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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무쌍 1

2017.10.31 조회 1,877 추천 13


 소천무쌍 1권
 서장
 
 
 “태어났습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오는 시녀 초월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다.
 “그래? 무엇이더냐?”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던 중년인이 급히 물었다.
 “도련님입니다!”
 “사내라고?”
 “예!”
 중년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하하하! 사내란 말이지! 사내!”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경하드립니다!”
 “이거 악가의 미래가 밝기만 합니다! 하하하핫!”
 “악가의 삼공자로군!”
 중년인의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축하해주기에 바빴다.
 “그래, 가모와 삼공자의 건강은 어떠하냐?”
 초월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모님과 도련님은 모두 건강하십니다.”
 그렇게 초월이 웃으며 대답을 할 때였다.
 “꺄아아아악!”
 “······!”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중년인은 바람처럼 빠르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 안은 산고의 고통으로 인한 흔적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오?”
 가주의 물음에 늙은 조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가락을 들었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포대기에 쌓인 핏덩어리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응애! 응애! 응애!
 “이게 무슨 짓이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다니!
 중년인은 노한 음성으로 늙은 조산사에게 호통을 내지르고는 급히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흡!”
 움찔 놀라며 아이를 떨어트릴 뻔한 중년인.
 “제가 이제까지 많은 아이를 받아보았지만 그런 아이는 처음입니다.”
 늙은 조산사의 입에서는 두려움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잿빛!
 뭔가를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잿빛 눈동자!
 “으음······.”
 중년인은 갓난아이의 잿빛 눈동자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제1장 저주 받은 아이
 
 
 침묵.
 아주 무거운 침묵.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무겁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누구보다 무거운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가주의 모습 때문이라도 지금의 침묵을 깨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을 순 없는 노릇.
 네모각진 얼굴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흠흠. 가주님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삼공자는······ 저주의 씨앗입니다.”
 “헛!”
 “흐음!”
 “으으음······.”
 저주의 씨앗!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니!
 주변의 인물들은 말을 꺼낸 이, 악가의 이인자인 악세찬을 대단하다는 듯 바라봤다.
 제 아무리 가주의 친동생이라고 하지만 저런 발언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더욱이 그 대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친조카가 아닌가!
 “······.”
 “······.”
 “······.”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주를 바라봤다.
 당장 노호성이라도 터져 나올까?
 하지만, 가주 악호명은 여전히 침묵만 지켰다.
 악세찬은 더욱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삼공자의 눈은 인간의 눈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확인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해야 할 아이의 눈이 섬뜩하게 느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솔직히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저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는 결코 간과할 사안이 아닙니다.”
 악세찬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갓 태어난 아이가 두 눈을 완전히 뜬 것도 놀라운 일이거늘 거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잿빛 눈동자라니!
 잿빛 눈동자는 심장을 파고드는 비수처럼 섬뜩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발가벗겨져 모든 것이 파헤쳐지는 느낌이었다.
 상당히 불쾌했다.
 여전히 가주 악호명에게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주님, 그 아이는 장차 악가에 커다란 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 더 자라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 합니다.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어느 가문이든 불길한 징조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예는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가주님께는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삼공자는 분명 불길한 징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삼공자의 눈동자는······ 좋은 징조는 분명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불길하다는 말을 꺼냈다.
 아쉬울 것도 없다.
 이미 악가를 이끌고 나갈 훌륭한 재목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장남인 악진강은 보기 드문 무재로 악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차남인 악소강 역시도 천성적으로 밝고 따뜻한 성격은 물론,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형을 보필하기엔 충분했다.
 장남과 차남은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우애도 깊었다.
 이런 악가의 상황으로 봤을 때, 굳이 정상적이지도 않은 셋째를 안고 갈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모자란 아이라면 안고 갈 수 있다.
 차라리 불구로 태어났더라면 안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만큼은 안고 갈 수 없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지.”
 굳게 다문 입술을 연 가주는 먼저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형님께서는 이름도 지어주질 않았다. 이건 이미 형님께서도 그 아이를 버리기로 결심을 내렸다는 뜻!’
 악세찬은 자신의 형인 가주가 주변의 눈으로 인해 모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악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불길한 아이는 없어져야 해.’
 악세찬의 결심은 단단하게 굳어졌다.
 
 ***
 
 저주 받은 아이.
 악호명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소리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악가 전체에 새로 태어난 삼공자에 대해 함구하라는 명을 내려놓은 상태지만, 둘 이상만 모이면 삼공자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어대기에 바빴다.
 “후우······ 도대체 무슨 업보이기에.”
 한숨을 내쉰 악호명은 애써 무거웠던 표정을 풀어내며 처소로 들어갔다.
 “옳지, 잘 웃는구나.”
 부인 연 씨의 밝은 음성에 악호명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잿빛 눈동자의 아이.
 자신의 셋째.
 저주 받은 아이.
 “꺄햐!”
 “호호호! 웃기도 잘 웃네!”
 부인 연 씨의 손에서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무얼 하는 거요?”
 눈에 띄게 굳어진 표정으로 악호명이 부인 연 씨에게 말했다.
 “오셨어요? 무얼 하다니요?”
 어미가 제 자식과 놀고 있는 것을 두고 무슨 소리냐는 듯 부인 연 씨가 되물었다.
 “그 아이는······.”
 “당신도 그런가요? 정말로 당신도 우리의 아이가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부인 연 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악호명은 차마 부인 연 씨에게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시녀 초월을 무섭게 노려봤다.
 “당부를 잊었더냐!”
 악호명의 매서운 호통에 시녀 초월이 당황한 얼굴로 더듬더듬 변명을 꺼내 놓았다.
 “그, 그것이 가모님께서······.”
 분명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이를 부인 연 씨에게 데려다 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그런 당부를 저버린 것이다.
 시녀 초월이 어쩔 줄을 모르자 부인 연 씨가 말했다.
 “어미가 제 아이를 보고자 하는 게 그리 역정 낼 일인가요? 초월이는 아무런 잘못 없으니 탓을 해야만 한다면 저에게 하세요.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아이는 내게 없어선 안 될 아이에요.”
 “······.”
 아이를 품에 꼭 안는 부인 연 씨의 행동에 악호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엇보다 부인 연 씨의 품에 안긴 아이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 느낌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이상했다.
 ‘세찬의 말대로 저런 아이가 저주의 씨앗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 평범하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했다.
 지금도 아이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뿐인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마치 감당할 수 없는 고수의 시선이 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시력을 회복하여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했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만 보더라도 저 정도의 시력을 회복하는데 두 달은 족히 걸렸었다. 아이들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보통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만 제대로 된 시력을 갖추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무얼 하느냐? 어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거라!”
 악호명은 더 이상 아이의 눈동자를 응시하지 못하고 시녀 초월에게 소리쳤다.
 부인 연 씨가 더욱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정말 너무 하는군요! 당신이 이토록 모진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어찌하여 제 자식을······ 제 자식을 이리 박대할 수 있나요?”
 부인 연 씨의 말이 악호명을 힘들게 했지만 그보다 아이의 시선이 더욱더 견디기 힘들었다.
 “부인이 날 원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 아이는······ 정상이 아니지 않소.”
 “고작 눈동자 색이 다르다는 이유가 그리 큰 잘 못인가요? 제가 듣기로 색목인들도 우리와 다른 눈동자 색을 가졌다고 했어요.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 아이도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나요?”
 “그런 문제가 아니오.”
 단순히 눈동자 색만 다르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하는 악호명이었다.
 차라리 눈동자 색만 달랐다면 오히려 더욱 가엽게 여겼을지 모른다.
 한낱 아이의 눈동자 앞에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은 정말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굉장히 불쾌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시력을 잃은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처음엔 시력을 잃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잿빛 눈동자는 도저히 정상적인 눈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니었다.
 잿빛 눈동자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아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저주받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악호명은 억지로 부인 연 씨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빼앗았다.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울며 소리치는 부인 연 씨를 뒤로 하고 악호명은 아이를 안고 처소를 나와 버렸다.
 “응애! 응애! 응애!”
 어미와 떨어진 것에 서럽게 울어대는 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악호명은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뜨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우리가 언제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고 그러는 거야? 어차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시킨 대로만 하자고.”
 어둠 속에서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내는 어둠을 벗 삼아 은밀하게 움직였다.
 한 사내의 등에는 무언가가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야밤에 제 집 담을 넘는 것들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그러게.”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두 사내는 가뿐히 담을 넘었다.
 담을 넘은 두 사내는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대로를 지나자 약속했던 곳에 두 마리의 말이 나란히 묶여 있었다.
 사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말에 올라탔다.
 “끼럇!”
 “차하!”
 두 마리의 말은 짙은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어둠이 물러날 때였다.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두 마리의 말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워워!”
 “이 정도면 되겠지?”
 “밤을 새워 달렸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어디가 좋을까······ 저기가 괜찮겠군.”
 “그래.”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사내들은 오른 편에 보이는 산으로 다시 말을 몰았다.
 그렇게 산 아래에 도착한 사내들은 말에서 내려 산속으로 내달렸다.
 인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선 사내들은 가볍게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내가 별의별 짓을 다해보는군.”
 “그러게 말이야.”
 잠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던 사내들은 이윽고 빨리 일이나 끝내자는 듯 눈짓을 해댔다.
 이어서 한 사내가 등에 칭칭 감싸고 있던 뭔가를 풀었다.
 등에 동여매고 있던 것은 예상외로 부드러운 비단 이불이었다.
 쌔액, 쌔액, 쌔액.
 비단 이불 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고른 숨소리.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잘만 자는군.”
 “그러게 말이야.”
 사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단 이불 속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아기는 다름 아닌 악호명과 부인 연 씨의 셋째였다.
 저주 받은 아이라 불리는 삼공자.
 “자는 모습은 평범하기 짝이 없군.”
 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사내가 씁쓸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다른 사내 역시도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신경질을 냈다.
 “정말 죽여야 하는 거야?”
 “반드시 죽이라고 했었으니까.”
 “젠장! 네가 해.”
 “무슨 소리야? 네가 하기로 했었잖아!”
 “이 모습을 보니 도저히 못 하겠어.”
 “미친! 나는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어쩌자고?”
 “네가 죽이기로 했으니까 네가 죽여야지.”
 “젠장! 못하겠다니까!”
 사내들은 점점 소리를 높였고, 그 소리에 아이가 눈을 떴다.
 깜빡이는 눈동자가 잿빛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참으로 귀여운 아이였다. 뽀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과 큰 눈까지 제대로만 성장하면 여자 꽤나 울릴 미남자가 될 것은 뻔한 일.
 “으음······ 정말 그 말이 사실이네.”
 “······설마 했었는데, 어째서 저주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는지 알겠군.”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사내들은 온 몸이 날카로운 비수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죽이기 위해 이곳까지 왔기에 더욱더 싸늘한 기분에 휩싸여야만 했다.
 잿빛이지만 맑은 눈동자.
 하지만, 섬뜩하다.
 “정말로 저주받았다면 괜히 잘못 손댔다가 그 저주가 씌이는 거 아냐?”
 “미친 소리! 그딴 말이 어딨어!”
 “그래? 그럼 네가 죽여.”
 아이를 안고 있던 사내는 곧바로 동료에게 떠넘겨 버렸다.
 얼떨결에 아이를 받아든 그는 이윽고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이런 식으로 나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다시 아이를 떠넘기려 했지만 사내는 뒤로 세 발자국이나 물러난 상태였다.
 “씨팔! 빨리 죽이라니까!”
 “난 도저히 못해. 괜히 내 손으로 죽였다가 저주라도 씌이면 어쩌라고? 넌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 네가 죽여. 네가 죽인다면 내가 열흘 동안 술을 사도록 하지.”
 “지랄! 내가 보름 동안 네놈이 퍼마실 술을 살 테니까 빨리 죽이기나 해!”
 “난 한 달!”
 “이 새끼! 지금 장난해?”
 “부탁인데 정말로 난 못하겠다. 네가 좀 죽여.”
 사내는 정말로 못하겠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모자란 새끼!”
 한심하다는 듯 사내를 바라본 그는 이윽고 아이의 머리를 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저주는 무슨 놈의 저주! 그냥 이놈은 비정상일 뿐이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그는 손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 아이는 저주 받은 아이다. 멀리 데리고 가서 죽여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
 그 아이는 저주 받은 아이다. 그 아이는 저주 받은 아이다. 그 아이는 저주 받은 아이······.
 “씨팔!”
 내공까지 모았던 손을 힘없이 떨어트리는 그.
 “왜 그래?”
 “못 하겠다. 네 말대로 정말로 저주 받은 아이라면 내가 죽였을 때, 나한테 저주가 씔 수도 있잖아? 빌어먹을! 왜 나만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이건 도저히 불공평해서 못하겠어.”
 가슴 한쪽 구석에서 불만이 솟구쳤다.
 정작 저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거늘 자신에게 저주가 씌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불안하고 불공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어쩌자고?”
 “그야······.”
 사내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태양이 산 곳곳을 비출 때였다.
 “응애! 응애! 응애!”
 배가 고픈지 아이가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사내가 의견을 내놓았다.
 “차라리 여기 버려두는 게 어떨까? 이런 산속에서 살아날 수 있겠어? 어차피 여긴 인적도 없고.”
 “여기에?”
 그러고 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인적도 거의 없었고, 이제 갓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런 산 속에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굶어 죽든지, 짐승들에게 해를 입어 죽을 것이다.
 “그럼 그러자.”
 “그래.”
 사내들은 아이를 죽였다는 증거물로 비단 이불만 챙겨 사라졌다.
 얇은 천에 둘둘 감싸인 아이만이 사내들이 있던 자리에 홀로 누워 있었다.
 “응애! 응애! 응애!”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좀처럼 그쳐지질 않았다.
 앞으로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
 
 “우, 우리 아이 어딨어요?”
 “그게······.”
 “내 아이! 내 아이 어딨어요!”
 “미안하오.”
 “내 아이를 돌려줘요! 내 아이 돌려줘요! 내 아이 돌려줘!”
 부인 연 씨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발악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부인!”
 “내 아이! 내 아이를 돌려줘!”
 악호명의 손길을 뿌리치며 부인 연 씨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가! 내 아가! 아가! 어딨니!”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내지르는 부인 연 씨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고개를 마구 흔드는 부인 연 씨의 눈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부인 연 씨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악호명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을 하며 소리쳤다.
 “이거 놔! 내 아이를 찾을 거야! 이거 놔!”
 “부인! 부인!”
 항상 단정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보이던 부인 연 씨였다. 그런 그녀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이니 절로 그녀의 아픔이 느껴지는 듯싶었다.
 “뭣들 하는 거냐! 가모를 모셔라!”
 악호명의 호통에 시녀들이 바삐 다가왔다.
 “가모님, 진정하세요.”
 “가모님, 안으로 드세요.”
 시녀들이 억지로 부인 연 씨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부인 연 씨는 아이를 돌려달라며 날카로운 비명을 토해냈다.
 “으으음······.”
 부인 연 씨의 모습을 바라보는 악호명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미안 했고,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동생인 악세찬이 건네준 아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비단 이불은 더 이상 그 아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조카를 죽인 악세찬의 행동을 나무라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악세찬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했을 일이기에.
 “미안하구나.”
 악호명은 손에 쥔 비단 이불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 말만을 되풀이하고, 되풀이했다.
 운명의 수레는 그렇게 삐걱대기 시작했다.
 
 
 제2장 작은 하늘, 소천
 
 
 “난 아무래도 꺼림칙해요.”
 “허어! 그게 무슨 소린가? 저런 갓난아이에게 무슨!”
 “당신도 보다시피 눈이 이상하잖아요. 정말로 정상이라면 왜 저런 갓난쟁이를 그 산속에 버려뒀겠어요? 뭔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버린 것 아니겠어요? 자고로 그 모습이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은 불운을 타고 나서 그 집안에 망조가······.”
 “거 참! 그만하게! 다 헛소리 좋아하는 작자들이 꾸며낸 일이라는 걸 왜 모르나!”
 괜한 소리 말라는 듯 호통 친 호백은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아이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산 속에 버려두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할 놈들이다.
 만약, 자신이 약초를 캐러 그 시간에 영성산을 찾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졌다.
 갓 태어나 세상의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에게 죽음이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이런 어린 것을 산중에 버려둔 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 좀 보라고. 얼마나 귀여워? 한낱 눈동자 색이 우리와 다르다고 문제가 된다면 그 얼마나 이 아이에게 가혹한 일이겠는가?”
 호백의 말에 푸짐한 몸매를 자랑하는 중년 여인, 호백의 부인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야 그 아이 사정이니 어쩔 수 있겠어요? 태어나자마자 죽는 애들도 부지기수인데 지금까지 살았으면 그 아이들에 비해 장수한 것이지.”
 부인의 말에 호백은 눈을 팍! 찌푸렸다.
 “쯧쯧쯧! 마음 씀씀이라고는 좁아터진 여편네 같으니! 부어 오른 살집만큼만 마음을 곱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호백의 타박에 부인 강 씨는 골이 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백은 여전히 고된 하루에 지쳐 깊은 잠에 빠진 아이를 바라봤다.
 방긋!
 “허허! 고놈 참 웃는 것도 예쁘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아이는 아주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녀석이 일어나면 젖을 먹여야 하니 마을에 가서 젖 좀 얻어오게.”
 호백의 말에 부인 강 씨가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일을 시키느냐는 듯 대꾸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백이 그녀의 대꾸를 앞서서 막아버렸다.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복을 받는 거야. 자고로 사람이란 생명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법. 이왕이면 넉넉히 젖을 받아 오도록 하게.”
 “······.”
 호백의 말에 부인 강 씨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해봐야 돌아올 것이라고는 뻔한데 말해 무얼 할까!
 “이년이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지었기에 이 나이에 이 고생을 할까! 내가 빨리 죽어야 이 고생이 끝나지!”
 부인 강 씨는 제 신세타령을 하며 방을 빠져 나갔다.
 “하는 말 하고는!”
 호백은 부인 강 씨의 좁은 속내가 답답했다.
 부인 강 씨로 인해 주름졌던 호백의 얼굴은 아이를 바라보며 팽팽하게 펴졌다. 그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호백이었다.
 “고 녀석, 참 보기 드문 미남일세! 허허허!”
 한 달도 되지 않은 갓난쟁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호백의 말처럼 아이는 정말이지 예쁘고 귀여웠다.
 “녀석아, 이것도 다 너와 내 인연이니 앞으로 나와 잘 살아보자꾸나.”
 방긋!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웃는 아이의 모습에 호백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허허허! 그나저나 네 녀석을 앞으로 뭐라 부르면 좋을까?”
 호백은 아이의 이름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마땅한 이름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아이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산 속에 버려져 울고 있던 아이.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던지 호백은 지금껏 이렇게 서러운 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던 아이는 호백이 안아 들었을 때,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었다.
 그때서야 호백은 울음을 그친 아이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온 몸을 흠칫 떨게 만든 잿빛 눈동자!
 호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눈동자에서 온 몸이 오싹한 느낌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의 잿빛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하늘을 응시했다.
 파란 하늘을 가득 담은 잿빛 눈동자는 호백에게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뭐라고 꼬집어 말을 할 순 없었지만 분명 처음의 오싹함과는 정반대의 느낌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오히려, 아이의 눈동자에서 왜 오싹한 느낌을 받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파란 하늘을 담았던 눈동자였지. 옳거니! 하늘! 크고 넓은 하늘을 그 작은 눈동자에 담아 작은 하늘을 만들어 냈으니······ 소천(小天)! 소천이라 부르면 되겠구나! 어떠냐? 네 이름이 괜찮으냐?”
 방긋!
 신통하게도 자는 내내 대답 하듯 웃음을 짓는 아이다.
 “고 녀석! 마음에 든다는 뜻이렸다? 허허허!”
 호백은 약초를 캐러 다니느라 상처투성이에 굳은살이 잔뜩 박힌 두터운 손으로 아이, 소천의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기분이 좋아서 일까?
 소천의 얼굴에 더욱더 짙은 미소가 아로새겨졌다.
 
 ***
 
 “아버지! 저기!”
 고사리 같은 손이 풀숲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 보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는 고사리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가 눈을 부릅떴다.
 “옳거니! 붉은 조롱이로구나!”
 워낙 어지럽게 자라난 풀들로 인해서 가까이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결코 발견 할 수 없었다.
 붉은 조롱은 뿌리를 말려 약재로 만드는데 그것은 지금 꽤나 값이 나가는 적하수오다.
 “아버지! 저기도 있어요!”
 앳된 음성.
 말투도 또렷또렷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손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치는 아이는 많아 보여야 다섯 살이었다.
 “알겠다. 알겠어. 허허허!”
 능숙한 손길로 붉은 조롱을 캐내는 이는 다름 아닌 호백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다름 아닌 호백의 손에 의해 생명을 구한 소천인 것이다.
 “고 녀석, 참으로 신통하기도 하지!”
 호백은 붉은 조롱을 캐며 흐뭇하게 벌어진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전문 약초꾼인 자신보다도 더 능숙하게 약초를 찾아내는 소천이었다.
 소천이 약초를 찾아내기 시작한 건 1년 전이다.
 당시 네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소천을 데리고 산으로 오른 호백은 자연의 위대함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인간은 자연을 항상 벗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소천에게도 심어주기 위한 나들이였다.
 처음 산에 오른 소천은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그러던 소천이 돌연 우거진 풀숲을 응시하더니 어째서 마당에 있어야 할 풀들이 저기 있냐는 것이었다.
 호백은 처음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아니, 그저 소천이 약초들을 단순한 풀과 혼동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로 약초가 섞여 있었다.
 호백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내내 소천은 약초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것도 능숙한 약초꾼이라 하더라도 쉽게 발견하기 힘든 곳에서 말이다.
 시력이 유독 좋은 것일까?
 호백은 어쩌면 소천의 잿빛 눈동자가 남보다 더 좋은 시력을 지니고 있기에 조금 특이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호백은 소천에게 약초들을 하나, 하나 알려주었다.
 고작 네 살.
 뭔가를 기억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두어 번 알려주는 것만으로 약초들을 줄줄 꿰기 시작하는 소천은 호백과 부인 강 씨의 입장에선 천재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소천과의 약초 채집이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천아, 오늘은 이만하고 그만 내려가도록 하자.”
 “네!”
 항상 밝은 아이다.
 착하고, 말을 잘 따르며, 명석하기까지 하다.
 저런 아이를 버리다니!
 호백은 또 다시 소천을 버린 친부모들을 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소천을 버리지 않았다면 자신과의 인연이 없었을 테니.
 “천아, 오랜만에 아버지가 무등을 태워주련?”
 “아버지 힘드시잖아요?”
 “녀석아! 이 애비가 그리 허약해 보이던?”
 호백은 단숨에 소천을 안아 올려 무등을 태웠다.
 산을 타기엔 너무 어린 나이지만, 소천은 조금도 힘들어 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호백이 보기에도 소천은 꽤나 강골이었다.
 “아버지, 힘들면 내려주세요.”
 “애비는 끄떡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뭐가 보이는지 애비에게 말해주려무나.”
 “움······ 서쪽에 노루가 뛰어 놀고 있어요. 그리고 그 근처에는 토끼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고요. 또······.”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소천의 모습에 호백은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허허허!”
 유독 무등 타길 좋아하는 소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스스로 나서서 무등을 태워 달라 조른 적이 없는 소천이었다. 제 즐거움보다는 자신의 힘겨움을 먼저 생각하기에 그 마음이 더욱더 기특한 호백이었다.
 기이하게도 무등을 타면 소천은 먼 곳까지 샅샅이 바라볼 수 있었다.
 그저 무등을 탄 것뿐이었지만, 소천이 말을 해주는 것들이 호백의 눈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잿빛 눈동자.
 분명 호백이 생각하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눈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소천의 눈동자가 비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호백에게 있어 소천은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아이다.
 
 ***
 
 “어머니!”
 “천아!”
 호백의 부인 강 씨는 무등을 탄 상태로 돌아오는 소천을 바라보며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그녀의 손에서 다듬어지던 채소는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상태였다.
 호백의 어깨에서 내려온 소천은 부인 강 씨의 넓은 품으로 안겨 들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예. 헤헤헤!”
 “배고프지? 맛있는 밥 차려줄 테니까 어서 들어가자.”
 소천을 힘주어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부인 강 씨의 모습에 호백이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몇 년 만에 해후하는 모자지간인 줄 알겠네!”
 고작 하루다.
 아니, 네 시진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의 떨어짐도 부인 강 씨에게는 길고 긴 이별과 같았다.
 “거 참, 천이 녀석 때문에 나는 찬밥신세 일세. 허허허!”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은 부인 강 씨였지만 조금도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는 호백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부인 강 씨는 곧바로 소천의 얼굴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잘 생긴 내 새끼 아비 따라 고생해서 얼굴 다 상했네!”
 “헤헤!”
 부인 강 씨의 후덕한 손에 얼굴이 깨끗하게 씻기는 동안에도 소천은 밝게 웃기만 했다.
 “툇마루에 가서 조금만 앉아 있으렴.”
 “네.”
 소천이 툇마루에 앉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난 후에야 부인 강 씨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채소들을 주워 흙을 털어내고는 물로 씻어 다듬었다.
 그 사이 호백은 집안으로 들어와 오늘 채취한 약초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약초를 캐고, 그것을 분류하고, 다듬는 약초꾼의 하루는 굉장히 바쁘기만 했다. 그런 것을 알기에 툇마루에 앉아 있던 소천이 냉큼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아버지, 제가 도울게요.”
 소천이 앙증맞은 손으로 약초를 만지려고 할 때였다.
 “천아! 그건 네 아비한테 맞기고 넌 툇마루 가서 가만히 앉아 있어! 하루 종일 네 아비 따라 산을 탄다고 얼마나 고단하겠니, 어여 어미 말 들어.”
 “어머니, 저는 괜······.”
 소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괜찮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호백이 먼저였다.
 “그래, 네 어미 말대로 하거라.”
 호백의 말에 소천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얌전히 툇마루로 가서 앉았다.
 “흠흠! 거 사람 고생하는 서방은 눈에 보이지도 않나?”
 “당신이야 지금까지 해오던 일인데 그까짓 게 무슨 고생이겠어요? 어린 천이를 데리고 산을 타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지만, 깊은 곳까지 데리고 가서는 몸에 생채기라도 만들어 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리 알고나 있어요.”
 “허허! 나 원!”
 이 순간만큼은 호백도 약간의 서운함을 느껴야만 했다.
 여자는 혼인하면 남편보다 자식 사랑이 더 크다더니!
 처음만 하더라도 불길하니 어쩌니 하면서 탐탁지 않아 했던 부인 강 씨였다. 아니, 오히려 소천의 존재 자체를 꺼려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보다 소천부터 먼저 챙기는 부인 강 씨였다.
 그런 부인 강 씨의 변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번씩은 섭섭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천을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는 호백이었다.
 아버지는 약초를 다듬고, 어머니는 밥을 차린다.
 툇마루에 앉은 소천은 그저 해맑게 웃고 있기만 했다.
 
 “자, 많이 먹어라.”
 산처럼 쌓인 밥은 도저히 다섯 살짜리 아이가 먹을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밥을 소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기특하게도 인사도 잘한다.
 부인 강 씨는 소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이어서 밥을 먹기 시작하는 소천의 밥 위로 갖가지 반찬을 올려놓기에 바빴다.
 자고로 사내는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부인 강 씨의 지론이다.
 때문에 소천은 또래에 비해 많은 양의 밥을 먹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소화불량으로 몇 차례나 체하기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인 강 씨의 지론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소천의 양이 또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야 말았다. 그야 말로 부인 강 씨 덕분에 대식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내는 가리는 것 없이 이것 저것 잘 먹어야 하는 거야.”
 “네.”
 부인 강 씨가 밥 위로 올려주는 반찬을 소천은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면 부인 강 씨는 물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호백도 밥을 먹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우질 못했다.
 약초꾼인 호백은 하루 두 끼 식사만 챙겨 먹을 정도의 형편이었다. 약초꾼이라는 게 본래 운이 좋으면 비싼 약초를 캘 수 있지만, 보통 그런 운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호백이 약초를 캐러 산을 타는 시간에 부인 강 씨는 마을로 내려가 삯바느질 감을 얻어와야만 했다.
 그게 이들 부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1년 전부터는 생활이 바뀌고 말았다.
 소천의 도움으로 약초를 캐기 시작한 호백은 홀로 약초를 캐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은 물론, 비싼 약초도 상당히 쉽게 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생활 자체가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소천으로 인해 생긴 결과였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인해 소천을 위하는 부인 강 씨의 행동이 바뀐 건 아니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부인 강 씨 역시도 소천을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동자 색이 다르다는 것만 제외하면 소천은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칭얼거리기는커녕 오히려, 하루 종일 방실방실 웃고 있기만 할 정도였다.
 울 때라고는 배가 고플 때와 볼일을 봤을 때뿐이었다.
 곱상한 외모로 하루 종일 웃고만 있는데 어찌 미워할까?
 거기다가 스스로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는 부인 강 씨의 품으로 쏙 들어와 새근새근 자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보이지 않던 벽을 쌓고 있던 부인 강 씨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렸던 것이다.
 그런 소천을 바라보는 호백은 그저 신기했을 뿐이었다.
 “후아!”
 성인이 먹을 만큼의 양을 뚝딱! 해치운 소천.
 빵빵해진 소천의 배를 슬슬 쓰다듬은 부인 강 씨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잘 먹었니?”
 “예!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은 언제나 맛있어요!”
 “어이구! 우리 천이 기특하기도 하지! 그럼 이거 먹자.”
 부인 강 씨가 내민 것은 하수오였다.
 소천은 하수오를 받아 들고는 꼭꼭 씹어 먹었다.
 하수오를 꼭꼭 먹는 소천을 부인 강 씨와 호백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무리 약초꾼이라고 하지만 하수오는 그들조차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약재가 아니었다.
 워낙 비싼 품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백이 소천과 함께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 달에 서너 뿌리면 많이 채취했던 하수오를 이제는 이, 삼 일에 한 뿌리씩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하수오를 소천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다.
 “어머니, 제가 황구 밥 갖다 줄게요.”
 “그러렴.”
 부인 강 씨는 미리 준해놓은 황구의 밥을 소천에게 건네줬다.
 황구의 밥을 들고 쪼르르 달려가는 소천의 모습을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던 부인 강 씨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 그래?”
 호백은 왜 갑자기 한숨이냐는 듯 부인 강 씨를 바라봤다.
 “천이에게도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속이 상해 죽겠어요.”
 부인 강 씨의 말에 호백의 얼굴도 무겁게 변했다.
 “우리 천이처럼 착한 아이가 어디 있다고······ 그깟 눈동자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게 무슨 큰 문제가 되는 건지.”
 말을 하며 가슴이 더 미어지는지 부인 강 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저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비록,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속된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바로 소천이다.
 그런 아이가 남들에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니 분통이 터졌다.
 “어쩌겠소. 그게 다 저 아이의 업보이거늘.”
 부인 강 씨는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호백을 노려봤다.
 호백은 자신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오히려 소천을 배척했던 건 부인 강 씨가 아니었던가!
 그런 말을 해봐야 돌아오는 건 타박 밖에 되지 않았기에 호백은 그저 묵묵히 밥을 먹었다.
 소천이 아장아장 걸음을 할 때였다.
 집으로 호백의 친구들이 찾아왔었는데 그들은 소천의 눈을 보고는 하나같이 놀라며 경계를 했었다.
 호백과 부인 강 씨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소천을 거부감 가득한 얼굴로 보았었다.
 그때 호백과 부인 강 씨는 소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소천이 제대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상처를 받지 않도록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잠정 결론지었었다.
 하지만, 소천이 또래의 친구도 없이 홀로 지내는 모습을 볼 때면 호백과 부인 강 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짠해지기 일쑤였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소천을 보여 볼까?”
 호백의 조심스런 말에 부인 강 씨가 고개를 내저었다.
 “천이가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당분간은 조금 더 지켜봐요.”
 “그러자고.”
 호백 내외의 남모를 걱정거리는 아주 무겁기만 했다.
 
 
 제3장 운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덜그덕, 덜그덕, 덜그덕.
 쉬지 않고 밥을 먹어대는 황구의 모습을 소천은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언제나 황구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밥을 먹어댔는데 그 모습이 소천에게는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황구야, 천천히 먹어.”
 소천의 말에도 소용없었다.
 황구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밥을 먹어댔다.
 그러던 황구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왈왈! 왈왈!
 대문쪽을 향해서 앙칼지게 짖어대는 황구의 모습에 소천은 고개를 돌려 대문을 바라봤다.
 “여기가 약초꾼 양호백이 사는 곳이오?”
 대문 앞에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누구시오?”
 호백이 그렇게 말하며 대문으로 향했다.
 소천의 잿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부모님 이외에는 처음으로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소천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양호백이오만?”
 “당신이 양호백이오? 우리는 아래 진성촌의 약초꾼들이오.”
 호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그들을 바라봤다.
 꽤나 성질이 급한 듯한 한 남자가 대뜸 소리쳤다.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모두 굶어죽게 생겼소!”
 나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이오?”
 호백이 점잖게 묻자 그는 여전히 약간 흥분한 어조로 대꾸했다.
 “몇 달 전부터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도통 약초를 팔 수가 없게 되었소!”
 “약초를 팔 수 없게 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이 무슨 수로 백복령, 생지황, 삼지구엽초 등을 쉽게 캐는지 모르겠으나, 자주 판매를 하는 바람에 그 가격이 떨어졌소! 그러니 약초를 팔 수가 없을 수밖에!”
 이어 옆에 있던 남자가 거들었다.
 “듣자니 인근 약방을 모두 돌아다니며 약초를 팔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호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요?”
 “당연하지! 당신으로 인해서 시세가 떨어져서 우리까지 덩달아 싸게 팔아야만 하잖아! 최소한의 상도덕이 있다면 시세를 떨어트리면 안 되지!”
 “맞는 말이오. 당신이 무슨 재주가 있어 그 많은 양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가격을 낮추지는 말았어야 했소.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선의의 약초꾼들까지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말이오.”
 호백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이보시오들. 약초 가격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소? 약초 가격이야 말로 제 값이 없는 것이오.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이거늘 어찌 가격이 정해져 있다 할 수 있겠소? 운이 좋아 물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지고, 양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이치이거늘 어찌하여 내게 모든 책임을 전과시키려고만 하는 거요? 또, 약초 가격이야 약재상들이 책정하여 매입하는 것이거늘 어째서 나에게 이러는 거요?”
 “뭐야? 약초 값이 정해진 게 어디 있냐고? 약초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어째서 우리가 기를 쓰고 값비싼 약초를 캐려고 하는 거겠더냐? 네놈이 무슨 짓을 해서 그 많은 것들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약재상 놈들이 가격을 떨어트리면 마땅히 팔지 말아야 할 것 아니야! 가격이 떨어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는 게 문제 아니야!”
 “그렇다고 약재를 팔지 않으면 나는 뭘 먹고 살란 말이오? 가격이 떨어졌어도 팔아야만 하는 게 우리네 입장이 아니오?”
 “적당히 해야지! 가격이 뻔히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도 계속 약초를 갖다 파니까 문제가 되는 거 아니냐고!”
 “좋은 약초꾼이라함은 자신이 채취한 약초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팔아야 하는 법이오. 가격이 떨어졌다 하여 가격이 오를 때까지 무기한 약초를 쟁여놓고 기다리는 건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초지일관 흥분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는 대뜸 호백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뭐? 좋은 약초꾼? 네놈 혼자만 좋은 약초꾼이 되면 다냐? 우리는? 네놈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야 하는 우리는!”
 호백은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자에게 멱살을 붙잡히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허! 내 살다 살다 이런 기막힌 꼴을 당하긴 처음이군!”
 호백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남자의 가슴을 밀쳐냈다.
 생각 외로 강한 호백의 힘에 남자가 기우뚱 뒤로 밀려나 넘어지고야 말았다.
 “이런 썅!”
 그렇지 않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였는데, 머리가 희끗한 노인네에게 힘에서 밀려버리는 수모를 당하니 남자는 대뜸 주먹부터 휘둘렀다.
 퍽!
 얼굴을 얻어맞은 호백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보게! 장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주먹질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우리가 이러자고 찾아온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말이 맞네. 자네가 경솔했네!”
 “나도 모르게······.”
 주먹질을 하고보니 후회가 밀려드는 장삼이었다.
 “아버지!”
 호기심에 다가가던 소천은 호백이 낯선 남자에게 얻어맞고 쓰러지자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천아! 들어가 있어라!”
 호백이 급하게 소리쳤다.
 혹시라도 약초꾼들이 소천의 눈이 다르다는 걸 알고 좋지 않은 말이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헛! 저 아이 눈이 왜 저러지?”
 “흡! 무, 무슨 눈이 저렇게 생긴 거야?”
 “귀, 귀신 눈깔이 따로 없군!”
 장삼의 마지막 말이 호백의 눈에서 불을 일으켰다.
 “이놈! 그게 무슨 망발이냐! 소천이의 눈이 어떻다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호백의 주먹이 장삼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노인네가!”
 “장삼!”
 “그만두게!”
 또 다시 욱해서 주먹을 내지르려던 장삼은 동료들의 만류에 씩씩대며 주먹을 내렸다. 하지만, 호백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이만하면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그만 가보겠소.”
 “조심하시오!”
 “거 적당히 하도록 하시오.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니오?”
 “퉷! 재수 없는 노인네 같으니라고!”
 그들은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그들의 입에선 호백이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집 애새끼는 왜 저런 거야? 씨팔, 난 눈깔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더군!”
 “무슨 병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조금 섬뜩하기는 하더군. 눈동자가 잿빛이라니······.”
 “장님은 아닌 거 같지만 뭔가 문제가 있겠지?”
 “이거 괜히 저 애새끼 눈깔 때문에 재수 없는 거 아냐? 씨팔! 찜찜해 죽겠군! 카악~ 퉤!”
 “설마 그러려고.”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멀어지는 약초꾼들을 바라보는 호백의 눈에선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노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러나 소천의 걱정 어린 음성과 표정에 호백은 웃어야만 했다.
 “괜찮으니 걱정 마라. 들어가자꾸나.”
 “예.”
 괜찮다니 방긋 웃는 소천이었다.
 그런 소천을 바라보며 호백은 다행스럽게도 약초꾼들이 하는 소리를 못 들었음을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두고 보자 이놈들!’
 괜한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소천을 앞에 두고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한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정말 이래도 괜찮겠어요?”
 걱정 가득한 부인 강 씨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호백은 오늘 갖다 팔 약초들로 커다란 짐을 꾸렸다.
 “내가 왜 그깟 놈들 말을 들어야 하는데? 걱정할 것 없으니 신경 쓰지 말구려.”
 “하지만, 또 찾아와서 행패라도 부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생각만 해도 걱정이 되는 부인 강 씨였다.
 젊었을 적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나이 지긋한 호백이 아닌가?
 아직까지도 거뜬하게 산을 탄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호백보다 훨씬 젊은 약초꾼들이다.
 힘과 체력에서 도저히 호백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미 장 포쾌에게 말을 해두었으니 그놈들도 함부로는 하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관부에 미리 알렸다고 하니 절로 안심이 되는 부인 강 씨였다.
 “그럼 다녀오리다.”
 “조심해요.”
 “사람 걱정 하고는. 허허허!”
 웃으며 집을 나서는 호백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부인 강 씨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
 
 “뭐라고!”
 “빌어먹을 노인네!”
 진성촌 약초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한 호백의 행동에 화가 났다.
 “노인네라고 봐줬더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주먹질이라도 할 것 같은 장삼이었다.
 “노 형!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겁니까? 따끔하게 경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놈의 노인네 좋게 말하니까 들어먹지도 않으니 힘을 써서라도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씨팔! 내가 가서 곤죽이 되도록 패버리겠소!”
 장삼은 말만 하라는 듯 은연 중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노표를 바라봤다.
 “으음······ 좋게 말로 했을 때 들었으면 좋았을 걸.”
 노표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장삼으로 하여 쓴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때론 폭력만큼 가장 훌륭한 가르침도 없는 법이지.
 “그럼 장삼 자네가 알아서 하게. 단,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말게. 그래도 우리처럼 약초를 팔아먹는 사람이 아닌가? 적당히 다시는 그러지 못할 정도로만 해두게.”
 “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오.”
 장삼은 걱정 말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하루 뒤, 장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호백이 관부에 저번에 있었던 일을 알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직접적으로 호백에게 손을 가하면 포쾌들에게 잡혀 관부로 끌려갈 것이기에 장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씨팔!”
 제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장삼은 폭발하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도 호백은 하루마다 약초들을 팔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도통 약초 값은 제 값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진성촌 약초꾼들은 예전만큼의 돈을 벌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호백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약초를 팔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당장 눈앞에서 이익이 줄어들고 있으니 참고 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장삼은 술병의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이미 그의 주변으로는 빈 술병이 여섯 병이나 나뒹굴고 있었다.
 “크윽······ 빌어먹을! 그 노인네 약초들 죄다 불사질러 버릴 수도 없······. 불?”
 술에 잔뜩 취한 장삼은 말을 뱉어내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씨팔! 그 노인네 약초에다 불을 질러버리겠어!”
 술이라는 괴물에게 이성을 빼앗긴 장삼은 한 손엔 술병과 다른 한 손엔 화섭자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에도 술을 연신 들이 킨 장삼은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몸으로 호백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호백의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지금 시간은 축시(사경:새벽1~3시)다.
 당연히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끅! 죄다 불 질러 버리겠어!”
 장삼이 호백의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왈왈! 왈왈!
 낯선 이의 방문에 잠을 자던 황구가 큰 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장삼은 급히 황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채 일 년도 자라지 못한 작은 체구의 황구 머리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퍽!
 깨앵! 깨앵!
 “이런 개새끼!”
 장삼은 황구를 걷어차는 걸로도 모자라서 손에 들고 있던 술병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치고, 거칠게 발로 짓밟았다. 그 과정에서 바닥으로 흩뿌려진 술병 조각들이 황구의 목 부근으로 박혀 들어갔고, 이윽고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황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
 “게 누구요?”
 소란스러움에 잠에 깬 호백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장삼은 급히 어둠 속에 숨었고, 호백은 누구냐고 몇 번을 더 외치다 이내 황구에게도 다가왔다.
 피를 흘리고 죽어버린 황구의 모습에 호백이 비명을 내지르려는 순간.
 “썅!”
 푸욱!
 약초를 캐기 위해 항상 지니고 다니던 날카로운 쇳조각이 호백의 배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큭! 네, 네놈이······.”
 호백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이가 장삼임을 알아봤다.
 “빌어먹을 노인네! 죽어! 죽어! 죽어!”
 푸욱! 푸욱! 푸욱!
 장삼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호백의 배에 박힌 쇳조각을 대여섯 번이나 힘껏 찌르고, 비틀기를 반복했다.
 수차례나 배를 찔린 호백은 이미 숨을 헐떡거리며 죽음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여보?”
 호백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자 부인 강 씨가 궁금함에 밖으로 나왔다.
 장삼은 급히 쇳조각을 빼내며 다시 어둠 속에 숨었다.
 털썩!
 호백은 바닥으로 쓰러졌고, 부인 강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백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여보! 당신 왜 여기 쓰러져······.”
 푸악!
 또 다시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장삼은 부인 강 씨의 배를 향해 쇳조각을 힘껏 쑤셔 박았다.
 호백과 다르게 곧바로 털썩! 쓰러지는 부인 강 씨.
 뚝뚝뚝.
 피가 뚝뚝 떨어지는 쇳조각을 들고 있던 장삼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가는 호백과 숨을 헐떡이며 꿈틀거리는 부인 강 씨의 모습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살인에 대한 충격이 장삼의 온 몸을 흔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술김에 저지른 짓이었다.
 개가 짖어서 때리다보니 죽이게 되었고, 피를 보니 흥분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호백이 나타나니 그가 관부에 신고할 것 같아 급히 품에 지니고 있던 도구로 배를 찔렀고, 부인 강 씨 역시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진 실수였다.
 “난 약초에 불만 지르려고 했어······ 저 개새끼가 짖지만 않았다면······ 네, 네놈이 방에서 나오지만 않았다면······ 정말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니야······.”
 장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충격에 서 있던 장삼은 눈물을 스윽 닦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순 없다.
 관부에 잡히면 끝이다.
 장삼은 서둘러 호백의 집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가 몇 달 동안이나 산을 타야만 채취가 가능한 약초들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꽤 비싼 약재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꿀꺽!”
 처음 불을 지르려던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탐욕!
 장삼은 가장 비싼 것들로만 약초들을 하나, 둘 챙기기 시작했다. 짊어지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꾸린 장삼은 나머지 약초에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륵!
 호백 내외가 정성 들여 말린 약초는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이어서 집안 곳곳에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장삼은 호백의 집 전체에 불이 번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뜨거운 불길은 호백의 집 전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작은 불씨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큰 불을 일으키긴 쉽다.
 거대한 불에 잡아먹힌 호백의 집은 매캐한 연기를 쉬지 않고 토해냈다.
 꿈틀.
 뜨겁게 번져가는 화염 속에서 죽은 듯 엎드려 있던 부인 강 씨가 움직였다. 그녀가 엎드려 있던 주변은 비릿한 핏물로 흥건하게 땅이 적셔져 있었다.
 꿈틀!
 “꺼어, 꺼어······.”
 부인 강 씨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서 호백에게로 기어갔다.
 “꺼······ 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장삼이 찌른 쇳조각이 폐를 찌른 것이다.
 폐를 찔리면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고, 상당히 많은 양의 피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호백.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끄······ 끄으······.”
 부인 강 씨의 붉어진 두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붙들고 흔들어도 꼼작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에 그녀는 고통도 잊어버렸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대며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일어선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내딛었다.
 지독한 열기로 집 전체를 잡아먹는 화마 속에 굳게 닫힌 문.
 “처어······아······.”
 숨을 쉬기도 힘든 상황에서 부인 강 씨는 쉬지 않고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럴 적마다 극심한 고통이 온 몸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몇 차례나 바닥으로 쓰러지면서도 그녀는 일어나 걸었다.
 방문 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
 방문으로 접근하기도 힘든 불길.
 살을 태우는 불길도, 가쁜 호흡을 더욱더 가로막는 연기도 부인 강 씨의 발길을 붙잡지는 못했다.
 턱!
 방문을 열자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자욱한 연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방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소천.
 “끄아······아······.”
 화르륵!
 불이 붙었다.
 부인 강 씨의 머리와 옷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지독한 노린내가 풍겨졌다.
 제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부인 강 씨는 방안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소천을 안아 올렸다. 혹시라도 불에 그을리까봐 이불로 둘둘 마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고작 다섯 살.
 또래보다 조금 더 체격이 크다지만 여전히 가볍기만 한 어린 아이. 평소엔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안아 올릴 수 있던 소천이 지금만큼은 부인 강 씨의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무거웠다.
 휘청휘청 거리면서도 걸음을 내딛는 부인 강 씨였다.
 머리는 물론, 옷도, 살도 잔뜩 타버렸다.
 폐에서 느껴지는 고통, 숨을 쉴 수 없는 고통, 온 몸을 태우는 불의 고통 속에서도 부인 강 씨는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한 발을 내딛으면 옷이 탄다.
 두 발을 내딛으면 살이 탄다.
 그렇게 옷과 살을 전투 태워가며 어렵게 방을 빠져나오고, 대문을 벗어났다.
 털썩!
 한계에 도달한 부인 강 씨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불에 감싸여 품에 안겨 있던 소천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충격으로 격한 기침을 토해냈다.
 “콜록! 콜록! 콜록!”
 소천의 기침 소리를 들은 부인 강 씨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여기저기 보기 흉할 정도로 화상을 입은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처아······아아······.”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싶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기력을 다 짜내 손을 뻗은 그녀는 소천의 얼굴을 쓰다듬지 못하고 그 바로 앞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피가 묻고, 화상을 입은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동이 터오를 때까지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제야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호백의 집으로 뛰어 왔다.
 
 
 제4장 내 동생이니까 어떤 놈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아이야, 이리 오렴.”
 하얀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트린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나 거부감이 들지 않을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야.”
 “아무리 좋게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염소수염의 마른 중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부모가 한 날에 죽었다고 했던가?”
 “끔찍하게도 죽었습니다. 무슨 원한이 있었는지 아비와 어미가 모두 살해를 당하고 집에 불까지 질러 놓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저 아이도 어미가 가까스로 구했기에 살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년인의 말에 노인의 눈가엔 짙은 연민이 스며들었다.
 이어진 중년인의 말은 노인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부모가 죽고 안휘성 회원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습니다만, 그곳에서 모진 학대를 받은 모양입니다.”
 “학대? 저 어린 것을?”
 “인간 말종들이었습니다. 고아원이 없어진 이유도 고아원 여아들을 창기로 팔아먹고, 남아들은 서역의 노예로 팔아먹었던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인면수심도 유분수지. 그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저 녀석도 언제고 노예로 팔렸을 겁니다.”
 “허!”
 가슴 속에서 치미는 분노에 노인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갈 곳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제 이익에 눈멀어 창기와 노예로 팔아먹다니!
 인간이라면 결코 해선 안 될 짓이었다.
 “어린 것이 안 됐지요. 무슨 놈의 팔자가 저 모양인지······.”
 저런 인생은 끝도 좋지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던 중년인은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좋을 것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데, 아이의 눈이 왜 저런가?”
 사고로 저렇게 변한 게 아니냐는 노인의 물음이었다.
 “사고인지, 본래부터 저랬던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에는 지장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좀 섬뜩합니다. 듣기론 전에 있던 곳에서는 귀신 눈깔이라고······.”
 “허허! 그 무슨 말인가!”
 아이가 듣고 있는데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하냐는 노인의 질책에 중년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흠칫!
 자신이 다가가자 몸을 움츠리는 아이의 모습에 노인은 가슴이 울컥거렸다.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으면!’
 얼마 먹지도 못했는지 온 몸은 마른 장작처럼 바짝 말라 있어 보는 노인을 더욱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노인은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몸짓으로 움츠리고 있는 아이.
 “앞으로 널 돌봐주실 분이니 잘 따르거라.”
 중년인은 여전히 툭! 내뱉듯이 말을 했다.
 여전히 거슬리는 말투였다.
 하지만, 벌써 수년째 대하는 노인이었기에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내 이름은 화곡문이란다.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화곡문의 물음에 아이가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보고는 이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천이에요.”
 “소천? 아주 좋은 이름이로구나!”
 노인은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뚝뚝.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소천의 모습에 노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소천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려고 했던 말이 소천의 아픔을 끄집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허허허!”
 땅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는 소천의 모습이 노인의 눈엔 가시처럼 박혀 들었다.
 
 ***
 
 머리가 아팠다.
 어머니의 품을 찾아 몸을 움직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따뜻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품은 없었다.
 화들짝 놀라 소천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았던 사람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딱딱한 인상의 험상궂은 낯선 중년인이었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장영두라는 포쾌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 포쾌는 소천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네 부모는 모두 죽었다.”
 그 간단한 말의 깊은 뜻을 알기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소천의 모습에 장 포쾌는 인상을 찌푸렸고, 그의 손에 이끌려 인근의 고아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 포쾌는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다.
 낯선 이, 낯선 곳.
 소천은 더럭 겁이 났고, 울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찾아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우는 소천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과 포근한 손길이 아니었다.
 신경질적인 음성과 거친 손길이었다.
 소천은 그렇게 처음으로 매를 맞았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첫 날이었다.
 고아원의 생활은 힘들었다.
 누구 하나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이 없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었고, 그때마다 여지없이 매질을 당했다. 그런 날이 여러 날 반복되고 나서야 소천은 더는 소리 내어 울지 않게 되었다.
 눈물만.
 아주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털어내기도 전에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이 소천에게 찾아왔다.
 고아원 어른들과 아이들의 따돌림이 소천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아원 어른들의 욕설,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에 소천은 처음으로 자신의 눈이 다른 이와 크게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번도 다르다 말한 적 없던 사실.
 그때부터 소천은 고개를 숙이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반 년의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을 때에 고아원에 소란이 일어났다.
 소천을 고아원에 내던지듯 맡기고 떠났던 장 포쾌가 다른 무서운 사람들과 함께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천을 때리던 고아원 어른들을 포승줄에 묶어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거대한 마차에 올라탔고, 마차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는 한 번씩 어디선가 멈춰 섰고, 그때마다 고아원 아이들이 하나, 둘 마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한 번 내린 아이들은 다시 마차에 올라탈 수 없었다.
 마차에 탄 아이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소천은 홀로 마차 한쪽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어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소천에게 다가오질 않았다.
 그렇게 마차에 탄 아이들이 대부분 내렸을 때에야 소천도 마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안휘성에서 호남성 형양까지 꼬박 오십 일이 걸렸다.
 그 긴 시간동안 소천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화곡문을 만났다.
 그가 물었다.
 “내 이름은 화곡문이란다.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부드러운 음성.
 머리를 쓰다듬는 조심스러운 손길.
 소천은 용기를 내어 그를 올려다봤지만, 이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눈이 이상하다고 욕설을 들을까봐,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으면 매질을 당할까봐 조그맣게 대답했다.
 “소천이에요.”
 “소천? 아주 좋은 이름이로구나!”
 노인의 칭찬에 소천은 다시 용기를 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원망보다는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없기에 소천은 심장이 마구 아파왔다.
 엉엉 울고 싶지만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뚝뚝.
 입술을 앙다문 소천은 또 다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전부 일곱 놈이군.”
 열다섯 살의 황복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이들을 하나, 하나 훑어봤다.
 그 모습이 꼭 뒷골목의 주먹패와 같았다.
 황복은 형양 고아원의 일인자다.
 그를 따르는 아이들만 수십 명이었기에 고아원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소년이었다.
 정확하게 일곱 명.
 형양 고아원에 새로 들어온 아이들은 일곱 명이었다.
 그 중 소천의 나이가 가장 어렸다.
 “야! 꼬맹이!”
 황복은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천을 불렀다.
 “어쭈?”
 고아원을 운영하는 어른들을 제외하면 자신이야 말로 형양 고아원의 실질적인 지배자라 여기는 황복이었다. 그런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꼬맹이는 결코 가만둘 수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 온 녀석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야 할 때였으니 더욱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눈치가 빠른 아삼은 재빨리 소천의 머리를 내려쳤다.
 탁!
 “아얏!”
 갑작스럽게 얻어맞은 소천은 비명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급히 다시 숙였다. 혹시라도 또 눈이 이상하다고 더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어라? 이 꼬맹이가!”
 아삼이 다시 손을 들었을 때였다.
 “아삼! 옆으로 비켜!”
 황복의 말에 아삼은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형양 고아원에서는 황복의 말만 잘 들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아삼은 그런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고아원 생활을 편하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소천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 황복은 다짜고짜 발로 걷어찼다.
 퍽!
 “아악!”
 뒤로 벌러덩 넘어진 소천은 배를 부여잡으며 데굴데굴 굴렀다. 황복의 발길질은 소천이 어린 꼬마라고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새끼가 날 무시해? 내가 꼬맹이라고 봐줄 것 같으냐?”
 퍽퍽퍽!
 황복의 발길질은 무지막지했다.
 그런 황복의 모습이 익숙한 아이들과 다르게 새로 온 아이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머리를 보호하는 소천이었다.
 매질이라면 전에 있던 고아원에서도 수도 없이 받았다.
 깡마른 다섯 살 소년이 몸을 웅크리며 발길질을 받아내는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황복의 구타가 이어질 때였다.
 “개자식!”
 새로 들어온 아이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황복에게 달려들었다.
 “어어?”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허리를 끌어안고 넘어트리니 제 아무리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황복이라고 하더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엇!”
 “대장!”
 모든 아이들이 놀라는 사이 황복을 넘어트린 소년은 그의 몸 위로 올라타서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주먹이었지만 꽤나 단단했던지 황복의 얼굴에서는 금세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 년 동안 고아원을 주름잡으며 살아온 황복이다.
 “이 새끼가!”
 온 몸을 흔들어 자신의 위에 올라탄 소년을 떨어트린 황복이 벌떡 일어났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고통보다는 많은 아이들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했다는 점이 그를 더욱더 화나게 만들었다.
 “이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황복은 성난 소처럼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소년 역시도 주먹을 꽉 진 상태로 황복에게 달려들었다.
 황복과 소년의 싸움은 예상외로 치열했다.
 적어도 두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황복이었지만 소년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조금 작다는 것만 제외하면 소년은 꽤나 근성이 있었다.
 바닥을 나뒹굴며 서로 주먹을 주고받던 황복과 소년은 소란스러움에 달려 나온 한 여인의 외침에 싸움을 멈춰야만 했다.
 “이놈들! 뭣들 하는 짓이야!”
 여인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새로 온 아이들에게 황복이 힘자랑을 했으리라.
 황복의 행동이 과하다는 걸 알지만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일이었기에 여인은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너희 모두 오늘 저녁은 없어! 또 한 번만 싸웠다가는 내일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 저녁도 없을 줄 알아!”
 이 정도면 황복도 더 이상은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여인은 그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퉤! 너 이 새끼 두고 봐.”
 황복은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소년을 노려봤다.
 소년도 지지 않았다.
 “너 같은 개자식에게는 절대 안 져!”
 그렇게 말을 한 소년은 코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스윽 닦고는 웅크리고 있던 소천에게 다가갔다.
 “야, 괜찮아?”
 여전히 웅크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 소천.
 “야, 괜찮으냐고?”
 소년이 몸을 흔들자 소천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헉!”
 소천의 눈동자를 마주한 소년은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서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소천은 잠시 소년을 응시하다 다시 고개를 웅크렸다.
 “킥킥킥! 병신 새끼.”
 황복의 비웃음에 소년은 그를 쏘아보고는 웅크리고 있던 소천을 억지로라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덜덜덜덜······.
 손에서 소천의 떨림이 느껴졌다.
 “쳇!”
 소년은 개의치 않고 억지로 소천을 일으켰다.
 키는 또래보다 큰 편이지만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린 소천의 모습이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잊지 못하는 기억이 소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소년은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천의 모습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제법 단호한 음성으로 선포하듯이 말했다.
 “얘는 내 동생이니까 어떤 놈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건드리는 놈은 절대로 내가 가만두지 않아!”
 “병신들! 지랄하고 있네.”
 소년의 외침에 황복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남은 몇 몇 아이들은 소년의 눈치를 살피다 쭈뼛쭈뼛 몸을 돌렸다.
 결국, 소천과 소년만이 남았다.
 “영춘! 내 이름이다. 앞으로 형님이라 불러.”
 소천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넌 이름이 뭐야?”
 영춘의 물음에 한참 만에 소천이 작게 입을 열었다.
 “소천.”
 “소천? 소천, 앞으로는 날 영춘 형님이라고 불러. 자, 불러봐.”
 영춘의 말에 소천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씽긋!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영춘의 모습에 소천은 그를 빤히 바라봤다.
 “뭐해? 어서 불러봐.”
 소천은 눈을 깜빡거리다 조그맣게 말했다.
 “영춘 형님.”
 “푸하하하!”
 영춘은 배를 잡고 웃었다.
 “너 정말 귀엽다! 앞으로 날 그렇게 불러. 그리고 아무도 널 때리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
 영춘의 말에 소천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조그마한 놈이 엄청 묵묵하네! 큭!”
 이어서 영춘은 소천의 옷에 묻은 흙을 직접 손으로 탈탈 털어주었다.
 “콜록! 콜록! 아무래도 빨아야겠다.”
 먼지를 잔뜩 먹은 영춘은 기침을 하며 그렇게 말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소천의 입가엔 아주 작은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
 
 “아부지! 제가 잘못 했어요!”
 “호로 새끼들!”
 술이 잔뜩 취한 남자는 소년과 아이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열 살이나 됐을 법한 소년은 술에 취한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쉬지 않고 잘못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기에 바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남자의 구타는 한참이 지나서야 끝났다.
 “헉헉! 내일부터 구걸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와! 이 새끼들아!”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방바닥에 벌러덩 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영삼아, 괜찮아?”
 아버지의 모진 구타는 소년이 몸으로 대부분 받아냈다.
 입술이 터지고, 볼이며 등이며 붉게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소년은 아픈 기색 한 번 내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 동생이 걱정될 뿐이었다.
 덜덜덜덜덜······.
 이제 다섯 살.
 소년과는 다르게 깡마르고 키도 작은 영삼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괜찮아. 괜찮아. 형아가 옆에 있잖아.”
 소년은 영삼을 꼭 안아주었다.
 영삼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떨기만 했다.
 
 “쳇!”
 영춘은 잊고 싶은 기억을 고스란히 꿈으로 꾸고야 말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동생이 태어나자 도망간 어머니.
 폭력에 시달려 말을 잃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동생.
 동생이 죽은 후에도 술만 퍼마시다 끝내는 파락호들과 시비가 붙어 얻어맞아 비참하게 죽어버린 아버지였다. 그 이후 혼자가 된 영춘은 거리에서 구걸을 하다 운이 좋아 고아원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튼튼하고 체구가 큰 영춘이었기에 녹록치 않은 고아원 생활에서도 잘 버틸 수 있었다. 많아야 일곱 살 많은 소년들에게서 행해지는 구타는 성인 어른이었던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주먹질, 발길질보다 허약했다.
 매일 같이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했던 거리 생활에 비하면 고아원 생활은 천국이었다. 그래서 영춘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어도 소란을 일으켜 쫓겨나지 않으려고 묵묵히 참았다.
 그렇게 이 년을 지내던 고아원이 재정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쇄 되면서 고아원 아이들은 뿔뿔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영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흘러흘러 들어온 곳이 형양 고아원이었다.
 세상살이는 어디든 같았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주먹으로 힘을 길러 세력을 형성하는 이들이 있다. 길거리의 거지들도 그러했고, 심지어 고아원의 아이들도 그러했다.
 형양 고아원의 대장은 황복이었다.
 자신보다 세 살이 위인 황복은 보기에도 다른 또래에 비해 강해보였다. 선천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뼈가 튼튼하고 힘이 센 이들이 있는데 황복이 그런 행운을 누린 것이다.
 보통 열일곱에서 열여덟이 되면 고아원을 나가야 했기에 영춘은 짧게는 이 년에서 길게는 삼 년만 참고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황복이 아무리 자신을 괴롭혀도 묵묵히 참고 견뎌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영춘이었다.
 그런데 황복은 가장 어린 아이를 두들겨 패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깡마른 체구의 아이를 지켜보는 영춘의 눈엔 세상의 고통만 느끼다 죽은 영삼이 모습이 겹쳐졌다.
 참으려고 했던 다짐은 깨끗하게 사라지고야 말았다.
 영춘은 황복에게 대항했다.
 주눅 들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천을 보니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던 영삼이 떠올랐다.
 그래서 모두에게 경고했다.
 “얘는 내 동생이니까 어떤 놈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건드리는 놈은 절대로 내가 가만두지 않아!”
 그날부터 소천은 영춘의 동생이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슬픔을 잔뜩 머금은 음성에 영춘은 옆을 돌아봤다.
 소천이 웅크린 상태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쳇!”
 영춘은 깡마르고 푸석푸석하지만 꽤나 잘 생긴 소천의 옆에 누워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소천이 꿈틀거리며 움직여 영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머니······.”
 영춘은 소천의 행동에 당황하다 이내 피식 웃고는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영춘의 품에 안긴 소천의 입가엔 여덟 달 만에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영삼아······.”
 소천을 안은 영춘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5장 소천의 잿빛 눈동자
 
 
 “아버지가 약초꾼이셨다고?”
 영춘의 물음에 소천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초는 질리도록 먹었겠는데?”
 “어머니가 주셔서······.”
 “자식! 호강했네!”
 영춘은 부럽다는 듯 소천의 머리를 마구 엉클었다.
 ‘영삼이는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었는데.’
 죽은 영삼이를 생각하던 영춘은 이내 죽은 동생의 생각을 털어냈다.
 이미 죽어버린 동생을 생각해봐야 기분만 우울해질 뿐이었기에 이왕이면 안 좋은 기억들은 떠올리지 말자 다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어떤 약초들을 먹었는데?”
 영춘의 물음에 소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마도 좋았던 때를 떠올렸으리라.
 “꿀에 절여 놓은 인삼은 매일 먹었고요, 이삼 일에 한 번씩 하수오도 먹었어요. 어쩔 때는 산에서 아버지랑 약초를 캐다가 발견한 영지를 먹기도 했어요.”
 행복감에 빠져 말을 늘어놓는 소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런 소천을 바라보는 영춘의 입가에도 미소가 생겨났다.
 항상 주눅 들어 있는 소천이었기에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것들을 먹었는데 몸이 왜 이렇게 말랐어? 너 밥은 잘 안 먹었구나?”
 영춘의 장난스런 핀잔에 밝아졌던 소천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없고부터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아아······.”
 소천과 같은 아이들에게 고아원 생활은 힘들었으리라.
 영춘 자신도 고아원 생활을 해봐서 알고 있다. 소천처럼 주눅 들어 있는데다가 눈동자마저 평범하지 않으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영춘은 장난으로 했던 말이 소천의 아픔을 건드려서 미안 했다.
 어떻게 소천의 마음을 돌려야 하나를 고민하던 영춘은 뭔가를 떠올렸다.
 “참! 이거 먹어.”
 영춘은 소천의 기분을 돌리기 위해 아침에 숨겨 놓았던 육포를 꺼냈다.
 원래는 잘 때 먹으려고 했던 비상식이었지만 지금은 소천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꿀꺽!”
 소천은 육포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지 않았다.
 예전 고아원에서 먹을 것을 밝힌다고 몇 차례나 얻어맞았던 기억이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장 생각난 사람은 어머니였다.
 “자, 먹으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소천이었다.
 영춘은 싫은가 싶었다가 곁눈질로 육포를 힐끔거리는 소천의 모습에 대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 먹으면 나한테 맞는다?”
 짐짓 화난 투로 말하니 소천이 움찔해서 영춘을 바라봤다.
 “먹어. 너 주려고 내가 가지고 있던 거야. 자.”
 코앞으로 내밀자 육포의 짭짤한 냄새가 소천을 유혹했다.
 먹어도 될까?
 수없이 고민하는 소천의 입속으로 영춘은 육포를 밀어 넣어버렸다.
 “이 형님이 주는 건 괜찮으니까 사양하지 말고 다 먹어.”
 얼떨결에 육포를 입에 물게 된 소천은 영춘을 빤히 바라봤다.
 “자식! 영춘 형님이라고 해봐.”
 소천은 두어 차례 눈을 깜빡거리다 말했다.
 “영춘 형님.”
 “큭큭큭!”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영춘 형님’하는 모습이라니!
 영춘은 소천이 너무 귀여웠다.
 거기에 곱상한 외모까지 지니고 있으니 돌봐줄 동생으로는 제격이었다. 보기에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고 하듯이, 지켜줄 동생이 이왕이면 예쁘고 귀여워서 나쁠 것 없다 생각하는 영춘이었다.
 질겅질겅.
 육포를 맛있게 씹어 먹는 소천의 모습에 영춘은 입맛을 다셨다.
 “쩝······.”
 소천에게는 듬직한 형님이 되고 싶지만 아직까지 그 역시도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또, 영춘이 역시도 식욕이 왕성해 고아원에서 나오는 음식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 전에 배고프면 먹으려고 아껴 두었던 거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천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소천이 육포를 다 먹는 그 순간까지도 영춘의 시선은 소천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
 
 소천은 제법 편하게 고아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곁에서 듬직하게 지켜주는 영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춘이 한 번씩 황복과 싸울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불안해서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혹시라도 영춘이 황복에게 진다면?
 그 패배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소천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영춘이 노골적으로 소천을 돌보며 생각지도 못했던 편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많은 아이들의 시샘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영춘은 쉽사리 황복에게 지는 일이 없었다.
 신체 능력이나 싸움 실력으로는 황복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영춘이었다.
 하지만, 영춘에게는 황복에게 없는 것들이 있었다.
 오기와 근성이었다.
 또, 소천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큰 힘이었다.
 황복은 매번 영춘을 굴복시키지 못해 체면이 이만저만 손상된 게 아니었다.
 이 년 전, 고아원의 대장이었던 상달이 떠나고부터는 새로운 대장으로 군림해왔던 황복이다.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고아원 내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은 황복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영춘을 똑바로 굴복시키지 못하니 아이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이 영춘에게 잘 보이려고까지 하는 행동을 목격한 이후부터는 아침부터 잠을 잘 때까지, 아니 심지어는 꿈에서조차 영춘을 발아래 굴복시키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자식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오늘도 어떻게 하면 영춘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황복.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린놈이 힘은 장사다.
 거기에 제법 뼈도 튼튼해서 자신의 주먹질을 잘 견딘다.
 무엇보다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눈에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데 그때만큼은 황복도 긴장감으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였다.
 도저히 지금 상태로는 혼자서 영춘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춘에게 질 일도 없는 황복이었다.
 오죽했으면 영춘이 무엇을 하든 그냥 무시해버릴까도 생각해봤던 황복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암묵적으로 자신이 영춘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체면과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무엇보다 영춘에게로 아이들이 붙어버린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그냥 한꺼번에 몰매를 놀까?”
 이 역시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다고 영춘이 굴복할까?
 직접 영춘의 독기를 확인한 황복의 생각으로는 절대 아니었다. 아마도 그 보복을 한답시고 언제 어디서 자신에게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일이 커지는 날에는 고아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일!
 누가 뭐라 하더라도 황복의 목표는 열여덟이 되는 날까지는 어떻게든 고아원에서 왕처럼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이번에는 영춘이 아닌 다른 이를 목표로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것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귀신 눈깔 새끼를 화 할아범이 너무 감싸고 있단 말이야.”
 이게 문제였다.
 원장 화곡문은 한 번씩 소천을 챙겼다.
 물론, 화곡문은 소천 이외의 아이들에게도 모두 정성을 쏟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다. 황복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화곡문만큼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으니 그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힘으로 굴복시킬 수도 없고, 소천을 이용하기도 힘들다.
 “에이씨······.”
 괜한 짜증만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이나 고민하던 황복이 손벽을 쳤다.
 짝!
 “그렇지! 녀석이 여기서 쫓겨나게 만들면 되겠어!”
 괜한 힘을 쓸 필요도 없다.
 한 번 고아원에서 쫓겨나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에 영춘이 쫓겨나는 순간 모든 일은 깨끗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영춘만 없다면 황복이 고아원에서 절대적인 대장으로 생활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녀석을 쫓겨나게 할 수 있지?”
 또 다시 어려운 문제가 황복을 괴롭혔다.
 
 ***
 
 “알겠지? 내가 시키는 대로만 잘 하면 되는 거야.”
 황복의 말에 열네 살 춘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봐.”
 어디론가 빠르게 내달리는 춘곡의 손에는 찢어진 옷 조각이 꽉 쥐어져 있었다.
 멀어지는 춘곡을 바라보며 황복은 입가 가득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면 네놈도 끝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즐거워지는 황복이었다.
 
 다음날.
 점심 무렵이 지났을 때였다.
 고아원으로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었지만, 중간에 포쾌들도 두 명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원장 화곡문을 찾았다.
 소천은 혹시라도 마음씨 좋은 원장 할아버지가 포쾌에게 끌려가는 것 아닌가 하고 더럭 겁이 났다.
 원장 할아버지가 포쾌에게 끌려가면 고아원은 없어지고 자신은 또 다시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러운 소천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천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고아원 아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야만 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뜬 포쾌와 무서운 얼굴로 눈을 부라리는 상인들의 모습에 고아원 아이들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흠흠! 어젯밤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저잣거리의 포목점과 장신구점으로 침입해서 점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물건까지 훔쳐서 달아났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 자백을 한다면 선처를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포쾌 중 유독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기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
 포쾌의 말에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런 거야?”
 “어쩌자고 저잣거리까지 가서 도둑질을 한 거야!”
 “이제 큰일 났다!”
 “저잣거리까지 가서 도둑질을 했으니 이제 원장 할아버지라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도대체 누구야?”
 저마다 수군거리는 아이들 중 황복은 슬쩍 춘곡을 바라보고는 이어서 영춘에게로 시선을 돌려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넌 이제 끝났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영춘이었다.
 하지만, 황복은 곧바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며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
 “기회는 무슨 기횝니까! 내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포목점 주인인 장 씨는 포쾌의 말을 끊어버렸다.
 “흠흠! 그래도 어린 아이의 실수일 수도 있는데 기회를 줘야 마땅하지······.”
 “실수는 무슨 실수라는 겁니까? 아예 작정을 하고 일을 벌인 놈이거늘! 이런 놈은 아예 싹을 잘라야 한다고! 자! 이 옷 조각의 주인이 누구냐?”
 포목점 주인 장 씨는 주머니에서 찢어진 옷 조각을 흔들었다.
 원장 화곡문은 저 옷 조각의 주인이 아이들에게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포쾌들과 상인들은 이미 마을을 전부 뒤지고 나서야 여기로 왔다고 했다. 때문에 화곡문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입은 상인들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불러야만 했다.
 덩달아 의심하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기만 한 화곡문이었다.
 “저거 누구 거야?”
 “어디서 본 옷 조각 같기는 한데······.”
 “앗! 나 저거 알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아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영춘이 옷 조각이야!”
 아삼의 외침에 그에게로 모여들었던 시선이 영춘에게로 움직였다.
 영춘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상인의 손에 들려 있는 옷 조각이 자신의 것임을 알아 차렸다.
 ‘아! 어제!’
 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서던 영춘은 급하게 식당을 나오던 황복과 부딪혔었다.
 황복은 손에 부러진 나무 조각을 쥐고 있었고, 그때 ‘찌익’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졌었다.
 ‘황복! 이 개자식!’
 영춘은 모든 일이 황복이 꾸민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황복을 바라보니 입꼬리를 올린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영춘이냐?”
 포쾌와 포목점 주인 장 씨가 영춘에게로 다가왔다.
 영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포목점 주인 장 씨는 손에 들려 있던 옷 조각과 영춘이 입고 있는 옷이 같은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요놈! 네놈이로구나!”
 영춘의 멱살을 움켜쥐는 포목점 주인 장 씨의 행동에 원장 화곡문이 급히 다가왔다.
 “그게 무슨 짓이오! 앞뒤 정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아이를 핍박할 참이오?”
 “흥! 보다시피 증거가 명백하거늘 무슨 정황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여기를 보시면 아실 것 아닙니까?”
 포목점 주인 장 씨가 가리킨 곳은 정확하게 영춘의 옷 조각이 찢어진 곳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찢어진 옷 조각과 그 위치며, 모양이 일치했다.
 “영춘아, 네가 정말로 간밤에 저잣거리로 나갔단 말이냐?”
 화곡문은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본 영춘은 보기 드물게 심지가 굳고 착한 아이였다. 특히, 소천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보살펴주는 모습은 화곡문의 눈에 그렇게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정말로 아닙니다. 전 어제 소천과 함께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영춘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화곡문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네가 그런 짓을 벌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곡문의 말에 영춘은 자신을 믿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상인은 전혀 아니었다.
 “이놈!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냐! 그렇다면 어째서 내 포목점에 네놈 옷 조각이 떨어져 있던 것이냐? 양 씨! 어제 봤던 놈이 이놈이 맞소?”
 저잣거리에서 객잔을 운영하는 양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몸집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어두워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키가 비슷한 것 같소.”
 양 씨는 우연찮게 어젯밤 포목점을 뛰쳐나오던 이를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였다.
 “이래도 발뺌을 할 참이냐!”
 포목점 장 씨는 거짓말까지 하는 영춘이 더욱더 괘씸했다.
 “이런 놈은 죄를 뉘우칠 때까지 곤장을 쳐야 해!”
 장신구점 주인인 황 씨는 당장이라도 영춘의 볼을 후려칠 기세로 손을 들었다 놨다는 반복했다. 포목점 장 씨야 도둑맞은 물건이 많지 않았지만, 장신구점 황 씨는 여러 가지를 도둑맞았기에 그 화가 더욱 컸다.
 영춘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정말로 전 아니에요! 전 어제 일찍 잠을 잤단 말이에요! 소천아, 말 좀 해줘!”
 갑작스런 상황에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며 자연스럽게 주눅이 든 소천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혹시라도 자신까지 도둑으로 몰려 매를 맞을까 하는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춘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천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여, 영춘 형님은······ 어, 어제 저랑 일찍 잠을 잤어요. 영, 영춘 형님은 도, 도둑질을 하지 않았어요. 저, 정말이에요.”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면서도 소천은 혹시라도 상인들이나 포쾌들이 자신을 때리지 않을까 연신 그들의 손과 발을 살펴봤다.
 “이놈은 또 뭐야?”
 “네놈도 한패지?”
 상인들은 어린 소천의 말을 들어줄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한 상인들의 반응에 소천은 더욱더 주눅이 들었다.
 근래 조금씩 밝아지는 소천이었는데 상인들이 호통치며 소천을 나무라자 화곡문이 재빨리 나섰다.
 “죄도 없는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이오!”
 화곡문의 말에 상인들은 헛기침을 하며 소천에게 향했던 관심을 영춘에게로 돌렸다.
 “이놈! 관아에 가서도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포목점 장 씨가 앞장서서 영춘의 멱살을 잡고 관청으로 가려고 했다.
 “정말로 전 아니에요! 전 정말로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전부다 황복 저 개자식이 꾸민 일이란 말이에요!”
 “황복?”
 “황복이라니? 그게 누구냐?”
 영춘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포목점 장 씨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영춘! 무슨 헛소리야! 네놈이 도둑질을 해놓고 왜 나를 들먹이는 거야?”
 황복은 황당하다는 듯 맞받아쳤다.
 “어제 네놈이 일부러 나랑 부딪혀서 옷을 찢어 가져갔잖아!”
 영춘의 말에 황복은 여전히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언제 네 옷을 찢었다는 거야? 증거 있어? 증인이라도 있어? 생사람 잡지 마!”
 사람들은 황복의 말을 진실로 받아 들였다.
 “이놈 아주 악질이로군!”
 선처를 생각하던 포쾌들 마저도 영춘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천은 영춘의 말에 황복을 바라봤다.
 황복은 입꼬리를 올린 얼굴로 영춘을 바라보다 이내 누군가를 바라보며 실실댔다. 아주 순간적인 행동이었지만, 소천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소천의 잿빛 눈동자가 황복의 시선을 좇았다.
 춘곡이었다.
 춘곡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뭔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소천이 춘곡을 가만히 바라볼 때였다.
 춘곡의 오른쪽 주머니가 불룩했는데 주머니 입구 사이로 붉고 가느다란 실들이 아주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소천의 눈엔 확실하게 보였다.
 무엇일까?
 소천은 두 눈에 힘을 줘서 춘곡의 바지 주머니를 바라봤다.
 번쩍.
 소천의 잿빛 눈동자가 기이한 빛을 뿜어냈다. 아무리 눈썰미 좋은 이가 자세히 살펴본다 하더라도 쉽게 발견하기 힘든 그런 빛이었다.
 순간 소천은 기이한 느낌에 휩싸였다.
 색이 바란 푸른색의 바지 천이 점점 얇아진다.
 투명하게까지 보이는 바지 천안엔 푸른 옥으로 만든 손바닥보다 작은 장신구가 들어가 있었다.
 “아······.”
 머리가 아파왔다.
 소천은 작게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천아?”
 화곡문은 갑작스럽게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는 소천을 부축했다.
 “영춘 형님은 도둑질 안 했어요.”
 소천의 말에 화곡문은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증거까지 나온 마당에 화곡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말이에요. 영춘 형님은 도둑질 안 했어요. 도둑질은 다른 사람이 했어요.”
 “다른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화곡문의 물음에 소천은 잠시 망설이다 울며불며 발악하며 억울해하는 영춘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조그맣게 속삭였다.
 “춘곡 형님이요.”
 “춘곡이?”
 화곡문은 소천이 왜 엉뚱한 춘곡이를 끌어들이나 싶었다.
 ‘이 아이가 영춘과의 정이 깊더니······.’
 어린 마음에 영춘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화곡문이었다.
 소천은 화곡문의 눈을 바라보며 또 기이한 느낌에 휩싸였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화곡문의 눈을 통해서 느껴졌다.
 “원장 할아버지, 정말로 영춘 형님은 도둑질 하지 않았어요. 춘곡 형님 바지에 장신구가 있어요.”
 “장신구?”
 화곡문은 소천을 바라보다 이내 확인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춘곡에게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영춘은 범인이 아니라며 소리소리 내지르고 있었다.
 “춘곡아.”
 “네, 네?”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크게 당황하게 놀라는 춘곡의 모습이 화곡문은 이상하다 여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천의 말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주머니가 불룩하구나.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겠느냐?”
 “예? 아, 아니 이건 그냥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보여 보거라.”
 “아, 아니 그러니까 이, 이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춘곡의 모습에 화곡문은 더욱더 의심이 들었다.
 결국, 화곡문이 직접 춘곡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제법 값비싸 보이는 옥 장신구였다.
 “이걸 어디서 났느냐?”
 “저, 저는 그냥······ 주, 주웠어요.”
 “주웠다고? 어디서, 언제 주었느냐? 거짓말을 할 시엔 내가 널 더 이상 돌봐주지 못할 것 같구나.”
 화곡문이 돌봐주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 고아원에서 내치겠다는 말이었다. 춘곡에게 있어서 고아원에서 버려지는 건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자, 잘못했어요! 전 그냥 황복 대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엉엉!”
 무릎을 꿇고 손을 비는 춘곡이었다.
 “시키다니? 뭘 시켰더냐?”
 “저더러 밤에 저잣거리의 빈 점포에 들어가서 물건을 어지르고 몇 가지를 훔친 다음에 영춘의 옷 조각을 떨어트려 놓으라고 했어요. 엉엉!”
 춘곡의 자백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황복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춘곡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래, 그랬구나. 후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안타깝기만 한 화곡문이었다.
 춘곡의 자백으로 인해 영춘은 도둑놈이라는 누명을 벗어낼 수 있었다. 그를 대신 춘곡과 그를 지시한 황복은 포쾌들의 손에 이끌려 관청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한 차례 소란이 정리되자 화곡문은 소천에게 물었다.
 “춘곡의 주머니에 장신구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화곡문의 물음에 소천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보였어요.”
 “그냥 보여?”
 “예. 그냥 눈에 힘을 주니까······ 보였어요.”
 소천의 말에 화곡문은 이걸 믿어야 하나, 믿지 말아야 하나를 갈등해야만 했다.
 곁에 있던 영춘은 소천이 절대 거짓말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말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였다.
 ‘소천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렇다면 정말로 보였다는 건데······ 어떻게 주머니 속에 있는 장신구가 보였지?’
 그러고 보니 소천은 아버지와 함께 산을 타며 많은 약초들을 발견했다고 했다.
 ‘정말로 소천의 눈이 특이한 건가?’
 영춘은 소천의 잿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제6장 아이, 소년이 되어버리다
 
 
 뜨거운 태양이 열정적으로 대지를 달구는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나는 땡볕 아래 한 소년이 웅크리고 앉아 부지런히 걸어가는 지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여든아홉 쌍의 다리를 지녔구나.”
 여든아홉 쌍의 다리?
 설마 소년의 눈엔 바삐 걸어가는 지네의 다리 개수가 보인단 말인가?
 가만히 서 있어도 일일이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빽빽한 지네다. 그런 지네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그 다리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다니!
 “거기서 뭐하는 거야?”
 키가 크고 몸이 다부져 청년이라 하기에 부족함 없는 남아가 소년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소년의 시선이 지네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또, 지네 다리 수를 헤아렸냐? 그래, 그 녀석은 다리가 몇 개야?”
 그의 물음에 소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든아홉 쌍이에요. 그런데 오른쪽 마흔두 번째 다리가 잘려나가서 총 개수는 일백칠십칠 개요.”
 그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인간의 시력으로 움직이는 지네의 다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소년만은 보통의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참, 제가 했던 말 기억해요?”
 “뭐?”
 “지네의 몸 마지막에 있는 한 쌍의 다리요.”
 “가장 길다는 그 다리?”
 “예.”
 “물론 기억하지.”
 그는 물론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소년은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사람처럼 자신을 찾아와 떠들었었다.
 그 내용이란, 지네의 마지막 몸통에 붙어 있는 한 쌍의 다리는 다른 다리들에 비해 그 길이가 길고, 걸을 때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흥미로운 사실도,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소년에게는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기만 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눈으로 보고 파악한 소년이 더욱더 신기하고 대단한 그였다.
 “그것보다 내일 저잣거리에 놀이패가 오는 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얼마나 기대된다고요!”
 몸을 일으킨 소년은 팔짝팔짝 뛰며 좋아할 기세였다.
 “녀석.”
 밝게 웃으며 좋아하는 소년의 머리를 부비며 그가 말했다.
 “형님은 내일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따가 저녁에 식당에서 보자.”
 “예.”
 그는 몸을 돌려 한달음에 달려가다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참! 나 없다고 운동 거르면 안 되는 거 알지? 이따가 밤에 다 확인해 볼 테니까 꾀부리면 안 된다, 소천!”
 “꾀 안 부려요!”
 “그래, 그럼 이따 보자!”
 빠르게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년, 소천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내가 언제 꾀를 부렸다고······ 영춘 형님도 참!”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소천과 영춘이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한 소년과 한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강단 있던 열두 살의 소년은 건장하고 듬직한 열여덟 살의 소년이 되었다. 키도 크고, 몸도 다부져서 꽤나 늠름하게 자란 영춘은 갓 약관의 청년이라 하더라도 충분할 정도였다.
 형양 고아원으로 왔을 때만 하더라도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다섯 살의 아이는 예전의 밝던 모습을 완벽하게 찾은 열한 살의 미소년이 되었다. 깡말랐던 소천은 호리호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뼈가 굵고 튼튼해서 제 또래의 누구보다 체력과 힘이 셌다.
 영춘과 소천은 6년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친형제처럼 지냈다.
 영춘은 소천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소천은 영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군소리 없이 따르는 우애 좋은 형제였다.
 “삼백아흔하나, 삼백아흔둘, 삼백아흔셋······.”
 팔굽혀펴기를 하는 소천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천은 팔굽혀펴기를 쉬지 않았다.
 하루 일천 개의 팔굽혀펴기.
 이는 영춘과의 약속이었다.
 영춘은 6년 전부터 소천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 개도 못했던 소천이었지만, 이제는 하루에 일천 개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붙은 상태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소천은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오르기, 윗몸일으키기 등의 기초 체력 훈련을 열한 살 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해내고 있었다.
 처음만 하더라도 소천은 힘들어 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영춘은 살살 구슬리고, 달래고, 때론 화를 내면서까지 운동을 시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눅 들어 있는 소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운동만으로는 소천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영춘은 그 외에도 많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소천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선천적으로 밝은 소천이었기에 빠르게 변화했다.
 이제는 제 또래들과도 잘 어울리고 때론 앞장서며 이끌기도 하는 소천이었다.
 “후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은 소천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운동과 휴식은 항상 일정해야 한다는 영춘의 말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며 호흡을 정상으로 가다듬은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이후, 소천이 한 일은 커다란 나무로 다가가 긴 장대를 이용해서 나뭇가지를 치는 일이었다.
 타악!
 후두두두둑!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일정한 규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서로 엉키면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소천은 뚫어져라 바라봤다.
 “백오십사!”
 소천은 떨어지는 나뭇잎의 수를 정확하게 헤아린 것이다.
 빨리 떨어지거나, 늦게 떨어지는 나뭇잎도 있고, 서로 뒤죽박죽 뒤엉키는 나뭇잎들도 수십 개나 있음에도 소천은 그 모든 것들을 빠르게 파악하며 수를 헤아렸다.
 정상적인 인간의 시력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소천의 기행은 계속 되었다.
 잘게 부서지는 돌조각을 힘껏 던져 몇 조각으로 부서지는 지를 파악한다거나, 고아원 곳곳에 새겨진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발자국 주인의 키, 몸무게 등을 파악해 누가 주인인지를 맞춘다거나, 고아원 곳곳에 낙인처럼 찍혀있는 손의 지문들을 파악하기까지.
 소천은 불가능한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건 춘복의 발자국이네. 그리고 이건 양호의 발자국이고.”
 신기했다.
 사람의 얼굴, 키, 체형, 몸무게 등이 다 다르듯이 그 사람이 남기는 발자국 역시도 모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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