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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7.11.24 조회 48,968 추천 521


 신월동에 위치한 서서울 호수공원.
 봉황대기 고교야구가 열리는 신월야구장의 바로 옆에 위치해있는 곳이다.
 
 -탁탁탁탁탁
 -후욱.후욱.
 
 호수의 주변을 따라 난 산책로를 계속해서 달린다.
 몇바퀴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탈진하기 직전까지 달려야 속안의 천불이 조금이라도 사그러들 테니까.
 
 서울 세한고 야구부 3학년 한태준.
 지금까지의 내 삶은 저 몇가지 단어로 함축시킬수 있었다.
 지역의 명문으로 전국대회를 밥먹듯이 나가는 강팀.
 하지만 3학년이 된 지금까지 세한고에서 이룬 내 족적은 희미했다.
 삼할을 채 넘지 못하는 그저그런 우익수가 내 포지션이니까.
 
 처음부터 세한고의 주역이 되지 못한것은 아니었다.
 구단주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좌완 파이어볼러(Fireballer).
 최고구속 155km의 강속구 투수.
 그것이 내가 가진 타이틀이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일학년 때까지는 말이다.
 
 -후욱. 후욱.
 
 호흡이 거칠어진다.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해 눈이 따갑다.
 하지만 상관없다.
 극한까지 달리며 얻게되는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만든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150km를 찍었던 나는 손쉽게 세한고에 입학했고, 기자들의 이목을 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국대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투수로서의 내 아이덴티티(Identity)는 완전히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 증후군.
 
 절망과도 같은 그 불청객이 내몸에 들어오고 말았다.
 원래부터 제구력이 좋은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가운데조차 던지지 못할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고교야구에서는 한가운데 만으로 충분했다.
 좌완 155키로의 패스트볼은 알려준다 해도 쉽게 칠수있는 볼이 아니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운드에만 올라서면 그 한가운데조차 던지지못하는 몸이 되었다.
 
 연습투구때마다 강렬하게 내리꽃던 내 포심 패스트볼은 경기장 안에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던지는 공마다 땅에 패대기쳐지거나, 포수가 점프를 해도 잡지못하는 높이로 날아가거나, 타자가 빈볼로 의심할만큼 몸쪽으로 향했다.
 
 새가슴?
 
 천만에.
 
 마운드에 오를때 느꼈던 중압감은 중등부 우승과 함께 졸업한지 오래다.
 하지만 나의 맹렬한 투쟁심은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극복과는 연관이 없었다.
 전국대회 본선이라면 모를까, 비시즌에 치러지는 연습경기에서조차 나는 공을 마음먹은대로 보내지 못했다.
 
 '한심한놈..!!'
 
 전가의 보도라고 부를 수 있는 광속구(光速球).
 하지만 그 무기를 쥐고도 썩은 무 하나를 자르지 못하는게 내 처지였다.
 
 기대감에 부풀었던 코치님들의 상심한 표정.
 치켜세워주던 시절이 무색할정도로 비아냥대던 동료.
 그나마 봐줄만한 타격과 강한 어깨 때문에 나는 우익수 레귤러로서 경기에 나설 수 있었지만, 그저그런 선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감독님께서 정식으로 타자전향을 권유하셨다.
 
 그동안은 타격 훈련보다 투구훈련에 비중을 쏟았다.
 감독님 역시 내 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투구연습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되는 봉황대기 8강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한해 고교 야구 농사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적호(赤虎)기 고교야구.
 2018년부터 창설된 적호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는 1년동안 치루어진 대회에서 일정 기준 포인트를 쌓은 상위 8개 고교팀만이 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세한고는 봉황대기 결승에 진출할 경우, 적호(赤虎)기 고교야구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태준아, 미안하게 됐다.]
 
 8강을 앞두고 씁슬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건낸 김세덕 감독님.
 
 감독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으니까.
 투구훈련 때문에 소홀히 한 타격연습.
 그것만 가지고도 외야 한 자리를 꿰찰 만큼 타격소질 역시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안타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언제까지 내게 투구훈련을 시킬수는 없으리라.
 내일부터 나는 그동안의 투구 훈련을 내려놓고 타격과 수비훈련을 위주로 연습하게 되겠지.
 
 타자전향.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긋지긋하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내키지 않았다.
 나에게있어 '마운드' 란 '야구' 와 동치에 놓을만큼 소중하다.
 어떻게든 스티브인지 나발인지를 극복하고 마운드에 다시 서고 싶었다.
 
 -탁탁탁...탁
 -후우-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눈앞이 가물가물할때쯤에야 비로소 멈추어섰다.
 
 -피식
 
 나는 돌연 방금 품었던 생각이 떠올라 실소가 나왔다.
 마운드는 커녕 스크린야구장에서 던졌던 공조차 가운데로 향하지 않았다.
 
 이런 꼴로 고교에이스?
 프로야구 선수?
 메이저리그?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가.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마음에 입을 열었다.
 
 -꺄아아악
 
 하지만 내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공원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먼저 울려퍼졌다.
 
 "뭐지?"
 
 들려온 비명소리는 다소 앳되어보였다.
 조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 호수공원의 밤은 꽤나 어둡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어린아이들이 올곳은 아니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호흡을 억지로 억누르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거기 누구 있니??"
 
 소리가 난 곳에 도착한 나는 어스름한 윤곽이 보이는 두 형체와 마주했다.
 셰퍼드 정도 되어보이는 큼직한 견종 하나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크기의 사람 한명.
 
 주저앉아있는 어린 아이를 향해 셰퍼드가 슬금슬금 다가서고 있었다.
 -크르르르..
 
 '위험하다.'
 
 나는 주저없이 바닥에 있던 돌을 집어들었다.
 딱 적당한 야구공정도의 크기.
 일반 성인이 던져도 꽤나 효과적이겠지만 한때 파이어볼러였던 내가 던지면 흉기나 다름없을 터였다.
 
 그리고, 제대로 맞힐 자신이 있었다.
 웃프게도, 여긴 마운드가 아니니까.
 
 "흡! "
 
 전력으로 던진 공이 큰 덩치의 견종에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간다.
 
 -퍽!!!!!!
 "깨앵!!"
 
 정확히 복부에 명중.
 견종은 내가 던진 돌에 나가떨어졌고, 이내 기절한 듯 축 늘어졌다.
 
 나는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니?"
 
 가까이서 본 아이의 모습은 꽤나 특이했다.
 복장과 머리스타일이 동자승의 그것과 흡사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 얼굴의 당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배시시웃었다.
 
 좀전에 급박했던 상황 치고는 너무 평온한 모습이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는 이내 손을 내밀었다.
 아이의 자그마한 손에 꽉 차는 크기의 무언가.
 손 위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검은 케이스가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엉겹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어스름한 밝기 때문에 무어라 쓰여져 있는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일까?
 나는 케이스에서 시선을 돌려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니 보려 했다.
 그런데,
 
 좀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었던 아이가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기가막힌 상황에 나는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허.."
 
 내 입에서 나도모르게 탄식이 터져나왔다.
 아이뿐만 아니라 내가 기절시킨 견종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꿈이라도 꾼것일까.
 하지만 내 손에는 아직 검은색 케이스가 들려있었다.
 
 이게 아직 내 손에 있는걸 보니 꿈은 아니다.
 그럼 이건 뭐지?
 
 조명 근처로 이동해 케이스에 음각처리된 글자를 확인해본다.
 
 검은색 케이스 상단에는 이렇게 쓰여져있었다.
 
 -에이스 카드<Ace Card>-

작가의 말

에이스 카드. 출발합니다.

댓글(201)

묘한인연    
비밀글입니다.
2017.11.26 20:01
박경원    
비밀글입니다.
2017.11.26 20:51
신지(噺識)    
기대됩니다!
2017.11.27 13:16
didn    
새 작품으로 돌아오셨군요.
2017.11.29 21:34
초록유리    
복을 받아보십시다~~
2017.11.29 21:56
고금제일검    
믿고 따라가요.
2017.11.29 22:14
민차    
끝까지 하드캐리? 따라갑니다
2017.11.30 06:36
노란거울    
쪽지 보구왓습니다 연재축하드립니다 ^^
2017.11.30 09:33
Amos.H    
쪽지 보고 일단 선작해둡니다! 퇴근길에 읽어야지!
2017.12.01 17:44
까칠서생    
중간에 읽다가 돌아와서 써봅니다. 주인공이 절망에서 돌아오자마자 더 큰병이 걸렸네요. 바로 중2병. 혼자서 의기양양 깝치는거보니 확 깹니다. 그렇다고 유머러스 한게 아니고...아쉬운 글이네요
2017.12.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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