자신이 직접 작업하면서도 신기했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액체 상태의 지방을 몸 밖으로 다시 배출시켜 보았더니 처음보다 능숙하게 작업이 이루어졌다.
 처음보다 몸 밖으로 배출되는 지방의 양도 많아졌다.
 너무 빠르게 하면 몸에 쇼크나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렁이의 몸속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엉덩이에 지방을 채우기도 하고 다시 빼기도 해보았다.
 열심히 시험을 하다 보니 유효시간이 다되어 누렁이가 깨어나려고 했다.
 한 번 더 슬립 마법을 펼쳐 잠재웠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누렁이를 상대로 실험해본 결과 대성공이었다.
 사람은 한 번도 시험해보지 않아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누렁이의 경우를 보면 특별히 다를 것도 없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상대로 시험을 해보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누렁이와 산책하고 돌아온 훈은 방에 들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마나심법을 운용하면서 보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주인부부와 연화가 잠들었다.
 훈은 마나심법을 중지하고 가부좌를 풀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주인부부와 연화가 잠들었는지 투시를 하여 살펴보았다.
 “모두 잠들었구나.”
 스으읏!
 방문도 열지 않았는데 벽을 투과해 복도로 나왔다.
 투명화 마법과 투시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벽이나 건물 투과도 가능해졌다.
 벽을 투과하여 연화의 방으로 스며든 훈은 향긋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슬립!”
 연화가 잠들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하여 살짝 몸을 흔들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깊은 잠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슬립 마법을 펼쳤기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연화는 잠옷을 입고 잠들어 있었다.
 츠츠츠!
 연화의 몸속을 투시해보니 샤워할 때 훔쳐본 대로 가슴은 작고 엉덩이도 밋밋했다.
 그리고 배에 지방덩어리가 많았다.
 날씬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부위에 지방이 많은 게 신기했다.
 몸이 날씬해도 체지방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훈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누렁이를 상대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사람은 또 달랐다.
 전문적으로 의술에 관하여 배운 것도 아니었기에 최대한 안전위주로 실험을 해보아야 했다.
 훈은 우선 연화의 아랫배에 있는 지방덩어리 일부를 액체 상태로 만들었다.
 잘못될 수도 있었기에 누렁이 때보다 절반으로 했다.
 손톱 정도의 적은 양을 엉덩이로 이동시켜 보았다.
 훈의 의지대로 액체 상태의 지방이 잘 움직여졌다.
 하지만 워낙 소량이라서 표시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마력을 거두자 액체 상태의 지방이 굳어졌다.
 한 번 더 시도해보니 이번에도 실패 없이 성공했다.
 액체 상태의 지방을 엉덩이로 움직이는데 성공했으니 이젠 가슴으로 이동시켜보았다.
 가슴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가슴이 가까워지자 왼쪽 가슴으로 할지 오른쪽 가슴으로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에이, 이왕 하는 것이니 반으로 나누어 양쪽 가슴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
 액체 상태의 지방을 반으로 나누어 양쪽 가슴으로 보내어 자리를 잡았다.
 워낙 적은 양이라서 표시도 나지 않았지만 훈이 의도한대로는 움직였고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한번으로 완벽하게 성공이라 말하기는 어렵기에 잠들어 있는 연화의 아랫배에 있는 지방덩어리를 또 액체 상태로 만들어 엉덩이와 가슴으로 각각 보내어 정착시켰다.
 유효시간이 다 되어서 연화가 깨어나면 큰일이기에 또 한 번 슬립 마법을 펼쳐 잠재웠다.
 여러 번 해보다보니 연화의 아랫배에 있는 지방덩어리의 오분의 일 정도가 사라졌다.
 그 대신에 엉덩이와 가슴은 약간 볼록해졌다.
 마지막으로 액체 상태의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위하여 연화의 잠옷을 살짝 벗겨 배가 드러나도록 했다.
 그리고 액체 상태의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시켰다.
 땀처럼 흘러나오는 지방을 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정도면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티슈를 하나 뽑아 액체 상태의 지방을 닦아 주었다.
 “으음, 오늘은 이정도만 하는 게 좋겠어.”
 혹시라도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어쨌든 실험은 성공이었다.
 자가 지방이식처럼 자신의 몸속에 있던 지방을 이용한 것이기에 부작용이 없어 다행이었다.
 연화의 잠옷을 원상태로 해주고 벽을 투과하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운 훈은 누렁이와 연화를 실험한 것을 정밀하게 떠올려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 잠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난 연화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다가 자신의 몸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거울을 보니 더 확실했다.
 자신의 아랫배가 좀 들어간 거 같고 대신에 가슴과 엉덩이가 볼록해진 거 같았다.
 “어머, 아랫배 지방이 가슴과 엉덩이로 갔나?”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크게 달라질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자신의 몸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식사 시간에 연화의 밝아진 얼굴에 주인아줌마가 쳐다보며 말했다.
 “연화야, 무슨 좋은 일 있니?”
 “그냥 컨디션이 좋아서요.”
 “모처럼 얼굴에 생기가 도니 보기 좋다.”
 “정말?”
 “그렇다니까.”
 훈은 연화가 기분 좋은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했다.
 훈은 늘 명상하던 바위로 가서 마나심법을 운용하였고 밤이 깊어지자 잠들어 있는 연화를 상대로 실험을 계속했다.
 그렇게 5일 만에 연화의 아랫배에 있는 지방덩어리는 대부분 엉덩이나 가슴으로 이동되었고 그 일부만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연화는 에이 컵에서 시 컵에 약간 못 미치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엉덩이도 확실하게 힙 업이 되어 청바지를 입어도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지난 5일 동안 훈은 연화 몸을 실험 하였고 특히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살폈지만 이상 없었다.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했다.
 연화는 훈 덕분에 무료로 확실하게 몸매교정의 효과를 보았다.
 자고 일어나보면 몸이 변화되어 있었기에 연화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해도 결국 알아내지 못하였다.
 훈이 실험할 때에는 확실하게 연화를 잠재워서 했기 때문이었다.
 훈이 좀 더 실험을 했더라면 연화가 카메라를 숨겨서라도 알아내었겠지만 5일 동안만 실험하고 멈추었기에 알아내지 못하였다.
 어느새 12월 중순이 되었고 훈이 지불한 숙박비도 내일까지였다.
 훈은 날이 어두워지자 황토 펜션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차를 마시면서 주인부부에게 내일 아침식사 후에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예, 그동안 이곳이 정들었는데 그만 돌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내일 떠난다고 하니 섭섭하군요. 술이라도 한잔 하시겠소?”
 “많이는 마시지 못하지만 조금만 하겠습니다.”
 “여보, 인삼주 좀 내어 오시오.”
 “예, 알겠어요.”
 주인부부와 훈은 인삼주를 나누어 마셨다.
 한 달 동안 황토 펜션에 머물면서 훈은 2서클에 올랐고 주변 경치가 좋아서 또 오고 싶었다.
 방으로 돌아온 훈은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검은색 벤츠에 시동을 걸고 엔진의 열이 오를 동안 걸레로 차의 먼지를 닦았다.
 기온이 낮은 곳에서 장기간 차를 두면 상하기에 3일에 한 번씩 15분 정도 주변을 드라이브 하고 주차했었다.
 “잘 쉬었다 갑니다.”
 “예, 다음에 또 오세요.”
 “예, 그럼.”
 훈이 벤츠에 타더니 출발하였다.
 주인부부와 연화는 그동안 정들었다고 떠나는 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허전해졌다.
 서울로 향하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켰다.
 그랬더니 미란과 아영, 슬하가 보낸 문자와 발신자 표시가 수백 개나 되었다.
 대부분 마법수련을 떠난 날부터 열흘 정도까지 많이 왔지만 그 이후에는 드문드문 왔다.
 세 미녀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은 좋지만 애인은 아직 부담스러웠다.
 청담 아시아 빌라로 돌아와 보니 먼지가 쌓여서 창문을 열고 청소부터 했다.
 분양면적이 180평이며 실 면적은 95평, 방 5개, 욕실 4개였기에 청소하는 것도 힘들었다.
 청소가 끝이 나자 인터넷으로 연예인들의 몸매관리를 해주는 곳을 검색했다.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만으로 매장을 여는 게 가능했다.
 실내 인테리어도 어떻게 한 것인지 여러 곳을 살펴보았다.
 몸매관리를 해주는 곳을 찾아가서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몸매관리를 해주는 곳은 대부분 여성들이기에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감추고 은밀히 살펴본 거였다.
 이것저것 조사하고 충분히 고민한 결과 청담동에 50평짜리 상가를 계약했다.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에 훈은 곁에서 도와줄 보조 도우미 두 명과 상담사를 한 명 모집했다.
 불과 보름 만에 ‘에스라인 몸매관리’ 매장을 열게 되었다.
 훈의 에스라인 몸매관리는 홈페이지도 만들지 않고 신문에 광고조차 하지 않았다.
 간판에 에스라인 몸매관리와 전화번호 복부 지방 배출 전문이라는 글자만 있었다.
 25살의 직장인 손 보라는 저녁에 회식을 자주 하면서 맥주를 마시다보니 뱃살이 많아졌다.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어서 몸매관리를 좀 받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마침 청담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왔다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에스라인 몸매관리 간판을 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도우미 곁으로 다가간 보라가 말했다.
 “복부 지방 배출 전문이라는 간판보고 들어왔는데요.”
 “예, 잘 오셨어요.”
 “정말 확실하게 뱃살을 빼주나요?”
 “그럼요.”
 “1회에 얼마하나요?”
 “1회에 백만 원입니다.”
 “예? 얼마라고요?”
 “백만 원입니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원장님께서 직접 기로써 복부 지방을 배출해 주시는 것이기에 결코 비싸지 않아요. 전혀 부작용도 없어요.”
 “뭐라고요? 기로 복부 지방을 배출한다고요?”
 “예,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 번만 받아보시면 만족하실 거예요.”
 “한 번에 어떻게 복부 지방을 다 빼요?”
 “사실이에요. 만약 복부 지방을 빼지 못하면 바로 환불해 드려요.”
 기로써 복부 지방을 빼준다고 하니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효과가 없는데 매장을 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장님과 상담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원장님과 상담하시겠어요?”
 “예, 상담하고 싶어요.”
 도우미가 보라를 원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키 크고 잘생긴 훈을 본 보라는 갑자기 믿음이 커졌다.
 “원장님, 정말 기로써 복부 지방을 빼주나요?”
 “예,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엉덩이나 가슴으로 지방을 채워드릴 수도 있습니다.”
 “예? 그게 가능하나요?”
 보라는 훈의 설명에 깜짝 놀랐다.
 가슴이 에이 컵인 보라는 가슴이 좀 커졌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뱃살로 가슴을 크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시술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정말 효과가 없으면 환불해주나요?”
 “예, 그렇습니다. 다만 자가 지방이식이기에 가슴이나 엉덩이에 주입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간혹 다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합병증은 없습니다.”
 “도우미의 설명으로는 1회 시술만으로도 뱃살을 뺀다고 하던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수술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기로써 하는 것이기에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복부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은 15분이면 되는데 가슴에 주입하려면 보통 40분 정도 걸립니다.”
 “예? 겨우 40분에 가능하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가슴이 에이 컵인데 시 컵도 가능하나요?”
 “지방만 충분하다면 가능합니다.”
 설명을 들으면 황당하지만 훈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믿음이 생겼다.
 ‘백만 원인데 한번 해보는 거야. 만약 시술이 실패하면 바로 환불이 되니 걱정 없어.’
 “그럼 시술을 받아보겠어요.”
 “그럼 나가셔서 도우미에게 접수하시면 됩니다.”
 “예, 알겠어요.”
 보라는 원장실을 나와 도우미에게 접수했다.
 보조 도우미들이 보라를 탈의실로 안내하여 옷을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도록 했다.
 시술실로 들어와 보니 병원 수술실처럼 시술대가 놓여 있었다.
 보조 도우미의 말에 보라가 가운을 벗고 시술 대에 올라가 누웠다.
 천장과 벽면이 온통 거울이라 훤하게 다 보였다.
 “지금부터 보라씨의 시술을 할 텐데 아프거나 하지 않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됩니다.”
 “예, 알겠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부에 지방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슴은 에이 컵이 맞지요?”
 “예, 맞아요.”
 “제가 확인을 해보니 보라씨의 복부 지방을 가슴으로 보내면 비 컵은 충분히 가능하겠습니다. 다만 시 컵은 약간 모자라기에 허벅지에 있는 지방을 이용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츠츠츠츠!
 훈이 양손을 내뻗어 보라의 복부에 있는 지방덩어리를 액체 상태로 만들었다.
 연화를 충분히 실험해 보았기에 어렵지 않았다.
 보라는 자신의 복부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통증은 아니었다.
 액체 상태의 지방을 보라의 가슴으로 이동시켜 자리를 잡도록 했다.
 처음이 중요하기에 훈은 천천히 안전위주로 펼쳤다.
 의지대로 마력을 통제하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이기에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씩 보라의 복부 지방이 줄어들더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보라는 전혀 아프지도 않고 마취도 하지 않아서 위험도 없어 좋았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복부와 가슴을 번갈아 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시술을 보고 있었기에 믿음도 더 커졌다.
 시술이 40분으로 예상하였는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아서 27분 만에 끝이 났다.
 복부에 있던 지방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살들을 약간 움직여 멋진 11자 복근이 되었다.
 11자 복근은 지속적인 운동을 통하여 가능한데 보라는 훈의 시술로 가능했다.
 “보라씨, 이제 시술이 끝났습니다.”
 “원장님, 정말 감사해요.”
 “가슴이 시 컵이 되었고 복부 지방은 완벽하게 제거 되었습니다. 아울러 11자 복근은 제가 서비스로 만들어 드린 겁니다.”
 “예, 알고 있어요. 너무 감사해요.”
 훈의 시술에 보라는 아주 만족했다.
 가슴이 커지고 복부 지방이 사라지고 11자 복근이 되었으니 결코 백만 원이 큰 게 아니었다.
 자신감에 찬 당당한 모습으로 에스라인 몸매관리를 나선 보라는 커피전문점에서 친구를 만났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매일 얼굴을 보는 친구이다 보니 보라의 달라진 모습을 바로 알았다.
 “보라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머, 가슴이 시 컵은 되는 거 같은데? 뱃살도 없어. 너 수술했니?”
 “수술은 아니지만 시술은 받았어.”
 “뭐? 시술을 받았어? 언제?”
 “널 만나기 직전에 받았어.”
 “농담 하 지마.”
 “진짜야.”
 보라는 친구를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가슴과 복부의 11자 복근을 보여주었다.
 “이, 이럴 수가?”
 “이젠 믿어져?”
 “어디에서 했니?”
 보라는 친구를 데리고 에스라인 몸매관리로 들어갔다.
 “어머, 또 오셨네요?”
 “예, 친구가 시술하고 싶어 해서요.”
 “잘 오셨어요. 친구 분은 어디를 시술받고 싶으세요?”
 “전 가슴이 에이 컵인데 보라처럼 시 컵이 가능한 가요?”
 “복부 지방은 거의 없으신 거 같은데 허벅지가 좀 굵네요. 그래도 지방이 조금 부족하여 시 컵은 무리이지만 비 컵은 가능해 보이네요. 정확한 것은 원장님과 상담을 해보세요.”
 훈과 상담을 해볼 결과 시 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라의 친구는 바로 백만 원을 주며 접수하여 시술을 받게 되었다.
 친구가 시술을 받는 동안에 도우미가 보라에게 십만 원을 내밀었다.
 “어, 이건 뭔가요?”
 “일종의 소개비입니다. 시술 받으신 분이 친구 분을 데리고 오시면 드리는 거예요.”
 “그럼 또 다른 친구를 데리고 와도 주나요?”
 “예, 물론이죠. 그러니 입소문 좀 내주세요.”
 “호호···그런 거야 얼마든지 해줄게요.”
 보라 친구는 불과 30분 만에 시술을 마치고 나왔다.
 얼굴에 미소를 보이는 걸 보니 시술은 성공이었다.
 도우미와 보조 도우미들은 훈이 처음에 모집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시술을 직접 해주자 믿게 되었다.
 직접 자신들이 체험을 하였기에 손님이 오더라도 자신 있게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에스라인 몸매관리는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에 2명이나 3명이 찾아와 상담하다가 불과 열흘 만에 하루에 20명씩 찾아왔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었기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가슴이나 엉덩이를 서비스 해주었다.
 하지만 손님이 늘어나자 복부 지방 배출 위주로 시술을 하였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좋게 만드는 시술은 별도로 시술 비를 받았다.
 
 
 제9장 고발
 
 
 청담동에 있는 성형외과와 몸매관리 업소는 갑자기 들려온 소문에 당황했다.
 에스라인 몸매관리라는 곳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기로써 복부 지방을 배출해 준다는 거였다.
 빠르게 입소문이 났기에 호기심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고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오는 자들도 있었다.
 미인 성형외과의 실장 황 덕배와 간호사 최 정희는 에스라인 몸매관리가 어떤 곳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하여 찾아왔다.
 실내 인테리어부터 살펴보니 제법 고급스러웠다.
 50여 명의 여성들이 소파에 앉아 대기하면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깔끔하게 투피스를 입고 있는 도우미가 말했다.
 “123번 손님.”
 “예, 저예요.”
 잡지를 보던 20대 초반의 여성이 그걸 내려놓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를 시술받으시려고 오셨어요?”
 “복부 지방을 빼고 엉덩이가 밋밋하여 힙 업을 좀 하려고요.”
 “자세한 것은 원장님께 상담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보통 복부 지방 배출은 15분이면 되고 백만 원입니다. 그리고 힙 업을 하시려면 별도의 시술 비가 있어요.”
 “알고 있어요. 얼마죠?”
 “힙 업을 하는데 백만 원이에요. 시술 시간은 20분 정도 소요될 거예요.”
 “복부 지방 빼는 것과 힙 업 시술을 동시에 할 수도 있나요?”
 “물론이에요. 지금 원장님께서 시술하고 계시니 끝나시는 대로 상담을 하도록 해드릴게요. 접수하시겠어요?”
 “예, 접수할게요.”
 “그럼 시술 서를 작성 해주세요.”
 시술 서는 인적사항과 어디를 시술하는 지 여부였다.
 접수가 끝나자 도우미가 말했다.
 “차를 한잔 하시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되요.”
 “예, 알겠어요.”
 한쪽에 녹차나 커피 등 여러 가지의 차들을 먹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덕배와 정희도 커피를 한잔씩 마시면서 지켜보았다.
 “손님이 제법 많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기로 복부 지방을 빼줄까?”
 “말이 기로 복부 지방을 빼준다고 하는 거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예, 기로 어떻게 복부 지방을 빼요? 그게 가능해요?”
 “나도 황당하다고 생각했어.”
 다섯 명이 더 상담하자 정희의 차례가 되었다.
 “129번 손님.”
 “예, 저예요.”
 소파에서 일어난 정희가 도우미에게 갔다.
 “어디를 시술 받으실 건가요?”
 “복부와 가슴이요.”
 “복부 지방 배출은 기본적인 시술이지만 가슴시술은 별도의 시술비가 있어요.”
 “얼마죠?”
 “2백만 원이에요.”
 “그럼 복부와 가슴을 시술 받으려면 3백만 원인가요?”
 “예, 그래요. 보통 복부 지방 배출은 15분이면 되고 가슴은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니까 45분 정도면 가능하겠어요.”
 “그래요? 그런데 정말 아프지는 않나요?”
 “예, 그럼요. 원장님께서 기로써 복부 지방을 배출하는데 손님은 가슴에 시술도 하신다고 하시니까 복부 지방을 자가 지방이식을 하는 거처럼 가슴에 불어넣으실 거예요.”
 “부작용은 없나요?”
 “예, 없어요. 마취도 하지 않으니까 직접 시술하는 것을 보실 수 있어요.”
 “만약 의도했던 것과 다르면 어떻게 해요?”
 “그럼 바로 시술 비 전액을 환불해 드려요. 시술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원장님과 상담을 하시면 됩니다. 접수하실 건가요?”
 “예, 접수하겠어요.”
 “그럼 시술 서를 작성 해주세요.”
 시술 서를 작성한 정희는 신용카드를 내밀었고 도우미는 전표를 발행했다.
 덕배 곁으로 돌아온 정희는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도우미가 정희를 원장실로 데려갔다.
 ‘어머, 잘생겼어.’
 “복부 지방을 빼고 가슴 시술을 원하신다고요?”
 “예, 그래요.”
 “잠시 살펴볼 테니 가만히 계세요.”
 훈은 투시를 통하여 정희의 복부와 가슴을 살펴보았다.
 “복부에 제법 지방이 많네요. 그리고 가슴은 에이 컵이신 거 같은데 어느 정도를 원하세요?”
 “시 컵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해요?”
 “예, 가능하겠습니다.”
 “시술은 언제 되나요?”
 “대기해 있는 분들이 계셔서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리셔야겠습니다. 대기실에서 편안하게 계시면 됩니다.”
 “예, 알겠어요.”
 정희는 보조 도우미를 따라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한의원처럼 양쪽으로 침대가 놓여 져 있고 손님이 있는 곳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속으로 헤아려보니 12개였다.
 “저기 보이는 탈의실로 들어가셔서 속옷까지 전부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세요. 그리고 소지품과 옷은 탈의실 옆에 있는 옷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열쇠는 손목이나 발목에 착용하시면 되요.”
 보조 도우미의 말대로 정희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12개의 옷장이 있었기에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소지품을 넣고 열쇠는 손목에 착용했다.
 정희가 침대에 눕자 보조 도우미가 커튼을 쳐주었다.
 손님의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에 마음에 들었다.
 정희는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시술 시간이 되어 정희는 보조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시술 실로 들어갔다.
 벽면과 천장이 온통 거울이었다.
 시술 대에 정희가 눕자 훈이 말했다.
 “아프지 않으니까 편안하게 누워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마취도 없으니 직접 눈으로 시술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 그런 거 같네요.”
 “먼저 복부의 지방을 녹여 가슴으로 보내어 에이 컵을 시 컵으로 만들 겁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츠츠츠츠!
 훈은 정희의 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마력으로 복부의 지방을 액체 상태로 만들어 가슴으로 보내었다.
 ‘어머, 뭔가 움직이는 거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희의 복부 지방은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가슴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정희는 천장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몸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복부 지방은 다 빠졌고 가슴은 에이 컵에서 시 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복부에 있던 지방이 빠져 나가면서 비어 있는데 여기에 살을 채워 넣으면 멋진 11자 복근이 됩니다.”
 “정말 11자 복근으로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예, 물론입니다.”
 정희의 배가 훈의 마력으로 인하여 조금씩 움직이면서 11자 복근으로 변하였다.
 ‘진짜였어. 대단해!’
 기라는 것으로 시술한다고 했을 때에는 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시술을 받아보니 진짜였다.
 “이제 시술은 끝났습니다.”
 “벌써 끝났어요?”
 “예, 끝났습니다. 자가 지방이식처럼 시술했기에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없지만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지 않으면 다시 지방이 몸에 쌓일 수도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희는 보조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시술 실을 나와 대기실로 돌아왔다.
 가운을 벗고 옷으로 갈아입은 정희는 기다리고 있는 덕배와 같이 밖으로 나왔다.
 “정희씨,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해드릴게요.”
 덕배와 정희는 미인 성형외과로 돌아왔다.
 원장실에서 정희가 직접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이, 이럴 수가?”
 “정희씨, 그게 정말입니까?”
 “예, 원장님. 마취를 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시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혀 통증이 없어서 좋았어요. 이렇게 효과도 확실하니 손님들이 엄청 몰려들 거예요.”
 원장과 덕배는 경악했다.
 통증이 없고 효과도 확실하고 간편하며 시술 비도 쌌다.
 어느 거 하나 부족한 게 없었기에 손님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정희씨, 미안하지만 그 가슴 좀 만져 봐도 됩니까?”
 “절 희롱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만져보세요.”
 원장은 정희의 가슴을 만져보았더니 진짜 가슴과 똑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희의 11자 복근이었다.
 원장과 덕배는 정희의 가슴이 에이 컵이고 복부 지방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11자 복근까지 만져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도 완벽한 시술이라면 3백만 원이라는 돈이 전혀 아깝게 생각되지 않았다.
 보통 가슴 확대 수술도 수백만 원씩 하기 때문이었다.
 지방흡입술의 시술비용은 지방흡입량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이 2백만 원 정도하고 복부는 4백만 원에서 5백만 원이었다.
 그런데 에스라인 몸매관리에서는 겨우 백만 원이었다.
 가슴은 2백만 원이고 엉덩이는 백만 원이라고 하니 너무 쌌다.
 앞으로 청담동의 성형외과와 몸매관리 업소는 큰 타격이 예상되었다.
 강남 경찰서 민원실에 고발장이 접수되었다.
 에스라인 몸매관리에 대한 엄격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고발장의 내용을 검토한 조사계 담당 경찰은 형사들과 함께 출동하여 에스라인 몸매관리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도우미의 말에 형사들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여기에서 사기 시술을 한다는 고발장이 접수되어 나왔습니다. 박 훈씨 계십니까?”
 “예? 뭐라고요?”
 도우미는 깜짝 놀랐다.
 상담을 기다리는 손님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박 훈씨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시술 실에서 시술을 하고 계세요.”
 “그럼 강남 경찰서까지 임의동행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지금은 여자 분을 시술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10분 정도면 될 거예요.”
 “여기 혹시 뒷문 있습니까?”
 “없어요. 원장님께서 도망치실 이유도 없고요.”
 “알겠습니다. 당신을 믿고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후에 시술을 마친 훈이 원장실로 들어갔고 보조 도우미와 시술을 받은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시술이 끝나 원장님은 원장실에 계세요. 들어오세요.”
 도우미의 안내를 받은 형사들이 원장실로 들어왔다.
 서류를 검토하던 훈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뭡니까?”
 “강남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형사들은 신분증을 훈에게 보여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에서 사기 시술을 한다는 고발장이 접수되어 나왔습니다.”
 “사기 시술이라고요?”
 “예, 기로써 시술을 한다면서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사기 시술이죠?”
 “기로써 복부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하하···그래서 사기 시술이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강남 경찰서까지 임의동행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좋습니다. 김 실장님.”
 “예, 원장님.”
 “잠시 강남 경찰서에 갔다 와야 하니까 바쁜 손님들은 환불해 주도록 하고 시술을 원하시는 손님들은 내일로 시간을 잡아 놓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훈은 파란색 가운을 벗고 재킷으로 갈아입고 형사들을 따라 나섰다.
 훈이 형사들의 임의동행에 순순히 응하였기에 수갑은 채우지 않았다.
 승합차를 타고 강남 경찰서에 도착한 훈은 형사들과 함께 수사과 조사계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인상의 경찰이 훈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훈이 앉자 그가 말했다.
 “조사계의 김 순경이라 합니다. 이제부터 박 훈씨의 고발장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먼저 훈의 인적사항을 물어보고는 그가 질문했다.
 “고발장의 내용에 의하면 기로써 시술을 하는데 이게 사기라는 주장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뭐가 사기라는 겁니까?”
 “그럼 기로써 복부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게 사기가 아니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기로써 복부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건 사기가 아닙니다.”
 “그거야 확인해보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겠죠. 다음으로 복부 지방을 배출해 주는데 얼마를 받았습니까?”
 “백만 원입니다.”
 “그럼 가슴이나 엉덩이 시술은 각각 얼마를 받습니까?”
 “가슴은 2백만 원이고 엉덩이 시술은 백만 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술을 한다는 겁니까?”
 “그럼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손님이 오시면 상담을 합니다. 복부 지방을 제거하는 것만 원하는 손님이 있고 작은 가슴을 확대하거나 엉덩이를 힙 업해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그럼 복부 지방 제거부터 말해보세요.”
 “그건 간단합니다. 시술 대에 손님이 누우면 제가 기로써 복부 지방을 몸 밖으로 빼줍니다. 시술은 20분 정도 걸립니다.”
 “마취도 하지 않습니까?”
 “예, 통증이 없으니 마취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천장과 벽에 온통 거울이기에 손님이 자신의 두 눈으로 시술 과정을 직접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통증이 없고 합병증이나 부작용도 없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됩니다. 자신의 배에 있는 지방을 자가 지방이식 하는 거처럼 기로써 지방을 녹여 몸 밖으로 빼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몸 밖으로 지방을 어떻게 빼내는 겁니까? 다른 도구가 있습니까?”
 “일체 없습니다. 손님의 배에 있는 땀구멍을 통하여 녹인 지방을 배출합니다.”
 “그럼 가슴이나 엉덩이는 배에 있는 지방을 녹여 집어넣는다는 겁니까?”
 “예, 기로써 그게 가능합니다.”
 “으음,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시술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는데 말입니다.”
 “그럼 직접 나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합시다.”
 “하지만 손님들이 여자 분들이기에 개인 사생활을 보호해 드려야 합니다. 만약 직접 시술하는 것을 보는 것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훈의 자신감에 찬 말에 조사관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여 훈과 조사관, 형사들이 함께 경찰의 승합차를 타고 에스라인 몸매관리로 돌아왔다.
 손님의 삼분의 이가 환불하여 가고 7명의 여자 손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원장님, 오셨어요?”
 “예, 대기하고 계시는 손님들은 이분들이 전부입니까?”
 “예, 16분이 환불하여 돌아가셨어요.”
 “으음, 어쩔 수 없죠. 어느 분이 시술을 받을 실 차례입니까?”
 도우미를 맡고 있는 김 실장이 20대 초반의 여상을 원장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복부 지방을 배출만 하는 손님이었다.
 훈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여 조사관과 형사 두 명이 시술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에 시술 비는 공짜로 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낯선 남자들이 시술을 참관한다고 하니 거부감이 들었지만 형사들이라는 설명과 공짜라는 말에 허락을 하였다.
 가운으로 갈아입은 손님이 시술 실로 들어와 시술 대에 누웠다.
 가운을 살짝 펼쳐 배가 드러나도록 했다.
 누워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배가 좀 나왔다.
 “자, 이제부터 시술을 할 테니 손님께서는 편안하게 천장의 거울로 자신의 시술 모습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형사님들도 저의 정신집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참관해 주십시오.”
 “예, 그러죠.”
 “알겠습니다.”
 츠츠츠츠!
 훈이 마력을 일으켜 손님의 배에 들어 있는 지방을 액체 상태로 만들어 땀구멍으로 배출을 시작했다.
 의료기기를 이용하기나 마취조차 없이 그냥 양손을 내뻗는 게 훈의 시술 전부였다.
 ‘정말 기로써 복부 지방을 뺄 수 있는 거야?’
 ‘장난 같은데 사실일까?’
 조사관과 형사들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손님의 배에 있는 땀구멍으로 액체 상태의 지방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아주 소량이 나오더니 점점 양이 많아졌다.
 조사관과 형사들, 손님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조 도우미들이 거즈로 배에서 흘러내리는 지방을 닦았다.
 볼록하던 배가 바람이 빠진 거처럼 쏙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의 지방은 나오지 않았지만 시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방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뱃살을 채우겠습니다. 그럼 11자 복근이 되어 멋질 겁니다.”
 “예, 알겠어요.”
 복부의 살들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오 분정도 시간이 지나자 멋진 11자 복근이 되었다.
 “자, 이제 시술이 끝났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으음, 사기가 아니었군요.”
 “정말 기로써만 시술을 하는 게 가능하군요?”
 조사관과 형사들이 직접 시술을 보았기에 사기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가슴이나 엉덩이 시술도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습니다. 가슴이나 엉덩이 시술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기로써만 시술하는 거지요?”
 “예, 물론입니다.”
 더 이상 수사할 가치가 없어서 불입건 처리가 되었다.
 훈을 고발한 고발장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에스라인 몸매관리의 문을 열고 선글라스를 낀 멋진 여자가 들어왔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는데 몸매가 좋아서 잘 어울렸다.
 대기해 있는 손님들이 쳐다볼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선글라스를 벗자 정체가 들어났는데 놀랍게도 미란이었다.
 도우미에게 다가간 미란이 말했다.
 “여기 원장님이 박 훈씨 맞죠?”
 “예, 맞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니 확실했다.
 “지금 만나볼 수 있나요?”
 “지금은 시술중이라서 잠시 기다리셔야 해요. 어디를 시술 받으실 건가요?”
 “시술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원장님 좀 만나려고 왔어요. 친구 미란이라면 아실 거예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술이 끝나는 대로 말씀을 드리겠어요.”
 머리를 끄덕인 미란이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시술을 마친 손님이 밖으로 나오자 김 실장이 원장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들어오세요.”
 “고마워요.”
 미란이 원장실로 들어갔다.
 “미란씨,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이렇게 청담동에 있었으면서 왜 연락하지 않았어?”
 “그동안 바빴어.”
 “명상 수련을 한다고 하더니 이건 뭐야?”
 “명상 수련을 하다 보니 기로써 복부 지방을 배출 할 수 있게 되어 차렸어.”
 “뭐? 기로써 정말 복부 지방을 뺄 수 있어?”
 “물론 가능해.”
 “어머, 놀랍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하하···그러게 말이야.”
 “언제 끝나?”
 “저녁 7시에 끝나는데 손님이 있으면 조금 더 연장해야 돼.”
 “이거 차린 지 얼마나 돼?”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어.”
 “아무튼 놀라워. 끝나고 나랑 저녁 먹어.”
 “좋아.”
 미란이 돌아가고 훈은 접수된 손님들을 시술하였다.
 퇴근한 훈은 자신의 벤츠를 타고 미란이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오사카라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벤츠를 주차하고 오사카 안으로 들어갔더니 여직원이 특실로 안내해 주었다.
 특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미란이가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남해의 무인도에도 좀 있었고 지리산 쪽의 펜션에도 있었어.”
 “문자가 들어 왔을 텐데 왜 전화하지 않았어.”
 “명상 수련 중이라서 핸드폰을 꺼놓았어.”
 “이젠 완전히 서울로 돌아온 거야?”
 “어, 에스라인 몸매관리를 차렸으니 열심히 해보려고.”
 “입소문이 대단하던데? 직접 가보니 대기해 있는 손님들도 많고.”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 덕분으로 손님들이 많아졌어. 그래도 하루에 50명 이상은 받지 않으려고 해.”
 “너무 힘들어서?”
 “어, 맞아. 기도 많이 소모되고 말이야.”
 “자기는 그래도 돈 버는 거 하나는 타고난 거 같아.”
 “내가?”
 “응, 복권이나 주식으로도 돈을 벌더니 이젠 몸매관리 업소를 차려서 돈을 벌잖아.”
 “듣고 보니 그건 그러네?”
 일본 술 사케와 회, 초밥 등을 먹으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갑자기 미란이가 훈의 목을 팔로 감더니 키스했다.
 미란이의 대담함에 살짝 놀랐지만 거부하지 않고 키스를 받아 들였다.
 달콤하고 촉촉한 기분 좋은 키스였다.
 “키스 어땠어?”
 “달콤하고 좋았어.”
 “호호···그럴 줄 알았어.”
 밤 10시가 넘어서야 둘이 오사카 밖으로 나왔다.
 “차 가져왔어?”
 “아니, 자기는?”
 “난 가져왔어.”
 “그럼 나 집까지 좀 태워줘.”
 “어, 그래.”
 훈은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미란이와 함께 벤츠를 타고 빌라로 향했다.
 “월드 청담 빌라에 그대로 살아?”
 “응, 거기에 살아. 자기는?”
 “나도 청담 아시아 빌라에 그대로 살고 있어.”
 훈은 미란이부터 월드 청담 빌라에 데려다주고 자신의 청담 아시아 빌라로 돌아왔다.
 
 
 제10장 강남 연쇄실종사건
 
 
 학원의 수업을 마치고 나온 긴 생머리에 교복을 입은 여고생 이 현숙이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등이 따끔거리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기절에서 깨어난 현숙이 상체를 일으켰더니 사방이 막힌 곳이었다.
 지하실 같아 보였다.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지만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이 개를 가두어 사육하는 개 철장이었다.
 천장에는 백열등이 하나뿐이라서 그렇게 밝지 않았다.
 중앙에는 수술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아무리 소리쳐 봐도 소용없었다.
 시계가 없어서 시간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다.
 철컥!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철문이 열리면서 호리한 남자가 철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165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몸무게도 60킬로그램이 나가지 않을 정도로 외소 한 남자였다.
 안경을 쓰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인지 30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깨어났어?”
 “여기 어디에요?”
 “여기? 나만의 공간이야.”
 “아저씨가 날 납치한 거예요?”
 “납치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널 사랑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고 우선 배고플 테니 먹어.”
 남자는 철가방을 열어 그 속에 들어 있는 자장면과 단무지를 꺼내었다.
 “아참, 젓가락도 줘야지.”
 철가방에서 나무젓가락을 꺼내어 내밀었다.
 현숙은 배도 고프고 해서 일단 남자가 주는 자장면을 먹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현숙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집 자장면 맛있지?”
 “예, 아저씨. 맛있어요.”
 “날 앞으로는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고 아담이라고 불러.”
 “예? 아담이라고요?”
 “그래. 난 널 이제부터 이브라고 부를게.”
 “난 이 현숙인데요?”
 “아니야. 이제부터 넌 나만의 이브야.”
 “알았어요. 아저씨, 물 좀 주세요.”
 “아저씨가 아니라니까. 난 아담이라고.”
 광기에 찬 말에 겁을 먹은 현숙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담, 물 좀 주세요.”
 “흐흐···그래야지. 이브.”
 아담은 철가방에서 플라스틱 컵과 물주전자를 꺼내었다.
 플라스틱 컵에 절반 정도 물을 채워 현숙에게 내밀었다.
 현숙은 물까지 마셨더니 이제야 좀 살 거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담이 현숙의 얼굴을 잡고 입술에 묻은 자장을 핥았다.
 “왜 이래요?”
 현숙이 깜짝 놀라 아담을 밀었다.
 엉덩방아를 찧게 된 아담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변하였다.
 “흐흐흐···귀여워해 줄려고 했더니 감히 날 밀어?”
 갑자기 돌변한 아담의 모습에 현숙은 겁에 질렸다.
 아담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을 꺼내더니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파지직!
 삼단 접이식 전자충격기에서 전기가 일어났다.
 “아아악!”
 현숙의 팔에 일초만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아픔이 느껴졌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흥, 아직 멀었어.”
 “아악!”
 3초 정도 사용했더니 현숙이 신체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런데도 아담은 멈추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
 5초가 넘어가자 현숙은 서 있지 못하고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몸이 마비가 된 거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제야 아담이 개 철장의 문을 열어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수술대에 눕혔다.
 현숙의 팔과 다리를 각각 묶었다.
 이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아담은 현숙의 냄새를 맡고 혀로 핥으면서 좋아하더니 팬티를 벗겼다.
 현숙의 팬티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더니 킬킬 거렸다.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흐흐흐···난 아저씨가 아니라 아담이야.”
 “아담, 그만 하세요.”
 “무슨 소리, 이제부터 넌 나와 사랑을 나누는 거야.”
 아담이 현숙의 가슴을 만지더니 허리를 움직였다.
 “아아악!”
 현숙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입에서 흘러 나왔지만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이던 아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극치의 쾌감을 느낀 아담이 그제야 만족한듯 씨익 웃었다.
 널부러져 있는 현숙의 팔과 다리를 묶었던 것을 풀어주고 개 철장에 넣었다.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열쇠까지 채웠다.
 “흐흐흐···나의 사랑 이브, 다음에 또 보자.”
 아담은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열쇠를 채우고는 사라졌다.
 강남 경찰서에 여고생 현숙의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
 최근 강남에는 한 달에 한 명꼴로 여자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 실종사건이 일어난 것은 무더운 8월초에 일어났다.
 퇴근하고 원룸으로 돌아가던 20대 초반의 직장 여성이었는데 원룸 근처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9월 중순에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고생이 실종되었다.
 10월 초와 11월 중순에는 20대 초반의 여대생이었고 12월 초에는 20대 중반의 직장 여성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년도가 바뀌어 1월 중순에 여고생 현숙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실종되었다.
 모두 6명의 여자들이 강남에서 실종되었는데 연쇄실종사건이 분명했다.
 범인은 월초에 납치를 하면 그 다음 달에는 중순에 납치했다.
 그것도 여고생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젊고 예쁜 여자들만 노렸다.
 서울 전체에서 실종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강남에서만 연쇄적으로 실종신고가 발생하였으니 문제였다.
 강남 경찰서장은 서울 경찰청장에게 불려가 문책을 들었다.
 강남 경찰서장은 간부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내가 오늘 청장님에게 불려가 얼마나 문책을 받았는지 너희들 알아?”
 “죄송합니다.”
 간부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형사과장, 도대체 6명이나 실종되는데 뭐하고 있었어?”
 “서장님, 죄송합니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있어?”
 “아직 없습니다.”
 “실종자들이 실종된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시시티브이(CCTV)가 설치된 건 없어?”
 “예, 골목길에서 실종되었기에 한 대도 없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범인이 시시티브이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납치한 모양인데?”
 “저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형사들이 주변을 탐문 수색해 보았지만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하였습니다.”
 “목격자조차 없다면 공개수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장님, 그럼 범인이 숨어 버릴 것입니다.”
 “젠장, 그래도 외부적으로 우리 경찰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저녁 7시부터 방범순찰대를 강남에 대대적으로 배치하고, 낮에는 형사들과 경찰들이 합동으로 검문검색을 하도록 해.”
 “예방에 집중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래. 어차피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없는 상황이니 일단 더 이상의 실종이라도 막아야지.”
 “예, 알겠습니다.”
 “형사들은 과학수사대와 함께 한 번 더 실종자들이 실종된 곳을 조사해 보도록 해.”
 강남 경찰서장의 특별지시로 인하여 저녁 7시가 되자 방범순찰대원들이 강남의 곳곳에 배치되었고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검문을 시작하였다.
 6인승 승합차 한 대가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우회전하여 오는데 경찰이 손을 들어 세웠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요즘 강남에 실종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서 말입니다.”
 “그래요?”
 “잠시 차안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세요.”
 승합차 안에는 별다른 거 없이 깨끗했지만 마트 비닐봉투가 두 개 있었다.
 “마트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예, 혼자 살다보니 주로 인스턴트식품을 사먹습니다.”
 “건강에는 좋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편리해서 사먹습니다. 요리에 솜씨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역삼동에 사십니까?”
 “예,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보기에 그는 키가 작고 외소해 보여 의심스럽지 않았다.
 동물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보니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납치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의심스러운 점도 없었다.
 “예, 검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협조를 해야죠.”
 경찰이 신분증을 돌려주자 그는 천천히 출발했다.
 경찰들은 다른 차들도 세워 검문하였다.
 “흐흐흐···멍청한 경찰들아 그렇게 해서 날 잡겠어?”
 6인승 승합차는 5분 정도를 달려 붉은 벽도로 이루어진 3층짜리 건물의 1층에 주차했다.
 승용차 8대를 주차할 수 있었다.
 2층이 자신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이고 3층은 자신의 집이었다.
 3층짜리 건물 자체가 전부 자신의 소유였다.
 3층으로 올라간 그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철가방에 야채 죽을 넣었다.
 그리고는 주방 옆에 있는 다용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용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다용도실의 벽 한쪽을 살짝 누르자 숨겨져 있던 문이 열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건물 밖에서 보면 그냥 벽으로 보이는 그런 특수 구조였다.
 철문이 보이자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음시설이 확실하게 되어 있는 지하의 비밀 공간이기에 아무도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모른다.
 개 철장 안에 현숙이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다리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이브, 나 왔어.”
 “···!···”
 철가방을 열어 생수 하나와 야채 죽, 숟가락을 함께 내밀었다.
 현숙은 아담을 한번 쳐다보다가 말없이 야채 죽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채하겠어.”
 “예, 아담.”
 현숙은 아담의 눈치를 보면서 그의 말대로 야채 죽을 천천히 떠먹었다.
 생수까지 마시고 나자 그제야 좀 살 거 같았다.
 “이제 양치질하고 샤워해야지.”
 “예, 아담.”
 현숙은 입고 있는 옷을 벗고 양치질부터 하고 나서 호스에 연결된 수돗물로 머리를 감고 샤워했다.
 현숙의 샤워가 끝나자 아담이 등 뒤에서 껴안았다.
 현숙은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아담이 현숙의 목을 혀로 핥더니 수술대에 눕히고는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이때에도 현숙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숨이 거칠어진 아담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현숙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브, 오늘 너무 좋았어.”
 “나도 좋았어요. 아담.”
 아담은 현숙의 입술에 키스하고 나서 먼저 일어났다.
 철가방에서 여성잡지를 한권 꺼내더니 내밀었다.
 “오늘 이브가 너무 사랑스럽고 말도 잘 들어서 특별히 주는 선물이야.”
 “고마워요, 아담.”
 아담은 현숙을 개 철장 속에 집어넣고 열쇠를 채우더니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철문에 열쇠를 또 채우는 걸 잊지 않았다.
 이제 혼자가 된 현숙은 소리 내지 않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손등으로 닦고는 잡지를 꼭 껴안았다.
 현숙은 이곳으로 납치되어 온 첫날에 아담에게 성폭행을 당하였다.
 그 이후에도 아담이 성폭행을 하려고 했었기에 반항했더니 백열등을 끄고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개 철장에 가두어진 상태였기에 수돗물조차 마실 수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보내다보니 미칠 거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아담이 다시 나타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현숙은 아담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현숙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오직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백열등이 전부였기에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좁은 곳에서 지내다보니 무척 지루했다.
 읽거나 들을 것이 전혀 없고 개 철장 안에만 있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씻지도 못하고 오줌이나 대변도 개 철장 안에 놓여 진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싸야 했다.
 그나마 뚜껑이 있었기에 지독한 냄새는 덜 났다.
 현숙은 자신이 아담에게 사육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치되기 얼마 전에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충격적인 영화를 보았었다.
 일본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실화를 소재로 발간된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데 ‘완전한 사육’이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극적인 소재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뜨거운 논란과 화제를 모았다.
 자신을 납치 감금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의 심리변화를 자극적으로 다룬 영화라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영화라 생각했었는데 직접 현숙 자신이 당하고 보니 지옥이었다.
 아담의 경우는 영화와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변태와 정신 이상자로 보였다.
 생각에서 깨어난 현숙이 잡지를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다.
 에스라인 몸매관리에 검은색 브이넥 오버랩 원피스를 입고 진주목걸이를 한 아영이 들어왔다.
 어깨에 메고 있는 신상 핸드백은 명품이었다.
 빅토리아 패션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아영은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날씬하고 좋았다.
 대기해 있던 손님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원장님 좀 만나려 왔는데요?”
 “원장님을 요?”
 “예, 김 아영이라고 하면 아실 거예요.”
 “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김 실장이 원장실로 들어가 말하고 다시 나왔다.
 “들어오세요.”
 아영이 원장실로 들어왔다.
 훈이 보니 흰 피부에 검은색 원피스가 아주 잘 어울렸다.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이 있었다.
 “오랜만이야.”
 “응, 서울은 언제 돌아왔어?”
 “아직 한 달이 안 되었어.”
 “명상 수련을 한다고 하더니 몸매관리 한다고 소문났더라.”
 “내가 명상 수련을 하다 보니 기를 좀 다룰 수 있게 되어 사업을 시작했어.”
 “정말 기로써 복부 지방을 빼주는 거 맞아?”
 “어, 맞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어.”
 “나도 여기까지 왔으니 시술이나 받아볼까?”
 “넌 날씬해서 괜찮아.”
 “가슴이 좀 작지 않아?”
 “시 컵은 되는 거 같은데도 작아?”
 “이번기회에 디 컵이나 이 컵으로 확대해볼까?”
 “가슴이 여기에서 더 커지면 부담스러워서 안 돼. 그냥 두는 게 좋아.”
 “정말?”
 “어, 아영이 너는 지금 그대로가 좋아.”
 “알았어. 오늘 저녁 나하고 같이 먹자.”
 “7시 퇴근이니 장소 결정하고 나에게 문자줘.”
 “응, 알았어.”
 아영이 원장실을 나가자 훈은 한숨이 나왔다.
 또 다시 대단한 미녀들의 관심을 받게 되어 부담스러워졌다.
 아영이 다녀간 지 불과 40분 만에 이번에는 털 코트를 차려입은 슬하가 나타났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기에 지성미까지 갖춘 미녀였다.
 김 실장이 슬하를 원장실로 안내하면서도 속으로 놀랐다.
 최근 미녀들이 훈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슬하야, 반가워.”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어?”
 “명상 수련한다는 거 알잖아.”
 “그렇더라도 문자보고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명상 수련을 위해 핸드폰은 꺼놓았어.”
 “서울에는 언제 돌아온 거야?”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어.”
 “혹시 여기 미란이 다녀갔어?”
 “어, 조금 전에는 아영이까지 다녀갔어.”
 “아영이가?”
 “어,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
 “그래? 나도 같이 갈까?”
 “그래도 되겠어?”
 “어쩔 수 없잖아. 퇴근은 언제야?”
 “저녁 7시에 퇴근하는데 손님이 있으면 조금 더 늦어질 수도 있어.”
 “아영이와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어?”
 “좋은 식당 예약해서 문자 준다고 했어.”
 “그럼 나에게도 문자 넣어줘.”
 “어, 그럴게.”
 슬하는 훈에게 에스라인 몸매관리 업소에 관하여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할 때 물어볼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란이와 아영이, 슬하까지 어느 한명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미녀는 없어서 고민이었다.
 워낙 능력이 좋고 예쁘고 집안 배경까지 좋아서 훈이라도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미녀들을 잘라낼 수도 없어 고민이었다.
 철컥!
 철문을 열고 아담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철가방이 아니라 털 코트를 입고 그 안에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현숙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담은 태연하게 기절해 있는 여자를 수술대에 눕혔다.
 밖으로 다시 나가더니 철가방과 플라스틱 대형 바구니 하나도 들고 들어왔다.
 현숙에게 생수 하나와 자장면, 단무지, 나무젓가락을 건 내고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여자의 입고 있는 옷을 벗겼다.
 현숙은 자장면을 비벼 먹으면서 아담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난방시설이 전혀 없었지만 3층 다용도실에 설치되어 있는 히터의 열기가 관을 통하여 지하실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내 온도가 항상 18도를 유지하였다.
 현숙은 속옷만 입고 있었다.
 한쪽에 몸을 덮을 수 있도록 군용 담요 한 장이 있었다.
 기절해 있는 여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화장을 해서인지 예뻤다.
 날씬하고 몸매도 좋았는데 가슴은 시 컵으로 컸다.
 그리고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각선미도 좋았다.
 어떻게 아담이 이런 여자를 납치해 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담은 기절해 있는 여자의 검은 스타킹과 구두까지 벗겼다.
 속옷만 남았는데 다리에 쇠사슬을 채우고 개 철장에 눕혔다.
 여자의 소지품과 옷은 플라스틱 대형 바구니에 담았다.
 소변과 대변을 볼 수 있도록 플라스틱 용기 하나와 담요 한 장을 넣어주었다.
 “이브, 다 먹었어?”
 “예, 아담.”
 “필요한 거 없어?”
 “생수 하나와 새로운 잡지 한권을 주세요.”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아담은 현숙이 먹고 난 빈 그릇과 나무젓가락을 회수하더니 철가방에 넣었다.
 여자의 소지품과 옷을 담은 플라스틱 대형 바구니와 함께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다시 철가방을 들고 아담이 들어왔다.
 1리터짜리 생수 하나와 잡지를 철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주고는 말했다.
 “아무리 내가 이브를 좋아해도 그냥은 안 된다는 거 알지?”
 “예, 아담.”
 머리를 끄덕인 아담이 자신의 팬티를 내리더니 물건을 앞으로 내밀었다.
 현숙은 아담이 뭘 원하는지 알고는 그의 물건을 정성스럽게 빨아 주었다.
 흥분이 되는지 아담이 현숙을 개 철장에서 꺼내어 수술대에 눕혔다.
 그리고 허리를 움직이면서 자신의 욕망을 배출했다.
 신나게 즐긴 아담은 현숙을 개 철장에 다시 넣고 철가방에서 생수 하나와 잡지를 꺼내어 건 내었다.
 “고마워요, 아담.”
 “이브, 사랑해.”
 아담이 현숙에게 키스하고는 뒤돌아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현숙은 기절해 있는 여자를 힐끔 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술 냄새가 심한 걸 보니 많이 취한 모양인데?”
 그제야 아담이 어떻게 여자를 데리고 왔는지 약간 추측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여자가 깨어나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생수를 약간 마시고 잡지를 펼쳤다.
 “이런 젠장!”
 화가 치민 강남 경찰서장이 테이블을 내리치자 커피가 쏟아졌다.
 지난밤에 강남의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여자가 실종되었다.
 보고서를 펼쳐 읽어보니 광진 경찰서에서 보내온 자료였다.
 “오 미현, 24살 직장 여성으로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음. 거주지는 영동대교 건너편에 있는 광진구 건대입구역 부근. 강남 경찰서 관내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종 사건과 유사함. 형사과장은 어떻게 생각해?”
 “지난 열흘 동안의 검문검색으로 인하여 조용하더니 범인이 다시 활동을 한 모양입니다. 1월 중순에 여고생 실종 사건이 일어났고 2월초에 다시 실종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범인의 소행이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 봤어? 7번째 여자가 납치 되었다고 난리야, 난리.”
 “예, 죄송합니다.”
 “이러다가 내 목이 날아가게 생겼어. 대책을 말해봐.”
 “범인이 워낙 흔적을 남기지 않고 용의주도해서 어려운 사건입니다.”
 “설마 이번에도 전혀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이번에는 약간의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서가 있어?”
 “예, 역삼동에 있는 르네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오 미현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놀다가 자정이 넘어서 나왔다는 친구들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그래?”
 “예, 먼저 택시를 태워 보내었다고 하는데 택시 차번호는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다만 베스트 택시회사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당장 베스트 택시회사에 형사를 보내어 조사를 해봐야지.”
 “안 그래도 베스트 택시회사에 형사 다섯 명을 보내었습니다.”
 “좋아, 이번에야 말로 약간의 단서라도 나와야 하는데 말이야.”
 “물론입니다. 택시기사를 찾아내어 물어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겁니다.”
 따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자 형사과장이 서장의 눈치를 보았다.
 “어서 받아봐.”
 “예, 서장님. 어찌되었어?”
 -과장님, 택시기사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래? 뭐 좀 알아내었어?”
 -자정이 약간 넘어서 르네 호텔 나이트클럽 앞에서 털 코트를 입고 있던 오 미현을 태웠다 합니다.
 “그래서?”
 -속이 좋지 않아서 오 미현이 역삼역 조금 못 가서 택시에서 내렸다 합니다. 택시기사가 잠시 지켜보니 골목 입구에 쪼그려 앉아 구토를 하였다 합니다.
 “술을 마셨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어. 그 다음엔?”
 -택시기사의 말로는 요금을 받았고 구토를 하는 걸 보고는 다시 태우기가 그래서 그냥 떠나버렸다 합니다.
 “뭐? 술에 취한 여자를 길에 그냥 내버려두고 가버렸다고?”
 -예, 하지만 택시기사도 일을 해야 하니 이해는 되었습니다.
 “그럼 그 주위에 시시티브이가 설치되어 있던가?”
 -지금 그걸 조사 중에 있습니다.
 “알았다. 다른 단서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예, 과장님.
 형사과장이 핸드폰을 내려놓자 서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자신도 형사과장 곁에서 엿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목말라, 물 좀 줘.”
 미현이 기절에서 깨어났다.
 숙취 때문에 머리도 약간 아팠다.
 상체를 일으킨 미현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내가 왜 이래? 여긴 또 어디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미현의 눈에 옆의 개 철장에 쪼그리고 있는 현숙이 보였다.
 “당신 누구예요?”
 “···!···”
 현숙이 대답하지 않아 짜증이 났다.
 목이 너무 말라 타는 듯 했다.
 마침 현숙이 들어 있는 개 철장에 생수가 보였다.
 “그 생수 좀 줘요. 내말 듣고 있어요? 이봐요.”
 “조용해요.”
 “뭐라고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죠?”
 “여긴 어디예요?”
 “나도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요.”
 “내 옷과 소지품이 다 어디 갔어요?”
 “아담이 가져갔어요.”
 “아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담이 누구인지는 곧 알게 될 거예요.”
 미현은 현숙이 여고생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신과 같이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숙취가 확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현은 주위를 둘러보니 천장에 백열등이 하나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느 지하실에 감금당해 있는 거 같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미현은 속이 쓰리고 목이 타고 정말 미칠 거 같아 짜증이 났다.
 “이봐요. 난 오 미현이라고 하는데 그쪽은요?”
 “난 여고 2학년인 이 현숙이예요. 여기에서는 이브라고 불러요.”
 “난 24살이예요.”
 “언니라고 불러줄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언니라고 해요.”
 “알았어요.”
 “아는 게 있으면 좀 알려줄래요?”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 알려줄게요.”
 “고마워 동생.”
 “우선 생수가 귀하니까 아껴 마셔야 해요. 특별히 나누어 줄 테니 조금만 마시고 돌려줘요.”
 “아, 알았어.”
 현숙이 생수를 건 내자 미현이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좀 살 거 같았다.
 미현은 순순히 생수를 현숙에게 돌려주었다.
 만약 미현이 생수를 돌려주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생활이 무척 고달팠을 거였다.
 그것을 미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도 이곳에 언제 끌려왔는지 잘 몰라요. 이곳에서 지내다보면 시간도 알 수 없고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어요.”
 “정말 그렇겠어.”
 “대략 한 달 정도 되었다고 추측할 뿐이에요. 어쨌든 우리를 가두어 두는 남자는 아담이라고 하는데 외모만 알 뿐 나머지는 전혀 몰라요.”
 “그리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냉철한 게 아주 무서워요. 소름이 나도록 치밀하기도 해요.”
 “으음, 어떤 남자인지 궁금하네?”
 “과연 그럴까요?”
 현숙은 미현에게 아담에 관한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알려주었다.
 미현은 소변이 누고 싶었다.
 현숙의 설명을 들었기에 한쪽에 플라스틱 용기를 보고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소변을 누었다.
 개 철장에 있다 보니 할 게 없어서 무척 지루했다.
 현숙이 가지고 있는 잡지 두 권 중에 한권을 미현에게 주었다.
 “아···배고프다.”
 현숙에게 설명을 들었기에 하루에 한 번만 아담이 식사를 가져다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예전에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굶기도 하였지만 이상하게 개 철장에 갇혀 있다 보니 더 배가 고팠다.
 덜컹!
 철문이 열리더니 아담이 철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철가방을 수술대 옆에 내려놓고는 미현이 들어 있는 개 철장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깨어났어?”
 “당신 누구예요?”
 “이브가 말해주지 않았어? 난 아담이야.”
 “아담 말고 진짜 이름말이에요.”
 “흐흐흐···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곳은 나만의 세상이야. 여기에서는 오직 아담으로만 살아가고 있어.”
 “그럼 앞으로 날 뭐라 부를 건데요?”
 “이쪽이 이브이니 넌 큰 이브 어때?”
 “그냥 비너스라고 해요.”
 “비너스? 그게 괜찮은데?”
 “성격이 화끈해서 마음에 드는데? 배고프지?”
 “예, 배고파요.”
 머리를 끄덕인 아담이 철가방을 열어 짬뽕과 단무지, 나무젓가락을 비너스(미현)에게 주었다.
 그리고 볶음밥과 단무지, 나무젓가락은 이브(현숙)에게 건 내었다.
 1리터짜리 생수도 하나씩 주었다.
 미현은 지난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쓰렸는데 짬뽕을 먹었더니 속이 풀리고 개운해졌다.
 생수는 아껴야 할 거 같아서 조금만 마셨다.
 “짬뽕 맛있어서?”
 “예, 좋았어요.”
 빈 그릇과 나무젓가락 등을 회수하여 철가방에 넣었다.
 그제야 아담이 미현의 개 철장을 열었다.
 밖으로 처음 나온 미현은 아담보다 더 컸다.
 “자, 저 수술대에 누워.”
 미현은 순순히 수술대에 누웠다.
 아담은 미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냄새를 맡더니 가슴을 만졌다.
 보통 여자라면 반항을 해야 하는데 미현은 현숙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입수했기에 반항하지 않았다.
 아담은 반항하지 않는 미현의 팔과 다리를 각각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는 브라와 팬티도 벗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현은 반항하지 않았다.
 아담은 브라의 냄새를 맡고 옆에 내려놓더니 이번에는 미현의 팬티냄새를 맡았다.
 ‘정말 변태가 분명해.’
 “너무 향기롭고 좋구나.”
 “···!···”
 아담은 맛있는 요리를 먹는 듯이 미현의 몸을 혀로 핥으면서 천천히 즐겼다.
 미현은 반항해봐야 손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가만있었다.
 아담은 수술대에 올라서더니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미현은 남자친구나 직장 상사와 즐긴 적이 여러 번이기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아담은 혼자 숨을 헐떡거리면서 쾌감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써 끝났어?’
 “정말 좋았다. 비너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샤워 좀 하고 싶어요.”
 “좋아, 다른 건 없어?”
 “잡지 한권 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묶어 놓은 미현을 풀어주었다.
 따뜻한 물로 미현은 샤워하고 잡지 한권을 선물로 받았다.
 개 철장에 미현을 넣고 열쇠를 채웠다.
 이번에는 현숙을 꺼내어 수술대에 눕혔다.
 현숙도 반항을 하지 않았기에 아담은 자신만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나 몸매, 가슴까지 미현이 좋았지만 현숙이 나이가 어리고 더 즐거웠다.
 아담은 아름다운 여자와 여고생까지 한꺼번에 즐겼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현숙을 개 철장에 넣고 열쇠를 채웠다.
 꼼꼼하게 한 번 더 살펴보고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한 아담은 철가방을 들고 지하실에서 나왔다.
 설사 개 철장을 탈출하더라도 이 철문에 열쇠를 채워 놓으면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아담은 아주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초소형 감시카메라를 지하실에 다섯 대나 설치해 놓았다.
 자신의 집인 3층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는 지하실 모습이 생생하게 다 보였다.
 동물병원에서 일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이렇게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니, 괜찮아요?”
 “어, 괜찮아.”
 “난 처음에 당했을 때 아주 충격적이었어요.”
 “난 남자친구나 직장상사와 즐겨본 적이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아담이라는 남자는 정력이 약했어.”
 “난 남자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넌 아직 여고생이니 그럴 거야. 처음이 힘들지 경험이 생기다보면 별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이곳을 어떻게 빠져 나가지?”
 “예? 이곳을 탈출할 생각이세요?”
 “응, 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 잘하면 기회가 생기겠더라고.”
 “그러다 잡히면 큰일 나요.”
 “알아, 그래서 확실할 때 기회를 잡아 탈출하려고.”
 아담은 모니터로 영상을 보면서 미현과 현숙이 나누는 대화를 다 엿들었다.
 “흐흐흐···미친년, 넌 절대 그냥두지 않겠다.”
 아담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미현은 현숙과 한창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남 경찰서 형사들이 오 미현이 택시에서 내렸다고 하는 역삼역 조금 못 미친 곳을 중심으로 시시티브이를 설치해 놓은 영상을 확보해 조사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라고 하였지만 자정 때부터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 모습을 보인 자동차들을 전부 용의 차량으로 생각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3만대가 넘는 많은 차량의 통행이 있었기에 너무 방대했다.
 하지만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나서서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관계없어 보이는 차량들은 제외시켜 나갔다.
 평소였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장의 특별지시와 경찰청장도 주시하는 상황이기에 많은 경찰들이 투입되어 빠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3일 만에 드디어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차량이 122대였다.
 이제부터는 경찰과 형사들이 나서서 한 대씩 조사해야만 했다.
 경찰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기자들은 연일 경찰들의 무능함을 떠들고 있었다.
 훈은 에스라인 몸매관리에서 하루에 50여 명씩 손님을 시술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저녁 7시에 퇴근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미라나 아영, 슬하와 번갈아 가며 만나야 했다.
 남들이 보기엔 미녀들과 번갈아가며 만나는 것이기에 부러워 할 수도 있겠지만 훈은 많이 부담스러워졌다.
 세 미녀들 중에 누구를 선택하여야 할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런 훈이었지만 연일 뉴스와 신문에서 떠드는 연쇄실종사건에 관심이 생겼다.
 범인의 흔적이 없어서 단서조차 거의 없다는 게 경찰의 공식 입장이었다.
 벌써 7명의 여자들이 실종되었기에 강남구의 구민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딸이 실종될까봐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어쨌든 모든 원망은 경찰이 듣고 있었다.
 “으음, 내가 한번 나서봐야겠어.”
 저녁 7시가 다 되었지만 오늘은 세 미녀들과 약속이 없었다.
 빌라로 들어가 봐야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마법수련은 일상이기에 제외였다.
 훈은 7번째 실종자 미현이 실종된 장소는 경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그 대신에 6번째 실종자 여고생 현숙이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곳은 경찰이 없어서 안심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늦은 밤도 아니고 저녁 7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기에 현숙이 실종된 대치동의 장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확하게 현숙이 실종된 장소는 골목으로 약간 들어간 곳이었다.
 그래도 지나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았다.
 아직 저녁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대지의 정령이여, 나에게 그 기억을 보여주소서.”
 츠츠츠츠!
 훈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가 순간 사라졌다.
 겉으로는 전혀 변한 게 없었지만 훈의 눈에는 과거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훈은 상관없는 영상은 제외시켰다.
 약 5분 정도 지나자 한 달이 조금 넘은 현숙이 실종된 날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숙이 배낭을 메고 집으로 가기 위하여 골목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소리 없이 뒤에서 접근하는 남자가 있었다.
 165센티미터 정도의 키가 작고 몸무게도 겨우 60킬로그램 정도로 외소 한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확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경을 쓰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기름때가 묻거나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전문직 종사자로 보이는데 회사원이나 넥타이를 매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대롱에 침을 넣어 불었더니 현숙이 그걸 맞고 쓰러졌다.
 죽은 것은 아닌 걸 보니 독침은 아니고 마취제가 들어 있는 침 같아 보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는 재빨리 은색 6인승 승합차에 현숙을 태우고 떠났다.
 훈은 차번호와 차종을 확실하게 봐두었다.
 다른 실종자가 실종된 장소로 이동하여 대지의 기억 마법을 펼쳐 확인해보니 역시나 똑같은 남자였다.
 하는 행동을 보니 꼼꼼하게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다.
 훈이 범인의 차종과 차번호, 얼굴을 알아내었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알아내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훈이 경찰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회하기도 어려웠다.
 턱을 만지면서 고민하던 훈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페밀리어였다.
 아직 2서클에 불과하기에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장담을 할 수는 없었다.
 벤츠에 탄 훈은 마력을 끌어 올리면서 주문을 중얼거렸다.
 스스스!
 훈의 손바닥 위에 투명한 꿀벌이 소환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투명했다.
 “하하하···나의 첫 페밀리어가 소환되었어.”
 무엇보다도 실패하지 않고 페밀리어가 소환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놈을 찾아라!”
 왜애앵!
 날개 짓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꿀벌 페밀리어는 벤츠를 투과하여 날아갔다.
 훈이 범인을 기억하는 모습을 꿀벌 페밀리어도 같이 공유하기에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훈은 벤츠를 운전하여 페밀리어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갔다.
 아담 동물병원.역삼동에 있는 작은 동물병원으로 3층짜리 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1층은 주차장이기에 손님들이 차를 주차하기 편했다.
 동물병원마다 영업시간이 다른지만 저녁 8시에 문을 닫는 곳이 보통이고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아담 동물병원은 저녁 6시까지 영업하고 주말이나 휴일은 무조건 문을 닫았다.
 주로 단골들을 상대하고 5년째 영업을 해오고 있었다.
 원장인 이 역수는 손님들에게 친절하여 단골들이 많았다.
 역수가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역수는 3층의 거실에서 우아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고급 프랑스 레드 와인도 마시면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꿀벌 페밀리어가 창문을 투과하여 안으로 들어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명등에 내려앉았다.
 그것도 모르고 역수는 눈을 감고 클래식 음악에 취해 머리를 약간씩 흔들거리며 나름대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훈은 벤츠를 운전하여 역수가 살고 있는 건물까지 접근하였지만 바로 멈추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지형을 파악했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담벼락에 마침 빈자리가 있어서 벤츠를 주차했다.
 아담 동물병원은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들어온 주택가의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24시 편의점이 보이기에 그곳으로 들어가 캔 커피를 하나 사서 마셨다.
 여전히 역수는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1층 주차장에 범인의 은색 6인승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가 말했다.
 “동물병원이 일찍 문을 닫았네요?”
 “예, 평일에는 저녁 6시에 문을 닫습니다. 급하시면 3층에 원장이 살고 있으니 전화해도 되요.”
 “2층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3층에 살고 있습니까?”
 “예, 아직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훈은 범인이 동물병원 원장으로 행세하면서 여자들을 납치하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자였다.
 범인을 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여서 과자를 두 개 사서 벤츠로 돌아갔다.
 어차피 범인의 집 거실에 페밀리어가 침투해 있었기에 훈의 눈에 다 보였다.
 우아하게 식사를 마친 역수는 상을 치우고 깔끔하게 설거지도 했다.
 그리고는 아담이 입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현숙과 미현에게 줄 김밥과 생수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철가방에 담았다.
 비닐봉투에 들어 있는 여자 속옷도 챙겨 넣었다.
 “김밥과 생수를 왜 철가방에 담는 거지?”
 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역수를 지켜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역수는 모니터로 지하실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녹화되어 있는 영상을 확인 하였다.
 그제야 안심한 역수는 철가방을 들고 거실의 조명등을 껐다.
 주변의 불빛 덕분에 약간 어두워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해야 혹시라도 사람이 찾아오더라도 집에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갈 거였다.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다운 행동이었다.
 역수가 철가방을 들고 다용도실의 벽으로 가더니 벽의 한쪽을 살짝 눌렀다.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문을 닫고 지하로 내려갔다.
 “으음, 다용도실에 저런 비밀스러운 시설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구나.”
 훈도 페밀리어가 아니었다면 알아내지 못하였을 일이었다.
 철문의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닫았다.
 훈의 페밀리어가 철문을 투과하여 안으로 들어가 지하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으음, 저런 곳에 지하실이 있었다니.”
 현숙이 들어 있는 개 철장으로 다가간 역수가 손짓으로 가까이 오게 하였다.
 현숙이 다가오자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는 현숙의 말랑한 가슴을 만져보고는 물러나 철가방을 열었다.
 “오늘 이브에게 줄 식사는 김밥이야.”
 “고마워요. 튀김이나 떡볶이도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오늘 하는 거 봐서 다시 올 때 튀김과 떡볶이까지 준비할게.”
 “보통 김밥은 두 줄이면 되는데 내가 특별히 이브를 위해서 다섯줄을 준비했어.”
 “아담, 정말 고마워요.”
 “오늘 날 기쁘게 해주면 다시 올 때는 먹고 싶은 것으로 하나 더 준비해줄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단 이브가 하는 걸 봐서.”
 역수는 현숙에게 김밥과 생수를 주었다.
 그리고 미현에게 다가갔다.
 “나도 김밥으로 줄 건가요?”
 “아니, 우선 비너스는 나의 물건을 맛있게 먹어.”
 “예? 김밥부터 주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 먼저 날 만족시켜줘야겠어.”
 미란은 어쩔 수 없이 역수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했다.
 미란은 역수의 물건을 입에 넣고 정성스럽게 애무해주었다.
 미녀가 해주는 애무에 역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이제 나도 김밥을 줘요.”
 “흐흐흐···김밥 같은 소리하고 있네. 감히 여길 탈출하겠다고?”
 역수는 허리에 차고 있는 삼단 접이식 전자충격기를 꺼내더니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파지직!
 “아아악!”
 지독한 아픔에 미현이 비명을 질렀다.
 역수는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미현의 몸에 전자충격기를 사용했다.
 미현의 비명소리에 역수는 또 다른 쾌락을 느꼈다.
 “흐흐흐···아주 좋아.”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다는 거지?”
 “모든 걸 다요.”
 “흥, 어디에서 거짓으로 대답하는 거야?”
 미현은 결국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흐흐흐···비너스, 넌 당분간 먹을 자격이 없어.”
 “제발 나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흥, 안 돼. 잘못을 확실하게 뉘우치면 그때 다시 먹을 것을 주지. 이브가 혹시라도 김밥을 나누어 줄 생각이라면 하지 마.”
 “아, 알았어요.”
 겁에 질린 현숙의 신속한 대답에 역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먹던 김밥은 나중에 먹고 지금은 날 즐겁게 해줘야겠어.”
 “아, 알았어요.”
 현숙은 먹던 김밥을 내려놓고 생수를 마셨다.
 그동안 역수가 열쇠를 열어주었다.
 밖으로 나온 현숙은 수술대에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입고 있던 팬티를 스스로 벗었다.
 역수는 충혈 된 눈빛으로 현숙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자세를 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이 모든 모습을 페밀리어를 통하여 본 훈은 절대 역수를 용서하지 못하였다.
 “이놈은 인간이 아니었구나. 법의 심판만으로는 부족해.”
 고민을 해보았지만 선뜻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안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지하실에도 있는 모양이었다.
 훈이 나서면 녹화될 수도 있었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 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간단하지만 역추적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역수가 경찰에 체포되고 다시는 성폭행을 하지 못하도록 물건을 고장 내 버리고 싶었다.
 어느새 역수는 현숙의 몸으로 욕망을 채우고는 다시 개 철장에 가두었다.
 준비해온 속옷을 현숙에게만 주었다.
 철가방에는 미현의 속옷도 들어 있었지만 다음에 줄 생각이었다.
 철저하게 차별대우를 한 역수는 꼼꼼하게 물건을 두지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3층 거실로 돌아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했다.
 페밀리어를 불러들인 훈은 소환해제 시키고는 벤츠에서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감추고는 투과하여 내렸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역수의 건물로 이동해온 훈은 벽을 투과하여 거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역수는 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거실이나 침실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수 있지만 욕실은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자신의 벗은 몸을 씻는 욕실에 까지 설치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훈의 판단은 정확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욕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감시카메라는 없었다.
 “슬립!”
 훈의 슬립마법에 역수가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는 역수이기에 슬립마법이 잘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번 더 슬립 마법을 걸었더니 그제야 역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찬물을 맞으면 깨어날 수도 있었기에 샤워기를 잠궜다.
 몸은 보통 성인 남자들에 비하여 외소한 편이었다.
 이런 자가 어떻게 그런 미친 짓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훈은 역수의 몸을 투시하여 생식기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고환에도 마력을 이용하여 고장 나게 만들었다.
 이로써 역수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즉, 성불구 자가 되어 버린 거였다.
 역수가 마법으로 잠들어 있었기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깨어나면 지독한 통증에 시달릴 거였다.
 “으음, 이제 경찰에 신고하는 것만 남은 건가?”
 훈은 침실로 스며들어 손에 장갑을 꼈다.
 이렇게 해야 지문이 남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침대에 놓여 진 역수의 핸드폰을 가지고 지하실에 내려갔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나서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천장에서 내려다보며 개 철장에 들어 있는 현숙과 미현의 모습을 여러 장 찍었다.
 이 사진들을 살펴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으으···머리야.”
 역수가 유효시간이 다 되어 깨어나려고 하자 슬립 마법을 다시 걸어 잠재웠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훈의 목소리가 녹음되기에 노출의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역수의 핸드폰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순찰 중인 경찰을 보고는 핸드폰을 켜서 바닥에 내려놓고 모자를 살짝 잡아 당겼다가 재빨리 놓았다.
 “뭐야?”
 경찰이 뒤돌아보니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발견했다.
 그런데 실종자인 현숙과 미현의 모습이 보였기에 눈이 커졌다.
 “허엇, 이 여자들은 실종자?”
 경찰은 핸드폰이 왜 여기에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실종자의 모습에 정신없었다.
 즉시 무전으로 동료에게 연락하였고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현숙과 미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여러 장이나 나왔다.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조회하여 소유주가 역수라는 걸 알아내었다.
 형사들이 달려와 역수의 집에 뛰어 들어갔다.
 역수는 욕실에서 깨어나 옷을 입고 거실로 나오다가 형사들을 발견했다.
 형사들이 신속하게 역수를 제압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역수의 범죄가 전부 들어났다.
 기자들이 현장으로 달려오고 강남 경찰서장과 형사과장도 차를 타고 왔다.
 그동안 속을 썩이던 범인을 잡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서장과 형사 과장이었다.
 다음날 아침의 뉴스는 일제히 연쇄실종자의 범인을 경찰이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훈은 아침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았다.
 “내가 한 일이지만 정말 잘했어. 저런 나쁜 놈은 법의 심판도 받아야 하지만 그 이외의 죄도 받아야 돼.”
 훈은 속이 다 후련했다.
 지하실에 비밀리에 마련된 개 철장과 인간 이하의 미친 짓을 펼친 역수에 시민들이 분노했다.
 경찰에 체포된 역수는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하였는지 분석해 봐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인데 실수를 하였다는 게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뉴스마다 이 기사로 난리였다.
 넘버원종합병원 일반 병실.
 동수와 일상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해 있었다.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치료비 걱정이 없었기에 서둘러 퇴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한 지가 석 달이나 흘렀기에 다음 달에는 퇴원할 생각이었다.
 폭력과 절도 등등 전과 5범이고 가진 돈도 없어서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보험회사에서 나온 보험금으로 입원비를 내고도 위자료를 약간 탈 수 있었기에 그것으로 당분간 생활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뇌출혈 때문에 뇌수술을 받은 일상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동수가 일상의 말에도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밤에 둘이 옥상에 올라가 일상이 보여주는 능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바로 염력이었다.
 어떻게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 분석해보니 뇌수술 덕분이었다.
 약간 멍청하고 둔한 일상이었고 동수는 잔머리가 뛰어났다.
 다른 것은 아직 발견을 못한 건지 없는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어쨌든 일상이 염력을 가진 것은 분명했다.
 “일상아, 다른 능력은 없어?”
 “아직까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정신을 집중하면 동수 너의 머릿속도 다 보여.”
 “그래?”
 갑자기 동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상을 데리고 거울 앞에 섰다.
 “일상아, 거울을 통하여 너의 머릿속을 볼 수 있는지 확인해봐.”
 “왜 그래야 하는데?”
 “일단 해봐.”
 “알았어.”
 일상은 동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거울을 보면서 정신집중을 하였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자신의 머릿속이 훤하게 보였다.
 “어, 머릿속이 다 보인다.”
 “그럼 나의 머릿속과 어떻게 다른지 잘 봐.”
 처음에는 일상이 잘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자꾸만 연습을 하다 보니 둘의 머릿속이 약간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뇌 전체는 아니고 뇌수술을 한 부위만 달랐다.
 퇴원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동수는 일상에게 황당한 제안을 하였다.
 “뭐? 어떻게 해달라고?”
 “일상이 너의 머릿속처럼 나도 똑같이 해달라고. 너의 염력이라면 가능해.”
 “잘못되면 어떻게 해?”
 “잘만 하면 나도 염력을 가지게 되는 거라고. 그럼 우린 앞날이 창창해진다. 너 설마 거지처럼 살고 싶은 것은 아니지?”
 “으음, 알았어.”
 일상은 동수의 말에 승복하고 말았다.
 그 대신 뇌는 조금만 잘못되어도 큰일이 나기에 신중하고 완벽하게 처리되어야 했다.
 그냥 시도하다가는 잘못될 확률이 높았기에 동수는 일상에게 실험을 해보았다.
 반찬에 들어간 깨를 모아서 밥 속에 넣고 염력으로 깨를 뽑아내는 것부터 시도했다.
 처음에는 실패하였지만 몇 번 연습을 하더니 성공했다.
 동수는 일상의 시험을 위해서 다른 병실에 살짝 들어가 수박도 훔쳤다.
 수박 속에 들어 있는 씨를 염력으로 뽑아내는 실험이었다.
 수박을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반인은 절대 안을 볼 수 없었다.
 일상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투시가 가능했기에 시도한 실험이었다.
 역시나 실험은 성공이었다.
 그래도 동수는 다른 실험을 몇 번 더 하고는 드디어 일상에게 시술을 받았다.
 잘못되는 끝장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일상이었다.
 늦은 밤 둘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7층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일상은 정신을 집중하여 동수의 머릿속을 투시하더니 자신과 똑같은 상태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3시간 만에 결국 성공했다.
 동수는 지독한 통증에 기절해 버렸지만 아침에 깨어나니 머릿속에 뭔가 들어 있는 거처럼 다르게 느껴졌다.
 동수는 정신을 집중하여 숟가락을 공중에 들어 올리는 염력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였다.
 “너 정말 똑같이 한 거야?”
 “그렇다니까. 좀 더 정신을 집중해봐.”
 “아, 알았어.”
 동수는 하루 종일 염력 실험을 하였지만 실패였다.
 일상의 머릿속과 똑같이 만든다는 거 자체가 황당하고 웃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3일을 연습하였더니 드디어 숟가락을 공중으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동수의 황당하고 무모한 일이 성공했다.
 그래도 일상의 염력보다는 크게 떨어졌다.
 동수와 일상은 병원에서 퇴원하여 야영에 필요한 물건과 식량을 준비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1권 끝>

댓글(5)

mydmsrud    
재작(아니죠) 제작 입니다. 처음엔 오타인줄 알았는데 계속 재작이라고 쓰시네요.
2017.05.05 15:39
gb*****    
정말 재밌게 보고있었는데..가시나 나오면서 기분 팍 잡첬어..너무 뜬금없잔어. 그렇케 조심하면서.가시나는 언제봤다고 대뜸친구먹고. 만난지 하루만에 반말에. 아이고 ~~ 벌써 반해서 남자뒷조사하고 지랄하세요.?
2018.11.29 12:09
ko******    
지능이 높지않은 잡종개라서 슬립마법이 바로 거렸다고요 그럼 운전자는 개보다 지능이 낮은가보네 추적하면서 운전하는게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건데 운전중에 바로 걸리나요 그리고 여자문제 야설도 아니고 웬만하면 빼고 갑시다 나오더라도 한여자만 출연 시키던지
2022.06.24 20:42
ko******    
투명화 마법으로 벽도 투과하는데 뭔놈의 다이어트 지방 흡입술이나 히려는 쥔공이 이해가 안되네 투과가 없다면 모르는데 투과하는데 젖같은 정치인 새끼들 금고에 보관중인 귀중품이나 사채업자들 그외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귀중품이나 현금을 인마이포켓 하던가 답답하네
2022.06.24 21:10
ko******    
여자 시술장면을 남자 형사가 참관 하는게 말이됩니까 여자 형사들이 참관해야지
2022.06.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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