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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전설 1

2017.10.19 조회 467 추천 2


 신룡전설 1권
 
 
 
 제1장 용을 잡아야 하는 어부(漁夫)!
 
 
 촤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 물속에서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거대한 괴생물체! 아니, 물고기!
 슈아아앙-!
 퍽!
 수면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의 왕방울만 한 눈두덩을 꿰뚫고 지나가는 한 자루의 투박한 나무 창.
 “차아아앗-!”
 우렁찬 기합소리가 허공을 흔든다.
 후우우웅-!
 파란 물결이 허공에 출렁거림과 동시에 수면 위로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다시금 수면 아래로 들어가려는 물고기는 꼬리를 잡아챈 강력한 힘에 당겨져 딱딱하기만 한 대지 위로 사정없이 패대기쳐졌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에 패대기쳐진 물고기의 거대한 몸집이 하늘로 떠올랐다. 아니, 떠오르려던 물고기의 꼬리가 다시금 강력한 힘에 붙잡혔고, 곧바로 또다시 사정없이 대지 위로 패대기쳐졌다.
 쿵!
 “으라차차-!”
 쿵!
 물고기가 땅에 패대기쳐질 적마다 땅이 움푹! 움푹! 파였다.
 펄떡! 펄떡!
 물고기는 어떻게든 파란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핏물을 사방으로 뿌리면서도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지만, 꼬리를 잡고 있는 강력한 힘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마지막!”
 쿠웅-!
 뽀얗게 피어나는 먼지 구름.
 대지를 뒤흔드는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거대한 물고기는 땅속 깊숙이 처박혀 아주 살짝 몸을 떨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족히 3장(1장=3m)은 될 법한, 무시무시하도록 거대한 괴물 물고기!
 탁탁!
 가볍게 손을 턴다.
 그런데······.
 3장이나 되는 괴물 물고기를 강력한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땅바닥에 패대기친 손치고는 너무나도 작고 하얗다. 또한 가느다랗고 아름답다! 마치 여인의 그것과도 같다.
 반짝!
 햇볕에 반짝이는 한 자루의 소도가 물고기의 배를 시원스럽게 가르고 지나갔다.
 쭈우우욱!
 콰르르르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물고기임을 생각하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대지를 뒤덮을 듯이 쏟아져 나오는 내장과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피.
 툭.
 내장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번뜩이는 작은 구슬.
 작은 구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작은 손의 주인은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또 암놈이네? 어떻게 된 게 이놈의 것들은 잡히는 것마다 죄다 암놈이지? 빨리 깊숙이 숨어 있는 수놈을 잡아서 이놈들의 씨를 말려버려야 하는데. 쳇!”
 작은 손의 주인은 파란 물속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작은 구슬을 집어 들었다.
 스윽스윽.
 작은 구슬에 묻은 핏물을 넝마나 다름없는 옷에 대충 닦아내곤 그대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꿀꺽!
 “으음······.”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는 듯한 강력한 열기!
 “으··· 이번 알은 뜨거운 알이군······.”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열기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작은 손의 주인은 약 반 시진이 지난 후에야 ‘후우~!’ 하는 긴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털썩.
 
 ‘이놈들은 번식력이 엄청난 놈들이다! 가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놈들부터 씨를 말려야 한다! 물고기는 알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알은 먹어 없애야 한다! 그리고··· 조부님들도 잡아보지 못한 수놈을 네가 꼭 잡아야 한다!’
 
 “아버지! 제가 꼭 수놈을 잡겠습니다!”
 호기롭게 외친 작은 손의 주인은 이내 작은 소도를 쥐고 물고기의 비늘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스윽스윽. 사삭!
 능숙하게 물고기의 비늘을 벗겨내곤,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하얀 살결은 적당하게 잘라낸 작은 손의 주인은 한 덩어리를 우물거리며 나머지 물고기의 살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 아무 곳에나 툭툭! 던져놓았다.
 3장이나 되는 거대한 물고기가 뼈밖에 남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아~ 이제야 끝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드는 작은 손의 주인.
 그는 언제 빼냈을지 모를 투박한 나무 창을 한 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파란 물을 뚫어져라 노려보기 시작했다.
 “······.”
 거대 물고기가 뛰어오른 파란 물 주변은 짙은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눈을 따갑게 만드는 햇볕이 사방을 내려쬐고 있었다.
 기이할 뿐이다.
 촤아악-!
 파란 물속에서 다시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조금 전 작은 손의 주인이 잡은 거대 물고기보다는 작았지만 족히 1장은 될 법한 물고기였다. 역시 크기로 따지면 엄청난 크기임엔 분명했다.
 첨벙!
 물고기가 한차례 재주를 부리곤 수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촤아악!
 또다시 비슷한 크기의 물고기가 수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여전히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회전시키는 것으로 재주를 뽐내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첨벙!
 촤아악!
 첨벙!
 촤아악!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파란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쉬지 않고 튀어 올랐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크기는 1장보다 조금 작던가, 약간 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작은 손의 주인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송사리가 많네.”
 송사리······.
 크기 1장의 송사리······.
 
 ***
 
 여름이었다.
 볕이 너무나도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날도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자식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서 바다로 나갔다.
 어머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쉴 틈이 없었다.
 병이 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최대한 어머님의 삶을 연장시키고 싶었다. 약값은 너무나도 비쌌지만, 그렇다고 끊을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약값을 벌기 위해서 나는 바다로 나갔고, 일을 했다.
 내가 막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런 장대비가 내렸다.
 장대비 속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바다를, 온 하늘을 뒤덮었다.
 콰르르르릉-!!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천둥이······.
 번- 쩍-!!
 눈을 멀게 만드는 번개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하늘이 노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고, 이제는 병든 노모와 처자식들을 보살필 수 없다는 미안한 생각에 눈물이 흐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모든 것은 포기한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그쳤다.
 장대비도, 안개도, 천둥번개도 모든 것이 한순간의 허상이었다는 듯, 꿈이었다는 듯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쿠와아아아아아---!!
 하늘을 찢어발기는 울부짖음!
 바다를 가르는 울부짖음!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보았다!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아주 거대한··· 용(龍)을!
 
 ***
 
 “이놈은 제법 센데!”
 외침과 함께 햇살에 반짝이며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갔다.
 핑그르르르르······!
 수아악!
 무수히 회전하며 날아간 그 무엇은 곧바로 대지 위에서 펄쩍! 펄쩍! 뛰고 있던 거대한 물고기의 꼬리를 반듯하게 자르고 지나갔다.
 터엉!
 거대한 물고기만큼이나 굵직한 나무에 깊숙이 박힌 것은 분명 물고기의 비늘이었다. 그것도 아주 날카롭게 사방으로 날이 서 있는.
 철퍼덕! 철퍼덕!
 꼬리가 잘려나갔음에도 거대한 물고기는 여전히 대지 위에서 온 몸통 근육을 이용해서 뛰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물고기의 몸통엔 투박한 나무 창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왕방울만 한 눈 밑은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의 깊은 상처로 피가 울컥! 울컥!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고기는 멈추지 않았다.
 왕방울만 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곳은 파란 물!
 물고기는 물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듯 온 힘을 다해서 움직였고, 한 번 움직일 적마다 물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었다.
 핑그르르르르······!
 다시 한 번 햇살에 반짝이며, 날카롭게 날이 선 물고기 비늘이 날아들었다.
 수아악!
 첨벙!
 “쳇! 귀찮게 돼버렸군.”
 아슬아슬하게 물고기 비늘을 피해 물속으로 들어간 물고기의 모습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 물 곁으로 다가갔다.
 “후우우우우우웁-!”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는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 벙!
 물속은 물 밖에서 보는 것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깨끗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는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을 쳤다.
 그리곤 물속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꼬리가 잘리고 몸통엔 나무 창을 꼽고 있는 물고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었다.
 ‘쳇!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바보 물고기!’
 그는 힘겹게 헤엄을 치고 있는 물고기를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고,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거대한 물고기의 몸통에 부딪히면 부러질 것만 같은 주먹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퍼- 억!
 주먹 한 방에 물고기는 헤엄치던 속도보다 수배는 빠르게 물 위로 밀려 올라갔고, 곧바로 수면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그가 튀어 올랐다.
 “푸하아아-!”
 깊은 숨을 토해내며 그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물고기의 머리를 정확하게 걷어찼다.
 빠- 각!
 물고기 머리뼈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물고기의 처절했던 삶이 끝나고 말았다.
 쿠웅-!
 전체 길이가 4장은 될 법한 거대 물고기가 대지 위에 널브러졌다.
 타닥.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물고기의 바로 곁으로 내려선 그는 이내 씨익 웃었다.
 “오늘은 제법 큰 놈을 잡았어!”
 기쁜 듯 소리친 그는 물고기의 배를 갈랐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기가 무섭게 하얀 김과 함께 주변을 차갑게 얼려버릴 정도의 냉기와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장 속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리곤 무언가를 쥐고 옷으로 쓱쓱 닦아냈다.
 새파란 구슬이 손에 들려 있었다.
 “이번에도··· 암놈이네······.”
 실망스런 얼굴로 물고기의 알을 바라보던 그는 지체하지 않고 ‘꿀꺽!’ 삼켜버렸다.
 부르르르르······!!
 한차례 몸을 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물에 젖은 파란 머리카락이 딱딱하게 얼어붙었고, 옷은 얼어붙다 못해서 조각조각 깨져버렸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한기로 인해 배가 갈라진 거대한 물고기는 물론, 주변의 푸른 풀들이 모두 얼어붙어버렸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그가 반 시진이 지나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번쩍!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파란 눈!
 “쳇! 또 옷이······.”
 알몸이 되어버린 그.
 허리까지 길게 자란 파란 머리카락. 머리카락만큼이나 파란 눈동자. 그리고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얼굴. 하지만 굳은 살 하나 없는 매끈한 상체와 제법 튼실한 그것은 분명 사내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한차례 훑어보곤 이내 소도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물고기의 비늘을 벗겨내려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
 물보라와 함께 파란 물속에서 둥그런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엄청난 물을 허공에 뿌리며 거대한 무언가를 휘둘렀다.
 휘리리리릭!
 “······!”
 콰아앙!
 뽀얀 먼지구름과 함께 대지가 커다란 상처를 입었고, 방금 전 그가 잡아놓은 물고기는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뭉개져 버렸다.
 그는 짓뭉개진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그리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 이 자식! 감히 먹는 음식을 저렇게 만들다니!!”
 대지에 상처를 입힌, 4장 크기의 거대한 물고기를 단 한 번에 짓뭉개버린 위력적인 공격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먹을 수 없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그는 두 눈에 살기를 담았다.
 그의 앞엔··· 머리통만 3장이 넘어가는 거대한 문어가 14개의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면 위에 떠 있었다. 사실 이 문어의 다리는 14개가 아니라 27개였다. 그와의 싸움으로 13개가 잘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이야말로··· 네놈의 먹물로 내 몸을 씻어주마!”
 타다다다닥-.
 그가 나무 창을 꼬나 쥐며 문어를 향해 달려갔다.
 
 ***
 
 7대 선조께서는 금빛으로 빛나는, 전체 길이 5장에 이르는 황금잉어를 잡으셨다.
 10대 선조께서는 집채만 한 거대한 거북이를 잡으셨다.
 13대 선조께서는 그 길이가 무려 10장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붉은 바다뱀을 잡으셨다.
 그리고······.
 18대인 나는 발이 27개나 달린 괴물 문어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잡아야 하는 것은 고작 발이 27개인 괴물 문어가 아니다.
 내가 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께서 잡으려 했던 것은······.
 
 ***
 
 쿠아앙!
 문어의 공격에 대지의 이곳저곳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정작 문어가 죽이고자 하는 목표는 빠른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피할 뿐이었다.
 콰아아앙!
 다시 한 번 문어의 공격이 대지를 강타했고, 뽀얀 먼지 구름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먼지 구름 속에서 한 자루의 투박한 나무 창을 들고 그가 튀어나왔다.
 “차아아아앗-!”
 맹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기합성을 뱉어내며 그는 곧장 문어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휘리리리릭!
 허공을 짓이기며 문어의 다리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문어의 다리가 그의 지척으로 다가온 순간!
 타- 앗!
 땅을 박차고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3장 이상을 솟구친 그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있는 힘껏 숙였다.
 “으라라라라!!”
 팽그르르르르!
 엄청난 회전을 하며 그의 몸이 문어를 향해서 날아갔다. 팽팽했던 활시위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가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후아아앙-!
 강맹한 바람을 동반하고 휘둘러지는 문어의 다리.
 회전을 머금고 날아가는 그와 거대한 문어의 다리가 중앙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서- 걱!!
 이제까지 굉음을 내며 대지를 강타하던 문어의 다리는 이렇다 할 힘도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회전도 반 이상 떨어진 상태였고, 문어의 다리는 아직까지 13개나 남아 있었다.
 휘리리리릭!
 양쪽에서 2개의 다리가 날았다.
 푸우우욱!
 “큭!”
 오른쪽에서 날아든 다리에 나무 창을 깊숙이 꽂아 넣고 그 끝에 매달린 그는 신음을 흘렸다.
 주르륵!
 입술을 비집고 붉은 실핏줄이 흘러나왔다.
 문어는 다리에 나무 창을 꽂아 넣고 매달려 있는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 다리를 허공에서 흔들어댔지만, 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에 박혀 있는 나무 창으로 인해 고통이 커지자 허공에서 흔들던 다리를 세차게 휘둘러 대지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뽀얀 먼지 구름이 다시 한 번 치솟았다.
 “하아앗!”
 먼지 구름을 뚫고 달려 나온 그는 곧바로 문어의 다리를 밟고 달렸다.
 타다다다닥.
 눈부신 속도로 달려든 그는 문어가 다른 다리를 휘두르기도 전에 머리까지 달려들었고,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받아라!!”
 물고기를 잡을 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주먹, 아니 몸 전체에서 붉은 기류가 넘실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퍽!
 주먹은 문어의 머리를 쳤지만 물컹거리는 머리의 살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머리를 터트린다! 으하아앗-!”
 그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커다랗게 기합을 내질렀다.
 몸 전체를 감싸고 넘실거리던 붉은 기류가 폭발이라도 하듯 사방으로 팽팽하게 뿜어졌고, 곧바로 문어의 머리 부근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퍼퍼퍽!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문어의 살집.
 휘리리리릭!
 퍽!
 “크아악!”
 살집에 파묻혀 있던 주먹을 회수하기도 전에 날아든 문어의 다리가 그의 호리호리한 몸을 강타했고, 곧바로 그는 빠른 속도로 허공을 날아 커다란 나무에 부딪혀 쓰러졌다.
 “컥! 컥! 쿨럭! 쿨럭!”
 그가 기침을 할 적마다 붉은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얗던 안색은 서너 번 더 기침을 하고 핏물을 쏟아낸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후우······.”
 그는 작게 심호흡을 하곤 문어를 바라봤다.
 ‘역시 놈은 너무 강하다!’
 파란 수면 위에 이젠 13개가 되어버린 다리를 사방으로 움직이며 떠 있는 문어의 한쪽 머리통이 처참하게 찢어져 있었다.
 문어 역시도 그의 공격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인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문어는 그를 바라보다가 수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꿋꿋하게 버티고 서있던 그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후우, 후우··· 역시 아직은 놈을 잡을 수 없는 건가? 쳇!”
 조그맣게 중얼거린 그는 그대로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눈 안으로 가득 들어찼다.
 치열했던 싸움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주변은 평화로웠으며, 파란 수면 위로 1장 크기의 송사리들이 하나, 둘 튀어 올랐다.
 나신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던 그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허리까지 자란 풀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하늘을 찌를 듯이 서로의 몸을 꼬며 서 있는 거대한 나무 두 그루. 그 사이엔 조그마한 웅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 웅덩이 안에는 우윳빛 물이 담겨 있었다.
 
 ‘이 물은 6대 조부께서 발견하신 거다. 이것은 네가 어디를 다치던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신비의 약물이다.’
 
 웅덩이 속의 우윳빛 물을 바라보던 그는 그대로 머리를 처박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카아~!”
 입가에 묻은 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그는 절반 이상이나 줄어들어버린 우윳빛 물을 바라봤다.
 “앞으로 일 년은 못 먹겠군.”
 이 우윳빛 물의 놀라운 효과로 인해서 그의 7대 조부는 모든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었고, 그 결과 8대 조부는 이 신비의 약물을 한 방울도 마셔볼 수 없었다. 약간이라도 남아 있어야 조금씩이라도 물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을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물을 마시고 나면 항상 나타나는 증상.
 아랫배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가 뜨뜻해지면서 머릿속이 맑아진다.
 고통도 없었으며, 물의 약효는 빠르게 나타난다.
 답답했던 가슴과 무겁기만 했던 팔다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는 눈을 떴다.
 번쩍!
 파란 눈동자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사라졌다.
 “오랜만에 바다로 나가볼까?”
 환한 미소와 함께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빠르다.
 마치 한 마리의 표범을 보는 것 같다.
 세상을 뒤덮고 있을 정도로 넓고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
 모래사장까지 빠르게 달려온 그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 들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라?”
 파도에 휩쓸려 1남 1녀가 모래사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나무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주변으로 다가가 남자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쪽 어깨에 각각 한 사람씩 짊어졌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
 그가 움직일 적마다 허리까지 기른 파란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였다.
 
 
 제2장 영물들이 살고 있는 섬
 
 
 “으음······.”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간다.
 흑요석(黑曜石)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흐릿했던 초점을 확실하게 잡아갈 무렵, 새까만 눈동자에 하늘처럼 파란 눈동자가 반사되었다.
 “깨어났다!”
 천진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에 새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구?”
 “너희 둘, 내가 구해왔다! 하하하하!”
 스스로 대견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에 새까만 눈동자에서 경계 어린 눈빛이 점점 풀어지기 시작했다.
 “흐음······.”
 “어라? 또 깨어난다!”
 무엇이 그렇게 신난 건지 그는 좋아라 소리를 지르며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도대체 누구지?’
 새까만 눈동자의 주인, 북궁연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멍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킨 북궁휘와 눈이 마주쳤다.
 “연아!”
 북궁휘는 자리를 박차고 북궁연에게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은 거냐?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거냐? 불편한 곳이라고 있으면 말을 해 보거라!”
 호들갑스럽게 북궁연의 몸을 살펴보며 묻는 북궁휘의 모습에 그녀는 괜찮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아요. 오라버니는요?”
 “나도 괜찮다! 하늘이 우릴 도왔구나!”
 북궁휘는 북궁연의 대답에 다행이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 북궁휘와는 다르게 북궁연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지······.”
 “······.”
 북궁연의 말에 북궁휘도 그제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의 경솔함을 탓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무거운 분위기도 오래 가지 못했다.
 “왜 그래?”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가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밝은 음성, 그리고 환한 미소.
 북궁휘와 북궁연 남매는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의 주인을 바라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
 겉으로 보기에 그의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아이처럼 방 안을 방방 뛰어다닌 그의 행동은 도저히 외모와 맞지 않았다.
 그리고 외모 역시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중원 그 어디에서도 눈동자까지 파란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꼭 서역인은 아니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만 다를 뿐이지, 그 외의 외모적인 부분과 체격은 분명히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중원인이었다. 단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일 뿐이다.
 “귀, 귀하는 누구시오?”
 북궁휘의 물음에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 나는 여기 주인인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북궁휘는 보일 듯 말 듯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놈의 사내가······.’
 북궁휘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외모적인 질투심을 다스리는 사이, 북궁연은 아름다운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있을 줄이야······.’
 자신의 오라비인 북궁휘도 알아주는 미남자였지만 그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장을 시켜놓으면 어느 사내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경국지색의 미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아름다웠다.
 “흠흠! 나는 북궁휘라고 합··· 하오. 귀하께서 우리를 구해주셨소?”
 “오라버니.”
 북궁연은 북궁휘가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자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고개를 굽히지 않는 북궁휘의 고약한 고집을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북궁휘의 그런 행동에도 상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맞아! 내가 너희 둘을 구했어!”
 “너, 너희?”
 북궁휘의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오라버니,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입니다.]
 북궁연의 전음에 북궁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 북궁연의 모습에 북궁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꽉! 다문 입술에서 그의 심정이 얼마나 불편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는 다 좋은데 저 고약한 고집이 문제야.’
 북궁연은 더 이상 북궁휘에게 맡길 수 없다는 듯 그를 향해서 말했다.
 “저, 저는 북궁연이라고 합니다.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은공.”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니 절로 음성이 떨렸다.
 “은공? 내 이름은 은공이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북궁연과 북궁휘는 가볍게 실소를 터트렸다.
 북궁휘는 왜 웃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은 일은 북궁연에게 맡기겠다는 듯 눈짓을 하곤 고개를 돌려 집 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도 큰 집이다. 그리고 집 안에 들어차 있는 생활 집기들도 결코 혼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 2인에서 3인이 사는 듯했다.
 ‘다른 가족이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북궁휘는 다시 살펴봤다.
 집 안 곳곳엔 나무로 만든 활, 창, 몽둥이 등등 조잡하기 그지없는 병기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모양이군.’
 나무로 만든 커다란 침상과 탁자, 그리고 제법 커다란 서랍장이 전부였다.
 “다른 분은 어디에 계시오?”
 북궁휘의 물음에 그가 처음으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
 “아··· 미, 미안하외다.”
 북궁휘는 미안한 마음에 급히 사과를 하곤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상처가 있는 법인데 자신이 그걸 건드린 것이다.
 “은공께서는 지금 혼자 사시나요?”
 북궁연의 물음에 그는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 묻지 않은 것까지도 밝게 말했다.
 “응!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계속 살았어. 그래도 예전에 한 번 아버지를 따라서 사람들이 엄청 많은 곳으로 가본 적 있어!!”
 북궁연은 가슴 한쪽이 괜히 아려왔다.
 외모에 맞지 않는 행동과 말투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북궁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 배고프지? 내가 먹을 걸 가져올게!”
 북궁휘나 북궁연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활짝 열린 문을 바라보며 북궁연이 말했다.
 “그는 행복할까요?”
 뜬금없는 물음일 수도 있지만 북궁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적어도 내 눈엔 우리보다 행복해 보이는구나.”
 북궁휘의 대답에 북궁연은 다시금 그를 바라봤다.
 “그렇죠?”
 “그래.”
 두 남매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 사이, 그가 문 밖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밖으로 나와!”
 그의 외침에 북궁휘가 북궁연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나가보자.”
 “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북궁연과 북궁휘가 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1장 크기의 물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질질 끌며 달려오고 있었다.
 “······!”
 “······!”
 남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바라봤다.
 “오, 오라버니··· 서, 설마······!”
 “백년거린어(百年巨鱗魚)!”
 극양과 극음이 공존하는 태극천지조화수(太極天地調和水)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대의 영물(靈物)이 자신들의 눈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 것이다.
 “어라? 이놈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요동치는 백년거린어의 꼬리를 잡고 휘둘러 바닥에 패대기쳤다.
 퍽!
 “······!”
 충격! 그리고 경악!
 희대의 영물을 저런 식으로 대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북궁휘는 신법을 펼쳐 여전히 백년거린어를 패대기치고 있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백년거린어를 어디서 잡았느냐!”
 북궁휘의 거친 외침에 그가 멀뚱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백년거린어가 뭐야?”
 그 물음에 북궁휘는 손으로 물고기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건 송사린데······.”
 
 ***
 
 “······.”
 “······.”
 북궁휘, 북궁연 남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 천지에 이런 곳이 존재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수십 마리의 백년거린어가 눈에 치일 정도로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재주를 피웠으며, 1천 년을 살아가며 화기를 응집해 내단을 만들어놓는다는 전설의 영물 천년화리(千年火鯉)는 물론, 1백 마리의 천년화리 중에서 1마리 정도 진화하여 1만 년을 살아간다는 태양금인어(太陽金鱗魚)도 파란 물속에서 아주 가끔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천녀화리와는 정반대의 성질을 띠고 있는 극음의 내단을 지닌 빙설어(氷雪魚)와 빙설어가 진화한 한빙만년인어(寒氷萬年鱗魚)까지 말 그대로 극양과 극음을 이룬 영물들이 상식을 파괴하며 공존공생하고 있었다.
 “오, 오라버니······.”
 “······.”
 북궁연의 부름에도 북궁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들렸다 하더라도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뭐 해?”
 넋을 놓고 물속을 바라보는 북궁휘, 북궁연 남매의 곁으로 그가 다가왔다.
 “여, 여긴··· 어디지?”
 북궁휘의 물음에 그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연못!”
 “······.”
 이 넓은 곳을 연못이라고 한다.
 북궁휘는 물론 북궁연까지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대꾸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말이 진실이며, 곧 진리라는 듯 생각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감히 반박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촤아아악!
 첨벙!
 한 마리의 백년거린어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가 멋지게 한 차례 몸을 뒤틀고는 물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장장 1장이나 되는 큰 몸집으로 인해 사방으로 물이 튀었고, 그 물에 흠뻑! 젖어버린 북궁휘와 북궁연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북궁휘의 뒤로 슬쩍 숨었던 그가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쳇! 요즘에는 저놈의 송사리들만 날뛴단 말이야.”
 “······.”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미 북궁연이 백년거린어에 대해 그렇게 설명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희대의 영물 백년거린어를 단순히 ‘송사리’라고 칭할 뿐이었다.
 어째서 그러냐고 묻자 그가 답하길,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이 연못에서 가장 작은 놈들은 바로 저놈들이다! 그러니 저놈들은 이 연못의 송사리다!’라고 했어! 그러니 저놈들은 송사리야.”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깊이 드러냈다. 마치 아버지의 말이 세상 모든 이들의 말보다도 더욱 중요하며, 그 말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듯.
 “참, 은공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내 이름은······.”
 북궁연은 아직까지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에 질문을 건넸지만 그 답은 들을 수 없었다.
 휘리리리리리릭!
 수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
 “연아!”
 북궁휘는 본능적으로 뒤로 훌쩍 물러났고, 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이미 북궁연 역시도 뒤로 물러나 있었다.
 단지 한 사람만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피해-!!”
 “은공-!!”
 북궁휘와 북궁연의 외침에도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몸으로 수면 위로 튀어 오른 거대한 무언가가가 다가왔다.
 “또 너냐? 오늘은 기필코! 네놈의 다리를 조각조각 잘라 구워먹고 말겠다!!”
 고집스럽게 외치며 그가 날아드는 문어의 다리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저, 저런 멍청한!”
 “피해요!”
 북궁휘와 북궁연은 웬만한 거목보다도 커다란 문어 다리에 그가 짓뭉개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퍼- 억!
 허공을 울리는 격타음.
 “···어, 어찌······.”
 “······!”
 보기만 해도 기가 질려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문어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수면 위로 솟구칠 때보다도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수면 위로 머리통에 상처가 아물지 않은 문어가 나타났다.
 “세, 세상에!!”
 13개의 다리를 넘실거리며 수면 위로 부상(浮上)한 문어의 모습에 북궁휘, 북궁연 남매는 오금이 저려왔다. 세가에 구비되어 있는 영물도감(靈物圖鑑) 그 어디를 뒤져도 저런 괴물 문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더군다나 문어는 바다에 사는 생물이 아니던가?
 “이런 괴사(怪事)가······.”
 북궁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괴물 문어와 그의 싸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괴물 문어는 13개의 발을 허공에서 흉포하게 휘저으며 그를 공격했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퍼억! 퍼억-!
 오히려 날아드는 괴물 문어의 거대한 다리를 주먹으로 치고, 때론 발로 차며 문어의 공격을 모두 당당하게 맞상대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도와야 해요!]
 북궁연의 전음에 북궁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북궁연은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고, 곧바로 ‘촤르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녹색의 요대는 낭창낭창 휘어지는 한 자루의 연검이 되었다.
 “하야앗-!”
 용기를 내기 위해서인지 기합을 내지른 북궁연은 곧바로 괴물 문어의 다리 하나를 공격했다.
 팅!
 “······!”
 연검은 문어의 다리와 부딪치기가 무섭게 부러질 것처럼 휘어지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슈아아아아앙-!
 연검에 맞은 문어의 다리가 맹렬한 기세로 북궁연을 공격해 들어갔다.
 “연아-!!”
 당장이라도 북궁연의 몸을 짓뭉개버릴 것만 같은 강맹한 문어의 공격에 북궁휘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내질렀고, 막상 공격을 당하게 되자 전신을 압박하는 엄청난 기세에 북궁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문어의 다리가 막 북궁연의 몸을 짓뭉개려는 순간!
 “이 자식이!”
 거친 음성과 함께 북궁연을 막아서며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퍼- 억!
 문어는 끊어질 것만 같은 극심한 고통에 다른 다리를 휘둘렀고, 그러는 사이에 그는 뒤에 멍하니 서 있는 북궁연을 향해 소리쳤다.
 “뒤로 물러나 있어!”
 “네, 네······.”
 아름다운 외모와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나운 기세에 북궁연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연아!”
 북궁휘는 급히 북궁연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우리로서는 감히 대적해볼 수도 없는 괴물이니, 물러나 있도록 하자.”
 북궁휘의 말에 북궁연은 어쩔 수 없었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신 괴물 문어의 발을 주먹과 발로만 상대하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움직임 하나하나는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눈부실 정도로 빠르고, 괴물 문어의 공격을 맞상대할 정도로 강하니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걸음마를 뗄 적부터 검을 잡은 북궁연이나 북궁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함을 저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함은 단순한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내면에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이 자라난 환경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북궁연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온갖 영물들의 내단을 밥처럼 먹고 자랐으니······.”
 북궁휘는 북궁연과 다르게 제대로 된 무공도 펼치지 못하는 그가 괴물 문어와 대등하게 싸움을 펼치자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나도 내단을 복용하면······.”
 괴물 문어가 떠올라 있는 수면을 바라보는 북궁휘의 눈에 탐욕이 어리기 시작했다.
 
 ***
 
 괴물 문어와의 싸움은 또다시 끝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하지만 보다 많은 피해를 입은 쪽을 말하라면 그건 괴물 문어였다.
 대지 위엔 5개의 다리가 처참하게 잘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쿨럭! 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핏물을 뱉어내는 그의 모습에 북궁연은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갔다.
 벌써 두 번이나 그에게 목숨을 빚진 것이다.
 “은공, 괜찮으세요?”
 북궁연의 물음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쿨럭! 쿨럭! 너무 아파! 쳇!”
 “아······.”
 북궁연은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저는 괜찮습니다. 소저는 어디 다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최소한 ‘이 정도의 고통쯤은 견딜 수 있습니다!’ 혹은 ‘소저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등의 말을 기대했던 것일까?
 문득 북궁연은 실소를 짓고 말았다.
 “훗······.”
 무너져버린 세가. 도망치듯 세가를 빠져나온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나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자 터지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웃어?”
 자신은 아파 죽겠는데 왜 옆에서 웃고 있냐는 듯 묻는 그의 모습에 북궁연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웃고, 사과를 하고······.
 북궁연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오늘은 그래도 문어의 다리를 5개나 잘랐으니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제 남은 다리는 8개뿐이다.
 한 번! 그도 아니면 두 번!
 괴물 문어와의 싸움도 이제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물은 이제 얼마 없는데······.”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시선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북궁연은 자신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물? 무슨 물을 말하는······?’
 푸욱!
 “아아아아악-!!”
 갑작스런 비명에 북궁연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가슴을 꿰뚫고 튀어 나온 날카로운 검날!
 “오, 오라버니······!!”
 북궁연의 외침에 북궁휘는 잔뜩 일그러진 마치, 울듯 한 얼굴로 검을 뽑았다.
 츄아아아악-!!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와 북궁휘의 얼굴과 몸을 뒤덮었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북궁휘와 북궁연의 고막을 흔들었다.
 끊임없이 피를 흘려대는 그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다 북궁휘를 향해 손을 천천히 내뻗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왜··· 어째서··· 왜 날 찔렀냐고!!
 “미안하외다. 정말로 미안하외다··· 이 죄는 내 육신과 영혼이 지옥 불에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으로 대신하겠소.”
 퍼- 억!
 울먹이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북궁휘는 사정없이 발을 차올렸고, 배를 걷어차인 그는 하늘로 떠올랐다가 파란 물속으로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기고 말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북궁연으로서는 어떻게 막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북궁휘가 이런 패덕한 짓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그녀의 충격은 엄청났다.
 “오, 오라버니··· 오, 오라······.”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북궁연의 모습을 보며 북궁휘는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세가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은··· 하늘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하지만!”
 소리를 높이는 북궁연을 북궁휘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런 곳은··· 이런 곳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네가 명이었다면······. 나는 널 죽였을지도 모른다.”
 “······!”
 북궁연의 두 눈은 더욱더 커졌다.
 북궁명은 자신의 오라비이자 북궁휘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와 자신이 다른 점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친동생이 아니었다면 비밀을 위해 죽였을 것이란 소리에 북궁연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북궁휘를 더 이상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북궁연은 언제부터 흘러내렸는지 모를 눈물을 허공에 흩날리며 그가 빠진 파란 물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가 빠진 자리의 파란 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 북궁휘는 수면 위로 떠오른 백년거린어 한 마리를 어렵지 않게 잡았고, 배를 갈라 내단을 찾아내 삼켜버리곤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행공에 들어선 북궁휘의 모습을 바라보다 북궁연은 급히 물 곁으로 다가가 그 안을 바라봤다.
 보이지 않았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던가 아니면··· 벌써 물고기의 밥이 되었단 소리다.
 주르륵.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북궁연은 끊임없이 ‘미안해요’란 말만을 중얼거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왔을 무렵에야 북궁휘가 억지로 그녀의 수혈을 짚었다.
 북궁연을 집에 잠재운 북궁휘는 싸늘한 달빛이 가라앉은 파란 수면을 바라봤다.
 주르륵.
 “미안하외다··· 흑흑! 미, 미안하외다······.”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기 시작하는 북궁휘.
 적들의 손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아버지의 모습. 음흉한 눈으로 자신의 동생들을 바라보는 적들의 모습. 비장한 모습으로 자신과 동생을 배에 태워 탈출시키는 가신들의 모습. 힘없이 도망만 쳐야 했던 비참했던 자신의 모습······.
 머릿속에 가득 찬 그런 모습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북궁휘는 날이 밝을 때까지 통곡했다.
 
 ***
 
 물속 깊숙이 빨려 들어가듯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은 그.
 가슴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도 물속 깊숙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어느새 멈춰져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이 막혔지만 숨을 쉴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가슴이 검에 꿰뚫려야 했는지 궁금하기보다는 당장 이 꽉! 막힌 숨을 뱉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양껏 들이켜고 싶을 뿐이다.
 깊숙이, 아주 깊숙이 가라앉던 그의 몸을 무언가가 감싸 안기 시작했다.
 스르르륵.
 방금 전까지 그와 사투를 벌였던 괴물 문어였다.
 이제는 다리가 8개밖에 남지 않은 괴물 문어지만 그 위용은 여전히 건재했다.
 -데려와라.
 물속에 엄청난 진동파가 생겨났다.
 괴물 문어는 그를 데리고 더욱더 아래로 내려갔다.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일까?
 
 
 제3장 용을 만나다!
 
 
 어둠. 아니, 빛. 아니, 어둠! 아니, 빛!!
 어둠 속에 빛이 있었고, 빛 속에 다시 어둠이 있었다.
 “끄응······.”
 작은 신음과 함께 파란 눈동자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
 눈에 아른거리는 것들은 분명히 1년에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물고기였다.
 붉은 눈동자와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의 물고기와 파란 눈동자, 온몸이 얼어붙어 있는 듯한 파란 빛의 물고기는 분명 그것들이었다.
 
 ‘역대 조부님들께서도 잡지 못한 놈들이다! 너는 저놈들을 반드시 잡아서 이 연못 물고기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 저놈들은 분명히··· 분명히··· 수놈이다!’
 
 “수놈!!”
 그는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그리곤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의 물고기와 온몸이 얼어붙어 있는 듯한 파란빛의 물고기를 향해서 뛰어갔다. 아니, 뛰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어라? 왜 이러지?”
 힘껏 다리에 힘을 줘서 달려보아도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둥그런 뭔가에 감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놀랍게도 이곳은··· 물 속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클클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갑작스런 진동파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둠이 빛났다. 빛이 어둠을 감쌌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새카맣게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는 한 마리의 거대한··· 용(龍)을!
 가문 대대로 내려온,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宿願)!
 
 용(龍)을 잡아라!
 
 “와아~ 용이다!”
 -······.
 천진난만하게 환한 웃음을 그려내는 그의 모습에 용은··· 할 말이 없었다.
 
 ***
 
 용의 피!
 용혈(龍血)은 정말로 만병통치약일까?
 용혈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무인이 용혈을 한 방울이라도 먹게 되면 천년 내공을 얻게 된다는 말도 있고, 일반인이 용혈을 먹게 되면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용의 내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으로서 어찌 용을 잡아 그 내단을 취할 수 있겠는가?
 해서, 사람들은 용의 피 한 방울만이라도 얻게 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 지극한 효심으로 용혈을 구하기 위해 달려든 어부가 있다. 어부는 용혈을 구하기 위해서 용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곳에서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용혈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병든 노모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부는 용서할 수 없었다.
 용혈을 구하지 못해 병든 노모를 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고작 피 몇 방울 나눠주는 것을 아까워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거절한 좀스런 용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부는 결국 용혈이 아닌, 용을 잡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 자신이 잡지 못하자 아들에게, 아들은 또 다시 그의 아들에게··· 그렇게 어부의 집안엔 하나의 숙원이 생겨나고 말았다.
 반드시 용을 잡아야 하는 숙원!
 그렇게 어부의 집안은 용을 잡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지만 쉽사리 용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용의 꼬리조차 볼 수 없었다.
 용이 숨어 있는 물속은 너무 깊었고, 용의 하수인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괴물들이 자리를 떡! 지키고 있었기에 어부의 집안은 용이 아닌 그의 하수인들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
 황금잉어, 거대 거북, 붉은 바다뱀, 이제는 다리가 27개나 되는 괴물 문어.
 어부의 집안은 우선 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용의 먹이인 물고기를 모두 잡아 없애기로 작정했다. 확실히 용이 사는 곳이라서 그런지 물고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길이가 1장에 이르는 물고기는 피라미에 불과했고, 최대 7장에 이르는 물고기까지 있을 정도니 확실히 이 물속 깊은 곳엔 용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리고 처음엔 용의 피를 얻기 위해서, 이후 용을 잡기 위해서 인생을 바친 어부 가문의 18대 자손이 뜻하지 않은 인간의 배신으로 죽음의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그 죽음의 위기로 인해 그는 눈앞에서 용을 보게 되었다.
 
 ***
 
 “와아~ 엄청 크네!”
 -······.
 “물고기랑은 다르게 비늘이 엄청 반짝이네?”
 -······.
 “저런 발톱에 맞으면 그대로 죽겠지?”
 -······.
 그는 용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버지의 말대로 용을 잡기 위해서 연못을 지키고, 물고기와 괴물 문어와 싸움을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막상 진짜로 용을 만나보니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덩치가 훨씬 컸으며, 어떤 면에서는 무섭기도 했지만 무섭다는 감정보다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더 컸기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빨도······.”
 -그만!
 “욱!”
 고막이 아니라 정신을 뒤흔드는 진동파에,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끌끌끌······.
 용은 자신의 고함에 입을 꾹! 다물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저런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앞에서 까불어봐야 얼마나 까불 수 있겠는가?
 -네놈 집안이 하는 짓은 내가 다 보고 있었다. 아주 가관이더군! 끌끌끌······. 감히 인간 주제에 날 잡겠다고? 내가 앞에 있으니 어디 잡아보아라!
 출렁! 출렁!
 용의 외침에 따라 물속이 사정없이 뒤흔들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가 못 잡을 줄 알고!”
 그가 호기롭게 외치며 눈을 빛내자 그의 전신에서 붉고 푸른 기류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이와 같은 행동은 그의 집안 선조들이 영물의 내단을 끊임없이 섭취하면서 그 기운을 폭발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다.
 무림인들처럼 영물들의 내단을 내공으로 다스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단 본연의 힘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가 전신에 힘을 주며 내단의 힘을 끌어올리는 아주··· 아주··· 미련한 방법이자, 효율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방법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내단의 힘을 한 번씩 배출시키지 않았다면 무작위로 복용한 내단들로 인해서 진즉에 몸이 터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끌끌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용은 웃었다.
 용이 웃던지 말던지 그는 용을 향해서 달려갔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해대자 우선 자신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을 부셔버리기 위해서 주먹과 발을 무차별적으로 날렸다.
 퉁. 퉁. 퉁. 퉁.
 붉은 기류가 넘실거리는 주먹과 푸른 기류가 뿜어져 나오는 발길질은 지금까지 어떠한 물고기도 견뎌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괴물 문어까지도 이 공격들에는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투명한 막은 조금도 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과 발이 반발력으로 인해 튕겨져 나오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이······!”
 퉁. 퉁. 퉁. 퉁.
 끊임없이 주먹과 발을 날리던 그는 이내 분한 얼굴로 ‘씩씩!’ 거리더니 용을 정면으로 똑바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비겁한 용!”
 -끌끌끌······.
 “겁쟁이 용! 멍청이 용! 바보 용! 치사한 용!”
 온갖 말을 뱉어냈지만 용은 여전히 가소롭다는 듯 웃기만 했다. 그러다 용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번뜩였다.
 번- 쩍!!
 “덤벼! 이 바보··· 꼬륵! 컥컥!”
 용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번뜩임과 동시에 그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사라졌고, 용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그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물 때문에 양손으로 목을 부여잡으며 허우적거렸다.
 헤엄이라면 웬만한 물고기보다도 잘하는 그였지만 물이 한꺼번에 코와 입으로 밀려들자 그렇게 잘하던 헤엄 실력도 죽은 듯 사라져버렸다.
 코와 입으로 물거품을 뿜어내며 터질 듯이 붉어진 그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용의 눈에서 다시 한 번 푸른 광채가 번뜩였다.
 “쿨럭! 쿨럭! 쿨럭!”
 크게 기침을 하며 물을 뱉어내는 그는 여전히 벌겋게 변한 얼굴로 용을 노려봤다.
 “이 겁쟁이 용이 비겁하게!!”
 그의 외침에 용이 코웃음을 쳤다.
 “다시 덤벼! 후우우우우웁!”
 말과 함께 크게 숨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을 용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가 투명한 막을 연신 손으로 가리켜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지를 알면서도 용은 가만히 있었다.
 “파아아아아앗-! 컥컥! 꼬르륵!”
 그가 숨을 뱉어내기가 무섭게 용이 투명한 막을 없애버렸고, 또다시 그는 코와 입으로 물을 잔뜩 먹고 말았다.
 용이 투명한 막을 다시 만들어주자 좀 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기침을 해대며 물을 뱉어내고는 용을 향해서 비겁하다느니, 치사하다느니, 정정당당하게 덤비라느니 온갖 말을 쏟아냈지만 용은 여전히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바보 같은 용! 빨리 덤벼! 덤비란 말이야!!”
 -어리석은 것.
 말과 함께 용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단순히 꼬리를 가볍게 휘두른 것뿐이지만 그 파괴력은 엄청났다.
 콰아아아아앙-!!
 “······!!”
 밑바닥을 깊숙이 파고든 용의 꼬리에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용을 바라봤다. 그제야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용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래도 덤비겠느냐?
 용의 물음에 그는 용이 휘두른 꼬리 한 방에 깊숙이 파인 바닥을 보다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장부라면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한 번 품은 뜻을 꺾진 말아야 한다! 남의 도움을 빌려서도 안 되며, 두렵다고 도망을 가서도 안 된다! 장부라면! 사내라면! 죽음을 두려워한다 해서 뜻을 꺾진 말아야 한다!’라고 했어! 나는 장부며, 사내야! 용을 꼭 잡을 거야!!”
 고집스런 그의 모습에 용은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 다리가 8개밖에 남지 않은 괴물 문어가 용의 곁으로 다가와선 넙죽 엎드렸다.
 용은 문어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인간의 욕심이란······. 놈을 쫓아내라.
 용의 말이 끝나자 문어는 알겠다는 듯 연신 거대한 대갈통을 움직여 대답하곤 위로 헤엄을 쳐 사라졌다.
 ‘괴물 문어가 용한테 꼼짝도 못하네······?’
 항상 자신과 대등하게 싸웠던 문어가 용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며 굽실거리자 더욱더 용이 대단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인간이란 참 어리석은 존재지. 어쩌면 그 욕심이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일지도······.
 “······?”
 알아들어 먹지도 못할 말을 하는 용을 그는 멍하니 바라봤다.
 -네놈의 집안은 고집스럽게도 어리석으면서도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내가 그저 가만히 두고 보았던 것이다. 만약 네놈의 집안이 다른 뜻을 품었다면, 결코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았을 것이다.
 “······?”
 그는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용은 ‘끌끌끌’ 거리며 웃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용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용을 잡고 싶나?
 용의 물음에 그는 곧바로 씩씩하게 답했다.
 “응!”
 -끌끌끌······.
 용을 앞에 두고 용을 잡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의 모습에 용은 괘씸하다기보다는 재미있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네놈이 힘으로 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
 그는 좀 전과는 다르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용이 말을 이었다.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네가 용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마.
 “어?”
 -끌끌끌······. 어떠냐?
 용의 물음에 그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리해서 용과 인간의 괴이한 거래가 시작되었다.
 
 ***
 
 천년 동안 도를 닦았다.
 이무기는 용이 되었고, 용은 승천을 했다.
 아! 승천을 하다가 다시 추락했다.
 용은 이후 5백 년간 수차례 승천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용은 허탈해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어째서!! 왜!!
 용은 승천하면 곧바로 천계(天界)의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그동안의 노력을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고, 승천까지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옥황상제는 또 하나의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천계로 승천한 용이라면 그 증거로 여의주(如意珠)를 보여라!
 
 바로 그놈의 여의주가 문제였다.
 용은 옥황상제에게 ‘나 승천한 용이오!’라는 증거로 여의주를 가슴에 품고 승천했다. 그런데 그놈의 여의주가 산산이 흩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해서 용은 양쪽 발로 힘껏 감싼다거나, 입에 머금는다거나, 꼬리에 둘둘 만다거나, 비늘 아래 아무도 모르게 감춘다거나 하는 별별 짓을 다 해서 노렸지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여의주는 흩어지고 말았다.
 어째서 여의주가 흩어지는지 용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언제부턴가 자신이 쉬고 있는 쉼터에 한 인간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피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다.
 용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내 피가 만병통치약이었던가?
 인간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헛소문일 뿐이다.
 용은 인간의 눈물겨운 효심에 피를 주려고 했지만, 그랬다가 자신의 피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 용 체면상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인간의 부탁을 거절하고 말았다.
 결국 인간의 어미는 죽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매일같이 기도를 하던 인간이 어느 날부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눌러앉아 살기 시작했다.
 이유는 피 한 방울도 못 나눠주는 좀스런 용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용은 분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서 저 인간을 죽이면 더 좀스러워지겠지?
 결국, 용은 인간 마음대로 하라는 듯 내버려두고 자신은 어떻게 여의주를 온전한 상태로 가지고 승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자신을 잡겠다던 인간은 어느새 미련할 정도로 자신으로 인해서 영물이 되어버린 영물들의 내단을 과다 복용하여 신체가 불규칙적으로 변해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도 그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고 있었다.
 용은 그런 인간의 자손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인간의 자손들은 미련스럽게도 선조들의 전철을 밟았다.
 용은 인간들의 한심한 짓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밑에 있던 만년황금어(萬年黃金魚)를 보내 ‘여기는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니 당장 떠나라!’라는 경고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의 자손은 만년황금어를 잡아버렸다. 이에 용은 놀랐다. 아무리 인간의 자손이 영물들의 내단을 복용했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강할 줄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결국 태극만년금구(太極萬年金龜)를 급파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인간의 자손들은 태극만년금구를 잡아버렸다.
 용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최측근인 적음태혈사(赤陰太血蛇)까지 보냈다. 용은 믿었다. 적음태혈사라면 저 당돌하고 건방지며, 무식한 인간의 자손을 물리쳐줄 것이라고!
 하지만 믿음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용은 인간이 어째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마지막 남은 최측근, 괴물 문어에게 간간이 인간의 자손들이 영물들의 씨를 말려버리지 못하도록 훼방만 놓으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용은 어떻게 하면 여의주를 온전한 상태로 보관해서 승천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그러다 얼마 전에야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다른 존재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 존재는 인간이어야만 했다.
 
 ***
 
 “······?”
 -알겠지?
 용의 물음에 그는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용을 바라봤다.
 -알겠지?
 “그런데 그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거야?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어떻게?”
 용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멍청한 인간에게 그런 일을 맡겨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인간을 구할 수도 없었다. 물론 지금 물 밖으로 나가면 욕심 많은 인간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승천을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그런 인간과는 거래를 할 수 없다. 차라리 조금 미덥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인간이 훨씬 나았다.
 -네가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온다면 나보다 약한, 이제 갓 이무기 수준을 벗어난 용이 어디 사는지 알려주마. 원한다면 용을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도록 하지.
 용의 말에 그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모습을 여전히 못미덥게 바라보던 용은 인간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제아무리 영약을 밥처럼 먹었다고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무림인이라고 불리는 인간들과 만나게 되면 한순간에 죽어버릴 것임을 알기에 조금의 은혜를 베풀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간, 넌 운수대통한 줄 알아라.
 “······?”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용의 눈에서 사이한 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라?”
 자신의 몸을 감싸는 새하얀 빛에 그는 신기한 듯 몸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고, 이내 새하얀 빛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스스스······.
 새하얀 빛이 모두 스며들자, 그가 조금씩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배, 배가······!”
 단전으로부터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그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단전에서 시작된 극심한 고통은 온몸의 전신 혈도로 번져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악-!!”
 몸을 뒹굴거리며 죽어라 비명을 질러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용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인간으로서는 꿈도 꿔보지 못한 신체를 만들어주는 거니 잠자코 있어라. 끌끌끌······.
 용의 말대로 그의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외적인 부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내적으론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었다.
 몸의 모든 혈도가 막힘없이 뚫렸으며, 단전과 몸 가득 채우고 있던 영물들의 내단은 각각 양과 음의 기운으로 나뉘어져 몸의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륵!!
 신체의 오른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신체의 왼쪽의 피부가 갈라지며 얼음이 얼고 엄청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드득! 우드득!
 콰직!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뼈가 변화했다.
 북궁휘가 봤다면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그리고 생사현관(生死玄關)의 타통(打通)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 역사상 이 같은 경지를 이룩한 무인은 없었다. 아니, 인간으로서 환골탈태와 생사현관 타통을 함께 이룬다는 것은 골백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용이니까 이런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악-!!”
 그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든 말든, 용은 개의치 않고 누군가를 불렀다.
 -홍아, 청아.
 용의 곁으로 집채만 한 거대한 붉은 물고기와 같은 크기의 파란 물고기가 다가왔다.
 전설의 영물!
 극양지천어(極陽地天魚)와 극음지천어(極陰地天魚)!
 각각 태양금인어와 한빙만년인어가 이무기가 용이 되듯 도를 닦아야 진화할 수 있는 영물 중의 영물들이었다.
 극양지천어와 극음지천어를 바라보며 용이 말했다.
 -홍아는 뭉텅이로 된 종이 쪼가리 좀 가져오고, 청아는 삐죽한 쇳덩어리들 좀 가져와라.
 용의 말에 극양지천어와 극음지천어는 각각 어디론가 헤엄쳐 사라졌다.
 -욕심 많은 인간이 혹시라도 날 귀찮게 할지 모르니 바다로 나간 금아에게 미리 일러둬야겠군.
 이윽고 용은 또 필요한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4장 용이 베푼 은혜
 
 
 “이대로 물러나야 한다니······.”
 뱃머리에 선 북궁휘의 모습은 불과 며칠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백발(白髮)! 백미(白眉)!
 북궁휘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눈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단순히 그의 머리카락과 눈썹의 색깔만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풍기는 그의 기세도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일대 대종사(大宗師)의 기도가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백년거린어의 내단 덕분이었다.
 북궁휘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백년거린어를 잡아 내단을 복용했다. 무인이기에 영물의 내단 정도는 얼마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또 그 기운을 10할 모두 흡수하지 못하더라도 백년거린어는 눈에 차일 정도로 많았기에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약간은 조급한 북궁휘의 마음으로 인해 그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얗게 변해버리는 부작용이 일어났지만, 이미 무림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내공을 소유하게 된 그였기에 변화된 모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괴물 문어만 아니었어도······.”
 북궁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고, 그의 전신에선 가공할 살기가 폭출되었다.
 괴물 문어의 등장으로 인해 북궁휘는 더 이상 백년거린어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괴물 문어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 많던 백년거린어가 단! 한 마리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는 바람에 더 이상은 내단을 취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 번은 물속으로 직접 뛰어 들었다가 괴물 문어에 의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북궁휘는 더 이상 물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육지에서 괴물 문어와 싸운다면 이길지 몰라도 물속에서는 아주 조금도 승리할 가망성이 없는 무모한 싸움일 뿐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백년거린어는커녕 어떠한 영물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자 북궁휘는 잠시 물러나기로 마음을 먹고 섬을 떠나는 중이다.
 “연아.”
 “······.”
 북궁휘의 부름에 북궁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미운 거냐?”
 북궁연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가 말을 하지 않겠다니 더 이상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는 죽은 자일뿐이다. 그리고 나는 네 친오라비이자 앞으로 세가의 복수를 하고, 다시 일으켜야 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네가 누굴 생각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주었으면 하는구나.”
 이 말을 끝으로 북궁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북궁연의 기분을 달래주는 것보다는 뱃길을 기억했다가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세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지만, 세가의 모든 식솔들이 죽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은 그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지옥이 무엇인지··· 나, 북궁휘가 똑똑히 알려주마!’
 북궁휘의 전신에서 다시 한 번 살기가 폭출되었다.
 북궁연은 멀어지는 섬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녀는 북궁휘와는 다르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있다면 조금 더 초췌해졌을 뿐이다.
 북궁연은 북궁휘가 건네는 백년거린어의 내단을 단 한 번도 복용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였다. 자신의 오라비가 한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겉모습과는 다르게 천진난만하고 순순하기만 했던 그. 약해 보여도 괴물 문어 앞에서 조금도 물러섬이 없을 정도로 강인했던 그······.
 주르륵.
 북궁연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세찬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눈물을 훔쳐 달아났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북궁연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
 
 “이게 뭐야?”
 그의 물음에 용이 답했다.
 -겁 없이 내게 덤볐던 놈들을 죽이고 얻은 것들이다.
 용은 태연하게 답했고, 용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팔로용비검!
 약 8백 년 전,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절대검공!
 그는 팔로용비검의 비급을 대충 휘리릭 넘기곤 바닥에 집어 던졌다.
 툭.
 -······?
 인간이라면 그가 무림인이건 아니건 팔로용비검을 저런 식으로 던지진 못할 것이다. 비록 자신은 용이기에 시답잖은 칼질에 불과했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한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왜 그러냐?
 용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나 글 모르는데.”
 -······.
 그의 간단한 대답에 용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용은 그의 앞에 널려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글을 모른다니 어쩔 수 없지. 인간, 너는 정말로 천운이라도 타고 난 모양이구나. 끌끌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번뜩였다.
 번- 쩍!!
 흠칫!
 용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이자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눈에서 빛이 번뜩일 적마다 좋은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혹시라도 용이 또다시 이상한 짓을 벌이지 않을까 싶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이한 음성에 두 눈을 껌뻑였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제일식(第一式)!
 일룡천지비(一龍天地飛)!
 
 음성에 이어서 머릿속에서 하나의 영상이 그려진다.
 청년이 검을 들고 서 있다.
 청년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그의 발이 기이한 방향으로 땅을 밟았으며, 동시에 그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아니, 검이 허공을 갈랐다.
 번쩍!
 검으로 허공을 가르자 청년의 검에서 푸른 기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고, 그 기류는 이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용이다!
 청년은 한 자루의 검으로 용을 만들어냈다.
 청년이 검을 늘어트리고 섰다.
 용도 사라졌으며, 그의 몸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기세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제이식(第二式)!
 이룡진천뢰(二龍震天雷)!
 
 청년이 다시 검을 들었다.
 화아아악-!!
 청년의 전신에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보다 청년은 훨씬 어지럽게 보법을 밟아나간다. 그리고 청년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청년의 검에서 또다시 푸른 기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고, 그 기류는 용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두 마리의 용이다!
 두 마리의 용은 청년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서 나아갔고, 이내 사라졌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청년 역시 검을 늘어트리고 서 있었다.
 -끌끌끌······.
 용은 기이한 발걸음으로 허공으로 손을 휘젓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용의 배려로 총 9가지의 무공을 익혔다. 물론 그걸 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그가 익힌 무공들을 알게 된다면 웬만한 무인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로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무공을 익히면서 그는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환골탈태와 생사현관 타통이라는 무림사, 아니 인간사 전무후무한 일을 겪게 된 그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 있었다.
 모든 무공을 익힌 그에게 용은 말했다.
 -저기에 인간인 네가 사용할 만한 무기가 있으니 대충 아무거나 골라라.
 용의 말에 그는 한군데 모아져 있는 무기들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곤 얼굴을 살짝 찌푸리곤 말했다.
 “이거 다 녹이 슬었는데?”
 그의 말에 용이 귀찮다는 듯 답했다.
 -대충 닦아서 쓰면 쓸 만할 거다.
 “아··· 그래?”
 그는 이내 활짝 웃곤 무기들을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용을 잡기 위해서 그의 선조들은 모든 무기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어부라는 직업적 특성상 그물을 사용했다. 철로 이뤄진 그물, 그 사이사이에 낀 날카로운 단도들은 그물에 걸린 모든 것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황금잉어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의 선조들은 그물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렸다. 황금잉어에게도 통하지 않는 그물이 용에게 통할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선조들은 돌팔매질부터 시작해서 활, 몽둥이, 창, 칼, 단검, 심지어는 잡은 물고기의 비늘까지 날카롭게 갈아서 던질 정도로 모든 것을 두루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그런 무기술은 무림인들이 보면 코웃음 칠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그들의 상대는 고작(?) 물고기였을 뿐인데.
 “이거 괜찮은데?”
 그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웃었다.
 군데군데 녹이 슬었지만 손에 잡히는 무게와 쥐었을 때 느껴지는 전체적인 균형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거 가져갈게.”
 그의 말에 용이 대꾸했다.
 -많으면 좋으니까 몇 개 더 골라라.
 “아··· 그런가?”
 이후, 그는 한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도를 각각 하나씩 더 골랐다.
 -그것도 필요하겠군. 홍아.
 용의 외침에 극양지천어가 다시 다가왔다.
 -인간을 그곳으로 데려가라.
 극양지천어가 두 눈을 끔뻑이며 용을 바라봤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데려가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줘라.
 극양지천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수놈······.”
 극양지천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미약하지만 살기가 담겨져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용이 말했다.
 -홍아는 네가 함부로 상대할 수 없으니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따라가서 필요한 것들을 가지도록 해라.
 “응?”
 -가보면 필요한 것들이 있을 거다.
 용의 말이 끝나자 극양지천어는 유유히 헤엄을 쳐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고, 그는 급히 그 뒤를 따랐다. 검, 도, 창을 가슴에 품고서.
 
 “와아~!”
 극양지천어를 따라온 곳은 온갖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주 평범한 은자부터 반짝이는 황금, 각종 보석과 기이한 물건들까지. 그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마치 보물창고처럼.
 그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각종 물건들을 구경만 해대자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극양지천어가 말했다. 아니, 그의 머릿속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필요한 것만 골라라. 인간.’
 “어라?”
 이상한 빛깔을 뿌려대는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구경하던 그는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극양지천어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수놈, 네가 말을 한 거냐?”
 ‘무식한 인간. 네놈들이 말하는 수놈이니, 암놈이니 하는 구분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의 물음에 극양지천어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극양지천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굳이 자신과 말을 하지 않겠다는 수놈과는 자신도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뭐라고 하던지 간에 자신에게 있어선 그저 수놈일 뿐이었다.
 “그런데 뭐가 필요한 거지?”
 생각해보니 뭐가 필요한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주변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그의 모습에 웬만하면 참견을 하지 않으려던 극양지천어는 다시 말을 하고 말았다.
 ‘옷과 무기를 지닐 수 있는 물건. 그리고 인간 세상에 나가면 필요한 돈 같은 것을 골라라.’
 “아! 맞다!”
 환한 미소와 함께 그는 만지기만 해도 손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지는 비단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와아~ 이거 너무 좋은데?”
 입고 있던 넝마와도 다를 바 없는 옷을 훌훌 벗어버린 그는 이내 붉은색과 푸른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긁적긁적.
 “이 옷은 하나로 위아래를 다 입는구나! 어라?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찢어져 있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는 그.
 오른쪽 다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길게 쭉! 찢어진 옷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극양지천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암놈··· 그러니까 여자가 입는 옷이다.’
 극양지천어의 말에 그가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아! 그 여자가 이런 옷을 입는다는 거로구나!”
 그가 만난 유일한 여자, 북궁연을 생각하며 밝게 웃었다. 물론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아버지를 따라 섬을 벗어났던 적이 있지만, 워낙에 어렸을 적이라 여자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최소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배운 그였기에, 그는 히죽 웃으며 자신이 입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곤 그것을 곱게(?) 접어서 한쪽에 놓아두었다.
 “이건 남자 옷이지?”
 극양지천어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쳇!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는 이내 자신이 집어 든, 흰색과 검정색이 휘감듯 조화를 이룬 옷을 입었다.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였지만 본래 옷의 주인 역시도 그와 큰 차이가 없었는지 옷은 나름대로 잘 맞아 떨어졌다.
 이어서 그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파란 머리카락을 붉은 비단 옷을 찢어 묶었으며, 극양지천어의 도움으로 등에는 창을, 각각 오른쪽과 왼쪽 허리엔 검과 도를 착용할 수 있는 검대(劍帶)를 찾아 허리에 둘렀다.
 이후로도 극양지천어의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조언으로 인해 그는 필요한 많은 것들을 하나의 커다란 자루에 넣어 어깨에 짊어졌다.
 ‘돌아가자.’
 “그래!”
 극양지천어의 뒤를 따라서 그는 어깨에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다시 용에게로 돌아갔다.
 
 자신의 몸보다도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나타난 그의 모습에 용은 ‘끌끌끌’거리며 웃었다.
 -역시 인간의 욕심이란······.
 용이 뭐라고 하건 간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제 나 간다.”
 용이 물었다.
 -어디로 갈 거냐?
 “어? 그러니까··· 인간 세상으로!”
 급하다는 듯 몸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용이 말했다.
 -인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네가 그 욕심 많은 인간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인간 세상으로 나가면 그보다도 더한 일들이 네 앞에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너는 너무 순수한 인간. 더러운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잘 버틸지······.
 용은 처음으로 그를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런 용의 눈빛에도 그는 다부지게 외쳤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 어딜 가든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못할 일이 없다! 인간이란 무릇··· 에··· 무릇! 뭐든 다 할 수 있다!’라고 했어! 나는 얼마든지 잘 버틸 수 있어!”
 아버지가 했던 말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연해내는 그의 모습에 용은 피식 웃었다.
 -그래. 어차피 인간이 인간 세상에 나간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고, 있다 하더라도 응당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겠지. 내가 네게 해줄 말이라고는 두 가지 뿐이다.
 “두 가지?”
 그의 물음에 용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 하나는 네가 인간 세상으로 나가는 목적을 언제나 잊지 말라는 것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거다. 내가 네게 베푼 모든 것들이 그 목적을 위해서니, 너는 무슨 일을 하던 내가 네게 부탁한 일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물론이지!”
 자신 있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용은 나름대로 흡족한 눈빛을 띠었다.
 두 번째를 이야기했다.
 -그 두 번째는 인간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믿지 못할 것이 인간이다. 더군다나 너처럼 어수룩한 인간은 어딜 가든 욕심 많은 인간에 의해 이용당할 일이 많을 거다. 내 말을 명심해라. 너는 어딜 가든 인간을 쉽게 믿지 말거라.
 “음······.”
 용의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호의를 베풀었지만 북궁휘는 자신을 검으로 찔렀고, 심지어 이 연못으로 빠트려버렸다. 그가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이해할 순 없지만, 그 행동에 대한 이유는 후에라도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일이었다.
 ‘자고로, 사내라면! 은원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도 있었으니 반드시 북궁휘를 만나 따져야 한다.
 “이제 갈까?”
 용의 눈에서 푸른빛이 번뜩였다.
 그리자 이내 그의 몸을 백색 구체가 감싸 안았고, 그 백색 구체는 천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와아~ 신기하네!”
 감탄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용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네가 지닌 것들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마라. 내 존재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말 것이며, 네가 지닌 것들을 함부로 다른 인간들에게 보여주지도 마라.
 “어?”
 용의 마지막 말은 기묘한 기분이 들 정도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슈우우우우우웅-!!
 백색 구체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고, 순식간에 그는 수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야아아아아아아-!!”
 그는 재미있다는 듯 고함을 질러댔고, 정확하게 50일 만에 다시 나타난 그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반겨주었다.
 
 “······.”
 집으로 돌아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집 안을 바라보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곳이기에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 신비의 약물을 가져가야겠다!”
 혹시라도 인간 세상에 나갔다가 다치면 치료를 해야 한단 생각에 그는 여전히 어깨에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서 신비의 약물이 있는 곳을 향해서 뛰어갔다.
 번- 쩍!!
 눈 깜짝 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현천무영신법(玄天無影身法)!
 
 전설의 무림 3대 신법 중의 하나가 그의 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고 있었다.
 콰앙-
 “아아악-!!”
 너무나도 빠른 신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몸이 커다란 나무와 충돌하고 말았다.
 “아아··· 너무 아파!!”
 주르륵!
 쌍코피가 흐르는 코를 손으로 닦으며 그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바다에 도착하거든, 금구(金龜)를 불러라. 그러면 금구가 널 인간 세상까지 안내해줄 거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돌아올 적에도 바다의 그 어디서든 금구를 부르면 금구가 널 데리러 갈 거다.’
 
 “금구야아아-!!”
 그는 아주 커다란 소리로 바다를 향해서 ‘금구’를 불렀다.
 “어라? 또 불러야 하나? 금구··· 어라?”
 순간, 그의 눈앞에 금빛 물결이 눈부시게 차올랐다.
 번쩍! 번쩍!
 그리고 수면 위로 거대한 금빛을 뿜어내는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금빛 거북이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타!
 “어?”
 -빨리 타!
 그제야 그는 거북이의 등껍질 위로 뛰어올랐다.
 탁!
 -꽉 잡아!
 “어······!!”
 금빛 거북이는 신경질적으로 외치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등껍질 위에 멍하니 있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껍질을 단단히 부여잡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야아아아아아아아-!!”
 -젠장! 시끄러워!!
 금빛 거북이의 외침에도 그는 여전히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그는 인간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제5장 내 이름은······(1)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는 네 이름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답했다.
 “너무 좋아요!”
 “그래. 나는 솔직히 네가 우리 가문의 숙원을 반드시 이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이름을 지었단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 중 가장 대단하다 여겨지는 이름으로 지었단다. 너는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널 데리고 섬에서 나갔을 때, 나는 아주 놀랄 만한 소리를 들었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뭔데요?”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 머릴 쓰다듬으셨다.
 “헤헤······.”
 “무림에서 그 사람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고 하더구나. 해서 나는 그 사람과 네 이름을 똑같이 지었단다. 그러니 너는 그 사람처럼 아주 강한 사내가 되어야 한다! 알겠지?”
 “네!!”
 나는 그날, 내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고, 그런 대단한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고 감사했다.
 
 ***
 
 “고마워! 금구야~!!”
 -시끄러운 인간!
 “다음에 또 보자!”
 -젠장!
 멀어져가는 금빛 거북이를 보면서 그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금빛 거북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인간 세상, 즉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저벅저벅.
 약간의 기대와 설렘, 그리고 기쁨!
 “하하하하!!”
 그의 얼굴은 아주 행복해 보였다.
 
 복건성(福建省) 하문(廈門)의 저잣거리.
 저잣거리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물건을 팔려는 사람. 그리고 두 번째는 파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 마지막 세 번째가 저잣거리를 즐기며 구경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세 부류의 사람 외의 사람들도 아주 극소수 있을 것이다.
 “자자! 오늘이 아니면 이 가격에 살 수 없어요! 어서 와서 사요!!”
 스윽.
 “이건 뭔가요?”
 흠칫!
 “······!”
 커다란 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짊어진 사내.
 도대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파란 머리카락과 파란 눈동자의 아름다운 외모는 물건을 파는 상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이거?”
 끄덕끄덕.
 “이건 말이지······.”
 금구의 도움으로 복건성 하문의 근처 바닷가까지 올 수 있었던 그는 현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저잣거리까지 흘러들어올 수 있었다.
 저잣거리로 들어온 그는 온통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물어봤고, 그럴 적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혹시라도 그가 물건을 사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걸고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아아··· 그렇군요.”
 “내 잘생긴 자네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동전 십 문에 주겠네! 이 가격이면 거저야! 거저! 어때? 이 기회에 하나 장만해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사겠는가?”
 상인의 물음에 그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
 이내 몸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상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침을 튀겨가며 욕을 해댔다.
 “이런 빌어먹을! 뭐 저런······.”
 상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또 다른 상인에게 새로운 물건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을 물었다.
 “어머, 어머! 저 사람 좀 봐! 어쩜 저렇게 아름답게 생겼지?”
 “그러네!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데 저 커다란 짐은 뭘까?”
 저잣거리를 구경하던 동네 처녀들은 그의 아름다운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호들갑을 떨며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재 알게 모르게 저잣거리 사람들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긴, 난데없이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외모의 사내가 어울리지 않게 검과 도, 창을 지니고, 어깨엔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저잣거리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눈에 뜨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어느새 그의 외모에 이끌려 그의 뒤를 쫓는 동네 처녀들이 서너 명이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걸 알지도 못한 채,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어이!”
 “그러니까 이건······.”
 상인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그는 상인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왜 말을 하지 않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어이!!”
 “어라?”
 그는 그제야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고는 고개를 돌려보니, 3명의 건장한 청년이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우리 좀 보자.”
 “나?”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한 청년이 바닥으로 침을 ‘퉤!’ 뱉어내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그런 여기 너 말도 다른 놈 또 있냐? 뭐, 저렇게 재수 없게 생긴 새끼가 다 있어? 씨팔! 나 같은 놈은 죽기라도 하라는 소린가? 씨팔 놈의 세상, 정말로 불공평해서 못 살겠군!”
 두툼한 주먹코에 쫙! 찢어진 두 눈, 청년은 추남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큭큭큭! 네놈의 얼굴이 어디 인간의 얼굴이냐? 사실, 나도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어쩔 때는 네놈과 함께 다니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다. 큭큭!”
 “뭐라고?”
 말쑥하게 생긴 청년의 말에 추남이 얼굴 더욱더 일그러트리며 눈을 부라렸다.
 “아! 맞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게 뭔지 알아?”
 “······?”
 멀뚱히 서 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물어오는 그의 모습에 청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다 말상의 청년이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알고 싶냐?”
 “그래!”
 “따라와. 알려줄 테니까.”
 “그래!”
 고맙다는 듯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상의 청년은 물론, 그의 곁에 있던 두 청년들까지도 뜻 모를 웃음을 흘리며 저잣거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어머! 저 사람 큰일 났다!”
 “허! 하필이면 저 녀석들에게 걸리다니······.”
 “또 저놈들이군!”
 저잣거리를 주름잡는, 자칭 하문삼걸(廈門三傑)의 뒤를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얼굴로, 아니 오히려 좋아라 하며 쫓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 노파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쯧쯧쯧······! 어찌하누!”
 
 ***
 
 그와 하문삼걸이 만나기 약, 한 식경 전으로 시간은 되돌아간다.
 만평객잔 2층.
 쪼르르르······.
 삶의 의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으로 술잔에 술을 따른 여인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하문의 저잣거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앉은 자리는 만평객잔 2층에서 가장 좋은 자리였다.
 “하아······.”
 보는 이가 절로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여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여전히 하문의 저잣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초승달을 얹어놓은 듯한 고운 아미(蛾眉)와 그 아래 자리를 잡고 있는 봉목(鳳目). 그리고 얼굴의 균형을 바로잡듯 가운데 앙증맞게 솟아난 콧날과 붉은 입술은 전형적인 경국지색의 미인이었다.
 “꿀꺽··· 크으~!”
 화주의 독한 맛에 여인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곁으로 3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곤 곧바로 머리를 무릎까지 깊숙이 숙이며 외쳤다.
 “누님-!!”
 만평객잔을 뒤흔들 정도로 우렁찬 사내들의 외침에 여인은 또다시 아미를 찌푸렸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그들에게로 내던졌다.
 휙!
 “억!”
 퍽!
 재빠르게 고개를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번에 이마가 찢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누, 누님?”
 말상의 청년이 ‘왜 그러냐?’는 듯 여인을 바라봤다.
 “시끄러워!”
 여인의 외침에 사내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와중에 말상의 청년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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