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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톱스타의 킬링 필드 [E]

톱스타의 킬링 필드 1-1권

2017.10.25 조회 2,987 추천 20


 # 프롤로그
 
 가끔 잠에서 깨면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기분.
 “······.”
 오늘이 그랬다.
 
 ***
 
 탁!
 “후우···.”
 콜라를 단숨에 들이켠 나는 비어버린 캔을 소리 나게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원 샷을 한 탓인지 목구멍이 톡톡 쏘며 쓰라려왔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게 깨어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두통에 나는 이마를 감싼 채 생각에 잠겼다.
 ‘그건··· 대체 뭐였지.’
 여느 때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그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의 기억.
 그 꿈속에서 나는 킬러였다.
 15살에서 35살까지 장장 20년 동안 1000명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을 죽여 온 현대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고도 할 수 있는 베테랑 살인마.
 하지만 그런 나도 결국에는 회의감에 사로잡혔고 은퇴를 계획하다가 죽었다.
 그의 숨통을 앗아간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언제 어느 때든 가장 가까운 친인에게라도 진심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바로 나 자신의 조언대로 약해져버린 나의 등 뒤로 칼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배신감이 들 만한 상황이지만 나는 어떠한 반항도 없이 제자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이미 삶에 대해 많은 부분을 놓아버린 탓도 있었으며,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한 뒤늦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나는 영원한 안식을 찾아가지 못했다.
 
 <<HELL IS COMING>>
 
 “크흣!”
 플래시 효과처럼 떠오르는 글귀에 나는 신음을 머금었다.
 해석하자면
 ‘지옥이 다가온다.’
 라는 뜻을 지닌 글귀.
 그것은 지금까지로 이어진 사태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징조였다.
 “···제기랄.”
 여전히 더없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꿈의 기억에 나는 욕설을 머금으며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리고는 노트를 펼치며 펜을 집어 드는 것이다.
 “후우.”
 가벼운 호흡으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떨리는 손가락을 옮겨 새하얀 백지의 노트 위로 꿈의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살인마로서의 나. 그러니까 제자의 손에 당해 죽음을 맞이했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을 떴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못했던 괴상한 느낌이 드는 외딴 장소로부터』
 
 
 # 챕터 1. 지옥이 다가오다
 
 “······!!”
 어느 순간 깨어난 의식.
 어느 순간 비추어진 시야에 나는 당혹감을 머금었다.
 
 ···나는 죽은 게 아니었나?
 
 죽어서 지옥으로 왔다고 하기에는 느껴지는 감각들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무엇보다도 눈앞에 비추어지는 전경들은 뭐란 말인가.
 ‘여긴··· 유럽인가?’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원형으로 들어서있는 2~3층짜리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고딕 느낌이 드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따지자면 역시 유럽의 전경에 가장 가까운 느낌.
 하지만 나는 생각과 동시에 이곳이 결코 현실의 유럽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현대의 양식과 융합되어 있는 현실의 유럽과는 달리 눈앞에 비추어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18세기 말쯤의 도시 전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복장.
 건물 밖을 나와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18세기 말에나 입었을 법한 옷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확실히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는 건 알겠군.’
 결국 그런 결론에 다다른 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며 광장에 모여든 100여명의 사람들 사이로 다가갔다.
 “여, 여기는 어디죠?”
 “난 분명히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는데?”
 “아니, 그보다. 다들 본인 모습 그대로예요?”
 “무, 무서워!!”
 광장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모습의 군상들.
 그들은 하나같이 혼란에 빠져 저마다의 말들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만 이상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닌 모양이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들을 종합해보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 하나같이 죽음을 경험하기나 혹은 죽기 직전까지의 상황에 처한 상태였었다.
 그리고 모두가 스스로가 기억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몸에 들어와 있는 상황.
 ‘나도 바뀐 모양이군.’
 거울 같은 게 있어서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해본 건 아니었지만 눈높이의 차이와 보폭의 차이 같은 것만으로도 지금 움직이고 있는 몸이 예전의 내 것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적응하는 편이 좋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주변의 정보들을 빠르게 습득해가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그를 바탕으로 그 속에 녹아드는 건 나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바로 그때였다.
 
 [끼야아아아악―!!]
 
 “으아악!”
 “꺄악!”
 또 다시 들려오는 비명에 광장에 모인 모두가 귀를 틀어막으며 움츠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광장의 가운데에 위치한 분수대 쪽. 반사적으로 분수대를 향해 시선을 향하던 나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핏물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글귀가 낡은 분수대의 위로 선명히 새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 이즈 커밍?”
 새겨진 글귀는 영어였다.
 <HELL IS COMING>
 해석하면 지옥이 다가온다.
 “꺄악! 분수대 물 색깔이!!”
 누군가가 분수대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으헉! 저거 뭐야!!”
 “무, 무서워! 으흐흑, 엄마······!!”
 겁에 질린 여성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는 분수대의 물이 빠르게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
 ‘···정말로 지옥이 오는 건가!?’
 나는 이를 악물며 부지깽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익―!!]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분수대의 위에 새겨져 있던 글귀가 흩어지며 새로운 글귀가 떠올랐다.
 
 <지옥이 도달했습니다. 새벽까지 살아남으세요.>
 <살아남은 자에게는 보상이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경고의 메시지. 그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곧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악! 이, 이게 뭐야!!”
 “꺄악! 미, 밑에 뭐가 있어요. 뭐가 내 발목을··· 꺄아아악!!”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내며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물러섰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그어어어······!!”
 땅바닥에서부터 솟구쳐 나와 사람들을 발목을 붙잡고서 엉겨 붙는 흉측한 모습의 괴물체를.
 마치 사람을 붙잡아 피부만을 도려낸 것처럼 시뻘건 피막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한 괴물체는 인간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 부위에는 눈, 코, 귀 어떤 것도 없이 오로지 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얼굴 그 자체가 입이었다.
 “누, 누가 좀 이거 좀 떼어 줘! 누가 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서서히 기어오르는 괴물의 모습에 붙잡힌 남자는 기겁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그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저리 가! 저리 가라고!!”
 퍽! 퍼억!
 도움을 요청하는 와중에도 남자는 발작적으로 괴물을 걷어차며 떼어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괴물은 머리통이 차이면서도 끈질기게 붙잡은 다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허벅지까지 기어오른 괴물이 얼굴 부위 전체를 덮는 크기의 입을 쩌억 벌리며 그 안에 불규칙하게 박혀진 톱니 같은 이빨들을 드러내는 순간!
 콰직―!!
 “끄아아아아!!”
 살점과 뼈가 통째로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자정이 지나면 더 큰 재앙이 다가오니 주의하시길>
 
 마지막으로 새겨진 글귀와 함께,
 “끄아아악!”
 “꺄아아악! 사, 살려주세··· 꺼흑!!”
 “제, 제발 누가 좀! 아, 안 돼! 끄아아악!!”
 겹쳐진 수십여 개의 비명소리와 함께 지옥이 시작됐다.
 메시지의 경고처럼··· 어느새 지옥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
 
 “으아아아~!!”
 누군가는 패닉에 빠져 주저앉아 비명만을 질러댔다.
 “도, 도망쳐!!”
 누군가는 눈앞에서 사람들이 괴물에게 뜯어 먹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제일 먼저 등을 돌려 달아났다.
 “어떡해···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도망치지도 도우러 가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이건 꿈일 거야. 그래. 지독한 악몽일 뿐이라고.”
 현실을 도피하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이들.
 그것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지옥이라.”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나한테는 잘 어울리는 장소네.”
 얼음장보다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면서.
 “나 같은 살인마에게는 딱 좋은 장소야.”
 부지깽이를 움켜쥔 채로 나는 희생자의 다리를 뜯어먹고 배를 갈라 내장기관들까지 뜯어먹기 시작한 괴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흐읍!”
 푸욱―
 부지깽이의 뾰족한 부분이 괴물의 뒤통수를 꿰뚫으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대로 부지깽이를 휘저어 안쪽에 걸리는 모든 것을 헤집어놓은 나는 거침없이 부지깽이를 뽑아냈다.
 “케헥······.”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허물어지는 괴물.
 “다행히 불사의 괴물 같은 건 아닌 모양이네.”
 부지깽이 끝에 묻은 끈적한 검은색의 액체.
 마치 타르와도 같은 점성을 띈 괴물의 피와 뇌수를 힐끔 쳐다본 나는 다음의 타깃을 향해 발걸음을 향했다.
 푸욱―
 “케르륵······.”
 이번에도 부지깽이는 괴물의 뒤통수를 손쉽게 꿰뚫고 들어갔다.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킬러 일을 해왔던 솜씨가 발휘되었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괴물의 머리통이 지닌 내구도가 그리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있는 힘껏 찔러 넣기만 하면 충분히 파고들 수 있을 만큼 괴물들의 머리통은 무른 편이었다.
 푸욱― 퍼걱―
 빠각―
 나는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며 식사에 심취한 괴물들을 끝장냈다.
 “제, 제길··· 나도!!”
 “이 괴물 새끼가!!”
 괴물들을 처치하는 나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는지 몇몇 남자들이 어디선가 찾아온 나무막대나 쇠꼬챙이 같은 것을 들고 괴물들의 머리통을 박살내거나 꿰뚫어 헤집었다.
 그렇게 여러 명이 달라붙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괴물에게 붙들렸던 이들 중 절반은 구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나머지 절반은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괴물들이 자신이 붙잡은 대상 외에는 주변에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용기를 낸 이들이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이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에야 사람이 되었든 괴물이 되었든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모두 죽였어! 저 괴물 새끼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
 “하, 하하하! 꼴좋다 이 괴물 새끼들아!!”
 잔뜩 흥분된 상태로 손에 쥔 무기들을 휘둘러대던 남자들이 씩씩대며 호기를 부렸다. 그런 사내들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
 “그, 그럼··· 이제 끝난 거예요?”
 지켜보던 여자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다.
 아까 제일 먼저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던 소녀였다.
 “···끝난 거 아닐까요?”
 소녀의 질문에 꼬챙이를 들고 있던 남자가 광장 곳곳에 널브러진 괴물들의 시체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는 어정쩡하게 말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확신하지 못하는 그 대답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 것 같군.’
 벌써 시체들의 틈바귀 속에서 시작된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나는 늘어뜨리고 있던 부지깽이를 다시금 치켜들며 각오를 다졌다.
 “히이익! 시, 시체가!!”
 누군가의 비명과 동시에 쓰러져 있던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의 시체가 아닌 희생자들의 시체가 말이다.
 뚜둑, 뚝, 뚜두두둑―
 관절이 뒤틀리는 거북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선 시체들은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단순히 ‘좀비’ 라는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한 기괴함이 있었다.
 인간의 몸을 매개체로 일어난 것들이 온통 엉망으로 어그러져서 인간의 형태를 벗어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크헤에에―!!”
 “큐휘이이익―!!”
 일어선 상태에서도 몇 번이나 뒤틀리며 완전히 일그러진 모습으로 탈바꿈한 시체들이 일제히 끔찍한 포효를 터뜨린다.
 성대가 불타버린 사람의 그것처럼 어딘가 새는 듯한 비명소리.
 “어, 허윽······.”
 “···히익!?”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던 남자들이 시체를 넘어서 또 다른 무언가로 변모한 존재들의 모습에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더 심한 공포에 물들어버린 상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한없는 기괴함으로 변해버린 시체들의 모습은 단지 그 존재감만으로도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어. 이러다간 여기서 다 죽고 말거야.’
 어느새 사람들의 속에 숨어든 나는 틈을 노리고 있었다.
 아까 전 손쉽게 쓰러뜨렸던 괴물들과는 달리 지금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진 바 정보가 없으니 일단은 희생자를 내세워서라도 대응책부터 강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대로라면 정보 습득은커녕 모조리 도망도 못 치고 몰살이었다.
 “···어쩔 수 없나.”
 자정이 넘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친다는 말을 고려해보면 지금 눈앞에 녀석들은 당장에라도 처리를 해두는 편이 유리할 테지만 그 이전에 사람들이 모두 다 죽어버리면 나로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한없이 줄어들게 된다.
 “후읍.”
 결국 마음을 결정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모두 집안으로 도망쳐요!!”
 외침과 함께 나는 제일 먼저 등을 돌려서 잠에서 깨어난 건물 쪽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먼저 선을 보이는 것이었다.
 인간은 손쉽게 분위기에 휘말리고 선동되는 동물이니까.
 특히나 지금처럼 스스로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말이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꺄악! 밀지 마요! 아아악!!”
 누군가가 외친 소리를 기점으로 겁에 질려 굳어있던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큐에에엑―!!”
 “퀴헤에엑―!!”
 달아나는 먹잇감들의 모습에 잔뜩 흥분하며 쫓아오기 시작하는 존재들.
 잔뜩 뒤틀려진 채로 덜렁거리고 있으면서도 평범한 인간이 달리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시체괴물들은 손쉽게 후미에 있던 인간을 따라잡아 덮쳐들었다.
 푸우욱―
 “꺼헉!”
 양옆으로 벌어져서 갈비뼈가 헤집어진 시체괴물 복부로부터 손목 굵기의 가시가 치솟아 오르며 넘어뜨린 희생자의 등을 꿰뚫었다.
 어떤 녀석은 덜렁거리는 머리로부터 토해낸 산성 점액질로 희생자의 머리부터 녹이기 시작했으며, 어떤 녀석은 가슴팍 전체가 통째로 벌어지며 갈비뼈들을 이빨 삼아 희생자의 몸을 통째로 씹어댔다.
 통일성 없이 제각각으로 변해버린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사냥 모습.
 도주하면서도 시체괴물들이 희생자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나는 선두와 중위권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집안 쪽으로 달아난 것을 확인하고 건물의 문을 닫아걸었다.
 “끄아아악!!”
 “살려줘! 제발! 아아악!!”
 문 밖에서는 계속해서 처절한 비명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 주변에 있던 탁자와 의자 등을 가져와서 문 앞에 어지럽게 늘어놓았다.
 만약에 시체괴물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서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최소한 시간을 지체시키기는 해야 할 테니까.
 “일단 이 정도면 됐나?”
 서로 복잡하게 얽혀 들어서 완벽한 바리케이트의 형태로 변해버린 탁자와 의자들을 쳐다본 나는 곧장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광장이 보이는 창가로 다가가자 여전히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분수대 근처의 전경이 보였다.
 푹, 푸극, 푸가각―
 콰직, 콰드득―
 이제 숨이 끊어진 사람들이 시체 괴물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먹잇감의 의미로써 사람들을 공격하던 처음의 괴물들과는 달리 시체 괴물들은 오로지 살육이라는 목표만을 띠고 있는 듯했다.
 ‘아래쪽에 있는 시체는 대략 20구정도. 시체 괴물들의 숫자도 딱 그쯤이니까··· 피해자는 절반쯤인가?’
 분명 지옥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 모여들었던 인원은 족히 100명은 되었었으니까.
 “큐휘이이익―!!”
 “크헤에엑―!!”
 희생자들을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린 시체괴물들이 차례로 고개를 들며 포효를 터뜨린다.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위한 탐욕의 포효.
 하지만 나의 경고가 제 역할을 한 탓인지 이제 광장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큐히이이······.”
 “퀘헤에에······.”
 시체괴물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냥감이 없자 나지막한 신음만을 흘리며 잦아드는 모습이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만 않으면 일부로 찾아들어가서 사냥을 하려고 들지는 않는 모양.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네. 하지만··· 이대로 과연 새벽까지 버틸 수 있을까?’
 2층 창가에 기대어 비스듬히 광장의 모습을 보며 나는 초조함에 말라붙은 입술을 핥았다.
 ‘최종 목표는 새벽까지 버티는 것. 그러면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될 것 같지만··· 메시지는 자정이 지나면 더 큰 재앙이 다가온다고 했었지.’
 지금의 상황만 해도 까딱 잘못하면 끝장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저기에 더 큰 재앙이 더해진다면?
 “절대 못 버텨.”
 그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짙은 공포에 물들고 말았으니까.
 피와 죽음에 가깝게 살아온 사람도 막상 공포에 젖어들고 나면 제 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헌데 척 봐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이 지옥을 버텨낼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무리였다.
 “최소한 써먹을 수 있는 무기라도 있다면······.”
 나는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며 허전한 맨손을 내려다보았다.
 부지깽이는 도주하던 도중 뒤로 집어던져서 시체괴물의 습격 속도를 늦추는데 사용해버렸다.
 그렇게··· 곧이어 다가올 비관적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1시간이 경과했군요. 잘 살아남았습니다. 자격을 얻은 이들에게는 그에 응하는 선물이 있답니다.>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선명한 글귀로 새겨졌다.
 그리고······.
 
 <무기를 선택하세요.>
 <단, 선택은 한 가지만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귀와 함께 눈앞으로 거짓말처럼 여러 개의 실루엣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환영처럼 일렁이는 듯하다가 이내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며 실체화 되는 물체들.
 그것은 다름 아닌 무기였다.
 검, 창, 도끼, 단검, 망치, 활 등등 다양한 무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둔 채로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나쁘지 않군.”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당최 어떻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판을 만들어낸 존재는 그저 살육을 즐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단순한 살육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무기까지 준비해 줘가며 틈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한껏 발악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시점에 뭐라도 무기를 쥘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암살이라면 단검을 쥐었겠지만······.”
 다양한 무기들을 두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창을 선택했다. 늘어서 있는 무기들 중에 가장 사정거리가 길면서도 다루는 방법이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가장 안전한 건 활이었으며, 나라면 그것을 능숙하게 다룰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화살처럼 제한이 있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창을 선택하자 나머지 무기들은 처음 등장했던 것처럼 일렁이며 실루엣의 형태로 변하더니 이내 공기에 녹아들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무기들이 사라지자 또 새로운 글귀가 눈앞에 새겨지며 떠올랐다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것을 슬쩍 흘겨본 나는 손에 들린 창을 내려다보았다.
 창날부터 창대까지 묵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디자인의 창.
 “제법 묵직하네.”
 창은 아무래도 창날부터 창대까지 전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 했다.
 쉭― 쉬이익―!!
 몇 번 허공에 창을 휘두르고 가상의 타깃에 찔러 넣는 행위를 해보던 나는 곧 만족스러운 감각을 잡아낼 수 있었다.
 주력으로 사용하던 무기들과 사용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익숙해지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떡한다?”
 손에 쥐어진 창의 무게 때문일까. 아까 전보다는 훨씬 마음에 여유가 생긴 나는 광장을 점거한 채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시체괴물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굳이 무기까지 주었다는 것은 분명 그것을 사용하라는 의미일 터.
 “결국은 저 녀석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건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리를 스친다.
 아까 전 도주하며 살펴보았던 놈들의 운동능력을 고려해보면 무기씩이나 들고 처치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문제는 놈들의 숫자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거나 하면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마찬가지로 무기를 얻게 되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문을 열고 나와서 반대로 이쪽에서 시체괴물들을 다굴 치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창가 옆에 기댄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결국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눈을 감고 행하는 이 의식은 온 몸의 근육과 그것을 잇는 혈관의 세포 하나까지도 빈틈없이 전투모드로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후우우···.”
 다시 눈을 뜬 나는 소리 없이 창문을 열어젖히며 그 위로 올라섰다.
 “!?”
 비스듬한 각도의 베란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여자가 시선을 마주치고는 눈을 크게 치켜떴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서 시체괴물들의 동태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타닥―
 “큐히익?”
 미세하게 발생한 소음을 정확하게 캐치하고서 돌아보는 시체괴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놈들은 시각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은지 내가 자세를 낮춘 채 가만히 있자 금세 흥미를 잃고서는 다시 비틀대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휴우··· 일단 시작부터 망하진 않았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서히 자세를 바로 하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위로 올려보았다. 그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뭐라 뭐라 입술을 뻐금대며 말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괴물들의 소굴로 뛰어내린 내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아주 미친놈처럼 보이는 모양.
 ‘사실 미친놈이 맞긴 하지만, 쿡쿡.’
 가볍게 실소를 머금은 나는 시체괴물들의 동태를 파악하며 돌진의 자세를 취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시체괴물들의 숫자는 약 20마리 정도.
 그 중에 10미터 내외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시체괴물은 5마리 정도였다.
 나머지 녀석들은 광장 중앙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거나 그 반대편의 가장자리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상태.
 ‘즉, 당장 상대해야할 숫자는 5마리 정도라는 뜻이지.’
 그렇다는 것은 타이밍만 잘 잡으면 꽤나 우세한 싸움을 이어가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가 약점인지는 대강 감이 오니까.’
 기괴한 형태로 뒤틀려져 있으면서도 시체괴물들의 몸에는 분명 숙주가 된 인간의 머리통이 매달려 있었다.
 물론, 그곳이 약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은 해보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부디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쓴웃음을 지어보인 나는 창끝을 전방으로 향하며 타깃을 선정했다.
 선정된 첫 번째의 타깃은 현재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그나마 인간의 형태가 가장 덜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모습의 시체괴물.
 번뜩―
 시체괴물을 노려보자 자동으로 노리는 지점인 머리통이 클로즈업이라도 된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와져 보인다.
 두근두근―
 스스로의 심장박동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려오며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온몸의 신경기관들이 저절로 흥분하며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타깃을 노리는 시선과 변수마저 계산하는 머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후우······.”
 짧은 순간 모든 계산을 끝낸 나는 잠시나마 참아왔던 호흡을 길게 토해냈다.
 그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성대던 시체괴물이 방향을 전환하며 분수대가 있는 방향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지면을 박찼다.
 타다다닷―
 “큐헤엑―!!”
 달려가는 소리에 시체괴물이 곧장 돌아보며 반응한다.
 하지만,
 “흐읍!”
 푸우우욱―
 이미 쏘아진 창날은 시체괴물이 반응을 할 틈도 없이 놈의 머리통을 꿰뚫고 있었다.
 관통과 동시에 그대로 굳어지며 파들거리는 시체괴물.
 곧 힘없이 허물어지는 시체괴물의 모습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빙고!’
 도박에 가까운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러면 할 만해지지.”
 허물어진 시체괴물을 짓밟고서 창을 회수한 나는 곧장 몰려드는 시체괴물들에게서 맞서서 달려갔다.
 현재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체괴물은 4마리.
 나는 먼저 그중 선두에 있던 녀석의 머리통으로 창을 찔러 넣었다.
 쐐애애액―
 푸각―!!
 이번에도 단숨에 머리통을 꿰뚫는 창날.
 나는 그 상태로 창을 휘저어 시체를 옆으로 던져버리며 창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코앞까지 다가온 시체괴물의 공격을 침착하게 창대로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밀어젖혔다.
 “큐헤에엑―!!”
 쿠당탕탕―
 균형을 잃고서 밀쳐진 시체괴물이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어진다.
 그사이 또 코앞까지 접근한 시체괴물의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스텝을 밟아 경로를 벗어나며 창대를 짧게 움켜쥐었다.
 푸우욱―
 지나쳐가는 시체괴물의 관자놀이를 향해 정확하게 쏘아진 창날이 놈의 머리를 고스란히 헤집는다.
 이걸로 3마리째 사살.
 나는 서두르지 않고 뒤이어 달려드는 시체괴물을 향해 회수한 창을 다시 뻗어냈다.
 퍼걱―
 이번에도 창날은 정확히 시체괴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치 10년 이상은 이 짓만 해온 것처럼 정확한 솜씨.
 ‘창술 같은 걸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디아틀로스의 훈련 과정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물이든 무기로써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니까.’
 대체재로써 나무막대나 강철봉 같은 것은 꽤나 자주 다루어 보았었다.
 “큐헤엑! 퀘헥!!”
 “시끄러워!”
 푸우욱―
 밀쳐져 나뒹굴었던 시체괴물까지 침착하게 제거한 나는 벌써 5미터 안쪽까지 다가든 나머지의 시체괴물들을 응시했다.
 “큐휘이이익―!!”
 “크헤에엑―!!”
 “퀘헤에에―!!”
 흉측한 몰골만큼이나 위협적으로 달려 들어오는 괴물들.
 “역시 좀 후달리긴 하네.”
 뒤늦게 꺼내어보는 후회의 말.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결국에는 늦는 법이었다.
 “허무하게 당해줄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며 창끝을 전방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쉬익― 푹!
 미세한 바람소리와 함께 쏘아진 화살이 선두에서 달려들던 시체괴물의 미간에 정확히 박혀들었다.
 “!!?”
 살짝 놀란 표정으로 화살이 날아든 경로를 쳐다보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베란다에 서서 활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잔뜩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그것에 무너지지 않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모습.
 “저, 저도 도울게요!!”
 힘겹게 외치는 여성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군.’
 입가에 미소를 매단채로 나는 시체괴물들이 달려드는 방향의 좌측으로 빠르게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공중에서의 화살 지원이 붙은 이상 굳이 시체괴물들의 속으로 뛰어들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도망치면서 침착하게 하나씩.”
 방침을 결정한 나는 일종의 카이팅(게임 용어로써 자신의 사거리를 고수하며 이득을 보는 방법)을 하기 시작했다.
 기괴한 몸의 형태를 지닌 만큼 방향전환에서만큼은 느릴 수밖에 없는 시체괴물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수직이나 대각선의 방향으로 피해가며 다시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사정거리의 안쪽으로 들어온 녀석은 착실히 머리통을 꿰뚫어 주었다.
 쉬익― 푹!
 빠악! 퍼거억―
 돕겠다며 나섰던 여자의 활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계속해서 타깃이 움직이고 있는 난전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화살 3발에 하나 정도는 정확히 시체괴물의 머리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처치한 시체괴물이 벌써 9마리 째.
 이제 남은 시체괴물은 기껏해야 6마리뿐이었다.
 “윽! 저 이제 화살이 다 떨어졌어요!!”
 베란다 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정도면 이제 괜찮았다.
 예상치보다 훨씬 빨리 머릿수를 줄일 수 있었던 탓에 아직 체력에 여유도 충분했으며 카이팅이 완벽하게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고작 6마리 정도의 시체괴물을 더 처치하지 못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고 슬슬 물타기를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제길! 나도 싸우겠어!!”
 “그래! 남자가 가오가 있지!!”
 여태껏 쥐 죽은 듯이 건물의 안에 숨어있던 이들 중 일부가 마치 들으라는 듯 커다란 목소리로 호기를 드러내며 속속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각각 검이나 창, 도끼 따위를 들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이쯤 되면 나서도 위험해지지는 않겠다는 계산이 선 뒤에야 나온 약삭빠른 행동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나서줌으로 인해서 내가 해야만 할 수고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될 테니까 말이다.
 “히야압!”
 “흐압!!”
 시체괴물들의 시선에 나에게로 향해있는 사이 뒤에서 달려든 남자들은 저마다 기합을 내지르며 들고 있는 무기들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푹! 퍼걱!
 푸각! 콰드득!
 지금껏 쭈욱 내가 하는 것을 봤을 텐데도 머리통을 노릴 생각은커녕 무기에 힘을 제대로 싣지도 못해서 엉망진창인 공격들이었지만 역시 다굴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칼이 괴물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고, 창이 박혀들어 균형을 무너뜨리며, 도끼나 망치 등이 휘둘러지며 맞닿는 부위를 박살내는데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큐히익··· 퀘헥!!”
 “퀘히이익···!!”
 그렇게 남은 6마리의 시체괴물들은 나와 사람들의 협공(?)에 당해 순식간에 다시 시체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두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괴물들치고는 다소 허무한 최후였다.
 ‘어차피 이건 맛보기일 뿐이겠지만.’
 혹시나 다시 괴물이 일어날까 연신 무기를 휘둘러가며 시체를 아예 곤죽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창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냈다.
 
 ***
 
 “······.”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광장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여기저기 널린 괴물들과 희생자들의 시체가 구석진 골목의 그림자 속으로 치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광장의 중앙으로 생겨난 테이블들 때문이었다.
 시체들은 다 치워냈지만 여전히 끔찍하게 남겨진 참상의 흔적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워진 광장으로 무거운 적막만이 내려앉았을 때였다.
 <1시간이 경과했군요. 잘 살아남았습니다. 자격을 얻은 이들에게는 그에 응하는 선물이 있답니다.>
 <히든! 공포에 굴하지 않고 용감히 맞서 싸워 이기셨군요? 그에 대한 대가로 살아남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강해지며 최고 수훈자에게는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새롭게 허공으로 새겨지는 메시지와 함께 광장의 중앙으로 아지랑이와 같은 일렁임이 생겨나는가 싶더니 이내 수 없이 많은 요리들이 놓인 기다란 테이블들이 나타났다.
 제대로 된 냄새와 열기까지 지닌 먹음직스러운 요리들.
 호텔 뷔페를 연상시키는 그 유혹적은 모습에는 지금껏 쌓여온 공포마저 잊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눈앞에 음식을 두고서도 제대로 먹지 못 했지만 늘 그렇듯이 누군가 스타트를 끊자 다들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릇을 들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식들을 마구 담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족히 50명은 되는 인원이 모여 있음에도 어떤 대화도 없이 식사에만 열중하는 기이한 광경.
 ‘숨 막히는 분위기네. 뭐, 시끄러운 것보다는 이편이 낫겠지만.’
 잔뜩 채워진 콜라 한 잔과 치즈버거만을 움켜쥔 채 구석에 틀어박힌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미국 본토 특유의 치즈버거의 맛을 입속으로 굴리며 입술을 핥았다.
 “···다들 괜찮나요?”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이 들어차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것일까. 눈치만 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족히 190센티는 되어 보이는 장신에 몸의 균형까지 제대로 잡혀있는 건장한 체구의 잘생긴 사내.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 역시도 본래 그 자신의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컸지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시선을 끌며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본래의 모습도 못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일순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사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갑자기 모두 절 쳐다보니까 좀 떨리네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서로 한마디도 없이 어색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거기까지 말한 뒤 사내는 모두를 돌아보며 반응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뚜렷한 어조로 말했다.
 “우선 통성명부터 하죠. 전 송유찬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5살이고요. 부끄럽지만 아이돌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죠.”
 “에? 아이돌이요?”
 아직 20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물었다.
 “네.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델크러쉬라는 그룹의······.”
 “꺄아앗!!”
 “뭐, 뭐야! 왜 그래?”
 갑작스런 소녀의 비명에 옆에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송유찬을 보며 말했다.
 “진짜 유찬 오빠 맞아요? 정말로?”
 의심을 하면서도 솟구치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
 맞다고 대답이라도 했다가는 아예 기절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지만, 그런 소녀의 기대는 단지 바람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잠자코 있던 한 사내가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180센티 정도의 키에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는 체구의 근육질 사내.
 그 역시도 뒤늦게나마 뛰어들어 시체괴물들을 공격하던 소위 ‘용기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확실히 그러네요.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겠죠. 하지만 통성명은 해두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아, 참고로 전 정말로 델크러시의 리더 송유찬이 맞답니다. 그쪽은요?”
 다소 공격적인 사내의 말에도 송유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 사내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답했다.
 “나는 김장혁. 나이는 31살이고. 전문 헬스 트레이너였다. 그리고······.”
 “그리고?”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했다.”
 “!!”
 담담하게 내뱉어간 김장혁의 고백에 모두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단순히 그가 자살을 했다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내가 죽은 뒤에 깨어났듯이 여기에 모인 이들도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차 사고가 났었어······.”
 “저, 저는 공사현장에서 발을 헛디뎠었는데······.”
 “······전 욕조에서 손목을 그었었어요.”
 하나 둘씩 나오는 사람들의 고백.
 잠자코 듣고 있던 송유찬이 말했다.
 “역시 그렇군요.”
 “···!?”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저희는 죽은 것 같네요. 저는 멤버들이랑 일정을 가던 도중에 사고로 차가 전복되었었거든요. 그래서 눈을 떴을 때는 영락없이 병원인가 싶었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송유찬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모두의 입도 똑같이 다물어졌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깨어나면서부터 죽었었다는 걸 인식했던 나와는 달리 모인 대부분의 이들은 이제야 죽기 직전의 상황을 기억해낸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저는 그냥 평범하게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었는데?”
 스스로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다소 억울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심란한 얼굴을 한 채로 생각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들을 관찰하며 나는 잠자코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야기만 해도 대강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
 ‘그럼 정리를 해보자면······.’
 
 첫째. 우리는 모두 죽었다. 하지만 죽게 된 이유는 제각각인 듯하다.
 
 둘째. 우리는 모두 본래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몸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대부분은 유럽계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흑인이나 황인종도 있는 것으로 보아 획일화된 기준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셋째. 정확히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빙의’가 된 우리들은 현 시점의 몸을 갖게 된 나름의 특성이 현실로부터 반영이 된 듯하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비쩍 마른 몸에 눈 밑에는 다크서클까지 짙은 이런 폐인 같은 몰골의 몸에 들어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짱 아이돌이라던 송유찬과 헬스 트레이너였다던 김장혁 등의 경우를 보자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추측일 뿐이지만.”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나는 생각을 이었다.
 “넷째는···.”
 잠시 말을 멈추며 나는 시체들을 치워둔 어두운 골목길 쪽을 쳐다보았다.
 
 넷째. 우리는 현재 지옥과 마주한 상황이며, 이것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글귀의 내용대로라면 일단 새벽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모양이지만, 그걸로 끝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애초에 새벽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거기까지에서 생각을 멈춘 나는 다시 광장의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덧 상념에서 깨어나 어색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무언의 교류가 오가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꺼내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봤자 별다른 시원한 해답 같은 것이 나올 리는 없었다.
 ‘딱히 새로운 내용이 나올 리도 없고.’
 상황은 정확히 내가 정리한 네 가지의 범주 안에 모든 것이 속해 있었다.
 그럼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역시 생존이겠지.”
 다시금 되돌아온 결론에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어깨에 기대어 둔 창대를 의식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
 
 저마다 의견을 교환하던 사람들은 결국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본래대로 흩어졌다.
 아이돌 리더 출신이라던 송유찬이 주도적으로 나서며 사람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 정도의 연륜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나서기에 앞서 송유찬은 제일 먼저 내게 도움을 요청했었지만 나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거들어 줬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었겠지만··· 의미 없이 짐덩이를 안을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의 시점에 송유찬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짐덩이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그가 아니라 누구라고 할지라도 살아남은 이들 중 앞으로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쓸모가 있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대상이라면 아까 시체괴물들을 처치할 때 발코니에서 지원사격을 해주었던 그 소녀 정도일까?
 얼핏 듣기로 윤손하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이제 막 20살이 되는 새내기 대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양궁을 했었다고 했다.
 선수가 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평범한 대학교를 지망했다고 했지만, 한국의 양궁 수준을 보면 그 정도의 경험만으로도 일정 이상의 활솜씨를 보여주기엔 충분하리라.
 ‘무엇보다도 저 여잔 강단이 있으니까.’
 내가 그녀를 높게 쳐주는 이유는 그녀가 지닌 활솜씨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나를 돕기 위해 나서서 정확히 괴물의 머리를 겨냥해서 쏠 수 있는 침착함과 대담함 때문인 것이다.
 모두가 겁에 질려있던 상황에서 나섰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그 와중에 시체괴물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머리통을 겨냥해서 쏘아댔으니까 말이다.
 ‘저기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 있는 얼치기들과는 확실히 다르지.’
 거의 상황이 다 끝나고 나서야 튀어나와 숟가락만 얹어놓고 진정한 남자인양 거들먹거리는 머저리들과는 레벨부터가 틀린 것이다.
 ‘스카우터 놈들이 보면 좋아했겠군. 지금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지만.’
 일단 죽었다는 것이 확실한 시점에서 생전의 일에 대해 떠올려봤자 무소용이었다.
 약간의 관심.
 딱 그 정도에서 윤손하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한 나는 서서히 자정으로 가까워져가는 시간을 가늠하며 곧이어 다가올 ‘더 큰 재앙’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
 
 다행히도 식사시간은 방해되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아남았던 모두는 더 없이 만족스럽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뭉쳐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저마다 조금씩 무리를 지어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은연중에 무리의 리더역을 맡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 번씩은 나를 찾아와 영입제안을 했고, 걔 중에는 빼어난 미모를 이용해 미인계를 펼치는 여성도 있었지만 모두 다 거절당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여러 가지의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져 어느새 자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광장의 동쪽에 위치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매달린 시계의 분침이 시시각각 12라는 숫자를 향해 가까워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정까지 이제 겨우 몇 분 정도만이 남겨진 상태에서 이제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무리를 이룬 채로 건물의 내부로 대피한 상태였다.
 최대한 가까운 건물들로 자리 잡고 옥상이나 창문을 통해 판자를 연결시키는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를 한 것이다.
 그곳 어디에도 다가올 재앙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생존을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썩 나쁜 대응은 아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조금은 외롭네. 큭큭.”
 모두가 저마다의 무리를 이루어 흩어진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찾아와 손을 내밀었던 모두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왕따의 위치가 되었던 것.
 어차피 모두를 짐덩이 정도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혼자가 된다고 해서 시무룩해질 필요는 없었지만 막상 홀로 떨어져 있자니 조금은 섭섭한 기분이었다.
 “이제 1분인가.”
 창가에 기대어 확인한 시계는 어느새 자정까지 1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59, 58, 57, 56······.’
 굳이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서 줄어들어가는 시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대응할 수 있도록 감각을 예리하게 깨워내며 나는 창틀 위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아까 전 만찬의 시간에 주어진 보상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시체괴물들을 처치한 최고의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그로 인해 나에게만 추가로 주어진 보상.
 그것은 다름 아닌 손전등이었다. 손바닥 안에 딱 들어올 정도로 조그마한 LED손전등이 최고 수훈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검은색의 손전등을 보다가 손전등을 주머니로 쑤셔 박았다.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던 시간이 어느새 10초 안쪽까지 좁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7, 6, 5, 4···.’
 나는 창가에서 물어나 창을 움켜쥔 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제 불과 3초 뒤면 예고되었던 재앙이 찾아들게 된다.
 “···3, 2, 1.”
 차례로 줄어드는 카운트와 함께.
 찰칵―
 시침과 분침이 동시에 12라는 숫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대애앵~ 대애앵~ 대애앵~]
 
 을씨년스럽게 광장을 가득 울리는 종소리.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함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까?
 곤두선 신경에 저절로 어깨를 움찔하고 말았을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에 나는 이를 악물며 더더욱 긴장감을 상승시켰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당장에 눈앞으로 괴물이 나타나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슈아아아악―
 “!!”
 하지만 나의 예상은 무참히 빗나가고 말았다.
 무언가 대비를 할 틈도 없이 발아래로부터 회전하며 솟구쳐 오른 검은색의 연기가 나를 집어삼켜왔기 때문이었다.
 “큭!”
 이미 피하기는 늦은 상태.
 나는 욕을 삼키며 창대와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곧이어 다가올 충격에 대비한다.
 무엇이 되었든 부디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공격이기를 바라며.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나 충격 따위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에 자세를 풀며 잠시나마 감겨졌던 눈꺼풀을 밀어 올렸을 때였다.
 “이건···.”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감고 떴던 순간 전혀 새로운 장소로 이동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던 벽들도, 등을 지고 있던 창문도, 그 너머에 연결된 광장 역시도···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울창한 숲의 전경.
 어둠에 사로잡혀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것 같이 음습한 느낌의 숲길이 눈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등 뒤로는 다 쓰러져가는 산장이 서있었으며,
 “뭐, 뭐야!?”
 “여기는 어디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산장의 문 앞에는 혼란에 차 허둥대고 있는 세 명의 남녀가 서있었다.
 
 
 # 챕터 2. 죽음의 게임
 
 “······.”
 사소한 일들까지 세세하게 떠올려가며 꿈의 내용을 작성해나가던 나는 어느새 3장째를 넘어가고 있는 페이지에 잠시 펜을 놓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AM 06:02]
 새벽을 지나 서서히 아침의 영역으로 다가가려는 시간.
 “벌써 2시간이나 지났나?”
 잠에서 깨어나 번민하다가 펜을 쥔 게 정확히 새벽 4시 29분이었으니 족히 2시간은 지나간 셈이었다.
 “···미치겠군.”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새롭게 꺼내어든 캔 콜라를 원샷한 나는 다시 탁자의 앞에 자리를 잡으며 펜을 집어 들었다.
 꿈의 내용은 이제 겨우 절반만이 기술되었을 뿐이니까.
 생각 같아서는 다 개꿈이라고 치부하며 펜을 놓고 침대나 뒹굴거리고 싶은데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꿈을 기술하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머릿속에 있는 이 혼란한 감정의 편린과 이질적인 기억의 집합들을 한시라도 빨리 늘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위기감이 쉼 없이 나를 옥죄어 왔던 것이다.
 “제길!”
 재차 욕설을 머금으며 나는 펜을 쥐고 새롭게 넘긴 노트의 빈 페이지 위로 꿈의 내용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또 다른 외딴 장소와 광장에서도 언뜻 본 적이 있던 세 명의 남녀였다. 어정쩡하게 서서 불안과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세 남녀. 나는 그들을 마주 하여······.』
 
 ***
 
 3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남자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 남자. 그리고 붉은색의 머리칼이 인상적인 글래머 백인 여성이 겁에 질린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까 전 광장에 있을 때 스치듯 이나마 한 번 정도씩은 본적이 있는 얼굴들.
 그들은 모두 각자 다른 종류의 그룹에 속해있던 이들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다시금 귓전을 긁으며 울리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새로운 글귀가 산장 앞의 허공으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재앙이 다가옵니다. 다가드는 죽음에 대비하시길.>
 <술래잡기가 시작됩니다. 게임 시작 후 5분 뒤부터 필드에는 살인마가 돌아다니니 잘 도망 다니시길.>
 <살인마는 어떤 공격에도 죽지 않으며 여러분들을 죽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죽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뛰어다녀야겠죠?>
 
 차례로 새겨졌다 스르륵 사라지는 핏빛의 글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마자 눈앞으로 마치 게임의 퀘스트창 같은 것이 떠올렸다.
 
 [시험: 죽음의 게임]
 -살인마의 손에서 살아남으세요.
 -새벽까지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조언: 피로 물든 눈동자 조각을 찾아 제단으로 가세요.)
 
 글귀와는 달리 조금 더 세밀한 목적의식을 주는 직사각형의 메시지 박스.
 반투명한 색채의 메시지 박스는 내가 모든 내용을 인식하자마자 스르륵 공기 중으로 녹듯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살인마라고?”
 “흐윽! 어, 어떡해요 우리? 어떡하냐고요!!”
 “시끄러워 썅년아! 일단 좀 닥쳐보라고!!”
 메시지 박스가 사라지자마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더욱더 심한 혼란에 사로잡혀가는 사람들.
 욕설을 내뱉으며 여자를 핍박한 남자는 내게로 간절한 도움의 신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글귀가 허공으로 새겨지며 ‘죽음의 게임’ 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생존 미션이군.”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황을 확정지은 나는 산장 쪽으로 향했다.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짓는 사람들.
 설마 내가 뭔가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하고 저런 반응들이라니······.
 ‘···저래서는 모두 금방 죽겠군.’
 가볍게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친 나는 삐걱거리는 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째서 게임 시작 후 5분이나 되는 유예시간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확인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황상으로 보자면··· 역시 산장 쪽에 뭔가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이 있다고 봐야겠지.’
 산장의 내부는 바깥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이나 낡고 지저분했으며 코앞조차 볼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래서 준 건가?”
 주머니에 쑤셔 박아두었던 손전등을 떠올린 나는 전등을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딸칵―
 순백색의 LED불빛이 환하게 산장 내부를 밝혔다.
 “흐음···.”
 산장의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단출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작업대로 추정되는 나무 테이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테이블의 위에는 얼핏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저건?”
 물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나는 이내 테이블의 가장자리 쪽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다이어리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먼지에 뒤덮이고 낡아있긴 했지만 검은색의 가죽 양장본에 끈으로 된 책갈피까지 달려있는 다이어리가 범상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나는 다이어리를 집어 들어 대충 먼지를 털어낸 후 페이지를 열었다.
 오래된 종이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함께 그 속을 들여 보이는 누런색의 페이지들.
 “······.”
 페이지들에는 빼곡한 글씨들과 그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각 장마다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을 기술한 그림과 글귀들이 알차게 내용을 채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부터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따위의 대중적인 괴물에 대한 것들까지 다양하고 자세하게 기술된 페이지들.
 그곳에 담겨있는 내용은 다름 아닌 사냥법이었다.
 괴물들의 이름이나 외형은 물론 서식지나 습성, 약점들까지도 자세히 기술한 괴물 사냥의 모든 정보가 그 낡은 다이어리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다이어리의 주인은 괴물이나 유령 따위를 사냥하는 퇴마사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너무나도 자세히 기술된 내용에 잠시 정신이 빼앗기던 나는 이내 혀를 차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벌써 1분쯤은 지났겠군.’
 시간만 넉넉하다면 제대로 침대에 누워서 한번쯤 자세히 보고 싶은 내용의 다이어리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내게는 그런 정도의 시간이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4분 정도.
 ‘뭔가라도 찾아내야 해!’
 파라라락―
 조금은 다급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이어리의 가장 뒤쪽 페이지에서 찢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아무 것도 기술되지 않은 빈 페이지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찢겨진 페이지에 쓰여진 것이 아마 가장 최근에 기록된 내용일 터.
 “이건···!!”
 절반이 찢겨진 페이지에 쓰여진 내용.
 그것은 다름 아닌 일기였다.
 ‘아니, 어쩌면 편지인지도.’
 필자의 암담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간 필체의 글귀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 갇히게 된지도 어느덧 사흘째다. 하느님 맙소사···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서로의 등을 봐주며 싸워왔던 동료들은 이미 모두가 다 죽었다.
 
 ······나도 이제 곧 죽게 되겠지.
 
 만약 이 장소를 만든 것이 어떠한 존재라면 그것은 반드시 잔혹한 악마일 것이다.
 최소한의 아량이라도 있는 존재라면 이런 끔찍한 장소를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서두로 시작된 글귀는 암담한 절망이 가득한 내용으로 찢겨진 페이지의 반절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혹시나 후에 이 글에 보게 된 이가 있다면 미리 아는 편이 좋을 것이다. 쓸데없는 희망을 품으며 고통에 절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자살하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는 그 누구도 달아날 수 없다.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아무리 깊숙이 숨어도 결국에는 놈들의 영역 안에 있게 될 테니까.
 놈들은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만약에라도 이에 대항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점을 명심해라.
 놈들도 결코 완벽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그 악마들은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추적하여 쫒아온다. 그러니 만약 놈과 가까운 거리에서 들키지 않았다면 숨을 참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달아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면 놈들의 약점을 노려라. 죽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버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테니.
 놈들의 약점은······.』
 
 “후우···.”
 거기에서 딱 끊어져 있는 내용의 글귀.
 하필이면 딱 약점을 알려주는 부분에서 끊겨있다니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반 페이지에 담겨진 내용만으로도 꽤나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띠링! 생존의 단서를 습득하셨습니다.]
 
 귓가로 여성의 기계음 같은 것이 울리며 눈앞으로 직사각형의 메시지 박스가 떠올랐다.
 
 [생존 단서 1. 살인마는 이산화탄소를 추적할 수 있다. 숨을 참는 방법으로 그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페이지에 담겨있던 내용 중 가장 확정적인 내용이 메시지 박스에 담겨져 있었다.
 “이것보다는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낮게 혀를 차며 나는 다시금 획득한 정보를 정리했다.
 메시지 박스에 담긴 내용 외에도 마지막 페이지의 글귀에는 분명 쓸 만한 정보들이 담겨져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살인마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지.’
 글귀를 적은 화자는 분명 살인마로 추정되는 존재를 ‘놈들’ 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아날 방법이 없다는 점.’
 이 말은 우리들이 감옥과 같은 제한적인 공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약점!’
 안타깝게도 중요한 부분에서 페이지가 찢겨져 있었기에 살인마의 약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최소한 놈들에게 약점이 존재한다는 점이지.”
 나지막이 중얼대며 나는 다이어리의 페이지들을 한 번 더 훑어본 뒤 시간을 가늠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2분 쯤. 테이블에 있는 물품 중에 딱히 쓸모가 있어 보이는 건 없군.’
 빛을 밝힐 수 있는 램프가 나름대로의 잇 아이템이라면 아이템이었지만 이미 LED손전등이 있는 나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물품이었다.
 “슬슬 움직이는 편이 좋겠어.”
 더 이상 건져낼 것이 없음을 확신한 나는 망설임 없이 손전등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허둥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어째서 저렇게 무력할 수가 있는 걸까?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산장에 들어갈 때처럼 매몰차게 사람들을 지나쳐서 숲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살인마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곳에 서있는 것보다는 나무나 덤불, 바위 등 은폐할 곳이 많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편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은폐물이 많으면서도 움직임에 제약이 덜한 곳. 그런 장소를 선점해야 한다.’
 생존 계획을 점검하며 점차 빨라지는 발걸음을 기민하게 옮겨가고 있을 때였다.
 “저, 저기! 잠시만요!!”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손이 옷자락을 붙잡아 왔다.
 “···?”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히 배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저희도 데려가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처절할 정도로 간절하게 매달려온다. 힐끗 시선을 들어 뒤쪽을 바라보니 남은 두 남자들은 이쪽의 대화에 은근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분위기.
 “······.”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울먹거리는 여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런 나의 반응이 잠정적인 거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자는 다급히 말을 바꾸며 더 간절히 매달려 왔다.
 “전부가 안 되면 저 혼자만이라도 좋아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네? 데려가 주시기만 하면 뭐든지 할게요. 저 예쁘잖아요? 게다가 저 몸매도 좋고 그거도 잘할 수 있어요. 노예가 되라면 노예가 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허!”
 툭 건드리기만 해도 대성통곡을 할 것만 같이 처절한 애원이었지만 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설마 대놓고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며 노예까지 자처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자존심도 없는 건가?
 ‘아니, 자존심 따위보다는 자신의 목숨과 안위가 더 중요한 거겠지.’
 간절한 표정으로 나의 동태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나는 찰나의 시간을 쪼개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제안은 의외로 꽤나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여자를 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며, 눈앞의 여자는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상당한 미녀였으며 상당한 색기마저 머금고 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저절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갈 법한 여자라는 이야기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이름은?”
 “···예?”
 “이름은?”
 “아! 이, 이름이요? 이름은 승희에요. 김승희. 나이는 22살이고··· 전에는··· 노, 노래방에 다녔었어요. 그, 그리고······.”
 마치 대기업 면접 자리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더듬거리면서도 시키지 않은 이야기까지 술술 털어놓는 승희.
 잠자코 듣던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기는?”
 “···네?”
 이번에도 한 번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빠진 표정을 짓는 승희의 모습에 나는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그쪽 무기는 어디 있냐고요? 설마하니 무기가 없다고 하지는 않겠죠?”
 설마하니 그걸 어딘가에다가 버렸다던가 하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겉보기에는 맨손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아 그거라면···.”
 다행히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닌 듯 승희는 품을 뒤지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단검?”
 그녀의 무기는 다름 아닌 단검이었다.
 검신부터 손잡이까지의 길이를 모두 합쳐도 기껏해야 40센티 정도가 될까 말까한 앙증맞은 크기의 무기.
 ‘하하, 정말 가관이네.’
 아까 전 광장에서의 경우를 봐서도 알겠지만 나처럼 특수한 기술이라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단검은 정말이지 최악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헌데 그걸 지금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는 여자가 골랐다고?
 “푸하하하!!”
 나는 진심으로 폭소를 터뜨렸다.
 “···에?”
 그런 나의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승희.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웃음을 함께 지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잘 됐네요.”
 “하··· 하하··· 그, 그런 가요?”
 “네. 잘 됐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단검으로 자살해요.”
 “······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애걸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건 말건 나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곧 있으면 찾아올 살인마에게 잡혀서 잔인하게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나을 테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두 남자 쪽을 보며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만약 살고 싶다면 어설픈 마음가짐 따위는 버려요. 이건 정말로 스스로의 목숨이 걸려있는 생존 게임이니까.”
 “······.”
 “······.”
 나의 조언에도 두 남자들은 그저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저 자존심만 올라서는··· 쯧쯧.
 “한 가지는 알려드리죠. 살인마는 이산화탄소를 추적합니다. 그러니까 놈들이 근처까지 다가왔다면 숨을 참으세요. 그러면 발각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서며 숲속으로 향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은 발휘해준 셈이니까.
 숲속으로 들어선 나는 금세 주변의 어둠과 동화하며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흡부터 기척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주변과 동화시키는 꽤나 고급의 기술이었지만, 나에게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기술이었다.
 그렇게 완전한 ‘은신’을 한 나는 최적의 도주로를 만들어둔 뒤 다시 산장 쪽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근처의 나무로 기어 올라갔다.
 이제 와서 남겨둔 사람들이 걱정 되서 라던가 하는 물렁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이제 곧이니까.’
 이제 불과 10초 뒤면 생존자들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이 끝난다. 살인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기왕이면 정보는 많은 편이 좋으니까.’
 그랬다. 나는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을 실험쥐로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낼 셈이었다.
 다행히도 남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산장 쪽에서 쓸데없는 실랑이나 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후우우···.”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으며 청각에 집중하자 멀리 떨어져 있는 세 사람의 대화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온다.
 애원하고 있는 여자와 그것을 창녀라는 말로 거절하며 모욕을 주는 남자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남자들은 쉬이 여자를 떠나지 못한 채 탐욕 어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도 시간은 하염없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군.”
 마침내 살인마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아아아아악―
 “!!”
 
 카운트가 0을 가리키자마자 곧장 찾아드는 싸늘한 기운에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분명 똑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다른 세상에 들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이질적으로 변한 공기가 섬뜩하면서도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만! 둘 다 조용 해봐요.”
 셋 중 이변을 가장 처음 느낀 것은 흑인 남자였다. 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주변을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왜··· 왜 그래요? 히익! 뭐, 뭔가 있는 건가요?”
 승희는 숫제 울 것 같은 얼굴로 겁에 질려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수컷으로써의 본능이라도 느낀 것일까? 백인 남자가 가슴을 내밀며 거만하게 말했다.
 “있긴 뭐가 있어? 그리고 있더라도 이 도끼만 있으면 아주 그냥 쪼개버릴 수 있다고!!”
 바로 그때였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 것은.
 그리고······.
 “그러니까 모두들 나만 믿으······.”
 푸각―
 남자가 말을 잇기도 전에 섬뜩한 피륙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느새 그의 어깨를 꿰뚫고 깊게 박혀들어 있는 핏빛의 갈고리.
 “······아?”
 뒤늦게야 그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로 향했다.
 서서히 일그러져가는 표정.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게 차오르는 고통에 남자는 입을 쩌억 벌리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끄으악! 아아아아!!”
 남자는 시원하게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무참히 나동그라졌다.
 그런 남자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둠에 가리워진 숲속을 향해 빠르게 딸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히이익!? 아, 안 돼! 살려··· 끄, 끄아아아악―!!”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푸각! 푹!
 콰지익―!!
 동시에 뼈와 살점이 해체되는 것만 같은 섬뜩한 사운드가 무엇보다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흑인 남자와 승희는 아무 것도 못한 채 굳어져서 바들바들 떨기만 하고 있는 상태.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이익··· 쉬익···.”
 숨이 막혀올 정도로 고요하게 내려앉은 공기를 거북한 숨소리로 가로지르면서.
 
 ***
 
 ‘왜 굳이 살인마라고 칭했는지 알 것 같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살인마의 모습에 나는 그저 그런 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드러난 존재의 모습이 정말로 살인마 그 자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미터는 훌쩍 넘겨 보이는 위협적인 덩치에 공사장 인부의 작업복처럼 보이는 멜빵 방식의 상하의 일체형 복장.
 드러나 있는 상체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색깔이 마치 시체의 그것과도 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우람한 팔뚝은 스테로이드를 과다 복용한 것처럼 터질 듯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피부 곳곳에 흉측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얼굴에는 가면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사람의 얼굴을 뜯어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른손에는 그 덩치에 어울리는 크기를 지닌 대형의 정글도를 쥐고 있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쇠사슬이 둥글게 말린 채로 있었는데, 그 끝에 연결된 갈고리를 왼쪽 팔뚝 위로 박아두고 있었다.
 할리우드 살인마 영화에 나오는 모든 클리셰를 총집합시킨 것만 같은 모습.
 “쉬이익··· 쉬익···.”
 호흡기관이 다 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힘겨운 숨소리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살인마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위협적으로 보였다.
 뚝, 뚝, 뚝···.
 아래로 늘어뜨린 정글도로부터 끈적한 핏물이 방울지며 떨어져 내린다.
 “히익! 가, 가까이 오지 마!!”
 성큼성큼 다가오는 살인마의 모습에 흑인 남자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손에 들린 검을 휘둘러 보였다. 하지만 살인마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거리를 좁혀간다.
 “이, 이 괴물이!!”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러대던 흑인 남자는 살인마가 범위로 다가오자 오히려 겁을 먹으며 검을 회수하는가 싶더니 이내 울부짖듯 외치며 검을 힘껏 찔러 넣었다.
 푸우욱―
 생각보다 너무나도 쉽게 박혀들어 간 검신.
 투박한 검신의 절반 이상이 살인마의 복부로 파고들어가 있었다.
 제대로 된 급소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분명 치명상을 입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깊은 상처.
 “······어?”
 흑인 남자는 자신이 찔러놓고 오히려 놀란 기색으로 얼빠진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멍청하게도 검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버벅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지고 만다.
 “쉬이익···.”
 살인마는 특유의 숨소리와 함께 자신의 복부에 틀어박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묵묵히 손을 내려 검신을 붙잡는가 싶더니 아무렇게나 뽑아버렸다.
 푸그윽···.
 살점과 함께 검신이 딸려 나오며 검게 죽은 핏물이 응고된 채로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모습.
 “히, 히이익!?”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흑인 남자는 넘어진 채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겁에 질린 신음을 토했다.
 “쉬이익··· 슈욱···.”
 살인마는 흑인 남자에게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손을 뻗어 흑인 남자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아아아악!!”
 악력만으로 들어 올리는 손길에 흑인 남자는 허공에 떠서 다리를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푸우욱!!
 “꺼헉!!”
 살인마의 정글도가 흑인 남자의 복부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이 당했던 위치와 똑같은 부분이었다.
 “어헉! 꺼흑! 꺽! 꺼흐윽!!”
 제대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억눌린 신음만을 토하는 흑인 남자.
 살인마는 어떠한 감정 표현도 없이 박아 넣은 정글도를 서서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이내,
 푸화하아악―!!
 정글도가 복부부터 가랑이까지를 갈라내며 다량의 핏물과 함께 내장기관들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것을 끝으로 흑인 남자의 숨은 이미 끊어진 상태.
 “꺄아아아아악!!”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장면에 승희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서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녀가 주저앉은 바닥으로는 지린 악취를 풍기는 액체가 점차 고여 들고 있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런 모습까지 보면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하건만 살인마는 역시나 어떤 감정표현도 없이 승희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히흐윽··· 히끅!”
 단지 그것만으로도 승희는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승희에게로 살인마의 커다란 손아귀가 뻗어졌다.
 터업!
 손바닥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승희의 얼굴 전체를 뒤덮는 상처투성이의 투박한 손길.
 “흐으으읍!!”
 살인마에게 잡힌 승희는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입술을 막은 손바닥에 억눌린 소음만이 새어나온다.
 이제 곧 어떤 방식으로든 살인마의 잔혹한 손길이 그녀를 끝장내게 될 터.
 ‘···음!?’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과는 달리 살인마는 머리를 붙잡아 일으켜 세운 승희를 품평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둘러보는가 싶더니 이내 어깨 위로 들쳐 없었다.
 ‘죽이지 않는 건가?’
 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무 위에 숨어 살인마의 행태를 응시했다.
 바로 그때.
 “쉬이익···.”
 살인마의 시선이 내가 있는 나무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살인마는 이내 버둥거리는 승희를 어깨에 걸친 채로 나타났던 숲속을 향해 걸어갔다. 놈의 관심이 이쪽으로 향하자마자 곧장 숨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추적한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인 듯하군.’
 나는 살인마가 사라지고 나서도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소리 없이 아래로 내려가 무참히 갈라진 흑인 남자의 시체가 남겨져 있는 공터로 향했다.
 “······.”
 신체의 절반이 갈라져 죽은 흑인 남자의 시체잔해는 과연 끔찍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지를 다녀본 나에게 있어서 그리 대단한 수준의 모습은 아니었다.
 “놈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겠군.”
 아예 처음부터 베어낸 것도 아니고 정글도를 박아 넣은 상태에서 오로지 팔힘만으로 인간의 살점과 근육, 뼈까지 한꺼번에 절단해낸 셈이니······.
 “그나저나 이건 가져가도 되는 건가?”
 나는 바닥에 버려진 흑인 남자의 롱소드와 승희의 단검을 집어 들었다.
 생존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쓸데없는 짐이 느는 건 피하는 편이 좋았지만 롱소드나 단검의 경우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쓸데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단검으로 흑인 남자가 입었던 옷을 잘라내어 끈의 형태로 꼬았다. 그리고는 단검과 롱소드를 등과 허리춤으로 묶어서 장비한다.
 “이런 걸 득템이라고 하는 거겠지.”
 늘어난 무기만큼이나 든든함이 조금은 더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나는 신체에 늘어난 이질감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곧 익숙해지고는 살인마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마지막에 보인 놈의 이상행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자 두 명은 잔인하게 죽인 주제에 여자는 생채기 하나 없이 그냥 끌고 간다고?
 ‘설마 여자는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럴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의 경우만 보아도 밀려오는 지옥이 성별을 가려서 찾아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확인해보는 편이 좋겠어.”
 결론을 내린 나는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려 사소한 기척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살인마가 사라져간 숲속으로 녹아들었다.
 “···흐음?”
 숲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피웅덩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고리에 끌려간 백인 남자의 시체가 남긴 흔적일 터.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백인 남자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남겨져 있는 거라고는 고여 있는 피 웅덩이와 무언가가 끌려간 듯한 길게 늘어뜨려지며 이어진 핏물의 흔적들뿐.
 굳이 추적술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노골적으로 남겨져 있는 핏물의 흔적.
 살인마는 백인 남자의 시체를 끌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남겨진 흔적들로 보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그대로 질질 끌고 간 것 같은 모습.
 숲속 가득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 파여진 풀들이나 끌리듯 이어진 핏물의 흔적으로 보아 살인마는 아마도 갈고리를 이용해 백인 남자의 시체를 가져간 것처럼 보였다.
 마치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듯 노골적으로 남겨진 흔적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결국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쫒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핏자국은 어느 순간부터 희미하게 끊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남겨진 흔적들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추적하기를 10여 분이 지났을까?
 기척을 죽이고 없는 듯 이동해야만 했기에 생각보다 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나는 산장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살인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쉬이익··· 슈욱···.”
 이미 다 불타버린 듯 시커먼 뼈대만이 남아있는 통나무집의 안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마는 커다란 식칼을 들고서 작업대 위에 놓여진 무언가를 썰어대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라진 백인 남자의 시체였다.
 옆에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승희의 모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오로지 해체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살인마.
 하지만 승희는 도망은커녕 눈을 뜰 생각조차 못한 채 귀를 틀어막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아직까지도 죽이지 않았다니··· 근데 대체 저 시체는 왜 해체하는 거지?’
 기척을 숨기고 호흡마저 멈춘 채 나는 살인마의 통나무집을 지나쳐 반대편의 위치로 이동했다. 살인마의 등짝만이 비추어지는 위치에서 작업대 쪽이 잘 보이도록 자리를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옮겨간 자리에서 나는 살인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제야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리품 수거인가.’
 살인마는 정성들여서 백인남자의 팔 다리를 자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자르고 있었다.
 잘려진 손가락들은 각기 다른 손가락들이 담긴 커다란 유리항아리 속으로 직행하고 있었으며, 잘려진 팔 다리는 작업대의 옆에 걸린 갈고리들에 하나씩 걸리고 있었다.
 유리 항아리들이 담긴 전리품의 형태를 보면 이제 다음 단계는 백인 남자의 이빨들을 뽑고 눈알까지 적출하겠지.
 ‘정말로 끔찍한 취미로군 그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담담한 감상을 머금었다.
 내가 킬러 일을 하면서 죽인 녀석들 중에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들도 있었고, 그런 녀석들 중에는 저것보다 더 괴상한 취미를 가진 녀석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슈우우욱···!!”
 차근차근 백인 남자의 시체를 해체하여 머리가 매달린 몸통만을 남겨둔 살인마가 돌연 흥분된 숨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는 푸줏간 칼과 같은 식칼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드는 것이다.
 “히익!?”
 살인마의 숨소리에 무심코 감았던 눈을 뜨고만 승희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살인마가 백인 남자의 얼굴 피부를 잘라내어 뜯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쉬이익···!”
 동그랗게 잘라낸 백인 남자의 얼굴 피부를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본 살인마는 여태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을 뜯어내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리고 살인마는 아직 피가 뚝뚝 흐르는 백인 남자의 얼굴 피부를 잔뜩 뭉개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 위로 뒤집어쓰고는 타카(일종의 대형 스테이플러)를 집어 들었다.
 투콱, 투콱, 투콱―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얼굴 위로 타카심을 박아 넣는 살인마. 그것만으로 백인 남자의 얼굴 피부는 살인마의 얼굴로 단단히 고정되었다.
 살인마의 새로운 얼굴이 된 것이다.
 “쉬익··· 쉬이익···!!”
 얼굴 피부를 고정시킨 살인마는 바뀐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는가 싶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숨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히이익··· 제발··· 제발···!!”
 바뀐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살인마의 모습에서 이제 자신의 순서임을 눈치 챈 것일까? 승희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
 그러나 살인마는 여전히 그녀에게로 어떠한 감정표현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살인마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아아악!!”
 머리거죽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듯한 통증에 승희는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살인마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승희를 통나무집 뒤쪽의 공터로 질질 끌고 가는가 싶더니 십자가처럼 생긴 나무판 위로 그녀를 매달아 묶기 시작했다.
 수술대의 그것처럼 양 손목과 양 발목을 나무판 위로 결박하고 마지막으로 목까지 단단하게 결박한다.
 ‘저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살인마의 행동을 주시했다.
 백인 남자의 시체에다가 행한 것처럼 승희 역시도 칼이라도 들이댈 줄 알았는데, 단지 나무판 위로 단단히 묶는 것을 끝으로 미련 없이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여자는 죽이지 않는 건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앞의 두 남자에게 행한 것과 비하면 승희에게는 정말로 신사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만큼 아무 짓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쉬이이이익―!!
 
 살인마가 완전히 물러서자 승희가 매달린 제단의 아래로부터 돌연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히, 히이이익!?”
 겁에 질리다 못해 아예 실성한 표정으로 버둥거리는 승희.
 하지만 단단히 고정된 결박은 그녀에게 일말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연기는 아래부터 빙글빙글 돌며 빠르게 승희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연기가 마침내 승희의 허리 아래까지를 모두 집어삼켰을 때였다.
 [킥킥킥킥]
 나의 귓가에도 선명히 들릴 정도로 이질적인 느낌의 웃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울렸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섬찟한 기운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사악한 웃음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꺄아아아악!!”
 시커먼 연기 속으로부터 날카로운 가시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인간의 피부 따위는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가시 촉수들.
 “슈우욱···.”
 개구리를 앞에 둔 뱀처럼 연기의 밖에 드러난 승희의 상체 주변을 이리저리 오가는 가시촉수들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기도를 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살인마.
 그것을 끝으로 살인마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서 자리를 벗어났다.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던 정글도를 다시금 집어 들며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다.
 놈이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숨을 참았기 때문인지 살인마는 바로 내 근처를 지나가면서도 나에 대해서 알아채지 못 했다.
 탁!
 “흐음···.”
 살인마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나무 아래로 소리 없이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승희가 매달린 나무판을 응시했다.
 “꺄아아악! 안 돼! 제발! 제발 누가 좀···!!”
 시시각각 얼굴로 다가오는 가시촉수들의 모습에 승희는 쉴 새 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온 몸을 버둥거렸지만 그것은 결국 쓸모없는 저항일 뿐이었다.
 그런 승희의 모습에 더 이상의 뜸을 들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간을 보며 꿈틀거리고만 있던 가시 촉수들이 일순 모두 움직임을 멈추며 가시들을 승희 쪽으로 향했다.
 “아, 안 돼··· 안··· 꺄아아아악―!!”
 족히 십 수개는 되어 보이는 가시 촉수들이 일제히 승희의 상체 곳곳으로 박혀들었다.
 푹푹, 푹푸부북―
 푸콰칵―
 “끼아아아아악-!!”
 입을 쩌억 벌린 채 끔찍한 고통의 비명을 터뜨리는 승희.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승희는 숨통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뭔가의 힘이 그녀의 생명력을 높이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은 그대로 느끼면서도 정신은 멀쩡하게 유지되는 끔찍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맺고 말았다.
 “꺼허윽! 꺽! 끄흐흑! 컥! 꺼흐으윽!!”
 비명을 내지르던 승희가 돌연 간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가 싶더니 연신 억눌린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스스스―
 그와 동시에 승희의 피부가 급속도로 말라붙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붙으면서도 오래된 시체의 그것처럼 시커먼 피부색으로 변해가는 승희.
 “꺼허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승희는 마지막 신음만 남긴 채로 그대로 해골만이 남겨졌다.
 검은색의 연기는 그것을 끝으로 가시촉수들을 모두 회수하는가 싶더니 이내 반쯤 남기고 있던 승희의 몸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잠시 소용돌이치던 연기는 이내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승희의 모습 역시도 희미한 흔적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푸스스스스···!!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뼛가루의 흔적 말이다.
 
 ***
 
 “······.”
 승희의 최후를 마지막으로 살인마의 거처를 떠난 나는 숲속에 녹아 든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단이라는 게··· 아까 그곳을 말하는 건가?’
 메시지 박스에 나왔던 조언에는 분명 피로 물든 눈동자 조각을 찾아서 제단으로 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행함으로 인해 어떤 이득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지.’
 그런 의미에서 제단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은 꽤나 큰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피로 물든 눈동자 조각인가 하는 걸 찾아보는 게 좋겠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기척을 죽인 채로 숲속을 지나치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지 모르는 눈동자 조각을 찾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가면서.
 
 ***
 
 탐색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1시간 째.
 “···조금 덥네.”
 나는 어떠한 발견을 하지도, 어떠한 위기 상황에 처하지도 않은 채로 어두운 숲속을 누비고 있었다.
 살인마가 사라져갔던 반대 방향을 택해서 움직였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무난하게 시간이 흘러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 했었는데······.
 ‘뭐하러 이 고생을 자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냥 평범하게 움직일까?’
 1시간이 지났지만 사실 내가 이동한 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주변의 모든 기척들에 집중하며 눈동자 조각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평범하게 이동을 했더라면 지금의 3배는 더 이동했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데 딱 이런 생각이 들 때쯤에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확실히 너무 조용하긴 하네.”
 살인마가 돌아다니는 숲속에서 들리는 거라고는 이따금씩 들리는 부엉이 소리와 풀벌레들의 소리뿐이라니······.
 분위기를 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 느낌은 주고 있다고 할만 했지만 잔뜩 긴장하며 움직이고 있는 이쪽의 입장에서는 자꾸만 긴장이 풀리는 게 사실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악!!”
 돌연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고요하던 숲속을 가르며 선명히 울려 퍼지는 고통스런 남자의 비명성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소리의 진원지로 움직였다.
 타닥―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소리의 진원지로 들어서자 나는 자그마치 1시간 반 만에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광장 쪽에서 스치면서나마 한 번씩은 본 것 같은 얼굴들.
 4명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은 2남 2녀의 성별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 붉은색의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허벅지에 화살이 박힌 채로 주저앉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일어나! 그러고 있다간 다 죽는다고!!”
 “그래요.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 해요!!”
 쓰러진 남자를 독려하면서도 각자의 무기를 높이 든 채로 주변을 날카롭게 쳐다보는 것이 아까 전 나와 같은 시작점에 있었던 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태도.
 ‘아까 그 둘이 저 사람들의 반 정도만 긴장했어도 그리 허무하기 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미 다 죽어버린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해봤자 의미 없는 공상이 될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살인마는 활과 관련된 녀석인가?’
 아직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진 않았지만 이런 숲속에서 살인마가 아닌 이상 괜히 생존자의 무리를 공격하는 존재가 더 있진 않을 테니까.
 “흐음.”
 가볍게 호흡하며 4명의 남녀가 잘 보이는 위치로 자리 잡은 나는 그들이 하는 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대로 두면 곧 두 번째의 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컸고, 그런 녀석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음? 저 여자애는···?’
 찬찬히 생존자들을 관찰하던 나는 4명의 남녀에서 좀 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이채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장에서 화살을 쏘아 나를 도와주었던 앳된 얼굴의 여자.
 양궁 선수 출신의 윤손하가 4명의 생존자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호오.”
 윤손하는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을 경계하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무엇이든 튀어나오면 곧장 쏘아낼 수 있는 이상적인 자세.
 매섭게 숲속을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못 본지 불과 몇 시간 정도 밖에 안 지났는데 생존 게임의 룰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녹아든 것 같은 모습.
 ‘저런 식이면 어떻게든 살아남겠군.’
 비교적 수준이 높은 생존자 무리들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윤손하의 모습에 나는 내심 감탄하며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좋지 않아.’
 화살에 독이라도 발려 있었던 건지 허벅지를 맞은 남자는 좀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모두가 그 자리에 묶이고 있었다.
 남자를 버리지 않는 이상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
 “모두 준비해요. 갑자기 습격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요.”
 “큭, 알겠어.”
 윤손하의 말에 붉은 머리 남자를 부축하며 움직이던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백금발의 여자에게로 부축을 맡기며 도끼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크흐윽··· 미, 미안해···!!”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미안함으로 고개를 떨구는 붉은 머리의 남자.
 그런 그에게 백금발 여자는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괜찮다며 뭔가 독려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파사삭―
 울창한 수풀이 흔들리며 마침내 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모습을 드러낸 살인마는 2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장신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기괴했다.
 누가 봐도 위압감이 느껴지던 갈고리 살인마와는 달리 비쩍 마른 몸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인마는 마치 아프리카 기아 체험 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해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2미터나 되는 신장이 더해지니 마치 나무젓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기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기괴한 점은 놈의 얼굴이었다.
 이번에 나타난 살인마의 얼굴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여기저기 눌러 붙어 있었다.
 얼굴의 절반이 흘러내려 있었으며, 입이 있는 부위는 통째로 녹아들어 입이라는 구조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흘러내린 얼굴 속에서 눈꺼풀마저 타버린 채 안구 전체가 드러나 보이는 적색의 눈동자만이 형형히 빛나고 있는 모습.
 “······.”
 입 주변이 녹아 붙어있기 때문일까?
 살인마는 어떤 소리나 대사도 없이 그저 생존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런 살인마의 손에는 오함마를 연상시키는 대형 망치가 들려 있었는데, 망치의 머리 부분이 바닥에 늘어뜨려진 채로 질질 끌리고 있었다.
 이미 피 맛을 본 적이 있는 듯 진득한 붉은색의 액체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망치.
 ‘정말 기괴하군.’
 비쩍 마른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상체가 구부정하게 기울어져 있는 살인마는 관절에 문제라도 있는 듯 걸음마다 삐그덕 거리며 비틀거렸는데, 그러면서도 생존자들을 향해 곧바로 걸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섬뜩했다.
 쐐애액―
 퍽!
 섬뜩한 외형과는 달리 너무나도 느릿하게 다가오는 살인마의 가슴으로 매섭게 박혀 들어가는 화살.
 “······.”
 하지만 살인마는 가슴에 화살촉이 등 뒤까지 삐져나올 만큼 깊숙이 박혀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움찔거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타격도 없이 다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특유의 삐걱거리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제가 다리를 맞출게요!!”
 윤손하가 다시 화살을 죄며 살인마의 무릎 쪽을 겨냥했다.
 쐐애액―
 푹―
 긴장한 탓일까? 화살은 애초에 노리던 무릎이 아닌 그 아래쪽의 종아리 쪽으로 박혀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살인마는 잠깐의 움찔거림을 보인 것 외에는 어떠한 딜레이도 없이 비틀대는 걸음을 내딛었다.
 “큭! 일단 모두 물러서! 여긴 내가 시간을 끌어 볼 테니!!”
 어느새 거리가 5미터 안쪽까지 가까워지자 도끼를 들고 있던 남자가 이를 악물며 전방으로 나섰다.
 “하지만···.”
 “어서!”
 윤손하는 어떻게든 돕고 싶은 듯 다시 화살을 죄는 모습이었지만, 남자의 일갈에 결국 입술을 깨물며 물러섰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손하는 화살을 다시 화살통으로 넣고 활을 어깨에 걸친 뒤 붉은 머리 남자를 힘겹게 부축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던 백금발 여자를 도와 남자의 반대편 어깨를 부축했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건가?’
 생존자들의 선택을 보며 나는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붉은 머리 남자를 버리고 갔더라면 깔끔하게 달아날 수 있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그를 버리면 모두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다. 망치 살인마의 속도는 상당히 느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야앗!!”
 내가 아쉬움을 품는 사이 갈색 머리 남자는 기합을 내지르며 망치 살인마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
 퍼걱―!!
 매섭게 휘둘러진 도끼날은 어떠한 제지도 없이 살인마의 어깨로 정확히 박혀 들었다. 동시에 살인마의 몸체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흔들리며 밀려났다.
 그러나 바위도 쪼갤 듯이 휘둘러진 도끼날은 살인마의 어깨 이상을 파고들지 못 했다.
 “큭! 으윽!!”
 금세 자세를 회복하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살인마의 모습에 남자는 용을 쓰며 도끼를 빼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도끼는 어딘가 뼈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좀처럼 딸려 나오지 않았다.
 ‘······그냥 깔끔하게 무기를 포기하면 될 것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는 미련하게도 계속 도끼 자루를 움켜쥔 채 용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살인마는 더 이상 그를 그저 두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콰악!
 “컥!”
 기습적으로 목줄을 움켜쥐는 손아귀에 남자가 마침내 도끼자루를 놓고 억눌린 신음을 머금는다.
 ‘끝이군.’
 남자의 목을 틀어쥔 살인마는 한쪽 팔의 힘만으로 그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해골과 같은 몸매와는 달리 무시무시한 손아귀의 힘이 남자의 목줄을 강하게 조여든다.
 “커흑! 이거 놔! 놓으라고!!”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에 남자는 발악하며 살인마에게로 연신 발길질을 했지만 살인마는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고 그를 끌어 당겨 얼굴을 가까이 접근시켰다.
 “크흐윽···!!”
 흉측한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남자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반응에도 살인마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하나 밖에 없는 눈동자로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목 오빠!!”
 “아저씨!!”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백금발 여자와 윤손하가 차례로 경호성을 내질렀지만 다급한 마음과 달리 차마 부축한 이를 팽개치지 못한 두 사람은 영목이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살인마는 관찰을 끝마친 모습이었다.
 스으윽···.
 코앞까지 끌어당겼던 남자를 높이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휘이익― 콰앙!
 “컥!”
 남자의 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찍었던 것이다. 그 어떠한 대비도 없이 등짝부터 바닥에 떨어져 내린 남자는 억눌린 신음을 토하며 등을 크게 휘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늘어뜨리고 있던 망치를 양손으로 움켜쥐는 살인마.
 피하기는커녕 바닥에 찍힌 고통조차 해소하지 못해 끙끙대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살인마는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안 돼엣―!!”
 후우우웅―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망치가 남자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져 내렸다.
 
 <『톱스타의 킬링 필드』 1-2권에서 계속>

댓글(2)

나비다람    
이거 완결안나고 끝낸글이내요. 글자체는 재밌는데..완결안났어요
2019.09.04 01:06
ma******    
음... 황당하게 그냥 끝이남요 심장이 쫄깃쫄깃 재미는 있지만 막판갈수록 흠...
2019.09.04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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