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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7.05.15 조회 17,223 추천 125


 “더럽다, 더러워. 아주 잘 먹고 잘 살아라!”
 한 소년이 악에 바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교무실을 뛰어나왔다.
 그 뒤를 아이의 어머니가 뒤따라 나섰다.
 “영훈아! 김영훈!”
 복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는 중학교 3학년 김영훈이었다. 성경 중학교의 야구부원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이스로 대접받던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야구부 감독에게 물을 끼얹고 쿵쾅거리며 달려 나가는 모습은 놀라운 일이었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사태에 교무실의 교사들도 말을 잇지 못했고, 특히 감독인 김해수는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화를 낼 사람도 상황도 지나가 버렸다.
 “저, 김 감독님. 괜찮으세요?”
 옆에 있던 교사 한 명이 손수건을 꺼내서 건네자 김 감독은 아무 말 없이 받아서 닦았다.
 프로야구에서도 잔뼈가 굵은 스타이자 한 팀의 감독이 중학생 선수에게 물세례를 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치욕이었다. 김해수는 이를 꽉 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저 씨······.”
 차마 욕을 하지 못하고 꾹 눌렀지만 주변의 교사들은 그 뒷말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거구의 김 감독이 행여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김영훈은 계단을 빠르게 내려와 바로 학교 정문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 뒤를 영훈의 어머니가 열심히 쫓았지만 어림없었다.
 한참을 달리던 영훈이 정문을 나가기 전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숨을 헐떡이며 거의 걷듯이 뛰어오는 어머니가 보였다.
 영훈의 눈시울은 이미 붉게 달아올랐다. 이 치욕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또 어머니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감독에게 고개 한 번 못 들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아야만 했는지 자신의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이 야구부에 가져다준 승리가 얼마인가. 자신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은 있었던가!
 대체 왜 자신이 야구발전기금을 안 냈다는 이유로 너무나 당연하다 듯이 부모님까지 모셔 와서 야구부원들과 다른 선생들한테까지 눈총을 받아야 하는가!
 “엄마! 나 이따 집에 갈 거야! 걱정 말고 가 있어!”
 영훈은 혹여 어머니가 턱까지 차오른 숨으로 계속 쫓아올까 미리 말을 하고 돌아섰다.
 영훈의 발걸음은 대중이 없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사람들에게 치이는 대로 가고 있었다.
 영훈의 분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은사 구 감독에게까지 뻗쳤다. 물론 자신의 그러한 생각에 화들짝 놀랐으나 구 감독이 그만두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없었을 것임은 분명했다.
 구 감독은 훌륭한 지도자였다. 비록 김 감독처럼 프로에서 활약하고 온 성경중, 성경고 출신의 성골과는 거리가 전혀 먼 사람이었지만 누구라도 그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 정직하고 외골수라는 점이었다. 재단 측 사람들과는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었고 아이들에게 야구발전기금을 걷은 적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엔트리를 채우고 경기를 내보냈다. 그 덕에 불과 2년 만에 최약팀 중에 하나였던 성경중은 어느새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라면 만만찮게 생각하는 강팀 중에 하나로 환골탈태했다.
 그러나······ 김해수가 프로에서 은퇴한 이후 모든 게 꼬여 버렸다. 프로 코치직을 제안 받지 못한 김해수에게 교장이 먼저 연락한 것이었다.
 그 이유야 워낙 많고 다양하니 하나로 콕 집을 순 없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구 감독은 아이들에겐 좋은 감독이었는지 몰라도 기존 학부모나 재단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너는 앞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 단, 혹사가 없다면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서 건강만 잘 지켜라.
 
 구 감독은 야구부 운영의 미숙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잘려 나가면서도 일언반구 변명하지 않았다. 다만 떠나는 날 영훈을 불러 당부 한마디만 한 게 다였다.
 영훈은 울먹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사만 없이 지금처럼 연습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영훈은 성공을 다짐했다. 그러나 혹사는 없었지만 출전도 없었다.
 “감독님, 저 벌써 한 달째 출전을······.”
 겨우 참다 참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던 날이었다. 야구는 감독의 예술이고 특히 중학교 야구에서 감독의 영향력이란 전지전능에 가까웠기에 출전에 대해 학생이 감독에게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도 아무런 부상도 없는 에이스를 석 달간이나 방치하는 일은 상식에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영훈은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
 김 감독은 말이 없었다. 다만 너무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영훈의 얼굴로 응시할 뿐이었다.
 영훈은 잔뜩 굳어 버렸다.
 짝!
 김 감독의 대답은 말이 아니라 손이었다. 몸무게가 100kg에 다다르는 김 감독의 따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 있던 영훈의 몸은 운동장으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영훈의 덩치도 웬만한 성인보다 훨씬 더 큰 몸이었지만 좀 전의 그 따귀는 그만큼 엄청났다.
 “이 새끼가 어디 감독한테 배 놔라, 감 놔라야? 니가 감독이냐? 니가 공 좀 던진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귀를 맞은 탓인지 소리가 웅웅거려서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령 알아듣더라도 대답할 수도 없었다. 몸이 전혀 말을 안 들었다.
 “이 새끼는 공동체 의식이 없어. 경기에 한 번 나가 보지 못하는 후보도 딱딱 야구발전기금도 내고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데 이건 뭐, 지가 무슨 야구 박사라도 되는 양 꼭 내가 말할 때마다 토를 달지를 않나 에이스라는 놈이 한 번도, 어? 기금도 안 내고, 부모님은 한 번도 오지도 않고!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이야!”
 자신이 토를 단 일이라곤 훈련이라고 공을 100개를 던지게 해 놓고 친선경기 잡았다고 다음 날 선발로 뛰라길래 어제 공을 많이 던져서 어깨가 아프다고 코치한테 말한 게 전부였다.
 물론 그러고도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1.1이닝 6실점이 그날의 성적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후배 감독 기 좀 눌러 주려고 친선 잡고 에이스를 올리려고 한 건데 얘가 감독 말에 항명하고자 태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참 후에나 소문처럼 떠돌던 걸 몰래 들었다.
 아무튼 친선경기 이후로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올라선 적이 없었다.
 아예 훈련도 자신만은 예외인 양 진행했다.
 심지어 자신은 빼놓고 야간 훈련이나 주말 훈련까지 한 적도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혹사만 아니라면 훈련도 하고 좋지, 뭐.’라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시기에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건 고등학교 야구부 진학이 힘들다는 것을 뜻했다.
 특히 고등학교 진학은 감독 마음대로 되는 경향이 심해서 감독이 허락하지 않으면 야구부 진학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원 야구는 감독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돈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인맥이 넓고 능력만 좋으면 얼마든지 아이들을 학교에 꽂아 넣을 수 있었다. 그런 감독의 눈 밖에 난다는 건 야구를 그만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대체 뭐가 죄송한지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저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없었다.
 워낙 맞는 소리가 커서 코치들이 달려온 덕에 영훈이 더 맞을 일은 없었지만 얼굴에 멍이 완전히 깨끗하게 사라지기까지 거의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 감독의 노골적인 왕따는 끊이질 않았고 2학기에 들어서도 경기에 한 번 나가지 못했다.
 사실상 고등학교 야구부 진학은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영훈은 집에는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혼자서 과일 가게를 하는 어머니에게 돈이란 한 달 정도 버티면 다행인 수준밖에 안 됐다.
 대체 어디서 돈이 나온단 말인가?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길 지경인데.
 그러나 다른 부원의 어머니에게 건너 들었는지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대경실색했다.
 “대체 왜 말을 안 했어?”
 영훈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너 고등학교 안 갈 거야? 야구 안 할 거야?”
 물론 자신도 명문 야구 고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상황에는 없었다.
 “내일 학교에 가자.”
 “안 돼요.”
 그제야 입을 여는 영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그동안 우리가 구 감독님 덕분에 편하게 한 거야. 원래 야구하면 돈 많이 들고 그런 거야. 엄마가 오히려 신경을 너무 안 쓴 거야.”
 “안 돼요. 왜 돈까지 주고 빌어 가면서 야구를 해요!”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영훈이 운동장 한편에서 홀로 섀도 피칭을 하고 있을 때 저 먼 곳에서 익숙한 인형人形이 걸어오고 있었다.
 영훈은 그때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서 야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자신도 잘 알았다.
 지금 공부해서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이라면 잘 갈고 닦으면 프로야구에 직행할 수준은 충분했다. 얼마만큼 상위픽을 받느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어차피 3학년도 얼마 안 남았다. 지금만 잠깐 고개를 숙인다면 야구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영훈은 어머니를 못 본 척하고 계속 피칭을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코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훈은 재빨리 덕아웃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어머니가 한쪽에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예상 밖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식이었다.
 “야, 김영훈. 내가 용돈 필요하다고 했냐?”
 “네?”
 영훈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코치와 야구부원도 덕아웃 근처에 몰려들었다.
 “내가 20만 원 받아서 용돈 벌이나 하자고 너한테 훈계한 줄 알아? 어? 형평성이란 게 있지. 다른 집은 다 100만 원, 200만 원도 턱턱 내놓는데 에이스라는 놈이 20만 원 가지고 면이나 세우자는 거냐?”
 영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학원 야구에서 입시 비리와 촌지는 모르는 이가 없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액수를 말하고 돈을 더 내놓으라는 적이 있던가.
 가슴이 답답하고 등골이 시려 왔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을 어찌 볼지 생각하면 오한이 들었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상황에 코치들도 감독과 영훈을 번갈아보면서 난감한 표정이었다.
 이때 투수코치가 귀엣말로 교무실로 올라가서 말하라고 김 감독에게 전하고 자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러닝을 뛰러 갔다.
 김 감독도 그제야 조금 눈치가 생긴 건지 헛기침 몇 번을 하더니 교무실로 향했다.
 그 뒤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르는 어머니가 있었다.
 영훈은 분노와 창피, 슬픔, 억울함 등 온갖 감정에 몸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교무실에 도착해서도 김 감독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 신랄하게 비꼬았다.
 대체 아드님에게 관심이 있으신 거냐며, 저런 국보급 투수를 키워 낸 학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게 다 투자고 프로 가면 몇백 배로 돌아온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영훈의 어머니는 대체 수백의 돈을 갑자기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할 나름이라 김 감독의 대꾸에 대답하지 못했다.
 영훈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교무실에서 일어난다는 사실과 그걸 다른 교사들도 보고 있으면서 모른 체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대답 없는 어머니를 보던 김 감독은 갑자기 자신을 물 먹이려고 장난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영훈의 항명이나 어머니의 20만 원은 조롱이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이 확 상한 김 감독은 아예 영훈과 영훈의 어머니에게 등을 돌려 버렸다.
 “됐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가시죠. 아니, 그렇게 돈도 없으신 분이 왜 무리해서 애한테 야구를 시키세요?”
 김 감독의 진담 반 비아냥 반의 소리에 가만히 있던 영훈은 끝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교무실 한편에 놓인 주전자를 잡고 뚜껑을 열었다.
 몸이 돌아서 있던 김 감독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영훈의 어머니 그리고 그들에게 필사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던 교사들은 그런 영훈을 볼 수 없었다.
 영훈은 주전가에 가득찬 물을 보더니 그대로 김 감독의 머리 위로 다 쏟아 버렸다. 그러곤 욕지거리와 함께 나와 버렸다.
 그게 오늘 오전의 일이었다.
 영훈은 야구부는 물론이거니와 학교도 못 다니게 되었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영훈을 받아 줄 리 없었다. 영훈은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오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다.
 공고와 공대까지 나와 그 와중에도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28세의 영훈은 2년간 알바를 전전하며 취업 준비생으로 남아 있었다.

댓글(9)

그렇다고봐    
잘 보겠습니다.
2017.05.24 19:36
[탈퇴계정]    
조아라 노블레스에서 완결된 작품이 왔네요. 재미있게 봤었는데..
2017.06.07 09:43
뻔쏘    
거짓말같죠 실제 돈 안 주면 저런경우있음 초중고 학창시절에 뒷담화로 소문많았죠 쉬쉬 알면서 모른척..
2017.06.15 15:19
무쌍여포    
조**에서 연재된 작품입니다. 작가님 필력은 매우 좋아요. 아이템도 좋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진도가 많이 느려요.. 아주 많이... 긴 호흡으로 보면 괜찮은거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작 하시길~~
2017.06.29 11:34
방이동    
위에 짜증나는 스포댓글이 있는데 삭제 안 하나요?
2021.01.17 02:09
말창님    
작가행님 포수로 승승장구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슴다 감질맛 나서 전작 찾아왔슴다 이 작품도 기대하고 볼게요
2021.02.28 03:43
바보승진    
저랑같은분이있네요..ㅋㅋ 포수로승승장구재밌어서 왔는데 이미 읽은 책 ..ㅋㅋ 완결까지간거보니 다시 정주행갑니당!ㅋㅋ
2021.02.28 10:42
허소    
포수로 승승장구 보고 또 왔습니다. 역시나 저같은 분들이 많네요. 포수도 작가님도 승승장구!
2021.03.01 18:05
철혈마군자    
저도 삼국지 정훈전부터 포수로 승승장구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ㅋㅋ 영훈이가 끝판대장급 포스를 뿜더니, 여기 주인공이었군요. 신나게 정주행해보겄습니다.^^
2022.08.1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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