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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 1-1권

2017.09.20 조회 2,004 추천 24


 # 1.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꾼들이 존재한다.
 하늘을 뚫을 듯 날카롭게 뻗는 고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중저음의 잔잔한 목소리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태우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호불호는 분명했고,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더라도 자신에게 잘 맞는 음악을 찾느라 허송세월을 보내는 이도 많았다.
 과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한번 들어보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어린이들은 그들의 진면모를 잘 알지 못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 앞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고도 지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월은 흘렀다.
 지금까지 그들의 업적을 따라올 만한 음악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 그렇다고 그들 이후로 지금까지 활동해온 음악가들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 비해 뭔가 아쉬울 뿐.
 
 드디어 이 시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아니지만, 그것들에 견주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을 특별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한 명 탄생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감동과 환희로 온몸에 전율이 돋았고,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놀라운 효과가 발생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증언까지 했고, 후에 인류는 이 남자에게 ‘신의 목소리’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누군가 말했다.
 
 “최고의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다.”라고.
 
 ***
 
 부모는 경이로운 존재이다.
 새로운 생명을 이 땅에 탄생케 하는 자들이니.
 10개월가량 어머니는 뱃속의 아이를 최대한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살핀다.
 제아무리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라도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과감하게 입에서 뗄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생계를 위해 피땀 흘려 땅의 소산물을 수확하는 일을 해왔다.
 지금 이 작은 마을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똑같았다.
 
 아내는 불룩한 배를 움켜잡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아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네?”
 “응? 떡볶이?”
 “응, 떡볶이······.”
 “괜찮아? 그런 거 먹어도?”
 “···그래도 좀 그렇겠지?”
 “아무래도 조금 그럴 것 같아.”
 “조금 힘드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어.”
 “힘내, 거의 다 왔잖아. 이제 앞으로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
 
 남편도 마음 같아서는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 주고 싶었다.
 아내의 입으로는 내가 아닌,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더라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아내와 아이, 둘 다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남편은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럼 내가 얼른 가서 떡볶이 사 올게.”
 “응? 아, 아니야, 여보.”
 “이제 출산예정일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지만, 뭐 한 번 먹는다고 큰일이라도 나겠어? 지금까지 잘 참아왔잖아. 물에 적셔서 먹으면 좀 괜찮겠지.”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뺨을 매만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 시내에 나가는 김에 국거리라도 사 올 테니까.”
 “그래요, 그럼. 조심히 잘 다녀와요.”
 “뭐, 또 먹고 싶은 건?”
 
 아내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으음, 괜찮아.”
 “알겠어, 그럼!”
 
 남편은 차키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섰다.
 하늘은 먹구름이 덮여 있었지만, 시내에 다녀올 때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아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목줄이 풀려 마당을 활보하고 다니는 그 집의 애교 담당 진돗개, ‘진돌이’를 발견한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진돌아, 너 또 언제 목줄 풀었어?”
 “월!”
 “하여간 탈출의 귀재라니까?”
 “월! 월!”
 
 진돌이는 워낙 말이 많았다.
 남편이 집 밖으로 차를 끌고 나갈 때가 되면 언제나 이렇게 말을 걸곤 했다.
 그는 진돌이를 끌고 와, 파란색 지붕으로 되어 있는 개집에 목줄을 다시 단단히 매어주었다.
 
 “아빠 올 때까지 엄마 잘 봐주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월!”
 
 남편은 진돌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고 하얀색 소형트럭에 올라탔다.
 
 “월! 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많이 하는 진돌이를 뒤로하고, 얼룩이 짙게 져 있는 창문 너머로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차의 시동을 걸었다.
 천둥 같은 엔진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으며 비가 오기 전에 얼른 시내에 다녀오기로 한 남편은 핸들을 거침없이 돌렸다.
 
 아내는 남편의 차가 마당에서 벗어나는 걸 창문 너머로 확인한 뒤에 거실 소파에 앉아 오디오 리모컨을 눌렀다.
 오디오에는 앨범 단위로 정돈되어 있는 수백 곡의 음악이 담겨 있었다.
 임신 초기 때부터 들어온 찬송가, 복음성가.
 모두 다 남편이 아내와 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해둔 음악들이었다.
 물론 태교에 빠질 수 없는 모차르트 음악까지.
 아내는 학창시절 플루트 전공으로 외국 음악대학에 합격했지만, 집안 형편으로 인해 진학이 불가했고 그곳에서 장학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음악 생활을 이어가기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음악 생활을 관두고 중소기업에 취직했던 그녀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시골총각과 첫눈에 빠지게 되는데 그게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고추밭을 가꾸는 남편과 함께 시골에 내려와, 부유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며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녀는 아직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가끔씩 취미 생활로 플루트를 꺼내곤 했다.
 후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면, 남편은 아내가 조금은 늦었더라도 서울에 올라가 다시금 플루트를 부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아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내심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루야, 엄마가 플루트 불러줄까?”
 
 아내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말하며 거실 탁자 위에 놓인 기다란 가방에서 은빛이 맴도는 플루트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오디오에서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찬송가에 맞춰 조심스레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갖다 대어 화음을 집어넣었다.
 하루라는 태명을 가진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음악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어미의 뱃속을 마음껏 헤엄쳤다.
 
 ***
 
 남편은 한적한 차도 위를 달리며 주위를 살폈다.
 요새 비가 많이 왔는지라 다른 이웃들의 작물까지 고개를 심하게 숙이고 있었다.
 
 “하아, 올여름은 너무 심한데······.”
 
 혼잣말을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은 남편은 삐걱거리는 핸들을 부여잡으며 시내로 향했다.
 집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이 시내의 시장은, 어느 지역을 가도 이만한 인심을 가진 곳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웃음꽃이 질 날이 없었으며 돈 대신, 올해 수확한 작물을 주더라도 흔쾌히 받아주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마치 몇 십 년 전의 시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고전적인 향내를 풍기는 어머니 같은 시장.
 남편은 근처 간이주차장에 잠시 소형트럭을 주차시킨 뒤, 큰 걸음으로 시장 안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가지각색의 음식 냄새들이 코를 찔러왔고, 저 멀리에서 떡볶이를 파는 아주머니가 그를 단번에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이봐, 하루 아빠!”
 
 하루는 아이의 태명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본명인 것처럼 사람들의 입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남편은 그녀와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가까이 다가갔다.
 
 “이모님, 장사 잘돼요?”
 “으이그! 하루 엄마, 아빠가 안 오니 장사가 되겠어? 우리 집은 단골손님으로 돈벌이하는데 말이야.”
 “죄송해요. 아내가 임신 중이라.”
 “그런데 웬일이야? 시내까지 다 나오고.”
 “아, 그게··· 하루 엄마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 내가 잔뜩 싸줄 테니.”
 “아, 아니에요. 조금만 사 갈게요, 조금만.”
 “으이그, 누가 하루 엄마 다 먹으래? 고생하는 남편도 좀 먹어야지.”
 “하하, 감사해요.”
 “그리고 임신 중에는 너무 매운 거 먹으면 못써. 그렇다고 아예 안 먹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좀 덜 맵게 해줄게.”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뭐가 그리 신이 나셨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철판 위에 놓인 붉게 양념된 가래떡을 박자에 맞춰 볶아댔다.
 아내가 지방에 처음 내려오고 시골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 고생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이 지역 특유의 맛을 일깨워 준 것이 이 집의 떡볶이였다.
 뭐, 워낙에 전라도의 음식은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으뜸이라 인정하고 있더라도, 모든 이의 입맛까지 확 휘어잡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간이 조금 센 지역이라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지만 맛 하나만으로 단번에 전라도 음식의 맛에 눈을 뜨게 해준 이 떡볶이는 곧 아내가 임신 후에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자, 여기 있어, 하루 아빠.”
 
 아주머니는 두 손 가득 떡볶이와 어묵, 순대까지 일회용 그릇에 꽉꽉 채워 검은 봉지에 넣어주었다.
 남편은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지만 아주머니는 억지로 그의 손에 나름의 정성을 담은 떡볶이를 쥐여주었다.
 계산은 역시 떡볶이 1인분 값만 받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다음번에 고추 한 포대 갖다 드릴게요.”
 “됐어, 얼른 가봐!”
 “네!”
 
 남편은 시장에 나온 김에 국거리나 반찬거리를 좀 둘러보았다. 허나 마땅한 것들은 진즉에 냉장고에 저장해둔 상태라 지금 당장은 새로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간이주차장에 도착한 남편은 차에 타 떡볶이가 담긴 검은 봉지를 조수석에 올려두고 시동을 걸었다.
 곧 트럭은 시장 밖으로 빠져나왔고, 시내를 벗어나 기나긴 도로 위를 달리던 도중 앞 유리 위에 하나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딱 맞춰서 비가 오는군.”
 
 남편은 곧바로 핸들의 오른쪽 스위치를 돌려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앞 유리의 와이퍼가 삐걱거리며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고, 오히려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그는 다시금 와이퍼 스위치를 매만지며 정면을 주시했다.
 조금씩 내리고 있던 빗방울들은 어느새 세찬 바람과 동시에 눈앞을 모두 가릴 정도의 소나기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이대로는 운전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비상등을 켠 채 한쪽 구석으로 차를 옮겨 잠시 정차시켰다.
 잠시 동안 시동을 끄고 켜기를 반복하며 와이퍼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완전히 고장이 나버린 걸 알아차리고 한숨을 내쉬며 비가 조금이나마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곧 창밖을 바라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던 그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사랑스러운 내 아내’라고 떠 있는 전화를 망설임 없이 받았다.
 
 “여보세요?”
 ―······.
 “전화 받았어 여보, 말해.”
 ―······.
 “여보?”
 ―······.
 
 남편은 귓가에서 휴대폰을 떼고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분명 아내로부터 온 전화가 확실했다.
 그러나 휴대폰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수신이 잘 잡히지 않는 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은 뒤 이쪽에서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런데 통화종료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조용했던 수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뭐야?’
 
  남편은 인상을 찌푸리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기울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그 소리는 뭔가 희미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이 들게 하는 노랫소리였다.
 그 노랫소리를 말과 글로 표현하려면 단순하게 허밍(Humming)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확실히 그것과는 엄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남편은 갑작스럽게 귀신에 홀린 것처럼 두 눈이 멍해지더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휴대폰을 귓가에 댄 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를 맞으면서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점점 차도 위를 가로질러 걸어가더니 밭이 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그의 머리 위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
 
 같은 시각.
 아내가 홀로 있는 집에 어느 한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아내의 옆집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로, 가끔씩 아내의 집에 찾아와 수다를 떨곤 했다.
 
 “월, 월!”
 “어머? 진돌아, 너 왜 목줄이 풀려 있니?”
 “월, 월!”
 
 진돌이는 목줄이 풀린 채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온몸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아내고 있었다.
 평소에는 물이라면 질색하던 녀석의 그런 아이러니한 모습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한 뒤 아내의 집 문을 두드렸다.
 
 “하루 엄마, 하루 엄마!”
 “······.”
 “응? 이상하다, 지금쯤 집에 있을 텐데?”
 
 아무리 집 문을 두드려도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남편의 트럭이 없는 걸로 보아 ‘둘이 잠시 외출을 나갔나?’라고 생각했지만, 평소에도 잘 움직일 수 없던 아내가 굳이 비오는 날에 나갔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월! 월! 월! 월!”
 
 진돌이의 짖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진돌이를 무시하고 슬쩍 창 너머로 집안을 살폈다.
 커튼은 걷혀 있는 상태였고 거실의 불은 켜져 있었다.
 그녀는 눈동자로 스윽 대충 훑어보고는 ‘오늘은 비도 많이 오는데 그냥 집에 가서 드라마나 봐야지.’라는 심정으로 몸을 홱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빗소리와 진돌이의 울음소리를 뚫고 남편이 들었던 소리와 똑같은 허밍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아내의 집 안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 들리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좀 전에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한손으로는 자신의 불룩한 배를 감싸고 한손에는 휴대폰을 쥔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하, 하루 엄마!”
 
 아주머니는 다급하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도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 아내의 몸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세상에, 예정일보다 좀 더 빠르게 출산을 할 것 같은데?’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임산부와 아이까지 위험한 상태.
 아주머니는 아내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화면에 ‘사랑스러운 내 남편’이라고 떠 있는 걸 확인하고 귓가에 휴대폰을 갖다 대며 말했다.
 
 “하, 하루 아빠?”
 ―······.
 “하루 아빠, 지금 큰일 났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
 
 휴대폰 화면에 뜬 걸로 봐서는 분명 10분가량 통화 중이었다.
 허나 아주머니가 아무리 남편을 불러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다급하게 통화를 종료시킨 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지금 빨리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이, 임산부가 쓰러졌어요! 아, 네, 여, 여기가 어디냐면······.”
 
 ***
 
 아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늑하고도 따사로운 목소리.
 외부로부터 귓속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심장을 뛰게 만들고 부드럽게 감싸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 하루니?’
 
 아내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속으로 말을 걸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알아듣는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반응했다.
 
 ***
 
 안타깝지만 아내는,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그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했다.
 그녀는 구급차로 이송되는 동안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아이를 낳았고, 그와 동시에 숨이 끊겼다.
 사실 조금만 더 빨리 아내를 이끌고 병원에 도착해 정상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산모와 아이, 둘 다 살려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그걸 허락지 않았는지 아내의 집으로 가는 도로가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인해 꽉 막혀 구급차가 지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흙과 나무, 바위들이 쓸려 내려와 도로 위를 가득 덮고 있었고, 구급차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선택해 빙 돌아가다 보니 아내까지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구급차가 그 꽉 막힌 도로 앞에 도착했을 때, 차에 타고 있던 대원 중 한 명이 바위들 틈에 껴 있는 소형트럭 하나가 비상등을 깜빡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대원은 “일단 저 차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다른 구급차 한 대를 더 보내달라.”는 요청과 함께 구급차에서 내려 하얀색 소형트럭 앞으로 달려갔다.
 곧바로 구급차는 본부에 지원 요청을 보낸 뒤 아내가 있는 집을 향해 최대한 빠르게 달려갔다.
 대원은 트럭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에 천장이 처참하게 눌려 운전자가 탈출할 수 있는 조금의 틈조차 보이지 않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대원은 곧 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 주위를 둘러봤다.
 운전자가 산사태가 일어날 걸 알아채고 미리 자리를 피한 것일까? 아니면 이 수많은 바위들 틈에 깔려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대원은 차도를 가로질러 밭이 있는 곳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다행히 산사태로 인한 피해는 차도 위에서 끝나 있었고, 저 사내가 만약 서너 걸음만 더 게으름을 피웠으면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 2. 짐승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신하루.
 단순히 태명이었던 하루라는 이름은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가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본명으로 이어가게 했다.
 
 남편 신하민은 아내 김지연이 하루를 낳고 두 눈을 감았던 날, 이상하고도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처남 김진수에게 말했다.
 하민과 평소에 신뢰가 두터웠던 진수는 그가 하는 말이 헛소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예요?”
 “진짜라니까, 처남? 나는 그 허밍 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해. 옆집 아주머니도 그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니까?”
 “아무리 매형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억지로 믿어줄 수는 없어요.”
 “하아···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격이로군······.”
 “아무튼 저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아요. 어차피 매형은 지금 살아 있고, 혹시라도 천사가 하프를 켜는 걸 눈앞에서 봤다고 말씀하셔도 저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고요.”
 
 진수는 하민이 하는 얘기를 단순히 믿지 않아서 저렇게 냉정하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정말로 그는 과학과 종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기에 아무리 신빙성 있는 얘기를 들려주더라도 별 감흥도 느끼지 않는 그냥 초특급 현실주의자였다.
 진짜와 가짜를 논하기 전에 그가 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부터 확실하게 알고 갈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 하민과의 대화에서 진수가 듣고 싶었던 얘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하민의 귓가에 허밍 소리가 들린 것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누나인 지연의 죽음에 관한 단순한 내용이었다.
 진수는 탁자 위에 놓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매형, 아무튼 그 허밍 소리에 대한 건 이제 그만하시고, 두 손 털고 저랑 서울로 같이 올라가요.”
 “······.”
 “저는 저희 누나가 죽었다고 해서 매형과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아요. 누나의 핏줄도 남아 있고······.”
 
 진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넓은 창가 앞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하루에게 시선을 바꾸었다.
 하루는 양반 자세로 앉아 목줄에 묶여 있는 진돌이를 보며 두 눈을 끔벅이고 있었고, 진수는 그런 그의 자그마한 뒤통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매형도 새 인생 사셔야죠.”
 “···아니, 나는 이대로가 좋아. 하루와 같이 이곳에 살면서 고추도 키우고, 땅을 넓혀가며 과일 농장도 만들 거야.”
 “평생 이런 촌구석에 박혀 늙을 때까지 따분하게 일만 하시면서 사시게요? 이제부터라도 충분히 새로운 사람 만날 수 있는 나이잖아요. 하루도 서울에 올라가서 많은 친구들도 사귀고 여러 가지 경험도 할 필요가 있어요.”
 “처남은 참 신기해··· 보통은 그런 말 잘 안 하지 않아?”
 “말했잖아요. 이제 저를 단순히 처남으로 보지 마시고, 친남동생으로 생각하시라고. 이미 떠나간 누나를 머릿속에 그리시면 매형만 힘들어요. 요새는 다들 재혼하고 잘 산단 말이에요.”
 
 보통 누나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몇 년 만에 다른 여자를 만나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누나를 잊은 채 살아가는 모습을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게 정상이다.
 허나 진수는 진심으로 하민을 생각해주고 있었다.
 그에게는 영원히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 것, 한 종교만을 지향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이런 가치관을 매우 빡빡하다고 여기며 사는 남자이기에 저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하민은, 반대로 그가 느끼는 빡빡한 가치관의 소유자이었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했다.
 진수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방식이 틀릴 뿐이지 따뜻함은 여느 사람들과 똑같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에 하민도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는 있다.
 하민은 진수의 잔에 커피가 떨어진 걸 확인하고 새로이 커피를 채워주려 잔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진수는 그동안, 누나의 동글동글한 눈을 똑 빼닮은 하루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루야, 아까부터 뭐 하고 있어?”
 
 본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진수가 유일하게 예뻐하는 하루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대화하고 있어요.”
 “대화?”
 “네.”
 
 진수는 하루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대화를 한다.”라······.
 보통의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입 밖으로 꺼내는 단어와는 조금 먼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는 왠지 모르게 묵직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매사에 침묵을 유지하고,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진수는 아마 이 아이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을 슬슬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모습은 마치 진수,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루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현실주의자로서 다른 이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그다지 달게 보지는 않았을 테지만, 하루라면 그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장단에 충분히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하루야. 누구랑 대화하고 있었니?”
 “저기, 진돌이요.”
 
 하루가 슬며시 팔을 들어 올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진돌이를 가리켰다.
 
 “진돌이? 아, 저 백구 말하는 거야?”
 “백구가 아니에요, 삼촌. 저 할아버지에게도 진돌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역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가 확실한 것 같았다.
 제아무리 톤이라던가, 발음이라던가, 단어 선택 자체가 애늙은이 같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걸 보면 금방 나이가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진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백구가 맞아. 동물이나 식물, 곤충들은 모두 종류에 맞게 이름이 정해져 있는 걸?”
 “그러면 저희들도 서로에게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응?”
 
 그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 나이대에는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을 때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구가 아닌 이런 식의 커브는 대답하기 꽤나 곤란했다.
 마침 그를 구제해줄 하민이, 잔에 커피를 채우고 거실로 돌아오며 말했다.
 
 “하루는 오늘도 진돌이랑 얘기하나 보구나?”
 
 그런 하루의 모습이 익숙해진 하민은, 이제 그가 하는 행동들이 당연하다는 듯 여겨졌다.
 진수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하민에게 조용히 물었다.
 
 “하루, 원래 저래요?”
 
 하민은 슬쩍 하루의 뒷모습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응, 조금 특이하지?”
 “시골 애들의 상상력은 원래 도시에 사는 아이들보다 뛰어난 건가······.”
 “나도 이 지역의 사람이긴 하지만 저런 애들은 많지 않아. 유난히 하루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더 순수하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하민은 하루를 보는 시선이 ‘어린아이라 그럴 수도 있다.’라는 것처럼 보였으나, 진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장난감이나 사 달라며 고집이나 피울 줄 아는 그런 아이들과 달리, 이 아이는 뭔가··· 생각의 이념 자체가 남달라 보였다.
 진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하루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하루야, 그럼 진돌이는 지금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니?”
 
 그런 그의 질문에 하민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말없이 이들을 지켜보았다.
 하루는 이번에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진돌이에게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답답하대요.”
 “뭐가, 답답하다는데?”
 “목줄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하다고 해요.”
 
 진수는 고개를 돌려 하민을 보고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하루에게 물었다.
 
 “그럼, 하루가 직접 진돌이의 목줄을 풀어주는 게 어때?”
 
 그러자 하루는 한동안 말없이 진돌이를 바라만 보다 코를 한 번 훌쩍이며 말했다.
 
 “자기가 직접 목줄을 풀 수도 있대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해요.”
 “왜?”
 “자기가 목줄을 풀고 나오는 모습을 아빠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대요.”
 
 진수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다시 한 번 하민을 바라보고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그에게 말했다.
 
 ‘맞아요?’
 
 하민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또 다시 하루에게 질문했다.
 
 “그럼 삼촌이 아빠를 설득해볼 테니까, 하루가 가서 줄을 풀어줄래?”
 
 그제야 하루는 고개를 돌려 진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은하수같이 광채 있고 총명함의 깊이가 있어 보였다.
 
 “정말요? 정말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삼촌이 아빠에게 물어볼게.”
 
 진수는 미소를 지으며 하민을 보고 말했다.
 
 “진돌이 풀어줘도 되죠, 매형?”
 
 하민은 진수가 코를 찡긋하며 눈치를 주자 애써 티 나지 않게 연기를 해주었다.
 
 “그, 그럼··· 그렇고말고······.”
 “아빠가 허락해줬다, 그렇지 하루야?”
 
 하루는 자신의 아버지인 하민을 바라봤고, 하민은 그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미소를 보자마자 다시 고개를 홱 돌리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거짓말 안 해도 되요, 아빠.”
 
 진수는 눈, 코,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며 하민을 보고 무언의 압박을 넣었다.
 
 ‘좀 더 성의 있게 하라고요!’
 
 그러자 하민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야, 아빠는 괜찮으니까 풀어줘도 돼. 아빠는 진돌이가 마당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싫어하는 게 아니야. 혹여나 밖을 나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루는 하민을 유심히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신발장에 놓인 자그마한 슬리퍼를 신고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진돌이는 하루가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대며 반겼고, 하루는 파란 지붕으로 되어 있는 개집 앞에 쭈그려 앉아 진돌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한동안 입을 뻥긋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집 안에서 창 너머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수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 진짜로 무슨, 동물이랑 얘기하는 것 같잖아?”
 
 하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사실 저것 때문에 더 진돌이를 풀어주려 하지 않은 거야. 생각해봐, 서로 귀에 대고 뭔가를 속닥거리더니 같이 논에 들어가 뛰어놀고, 흙투성이가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저, 정신적으로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니고요?”
 “나도 그런 생각은 하긴 해봤어. 작년에 참새 가족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자기가 그들에게 들었던 거랑은 뭔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질 않나······.”
 “예? 참새요?”
 
 진수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차라리 공상허언증에 걸려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병일 수도 있겠다만, 다섯 살짜리 꼬마아이가 지금처럼 주도면밀하게 소설 속 시나리오를 쓰듯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건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곧 하루는 진돌이의 목줄을 풀어주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생기발랄한 얼굴로 진수와 하민에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비가 올 거라서 괜찮대요. 이따가 비가 그치면 풀어주래요.”
 
 진수는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조금의 악의도 품지 않고 순수하게 행동하는 걸 맞춰주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맞지만, 그러기에 하루는 뭔가 난이도가 달라 보였다.
 그리고 비라니?
 현재 하늘은 쨍쨍하고 일기예보에도 강수확률은 고작 10%라고 떠 있었다. 그 정도 수치라면 이 동네에 비가 올 확률은 실제 1%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수는 그래도 삼촌인 자신에게 조카가 나름의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며 말했다.
 
 “그랬구나, 진돌이는 비가 오는 것도 알 수 있나 보구나?”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뛰어가더니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닫았다.
 진수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잔을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지면 위에 선명한 자국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민과 진수는 갑작스러운 빗소리에 흠칫 놀래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진수는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여우비를 보고 커피 잔을 바닥에 떨어트렸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에이, 시발··· 해도 해도 이건 좀 아니잖아······.”
 
 
 # 3. 실화입니까?
 
 막상 하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방에서 나와 현관에서 노란색 장화를 신으며 하민에게 말했다.
 
 “아빠, 저 잠깐 뒷산에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오렴.”
 “네!”
 
 심지어 하민도 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지금 이 집 안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사람은 진수인 것 같았다.
 진수는 주섬주섬 꽉 끼는 장화를 신고 있는 하루를 바라보며 온갖 잡념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마른 걸레를 들고 와, 진수가 바닥에 흘린 커피를 대신 닦아주었다.
 
 “아, 제가 할게요. 주, 주세요.”
 
 진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애써 담담하게 방바닥을 닦았다. 물론,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 건 아니었다. 3할 정도를 차지하는 정신은 한쪽 구석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되풀이하며 정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 그를 눈치챈 하민은 그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는 화들짝 놀래 하며 ‘억!’ 소리를 내었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매형, 지금 이거··· 진짜예요?”
 “응, 진짜야. 이건 실화라고.”
 “말이 돼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너는 지금 뭐가 이해가 안 가는 거야? 비가 온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면 진돌이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둘 중 어느 쪽이야?”
 “둘 다요. 아니, 이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건데··· 혹시 비가 온다는 걸 진돌이에게 들었던 건 아닐까요?”
 
 진수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말라 있는 방바닥을 계속해서 문질러대고 있었다.
 하민은 향내를 음미하며 두 눈을 감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이미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관둔 것 같았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도중 하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처남, 우리 잠깐 바람이나 쐬러 하루를 쫓아가 볼까?”
 “네? 아, 뭐, 그러죠······.”
 
 하민은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현관 신발장에서 고무장화 두 켤레를 꺼내며 진수에게 물었다.
 
 “처남, 발 사이즈 280밀리이던가?”
 “아, 네. 매형이랑 똑같아요.”
 
 하민이 건네준 붉은색 고무장화를 신은 진수는 삐걱거리는 고무 소리에 심장 박동 소리가 맞춰 뛰는 것 같았다.
 하루가 우비를 입지 않고 장화만 신은 채 밖으로 나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비는 벌써 그쳐 있었다.
 도시에 깔린 시멘트 바닥과 달리, 흙이 깔려 있는 시골에서는 멋들어진 브랜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건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좋은 신발을 신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여전히 햇빛은 강렬하게 비치고 있었으나 지면이 마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았다.
 진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거짓된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라는 지상파 다큐멘터리 방송의 담당 프로듀서였다.
 그는 아무리 사람들이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일주일만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면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미신을 믿지 않았고, 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정확하고 명백한 진실을 눈앞에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냉정히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이 상황이 그에게는 더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상황이 정말 참이라고?’
 
 이미 그의 눈앞에 하루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이 보여졌다.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믿겠는가?
 우연이었으리라.
 저런 우연은 세상에서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냥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었을 뿐인데, 바로 다음 장면에 신호를 무시한 덤프트럭이 내 앞을 지나가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그런 우연.
 
 ‘나는 신을 믿지 않아!’
 
 진수의 머릿속에서 애써 부정하려 하는 신의 존재.
 허나 이미 신을 믿지 않는다며 자신을 설득하는 모습만으로 ‘어쩌면 신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은 남겨두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신의 존재를 믿을 만한 사건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지금은 긍정하지 않으려 했다.
 
 “신발 끈 묶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
 
 하민은 현관문을 열고 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월, 월!”
 
 진돌이가 외로운 듯 하민과 진수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진수는 조금 무서웠다.
 저게 단순히 짖는 소리가 아니라, 말하는 거라면?
 한숨을 깊게 내쉬며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는 지금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고 느꼈다.
 평소와 나답지 않은, 그런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하루가 초능력자였다는 진실을 보여주며 꽉 막혀 있는 속을 뚫어주길 바랬다. 그렇지 않고서 진수 혼자서는 끝내 정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민이 앞장서 걸어가는 곳은 뒷산으로 가는 언덕길이었다.
 그는 하루의 자그마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며 진수에게 말했다.
 
 “처남, 이 부근에는 들짐승이 많아.”
 “네? 들짐승이라니요?”
 “이전에는 멧돼지나 족제비들이 마을까지 내려오곤 했지.”
 “···아니, 아까 하루가 분명 뒷산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위험하잖아요!”
 “걱정 마, 오히려 잘됐어.”
 “잘됐다니 그게 무슨······.”
 “이제 곧 신기한 걸 보게 될 거야.”
 
 하민은 길게 자란 검은색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골이라고 해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들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숲 사이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꽤나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수는 생각했다.
 이 동네에는 24시간 동안 주변을 순찰하며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찰들도 없고, 산불이 날 경우에도 소방차가 곧바로 올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시내로 향하는 차도까지 딱 하나의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은 자동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만약 반대편에서 다른 차와 마주친다면 곤란해지는 것이고, 경운기를 만난다면 더더욱 답이 없었다.
 시골 중에서도 이렇게 발전이 없는 시골은 없을 것이다.
 진수는 생각했다.
 자신의 누나인 지연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어쩌면 이런 장소에 살고 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조금만 더 가까운 곳에 의사가 있었다면,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면······.
 그는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왼쪽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누나를 이곳에 데리고 와 살게 한 매형, 하민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하고 그녀가 판단한 일이었기에.
 
 “다 왔다.”
 
 하민은 진흙으로 인해 질퍽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큰 소나무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비에 적셔진 소나무에서 풍겨져 나오는 솔 향을 코로 깊이 마시며 미소를 띠었다.
 
 “처남, 너도 이 소나무의 냄새를 맡아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지연이가 살아생전에 제일 좋아했던 나무이기도 하고.”
 “저는 됐어요.”
 
 진수는 시답지 않은 일에 기운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산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엉켜 있던 실타래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이 뒷산에 와본 진수는, 자연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방송을 찍는다면 흔히 관광소로 뽑히는 유명한 곳들보다, 이곳이 훨씬 더 솔직하고 담백한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요모조모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본 풍경은 아직 이 뒷산에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운동 부족 때문인지 경사가 높지도 않은 언덕길로 인해 벌써부터 숨을 헐떡이고 있던 그는 크디큰 소나무 뒤편으로 걸어가 곧 시선을 강탈하는 풍경에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관리를 한 것처럼 드넓게 뻗어 있는 잔디밭이 보였고 산비둘기, 산토끼, 꿩, 사슴 등등 별의별 초식동물들이 그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마을사람들이 단순하게 뒷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진수의 눈에는 스위스의 풍경과 비스무리 해 보였고, 오색 빛이 찬란하게 비추는 절경에 조금씩 취해가는 것 같았다.
 
 “매형,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왜 진즉에 말 안 해줬어요?”
 “응? 서울이나 경기도만 해도 이 정도는 다 있지 않아? 나는 서울에 있는 호수공원만 봐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아니요, 이건 차원이 틀려요.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카피할 수 없다고요.”
 
 그런데 저 멀리 초원 중앙에 쓰러져 있는 고목나무 위에 어떤 한 어린아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짐승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마치 평소에 알고 지내며 친분을 쌓아왔던 사이처럼 서로에게 침묵의 인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웃을 때마다 사슴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박수를 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고, 다람쥐들은 손수 오디 같은 열매들을 나무에서 따다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곤 했다.
 진수는 그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다, 그가 신고 있는 노란색 고무장화를 보자마자 명백히 그 아이가 하루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이거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진짜잖아?”
 
 진수의 눈에는 그 아이가 마치 애니메이션 <정글북>에 나오는 남주인공처럼 보였다.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하고, 그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인간.
 아직까지 다 마르지 않은 촉촉한 잔디밭을 가벼운 손길로 매만지던 하민은 엉덩이를 다 대지 않고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어때? 이제는 좀 속 시원하지?”
 “아, 네······.”
 
 진수는 멍하니 초원 위에 있는 하루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리곤 속 안에 얽혀 있는 답답함을 마지막 남은 한숨으로 모두 뱉어내며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였어요? 저 애가 저렇게 된 건?”
 “음··· 태어나기 전부터랄까?”
 “태어나기 전부터라니요?”
 “내가 항상 말해왔잖아. 그 허밍 소리.”
 “오, 젠장! 매형! 그건 진짜 아니에요!”
 “그럼 처남은, 이건 믿을 수 있는 거야?”
 “제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저건 동물원에 있는 사육사들도 못 하는 짓이라고요!”
 
 진수는 사슴의 등 위에 올라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하루를 가리켰다.
 
 “저건 진즉에 정상적인 범주에서 훨씬 벗어났다고요.”
 “응, 맞아. 그렇기도 하지.”
 “···미쳤어, 이건 완전 비밀로 간직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국가 기밀 연구소 같은 곳의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요.”
 “푸하하! 너무 심각해하지 마, 처남.”
 “매형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있다고요.”
 
 그러나 하민의 얼굴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들을 두고 어떻게 걱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저런 느긋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민은 뜬금없이 입고 있던 청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렸다.
 그의 종아리는 온통 바늘로 꿰맨 수술 자국으로 가득했고 그 엄청난 상처에 놀란 진수에게, 하민은 상처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여기 가장 밑에 ‘X’ 자로 그어진 상처는 하루가 태어난 날, 차도 옆에 있던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떨어지는 바위로 인해 새겨진 상처야. 처남은 지금도 믿지 않고 있지만 그 허밍 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트럭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
 
 진수는 가만히 그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약 5년간 계속 그의 입에서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허밍 소리가 들렸다고 말해왔다. 그때마다 진수는 고개를 저으며 믿지 않았고, 믿으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하루의 비정상적인 모습 때문인지 포기 상태로 귀를 열고 있었다.
 하민은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그어진 이 상처.”
 
 그가 이번에 가리키는 상처는 좀 전에 가리켰던 상처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상처는 작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멧돼지가 마을로 내려왔을 때 생겼던 상처야. 그때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았지.”
 
 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하민을 바라봤고, 하민은 옛 생각이 떠올라 식은땀과 함께 몸을 살짝 움찔거리며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그날따라 유난히 진돌이의 짖음이 심할 때였지. 무슨 천둥 번개라도 치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나 다를까, 집 앞에 멧돼지 녀석이 평상 위에 올려놓은 말린 고추 냄새를 맡고 있었어.”
 
 하민은 욱신거리는 종아리를 부여잡았다.
 
 “순간 목줄을 풀고 멧돼지에게 달려드는 진돌이를 보곤 깜짝 놀라 마당으로 달려 나갔지. 이게 바로, 둘이 죽어라 싸우는 걸 겨우 막아내다가 생긴 상처야.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그래도 다행히 용케 살아남으셨네요. 멧돼지가 들이박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진다는데······.”
 “무슨 소리? 뼈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터져버릴 걸?”
 “그래서 갑자기 그 상처를 보여주는 이유가 뭐예요?”
 
 하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와 진돌이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멧돼지 녀석은 멀쩡했어. 오히려 녀석은 더 화를 내며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꽥꽥거리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다짜고짜 도망을 가는 거야······.”
 
 진수는 중요한 순간에 말을 끊어버린 하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곧 그가 내뱉은 말을 듣고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됐다.
 
 “녀석이 비명을 질렀던 타이밍은··· 우리가 다친 모습을 보고 현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하루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 4. 아빠는 온통 아들 걱정
 
 “에이, 진짜 너무하시네!”
 
 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외치자, 초원 위에서 평화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동물들이 부리나케 도망가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진수는 하민의 말이 조금도 현실성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막상 속으로는 진실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옳다구나 수긍하기에는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얘기를, 실화에만 초점을 두는 다큐멘터리 PD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하민도 알고 있는지라 더 이상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가 천천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진수는 자기 스스로 머릿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오고 가며 줄다리기를 했고, 그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이만··· 올라가 볼게요.”
 “응? 벌써 가려고?”
 “네, 아무래도 일찍이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하나밖에 없는 매형과 조카가 나름 잘 지내는 모습도 봤고.”
 “그래도 오자마자 바로 운전해서 가기에는 좀 무리지 않아? 피곤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오히려 멧돼지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자는 게 더 피곤해질 것 같거든요.”
 “으음··· 그래, 그럼. 집까지 내가 배웅해줄게.”
 
 하루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홀로 초원 중앙에 서 있었고, 그 모습이 왠지 미안해진 진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민은 진수를 이끌고 뒷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진수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당에 주차시킨 사파이어 보석 같은 청색 튜닝으로 한껏 멋을 낸 고급 외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 뒤에 하민에게 인사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민은, 아버지인 자신도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그는 오죽하겠냐는 눈빛으로 그의 차량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루, 왜 거기 숨어 있니?”
 
 하민은 뒤돌아 담벼락 뒤에 숨어 있는 하루를 불렀다.
 하루는 담벼락 뒤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고 진수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하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민은 한쪽 무릎을 꿇고 그와 눈높이를 맞춘 뒤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니, 하루야?”
 
 그는 다리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며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입술을 빼쭉 내밀고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빠··· 제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응? 갑자기 왜 그러니?”
 “그냥···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그렇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하루는 점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었고, 그나마 마을 사람들은 이제 하루를 다른 이들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았지만, 진수와 같이 그를 처음 접하는 이들의 시선은 뭔가 다르다는 것쯤은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의를 행하며 이 세계의 영웅이 되는 걸 하루는 별로 반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하루에게, 하민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곤란해했다.
 그저 오늘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내인 지연에게 정답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아마 그녀라면 이 아이를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민은 땅에 시선을 떨군 하루의 턱을 들어 올려주며 말했다.
 
 “하루야, 너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만 자라주면 돼.”
 “······.”
 “네가 동물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사람들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빠는 상관없단다.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일지라도 아빠는 너를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저 언덕 너머에 사는 만수 있지?”
 “동네 바보, 만수 형이요?”
 “아니야, 바보가 아니야. 하루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
 “다른 어른들이 모두 그렇게 얘기하던 걸요?”
 “그래도 그 만수에게도 소중한 엄마 아빠가 계시단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수 형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차별하지 않듯이 아빠도 너를 차별하지 않을 거야.”
 
 하민이 미소를 지으며 팔을 넓게 벌렸다.
 그러자 하루는 코를 훌쩍이며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당차게 그의 품으로 퐁당 빠져 들어갔다.
 하루는 조금이나마 하민의 말을 듣고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온 느낌이 들었다.
 사실 하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하루의 입장은 굉장히 난처하고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 누가 그의 속마음을 알아주겠는가?
 이해는 해줄 수 있더라도,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았던 그는 자신의 어깨에 아버지라는 안전바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어느덧 그때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하루는 그새 2차 성징이 다가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이 땅 위에 모든 인간들이 겪는 불변의 법칙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보통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그것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들이 하민의 눈에 수없이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가 걱정이 되었지만, 나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상황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생겨났고, 자신이 다른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는 걸 보고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15세, 중학교 2학년이 된 하루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련, 기쁨들을 맞이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추밭에 나가 붉게 달아오른 싱싱한 고추들을 따고 있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폭포수처럼 쏟아 내리는 땀을 한껏 적셔져 있는 수건으로 닦아내며 1.5리터 생수병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단단한 근육을 뽐내며 얼어 있던 생수병은 2시간 만에 흐물흐물 축 처진 몸이 되어 있었다.
 일하는 시간 동안 마시는 물의 양만 해도 5리터는 족히 넘는 것 같아 과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수분을 섭취하더라도 땀으로 흘리는 양이 더 많았기에 체감상 10리터 정도는 돼야 일반 사람들의 하루 평균 수분섭취량에 맞춰지는 것 같았다.
 
 “월, 월!”
 
 저 멀리 고추밭 언덕 위에서 진돌이가 짖고 있는 걸 본 하민은, 쭈그려 앉아 뻐근해진 허벅지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입가에 대고 녀석에게 외쳤다.
 
 “무슨 일이야, 진돌아!”
 
 진돌이는 하민을 보고 연신 짖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이럴 때 하루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진돌이가 있는 언덕배기까지 걸어 올라 갔다.
 보통 개들의 평균 수명이 15년 정도이고 길어봐야 20년을 산다고 하는데, 진돌이는 벌써 나이가 25살이나 됐는데도 어지간히 쌩쌩했다.
 인간으로 따지면 진즉에 생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갔을 나이인데 아직도 눈은 초롱초롱하니 생기 있어 보였고, 이빨은 충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건, 하루가 조금 크더니 진돌이를 직접 이끌고 산책도 시켜주고 시내까지 나가 동물병원에서 주기적으로 몸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까지 받다 보니 자연스레 건강에 조금도 이상이 없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하루의 모습을 보고 무슨 개새끼를 자식처럼 대하냐며 비웃었지만, 하민은 그런 그의 행동을 역시나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진돌아.”
 
 언덕배기에 도착한 하민은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이는 진돌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 녀석도 꽤나 목이 마른 상태인 것 같았다.
 하민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의 뚜껑을 열고 진돌이의 이마 위로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땅에 떨어져 흙이랑 섞여나간 물까지 핥아대기 시작했다.
 하민은 그런 진돌이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말렸다.
 
 “진돌아, 흙 먹는 거 놔뒀다가는 하루한테 내가 혼난다.”
 “월, 월!”
 
 진돌이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곧 하민의 바지 자락을 끌며 새참을 담아 온 보자기 앞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
 하민은 진돌이가 새참 안에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걸로 오해하고,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녀석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보자기 사이에 끼워놓았던 휴대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는 수화기 모양의 아이콘이 떠 있었고, 그가 고추를 따는 동안 부재중통화가 왔었던 것이다.
 그제야 진돌이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눈치챈 하민은 머쓱해하며 녀석의 궁둥이를 툭툭 매만져 주었다.
 
 “미안하다, 진돌아. 내가 오해했네?”
 
 하민은 곧 햇빛이 비쳐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휴대폰을 애써 손으로 가려내며 수신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음··· 어디 보자······. 하, 하루··· 하루의··· 담임··· 담임선생님?”
 
 그는 화들짝 놀라 하며 머리에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어 던지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긴장한 듯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고,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다시금 돋아났다.
 두어 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콧소리가 살짝 섞인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여보세요?
 “아, 예, 안녕하십니까!”
 ―어머, 하루 아버님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그··· 담임선생님께서 어쩐 일로 제게 연락을······.”
 ―아, 다름이 아니라요. 하루에 대해서 아버님과 의논할 게 있어서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혹시, 저희 아들놈이 학교에서 무슨 말썽이라도······.”
 ―하핫, 아닙니다. 하루는 학교 성실하게 잘 다니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렇군요······.”
 ―전화로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진중한 문제이거든요. 제가 오늘 저녁쯤에 집에 찾아가도 될까요?
 “네? 아니, 무슨 일이기에 선생님께서 이곳에··· 제, 제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겠습니다!”
 ―아버님께서 편하신 대로 하세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 네, 그러면, 곧 준비하고 가겠습니다!”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버님!
 
 하민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다급하게 고추밭을 정돈한 뒤 경운기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진돌이는 시끄러운 와중에 경운기 뒤편에 올라타 낮잠에 빠졌고, 하민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초조해졌다.
 담임선생님은 아니라고 했지만 초등학교를 시작해 중학교를 다니면서 하루가 공동체 생활에 꽤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매일같이 노심초사했다.
 하루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에는 한 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역시, 하루가 인간이 아닌 다른 짐승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어른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그 나이대의 또래 아이들이 그 아이의 능력을 이해해준다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또 하루를 학교에 내보내지 않고 자연에서의 생활만 하도록 나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자기 스스로 숨길 건 숨기고 보일 건 보여주는 완급 조절이 가능해지긴 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생겼기에 학교 담임선생님이 직접 집에 찾아온다는 얘기까지 했을까?
 집에 도착한 그는 입고 있던 작업복을 벗고 간단하게 찬물에 샤워를 마친 뒤 옷장에서 하나 밖에 없는 정장 슈트 한 벌을 꺼냈다.
 경조사에나 입고 다닐 법한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슈트, 검은색 넥타이.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정장을 입고 광택 하나 없는 구두를 신은 채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돌이가 폴짝폴짝 뛰며 하민을 뒤쫓아 갔고, 그는 다급하게 손짓하며 녀석에게 말했다.
 
 “진돌아! 아빠, 하루네 학교 다녀와야 돼서 같이 못 가! 집에 있어, 알겠지?”
 “월! 월!”
 
 진돌이는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마을 입구에 도착한 후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마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하민은 구두를 신은 채 불편하게 뛰어가며 마을 입구를 지나 자신의 하얀색 소형트럭이 산사태로 깔려버렸던 차도에 도착했다.
 약 1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때 비가 오지만 않았다면.
 그때 비가 오더라도 그냥 집에 갔었다면.
 그때 와이퍼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그때 미리 와이퍼가 고장 났는지 확인했었더라면.
 그때 내가 떡볶이를 먹으면 안 된다고 지연에게 단호하게 말했다면.
 아마 지금쯤 하루는 엄마가 있었을 텐데······.
 하민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하루의 인생이 고단하게 된 거라 생각하며 자책했다.
 차도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도시와 달리 정해진 시간에만 버스가 오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하민은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정류장 안으로 들어와 벽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확인했다.
 시간표에 적혀 있는 걸로 보아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버스는 앞으로 45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윽!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천천히 올 걸······.’
 
 하민은 버스가 올 때까지 잠시 정류장 의자에 드러누웠고, 땀을 많이 흘렸던 탓인지 순식간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낮잠에 빠져들었다.
 
 
 # 5. 췍! 췍!
 
 한편, 일찍이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하루는 마당에 주차된 경운기와 비어 있는 집 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약 집에 하민이 없었다면 분명 고추밭에 나가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경운기는 마당에 있었으며 평소에 그가 입었을 작업복이 빨래바구니에 넣어져 있는 것이다.
 그는 마당으로 나와 파란 지붕의 개집 앞으로 다가갔다.
 진돌이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야?’
 
 하루는 자기만 쏙 빼고 어디 소고기라도 먹으러 간 건 아닐까 하는 섭섭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마침 몇 분 전 아버지인 하민에게서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아들, 아빠는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을 했다. 저녁 식사 시간 안으로 들어올 테지만 만약 배가 고프다면 식탁에 차려둔 반찬에 밥만 따로 퍼서 먹어라. 그럼 20,000.
 
 ‘20,000? 이건 뭐야. 하여간 아빠도 참······.’
 
 하민은 나름 아들인 하루와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으려고 간혹 가다 신조어를 사용하는데, 막상 하루에게는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무거운 책가방을 마당에 있는 평상 위에 올려놓고 큰소리로 외쳤다.
 
 “진돌아! 진돌아!”
 
 허나 아무리 불러봐도 진돌이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는 녀석이 갈 만한 곳을 알고 있었다.
 뒷산.
 분명 녀석은 뒷산에 올라가 꿩이나 비둘기들을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흰색 반팔 와이셔츠로 되어 있는 교복 상의의 단추를 풀어헤치고,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 뒷산으로 향했다.
 3만 원짜리 짝퉁 메이커의 운동화는 생각보다 신축성이 나쁘지 않아 산을 오르기에도 불편함은 없었다.
 어느새 해는 구름 뒤로 숨어 들어가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언덕길을 지나 그의 허리춤까지 높게 자라 있는 풀숲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으··· 벌써 이 정도나 자라다니. 아빠한테 제초 작업 좀 해달라고 부탁드려야겠어.’
 
 곧 그의 눈앞에 우람하고 간드러진 기운을 풍기는 소나무가 나타났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까칠까칠한 소나무의 몸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할아버지.”
 
 그의 인사에 맞춰 소나무의 솔잎이 바람에 흔들려 시원하고 부드러운 향내를 내뿜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하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편에 위치한 드넓은 초원에 발을 내딛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식사를 하고 있던 사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그의 앞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 수사슴은 머리에 달린 뿔을 흔들거리며 하루에게 나름의 반갑다는 인사를 보냈다.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을, 하루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사슴의 행동에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안해요, 모두들. 제가 요새 학교라는 곳에 다녀서 예전처럼 많이 못 찾아와요.”
 
 그의 말에 사슴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루는 곧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쓴 미소를 보였고, 그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주기로 했다.
 입을 동그랗게 모아 알 수 없는 멜로디의 휘파람을 불어 넣자 사슴들은 그제야 수긍의 눈빛을 보내며 울음소리로 화답했다.
 하루는 직접 이들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허밍 소리와 휘파람 소리로 진돌이의 행방을 물었다.
 사슴들의 울음소리와 숨소리, 눈빛을 본 하루는 이들이 자신에게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듯 하나하나 모아 완성시켰다.
 하민이 한 번은 하루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동물들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니?”
 
 그 질문은 하루에게 꽤나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의 문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듣고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온 언어에 대해 주어, 목적어, 동사를 설명하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루는 그리하여 하민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줄지 한참을 고민하다 가장 비스무리하게 정답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영어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미국인에게 보디랭귀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아요.”
 
 하민은 그 말을 듣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혼란스러워했지만 “만약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차피 평생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더 이상 하루의 능력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 하지 않았다.
 하루가 동물들과 주고받는 언어는 ‘나는 네가 참 좋아.’와 같은 문장 개념이 아니었다.
 단순히 감정이 섞여 있는 ‘표정’, 감정이 섞여 있는 ‘소리’만으로 서로가 무슨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지 눈치를 챌 뿐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아무리 언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하더라도 동물들이 그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감정선.
 그것 하나만으로 하루는 동물들과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었다.
 곧 사슴들은 진돌이가 어느 곳에 있는지 그에게 알려주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부터 동쪽 방향으로 달려갔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예상대로 진돌이는 뒷산에 와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살짝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한 암사슴의 안내를 뒤따라가며 녀석이 갔던 동쪽으로 향했다.
 드넓은 초원을 지나 또다시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는 동쪽 숲으로 들어서게 됐다.
 이 방향은 가자마을이라는 곳과 연결되어 있는 숲이었다.
 하루가 사는 망태마을과 달리 꽤 많은 인원수가 모여 있는 가자마을에는 그와 같은 또래의 학생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량한 아이들은 이 뒷산으로 올라와 담배와 술을 마시기도 했고, 다른 생명체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듯 아무렇지 않게 죽이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까지 일삼기도 했다.
 하루도 그걸 알고 있는지라 조금은 긴장했다.
 평소 같았으면 진돌이가 알아서 집에 들어올 때까지 내버려두었을 테지만 동쪽 숲으로 갔다는 사실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작년에도 진돌이를 발로 걷어차고 괴롭혔던 녀석들이 있는 마을이기에 위험한 상황이 닥치기 전에 어서 가서 데리고 와야 했다.
 암사슴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던 도중, 갑자기 암사슴이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서 앞으로 더 이상 걸어가지 않았다.
 녀석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고, 안타까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동쪽의 산기슭에서 사슴들이 많이 죽었던 걸로 알고 있다.
 고기와 녹용을 얻기 위해 가자마을의 어른들이 필요 이상의 사슴들을 잡았고, 그로 인해 동쪽 산에 남아 있는 사슴들이 모두 망태마을의 뒷산으로 몰려오면서 생태계의 불균형까지 이루어지게 됐다.
 뒷산에 사슴들의 개체수가 급상승하자 다른 초식동물들의 먹거리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산에서 얻을 수 있는 버섯과 각종 나물들까지도 부족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 망태마을과 가자마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 암사슴이 여기까지 용기 내어 안내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 하루는 녀석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인사했다.
 암사슴의 얼굴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맥주 캔이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회사원처럼 피곤함과 기대감의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하루는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진돌아! 진돌아! 집에 가자!”
 
 조금도 다듬어지지 않은 푸르른 풀잎들이 그의 허리 위까지 덮으며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등 뒤에는 홍수가 나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흰색 반팔 티셔츠는 군데군데 녹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그는 혹시 녀석과 가는 길이 엇갈려 모르는 사이 벌써 집에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동쪽 숲의 길은 잘 모르는지라 잘못했다가는 숲속에 꼼짝없이 묶이는 수가 있으니 늦지 않게 망태마을로 돌아가기로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한 남성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악!”
 
 하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산이라 메아리가 치고 있었고 나무들이 너무 많아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향이 흐트러지고 있었지만 그는 정확히 어느 쪽에서 내지른 비명인지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비명 소리가 난 곳은 하루가 조금 전까지 걸어 들어가던 동쪽 숲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는 발바닥에 불똥이 튄 듯 깡충깡충 뛰어가며 숲을 가로질러 갔다. 조금 힘이 드는 방법이었지만 우거진 숲에서는 이처럼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비명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고,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곧 허리춤까지 올라왔던 풀들이 사라지고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약수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밑동만 남겨두고 잘려나간 나무들이 적나라하게 나이테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약수터에서 의자 역할을 대신하려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약수터의 입구에는 ‘가자마을 약수터’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바닥에 꽂혀 있었고, 둥근 돌확 위로 은은한 노래를 부르는 물줄기가 산을 타고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하루는 돌확에 담겨 있는 물을 두 손을 모아 떠 마셨다.
 순간 몸에 빠져나갔던 수분이 새로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아악!”
 
 휴식 시간도 잠시, 또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비명 소리는 바로 코앞에서 지르는 듯 아주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루는 높은 경사로 이루어진 약수터의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는 곧 비명 소리의 주인공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마, 만수 형?”
 
 강만수, 나이 33세.
 하루가 살고 있는 망태마을의 바보 형이라고 불리는 남자이다.
 다운증후군인 만수는 커다란 땜빵이 훤히 드러난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었고, 190센티미터 정도의 불곰 같은 거구였지만 덩치값을 못 하는 그냥 미련 곰탱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왜 만수가 옆 동네에 와 있는지 의아했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만수 형,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어? 어? 우와! 하루잖아? 그렇지? 너 하루 맞지?”
 
 만수는 날도 더운데 회색 스웨터에 핑크색 수면바지를 입고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루는 말했다.
 
 “네, 저 하루 맞아요.”
 “으헤헤, 여기서 너를 보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러게요. 저도 여기서 형을 볼 줄은 몰랐네요. 왜 가자마을에 있는 거예요?”
 “쉿! 비밀이야!”
 “뭐가요?”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훈련 중이라고!”
 “훈련이요?”
 “그래! 하루,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알겠지?”
 
 하루는 그다지 만수가 하려는 말이 흥미롭지 않았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나 주기로 했다.
 만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머리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닦아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별의별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만수가 동네에서 바보 형이라 불리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하루는 분명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며 그가 입고 있는 스웨터가 그의 몸체를 다 거두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뜯어져 버릴 것 같은 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마 만수가 양팔을 높게 들어 올리기만 해도 옷이 늘어나기도 전에 겨드랑이 쪽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만수는 뭔가 엄청난 걸 다짐한 듯 갑자기 혼자 박수를 두어 번 치더니 하루를 보며 크게 외쳤다.
 
 “나! 래퍼가 될 거야!”
 “네?”
 “나는 힙합을 할 거라고!”
 “······.”
 “깜짝 놀랐구나, 하루야?”
 “네··· 아주 많이요······.”
 “그래서 지금 발성 연습 중이었어.”
 “아, 그래서 그렇게 비명을 지른 거예요? 그런데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 그래요? 저희 망태마을에서도 충분히······.”
 “바보! 바보야! 너는 아무것도 몰라! 원래 진정한 실력자들은 산에서 연습을 한다고!”
 “그러니까 저희 마을에도 산이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왔냐고요. 그리고 랩은 굳이 산에서 안 해도 되지 않아요?”
 “그럼 내가 산에서 연습하면 어느 정도로 레벨 업이 되는지 보여줄게!”
 
 만수는 곧 코를 벌렁거리며 호기롭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허리를 약간 앞으로 젖히고 한 손을 코와 입가에 살짝 갖다 대었다.
 하루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한 달 정도 햇빛에 말라비틀어진 호박 줄기처럼 요상해 보였다.
 곧 만수는 목을 까딱거리고 다른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랩을 내뱉었다.
 
 “췍! 췍! 암더 코리안 땁끌라스 히팝모범 나불나쓰!”
 
 하루조차 단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만수의 국어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그의 랩은 몽골어 같았다.
 누가 들어도 그건 랩이라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음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하루는 두 귀를 막을 정도로 듣기 싫었지만, 차마 이마에 핏줄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열정적이게 랩을 하는 그를 말릴 수 없었다.
 
 ‘하아···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다.’
 
 
 # 6. 하루는 참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만수의 랩은 오래 걸리지 않고 빠르게 끝이 났다. 그는 이제 막 첫 번째 벌스(Verse)를 부른 것뿐인데도 숨을 헐떡이며 무척이나 힘겨워하는 표정을 얼굴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끄, 끝이에요. 형?”
 
 하루는 귓속을 괴롭히던 랩이 끝나자 기분이 좋았다가도 한편으로는 그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수는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아직 폐활량이 부족해! 오늘은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와야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부터 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만 해도 해가 져 있을 거예요. 그러면 위험하다고요.”
 “흥! 멍청이! 진정한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는 법이지.”
 
 만수는 징그럽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하루에게 윙크를 보냈다. 다행히 하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루에게 지금은 진돌이가 우선이었다.
 충분히 만수의 장단에 맞춰주었고, 이 정도면 동네의 아는 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는 여전히 상체를 숙인 채 힘겨워하고 있는 만수에게 물었다.
 
 “형, 그나저나 혹시 진돌이 보셨어요?”
 “진돌이?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왜?”
 “엥? 그럼 진돌이가 여기에 왔었다는 거네요?”
 “그렇다니까?”
 “그럼 지금은 어느 쪽으로 갔어요?”
 “나도 잘은 모르겠어. 저기 숲속에서 꿩을 쫓아가기는 했는데······.”
 
 만수는 손을 들어 하루가 걸어왔던 숲의 방향을 가리켰다.
 역시 녀석은 꿩을 쫓아온 게 확실했고, 지금은 진돌이 녀석과 길이 엇갈린 것 같았다.
 하루는 뻐근해진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만수에게 말했다.
 
 “형, 이제 그만하고 저랑 같이 망태마을로 돌아가요. 괜히 여기 있다가 양아치들에게 시비 걸리지 말고.”
 “걱정 마! 나는 그딴 녀석들 하나도 안 무서워!”
 “저번에도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으면서······.”
 “아, 아니거든!”
 
 만수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성을 냈다.
 하루는 그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더 이상 영양가 없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알았아요, 형. 그럼 저 혼자 갈게요?”
 “마음대로 해!”
 
 하루는 어깨를 으쓱한 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만수를 뒤로한 채 다시금 망태마을의 뒷산으로 향하는 풀숲에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때 하루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 약수터를 올라오며 바닥에 침을 내뱉었다.
 하루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년에 진돌이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던 가자마을의 양아치였다.
 그는 목을 부드득 꺾으며 만수를 향해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망태마을의 장애인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나, 엉?”
 
 하루는 두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며 풀숲에서 나왔다.
 그러자 그 양아치는 그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하는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시발. 이건 또 뭐야? 망태마을의 정신병자도 같이 있었네?”
 “말조심해 주세요. 만수 형은 그래도 어른이라고요.”
 “어른? 지랄하고 있네.”
 
 그 양아치의 이름은, 조태민.
  하루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그와 한 살 차이가 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다. 원래는 꽤나 조용하고 순진했던 아이라고 들었는데, 중학교에 재학을 하고 나서부터 180도 달라진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해 성장이 빨랐던 탓인지 자신보다 약하고 작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만수는 어느새 조태민의 눈치를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만수는 조태민과 같은 호랑이는 아니었지만, 덩치로 봐서는 조태민보다 더 거대한 체구의 코끼리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육식동물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못 쓸 것이라는 편견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그에게 당했던 일들이 많았던 터라, 싫으면 싫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 보였다.
 하루는 그런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버지인 하민은 만수를 볼 때마다 하루에게 했던 말이 하나 있었다.
 
 “하루야, 잘 들어라. 만수는 바보에, 멍청이에, 호구에, 얼간이에, 병신이지만, 절대 우리는 그를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 애만큼이나 착한 사람은 우리 마을에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 애가 아무리 하루 너보다 나이가 많을지라도 5살짜리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대해주렴.”
 
 하민은 장애인을 올바른 시선과 올바른 인식으로 대할 줄 아는 멋진 남자라 하루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왜 그런 얘기를 만수를 볼 때마다 그의 앞에서 하냐는 말이다.
 
 “하루야, 만수는 바보에, 멍청이에, 호구에, 얼간이에, 병신이지만!”
 
 하민은 만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마 만수가 잠자리를 잡는답시고 그의 고추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 이 문제의 화두가 되었으리라.
 아무튼 하루는 어릴 때부터 만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그는 남들과 조금 다를 뿐 절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루가 그의 입장을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볼 때도 이상하고, 괴상한 별종이라고 대했기 때문에 역지사지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만수를 등지고 조태민를 향하여 당당하게 섰다.
 
 “그만하시죠. 아무리 학교 선배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하? 이 새끼가 진짜 돌았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양아치요.”
 “뭐?”
 
 하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조태민은 우람한 덩치인데도 불구하고 약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민첩한 속도로 그의 앞으로 다가가 멱살을 잡아끌었다.
 하루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그가 만수에게 했던 행동들, 가자마을을 비롯해 망태마을에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만으로 충분히 자신보다 묵직하고 진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그가 다음에 내뱉을 말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그는 이제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라는 말을 할 것이다.
 
 퍽!
 그런데 갑자기 조태민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은 하루는 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곤 조태민은 뺨을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하루 앞에 쭈그려 앉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역시 예상한 그대로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주먹으로 맞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조태민의 인상으로 봐서는 조폭과 조금도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마의 주름은 말라비틀어진 대추처럼 짙게 져 있었고, 주먹은 마치 돌덩이 같았다.
 이런 사람이 교복을 벗은 채 중학교 3학년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벌써 키가 183센티미터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의 귓가에 들려왔던 조태민의 목소리의 톤과 떨림은 그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강한 척하고 있다 할지라도, 한편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녀석이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자신의 코를 물지 않을까? 갑자기 돌이라도 들고 머리를 찍어버리진 않을까? 등등의 생각들이 조태민의 머릿속에서 뒤엉키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목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루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해냈고, 잘 달래기만 한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이상 그에게 맞을 일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곧 하루, 그의 생각과 다른 변수가 생겨났다.
 
 “응? 뭐야, 내 담배 어디 갔어?”
 
 조태민은 손을 탈탈 털어내고 만수와 하루를 무시한 채, 한 고목나무의 뿌리 부분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상자는 뚜껑이 열려 있는 상태였고, 그 안에는 초록색 일회용 라이터만 달랑 들어 있었다.
 그는 스윽 하루와 만수를 바라보며 비어 있는 상자를 보였다.
 
 “야, 이 병신들아. 이거 누가 그랬냐?”
 
 그는 더욱 화가 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괜스레 코를 훌쩍거리는 걸 보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마약쟁이 같았지만, 그냥 중2병에 걸린 약쟁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수와 하루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하자,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그는 상자를 바닥에 내팽개쳐두고 이번에는 만수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너지? 이 새끼야? 네가 내 담배 가져갔지?”
 “아, 아니야, 나는 아니야! 만수는 잘못 없어!”
 “만수는 잘못 없기는 개뿔.”
 “나는 담배 안 피운다! 내가 가져간 거 아니다!”
 “그럼 누가 가져갔을까?”
 “그, 그건······.”
 
 만수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하루를 바라봤다.
 하루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양팔을 뻗고 좌우로 흔들었다.
 만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담배는 하루가 키우는 진돌이가 가져갔어.”
 
 만수는 곧 하루의 눈을 피해 고개를 떨궜고, 조태민은 그의 멱살을 강하게 내치며 바닥에 넘어트렸다.
 조태민은 팔자걸음으로 터벅터벅 하루의 앞에 다가와 그를 말없이 내려다봤다.
 168센티미터의 하루에게 183센티미터의 조태민은 산과 같았다.
 
 ‘젠장, 진돌이 할아범··· 나를 이런 식으로 엿 먹이려 하다니.’
 
 하루는 주르륵 흘러내려 오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만수가 악의적으로 자신에게 위험을 떠넘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진돌이가 담배를 물고 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생각으로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담배는 멘솔이었을 것이다.
 진돌이는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시원한 박하 향 같은 걸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이 있었다.
 하루는 변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두 대 맞을 거, 한 대만 맞으면 다행이겠다고 애처롭게 속으로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태민은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징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덕분에 오돌토돌 여드름이 잔뜩 나 있는 두꺼비 같은 그의 피부가 더욱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진짜 얼굴만 봐서는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역경과 고난을 그 혼자 총대 메고 있는 것처럼 저주, 그 자체였다.
 조태민은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만수에게 외쳤다.
 
 “야, 강만수 이 장애인 새끼야!”
 “으응?”
 “너 이 새끼 이리로 와봐.”
 
 조태민은 손가락으로 하루의 옆을 가리켰다. 만수는 안절부절못하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하루의 옆에 나란히 섰다.
 
 “하아, 장애인과 정신병자의 조합이라. 참 보기 좋다, 그렇지?”
 
 그는 손가락 뼈마디를 부드득 꺾으며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장기자랑을 시작한다. 둘 중 더 못하는 새끼는 내 손에 죽는다고 생각해라.”
 
 그 누구도 시골 촌구석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발전도 잘 되지 않고, 인구수가 적은 곳이라 하더라도 천재는 존재했고, 바보도 존재했고, 양아치들도 존재했다.
 다만 서울과 비교해봤을 때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백분율로 따지면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순수 시골 청년 같은 말은 하루의 아버지대인 하민에게나 어울리는 수식어이지, 지금의 시대와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조태민은 먼저 턱짓으로 만수를 가리켰다.
 만수는 우물쭈물하며 다리를 심하게 떨어댔다.
 그러자 조태민이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만수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리곤 다시 나무 의자에 앉아 정색하고 말했다.
 
 “똑바로 해라.”
 
 만수는 덩치만 코끼리일 뿐, 기세로 따지면 호랑이 앞에 돼지일 뿐이었다.
 하루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강한 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이런 식의 구도는 불쾌하다 못해 토 나올 정도의 혐오감이 들었다.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조태민은 인간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모습을 대놓고 보이고 있는 것이다.
 뺨을 맞고 정신을 차린 만수는 양손을 벌벌 떨어대며 말했다.
 
 “그, 그럼 나, 래, 랩 할게. 때, 때리지 마······.”
 “지랄. 잘해야 안 처맞는다고 했지?”
 “으, 응··· 알겠어······.”
 “나 랩 되게 좋아하거든? 제대로 해라?”
 
 곧 만수는 목을 가다듬고 아까처럼 다시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한 손을 코와 입 주변에 갖다 댄 뒤 랩을 했다.
 
 “내, 내, 이름은 강만수! A―Yo! 머지않아 돈을 왕창 벌어들이지요! 곧 만수르가 될 남자지요! 예압! 호우! 얍! 얍! 얍!”
 
 위험했다.
 아까보다 들었던 랩보다 더 심각했다.
 발음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박자가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런데 조태민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억지로 숨기는 것 같았고 애써 담담하고 시크한 어투로 말했다.
 
 “뭐, 나쁘지 않네? 강만수, 만수르. 이 플로우는 아주 잘 짰어.”
 “으헤, 고마워! 하지만 그건 플로우가 아니라 라임이라고 하는 거야!”
 
 만수는 눈치 없이 조태민의 심기를 건드렸다.
 곧 조태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로 그의 명치를 세게 밀치고 외쳤다.
 
 “하지만 래퍼 자식이 가사를 절면 쓰나!”
 
 그가 좀 멍청하고 이상한 랩을 하는 건 맞지만 가사를 절거나 하지는 않았다.
 만수는 바닥에 누워 배를 움켜쥐고 호흡을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하루는 눈빛이 달라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어선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조태민은 하루의 눈빛을 보고 순간 움찔했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야, 신하루! 이제 네 차례다.”
 
 
 # 7.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허밍 소리
 
 하루는 돌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소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조태민과 눈을 마주쳤다. 하루의 표정은 서늘하면서도 괴이해 보였다.
 하지만 조태민도 그와의 기 싸움에서 져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하루가 무언의 기를 뿜을수록 조태민은 그보다 더 강하게 그를 압박시켰다.
 남자 대 남자.
 하루의 신체 조건은 호랑이 앞에 토끼에 불과했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란 토끼냐에 따라 호랑이 앞에서 기죽지 않고 오히려 이마로 먼저 들이받는 경우도 있다.
 
 “뭐 해, 이 새끼야! 빨리 안 해?”
 
 조태민은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하루를 재촉했다.
 하루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시간이 질질 끌리는 걸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은 조태민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 가볍게 툭 던졌다.
 그러자 돌멩이는 정확하게 하루의 이마에 부딪혀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으나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흥에 굶주려 있던 조태민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게감 있는 발걸음으로 하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하루의 성대가 울리더니 알 수 없는 멜로디의 허밍 소리가 약수터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옆에 힘없이 누워 있던 만수는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멍하니 하루를 바라봤고, 조태민은 더 이상 그에게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기분을 다운시킨 벌을 주려 했다.
 
 “너, 진짜 존나 재미없다.”
 
 조태민은 결국 자신이 느끼는 최고의 여흥에 종지부를 찍을 폭력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폭력만큼이나 심장을 뛰게 만들 정도의 짜릿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만수와 하루가 그의 앞에서 발가벗은 상태로 원숭이 흉내를 냈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조태민은 하루의 멱살을 잡고 빨래를 쥐어짜듯 강한 악력으로 비틀었다.
 그런데도 하루는 여전히 허밍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편안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심기가 불편해진 조태민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새끼가 진짜?’
 
 조태민은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자기보다 한 살이나 어리고 심지어 학교 후배인 정신병자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했다.
 조태민은 마른 체구의 하루를 단번에 넘어트리려 그의 멱살을 단단히 잡고 씨름에서 사용할 법한 밭다리후리기 기술을 시전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하루는 가을 낙엽처럼 가볍게 나가떨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조태민은 하루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오른 다리가 그의 왼발 뒤편에 걸려 있는 상태로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시간이 멈춘 듯 오감이 둔해졌고 눈앞이 하얘지는 걸 느꼈다.
 
 ‘뭐, 뭐야?’
 
 조태민의 얼굴에는 ‘당황’이라는 글자가 적나라하게 인쇄되었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새겨진 잉크는 선명해져 갔고 곧 그의 뺨은 앙상하게 말라가는 환영이 일어났다.
 
 “우, 우웩!”
 
 조태민은 하루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토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파리해진 얼굴에, 점심에 먹었던 닭고기가 소화되지 못한 채 입 밖까지 역류했다.
 그 덕에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심지어 옆에 있던 만수까지도 괴로움을 느끼며 두 귀를 막고 가자마을 쪽으로 정처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태민은 충혈된 눈으로 천천히 위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하루는 허밍을 이어가며 눈을 반쯤 뜨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두려움이라는 공포가 조태민의 머릿속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밑바닥까지 남아 있는 음식 찌꺼기를 모두 토해내고 하다못해 위액과 침이 섞인 투명한 구토까지 해댔다.
 결국 조태민은 견디다 못해 입 밖으로 자존심을 버린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 살려줘······.”
 
 사실 이때 그의 머릿속에는 자존심이고 뭐고, 일단은 살고 보자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하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있던 조태민은 눈앞이 아른거렸고 조금만 잘못하면 정신은 얇은 실처럼 뚝! 하고 끊겨버릴 것 같았다.
 하루의 허밍 소리는 마라톤을 하는 것같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가자마을에서 약수터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 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순간 하루의 눈이 번뜩 떠졌고 그의 허밍 소리가 멈추었다. 그도 잠시 동안 이성을 잃은 상태로 호흡을 조절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약수터로 올라오고 있는 어르신은 챙이 넓은 등산 모자를 쓰고 등 뒤에는 커다란 10리터 약수통을 끈으로 맨 채 하루와 조태민이 있는 곳까지 다급하게 뛰어 올라왔다.
 무릎관절에 무리가 간 듯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내려친 어르신은 숨을 헐떡이며 그들을 주시했다.
 가자마을의 악동 조태민과, 망태마을의 별종 신하루.
 조합이 꽤나 신선하면서도 의심스러웠다.
 굳이 이 둘이 한자리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르신은 이 둘을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각자의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태민이 불이라면 신하루는 얼음.
 무엇보다 이상한 건 하루의 앞에 무릎을 꿇고 구토를 하고 있는 태민의 상태였다.
 누가 봐도 덩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이런 장면이 나타날 수 있는 걸까?
 심지어 외상으로 입은 타격은 태민에게서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하루가 태민과 싸우려는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태민이 먼저 시비를 걸면 걸었을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다.
 어르신은 목을 가다듬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태민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쌈박질은 관둬라, 태민아! 가뜩이나 망태마을과 사이도 안 좋은데 괜한 문제 일으키지 말고!”
 
 어르신은 막상 속으로는 그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겉으로만 봐도 하루의 상태가 그보다 더 엉망이었기에 보기 좋게 그의 편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곧 어르신은 하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말했다.
 
 “하루야, 너도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을 테니.”
 “네··· 어르신······.”
 
 하루는 곧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고개를 푹 숙인 뒤 풀숲을 헤치며 이곳으로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르신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점점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 태민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네 아비한테는 이르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태민은 분하다는 얼굴로 턱에 묻은 액체를 닦아내고 어르신의 손길을 무시한 채 터덜터덜 마을로 내려갔다.
 그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인쇄됐던 두려움 위로 분노의 색이 칠해져 있었다.
 
 ***
 
 빵! 빵!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버스의 경적 소리가 하민의 귓가에 들려왔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버스 기사의 걸걸한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이봐요! 안 갈 거예요?”
 “아! 갑니다, 가요!”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 하민은 정류장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휘청거리며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
 햇빛이 창문 너머로 강하게 비춰오며 그의 눈을 다시금 감게 만들었지만 약 45분간의 꿀 같은 낮잠으로 더 이상의 졸음은 쏟아지지 않았다.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보니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후에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하루가 학교 수업을 마치는 시간과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수염을 정돈하지 못한 탓에 얼굴로만 봤을 때는 거지가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을 하루가 본다면 잔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엄마인 지연의 성격을 닮았는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깔끔을 떠는 스타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시내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딱 봐도 하루가 다니는 신조중학교 학생들이었다.
 하민은 두 눈을 끔뻑이며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저기 오늘 무슨 날인가요? 이제 막 정오를 넘긴 시간인데 학생들이······.”
 “낸들 압니까?”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끊어버리는 기사의 말에 머쓱해진 하민은 괜히 가만히 있는 목을 긁적거렸다.
 학교가 빨리 끝난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아무것도 아닌 일이든. 시험을 보거나 따로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하루가 진즉에 얘기해줬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잊어버렸나?’
 
 하민은 곧 휴대폰을 켜고 하루에게 전화통화를 하려다가, 굳이 이런 걸로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아 고개를 저으며 다시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별일이야 있겠어?’
 
 아지랑이가 보일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바닥을 타고 버스는 어느덧 신조중학교 정문 앞 정류장에 세워졌다.
 
 “감사합니다!”
 
 하민이 버스에서 내리며 인사하자, 버스 기사는 고개를 까딱이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곧 시커먼 매연을 풍기며 바삐 다음 장소로 움직였다.
 망태마을의 뒷산보다 훨씬 드높고 웅장한 풍채를 풍기는 산이 세워져 있는 곳 앞에, 하루가 다니는 신조중학교가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뒤늦게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였고, 학교가 일찍 끝난 탓인지 하나같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그려 넣고 있었다.
 작년 하루의 입학식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해보는 신조중학교는 더 낡고 허름하게 변해 있었다.
 오래된 역사를 품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이 학교는 하민이 이전에 학창 시절 때에 다녔던 학교이기도 했다.
 조금도 성한 곳이 없이 이곳저곳 금이 가 있었으며 갈라진 벽 사이사이로 나무줄기가 뱀처럼 타고 올라간 곳까지 보였다.
 저러다가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몰려왔지만 곧 쓸데없는 참견과 우려는 자기 자신만 피곤해지게 만드는 일이라 깨닫고 교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부는 그나마 깔끔하게 바뀌어 있었으나 그 또한 외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뼈대임에 분명했다.
 열려 있는 교무실 안으로 슬며시 발을 내밀고 문을 두드리자 한 젊은 여성이 테이블의 칸막이 위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오셨어요, 하루 아버님?”
 “아! 혹시··· 담임선생님이신가요?”
 “네, 아버님. 정혜진이라고 합니다. 전화통화상으로는 몇 번 만나 뵀었죠?”
 
 쭈뼛쭈뼛하게 슈트 상의의 소매를 매만지던 하민 앞으로 하루 담임선생님인 혜진이 다가갔다.
 그녀는 깔끔하고 시원해 보이는 단발머리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음에도 키가 꽤 커 보였다. 이제 막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에는 피부가 탄력 있고 생기 있어, 사회 초년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하민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죄송해요, 하루 아버님. 오시느라 힘드셨죠?”
 “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면담실에서 하도록 해요, 아버님.”
 
 혜진은 생활기록부를 한 손에 들고 하민을 교무실 옆에 있는 면담실로 안내했다. 고작 7평 정도 남짓한 작은 방 안에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 하나와 연한 회색빛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혜진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커피포트기에 정수기 물을 받아 와 전원버튼을 누르며 하민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아, 저, 저는 그냥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하민은 자신보다 어리고, 아들의 담임선생님이라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게 꽤나 불편했는지 자꾸만 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엉덩이를 떼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했다.
 잠시 후, 손수 스틱커피를 탄 혜진이 하민 앞으로 한 잔 건네주고 그의 맞은편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하민은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차마 맘 편히 마시지 못하고 종이컵을 매만지기만 하며 혜진의 입에서 나올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과연 그녀는 하루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산뜻한 바람이 하민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방울을 조금씩 스쳐 지나갔다.
 생활기록부와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을 훑어보며 생각을 정리한 혜진은 하민의 긴장감을 더욱 북돋게 하는 말을 내뱉었다.
 
 “아버님, 다름이 아니라······.”
 
 하민은 머뭇거리는 혜진의 모습에 뜨거운 커피를 억지로 한 모금 마셨다.
 곧 그녀는 신중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루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 8. 절대음감과 상대음감
 
 “네? 느, 능력이라니요?”
 
 하민은 혜진의 말에 동공이 흔들렸다.
 하루의 능력.
 그 능력을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일까?
 하민은 최대한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분명 하루 나름대로 학교 안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을 터. 설마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이들에게 보여줬을 리는 없다.
 그동안 그가 마을 안에서만 해도 느꼈었던 그 아픔을 생각한다면.
 혜진은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신 뒤 펜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루가 학교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여서요.”
 “아, 그게 무슨······.”
 
 하민의 연기는 어색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면 보통 때에 비해 심하게 얼굴이 붉어지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지라 항상 진실한 행동만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될 타임이었다.
 그러니 그도 더더욱 억지로나마 진실을 숨기려 애썼다.
 다행히 아직 혜진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버님께서 아시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는 음악적인 부분에서 타고난 자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악이요?”
 “네, 제가 아버님을 직접 뵈려고 했던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음악?
 하민은 순간 속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아내 지연이 죽은 이후로 음악이라는 단어는 그를 무척이나 힘겹게 만들었다.
 그는 플루트 전공을 하던 그녀가 돈 때문에, 환경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던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봐 왔고 안타까워했었다.
 꼭 하루가 초등학교를 가게 된다면 그녀의 꿈을 늦게나마 이뤄주고 싶었던 하민으로서는, 그녀의 꿈을 서포팅해주는 것이 그의 바람이자 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하루아침에 증발이 되어 사라져갔고 절망과 후회 속에 매일같이 끔찍한 아침을 맞이하여만 했다.
 
 “아니요.”
 
 하민이 뜬금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혜진은 몸을 움찔하며 당황했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하민을 슬쩍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던 그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금색 반지가 유독 눈에 띄었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테이블 아래에서 그의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가 왜 갑작스럽게 ‘NO’라는 의미를 표했는지 금방 눈치채고, 최대한 그가 자극되지 않도록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저, 아버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하루가 음악을 해야 된다는 말 아닌가요?”
 
 겸손하고 순박해 보이던 하민은 이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눈빛은 뭔가 날카롭고 매섭게 느껴졌다.
 그는 초장부터 그녀의 말을 끊기로 했다.
 
 “저는 하루에게 음악을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
 “선생님께서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하실 정도면 제 아이가 음악적으로 꽤나 뛰어나다는 말씀을 하실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 네, 맞습니다······.”
 “저는 하루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음악가가 될 정도의 재능이 있다고 한들, 절대 그 길을 가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하민은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일렀다.
 그 자신도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내인 지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지난날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순탄치만 않았던 나날들.
 고작 고추밭이나 관리하는 농사꾼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지연도 남다른 재능으로 외국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을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음악을 모르고 있더라도 그녀가 부르는 플루트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어린 날의 동심이 떠오르기도 했고, 온갖 슬픈 감정들을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재능을 하루가 물려받았다고 한들 아비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루는 지연과 다르다.
 아직 어리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 그에게 괜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뻔히 보이는 고생길을 걷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을 못했을 때의 서글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해줄 수 없다.
 그러니··· 하루가 음악에 집착하기 전에···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하민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혜진은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충분히 아버님의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제가 비록 선생으로서의 일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자식들이 음악을 하려는 걸 100퍼센트 찬성하는 부모는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그걸 알고 계시면서 왜······.”
 “반대로 생각해보시면 하루가 아닌, 하루의 담임선생님인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거라 그렇게 나쁜 상황이라고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하민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적지 않게 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그의 머릿속을 강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혜진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님, 제가 맡고 있는 과목이 뭔지 아세요? 저는 하루의 담임선생이자 이 학교의 음악 선생입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6개월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하루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루는 음악을 해야만 합니다.”
 “하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어느 부분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음악 시간에 반 학생들에게 음악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거였어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연가>라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 만약 다른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걸 가져와도 상관없는 거였어요. 노래로도 가능했고요.”
 
 혜진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휘날려 얼굴이 살짝 가려졌지만 그녀의 눈동자에서 비쳐오는 굳건한 눈빛만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때 하루는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에 와서 피아노를 연습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형편없는 실력이었어요. 초등학생도 칠 수 있는 음계를 이제야 치기 시작할 정도로.”
 “음계라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입니다.”
 “아아······.”
 
 하민은 심히 민망했다.
 또한 이제 막 음계를 치기 시작한 애한테 음악을 하라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한 발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혜진은 자신이 내뱉었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제가 음악실에 오는 하루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알려주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아, 얘는 피아노를 정말 못 치는구나.’라고요.”
 “크흡······.”
 “그런데 아버님? 피아노 하나 가지고 ‘이 아이는 음악적인 재능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던 도중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어요.”
 “신기한··· 장면이요?”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음악실에 들어와 보니, 하루가 창틀에 앉아 있는 참새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하민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루가 설마 학교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그도 의도한 행동이 아닌 줄은 알겠지만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틈을 타, 결국 자기 자신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심이 들었다.
 혜진은 말했다.
 
 “아! 동물과 대화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혜진은 자기가 했던 말에 자신도 어이가 없다는 듯 깔깔대며 소리 내어 웃었다.
 하민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로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채 부들부들 떨려오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딱딱한 표정에 혜진은 머쓱한 듯 괜스레 머릿결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이고, 아버님 죄송해요. 제 농담이 조금 이상했죠?”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하루가 특별하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짹짹거리는 참새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뭔가 유레카를 외치는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음계를 치는 모습을 본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울음소리와 똑같은 음을 피아노로 쳤다니까요?”
 
 혜진은 어느새 차분했던 목소리가 하이 톤으로 높아지더니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하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요?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절대음감이라고 했던가······.”
 “아니요, 아버님! 그건 절대음감이 아니라 상대음감이라고 하는 거예요.”
 “상대··· 음감이요?”
 “네, 뭐 딱히 틀렸다고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겁니다. 예를 들어 절대음감은 짹짹거리는 참새의 울음소리가 무슨 음계인지 알아맞히는 것이고, 상대음감은 하루처럼 악기를 사용해 똑같은 음을 칠 수 있는 거예요.”
 “아··· 네······.”
 
 하민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절대음감이든 상대음감이든 곶감이든 간에 겨우 그 정도의 명분으로써는 음악을 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유명 음악가들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한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 일반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음감을 가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그런데 그 정도 가지고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일단 피아노는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건데······.”
 “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봤던 하루는 일단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을 둘 다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어요. 그게 절대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둘 다요?”
 
 그 역시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 하지만 피아노도 잘 못 치는 놈이 어떻게 음악을 한다는 건가요? 저는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네요.”
 “피아노를 잘 못 쳐도 충분히 음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악은 도대체 어느 음악인가요? 바이올린도 있고, 기타도 있고, 하물며 노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거다 할 만한 길을 말씀해주셔야지 제가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제가 너무 광범위하게 말씀을 드려서 아버님을 조금 혼란스럽게 만들었군요.”
 
 혜진은 어느새 비어버린 두 잔의 종이컵을 보고 하민에게 또 한 번의 커피를 권했고, 그도 꽤나 오랫동안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에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았던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시기로 했다.
 창밖에는 더 이상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옆방 교무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도 퇴근 준비를 하는 듯 복도가 시끌벅적해지는 걸 느꼈다.
 혜진은 늦지 않게 면담을 마무리하려 조금 더 간결하고 정돈된 말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단 아버님은 음악에 대해 편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물론 피아노는 어느 음악 장르에나 들어갈 수 있는 기본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기본 소양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음감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고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거죠.”
 “······.”
 “제가 봤을 때 하루는 입의 호흡이나 진동을 사용하는 관악기에 소질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관악기라면······.”
 “네, 하루 어머님께서 사용하셨던 플루트와 같은 목관악기와 색소폰 같은 금관악기들을 말합니다.”
 “자, 잠깐만요!”
 
 하민은 이제 얼굴이 딱딱하다 못해 창백해졌다.
 
 “제 아내가 플루트를 불렀다는 걸 어떻게···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아!”
 
 혜진은 완성품이 되기 위한 중요한 나사가 하나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톡톡 때리며 혼잣말을 했다.
 
 “아, 이 바보! 진즉에 말을 했어야지!”
 
 곧 그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하민에게 말했다.
 
 “아버님의 와이프이신 지연 언니는··· 제가 학창 시절 서울에서 다녔던 클래식 음악 학원의 전설이셨습니다.”
 “저, 전설이라니······.”
 “뭐, 나름 음악계의 선배님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혜진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하민을 보고 싱긋 웃어 보였다.
 
 〈『신의 목소리』 1-2권에 계속〉

댓글(4)

cutesd    
도저히 난독증같다
2017.09.25 01:48
뭔데뭐야    
이게 뭔 ㅡ.ㅡ 대화맞나 지루하고 대화라기보다 독백같고 헐
2017.12.15 07:45
가을연탄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은 성적평가가 절댜평가와 상대평가로 나누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절대음감은 본문에 나온 것처럼 어떤음이든 실제 음이 뭐다라고 알아내는 능력이고 상대음감은 2개이상의 음을 듣고 음정을 알아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예를들어 피아노로 레미파#솔라시도#레를 연주한다면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실제음으로 들리지만 상대음감을 가진사람은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들립니다. 다시말해 어떤 조의 음계를 연주해도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들립니다.
2017.12.19 00:48
OLDBOY    
잘 보고 있어요.
2019.02.01 21:0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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