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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극수라 1화

2017.07.20 조회 17,790 추천 125


 천극수라 天極修羅 1권
 
 
 
 1장.
 
 
 
 휘이이이이잉.
 
 한겨울 냉풍에 땅에 쌓인 눈 더미 상부가 흩날렸다.
 
 안개처럼 뿌연 눈발이 무질서하게 날렸다.
 
 덜컹덜컹.
 
 창문이 바람에 꽤 크게 흔들렸다.
 
 틈새로 바깥의 내기가 살며시 장방형의 방으로 스며들었다.
 
 냉기는 방안 정중앙에 있는 청동 향로가 뿜는 열기에 밀려 사그라지더니 이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묵향이 은은히 감도는 방안에는 희끗한 백발의 노인이 자그마한 탁자를 마주하고 홀로 앉아 있었다.
 
 노인은 먹물을 흠뻑 머금은 붓을 오른손에 쥐고, 탁자에 펼쳐져 있는 서책에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 내 맘대로 이렇게······많이 망설이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뜨겁게 자신의 삶을 불태웠는지, 후세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았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정사 대전록’ 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모든 것의 시작은 육룡이라 불리는 여섯 야심가들의 터무니없는 야욕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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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어둠이 뒤덮은 밤하늘.
 
 그믐이라 별도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이 대륙의 젖줄 장강을 뒤덮었다.
 
 한 척의 대선이 어둠에 뒤덮인 장강을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밤바람에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대선을 향해 한 척의 편주가 다가가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노 젓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장강의 수면에 울려 퍼졌다.
 
 편주 뒤에서 노를 젓는, 삿갓을 쓴 사공.
 
 뱃전에 가만히 앉아 대선을 바라보는 노인.
 
 희끗한 백발, 흑백으로 얼룩진 눈썹.
 
 두 눈 아래를 가린 검은 천에는 하얀 한 마리 백룡이 수놓아졌다.
 
 
 
 잠시 뒤.
 
 편주가 예의 선박 좌측에 다가서자, 선박 난간에서 밝은 등 하나가 켜졌다.
 
 그리고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擥裾未結帶.”
 
 뜻 모를 말이 들렸다.
 
 “紋眉出前窓.”
 
 편주 뱃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羅裳易飄飄.”
 
 선박 난간에서 예의 낭랑한 음성이 다시 들렸다.
 
 “小開罵春風.”
 
 앉은 노인이 답하자,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난간에서의 음성이 정중하게 바뀌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덜컥.
 
 선박 좌측으로 사선으로 난간이 내려왔다.
 
 뱃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나며 사공을 뒤돌아보았다.
 
 “기다리게.”
 
 “예, 대인.”
 
 사공이 머리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노인이 배에 오르자,
 
 도열한 무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깊이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인.”
 
 지극히 공손한 태도였다.
 
 백룡이 수놓아진 천으로 얼굴을 가린 노인이 지근에 있는 한 무사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다 와 계십니다.”
 
 무사가 머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런가? 내가 조금 늦은 모양이군.”
 
 “아닙니다. 정확한 정시에 오셨습니다.”
 
 “훗.”
 
 무사의 대답에 노인이 살며시 실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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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렁이는 물결 탓에 선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선실은 상당히 넓었다.
 
 평소 각종 화물을 적재하던 공간인 듯한데. 뜻밖에는 중앙에 큼지막한 원탁이 놓여 있었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듯 원탁은 일절 흔들리지 않았다.
 
 
 
 청룡, 백룡, 흑룡, 황룡, 적룡,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쌍룡.
 
 
 
 여섯 마리의 용이 수놓인 검은 천으로 각자의 얼굴을 가린 여섯 사람이 원탁에 빙 둘러 앉았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한창 논의하는 중이었다.
 
 “10여 년 전······.”
 
 쌍룡이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달리 30년 전쟁이라는 1차 정사대전은 그다지 소득이 없었소이다. 또한 휴전한 지난 10년 동안 강북을 장악한 중원 정도 연합 맹. 일명 정맹正盟과 강남을 장악한 천존신교天尊神敎는 비약적으로 전력을 키워, 지금은 포화 상태요.”
 
 “하면 터트리게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흑룡이 말하고 나서며 음험한 눈빛을 번쩍였다.
 
 쌍룡과 흑룡을 제외한 나머지 넷이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찬성이오.”
 
 “필요하다. 생각하오.”
 
 쌍룡이 원탁에 둘러앉은 다섯을 둘러봤다.
 
 “이의 없으시지요?”
 
 “······.”
 
 “좋소이다. 모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추진하겠소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맹과 천존신교를 동사同死 시켜야 하오.”
 
 황룡이 말하고 나섰다.
 
 “물론이오.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정맹과 천존신교의 존재 이유는······ 필히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외다.”
 
 적룡이 황룡의 말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그럼. 세부 사항에 관해 논의해 보았으면 하오만.”
 
 쌍룡이 말하며 다른 용들을 돌아봤다.
 
 “그럽시다.”
 
 “좋소이다.”
 
 다른 용들이 찬동하고 나섰다.
 
 두런두런.
 
 그들 육룡은 낮은 어조로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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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박의 측면에서 네 척의 편주가 거의 동시에 떨어져 나왔다.
 
 편주들은 천천히 선박에서 멀어지며 강가로, 장강의 뒤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 중 한 편주.
 
 백룡.
 
 그가 얼굴을 가린 천을 걷으며 멀어져, 작은 점처럼 보이는 대선을 바라보았다.
 
 반짝.
 
 그의 눈에서 일순 미광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2장.
 
 
 
 산 하나에 두 마리 호랑이가 함께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2차 정사대전이 일어났다.
 
 천존신교나 정맹이나 언젠가는 다시 부딪칠 것을 이미 예상한 터라 2차 정사대전은 삽시간에 격렬해졌다.
 
 개전 초기.
 
 천존신교는 거침없이 장강을 넘어 강북으로 향했다.
 
 강북에 접한 장강의 강가에 교두보를 확보, 충실히 내실을 다졌다.
 
 장강이 이미 천존신교의 수중에 떨어졌고, 교두보를 마련한 천존신교가 강북 전역으로 전력을 투사하기 직전이었다.
 
 정맹은 속전속결을 원하는 천존신교의 책략에 놀아나 대응이 느렸다.
 
 내부에서 천존신교의 세작들이 적극 활동하고, 안팎에서 천존신교에게 넘어간 배신자들과 세력이 속출하는 바람에 제 때 손을 쓰지 못했다.
 
 정맹은 결국 새외 문파들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천존신교의 우위는 일시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천존신교가 정맹에게 밀렸다.
 
 천존신교는 급박한 처지에 놓였고, 그들은 정맹의 반대편에 서 있던 마도와 사파에 손을 내밀었다.
 
 “도와주시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다 들어주겠소.”
 
 천존신교의 제의에 다수의 마도와 사파 문파들이 참전했다.
 
 전장에서 중원과 새외의 거마효융巨魔梟雄들이 격돌하며 전황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천존신교가 확보한 장강과 예의 교두보는 연일 죽고 죽는 혈전이 이어졌다.
 
 1차 정사대전 당시는 천존신교와 육대문파만의 전쟁이었다면, 2차 정사대전은 관련 세력들이 참전한 대단위 전면전이었다.
 
 지루한 소모전이 그렇게 5년 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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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정맹 제1 전선.
 
 안휘安徽 서남부西南部 서악산西岳山은 여느 다른 산에 비해 산세가 깊고 험해 인적이 뜸한 곳이다.
 
 하지만 그 지정학적 위치는 여느 다른 산을 압도한다.
 
 서악산 뒤에는 장강이 흐른다.
 
 우에는 화현이, 좌로는 무위의 두 현이 있고, 무엇보다도 안휘 성의 성도인 합비를 최단 경로에 두고 있다.
 
 자연 다른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사투가 연일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해가 중천에 이른 정오 무렵.
 
 서악산 동쪽 능선은 각종 소리에 뒤덮였다.
 
 채채채채채채채챙.
 
 병기가 부딪치는 금속성이 멈추지 않았고,
 
 “크아아악!”
 
 “우와아아악!”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으며,
 
 “막아!”
 
 “거기가 뚫리면 안 돼!”
 
 “사교 놈들에게 밀리지 마라!”
 
 고함, 외침, 경호성들이 연이어졌다.
 
 
 
 천존신교 외 삼전 중 하나인 구궁천용전 산하 파천도군 제3대.
 
 칙칙한 회의를 입은 3백여 명의 교도가 목책을 넘어뜨리고, 타 넘으며 진채 내로 치달렸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다.
 
 이에 맞서 정맹 산하 외 삼회 중 하나인 대라호검회 소속 검웅대 일백 검사.
 
 백의 무복을 입은 검사들은 필사적으로 회의 교도들을 밀어내려했다.
 
 하지만 이미 최종 방어선인 목책을 돌파한 회의 교도들은 노도와 같았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인들은 진채 내부로 깊숙이 치고 들어가며 눈에 띄는 족족 검사들에게 달려들어 참살했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검사 일인당 세넷 명씩 교도가 달려들었다.
 
 교도들은 무자비하게 검사들을 참살했다.
 
 “으아아아아악.”
 
 진채 곳곳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비명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새벽부터 이어진 전투는 정오가 다 되었음에도 끝나지 않았다.
 
 검사들은 교도들을 상대로 나름 선전에 선전을 펼쳤으나 이미 기운 승기를 되찾아 올 수는 없었다.
 
 중과부적이었다.
 
 최종 방어선이 뚫린 것이 치명타였다.
 
 진채 내로 쏟아져 들어온 교도들을 막기에는 검사들은 너무 수가 적었다.
 
 교도들은 검사들을 빠르게 참살하며 그 수를 줄여나갔다.
 
 그에 검사들이 하나둘 차디찬 시체가 되어갔다.
 
 
 
 “죽어!”
 
 악에 받힌 백의 검사 한 명이 내게 달려들었다.
 
 적의가 깃든 얼굴과 분노로 얼룩진 두 눈동자가 한 눈에 보인다.
 
 살의를 온몸으로 드러내며 백의 검사가 철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작은 파공성이 일고, 내 좌측 옆구리를 철검이 파고들었다.
 
 까앙.
 
 재빨리 왼손에 쥔 싸구려 박도로 철검을 막고, 오른손에 쥔 흑창을 백의 검사를 향해 내질렀다.
 
 찰나.
 
 푸우욱.
 
 창이 백의검사의 배를 옷과 함께 꿰뚫었다. 옷 때문일까? 억세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생사 교차의 순간이 지났다. 승자는 나다.
 
 “꺼어어······.”
 
 백의 검사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러며 창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두 눈동자에 나에 대한 분노가 한 가득 실려 있다.
 
 정말이지 싫다.
 
 저런 눈동자.
 
 정말 싫다!
 
 창을 빼며 박도를 높이 들었다.
 
 써억.
 
 단칼에 백의 검사의 목을 쳐버렸다. 고통 없이 죽여주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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