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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티처 1

2017.11.06 조회 352 추천 1


 더 티처 1권
 서장
 
 
 “평행우주론?”
 세온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땀 냄새를 풀풀 풍기는 권혁이 세온의 손에 들려 있던 과학 잡지를 뺏어 들었다.
 “이젠 우주에도 관심을 갖는 거야?”
 권혁은 과학 잡지의 글보다는 그림을 슬쩍 훑어보며 그렇게 물었다.
 세온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어제 TV를 돌리다 영화를 봤는데 좀 관심이 가서 읽고 있는 중이었지.”
 “영화? 무슨 영화?”
 과학 잡지의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그림만 보며 권혁이 다시 물었다.
 “데자뷰라는 영화인데 꽤 재밌더라고.”
 “데자뷰? 꿈에서 봤던 장면들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건가?”
 “대충 맞어.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는데 불어로 말을 했을 때 데자뷰라고 하지. 한글로 번역하면 대충······ 미리 본? 이미 보았던 것? 뭐, 대충 그래.”
 세온의 설명에 권혁은 과학 잡지를 책상에 던지며 고개를 저었다.
 “전교 일등은 꼭 그렇게 티를 내는 거냐? 하여간, 뭘 하나 물어보면 별걸 다 설명한다니까.”
 권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세온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냥 알고 있는 걸 말하는 것뿐이야. 어쨌든 혁이 너도 한 번 들어봐. 내가 데자뷰를 봤는데 말이야······.”
 세온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권혁으로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하지 말라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건성으로 들어주었다.
 “어때? 흥미롭지? 내가 생각했을 때, 데자뷰는 다중우주론(多重宇宙論), 그러니까 평행우주론을 기반으로 만들어 진 영화 같거든. 생각해보면 멋지지 않아? 여러 개의 우주가 존재하고, 나와 똑같은 존재가 다른 우주 속의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신기하고도 흥분되는 일 같아. 그리고 정말로 평행우주론이 존재한다면 시간 여행도 결코 헛된 꿈이 아니라는 거지!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여행하는······.”
 격앙된 음성으로 말을 하는 세온을 바라보는 권혁은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중우주론이니, 평행우주론이니 데자뷰니 하는 것들은 권혁에게 조금도 흥미롭지도, 흥분되지도 않았다. 자고로 고등학생인 자신들에게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라면 오직 여자에 관한 일라던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일뿐이라 여겼다.
 ‘진짜 이 녀석은 별종이야. 하긴, 전교 일등은 아무나 하겠어.’
 권혁은 피식 웃고는 앞자리에서 키득대며 웃고 있는 명철이의 등을 후려쳤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명철이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얌마! 아프잖아!”
 “넌 또 뭘 보는데 그렇게 혼자 웃는 거야?”
 “나? 더 스토리라는 무협소설. 현대 시대의 백수가 무림으로 차원이동을 해서 벌어지는······.”
 “또 무협지냐? 넌 그게 재밌냐? 말도 안 되는 그런 소설이 재밌다고 보는 거야?”
 권혁은 한심하다는 듯 명철을 쳐다봤다.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매일 같이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만 읽고 있는 명철이었다.
 “얌마! 무협 소설이 어때서? 무한한 꿈과 희망을 준다고!”
 “꿈과 희망? 무협 소설이 무슨 꿈과 희망을 주는데?”
 따지듯 물어오자 명철이 순간 당황했다.
 “음······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나 할까? 무협 소설을 보면 진정한 정의가 살아있구나! 뭐, 이런 걸 느끼지!”
 “정의?”
 권혁은 참 대단하다는 듯 명철을 바라봤다.
 “너 진짜 대학 안 갈 거냐?”
 권혁의 물음에 명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여행을 떠날 거야. 넓은 중국 대륙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거지! 그리고 그 경험을 밑바탕으로 글을 써서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가 될 거야!”
 두고 보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하는 명철의 모습에 권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철의 꿈은 허황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풀릴지는 알 수 없다지만, 적어도 명철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라는 건 정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너 언어영역 몇 점 받았냐?”
 권혁의 물음에 명철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다른 건 몰라도 작가면 최소한 기본적으로 한글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너 저번에 보니까 맞춤법도 엉망이던데? 그래서 작가가 되겠냐? 그리고 너 발표하면 말도 제대로 못해서 횡설수설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는 너하고 너무 안 어울려!”
 “얌마! 맞춤법 같은 건 편집자가 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작가라고 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뭘 알고 말해!”
 “어이구! 그러셔?”
 혀를 차는 권혁의 모습에 명철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세온에게 말했다.
 “세온아! 너도 작가가 되려면 언어영역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 하냐?”
 “글쎄······ 꼭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유리할 순 있겠지.”
 세온의 대답에 명철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권혁에게 소리쳤다.
 “봐봐!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잖아!”
 권혁은 여전히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권혁의 모습에 명철은 눈을 부라리다 책상을 ‘쾅’ 내려치며 말했다.
 “야! 그럼 우리 내기할까?”
 “내기? 무슨 내기?”
 “앞으로 십년 후, 아니 우리 나이가 서른이 되었을 때, 각자 원하던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작가! 세온이는 과학자! 너는 선생님! 어때? 쫄리면 뒈지시던지!”
 명철의 말에 권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세온을 바라봤다. 그런데 세온은 제법 재밌을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결국, 권혁은 명철의 제안대로 내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이가 서른이 되었을 때다!”
 “그런데 내기는 뭘로 하는데?”
 세온의 물음에 명철은 한동안 고민을 해야만 했다.
 
 
 제1장 그 날 새벽
 
 
 “저기 저 새끼 보이지?”
 2학년 선배는 반쯤 풀린 눈동자로 여자 신입생들 사이에 끼어 있는 4학년 선배를 가리켰다.
 권혁으로서는 2학년 선배가 4학년 선배를 ‘저 새끼’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런 권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학년 선배는 여전히 술에 취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 새끼 완전 개새끼니까 앞으로 조심해라. 저 씨발놈 완전 개막장 똘아이 새끼니까 웬만하면 마주칠 생각도 하지 마. 그리고 혹시라도 마주쳐서 뭘 시키거든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하라는 대로 해. 그게 신상에 좋으니까.”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한 말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2학년 선배는 큰 곤경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끼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신 역시도 기합이라도 받을까 걱정이 되는 권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강이 세기로 유명한 체육교육학과다. 오리엔테이션을 온 첫날부터 기합을 받으며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확실하게 교육받은 권혁으로서는 2학년이 4학년에게 욕을 하는 걸 들으니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권혁은 4학년 선배를 유심히 바라봤다.
 체육교육학과에 들어왔으니 체격은 확실히 좋았다. 대략 185가 넘는 큰 키에 어깨도 쩍 벌어지고 상체의 근육도 보기 좋게 발달했으니 요즘말로 흔히 짐승남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거기에 얼굴엔 귀티가 흘렀고, 웃을 때마다 만들어지는 눈웃음은 여자들이 딱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전형적인 호남형의 남자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단점은 크게 찾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권혁의 기억에 신입생 기합 때에도 저 선배는 적당하게 하라며 오히려 신입생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했었다.
 “저 새끼가 말이야······.”
 오히려 자신의 옆에서 4학년의 욕을 하고 있는 2학년 선배야 말로 신입생 기합에 선봉장이 되어 온갖 악랄한 짓을 해댔던 사람이었다.
 ‘미치겠네.’
 신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술 취한 선배의 술주정을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한 권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순조로운 대학 생활의 첫 시작이니 싫어도 꾹 참고 견뎌야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꿔왔던 꿈.
 선생님.
 권혁은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다. 그 중에서도 남자라면 누구나가 꿈을 꾸는 체육 선생님! 선생님은 뭐니 뭐니 해도 체육 선생님이 제일이라 여기는 권혁이었다. 다른 과목에 비해 비중이 많이 떨어지고 여러모로 인정을 받기 힘든 건 슬픈 현실이었지만, 권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체력은 곧 국력이라는 흔한 말처럼 체육은 모든 학생, 더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었다. 어려운 수학, 과학, 영어는 모른다 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체육은 다르다.
 행복한 삶은 어디서 나오는가?
 돈? 명예? 이상적인 배우자?
 아니다!
 바로 건강이다.
 건강이 없다면 돈, 명예, 이상적인 배우자 등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을까? 명예로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이상적인 배우자로 건강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건강으로 돈은 벌 수 있고, 명예를 쌓을 수 있으며, 이상적인 배우자를 찾을 순 있다.
 물론, 이 논리를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돈, 명예, 이상적인 배우자 등등 그 무엇도 건강보다 우선일 순 없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실에서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건강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제일인 것이다.
 부모님께서 아무리 다른 과목 선생님이 되라고 권유해도 권혁은 조금도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때문에 공부는 조금 소홀히 하더라도 체력을 열심히 가꿔왔기에 남부럽지 않은 체력과 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명문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체육선생님이 될 수 있는 첫 걸음인 사범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대학 생활의 첫 시작을 알리는 오리엔테이션이다.
 미리 각오는 했었지만, 첫 오리엔테이션부터 선후배 간의 철저한 상하관계를 온 몸으로 배웠고, 지금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무식할 정도로 마셔대는 술자리 속에서도 신입생들은 꿋꿋하게 정신력 하나로 버텨내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 있는 3학년들 중 절반만이 기절을 해버린 상태였고, 2학년은 저희들끼리 신입생들을 물건 보듯 평가하고 있었고, 그 수가 몇 되지도 않는 4학년은 신입생들 사이에 끼어서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야.”
 자신의 어깨를 짚는 2학년 선배를 향해 권혁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예!”
 “내 말 잘 알아들었어?”
 절반이 욕이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찬 말들이었기에 권혁으로서는 귀담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약할 순 있었다.
 4학년 선배가 상종하지 못할 개쓰레기라는 것!
 경험하지 못했기에 수긍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권혁은 후배 된 도리로써 억지로라도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
 권혁의 대답에 2학년 선배는 그럼 됐다는 듯 깊게 숨을 뱉어내며 술기운에 비틀거리다 이내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곧바로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술을 마시던 2학년 선배가 나가 떨어지자 권혁은 혼자가 되었다. 당연히 그런 권혁을 혼자 둘 선배들이 아니었다. 저희들끼리 뭔가 작당이라도 하듯 이야기를 하던 2학년 선배 세 명이 권혁을 불렀다.
 권혁은 재빠르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너 술 세다? 자, 마셔.”
 솔직히 술이 세다기보다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권혁이었다. 만약, 친구들과 이 정도 술을 마셨다면 지금쯤 알딸딸해졌을 것이다.
 소주를 단숨에 마시는 권혁의 모습에 선배들은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자고로 술 잘 마시는 후배만큼 좋은 후배는 없지 않던가?
 “잘 마시네! 한 잔 더 해.”
 “예.”
 권혁은 대충 새우깡을 집어 먹고는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안주도 변변찮아서 술의 쓴맛이 연신 속을 뒤집어 놓고 있었지만 얼굴 표정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선배들은 계속해서 술을 권했고, 권혁은 그것을 넙죽넙죽 받아먹어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이 알딸딸해져가고 있을 때였다. 술잔에 술을 채우던 선배 한 명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기에게 말했다.
 “야, 저 씨발 새끼 나간다.”
 선배의 욕설에 권혁은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는 슬쩍 그가 말하는 ‘씨발 새끼’가 누구인지 바라봤다. 놀랍게도 여자 신입생들 사이에 끼어 있던 4학년 선배였다.
 도대체 왜?
 권혁의 눈에는 크게 나빠 보이지 않는 선배인데 왜 2학년 선배들이 이렇게까지 욕을 하는 걸까?
 궁금해 하는 권혁의 표정을 알아본 2학년 선배가 입을 열었다.
 “왜? 우리가 선배 욕하니까 이상하냐?”
 “그게······.”
 뭐라고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자 2학년 선배들은 괜찮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권혁에게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너도 곧 알게 될 테니까 미리 말해준다. 방금 나간 놈이 4학년 선배인건 알지?”
 “예.”
 “이름은 이상구라고 하는데 완전 개새끼야.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완전 개또라이 새끼야. 저 새끼가 한 짓만 생각하면······.”
 선배들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이상구라는 4학년 선배는 체육교육학과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도 알아주는 인간이었다. 우선 입학부터가 남들과 달랐다. 수시로 입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학교에 들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기부 입학이었던 것이다.
 그 말은 집안이 아주 빵빵하다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2선까지 해먹은 국회의원이었다. 그 외에 가족들 중엔 꽤 끗발 날리는 고위 공직자와 의사, 변호사 등 일가친척들이 줄줄이 사회지도층 인사였던 것이다.
 솔직히 집안이 좋은 건 부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집안을 믿고 제 멋대로 구는 이상구였다. 1학년 때부터 그는 선배들조차 건들 수 없는 인간이었다. 체육교육학과 학생들은 일반 대학생들에겐 인간 병기라 불릴만큼 체력적으로 뛰어난 존재들이었다.
 체육교육학과의 실기시험에 붙기 위해선 고등학교 때부터 혹독한 체력단련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대학의 학과 중 ‘체육’에 관계된 학과는 대다수 신체 능력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선후배 간의 기강이 높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체육교육학과 선배들을 이상구의 집안이 어떻든 간에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확실하게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구가 그걸 거부했고, 결국 몸싸움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상구가 선배들을 때려눕혔다.
 공부는 몰라도 체력적으로는 나무랄 것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어렸을 때부터 각종 격투기를 배웠던 이상구는 전형적인 싸움꾼이었다.
 그렇게 선배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정리해버린 이상구는 1학년 때부터 제 마음대로 학교생활을 즐겼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배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으며, 여자도 심심찮게 건드렸던 것이다.
 “그 새끼 때문에 자퇴한 여학생이 열 명도 넘는다고 했지?”
 “아마 그럴걸? 씨발놈!”
 권혁으로서는 선배들의 말이 사실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인터넷에 떠돌던 일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났다.
 거기다 더 가관인 것은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도 않는 이상구의 성적이 항상 학과내에서 상위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학과 내에서는 교수들마저도 이상구의 집안에 매수가 됐다며 쉬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어느 누구도 이상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권혁은 2학년 선배들이 입을 모아 욕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도 조심해라. 그 미친 새끼 앞에서 조금만 거슬리게 행동하면 인정사정 없이 때리니까. 그래도 너는 일 년만 보면 그만이니까 행복한 거야. 우리가 일학년 때는 진짜 심심하면 집합시켜서 때렸으니까.”
 말을 하며 선배들은 저희끼리 건배를 하고는 술을 들이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이상구에게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비참한 현실이었다.
 경찰? 법?
 그런 건 있는 자들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경찰과 법은 그저 넘을 수 없는 울타리일 뿐이다. 돈과 권력만 쥐고 있다면 법 같은 건 얼마든지 제 입맛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상구는 왜 이번 오티에 따라 온 거야? 그 새끼는 우리학과 여자애들한테는 관심도 없잖아?”
 “그러게? 이상하네?”
 “니들 몰랐냐? 우리랑 같이 오티 온 학과가 영교과잖아.”
 “아······.”
 “아······.”
 권혁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설마’하는 마음을 가졌다.
 설마 이상구가 영어교육학과 여학생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오티를 따라왔을까?
 그런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배들이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교수님들은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느니 하는 말을 쉬지 않고 해주며 술을 먹였기 때문이다.
 
 ***
 
 방을 빠져나오자 머리가 조금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제 두 시간 정도면 해가 떠오를 것 같았다.
 밤새도록 술을 마셔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인 권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간간히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늦은 시간까지는 마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말처럼 대학가면 술만 마신다는 말이 완전 뻥은 아니라는 것이 실감나는 권혁으로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있을 친구 녀석들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후우우!”
 3월이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새벽은 추웠다. 그러나 차가운 새벽공기가 오히려 술을 마신 권혁에게는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조금만 걸어야겠다.”
 어차피 지금 들어가서 잠을 자기엔 늦었다. 어정쩡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보다 차라리 깨어있는 것이 나았다. 그러다보니 걸으려고 했던 마음이 땀을 흘려 술기운을 떨어트리는 것이 났겠다 싶었다.
 서해안 바닷가로 오티를 왔기에 해변을 달리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꽤나 근사하다 싶은 권혁은 곧바로 해변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이었기에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파도소리만이 권혁을 반겨주고 있었다.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던 권혁은 가볍게 몸을 풀고는 해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지가 아니라 발걸음이 훨씬 무겁고 끈적거렸다.
 운동화 속으로 모래도 들어오고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나 싶어 권혁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던 권혁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에 억눌려 흐느끼는 소리였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굉장히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고, 이런 컴컴한 새벽에 무슨 일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러면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에 휩싸여 후회를 할 것 같았기에 권혁은 용기를 내어 소리가 들리는 바위 쪽으로 향했다.
 “좆나 징징거리네! 씨발, 처녀도 아닌 주제에.”
 남자의 음성엔 짜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말에 여자는 더욱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어차피 너도 다 알고 따라왔잖아! 어떤 미친년이 이런 밤에 남자랑 바다만 보러 와? 이 시간에 니 눈엔 바다가 보이긴 하냐?”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돌렸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서 있자 깜짝 놀라며 움찔거렸다. 시커먼 그림자인 권혁 역시도 남자가 자신을 발견하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뭐야? 누구야?”
 남자는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시커먼 그림자를 확인하려고 눈을 좁혔다. 권혁도 본능적으로 눈가를 좁히며 남자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했다.
 “어? 선배님?”
 권혁이 먼저 남자를 알아봤다.
 이상구였다.
 그러나 이상구는 권혁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선배라 불렀기에 그가 자신의 후배라는 걸 알곤 엉거주춤했던 자세를 똑바로 세웠다.
 “너 뭐야?”
 음성엔 기분 나쁘다는 듯한 적대감이 가득했다. 그렇지 않아도 들켜서 별로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기분은 더욱더 나쁠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입니다.”
 “이름!”
 “권혁입니다.”
 “너 여기서 뭐해?”
 “그냥 운동 좀······.”
 “미친 새끼!”
 이상구는 권혁의 말을 그렇게 잘라먹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권혁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대충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방금 왔는데요.”
 짜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혁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내가 니 친구냐!”
 “죄, 죄송합니다.”
 권혁은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선배들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해서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입단속 잘해라. 니가 뭘 보고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있었던 일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주둥아리 함부로 지껄이면 그날로 디질 줄 알아.”
 이상구의 말에 권혁은 순간 욱하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표현할 용기는 차마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상구는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권혁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빡!
 “대답하라고!”
 “······예.”
 권혁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화가 나려고 하면 나타나는 특이한 버릇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상구가 선배라는 것과 2학년 선배들에게 그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들었던 것들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야.”
 그런 권혁의 상태를 모를 이상구가 아니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대답하는 것만 들어도 대충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예?”
 “뭐 불만이냐?”
 “아니요.”
 “불만 있는 목소린데?”
 “아닙니다.”
 “야, 말해봐. 뭐가 불만인데? 내가 때린 거? 어?”
 이상구는 다시 권혁의 머리를 툭 쳤다. 아프다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더러워지는 행동이었다.
 “왜? 기분 나쁘냐?”
 툭툭 머리를 치는 이상구였다.
 권혁은 머리가 계속 뒤로 밀리면서도 꾹 참고 서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주먹질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구는 그만 할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권혁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쳤다.
 “기분 나쁘냐고? 어?”
 “아니요.”
 “기분 나빠 보이는데? 어?”
 “······.”
 “기분 나쁘네. 야, 기분 나쁘지? 어?”
 “아닙니다.”
 계속해서 아니라고 말을 하는 권혁의 모습에 이상구는 더욱더 빈정대며 머리를 쳤다.
 “이게 기분 안 나쁘다고? 나 같으면 좆나 기분 나쁠 거 같은데?”
 “······.”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말해. 기분 나쁘지?”
 이상구의 계속되는 빈정거림과 기분 나쁜 손짓거리에 권혁의 인내심도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기분 나쁩니다.”
 “씨발놈.”
 권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욕을 내뱉은 이상구는 그대로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퍽!
 “기분 나쁘면 니가 어쩔 건데? 어?”
 퍽퍽!
 “니가 기분 나쁘면 어쩔 거냐고!”
 퍽퍽퍽퍽!
 주먹에 발길질까지 하는 이상구의 폭행에 권혁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마주 주먹을 휘두르고야 말았다.
 퍼억!
 갑작스럽게 휘둘러진 주먹에 이상구는 얼굴을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졌던 것보다 빠르게 일어나며 욕을 내뱉었다.
 “이 개새끼가 선배를 쳐? 이 씨발놈 넌 오늘 디졌어!”
 이상구는 조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강한 주먹을 날렸다. 권혁으로서는 난생 처음 맞아보는 강한 주먹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몇 차례 싸움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 맞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돌주먹? 혹은 쇠주먹이라고 할 정도로 단단했다.
 그렇다고 마냥 맞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권혁 역시도 맞대응을 했고,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 주먹을 교환하며 싸움을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제법 그럴싸한 싸움 장면은 아니었다.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를 겨루기라도 하듯 서로 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고, 두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렸다.
 하지만, 이상구가 어렸을 때부터 격투기를 배웠기에 때리는 기술이나 파워는 확실히 권혁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권혁으로서는 그의 허리를 붙잡고 뒤엉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욕설을 내뱉으며 서로 나뒹굴며 주먹을 교환하는 이상구와 권혁의 모습에 어느새 여학생은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싸움을 말리고자 사람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그저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쉬지 않고 한참을 싸우다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파도가 치는 바닷물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니, 이상구가 멈추지 않는 이상 권혁도 멈출 수가 없었다.
 바닷물에 옷이 젖고, 머리카락이 젖고, 몸 전체가 물에 잠겨갔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변하자 그제야 두 사람 모두 잠시 떨어지며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서로를 죽일 듯 바라보는 권혁과 이상구였다.
 “너 이 씨발놈아 넌 이제 학교 생활 좆 됐어!”
 이상구의 협박성 짙은 말에 권혁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좆까고 있네!”
 권혁의 강한 대꾸에 이상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권혁 역시도 질 생각이 없다는 듯 달려들었다. 상대가 격투기를 배웠든 어쨌든 뒤엉켜 서로 죽자고 싸워대면 지치긴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기고 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싸워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수도 없이 맞았다. 싸움이 끝나면 그 통증이 심각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권혁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뒤엉켜서 주먹을 남발했다.
 파도가 점점 두 사람을 바다로 끌어당겼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둘 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영 정도는 둘 다 할 줄 알았기에 큰 공포는 없었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해변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도가 점점 거세지며 두 사람을 바다로 더욱더 빠르게 끌어당겼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을 때에는 해변에서 너무나도 멀어진 상태였다.
 “푸하! 푸하!”
 권혁은 입으로 연신 들어오는 바닷물을 뱉어내며 온 힘을 다해서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자신 있던 수영이었지만 거친 파도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체력적인 한계도 점점 문제가 되었다.
 “사······ 사람 살······ 푸악!”
 이상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권혁보다 뒤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순간 그를 구해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자신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섣부르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권혁은 몸을 돌려 이상구에게로 향했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빠져 죽는 걸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권혁이 이상구의 팔을 잡으려고 할 때였다.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이상구와 권혁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두 사람을 집어 삼킨 파도가 해변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이상구도, 그를 잡으려고 했던 권혁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불빛과 함께 몇 명의 사람들이 해변으로 달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제2장 천극염열지체(天極炎熱之體)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소나무 밑에서 아이에게 물으니
 언사채약거(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을 캐러 갔다하네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
 -이 산 속에 있기는 한데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을 알 길이 없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조각배에 몸을 뉘우고 있는 노인은 노래라도 부르듯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구는 가도(賈島)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라는 시로 그 내용을 짤막하게 설명하면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게 은거생활을 하는 멋을 묘사한 시이다.
 “크헛헛헛!”
 돌연 기괴한 웃음을 터트린 노인은 다시 같은 시를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무엇이 그토록 마음에 드는지는 노인 자신밖에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노래처럼 시를 흥얼거릴 때였다.
 출렁! 출렁!
 뜬금없는 출렁거림에 조각배에 몸을 싣고 있던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잔잔하기만 하던 수면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배가 출렁거릴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출렁! 출렁! 출렁!
 더욱 크게 요동치는 조각배로 인해 노인은 뉘였던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킨 노인은 자신의 흥취(興趣)를 깨버린 이 상황이 영 마땅찮은지 찌푸린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호수 주변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조각배는 여전히 출렁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물속에서 조각배를 의도적으로 흔들어대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노인은 물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과는 다르게 물속엔 어떤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출렁! 출렁!
 조각배의 움직임이 더욱더 거세진다.
 “허!”
 노인의 입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탄성만이 터져 나왔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의 아래쪽 물속에서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혹, 거대한 물고기라도 있는 것일까?
 노인은 배 한 켠에 대충 던져 놓았던 낚싯대를 바라봤다. 낚싯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낚싯대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움찔!
 낚싯대가 움직였다.
 노인은 재빠르게 낚싯대를 움켜잡았다.
 툭!
 낚싯대에 무언가 걸렸다.
 “음!”
 묵직하다!
 팔 전체에 힘이 들어가야 할 만큼 묵직하다!
 노인은 곧바로 낚싯대를 위로 당겼다.
 활처럼 휘어지며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낚싯대의 모습에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낚시가 목적이 아니라곤 하지만 며칠 동안 물고기 한 마리 잡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잡으려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저 던져만 두었던 낚싯대였지만, 막상 묵직한 손맛이 느껴지는 대어(大魚)가 걸렸다 생각 들자 절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혹시라도 낚싯대가 부러질 것을 걱정하며 노인은 힘 조절을 하며 낚싯대에 걸린 대어를 끌어당겼다.
 아래로 점점 내려가려고 하는 대어와 그것을 끌어 올리려는 노인의 대결은 장장 일각 동안이나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노인의 승리로 수면 위로 낚싯대에 걸린 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면 위로 떠오른 대어는 노인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았던 그것이 아니었다. 지느러미와 꼬리, 아가미가 있어야 할 물고기가 아닌 팔과 다리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인간이었다.
 텅.
 노인은 우선 조각배에 그 인간을 끌어 올렸다.
 노인은 곧바로 남자의 호흡부터 확인했다. 물속에서 자신과 일각 동안이나 씨름을 했던 것과 다르게 숨소리는 상당히 고르고 편안했다.
 마치 잠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흐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인은 잠시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당히 큰 키에 다부진 몸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나이는 대략적으로 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으며, 이목구비는 특별하게 잘 생겼다, 못 생겼다 평가하기 힘든 평범함을 지니고 있었다.
 노인의 관심을 끄는 건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노인은 단 한 번도 남자가 입은 옷을 본 적이 없었다. 재질부터 시작해 옷의 형태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의복의 기준을 벗어난 상태였다. 신발 역시도 그러했고,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둥그런 쇳덩어리 역시도 노인의 눈에 익은 팔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으음······.”
 노인의 입에서는 말 대신 침음성만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오랜 인생 경험 속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이고 두 번째를 떠나서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그때였다.
 치이이이이······.
 남자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흠뻑 젖었던 의복이 급속도로 마르며 수증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남자의 머리카락도 어느새 말라가고 있었다.
 “흠······.”
 노인은 또 다시 침음성을 흘리며 남자를 바라봤다. 내공을 지니고 일정 수준에 오른 무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노인은 남자의 몸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노인의 신경을 자극하는 점들이었기에 노인은 곧바로 남자의 손목에 있는 기구맥(氣口脈)을 통해 온 몸을 진맥(診脈)하기 시작했다.
 ‘허!’
 진맥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노인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한 식경 동안이나 꼼꼼하게 진맥을 한 노인은 남자의 손목을 놓아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이런 체질이 실존했단 말인가······.”
 노인의 입에선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손으로 똑똑히 남자의 몸 전부를 살펴봤으니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능력의 한계는 절반 이상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백 명 중 오십 명은 비슷한 한계를 지닌 각기 다른 체질을 타고 난다. 그리고 백 명 중 이십오 명은 조금 더 뛰어난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백 명 중 열 명은 구십 명보다 월등히 뛰어난 체질적인 강인함을 타고 나며, 그 열 명 중에서도 그 한계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
 무림인들로 설명하면 일류고수의 수준에 오르는 이들이 백 명 중 이십오 명에 속하는 이들이고, 절정고수가 백 명 중 열 명에 속한다. 그리고 열 명의 절정고수 중 서너 명만이 초절정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능력대로 성장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태생부터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면 남들보다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뿐이다.
 때문에 무림에선 갓 태어난 아이들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위험성을 감수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는 일이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십 년, 혹은 백 년에 한 번. 더 나아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체질들이 있다. 그 수만 하더라도 수백 종이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좋은 건 아니었다.
 단명 하는 체질, 장수하는 체질, 오성(悟性)만 뛰어난 신체, 신체의 강인함만 타고나는 체질 등등 수백 종의 체질들은 각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쉽게 나타나지 않기에 십 년, 혹은 백 년에 한 번 나타난다 말할 뿐이다.
 남자가 그런 체질 중 하나를 타고 났다.
 
 천극염열지체(天極炎熱之體)!
 
 극양(極陽)의 성질을 타고 난 천극염열지체는 무인에게 있어 최고의 신체라 부를 수 있었다.
 신체의 모든 기혈(氣穴)이 남들보다 세 배는 확장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뚫려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보다 좋은 신체가 또 있을까?
 그러다보니 내공 수련을 했을 때, 남들과 같은 시간을 수련했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세 배는 차이가 날 정도로 득이 컸다.
 그 외에도 천극염열지체가 가지는 장점은 상당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 몸이 스스로 타들어간다.
 기혈만큼이나 확장되어 있는 혈맥(血脈)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평균적으로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온 몸의 혈맥은 물론이고 장기마저도 모두 타들어가 죽을 확률이 십중팔구였다. 즉, 천하제일의 체질을 타고 났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비참한 운명인 것이다.
 한참동안이나 노인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윽고 무슨 결심을 했는지 조각배의 노를 저어 호수 가장 자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
 
 “허허허!”
 하얀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노인은 연신 헛웃음만 터트렸다. 그런 노인의 곁에 있던 또 다른 노인, 호수에서 남자를 건져 올린 그가 재촉하듯 물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그런 것 같구만.”
 “그런 것 같구만이 아니라 그런 거라니까!”
 “그래, 그렇군.”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는 그의 모습에 노인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뭐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냐!”
 “조치라니? 이게 정말 천극염열지체라면 방법이 없다는 걸 네놈도 잘 알잖아? 내가 무슨 신(神)이라도 되는 줄 알아?”
 “언제는 신에 버금가는 의술을 지니고 있다며? 천하제일의 의원은 네놈 하나밖에 없다며? 고금(古今)을 통틀어 네놈의 실력을 뛰어넘을 놈은 없다며!”
 “그야 그렇지만, 천극염열지체는 달라. 신만이 그 치료약을 내려 줄 수 있어.”
 “정말 방법이 없는 거냐?”
 “방법이라······.”
 궁리를 하던 그는 슬쩍 의심스러운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냐? 혹, 이놈이 네놈 핏줄이라도 되는 거냐? 나 몰래 여염집 처자를 건드리기라도 했던 거냐? 그렇다면 얼굴은 네놈을 닮은 건 아닌 것 같고······.”
 의심 가득한 그의 눈빛에 노인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말 같잖은 소리! 이놈은······ 내가 건져 올린 놈이다.”
 “건져 올리다니? 무슨 소리냐?”
 “그런 게 있으니까 말 같잖은 소리 말고 방법이나 일러봐!”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싸늘한 눈총에 입을 열었다.
 “방법이 쉽지가 않아. 알다시피 천극염열지체의 가장 큰 문제는 온 몸의 기혈만 확장된 것이 아니라 혈맥까지도 모두 확장되어 있다는 점이지. 그로 인해 평상시라 하더라도 남들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혈액이 흐르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도 빨라지고. 문제는 순환하는 혈류(血流)의 온도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승한다는 점이야.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신체 모든 장기는 물론이고 뼈와 근육에까지 손상을 입혀 절명하고 말지. 방법이라면 순환하는 혈액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혈맥을 막거나, 뜨거워지는 혈액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뿐이지.”
 “혈맥을 막으라고? 목숨을 살리자고 병신을 만들어 놓자는 거냐?”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그의 모습에 노인의 눈가가 잔뜩 일그러졌다. 말이 병신이 되는 것이지 실제로 혈맥이 막히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확률이 지극히 줄어든다. 결국은 당장 죽는 것만 간신히 막을 뿐이지 치료의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혈액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은?”
 노인은 코가 가려운지 콧속을 후비며 대답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천극빙음지체(天極氷陰之體)의 계집과 평생 합궁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그게 바로 신이 내리줄 수 있는 치료제인 셈이지. 하긴, 같은 운명을 타고난 천극빙음지체의 계집이라면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놈의 품을 붙들어 매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겠지.”
 “으드득! 지금 네놈과 장난질 하고 싶어 보이더냐?”
 “네놈이 방법을 물으니 일러주는 것 아니냐!”
 “천극빙음지체는 천극염열지체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희귀한 체질이 아니냐! 그런 계집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냐! 의원이라면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여라!”
 “의원이니까 가장 올바르고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는 거다!”
 두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차선책이라도 있을 것 아니냐? 그건 뭐냐?”
 “차선책? 많지! 극음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고수에게 주기적으로 음기를 주입받는다거나, 그에 준하는 영약을 복용한다거나, 스스로 극음의 내공을 수련한다거나, 음기가 강한 계집을 옆에 달고 산다거나, 네놈이 바라는 차선책은 많다. 하지만, 당장으로서는 이놈의 진행성이 너무 커서 치료가 가능하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스스로 극음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제외하면 일시적인 방편에 불가하다는 것쯤은 네놈도 알겠지?”
 어디 그뿐인가?
 극음의 무공을 익힌다 하더라도 대성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의 몸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상극의 무공을 익혀야 하는 일이니 남들보다 곱절은 어려운 일이었다.
 방법은 될 수 있으나,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다.
 “음······.”
 고민을 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의원인 노인은 다시 말을 건넸다.
 “보다시피 이놈은 나이도 너무 많이 처먹었어. 지금 상태로봐선 극음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들은 먹히지도 않아.”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죽은 듯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노인을 향해 의원인 노인이 슬쩍 말을 했다.
 “빙마군(氷魔君)에게라도 가보던지.”
 “미친 소리!”
 펄쩍 뛰는 노인이었다. 의원인 노인으로서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소문을 생각해 내고는 노인에게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남천대협(南天大俠)이 얼마 전에 대설어(大雪魚)를 잡았다고 하더군.”
 “대설어?”
 “소문이니 믿을 순 없어. 하지만, 정말로 소문대로 운이 좋아 남천대협이 진짜 대설어를 잡았고, 그 대설어가 내단(內丹)을 지니고 있다면 이놈의 증상을 짧게는 이 년에서 길게는 오 년 정도 잡아 줄 수도 있겠지.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
 노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일평생을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부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자를 위해 부탁을 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남천대협이라면 천하대전(天下大戰) 당시 네놈과는 사이가 좋았잖아? 어차피 대설어의 내단은 그 음기가 너무 강해 웬만한 무인은 쉽게 써먹을 수도 없으니 부탁을 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있다면 말이야.”
 “그는 누구와도 사이가 좋았어.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그런가? 설령, 그렇다 한들 그라면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마땅히 대설어의 내단을 내어 줄 텐데? 물론, 있다면 말이야.”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니 나도 확신할 순 없어. 그래도 이놈을 살리고 싶으면 남천대협에게 한 번 가보던지.”
 의원인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아는 한 저이는 절대로 남천대협에게 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 말은 그 만큼 자존심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 자존심을 꺾는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이게 정말 대설어의 내단이라고?”
 “보면 알 것 아냐!”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는 노인이었다.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군!”
 옥함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한기만 하더라도 피부가 뚫릴 것 같았다. 무공을 익힌 자신이 이 정도였으니 이건 정말로 대설어의 내단이 분명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놈은 누구야? 누가 낳은 자식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마저 꺾으며 구해 온 대설어의 내단이었다. 반평생을 보고 살아온 자신으로서도 노인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끄럽고 어서 치료나 해봐!”
 며칠 사이에 더욱더 까칠해진 노인의 모습에 의원인 노인은 큭큭 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놀림은 아주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수괴의(聖手怪醫) 망통적.
 남자의 몸에 침을 놓는 노인의 이름이었다. 성수와 괴의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호를 지닌 망통적이었지만, 의술실력 하나는 천하에 따를 자가 없었다.
 성수괴의는 남자의 온 몸의 혈을 누르고, 침을 놓는 등 장장 한 시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로 인해 남자의 몸은 어느새 불덩어리처럼 빨갛게 변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엄청나군!’
 노인은 남자의 몸에서 발산하는 열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는 사이 성수괴의는 꽁꽁 얼어버린 옥함을 남자의 단전 위에 올려놓았다.
 치이이이이이이이-!
 순식간에 꽁꽁 얼었던 옥함이 녹아내렸다.
 옥함의 얼음이 사라지자 성수괴의는 옥함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옥함을 열자, 방안을 휘몰아치는 한기가 옥함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성수괴의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얀 수염은 어느새 꽁꽁 얼어 있었고, 불덩어리처럼 열기를 뿜어내던 남자의 몸도 급속도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대단해! 대단해!”
 성수괴의는 옥함 안에 새파란 대설어의 내단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려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한기였다. 만약,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이들이 무턱대고 봤다면 실명까지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수괴의는 조심스럽게 대설어의 내단을 꺼내들었다.
 양손을 내공으로 보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물론, 손 전체가 가닥가닥 끊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대설어의 내단을 남자의 벌어진 입 안에다 넣어 주었다.
 사르르르.
 대설어의 내단은 남자의 입속에서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어떠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끝이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이게 맞냐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
 성수괴의도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그렇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돌팔이 같은 놈!”
 “내가 언제 이런 놈에게 대설어의 내단을 먹여봤어야 알지!”
 성수괴의는 곧바로 반박했다. 사실, 자신 역시도 허무하기 짝이 없었지만 경험이 없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노인이 티격태격 거리고 있을 때였다.
 딱딱딱딱딱딱딱!
 남자의 이가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온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는 모습이 추위를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수괴의가 몸을 확인하자 엄청나게 차가워져 있었다.
 “왜 이래?”
 “녀석의 몸이 대설어의 내단을 아주 완벽하게 흡수했어.”
 “그래?”
 노인은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듯 안심했다.
 “그런데 대설어의 내단이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문제가 생겼어.”
 “문제라니?”
 성수괴의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내구실 하기 힘들지도 모르겠군. 하필이면 음기가 거기로 몰려버렸네.”
 
 
 제3장 은혜도 모르는 오랑캐 놈
 
 
 춥다.
 온 몸이 얼음 창고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큼이나 춥다. 아니, 누군가 나를 강제적으로 냉동시켜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춥다는 고통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에취-!”
 기침을 하며 남자가 눈을 떴다.
 “이제야 깨어나는군.”
 남자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노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기억을 되살려봤다. 노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구와 싸우다 파도에 휩쓸렸다는 건 기억이 났다.
 권혁은 두 노인이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마땅히 인사를 하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온 몸이 꽁꽁 얼어버린 것만 같아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가 없었다. 감사의 인사보다 딱딱 거리며 윗니와 아랫니가 사정없이 부딪혔다.
 딱딱딱딱딱.
 상황이 그렇다보니 권혁의 입에서는 그 어떤 말보다 춥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추, 추워.”
 온 몸을 덜덜 떨어대며 추워하는 권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수괴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꺼번에 대설어의 음기를 받아들이기는 무리인 모양이군.”
 대설어의 음기?
 권혁이 무슨 소리인가 싶은 순간 성수괴의가 그의 몸을 탁탁 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성수괴의의 손길이 닿을 적마다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온 몸을 치고 나서야 성수괴의는 희미하게 웃으며 권혁을 바라봤다.
 “어떠냐? 아직도 춥냐?”
 “아니요. 이제 괜찮습니다.”
 권혁은 한결 따뜻해진 몸으로 인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자신이 팬티 한 장 걸치지 않고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추워서 피부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아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제, 제 옷은?”
 권혁은 재빨리 중요부위만 가리며 옷을 찾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의 구조와 가구들이 전혀 눈에 익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목재가구였다.
 세련된 느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투박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들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방 어느 곳에서도 가전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TV는 물론이고, 전화도 없었고, 천장에 형광등이나 백열등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세상과 등지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TV에 방송되기는 했지만, 그들도 최소한의 도구는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방안은 그러한 최소한의 도구조차도 보이지 않았으니 권혁으로서는 이상하다 여길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의 모습이 권혁의 눈에 자세히 들어왔다.
 ‘옷하고 신발이······.’
 옷은 그렇다 하더라도 신발은 권혁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고무신하고 비슷하면서도 그 형태가 조금은 다른 권혁으로서는 처음 보는 신발이었다.
 “이걸 입어라.”
 하얀 수염을 기르고 얼굴이 호의적으로 생긴 성수괴의와 다르게 날카로운 눈매에 볼 살이 하나도 없어 강퍅하게 생긴 노인 권혁에게 포대기나 다름없는 옷을 던져주었다.
 팬티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얇은 외투만 하나 달랑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권혁으로서는 변태가 따로 없었다.
 “할아버지, 제 옷은 없습니까?”
 “없으니까 그거나 입어!”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노인의 모습에 권혁은 움찔하며 옷을 입었다.
 ‘샤워가운이라고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도 변태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고 어딜 나갈 수는 없었으니 어떻게든 옷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옷을 던져주었던 노인의 질문에 권혁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XX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신입생 권혁입니다. 이번에 오티, 그러니까 오리엔테이션을 왔습니다. 해변에서 문제가 생겨서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습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XX콘도에서 먼 곳입니까?”
 권혁의 설명과 질문에 노인과 성수괴의는 서로를 바라봤다.
 [무슨 소린지 알겠냐?]
 노인의 전음에 성수괴의가 고개를 저었다.
 [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성수괴의의 대답에 노인이 곧바로 물었다.
 [대설어의 내단으로 인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음······ 모르겠군. 특별하게 이상은 없을 텐데.]
 확신하지 못하는 성수괴의의 모습에 노인은 그만하면 됐다는 듯 권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놈 출신이 어디냐?”
 “출신이요?”
 “이런 멍청이 같은 놈! 태어난 곳 말이다!”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노인의 모습에 권혁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한 번에 못 알아들을 수도 있는 걸 가지고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다니.
 “서울 이문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예? 이문동은 동대문구인데요. 청량리 위쪽이고 중랑구 옆인데······.”
 “그런 작은 마을 말고 성! 큰 성을 말해봐!”
 “성이요?”
 뜬금없이 성을 말하라는 소리에 권혁은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을 했다.
 “동대문이 가장 가까운데요.”
 “······.”
 “······.”
 성수괴의와 노인은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로서는 권혁이 하는 이야기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네놈이 하북 출신인지, 호남 출신인지, 절강 출신인지 이런 걸 대답하라고!”
 “······서, 서울 출신인데요.”
 “그러니까 그 서울인지 뭔지가 어디에 있냐고! 이런 답답한 놈아!”
 “한국이죠. 서울특별시 모르세요?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가 서울인데······ 어떻게 그걸 모르세요?”
 권혁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권혁을 바라보던 노인은 문득, 그의 차림새가 자신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을 생각하고는 다시 물었다.
 “중원인이 아니냐? 어디서 온 놈이냐?”
 “중원인이요? 전 한국인인데요. 한국에서 왔고······!”
 대답을 하던 권혁의 머릿속으로 예전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중화사상(中華思想)?’
 ‘간단하게 설명하면 중국인들이 자신들이야 말로 세상의 중심이니까 그 어떤 민족보다도 우월하다 생각하는 거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형성되어 유가(儒家) 사상이 국가의 통치 철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체계화되었지.’
 ‘그거 나도 알아!’
 ‘니가 뭘 알아?’
 ‘혁이 넌 항상 무협소설을 무시하는데 무협소설을 읽다보면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세온이가 말한 중화사상도 무협소설에서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조선이나 삼국시대 인물이 중원으로 가면 그놈들이 동쪽 오랑캐라면서 얼마나 무시하고 괄시를 하는지! 하여간 중원놈들은 지들이 세상 제일인 줄 안다니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대화가 떠오른 권혁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노인들을 바라봤다. 생김새가 분명 아시아인이다. 문제는 한국인이냐는 것인데······ 솔직히 헷갈렸다. 그러다 방 한쪽에 있는 탁자와 그 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문이었다.
 “호, 혹시······ 여기가 중국인가요?”
 “중국? 그건 또 어디냐?”
 중국을 모른다니!
 권혁으로서는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같은 아시아인이 세계 최강국의 하나인 중국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2011년도에는 세계경제대국으로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미국 다음으로 2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장차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경제가 돌아갈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이런 중국을 모른다니! 아니, 다 좋다. 모를 수도 있다지만 어떻게 한문으로 된 책을 보면서 중국을 모른단 말인가?
 “여, 여기는 어디인가요? 아니, 무슨 나라인가요?”
 설마 파도에 휩쓸려 바다를 표류하다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왔을까?
 서해안이었으니 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중국으로까지 넘어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아주 오지에 와서는 자신들의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도 모르는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구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와 같은 일이지만.
 권혁은 무슨 대답이 나온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떻게 자신이 저 노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풀기도 전에 노인이 대답했다.
 “무황제국(武皇帝國)이지! 네놈은 지금이 무황제국력 삼십팔 년이라는 걸 모르는 거냐? 도대체 네놈은 어디서 온 놈이냐? 서역에서 온 놈이냐? 아니면, 북방(北方)에서 온 놈이더냐?”
 노인의 대답에 권혁은 눈만 껌뻑거렸다.
 무황제국이라니?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런 이름의 나라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 혹시 무황제국 이전엔 무슨 나라였습니까?”
 “당연히 송(宋)이지!”
 “송······ 서, 설마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다음에 세워진 송나라를 말하는 건 아니시죠?”
 “이놈이!”
 권혁의 물음에 노인이 눈을 부라렸다. 그 모습에 권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분명 자신이 모르는 다른 뭔가 있다고 여겼다.
 “짧디 짧은 역사라곤 하지만 수나라와 당나라 다음으로 엄연히 오대십국(五代十國)이 있었거늘! 그 다음이 바로 송이다! 그리고 그런 송을 네놈 같은 북방의 오랑캐들이 무너트리고 중원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천하대전에서 패배하며 무황제국이 세워진 것이다! 너희 오랑캐 놈들은 역사도 안 배우더냐!”
 “······.”
 노인의 설명에 권혁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무황제국이라는 단어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스르르 침상에 몸을 누웠다.
 그런 권혁을 노인들은 이상하게 바라봤다.
 권혁은 노인들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꿈 한 번 생생하네요. 아무래도 꿈에서 깨야겠어요. 재밌었습니다. 할아버지들.”
 권혁은 눈을 감았다.
 이건 꿈이다. 말도 안 되는 개꿈이다!
 태연스럽게 잠을 자려는 권혁의 모습에 노인의 눈 밑 살이 움찔움찔 떨렸다. 그러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머리 위로 손을 들고야 말았다.
 퍼억!
 “크아아악!”
 머리를 얻어맞은 권혁은 그대로 기절을 해버리고 말았다.
 “은혜도 모르는 오랑캐 놈!”
 
 ***
 
 “하아아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일어난 권혁은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목 돌리기부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상체만 일으킨 후에 눈을 감고 목을 가볍게 돌리며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 다음으로는 왼쪽 팔부터 시작해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고작 십여 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스트레칭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잠을 쫓아내고, 몸도 한결 가볍게 만들 수 있었으니 습관으로 만들면 꽤나 유익한 일이었다.
 그렇게 양쪽 팔과 어깨를 지나 허리를 비틀어 대던 권혁은 문득 놀란 토끼눈을 떴다.
 뭔가 괴상한 꿈을 꾼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헉!”
 권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개꿈에서 보았던 두 명의 할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인자함을 갖춘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였고, 한 명은 고집이 고래 심줄보다 질긴 심보 고약한 할아버지였다.
 “내가 아직도 꿈을 꾸나?”
 권혁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지독한 개꿈에 빠진 것 같다. 종종 같은 꿈을 연달아서 꾼 적이 있었기 때문에 권혁은 이윽고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들을 바라봤다.
 “아직도 여기 계셨네요.”
 “여긴 내 집이다!”
 심보 고약한 할아버가 그렇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조금 전 꿈에서도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더니 지금도 그런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혁은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꿈이니까.
 “북방의 오랑캐더냐?”
 북방의 오랑캐?
 권혁은 그게 누구인지 모르나 살면서 한 번도 오랑캐라는 소리를 들은 적 없었고, 자신이 아는 오랑캐는 조선 시대에 왜구를 일컬었으니 당연히 자신은 그에 합당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자신의 대답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할아버지였다. 권혁은 그런 두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도대체 이 꿈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권혁이 꾸었던 꿈은 오직 두 가지 뿐이었다. 데쟈뷰를 일으키는 예지몽과 아무런 내용도 없는 개꿈. 예지몽이라는 것도 말만 거창할 뿐이지 그 내용은 별로 기억도 나지 않고 그저 현실에서 꿈으로 본 듯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꿈은 개꿈일 뿐이었다.
 “네놈이 호수에 빠져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냐?”
 “호수요?”
 권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호수에 빠져있었다고?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던 권혁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꿈이고 꿈에서 벌어진 일들의 인과관계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의 꿈은 중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뭐 놀러라도 가다가 빠졌나보죠.”
 권혁은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어차피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었고, 굳이 사실을 알아야할 이유도 없었으까.
 그러나 권혁의 대답을 들은 노인은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한 눈에 보더라도 자신의 대답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권혁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이 분명했다.
 “이 오랑······.”
 또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노인을 성수괴의가 말렸다. 그리고는 권혁에게 물었다.
 “네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터, 호수에 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 천극염열지체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 간 것이더냐?”
 천극염······ 뭐?
 권혁은 한 번에 기억하기도 힘든 생소한 말을 하는 성수괴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권혁에게 성수괴의는 다른 말을 꺼내놓았다.
 “지금 너도 느끼겠지만 네 몸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있다. 대설어의 내단을 복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네 목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 길어나 오 년 정도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뭐라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게 말을 해봐라. 이래봬도 의술에 있어서는 천하에서 나를 따를 자가 없다 자부하는 몸이다. 방법을 같이 강구해보도록 하자.”
 “······.”
 권혁은 여전히 모를 소리만 하는 성수괴의의 모습에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리 개꿈이라고 하지만 이해하기도 힘든 꿈을 꾸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 권혁으로서는 꿈을 꿔도 참 괴상한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이라도 지껄여봐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권혁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화를 터트렸다. 자존심까지 꺾어가며 대설어의 내단을 구해왔는데 그런 자신이 은혜도 모르는 오랑캐를 위해 헛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권혁은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노인과 성수괴의를 번갈아봤다. 그러자 노인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소매를 걷어붙이며 권혁에게로 다가갔다.
 “이놈의 배라도 갈라서 대설어의 내단이라도 도로 꺼내야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미 다 녹아 흡수가 되어버린 대설어의 내단을 어떻게 꺼낸단 말이냐!”
 성수괴의가 노인을 몸으로 말렸다.
 그런 두 노인의 실랑이를 바라보는 권혁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라도 나오는 꿈을 꾸면 얼마나 좋은가? 왜 이런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며 저희들끼지 몸싸움을 벌이는 걸 봐야 한단 말인가?
 권혁은 이윽고 방 밖으로라도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서로 밀고 당기고를 하고 있는 두 노인의 옆을 지나쳐 방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어딜 가느냐!”
 노인의 호통소리에 권혁은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방문을 열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쫓아서 두 노인이 방을 빠져나왔다.
 방이자 집을 나온 권혁은 눈앞에 보이는 빽빽한 나무들 사이의 오솔길로 냅다 달렸다. 신발을 신지 않았기에 발바닥으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달렸다.
 “어딜 도망가려고! 애초부터 대설어의 내단만 취하고 도망갈 생각이었구나!”
 “허어억!”
 자신의 앞으로 불쑥 나타나는 노인의 모습에 권혁은 자지러지게 놀랐다. 100미터를 11초로 달리는 자신이었다. 웬만해서는 달리기로 따라잡히지 않는 자신인데 이런 노인이 자신을 순식간에 추월했다고 생각하니 귀신이 따로 없었다.
 “네놈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차근차근 모조리 알아내겠다!”
 노인은 권혁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아악!”
 손목이 뜯겨져 버릴 것 같은 고통에 권혁은 소리를 내질렀다.
 노인은 권혁의 손목을 붙잡고는 개 끌 듯이 질질 끌고 집 앞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서 있던 성수괴의는 가볍게 혀를 차고만 있었다.
 “네놈이 나에게 접근한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노인의 외침에 권혁은 인상만 찌푸렸다. 손목은 어느새 벌겋게 부어올라가고 있었다. 제발 손목만이라도 놓아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았으니 극한의 고통 속에선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게 실감났다.
 그런 권혁의 모습에 노인은 손목을 놓아주었다.
 “으아아······.”
 퉁퉁 부어오른 손목을 감싸쥐고 권혁은 눈물까지 보였다. 그러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뭐 이런 거지같은 꿈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아무리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하네!”
 권혁의 외침에 노인은 눈을 부라리며 좌측으로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인의 손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뿜어져 나가더니 단숨에 커다란 나무를 쓰러트려버렸다.
 쾅!
 “······!”
 권혁은 입을 쩍! 벌리고 노인과 쓰러진 나무를 바라봤다. 그러다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명철이 이 새끼!”
 이건 분명 명철이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판타지랑 무협지만 보면서 온통 그런 이야기밖에 안하더니 결국은 무의식중에 그놈이 했던 말이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서 말하지 못 할까!”
 노인의 다그침에 권혁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결정을 내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노인의 앞에 선 권혁은 간단하게 말했다.
 “저 좀 때려주세요. 세게!”
 차라리 한 대 맞고 꿈에서 깨자!
 노인은 권혁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손을 들어 사정없이 뺨을 때려버렸다. 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당돌하게 대드는 놈이 있었나 싶어 괘씸하기도 하고 이런 놈은 초장에 버릇을 고쳐나야 한다 생각했다.
 짜아- 악!
 “······크악!”
 권혁은 눈앞에 별이 보이다 못해 자신이 별이 되어버린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권혁을 바라보며 성수괴의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세게 칠 필요가 있나? 무공도 모르는 것 같던데.”
 순식간에 얼굴 한쪽이 퉁퉁 부어버린 권혁이었다.
 “그래도 이가 안 나가도록 친 걸로 나에게 백 번 절을 해야돼!”
 노인의 당당한 말에 성수괴의는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깨워봐.”
 노인의 말에 성수괴의가 눈을 일그러트렸다.
 “내가 네놈의 수하더냐?”
 “의원이잖아.”
 “의원이 언제부터 기절한 놈 깨우는 게 일이더냐?”
 “나보다는 나을 것 아냐!”
 “······끙.”
 성수괴의는 권혁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발로 툭 걷어찼다.
 “의원이라는 놈이 사람을 그리 대해서야!”
 “의원은 시종이 아니다.”
 코웃음을 치며 성수괴의는 다시 한 번 권혁을 발로 걷어찼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걷어차는 것 같았지만 내공을 이용해 혈을 풀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니 웬만한 무인이라 하더라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컥컥!”
 기침과 함께 정신을 차린 권혁은 힘겹게 눈을 뜨고는 두 노인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괴성을 질러댔다.
 “우와아아아아! 영감탱이들이 또 있잖아!”
 “이런 싸가지 없는 오랑캐 놈!”
 노인은 권혁을 발로 자근자근 밟아버리기 시작했다.
 “허허······ 영감탱이라니!”
 허탈한 듯한 음성을 내뱉는 성수괴의의 오른발이 어느새 권혁의 퉁퉁 부은 손목을 꾹꾹 밟고 있었다.
 
 
 제4장 꿈보다 지독한 현실
 
 
 꿈보다 지독한 현실이었다.
 두 명의 노인, 그 중 동방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였다.
 눈을 뜨면 다짜고짜 무지막지하게 때린다.
 이유도 한 결 같다.
 은혜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오랑캐라는 것!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한 걸까?
 반항도 해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을 뜨면 때리고, 밟는다. 때렸던 곳을 또 밟고, 밟았던 곳을 또 때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얼굴은 건들지 않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그렇게 정신 차리면 맞고, 다시 기절하길 수십 번이 지나서야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문제는 어떻게 내가 이런 괴이한 현실에 놓여졌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나는 2011년이 아닌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이건 거짓 하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 속이라는 점이다.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해야 정상적인 역사의 흐름이다. 그런데 지금은 원나라가 아닌 무황제국이라는 전혀 다른 나라가 세워져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시공간을 뛰어 넘으면서 역사가 뒤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게 나비효과일지도.
 “깨어나는 군.”
 의자에 앉아 이름 모를 과일을 씹어 먹으며 신수괴의가 눈을 뜨는 권혁을 바라봤다. 신수괴의의 말을 들은 동방복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은혜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오랑캐 놈!”
 퍽퍽퍽퍽퍽퍽!
 눈을 뜨기가 무섭게 권혁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는 권혁의 눈동자가 재밌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수괴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다시 깨어나고 기절하길 수차례 반복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권혁이 깨달은 것은 때리는 동방복보다 멀리 떨어져서 담담하게 자신이 깨어나는 것을 알려주는 신수괴의가 훨씬 더 악랄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똑똑히 들었다.
 “가슴을 집중적으로 밟아.”
 진정으로 치가 떨릴 정도로 무서운 노인이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더니 저 노인이 그럴 사람이다.
 다시 정신을 잃은 권혁의 모습에 신수괴의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휘적휘적 권혁의 앞으로 다가간 그는 권혁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눈으로 바라보고, 손으로 온 몸을 만지길 일 각이 지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대설어 내단의 음기가 기혈과 혈맥 곳곳으로 아주 고르게 퍼졌을 거야. 수고스럽지만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지.”
 “오랑캐 놈!”
 동방복의 심사(心思) 뒤틀린 음성을 들으며 신수괴의는 권혁을 내공으로 들어올렸다. 손도 대지 않고 권혁의 몸을 허공으로 붕 띄운 그는 집 안으로 데려가 침상에 눕혔다.
 그렇게 권혁을 집 안에 눕히고 나오자 동방복이 물었다.
 “길면 오 년인 것이 확실하냐?”
 “길다면 그렇지. 하지만, 단정할 순 없지. 짧으면 이 년이나 삼 년 안으로도 죽을 수 있어. 그리고 그때는 대설어의 내단이 두 개라 하더라도 효과를 볼 수 없고.”
 신수괴의의 말에 동방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신수괴의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그 방법을 쓸 거냐?”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죽도록 내버려 뒀을 테지.”
 인정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동방복의 말이었지만, 신수괴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라 하더라도 가망이 없는 권혁을 저렇게 살려두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점점 고통이 심해질 그를 살려두는 건 결코 옳은 일이라 여기지 않는 신수괴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실패한 일인데 가능할까?”
 신수괴의의 부정적인 말에 동방복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천극염열지체는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고.”
 “하긴, 저보다 더 좋은 신체는 없겠지. 다만, 시간이 짧다는 것이 문제겠군.”
 “오 년이면 충분해.”
 “아무리 천극염열지체라 하더라도 오령신무(五靈神武)를 오 년 만에 깨우친다는 건 불가능하지.”
 “해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저놈도 팔자 한 번 사납게 태어났군. 천극염열지체인 것도 억울할 텐데 하필이면 네놈에게 걸려서는 원하지도 않는 무공을 익혀야만 하니······ 쯧!”
 가볍게 혀를 차는 것과 다르게 신수괴의의 표정은 조금도 안타까워하거나, 안쓰러워하는 표정이 없었다. 그 역시도 권혁의 안위보다는 천극염열지체를 타고 난 그가 과연 오령신무를 익힐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크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대설어의 내단을 얻어 온 거냐?”
 동방복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신수괴의는 역시 그런 것이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동방복이 제 핏줄도 아닌 타인을 위해 제 자존심까지 꺾어가며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권혁이 어쩌면 동방복과 깊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신수괴의는 그것이 착각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온 놈 인거 같아?”
 “북방이나 남방에서 온 오랑캐겠지.”
 동방복은 관심없다는 듯 그렇게 대답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먼지처럼 흩어지며 사라지는 동방복의 모습에도 신수괴의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
 
 권혁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를 기다리는 건 지독하게 행해지던 묻지마 구타가 아니었다.
 제법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흰 쌀밥에 고기까지 구워진 밥상은 이십 년 동안 그가 먹어왔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정신없이 먹을 수 있었다.
 무려 세 그릇이나 먹어치운 권혁은 터질 것 같은 배를 쓰다듬다 두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히익!”
 딸꾹질이 나왔다.
 식욕 앞에 억눌렸던 두려움이 다시 차올랐다.
 노인이라고 하지만 결코 노인으로 볼 수 없다.
 어느 것 하나 권혁으로는 노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봐왔던 손에서 장풍을 날리던 고수가 실제로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나이를 들먹이며 대들 수 있겠는가?
 “저기······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아량을 베풀어 용서를 해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잘 살아가겠습니다. 한 번 만 용서해 주십시오.”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잘못을 빌면서도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권혁이었다. 그렇지만 우선은 살고 봐야 한다는 본능이 무조건적인 잘못을 외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신수괴의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권혁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어떤 말이든 진심으로 경청 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권혁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수괴의가 한 차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수괴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권혁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천극염열지체라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신체를 타고 났으며, 그로 인해 앞으로 이 년 안에 죽을 수 있다는 건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건강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권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어려서부터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이제 이 년 밖에 안 되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권혁은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싶었다. 백 번 양보해서 정말 그런 괴상한 신체를 타고 났으면 어째서 지금까지 말짱했단 말인가?
 설마 한 방에 훅 가는 병이란 말인가?
 어떠한 증상도 없이?
 한 방에? 훅?
 권혁은 고개를 저으며 사실을 부정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르신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천극염열지체인지 뭔지 하는 신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아왔습니다. 건강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는 저입니다.”
 권혁의 말에 신수괴의가 그럴 리 없다는 듯 대꾸했다.
 “한 번도 통증을 느낀 적이 없다고? 온 몸이 불덩어리 같이 느껴진 적이 없었다고?”
 “예.”
 “저 오랑캐 놈이 이젠 거짓말을 하는군!”
 동방복은 당장이라도 주먹부터 날릴 기세였다. 그런 동방복의 모습에 권혁은 화들짝 놀라며 죽기 살기로 손사래를 쳤다.
 “정말입니다! 정말로 전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이건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가 그런 희귀한 병에 걸려 있다면 어째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권혁의 진심어린 말에 동방복이 신수괴의를 바라봤다.
 절레절레.
 아니다. 분명 자신들의 진단은 정확했다. 눈 앞에 있는 권혁은 분명히 천극염열지체의 신체를 타고 났다.
 그렇다면 권혁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두 노인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자각을 못하는 걸까?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천극염열지체를 타고나면 자신의 몸이 남들보다 뜨겁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권혁의 나이라면 못해도 삼 년 전부터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을 느꼈어야 정상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보자. 네놈은 누구이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이냐?”
 신수괴의의 물음에 권혁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거짓하나 보태지 않고 설명을 해주었다.
 권혁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방복과 신수괴의는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권혁이 하는 말은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먼 훗날의 미래에서 온 존재라니.
 “시공간을 뛰어넘었다······.”
 신수괴의는 권혁을 신비롭게 바라봤다. 무엇이 원인이 되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에 대해 연구마저 하고 싶은 신수괴의였다.
 그러나 동방복은 달랐다.
 “네놈이 미래에서 온 오랑캐라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네놈의 몸은 앞으로 이 년밖에 살지 못하고 그런 죽음이 싫다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저······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겠습니까? 혹시 그 호수로 다시 가본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저희 부모님께서 제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걸 아시고 얼마나 걱정이 크시겠습니까? 저는 반드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눈물까지 보이는 권혁의 모습에도 동방복은 코웃음을 쳤다.
 “방법 따윈 없으니까 죽기 싫으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나 해!”
 “제발 그 호수로 저를 한 번만 데려가주십시오. 정말 방법이 없다면 그때는 어르신께서 시키는 대로 모든 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혁의 부탁에 동방복은 단칼에 거절을 하려고 했지만, 신수괴의가 먼저 허락을 해버렸다.
 [무슨 짓이냐?]
 [만약, 그곳에 미래로 가는 통로 같은 것이라도 있다면? 나는 정말 그곳에서 미래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
 [다 늙은 몸뚱아리로 가서 뭐하려고!]
 [그러니까 죽기 전에 더 가봐야지!]
 신수괴의의 반박에 동방복도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겼다. 결국, 그들은 권혁을 데리고 그를 건저 올렸던 호수로 향했다.
 
 ***
 
 호수는 그리 넓지 않았다.
 “제가 어르신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곳이 어디쯤 입니까?”
 권혁의 물음에 동방복은 말없이 조각배를 묶어 둔 곳으로 걸어갔다. 신수괴의는 따라가자며 권혁과 함께 동방복의 뒤를 따라가 조각배에 몸을 실었다.
 조각배에 모두 올라타자 동방복이 권혁을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노를 저어야 앞으로 갈 것 아냐!”
 “아!”
 권혁은 재빨리 노를 손에 쥐었다.
 한 번도 노를 저어본 적이 없었기에 조각배는 쉽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동방복에게 욕을 얻어먹고, 머리를 몇 대 쥐어 박히고서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여기다.”
 동방복의 말에 권혁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냅다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런 권혁의 모습에 동방복과 신수괴의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호수로 뛰어든 권혁은 곧바로 잠수를 했다. 맑은 물로 인해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호수 바닥이 눈에 들어왔지만, 한 번에 바닥까지 갈 순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권혁은 물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이상한 점이 있는지 찾았다. 이곳에서 자신이 건져 졌다면 분명 물속 어딘가에 다시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권혁은 반 시진 동안이나 물속을 뒤지고 다녔다.
 조각배에 앉아 권혁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던 신수괴의는 동방복에게 물었다.
 “정말 여기서 건진 게 맞냐?”
 “그럼 여길 왜 왔겠어?”
 동방복의 까칠한 대꾸에 신수괴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을 걱정해 엉뚱한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방복의 대꾸에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헛수고야. 내가 여기서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지만 저런 오랑캐 놈이 나타난 건 처음이니까.”
 “그럼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신수괴의의 물음에 동방복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도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천지조화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동방복은 절대로 권혁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진이 흘러서야 권혁은 조각배로 다시 올라왔다.
 “허억, 허억, 허억······ 어르신, 정말 제가 여기서 발견 된 것이 확실합니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동방복의 서늘한 눈빛에 권혁은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왜 거짓말을 하시겠습니까? 그냥 확인 차 다시 한 번 여쭤본 것뿐입니다.”
 권혁의 대답에 동방복은 눈을 부라리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런 동방복의 모습에 권혁은 그놈의 영감탱이 성질 한 번 더럽게 고약하다고 속으로 욕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보통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때면 꼭 무슨 징조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엄청난 폭우가 내린다거나, 번개가 친다거나 하는 그런 기상 현상 말이다.
 “어르신!”
 “왜!”
 자꾸만 귀찮게 하는 권혁을 동방복은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얼굴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저절로 움찔하게 된 권혁이었지만, 반드시 물어봐야 할 일이었기에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발견되는 날에 비가 엄청 왔다거나, 번개가 치는 뭐 그런 날은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그 전 날이라던가.”
 “그런 일 없었어.”
 “잘 생각해보세요. 화창한 날 시공간이 열렸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동방복은 권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자꾸 귀찮게 물으면 화창한 날이 네놈 제삿날이 될 거다!”
 “······예.”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인 건가?
 권혁의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아직 포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 온 몸을 무겁게 만든 것이다.
 “돌아가야 하니 노를 저어라.”
 동방복의 말에 권혁은 오랜 시간 물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힘이 없었지만, 군소리 없이 노를 저었다.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 할 테니 그렇게 알아.”
 “수련이라니요?”
 권혁의 반문에 동방복이 눈을 찌푸렸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동방복의 짜증에 신수괴의가 대신 권혁에게 말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네 몸은 정상이 아니라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이 년 안으로 죽고야 만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공을 익혀야만 한다.”
 “무공이요?”
 무공이라는 소리에 권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늘을 날고, 손에서 장풍을 쏘는 그런 무공?
 생각만해도 몹시 마음이 두근거렸다.
 “무공을 배우고 싶은 거냐?”
 권혁의 반응을 보고 신수괴의가 웃으며 물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정말로 무공 고수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장풍을 쏘고 그러나요?”
 “경지에 오르면 가능하지.”
 “우와! 저 혹시 두 분도 그런 경지에 오르셨나요?”
 “뭐 그런 셈이지.”
 신수괴의의 대답에 권혁은 대단하다는 듯 두 노인을 번갈아봤다. 그러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네놈이 살던 세상에도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있었을 텐데?”
 “아니에요! 제가 살던 시대에도 무공을 수련하는 이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을 날고 손에서 장풍을 쏘는 고수들은 모두 허구적인 인물들이에요.”
 권혁의 대답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동방복도 귀를 기울였다.
 “무공을 수련하는 이들이 얼마 없다는 말이냐?”
 “예. 누가 무공을 익혀요? 체육관은 있어서 건강이나 호신을 위해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은 많아도 무공이라는 허상을 쫓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해요.”
 “허허허!”
 신수괴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무황제국이 건국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공은 일반인들에게도 그리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배우고 익힐 순 있었다.
 무황제국이 건국된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무인은 무황제국의 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라에서 무인 양성에 아주 큰 힘을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면 나라는 누가 지킨단 말이냐?”
 “당연히 군인과 군대가 지키죠.”
 “하면, 그들 중 고수가 있을 것 아니냐?”
 “무술에 능한 이들은 있지만 손에서 장풍을 날리고 하는 무공 고수는 없어요. 무공 고수라 하더라도 총 한 방이면 찍 소리도 못하고 죽는데 누가 힘들게 무공 같은 걸 수련하려고 하겠어요? 저 같아도 사격 연습을 더 하죠.”
 “총?”
 총이라는 단어를 생소해하는 두 노인의 모습에 권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다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쇠로 이뤄진 작은 모형에 화약을 넣고 쇠구슬을 쏴서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제가 살던 시대에는 그렇게 발전되어 사용되는 걸 총이라고 부르는데 그 종류가 수백 가지도 넘고 그 위력도 다 천차만별이라 아무리 빠르고, 단단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총 한 방이면 완전히 박살나죠.”
 권혁의 설명에 신수괴의가 되물었다.
 “돌화창(突火槍)이나 비화창(飛火槍)을 말하는 것이냐?”
 “음······ 저는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총의 조상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제가 살던 시대에는 총보다 강한 건 없어요. 총보다 더 강한 대포나 미사일이라는 것도 있는데 대포나 미사일은 한 방에 집이나 거대한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죠. 제 생각이지만 만약, 예전에 정말로 무공 고수들이 있었다면 총이 등장하면서 그 맥이 끊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흥! 그깟 것들이 어찌 진정한 고수들을 상대하겠냐!”
 동방복은 진정한 고수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듯 큰 소리로 반박했다.
 “분명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총의 가장 큰 장점은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단기간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무공은 오랜 세월 꾸준히 수련을 해야만 하잖아요? 그리고 아무나 무공 수련만 한다고 무공 고수가 되는 건 아니지만, 총은 대다수가 어느 정도 실력까지는 익힐 수 있어요. 그러니 무공 고수라 하더라도 버텨낼 수가 없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살던 시대에도 무공 고수가 넘쳐났겠죠.”
 권혁의 말에 동방복은 할 말이 없었지고 말았다. 그래도 무공 고수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이야기의 논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해봤자 소용없는 말이었다.
 신수괴의와 동방복은 미래의 세상에 무공 고수가 없다는 사실이 묘한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런 상실감이 느끼든 말든 권혁은 신수괴의에게 다시 부탁을 했다.
 “어르신, 한 번만 보여주세요.”
 신수괴의는 권혁의 부탁에 잠시 망설이다 이내 어차피 볼 일이고,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탁!
 조각배에서 뛰어오른 신수괴의는 허공에서 자신의 발을 밟으며 하늘을 날았다. 제 스스로 자신의 밟을 밟으며 앞으로 툭툭 나아가는 모습이 권혁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게만 보였다.
 호수 가장자리 땅까지 그렇게 날아간 신수괴의는 이어서 호수면을 밟으며 조각배로 달려왔다.
 “우와! 죽인다!”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온 몸에 와이어를 매달고 기계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을 신수괴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으니 권혁으로서는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수괴의가 조각배로 돌아오자 권혁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대단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우와, 정말 이런 게 가능하네요!”
 권혁의 모습에 신수괴의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잘 따라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이보다 더 대단한 고수가 될 수도 있지.”
 “정말요?”
 “물론이다.”
 신수괴의의 대답에 권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기회가 오다니!’
 벌써부터 온 몸이 흥분되고 당장이라도 무공을 배우고 싶어지는 권혁이었다. 어차피 체육교육학과의 실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체력 단련이라면 이골이 난 상태였다. 무공 수련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충분히 견뎌 낼 수 있다 자신했다.
 
 ***
 
 “오령신무(五靈神武)요?”
 동방복의 말에 권혁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느낌이 팍! 하고 왔다. 그런 권혁의 모습을 보며 동방복이 싸늘하게 말했다.
 “무공은 장난이 아니다. 어영부영 수련하다가는 나한테 맞아 죽든, 주화입마(朱火入魔)에 빠져 병신이 되든 그대로 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오령신무를 익혔던 이들이 여섯 명인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셋은 주화입마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끓었고, 나머지 셋은 그 자리에서 기혈이 터져 즉사했다.”
 곁에 있던 신수괴의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의례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권혁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저······ 오령신무 말고 안전한 무공을 배우면 안 될까요? 생각해보면 분명 오령신무보다 훨씬 안전하면서 충분히 고수가 될 수 있는 그런 무공이 있을 것 같은데요?”
 권혁의 말에 동방복이 담담하게 반문했다.
 “내가 왜?”
 “예? 당연히 그렇게 위험한 무공을 익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도 이왕이면 제가 안전한 무공을 익혀서 훌륭한 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시는 것이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너 따위 오랑캐가 죽든 말든 난 상관없다.”
 “······.”
 권혁은 동방복을 가만히 바라봤다.
 도대체 저 영감은 왜 저렇게 베베 꼬였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저렇게 고약한 성격이 된 걸까?
 권혁은 그나마 인간적이라 느껴지는 신수괴의를 바라봤다. 그에게 최대한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눈빛을 보내며 어떻게든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그러나 신수괴의 역시 동방복 못지않은 인간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네 몸이 오령신무를 익히기에 가장 적합해. 이전까지 오령신무를 익혔던 여섯 명 모두 무공엔 자질이 뛰어나다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결국은 모두 실패했지. 천극염열지체라면 오령신무를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차피 오령신무가 아니라면 네놈은 이 년 안으로 죽어. 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보단 뭐라도 발버둥을 쳐보면 좋잖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천극염열지체와 같은 최고의 신체를 타고 난 너를 통해 오령신무가 결코 불가능한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그걸로 좋고.”
 “······.”
 권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이 년 안으로 자신이 죽을지, 안 죽을지는 믿을 수 없었지만 어차피 자신이 아무리 거부를 해봐야 두 노인의 마음을 바꿀 순 없었으니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제5장 유수(流水)처럼 지나간 육 년
 
 
 “푸-하!”
 호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낸 사람은 권혁이었다.
 “언제쯤이면 포기 할 테냐? 오랑캐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네놈을 보고 있자니 새삼 오랑캐들의 집념이 무섭다는 걸 똑똑히 확인하겠다.”
 한가롭게 조각배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동방복은 수면 위로 올라온 권혁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념으로 따진다면 과연 동방복만 할까?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오령신무로 하여금 잃고서도 또 다시 일곱 번째를 들였으니 그야 말로 집념의 화신이라 할 수 있었다.
 권혁은 그런 생각을 애써 지우며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죠. 제겐 유일한 방법인데.”
 권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수면 아래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런 권혁의 모습에 동방복은 헛짓으로 시간 낭비한다는 듯 혀를 찼다.
 벌써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었다.
 삼 년 동안 권혁은 호수를 샅샅이 조사했다. 그러나 호수 어느 곳에서도 권혁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나 시공간을 뛰어 넘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려 반 시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권혁이 참지 못하고 수면 위로 다시 머리를 꺼내놓았다.
 한참이나 참았던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권혁이었다.
 “사부님, 물 속에서 한 시진 정도 넉넉하게 숨을 참을 수 있는 무공은 없나요?”
 권혁의 물음에 동방복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네놈이 이젠 미친 거냐? 그냥 물고기가 되는 무공이 없냐고 묻질 그러냐!”
 동방복의 핀잔에도 권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삼 년이라는 시간이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동방복이 호통을 친다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며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권혁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권혁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사실, 반 시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잠수를 할 수 있는 것도 동방복이 대선참오진결(大仙參悟眞訣)이라는 호흡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대선참오진결은 참선(參禪)을 위해 오래전 불문(佛門)에서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흡법으로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무공으로서의 효용성은 크게 없었지만, 그것을 동방복이 약간 변형시켜 권혁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배우기 위해 권혁은 동방복의 온갖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
 다시 반 시진이 지나자 권혁의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만 가자!”
 유유자적한 휴식도 잠깐이지 그것이 두 시진을 넘어가니 동방복으로서는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그는 오령신무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는 권혁으로 인해 요즘처럼 즐거운 날이 별로 없었다.
 대선참오진결도 권혁이 동방복의 비위를 맞췄기 때문에 알려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오령신무를 더욱더 열심히 수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알려준 것이었다.
 “벌써요? 한 번 만 더 찾아볼게요.”
 권혁으로서는 조금만 더 수색을 하고 싶었다.
 “요 오랑캐 놈이 요즘 들어 살살 기어오르는 꼴이 제대로 몸 좀 풀었으면 하는 거냐?”
 동방복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에 권혁은 두 말하지 않고 조각배로 올라왔다. 아무리 적응이 됐다고 하지만, 동방복의 성격은 여전했다.
 눈치를 봐가면서 행동해야지 그렇지 않고 선을 넘어서면 정말 인정사정없이 얻어맞는 수가 있었다. 그랬던 기억이 두 번이나 있는 권혁으로서는 세 번째는 절대로 없어야만 했다.
 조각배로 올라온 권혁의 모습은 삼 년 전과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삼 년 전만 하더라도 갓 스무 살이 되어 상당히 앳된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듬직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머리카락을 등 뒤까지 길게 기르고, 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거뭇거뭇한 수염까지 돋아나 있었으니 누가 봐도 남자다운 남자의 모습이 역력했다.
 다부졌던 체격은 삼 년 전보다는 살이 약간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유연성과 근육의 질은 삼 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하게 좋아진 상태였다.
 노를 저으며 권혁이 동방복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사부님, 이제 그 오랑캐라는 소리 좀 그만 하시면 안되요? 제가 아무리 이곳 사람이 아니라 해도 이제는 그만 하실 때도 되셨잖아요? 그리고 사부님의 유일한 제자가 오랑캐라고 남들이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동방복은 권혁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상관없다! 그리고 네놈이 살아남을지 확신 할 수도 없는데 내가 왜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해? 괜한 소리 지껄이지 마!”
 동방복의 냉정한 소리에도 권혁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살살 웃으며 대꾸했다.
 “사부님, 솔직히 저 죽을 병에 걸린 건 아니죠? 사부님도 그렇고 망 사부님도 그렇고 제게 오령신무를 익히게 하려고 괜한 말씀 하신 거죠?”
 “그렇게 궁금하면 오령천무심결(五靈天武心訣)을 열흘 동안만 중지하고 있어봐. 네놈 스스로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낄 테니까. 그리고 그때가서 살려달라고 해봐야 난 네놈이 죽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것이니 결정은 스스로 알아서 해.”
 “······.”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게 말을 하는 동방복으로 인해 권혁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싸늘해서라기 보단 스스로 한 잘못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이 년 밖에 살지 못한 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았던 권혁은 이 년하고도 석 달이 더 지났을 때부터는 아예 믿지를 않았다. 그래서 신수괴의에게 살짝 물어본 적이 있었고, 그때 그는 지금의 동방복처럼 똑같은 말을 해주었었다.
 삼 일.
 열흘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고작 삼 일만에 권혁은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변하며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었다. 그때서야 권혁은 자신이 천극염열지체라는 기괴한 체질을 타고 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분명 한 사실은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는 천극염열지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말은 시공간을 초월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때 언어 능력도 저절로 생겨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한어(漢語)를 어떻게 알겠는가?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권혁이 살던 시대에서도 머리에 충격을 받거나, 어느 날 갑자기 외국어 실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는 사람들이 TV로 소개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공간을 초월한 자신에게 언어 능력 정도는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 망 사부님이 돌아오셨네요.”
 권혁은 호수면 가장자리에 서 있는 신수괴의를 발견했다. 동방복은 이미 훨씬 전부터 그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조각배를 호수면 가장자리에 붙여놓기가 무섭게 권혁은 경쾌한 몸놀림으로 신수괴의 앞으로 다가갔다.
 “잘 다녀오셨어요?”
 권혁의 인사에 신수괴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왔지.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더 늘었구나.”
 신수괴의는 단번에 권혁의 실력이 늘었음을 간파했다.
 “아- 깜짝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역시 사부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네요.”
 권혁의 너스레에 신수괴의는 귀엽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옥함을 꺼내 권혁에게 건네주었다.
 “어렵게 구한 것이니 지금 복용하도록 해라.”
 “지금이요? 나중에 먹으면 안 될까요?”
 권혁은 먹기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수괴의가 구해오는 환약(丸藥)을 복용할 때마다 지독한 추위를 경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 번 말하면 군소리 없이 쳐 먹어!”
 곁에 있던 동방복이 소리를 버럭 내지르자 권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옥함을 열어 하늘빛이 감도는 환약을 바라봤다.
 정말 먹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안 먹으면 동방복에게 개 맞듯 얻어맞을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으······ 진짜 싫다!’
 입안부터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온 몸으로 퍼지는 강렬한 음기를 느끼며 권혁은 재빨리 오령천무심결을 펼쳤다. 온 몸으로 퍼져 있던 내공들이 빠르게 순환하며 음기와 융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권혁은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었다.
 환약을 복용하고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는 권혁을 동방복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 괜한 일을 자초해선!”
 “녀석으로서도 믿을 수 없었을 테니 어쩌겠나.”
 “말을 하면 믿어야지! 의심 많은 오랑캐 놈! 흥!”
 더 이상은 보고 있기도 싫다는 듯 동방복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수괴의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들이 한 말은 권혁이 신수괴의의 말을 듣고 삼 일 동안 오령천무심결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벌써 폭발해야 했을 천극염열지체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대설어의 내단과 오령천무심결의 내공에 의해 억눌리고 있었다. 그러다 권혁이 오령천무심결을 중지하면서 극에 이른 천극염열지체의 양기가 불처럼 솟아 오른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솟아오른 천극염열지체의 양기가 오령천무심결의 내공으로 인해 다시 억눌렸다곤 하지만, 언제 다시 폭발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신수괴의와 동방복은 예정에도 없던 음기를 충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을 야기 시킨 간접적 원인 제공자는 신수괴의 자신이었다. 그는 권혁의 몸속에 남아 있을 대설어 내단이 그 효과를 아직까지는 충분히 발휘할 것이라 여겼기에 적당하게 권혁이 고통만 느끼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신수괴의의 예상을 벗어나고 만 것이었다.
 신수괴의는 권혁이 환약의 음기를 모두 흡수할 때까지 조용히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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