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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가라 1-1권

2017.10.31 조회 3,521 추천 19


 # 프롤로그
 
 예전에.
 내가 아주 어릴 적 이야기다.
 그당시 나는 태어난 지 15살 된, 아주 어린 헤츨링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드래곤이라는 것에 대한 아주 큰 자부심이 있었다.
 드래곤!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
 지상 최대의 마법 생물체!
 하나 그런 드래곤들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있었으니, 바로 차원의 틈을 뚫고 대륙침공을 해 온 마계의 마왕이었다.
 마왕은 강력했다고 한다.
 지상의 모든 제국과 왕국, 그리고 공국이 합세하여 마왕 토벌대를 꾸렸으나 이기지 못 하고 매번 연패를 거듭했으니까 말이다.
 대륙의 절반이 초토화되고 많은 생명체들이 죽었다. 드래곤들조차 마왕과 맞붙을 엄두를 내지 못 했을 정도니까.
 세상은 파죽지세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막을 수 있을까? 대체 누가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저 강력한 마왕의 군대를.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그는 이세계에서 소환된 존재로서,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의 이름은 미로 라이카스.
 그는 드래곤들의 보구를 모아 마왕을 격퇴하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드래곤의 보구란, 드래곤들이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유니크급 아티펙트다. 하나하나가 인간들이 흔히 말 하는, 전설의 무기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한데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존재!
 그런 존재들이 한낱 인간에게 자신의 보구들을 내어줄 리 없었다. 덕분에 미로 라이카스는 폭력을 사용했다. 드래곤을 죽이진 않았지만, 죽기 직전까지 패 눕히고, 그들의 보구를 취해 갔던 것이다.
 드래곤을 두들겨 패서 보구를 가져가는 인간이라니! 믿을 수 있겠는가? 하나 믿어야 한다.
 내가 직접 봤거든.
 자, 계속 들어 보시라.
 그건 내가 15살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 드래곤의 레어에선, 꽤 큰 규모의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대륙 서쪽의 드래곤 다섯이 모인 회의였다.
 논제는?
 바로 드래곤들을 찾아다니며 보구를 요구하는 미로 라이카스란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아주 어렸기에, 수백 살 드신 어르신들의 회의를 숨죽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래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소!
 
 ―차라리 미로 라이카스에게 보구를 내어 주는 것이 어떻소? 놈은 장로급 드래곤이 와도 이길 수 없는 존재요. 장로급이 어떤 드래곤이요? 천년을 살아온 드래곤이요. 그 천년의 힘을 가진 장로급 드래곤은, 이제 동쪽 빙하지대를 관장하는 빙제 아라미르 란테로 님밖에 남지 않았소. 하나 빙제께선 동면에 드신 상태요! 그 정도면 반신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라 봐도 무방하오. 우리로선 미로 라이카스도, 마왕도 이길 수 없소!
 
 ―어찌 한낱 인간에게 드래곤의 보구를 넘기려고 하시오? 망언은 작작 하시오! 드래곤의 체면은 아무래도 좋단 말이시오?
 
 ―하, 하지만 미로 라이카스가 그토록 강하다면 그에게 마왕 퇴치의 역할을 맡겨도 되지 않겠소? 우리로선 당대의 마왕을 이길 재간이 없잖소! 체면이 문제가 되는 거요?
 
 토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그 당시 어린 내가 봐도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에 드래곤들이 나서도 퇴치할 수 없는 마왕이란 놈이 나타났다. 그 마왕을 잡을 수도 없으면서 자존심을 세우는 꼬락서니라니?
 세상이 망하면 드래곤도 살 곳을 잃어버린다. 어린 나도 아는 기본적인 상식을 어른들은 모르는 걸까? 나는 그 당시, 드래곤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잔뜩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회의가 지루하게 이어질 무렵.
 그가 나타났다.
 그는 허공에서, 마치 하늘을 날 듯 조용히 지상에 착지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마왕을 잡으러 갈 거다. 시간이 없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본론만 얘기하자면 아티펙트를 제공해라. 너희들이 저마다 보물처럼 여기는 그 보구들 말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그 보구들을 내놓아라. 협조하지 않으면 두들겨 패고 강탈해 가겠다.
 
 검은 머리의 인간.
 인간은 한기가 풀풀 풍기는 거대한 양손검을 사용했고, 전신에서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바로 그가 미로 라이카스였다.
 대륙인들답지 않게 새카만 머리와, 생김새도 약간은 달랐다.
 드래곤들은 물론 거절했다.
 나는 그날 인간 중에 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은, 아니.
 드래곤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아마도 신이 존재한다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그의 신위 앞에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박 터지게 두들겨 맞는 어른 드래곤들 사이에서, 나는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것이다.
 문득.
 미로 라이카스와 눈이 마주쳤다.
 
 “꼬맹이군. 네겐 볼 일 없다.”
 
 그 때의 미로 라이카스의 두눈은, 어쩐지 굉장히 공허하고 삭막해 보였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그때 오줌을 지렸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미로 라이카스를 잊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때론 동경의 대상으로, 때론 공포의 대상으로.
 
 미로 라이카스가 마왕을 죽이고 대륙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왕을 해치우고,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말도 들었다.
 
 그는 어디로 간 걸까?
 그는 정말 신이었던 걸까?
 신이 대륙에 내린 마지막 구원의 손길이었던 걸까?
 
 대륙은 금세 평화를 되찾았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30년이 지난 뒤였다.
 
 30년 뒤 나는 대륙이 아닌 다른 세계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지구라고 불리는 차원이었다.
 그 곳에서 아주 우연히 그와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의, 굽이진 골목길에서였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힘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으니까.
 하나, 힘을 드러낸 그는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나이는 조금도 먹지 않은 듯했지만 말수가 적어졌으며, 왠지 모를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식당을 하고 있었다.
 
 
 # 기묘한 밥집
 
 지구에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은 30년 전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이능력을 각성해, 각성자라고 불리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하늘이 갈라지며 몬스터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을 요즘엔 ‘차원의 틈’ 이라고 정의했다. 이차원 세계와의 통로가 생겨, 그 세계의 몬스터들이 지구로 난입해 온다는 것이다.
 아무튼.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각성자들이었다.
 세상이 부서지고 국가가 무너져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러한 과정에서 시간이 흘렀다.
 
 각성자들이 힘을 모아 대응하고 새로운 문명이 뿌리를 내리면서 지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세상은 점점 안정화 되고, 그 나름대로의 평화를 되찾게 된 것이다.
 살 만해지자 다시금 예전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카페, 술집, 여관, 시장, 그리고······.
 예를 들면 식당이라던가.
 
 ***
 
 [서대문 사거리에 4급 몬스터, 벨토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비상 경보입니다!]
 [현재 파견된 각성자는 ‘마창사 김상후’ 님이며, 팀 ‘젠카크’가 함께합니다.]
 
 라디오가 요란하게 소식을 전했다.
 벨토라면 아주 거대한 타조형 몬스터였다. 매우 흉폭하며, 덩치가 무척 커 각성자들이라고 해도 애먹는 몬스터들이었다.
 
 타타타타탁!
 
 서대문으로 달려가는 각성자 무리, 그중 선두에 길쭉한 창을 꼬나 쥔 채 쇄도해 가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한국에 다섯 명 있다는 2급 각성자, 김상후였다.
 우우우웅―!
 그가 쥔 창에 기묘한 열기가 깃들더니, 창의 크기가 족히 열 배는 더 커졌다. 그대로 저편을 쳐다본다.
 건물들 위로 길쭉한 대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총 열 마리.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목이 긴 타조 대가리다. 그게 지나치게 크다는 게 문제겠지만.
 벨토 열 마리다.
 “젠장, 아닌 밤중에 벨토라니.”
 김상후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창을 냅다 던지려고 힘을 모았다.
 그때.
 
 끼루루루루룩!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저 멀리 벨토의 대가리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뒤따라 오던 각성자 하나가 소리쳤다.
 “어······. 대장! 벨토새끼들 다 뒈졌는데요?”
 “뭐?”
 김상후와 레이드 팀 젠카크는 서대문을 수호한다.
 서대문에 더 강한 각성자가 배치됐다는 말은 여태까지 들은 바가 없었다.
 한데 누가 벨토들을 처치했단 거지?
 부리나케 달려 벨토들이 쓰러진 곳으로 온 김상후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죽어 있었다. 확실히 숨통이 끊겨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복부가 도려내져 있었다.
 “······.”
 믿을 수 없다. 열 마리나 되는 벨토들이 다 죽었는데, 죽인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놈들을 죽이는 속도를 봤을 때, 최소 부대 단위의 능력자들이 투입돼야 했다.
 한데 아무도 없다.
 “이거, 칼날 여왕 년 아냐? 그년이 공적 세우려고 남의 구역에서 깽판 친 거 같은데?”
 “그년이라면 홍대 쪽으로 발령났잖아요. 그리고 그년이 이렇게 세다고요? 말이 안 되죠.”
 “그렇지.”
 2급 능력자들부턴 각성자 협회에서 저마다의 코드 네임을 붙여 준다. 일종의 닉네임이라고 보면 되는데, 칼날 여왕은 김상후와 항상 티격태격하는 2급 능력자였다.
 김상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장?”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치웠다고 공적 보고 올려. 별 수 없잖아, 누가 잡았는지 말도 안 하고 사라졌는데.”
 “예.”
 김상후는 쓰러진 벨토들의 시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저마다 정수리 부분에 움푹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일격.’
 일격으로 벨토들을 골로 보냈단 말인데. 그의 생각에는 아무리 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각성자가 없었다.
 ‘대체······. 누구지.’
 각성자의 등급은 10급부터 1급까지로 나뉜다.
 숫자가 적어질수록 강한 능력을 각성한 거라고 보면 된다. 김상후의 생각엔, 1급으로 분류된 각성자들도 이렇게 빠르게 벨토를 처치하진 못 했다.
 1급 위의 능력을 각성한 존재는 ‘제로 등급’ 이라고 표기하는데, 그건 그 능력의 대단함을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제로 등급은 아직 등장한 바가 없다.
 ‘염병.’
 수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저마다 심장부분에 ‘마정석’ 이란 것을 소지하고 있다. 그 마정석은 에너지로 활용되기에 아주 고가에 거래되는 물품.
 이 벨토들 역시 마정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마정석엔 손도 대지 않았다. 왜 복부의 살점을 도려내 간 걸까? 그 것에 이유라도 있는 걸까?
 “일단······. 마정석 수거 하고 본부에 연락해서 사체처리반 불러.”
 “예 대장.”
 마정석은 본부로 향할 거고, 몬스터의 사체는 잘 도축되어 시장으로 향할 것이다.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보기가 힘든 요즘, 몬스터 고기는 제법 훌륭한 식재료가 될 테니까.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아무튼.
 김상후는 사방의 건물을 둘러보았다. 건물들이 반파되고 부서지고 난리가 났지만, 다행히 벨토들이 쓰러진 방향은 거주자가 거의 없는 구역이다.
 한 숨 돌렸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저편, 허름한 가게로 향했다.
 
 [밥 집]
 
 밥집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인장 운 좋네.”
 벨토가 반대편으로 쓰러졌다면 저 밥집은 놈들의 시체에 깔려 완전히 부서져 버렸을 테니까.
 그는 부하들에게 일을 맡기고,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밥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술이나 한 잔 하고 싶은 생각 뿐.
 
 ······.
 
 짹― 짹―
 
 참새 우는 소리에 사내는 감았던 눈을 떴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배를 긁적이며 담배를 한 대 빼물었다.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올랐다.
 서대문 골목길.
 이곳은 예전의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사내는 이곳이 좋았다.
 
 끼익―
 
 문을 열고 나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살짝 눈을 감는다. 햇빛을 쬐자 졸음이 가시고 점점 활력이 차올랐다.
 사내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가게를 쳐다보았다.
 
 [밥 집]
 
 담배를 마저 태운 그는, 다시 가게로 들어가 주방 앞에 섰다.
 네모난 판 위에 새끼손톱만 한 마정석이 네 개 박혀 있는 화로.
 이게 요즘 마정석으로 만들어지는 주방도구 중 하나다. 사내는 그 위에 프라이팬을 가져다 놓았다. 살짝 기름을 두르자, 곧 치이익! 하며 열기가 올라왔다.
 마정석은 현대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세상에서 ‘연료’ 로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마정석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지만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 분명하다.
 
 어느새 오전 열 시.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사내는 묵묵히 냉장고로 향했다. 주먹만 한 마정석이 박힌 냉장고는 특유의 추운 기운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냉장고 안에는 큼직한 고기가 열 덩이나 빼곡하게 차 있었다.
 고기 덩어리는 살이 꼼꼼하게 들어 차 있었다.
 약간의 지방질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순수한 살코기였다. 그 살코기를 엄지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한번 큼직하게 썰어낸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의 고기에 식칼로 정성스럽게 칼집을 냈다. 그 다음, 소금과 후추를 뿌린 뒤 올리브 오일을 잔뜩 짜내 고기 위에 골고루 발랐다.
 
 치이이익―!
 
 ***
 
 뜨겁게 열이 오른 팬에도 오일을 두른 뒤, 굽는다. 아침부터 고기를 먹으면 얹힌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내는 아니었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치이이이이익!
 
 고기 익는 소리와,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할 무렵엔 마늘을 손으로 으깨 프라이팬에 넣어 준다. 고기 표면에 마늘을 쓱쓱 문질러 주는 것도 좋다.
 양쪽 면을 그렇게 잘 굽고,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에 문질러준다. 그렇게 양면이 잘 구워진다면 거의 완성된 셈이다.
 사내는 프라이팬 위에 놓인 고기를 도마에 올려놓았다. 이대로 몇 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고기는 더 맛있어질 테니까.
 그때.
 
 쿵쿵쿵―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문 쪽으로 흘끗 시선을 돌렸다.
 “강철호 씨 계십니까!”
 “예.”
 사내가 문을 열자, 그 곳에 멀쑥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사내를 맞았다.
 “각성자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강철호 씨 본인 되시죠?”
 “예.”
 “다름 아니라, 어제 벨토 무리가 이 근방을 습격해 왔습니다. 다행히 금방 처리가 되긴 했지만, 많이 놀라셨을 듯해서요.”
 “아, 예. 그렇죠 뭐. 일상 아닙니까.”
 “하하, 요즘 시대가 많이 안정화 됐다곤 하지만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피해 입으신 게 없나 해서 조사차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 근방 거주지는 거의 없어서 피해는 양호한 편입니다만. 응?”
 문득 남자가 코를 킁킁댔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요.”
 “일단은 밥집이거든요.”
 사내, 철호는 피식 웃으며 간단하게 대꾸했다. 남자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혹시 가게 문 여신 건가요?”
 남자의 말에 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 아침식사를 한 끼 할 수 있을까요?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한 끼도 못 먹었네요.”
 “그러시죠.”
 철호는 간단히 대답하고 손님을 받았다. 남자는 간소한 테이블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바(Bar) 형식의 테이블에 앉은 그는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메뉴판 좀 주시겠어요?”
 “아, 저흰 메뉴판이 없습니다. 그날그날 재료 공수되는 대로 요리해 드리는 편이라서요.”
 “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식당 드라마 같은데요. 오늘의 메뉴 같은 게 있는 겁니까?”
 “오늘 메뉴는 벨토 스테이큽니다. 시장에 신선한 벨토 고기가 들어왔던데요. 어제 그 놈들이겠죠?”
 철호의 물음에 남자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벨토라······. 그렇죠. 어제 그 놈들이 열 마리나 됐거든요. 다행히 마창사 님께서 해결하시고, 바로 시장으로 향한 모양입니다.”
 “마침 잘 됐군요. 앉으시죠.”
 철호는 주방으로 향해, 완성된 고기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살짝 다셨다. 하나 손님이 왔으니 이거라도 드리는 게 좋지 싶다.
 고기를 구워 낸 프라이팬에 남은 오일. 그 곳에 ‘카우 홀’ 의 젖을 부었다.
 많이 부으면 안 되고, 적당히 잘박잘박 기름과 섞일 정도면 된다.
 카우 홀은, 그러니까 덩치가 굉장히. 엄청 거대한 젖소 같은 몬스터라고 보면 된다. 우유보다 더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나서 요리하기엔 적절한 재료다.
 
 치이익!
 
 화력이 좋은걸.
 그렇게 프라이팬 위에서 골고루 섞어준다. 귀찮아도 섞어주는 걸 잊으면 금세 눌어붙는다. 소금을 살짝 뿌리고 허브도 솔솔 뿌려 준다.
 소스가 완성됐다.
 철호는 피식 피식 웃으며 고기 위에 소스를 잘 뿌려 주었다.
 자. 완성!
 벨토 스테이크.
 
 “와우.”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름한 밥집에서 스테이크라니. 조심스럽게 나이프로 고기를 썰어 한 입 해 본 뒤, 남자는 다시 놀랐다.
 “정말 맛있군요.”
 “스테이크야 뭐, 적당히 굽기만 하면 되니까요.”
 철호는 씩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섰다. 남자는 연신 맛있다고 중얼거리며 접시를 깔끔하게 비웠다.
 철호가 새로운 스테이크를 완성해 나왔을 무렵, 남자는 일어서 나갈 채비를 마친 뒤였다.
 “사장님, 얼마입니까?”
 “개시손님에겐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요.”
 철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안 받겠다는 데도 준다면 받는 것이 예의다.
 “그럼 10불만 주십시오.”
 “아, 예.”
 남자는 주머니에서 달러 지폐를 꺼내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잘 먹고 갑니다.”
 가게 문을 나서려던 남자가 돌아서서 철호를 쳐다보았다.
 “아, 그리고요.”
 “예?”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몸조심하십시오. 요즘 같은 시대, 사장님이나 저 같이 비능력자들은 살기 힘든 시대잖아요. 다음부턴 주변에 몬스터가 출몰하면 꼭 대피하십시오. 아,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신다면 이쪽으로 전화 주십시오.”
 남자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든 철호는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남자는 바쁘게 사라져 갔다. 철호는 그가 준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각성자 협회]
 [순찰반]
 [최 재 우]
 [XXX ―XXX]
 
 “비능력자들이 살기 힘든 시대라······.”
 철호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들에게 있어 철호는 비능력자로 분류될 것이다. 그 편이 더 편하고, 눈에 띄지 않을 테지.
 30년 만에 돌아온 지구는 몬스터들이 활보하는 세계였다.
 철호가 이세계에 소환되어 보낸 30년 동안 봐 온, 마왕과 싸우며 지겹도록 본, 그런 몬스터들이 지구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돌아온 지금.
 철호가 굳이 다시 나설 필요는 없지 싶었다. 지구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룰과 방법으로 세상을 지켜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시대가 됐다.
 이내 자신의 접시에 놓인 고기에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다 댄다. 늦은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문득, 최재우란 그 남자가 생각났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를 난세라고 한다. 그리고 철호의 경험상, 난세에서는 착한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다.
 “오래오래 사쇼.”
 식사를 마친 철호는 다시 담배를 한 대 빼 물었다.
 장을 봐 와야겠다.
 
 
 # 소주와 방문자
 
 이번엔 알(Egg)을 좀 사 올 생각이다.
 몬스터들의 고기를 식재료로 쓴다면, 놈들의 알은 어떨까?
 당연히 식재료로 쓰인다. 맛은, 대체적으로 조류의 알과 비스무리하다. 때문에 닭이나 달걀을 보기 힘든 요즘 몬스터의 알은 훌륭한 대체제가 되었다.
 
 시장.
 서대문 앞에는 큼직한 재래시장이 열리곤 했다. 서대문은 서울에서도 그나마 몬스터에 의한 파괴가 덜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대체적으로 식재료, 마정석 등 생필품들을 판매하게 되는데 철호가 서 있는 이곳에는 몬스터의 알을 팔고 있었다.
 
 진열대 앞에 몬스터의 알들이 쭈욱 진열돼 있다. 생김새는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다. 하나 분명히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일 터.
 몬스터의 알을 보고 몬스터를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다만, 철호처럼 특수한 아티펙트를 가진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다.
 “디텍트 아이.”
 조용히 시동어를 말하자, 철호의 눈에 렌즈처럼 투명한 막 하나가 덧씌워졌다. 본래 이 아티펙트의 주인은 제국 북쪽 산맥의 주인 은룡(銀龍) 카나스였다.
 왜 지금 철호에게 있냐고?
 마왕을 잡으러 갈 때 빼앗았으니까.
 고분고분하게 내 놓았다면 패진 않았겠지만 놈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아티펙트를 제공하라고 말 할 때 마다 모든 드래곤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말로 안 되면 주먹으로라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는 말이다.
 아무튼 그 땐 세상에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드래곤 같은 놈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돌아와서.
 이 디텍트 아이란 아티펙트는 매우 편리한데,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품고 있는 힘과, 그 힘의 성향.
 요컨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수치와 성향을 볼 수 있다.
 거짓을 말 하고 있는지, 진실을 말 하고 있는 지 까지 몽땅! 그래서 철호는 되도록 사람에겐 쓰지 않으려고 했다. 보고 나면 후회할 일만 생기니까.
 철호는 그 상태로 시장에 진열된 몬스터의 알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벨토, 벨토, 아타호, 트리켈롭스······.’
 알 속에 어떤 존재가 잠들어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아, 부화하지 않냐고?
 몬스터의 알은 기본적으로 혈육 몬스터와의 주파수가 맞았을 때 부화한다. 때문에 시장에 굴러다니는 알은 부화 불가능, 한마디로 무정란이나 다름없다.
 철호는 그 중 벨토의 알 위주로 알을 골라냈다. 알 다섯 개, 크기는 주먹 두 개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 돌아서려는 찰나.
 ‘음?’
 진열대 구석.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알이 하나 있었다. 철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저거, 어떤 종류의 알입니까?”
 주인이 흘끗 그 알을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각성자 협회에서 검수가 끝난 알이라는 것만 알죠. 손님도 아시다시피 몬스터의 알은 생긴 게 하도 비슷해서 도통 구분을 못 한다니까요. 그래서 가격도 균일가 아니겠습니까?”
 디텍트 아이가 이러한 메시지를 알려주었다.
 
 ―진실.
 
 주인장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군요.”
 철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호기심 때문이다.
 “저것까지 주십시오.”
 
 ***
 
 철호는 묵묵히 벨토 알을 하나 깼다.
 벨토 알은 타조알보다 훨씬 두텁고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철호는 마치 계란 껍질 부수듯 간단히 해냈다.
 흰자와 노른자가 묵직하게 쏟아져 나왔다. 계란으로 치면 대충 다섯 개 정도의 분량일 터.
 
 치이이익―!
 
 그 곳에 ‘카우 홀’ 의 젖을 부었다. 카우 홀의 젖은 우유를 대체하는 정도라고 보면 쉬울 것이다.
 
 치이익!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맛 좋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몬스터를 식재료로 사용하게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출몰하며 나약한 가축들은 죄다 놈들에게 먹이로 사라져 갔고, 싱싱한 채소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하게 된 몬스터 식재료는, 생각 이상으로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뭐, 이제 와서는 인공 재배로 적당히 재료 수급이 되지만 그래도 몬스터 고기는 제법 인기품목이었다. 맛이 진짜로 나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아주 싸다. 사방 천지에서 잡혀 들어오는 건 몬스터였다.
 
 치이이이익!
 
 몽글몽글하게 노른자와 흰자, 그리고 카우 홀의 젖이 뭉쳐 보드라운 느낌의 스크럼블드 에그로 변해 간다. 소금 간을 짭짤하게 하고 후추도 솔솔 뿌려 주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벨토 스크럼블드 에그.
 철호는 피식 피식 웃으며 포크로 스크럼블드 에그를 퍼, 입에 넣었다.
 벨토의 알은 계란보다 훨씬 진하고 고소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카우 홀의 젖을 사용했으니, 치즈를 한껏 입에 넣은 기분이었다.
 입 안에 들어간 스크럼블드 에그는 천천히 혓바닥을 자극하며 목 뒤로 넘어갔다. 몽글몽글한 특유의 보드랍고도 눅진한 식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철호는 한 입을 머금고, 코로 숨을 뿜어냈다. 고소한 뒷맛을 한껏 즐기며 미소를 머금었다.
 
 맛있다.
 
 철호는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맛을 음미했다.
 어릴 적엔 그저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었지.
 하나 이젠 아니다.
 예전처럼 많이 먹을 생각도 없고, 그저 맛을 음미하며 즐기고 싶을 뿐이다.
 한창 전장을 누빌 땐,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다. 맛있는 한 끼 식사란,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지나 보니 맛있는 것만 남았다.
 음식과 향기는 그 장소를 떠올리는 데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들 한다.
 철호는 이 음식을, 예전 전장에서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었다. 눈을 감으면 그 때가 생각난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머릿속에 박혀 생생해진다.
 “아재에서 할배가 된 건가.”
 철호는 푹신한 의자에 걸터앉아, 테이블에 발을 올린 채 창밖을 쳐다보았다.
 
 한적함.
 
 조용함.
 
 이런 곳에 식당을 차린 것은 어쩌면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철호는 손님을 기다렸다.
 설레기도 했다. 이런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나저나.
 오늘 사온 저 알.
 대체 정체가 뭘까.
 디텍트 아이가 감지하지 못한 종류라면, 철호가 알기론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드래곤의 보구는 드래곤이 태어날 때부터, 그 힘을 받아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아티펙트다.
 보구는 드래곤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염의 드래곤이 태어났다면, 보구는 화염계 아티펙트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드래곤의 보구들은,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동종에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그러니까 이게 철호가 아는 유일한 부분이다.
 저거 설마 드래곤의 알인가?
 “······.”
 잠시 알을 쳐다보던 철호는 피식 웃었다. 살다 보니 시장통에서 드래곤의 알을 구하는 날도 오는가.
 문득 궁금해졌다.
 드래곤의 알은 대체 무슨 맛일까?
 한번 먹어 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철호는 재차 피식 피식 웃어 버렸다.
 나이가 드니 헛웃음이 늘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갑 빼 든다.
 요즘같은 시대에 담배의 가격이란 같은 무게의 금덩이와 비견될 만큼 고가다.
 하지만 철호는 담배를 에베레스트 산 만큼 쌓아 놓을 정도로 돈이 많다. 일상의 금전감각이 마비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1000불이라.”
 낙타가 그려진 담뱃값이 퍽 정겨웠다.
 요즘 나오는 담배가 아니고, 30년 전 나오던 담배다. 요즘 담배보다 맛이 좋아, 희소성이 붙어 담배 한 갑이 천 불이었다.
 
 찰칵―
 
 지포 라이터에서 불이 나와, 담뱃불을 붙였다.
 철호는 느긋한 얼굴로 길게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하지만 이 맛을 놓칠 순 없지.’
 
 한가로운 점심이 지나가고 있었다.
 
 ······.
 
 술.
 
 30년전의 철호는 굉장한 애연가이자 애주가였다.
 운동 따윈 하지 않는 동시에 밤새워 게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잉여인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철호는 애연가이자 애주가였다.
 단명(短命)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제 철호는 그런 사소한 것들로는 절대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나타난 이후 지방의 명주들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음에 절망했다.
 한산소곡주, 안동소주를 비롯한 굉장한 명물들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마신다, 그냥 소주를.
 
 ***
 
 소주는 묘한 술이다.
 썩 좋은 재질로 만든 술이 아님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쓰면서도 달달한, 그런 맛이 소주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소주를 마시면 과거가 생각난다.
 엊그제 같던, 서대문 거리가 생각난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등교하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이 생각난다.
 이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고, 옛 친구들이 생각나고, 이세계에서 살고 있을 전우와 부하들이 생각났다.
 
 철호는 물 컵에 소주를 꼴꼴꼴 따랐다.
 그리고 홀짝거리며 달이 휘황찬란하게 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30년 전 지구에서 살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건, 바로 저 달뿐일 거다.
 
 소주를 마실 땐 간단한 안주를 선호하는 편이다.
 
 싱싱한 생 채소라던가, 아니면 가볍게 씹을 거리라던가. 가끔은 뜨끈하면서 매콤한 맛의 국물도 좋다. 하나 지금은 간단하게 한 잔 할 생각이었다.
 철호는 육포 같이 생긴 기다란 고기조각을 하나 집어 잘근잘근 씹었다.
 벨토 고기를 간장에 재워, 살짝 구운 뒤 햇볕에 말린 것이다. 육포라고 보면 되는데 제법 씹는 맛이 있다.
 홀짝 홀짝 술을 마셔대니 슬슬 취기가 돌았다.
 철호는 언제든지 이 취기를 없앨 수 있었다. 배가 터질 때까지 소주만 쏟아 부어도, 단 1초면 취기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취한 감각은 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그 나른함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살짝 눈을 감고 온 몸이 찌르르 울리는 술기운을 만끽했다.
 
 찌르찌르찌르찌르―
 
 벌레 우는 소리와 함께 솔솔 잠이 밀려왔다.
 
 쿵!
 
 한데 그때.
 “음?”
 가게 앞에 인영이 나타났다. 창문 너머로 슬쩍 보니, 남자였다.
 철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전신에 가득하던 취기가 손가락 끝으로 쏙 몰려나오더니, 이내 알코올 향기를 내며 사라져 갔다.
 이제 정신은 말끔해졌다.
 원리를 대충 설명하자면 마나를 이용해 전신의 알코올을 빼내는 건데 극도의 마나 컨트롤을 요구했다. 철호에게 있어선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마법사 계열에 종사하는 각성자가 본다면 오줌을 지릴 일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가게 앞에 손님이 나타났다는 것.
 
 드륵!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키는 철호보다 머리 하나가 작다. 머리카락은······. 보기 드문 선명한 빨간색 단발. 제법 잘생겼지만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었다.
 ‘요즘 애들 패션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어.’
 철호는 약간 당황스러운 그의 패션에 헛기침을 두 번 했다.
 “어서 오십시오.”
 “식당인가.”
 남자가 말했다. 반말을 하신다?
 철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상대는 철호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
 
 ***
 
 “음?”
 철호를 스쳐 지나가는 사내.
 그때, 철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대의 몸에선 이질적인 냄새가 났다. 적어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디텍트 아이.’
 철호의 눈앞에 투명한 렌즈가 두 개 덧씌워져, 상대의 수준을 가늠해 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뭐야 이거.
 “······.”
 사내가 철호의 주방으로 들어가, 알이 담긴 바구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여기 있었군.”
 철호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설마가 진짜였나.
 “뭐야, 진짜 드래곤인가?”
 “······!”
 철호의 말에 사내가 움찔 놀랐다. 철호는 신기하다는 듯 사내를 쳐다보았다.
 ‘이쪽 세계에도 드래곤이 있다니, 놀랍군. 설마설마 하긴 했는데.’
 알을 낳을 정도면, 족히 수백 년은 묵은 드래곤일진대 어찌된 영문인지 너무나 어려 보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저쪽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화르륵!
 
 사내의 전신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른 것이다.
 뿜어져 나오는 오오라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상대의 몸 위에 마치 불의 화신이 덧씌워진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의 오오라가 보였다. 화염의 오오라는 상대의 몸을 휘감으며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저런 오오라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이세계, 드래곤 마운틴에서.
 그곳의 수장, 염룡 렉스에게서.
 그 당시 염룡 렉스와 이름 모를 드래곤들을 두들겨 패고 보구들을 빼앗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중 렉스에게 빼앗은 보구는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마왕과 싸우다가 부서졌었지― 까지 떠올린 철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치솟아 오른 불길이 가게 내부를 새카맣게 그을렸다.
 철호는 혀를 쯧, 하고 차며 그을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까매졌네.”
 “어떻게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거지?”
 사내의 말에 철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싸울 생각은 없다. 내겐 디텍트 아이라는 아티펙트가 있어. 거기 안 보이는 건 드래곤뿐이거든.”
 “디텍트 아이!”
 사내는 눈을 부릅떴다.
 디텍트 아이.
 상대방이 소지한 힘의 크기. 그리고 성향을 수치로 보여 주는 아티펙트!
 드래곤의 보구!
 “디텍트 아이를 알아? 그럼 대화가 좀 쉽겠군.”
 철호를 보며, 그제야 사내는 깨달았다.
 눈 앞에 선, 저 ‘식당 주인’ 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가늠이 안 돼.’
 드래곤이 눈앞에 있어도 태연한 배짱, 그리고 뭔가 귀찮아하는 기색이 가득한 눈, 하지만 뭔가 태산처럼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사내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철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알을 가리켰다.
 “저거 네 거야? 어쩐지, 그럼 가져 가.”
 “뭐, 뭐라고?”
 “가져 가. 주인이 찾아와서 다행이다. 다만 청소 정돈 해주고 가져갔으면 좋겠는데.”
 “하아?”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큭큭큭 웃었다.
 “하등한 인간 주제에······. 감히 이 몸을 보고 뭐라고 하는 거······. 어라?”
 문득 사내의 시선이 도마 위의 칼로 향했다.
 칼날은 청색이 짙고, 손잡이가 매우 고급스러웠다. 사내는 직감적으로 저 칼날의 재료를 알아챘다. 동족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블루 드래곤의 비늘?”
 철호는 정수리 쪽을 벅벅 긁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대꾸했다.
 “그래.”
 “무, 무, 무기인가?”
 
 찰칵― 찰칵―
 
 지포 라이터에 기름이 떨어진 모양이다.
 철호는 아직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내의 앞으로 걸어 가, 그 불길로 담뱃불을 붙인 뒤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대답했다.
 “일단은 칼이니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보통 부엌에서 쓴다.”
 식칼이란 소리였다.
 세상에.
 블루 드래곤의 비늘로 부엌칼을 만들었단다.
 그러고 보니.
 이 주방, 뭔가 이상하다.
 도마. 저 도마! 저기서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사내는 도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이건······. 드래곤 본이군.”
 드래곤의 뼈로 도마를 만들었다.
 사내는 분노하고 말았다.
 드래곤이란 최강의 생물체!
 그 생물체의 전신은 비늘 하나, 살점 하나까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데 이런 빌어먹을 동족을 죽여 고작 주방용품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던가?
 분명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헤츨링 급 드래곤을 죽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드래곤 본이다. 그럼 어서 청소를······.”
 철호가 무미건조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용서할 수 없다.”
 
 이글이글!
 
 동족을 죽인 자는, 죽여 버린다!
 “죽어라, 벌레 같은 인간!”
 사내가 입을 쩍 벌렸다. 아가리 속에서 붉다 못해 퍼런빛이 감도는 고열이 뿜어져 나갔다.
 “이런.”
 철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파아아아악!
 
 브레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굉장한 덩치를 자랑하지만, 인간 형태로 변할 수도 있다. 그것을 보통 폴리모프라고 부르는데, 그 상태에선 드래곤의 힘이 절반가량으로 축소됐다.
 인간 상태의 드래곤이었기에 브레스의 힘은 현저히 약했다.
 현저히 약해졌다고 해도 보통의 인간이라면 스침과 동시에 재만 휘날릴 만한 공격. 브레스가 마치 레이저 포처럼 반경 30센티미터의 원 크기로 쭈욱 뻗어져 나아갔다.
 굉장한 빛이 번쩍였으나 이상하게도 파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형으로 변했다지만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왜 아무런 이상이 없지? 란 의문이 가득찬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브레스가 끊기고.
 “······?”
 태연하게 서 있던 철호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 하나를 내렸다.
 “어?”
 그건 프라이팬이었다!
 저 프라이팬이 제일 이상하다. 금속인데, 그냥 금속이 아닌 것 같다. 브레스를 막고도 멀쩡하다고?
 만년한철은 마나를 주입하면 열기를 싹 빨아들이는 재질이다. 철호는 이세계에 있을 때, 빙백검이란 동방대륙의 보물을 깎아서 프라이팬으로 만들었었다.
 사내는 입을 쩌억 벌렸다.
 이내 그의 두 눈이 차갑게 물들었다. 그리고 전신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점점 더 시뻘겋게 변해갔다.
 “역시 드래곤들이란.”
 철호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저 오오라는 드래곤이 본체의 형상으로 변하려는 움직임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의 전신에 빨간색 비늘이 우두두 돋아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철호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빠악!
 
 무식한 소리가 들리고 사내는 전신에 힘이 쪽 빠져 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소리였다, 이 소리는 드래곤이 인간에게 얻어맞는 소리다.
 어디서 들었었지?
 어디서······.
 
 아.
 
 “꽥!”
 
 사내는 그 순간, 어쩐지 30년 쯤 전의 기억이 떠올렸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뒤통수를 후려갈긴 철호는 그대로 기절해 버린 사내를 쳐다보며 한숨을 쉰 뒤, 테이블로 돌아 가 잔에 술을 채울 따름이었다.
 
 ······.
 
 ―나는 마왕을 잡으러 갈 거다. 시간이 없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본론만 얘기하자면 아티펙트를 제공해라. 너희들이 저마다 보물처럼 여기는 그 보구들 말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그 보구들을 내놓아라. 협조하지 않으면 두들겨 패고 강탈해 가겠다.
 
 ―저, 저, 저 미친 인간이 망언을 하는구나! 내 당장 네놈을······.
 
 아버지! 안돼! 걘 미로 라이카스라고! 내가 30년 전에 봐서 아는데, 아버지는 걔한테 박 터지게 얻어맞고······.
 
 빡! 빡! 빡!
 
 히익!
 
 ―꼬맹이군. 네겐 볼 일이 없다.
 
 ······.
 
 “허억!”
 
 사내가 깨어난 것은 약 한 시간 뒤였다. 어쩐지 옛날 꿈을 꾸었다.
 
 “자, 대충 진정 됐지? 그럼 대화를 좀 해 볼까. 청소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철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사내는 당혹감 가득한 얼굴로 철호와 온 사방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드래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말을 듣지 않으면 조금 때려 줄 수밖에 없어. 하지만 네가 벌인 일만 해결한다면 네 물건 갖고 가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게.”
 
 ······.
 
 “몇 살?”
 “······50이 조금 넘은 걸로 기억한다.”
 사내의 이름은 에크문드 칸.
 예상했던 대로다.
 녀석은 레드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태어난 지 50년 된 헤츨링 급, 그러니까 드래곤 소년 같은 거다. 청년이 되기 전의 소년.
 아무리 애라고 해도 일단은 드래곤이라 그 힘은 가공할 만하다.
 철호는 대충 그 녀석의 힘이라면, 현 지구에서 1급 각성자 두 명과는 충분히 맞먹을 거라 생각했다.
 “50쯤이라. 그럼 내가 나이가 더 많네.”
 “뭐라?”
 칸이 날카롭게 철호를 째려보았다.
 “난 환갑. 60살이 다 됐거든. 어차피 같은 종족도 아닌 데 별 상관은 없겠지. 호칭은 편할 대로 하도록.”
 “······!”
 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엘프인가? 그 녀석들처럼 오래 사는 건가?”
 “그렇게 잘생겼어?”
 “그렇진 않다.”
 철호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난 인간이다. 조금 특별한 종류의 인간이지. 디텍트 아이를 아는 걸 보니, 이쪽 토박이는 아니군?”
 칸은 투덜거리면서 대꾸했다.
 “나는 에스판 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얼마 전 갑자기 열린 차원 균열로, 이 세계에 불시착했지.”
 “역시 그렇군. 차원의 틈을 타고 온 건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철호는 소주를 입 안 가득 머금었다. 소주로 가글을 해 꿀꺽 삼킨 철호가 벨토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었다.
 “에스판 대륙과 지구가 이어진 건가. 어쩐지 몬스터들이 익숙하더라니.”
 “네놈도 에스판에서 왔겠지?”
 칸의 물음에 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계속 닦아.”
 칸은 철호의 말에 입을 삐죽이며 그을린 자국들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그제야 철호는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내 이름은 미로 라이카스였다. 여기선 강철호. 혹시 들어 봤나?”
 대답이 없었다.
 소주를 다시 한껏 머금은 채 고개를 돌린 철호는 동상처럼 얼어붙어 있는 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칸은 어찌 된 영문인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철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여, 여, 역시 그놈이었어.’
 
 ***
 
 “왜 그러지?”
 “아니다.”
 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로 라이카스! 그 이름을 어찌 잊겠는가.
 
 어쩐지 드래곤이 말이 없어졌지만 별 상관은 없다.
 철호는 소주를 벌컥 벌컥 마셨다. 적막이 흘렀다. 문득 고개를 돌린 철호가 물었다.
 “다 닦았냐?”
 “히익!”
 칸은 화들짝 놀랐다.
 “음?”
 “아, 아니다.”
 칸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껏 그을린 식당 내부는 어느새 말끔하게 변했다.
 훌륭하군.
 철호는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물건 챙겨서 가 봐.”
 “······.”
 칸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마왕을 죽이고 난 뒤에 아버지의 보구를 왜 돌려주지 않았지?”
 다짜고짜 아버지라니? 철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네 아버지가 누군데?”
 “에크문드 렉스.”
 “렉스?”
 철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래곤 마운틴의 염룡 렉스!
 “혹시 염룡 렉스?”
 “그, 그, 그, 그렇다!”
 그때를 좀 변명하자면, 정말 별 수 없었다.
 덩치만 크고 쓸데없이 오래 산 빌어먹을 드래곤들은 말을 정말 안 들었으니까. 그래서 약간의 폭력을 행사하긴 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지금쯤 되면 50살 정도 될 법한 꼬마 드래곤을 보았던 것도 가물거리게 생각이 나긴 했다.
 “그때 그 꼬맹이구나?”
 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그렇다.”
 “허허허.”
 철호는 허허허 웃고 말았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이렇게 묘할 때가 있다니. 차원을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어쩐지 눈앞의 드래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드래곤에게 손을 까닥였다.
 “이리 와 봐.”
 “······.”
 칸이 재차 머뭇거렸다.
 “안 때려. 드래곤 패는 거 관둔지 30년이야.”
 “바, 방금 때렸잖나?”
 “말 안 듣는 드래곤은 매가 약이긴 했지. 술은 마실 줄 아나?”
 “수, 술 정도도 못 마시는 드래곤이 있을 것 같나?”
 “그럼 한 잔 할래?”
 칸은 이번에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뭔가 눈앞에, 예전의 그 미로 라이카스가 있다니 어색하면서도 이질적인 반가움이 앞섰다.
 물론 저쪽은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하는 듯했지만.
 에스판 대륙에서 지구로 차원이동한 지 반년. 칸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도통 돌아갈 수가 없었다. 향수병에 걸려 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고향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미로 라이카스라니!
 칸이 눈치를 보며 옆에 와 앉자, 철호가 잔을 건넸다. 문득 웃겨 실소를 머금었다.
 “뭐, 뭐 뭐냐!”
 칸이 경계의 목소리로 물었다.
 “드래곤이 사람 눈치를 보는 게 웃겨서 그랬다.”
 “드, 드래곤도 볼 것은 본다! 게다가 네놈은 동족을 죽였다! 나, 나도 죽일 셈이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철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그 식칼이랑 도마는 선물로 받은 거야. 그리고 나는 드래곤을 패긴 했지만 죽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긴, 생각 해 보면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좀 전에 기절하는 대신 죽었을 거다.
 예전에 미로 라이카스에게 박 터지게 얻어맞은 드래곤들 중에서도 죽은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
 철호는 귀찮다는 듯 하품을 하며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네 아버지의 보구는 미안하지만 마왕과 싸울 때 부서졌다.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었어. 그건 사과하마. 근데 꼭 필요했던 보구였어. 자, 받아.”
 ―뭐였는진 까먹었지만, 이란 말 역시 굳이 붙이진 않았다.
 “······.”
 철호가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자신의 잔을 들었다. 그제야 칸이 자신의 잔을 들며 웅얼거렸다.
 “드, 드, 드래곤과 술을 마신 인간은 네가 처음일 것이다.”
 칸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철호는 낄낄낄 웃었다.
 “최초의 인간 타이틀이 하나 더 늘었군.”
 잔 두 개가 살짝 마주쳤다. 철호는 소주를 한껏 입에 머금은 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알은, 네가 낳은 거냐? 드래곤으로 치면 아직 어린데 대단하구만.”
 “······나는 남성이다. 남성은 알을 낳을 수 없다.”
 “드래곤이 원래 자웅동체 같은 거 아니었냐?”
 “그렇지 않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그리고 저 알은 내 동생이다!”
 “동생?”
 “얼마 전, 우리 드래곤 레어에 차원의 균열이 열렸다. 부모님은 출타 중이셨지.”
 “재수 없게 이차원 미아가 되셨군. 이쪽 세계로 온 진 얼마나 된 거냐?”
 칸이 물컵에 가득 찬 소주를 단숨에 비웠다.
 철호는 재차 소주를 가득 따라 주었다. 칸은 군말 없이 술을 받아 들었다.
 “대충 반년 쯤!”
 반년 쯤이라. 철호가 이세계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나와 비슷한 시기군.”
 “뭐?”
 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너는 마왕을 해치우고 바로 돌아온 게 아니었나? 마왕을 해치우고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뭐, 그쪽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해결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군.”
 중얼거리는 칸의 얼굴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외롭고 쓸쓸했겠지, 처음 보는 세계에 불시착한 녀석은.
 철호는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이세계에 진입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30년 만에 돌아온 지구. 부모님은 난리 통에 돌아가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철호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잔이 마주쳤다.
 칸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또 한 번 소주를 전부 다 비워냈다.
 “뭐지 이건, 물인가?”
 그리고 호탕하게 물었다. 허세가 분명했다.
 철호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술을 마셔댔다. 칸은 슬쩍 슬쩍 철호를 견제했다. 술 마시는 걸로 이겨 보겠다는 심산 같았다.
 생각해보니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칸은 예전 철호를 보며 오줌을 지릴 뻔했고, 심지어 인간에게 나이로도 밀린다. 음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택도 없는 일이다.
 소주병이 열 개를 넘어갔을 때, 칸이 입을 열었다.
 “재미있구우나.”
 “뭐가?”
 칸은 알딸딸하게 취했다.
 “너느은, 세상을 구해 놓고서, 사라지고, 다른 차원에 나타나더니, 왜 숨어서, 이러언 쓸모없는 시익당이나 하고 있는 것이느냐? 너 정도의 괴물이라면, 이깟 세계 따윈 금세 평정할 것이니라. 세상을 손에 넣고 싶지 않느냐?”
 철호가 덤덤한 눈으로 칸을 관찰했다.
 헤츨링 드래곤의 주량은 소주 5병 정도. 새로운 발견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대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인가느은 늘 그러하니깐! 권력! 전쟁! 탐욕! 네가, 마왕을 잡고, 세상을 구한 그 때도, 인간들은 다시 서로, 싸우기 시작하지 않았느으냐?”
 칸의 말에 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는 있지만 나는 그런 것엔 관심 없다.”
 “왜지?”
 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철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두 눈은, 드래곤의 두 눈은 늘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철호는 그 눈을 보면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그건······.”
 예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이제 귀찮으니까.”
 
 이건 진심이다.
 “흥.”
 칸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품에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알을 내려다보았다.
 “인간 말은, 안 믿는다. 건방진 인간.”
 “그게 네 유일한 혈육이겠군. 잘 보관하도록 해라.”
 “차워언의 틈으로 빠졌을 때 놓쳐었다. 하나 드래곤은 서로를 느낄 수 있지이~”
 칸은 완전히 취했다.
 철호는 피식 웃었다.
 문득 칸이 홱! 하고 알을 철호의 앞에 내밀었다가 다시 꼭 끌어안았다.
 “내 동생이다. 예쁘지.”
 누가 봐도 평범한 몬스터의 알이었다.
 
 픽!
 
 철호는 테이블에 코를 박고 쓰러진 칸을 쳐다보았다.
 드래곤은 한 클래스의 마스터인 채로 태어난다.
 마법사 클래스의 마스터로` 태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한데, 간혹 검사나 궁사 등의 클래스 마스터로 태어나는 변이개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래도 드래곤이기에 폴리모프나 브레스 같은 종족적 특성은 사용할 수 있었지만, 드래곤의 상징인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하는 개체도 존재한단 말이다.
 철호는 픽 고꾸라진 칸을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은 무투가로군. 별일이야.”
 한쪽 품에는 알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했다.
 아무튼 철호는 테이블에 누워 자고 있던 칸을 내버려 둔 채 가게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일어나면 알아서 떠나겠지.
 
 ***
 
 톡톡―
 
 잠에서 깬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톡 톡 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호는 게슴츠리하게 눈을 떴다. 아주 작고 보드라운, 그래. 손가락 같은 것이 철호의 뺨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음?”
 그리고 철호는 한 생물체와 눈이 마주쳤다.
 “······.”
 그 생물체는 아주 작았다.
 크기로 치면 새끼 강아지 만 했다. 색감은 티 없는 하얀색이었다. 음? 하얀색?
 사파이어 같이 영롱한 두 눈을 보면,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워 거짓을 말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철호는 몸을 일으켜 칸이 잠든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칸은 어느새 일어나 멍하니 철호와 그 생물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
 깨진 알 껍질이 보였다. 그 안에서 뭔가가 기어나왔음은 자명한 일일 테고.
 
 뀨― 뀨―!
 생물체가 철호를 보며 방긋 방긋 웃었다.
 
 “내 동생!”
 칸이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동생이 태어났어!”
 
 “······.”
 드래곤이 부화해 버린 것 같았다.
 
 ***
 
 아기 드래곤을 헤츨링이라고 부른다.
 대충 드래곤들은 100살 전후로 성룡이 되는데, 그 전까진 헤츨링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니까······ 철호는 하얀색 꼬마 드래곤을 내려다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건 보통 뭐라고 불러야 하냐?”
 “헤츨링.”
 “그렇군.”
 “그리고 보통은 이름으로 부르겠지?”
 “이름은 지었나?”
 “아까부터 생각하는 중이다.”
 칸은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하얀 드래곤은 작았다.
 파충류 같은 느낌이긴 한데, 피부는 한없이 보드랍고 말랑거렸으며 무척 보송보송했다. 어쩐지 탱탱볼과 비슷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다.
 등엔 두 개의 날개가 돋아 있는데, 치킨을 시키면 포함돼 있는 날개 튀김 정도의 크기였다. 저게 점점 더 커다래지는 거겠지.
 “벌레 같은 걸 먹여야 하나?”
 철호는 진지하게 물었다. 파충류는 보통 벌레 같은 걸 먹고 사니까 물어 본 것이었는데―
 “으음······. 벌레도 괜찮다.”
 “진심인가?”
 칸은 진지하게 받았다.
 “그렇다. 난 아주 어릴 적, 벌레를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드래곤은 엄밀히 말하면 파충류 쪽인 걸까? 하긴, 철호는 예전에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들―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긴 했었다.
 철호는 아직 이름 없는 꼬마 드래곤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려 보았다. 무게는 일단 이만 한 강아지 정도.
 “드래곤은 잡식이지?”
 칸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수컷이냐 암컷이냐.”
 “짐승을 대하는 듯한 말투를 고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여성이다.”
 “뭐, 그래. 짐승은 아니니까 벌레를 굳이 찾아 먹일 필욘 없겠지.”
 철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꼬마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래곤이 기분 좋다는 듯 뀨뀨― 울었다. 살짝 벌어진 입 안 가지런히 돋아 있는 이빨이 보였다.
 손가락을 대고 만져 본다. 적당히 뾰족하고, 적당히 단단한 치아였다.
 ‘이 정도라면.’
 
 뀰뀰뀰―
 
 녀석이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철호가 보기에도 퍽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아빠미소를 지었다. 문득 고개를 돌릴려다가, 헤― 하고 옆에 와 넋 놓고 쳐다보는 칸을 발견했다.
 “내 동생이다.”
 “······.”
 “내 동생 귀엽지. 정말 귀엽다.”
 “그래. 귀엽다.”
 철호는 칸에게 꼬마 드래곤을 건네주었다. 칸은 너무나 귀여워 참을 수 없다는 듯, 드래곤의 뺨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뺨을 마구 비볐다. 꼬마 드래곤이 간지럽다는 듯 뀰뀰뀰 웃었다.
 철호는 그런 칸을 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틀니를 낀 노인들도 먹을 수 있는 아주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면, 모두가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겠지.
 
 자, 냉장고의 문을 연다.
 냉장실 한편엔 며칠 전 사다 둔 고기 한 덩이가 적당히 숙성돼 있었다. 트리켈롭스 고긴데, 부위는 발바닥이다. 물론 더럽다고 생각 될 수도 있겠지. 하나 그건 이 몬스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트리켈롭스는 트리케라톱스라는 종류의 공룡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한데 신기한 건 이놈은 발바닥이 무지하게 탄력 있는 지방질로 이루어져, 엄청 높이까지 점프할 수 있단 것이다.
 그 발바닥을 잘라내 적당히 카우 홀의 젖에 일정 기간 동안 숙성시키면 굉장히 부드럽고 맛 좋은 식재료로 탈바꿈된다.
 원리?
 “음······.”
 철호는 생각에 잠겼다. 그건 잘 모르겠다. 철호는 이 방법을 예전 전장에서, 베테랑 용병에게 배웠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며칠 숙성시킨 트리켈롭스의 발바닥은 무지하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마치 질 좋은 스폰지케잌을 만지는 듯한 촉감이었다.
 그 상태로 꺼낸다.
 이 발바닥은 그러니까 다 지방질이다. 이것만 먹으면 아무리 맛 좋은 재료라도 다 토하고 말 거다.
 그래서 이렇게―
 
 샥―
 
 철호는 트리켈롭스의 발바닥을 반쯤 잘라내 잘게 다졌다. 그리고 냉장실에 보관 중인 다른 고기 한 덩어리를 꺼냈다.
 바로 얼마 전 구한 벨토 고기다. 부위로 치면 가슴살인데, 벨토란 놈은 전신 어딜 먹어도 기름기 쫙 빠진 안심살 비스무리한 맛이라 어떤 부위를 써도 상관은 없다.
 철호는 벨토 고기 역시 아주 잘게 다졌다. 그리고 양파, 파 마늘······.
 “아기니까 마늘은 뺄까.”
 혹시 모르니 양파나 마늘 등의 자극적인 재료는 죄다 뺀다. 아무튼 그렇게 잘게 다진 것들을 섞는다. 그리고 밀가루도 살짝 넣어 같이 섞어 준다.
 그럼 걸쭉한 고기반죽이 되는데, 그걸 기름을 잘 친 프라이팬에 구워 주는 거다.
 
 치이이이익―!
 
 기분 좋은 고기 굽는 소리.
 고기 익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면,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철호는 고기반죽의 표면을 센 불로 굽고, 그 다음 중간 불로 적당히 익힌 뒤, 마지막까지 잘 구워냈다.
 “으흠.”
 접시에 담고 보니 실로 훌륭한 비주얼의 함박 스테이크가 만들어졌다. 사실 이 요리는 용병들 사이에서 벨릭 스테이크라고 불리던 건데, 뭐 벨토+트리켈롭스의 합성어라고 보면 된다.
 하나 철호는 이 음식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뀨― 뀨―
 
 어느새 아장아장 걸어와 철호의 다리 밑에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꼬마 드래곤을 보며.
 급속성장 스테이크.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칸은 꼬마 드래곤의 뒤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밥 먹고 가라.”
 철호는 간단하게 말했다.
 
 ······.
 
 하늘엔 점점 먹구름이 끼더니, 서서히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었다.
 철호는 이런 바람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마족 놈들은 비바람을 타고 움직였다. 그래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엔 그날의 전장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나누어 먹었던 술 한 잔이, 그리고 피 냄새가.
 마왕은 강했다.
 철호 혼자서는 마왕을 이길 수 없었을 거다, 결정적인 도움은 드래곤이 주었다.
 블루 드래곤.
 대륙 동쪽 끝, 혹한의 빙하지대를 관장하는 아라미르 란테로의 조력이 있었다. 그녀는 장로급 드래곤이었다.
 마왕과의 혈투 끝에, 그녀는 긴 수면에 빠져들었다. 아마 몇 백 년은 잠을 자게 될 테지.
 
 아마도.
 
 철호는 이제 살아서 그녀를 다시 볼 순 없을 것이다.
 
 휘이이잉!
 
 바람은 점점 더 심하게 불어, 나무가 휘청이고 창문을 때려 음산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 철호는 소주를 홀짝였다.
 어찌 되었든 간만에 비가 오는 밤이다.
 그런데······.
 “집에 안 가나?”
 칸이 돌아가질 않는다.
 왜지.
 “음.”
 칸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끼 식사에 얼만가.”
 “10불. 근데 그냥 가도 된다.”
 칸은 재차 머뭇거렸다. 철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뭇거리고 소심한 것이 영 드래곤 같지가 않았다.
 “뭐냐.”
 “숙박업은 안 하나.”
 “안 하는데.”
 “······.”
 놀랍게도 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철호는 녀석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외로웠겠지. 그래서 고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더 하고 싶겠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놀랐다.
 ‘드래곤은 살아가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군.’
 드래곤이 외로워하다니. 에스판 대륙의 학자들에게 소스를 제공하면 논문이 수백 편은 나올 것이다. 드래곤은 고고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으며, 혼자를 좋아하는 종족인 줄 알았는데.
 “이, 이걸 주겠다.”
 칸이 머뭇거리다가 주먹 두 개가 포개진 듯한 크기의 마정석을 내밀었다.
 “······.”
 철호는 어이가 없어 낄낄낄 웃었다. 그때.
 톡톡―
 철호의 다리를 누군가가 건드렸다. 내려다보니 꼬마 드래곤이었다.
 꼬마 드래곤이 네 발로 서서, 철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뀨뀨―”
 철호는 그 꼬마 드래곤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생각해 보니, 칸은 마법의 재능을 타고나진 못 한 드래곤이다. 이 꼬마와 함께 살기엔,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녹록지 않겠군.
 꼬르륵―
 꼬마 드래곤의 배에서 배고프단 신호가 들려왔다.
 “뀨뀨.”
 녀석이 철호의 뺨을 쿡쿡 누르며 배시시 웃었다. 철호는 피식 웃어 버렸다.
 뭐.
 이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겠군.
 생각해 보면, 철호도 그 세계를 그리워하곤 했었다.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긴다는 건, 뭐 생활의 즐거움이 하나 늘어난 셈인가.
 “며칠 묵던가. 다만, 그건 필요 없다.”
 칸의 안색이 환하게 밝았다. 속을 알기 쉬운 드래곤이라······. 신선한걸, 이라고 철호는 중얼거렸다.
 
 ***
 
 꼬마 드래곤에게 간단한 요리를 해 주고, 칸과 술도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새벽이 되고 칸이 꼬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잠들 무렵.
 철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마정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면 대략 4급 정돈 될 거다. 마정석의 등급은 각성자의 등급처럼, 10~1급까지의 계열로 나뉜다. 당연히 숫자가 작을수록 높은 등급이다.
 기어코 이것을 주겠다고 놓고 간 칸을 보면, 드래곤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녀석들이란 생각이 든다.
 별로 필요는 없지만 받줄까.
 철호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공간이 갈라지며 동그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 뿐!
 그때.
 “오, 안녕하십니까 세상의 왕이시여! 아공간을 찾아 주시는 건 무척 오래간만이군요!”
 그 안에서 쑥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존재가 있었다. 축 처진 귀와 검붉은 피부, 그리고 똘망똘망한 두 눈이 인상적인 존재. 바로 고블린이었다.
 “오랜만이군 카심. 날 그렇게 부르지 마라.”
 세상의 왕이라 불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
 카심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평범한 강철호 님. 한데 어떤 용무로?”
 철호는 카심에게 마정석을 건넸다.
 “아공간에 마정석이 얼마나 있지?”
 “백사장의 모래알 정도로 많지요. 하지만 그 중 높은 등급으로 치자면 최상급 마정석 5개, 상급 마정석 120개 정도입니다.”
 그렇군.
 최상급이라면 이쪽 세계에선 1등급 이상의 물건일 거다. 제로 넘버 등급이라고 치면 될라나. 상급 정도가 1급 쯤 될 듯하니까.
 “대충 넣어 둬.”
 “예. 모래알이 한 개 늘었군요.”
 카심이 한쪽 눈을 찡긋 하며 철호의 마정석을 받았다.
 카심은 영생을 사는 고블린으로서, 아공간의 물건 정리를 맡은 녀석이었다.
 “이만 통신 끝.”
 철호의 말에 카심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뵙지요, 세상의 왕······. 아니.”
 그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는 평범해진 강철호 님.”
 
 
 # 먹어야 사는 남자
 
 “사장님, 오늘도 끝내 주는데요?”
 최재우란 남자는 최근 자주 밥집을 찾는 단골이 되었다. 저번 벨토 사건 이후, 혹시 모를 거주민 때문에 그가 순찰을 다니는 모양이었다.
 각성자 협회는 늘 분주하게 움직였다. 생각보다 일을 제대로 하는 편인 듯하다.
 
 아무튼.
 
 오늘의 메뉴는 소스를 바른 아타호 꼬치구이였다.
 아타호란 호랑이의 형상을 한 거대한 몬스터인데, 이쪽 세계 등급으로 치면 한 4급 쯤 될 거다. 고기 맛은 대체적으로 평이하지만 근육량이 제법 있어, 씹는 맛이 아주 좋다.
 최재우는 꼬치를 다섯 접시나 먹어대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아, 저쪽은 직원 분이신가 보죠?”
 “예.”
 저 편에는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칸이 있었다.
 드래곤이 주방에서 설거지라니 세상이 놀랄 일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다름 아니라 이번에 신촌과 서대문 사이 지하차도 쪽에 새 던전이 나타나서 말이죠. 이번에 서대문 쪽에서도 각성자들을 모집하고 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난이도가 어떻답니까?”
 “아마 5급 정도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대문에선 김상후 님과 팀 젠카크가 출동할 거라고들 합니다. 신촌에선 채연 님이 팀을 이끌고 참가하신다고 하고요. 혹시 몰라 후발 팀도 꾸려 간다고 해서 오늘 광장이 구인자들로 붐비더군요.”
 “채연?”
 최재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서대문을 마창사 님이 지킨다면, 신촌은 얼음 마녀 님이 지키시죠.”
 “그렇군요.”
 던전이 만들어진다라.
 에스판 대륙에 있을 때도, 던전은 사방 천지에서 만들어지곤 했었다. 던전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을 잉태하는 곳이고, 차원의 틈이 형성된 자리이기도 하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하는 일종의 게이트(Gate). 그것이 철호가 아는 던전의 존재였다.
 최재우는 꼬치를 한 손에 쥔 채 물을 벌컥 벌컥 마신 뒤 재차 입을 열었다.
 “전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요즘이야 각성자가 워낙 많아, 다들 좋은 능력만을 골라 가니까요. 마치 예전에 노가다 인력소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다들 가족이 있고 그럴 텐데 말입니다. 가끔은 비능력자로서 일정한 직장을 가진 제가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최재우는 기어코 한 접시를 더 먹고, 빵빵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갔다.
 “오늘도 잘 먹고 갑니다!”
 철호는 60불이란 돈을 대충 서랍에 쑤셔 넣었다. 최재우가 넌지시 말 해 준 것이지만, 이 가게의 음식 값은 굉장히 싼 편이었다. 하긴, 철호도 거의 원가로만 가격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음식값을 더 주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철호는 거절했다. 철호의 아공간 게이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는 도통 쓸 일이 없었으니까.
 화폐란 가치는 이제 와 무의미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현찰이 있다는 건 늘 편리한 일이다.
 
 ***
 
 해가 중천에 떴다.
 장이나 봐 올 겸 거리로 나선 철호의 시선에 각성자 한 무리가 잡혔다.
 저편 광장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나란히 줄 서 있는 이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더 뒤에 길쭉한 창을 등에 짊어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 좌우로 사람들이 나열해 있었다.
 저 남자, 누구였더라······.
 “아.”
 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다섯 명 있는 2급 각성자라던, 마창사 김상후일 거다. 굳이 이름 앞에 수식어구를 붙여야 할까, 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게 요즘의 트렌드라면 이해해 줘야겠지.
 아무튼 저 사람이 서대문의 수호자라고 했었던 게 기억난다.
 최근의 던전 공략대를 레이드 파티라고 하는데 예전 게임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철호 역시 게임을 하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기에 이해해 어려움은 없었다.
 게임에서 가장 많은 직업군은?
 바로 딜러다.
 탱커와 힐러는 귀족인 반면 딜러 직업군은 늘 포화 상태이기 마련.
 지금의 세상도 그렇다.
 왜 인진 모르겠지만 딜링 특화 각성자들이 많다.
 공격 능력을 가졌으면 뛰어나지 않은 이상, 취업난에 시달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무래도 방금 골라져 나와, 어깨를 축 떨군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저 펑퍼짐한 남자도 딜러인 모양이다.
 철호는 그런 사내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들 가족이 있고 그럴 텐데 말입니다.
 
 최재우란 남자는 사람이 참 좋다. 자신 걱정을 좀 더 했으면 좋으련만. 철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장으로 향했다.
 아타호 꼬치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아타호 고기를 좀 더 사볼 예정이다.
 철호는 시장으로 가서 큼직한 아타호 등심살 덩어리를 샀다. 대략 가로 세로 높이 30센티미터 크기의 거대한 주사위 같은 고깃덩이였다.
 고기 사이사이 하얀 지방이 눈이 내린 듯 잘 끼어 있는 것이 아주 질 좋은 등심살이다.
 이런 고기는 썰어서 스테이크로 구워도 맛이 좋지만, 통째로 요리하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다.
 
 ***
 
 꼬마 드래곤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고롱고롱 코 고는 소리가 살짝살짝 들려왔다.
 아기들은 어릴 때 무척 피곤하다고 들었는데, 이 꼬마는 아주 조용하고 귀여움도 잘 부려 아기답지 않다고 해야 할까. 마치 숙련된 애완견 같았다.
 꼬마를 재우고 나온 칸은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준비 됐어?”
 철호의 말에 칸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불 조절을 아주 잘 해야 해. 브레스 뿜는다고 무작정 쏘면 다 타는 거야. 알았지?”
 칸은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다.”
 “좋아.”
 골목길로 나온 철호와 칸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철호의 손에는 길쭉한 레이피어가 들려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 레이피어 끝에 거대한 고깃덩이가 꽂혀 있다는 점.
 사방이 실로 칭칭 묶인 채 번들거리는 빛이 가득했다.
 바로 아타호의 등심 덩어리였다.
 우선 고깃덩이의 사방에 살짝 칼집을 내 주고 소금과 후추, 그리고 허브를 잔뜩 치덕치덕 발라 준다. 그 다음 적당히 소주를 바르고 숙성시킨다.
 마지막으로 표면에 오일을 발라 준다. 그 다음 이렇게 길쭉한 막대기에 꽂으면 된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느냐?
 바로 통째로 태우는 거다. 말이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정말이다.
 “주변엔 아무도 없겠지?”
 “없어.”
 “알았다.”
 
 “자, 시작!”
 
 철호의 말에 칸이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브레스를 뿜어냈다.
 저번, 처음 만났을 때 쏜 브레스에 비하면 비비탄 총알 수준의 브레스다.
 화염의 드래곤답게, 브레스는 불 속성이었다.
 블루 드래곤이라면 물 속성의 브레스가, 빛 속성이라면 빛의 브레스가 나가는 것이 드래곤의 종족 특성이었다. 이것은 드래곤이 타고난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다.
 화염의 브레스가 조심스럽게 고기 표면을 태우기 시작했다.
 
 화르륵!
 
 마치 횃불처럼 타오르는 레이피어를 보며 철호는 낄낄낄 웃었다. 골고루 브레스를 잘 받게 앞뒤로 불길을 한참이나 맞아 주던 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됐어.”
 
 화륵!
 
 칸이 브레스를 멈추고, 철호는 가만히 레이피어를 쥔 채 타오르는 고기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가, 불길이 사그라들 무렵.
 고기의 표면은 완벽하게 숯덩이처럼 타 있었다. 하나 상관은 없다.
 “이상한 일이다.”
 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로 철호가 고기를 꿴 레이피어를 보면서.
 “그 무기, 그냥 무기가 아니다.”
 “그럴걸?”
 이 무기는 아공간에 있던 무기 중 하난데, 이름은 잘 기억이······. 아.
 “레카펠 샤프트라고 하던데.”
 “······.”
 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철호를 쳐다보았다.
 “왜.”
 “그거 제국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칼이다. 드워프 장인 레카펠이 만들어 낸 필생의 역작······.”
 “그래?”
 철호는 이 무기를 마왕을 해치워 준 답례로, 드워프들에게 받았었다. 그렇게까지 유명한 무기였다니. 어쩐지 카심이 이 무기를 건네면서 ‘정말 고기 꼬챙이로 쓰실 생각이세요? 말도 안 돼······.’ 라고 중얼거리던 것이 생각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칸의 말에 철호가 물었다.
 “뭐가.”
 “왜 너는 보물들을 쓸데없이 요리하는 것에 써 버리는 건가? 그건 이런 일에 쓸 무기가 아니다.”
 “드래곤들처럼 쟁여 놓고 안 쓰는 것 보단 낫지 않나?”
 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일리 있군.”
 철호는 피식 웃어 버렸다.
 “참 드래곤 같지 않은 놈일세.”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하며 주방으로 들어온 철호는 도마 위에 새카맣게 탄 고기 숯덩이를 올려놓았다.
 
 약 한 시간 뒤.
 
 철호는 조심스럽게 식칼을 들었다.
 
 드래곤은 태어날 때 한 개의 클래스 마스터로 태어난다. 하지만 철호는 여섯 개의 클래스 마스터였다. 처음 이능력을 각성할 때는 두 개였고, 30년 뒤 돌아올 땐 여섯 개였다.
 클래스.
 이것은 각성자들이 소지하게 되는 능력의 종류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클래스가 무엇이냐?
 예를 들어 검,창,단검,활 등의 무기를 다루는 저마다의 클래스가 있으며 마법으로 치면 화염계 빙결계 등의 속성으로 나누어진다. 클래스는 대략 수백 수천 가지 종류가 있는데, 물론 하등 쓸모 없는 능력도 존재한다.
 그리고 클래스는 숙련도를 올림으로써 마스터의 단계에 오르기까지 다섯 개의 단계가 존재한다.
 첫 클래스를 마스터까지 달성한다면, 다른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 클래스는 선택이 불가하지만 두 번째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럼 두 번째 클래스의 숙련도를 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순서대로 클래스를 마스터 해 나가는 거다.
 이쪽 세계.
 그러니까 지구에서 각성자를 등급으로 나누는 건 아마도 클래스가 뿜어내는 위력과 그 클래스의 숙련도 달성 속도에 따름일 것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아무리 특출난 재능이라도 2개 클래스 마스터 이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이냐?
 안타깝게도 각성자의 세계엔 재능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거다. 하긴, 늘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겠냐만.
 때문에 그다지 쓸모없는 능력을 각성했거나 숙련 속도가 느리다면, 애당초 그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아무튼 그 무수히 많은 것들 중 유용한 두 개의 클래스를 마스터 한다면, 대륙 최고의 강자가 될 것이다.
 세 개 클래스를 마스터 한다면?
 그때부턴 드래곤의 영역이다.
 네 개, 여긴 천년을 살았다는 장로급 드래곤의 힘이다.
 다섯 개. 과거의 마왕은 다섯 개 클래스의 마스터였다.
 여섯 개. 이쪽은 최후의 싸움에서, 철호가 달성했다.
 “흠.”
 그 클래스 중 요리도 물론 있었지만, 클래스로 배울 여유는 없었다. 6개 클래스를 마스터 한 뒤 철호에겐 새로운 클래스 선택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6개 클래스 마스터만 해도 대적할 자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가 한계인가― 란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철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도마 위의 숯덩이 고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땐 늘 즐겁다. 아예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의 즐거움이, 이 요리엔 존재하니까.
 철호는 식칼을 들고 서슴없이 숯덩이 위를 쓱 그어냈다. 고기가 무우 썰리듯 쓰윽쓰윽 잘려나가는 쾌감이 제법 짜릿하다.
 고깃덩어리를 두껍게 잘라 보자.
 곧, 아주 먹음직스러운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타호의 등심은 지방질이 제대로 잘 껴 있다. 또한 육질도 쫀쫀한 편이어서 살이 결대로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기의 두께는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로!
 이렇게 두텁게 썰어도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기가 아주 잘 익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브레스의 위력이란 가공할 수준이었다.
 고기는 겉 표면에서부터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숯덩이처럼 탄 표면 윗부분의 바짝 익은 ‘웰 던’.
 조금 더 안쪽의 적당히 익은 ‘미디움’.
 그보다 더 안의 적당히 익었으면서 핏기를 머금고 있는 ‘미디움 레어’.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 중심부의 핏기 가득한 ‘레어’.
 이 고기 한 덩어리로 스테이크의 모든 익기 농도를 다 즐길 수 있는 점이 이 조리법의 멋진 점이다.
 철호가 흐뭇하게 고기를 잘라내고 그 모습을 감상했다. 고기의 형태는 실로 아름다웠다.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살아야 해, 라고 생각하던 그 때.
 “허억!”
 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철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릴 무렵.
 
 두다다닥!
 
 칸이 꼬마 드래곤을 품에 안은 채 다급히 주방으로 달려왔다.
 “미, 미, 미로!”
 “철호라고 불러.”
 “그, 그래 철호! 아무튼! 아주 큰일이 벌어졌다!”
 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불꽃이 치솟아 오를 것 같았다.
 “왜 그래.”
 철호가 재차 묻자, 칸이 꼬마 드래곤을 철호 쪽으로 쭉 들이밀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했다.”
 “뭐?”
 “귤이가 방금 말을 했다.”
 “귤이가 뭔데.”
 “이름이다. 이 녀석의 이름은 지금부터 귤이다.”
 “음······ 그렇군. 축하한다.”
 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한 어조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칸 역시 감격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봐라.”
 그리고 귤이를 자신 쪽으로 돌리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 했다.
 “귤아. 오빠, 해봐. 오빠. 오빠. 오빠.”
 귤이는 뚫어져라 칸을 쳐다보다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다. 왜 안 하지?”
 칸이 다시 철호를 향해 귤이를 안았을 무렵,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아빠빠― 빠빠―”
 철호를 향해서.
 철호는 물끄러미 그 녀석을 쳐다보았다. 귤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앞다리 두 개를 철호에게 내밀며 말했다.
 “빠빠빠― 아빠빠―”
 철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쩍 벌렸다.
 “마, 말했다.”
 어쩐지 가슴 속, 아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철호는 자신도 모르게 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이 기분 좋다는 듯 뀰뀰뀰 웃었다.
 그래서 이름이 귤이인가.
 “이, 이름이 너무 한국적인 거 아니냐?”
 철호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일단은 이쪽 세계에서 태어났으니까.”
 칸은 감격한 듯 연신 귤의 양 뺨에 뽀뽀를 하며 대답했다. 귤이 그런 칸을 보며 배시시 웃으며 또 한마디를 했다.
 “옵빠빠― 빠빠―”
 “들었지? 날 보고 오빠라고 했다.”
 철호는 조용히 웃었다. 어쩐지 드래곤 둘과 같이 사는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걸까. 이런 기분이 어쩐지 아주 나쁘지 않았다.
 “그래. 들었다.”
 
 한창 소란이 벌어지고, 아타호 등심 통구이를 잘 썰어 나누어 먹을 무렵이었다. 귤은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더니만 고롱고롱 잠들어 버렸다. 철호는 그런 녀석을 방으로 조심스럽게 데려가 눕히며 물었다.
 “귤이는 어떤 클래스 마스터냐?”
 “나도 모른다. 좀 더 성장해 봐야 알 듯한데.”
 “그렇군.”
 칸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소주라도 한 잔 할 요량이었다.
 
 드륵!
 
 “혹시 아직 영업 하십니까?”
 손님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밥먹고가라』 1-2권에 계속>

댓글(4)

wo*******    
댓글이
2019.04.09 15:37
wo*******    
왜 없지
2019.04.09 15:37
아이스아메    
대여함 주인공 요리잘함 ㅋㅋ 등장인물들 적당히 귀엽고 티키터카 잘됨. 중갑에 갑자기 스케일이 겁나 커지긴 하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음. 귤이 귀여움.
2022.12.11 15:53
vs레사    
재밌음.끝까지 다 보고 다시 보는중~
2022.12.15 16:0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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