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진조무쌍 [E]

진조무쌍 1

2017.10.26 조회 1,194 추천 6


 진조무쌍 1권
 
 
 서장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제1장
 
 
 “꺼어억~!”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세상이 행복해 보인다.
 진조(秦祚)가 그랬다.
 하남성(河南省) 장갈(長葛) 최고의 객잔에서 무려 은자 열 냥이나 하는 점심을 먹었다. 고급 음식에 고급술까지······ 일반 서민들이라면 평생을 가도 결코 해 보지 못할 사치였다.
 “배는 부르고, 세상은 평화롭고! 하하하핫!”
 객잔 앞에서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진조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저잣거리로 향했다.
 삶의 냄새가 그 어디보다 진하게 풍겨져 나오는 저잣거리에 들어선 진조는 느긋하게, 세상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거닐었다.
 “맛있는 당과가 있습니다!”
 “저희 백병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와서 맛보세요!”
 “여기 최고의 유과가 있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유과가 있습니다! 철전 세 문에 모십니다!”
 상인들은 저마다 먹음직스런 먹을거리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했다. 진조도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은자 열 냥이나 하는 고급 음식을 먹은 그였지만 붉은 당과가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맛만 좀 볼까?”
 진조는 당과를 파는 상인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자네 왔나? 정말로 맛있는 당과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파는 당과는 이곳에서 제일이지 않던가! 어떻게, 하나 줄까?”
 아는 척을 하는 상인의 모습에도 진조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얼맙니까?”
 “철전 세 문이네.”
 “달포 전에 먹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 가격이 올랐습니까?”
 진조는 인상을 찌푸리며 상인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한동네 사람한테 바가지를 씌울 수 있냐?’는 분노였다.
 “요즘 재료값이 워낙 비싸져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네. 에휴~ 나도 정말이지 이 가격에 팔고 싶은 마음이 없네! 하지만 어쩌겠나?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죽는 얼굴로 하소연을 하는 상인의 모습에 진조는 입맛을 다셨다. 똑같은 당과를 철전 한 문이나 더 내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쳇!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 건지! 이건 뭐 애들 간식거리까지도 이렇게 비싸서야 어디 뭐 하나 제대로 먹고 살겠나!”
 고민하던 진조는 이내 붉게 빛나며 유혹하는 당과를 뿌리치지 못하고 돈을 지불했다.
 “고맙네! 맛있게 먹게!”
 상인은 밝게 웃으며 당과를 건네주었고, 진조는 가장 끄트머리의 당과 알맹이를 뽑아 먹었다. 철전 세 문이나 주고 산 당과라 마음이 영 불편했지만 입 안에 들어왔을 때의 달달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그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었다.
 “이런 사소함 속에 숨겨져 있는 게 진정한 행복인 것이지! 하하하핫!”
 비싸다고 투덜거릴 때와는 다르게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진조.
 그러다 문득, 자신의 곁에서 침을 꼴깍, 꼴깍 삼키는 두 명의 아이를 바라봤다. 차림새는 후줄근했고, 얼굴에는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 있었다.
 거지?
 거지는 아니다. 그러나 거지 직전까지 이른 아이들이었다. 눈동자는 검고 제법 맑았지만 얼굴은 피죽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푸석푸석했으며, 양팔과 다리는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모습이었다.
 진조는 입 안의 당과를 이리저리 굴리며 물었다.
 “먹고 싶으냐?”
 끄덕끄덕!
 형제로 보이는 두 아이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될 것 아니냐.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
 아이들의 안타까운 음성을 들으며 진조는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두 아이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체구가 조금 작은 아이가 울 듯한 얼굴로 칭얼거렸다.
 “형, 나 배고파.”
 “오늘은 진 대인 댁에서 잔치가 있다고 하니까 거길 가 보자. 식은 밥이라도 조금 얻을 수 있을지 몰라.”
 “힝~ 난 당과 먹고 싶은데······.”
 “나중에, 나중에 형이 돈을 이만큼 많이 벌면 그때 열 개 사 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가자.”
 동생의 투정을 달래며 두 형제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아저씨, 당과 두 개만 저 아이들에게 주세요.”
 허공으로 철전 여섯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상인의 손바닥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이 몸의 이름은 진조다. 나중에 성공하거든 반드시 갚아라. 알겠냐?”
 진조의 말에 두 아이 가운데 형이 곧바로 대답했다.
 “네! 제 이름은 양문입니다! 반드시 나중에 성공하거든 진 대협께 이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청아?”
 “응! 형! 진 대협께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예의 바른 두 형제의 인사에 진조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두 아이의 눈동자에는 무한한 존경이 담겨 있었다.
 “여기 있다. 맛있게 먹어라! 특별히 알맹이가 큼지막한 놈들로 골랐다.”
 상인의 말은 거짓이 아닌지 그가 내민 당과의 알맹이들이 유독 컸다. 두 형제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손을 뻗어 당과를 집어 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두 형제는 당과를 받아 들고는 허겁지겁 먹었다.
 “형, 너무 맛있어!”
 “응! 나중에 형이 돈 많이 벌면 그때는 매일 사 줄게!”
 “정말? 우와~! 우리 형아 최고!”
 당과 하나에 행복감에 젖어 든 두 형제의 모습을 보며 상인은 저도 모르게 빙긋 웃고 말았다.
 
 “진 아우! 오늘 과일 물이 아주 좋아! 좀 들여놔!”
 과일 상인의 외침에 지나가던 진조가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을 쓰윽 훑어봤다.
 “빛깔은 좋은데······ 요즘 날이 좋지 않아 단맛이 좀 떨어진다던데······ 오물오물.”
 당과 알맹이를 오물거리며 말하는 진조의 모습에 과일 상인이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요즘 과일 맛이 조금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 자네도 알다시피 이 동네에서 신용 하나는 가장 좋은 사람 아니던가! 나를 믿고 들여놔 봐.”
 “으음······ 나중에 생각나면 사겠습니다.”
 진조가 몸을 돌리자 과일 상인이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보게, 진 총각! 오늘 고기가 아주 좋아! 와서 봐 봐!”
 이번에는 푸줏간 상인이 진조를 유혹했다.
 어차피 어슬렁거리며 저잣거리를 거닐던 그였기에 푸줏간으로 걸어갔다.
 “봐 봐, 어때? 좋지? 이걸 숯불에 구우면 아주 입에서 녹는다네! 어떻게, 좀 줄까?”
 푸줏간 상인은 당장에라도 고기를 썰 태세였다.
 “이거 어느 놈이 키우는 소입니까?”
 “이거? 평정산(平頂山) 장가 목장에서 키우는 소지! 자네도 알지 않나? 평정산 장가 목장 소고기는 하남에서 최고의 육질로 꼽힌다는 사실! 그중에서도 내가 구입해 오는 고기들은 완전 최상품이야! 정말이지 굽고, 삶고, 볶아서 어떤 요리를 해도 입에서 살살 녹아!”
 “평정산 장가 목장이요?!”
 “그렇네!”
 진조가 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소식 못 들었습니까? 장가 목장에서 미친 소가 나왔다는 거! 이게 그 미친 소의 고기인지 내가 어떻게 알고 먹습니까? 자고로 미친 소의 고기는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사 망하기 싫으면 당장 장가 목장에서 구입한 소고기 내다 버리세요!”
 끔직하다는 듯 진조는 몸서리를 치고는 급히 푸줏간에서 멀어졌다.
 이후로도 진조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저잣거리를 걸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고, 물건을 팔려고 했다.
 하지만 진조에게 물건을 판 사람은 당과를 팔던 상인이 유일했다.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 싶으면 결코 전낭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뭐, 재밌는 거 없나?”
 여전히 당과 알맹이를 오물거리며 진조는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오라버니! 제발 그만 하세요! 우리 그냥 깨끗하게 잊어 버려요! 더 이상은 안 돼요! 남은 돈으로라도 어머니 약을 사요!”
 지나가던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음성이었다. 특히, 열다섯이나 열여섯으로 보이는 소녀의 간절한 외침은 소녀의 손에 붙들려 있는 젊은 청년을 향해 혀를 차게 만들기 충분했다.
 “놔! 어차피 이 돈으로는 하루 약값도 되지 않아! 걱정 마! 내가 지금까지 잃은 돈을 다시 다 되찾을 테니까!”
 “오라버니! 왜 모르세요! 오라버니는 절대로 돈을 되찾을 수 없어요! 그 돈으로라도 어머니 약을 사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씨팔! 소용없다니까! 이거 놔!”
 오라비라는 청년은 눈물로 호소하는 동생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소녀도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들어 오라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쯧쯧쯧,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한 중년인의 말에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진조가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응? 무슨 말이긴! 엊그제였던가? 외지에서 몇 놈이 마을로 들어왔는데 풍신객잔 근처에서 노름판을 벌이지 않았나. 내 그때 알아봤지. 그놈들에게 당해서 돈 날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길 줄!”
 중년인의 설명에 진조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비라는 인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쫘-악!
 “아아악!”
 “재수 없게! 너 때문에 돈을 잃은 거잖아! 네가 옆에서 재수 없게 울지만 않았어도 내가 돈을 잃었을 거 같아! 돈을 잃은 건 다 너 때문이야!”
 호되게 뺨을 맞았는지 소녀는 좀처럼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오라비를 향해서 욕을 퍼부었다.
 “씨팔! 뭐 구경났어! 상관하지 말고 꺼져!”
 으름장을 내고 걸어가려던 청년의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언제 일어났는지 소녀가 그의 발을 붙잡은 것이다.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어? 내가 돈 따 온다고 했잖아! 나도 이제 놈들에게 당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잃었던 돈에 이자까지······.”
 “그따위 정신으로 잘도 따겠다. 가진 돈 다 털리고 집까지 날리지 그래? 네놈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잘하면 네 누이까지도 팔아넘기겠다.”
 느긋하게 선 진조는 여전히 당과를 오물거리며 청년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넌 뭐야! 남의 일에 상관 말고 꺼져!”
 “도, 도와주세요!”
 진조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천천히 청년과 소녀를 향해서 걸어갔다. 붉어진 얼굴로 당장에라도 주먹질을 할 것 같은 청년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진조가 소녀에게 말했다.
 “도와달라고?”
 “예?”
 “방금 도와달라고 했잖아. 아니야? 아니면 말고!”
 진조는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그때 소녀가 간절하게 외쳤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오라버니가 어머니 약값을 그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잃지 않게 도와주세요! 흑흑!”
 걸음을 옮기려던 진조가 고개만 돌리고 말했다.
 “도와주지!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어!”
 
 ***
 
 “넌 집에 가서 쉬고 있어.”
 “끄으응······.”
 뺨을 몇 차례 얻어맞은 오라비는 끙끙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소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래도 오라비라 이건가?’
 진조는 피식 웃고는 소녀에게 말했다.
 “앞장서!”
 “예?”
 “그 노름꾼들이 있는 곳으로 앞장서라고.”
 “거, 거긴 왜?”
 “돈 잃었다며? 찾아야지! 설마 내가 저놈이 가지고 있는 철전 몇 푼에 도와주겠다고 나선 걸로 보여? 잃은 돈도 찾고, 내 몫도 챙기고!”
 소녀는 영 못미더운 눈으로 진조를 바라봤다.
 “도와달라고 했으면 끝까지 믿어!”
 “네······.”
 소녀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조는 그 뒤를 느긋하게 따랐고, 부풀어 오른 뺨으로 인해 끙끙거리던 오라비는 비척거리며 일어나서는 소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이걸로 돈을 걸어.”
 진조는 그녀의 손에 철전 스무 문을 쥐여 주었다.
 “예? 저는 잘 못해요! 제가 하면 이 돈을 다 잃을 거예요!”
 겁을 먹은 소녀의 모습에 진조가 헛물켜지 말라는 듯 핀잔을 주었다.
 “누가 널 믿는다고 했어? 너는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해.”
 “그럴 거면 그냥 직접 하시는 게······.”
 “놈들이 의심하잖아!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냥 시키는 대로 좀 해!”
 “네, 네!”
 깜짝 놀라며 움츠러드는 소녀의 모습에 진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과를 먹었다. 이제 나무 꼬치에는 알맹이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녀의 뒤를 따라서 걷던 진조는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목소리를 돋우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철전이 들어 있는 곳을 찾으면 판돈의 두 배를 드립니다!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세상에 이보다 쉬운 일은 없습니다! 눈만 크게 뜨고 보면 돼요! 지금 당장 도전해서 가진 돈을 두 배로 불려 보세요!”
 야바위꾼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조가 혀를 찼다.
 “간단한 속임수에 빠졌군!”
 “예?”
 소녀가 바라보자 진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야바위꾼의 음성에 호응하듯이 바람잡이들이 하나, 둘 다가가서는 돈을 걸고 돈을 따 냈다.
 “크하하하! 이거야 원! 어린아이 뺨 때리는 것보다 쉽구나!”
 “나도 땄다고! 오늘 밤은 청화루에 가서 질펀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겠어! 하하하핫!”
 “으하하하! 또 맞췄구나!”
 “아이고! 대인들께서는 제 사정도 좀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래서야 저는 오늘 안으로 거지가 되고 말 겁니다!”
 야바위꾼은 죽는다는 듯 그렇게 말했고, 바람잡이들은 들은 척도 안 하며 돈을 걸고 돈을 따 갔다.
 그러자 주변에서 호기심에 구경하던 몇몇 사내들이 돈을 걸기 위해서 슬금슬금 다가섰다.
 휙휙휙휙-!
 “자자~ 보세요!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철전이 움직입니다. 어디로 움직일까요?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움직입니다!”
 야바위꾼은 네 개의 밥그릇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밥그릇들을 바꾸는 그의 솜씨는 무림 고수의 손놀림처럼 대단하기만 했다.
 돈을 딴 바람잡이들이 가장 먼저 돈을 걸었다.
 “여기에 철전 열 문!”
 “나는 여기에 철전 다섯 문!”
 “그렇다면 나는 여기다!”
 바람잡이들이 자신 있게 돈을 걸자 주변의 구경꾼들도 돈을 꺼내 들어 각자 돈을 걸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가 봤어! 여기야! 철전 세 문!”
 “무슨 소리들이야! 여기란 말이야! 철전 일곱 문!”
 “쯧쯧쯧! 눈들이 삐었구먼!”
 사내들은 앞을 다투어 자신이 믿는 밥그릇에 철전을 걸었다. 나무 판에는 어느덧 철전이 수북하게 쌓였고, 야바위꾼은 이쯤에서 걸 사람은 다 걸었다는 것을 알곤 밥그릇을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이고! 없습니다! 이런 이런!”
 “빌어먹을!”
 “헉! 젠장!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분한 음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다른 밥그릇에 철전을 걸었던 이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두 차례 연속으로 밥그릇에는 철전이 들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아무도 걸지 않았던 밥그릇에 철전이 들어가 있었다.
 “이런! 이곳에 철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판은 맞추신 분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자자!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돈을 걸면 두 배가 된다~ 돈을 걸면 두 배가 된다!”
 주문이라도 되는 양 야바위꾼은 밥그릇을 움직였고, 돈을 잃었던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밥그릇을 노려봤다. 그러는 사이 바람잡이들은 하나, 둘 슬쩍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밥그릇이 멈춰지자 돈을 잃었던 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돈을 걸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듯 몇몇 구경꾼들도 새롭게 판에 끼어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번에도 야바위꾼이 돈을 따 버렸다. 수북하게 쌓인 돈을 거둬 가며 그는 다시금 밥그릇을 옮겼다. 당장에라도 돈을 잃어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돈을 걸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진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곁에는 소녀가 불안한 얼굴로 서 있기만 했다.
 세 번째 판에서는 철전이 들어 있는 밥그릇을 맞춘 이들이 나타났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어! 우하하!”
 “빨리 철전 열 문을 내놓으시오!”
 “나는 일곱 문을 걸었으니 열네 문이오!”
 “제기랄! 분명 여기가 맞았었는데!”
 “빌어먹을! 벌써 철전 스무 문이나 잃었군!”
 돈을 딴 이들과 돈을 잃은 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자자~ 다시 갑니다!”
 야바위꾼은 빠르게 판을 진행시켰다.
 이번에도 돈을 딴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전판과 마찬가지로 공통점이라면 가장 돈이 적게 걸린 밥그릇에 철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야바위꾼은 연속으로 돈을 계속해서 따고 있었다.
 진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하나 남은 당과를 빼 먹으며 나무 꼬치를 옆으로 내버렸다.
 “맞추면 두 배! 걸어 보세요~ 걸어 보세요!”
 야바위꾼의 음성에 사람들은 또다시 돈을 걸었다.
 - 가장 우측에 돈을 몽땅 걸어!
 소녀는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진조와 눈이 마주쳤다.
 - 뭐 하고 있어! 가장 우측에 돈을 다 걸라니까!
 세상에 참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싶으면서도 소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조가 시키는 대로 철전 스무 문을 가장 우측에 걸었다.
 “앗! 소저는 아까 그 소저가 아니오? 하하하! 오라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온 거요? 어쨌든 잘해 보시오! 혹시 알겠소? 소저가 오라비를 대신해서 잃은 돈을 다 되찾고 돈까지 따서 돌아가게 될지!”
 하지만 소녀는 말없이 우측 밥그릇만을 바라봤다.
 “자~ 그럼 공개합니다!”
 야바위꾼의 손에 밥그릇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소녀의 얼굴도 긴장감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결국!
 “꺄아아!”
 “캬~ 설마 설마 했는데 소저가 맞췄구려! 하하핫!”
 “도, 돈 주세요.”
 “물론 드려야지! 많이도 걸었구려! 여깃소!”
 소녀는 야바위꾼이 건네는 철전 마흔 문에 감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다시 한판 갑니다! 소저! 이번에도 한번 멋지게 맞춰 보시구려!”
 소녀는 그냥 이대로 돌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진조의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이번에는 좌측에서 두 번째에 몽땅 걸어! 단! 절대로 먼저 걸지 말고 가장 마지막에 걸어!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소녀가 귀엽게 눈을 찌푸렸다.
 ‘또 다 걸어야 해? 그냥 반만 걸고 싶은데······.’
 하지만 소녀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진조가 시키는 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걸고 야바위꾼의 은근한 재촉이 있을 때에야 돈을 걸었다.
 “여, 여기요!”
 “캬~ 소저! 통이 아주 화끈하구려! 어디 봅시다!”
 밥그릇이 공개되고 이번에도 정확하게 돈을 걸었던 밥그릇 아래에 철전이 들어 있었다.
 “꺄아아아~!”
 철전 스무 문이 두 판 만에 무려 팔십 문이 되었다.
 “하하하! 이제 보니 오라비하고는 상대도 되지 않을 대단한 소저였군요!”
 “대단한데?”
 “나도 따라서 걸어 볼까?”
 “두 판 만에 철전을 얼마나 딴 거야?”
 “자자~ 모두 이 소저처럼 하시면 얼마든지 돈을 딸 수 있습니다! 자자~ 그럼 시작합니다!”
 야바위꾼의 밥그릇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밥그릇을 보면서도 소녀가 어디로 돈을 거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 정중앙에 철전 스무 문을 걸어!
 ‘왜 이번에는 스무 문이지?’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돈을 걸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소녀를 따라서 돈을 걸기 시작했다.
 “후우~ 이거 제가 괜히 다 떨립니다!”
 야바위꾼은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밥그릇을 공개했다.
 “헛!”
 “뭐야? 없잖아!”
 이번에는 소녀가 틀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소녀들에게 이어졌다. 왜 틀렸냐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아이 참, 왜 하필 틀리게 가르쳐 줬을 때 나를 따라온 거야.’
 소녀는 괜히 사람들에게 미안해했다.
 “소저라고 어떻게 매번 맞출 수 있겠습니까? 자자~ 소신껏! 각자 소신껏 걸어야만 돈을 딸 수 있는 것입니다!”
 야바위꾼의 도움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헛기침과 함께 소녀를 향했던 원망의 눈길을 거둬들였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따라간 것이지 소녀가 따라오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탓을 할 수 없었다.
 밥그릇은 계속해서 움직였고, 노름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녀는 꾸준히 돈을 걸었고, 맞추고 맞추지 못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미 소녀의 수중에는 철전이 이백사십 문이나 모여 있었다.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미 잃었던 돈보다도 많이 땄는데, 어서 집에 가서 어머니와 오라버니께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어.’
 소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진조는 계속해서 소녀를 통해 돈을 걸었다. 장시간 이어지던 노름이 어둠과 함께 슬며시 사라져야 할 시간이었다.
 “소저, 우리 크게 한판 어떻소?”
 “예?”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크게 한판 해봅시다! 맞추면 다섯 배를 주겠소! 대신! 가진 모든 돈을 걸어야만 하오. 어떻소?”
 다섯 배라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과 소녀가 크게 놀랐다. 하지만 가진 것을 모두 걸어야 한다니?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진조를 돌아봤다.
 - 이왕이면 큰판이 좋지!
 진조의 말에 소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그럴게요.”
 “하하핫! 좋소! 내 이번 판에 내가 가진 모든 실력을 쏟아 부어서 소저와 대결을 펼치겠소!”
 야바위꾼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밥그릇을 움직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소녀와 사람들은 눈이 핑핑 돌아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네년으로 인해 돈을 좀 만지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네년이 내게서 따 간 돈이 적지 않지! 알거지로 만들어 주마!’
 야바위꾼은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소녀가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여겼다.
 “자! 어디에 걸겠소?”
 - 우측 두 번째!
 진조의 음성에 힘을 얻어 소녀는 가진 모든 돈을 덜덜 떨며 내려놓았다.
 “여, 여기요.”
 꿀꺽!
 긴장한 사람들의 호흡이 밥그릇 하나에 집중되었다.
 
 ***
 
 “정말로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정말로······.”
 “됐고, 내 몫이나 내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 소녀에게 진조는 손을 내밀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이게 뭐야?”
 “예?”
 소녀는 뭐가 잘못됐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의 오라비가 잃은 돈은 정확하게 철전 백오십 문이었다. 그것을 제하고 은자 세 냥과 철전 백오십 문을 건넨 것인데 진조는 그것을 뚱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조는 손에 들린 은자 한 냥과 품에서 철전 이백이십오 문을 꺼내어 소녀에게 돌려주었다. 소녀는 자신의 손에 돌아온 돈을 바라봤다.
 “이건 의뢰가 아닌 도박이었으니, 딴 돈의 반만 가져간다. 그리고······ 이게 내 몫이야.”
 진조는 소녀의 손에서 철전 오십 문을 도로 가져갔다. 그건 그게 소녀의 오라비가 잃은 돈 철전 백오십 문을 되찾아 주기로 하고 챙긴 돈인 셈이다.
 소녀는 자신의 손에 남은 많은 돈을 바라봤다. 이 돈이면 어머니 약값을 충분히 치르고도 한 달은 넉넉하게 버틸 수 있는 거금이었다.
 “하, 하지만 모두 은공께서 하신 일인데······.”
 “나만 했어? 너도 했잖아? 내가 말했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 은자는 네가 정당하게 일해서 번 네 몫이야.”
 진조가 몸을 돌리자 소녀가 넙죽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은공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 이름은 추계옥입니다. 반드시, 반드시 나중에 이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은공의 대명을 말씀해 주시면······.”
 “은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말했다시피 나나 너나 우린 동업을 한 것뿐이야. 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듯, 나 역시 네 손을 빌려 일을 해결한 거야. 그러니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말고 착실하게 열심히 잘 살아. 혹시라도 오라비가 또다시 도박을 하려고 한다면 내게 말해. 그때는 정말로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
 뒤돌아 걸어가는 진조의 모습을 보며 소녀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놈들······ 꽤 신경 쓰게 만드는군!”
 진조는 야바위꾼에게서 돈을 따고 돌아가는 추계옥을 유심히 노려보던 남자들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손에 들린 철전 오십 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열 문 정도만 더 달라고 할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진조.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추계옥이 밝은 음성으로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말은 거칠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야. 아마 세상을 위해 온몸을 바쳐야 한다면 저분은 반드시 누구보다 먼저 나설 거야! 설령, 거기에 아무런 대가가 없다 하더라도! 분명해!”
 추계옥은 크게 오해를 하고 있다.
 진조는 절대 대가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 어서 집에 가야겠다!”
 추계옥이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달려가자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진조가 기어코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뒤처리 비용을 따로 받아야겠어. 형편이 좋지 못하니까 철전 열 문만 받자. 사실, 이것도 굉장히 싼 가격이니까 내가 손해지! 암! 그렇고말고! 이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보수를 더 받아야겠······.”
 진조가 돈을 받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제기랄.”
 
 ***
 
 “으으윽······.”
 “사, 살려······.”
 열 명. 정확하게 열 명의 사람들이 골목길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차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그들이 흘린 피로 골목길엔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였다.
 “병신 같은 새끼!”
 퍼억!
 “크윽!”
 얼굴이 심하게 멍들고 찢어진 남자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는 다름 아닌 야바위꾼이었다.
 “저따위 것들에게 돈을 잃어? 그리고 거지 같은 계집에겐 은자를 네 냥이나 날려? 네놈이 뒈지고 싶어서 정신이 나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네놈이 그따위로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할 리가 없지.”
 대머리의 중년인은 야바위꾼을 씩씩거리며 팼다. 몸을 웅크린 야바위꾼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또다시 이따위 병신 짓을 하면 그때는 손목을 잘라 버리겠어!”
 몸을 부르르 떠는 야바위꾼에게서 시선을 돌린 대머리는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네 명의 남자들을 바라봤다.
 “가서 계집을 찾아! 돈을 모조리 회수하고 계집의 얼굴이 괜찮으면 끌고 와!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팔아 버릴 테니!”
 대머리의 눈에는 더러운 욕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어디 가?”
 골목 앞을 사내 한 명이 가로막고 있었다.
 진조였다.
 “뭐야?”
 네 명 중 한 명이 눈을 찌푸렸다.
 “어디 가냐고.”
 진조는 대답 대신 물음을 다시 던졌다.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군.”
 남자들은 하나, 둘 품에서 작은 소도(小刀)를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의 위협 속에서도 진조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왜? 그걸로 찌르려고?”
 “찌르기만 하면 재미없지! 네놈 살을 다 발라 버리고, 힘줄을 끊어야 좀 재밌어지지. 큭큭큭!”
 그렇게 대꾸하고는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몇 번이나 해 봤는데?”
 “한······ 백 번 정도 해 봤나? 아! 네놈까지 하면 백 번 채울 수 있겠네! 큭큭!”
 “저기 보여? 저게 다 우리 솜씨거든! 어때, 무섭지? 오줌이 찔끔찔끔 나오려고 하지? 그런데 넌 이미 늦었어! 이 병신아!”
 진조는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미 골목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로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들은 생각보다 몇 배는 아니, 몇 십 배는 더 끔찍하고 잔인했다.
 개중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도 있었고, 어린 티를 갓 벗겨낸 소년도 있었다.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옷이 찢어져서 거의 알몸이다시피 널브러져 있었다.
 “이 새끼 다리가 얼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양인데?”
 “큭큭큭! 그렇지 않아도 한 놈만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군!”
 잔인하게 웃는 남자들의 모습에 진조는 피식 웃었다. 습관처럼 나오는 웃음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웃음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니들 정말로 쳐 죽여야겠다. 하하핫!”
 진조는 저벅저벅 걸었다. 그가 갑자기 다가오자 남자들은 순간적으로 흠칫하다가도 이내 눈에 살기를 담고 소도를 휘둘렀다.
 빠각!
 “크아악-!”
 소도를 휘둘렀던 남자 하나가 얼굴에서 피를 뿌리며 뒤로 쓰러졌다. 코뼈가 완전히 박살 나 버린 상태였다. 당장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평생을 흉측한 외모로 살아야 할 판이었다.
 콰작-!
 “끄르······.”
 이번에도 코뼈가 박살 나며 한 명이 쓰러졌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짓······ 으아아악!”
 “씨, 씨팔! 이 새끼 뭐······ 크아악!”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처럼 남자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멀쩡히 뜬 상태로 코가 박살 나 버렸다. 그것도 조금만 늦으면 다시는 원 상태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게!
 진조는 이윽고, 바닥에 나뒹굴던 소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다리 힘줄을 끊어 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양 손목의 힘줄도 끊어 버렸다.
 “이 정도는 너무 편하지? 그래, 편할 거야.”
 이윽고, 남자들의 입을 발로 짓밟아 이를 모조리 부서뜨렸고, 팔꿈치와 무릎을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어 버렸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스스로의 일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눈물로 구걸하며 살아가! 이 개자식들아!”
 진조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도를 내던졌다. 그러고는 이 모든 것을 지시한 대머리를 바라봤다. 그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건 두려움이나 공포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니었다.
 “대머리 너 무공 익혔구나?”
 대머리는 말없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진조는 킥킥거리고 웃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 네 자루의 소도를 집어 들었다. 그의 행동에 대머리의 안색이 살짝 풀어졌다.
 ‘무기를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고수가 아니야!’
 자신의 수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대머리는 내심 긴장감에 어떠한 행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진조가 소도를 집어 들자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면 결코 손에 익지도 않은 타인의 병기를 들지 않는다. 진조는 그걸 어겼다. 그것만으로도 대머리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자, 막아봐. 이건 네 오른쪽 팔꿈치에 박힐 거야.”
 진조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도를 내던졌다.
 “미친놈!”
 대머리는 그를 정신 나간 놈이라 여겼다.
 어디를 노리겠다고 말하면서 소도를 던지는 놈이 제정신으로 보일 리 없다.
 소도가 날아오자 대머리는 슬쩍 옆으로 몸을 피해 버렸다. 소도가 몸을 피해 지나쳤다.
 푸욱!
 “큭!”
 팔꿈치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금속의 고통보다 믿을 수 없다는 감정에 대머리의 눈동자는 급격하게 커졌다.
 ‘분명 피했는데! 어떻게!’
 “막으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왼쪽 팔꿈치에 박힐 거야.”
 다시 소도를 내던지는 진조의 모습에 대머리는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오른쪽 팔꿈치에서 밀려드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아오는 소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피했어! 이번에는 정말로 피했······!’
 푸욱-
 “커헉!”
 방향을 틀었다!
 소도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정확하게 대머리의 왼쪽 팔꿈치에 박혀 들어갔다.
 칼자루가 살짝 보일 정도로 깊숙이 박혔기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두 자루는 양쪽 무릎에 박힌다. 머저리야.”
 두 자루의 소도가 골목길을 비행했다.
 “크아아아아-!”
 처절한 비명만이 골목길에 울렸다.
 
 “여기다! 여기야!”
 “세상에! 정말이야!”
 “이, 이게 무슨 일이람!”
 “서둘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돼!”
 “의원! 의원들을 불러! 모조리 다!”
 골목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머리 일당에게 당한 사람들을 급히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미 몇 사람이 죽어 있기도 했다.
 “아아아아······.”
 코가 무너져 내리고, 모든 이가 부러졌으며, 사지근맥이 잘린 것도 모자라 무릎과 팔꿈치에 소도를 박고 있는 혈인이 입을 벌려 도움을 요청했다. 한 청년이 희미한 음성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에 잠시 움찔하다 이내 핏물이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바라보고는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대머리······ 이 개자식의 짓이야! 이 개자식이 여기 사람들을 모두 이렇게 만든 거야!”
 퍼억!
 “개자식! 죽어! 죽어!”
 “죽여 버려! 밟아 죽여 버려!”
 청년의 발길질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대머리를 밟고, 차고, 침을 뱉거나, 돌멩이로 내려쳤다.
 대머리는 고통 속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여기도 있다! 미리 말했던 것처럼 대머리와 한 패거리가 여기에도 있어!”
 사람들은 다시금 네 명의 남자를 향해서 달려들었고, 그들 역시도 대머리와 같은 꼴을 당해 죽고야 말았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던 야바위꾼은 곧바로 골목으로 들어서는 포쾌(捕快)들로 인해서 겨우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제법 떨어진 전각의 지붕 위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림자는 이내 등을 돌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대머리 일당의 잔인무도한 행적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제2장
 
 
 기루(妓樓).
 사내로 태어났다면 한 번쯤은 가 봐야만 하는 곳!
 그래야 같은 사내들끼리의 음담패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무시당하지 않을 지상낙원의 공간!
 돈(錢)! 오로지 돈!
 돈만 있다면 황제보다 더한 대접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다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곳!
 그곳이 바로 기루다.
 애화루는 그중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기루였다. 고관대작들이나 이름난 거상, 혹은 유명하고 돈 많은 무림인들이 아니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몇 층으로 오르시겠습니까?”
 애화루의 점원은 진조를 맞이해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워낙 콧대 높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보니 점원 일을 하면서 절로 몸에 배어 버린 습관이었다.
 “가격 대비 가장 좋은 곳이 어디지?”
 진조의 물음에 점원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이런 식의 물음은 접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화루에서 점원 일을 한 지도 햇수로 벌써 사 년이 넘어가는 그였다.
 “손님처럼 특별한 것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저희 애화루에서는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특급의 다섯 가지 등급의 상품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점원의 말에 진조는 제법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자신의 말이 통한다고 여겼는지 그는 곧바로 각각의 상품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급은 은자 다섯 냥에 해당하는 상품으로 간단한 요리 두 가지와 죽엽청 한 병과 기녀 한 명을 대동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물론, 기녀와의 뜨거운 밤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셔야만 합니다. 중급은 은자 열 냥에 네 가지 안주와 죽엽청 두 병, 그리고 기녀 한 명입니다. 하급과 마찬가지로 화대(花臺)는 별도입니다. 그리고 상급은······.”
 점원의 긴 설명이 끝나자 진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급으로 하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진조는 느긋하고도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점원을 따랐다. 점원은 애화루 이 층으로 올랐고, 국실(菊室)이라는 이름이 적힌 방문을 열었다.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조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국실 안으로 들어섰다.
 “명성에 비해 너무 초라한데? 하긴, 중급이라 그런 건가?”
 방은 서너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특별한 치장도 없이 단출했다. 다만, 방 안에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국화 향이 진조의 기분을 좋게 만들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두 명의 점원이 요리와 술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보기 좋게 내려놓고 그들은 이마가 바닥에 닿을 만큼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진조가 막 젓가락을 들어 돼지고기가 주된 재료의 요리를 먹으려고 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톡톡.
 “손님, 천녀(賤女) 방으로 들겠사옵니다.”
 방문이 드르륵하며 열리더니 곱게 화장을 한 기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외모는 그저 그런 평범한 축에 속했다. 아마도 상품 등급에 따라 기녀의 외모도 결정되는 모양이었다.
 기녀는 조신하게 방문을 닫고는 진조를 향해서 절을 한 차례 올리기 시작했다.
 “천녀, 월국이라 하옵니다.”
 이윽고 월국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진조의 곁으로 다가와 다소곳이 앉았다.
 “한 잔 올리겠사옵니다.”
 진조는 술잔을 들었고, 월국은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 채워진 술잔의 술을 단숨에 비운 그는 술잔을 월국에게 건넸다.
 “한 잔 정도는 마시겠지?”
 기녀에게 술 한 잔이 문제일까.
 월국은 새초롬하게 웃으며 술잔을 받아 들었고, 진조는 술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을 비웠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였다.
 방문을 두드리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장명이라는 분께서 당도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리며 사십 대 후반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호강하고 있군.”
 남자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허락도 없이 요리를 집어 먹었다.
 “이왕이면 술도 좀 주지?”
 진조는 별다른 감흥 없이 대답했다.
 “이왕이면 좀 시켜. 나 먹기에도 부족해.”
 “······빌어먹을 놈.”
 남자, 장명은 월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엽청 두 병. 아니, 세 병 가져와.”
 월국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는 벽 한쪽의 붉은 끈을 잡아당겼다. 곧바로 점원이 나타났고, 그에게 죽엽청 세 병을 시켰다.
 죽엽청이 오자 장명은 스스로 술을 따라 마셨다. 그 모습에 월국이 술잔을 채워 주려고 했지만 장명이 귀찮다는 듯 거절을 했다.
 빠른 속도로 술 한 병을 비워 버린 장명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진조를 바라봤다.
 “서평(西平)에 유향문(流香門)이라고 있어. 거기서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 내용은 유향문의 여식을 정주(鄭州)의 하남무장(河南武莊)까지 안전하게 호위. 의뢰 비용은 은자 백 냥.”
 호위라는 말에 망설였지만, 은자 백 냥이라는 소리에 진조는 꽤나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어떤 의뢰보다 까다로운 것이 바로 호위였다. 특히, 돈이 많이 걸릴수록 완수하기가 힘든 것이 바로 호위였다.
 “호위 임무는 귀찮은 일이 많은데······.”
 진조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걸 들으면 다를 거다. 특별 조항이 있다. 전투가 있을 시엔 한 건당 은자 백 냥 추가다! 거기엔 특별한 전투 참여가 없다 하더라도 추가 보수는 지급된다.”
 전투 한 건당 은자 백 냥이라니! 이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박 조건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호위가 전투를 안 하면 뭘 해?”
 진조는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허락할 줄 알았다.”
 장명의 말에 진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서평에서 정주까지면 대략 며칠이나 걸리지?”
 “넉넉잡아 오 일 정도면 될 거다.”
 “이번 의뢰의 세부 내역에 대해서 말해 봐.”
 처음부터 이런 의뢰를 마다할 진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미 모든 조사를 끝낸 장명의 입에서는 막힘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유향문은 주구(周口)에 자리를 잡고 있는 등마문(騰魔門)과 사이가 좋지 않아. 벌써 이 년이나 되었다고 하더군. 서로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사업을 벌이다가 몇 차례나 싸움이 붙은 모양이야. 지금도 엄연히 말하면 전쟁 중이지. 서로 세력이 비슷해 일전일퇴 양상인데 한 달 전에 정주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치고 있는 하남무장의 장자와 혼담이 오간 모양이야. 일종의 정략혼인이지. 뭐, 세간의 평이 어떻든 간에 유향문으로서는 하남무장과 손을 잡으면 지긋지긋한 등마문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게 되지. 이번에 유향문의 여식이 하남무장으로 들어가면 빠른 시일 내에 혼인이 성사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등마문으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겠지.”
 장명의 설명에 진조는 대략적인 내용을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오 일이면······ 최소 세 번 이상은 전투가 있겠군.”
 “글쎄······ 내 생각엔 더 있을 거야.”
 진조는 그러면 더 좋다는 듯 씨익 웃었다.
 
 ***
 
 “다녀오겠습니다.”
 문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진조는 그러려니 하고 몸을 돌렸다. 문 안에 있는 사람과 말을 해 본 지 벌써 오 년이 흘렀다.
 대문을 향해서 걸어가자 한쪽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서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걸리십니까?”
 희끗한 머리가 제법 자리를 잡은 노대복은 주름진 얼굴 가득 걱정을 담고 있었다.
 “열흘 안으로 끝나니 걱정 마십시오.”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노대복의 인사에 진조는 걱정 말라는 듯 씨익 웃어 주고는 장원의 대문을 나섰다. 그의 넓고 탄탄한 등을 바라보는 노대복의 주름진 눈가엔 씁쓸하고 안타까운 웃음이 머물렀다.
 끼이익- 쾅.
 대문을 닫은 노대복은 진조가 대문을 나서기 전 말을 했던 방 앞으로 다가갔다.
 “마님, 도련님께서 나가셨습니다. 이번에는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게 일일이 알릴 필요 없어요.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높은 고음의 음성이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음성에는 한겨울의 냉막함이 가득했다. 언제나처럼 노대복은 안쓰러운 시선으로 방 안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노 집사(執事)도 내가 너무한다고 생각하나요?”
 방 안에서 흘러나온 희미한 음성에 노대복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공손히 대꾸했다.
 “제가 무얼 얼마나 알겠습니까? 하나······ 도련님은 도련님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라고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도련님도 벌써 스물하고도 여섯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모두 알았다 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노 집사는 여전히 녀석을 감싸는군요.”
 음성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
 잠시 방문을 바라보던 노대복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저 역시 그러고 싶습니다.”
 
 ***
 
 유향문은 작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문파였다. 문도 수는 총 이백 명가량이 되었는데 그중 일류 이상의 무공 수준을 얻은 이들은 삼십 명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수만으로도 서평 정도의 작은 도시는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출발할 것이오. 오늘은 여기서 머물고,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하시오.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은 들어주도록 하겠소.”
 딱딱하기만 한 총관의 말투에 진조는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일 일정으로 인해 문파 전체가 술렁이고 있으니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시오.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면 방 뒤쪽에 마련된 정원을 거닐도록 하시오. 그럼.”
 찬바람이 불도록 쌩 사라지는 총관의 모습에 진조는 입맛을 다셨다. 명색이 은자 백 냥에 고용된 아주 비싼 몸이다.
 은자 백 냥이 어디 뉘 집 개 이름이던가?
 이런 대접은 지금까지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뭐, 돈만 제대로 받으면 되는 거지.”
 애써 위안하며 진조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을 둘러봤다. 지나가던 식객들을 위해서 마련해 놓은 듯 방 안은 별다른 점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조는 방 안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에 홀로 있으려니 영 따분했다.
 “술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늦은 후회를 하며 진조는 어슬렁어슬렁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왔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총관의 경고대로 제집도 아닌데 마음껏 돌아다닐 순 없었다. 결국,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방 뒤쪽에 마련된 정원뿐이었다.
 정원은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털썩.
 대충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은 진조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화창하기만 하던 하늘에 희미한 그림자들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가득 들어서려던 그림자들은 진조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지나 버린 과거의 편린(片鱗)이었다. 그 조각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욕설이 그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응?”
 언제 들어왔는지 정원을 거닐던 이십 대 초반의 여자가 진조를 바라봤다. 그녀의 곁에는 호위로 보이는 여자가 눈을 치켜뜬 채로 서 있었다.
 “나 혼자 중얼거린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오.”
 진조는 혹시라도 자신의 욕설이 문제가 되었나 싶어 재빨리 말했다. 여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아래 있던 꽃을 보기 위해 주저앉았다.
 “누구기에 이곳에 함부로 들어왔죠?”
 여자 호위무사가 날카롭게 치켜뜬 눈으로 진조를 훑어봤다. 눈빛만 보더라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호위임을 알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고용된 호위요.”
 진조의 간단한 대답에 여자 호위무사는 알겠다는 듯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시선도 깨끗하게 거둬들였다.
 ‘제법 예쁘군.’
 꽃을 바라보는 여자의 미모는 괜찮았다. 절색(絶色)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하얀 피부와 행동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조신함은 충분히 예쁘게 봐 줄 만한 여인이었다.
 “호란 언니, 내일이면 모든 게 끝이겠죠?”
 슬픔이라는 감정이 떠오르는 음성이었다.
 “끝이라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어요. 제가 더 이상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아가씨의 집입니다. 어느 누가 제집엘 가겠다는 걸 말리겠습니까? 마음이 동하면 몸도 동한다고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자는 자신의 호위무사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게 보인다고 생각 드는 진조였다.
 “당연합니다.”
 여자 호위무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진조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냐는 듯한 질책이었다.
 ‘거 상당히 까칠한 호위로군.’
 진조는 더 앉아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저자가!’
 호위무사, 호란은 진조가 자신을 비웃었다고 생각했다. 당장에라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 맹소희를 위해서 참아야만 했다.
 
 ***
 
 날이 밝자 유향문 전체에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몇몇 사람들의 다그침 소리와 일꾼들의 불평과 앓는 소리가 진조의 방까지도 시끄럽게 들려왔다.
 똑똑.
 평소의 습관대로 새벽 일찍 일어나 운기조식(運氣調息)을 마친 진조는 방을 두드리는 소리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상태로 방문을 바라봤다.
 “조식(朝食)을 들이겠습니다.”
 문이 열리며 단출하게 차려진 밥상을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들고 들어왔다. 진조는 몸을 일으켜 밥상을 받아 들었고, 여인은 슬쩍 웃고는 방을 나갔다.
 “대접이 너무 시원찮군. 이래서 힘이라도 제대로 쓰겠어?”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진조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방문 앞으로 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식사는 다 하셨소?”
 “대충 때웠소.”
 진조의 대답에 문이 드르륵하며 열리더니 사십 대 중반의 남성이 들어왔다. 복장에서 유향문 문도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위무사들은 모두 모여야 하오.”
 문도의 딱딱한 말투에 진조는 유향문 사람들은 본래 딱딱한 말투가 몸에 밴 건가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요?”
 “나를 따라오시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진조는 남자의 뒤를 따르며 각종 예물(禮物)들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예물의 물량에 이 정략적인 혼인의 힘이 어디에 더 치우쳐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뿐인 딸에 이 정도의 예물까지······ 이렇게까지 해서 하남무장의 힘을 얻고 싶은 건가?’
 하남무장은 본거지인 정주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하남성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한 문파다. 그에 비해 유향문은 서평에서만 알아주니 그 힘의 크기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힘 있는 자가 지배한다.
 그런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에는 인력(人力), 무력(武力), 재력(財力)이 있다.
 유향문은 세 가지의 힘 중 인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남자를 따라서 도착한 곳엔 약 서른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반 정도는 유향문의 문도들이었고, 반 정도는 진조와 마찬가지로 은자에 고용된 무인들이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전귀당(錢鬼黨)의 유일한 특급 전객 진조 아니신가!”
 고용된 무인 중 한 사내가 진조를 알아보며 손까지 흔들었다. 큰 키에 길쭉한 얼굴, 찢어진 눈에 툭 튀어나온 턱은 호감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허리에는 도(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특급 전객!”
 “세상에, 저렇게 어린 자가 특급 전객이라고?!”
 “전귀당이면 오 년 전부터 급부상한 곳인데······.”
 사내 덕분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진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바빴다.
 “으음······ 반갑지 않은 얼굴이군.”
 진조는 자신을 향해서 손을 흔드는 사내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시선을 돌려 버렸다.
 깨끗하게 무시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여전히 진조를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도 진조를 향한 시선과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곧바로 총관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소시켜 주었다.
 “약 반 시진 뒤에 출발할 것이오. 부디 안전하게 하남무장까지 호위를 부탁하겠소.”
 어디까지나 고용된 무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래, 특급 전객께서는 이번에 은자를 얼마나 받기로 한 거야?”
 기어코 진조에게 다가온 사내가 은근히 물어왔다.
 이름은 나완평으로 나이는 대략 이십 대 후반이고, 직업은 진조와 마찬가지로 전객(錢客)이다.
 전객이란 합당한 돈을 주면 스스로 판단해 일을 맡아 먹고사는 직업을 말한다.
 다만, 돈이면 뭐든 하는 직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객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완평은 전객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 그 스스로 자유낭인이라 칭하고 있었다.
 “내가 말할 것 같아?”
 진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주변을 돌아봤다.
 유향문의 문도들은 대부분 일류 무인들이었다. 그 외에 고용된 무인들의 실력도 그에 떨어지지 않았다. 단적으로 이번 일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쳇! 딱딱하게 굴긴! 어차피 같이 먹고살자는 건데 좀 알려줘 봐. 특급 전객 정도라면 상당히 많은 보수를 받을 것 같은데······ 동등한 대우까지는 받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얼마 정도를 받는지 알아야 내 몸값도 조정을 할 것 아니야? 요즘 들어 벌이가 영 시원찮아서 목구멍에 거미줄 칠 지경이야.”
 죽는 소리를 해 대는 나완평을 진조는 깨끗하게 무시했다.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짜증날 정도로 귀찮게 군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거참! 같은 처지에 치사하게 구네!”
 쉬지 않고 떠들어 대던 나완평은 진조가 어떠한 대꾸도 해 주지 않자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곧바로 다른 고용 무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떠버리 녀석 같으니.”
 진조는 나완평을 그렇게 평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총관이 다시 나타났고, 본격적인 호위 임무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호위는 저녁까지 순탄했다.
 하남무장으로 시집가는 여식, 맹소희가 탄 마차와 예물 실은 수레가 중심이었다.
 유향문의 문도들이 가장 지척에서 호위를 했고, 고용된 무인들은 가장 외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 호위의 책임자라는 표대국이라는 중년인은 마차 안을 향해서 뭐라고 말을 하더니 곧바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이곳에서 노숙(露宿)을 하도록 하겠소!”
 “이왕이면 가까운 마을에라도 가서 편안하게 잘 것이지! 안 그래?”
 진조의 곁에 자리를 잡은 나완평은 불만 가득한 음성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도 모자라 동의를 얻어 내려고 했다.
 어차피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다.
 하루 종일 그랬던 것처럼 진조는 깨끗하게 무시했다.
 “쳇! 재미없는 자식!”
 나완평은 질려 버렸다는 듯 다른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진조의 입장에서는 그가 더 이상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다섯 명씩 조를 이뤄서 한 시진씩 경계를 서도록 하시오!”
 표대국은 책임자답게 주변 경계에 신경을 썼다.
 “이왕이면 이번 임무가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경계를 서는 게 어때? 그나마 실력이 괜찮은 자들로 추린 거야.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어.”
 어느새 나완평이 다가왔다. 그가 손짓하는 곳에는 세 명의 이름 모를 고용된 무인들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나눠 보지 않은 자들이었다.
 “상관없으니 좋을 대로.”
 진조의 대답에 나완평은 씨익 웃었다.
 “사람은 역시 줄을 잘 서야 한다니까! 잘 부탁해!”
 나완평은 진조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세 명의 무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이윽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은자 백 냥이 떨어지지 않네.”
 표대국이 들으면 욕지거리를 할 만한 소리였다.
 
 부엉~ 부엉~
 밤하늘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지금 진조가 바라보는 밤하늘은 극히 아름다웠다. 특히, 반짝이는 별들은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응?”
 밤하늘을 감상하던 진조가 슬쩍 시선을 옮겼다.
 사사사삭.
 아주 작은 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거렸다.
 지금은 아주 늦은 밤이다. 이런 시간에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다. 진조는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은자 백 냥을 내려주시는군요.”
 말을 마친 진조는 천천히 숨을 죽이고 다가오는 적들의 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열, 열하나, 열둘······ 스물다섯!”
 적들의 수를 파악한 진조는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호위 임무는 고작 하루가 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반부터 스물다섯 명이나 되는 기습이라니!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어!”
 진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제법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놓여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게 좋겠군.”
 입가를 말아 올린 진조는 바윗덩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올렸다. 못해도 백육십 근(斤)은 됨 직한 무게가 진조의 전신을 눌러 왔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가벼운 공깃돌을 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화끈하게! 하하핫!”
 진조는 그렇게 외치고는 들고 있던 바윗덩어리를 휙- 던져 버렸다.
 후우우웅-!
 콰짝! 콰짝! 쿠아앙!
 “크아아악!”
 “우와아아악-!”
 바윗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두 그루의 나무를 박살 냈다. 그리고 이어서 사람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무슨 소리지?”
 때 아닌 밤중의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진조는 자신이 날린 바윗덩어리에 세 명의 적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유쾌하게 바라봤다. 그러고는 갑작스런 소란에 어리둥절해하며 일어난 일행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적이다! 적이 기습을 해 왔다! 적이다!”
 “저, 적?!”
 “모두 적의 기습에 대비하라!”
 “무기를 들어라! 아가씨를 보호해라!”
 “씨팔! 잠자기는 다 글러먹었군!”
 일사불란하게 호위무사들이 병기를 꺼내 들었고, 기습을 가하려다 기습을 당하고 만 적들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다가 뒤늦게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대로 밀어붙여!”
 “빌어먹을! 모두 죽여!”
 “다 죽여 버려!”
 “우와아아아-!”
 병기와 병기가 부딪히며 밤하늘에 빛을 뿌렸다.
 고함을 내지르고, 욕설을 뱉어 내며 피를 뿌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조는 느긋하게 바라봤다.
 이미 기습의 효과는 사라졌다. 오히려 기습을 가하려던 적들은 당황함 속에서 허둥지둥 공격을 하느라 날카로움과 맹렬함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그에 반해 유향문의 호위무사들은 침착하게 짝을 이뤄 대응했기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
 처음부터 차이가 많이 나 버린 전투였다. 상황은 쉽게 끝이 났고, 기습을 가했던 적들 중 온전히 살아서 도주한 자들은 고작 다섯 명밖에 없었다.
 “개자식들아!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마라!”
 이번 싸움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여 준 나완평은 그 누구보다 큰 소리로 도주하는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조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
 “이걸로 우선은 은자 이백 냥 확보! 하하하핫!”
 
 ***
 
 “끄응······.”
 나완평은 한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낮에 있었던 적의 기습에 대응하다가 당한 상처였다. 이미 여러 번의 기습이 있어 온 터라 전객들 모두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제기랄!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냐?”
 머리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관추가 신경질을 부리며 들고 있던 밥그릇을 내던졌다. 나이는 서른넷으로 은자 마흔다섯 냥에 고용된 전객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벌써 열이나 당했어! 아직 하남무장까지는 이틀이나 남았다고!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모조리 죽고 말 거야!”
 관추의 곁에 있던 도대막이라는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 역시도 허리 부근을 다쳐 움직일 적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젠장! 조금 더 알아보고 일을 맡았어야 했는데!”
 “이미 맡은 일을 어떻게 해? 그렇게 떠들 시간 있으면 저쪽처럼 착실하게 먹어 두라고. 싸움이 벌어져도 먹어야 싸울 힘이 생길 것 아냐.”
 나완평은 진조를 가리키고는 돌처럼 껄끄럽기만 한 밥을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꺼~ 억~! 잘 먹었다. 식후 운동까지 준비되었군!”
 불평불만을 하든, 죽는다고 앓는 소리를 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깨끗하게 밥을 비운 진조는 트림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전낭이 두둑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하핫!”
 진조의 뜬금없는 말에 밥을 먹던 이들이 무슨 소린가 싶어 그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조는 한쪽으로 척척 움직였다.
 “이거 더는 못 쓰는 거요?”
 진조는 한쪽 바퀴와 그 축이 박살 나 버린 짐수레를 바라봤다. 짐수레를 끄는 짐꾼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이 손상되어서 당장은 수리가 어렵습니다. 이미 폐기처리하고 가기로 허락도 받았습니다.”
 짐꾼의 말에 진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쓰임이 다한 짐수레에 관심을 갖는 진조를 보며 짐꾼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진조는 대답 대신 짐수레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그러고는 작게 호흡을 고르더니 내공을 끌어 올려 단숨에 몸을 회전시켰다.
 “자~ 날아라!”
 “허억!”
 “뭐, 뭐야?!”
 짐수레가 날았다.
 허공으로 떠오른 짐수레는 포물선을 그리며 한쪽 숲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짐꾼과 주변의 호위무사들이 놀란 음성을 터뜨림과 동시에 짐수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콰자자자작!
 “크아아악!”
 “끄아아아-!”
 “기, 기습이 또 간파당했다!”
 또다시 적들의 기습이다.
 숲 속에서 열 명의 무인들이 뛰쳐나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들은 살기 어린 눈동자로 달려들었고, 밥을 먹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호위무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주 달려 나가 충돌했다.
 “이걸로 은자 육백 냥! 하하하핫!”
 진조는 유쾌하게 웃으며 왼쪽 허리에 걸어 놓았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뺐다. 그러고는 곧바로 앞을 향해서 손을 휘둘렀다.
 슈우우웅!
 퍼- 억!
 “······컥!”
 호위무사를 압박하던 적의 허벅지에 진조가 날렸던 돌멩이가 박혀 들어갔다. 그사이 호위무사는 자세가 흐트러진 적의 가슴에 검을 꽂아 주었다.
 이후로도 진조는 가만히 서서 돌멩이만 내던졌다. 적을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호위무사들에게는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돌팔매질은 위기에 처한 호위무사들을 구해 주기도 했다.
 “이, 이대로는 어렵다! 후퇴해!”
 “각자 후퇴해!”
 기습을 감행했던 열 명의 무인들 중 살아서 도망간 수는 고작 셋뿐이었다. 그에 반해 호위무사들은 진조의 돌팔매질로 인해서 별다른 큰 부상이 없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짐꾼은 진조를 경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장정 넷이 달라붙어야 겨우 들어 올릴 수 있는 짐수레를 번쩍 들어 올린 것은 물론이고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적들의 기습을 혼자 알아차린 것도 대단했고, 돌멩이만 던져 호위무사들을 도와준 것도 짐꾼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은자 백 냥 값은 해야 하지 않겠소? 하하핫!”
 “예?”
 짐꾼은 은자 백 냥 값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조는 유쾌하게 웃고는 예의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호위무사들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한 사내가 앞을 가로막음으로써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나 좀 보지.”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번 호위 임무의 책임자인 표대국이었다. 그는 유향문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이다.
 “무슨 일입니까?”
 진조의 물음에 표대국은 자리를 옮기자는 듯 고갯짓을 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번 까딱거리자 표대국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진조가 느긋하게 따라갔다.
 표대국은 일행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이름이 진조라고 했던가?”
 “그렇소.”
 “전귀당 소속의 유일한 특급 전객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맞소.”
 진조는 왜 뻔히 알고 있는 걸 물어보냐는 듯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표대국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알았음일까?
 표대국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보수를 지금의 세 배로 지급하겠네. 단, 더 이상 전투가 없도록 해주게. 아가씨께서 상당히 불안해하고 계시네.”
 “정확하게 말을 해 보시오.”
 “아가씨께 더 이상 전투의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네.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습을 알아차렸으니 조용히 먼저 처리를 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호위무사에서 살수로의 전업(轉業)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수는 정확하게 세 배를 주겠네.”
 전객의 약점이라도 되는 양, 표대국은 다시 한 번 돈 이야기를 들먹였다. 하지만 보수의 세 배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진조는 고개를 저었다.
 “싫소. 지금의 보수와 현재의 임무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소.”
 “응?”
 단박에 거절을 할 줄은 몰랐는지 표대국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보수의 세 배다.
 은자 백 냥이 삼백 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절을 한다?
 더군다나 돈이라면 환장한다는 전객이?
 “이유가 무엇인가?”
 진조는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귀찮소. 몇 놈이나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일일이 다 처리해야 하면 아무래도 내가 손해요.”
 세 배라는 보수가 적당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기습해 왔던 적들의 수는 최소 열에서 최대 삼십 명까지 그 수가 상당했다.
 삼백 냥에 얼마나 될지 모르는 적들을 일일이 앞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건 진조에게 있어 상당히 까다롭고도, 귀찮은 일인 동시에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음······ 그럼 조건을 제시해 보게.”
 상대가 협상을 원한다.
 전객은, 더욱이 진조와 같은 특급 전객은 협상에 능하다. 아니, 어쩌면 그이기에 협상에 능한 것인지도.
 진조는 가볍게 오른손을 모두 펼쳤다.
 “오, 오백 냥?”
 표대국은 대번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두당 은자 오십 냥!”
 “기습을 해 오는 적 한 명당 은자 오십 냥은 너무 과한 요구인 것 같군!”
 음성이나 일그러진 눈동자에서 표대국은 협상이 결렬되어 가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역시 무리인가?’
 너무 강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진조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설렁설렁 움직이고 은자 백 냥을 챙길 수 있었다. 먼저 찾아내고 조용히 처리를 하려면 한 명당 은자 오십 냥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차하게 은자 오십 냥의 가격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이럴 때는 아주 강경하게 나가는 편이 그 어떤 백 가지 변명보다도 좋다는 걸 진조는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있었다.
 “싫으면 마시오.”
 진조는 미련 없다는 듯 발을 돌렸다.
 쉽게 돌아서는 진조의 모습에 표대국이 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진조는 고개만 돌려 일그러진 표대국을 바라봤다.
 “은자 삼십 냥으로 하세.”
 “못 들은 걸로 하겠소.”
 가차 없다. 얼굴에도 어떠한 미련이나 망설임이 한 점도 없었다. 그야말로 표대국 입장에서는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은자 사십 냥!”
 진조의 발걸음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다.
 “은자 사십······ 후! 알겠네. 한 사람당 은자 오십 냥으로 하지. 대신, 조용히 처리해야만 하네. 소란이 일어나면 그 전투는 보수에서 제외하겠네.”
 상당히 강한 조건을 내거는 표대국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더 강한 놈이다. 더욱이 이미 자신의 작전이 충분히 먹혀들어 갔음을 확인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거절하겠소. 아무런 소란도 없이 조용히 처리하려면 전문 살수를 고용하시오. 나는 전문 살수가 아니오. 아니면 내가 내건 조건의 세 배를 주시오.”
 “끄응······.”
 이건 협상이 아니다!
 표대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다. 정말이지 이건 협상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진조의 독자적인 일방통보였다.
 “그럼 얼마나 소란을 잠재울 수 있나?”
 진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때그때 다르오.”
 표대국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단어만이 떠올랐다.
 
 졌다!
 
 
 제3장
 
 
 쾅!
 탁자가 박살 나며 그 파편이 주변으로 튀어 나갔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다섯 번 모두 실패라니! 내부에 고발자가 있지 않고서야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등마문의 장로인 손일기는 뱀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노려봤다. 그의 시선이 닿을 적마다 등마문의 무인들이 움찔거리며 급급히 고개를 숙였다.
 한참이나 노려보던 손일기가 의심의 눈길을 거두었다.
 “이제는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아무래도 그들을 움직여야겠어!”
 부르르르.
 손일기가 그들을 언급하자 등마문 무인들이 몸을 떨었다. 단순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 왔으니 그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적청쌍귀(赤靑雙鬼)를 불러!”
 손일기의 외침에 무인 하나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서구가 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어서 손일기가 사납게 명령을 내렸다.
 “적청쌍귀가 도착하기 이전까지 최대한 놈들의 발을 붙잡아 둬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들의 발을 붙잡아! 그러지 못할 시엔······ 네놈들 모두를 죽이겠다.”
 
 ***
 
 진조는 모든 감각을 최대한 열어 두었다.
 주천무애신공(週天無涯神功)이 완숙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진조의 기감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한 놈에 은자 오십 냥이다! 이건 대박이야! 앞으로도 이런 의뢰만 받았으면 좋겠군! 아니지, 아예 이런 쪽으로만 나서 볼까? 그냥 살수로 전업을 해? 아니야, 아니야! 돈 벌려고 사람 죽이는 일은 좀 그래. 그냥 이번처럼 기회를 봐서 추가 이익금을 만들어 내자! 하하핫!’
 진조는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자는 왜 이렇게 즐거운 거야?”
 “그러게 말이야, 당장 정주까지 안전하게 도착이나 할지 의문스러운데!”
 “그러고 보면 혼자만 멀쩡하군!”
 “특급 전객이라잖아.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부상을 피했나 보지.”
 “그런가?”
 그런 그의 모습에 주변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는 듯 이해 못할 표정이었지만, 애초부터 그런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진조였다.
 “왔군! 돈 굴러들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들려!”
 진조는 자신의 기감에 걸린 이들을 향해서 은밀히 접근해 들어갔다.
 “하나, 둘······ 아니지! 은자가 오십 냥, 백 냥, 백오십 냥······.”
 대박이다!
 적들의 수는 총 열일곱 명!
 은자로 환산하면 무려 팔백오십 냥!
 이런 대박 의뢰는 진조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었다.
 “돈 덩어리들아! 맛있게 먹어 주마! 하하핫!”
 진조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신궁탄영(新弓彈影)!
 삼백 년 전 사라진 무림 최고의 경신술로 극에 이르면 몸이 연기처럼 흩어진다고 전해진다. 그런 신궁탄영이 진조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물론이죠! 여기서 또 막지 못하면 손 장로님께 무슨 변을 당할지······.”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떠는 무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등마문 내에서 잔혹하기로 손일기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한번 찍히면 그야말로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놈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서 이동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뿐이니 모두들 명심하고 행동하도록!”
 “그런데 발목을 붙잡으면 누가 오는 거요?”
 명령을 내리던 이가 눈을 찌푸렸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적청쌍귀가 도착하면 놈들도 더 이상은 어쩌지 못할······ 헛! 누, 누구냐!”
 말을 하던 이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곁에 자연스럽게 쭈그려 앉은 이를 바라봤다. 평범하다기보다는 조금 더 잘생긴 이십 대 중반의 남자, 진조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청쌍귀라······ 뭐 하는 놈들일까? 뭐, 네놈들이 제법 자신 있어 하는 것 보니까 강한 놈들인가 보지?”
 진조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말을 하고는 씨익 웃었다.
 “뭐, 그건 그때 가서 확인하면 되겠지. 어쨌든 그놈들도 온다면 은자 백 냥 추가요! 하하핫!”
 “미친 새끼! 죽여 버려!”
 “죽어랏-!”
 진조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날들을 바라보고도 태연하게 웃었다.
 쐐애애엑-!
 슈슈슈슈슉!
 검날들은 하나같이 진조의 몸을 헤집었다.
 “헛! 허, 허상이다!”
 “고, 고수!”
 여섯 자루나 되는 검날들이 헤집고 관통한 것은 진조의 허상이었다. 수면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다 사라지는 것처럼 그의 모습이 바람결에 흩어져 버렸다.
 슈악!
 “컥!”
 핏물이 튀며 한 사내가 쓰러졌다. 그 뒤로도 사내들이 하나씩 작게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당하는 적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굉장한 고수다! 모두 흩어져라!”
 “손 장로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모두 몸을 피해!”
 적들은 하나, 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누구도 도망갈 수 없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사, 사술이다!”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적들 앞으로 연기처럼 진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쯧쯧쯧! 제 실력이 부족한 건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사술이라니! 이래서 고수는 제대로 된 실력도 발휘하면 안 된다니까! 뭐가 했다고 하면 죄다 사술이라고 몰아붙여요!”
 진조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힌 이들을 하나, 하나 착실하게 처리했다.
 어느 누구도 죽지는 않았지만 몸을 회복하고 무공을 다시 사용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심각한 부상을 입고야 말았다.
 적들을 모두 처리한 진조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놈들을 어떻게 증명한다······.”
 진조는 그렇게 처음으로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표대국은 진조의 부름에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와 만났다.
 “무슨 일인가?”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소?”
 “계산이라니?”
 진조는 구차한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작은 보자기를 표대국에게 던졌다.
 턱.
 “이게 무엇······.”
 말을 하다 말고 표대국은 인상을 찌푸렸다. 보자기에서 스며 나온 핏물이 그의 손에 묻어 기분 더러운 느낌을 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겨져 나오는 피 냄새도 상당했다.
 “정확하게 팔백오십 냥이오.”
 “파, 팔백오십 냥!”
 표대국은 놀란 눈으로 진조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금액이 너무 커서 그런데······ 이왕이면 중간 정산을 하고 싶소만? 아, 물론 내가 유향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금전 거래는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좋은 것 아니겠소? 그래야 나도 좀 더 분발할 테고······ 하하하핫!”
 표대국은 너무 돈만 밝히는 진조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래는 거래. 그는 곧바로 보자기를 펼쳐 보았다.
 “으음······.”
 보자기에 싸여 있던 내용물은 다름 아닌 사람의 새끼손가락이었다. 모두 일정하게 왼쪽 손의 새끼손가락이었고, 그 수는 정확하게 열일곱 개였다.
 “그것만 보고 내 취미가 고약하다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나도 나름대로 상당히 고심한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니까.”
 어차피 적들이다. 또, 기습을 하려고 했었으니 새끼손가락 하나는 상당히 가벼운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표대국은 보자기를 다시 싸맸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나보다 고수란 말인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쪽에 보자기를 내려놓은 표대국은 곧바로 품에서 전표 뭉치를 꺼내 들었다.
 “은자가 없으니 전표로 대신하겠네. 은자를 요구한다면 지금 당장 지급할 수가 없네. 어떤가? 괜찮겠나?”
 진조는 이왕이면 은자가 좋았다. 하지만 어느 누가 은자를 몇 백 냥씩이나 들고 다니겠는가? 더군다나 지금은 적들과 싸움을 해야 할 정도로 살벌한 호위행 중이었다.
 “어느 전장의 전표요?”
 진조의 물음에 표대국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전표를 의심하는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금룡전장(金龍錢莊)의 전표네.”
 “금룡전장이라면 믿을 수 있지!”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장이 바로 금룡전장이다. 금룡전장이 망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전표가 종이 쪼가리로 변할 리 없었다.
 표대국이 전표 뭉치의 금액을 확인하는 순간.
 “이왕이면 이전 의뢰비까지 한꺼번에 정산을 했으면 좋겠소.”
 진조의 말에 표대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두 얼만가?”
 “본 의뢰비 백 냥에 다섯 차례 전투 발생으로 오백 냥이 추가된 은자 육백 냥이오.”
 “으음······ 사, 상당한 거액이로군.”
 표대국의 표정에 진조는 피식 웃었다.
 “나는 특급 전객이니까! 하하핫!”
 진조의 웃음소리가 얄밉게만 느껴지는 표대국이었다.
 하지만 계산은 정확해야 하는 법이고, 상대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그로 인해서 많은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돈을 아까워할 순 없었다.
 또, 앞으로 무사히 맹소희가 하남무장으로 도착하기만 한다면 이 정도의 돈은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총 천사백오십 냥이네. 확인을 해 보게.”
 진조는 표대국이 건네는 전표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은자로 천 냥짜리 전표 한 장에 백 냥짜리 전표 네 장과 오십 냥짜리 전표가 한 장으로 금액은 정확했다.
 물론, 어두웠지만 금룡전장의 전표가 맞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하는 섬세함을 보여 줘 표대국의 기분을 살짝 건드렸다.
 “확실하게 받았소!”
 진조는 전표를 품에 소중히 넣으며 씨익 웃었다.
 “앞으로도 부탁하겠네.”
 “걱정 마시오! 내가 확실하게 해결하도록 하겠소! 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소.”
 진조는 슬쩍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문제라니?”
 뭔가 모를 불안감이 표대국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적들의 계획을 듣다가 알게 되었는데······ 조만간 적청쌍귀가 올 것 같소.”
 “적청쌍귀!”
 표대국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모습에 진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오호! 돈 냄새가 풀풀 나는구나!’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숨기며 진조가 무겁게 말했다.
 “알다시피 적청쌍귀는 상당한 놈들이오. 아무래도······.”
 물론, 진조는 적청쌍귀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질려 버리는 표대국의 얼굴을 확인했기에 그리 말하는 것뿐이었다.
 “적청쌍귀라면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도 쉽지 않은 상대지! 빌어먹을! 등마문에서 작정하고 이번 일을 계획했군! 적청쌍귀라니!”
 어쩔 줄을 모르는 표대국의 모습에 진조는 입가를 끝없이 올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은자 오백 냥 어떻소?”
 “엉?”
 표대국은 눈을 껌뻑이며 진조를 바라봤다.
 “내가 적청쌍귀를 상대하는 데 드는 비용이오. 어떻소? 은자 오백 냥이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허! 허허허!”
 넋이 나간 웃음이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 황당함으로 잔뜩 무장한 웃음이다.
 진조를 바라보는 표대국의 표정은 ‘이거 미친놈 아니야?’ 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물론이오!”
 “진심으로?”
 “진심으로!”
 비장하게 외치는 진조의 모습을 보며 표대국이 가볍게 대꾸했다.
 “돈에 미치기라도 했소?”
 “······쑥스럽게.”
 진조가 얼굴을 붉힌다.
 
 ***
 
 적청쌍귀는 하남성에서 꽤나 악명을 날리고 있는 무림고수들이다. 별호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한 명이 아닌 두 명이고, 그들은 언제나 붉은색과 푸른색의 장삼을 즐겨 입었다.
 “흐흐흐! 간만에 돈 좀 만지겠군!”
 붉은색의 장삼을 입은 대머리 노인, 적귀가 음흉하게 웃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푸른색의 장삼을 입은 말라깽이 노인, 청귀가 껄끄러운 웃음을 흘렸다.
 “클클클! 그러게 말이야! 은자 천 냥이면 족히 석 달은 펑펑 놀아도 되겠어!”
 이들이 바로 악명 자자한 적청쌍귀다.
 절정에 이른 고수들로 특히, 장법에 있어서는 하남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었다. 물론, 별호에서 말해 주다시피 그들은 둘이 하나처럼 움직인다.
 “만만찮은 자가 있는 것 같소이다.”
 당부하는 손일기의 말에 적귀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유향문 따위가 고수를 영입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 제깟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당할 수는 없지!”
 오만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손일기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듣기에는 아니꼽더라도 실제로 적청쌍귀의 실력은 인정을 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기로 유향문의 여식이 꽤나 반반하다던데······ 내가 가지더라도 문제 될 것이 있나?”
 적귀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더러운 탐욕이 질척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손일기는 감흥 없이 대답했다.
 “상관없소이다. 어차피 모두 죽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자들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단,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하오.”
 “흐흐흐! 좋군! 아주 좋아!”
 “끌끌끌! 처녀는 회춘에 아주 좋지!”
 청귀까지도 욕정을 드러내며 더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손일기도 마주 웃었다.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 짓기를 기대하겠소. 아니지! 이 기회에 나도 함께 가리다. 지금 바로 움직입시다. 문도들에게 그들의 발목을 잡아 두라고 했으니.”
 본래 적청쌍귀에게 일을 맡기고 빠지려던 손일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흐흐흐! 그러든지.”
 “끌끌끌!”
 적청쌍귀는 벌써부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
 
 “은자 오백 냥! 은자 오백 냥!”
 진조의 벌어진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적청쌍귀에게서 아가씨를 보호해 주기만 한다면 추가로 은자 오백 냥을 주겠네!”
 
 표대국은 적청쌍귀에게서 맹소희를 지켜 주는 조건만으로도 은자 오백 냥을 순순히 내놓겠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진조는 은자 백 냥에 고용된 호위무사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적청쌍귀처럼 대단한 고수들이라면?
 은자 백 냥에 죽을 줄 알고 싸우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의 전객들은 위약금을 물거나, 다시는 의뢰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때문에 종종 고용된 전객들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추가 비용을 받아 싸움에 임하기도 한다.
 진조의 경우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수입이 아주 짭짤해! 하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는 진조를 유심히 바라보던 나완평이 은근슬쩍 곁으로 다가갔다.
 “요즘 들어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요즘 들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 진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완평은 파헤치고 싶었다. 대충 무엇이 그를 그토록 기분 좋게 만드는지 추측할 순 있었지만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번에 따로 무슨 추가 보수라도 받기로 한 거야? 아니면, 유향문에서 또 다른 의뢰라도 받은 거야? 그런 거야? 무슨 일인데? 나도 껴 줄 수 있으면 좀 껴 줘, 응?”
 무림의 모든 전객들에게 기분 좋을 일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바로 돈!
 돈에 관련된 일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완평의 모습에 진조가 툭 내뱉었다.
 “궁금해?”
 “응!”
 눈까지 반짝거리며 대답하는 나완평의 모습에 진조는 씨익 웃어 주었다.
 “그건 말이야······ 사업상 기밀이야! 하하핫!”
 “······젠장할 놈!”
 나완평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남무장까지는 앞으로 반나절!
 호위무사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기에 꽤나 고단한 임무였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 하나 없어 만족스러웠다.
 물론, 크게 다친 이들이 몇 있었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는 가운데 한 사람만이 얼굴을 찌푸리며 연신 불안에 떨었다.
 “으으음······.”
 바로 진조였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왜! 내 은자 오백 냥은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이제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고 정주에 들어서면 하남무장이다. 그럼 그 순간부터 임무는 끝이다. 모든 임무가 끝나고 그 뒤에 적청쌍귀인지 하는 놈들이 나타나도 은자 오백 냥은 어디서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은자 오백 냥을 날릴 판이었다.
 진조의 불안감은 한 발자국을 내디딜 적마다 커져만 갔다.
 “아가씨, 반나절만 가면 하남무장입니다.”
 표대국의 말에 마차 안에 앉아 있던 맹소희가 우울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아가씨······.”
 잘 안다. 맹소희가 어떠한 기분인지 표대국은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녀는 하남무장에 가야만 한다.
 그게 유향문이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얻을 이득은 막대하다.
 유향문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그녀가 필사적으로 거부했다면 하남무장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맹소희는 그러지 않았다.
 ‘아가씨께서도 하남무장으로 가시길 원하셨으니.’
 그것은 맹소희가 진심으로 바라는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거짓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유향문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으로 죄책감을 털어 버렸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까지도.
 “호란 언니.”
 맹소희의 부름에 그녀의 곁에 앉아 있던 호위무사 호란이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언니와도 이별이네요.”
 “저는 언제나 유향문에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여건이 된다면 종종 아가씨를 뵈러 하남무장을 찾겠습니다.”
 “정말이죠?”
 “물론입니다.”
 맹소희는 그것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며 웃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안타까운 호란이었다.
 “저 때문에 모두들 고생이 많네요.”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며 맹소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고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녀가 희생함으로서 얻는 막대한 이익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호란은 입을 다물어 억지로 삼켰다.
 “저 사람은 멀쩡하네요.”
 맹소희의 말에 호란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정원에서 불쾌한 만남을 가졌던 사내가 길을 걷고 있었다.
 “제 몸 하나는 제대로 지킬 줄 아는 사람이군요.”
 말 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대부분의 호위무사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짐꾼들마저도 작은 부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말은 그만큼 적들의 공세가 과격했다는 말이고, 그로 인해서 짐꾼들까지도 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색이 호위무사라는 자가 멀쩡하다니!
 호란의 입장에서는 결코 곱게 볼 수 없었다.
 ‘대충대충 적당히 몸만 사리고 돈을 받겠다는 심보로군! 사내라는 것이 부끄러운 작자다!’
 생각할수록 괘씸해졌다.
 그러던 그가 자신을 바라봤다.
 씨익.
 ‘웃어?’
 그가 웃었다. 아주 진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감정이 가득했던 호란이다.
 “저자가 기분 나쁘게 웃······!”
 “흐흐흐! 이제 보니 호위하는 계집도 제법 반반하군! 몸매가 아주 탐스러워! 이래서 무공을 익힌 계집들이 좋다니까!”
 “끌끌끌! 예상외의 수확이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마차 지붕 위에 두 명의 노인이 제집 안방처럼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누, 누구냐!”
 호란이 급하게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그녀는 맹소희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보호했다.
 “누구냐고? 흐흐흐! 이 몸이 적귀 님이시다!”
 “나는 청귀라고 하지! 끌끌끌!”
 콰자장!
 마차 지붕이 적귀의 두 손바닥에 터지듯 박살 났다.
 “저, 적청쌍귀! 노괴들이로구나!”
 호란의 검은 마차 지붕이 박살 나는 순간 빠르게 청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청귀를 공격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더욱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지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제법이지만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로군! 끌끌끌!”
 청귀는 가슴으로 파고드는 호란의 검을 향해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퍼엉-
 폭음이 터지며 호란의 검이 뒤로 튕겨져 나갔고, 동시에 답답한 가슴 통증이 그녀의 신음을 이끌어 냈다.
 “으윽······.”
 단 한 수로 실력의 차이가 드러났다.
 호란의 실력으로는 결코 적청쌍귀의 한 사람도 상대할 수 없다.
 “흐흐흐! 네년이 유향문의 여식이로구나! 야들야들해 보여서 좋구나!”
 적귀는 호란의 뒤에서 벌벌 떠는 맹소희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이 노괴가!”
 호란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아직 검기를 뽑아내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그 날카로움은 상당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적귀에게는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은 칼질이었다.
 퍼엉-
 “아악!”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지며 사정없이 호란의 몸이 마차 한쪽 구석으로 떠밀렸다.
 “호란 언니!”
 맹소희가 울 듯한 얼굴로 호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흐흐흐! 그 표정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역시 계집은 울 듯 말 듯한 표정이 제격이야! 어르신께서 네년에게 극락이 무엇인지를 알려 줄 테니 기다려라!”
 적귀의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맹소희의 옷깃을 잡으려는 순간!
 휘이익!
 퍼어억!
 “끄아-!”
 적귀의 얼굴 옆면으로 짱돌 하나가 날아들었다.
 적귀는 고수다.
 고수가 짱돌을 못 피할까?
 “웬 놈이냐!”
 청귀는 짱돌에 맞아서 휘청거리는 적귀의 모습에 분노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포위하듯 호위무사들과 짐꾼들이 저마다 무기를 빼어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분노에 휩싸인 듯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 겁을 먹은 상태였다. 호위무사 그 누구도 적청쌍귀를 상대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누구?
 누가 짱돌을 날려 적귀를 공격했단 말인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년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청귀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는 진심으로 맹소희와 내상을 입어 새하얗게 안색이 질린 호란을 찢어 죽일 듯 손을 뻗었다.
 휘이익!
 “흥! 고작 이따위 수법에······ 커헉!”
 하나의 짱돌은 피했다. 그런데 그건 속임수였다. 반대쪽에서 또 다른 짱돌이 날아와 청귀의 볼을 강타했다.
 “하는 짓이 더러워서 못 봐 주겠군. 나이를 처먹었으면 곱게 늙어야지, 뭐 하는 짓들이야?”
 진조였다.
 한 손으로 짱돌을 툭툭 들어 올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네놈이로구나! 어디 그 잘난 실력을 뽐내 보아라! 이노오옴!”
 적귀가 정신을 차리고 마차에서 몸을 날렸다.
 짱돌에 맞은 볼은 잔뜩 부어올라 있었고, 입에서 흘러내린 핏물 자국은 보기 힘들 정도로 흉했다. 확인하지 않아도 이가 몇 개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날다시피 다가오는 적귀의 소매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라 뻗어 내는 손에서는 바위라도 단숨에 박살 내 버릴 거력(巨力)이 깃들어 있었다.
 하남성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장법의 고수이다. 적귀의 언행이 어떻든 간에 그의 육장(肉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 늙었으면서도 힘이 좋군!”
 말과 동시에 진조는 짱돌을 내던졌다.
 파삭!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기(勁氣)에 적귀의 손에 직접적으로 닿기도 전에 돌멩이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그 모습에 진조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만만찮다!’
 진조는 적귀의 손바닥을 향해서 마주 손을 내밀었다. 단단한 돌멩이마저도 닿기도 전에 부서뜨린 경기가 손끝으로 밀려들어 오자 진조는 곧바로 손목을 비틀 듯이 회전시켰다.
 스윽-
 경기가 진조의 손바닥이 그려 나가는 원의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손바닥을 뚫을 듯한 따끔함에 진조는 급히 손을 좌측으로 털어 냈다.
 쾅!
 손바닥에 모여 들었던 경기가 애꿎은 땅을 파헤치며 사라졌다.
 “이놈이!”
 적귀는 자신의 공격을 쉽게 흘려버리는 진조의 모습에 경시하던 마음을 깨끗하게 털어 냈다. 지금까지 악명을 떨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재주가 제법이구나! 이것도 받아 보아라!”
 적귀는 양손을 힘껏 내밀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력은 앞선 경기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그야말로 전력에 가까운 공격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귀찮은 늙은이야!’
 진조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급히 내공을 쭈욱 끌어올렸다. 단전이 터질 듯 가득 차 있던 내공이 혈맥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덧 진조의 소매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적귀의 장력과 진조의 장력이 거세게 충돌했다.
 퍼어어엉-!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진조는 인상을 더욱 찌푸렸고, 적귀는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자신이 내상을 입었던 적은 십 년도 넘었다.
 그때 정신을 차린 청귀가 진조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력도 적귀의 것만큼 대단했다.
 ‘오백 냥만큼 날 고생시키겠다는 거지? 좋아!’
 진조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허리를 노리고 다가오는 장력을 진조는 급히 피하며 왼손을 뻗었다. 맹금류의 그것처럼 모양을 구부린 손가락들은 청귀가 놀라는 사이 그의 팔뚝을 단번에 쭈욱! 훑어 버렸다.
 콰드드드득!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청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급급히 뒤로 물러나는 그의 팔은 허연 뼈가 보일 정도로 무참하게 뜯겨지고 찢겨져 있었다.
 묵룡천인조(墨龍千刃爪)였다.
 진조는 여전히 손가락을 구부린 상태로 청귀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미 그의 조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하게 경험한 청귀였다.
 “개놈의 새끼!”
 청귀는 달려드는 진조를 향해서 남은 손으로 미친 듯이 장력을 뿜어냈다. 조금만 빗맞아도 뼈가 박살 나 버릴 무시무시한 장력이 쏟아졌지만 진조는 다가섬을 멈추지 않았다.
 지옥의 악귀처럼 따라붙는 진조의 모습에 청귀는 처음으로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자코 그의 접근을 허용할 수는 없었다.
 단전에서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고 비명을 내지르지만 청귀는 깨끗하게 무시했다. 당장 내공 걱정하다 남은 팔, 아니 어쩌면 목이 뜯겨져 나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대갈통을 터뜨려 주마!”
 어느덧 대충 내상을 가라앉힌 적귀가 진조의 뒤를 노리고 장력을 뿜어 댔다.
 앞에서는 청귀가, 뒤에서는 적귀가 완벽에 가까운 합공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진조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건 오백 냥으로 부족해! 최소 육백 냥은 받아야 해!’
 그런 생각과는 별도로 진조는 구부렸던 손을 재빨리 활짝 펼쳤다. 그러고는 양손을 각각 앞뒤로 쭉! 내뻗었다. 어느새 그의 손바닥엔 새하얀 냉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윽! 차다!’
 ‘뼈가 시릴 정도의 냉기라니!’
 청귀와 적귀는 손바닥을 통해서 느껴지는 차디찬 냉기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방출한 장력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
 “차하앗-!”
 “하야압!”
 적청쌍귀는 내공을 몽땅 끌어올렸다.
 손바닥을 넘어 손목과 팔꿈치, 어깨까지 강렬한 경기가 침투하자 진조는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아붙였다.
 ‘칠백 냥이야!’
 어느새 단전에서는 엄청난 양의 내공이 뻥뻥 뚫려 있는 세맥을 급속도로 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공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진조의 손바닥을 통해서 뿜어져 나가는 장력, 빙하칠음장(氷河七陰掌)의 위력이 더욱더 강력해졌다.
 어느덧 적청쌍귀의 소매가 얼어붙고 있었다.
 ‘이, 이런 장력이 어떻게······!’
 ‘있을 수 없어! 이렇게 강력한 빙장(氷掌)은 있을 수 없어!’
 적청쌍귀가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에 그들의 세맥을 통해서 냉기가 침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크아아~ 커헉! 컥컥!”
 “끄으으······ 쿨럭! 쿨럭!”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적청쌍귀는 파랗게 변한 입술에서 비명과 함께 선홍빛의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 네네네······ 네놈은······.”
 “쿨럭! 쿨럭! 쿨럭! 도, 도대체······.”
 적청쌍귀는 죽음조차도 나란히 맞이했다.
 소매에 달라붙은 살얼음을 툭툭 털어 내며 진조가 중얼거렸다.
 “칠백 냥이야······ 칠백 냥! 절대 못 깎아!”
 
 
 제4장
 
 
 하남무장.
 정주에서는 가장 큰 세력이며, 하남성 전체로 봤을 때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문파이다.
 비록, 소림사(少林寺)나 신창윤가(神槍尹家)엔 비할 바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남성에서 하남무장의 위세는 상당하다 할 수 있었다.
 보라! 저 으리으리한 장원을!
 하남무장을 향해서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다.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하며 두 대의 수레를 끌고 가는 무리. 그들은 다름 아닌 서평에서부터 출발한 유향문의 맹소희 호위대였다.
 표대국은 안전하게 맹소희를 하남무장까지 호위했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뿌듯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가슴 한쪽이 아프기만 했다.
 그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호위대를 이끈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두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무사히 호위 임무를 마쳤다는 것은 표대국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도 좋은가?’
 얼굴 가득 떨어지지 않는 웃음기. 진조는 적청쌍귀를 무찌르고 나서부터는 연신 웃음을 달고 다녔다.
 ‘하긴, 적청쌍귀를 홀로 제압했으니 좋을 만도 하겠지. 도대체 그 같은 실력으로 무엇이 아쉬워 전객 노릇을 하는 건지······.’
 돈에 환장했다고 해서 모두가 무시하는 전객이다. 진조와 같은 고수가 전객으로 살아가며 무시당하며 살아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돈 때문에?
 ‘저 정도의 실력이면 그 어디 가더라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지.’
 표대국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버리고 말았다.
 적청쌍귀를 홀로 격파했다!
 이 사실이 무림에 알려지면 꽤나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새로운 신진고수의 출현은 언제나 무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표대국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진조는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표대국의 생각처럼 적청쌍귀를 격파해서?
 절대 아니다!
 무림의 새로운 신진고수로서 명성을 얻어서?
 절대 아니다!
 진조가 희희낙락거리는 진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팔백 냥! 한 놈에 팔백 냥! 으하하핫!’
 적청쌍귀를 물리치고 오백 냥이 아닌 칠백 냥을 달라고 하려던 진조보다 빠르게 표대국이 팔백 냥을 건네주었다.
 성의라는 이름으로!
 “제법 괜찮아! 저번에 대협이니 어쩌니 하는 놈은 약속한 보수만을 정확하게 주더니! 사파 사람들만 통 크고 화끈한 줄 알았더니 역시 정파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긴 있어! 하하핫!”
 진조에게 있어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은 크게 없다. 대체적으로 정파의 인물들이 사파의 인물들에 비해 착하거나 공명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러운 짓을 하기 위해서 몰래 남의 손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차라리 대놓고 하는 사파 쪽이 훨씬 보기 좋았다.
 그러다 보니 정파 사람 중에도 사파의 악인만큼이나 악랄하고 음흉한 이가 수두룩했고, 사파 사람 중에도 정파의 대협만큼이나 올곧은 기치(旗幟)를 세우며 나름대로의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이가 있었다.
 “진 대협.”
 진조는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마차의 창을 통해서 맹소희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오?”
 고용된 호위무사의 말투치고는 제법 건방지다. 하지만 진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호위무사는 지켜 주는 사람이지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전하게 절 호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헤어지기 전에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맹소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진조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소. 그리고 답례라면 충분히 받았으니 더 이상 그럴 필요 없소. 받은 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생각하시오.”
 “하지만, 돈에 생명을 거셔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제가 고마워해야지요.”
 “내가 선택한 일이오.”
 언뜻 차갑게 들리는 말이지만 맹소희는 진조가 자신의 고마움을 쑥스러워한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정말로 그런 말에 쑥스러워할 진조가 아니다. 그가 부끄러움을 탈 때는······ 오직 돈에 관련된 일을 염치없이 해결하려고 할 때뿐이다.
 “당신은 괜찮소?”
 진조가 맹소희 곁에 있던 호란을 바라봤다. 그녀의 안색은 내상으로 인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대충 운기조식을 통해 치료를 하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며칠은 요상(療傷)해야만 했다.
 “괜찮아요.”
 호란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고, 맹소희를 지켜 줬다는 사실은 고맙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분하고 억울했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모르는 그녀였지만 어쨌든 진조가 괜히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눈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몰랐다.
 냉랭하기만 한 호란의 말에도 진조는 개의치 않고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말을 꺼내 놓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혹시라도 괜찮지 않으면 내가 좋은 내상약을 하나 주리다.”
 바로 이거다!
 헤어지기 이전까지 반드시 기회를 봐서 하려고 했던 말이다.
 진조의 말에 호란의 눈이 살짝 움직였다.
 고수가 지니고 다니는 내상약이다. 고수는 내상을 잘 입지 않는다. 그만큼 실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내상 입힐 만큼의 상대를 만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가능성들로 고수가 내상을 입는다면 그 위험도는 높은 것이 자명한 일. 삼류무인의 내상과 고수의 내상은 천지 차이다. 당연히 그것을 치료해야 하는 약의 등급도 다를 수밖에 없다.
 솔직한 심정으로 호란은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얄밉게 보이는 진조에게 자존심을 굽혀 가면서까지 내상약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인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진 대협께서 호란 언니의 내상이 하루라도 빨리 치료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가씨!”
 맹소희가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하자 호란이 눈을 부릅떴다. 자신으로 인해서 평생을 지키고 보호해 온 진짜 동생과도 진배없는 그녀가 얄미운 진조에게 부탁하며 고개를 숙이니 좋을 리가 없었다.
 “알겠소.”
 진조는 품에서 작은 옥함을 꺼냈다. 옥함은 제법 정교하고 단단해 보였는데 꽤나 비싼 물건임이 분명해 보였다.
 ‘흥! 역시 좋은 내상약인가 보군.’
 호란의 생각.
 ‘옥함이 저렇게 비싸 보이니 그 안에 담긴 내상약은 얼마나 좋을까? 다행이야, 호란 언니의 내상이 금방 나을 수 있겠어! 정말로 진 대협은 좋은 분이구나!’
 맹소희의 생각.
 딸깍!
 옥함을 열자 은은히 퍼지는 향기가 흘러나와 코를 즐겁게 만들었다. 맹소희와 호란은 진조가 지닌 내상약의 등급이 상당히 높은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고수의 내상약이었다.
 “여기 있소.”
 진조는 기름종이에 잘 싸인 단약을 맹소희에게 건네주었다. 건네주는 행동에서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아쉬움이 없었다.
 ‘이 비싼 내상약을 선뜻 내주시다니! 역시 대인이야!’
 “고맙습니다. 진 대협의 은혜는 평생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맹소희는 단약을 받고는 재빨리 호란에게 건네주었다.
 “아가씨, 저는 괜찮습니다.”
 “호란 언니.”
 맹소희는 더 이상의 아무런 말도 없이 호란을 바라봤다. 내상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며칠을 이러고 있을 그녀였다. 어렸을 때부터 볼 수 있었던 고집스런 행동이다. 결국, 호란은 내상약을 받아 복용했다.
 그 모습을 환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던 맹소희가 다시금 진조에게 인사했다.
 “진 대협, 고맙습니다.”
 진조가 손을 흔들었다.
 “자꾸 그렇게 인사하지 마시오. 부끄럽소. 어차피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뭘 그리 고마워한단 말이오. 은자 삼십 냥이오.”
 “예?”
 맹소희가 멀뚱히 눈을 뜨며 진조를 바라봤다. 단약을 입에 넣은 호란도 무슨 말인가 싶어서 그를 바라봤다.
 진조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 여자의 시선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부자들이야, 조금 더 챙긴다고 티나 나겠어?’
 약간 붉어진 진조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소.”
 진조가 쑥스러워한다.
 ‘아! 내가 어리석었어! 이런 귀한 내상약을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을까? 진 대협이 돈이 없어 전객을 업으로 살아가는 걸 알면서도 내가 미리 그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니!’
 맹소희는 미안하다는 듯 재빨리 전낭을 열어 은자 백 냥을 건넸다. 어차피 하남무장으로 들어가면 당분간은 돈 쓸 일도 없는 그녀였다.
 “제가 생각이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