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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 1중대 2소대

2017.11.09 조회 9,843 추천 170


 강원도 철원, 화천 등은 중동부전선 최북단으로 한국군의 최정예인 백골부대, 칠성부대, 승리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그중 15사단인 승리부대가 맡은 구역은 철책선 방어 구역과 종심 방어 구역이 전군에서 가장 짧기로 유명하다.
 ○○대로 불리는 ○통문에 국산 군용 트럭인 닷지(K-311)가 특유의 엔진 음을 내며 진입했다.
 차량의 출현으로 바짝 긴장했던 통문 근무자들은 트럭에서 내리는 낯익은 얼굴을 확인하고 경계를 풀었다. 통문 책임자인 조인한 소위가 작지만 절도 있는 목소리로 한 사내를 맞았다.
 “필승, 어서 오십시오, 박 중위님.”
 “날씨 참 지랄 맞다.”
 박민석 중위는 인사도 받지 않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건들거렸다. DMZ 수색에 나서는 지휘관답지 않게 조금은 경망스러운 모습이었다.
 K-311 트럭에서 내린 수색대 대원들이 엉성하게 대오를 맞추고 통문 앞에 모여 섰다.
 소대장을 닮아서일까? 수색대 병사들은 하나같이 군기가 엉성했다. 그나마 갓 일병을 달고 첫 수색을 나가는 이성재 일병만이 잔뜩 긴장해 있을 뿐이었다.
 ‘어쩌다 수색 대대가 저렇게 됐는지.’
 조인한 소위가 박민석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물론 수색대 전체를 싸잡아 하는 말은 아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박민석과 그의 소대가 문제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동동거리던 박민석은 뒤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하이바에 구멍이라도 뚫렸냐?”
 “그, 그럴 리가요.”
 조인한은 잽싸게 초소로 달려가 무전기를 들었다. 소초장실을 거쳐 대대 본부까지 확인받아야 비로소 통문이 열리는 것이다.
 소초장에게 보고하고 대대 본부를 연결한 조 소위는 통문개방 승인을 받고 무전기를 박민석 중위에게 건넸다.
 “중대장님이 바꾸라는데요?”
 박민석이 무전기를 건네받기 무섭게 수화기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 박민석이, 너 또 대기 초소에서 자빠져 자다가 걸리면 진짜 국물도 없어!
 “전역이 얼마나 남았다고 그렇게 빡세게 구십니까?”
 - 뭐? 야, 이 새끼야! 네가 무슨 사병이야? 장교면 장교답게 굴어야 될 거 아니야! 너 이 새끼······.
 중대장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한번 시작하면 송화기가 침에 젖을 때까지 수다를 떤다고 해서 ‘K3’라는 별명을 가진 이였다. K3는 경기관총으로 중기관총에 비해 분당 발사수는 많지만 화력이 떨어지는 지원화기다. 말은 많은데 쓸 말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 중대장을 빗대어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적잖은 시간을 잔소리를 듣느라 허비한 후에야 비로소 통문이 열렸다.
 수색 대대 대원들은 실탄을 지급받고 개인장비 안전 체크를 한 후 삽탄을 했다. K2 소총의 조종간을 안전으로 바꾸는 이성재 일병의 손이 벌벌 떨렸다.
 “다 됐으면 출발하자.”
 소총을 엉덩이에 걸치고 가는 박민석을 보고 조인한 소위가 혀를 찼다.
 “꼴통 새끼들, 빨리 문 닫아!”
 조인한 소위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통문 병사들이 부랴부랴 문을 폐쇄했다. 고리를 걸고 자물쇠를 채우는 병사들을 향해 조인한이 작게 말했다.
 “교대 시간 전에 오면 절대 문 열어 주지 마. 알겠어?”
 “당연하지요.”
 부대 복귀 두 시간 전에 귀환한 수색대에게 문을 열어 줬다가 대대장한테까지 불려 가서 조인트를 까였었다. 물론 문제의 당사자는 박민석 중위였다.
 조인한은 당시를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소위 임관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멋모르고 당한 케이스였다.
 부대 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박민석에게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갓 부임하여 군대 물정을 모르는 하사관이나 햇병아리 초급장교들은 박민석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 * *
 
 수색로를 따라 이동하는 내내 이성재 일병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자유분방한 신세대답게 겁 없이 선임자를 불렀다.
 “김상현 일병님.”
 “왜?”
 “DMZ는 언제 나오는 겁니까?”
 “여기가 DMZ잖아.”
 다른 소대 같으면 어디서 신병이 이동 중에 소음을 내냐고 눈을 부라렸을 텐데, 이번 수색조는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역시 박민석의 소대라서 그런가?
 다만 분대장인 백문엽 하사만이 인상을 쓰고 주의를 줄 뿐이었다. 그나마 백문엽이 있어서 소대가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성재 일병은 자신이 생각하던 DMZ와 너무 달라서 조금은 실망했다. 거친 풀과 태고의 밀림을 상상했던 그에게 동네 약수터를 연상시키는 주변 풍경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간혹 마주치는 지뢰 경고판이 없다면 영락없는 동네 뒷산이었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느닷없이 박민석 중위가 손을 들어 부대를 정지시켰다. 이성재 일병은 배운 대로 재빨리 무릎앉아 자세로 몸을 낮췄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낮춘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고 일어났다.
 ‘젠장.’
 훈련소에서 비지땀을 흘릴 때만 해도 군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박민석 소대로 자대 배치를 받고부터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뭐 하나 배운 대로 돌아가는 구석이 없다. 규율이나 규칙은 태반이 무시됐고 위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부대원들도 하나같이 이상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온 왕고 조성민 병장은 중대에서 저능아로 불렸는데, 그가 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통일이 먼저 된다고들 말한다.
 또 병역 비리로 스물여덟 살에 입대한 재벌 3세 하재영 상병은 자뻑대왕, 사채업자인 아버지를 끼고 부대 내에서 돈놀이를 하는 최동현 상병은 일수쟁이, 사학과 출신이면서 태정태세문단세도 모르는 김상현 일병 등등 구성원들의 이력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인물은 다름 아닌 소대장 박민석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부친이 개인 병원을 운영한다고 한다. 소대장 월급으로 150만 원 이상 꼬박꼬박 받고 1년에 두 번, 보너스까지 받으면서도 늘 돈이 없어 허덕인다. 그래서인지 부대원들에게 삥을 뜯기가 일쑤였다. 물론 돈 많은 하재영과 최동현이 주 타깃이긴 했지만.
 게으르고 책임감 없고 약속 안 지키는 등, 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결정체가 바로 박민석이었다.
 여기까지가 막내 이성재 일병이 보아 온 1중대 2소대의 모습이었다. 더 겪어 봐야겠지만 한마디로 요상한 부대였다.
 “백 하사, 시간이 될까?”
 “서두르면 간신히 맞출 것 같습니다.”
 “그런가? 계속 전진.”
 고참들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성재의 눈이 반짝였다. 언젠가는 그도 고참이 된다. 부대원을 깡그리 바꾸지 않는 한, 저들을 모델로 삼아야 했다.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완만했던 길이 점점 가팔라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경사가 완만해질 즈음, 백문엽 하사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사사삭.
 수색대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몸을 낮췄다. 이성재 일병만이 눈을 껌뻑이고 서 있었다. 선임인 김상현 일병이 눈을 부라리고 낮게 소리쳤다.
 “뭐 해, 새끼야! 빨리 앉아!”
 이성재 일병은 김상현의 우악스러운 손에 이끌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김상현은 그런 그를 향해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짬찌(짬밥 찌그러기) 새끼, 신병 새끼가 빠져 가지고.”
 “······.”
 이성재는 정신이 없었다. 김빠진 맥주처럼 흐느적거리던 부대원들이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을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일관성 없는 행동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일병 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신병 타령이야.’
 DMZ 수색을 해야 정식 대원으로 인정하는 풍조 때문에 이성재는 아직까지도 신병 소리를 듣고 있다. 이번 작전을 마치면 그 지겨운 신병 딱지도 떼는 것이다.
 숨죽이고 전방을 향해 소총을 겨누던 수색조 앞으로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인간과 야생 노루는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탐색전을 벌였다.
 수색대 대원들은 모두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박민석 중위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끼리릭.
 기분 나뿐 금속 마찰음이 고요를 깨고 퍼져 나갔다. 청각이 뛰어난 노루가 이를 놓칠 리 없다.
 바삭.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던 녀석을 향해 작은 소음이 일었다.
 푸슝.
 털석.
 노루의 두개골을 단번에 관통한 깨끗한 솜씨였다. 노루가 쓰러지자 수색대 대원들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대장님, 굿인 거 알죠?”
 “나 제대하면 누가 이 짓 하냐?”
 “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박민석은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권총에서 소음기를 제거해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가 희희낙락하는 가운데 이성재만이 눈을 지릅뜨고 대원들과 죽은 노루를 번갈아 봤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이성재의 옆구리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찔렀다. 김상현 일병이었다.
 “뭐 해? 지지 않고.”
 “예?”
 “빨리 짊어지라고. 아, 이 새끼 어리바리해 가지고.”
 김상현에게 등을 떠밀린 이성재는 차마 죽은 노루를 만질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김상현 일병이 도끼눈을 뜨고 뭐라고 하려는 순간 백문엽 하사가 그를 저지했다.
 “김상현, 네가 들어. 선임이라는 새끼가 후임 하나 관리 못해서 계속 엇나가게 하나.”
 “시정하겠습니다.”
 “하여튼 별장 가서 보자.”
 “흐미.”
 별장이라는 말을 듣자 김상현의 얼굴이 노래졌다. 선임이 분대장한테 깨지자 이성재는 바짝 얼어서 자동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쫄따구 들어와서 허리 좀 펴나 했더니.”
 “제가 들겠습니다.”
 “됐다 잉.”
 김상현 일병은 건빵 주머니에서 군화 끈을 꺼내 노루의 양 다리를 묵고 짧은 기합성과 함께 들어 올렸다. 양 어깨로 노루의 몸을 지탱하고 묶은 다리 사이로 머리를 내미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이성재는 계속되는 실수로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는 부대원들에게 문제가 있어 보였다.
 ‘노루는 왜 잡은 거야? 그리고 소음기는 어디서 났지? 저게 아무나 쓸 수 있는 장비였나?’
 매복지로 향하면서 노루는 왜 가져가는지 의아했다. 거기에다 소음기까지 쓰면서 함부로 실탄을 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원래 군대가 이런 건가? 다른 부대도 다 이러나?’
 수색에 참여하고부터 계속해서 든 의문이었다.
 이동이 재개되고 몇 분 후 작은 갈림길이 나왔다. 길잡이를 하던 백문엽 하사는 주저 없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상현 일병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막내 이성재에게 귓속말을 했다. 입에서 나는 쇳내에 이성재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른쪽으로 가면 ○○○GP야. 잘 기억해 둬.”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우리랑 떨어져서 길 잃으면 거길 찾아가라는 소리다. 큭큭.”
 “예?”
 “뭘 그렇게 놀라. 전투 중에 혼자 낙오하면 헤매지 말고 GP로 가라니까.”
 “예에?”
 이성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전투는 뭐고 낙오는 뭐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울상을 짓는 이성재를 보고 김상현 일병이 키득거렸다. 그것을 보고 후미에 있던 최동현 상병이 웃으며 말했다.
 “저 새끼 또 구라치네.”
 “구라라니요. 매복조가 전멸한 사건 모르십니까?”
 “김상현이, 그런 개 뻥을 믿냐.”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지 말입니다.”
 “있기는, 후임 놀려 먹으려고 누가 지어 낸 말이겠지.”
 “아닌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앞에까지 들렸는지 부대가 이동을 멈췄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백문엽 하사가 둘의 철모를 주먹으로 갈겼다.

댓글(44)

말없는장미    
기대됩니다. 건필하세요.
2017.11.09 17:34
돈복사    
이거 뭔가 대작 삘이네요. 겨우 한편 읽었는데, 장면이 다 머릿 속에 그려집니다. 영화 같아요.
2017.11.17 02:17
무영소소    
이양반은 항상 대작을 써왔어 문제는 연중이라는거지 언제 완결날지 모르는 연중 길게 늘어진 연재주기 독자를 씹어먹는 무관심 바로 그게 문제였지 브라반트의 흑기사나 완결내지 이건 또 연재하남 어차피 민영드바르 필 날거 아닌가 ???
2017.11.21 15:50
서백호    
건필^
2017.12.03 15:56
알게모냐    
어나 15사 나왔는데 전역한지 10년이 넘었는데 나오니깐 반갑네
2017.12.04 18:19
변진섭    
건필하시고 잘보고 갑니다.
2017.12.06 18:08
hauhet    
노루 내장이랑 피도 처리 안하고 혼자 들고 이동 힘들텐데..
2017.12.17 00:21
파랑파랑새    
오 민영드바르 작가 어쩐지 익숙하다 했어오
2018.01.02 20:31
Khaizero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2018.01.25 14:37
소흥    
잘보고있습니다ㅎ 저에게도 새해복을 내려주십사와 글을남기고갑니다ㅎ 추운날씨에도 고생 많으십니다 감기조심하세요
2018.01.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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