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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돈이 많아요 1-1권

2017.09.22 조회 7,231 추천 55


 # 프롤로그
 
 여긴 술자리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술자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독자님들은 저의 친구죠.
 저에겐 아주 친한 형이 하나 있습니다.
 십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로 돈을 벌러 갔다가 그곳에서 중국 부자 외동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말을 아주 잘하는 형입니다. 그 형이랑 같이 술을 마시다보면 술이 아니라 그 형의 말에 취하게 된다고 할까요?
 사람도 아주 시원시원하고 첫인상과는 다르게 의리도 많은 형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얼굴이 잘생겼어요. 그런데 그거 수술한 겁니다. 본판도 그리 나쁜 형은 아닌데, 외모에 집착을 하는 편이죠, 그 형이.
 부산사람이에요. 근데 희한하게 표준어와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여자는 몰라도 사투리 고치는 부산남자는 많지가 않거든요. 그런 거 보면 언어 쪽으로 재능이 탁월한 사람은 확실해요.
 그렇다고 막 유능하거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뭐 동네 형? 날이 새도록 함께 술 마시고 다음날 함께 사우나를 갈 수 있는 형입니다. 사우나 다녀와서 함께 돼지국밥에 소주 한 병 뜯어서 해장술 할 수 있는 형입니다.
 그 형이 이제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옵니다.
 정해진 날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자기 내킬 때, 혹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날짜를 조율해서 휴가차 오는데, 지금 한국에 와 있네요. 마침 저나 독자님들도 시간이 있어서 그 형을 함께 만나러 갑니다.
 독자님들은 그 형을 아예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독자님을 꼬시죠.
 
 “같이 가자,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 내가 그때 이야기 안했나? 왜 스위스 시계업계에서 대박 성공한 형이 있다고. 그 형이 지금 한국에 와있다고 해. 마땅히 지금 하는 거 없으면 같이 가자.”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일명 <스타>가 된 그 형을 제가 오늘 친구에게 소개를 시켜주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냥 그런 자리입니다.
 부담스러울 것도 없고 그 형이라는 사람에 대해 경계할 것도 없이, 그냥 좋은 인맥 하나 만든다는 기분으로 함께 가자고 친구를 꼬셔서 데리고 갔습니다.
 분명 재미있는 사람이거든요.
 연애 이야기가 주로 나올 겁니다, 앞부분엔. 왜냐면 장인이 돈이 많은데, 그 장인을 만나려면 그 딸을 먼저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곧 실력 좋은 작업남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말했다시피 그 형이 말빨 하나는 정말 살인적입니다. 특히 여자들 앞에서의 그 형은 거의 뭐 초능력자 수준입니다.
 그러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서 인생이야기, 직장이야기, 그리고 부자이야기로 발전 됩니다.
 
 현실에서 부자가 되는 것.
 그게 그 형이 생각하는 판타지 입니다.
 기대하시는 판타지가 아니라는 거, 미리 말씀드리면서 저랑 친한 동네 형을 소개합니다.
 자, 그럼 함께 한잔하러 가시죠.
 
 ***
 
 와이프가 중국 사람이잖아. 장인은 너희가 말로만 들었던 중국 부자고.
 미리 말해두는데, 재벌은 아니셔.
 산을 하나 가지고 계신데, 그 산에서 철광석이 난다고 하더라고. 중국 쓰촨성에 강이 크게 하나 있는데, 그 강의 모래 채취 권리 소유권을 가지고 계셔.
 기업하는 분이 아니라 회사는 하나 가지고 계시지만, 그냥 장모님이 친목도모 겸 재미삼아 운영하시는 회사고, 장인어른은 이름만 회장이지 따로 하시는 건 없으셔. 그냥 매일 눈뜨면 아침에 수영 가시고, 점심 때 친구들이랑 한 잔 하고 낮잠 주무셨다가, 저녁엔 친구 분들이랑 마작하고 그러셔.
 
 그 회사가 투자해서 하이난 싼야에 큰 리조트 두 개를 지으셨어. 근데 그건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디까지나 장모님이 친목도모를 위해 아는 사람이 여기 투자 한 번 해봐라, 쥴리도 나중에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냐. 리조트 두 개 정도 운영하면 좋을 거다 해서 거기다가 리조트 호텔을 지으신 거야. 물론 장인이나 장모가 그 리조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건 아냐. 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더라고. 재밌어, 보면. 중국이란 나라. 그리고 그 부자들······.
 
 와이프는 외동이야. 얼마나 외롭게 자랐겠어. 근데 어쩌겠어? 그게 중국 정부 법인데. 이제는 풀렸다고는 하더라만, 와이프 태어날 땐 1자녀 정책이 아주 심했거든. 마침 또 장인이 그 당시 공직에 계셨거든. 공산당 당원이셨어. 어쩌겠어? 승진하시려면 그 법을 지켜야지. 결국은 뭐 그게 다 나한테 좋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난 내 와이프를 너무 사랑한다.
 
 이건 형의 진심이야.
 
 
 # 결혼 전
 
 형이 이제 스물여섯 살 때, 그때가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비였어.
 항상 보면 고비 뒤에 기회가 기다리고 있잖아. 그 고비를 잘 넘기면 기회를 만나는데, 그 고비 앞에서 무너지면 답이 없는 거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 근데 적성을 앞에 두고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야. 글은 쓰고 싶은데, 딱히 재능은 없는 거 같고, 그렇다고 글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기성작가들도 출판사 컨택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잖아.
 그때가 내 인생의 최고 슬럼프였어.
 대학 4년간 평균 학점이 3점이 안됐어. 그나마도 이름 없는 지방 4년제였으니 그 정도였지, 만약에 형이 겐또를 실수로 너무 잘 찍어서 수능 점수가 조금이라도 높았어 봐. 그래서 재수없게 괜찮은 학교를 들어갔다면 2점도 못 받았을 거야.
 형은 개인적으로 지방의 이름 없는 4년제를 졸업한 걸 인생의 절대적인 운이고 기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아.
 
 당시 졸업반때 하도 사람들이 토익토익 노래를 부르길래, 도대체 그게 뭔가하고 한 일주일 깨작거리고 시험을 쳐봤는데, 300이 조금 넘더라.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랑 합기도 3단이 전부고.
 컴퓨터는 글 때문에 쓰지, 형은 스타크래프트도 한 번도 안해본 사람이야. 스타할 시간에 여자 만나야지.
 취업을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어. 근데 문제는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지. 서란도를 한 6년 타다보니까 SN7으로 바꾸고 싶더라? 그런 형이 무슨 재주로 월 150, 월 200을 받고 일할 수 있겠냐? 그것도 군대 이등병 취급 받아가면서. 아, 하라면 하지. 근데 문제는 걔네들이 날 뽑아줄지 안 뽑아줄지를 모른다는 거잖아.
 
 그 당시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생각을 많이 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 돌이켜보면 생각한다고 풀 수 있는 숙제도 아니었는데, 왜 그땐 그걸 모르고 자신 있게 백지를 내고 시험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나 모르겠어.
 아무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는 걸 접기로 했어.
 글밥을 먹을 재능이 형한텐 없었던 거야.
 이야기는 참 잘하는데, 스토리를 만드는 재능은 그다지 없었던 거지. 어쩌면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어쭙잖게 타협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연재를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내린 결론은 유학을 가자였어. 스물여섯.
 그렇게 스물여섯 살에 스위스 행을 결심해.
 스위스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학이 아니라 인턴 때문이었거든.
 
 스위스는 참 비싼 나라야. 한 학기 등록금이 한국 돈 3천이 넘으니까. 한 학기 고작 3개월에 3천이면 한 달에 천이라는 말이잖아.
 참고로 형네 집 그냥 고만고만해. 그런데 어떻게 한 학기 등록금 3천만 원 하는 스위스 유학을 할 수 있었냐고? 은행에서 빌렸지, 당연히. 물론 엄마가. 그 정도 땡깡은 엄마, 아빠한테 피워도 괜찮아. 우리 인생이잖아. 부모님.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나지.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이잖아. 그래서 생각했어. 기왕에 희생하시는 거, 딱 한 번만 더 도와달라. 내 그 3천만 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주겠다, 언젠가는! 뭐 그 정도 배짱은 있어도 되잖아? 배짱이 아니라 허세라도 부모 앞에서는 괜찮아. 어차피 부모라는 직업 자체가 그런 직업이야.
 
 고민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보이는 법.
 
 스위스가 참 재밌는 나라야. 스위스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학교는 1년에 한 학기만 공부를 해. 그러니 어찌 보면 1년에 3천만 원인거지. 그리고 다른 학기엔 뭘 하느냐. 의무적으로 인턴을 해야 해. 그게 회사마다 계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 다른데, 형이 알아본 곳은 형만 원한다면 8개월까지 인턴을 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 그게 스위스 스타일이야. 학생은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도 배워야 한다는.
 
 월급. 놀라지 마라. 인턴 월급이 스위스 돈으로 2200프랑. 당시 스위스 프랑이 미쳐서 1프랑에 1200을 넘기도 했으니까 인턴 월급이 거의 300이야. 물론 세금을 많이 떼.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면 실수령 1500프랑인데, 그래도 적은 돈은 결코 아니잖아. 거기다 형이 스위스에서 승부를 낼 자신이 있었던 게 내가 계약한 회사가 스위스 명품 시계 매장이었는데 시계 하나 팔 때마다 그 인센티브가 쩐다는 거야.
 형이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는 기네스북에도 올라있어.
 세계에서 단일 매장으로 가장 많은 브랜드를 보유한 매장이야. 총 200개가 넘는 브랜드를 판매했으니까, 어마어마한 거지.
 거긴 일단 한국 관광객이 그룹으로 들어오는 곳이야. 스위스 인터라켄 하면 뭐냐? 융프라우 아니냐. 융프라우를 방문하는 세계 모든 여행사와 계약을 맺어서 그룹 손님을 받는 곳이었는데, 그중에 한국 땡땡투어, 무슨투어, 어디풍선······ 독일어, 영어가 필요가 없는 곳이었어. 한국말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곳이었지, 그곳은. 그리고 당시 한국 관광객은 중국 관광객 다음으로 큰 손님이었어.
 
 형 하루 최고 기록이 놀라지 마라.
 한 손님한테 12억치 팔아봤다.
 12억이라니까 못 믿겠지? 근데 시계 12억은 별 거 없어. 물론 명품 중에 명품이고 고가 중에 고가지. 하지만, 하이엔드급 브랜드 10개만 집으면 12억 나와.
 사업을 하시는 어른이었는데, 아마도 사업할 때 뇌물로 쓸 용도가 아니었나싶어. 어쨌든 할인에 면세까지 되니까, 그 어른 입장에선 충분히 12억이라도 살 만한 거지. 한국이었음 최고 15억 정도치는 되는 벨류였으니. 근데 문제는 돈을 떠나서 한국에선 구할 수가 없는 제품들이었기에 그 어른이 세관을 걱정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지르셨던 거야.
 두 시간 깔짝 서빙하고 형이 번 돈이 얼마였을 거 같아?
 딱 한 학기 학비를 벌었어. 푸하하하하.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짜릿하단 말이지.
 아무도 몰랐어, 형이 그렇게 큰 잭팟을 터뜨릴 거라곤. 한국 매니저도 상상조차 못했었다니까?
 처음엔 30만원대 브랜드부터 시작을 했어. 아들 시계를 본다고 하길래,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대략 형 또래래.
 그때부터 사장님에서 아버님으로 호칭을 바꿨지. 당신도 나 같은 아들이 있다니, 나 역시 당신을 아버지라 생각하고, 내가 찰 만한 시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근데 30만원대 시계를 보여주는데 영 마뜩찮은 얼굴이야. 너무 싸다 이거지. 순간 아! 돈 좀 있구나 싶어서 바로 100만원대 해밀X를 밀었어. 근데 여전히 시큰둥해.
 
 “아버님, 제가 사실 아버님께서 생각하시는 금액대를 잘 몰라서 어떤 걸 보여드려야 할 지 헷갈립니다.”
 “학생이죠?”
 “네,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네. 뭐 한 300 정도면 되지 않겠나 싶은데.”
 
 내 또래. 스물여섯 아들에게 삼백 정도의 시계를 사주시겠다? 뭐 있는 집은 확실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바로 테X호이어로 모시고 갔어. 크하······ 이거다 그거야, 그 양반 표정이. ‘까X라’를 딱 꺼냈는데, 바로 그걸 달래. 가격도 안 물어. 할인 이런 거 전혀 묻지를 않는 거야. 그 브랜드를 하나 팔면 인센티브가 60프랑, 한국 돈으로 대충 7만원이었거든. 여기서 멈출 수 있나.
 
 “아버님 시계는 하나 안보세요?”
 “나는 뭐 다 있어서······ 근데 선물을 몇 군데 해야 되는데······.”
 
 침이 고이기 시작하지. 입술도 타고. 대어를 낚았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더라고.
 그날 형 신들렸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잘하냐? 내가 생각해도 참 말을 잘하더라, 그날 형이. 침착하게 예의 바르면서도 배짱 있게. 워치딜러라는 직업이 다이아몬드 딜러 못지않게 절반은 허풍이거든. 근데 고작 인턴이었던 형이 프로페셔널하게 그 어른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파텍필X’ 한정판 두 개 빡! 빡!
 ‘브레X’ 풀 다이아몬드 빡!
 ‘바쉐론 콘스탄X’ 네 개 빡! 빡! 빡! 빡!
 ‘아랑게 운트 죠X’ 스위스 한정판 빡!
 ‘자케드X’ 4억짜리 하나 빡!
 
 그날 사장님 형을 부르더라. 뭔가 싶으셨겠지?
 
 “네가 오늘 잭팟 터뜨린 인턴이야?”
 “네.”
 
 손을 딱 잡으시고는 한마디 하시더라.
 
 “잘했어!”
 
 이름이 뭐냐고 물으시더라고.
 
 “자네 이름 내가 기억하지.”
 
 직원이 300이 넘는 매장이야. 한 매장만. 물론 형이 일했던 그 매장이 가장 큰 매장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매장을 6개나 더 가지고 계신 사장이 무슨 수로 직원들 이름 하나,하나 다 외우겠어? 거기다 이제 막 일 시작한 인턴의 이름을. 근데 사장님은 정말로 그날부터 형 이름을 외우셨어. 그리고 인턴 한 달이 끝날 때 즈음 다시 형을 부르더라고.
 스위스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당연히 있다고 그랬지. 학교는 언제 졸업이냐고 물으시더라?
 
 “만약 제가 여기 취업을 할 수만 있다면, 졸업장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스위스는 고용자와 피고용자를 위해 ‘프로베짜이뜨’라고 정직원들도 다 가지는 3달 계약기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 안에는 고용자도 언제든지 해고를 할 수가 있고, 피고용자도 회사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회사를 그만둘 수가 있어. 형은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프로베짜이뜨에 들어갔잖아. 운이 좋았지. 뭐 어쨌든 그리고 3달 뒤에 바로 정직원이 되는 거야. 취직이 되는 거지.
 부모님들은 당연히 너무 좋아하시지, 그때만 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계속 외국에서 살 거란 걸 예상이나 하셨겠어? 그냥 뭐 취업이 됐다고 하니까 마냥 다행이신거지.
 
 ***
 
 형이 원래 공부는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현재 영어, 독일어,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이유가 다 과거 여자친구들 그리고 현재 와이프, 쥴리 덕분이야.
 그런 의미에서 스위스를 선택하고 인턴으로 명품 왓치샵에 들어갔던 건 형 인생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잘한 선택 중 하나야.
 거기서 정말 미친듯이 꼬셔댔다.
 스위스에서 첫 여자친구가 그리스 애였는데,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고, 어머니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이셨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영어를 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형이 그래도 나름 눈치가 있는 사람 아니냐. 처음부터 꼬셔댔던 건 아니고, 정직원 된 후에 한 달쯤 지나서 슬슬 발동을 걸었지. 근질근질하더라고. 많이도 참았지, 형 입장에선.
 그 여자애 진짜 이름은 기억이 안나. 뭐시 너무 길었거든. 그냥 ‘세린’이라고 불렀어.
 세린도 외로웠던 거야. 그리스가 또 가난한 나라잖아. 거기서 돈 벌겠다고 스위스에 왔는데, 독일어는 안 되지, 그러니 유러피언이면서도 스위스에 잘 스며들지 못했던 거야. 그래도 애는 참 예뻤어.
 
 어떻게 꼬셨느냐. 뭐 간단해.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그랬어. 그럼 내가 너 일할 때 옆에서 서포팅 책임지고 해줄 테니.
 그리스는 한국이나 중국팀에 비해서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와도 고가를 구입하지 않아서, 세린이 유일한 그리스 스텝이었어. 그리스 매니저가 있긴 했는데, 그래도 둘 중 하나라도 쉬어버리면 일하는 사람은 죽어나는 거지 뭐. 정말로 그리스 그룹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떨 땐 혼자서 쩔쩔매야 했어. 여기서 이거 보여달라, 저기서 이거 보여달라······.
 사람이 간사한 게, 그런 회사에선 또 자기 국적 손님 아니면 잘 서빙도 안한다? 한국하고 달라서, 안 도와줘도 아무도 별 말을 안해. 워치딜러라는 게 어찌 보면 회사에 속한 개인 사업자거든. 어쨌든 그렇게 세린이 약간 애를 먹고 있었어.
 한 손님이 이걸 보여달라고 하고, 다른 손님은 또 저기서 물건 보여달라고 하고······. 근데 그날 그리스 매니저는 쉬는 날이야.
 이 형이 또 누구냐. 주워먹기의 달인 아니냐.
 
 “세린! 왜 도와달란 말을 안해!”
 “도와줘!”
 “뭐가 필요해. 어떻게 도와주면 돼?”
 “박스랑 품질보증서, 쇼핑백이랑 사용설명서 좀 찾아줘. 한정판인데, 사용설명서가 어딨는지를 모르겠어!”
 “넌 저기 저 손님 케어해. 이 손님 결제는 다 끝났지? 그럼 내가 품질보증서 쓰고, 마무리 할게.”
 “고마워!”
 
 이럴땐 윙크 한 번 날려줘야 해. 형이 또 누구냐? 안 되는 영어로 손님한테 시계 설명을 또 장황하게 했지. 배짱이 필요하단 말이야. 이리와 보세요 딱 한 다음에, 이건 이래서 이렇고, 이건 요렇게, 그리고 이건 절대 조심해야 되고······ 근데 더 대박은 그 그리스 손님이 영어를 전혀 못한다는 거야. 근데 또 어떻게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더라? 내 영어도 완전 개발인데.
 그렇게 면세서류 작성까지 다 끝내고 나니까 목이 다 쉬었더라고.
 그날 세린이 너무 고맙다면서 음료수를 하나 사주더라. 형 때문에 인센티브 90프랑짜리 하나 팔았다면서. 한국 남자 여자에게 얻어먹지 않는다! 네가 음료수를 샀으니 맥주는 내가 사겠다고 했지.
 
 “맥주? 어······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난 오늘 마시자고 안했는데?”
 “언제가 좋아?”
 “네가 편할 때.”
 
 이쯤 되면 이미 의도는 다 전달이 된 거야. 다음날 세린이 근무 중에 은근히 저녁에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뜻을 내비치더라고. 뜸들이면 안 돼, 뜸은 밥할 때만 들이면 돼.
 
 “오늘 마치고 맥주 콜?”
 “콜!”
 
 일 끝나고 맥주를 한잔 하는데, 그때 형이 실수를 했어. 아메리칸 펍은 시끄럽잖아. 노래소리도 시끄럽고 거기 오는 애들도 다 혈기 왕성한 애들이라 목소리가 커서.
 
 딱 맥주 한 잔씩하고 인터라켄 서역 근처에 있는 스위스 스타일 펍으로 자리를 옮겼어. 로맨틱한 곳이지. 조용하고, 사람들도 다들 스위스 현지인들이라 조곤조곤 말을 해서 무척 괜찮은 곳 중 한군데야. 만약에 인터라켄 갈 일 있으면 꼭 한 번 가봐, 서역 근방에 펍은 거기 한군데밖에 없어. 괜찮아.
 
 “나에게 문제가 하나 있어, 세린.”
 “문제? 무슨 문제?”
 “영어가 너무 스트레스야. 여긴 다양한 국적의 스텝들이 근무를 하니까, 독일어보단 영어가 더 필요한 곳이잖아. 근데 난 독일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안 되니······.”
 
 물론 이 말은 그때 형이 그런 뉘앙스로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지, 완벽한 문법을 갖춘 영어는 절대 아니었어. 그냥 뭐 이런 식이었어. 눈짓, 발짓, 표정 다 섞어서 계속 쓰는 표현에 단어만 바꿔가는 영어. 어떤 건지 대충 알잖아?
 
 “나 영어 좀 가르쳐 줘. 애들이 그러더라, 네 영어가 네이티브라고. 네가 나랑 자주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 틀릴 때마다 고쳐주고. 그럼 내가 너 그리스 그룹 들어올 때, 목숨 걸고 커버해줄게. 약속해.”
 “나야 고맙지, 네가 그렇게 해주면. 어떻게 가르쳐주면 될까?”
 
 커플 랭기지라는 게 있어. 커플은 별 말 안 해도 소통이 되잖아. 형은 그렇게 영어를 배웠어.
 그날 맥주에 데낄라까지 섞어서 조금 많이 마시긴 했어. 형이 아마추어도 아니고 꼭 뭔가를 하려고 많이 먹였던 건 아니었어. 분위기가 좋았어, 첫째로. 그리고 세린도 그런 의도가 조금은 있었겠지? 그랬으니, 단 둘이 마시는 술자리에서 그렇게 술잔을 비워댔겠지.
 그날 형은 백마 탄 왕자였다.
 
 형이 그 당시 한 달에 얼마를 벌었을 거 같아?
 참고로 그 회사 총 매니저가 한국 돈으로 연봉 2억5천 정도 됐어. 샵 매니저는 1억 8천 정도였고. 잘 나가는 국적(당시 중국, 한국, 태국이 잘나갔어) 매니저가 1억 정도를 받았어. 여기서 말하는 액수는 인센티브를 제외한 액수야. 총 매니저, 샵 매니저, 국적 매니저는 판매를 거의 안하니 인센티브가 스텝들이 비해서 적긴 해도, 어쨌든 그들은 일반 스텝들보다 많이 가져가는 게 보통이야. 일반 스텝들 평균 기본급이 한국 돈 육,칠백만 원 정도가 됐어.
 형이 첫 해 번 돈이 한국돈 1억 2천이었다. 자, 아직 놀라긴 이르다.
 이것저것 다 떼고, 아파트 렌트, 생활비 다 떼고 순수 한국에 가지고 들어간 돈이 1억 2천이란 말이야.
 순수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씩 모았단 말이지. 그렇다고 아둥바둥 산 것도 아니야. 그 말인즉슨 한 달에 대충 한국 돈 2천 5백 정도는 벌었다는 말이야. 세전.
 첫 해였기 때문에 기본급이 4500프랑이었거든. 한국 돈 500이 조금 넘는 금액이지. 근데 인센티브를 얼마나 땡겼는지, 충분히 여유롭게 생활하면서 그 해 1억 2천을 한국으로 가지고 갔어. 엄마한테 빡! 선물이다, 그간 하고재비 아들래미 키운다고 욕봤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라! 하면서 줬더니만 엄마가 눈물이 그렁그렁, 입이 근질근질······ 반찬이 달라지더라.
 1년에 10달을 일해. 형은 퍼미션이 L퍼미션. 말 그대로 워킹 퍼미션이라서 법적으로 10달만 일을 할 수가 있어. 나머지 두 달은 스위스를 벗어나야 해. 어쩔 수 없는 휴가지. 물론 매니저들은 싫어하지. 호날두가 빠지면 골은 누가 넣냐? 그래도 어쩌겠어? 스위스 법이 그런 걸.
 10달을 일하면 23일의 휴가가 있는데, 형은 어차피 두 달을 쉬어야 하니까, 그 휴가비도 돈으로 받는 거지. 진짜 쏠쏠했어.
 참고로 첫 해 형이 가져간 돈이 이리저리 사람들 하는 말을 들어보니, 회사 통틀어 스텝들 중에선 10위 안에 들었다고 하더라. 그랬겠지. 총 매니저만큼 가져갔으니.
 고맙게도 형이 잠시 두 달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세린은 그리스로 돌아가 버렸어. 외로워서 못 버티겠다고. 형한테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형은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남자는 때론 여자를 위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되잖아. 그래서 가슴 아픈 척을 또 막 해줬어.
 
 “세린! 보고 싶어. 너 이렇게 가버리면, 난 정말 외로울 거야!”
 “괜찮아. 언제든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 와.”
 
 내가 미쳤냐? 그래, 솔직히 딱 한 번 가봤다. 산토리니 여행한다고 쉬는 날에 5일 휴가 붙여서 일주일로 산토리니에 놀러갔어. 근데 또 혼자 놀기엔 밤이 너무 길잖아? 그렇다고 쉬려고 갔는데, 여자들 꼬셔보겠다고 혼자 클럽 찾아다니는 것도 우습잖아. 귀찮기도 귀찮고. 그래서 일주일 여행 간다고 연락을 했더니, 좋아 죽더라고. 형도 어쩌면 세린이 조금은 그리웠던 모양이야. 그렇게 일주일 여행 같이 하고 나서 합의 하에 이별을 했지. 그 일주일간 형 다크써클 장난 아니었다. 백마를 타긴 했는데, 더이상 왕자는 아니었어. 백마탄 노예? 어쨌든 이별 선물은 제대로 해준 거니까 후회는 없어. 그 후로 산토리니는 더 이상 그립지가 않았어. 예쁘긴 했는데, 다시 가면 그 노가다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노이로제랄까?
 
 그지. 형 정도면 언어에 재능이 있는 편이지. 그럴 수밖에. 워낙에 말하는 걸 좋아하고, 거기에 여자를 꼬셔야 한다는 집착이 더해지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밖에. 세린이랑 헤어지고 딱 석 달만에 스위스 현지 애를 하나 꼬셨는데, 이야······ 영어가, 영어가! 형도 스스로한테 놀랐다니까. 그렇게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영어가 늘어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 다음 만났던 여자애는 ‘안젤라’라는 애였는데, 중고차 딜러였어. 물론 뭐 그 관계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어.
 세린이랑 사귈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게 같은 사내연애는 불편하다는 거였어. 뭘 할 수가 없잖아? 다른 애들이랑도 이야기 해보고 싶고, 술도 한 잔 같이 하고 싶고 한데, 세린이 딱 버티고 있으니까 그게 도의적으로 힘든 거야. 그래서 그때 결심했지. 사내연애는 미친 짓이다. 그것만큼은 피하자!
 수입이 괜찮아지니까 몸이 또 근질거리잖아? 그래서 차를 한 대 사야겠다 마음먹었어.
 우리 또 안하면 안했지, 어설픈 건 죽기보다 싫잖아. 이왕 사는 거 괜찮은 놈으로 사야겠다 마음먹고 X5를 결정했어.
 스위스는 차가 싸. 한국보다 약 2,30퍼센트 정도? 브랜드에 따라 다르긴 한데 대체로 2,30퍼센트 정도는 싸다고 봐도 돼. 더군다나 중고차는. 그래도 큰돈이지, X5 정도면. 근데 그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벌었던 것도 사실이야.
 얼마나 좋아? 쉬는 날 옆에 아가씨 하나 딱 태우고 드라이브. 스위스 또 경치가 예술이잖아. 카메라 셔터만 눌리면 엽서잖아, 스위스가. 정말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아무튼 그 차를 사면서 만난 안젤라가 또 얼굴이 예술이야, 몸매는 작살이고. 타깃이 생긴 거지.
 걔 입장에서도 형 정도 고객이면 최선을 다해야 했을 거야.
 
 “이 정도면 여자들이 좋아할까요?”
 “아이, 그럼요. 만약 제 남자친구가 이런 차를 가지고 있다면 어쩌면 좋아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남자친구 차가 뭔데요?”
 “없어요.”
 “없어요? 그럼 어떻게 만나요? 스위스는 차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잖아요.”
 “아뇨, 차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없다구요.”
 
 뭐 어쩌라는 거야? 꼬셔달란 말 아닌가? 난 그렇게 받아들였거든. 그래서 그냥 꼬셨어.
 
 ***
 
 유럽여행 하면서 인터라켄을 가보면 알겠지만, 인터라켄이 작아. 큰 동네가 아니야.
 인터라켄에서 거주하는 한인들 대부분이 형처럼 워치딜러로 일하거나, 로컬 여행사 개인 사업을 하거나, 여행사 가이드, 여행사 오퍼레이션 일을 해. 한식당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 좁은 인터라켄에 한식당이 있어봤자, 또 얼마나 많겠어?
 아무튼, 그러다보니 한인 커뮤니티가 너무 좁은 거야.
 뭐만 하면 다음날 소문이 다 나.
 
 “너 어제 볼링장 갔었다며? 누구냐, 그 아가씨? 애들 말로는 스위스 로컬 같다던데.”
 
 더 신기한 건, 누가 그러더냐고 묻잖아? 그럼 대답도 못한다?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거야, 형 성격에선.
 아니, 내가 뭘 하건 그게 자기들이랑 뭔 상관이야? 내가 어디 가서 돈을 훔쳤어, 사람을 때렸어? 그냥 쉬는 날 개인시간 보내고, 마트 가서 먹을 것 좀 사고, 저녁에 심심해서 드라이브 하다가 우연히 차에 기름 넣다가 같이 일하는 애를 만났던 거야. 어디 가냐고 했더니, 친구들이랑 볼링을 치러 간대. 그러면서 같이 가겠냐고 하잖아. 한두 번 정도 튕겼는데 애가 진심인 거야.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 그럴 수 있잖아.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다음날 회사를 가니까 소문이 다 난거야.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 인터라켄에 큰 백베커스가 두 개가 있어. 배낭여행을 다니는 애들이 돈이 어딨겠냐? 싼값에 잠도 자고 정보도 얻을 겸 웬만한 배낭객들은 다 백베커스로 모인다 이거지. 그중엔 한국 애들이 제법 많아. 대부분이 대학생이고, 드문드문 사회생활 하다가 때려치우고 쥐꼬리만큼 나온 퇴직금으로 배낭여행을 오는 애들도 있긴 해. 그런 애들 중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오는 애들이 많아. 아직은 싱글이거든. 그러니 아무래도 자유롭겠지. 아님 자유롭고 싶어 발악을 하는 건지도.
 
 그날은 백베커스 핫쵸코가 너무 마시고 싶은 거야.
 
 웬만한 호텔 라운지보다 거기 자판기 핫쵸코가 백배는 나아. 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어. 진짜 순전히 핫쵸코 때문에 갔던 거야. 배낭여행 다니는 아가씨들 꼬실 작정이었다면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갔겠지. 하루종일 일한다고 완전 파김치가 된 상태로 여자를 꼬시는 건 작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말이지.
 하루종일 시계를 하나도 못 판 거야. 그런 날은 일 년에 손에 꼽힐 정도거든. 형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형이 못 파는 날은 아무도 못 파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돼.
 
 장사가 안 되니까, 형도 인간인데 눈치 보이지. 한 일주일 진짜 장사가 미친듯이 안 되는 거야.
 손님이 들어오질 않는데, 형이 뭘 어떻게 하겠냐? 아닌 말로 들어오는 손님을 놓치는 건 형 잘못이라고 쳐. 하지만 손님이 들어오질 않는데 그걸 스텝들 쫀다고 답이 나오냐?
 
 한국 매니저가 그런 사람이야.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엑기스를 사장에게 올리는. 회사 입장에서야 꼭 필요하고 좋은 직원이겠지만, 밑에 사람 입장에선 피곤한 스타일이지.
 
 하루종일 쪼는 거야. 스텝들을. 장사가 안될 때는 청소를 하라느니, 청소를 하고 있으면 또 옆에 와서 재고파악을 하자고 하고, 알겠다고 재고파악을 하려고 하니까 새 모델 주문을 하라고 하는 거야. 뭘 어쩌라는 거야, 나한테!
 그 덕에 진짜 무조건 사는 손님을 놓쳐버렸어. 기분이 쉣이었지. 서빙은 내가 했는데, 꼭 매니저 때문에 놓친 거 같은 기분이랄까? 남 핑계 대면 루저인 거 알면서도 사람이 그런 거야. 꼭 그 사람이 아침부터 형을 쪼지만 않았다면, 분명이 2루타 하나 정도는 칠 수 있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삼구 삼진을 당한 느낌. 뭔지 대충 알지?
 얼굴에 인상 제대로 구기고 핫쵸코 하나 마셔보겠다고 정장 차림으로 백베커스를 들어갔다? 근데 오마이 갓! 공짜 두 개가 나잡아봐라 하는 복장으로 포켓볼을 치고 있는 거야. 여기서 말하는 공짜가 뭔 뜻인지 대충 알지? 모르면 그냥 계속 몰라. 그냥 쭉 몰라. 몰라도 돼.
 막 자기들끼리 신났어. 유럽여행을 온 건지, 남자를 꼬시겠다고 스위스를 온 건지 헷갈리는 그런 복장 알지? 스위스는 알프스 아니냐. 등산화를 신으라는 말이 아냐. 그래도, 쪼리 샌들은 좀 그렇잖아. 백번 양보해서, 숙소니까 편하게 있으려고 쪼리 샌들을 신었다고 쳐. 그래도 해운대 백사장에서 나잡아봐라 하는 애들처럼 등짝 훤히 드러내놓은 원피스는 누가 봐도 나 오늘 공짜니까 알아서들 하세요잖아.
 
 “한국 분이신가봐요?”
 
 형도 모르게 말을 걸었어. 자동반응이라고 하지, 이런 걸? 꼭 마치 포켓볼 테이블에 자석을 붙여놓은 것처럼 이성과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핫쵸코를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린 거야. 유럽 여행 오는 애들은 원래 오픈마인드야. 아니면 오픈마인드 해보겠다고 오는 애들이거나. 한국에선 걔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오는 순간 모든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지. 만약 한국에서 형이 그 상황에서 여자한테 말을 걸었음 이상한 놈 취급을 하거나, 아님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서,“네.” 하는 정도로 간을 볼거야. 그게 한국에서 펼쳐지는 전형적인 작업의 기본이란 말이지. 근데 유럽이잖아. 유럽에서도 스위스잖아. 여자애들이 얼마나 느슨해져 있겠냐?
 
 “어머? 한국 분이신가봐요? 여기 사세요?”
 “네, 여기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와, 좋겠다! 여기 정말 너무 예쁜 거 같아요. 오신지는 오래 되셨어요?”
 “네, 뭐 그냥······.”
 
 얼마 안됐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 한번 보고 안녕할 사이인데. 사기가 아냐, 그냥 얼버무린 것뿐이지.
 그때부터 애들이 치던 포켓볼은 안치고 어디가 좋아요? 어디가 예뻐요? 내일 융프라우 갈 건데 날씨는 좋겠죠? 괜찮은 식당 좀 소개해 주세요······.
 
 “야경 끝내주는 데가 있는데, 제가 보여드려요?”
 “정말요? 어디요?”
 “그린델발트. 여기서 차로 한 20분 정도 올라가면 나와요. 만년설을 등지고 펼쳐지는 마을이 밤에 보면 예술이에요. 저녁은 드셨어요?”
 “아뇨, 이제 먹으러 가려구요.”
 “뭐 먹을 거예요?”
 “모르겠어요, 사실. 어디가 괜찮아요?”
 “같이 갈래요? 저도 이제 막 일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핫쵸코 하나 마시려고 여기 왔던 거예요. 저도 저녁 먹어야 되는데, 괜찮으면 같이 가죠.”
 
 서로 눈치를 주고받는 거야. 이상한 사람 아닐까 하는 의심? 아냐. 이미 걔들은 간다고 결심을 한 거야. 근데 바로 가겠다고 하면 너무 저렴해 보이잖아.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겠냐?
 
 “제가 사는 집이 그린델발트 가는 길이에요.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아님 저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데, 같이 가셨다가 저 옷갈아입고 바로 출발하실래요?”
 
 여기서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게 맞아. 서로 쳐다보면서 어떻게 할래? 넌? 난 다 좋아, 너 내키는 대로 해. 막 그러면서 눈치로 대화를 하는 거야.
 
 “괜히 저희 때문에 집까지 가셨다가 여기 돌아와서 다시 가는 거보단, 처음부터 같이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그러세요. 전 아무래도 좋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은 걔들이랑 그린델발트를 안 갔어. 아니 못 갔어. 서로의 목적이 같았으니까.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데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애들이 “우와, 집 좋네요. 혼자 사시는 거예요?”로 말문을 트더라고. 남자 혼자 사는 집치고 넓기도 넓지만 뭣보다 깨끗한 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잠시 딴 길로 새는 건데, 집 청소해가면서 살아라. 그리고 특히 혼자 산다면 더 청소하고 살아라.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더러운 집 때문에 다 잡은 기회 놓칠 수도 있고, 긴가민가한 상황에서 깨끗한 집 때문에 여자들이 결심을 하는 경우도 많다. 허투루 듣지 마라. 이거 진리다.
 아무튼 애들이 말을 막 던지기 시작하는 거야.
 
 “이런 집은 한 달에 얼마에요?”
 “스위스는 전세 개념이 있나? 유럽은 다 월세죠?”
 “집에서 융프라우가 바로 보이네요. 창문만 열면 융프라우야. 나도 이런데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거 안 외로우세요?”
 
 형이 나잡아봐라 공짜 아가씨 둘의 사례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양식에 쩌들어 있던 형이 어떻게 스위스에서 한식을 조달했는지가 아냐. 그날 걔들이랑 함께 보낸 걸 다음날 회사에 가니까 사람들이 다 알고 있더라는 거야!
 
 “너 어제 여행 온 여자애들 둘 데리고 어디 갔냐?”
 “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얌마. 넌 왜 맨날 개인플레이냐? 다른 애들도 좀 챙겨줘라. 애들도 외롭단 말이야, 요즘.”
 
 외로운 건 너희 사정이고, 난 지금 당신들 때문에 기분이 무척 안 좋단 말이야!
 형이 스타냐? 어디 파파라치 따라 붙었어? 그걸 어떻게 다 알 수가 있는 건지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보려고 애써도 좋게 생각이 안 되는 거야. 뭐 누군가가 오고가다가 형이 차에 여자애 둘을 태우는 걸 봤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게 뭐 어찌어찌하다 이야기가 나와서 이슈가 될 수도 있어. 그러면, 그러면 말이야, 그냥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잖아. 왜 그걸 당사자한테 직접 말을 하냔 말이지. 형은 정말 그 사람들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아직까지도.
 중고차 딜러 안젤라 말하다 말았지? 걔도 딱 그런 케이스 때문에 빠빠이 했어. 형이 성격이 좀 지랄 맞아서, 좋아하는 불고기도 누가 맛있다면서 젓가락으로 집어서 형 밥 위에 올려주면 안 먹어. 그냥 뭐든 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옆에서 누가 형이 하는 걸 감시하는 느낌을 받으면, 보란 듯이 엎어버려. 그래야 더는 안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
 
 “너 안젤라 만난다며?”
 “누가 그래요?”
 “소문 다 났어, 짜샤. 야, 근데 걔는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왜요?”
 “아시아 남자 킬러야.”
 
 에프킬러를 확 그냥 얼굴에 뿌려버릴라. 지금 누구 앞에서 누굴 걱정하는 거야? 찌질한 새끼가.
 
 형이 그 정도도 모르고 만났겠냐? 안젤라가 아시아 남자 킬러면, 형은? 형은 노냐? 형이 어디 가서 병신 같이 당하고 다닐 사람 같냐? 형은 말이야, 전설의 ‘인하신공’의 창시자야. 그 인하신공이 발동하잖아? 그럼 다 죽는 거야. 근데 그런 형한테 그게 할 소리냐?
 
 “매니저님,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한데, 제 일은 제가 좀 알아서 할게요.”
 “뭐냐, 그 반응은? 말에 뼈가 있다?”
 “네, 기분 나빠서 드리는 말씀 맞아요. 사생활은 존중받고 싶네요. 제가 어디 가서 누굴 만나고 뭘 한다는 게 일일이 다 매니저님 레이더에 걸린다면, 그래서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월급을 더 주세요. 제가 참고 일하는 대가로. 그게 아니라면 참지 못할 거 같거든요.”
 
 형이 싸가지가 조금 없어.
 근데, 싸가지 좀 없어도 괜찮아. 싸가지 많다고 월급 더 주는 회사 아니라면, 싸가지 정도는 좀 없어도 괜찮아. 사람은 말이다, 원래가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법이야.
 네가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잖아? 그럼 지랄 맞은 직장 상사도 더러운 꼴 안보려고 너 안 건드려. 그럼 승진이 힘들지 않냐고? 앗, 지랄! 어느 세월에 승진할래? 승진 하겠다고 자존심 버리면, 누가 승진 시켜준다냐? 네가 회사에서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네 승진에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는 잔챙이들이야. 혹은 네 승진에 별 관심이 없거나. 만약 네 승진에 뭔가 입김을 불 수 있을만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 널 괴롭히거나, 못살게 군다면, 때려치워 그깟 회사!
 어딜 가도 지랄맞은 상사는 있어. 개 같은 상사 꼴보기 싫어서 이직했는데, 이직한 회사엔 개좆같은 상사가 있다고? 제발 좀 얘들아······ 그게 다 너희한테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래. 카리스마 있는 사람은 그게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선배, 혹은 상사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 너도 밑에 애들 있으니까 알 거 아냐. 성격 좋고, 만사 오케이인 놈이 그나마 편하고 만만해서 일시키기 편하잖아. 반면에 싸가지 없고, 성질 더러운 놈한테는 괜히 일시키기 부담스럽고. 너도 그렇잖아! 근데 왜 넌 그렇게 못하는데?
 형이 하나만 묻자. 네가 하는 말이라면 끔뻑 죽고, 네가 술 마시자고 하면 그게 언제든 오케이하는 부하직원. 그 부하직원이 업무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했을 때,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곧바로 네가 샤우팅할 수 있는 그런 부하직원이 있어, 너한테. 샤우팅해놓고 나중에 풀어주면 곧바로 그 관계가 회복되는. 근데 너한테 걔네들 승진시킬 힘은 있냐? 아니, 시키고 싶냐? 평생 네 밑에 있어야 한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근데 넌 어쩌다가 네 상사한테 그런 부하직원이 되어버렸냐?
 카리스마는 실력이 만드는 거야. 실력을 키워. 괜히 일은 일대로 하고, 상사 눈치보고, 뭣도 아닌 상사 비위맞춰가면서 찌질하게 월급 기다리지 말고, 네가 일한 만큼 월급을 받으면 되는 거야, 당당하게. 딱 월급만큼만 일해. 더 하면 월급 올려준다고? 조까라 그래. 월급 올려주면 더 한다고 해. 그게 국제법이야.
 
 ***
 
 형이 한국 매니저를 그대로 받아버렸어. 봐서 알겠지만 형이 똘기가 충만이야. 평상시엔 정상인데, 누가 건드리면 그냥 물어. 내가 딱 물었는데, 상대가 이것 봐라? 하면서 공격을 하잖아? 그럼 물고 안 놔. 죽을 때까지.
 그놈이 형보다 나이가 4살 많아. 근데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었는지, 전혀 형 같다는 생각이 안드는 거야.
 지 밑에 있는 한국 스텝들한텐 한국 군대식 문화를 강요하고, 외국 스텝들한텐 자기가 또 완전 유러피안 마인드라고 하면서 지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 머리 막 만지고 그래. 완전 박쥐같은 새끼지. 좋아.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럼 샵 매니저가 한국인인데, 왜 그 샵 매니저한테 자기는 한국 직장문화처럼 깍듯이 안 대하느냔 말이지, 형 말은. 완전 이중 잣대 아니냐?
 샵 매니저는 사람이 참 좋아. 카리스마도 있고. 근데, 이 국적 매니저라는 새끼는 조또 없는게 졸라 나대는 거야. 우린 또 그런 건 못 참잖아. 애가 지 밑에 애들을 부리는 무기가 하나 있어. 바로 퍼미션이야.
 앞에서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형이 L퍼미션이야. 직업의 특성상, 스위스라는 나라 특성상 비자가 잘 안 나온다 이거지. 그래서 대부분이 10개월 L퍼미션 계약직으로 일을 해. 근데 그 한국 스텝 계약 연장의 생사여탈권을 이 새끼가 쥐고 있다는 거야. 개중에 스위스 여권을 가지고 있거나, B퍼미션이라고 스위스에서 10년 넘게 생활을 했거나, 혹은 스위스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안 되겠지만, 형처럼 L퍼미션으로 일을 하는 계약직들을 그 새끼는 아주 홍어 좆으로 대하더란 말이지.
 안 그래도 한 번 벼르고 있었어.
 
 “넌 사람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냐?”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그 새끼랑 형 사이는 완전 살얼음이었어. 서로가 서로를 벼르고 있는 상태였다고 할까? 하는 짓도 졸라 유치해. 지 말이라면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애들 모아서, 형만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 회식을 하지를 않나, 그 자리에서 형 욕을 또 그렇게나 했다는 거야. 바람둥이라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비밀이 없는 동네야 그 동네가. 사람들이 다들 심심하거든. 안 그렇겠냐? 가족이 있는 한국도 아니고, 혼자 돈 벌겠다고 모인 사람들끼리 일 마치면 모여서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그리고 다음날 회사 오면 그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막 하고.
 하루는 아침부터 인사를 안 한다고 시비잖아. 형 성격에 뭐라고 했겠냐?
 
 “서로 불편한 사이에 인사는 무슨 인삽니까. 그냥 서로 얼굴 안 붉히게 서로 조심합시다, 괜한 걸로 트집 잡지 말고, 아침부터.”
 
 형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 형처럼 하면 안 돼. 알고 있는데,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한테는 그렇게 해도 괜찮아. 일단 형은 자신이 있었거든. 뭐에? 형 실력에. 뭐 비록 그 새끼가 스위스 비자 받을 거라고, 스위스 현지인한테 한국돈 5천만 원 주고 위장 결혼을 해서 B퍼미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그 애가 형한테 내세울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그것밖엔 없단 말이지.
 거기다 스위스잖아. 한국 아니거든. 자기가 윗사람한테 깍듯이 하고, 아랫사람한테 그걸 요구하는 건 어찌 보면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도리 상은 맞을 수도 있어.
 근데, 지는 윗사람한테 친구 먹으려고 하면서, 밑에 사람은 자기를 떠받들어주길 원한다? 그건 돌아이거든.
 
 “야······ 너 싸가지 진짜 없다.”
 “네, 저 싸가지 없어요. 괜히 긁지 마세요. 저 긁어서 얻을 거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너 맞을래?”
 
 이야······ 아직도 그때 그자식이 형한테 한 그 말, 그 분위기, 그 표정을 잊지를 못해. 형 화나면 침착해진다. 그리고 부산 사투리가 작렬하지.
 
 “니, 내가 회사 나갈 작정하고, 크게 들이받는다이가? 그라면 니······ 죽어. 설레바리 치지마라고. 어? 마, 어이? 표정 봐라, 씨바······ 놀랐나? 뭐고? 말을 해라, 인마. 뭐고 그 표정은? 놀란 거가, 아님 어이가 없는 거가? 니가 먼저 안 물었나? 맞을래? 그게 니가 지금 씨바 할 소리가? 콱 마 강냉이 다 털어뿔라.”
 “ 이새끼 이거 완전 돌아이 아냐?”
 “잘못 건든 거 같아서 아차 싶으면 그냥 아가리 닫고 절로 가라. 아가리 똥내 풍기지 말고. 보면 모르겠나? 내 진짜 사고칠 수도 있다고. 니도 알겠지만 내 뭐 그리 아쉬운 거 없거든? 우짤래? 지금 사람들 보는 앞에서 사고 한 번 칠까? 같이 경찰서 가? 가서 내가 한번 불어볼까, 니 위장결혼 해서 여기 비자 받아 살고 있다고.”
 
 그날 저녁에 샵 매니저가 형이랑 그 병신같은 놈을 따로 불렀어. 같이 한식당 가서 삼겹살이나 굽자고.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겠지. 아침에 형이랑 그 병신 같은 놈이 한바탕 했었다고.
 참고로 형은 샵 매니저 그 분을 참 좋아해, 인간적으로. 그리고 참 많이 미안하고······ 형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을 참 많이 쓰셨거든, 형이 일하는 동안. 그런데 결국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내 살길 찾아 회사를 떠났으니······ 그래도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나 하나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겠냐, 나 없다고 사람들이 힘들어 하겠어? 그냥 그 순간이야. 그 순간만 서로가 아쉽고 배신감을 느끼는 거야. 그렇다고 그 순간이 두려워서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가지 못한다면 그건 어찌 보면 비겁한 거야, 우리 인생한테.
 
 “너네 둘은 왜 그런 거냐, 요즘?”
 
 답답하셨겠지. 잘 봐. 그 병신같은 국적 매니저는 자신의 오른팔이야. 중국 다음으로 매출이 높은 국적이 바로 한국이란 말이야. 그 국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오른팔이랑, 그 국적의 스트라이커가 만나기만하면 으르렁거리니, 샵 매니저 입장에서는 불안불안한 거야. 둘 다 필요하거든 자기한텐.
 좀 잘 지내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얼마나 답답하셨겠냐. 만약 형이 그 병신이랑 같은 포지션이었다면, 샵 매니저 입장에선 오히려 둘이 으르렁거리면서 경쟁을 하길 은근히 기대하셨을 거야. 하지만 같은 포지션도 아니고, 거기다 형은 거의 신입이나 다름이 없잖아, 계급으로 따지자면. 근데 그 병신이 형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고 다른 직원들 있는 앞에서 웃음거리나 되고 있으니, 샵 매니저 입장에선 얼마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냐?
 이게 또 회사 방침대로 하자면 형을 날릴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회사 안에서 언쟁이라도 매니저한테 대든 거 아니냐. 근데 형이 매출 1위거든 한국팀 안에서. 그러니 날릴 수도 없어요. 그 병신이 어느 정도 세일즈가 된다면 팀 단합, 혹은 단결, 팀웍을 위해서라도 형을 날렸겠지. 근데 그 병신은 판매도 졸라 못해요. 말 그대로 병신이거든.
 
 “매니저님, 제가 뭐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그래. 말해봐.”
 “혹시 매니저님은 여기 이 정매(정 매니저)가 L퍼미션 직원들을 퍼미션을 무기로 협박한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겠지. 그걸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그것만큼 직원들 컨트롤하기에 효과가 좋은 방법이 어딨겠어, 안 그래? 샵 매니저는 말을 못하지, 당연히. 형이 L퍼미션인데, 그 당사자 앞에서 알고 있다고 말하면 속보이고, 몰랐다고 하면 무능력을 인정하는 꼴인데, 뭐라 말을 하겠어?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전 저한테 협박하는 걸로 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말했어요, 구질구질하게 구걸하며 일하느니, 차라리 관두겠다고. 그잖아요! 제가 이 회사에 구걸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 제 몸값을 충분히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전 조금 어이가 없네요. 전 이력서를 낸 적이 없어요, 이 회사에 정직원으로. 아시잖아요, 사장님께서 직접 저 픽업한 거. 근데 왜 제가 퍼미션 때문에 불안해해야 하는 겁니까?”
 “넌 말을 이상하게 자꾸 몰고 간다? 내가 언제 널 협박했냐?”
 “그래서 제가 미리 말했잖아요,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고! 매니저님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너 진짜 웃긴 놈이구나?”
 “지금 제가 웃깁니까? 저 지금 아주 심각한데······ 이상하게 사람을 성격 희한한 놈으로 몰아가는 재주가 있으신데, 그러지 마세요. 직원들 다 바보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L퍼미션 스텝들을 대표해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왜 항상 포인트를 찍으면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리려고 하시는 겁니까? 매니저님, 왜 L퍼미션 스텝들의 생사여탈권이 매니저님이 아닌 여기 정매의 손에 있는 겁니까?”
 “그건 다른 국적도 마찬가지 아니냐.”
 “다른 국적 스텝들은 내년에 온다, 안 온다를 본인이 직접 결정해요. 매니저는 거기에 사인만 받고, 받은 사인으로 대사관가서 비자받아 주는 거, 그게 국적별 매니저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요? 비자를 무기로 스텝들 협박을 하는 게 아니라. 꼭 그 비자를 자기가 내어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낼 자격이 정매한텐 없다 이겁니다! 따지고 보면 비자는 회사가 신청하고 스위스 정부가 내어주는 건데, 왜 생색은 정매가 냅니까? 이거 진짜 웃긴 거 아닙니까?”
 “······.”
 “저희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국적 스텝들처럼. 그렇게 만들어 주세요. 안 그러면 저 불안해서 일 못합니다. 아닌 말로, 저도 이제 곧 장가갈 나이 아닙니까? 이렇게 직장이 불안정해서야 어디 마음 놓고 결혼 계획이라도 세우겠습니까? 한국 스텝들 관리 잘해서 한국 전체 매출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게끔 동기를 부여하고, 컨트롤하는 게 한국 매니저의 역할 아닙니까? 근데 어째서 정매는 L퍼미션 스텝들만 못살게 굽니까? 물어보세요. B퍼미션이나 스위스 여권 가지고 있는 한국 스텝들한테. 그들이 정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냥 애라고 표현해요. 애. 매니저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니까요.”
 
 형 싸가지 진짜 없지? 근데 맞는 말이잖아. 그 일 이후로 형은 한국팀 사이에서 스타됐다. 그 병신은 어떻게 됐냐고? 나갔지. 더 이상 아무도 자기를 안 따르는데, 더 병신 되기 전에 얼른 사라져야지. 뒤에서 누가 짱돌로 찍으면 어떡하냐, 안 그래?
 
 ***
 
 그렇게 병신 같은 한국 매니저가 나갔어.
 그럼 그 자리가 공석이잖아? 대부분의 한국 스텝들이 형이 그 자리에 앉기를 원했어. 특히 L퍼미션 여자 스텝들이. 어쨌거나 걔네들 입장에선 형이 히어로고 형이 조금은 어려웠겠지. 그 병신 같은 한국 매니저가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그 놈한테 휘둘려서 형을 따돌렸는데, 이게 웬걸? 뚜껑을 딱 열었는데, 내가 그 병신을 별 힘 안들이고 밟았네? 애들이 막 그때부터 형한테 사실은 그 놈이 이런이런 말도 막 했어, 참 나쁜 놈이지? 내가 이런 말 해줬으니까, 난 너랑 친구야, 그지? 하면서 다가오는 거야. 걔네가 뭔 죄냐? 그럴 수 있는 거야. 원래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실망스러운 거고, 서글픈 거야. 걔네들을 욕해선 안 돼. 너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공석인 한국 매니저 자리. 당연히 형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 왜 그랬겠냐?
 우선은 윗 사람을 그 윗사람 앞에서 깠어. 샵 매니저 앞에서 그 병신을 졸라리 까서 나가게 만들었단 말이지. 앞에서 내색은 안하셨지만, 샵 매니저 입장에선 형이 그리 고와 보일 순 없었겠지, 상식적으로.
 만약 형이 한국 매니저 자리에 올랐다. 그럼 틀림없이 그 양반 입장에선 형이 총 매니저 앞에서 샵 매니저를 충분히 깔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할 거란 말이지. 거북하시겠지, 형이라는 존재가.
 실력은 좋아. 배짱도 있어. 근데 애가 너무 강해. 그러니까 윗사람 입장에선 조금은 두려울 수도 있는 거야. 그땐 또 형이 너무 어렸어. 그리고 피가 너무 뜨거웠고. 어쨌거나 형은 눈치가 빠르잖아? 그 눈치로 군대 날로 먹었잖아.
 
 “전 플레이어가 적성입니다. 이제 막 물오른 스트라이커한테 코치를 해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잘해낼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제가 만약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면, 틀림없이 한국팀의 매출이 줄 겁니다. 더불어 제 인센티브도 줄어들 게 뻔하구요. 세일즈맨은 세일즈만 해야 됩니다.”
 
 크하······ 샵 매니저 입장에선 얼마나 고마운 소리였겠냐? 직원들이 막 형을 추천해. 물론 매니저라는 타이틀이 스텝들의 추천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매니저가 공석인 상황에선 샵 매니저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그 샵 매니저가 한국인이니까, 한국 스텝들의 의견을 조금은 더 경청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 상황에서 형이 딱 샵 매니저의 우려를 한방에 날려버리니, 샵 매니저 입장에선 스텝들의 의견을 존중, 반영해서 형한테 기회를 준 열린 경영을 보여준 거고, 그 기회를 형이 안 잡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으니, 그 분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은 거지.
 거듭 말하지만, 형은 그 분을 참 좋아했어. 배운 것도 많고. 그런 분한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그해 계약기간이 다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주일 전에 샵 매니저가 형을 부르는 거야.
 
 “이번에 한국 피알을 네가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원래 담당자가 사직을 해서 그 자리가 공석이잖아. 시기도 마침 네가 한국 들어가 있을 때랑 겹치고.”
 “저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별 거 없어. 원래 폼이 다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진행하면 되고, 여행사 소속, 무소속 가이드랑 티씨들 연락처는 내가 들고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되는 거고. 어때? 한 번 해볼래?”
 
 이 피알이라는 게 말 그대로 회사 홍보를 여행사와 가이드들에게 하는 건데, 국가별로 1년에 예산이 3만 프랑, 한국 돈으로 3천5,6백만 원 정도가 나와. 그걸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서 여행사 사람들, 가이드들을 초대해서 저녁먹이고, 시계 몇 개 가져가서 경품으로 주기도 하면서 올 한 해 참 감사했다. 내년 한 해도 잘 부탁한다 하는 식으로 접대를 하는 거란 말이야.
 의례적인 행사이긴 한데, 그래도 형이 그걸 어떻게 하는지 알 방법이 없잖아. 샵 매니저는 별 거 없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형 입장에선 기회라기 보단, 귀찮은 일이었거든. 우리 또 놀기 좋아하잖아. 근데 계약 기간도 아닌데, 그걸 맡아서 하려니까 기분이 좀 그런 거야. 그래도 어떻게 해? 좋아하는 사람이 기회라면서 한 번 해보라는데. 웃는 얼굴로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지. 기왕에 하는 거면 웃는 얼굴로 해주는 게, 시키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 좋은 거 아니겠냐?
 
 그렇게 3만 프랑을 들고 한국에 갔다? 자, 지금부터 이 3만 프랑으로 최고의 가성비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잖아. 일단 함께 그 일을 진행하게 된 보조 스텝 하나한테 물어봤지. 작년엔 어떻게 했었냐고. 관광호텔 연회장을 하나 빌려서 뷔폐로 저녁 대접하고, 스위스에서 경품으로 가져온 시계들을 추첨을 통해 나눠주는 게 끝이었다고 하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한국 돈 3천만 원이 넘는 그 액수로 고작 관광호텔 뷔폐로 저녁을 먹이고 경품 돌린 게 전부라고?
 
 몇 명이나 왔느냐고 물어봤어. 백 명 정도가 왔다고 해. 이건 진짜 말이 안 돼. 인당 많이 잡아 5만 원이라고 치자고. 관광호텔 뷔페 5만 원이면 비싼 거야. 인심 써서 5만 원을 매긴 거지, 사실 3만5천 원도 충분해. 어쨌든. 5만 원에 백 명이면 5백이잖아. 거기다 경품은 다 회사에서 협찬했으니 당연히 비용에서 제외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진짜 그게 끝이라면, 도대체 얼마를 삥땅친 겁니까?”
 “그게······ 하아······ 쓰읍······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는 말이 한국 매니저가 3만 프랑을 받아와서 실질적으로 공식 행사에 쓰는 돈은 거의 없고 나머지는 대부분 남자 가이드들을 룸살롱 같은데 데리고 가서 접대 하는데 썼다는 거야.
 
 “그래도 말이 안 되죠. 룸살롱을 도대체 몇 번을 갔길래, 아니, 얼마나 비싼 걸 마시고, 몇 명을 데리고 갔길래 3천을 다 쓴단 말입니까?”
 
 그제야 하는 말이 행사 때마다 한국 매니저는 천만 원 이상, 그 보조를 온 스텝들 역시 몇 백씩 삥땅을 쳤단다. 그리고 샵 매니저도 한국 매니저일 당시에 그리 했었기에 지금은 그저 묵인을 해주는 거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는데, 참 모자란 놈들이란 생각밖에 안 드는 거야, 형 입장에선.
 그 3만 프랑, 그게 뭐시라고 거기에 자존심과 가능성을 팔 수가 있는지 형은 정말 이해가 안됐어. 물론 뭐 이해를 해 줄 가치도 없는 놈한테 실망을 한 형도 참 어렸고, 멍청했던 거지. 아무튼 그때 정말 화가 많이 났던 거 같다. 생각을 해보니까 그 3만 프랑이라는 돈은 눈 먼 돈이었던 거야. 왓치 비즈니스에서 3만 프랑은 사실 정말 돈이 아니거든.
 자, 가이드들 커미션이 10%야. 손님을 데리고 와서 시계 천만 원짜리 하나 사면 회사가 가이드한테 백만 원을 커미션으로 주거든. 근데 잘 봐. 예전에 형이 한 손님한테 12억치 팔았다고 했지? 그럼 그 가이드는 커미션으로 도대체 얼마를 가져간 거야?
 이제 대충 감이 오지? 3만 프랑은 회사 입장에서 그냥 너희끼리 알아서 잘 즐기세요. 하는 눈먼 돈이란 말이지. 스위스 사람이 한국 계산 명세서를 어떻게 확인하겠니? 또 얼마나 큰돈이라고 그걸 일일이 확인하고 앉아있겠어?
 샵 매니저의 의도는 아직도 미스테리야. 형의 퀄리티를 실험해보고 싶었던 건지, 아님 그냥 용돈이나 하라고 챙겨주셨던 건지. 하지만 형은 갑바가 있어서 그 돈 내 주머니에 넣고 싶지 않더라. 쪽팔리잖아, 그 얼마나 큰 돈이라고······.
 바로 5성급 호텔 대연회장 예약 잡고 얼마나 올지도 모르면서 150명 스테이크 코스로 예약을 했어. 테이블에 회사 이미지도 있고 하니까 대중적인 건 좀 그렇고 괜찮은 와인 2병씩 깔아서 세팅을 끝내니까 그게 벌써 2천만 원이야. 생각보단 적게 나왔어, 솔직히. 형이 그 당시 호텔 연회장을 빌려서 행사를 맡아 해 볼 기회가 있었겠냐? 그냥 막연히 5성급 호텔 연회는 비싸다 하는 정도만 알지, 구체적으로 얼마가 드는지는 몰랐지. 근데 이게 막상 지르니까 생각보단 비용이 적은 거야. 물론 2천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래도 회사가 준 예산에선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잖아.
 
 “작년에 행사 마치고 얼마씩 삥땅 치셨어요?”
 “200씩.”
 
 세 명. 두당 200씩 줬지. 대신 최선을 다하라고 안 그럼 내년엔 국물도 없을 거라고 얼음장을 놓고 말이야. 그래도 천 만원이 남아.
 욕심을 버리잖아? 그럼 뭐가 더 생겨. 희한하지. 그게 인생인 거 같애.
 형 말 잘하잖아. 형이 직접 사회 봤어. 작년엔 어디 어설픈 사회를 불러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던데, 그럴 필요성을 못느끼겠는 거야. 내가 회사 직원인데, 우리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회사 홍보를 맡긴다? 말이 안 되지. 형이 직접 행사 진행부터, 사회까지 다 맡아서 완전 대박을 쳤다는 거 아냐.
 그리고 2차를 갔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스무 명 정도가 2차를 가겠다는 거야. 작년하고 다르게 룸살롱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저씨들은 쫘악 빠졌고, 가정 있는 아줌마들도 다 빠졌어. 이제 젊은 남녀들만 2차를 가게 된 거야.
 형이 말로 그냥 다 조져놓은 상태였어. 그쯤 되면 나 오늘 집에 안 갈래요, 하는 여자들이 분명 나온단 말이지. 그런 애들이 한 세넷 정도 보였어. 둘은 완전 때리고 싶게 생겼고, 하나는 그러지 마라 정도? 그리고 하나가 괜찮았어. 오케이 오늘 넌 천국을 구경하게 될 거다!
 
 아까 천만 원이 남았다고 했잖아. 형이 그 천만 원을 어떻게 썼을 거 같아?
 2차를 따라온 젊은 가이드들. 가이드는 사실 우리 입장에선 직접 시계를 구입하는 손님보다 더 중요한 손님이야. 그렇다고 돈으로 줄 수는 없잖아.
 약속을 했어, 걔네들한테. 이미 우린 2차에서 형동생, 누나오빠 사이가 된 이후라서 제대로 고객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단 말이지.
 
 “제가 3월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손님들 좀 몰아주세요, 저한테.”
 “아이, 그럼! 당연하지. 그런 걱정은 하덜 말라고! 지금부터 땡땡투어 손님은 다 우리 동생 꺼야!”
 “어디투어도 그렇게 하는 걸로!”
 “제가 뇌물을 좀 했으면 싶은데······.”
 “뇌물? 그거 아주 아름다운 단어네? 돈으로 주려나?”
 “아뇨, 시계를 하나씩 선물해 드릴게요. 한 100만 원대? 제 예산이 그것밖에 안되네요.”
 
 이게 사실은 이런 거야. 시계 마진이 50%야. 그러니까 100만 원짜리를 회사는 50만 원에 사온단 말이지. 거기서 할인을 최대 8%까지 해줘. 물론 브랜드마다 마진이 다 다르니까 할인도 다 달라. 까르띠X 같은 경우는 마진이 쓰레기라서 할인이 최대 3%야. 아무튼 대충 그런데, 할인을 해주고 거기에 면세를 다시 해줘. 그러면 결국 100만 원짜리를 85만원에 판다는 결론인데, 거기에 가이드 10% 커미션을 주잖아? 그럼 결국 회사는 100만 원짜리를 50만 원에 사와서 76만원에 파는 거야. 대충 계산이 그래. 면세법 적용시키면. 그러면 26만원이 남는 거잖아? 거기서 직원들 월급주고 뭐하고, 뭐하고······ 그렇게 하는 거란 말이지.
 그런데 만약에 직원이 사잖아, 그러면 소비자 가격에서 40% 할인을 받을 수가 있어. 1년에 직원이 구입할 수 있는 갯수가 제한이 되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샵 매니저의 재량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을 했던 거지.
 그래서 남은 돈으로 이리저리 가격 맞춰서, 2차까지 같이 간 가이드들한테 3월에 해밀X 시계 하나씩 다 돌렸어.
 그랬더니, 걔네들이 그 이후로 정말 미친 듯이 손님들을 형한테 데리고 오는 거야. 그 해 형이 인센티브로 얼마를 땡겼겠냐? 그 인센티브랑 고작 그 3만프랑이 비교나 되겠냐?
 그리고 봐, 통크게 노니까, 그날 밤도 가이드 하나가 나 오늘 완전 한가하다고 하잖아.
 
 
 # 인하신공
 
 형이 스위스 생활 3년차 때 한국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잡았어.
 사장이 직접 형한테 그 타이틀을 준거라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
 그리고 당연히 그 타이틀을 형도 기다리고 있었고. 왜냐면 계약직인 L퍼미션을 가지고 무슨 매니지먼트를 하겠어? 1년에 두 달을 회사 밖에서 놀아야 하는 사람이 매니저? 말이 안 되지.
 회사가 형 B퍼미션을 신청해준 거야. 이례적인 사건이지. 회사 입사 3년 만에 B퍼미션을 받은 사람은 단언컨대 형이 처음이고, 그 기록은 깨어질 수 없는 거야.
 운도 필요해. 근데 그 운은 준비 없는 사람한테는 절대 가지 않는 거야.
 형이 시계를 미친 듯이 팔았으니 가능한 거 아니었겠니? 회사 입장에선 형을 잡아야 했던 거야.
 형 판매 순위는 항상 탑 5였어. 전체에서. 근데 사실은 이게 탑이나 마찬가지야.
 
 잘 들어봐.
 그 당시 국적 별로보면, 전체 매출은 중국이 항상 부동의 1위야. 전체 매출의 3,40%가 중국이란 말이지. 아무도 깰 수가 없어. 그들의 소비욕구는 단언컨대 우주최강이야. 일단 손님들 대부분이 군인 아니면 공무원이야.
 그 당시, 2008, 2009년 당시 말이야. 지금은 여행 규제가 까탈스럽지 않아서 일반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유럽여행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중국은 여행 규제가 상당히 엄격했단 말이야.
 우린 한국 여권을 가진 걸 하늘에 감사해야 돼. 중국 여권은 어딜 나갈래도 비자 받고 하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거든.
 그러다보니까 그 당시에 막 베이징 올림픽 하고, 끝나고 중국경제 미친듯이 폭등하고······ 그 와중에 유럽여행을 하는 중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고위 군인 장교거나 고위 공무원, 그 가족들이었는데, 지금이야 중국이 터프하게 국정을 운영해서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부정부패가 어마어마했어.
 한번은 중국 손님 중에 이런 손님이 있었어.
 등산 가방을 매고 왔는데, 시계를 하나 사면서 그 가방을 연거야. 형 이거 허풍 아니다. 실제로 본 장면이야.
 그 배낭 안에 천 프랑짜리가 가득 들어있는 거야. 천 프랑이면 한국 돈 백만 원이 넘는 거야. 그게 다 얼마냐? 나중에 그 손님 나가고 그 손님 서빙한 중국 스텝한테 물어봤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시장 정도 파워를 가진 공무원의 비서다 이거야. 그 시장이 원하는 시계를 대신 사러 온 거야. 그 돈은 당연히 중국 국고겠지? 그런 식이야.
 그러니 중국 스텝들은 판매 순위에서 제외를 시켜야 돼. 형이 그 중국 스텝 1,2,3,4, 다음이었으니까, 이게 따지고 보면 세일즈 탑이나 마찬가지인거야.
 
 형이 그렇게 미친듯이 팔아재끼면서 한국 매출을 막 올릴 때였어. 가이드 입장에서도 고맙지, 형이.
 왜? 일단 손님을 데리고만 가면, 손님이 얼마짜리를 원하든, 무조건 업세일을 해서 더블 가격의 시계를 팔아주거든. 그럼 형만 인센티브를 받나? 아니지, 형 인센티브는 가이드들 커미션에 비하면 세발의 피지. 걔네들은 앞에서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판매금액의 10%를 커미션으로 가져가잖아.
 형이 사고쳐서 한 손님한테 1억치를 팔면, 걔네들은 그냥 손님 데려다주고 천만 원을 버는 거야. 걔네들 입장에선 형이 얼마나 고맙고 예쁘겠냐? 거기다 서글서글하게 말도 예쁘게 해, 예의도 발라······ 거기다 B퍼미션에 나이도 아직 서른이 안됐어.
 젊은 여자가이드들 사이에서 인기 많았지, 형.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박 가이드 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왜 이렇게 뜸했어요,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한 몇 달 쉬었어요. 그 사이 인물은 더 좋아지셨네?”
 “아팠다는 사람이 얼굴은 더 젊어지셨고. 근데 시집 안가요?”
 
 막 그러면서 손님 앞에다 두고 우리끼리 연기를 하는 거야. 손님 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시계 파는 건 그닥 안중에 없다, 이거지. 그래야 손님도 내가 낸데 하면서 슬슬 약이 오르거든.
 
 “여기 사모님이 사장님 시계를 하나 보고 계세요. 뭐? 쇼파X? 서 매니저님 쇼파X 보고 싶으시대. 사모님이.”
 “뭐 보신 모델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냥 그 브랜드가 요즘 인기가 있다길래, 구경이나 좀 해보려고요.”
 “사모님이 하실 게 아니고 사장님께서 하실 건데, 쇼파X는 좀 너무 블링블링하지 않나요? 이게 쇼파X가 시계 브랜드가 아니에요. 원래는 보석 브랜드인데, 갑자기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해서 한국에 누구지? 누구 영화배우 결혼할 때 예물로 하는 바람에 뜨면 안 될 것이 뜬 건데, 으음······ 실례가 안 된다면 사장님 연세가 어느 정도 되세요?”
 “육십. 내일 모레 육십이에요.”
 “아이고, 사모님. 그럼 안 된다. 쇼파X는 너무 소녀틱해, 디자인이. 제가 얼마 전에 한국 들어가면서 저희 아버지 시계를 하나 큰 마음먹고 사다드렸어요, 여기 이 브랜드 한번 보세요. 저희 아버지가 상당히 스타일리쉬 하세요. 그래서 롤렉X, 오메X 이런 걸 혐오하시거든요. 촌스럽다고. 근데 제가 이걸 딱 사다드리니까, 스윽 웃으시더라고. 저 발음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산 사람이거든요. 저희 아버지 전형적인 부산 분이신데, 부산 남자 표현을 잘 안하잖아요. 근데도 스윽 웃으시더라고.”
 “이건 얼마에요?”
 “할인 받고, 면세 하고······ 한국 돈 구백만 원 조금 안되네요.”
 
 처음엔 원래 다운 세일을 해야 돼. 그래야 상대가 조금 기분이 언짢단 말이야. 내가 그 정도 밖에 안보이나? 내가 분명히 쇼파X를 보겠다고 했는데, 왜 그 밑에 단계를 보여주지? 이런 약간 의아한 느낌을 받게끔.
 
 “아니면 여기 브레X를 한 번 보세요. 올해 모델이 참 잘 나왔어요. 이건 한국에서도 구입이 안돼요. 무엇보다 사업하시는 분들, 사장님 혹시 골프 치세요?”
 “종종 치죠.”
 “사실 골프 치시는 분들 이야기 할 게 많지 않잖아요. 시계 이야기로 넘어가면 브레X만큼 자신감 올릴 수 있는 브랜드도 없죠. 파텍 필X은 너무 상징적이고, 브레X가 딱 젊은 느낌 들면서, 역사도 있고, 가치도 있고······ 세계 삼 대 브랜드 아닙니까. 제가 한 번 차 봐드려요?”
 
 이제 이런 식으로 서빙을 진행하면서 2천만 원짜리 손님을 최소 3천까지 끌고 가는 거야. 그러면 도대체 가이드는 형한테 손님하나 데리고 와서 얼마를 가져 가냐? 형한테 저녁 한 끼 사도 되잖아, 그 정도면.
 대부분의 가이드들이 형이 소소하게 팔아주면 저녁이나 커피를 사줘. 그럼 형은 거절을 잘 안 해. 얼굴이 박살이건 괜찮건 가급적이면 무조건 가. 이게 개인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업무의 연속이거든. 그런 뉘앙스를 그 무리한테 주는 거지. 이게 아주 중요한 작업이야. 앞으로도 부탁드린다, 손님 좀 많이 데리고 와 달라. 다른 매장보단, 내가 있는 이 매장으로······ 이런 뉘앙스지.
 근데 남자들이 대가리 총맞았다고 형한테 저녁 먹자고 하겠냐? 대부분이 젊은 아가씨들이란 말이지.
 그럼 형은 당연히 오케이지.
 얻어만 먹을 수 있냐? 저녁을 그 쪽에서 샀으면, 하다못해 형이 와인 정도는 대접을 해야지.
 그러다보니 형은 대부분의 얼굴 반반한 싱글 가이드들이랑 저녁 먹고, 와인 먹고, 19금을 가고 그랬던 거야.
 얼마나 외롭겠냐? 그리고 약한 여자 몸으로 여행 가이드가 쉬운 일이니? 빡세단 말이야. 거기에 형은 한줄기 시원한 빗줄기가 되어주려고 노력을 했단 말이지, 진심으로. 때론 오빠로, 때론 동생으로, 또 때론 19금 파트너로.
 당연히 소문 같은 건 날 이유가 없지.
 왜? 가이드라는 직업 자체가 거의 개인업자인데, 뭣하러 스스로 남들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까발리겠냐? 그리고 우린 어른이잖아.
 세련된 시간을 함께 보냈단 말이지. 파트너쉽으로. 그게 일이든 잠자리든.
 
 
 # 쥴리
 
 그러다 2010년이 딱 됐어. 2010년은 형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등장해.
 바로 쥴리를 만나게 돼. 그 해 가을에.
 쥴리를 소개하기 전에 2010 스위스 시계 업계에 대해서 먼저 짧게 설명을 해줘야 할 거 같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중국이 미쳤어. 이건 뭐 굳이 길게 설명 안 해도, 중국 애들의 소비파워는 다 알고 있잖아.
 근데, 스위스 시계 업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 애들 때문에 호황이었어.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대략 한 600개 정도 돼. 이건 말 그대로 대략적인 거야.
 근데 2010년에 새로 등장한 시계 브랜드가 200종류가 된다고 보면 대충 맞을 거야.
 무슨 말이냐, 중국 사람들은 브랜드를 몰라. 웃기지? 롤렉X 앞에서 롤렉X가 어딨냐고 찾았었어, 그 당시에. 웃기려고 하는 말 아냐. 지금은 중국이 급속도로 발전을 해서, 많이 변했는데, 2010년 경제가 막 미친 듯이 발전하는 그 사이에 유럽여행을 오는 중국 손님들 대부분이 영어를 못 읽는 거야. 얘네들은 자기 문자에 대해 자부심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 우리가 세계의 중심인데! 뭐 이런 느낌 아닐까?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의 이름이 있어. 예를 들어 롤렉X를 ‘롤리슈으’라고 발음 한다거나, 오메X를 ‘오미자’, 바쉐론 콘스탄X을 ‘장스탄툰’이라고 읽는 거야.
 쉽게 이해가 안 되지? 가령 이런 거야. 스타벅X를 중국 사람들은 ‘신바크’라고 발음해. 실제로 그걸 영문 로고 밑에 한문으로 ‘신바크’라고 따로 자기들끼리 만든 발음을 붙여서 사람들이 읽어.
 이건 실제로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일을 하거나, 중국 현지에 살아봐야 돼. 그래야 이해가 빨라.
 아무튼 그렇다 보니까, 중국 사람들은 롤렉X가 좋다는 건 알아도, 뭐가 롤렉X인지를 잘 모르는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다, 헷갈리지 마라.
 근데 이 사람들이 구매력이 쩌는 거야. 그 당시 유럽 여행을 할 정도의 중국인이면 그래도 좀 산다는 양반들 아니겠냐? 그때까지 중국은 개인 자유 여행이 안됐어. 무조건 그룹. 여행사 통해서 최소 4,50명 씩 여행을 한다는 허가를 받아야, 유럽에 들어 올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었거든. 그러니 보기에는 시골 사람 같아 보이고, 농부같아 보여도 알고 보면 다들 재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란 말이지. 그 뉴스 같은데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줌마, 아저씨들 있지? 옷 이상하게 입은. 나름대로 멋은 부렸는데, 정말 촌스러운. 근데 그 사람들이 다들 방귀 꽤나 뀌는 사람들이었어, 그 당시에.
 그 사람들이 놀랍게도 가이드 말이라면 끔뻑 죽는 거야. 왜? 첫째 영어가 안 되잖아. 당시엔 스마트 폰이 지금처럼 어딜 가더라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그랬을 때가 아니었어요. 어플도 그리 많이 개발되지가 않았었고. 그 사람들한테 가이드는 선생님 같은 존재였을 거야. 가이드가 이거 사라, 좋다하면 그걸 정말 막 긁어가. 가이드가 저긴 가지마라, 안 좋다 하면 또 거긴 안 가. 그러니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중국 가이드의 파워가 얼마나 컸겠냐?
 손님이 가이드한테 물어봐. 롤렉X를 사고 싶다고. 근데 가이드가 정색하면서, 거지냐? 왜 롤렉X처럼 싼 걸 사? 저거 사 저거. 파텍 필X. 세계 최고 브랜드야!
 이 한 마디면 그 날 파텍 필X은 농담 아니고 다 털리는 거야. 그 정도로 막무가내식 소비를 했단 말이지.
 한 손님이 1억치 사는 건 그냥 나이X 운동화 하나 나가듯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어.
 
 이쯤 되니까,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들이 또 대우를 받게 되더라고. 스위스에 살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 당시만 해도 그리 많지가 않았어. 그러다보니까, 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지. 얼마나 많은 중국 스텝을 보유하느냐가 매출을 결정지을 정도였으니까.
 중국 손님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점잖아. 이 사람들은 체면을 아주 중요시 여겨. 배우고 있다는 사람들은. 그러니 스텝 하나가 달라붙어서 아주 예의 바르게 사근사근 서빙을 하면, 그 체면 때문에라도 구입을 하는 거야. 원래 중국이란 나라가 서비스 개념이 아주 꽝인 나라거든. 근데 스위스에서 한국, 일본 스텝들이랑 함께 일하는 중국애들은 그 서비스 개념을 한국이나 일본 스텝들한테 배워서 아주 프로페셔널했어.
 결국은 어떤 현상이 2010년에 벌어지느냐. 손님들이 브랜드 때문에 시계를 사는 게 아니라는 우스운 결과가 나와 버려. 보통 럭셔리 비즈니스라는 게 그 브랜드의 역사나 이미지, 네임벨류 때문에 사람들이 허영심을 앞세워 지르는 거잖아.
 근데, 그걸 중국 사람들이 깨부순 거야. 2010년에. 물론 그 이후론 바뀌었어. 그들도 차츰 브랜드에 눈을 뜨기 시작했거든.
 그러다보니, 그 당시에 시계 브랜드들이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름으로 참 많이 론칭을 했었어.
 
 형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중국어 가능한 스텝들을 뽑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게 안 되니까, 형처럼 스위스 호텔 학교에서 중국학생, 대만학생, 홍콩, 마카오 학생 등 만다린이 가능한 중국 학생들을 대거 인턴으로 고용을 한 거야. 다른 방법이 없었어.
 그 해 중국 매출이 처음으로 전 매출의 50%를 훌쩍 넘겼으니. 근데 그 50%가 넘었다는 게 전년 총 매출 대비가 아냐. 중국이 너무 크게 치고 오르니까, 덩달아 한국, 태국도 치고 올라서 회사 총 매출이 전년 대비 100%가 오른 상황이었어.
 그 해 형 인센티브 정말 작살이었다. 형뿐만이 아니었어. 모두가 행복한 비명을 내지른 한 해였어.
 오죽하면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겠냐? 진짜 물건이 딱 동이 나버리는 거야. 중국 사람들 이거 10개 줘! 뭐 대충 이런 식이거든.
 한국은 그 전부터 학생 인턴들이 필요했었어. 왜냐면 한국 손님들은 대체적으로 우리가 어데 남이가 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학생이라고 하면 거기에 마음이 짠해서 안 살 거 하나 사고, 왜? 집에 아들, 딸 생각 나시거든. 그리고 또 멀리 타국에서 만난 한국 직원이 얼마나 반갑겠냐? 근데 중국은 그게 아니었어, 최소 2010년 전까지는.
 
 손님들이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고위 공무원, 군인들이란 말이야. 그 사람들을 서비스 할 만한 레벨이 되는 경력있는 스텝들이 꼭 필요했단 말이지. 중국 한 손님이 한국 한 그룹의 매출보다 더 올릴 때도 많았으니까, 걔네들은 한 손님, 한 손님에 정말 VIP서비스가 들어갔어야 돼. 근데 2010년 뚜껑을 딱 열었는데, 상황이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지.
 형네 회사에서 처음으로 중국 학생 인턴을 고용한 거야. 그것도 대거 10명을.
 쥴리는 바로 그 10명 중 하나였고.
 
 음······ 처음 쥴리를 봤을 때 형의 솔직한 심정이 어땠냐면, 저건 뭐지? 였어.
 저건 뭐지?
 
 임청X 좋아하냐? 동방불패에서 빨간색 이상한 옷 입고 배 위에서 술병 기울이는 모습 혹시 기억해? 오······ 형은 그날 진심 순간적으로 임청X의 리즈시절을 보는 착각에 빠졌어. 쥴리를 통해서.
 애가 머리가 짧은 쇼트커트였어. 귀를 다 드러내는 머리.
 아주 강한 인상이었는데, 그 안에 소녀? 혹은 소년같은 느낌도 가득 들어가 있고, 수줍은 듯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가 감히 형을 설레게 하는 거야.
 형 예쁜 거 좋아한다고 몇 번 말했잖아.
 근데 이건 그 예쁜 거랑은 느낌이 조금 다른 거야. 위협적이라고 해야 되나?
 형이 그간 수많은 여자들, 특히 예쁜 여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작업도 던져보고 놀아도 봤지만, 그 중엔 사실 연예인도 두 명 포함이 돼. 암튼 근데 쥴리는 형이 실제로 본 여자 사람 중에 정말 어디 비교할 상대가 없을 만큼 예쁜 거야.
 이런 느낌, 정말 고등학교 수학책 앞에서 느껴보고 처음이었다.
 형 여자 앞에서 안 떨거든. 떨 수가 없지. 왜? 여자를 좋아하니까. 넌 좋아하는 거 앞에 놓고 떠냐? 뭐 너무 좋아서 흥분은 될 수 있지. 하지만 진짜 긴장이 돼서 떨지는 안잖아. 근데 형은 긴장이 되어서 떨리더라.
 성격도 완전 화끈해.
 풍기는 분위기가 뭐랄까, 딱 봐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더라고. 고급지다는 표현도 괜찮은데, 그 보다는 가정교육을 잘 받고, 뭘 아는 애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거 같애. 학생인데, 그 포스가 절대 학생의 포스가 아닌 거야.
 형이 묘사를 못해서 그냥 임청X 닮았다고 하는 게 아냐.
 설원에 덮인 융프라우, 그 차가운 한기가 그를 둘러싼 물안개 속에서 더 차디차게 피어오르니, 그 한기를 머금은 듯한 눈망울, 그리고 도톰한 입술 사이에 솟아오른 콧등은 그녀의 고집을 어쩌면 순수하게 만들어 놓았다······.
 묘사 하라면 하지. 근데, 쥴리의 첫인상은 저런 쓰잘데기 없는 묘사가 필요 없어. 그냥 리즈시절 임청X였다니까!
 형 임청X 진짜 좋아하거든. 다들 마음속에 자신만의 이상형 스타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잖아?
 형한테는 그게 김희X이랑 임청X야.
 그래서 그런지 진짜 쥴리 앞에서 형이 떨고 있는 거야.
 사실 아무것도 아니잖아, 형 입장에선. 형은 그래도 명색이 한국 매니저고, 쥴리는 고작 인턴인데, 형이 쫄 필요가 전혀 없는 거야.
 나이도 형보다 5살이나 어려. 근데 주눅이 드는 거지.
 우린 이걸 카리스마라고 하는 거야.
 우와······ 그 카리스마가 쥴리를 더 섹시하게 만들더라.
 이건 뭐 작업을 해? 말어? 뭐 그런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다하는 순수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더라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학교에서도 아시아, 유러피안 가릴 것 없이 쥴리는 퀸카였대. 당연하겠지. 시중에선 찾을 수 없는 물건이었어, 쥴리는.
 그때만 해도 형은 전혀 몰랐다. 쥴리의 백그라운드를. 이건 형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야. 사랑이 먼저였어.
 하지만 이런 건 있었던 거 같애. 솔까말.
 그 당시 쥴리는 코넬에서 4년 호텔 공부를 하고, 스위스 호텔 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상황이었어.
 그 당시 유학을 할 정도면 중국에서 잘 산다는 말이었어. 그냥 좀 산다가 아니라, 잘 산다는 개념이었을 거야, 분명. 그러니 뭐 이제 고작 스물넷 된 애가 명품 가방을 매고 출근을 했겠지?
 형이 얼마나 쥴리 앞에서 긴장을 했었냐면, 처음 며칠간 쥴리가 매고 다니는 가방 브랜드도 스캔을 할 엄두를 못낼 정도였어. 그 정도 아우라가 있었어, 쥴리는.
 보통 형은 여자를 볼 때, 스캔을 해.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 취향을 눈치채려고 브랜드나 아님 색깔, 디자인을 유심히 본단 말이야. 그래서 가급적이면 외모보다는 그 악세사리 혹은 패션, 가방 뭐 이런 걸 칭찬을 해줘. 그럼 여자애들이 자기가 신경쓴 걸 인정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거든.
 그건 형한테 버릇이야, 스캔을 하는 건.
 근데 그걸 며칠동안 못했다면 말 다한 거 아니겠냐?
 
 <『장인이 돈이 많아요』 1-2권에 계속>

댓글(6)

준이아빵    
장인이 니친구냐?
2017.09.26 09:14
반길    
이거 전에 다른 제목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2017.12.14 02:40
재밌는거만    
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3자입장에서 풀어가는 내용인데 정말 글을 못쓴다 이건 못쓰는 정도가 아니라 이해력 수준이 초딩급임 거의 투명드래곤급
2017.12.14 03:07
g3*************    
이건 머지...
2017.12.14 18:55
핀네스    
김희애냐 선이냐?
2018.06.26 08:51
sa****    
작품소개부터 좀 난잡할거같았는데..한번 봐봅니다
2020.01.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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