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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절대고수 1-1권

2017.06.14 조회 10,481 추천 75


 # PROLOGUE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들어봤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나무꾼이 구해준 이야기 말이야. 나중엔 사슴 녀석이 목숨을 구해준 노총각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는답시고 선녀 전용 노천 목욕탕을 가르쳐 주기까지 해.
 그런데 나무꾼이 구경도 모자라 심지어 선녀 옷까지 훔쳐버리네?
 이쯤 되면 선녀는 공연음란죄로, 나무꾼은 절도에 성폭력특례법 위반으로 쇠고랑 차고도 남을 일이지.
 그럼 사슴은 공범이 되나?
 아무튼 그런데 말이야.
 내가 그 선녀를 만났어.
 
 
 # 1.
 
 으음···, 이건 무슨 냄새일까?
 어디선가 풍겨오는 냄새.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음식물 쓰레기를 안 버렸나?
 코까지 덮인 이불에서 나는 향기 역시 예사롭지 않다. 역한 담배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난 담배 끊었는데······.’
 비흡연자들은 우습게 생각들 하겠지만 40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자랑할 만한 성과물이라 할 만한 건 바로 금연이다. 그만큼 내세울 것이 없을 정도로 내 인생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불혹(不惑)의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년 대리로 거의 명퇴 직전에 몰려 곧 다가올 새해의 밥벌이조차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결정적인 것은 아직까지도 모태솔로라는 것.
 힘겹게 눈을 떠보니 방바닥에 요를 깔고 누워 있다. 침대는 어디로 갔을까?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동창 녀석의 강매에 할부로 들여놓은, 원적외선을 펑펑 뿜어준다는 돌침대 위가 아니다.
 게다가 옆에는 이미 끊은 것이 확실함에도 빈 담뱃갑과 라이터, 재떨이까지 보인다.
 ‘어디야, 여기?’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 두 명이 간신히 발 뻗고 잘 만한 온돌방이다.
 ‘설마?’
 아는 곳이다. 내 대학시절 자취방.
 ‘꿈일 거야.’
 절대 꿈이어야 해.
 설마 내가 이젠 갈 때까지 가서 원룸 보증금까지 빼먹고 이 자취방으로 다시 들어온 건가?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저기···,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누가 있을 리가 있나?
 다이서에서 산 것으로 기억나는 동그란 중국산 알람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분명 여자나 한번 낚아볼까 해서 가입한 3040산악회에서 주관하는 새해맞이 지리산 등반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대학 시절 자취방이다.
 역시 꿈이다. 깨어나야 해.
 아니지. 내가 왜 깨어나?
 지금 형편이 그때보다 나은 것도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꿈이나 제대로 꾸자.
 난 다시 베개를 베고 드러누워 버렸다.
 여긴 아마도 지리산 산장이거나 그도 아니면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이겠지.
 고된 등반으로 피곤한 탓에 잠을 자고 있는 걸 거야.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거지.
 다시 누워 잠을 청하자 신기하게도 곧바로 잠이 쏟아졌다.
 
 ***
 
 꿈속에서도 역시 난 지리산을 헤매고 있다.
 아마도 처음 접한 야간 종주라는 힘든 여정 때문인가 보다.
 얼어붙은 어느 계곡 가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 웬일인지 다른 카페 회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 길을 잘못 들었나? 그럼 큰일인데?’
 꿈인데도 살벌하게 춥다. 입술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데도 난 눈 덮인 산등성이에 앉은 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젠장! 이제 어떻게 하지?’
 뭘?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냥 명예퇴직 신청서를 내야 하나?’
 그렇지.
 난 명퇴를 강요당하고 있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명퇴라니?
 게다가 번듯한 아파트 하나 장만 못 해 월세 원룸에 살면서 10년 전에 가입한 주택부금을 아직까지 다달이 붓고 있는데 명퇴라니!
 ‘하기야 주택부금이 문제가 아니지.’
 주택부금은 둘째 치고 정말 문제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 자리를 잡고 제대로 가장노릇하며 사는 거여? 어째 방송 만든다는 회사에 그렇게도 처녀가 없냐?’
 ‘엄마, 요즘 처녀가 어디 있어? 야! 니네 회사가 그래도 생으로 남탕은 아닐 거 아니야?’
 ‘그래서 뭘 어쩌라고?’
 ‘무명이라도 여배우 하나 붙잡고 술 먹여?’
 ‘우리 회사 여직원들이 너냐? 걔들은 술 먹여서 자빠뜨리면 고소하고도 남을 애들이야.’
 ‘이 자식이 엄마 있는데서 누나한테?’
 
 정말 아무나 붙잡고 술을 퍼마신 후 애를 가지게 되자 할 수 없이 결혼에 골인한 누나 인주가 떠오른다.
 인주에게 술을 먹여 뻗게 만든 산적 같은 놈이 내 매형이 되었다.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확고부동한 신념. 하지만 신념을 올곧게 밀고 나가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비관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일단 회사를 그만두면······?’
 결혼은 더 물 건너간다. 그나마 1년에 한두 차례 들어오던 맞선 자리도 끊길 것이 자명하다.
 ‘버티자.’
 버티자고 결론을 내렸지만 버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수모를 당해야 할까?
 3040산악회에서조차 내년이면 마흔하나이니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듣는 처지인데.
 ‘그나저나 이 3040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상념을 접은 나는 그제야 종주 대열에서 이탈한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리산!
 게다가 한 밤중에 이루어지는 야간종주.
 기온은 영하 15도, 체감온도는 무려 20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안 추울까?
 입술은 얼어붙는 느낌인데 몸은 떨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어둠은 여전하고, 새벽안개까지 짙게 내려앉은 산중에 주변을 돌아봐야 보이는 게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뿌연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
 바로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 조금 위쪽이다. 안개 사이로 붉고 푸르스름한 빛이 어지럽게 어울리며 쏟아지고 있다.
 ‘뭐지?’
 난 슬금슬금 배낭을 둘러메고는 신비한 빛이 흔들리는 곳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 미끄럽고 가팔랐지만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간신히 둔덕에 팔을 걸치고 목을 내미니 제법 큰 계곡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게다가 푸르스름한 계곡물에서는 짙은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다.
 물은 얼지 않았다. 손을 슬쩍 담가보니 뜨겁기까지 하다.
 ‘여기 온천이 있었나?’
 노고단 100m 아래에 온천이 있다고?
 말도 안 되지. 야간종주는 처음이지만 지리산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그럼 이 온천은 뭐야?
 순간 안개 사이로 희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누, 누구세요?”
 깜짝 놀란 난 등산스틱으로 엎드려 총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계곡물 위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복숭아처럼 생긴 구체가 계곡물에 밀려 내 앞까지 밀려왔다. 나는 조심스레 구체를 낚아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딱 보니 복숭아 같네. 너무 익어 연분홍빛이 되어버린 복숭아다.
 엄동설한에 누가 노고단 근처 계곡에서 복숭아를 씻어 처먹고 있어?
 주변을 다시 둘러봤지만 안개만 자욱하고 과일(?)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얼핏 봤던 그림자는 착각이었나 보다.
 ‘먹는 건가? 복숭아 같긴 한데···. 킁킁킁!’
 나는 구체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았다. 향기로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온다.
 혀를 내밀어 한 번 슬쩍 핥아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 느껴진다.
 ‘쩝쩝! 맛이 죽이는데?’
 향기롭고 달콤한 맛에 난 곧바로 복숭아(?)를 입안으로 구겨 넣고 말았다.
 Oh! So good delicious!
 입에서 느껴진 맛은 신선하고 달콤한 반면, 목구멍을 넘기자 약간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가 갑자기 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술에 취한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헤헤헤!”
 실없는 웃음까지 흘러나온다. 순식간에 제정신이 아니게 된 나는 술에 취한 기분이 들자 평소 잘 부르지 않던 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끄억! 취한다.”
 복숭아는 아마도 고농축 알코올 복숭아였나 보다. 난 지리산 노고단 근처 계곡에서 술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다 술친구를 하나 소환해내 흑역사를 고스란히 읊어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극비에 해당하는 말까지 언급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도 끄윽! 인성이의 해피타임조차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거지. 남들은 심지어 꿈속에서도 한다는데 나··· 는··· 흐흐흑!”
 40년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온 비밀인데 그걸 술김에 직접 소환한 누군가에게 털어놓다니!
 그것도 모자라 내가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장가를 가겠노라고 다짐을 하기까지 했다.
 또, 명퇴나 당해야 하는 표준 이하의 직장인이 아니라, 회당 원고료 5억 원을 받는 대박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말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박! 대박! 대박! 대박! 끄으윽!”
 그렇게 온갖 주접을 다 떨고 나자 갑자기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산바람이 내 취한 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하더니, 곧 입조차 열 수 없을 정도의 한기가 가슴을 옭죄어 왔다.
 ‘아! 시발!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장가를 가지 못한 것이 가장 서러웠다.
 
 ***
 
 “야, 일어나!”
 “······.”
 “일어나 인마! 시험 안 볼 거냐?”
 어디선가 괴물이 울부짖는 것 같다.
 ‘내가 아직 안 얼어 죽었나?’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코앞에 괴 생명체가 바짝 다가와 있다.
 “누, 누구세요?”
 “누구긴 인마! 나야, 나. 시간 다 됐어.”
 이놈은 뭘까?
 내가 얼어 죽으려는 걸 지리산 반달곰이 물어다 살려줬나?
 매형과도 흡사한 놈.
 “누···, 누구세요?”
 “헐! 빌어먹을 놈! 졸업시험 기간에, 그것도 마지막 전날에 술이나 퍼마시고 잘하는 짓이다.”
 반달곰은 심지어 나에게 자신을 왜 모르냐며 화까지 낸다.
 반달곰은 말을 못하는데?
 사람이구나.
 “너는···, 누구세요?”
 “난 왜 안 불렀는데?”
 피부는 시커멓고 덩치는 반달곰보다 더 큰 놈은 누구냐고 묻는데도 내가 혼자 술을 마신 게 분하다는 표정을 하며 따진다.
 하지만 난 술을 혼자 마신 적이 없기에 대답할 재간이 없다. 대신 방금 녀석이 한 말이 궁금하다.
 졸업시험이라니?
 요즘은 명퇴하는데도 졸업시험을 보나?
 “아, 근데 왜 옷은 홀라당 벗고 자빠져 자고 지랄이냐? 더는 못 봐주겠다. 얼른 옷 입고 나와.”
 “······.”
 “그리고 쓰레기 좀 치워라. 냄새나서 여기가 난지돈 줄 알겠다. 얼른 나와 인마!”
 “······?”
 반달곰은 제 할 말을 하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난 한마디도 못 했는데.
 놈은 누굴까? 분명 익숙한 얼굴인데······.
 그 순간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황성이잖아?’
 이름이 유명 만화가와 같아서 쉽게 잊을 수 없는 데다가 대학시절 유일하게 친구 먹고 지냈던 녀석.
 바로 황성 그 녀석이다.
 그런데 저 놈이 왜 여길 나타났지?
 혹시 내가 명퇴하려는 걸 막으려고?
 아니지. 놈이랑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만나 신세타령을 하는 사이인데······.
 더구나 놈은 결혼한 후 귀차니즘의 극치를 이루더니 몸무게를 130kg대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놈이 새해 벽두부터 지리산으로 날 찾아왔을 리는 없지.
 근데 여긴······.
 지리산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긴 도대체······.
 맞다. 대학 시절 내가 살던 자취방. 밥상 겸 책상으로 쓰던 교자상과 그 위에 널브러져 있는 전공서적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얇은 다리를 가진 1인용 중국산 컴퓨터 책상까지.
 이곳은 분명 대학시절 내내 내가 머문 명륜동 자취방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야, 빨리 나와. 새끼야!
 
 
 # 2.
 
 한국예술영화대학교.
 줄여서 한예영이라고 부르는 곳.
 반달곰 아니 황성은 강의실로 날 끌고 들어가더니 책상에 패대기를 쳤다.
 주변을 돌아보니 꽤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다. 하나같이 익숙한 얼굴들.
 순간 내 얼굴은 달아오르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다.
 ‘으윽! 프러포즈 3인방이잖아?’
 저년은 백여우 백해진이고, 으흠! 저년은 불여우 송리나, 그리고 저년은 그나마 좀 덜 여우인 노말폭스 정수지네. 내가 프러포즈를 했다가 차인 애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쯤 되면 이건 악몽이다.
 백해진에게는 주제 파악을 하라는 말을 들었고, 송리나에게는 아빠한테 이른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나마 정수지에게서는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선배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 쪽팔려.
 “야! 연예가중계야. 오늘은 뭐 소식 없냐?”
 고막이 너덜거리는 느낌이다. 황성이 곰 울부짖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묻는다.
 “없을 리가 있나?”
 마치 뉴스처럼 무미건조한 멘트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뭔데?”
 “오늘은 한국의 용엄마 제니퍼 정에 관한 썰이다.”
 제니퍼 정이란 말이 나오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대가리들이 모두 한 녀석에게로 향했다.
 김수완.
 형이 충무로 유명 카메라맨이라 녀석은 항상 영화계 소식을 가득 담고 다니곤 했다. 그래서 나와 황성은 녀석을 연예가중계라고 불렀었다.
 “야! 제니퍼 정하고 용엄마 대너리스하고 비교할 건 아니지. 대너리스는 키가 160도 안 되지만 우리 제니퍼는 자그마치 170 아니냐? 소식이 뭔데?”
 황성의 말에 김수완이 피식 웃는다.
 “너네 제니퍼는 아니라는 걸 먼저 밝혀두고 싶다. 아무튼 제니퍼가 우결에서 요리를 잘한 건 선천적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후천적인 요인이란 말이 있어.”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황성은 마치 당장이라도 덮칠 기세로 되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럼 우결에서 우리 제니퍼가 요리 잘한 게 경험이 많아서란 말이야?”
 “말도 안 돼. 그럼 항간에 떠도는 그 소문이 사실?”
 심지어 프러포즈 3인방도 합세한다.
 “누가 퍼트린 소문인지 모르지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겠네.”
 “맞아. 제니퍼가 만으로 스물이 안됐지? 누가 미성년자를 약취 유인했단 소린데?”
 난 문득 제니퍼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제니퍼? 혹시 헝거게임의 그 제니퍼 로렌스? 걔가 우결에 나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제니퍼 로렌스가 우결에 출연하다니? 그건 에밀리아 클라크가 진짜 데너리스 타르가르옌(註: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조지 R.R.마틴이 쓴 서사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명)이고, 자식을 셋 두었는데 다 새끼용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방송영상학과를 다니면서 늘 영화계와 연예계에 관심을 가졌지만 제니퍼 로렌스가 헝거게임에는 출연 했어도 우결에 나와 밥 짓고 세탁기 돌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살짝 제니퍼 정이란 여자가 궁금해졌다.
 “근데 제니퍼가 누구냐?”
 난 황성에게 살그머니 물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낮춘 보람은 전혀 없었다.
 반달곰이 콰우우우 하고 울어 댄다.
 “허얼, 시발! 연변아! 너 혹시 뭐 잘못 먹었냐?”
 황성이 순식간에 과거 내 별명이 연변거지였다는 걸 확인시켜주며 되묻는다.
 “잘못 먹다니? 너한테 끌려오느라 아침도 못 먹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저절로 말이 막 새어 나온다. 그것도 마흔의 나이에 핏덩이들에게 연예인에 대해 묻다니······.
 “야, 인마! 넌 어떻게 한국의 용엄마도 모르냐? 연예가중계야. 우리 제니퍼에 대해 읊어봐라.”
 “제니퍼 정, 만 18세. 미국뉴욕 출생이고 부모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도 돌아가셨어. 줄리아드를 14살에 입학해서 16살에 졸업한 음악 신동이지.”
 반달곰의 말에 김수완이란 녀석이 아주 능숙하게 읊어대기 시작했다. 책까지 보면서 여유 있게 읊어대는 걸 보니 보통 수완이 좋은 녀석이 아니다.
 “뭐 열네 살?”
 내가 놀라 묻자 반달곰이 언어폭력을 가했다.
 “이 자식 정말 모르는 것처럼 생 까네?”
 김수완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싱글 한 곡을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국내차트야 말할 것도 없지.”
 “그, 그리고?”
 “곧바로 영화배우로 전향해서 작년 영화상은 싹 쓸어 담고, 곧바로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을 올려 현재 역대 박스오피스를 다 갈아엎은 상태지.”
 궁금해서 못 참겠다.
 “그런데?”
 “갑자기 우결에 자진 출연 중. 회당 출연료가 사상최고가인 10억대란 소문이 있어.”
 김수완의 설명이 끝이 나자 난 어이가 없었다. 그때 백여우 백해진이 끼어들었다.
 “난 걔가 우결에서 요리하는걸 보고 감이 팍 왔어. 딱 보니 유부녀 솜씨던데 뭐.”
 “맞아. 걔가 우결 같은데 나온 이유를 알겠다. 딱 요리연습 하려고 나왔네. 어쩐지 월드스타가······.”
 빅여우의 말을 불여우가 받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저것들의 의견은 저것들이 질투할 정도로 제니퍼 정이란 여자가 예쁘단 말로 알아들으면 된다.
 “요리학원 다닌 거 아닐까? 교포였던 애가 김치찌개를 어떻게 그렇게 잘 끓여?”
 아니나 다를까?
 노말 폭스도 끼어든다. 그때 황성이 으르렁거렸다.
 “네가 먹어봤냐?”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아? 하기야 오빠는 좀 그렇겠다.”
 “이게 씨!”
 제니퍼정에 대한 이야기가 반달곰과 여우의 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남편은 누구래? 설마 우결 같이 나오는 김성민?”
 오호! 평소 입 다물고 사는 편인 방송영상학과 고시파 송정우까지 나서?
 “우리 성민오빠 아니거든요?”
 송정우의 말에 백여우가 따지듯 쏘아 붙였다.
 김성민은 5인조 아이돌 그룹인 라운딩의 리드싱어. 내가 알기로는 스물한 살인 걸로 아는데 저년은 오빠라고 부른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오! 지금 실검 1위야.”
 아, 깜작이야.
 “뭐가?”
 “제니퍼 정 결혼, 제니퍼 정 남편, 제니퍼 정 유부녀, 제니퍼 정 국민사기, 우리 처남은 누구? 실검 1위에서 10위까지 싹쓸인데?”
 헐! 우리 처남은 뭐냐?
 갑자기 강의실이 시끄러워졌다.
 아! 애들은 피곤해.
 일단 제니퍼인지 뭔지는 뒤로 미뤄두고 난 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꿈치고는 정말 리얼하지 않은가?
 평소에 날 연변거지라고 불렀던 동창생들 사이에 다시 앉아 있게 되다니. 하지만 꿈은 깨라고 있는 법. 설마 시험까지 치지는 않겠지.
 사실 꿈에서 크게 깨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긴 하다. 그나마 옆에서 풍겨오는 파릇파릇한 젊은 풋내가 마냥 좋기만 하다.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프러포즈 했다가 차인 여자애들을 살펴보려다 불여우 송리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뭘 봐요?”
 싸가지 없는 년. 그때는 저런 말을 들어도 무안해서 대꾸도 못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이 복수를 해줄 절호의 찬스다.
 난 제대한 지 1년도 안 된 복학생이 아니고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면서도 당당한 대한민국이 40대 아저씨니까.
 “왜? 이번엔 엄마한테 이르게?”
 “아, 씨! 예비역들 정말 싫어.”
 “너무 싫어하지 마라. 현역이 다 예비역 되는 거다.”
 “흥!”
 송리나가 팩하고 고개를 돌린다.
 ‘쟤가 나중에 어떻게 됐더라?’
 맞다. 유명한 미니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했었지. 그때만 해도 동창회 나오면 기고만장했었는데.
 나중에는 크흐흐!
 아무튼 무슨 일인가로 구설수에 올라 눈물 콧물 다 짜고 했었지.
 그거 참 쌤통이었다. 너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네티즌들도 다 엄마한테 이르지 그랬냐?
 “선배! 왜 자꾸 재수 없게 보면서 웃어요?”
 “아니다. 이제 안 볼 테니 엄마한테 이르진 마라.”
 송리나가 마치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날 노려볼 때 강의실 앞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도교수 한상덕, 그리고 조교 채선민이다.
 ‘이거 꿈에서 졸업시험까지 치는 거 아니야?’
 적중률 100%다.
 “자 마지막으로 출석 한 번 부르자.”
 지도교수 한상덕은 출석부를 꺼내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난 생각했다. 지금이 꿈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가 스물일곱이었나, 여덟이었나?
 한 살에서 열세 살 사이는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때의 기억은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스물일곱에서 마흔 사이의 13년은 내 인생의 악몽과도 같았다.
 만약 지금 이순간이, 그럴 리는 없지만 현실이라면?
 난··· 결혼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결혼이다.
 얼마나 결혼 못 한 것이 서러웠으면.
 훌쩍!
 아니지. 결혼만이 문제가 아니지.
 만약 지금이 현실이라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가 되는 거야.
 만년 대리라는 딱지를 단 채 명퇴 직전까지 내 몰리지 않아도 돼. 주택부금이나 꼬박꼬박 부을 게 아니라 남들처럼 주식이나 채권 같은 걸 해서 강남에 아파트를 몇 채 장만할 수도 있고 말이야.
 차도 200만 원짜리 중고 경차가 아니라 뽀다구 제대로 나는 걸로 바꿔야지.
 또, 3040산악회가 아니라 2030산악회에 들 수도 있어.
 냄새부터가 다르잖아?
 이게 만약 현실이라면 아예 해외로 눈을 돌려서 국제결혼······.
 그건 아니지. 국제결혼까지 떠오르는 걸 보면 국내에선 아주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거야.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결혼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간 나.
 그럴 만도 하다. 결혼하고 싶은데 못 해본 사람은 내 심정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들과 유전적 동질감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수컷들의 갈망을.
 요즘은 결혼 안 하고 혼자 산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능력이 되는데도 싱글로 살겠다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아무튼 지금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지도교수 한상덕은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여우들의 이름이 즐비한 가운데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다.
 “오인성!”
 “······.”
 “오인성?”
 “네, 네?”
 이런 젠장!
 내 이름조차 낯설다. 심지어 지도교수가 감히 40대인 내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는 것조차 거슬린다.
 ‘나도 아저씨 다 됐네.’
 그래, 난 그렇게 아저씨가 다 된 거야.
 그런데 만약 지금이 현실이라면?
 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 절대 몇 푼 안 되는 월급의 유혹에 빠져 악덕 오너 정성진이 지배하는 성진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원래 꿈꿨던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절대 카드 신청할 때 포인트의 유혹에 빠져 이 카드 저 카드 저울질하지 않을 것이며, 신라면 값 500원 더 아끼려고 집 앞 편의점을 놔두고 3km 떨어진 대형마트까지 걸어가는 미련도 떨지 않을 것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인생은 시간이라고. 그러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이다.
 “오인성!”
 “예, 교수님!”
 다시 불린 내 이름에 고분고분하게 대답도 잘 나간다. 얼핏 봐도 나하고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인 한상덕 교수.
 “별에서 온 킬러 잘 읽었어.”
 아! 별에서 온 킬러?
 내가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시나리오의 제목이다.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들이 들리는군. 싸가지들!
 “감사합니다.”
 난 한상덕 교수의 말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함을 깨달았다. 전에도 이런 말을 들었었고 곧 한상덕이 마수를 뻗쳐 올 것이란 걸 말이다.
 그리고 난 그 마수에 빠져 무려 1년 반이란 세월을 댓글과 말풍선을 달며 지내게 된다.
 자랑스러운 한국예술영화 대학교 선배인 정성진이 설립한 성진 엔터테인먼트에서 그렇게 열정 페이의 노예가 되어 20대를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지.
 나는 오늘 절대 지도교수 사무실에 가지 않을 것이다.
 “군대를 갔다 와서 그런지 내용이 많이 성숙해졌더군.”
 탁탁!
 지도교수의 뜬금없는 칭찬에 시험을 보던 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자, 조교 채선민이 시험 때면 들고 다니는 플라스틱 자로 탁자를 두 번 내려쳤다.
 애들 대가리가 일제히 다시 숙여진다.
 “시간 있을 때 내 사무실에 한 번 들려요.”
 ‘절대 안 간다. 이놈아!’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바로 미소를 날리며 성실한 예비역으로 위장크림을 발랐다.
 “네. 교수님!”
 이어지는 출석체크.
 그런데 왜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걸까?
 결국 난 시험지까지 받고 말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시험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시험은 두 시간 정도 이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1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정도의 문제들.
 필기든 실기든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 졸업시험.
 다른 대학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쪽 계통은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야만 한다.
 몇 문제의 답을 달고 나니 슬슬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졸음에서 벗어나려 허벅지를 꼬집어 뜯는 한심한 나.
 지금이 꿈속인 것 같은데 꿈속에서도 잠이 오다니?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몇 차례 세차게 흔들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 3.
 
 퍽!
 “아악!”
 누군가 내 뒤통수를 팼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살인적인 타격이다.
 “야! 시험 끝났다. 그만 일어나라.”
 강의실은 어느새 텅 비어 있다. 그리고 날 잡아 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황성.
 흡사 이빨을 드러낸 곰 같은 녀석을 보니 조금 전 꿈의 연속선상에 있다.
 꿈이라서 다행이다.
 “너 오늘 못 가겠다?”
 “어딜?”
 “종강파티! 한가옥에서 우리 소 먹는다는데?”
 반달곰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강의실에 들어올 때처럼 날 잡아끌고 밖으로 나가던 황성의 말에 오늘 종강파티를 했었다는 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왜 종강파티에 가지 못할까?
 “근데 난 왜 그 좋은 델 못 가는데?”
 어디가 꿈인지 어디가 생시인지 분별을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헛갈린다. 아무튼 난 왜 종강파티에 가서 우리소를 먹지 못하는 것일까?
 “너 알바 안 가냐?”
 “알바?”
 아! 난 알바를 했었지.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 직전부터 시작해서 대학 졸업하고 성진 엔터테인먼트에 착취당할 때까지.
 심지어 군대도 나에겐 알바였다.
 알바의 시작은 아버지의 고지식한 교육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웬만한 애들은 4년 내내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대부분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쓰는 반면, 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사내란 놈이 제 입에 풀칠도 못 하면 가족은 어떻게 먹여 살릴 거여?’
 
 이 한마디로 내 대학생활은 잔인한 알바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내가 변변한 미팅 한 번 못하고,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것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
 “너 어제도 편의점 안 나갔다며?”
 “편의점? 내가?”
 "너 정말 왜 그러냐?"
 반달곰이 먹이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돌아선다.
 187cm 장신에 체중은 근 100kg.
 한 대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신체적 위협을 느낀 난 갑자기 알바가 가고 싶어졌다.
 “아니야. 알바 가야지. 그럼 난 종강파티 못 가는 거네?”
 “그걸 나한테 왜 물어 인마! 나중에 2차 갈 때 연락할게 전화나 잘 받아. 나 먼저 간다.”
 교문 밖을 나서자 황성은 수화기를 귓가에 대며 통화하는 시늉을 하더니 쿵쿵거리며 사라져갔다.
 막상 황성이 사라지자 난 어디로 가야할 지 난감해졌다.
 ‘염병! 길도 잘 모르겠네. 일단 혼자 있으며 생각을 다듬을 곳으로 가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를 명확히 구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갈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다. 아침에 발가벗고 일어난 냄새나는 자취방.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 자취방 앞에 도달하자 그나마 마음이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일단 청소부터 하자. 도대체 무슨 냄새가?’
 방문 앞에만 섰을 뿐인데도 악취가 진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나자 난 다시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은 깨끗이 치워져 있다. 심지어 향기로운 냄새까지 난다.
 누가 내가 나간 뒤 청소를 했다는 얘긴데?
 그때 방에 걸린 거울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야! 왜 이런데 살아? ㅠㅠ 그리고 전화는 왜 안 받는데? 자꾸 이러면 나 정말 화낸다. 혹시라도 그 여우같은 것들이랑 같이 어울리면 주거.>
 
 쿨럭!
 빨간색 루주 바른 입술로 죽인다는 말인가?
 일단 기침부터 나온다.
 자기는 누구며 집은 어디?
 혹시 누나가 왔다가 장난을? 나는 얼른 손가락을 가져다 거울에 또렷하게 남겨진 루주 자국의 크기를 측정했다.
 누나가 아니다. 누나의 메기입과는 사이즈부터가 다른 아담하며 예쁜 입술이다.
 누군가가 집을 잘못 찾아 지랄을 하고 간 것이 분명하다.
 부럽다.
 이번에 나갈 때는 문을 잠그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진 나는 방안을 샅샅이 뒤져 전화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 전화기는 없다.
 ‘어디다 뒀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날 리가 없지. 자그마치 13년 전 어느 날, 내가 휴대폰을 어디다 뒀는지까지 기억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일단 뭘 해야 할까?
 알바를 가야지. 만약 알바 나가서 일을 하는데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지금이 현실인거다.
 그렇다면?
 대박 난 거지.
 
 ***
 
 다시 명륜동 자취방을 나선 난 대학로로 향했다. 서울대학병원 입구 건너편 GL24가 내가 알바를 했던 곳.
 그나마 4학년 2학기가 된 후에는 알바를 줄여 편의점 알바 4시간이 전부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지금이 입대 전이라면 난 알바를 새벽 3시까지 해야 한다.
 혜화역 근처까지 다다르자 명륜동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연극 홍보가 한창이다. 게다가 거리를 메운 인파는 거의 다 파릇파릇한 새싹들.
 흐음!
 코로 들어오는 공기마저도 신선하다.
 하지만 편의점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자 곧바로 기분이 다운되고 만다.
 ‘저것들이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을 배출한 후 분리수거도 안 하고 내뺄까?’
 직업은 역시 정신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걸 확인한 나는 서둘러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의 행복을···, 오빠 정말 너무 한다?”
 ‘오빠? 설마 쟤가 내 동생?’
 아참! 난 동생이 없지. 그렇다면 저 푸른색 유니폼 사이로 살집이 튀어나오려 요동치는 뚱땡이는 절대 내 동생이 아니다.
 나는 동생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나와 교대를 하던 고딩 알바 이미례다.
 “미안! 내가 많이 늦었니?”
 “헐! 늦은 게 아니지. 무단으로 이틀째 안 나왔잖아? 휴대폰은 여기 놓고 도대체 어디로 잠수 탔냐며 점장님이 날 얼마나 갈구는지······.”
 “미안하게 됐다.”
 “게다가 이상한 소리도 하더라.”
 “무슨 소리?”
 “나랑 오빠랑 사귀는 거 아니었냐면서 왜 사귀는데 집도 모르냐고 따지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데?”
 ‘이런 시발!’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마흔 넘어서 싸가지 없는 10대와 싸울 수는 없지.
 “아무튼 고생했다. 전화기는 어디 있니?”
 “여기 있어. 그럼 난 간다.”
 저 싸기지 좀 보소. 잔돈계산해서 시재는 인계를 하고 가야지 그냥 줄행랑을 치네?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라?
 이미례를 흉보면서 이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편의점 알바는 반드시 교대 알바에게 현금 시재를 확인하고 넘겨줘야 한다.
 그런데 그냥 가버리는 이미례. 그렇다면 이건 꿈이군.
 순간 나는 다시 허탈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반전.
 편의점 문이 열리며 이미례가 다시 돌아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참! 시재 확인하고 가야지. 이게 다 오빠 때문이라니까?”
 꿈이 아니군. 현실이야. 설마 꿈이 편의점 현금 동전 수까지 확인할 정도로 디테일일 리는 없잖아?
 이미례가 시재를 계산하는 동안 난 얼른 전화기를 켰다.
 로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딩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확인 메시지 99개가 있습니다.
 
 ‘헐?’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내 폰에 디도스 공격을 가했나?
 난 가장 최근 메시지부터 열어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야. 왜 전화기가 꺼져 있어?
 -자기 어디야?
 -자기 정말 이러면 나 명륜동으로 찾으러 간다?
 ······
 ···
 
 ‘뭐냐?’
 난 황당한 문자에 기가 막혀하면서도 계속 문자를 확인하는 중.
 
 -이런 곳에서 살다니 자기 너무 불쌍해.
 -넌 여기 살아도 싸.
 -이번 주에 인사드린다고 했잖아.
 -혹시 너 딴마음 먹은 건 아니겠지? 저녁 6시까지 전화 안 하면 너 죽는다.
 -이 밥통! 너 죽었어.
 
 ‘으으음!’
 문자는 거의 한 사람이 보낸 것으로 보였는데 절대 나한테 보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겐 자기라고 불러줄 사람이 마흔 살까지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문자임에도 울었다 웃었다 하는 걸 보니 거의 성격파탄자로군. 다음으로 넘어가자.
 
 -이 새끼가 왜 전화를 안 받고 지랄이야?
 -아빠가 이번 주에 꼭 내려오래. 넌 뒤졌어.
 
 꽥!
 인주다.
 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만 인주는 아빠라고 부른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부재중 전화 대부분은 스팸으로 보이는 모르는 전화번호, 그리고 인주와 집이었다.
 ‘인주가 집에 있으니 다 집이네.’
 집에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지금 이 시점에는 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지금은 전화를 할 때가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을 때.
 뭐라고 했더라?
 옳지.
 
 ‘당신은 지금 흐르는 강물 앞에 서 있습니다. 강물은 잔잔하고··· 에 또 내 마음은······.’
 
 “다 됐어. 275,640원. 나, 갈게. 데이트가 있어서.”
 ‘누가 물어봤냐?’
 이미례가 시재를 적은 종이에 사인을 한 후 재빨리 편의점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순간 나도 편의점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때 막 켜놓은 내 전화기가 요란한 소음을 쏟아냈다.
 “여보세요?”
 -왜 이제야 전화 받아?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뚝!
 젠장, 이 순간에 잘못 걸린 전화가 오다니?
 하지만 곧바로 다시 전화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혹시 오인성 씨 전화 아닌가요?
 “맞는데···! 누구세요?”
 -오인성 씨가 맞는데 나한테 누구세요라고?
 “제가 오인성인건 맞는데···, 저기 아무래도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은데요?”
 -아하? 그러세요? 정말 절 모르세요?
 “예. 그런데 누구세요? 전 그러니까··· 한예영에 다니는 오인성인데?”
 -한예영 영상학과 다니는 오인성인데도 절 모르시는구나 아버지는 오씨 성에 현자 기자 쓰시고, 어머니는 한씨 성에 명자 숙자 쓰시는 그 오인성인데도?
 “저기 제가 영상학과에 다니는 건 맞는데···, 헉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충격을 먹었다.
 얼핏 듣기에 앳된 목소리의 여자가 정확하게 아버지와 엄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다.
 혹시 신종 보이스피싱?
 “저기 장난하지 마시고 누구세요?”
 단호하고 낮은 음성으로 난 따져 물었다. 만약 보이스피싱이라면 콜센터가 연변이라도 쳐들어가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샘솟는다.
 하지만 여자는 더 황당한 말을 쏟아냈다.
 -내가 니 마누라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오늘 죽었어. 씨!
 “아! 내 마누라셨구나?”
 -너 정말? 지금 당장 갈 테니까 거기 가만히 있어. 알겠어?
 “아, 네. 저 오는 여자 막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럼 이만!”
 뚝.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정말 난 오는 여자사람을 막고 그럴 마음은 없다.
 심지어 비록 유부녀라도 찾아와주면 이혼을 도와줄 용의가 있을 정도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한 짜증이 밀려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제 남편 전화번호도 모자라 목소리조차 모를 수 있는지.
 젊은 여자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아마도 술에 취했거나 아니면 정신병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자 이제 뭘 할까?
 일단 물건 정리부터 해야지.
 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정말 지겨운 일 중 하나였다. 어찌나 손님들이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흩트려 놓는지 한 시간만 지나고 나면 진열장은 다시 엉망진창이 된다.
 게다가 편의점에 물건이 좀 많은가?
 개수로 밀어붙이는 게 편의점의 영업 전략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손님이 없어 물건 정리를 하다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가 어찌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현실. 다시 생각해봐도 이렇게 디테일한 꿈은 있을 수 없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나 오인성! 이 자본주의의 냉엄한 전쟁터에서 이번엔 기필코 승리하리라.
 미모의 여자와 결혼도 하고 인성 주니어도 펑펑 생산할 것이며, 대세 김지원 작가보다 더 성공해 기필코 미니시리즈 회당 5억 원대의 고료를 받는 금자탑을 쌓고 말리라.
 딸랑딸랑.
 뭐냐 이 중요한 순간에?
 “방금 청담동에서 택시를 탔다는데?”
 “제니퍼가 택시를 타?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야. 팩션TV 김창식이가 제니퍼 빌라 앞에서 이틀째 날밤 까고 있었잖아.”
 
 
 # 4.
 
 ‘제니퍼?’
 물건을 정리하다 만 난 제니퍼란 말에 곧바로 카운터로 가 불청객(?)들을 살폈다.
 “그거야 나도 알지. 근데 제니퍼가 왜 제 차를 놔두고 택시를 탔을까?”
 “그야 모르지.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택시 문 열기도 전에 대학로라고 행선지를 말했대.”
 “냄새가 난다. 냄새가!”
 “그렇지? 혹시 제니퍼 정말 유부녀 아닐까?”
 들어온 손님은 세 명이다. 그런데 대화는 둘이서만 나눈다. 한 명은 제법 큰 카메라를 든 채 밖을 주시하고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다니? 그런데 제니퍼라면 아까 연예가중계가 말한 그 여배우? 그러고 보니 MBS네?’
 MBS 로고가 찍힌 대형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분명 MBS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MBS는 국내 최대 민영 공중파 방송국.
 관심이 동했다.
 명함이라도 한 장 받아두면 도움이 될까? 아니면 내가 한예영 졸업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고 PR이라도 해?
 그때 카메라를 둘러멘 남자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날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어, 너?”
 “예?”
 “너 반달곰 친구 아니냐?”
 반달곰이라면 황성이다. 맞다. 황성이 롤 모델로 삼은 과 선배 박석주.
 아마 내가 입학할 때 졸업반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석주 형! 안녕하셨어요. 크흠!”
 나이 40에 30대로 보이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려니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아니 나 40대 아니지. 이건 꿈이 아니니까.
 “너 여기서 알바 하냐?”
 “예. 형은···, 아, MBS··· 연예톡톡에 계셨구나?”
 카메라에 MBS의 로고와 연예톡톡이라는 프로그램명이 새겨져 있는 걸 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입사한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날밤 까며 뛰어다니고 있군.
 “그래. 아무튼 반갑다. 곰 녀석도 잘 지내지?”
 “예. 오늘 졸업시험 끝내고 종강파티라고 갔어요. 근데 형은······?”
 “아!”
 박석주는 일단 함께 들어온 두 사내를 힐끗 바라 본 후 손가락으로 입을 한 번 가려보인 후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대학로로 제니퍼 정이 뜬다는 정보가 있어서···. 이거 극비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는 박석주 선배가 황성 녀석의 롤 모델이라는 것도 그랬지만, 밖을 보니 이미 다른 카메라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 아무래도 비밀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내 말에 박석주 선배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함께 들어온 두 사내의 입에서 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가 똥을 끊지. 하여간 김창식 이 새끼!”
 “도대체 몇 군데다 팔아 처먹은 거야? 안 오기만 해봐. 사기로 고소해버릴 테니까.”
 상황은 간단해 보였다.
 팩션 TV란 회사의 김창식이란 사람이 제니퍼 정의 이동정보를 MBS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다가도 팔아먹은 것이다.
 “형, 그런데 제니퍼 정이 그렇게 유명해요?”
 “너 진심으로 묻는 거냐?”
 “예.”
 그럼 진심으로 묻는 거지 뭘로 묻는단 말인가?
 “글로벌 슈퍼스타잖아. 제니퍼 정 화면 따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걔 움직이면 심지어 CNN, NHK, 신화통신까지 다 따라붙어. 게다가 내년 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 거의 확정적이야. 대한민국에서 정말 희대의 여배우가 탄생한 거지. 교포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대단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 예상될 정도로?
 그런데 난 왜 모를까.
 “미국에서 태어났다면서요. 그럼 미국인 아닌가?”
 “물론 그랬지. 그런데 미국 국적 포기하고 주민등록증 발급 받았다는 정보가 있어.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동사무소에 확인 안 해 봤어요?”
 “대통령 민증 확인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정말 대단하네.
 그런 여배우가 내 기억에는 없다. 설마 내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지구촌 연예계에 영향을 미쳤나?
 “택시 종로5가 도착. 준비해.”
 제니퍼 정이 벌써 종로5가에 도착한 모양이다. 박석주 선배는 나중에 황성이랑 술 한잔하자는 말을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편의점 안은 다시 싸늘할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제니퍼다.”
 “꺄아악!”
 “언니! 끄아악!”
 “누나!
 펑! 펑펑!
 갑자기 나타난 좀비 떼와 같은 인파가 편의점 앞을 가득 메우더니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편의점 바로 앞에 내린 모양이네. 대박!
 “어디 한 번 보자.”
 나는 일단 창문에서 가장 가까운 식탁 위로 올라가 밖을 내다봤다.
 택시에서 한 여자가 내리고 있었는데 뒤 따라온 검정색 벤에서 다시 두 명의 여자가 내리더니 택시에서 내리는 여자의 앞을 막아섰다.
 “블랙 앤 화이트다. 제니퍼다!”
 “제니퍼! 제니퍼!”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나는 택시에서 내린 여자를 눈여겨 살폈다.
 ‘170이라더니 더 큰 거 아니야?’
 나는 강의실에서 연예가 중계가 했던 제니퍼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그녀를 주시했다.
 
 -선글라스 좀 벗어주세요.
 -제니퍼! 대학로에는 무슨 일로 왔나요?
 -결혼하셨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남편 되시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Are you married?
 -Who is your husband?
 ······
 ···
 
 외신까지 섞여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지만 제니퍼 정으로 보이는 여자는 묵묵부답.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하아!”
 탄성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저게 인간이냐?’
 제니퍼는 마치······.
 으음!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다. 요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갓 판타지 세계에서 나온 정령?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미모다. 그제야 강의실에서 왜 그렇게 애들이 제니퍼 제니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식간에 가장 신봉하던 제니퍼 로렌스의 이름이 성능 좋은 수정액에 의해 내 뇌리에서 지워졌다.
 그때다. 착각이었을까?
 제니퍼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러니까 우린 결혼했어요.”
 설마 저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입술에서 나온 우리가 나와 제니퍼?
 크윽! 그럴 리는 없지.
 아, 그리고 실망감.
 가슴 속에 커다란 돌덩이라도 풍덩 빠뜨린 느낌이다.
 천사도 결혼을 하는구나.
 부러움도 아니고 괜한 늑대의 질투심도 아니다. 처음 보는 여배우가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이런 처절한 감정을 느끼다니.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몰려든 사람들로 차로까지 차단된 대학로 길은 썰렁하다 못 해 싸늘해져버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순간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언니 결혼 축하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결혼을 축하한다는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를 틈타 기자 한 명이 질문을 날렸다.
 
 -남편분과 왜 결혼하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기자에게로 쏠렸다.
 한심한 놈.
 기자라는 놈이 질문을 저렇게 개념 없이 하다니? 우리 제니퍼가 저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심지어 난 제니퍼가 속상해 하지나 않을까 걱정까지 한다.
 ‘먼저 언제 결혼을 하셨는지, 어디서 만난 어떤 새끼인지···, 그리고 언제 헤어질지··· 는 아니고, 좀 더 개념 있는 질문을 해라. 이 기레기야!’
 난 제니퍼의 마음을 다치게 할 만한 질문을 한 기자를 매우 쳤다.
 그때 제니퍼의 입이 열리며 기레기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분이 제 심장을 먹었어요.
 
 심장을 뛰게 한 것도 아니고, 심장을 뜨겁게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심장을 멎게 한 것도 아니고······.
 심장을 먹었단다.
 이건 적어야 해. 시나리오 작가로 대성할 재목은 내가 아니라 제니퍼야.
 표현의 극치. 심장을 먹다. 어디서 저 나이에 저런 심도 깊은 은유를 배웠을까?
 그리고 슬프다.
 심장을 먹었다는 말은 그 누구도 절대 제니퍼를 놈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속에서 깊은 탄식이 솟구쳐 오르다 가라앉는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인지 내 귀에 환청까지 들렸다.
 -지금은 사람들 때문에 그냥 가는데······.
 “잘 가라. 제니퍼! 아니 가지는 말고, 축하한다. 제니퍼!”
 -축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일··· 은 아니고, 모레 넌 죽었어.
 “죽어도 좋을 것 같아. 다시 이혼만 한다면······.”
 심지어 난 환청에 대답까지 했다. 그때서야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뭐, 이혼? 너 돌았냐?
 “돌긴! 헉! 누가 잡소리야?”
 이상한 소리에 주변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그때다.
 “저기야! 저기서 제일 잘 보여.”
 갑자기 한 떼거리의 여자 고딩들이 편의점 문을 활짝 열어 제치며 들이닥치더니 내가 올라선 탁자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당탕 쾅.
 “미··· 밀지 마.”
 “아저씬 좀 비키셔. 우리 제니퍼 언니 생얼 좀 보게.”
 콰당!
 “아악, 허리야!”
 -허리?
 
 ***
 
 망할 것들.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도 못 들었잖아?
 10시에 알바를 마친 난 나와 비슷한 또래이자, 비슷한 환경일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학교 다른 과 알바에게 시재를 인계했다.
 “오늘 제니퍼 여기 왔다면서요?”
 “여긴 아니고 바깥에요.”
 “그럼 진짜 봤겠네요?”
 “그럼요.”
 “아, 대박 부럽다. 수고했어요.”
 부럽긴 시발!
 고딩들 때문에 넘어져 다친 허리가 지금도 욱신거리는데.
 일단 반달곰, 아니 황성에게 전화라도 해보자. 이 기분으로 자취방에 들어갔다가는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다.
 “여보세요?”
 -너 끝났냐?
 “어. 어디냐?”
 -어디긴? 아직 고깃집이야. 얼른 와. 연예톡톡에 제니퍼 나오려고 그래.
 “연예톡톡? 알겠어. 바로 갈게.”
 나는 연예톡톡과 제니퍼란 말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종강파티가 열리는 한가옥이란 고기 집으로 튀어갔다.
 마음속에는 오로지 제니퍼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리고 프러포즈 3인방이 날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으음! 정유린도 있네. 찬조금 내러 왔나? 하나도 안 예쁘다.’
 순간 난 현역 남자애들 틈 사이에서 한예영 입학 후 내가 쓴 첫 흑역사의 상대인 정유린을 발견했다.
 내 순정을 유린한 정유린.
 내가 졸업을 할 때쯤에는 그래도 제법 이름을 알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정유린이 날 본 척도 하지 않고 뭔가를 바라보고 있다.
 TV다.
 바로 좀 전 제니퍼의 인터뷰가 방송되려는 찰나.
 내 관심도 정유린에서 곧바로 제니퍼로 선회했다.
 “야! 제니퍼 나왔냐?”
 “조용히 좀 하지. 형!”
 황성에게 물었는데 다른 현역 놈이 나한테 핀잔을 준다. 할 수 없이 난 조용히 반달곰 그늘에 찌그러져 TV를 시청했다.
 
 -그분이 제 심장을 먹었어요.
 
 바로 그 장면이다. 개념 없는 기레기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하는 우리 제니퍼.
 더구나 심장을 먹다니?
 어디서 저런 표현을 배운 것일까. 다시 들어도 심쿵이다. 넌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주연을 해야 할 것 같다. 제니퍼야!
 난 제니퍼를 매우 칭찬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니퍼! 그럼 남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나이는요?
 -What's your husband nationality?(남편 국적은 어딘가요?)
 -꼬모떼 야마스?
 
 “보나마나 빤하지. 재벌이거나 중동왕자 아닐까?”
 “아니지. 쟤 돈 쌓아놓고 살잖아. 적어도 지보다는 돈 많은 놈일걸?”
 “그럼 페이스노트 저크버커? 걘 결혼 했는데?”
 “지방방송 좀 끕시다.”
 여자 애들이 제니퍼를 씹는 사이 다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고 조용해지자 제니퍼가 입을 열었다.
 
 -그분은··· 평범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세요.
 
 “헉! 대박!”
 “말도 안 돼.”
 “어떤 씹샐까?”
 “언어 순화 좀 하지. 그리고 조용히 좀 해.”
 인터뷰는 더디다. 왜냐하면 제니퍼가 대답을 하고나면 기자들조차 당황해서 바로 질문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서 제니퍼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토종꿀 원액이 제니퍼 목소리다.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 5.
 
 -그분께서 아직 대학 졸업반이라 세간의 관심을 받으면 학업에 방해가 되실까봐 미리 밝히지 못했어요.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국 사람입니까?
 -그럼 정확히 몇 살에 결혼하신 겁니까?
 
 다른 기자들이 제니퍼를 붙들고 늘어졌다.
 
 -죄송해요. 자세한 건 그분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그분이란 놈은 좋겠다. 꼬박꼬박 그분이란다.”
 “조용히 해 시팔!”
 
 -그렇지만 이제 졸업시험까지 마쳤으니 곧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분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제니퍼가 야무지게 대답을 하더니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고개를 숙인다.
 순간 어디선가 검정색 양복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제니퍼 앞을 가로막으며 인(人)의 장벽을 만들어 버렸다.
 다음은 통통한 연예톡톡 리포터가 나와 뭐라고 씨부렁거리는데 눈을 버릴 것 같아 고개를 돌려야 했다.
 ······
 ···
 
 “내조의 여왕이네. 끄으응!”
 반달곰이 부상당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밝히지 못했구나. 나도 졸업시험 봤는데······.”
 “생얼이라더니 아닌 것 같은데?”
 “요즘 생얼이 어디 있어? 저년도 칼 열 번을 댔을 걸?”
 여자애들의 관심은 오로지 얼굴. 그래봐야 니들은 절대 따라갈 방법이 없는 페이스다.
 “저년이라니? 우리 제니퍼 모욕하지 마라.”
 “흥!”
 “설마 평범한 작가지망생이겠어? 재벌인데 할 일 없으니 시나리오 쓴다며 끄적대는 씹새겠지.”
 여자애들은 질투심에, 그리고 남자애들은 제니퍼 남편에 대한 질투심에 한마디씩들을 했다.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다.
 ‘그놈은 전생에 우주를 구했냐? 시팔, 부럽다.’
 “야! 연예가 중계야. 실검 좀 확인해 봐라.
 “지금 확인 중이다. 1위는 당연히 제니퍼 유부녀고······.”
 황성이 실검을 확인해보라고 했을 때는 이미 연예가중계 김수완이 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위는 심장 도둑놈이고 3위는 저도 심장 먹고 싶어요 4위는 도둑놈, 5위는 시나리오 작가지망생, 6위는 제니퍼 충격발표, 7위는 미성년자 기준, 8위는 법적결혼연령, 9위는 페이스노트 마비, 10위는 제니퍼 결혼 음모론······.”
 김수완은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를 줄줄 읽어댔다.
 모두 제니퍼 일색.
 “그만 일어들 나시죠.”
 그때 4학년 대표 이종민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떼며 일어서더니 종강파티의 폐막을 알린다.
 ‘일어나? 난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번엔 2차도 없나?’
 점심도 저녁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일어나는 졸업동기들.
 ‘꿀꺽!’
 불판에 남은 것들은 분명 우리 소일진데···. 아깝다.
 하지만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 했다. 괜히 가만히 있다가 프러포즈 3인방이나 정유린에게 연변거지라는 소릴 듣게 되면 오늘은 정말 빡칠 것 같았다.
 하는 둥 마는 둥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 난 황성과 함께 명륜동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보도에 사람들이 좀 줄어들자 황성은 메고 있던 배낭을 앞으로 들더니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허공에 들이대며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다.’
 샷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반달곰이 앞발을 들고 흉악하게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단위가 샷이니 카메라맨이 되려고 하는 황성의 행동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몇 번 움직이더니 배낭을 다시 둘러멨다.
 “니가 웬일이냐? 더 하지?”
 “힘이 안 난다.”
 “어째서?”
 “제니퍼라도 앞에 있다면 모를까? 너 내 소원이 뭔지 아냐?”
 “뭔··· 데?”
 나는 농담 삼아 야생방사 아니냐고 말하려다가 제법 심각한 황성의 표정에 단념하고 말았다.
 “제니퍼를 내 카메라로 클로즈업 하는 거.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
 황성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니 용기를 주고 싶다.
 “열심히 하다보면 그럴 날도 오겠지. 기운 내라. 제니퍼가 결혼했다고 은퇴하는 건 아니잖냐?”
 “그렇겠지?”
 그러다 문득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이 궁금해졌다.
 “근데 제니퍼가 출연한 영화 제목이 뭐냐?”
 “이 자식이 물을 걸 물어라.”
 “뭔데?”
 “넌 어떻게 영상학과 다니며 시나리오 쓰겠다는 놈이 ‘용의 나날들’을 모르냐?”
 “용의 나날들?”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드래곤이 나오나?
 “너 지금 드래곤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어?”
 “이놈 정말 안 본 모양이네. 드래곤 안 나온다. 그리고 아마 처음에 빵 터질 거다.”
 빵 터지다니?
 내가 왜?
 제니퍼의 연기를 보면 가슴이 빵 터진단 의미인가? 아니면······.
 “코미디냐?”
 “아냐. 초반에 보면 안다. 하하하!”
 왠지 허탈한 느낌의 웃음을 날린 황성이 일찍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나 또한 배도 고프고 또 제니퍼를 처음 본 쇼크에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뭐 달라질 건 없겠지만.
 일단 자취방으로 돌아온 난 ‘용의 나날들’을 검색해 보기로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개봉한 지 2년도 안 된 판타지 영화다.
 관람객평점 9.9, 기자, 평론가 평점 9.5.
 하트모양의 ‘좋아요’는 무려···,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억?
 ‘2억 하고도 9천만? 이게 말이 돼?’
 기가 막힌다. 외국 사람들이 국내 사이트에 접속해 눌러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그런데 어째서 내 기억에는 제니퍼도 없고 ‘용의 나날들’도 없는 걸까?
 ‘이게 말이 돼? 그래도 영화 시나리오 쓴다는 놈이?’
 어째서 내가 모르는지 정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석은 산으로 가 제니퍼에 대한 분석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제니퍼는 그다지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가수로 싱글 한 곡을 발표했는데 제목은 ‘내 곁에 있어.’란 발라드.
 “그래. 네 곁에 있고 싶다. 진심!”
 그렇게 중얼거려가며 난 내용을 샅샅이 살폈다.
 ‘내 곁에 있어’는 한국 발표 제목이고, 글로벌 버전으로 발표한 제목은 ‘Be with me’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먹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제작된 ‘용의 나날들’이란 영화, 그리고 그것의 글로벌 버전 yong’s days가 전부다.
 결국 노래 한 곡에 영화 한 편으로 지구를 말아먹은 것.
 그것도 정확히 18년 3개월짜리 여자애가.
 ‘대단하네.’
 하지만 두 가지로 이룬 그녀의 이후 커리어는 이미 벌어진 입을 아예 찢어지게 만든다.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먹었고, 영화는 역대 월드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으며, 여론조사에서 가장 결혼하고 싶은 여자 1위에 올랐다.
 팬클럽 회원 수만도 3억 명을 상회한다.
 ‘나라를 세워도 되겠네.’
 그런 제니퍼를 아내로 맞은 놈은 도대체 어떤 놈일까?
 일단 ‘용의 나날들’을 감상해야겠는데 DVD는 발매되었건만 다운로드 서비스는 되지 않는다.
 망설임의 시간.
 어둠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명륜동에 하나 남은 비디오가게를 다녀와?
 제니퍼와 어둠의 경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난 비디오가게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 라면도 사다가 끓일 겸 다녀오자.’
 초겨울에 접어들어 쌀쌀해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5km나 떨어진 비디오가게에서 ‘용의 나날들’을 빌리는데 성공, 그리고 라면 두 개까지 사들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루루루루루! 루루루···, 일단 라면을 끓이시고··· 제니··· 퍼를···.”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라면 물을 올리고 끓이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배고픔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제니퍼를 마주하고 싶다.
 라면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다 끓자 냄비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용의 나날들’ DVD를 틀었다.
 
 빰빠라밤빰 빰빰 빰빠라밤 바라바라밤······.
 
 일명 퍽스 팡파레.
 흠, 배급은 24세기 퍽스사로군. 영화사도 잘 선택했어.
 일단 라면을 한 입 먹으면서······.
 ‘그럼 제작사는?’
 이어 나오는 제작사.
 “푸읍! 쾍!”
 순식간에 내 입에서 비산하는 라면 가락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배급사인 24세기 퍽스사 팡파레에 이어 나온 제작사의 로고는 어이없게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된 흑백 용 한 마리.
 귀여운 용 한 마리가 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운다.
 크르릉 하고 말이다.
 그리고 밑으로 깔리는 제작사 이름.
 “푸하하하하! 크르릉 엔터테인먼트? 으하하하하!”
 나는 튀어나간 라면 가락이 모니터에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웃고 말았다.
 반달곰이 빵 터질 거란 말이 바로 이거였던 거다.
 어떻게 저런 작명을 할 수가?
 너무나 제니퍼의 이미지에 안 어울리는 제작사 이름이 아닌가?
 저 용은 또 뭐야?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는 용은 천진하다 못해 앙증맞기까지 하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웃던 난 순간 멈칫했다. 젓가락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서랍을 뒤져 오래된 파일 하나를 찾아냈다.
 1학년 때 처음 직접 쓴 시나리오 원본.
 제목은 ‘백수의 나날들’이고 밑에 장난삼아 단 제작사명은 ‘으허엉 엔터테인먼트’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의 일치네.’
 결론은 빨랐다.
 ‘아마도 제니퍼와 난 뭔가가 통하나봐.’
 시나리오를 한 번 들쳐 보자 기분이 씁쓸해진다.
 ‘백수의 나날들’ 시나리오와 제작사명을 으허엉으로 정한 것 때문에 학과장에게 개 쪽을 당한 것이 생각났다.
 그것 때문에 첫 흑역사의 주인공인 정유린에게 얼마나 유린당했던가?
 
 ‘널 보면 나한테 으허엉 하면서 달려들 것 같아 너무 무서워.’
 
 나쁜 년!
 별로 예쁘지도 않은 것이.
 이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자.
 두루마리 화장지를 끊어 책상과 모니터에 묻은 라면 가락을 제거한 난 잠시 재생을 멈추고 ‘크르릉 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예비 영화인으로서 제니퍼의 영화를 만든 회사가 궁금했다.
 24세기 퍽스사야 배급사이고 워낙 유명하니 조사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고.
 크르릉 엔터테인먼트를 네이브 검색창에 입력했다.
 공식 홈페이지와 증권정보, 그리고 소속 연예인 순으로 펼쳐진 화면. 나는 천천히 크르릉에 대해 읽어나갔다.
 일단 시가총액이 자그마치 1조 9천억 원이다.
 ‘대박!’
 코스닥 상장기업 순위 당당 18위.
 ‘대표가 누구야?’
 대표 이름은 강종성.
 ‘처음 듣는 이름이네.’
 나는 곧바로 크르릉의 소속연예인을 살폈다.
 그런데 소속연예인은 살필 것이 없다. 단 3명이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제니퍼가 가장 먼저 소개되어 있었고 이어 블랙이라는 여자와 화이트라는 여자가 전부다.
 ‘그러고 보니 아까 거기서 제니퍼 경호하던 여자들을 블랙 앤 화이트라고 했었지?’
 제니퍼 이력은 일단 넘어가고 블랙과 화이트의 이력을 살펴보니 어이가 없다.
 경력이라곤 제니퍼의 데뷔곡 백 보컬 피처링과 뮤직비디오 백댄서, 그리고 ‘용의 나날들’ 조연이 전부다.
 한마디로 크르릉 엔터테인먼트란 회사는 제니퍼를 위한 1인 회사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닥 상장사 중 시총 18위.
 ‘그럼 최대주주가 제니퍼일 수도 있겠네?’
 난 얼른 크르릉 엔터테인먼트의 주주현황을 검색했다. 어쩌면 대표이사인 강종성이란 놈(?)이나 그도 아니면 지분이 많은 놈이 제니퍼의 남편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주요주주
 정미사 33.3%
 오인성 33.3%
 외국인 23.4%
 기타 10%
 
 “어라? 주주 중에 내 이름이랑 똑같은 놈도 있네? 근데 왜 우리 제니퍼가 없을까?”
 어느 새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우리 제니퍼.
 주요주주 중에 우리 제니퍼는 없다. 지분비율로 볼 때 정미사와 내가 아닌 다른 오인성 둘이 크르릉 엔터테인먼트를 지배하고 있는 대주주.
 ‘그럼 혹시 나 말고 다른 오인성이 제니퍼 남편?’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나랑 이름이 같은 놈의 신상 내역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방법은 없었다.
 ‘아이고! 내가 이걸 알아내서 뭐 하냐? 그냥 영화나 보자.’
 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라면을 먹으며 영화 감상을 시작했다.
 “CG 정말 죽이네.”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CG에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장르는 SF다.
 제니퍼가 분한 주인공의 이름이 용(yong)이다.
 배경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대륙. 대륙은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처럼 거센 내전에 휩싸여 있다.
 전쟁의 화마는 용에게도 닥쳐 마침내 사랑하는 남자를 전장으로 보내야 하는 용.
 ‘나 같으면 절대 안 나간다.’
 그녀는 전쟁터로 나가는 사랑하는 나쁜 놈(?)에게 자신의 심장 반을 꺼내 여분의 목숨이라면서 건넨다.
 마법의 힘이다.
 
 ‘하나가 멈추면 다른 하나도 멈출 거예요. 절 살리시려면 살아 돌아오세요.’
 
 캬아! 대사발 죽이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남자는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친 용이 마침내 직접 연인을 찾으러 나서면서 전투가 시작된다.
 제니퍼의 액션 연기는 현란했다.
 지금까지 영화에 나온 어떤 여전사도 흉내 낼 수 없는 유려한 액션연기.
 솔트와 툼 레이더를 찍은 안졸리나 졸려를 찜 쪄 먹고도 남을 지경.
 “햐아! 진짜 완벽하다. 완벽해.”
 나는 제니퍼의 액션에 몰입되어 탄성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에서 용이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을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가슴 속에서는 용의 심장이 온전히 힘차게 뛰고 있다
 사랑을 지킨 용의 남친은 그제야 눈을 감는다.
 ‘시파! 졸라 슬프네.’
 남자가 죽어 슬프지는 않다. 단지 제니퍼가 슬퍼하니 슬픈 것이다.
 
 
 # 6.
 
 ‘음냐! 내가 지켜줄게.’
 ···
 때르르릉! 때르르릉!
 누구냐? 이 중요한 순간에?
 용의 나날들을 보고 또 보다가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나 보다. 내 전화벨 소리가 영화 속에서 나올 수는 없으니까?
 나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책상 밑으로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울려대는 벨소리.
 누군지 집요하다.
 “아, 씨! 누구야? 여··· 보세요?”
 -야! 너 어디야?
 수화기너머로 인주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긴··· 내 방이지. 왜?”
 -너 미쳤어? 왜 안 내려 와?
 “아버지 생신 내일이잖아.”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난 짜증이 났다.
 -아빠가 당장 내려오래. 넌 뒤졌어. 으흐흐흐! 기특한 놈!
 ‘뭔 개소리야?’
 인주에게서 처음 듣는 말. 넌 뒤졌어야 늘 입에 담고 사는 말이니 신경 쓸 것 없다.
 그런데 기특한 놈이라니?
 난생 처음 듣는 칭찬이다. 칭찬이 맞겠지. 아무튼 이렇게 재촉하는 걸 보면 집에 무슨 일이 있긴 있나보다.
 일단 내려가야 한다. 안 내려갔다간 입학 초 때처럼 아버지가 상경하실지 모를 일.
 유전자적 동질감은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제니퍼를 슬쩍 옆으로 밀어버린다.
 이래서 가족은 위대한 것이다.
 ‘난 언제 내 자식 강제 소환술을 펼쳐보나?’
 다시 생각이 샛길로 빠지려 하자 서둘러 배낭을 둘러메고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15시 35분발 중앙선 제천행 표를 사고 나자 주머니에 남은 돈은 3,200원.
 ‘그럼 아버지 생신 선물은?’
 순간 어느 영화 조연의 잘 쳐진 대사가 떠오른다.
 
 -야! 엄마 환갑 잔치를 김밥천국에서 할 수는 없잖냐?
 
 직업병이다.
 아직 데뷔도 못 한 놈이 무슨 직업병?
 어쨌든 큰일이다.
 ‘아하···! 3천 하고도 2백 원으로 살 수 있는 생신 선물은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도 없었지만 있다 해도 살 수 없다는 걸 곧 깨닫는다.
 제천역에서 집 근처까지 시내버스비만 1750원.
 그럼 남는 돈은 1450원. 삼각 김밥 하나에 PB우유 하나 사면 끝이다.
 “젠장!”
 지갑을 탈탈 털어봤지만 학생증과 교통카드, 그리고 마트 할인카드 같은 것들이 전부다.
 머리를 굴린다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올해는 입 씻자.’
 결단을 내린 난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늦가을 햇살에 눈이 부신다. 마치 제니퍼처럼.
 
 ***
 
 나는 다시 지리산에 있다.
 ‘또 개꿈이네.’
 비슷한 꿈도 자주 꾸니 짜증이 난다.
 지금이 현실이고 마흔까지 결혼 못 한 것이 꿈이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 했건만.
 배경이라도 좀 바뀌어야지. 지리산 산신령이 나랑 원수진 것도 아닐 것인데 잠만 자면 지리산이냐?
 다행인 것은 공기가 아주 온화하고 따사롭다는 거다.
 계곡물 역시 깊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이 아니다.
 ‘헉! 뭐냐?’
 물속에 비친 내 모습에 난 자지러지게 놀랐다. 흰색 머리끈을 질끈 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몸을 살펴보니 꾀죄죄한 흰색 한복.
 그러나 개량 한복에 놀랄 틈도 없다.
 갑자기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더니 무언가가 나타나 소리를 지른다.
 -이 도끼, 아니 이 여편네가 네 마누라냐?
 “아닌데요?”
 절대 아니다. 아무리 내가 마흔의 나이에 동정을 간직하고 있는 희귀보호동물이라도 그렇지 이건 아니다.
 얼굴을 90%이상 덮은 거북등 같은 주근깨에 체중은 100kg도 넘겠네.
 산신령도 못 해먹을 짓이야. 지금 산신령 걱정할 때가 아니지.
 “절대, 절대 아닌데요? 앱솔루트리 아닙니다.”
 -앱솔루트리 아니라는 걸 보니 확실히 아닌가보군.
 영어까지 하는 산신령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날 살펴보다가 한마디 다시 풍덩 하고는 잠수를 탔다.
 ‘휴우!’
 그러나 안심도 잠깐이다. 다시 솟구쳐 오른 산신령이 묻는다.
 -쏴아! 그럼 이 여편네는?
 말이 점점 짧아지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여편네··· 여자사람인데?
 ‘허억! 저년은 정유린?’
 -기야 아니야?
 “절대 아닙니다. 그 여자는 절 유린한 정유린이란 여잡니다. 절대 제 여편네가 아닙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깨워서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산신령이 버럭 소리를 질렀고 난 절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아니긴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깐 든다.
 -그래? 얘는 네가 자기 남편이라던데?
 “헉! 아닙니다.”
 -이번에도 앱솔루트리야?
 “예.”
 -흠! 좋아. 믿어보지. 만약 사실이면 넌 뒤졌어.
 산신령은 다시 잠수를 탔다. 무슨 놈의 산신령이 의심이 저렇게 많을까?
 곧 다시 솟구쳐 오른 산신령은 이번에도 역시 여자사람의 뒷덜미를 붙들고 있다.
 -그럼 얘는?
 고개를 숙인 채 늘어져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기 얼굴 좀······?”
 -그 자식 되게 디테일하게 보네. 자!
 산신령은 내 요구사항에 짜증을 내며 한 손으로 여자의 턱을 받쳐 올렸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
 ‘이럴 수가···, 제니퍼다. 나의 여신이여!’
 -기야 아니야 인마?
 뭐라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할까?
 에라, 모르겠다.
 “맞습니다. 제 마누라가 맞습니다.”
 -이번에도 앱솔루트리야?
 “···예.”
 -참 양심 없는 새끼네. 내가 산신령 생활 오백 년 만에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
 ‘헉! 들켰다.’
 거짓말한 걸 들켰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산신령이 이상한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열차는 잠시 후 제천, 제천역에 도착합니다. 제천역에서 내리시는 손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셨다가 기차가 완전히 정차한 후 오른쪽 문으로 하차하여 주십시오. 연계열차에 대한······.
 
 ***
 
 휴우!
 완전 개꿈.
 기차에서 간신히 내린 난 집으로 가는 350번 버스를 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에 가을이 완연하다.
 도시로 나간 시골 청년들이 매번 귀향 할 때마다 느끼는 묘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고향은 그립지만 성공은 요원하다.
 이번에 다시 올라가면 꼭이라고 몇 번을 다짐했던가?
 하지만 이번에도 개털이네.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는 대략 500m의 좁은 도로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마을 첫 번째 숙희네 집이 보인다.
 숙희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명절 때나 가끔 보는 고향친구가 되어버렸지만 내 마음 속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숙희는 내가 넘볼 수 없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노래만 불러대더니 MBS 합창단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숙희네 집 앞을 지나갈 때 좁은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검정색 밴이 눈에 들어왔다.
 ‘익스프레스 밴? 이 촌구석에 저런 차가 2대나?’
 유명 연예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스타크래프트 밴 최신모델을 우리 마을에서 보다니?
 무슨 방송 촬영이라도 하나? 아니야. 숙희가 합창단 하다가 솔로로 데뷔라도 했나?
 오! 때깔 죽이네.
 난 두 대의 익스프레스 밴을 감상하며 숙희네 집의 동태를 살폈다. 그때 양복을 잘 빼입은 젊은 남자 하나가 차에서 황급히 내리더니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최민수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를 하고는 힐끔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자식 이름하고는 다르게 사근사근하네. 혹시 숙희가 물어온 남잔가?
 시골에서는 누구나 인사를 한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혹시 이웃 집 친척일 수도 있고 관련된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그럴 경우 인사를 안했다간 싸가지 없는 놈으로 찍혀 마을회관에서 한동안 씹힐 안주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아버지와 숙희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이 보인다.
 ‘숙희가 뭔 일을 내긴 냈나보네.’
 빠르게 결단을 내린 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저 왔어요. 안녕하셨어요?”
 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숙희 아버지에게도 인사를 한 나, 그런데 숙희 아버지가 날 보며 실실 웃으신다.
 “왔어? 차 좋지?”
 “예. 좋네요.”
 숙희네 집에 온 차군. 그래도 그렇지. 대뜸 차 좋으냐고 묻다니?
 하기야 숙희가 MBS 합창단이란 걸 아직도 모든 대화의 서두에 달고 다니시는 분이시니까.
 “난 갈겨. 아무튼 좋겠네.”
 뭐가 좋다는 말이지?
 “따라 들어와라.”
 순간 아버지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나신 목소리다. 혹시 제대하고 대학원 이야기 꺼낸 것 때문에 그러시나?
 아니면 숙희는 저렇게 출세했는데 넌 뭐하고 다니느냐고 다그치실 지도 모를 일이지.
 난 온갖 억측을 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자진해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씨!’
 그러면서도 속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다.
 “내가 널 아들이라고 좀 거칠게 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쿨럭!
 거칠게 키우신 게 아니라 잔인하게 키우신 거죠. 저처럼 대학 4년 동안 죽도록 알바하고 군대도 알바로 생각하고 다녀온 놈 있나 찾아보세요.
 아버지의 뜬금없는 서두에 속에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불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와 아버지 옆에 앉으신다.
 “편하게 앉아라. 아이고···. 흐흑!”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신다. 이제라도 두 분이 회개를 하시고 아들의 처우 개선에 나서시려는 건가?
 그럴 리는 없는데? 혹시··· 아버지가 중병이라도 걸리신······.
 갑자기 가슴이 싸해지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편안히 앉긴? 그래도 혼날 건 혼나야지. 안 그러냐, 아가?”
 “예. 아빠!”
 아닌가보다.
 다행이다. 그런데 아가라는 유치찬란한 호칭은 뭐냐?
 언제부터 인주와 아버지 사이가 이렇게 돈독해졌을까.
 나 없는 사이 인주가 과수원 땅을 노리고 작업을 했군. 괘씸한 것.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엄마 전용 몸빼 바지가 무릎까지 말려 올라와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앞마을 마실 전용으로 인주가 즐겨 입는 제천여고 체육복 상의가 눈에 들어온다.
 ‘오우! 가슴 좀 컸는데?’
 “이놈이 어딜 쳐다봐?”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거기 인주가 또 있다. 그럼 이 인주는?
 이상하다고 느낀 난 체육복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다 놀라 나자빠지고 말았다.
 “깜짝이야, 시발!”
 “이 자식이 엄마 아빠 앞에서 욕을 하고 지랄이야?”
 퍽!
 아야!
 인주가 뒤통수를 강타한 순간.
 지랄은 욕이 아닌가? 그런데도 아버지와 엄마는 나만 노려보고 있다.
 내가 평소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아닌데.
 반달곰 황성이 귀여움 떤다며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바로 ‘어머나 깜짝이야, 시발’이다.
 우리 사이에는 유머로 통한다.
 지금 욕이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봐도 제니퍼 정과 닮았다. 닮은 것이 아니라 똑같다. 어떻게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어젯밤에 영화를 너무 봤나?
 아! 슈퍼스타여서 그런지 여운이 현실에서도 남는군. 정신 차리고 다시 자세히 보자.
 예쁜 발부터 날렵한 종아리, 그리고 무릎 위로 말려 올라간 엄마의 몸빼 바지가 반바지가 되어 버린다,
 그 사이로 살짝 들어난 백옥 같은 허벅지.
 위로 올라가보자. 험!
 누나 마실 전용 제천여고 T셔츠도 자칫 배꼽티가 되기 일보직전.
 ‘배꼽까지 예쁘네. 히히!’
 가슴은 아!
 
 
 # 7.
 
 생략하고.
 희고 긴 사슴의 목선을 거슬러 올라가자 입술이 보인다. 당장이라도 날 찔러버릴 것 같이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우수에 찬 아름다운 눈동자가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누구를? 날!
 “그만 훑지. 아빠 엄마 앞에서 너 뭐하냐?”
 인주가 산통을 다 깨버렸다. 조금만 더 봤으면 좋겠는데.
 그때 요정이 말을 한다.
 “저예요. 미사!”
 미사가 아니다. 제니퍼다. 그렇지만 제니퍼가 우리 집에 와서 저러고 있을 리가 없지.
 “미사? 미사가 누군데요?”
 주르르륵!
 진주 방울이 요정의 눈에서 흘러내린다.
 그렇구나. 이건 또 꿈이야. 꿈에서 깨어나자.
 “흐흐흑! 이제 이름도 모른다고 그래요? 너무해!”
 이름도 모르지만 성도 모르는데? 제니퍼는 알아도 미사는 모르겠다.
 제니퍼 닮은 여자가 울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저··· 아버지, 저 여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뭔가가 내 머리를 향해 광속으로 날아들더니 고통과 함께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재떨이를 날린 것이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놈아! 사고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언제 뭘 가르치셨다고 그러십니까, 아버님!
 “아버지 왜 그러세요?”
 “야! 이놈아! 이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게 뭔데요?”
 난 한 손으로는 재떨이에 맞은 머리를 감싼 채, 한 손으로는 아버지가 집어던지신 서류를 살폈다.
 ‘웬 혼인관계증명서?’
 가만있어 보자.
 ‘본인 오인성에 배우자 정미사. 상세내용은 혼인을 했군. 축하한다. 아니지, 잠깐? 이상하네? 내가 언제 결혼을 했지?’
 “아버지!”
 “이제 기억이 나냐?”
 “하하하하! 제가 결혼을 했네요. 근데 제가 언제 결혼을··· 했을까요? 하하하!”
 “이놈이 실성을 했나? 서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놈아! 서류는 거짓말 안 하는 법이야. 헛소리 집어치우고 나가서 새아가나 달래.”
 “하하하! 아버지도 참! 새아가는 무슨···. 그리고 서류는 거짓말도 못 하지만 아예 말을···헉!”
 아버지가 다시 재떨이를 집어 드시는 바람에 난 얼른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와서도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내가 결혼을 했다네? 거 참! 하하하!”
 
 ***
 
 으음!
 부엌을 몰래 염탐을 해보니 분명 제니퍼다. 엄마와 누나에 비해 월등한 기럭지.
 키가 170이라고 그랬지?
 난 어제 확인했던 제니퍼의 키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뭔가가 잘못됐다.
 어째서 제니퍼가 우리 집에 와서 며느리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뭐 몰래카메라나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 그럴 리는 없다. 제니퍼가 ‘우리 결혼 했어요’ 이외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리고 나하고 그런 걸 찍을 리도 없고.
 혹시 우리 과수원 땅에 거대한 금맥이라도 묻혔다는 정보를 얻었나?
 아니지. 제니퍼 정도의 재력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 같은 남자에게 혼인신고까지 하며 들이대서 사기 칠 이유는 없지. 남자들이 돈 싸들고 줄을 서 있을 텐데.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예스 맴! 하고 달려올 놈들이 지천에 널렸을 거야.
 생각하다보니 좀 자존심이 상하는 군.
 어쨌든 이건 현실이 아니다. 만약 저 여우가 제니퍼가 맞다면···, 봉 잡은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지리산에서 아주 오래 살았던 구미호가 둔갑한 채 따라 붙은 것일 수도 있어.
 일단 꼬리가 있는지 확인부터 해봐야겠다.
 난 몸을 최대한 낮춘 채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가 제니퍼의 엉덩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주방이 좀 컸으면 세 엉덩이 중 제니퍼의 엉덩이에 더 밀착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집 주방은 상당히 좁았다.
 어쨌거나 세밀하게 확인해야 해. 꼬리를 접어서 잘 감췄을 수도 있으니.
 “킁킁!”
 “너 뭐 하냐?”
 “가만히 있어 봐. 꼬리 있나 보게.”
 “어머나! 자기야?”
 퍽!
 “아야? 왜 국자로 때리고 지랄이야?”
 “이놈이 돌았나? 어디 감히 신성한 주방에 들어와서 와이프 엉덩이 냄새를 맡아? 올케! 도대체 뭘 먹인 거야?”
 “어머! 형님도 참!”
 끄으응!
 인주 때문에 산통 깨져버렸네. 게다가 어머나 자기야는 또 뭐냐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저기···, 저 좀 보죠.”
 “보긴 뭘 봐, 인마! 그새를 못 참아?”
 하여간 인주가 문제야.
 “인주, 아니 누나는 참견 말고, 저 좀 잠깐 봐요.”
 내 완강한 말에 엄마가 내 편이 되어 주셨다.
 “그래 아가! 나가 봐라.”
 “예. 엄마!”
 엄마는 씨!
 어디가 좋을까?
 과수원 한복판이 좋지. 우리 집은 사과 농사를 짓는다. 대략 3000평 되니 중간에서 소리를 지를 경우 외부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따지기 좋은 장소다.
 일단 거기가 좋겠어.
 내가 앞장서며 힐끗 돌아보니 제니퍼가 양 손을 다소곳이 맞잡은 채 플라스틱 슬리퍼를 끌고 따라오고 있다.
 분위기 파악을 하셨군.
 “공기가 참 좋다, 그치 자기야!”
 분위기 파악을 한 건 아니로군.
 “공기야 좋··· 긴 하지만 그 자기야란 말 좀 안 하시면 안 될까요?”
 “왜 자기야?”
 헉! 돌아버리겠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 둘만 있으니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죠?”
 난 걸음을 옮기며 제니퍼에게 아주 강한 어조로 따지듯 물었다. 그 순간 갑자기 향긋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가 뒤에서 날 덮쳐온다.
 “왜? 왜 이러세요?”
 “나 좀 업어주라.”
 지금 내가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해명을 들으려고 하는 건데 업어달라는 말이 나오나?
 “이보세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거든요?”
 “이보세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거든요?”
 끄으응! 답이 안 나온다. 이젠 유치한 말 따라 하기 장난.
 “하아! 돌아버리겠네?”
 “하아! 돌아버리겠네?”
 도대체 이 여자 뭐야?
 이걸 바닥에 확 내 던져버려? 나는 엉겁결에 붙든 제니퍼의 엉덩이에서 손을 뗀 후 몸을 흔들었다.
 “붕붕! 비행기 타는 기분이야! 붕붕!”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난 힘껏 제니퍼를 과수원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려 했건만······.
 비명이 흘러나와야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 잡아봐라!”
 헐!
 내동댕이친 제니퍼는 바닥에 쓰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외친다.
 “나 잡아 봐라. 안 잡으면 죽어!”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
 
 결국 제니퍼와의 단독 면담을 포기한 난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잠시 후 인주가 들어오더니 옆에 앉아 살며시 묻는다.
 “맞지?”
 “······.”
 “맞지. 정말 맞는 거지?”
 “아, 뭐가?”
 “맞잖아.”
 “그러니까 뭐가 맞냐고?”
 “제니퍼지.”
 누나의 말에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되도 않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며칠 동안 마흔 살까지 장가 못 간 인생을 사는 악몽 때문에 정말 빡 쳤는데, 이제는 울트라 글로벌 슈퍼스타 와이프를 둔 유부남이 되어 있다.
 “그만 좀 해. 뭔가 잘못된 거야.”
 “대박사건! 어쩜! 내가 다 심장이 막 벌렁거린다. 이 자식 정말 사고 제대로 쳤네. 어떻게 만났어? 너 시나리오 쓴다더니 그거 때문에 만났구나? 제목이 뭔데?”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원!
 “올케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일단 자랑질 좀 해야겠다.”
 인주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스마트폰을 들고는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닥 다다닥.
 독수리 타법이 예사롭지 않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난 인주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내 동생 인성이가 제니퍼랑 결혼했다. 메롱!
 
 까톡
 까톡 까톡
 까톡 까톡 까톡······.
 이것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나? 하여간 와이파이는 없애고 데이터 요금 좀 올려야 돼. 통신정책이 개판 5분 전이야.
 순식간에 10여명이 답장을 보내온다.
 당황한 난 잘못 보낸 톡이라고 알려주려다가 인주 친구들의 톡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랄하네.
 -난 어젯밤에 안졸리냐 졸려 앞에서 브래드 파트랑 잤다.
 -지랄도 풍년이셔. 오늘은 소주 안 빠냐?
 -나 제천역인데 누구 픽업 좀 해줄 사람.
 -이번 주 일요일에 의림지에서 소주 깔래?
 -제니퍼라면 너 네 동네 외국인 며느리?
 
 “이년들이?”
 안심한 내가 다시 스마트폰을 넘겨주자 인주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인주 친구들이 좀 거칠어도 똑똑하긴 하네. 대번에 말도 안 된다는 걸 파악하는군.
 “누나!”
 “오우! 오인성이 도둑장가 가더니 이제는 누나라고 다 부르네?”
 인주는 나와 연년생이다. 아버지와 엄마는 동갑이시다. 서른아홉에 인주를 그리고 마흔에 날 낳으셨다.
 그래서 엄마나 아버지가 없을 때 난 인주를 누나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었다.
 “내가 잠깐 이 되도 않는 상황에 돌아버렸나 보다. 인주야! 근데 아까 그 여자가 와서 처음에 뭐라고 그랬어?”
 정황파악이 필요하다. 이 사단의 초창기부터 말이다.
 “그야 처음에는 엄마랑 아빠한테 울면서 너랑 어쩔 수 없이 몰래 결혼을 하게 됐다고 용서해 달라고 그러더라. 내가 다 눈물이 나 혼났어. 잘해 인마!”
 그건 막장드라마의 일반원칙이지. 연기 잘했네. 그럼 애도 가졌다고 그랬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인주에게 물었다.
 “왜? 왜 결혼을 했대?”
 “이 자식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드디어 감 잡았다.
 “그러니까 어쨌든 내가 저 여자랑 결혼을 했다는 증거는 있는데 원인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단 말이네?”
 “너 지금 CSI 마이애미 찍냐?”
 “아무튼 난 결혼을 했고 저 여자는 제니퍼란 말이지. 그런데 서류 이외에는 증거는 없고?”
 “이 자식이···, 뭔 소릴 하는 거야? 결혼이 범죄냐, 증거 찾게? 아무튼 축하한다. 너한테 제니퍼가 가당키나 하냐? 고무신 거꾸로 신기 전에 잘 해라. 저녁이나 처먹으러 와.”
 하느님 아버지! 아니 부처님, 그리고 알라여!
 아니다. 그런 신들을 믿은 적이 없다.
 혹시 지리산 산신령?
 ‘저한테 왜 이러세요?’
 
 ***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초자연적인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리산 산신령이 있다고 믿거나 그 산신령이 나에게 도끼 대신 슈퍼스타 제니퍼 정을 선물로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와 찬바람과 조우하자 뭔가 잘못된 것이란 걸 다시 알 수 있었다.
 신데렐라는 있어도 남자 신데렐라는 없다. 그건 성삼그룹 둘째 사위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평범한 샐러리맨 신분으로 재벌가에 입성하며 세간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지만 결국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이혼 절차를 밟게 되는 말로를 맞이하고 있다.
 ‘일단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하는 게 먼저지. 아무리 내가 마흔까지···, 그건 꿈이었지.’
 악몽이 참 길기도 하고 세세하기도 했다. 그런 꿈을 처음 꾼 건 아니다.
 제대를 한 후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다시 영장이 나와 재 입대를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 꿈에서도 쉽게 깨지는 못했었지.
 밥상은 안방에 차려졌다. 내가 들어가자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신다. 빨리빨리 오지 않았다는 무언의 경고다.
 제니퍼의 옆 자리에 내가 즐겨 쓰던 숟가락이 놓여 있다.
 하는 수 없이 앉긴 했지만 밥이 넘어갈 리 없다. 아버지 생신은 내일인데 밥상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진수성찬.
 그런데도 침조차 고이지 않는다.
 “자, 먹자.”
 “예. 아빠, 엄마도 드세요.”
 “왜 이···,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거예요?”
 제니퍼가 우리 아버지와 엄마를 아빠와 엄마로 부른다. 어이가 없을 정도다.
 “내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나이도 너보다 아홉 살이나 적다면서? 나쁜 놈!”
 쿨럭! 아버지 말씀에 기침이 나온다. 지금 상황파악을 하셔야지 이건 아니지요.
 말은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 아까 과수원에서 하는 거 보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좀 기다리란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괜찮지. 도대체 뭐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걸까?
 젓가락을 든 채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누군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야!”
 “그래. 네가 먹어야 올케가 먹지. 얼른 먹어.”
 젠장!
 강제로 결혼당한 것도 모자라 강제로 밥까지 먹게 생겼네.
 하는 수 없이 밥을 한 숟가락 뜨자 제니퍼가 숟가락 위에 우리 집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귀찜을 슬쩍 올려놓는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 8.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인주가 아니다.
 “어머! 평소에도 그렇게 반찬 올려줘?”
 “그럼요. 형님! 자기가···,호호! 아귀 좋아하잖아요. 입이 아귀처럼 생겨서 좋아하나?”
 “······.”
 “······.”
 뭐냐, 이 썰렁한 개그는.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제야 부모님이 상황 파악을 하셨군. 그런데 아니다.
 “푸하하하하! 푸하하! 아가야! 내가 네 덕에 오랜만에 웃어본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야! 나도 오랜만에 웃어본다.”
 엄마까지 웃으시자 난 더 이상 밥상 앞에 앉아있고 싶은 생각조차 없어졌다.
 “전 그만 일어날게요. 기차를 오래 탔더니 입맛이 없네요. 저 요 앞 친구 집에 다녀올게요.”
 순간 다시 제니퍼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래라. 일찍 들어와. 새아가 걱정시키지 말고.”
 하지만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난 얼른 일어나 어색한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요 앞에 친구는 없다.
 마을에 사는 가장 젊은 사람이라 봐야 50대이니 말이다. 혹시 토요일이라 누가 내려왔다면 모를까?
 나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회관으로 향했다.
 정보화마을인가 뭔가로 선정되어 마을회관에 컴퓨터가 설치되고 인터넷이 개통된 것이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정보화마을이 되진 못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 맞고 용으로 잠깐 사용되다가 지금은 그냥 전시용이 되어서 팔아먹었으면 좋겠다고 인주가 그랬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마을회관에서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누가 있나?
 이 시간은 저녁시간이라서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임숙희다.
 내 동창이자 불알친구. 하지만 여자인 숙희는 그건 없다.
 숙희는 어찌 보면 내 첫사랑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 되었고 중, 고등학교는 시내 여중과 여고를 다녔지만 늘 한 마을에서 통학을 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숙희다.
 한때는 만나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사이였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별로 볼 일이 없었다.
 난 이제 대학 졸업반이지만 숙희는 이미 졸업을 하고 MBS방송국 합창단에 합격해 이미 나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집에 내려올 때마다 이장님과 아줌마는 곧 숙희가 솔로로 가수 데뷔를 할 거라고 자랑을 해대곤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숙희도 가수 데뷔하기에는 이미 좀 늦은 나이. 요즘은 아이돌이 대세 아닌가?
 “어? 너 인성이 아니니?”
 “숙희구나. 언제 내려왔어?”
 난 마치 바로 숙희를 발견한 것처럼 인사를 했다.
 “좀 전에. 잠깐만 좀 기다려줄래. 메일 보낼 게 있어서.”
 “그래.”
 잘됐네. 어차피 정신도 없는데 숙희랑 오랜만에 대화나 좀 하자.
 그러고 보니 숙희도 서울물 먹고 세련되게 변했다.
 굵은 갈색 실로 짠 터틀넥 앞으로 목에 건 독특한 문양의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봤더라?
 눈꽃결정체 같은 전체모양에 가운데 황금색 불꽃이 작렬하고 있는 디자인.
 젠장! 제니퍼가 걸고 다녀서 대박쳤다는 그 목걸이잖아?
 “뭘 그렇게 봐?”
 “험! 아니야. 그런데 합창단은 할 만 해?”
 다시 제니퍼가 떠오르려 하자 난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 뭐. 나 출연하는 거 봤지?”
 봤다. 주로 음악캠핑이나 가요여행에 나온다. 뒤에 서서 코러스를 넣는 숙희를 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연락을 할까 망설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봤어. 잘 하더라. 근데 너희 어머님이 너 솔로 데뷔할 거라고 하던데?”
 “노력하는 거지. 그게 어디 쉽니? 너는 어때?”
 숙희가 묻자 난 할 말이 없었다.
 ‘난 이제 졸업시험을 봤고 어디 이력서라도 내야 할 처지인데 제니퍼랑 결혼했다. 그런데 난 왜 제니퍼랑 결혼을 했을까?’
 이렇게 대답 할 수는 없다.
 “졸업시험 끝났어. 이제 취직해야지.”
 “그래도 한예영 영상학과면 케이블 쪽이라도 가능하지 않나?”
 저건 그냥 하는 멘트다. 설사 내가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라 방송작가로 가려 한다 치더라도 외주제작사면 모를까 케이블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달곰 황성도 이리저리 뛰며 원서를 집어넣고는 있지만 오라는 데는 없다고 맨날 투덜거린다. 난 그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다.
 청년 실업만 100만. 어쩌면 그 압박감 때문에 내가 정성진 선배가 운영하는 성진 엔터테인먼트에 취직해서 말풍선 과 댓글만 달며 착취당하다가, 만년대리로 장가를 가지 못하는 악몽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꿈속일지도 모르고.
 다시 제니퍼 생각이 나자 머리가 다 아파왔다. 화제를 돌리자.
 “MBS는 연봉 얼마나 돼?”
 “초봉은 한 3000되지. 난 이제 6000넘었고. 원서 내 보게? 공채 내년이야.”
 괜히 물어봤다. 숙희 연봉이 6000이라니? 이장님이 방방 뜰만 하네.
 “이제 다 됐다. 날씨도 쌀쌀한데 우리 커피 한 잔 마실까?”
 숙희가 메일을 다 보냈다며 USB를 꺼내 흔든다.
 “커피 좋지.”
 그렇지 않아도 한 잔 마시고 정신 좀 차리고 싶던 차다.
 우린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을 들고 밖으로 나와 마을회관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가 다 우리가 놀던 곳이네.”
 “그러네.”
 “세월 참 빠르다. 그치?”
 “그러네.”
 어둠이 우리가 태어나서 뛰어놀던 마을을 조금씩 감추고 있었다.
 이제 별이 뜨고 곧 달이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리라.
 추억을 되새기다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그때 숙희가 슬쩍 내 손을 잡아오며 말했다.
 “인성아!”
 “어! 왜?”
 “너 결혼했다면서”
 쿨럭! 인주가 소문을 냈나? 아니면 아버지일지도 모르지.
 “아니야. 내가 무슨 결혼을 해?”
 “자식! 아무리 네가 날 좋아했더라도 결혼 했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네 와이프가 들으면 속상하겠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야?”
 난 숙희에게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숙희가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미안해. 네가 대학 입학한 후 고백한 거 받아주지 못해서.”
 이건 또 뭔 소리냐?
 그렇구나. 참 뿌린 씨도 많다. 내가 대학 입학한 후 서울에서 숙희를 만나 고백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모두 네 명이 아니라 다섯이네. 정유린하고, 임숙희에, 한예영 프러포즈3인방까지.
 “그래도 네가 이렇게 빨리 잊고 결혼해줘서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거 아무래도 욕 같다. 자길 포기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그게······.”
 내가 당황해 머뭇거리자 갑자기 숙희의 입술이 내 입술에 0.3초쯤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지막 인사야. 품절남 된 거 축하해.”
 숙희와 키스를 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군. 어렸을 때는 발가벗은 것도 다 봤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손잡는 것조차 거부했었는데.
 결혼을 하니 좋은 일도 생기는구나. 이게 나의 첫 키스인가?
 그때 누군가 상당히 험악한 표현들로 첫 키스의 달콤함을 산산조각 냈다.
 “얼씨구 지랄들 하고 계세요. 니들 영화 찍냐? 아예 모텔로 가시지?”
 “어머나 깜짝이야, 시발!”
 나도 모르게 반달곰 전용 멘트가 흘러나왔다. 숙희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어, 언니?”
 인주다. 독기가 가득 찬 눈빛으로 나와 숙희를 노려보고 있다.
 “임숙희! 너 뒤질래?”
 “아니에요. 언니! 난 친구로서 그냥 마지막으로······.”
 “친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뒈지고 싶지 않으면 들어가라.”
 “나 갈게. 언니 안녕히 계세요.”
 후다닥!
 숙희가 인주의 기세에 눌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인주가 제천여고 다닐 때 선배였고 짱이었으니 겁도 나긴 하겠지.
 난 그래도 겁 안 난다.
 “숙희야! 들어가. 또 봐!
 숙희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데 갑자기 인주가 귀를 잡아 당겼다.
 “아야! 이거 놔!”
 “이 등신아! 또 보긴 뭘 또 봐. 꽃 같다는 말도 모자라는 니 마누라를 두고 숙희가 눈에 들어오니? 더구나 제니펀데?”
 “조용히 말해. 숙희 듣겠다. 그리고 내 마누라 아니야?”
 “아이고! 내가 못살아! 너 찾으러 오다가 제니퍼가 다 봤어 이, 등신아!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 어차피 결혼한 적도 없는데.
 
 ***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아침밥상 앞에 앉아 미역국을 한 술 입에 넣는 순간 아버지가 물으신다.
 여전히 옆에는 제니퍼가 새하얀 종아리를 드러내고 앉아 있다. 날씨도 추운데.
 춥든 말든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그렇지만 자꾸만 눈길이 간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어젯밤 인주에게 귀를 잡혀 집으로 끌려온 후 잠이 오질 않았다. 밤 1시가 넘어가는데도 잠이 오질 않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다시 어쩌면 제니퍼가 지리산에서 날 따라붙은 구미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래서 한 번만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인주와 제니퍼가 자는 방으로 몰래 잠입을 시도했다.
 구미호가 아니고서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꼬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이불을 들치는 순간!
 누군가의 발에 얼굴을 차인 난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인주 발인지 제니퍼 발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아무튼 벌겋게 부어올라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인성이가 어제 몰래 올케 이불 속으로 들어오다가 발에 차였어요. 매일 같이 자면서 하룻밤을 못 참니?”
 ‘끄으응! 그래도 제니퍼 발이라니 다행이긴 하군.’
 “크흠! 밥 먹자.”
 아버지가 듣기 민망하시다는 표정을 지으시자 인주도 입을 다물었다.
 “언제 올라가니?”
 “일정이 좀 있어서 일찍 올라가야 해요. 엄마!”
 내가 대답하려는데 제니퍼가 선수를 쳤다. 나쁠 건 없지. 일단 일찍 올라가면서 해명을 하려는가 보군.
 “우리가 따라 올라가봐야 할 텐데···. 신혼살림도 좀 장만하고 또 늦었지만 결혼식도 치러야 하지 않겠니?”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신다.
 “엄마! 저는 결혼한 게······.”
 내가 입을 열자마자 양쪽에서 허벅지를 꼬집어 뜯는다.
 ‘이 씨!’
 “걱정 마세요. 올라가서 바쁜 일만 끝내고 모실게요.”
 모시긴 뭘 모셔? 여우 소굴로 모시려는 건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리 해명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니 일단 올라가자.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늘 돈 걱정이신 엄마!
 엄마! 걱정 마세요. 절대 돈 들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에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 엄마 며느리가 누구야? 제니퍼야. 제니퍼가 돈 걱정을 하겠어? 그치 올케?”
 “그럼요. 형님! 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저···, 이거 받으세요.”
 인주의 설레발에 제니퍼가 봉투 세 개를 슬쩍 내놓는다.
 “그게 뭐냐?”
 아버지가 묻자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제니퍼.
 이거 연기 제대로 나오려나 본데?
 역시 그렇군. 제니퍼가 갑자기 숟가락을 놓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용의 나날들’에서도 열라 슬프게 우는 것을 봤다. 지금도 나까지 슬퍼질 정도의 연기.
 한마디로 쩐다. 쩔어.
 “저희가 말씀도 못 드리고 혼인신고도 하고······.”
 “아가! 괜찮다.”
 괜찮은 건 아니지. 그리고 저희가 혼인신고 한 게 아니고 혼자 한 거겠지.
 “아니요. 엄마! 흐흐흑! 혼수도 못해서 제가 뭐라도 준비해 드리려 했는데 오빠가······.”
 헉! 염병! 이제는 오빠란다.
 “괜찮다는데 그러는구나? 그만 그쳐라.”
 하아! 연기 발 진짜 대박이네.
 “하하하!”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인주의 응징이 이어졌다.
 “뭘 잘했다고 이 자식이! 올케 좀 보고 배워라.”
 망할 것. 한 이불 덥고 하루 밤 자더니 완전 들러붙었군.
 “그래도 제가 약소하게나마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거라 생각해서 준비했어요. 탓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절대 그럴 수 없지. 하지만 봉투 세 개는 이미 인주 손에 들어가 있다.
 “이건 아빠, 이건 엄마. 그리고 이건 나? 완전 대박!”
 “그럴 필요 없다니까?”
 엄마와 아버지가 한사코 만류했지만 인주는 이미 봉투를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가 인주를 노려보며 봉투를 빼앗으려는 찰나 제니퍼가 일격을 날렸다.
 “안 받아 주시면 제가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발 받아주세요. 흐흐흑!”
 “아이고! 이를 어째. 그래 알았다. 그만 울고 밥 먹어라.”
 아버지가 눈물 공세에 항복하자 제니퍼가 언제 울었냐는 표정으로 밥을 먹어댄다.
 딱 봐도 연기가 분명한대 아버지와 엄마는 감동한 눈치.
 그리고 인주는 봉투 안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대박!”
 “밥 먹자. 그리고 일찍 올라가거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서로 잘 살아야지. 인성이 이 녀석이 부족한 게 많다. 그래도 나이도 어린 네가 마음 씀씀이가 넓어 다행이구나.”
 아버지!
 지금 누구 편에 서 계신 겁니까? 저 아버지 아들이거든요?
 “그래. 어린 네가 인성이 보다 낫구나. 아무튼 고맙다.”
 엄마까지 제니퍼를 두둔하고 나서신다.
 이러면 안 되는데?
 
 <『와이프는 절대고수』 1-2권에서 계속>

댓글(14)

다크라이    
내용이 초반에는 좀 이해하기 힘듬. 그걸 1권전체에걸쳐서 진행하는데.. 1권 끝에서도 완전한 해결이안나고 2권으로 미뤄짐. 좀 답답한진행과 과연 2권 진행이 앞내용과 연관있을까 라는 의문이드는 급격한반전. 느닷없이 판타지세계로갈거같은.. 전 안삼. 구매는 1권끝까지 보고 결정하는걸 추천
2017.06.19 11:52
검은Ursa    
60%봤는데 내가 이해 못하는건가 했는데 아니군. 가독성 최악이네요. 저도 구매 패스 할게요.
2017.06.30 01:15
호양이    
최악 맞음
2017.12.28 13:02
라면은짜다    
도저히 못읽겠음 두서가 없는듯
2018.06.12 15:54
돼지터    
두서없는 내용 가독성 최악 내용 전개도 이상하고
2018.06.15 01:04
경주팝퍼    
보다가 휴대폰 주먹으로내려침
2018.06.15 07:02
한검    
와.. 도저히 못보겠네요 가독성 왜이럽니까;;;;
2019.09.08 13:17
countryman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가 술 먹고 잠이 덜깼나.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야
2019.09.13 07:39
작가납치함    
글의 흐름 방식이 참으로 독특하네요 2000년대 글의 흐름 방식에서 뭔가바꿀려고한거같은데 오히려 보기힘듬
2019.09.20 20:00
kt*******    
다들 착하시네요. 욕도 안쓰시고 하~~ 이건 망작이 아니라 쓰레기다.
2020.02.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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