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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경영의 귀재 [E]

경영의 귀재 1-1권

2017.11.22 조회 10,758 추천 60


 # 시작하기에 앞서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작중 모든 단체와 인물은 허구이며, 혹 현실과 비슷하다 한들 모두 우연의 일치입니다. 또한, 작중 재미를 위해 과장과 축약이 들어간 장면이 많기에, 실제 상황 및 학문적 관점이 경영학과는 차이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경영의 귀재>는 ‘현대 판타지’ 소설입니다.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 프롤로그 ― 심장마비
 
 필연은 언제나 우연을 가장해 다가온다.
 제일 낮은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필연의 주인공이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
 이기수는 지금 뭘 하고 있었는가 하면······.
 와플 가게 사장과 싸우고 있었다.
 
 ***
 
 “사장님. 제가 봤을 때는 무리 같아요.”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기수의 말에 사장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건 진짜 아니에요.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여기서 벌써 2년이나 장사를 해서 잘 알고 결정한 거야. 근데 겨우 4개월 일한 네가 뭘 안다고 자꾸 대들어!”
 둘이 언쟁을 하는 이유는 대강 이랬다.
 지금 둘이 일하는 가게는 관악구에 있는 와플집이었다.
 해당 점포는 낙삼대 쪽문에 위치한 5층 건물 구석에서 2평 남짓한 공간을 쪼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싸고 맛도 그럭저럭 좋아 적당히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래에 새롭게 떠오르는 간식계의 샛별 츄러스가 홍대, 이태원을 넘어 낙삼대 주변까지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 그깟 츄러스가 뭐냐고 할 법도 했지만,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선 굉장히 섬뜩하기까지 한 출현이었다.
 까닭에 철 지난 와플은 매상이 감소.
 사장은 초조해하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바로 큰 점포로 옮겨 카페 형식으로 재오픈을 하겠다는 것!
 하지만 기수가 이에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꺼냈다.
 “사장님, 제 생각으론 학생들이 여기 오는 이유가 싸고 부담 없기 때문이라고 봐요. 근데 카페로 확장해 버리면 임대료 때문에 가격이 팍 뛸 거잖아요? 그럼 부담이 가지 않을까요. 게다가 주변에 경쟁할 카페도 너무 많구요.”
 맞는 말이었다.
 대학로는 그 고객 특성상 가격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
 이에 많은 업체들이 가격으로 경쟁을 하는데, 출혈 경쟁도 마다치 않기 때문에 주변 카페의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게다가 문제는 가격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테이크 아웃 전문 빅사이즈 커피숍이나 생과일 쥬스 혹은 톡톡 튀는 신메뉴로 무장한 카페가 수도 없이 생겨났다.
 그 상황에 카페로 전업한다?
 사장은 나름 ‘카페’가 아닌 ‘편히 쉬며 먹을 수 있는 와플 겸 커피 가게’로 인식되길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안타깝게도 소비자들은 그렇게 유심히 뜯어보질 않는다.
 3초. 정확하게 3초 만에 결정됐다······.
 단지 슥 훑어보고, ‘와플 카페네.’ 하고 말아 버린다.
 그 순간 소비자에겐 카페로 분류되고, 무의식적인 비교 속에 강력한 경쟁자에게 압도될 수밖에 없다.
 이후 남을 선택지는 뻔했다.
 피눈물을 머금고 출혈 경쟁을 하다 도산하던가,
 반강제로 업종을 변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이를 보지 못하고 계속 고집을 피웠다.
 “이미 다 결정된 거야. 네가 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야?”
 “여기서 오래 일하고 싶어서요.”
 솔직한 마음이었다.
 기수는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
 면적이 좁긴 했지만 그만큼 동선도 짧아 앉은 자리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음은 물론, 시급도 짭짤했다.
 하지만 저것도 가게가 망하면 모조리 물거품 아니던가?
 될 수 있으면 그런 상황은 최대한 막고 싶었다.
 이번에 크게 목돈이 나갈 일이 있음과 동시에, 재개발 때문에 쫓기듯 이사해서 계약금 낸다고 예금이 똑 떨어졌다.
 이 가게가 망하면 말 그대로 쫄쫄 굶어야 할지도 몰랐다.
 “됐어. 너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말투가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어른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예.’ 하고 말지, 어디서 자꾸 말대꾸야?”
 “저는 그냥 그럴 것 같다고 말씀만 드린 것뿐입니······.”
 “또. 또. 또! 혓바닥에 아주 기름칠을 해놨나, 무슨 말만 하면 토를 달아 젖히네! 이래서 못 배워 먹은 새끼는······ 쯧.”
 “아니,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옵니까?”
 “이게 전부 다 네가 못 배워서 그런 거야. 고졸이라서 어른 말에 ‘네.’ 하지 못하고 깝죽거리는 거라고. 알간?”
 참고로 주인의 나이는 29살.
 기수와 겨우 5살 차이였다.
 “똑바로 살아, 새끼야. 똑바로. 안 그래도 망한 조진 인생 계속 조지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라. 알겠어?”
 도를 넘은 폭언에 가슴속으로 뭔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야만성을 거세당함은 물론, 성인이 됨과 동시에 법에 의한 강제와 사회 적응을 위해 꾹꾹 눌러왔던 감정.
 분노였다.
 씩씩거리길 3초.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뛰어다녔다.
 ‘여기서 대들면 이 일 때려치워야 한다.’
 십만 원 남짓한 예금.
 곧 다가올 월세와 공과금.
 끓던 마음에 물이라도 끼얹은 듯 가슴이 차가워졌다.
 ‘됐다. 그만하자. 이게 뭔 오지랖이야.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하자. 망하면 그때 다른 일자리 구하면 되겠지.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안 들을 거야.’
 짜증이 나고 원통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사장은 갑이고, 기수는 을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곤 사과했다.
 “죄······.”
 “잘 대해주니까 만만해 보이디? 이거 보니까 에미, 에비 없이 자라서 위아래 구분이 없네. 쯧, 한심한 새끼.”
 아니, 사과하려고 했다.
 딱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닙니까? 그래요. 저 알바생입니다. 근데 이 점포 좋고,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서 그냥 개인적인 생각 조심스럽게 얘기 좀 했어요. 근데 그게 부모까지 들먹여야 할 정도로 크게 잘못된 일입니까? 예!?”
 억울함을 담아 물었다.
 “하, 이놈 눈 부라리는 거 보소. 내가 틀린 말 했냐? 네 부모도 네가 이럴 거 예상하니까 버린 거 아니냐고. 고아 새끼들은 딱 봐도 이유가 있다니까.”
 난데없이 튀어나온 부모 욕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머리가 하얘지며 이성이 끊어졌다.
 “야, 이 개새끼야! 여기서 부모 얘기가 왜 나와!”
 분노를 억누르던 사슬이 박살 남과 동시에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여과 없이 그대로 혓바닥으로 옮겨갔다.
 실직할 게 분명했으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뭐? 개새끼? 어차피 카페로 바꾸면서 예쁘장한 여자애로 바꿔야겠다 싶었는데 잘됐다. 너 해고야! 당장 꺼져!”
 “그래, 씨발! 나간다. 어디 나 없이 잘해봐라. 솔직히 내가 얼굴마담까지 해가며 열심히 일했으니 망정이니, 나 없었으면 진작 망했어!”
 사실이었다.
 연예인만큼은 아니었지만,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주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기수였다.
 아마 그를 보기 위해 왔던 사람들도 은근히 있었을 것이리라.
 
 퍽!
 
 기수는 앞치마와 모자를 벗어 사장에게 집어 던지곤 그대로 점포 밖으로 나와 버렸다.
 등 뒤로 욕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리를 걷길 5분.
 문득 억울함이 몰려왔다.
 믿고 있던 애인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내심 마음에 들던 직장이었던지라 간 쓸개 다 빼 줘 가며 내 가게처럼 일하고, 쓴 직언까지 마다치 않았다. 근데 그 결과가 겨우 모가지였으니 당연했다.
 ‘억울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었다.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보면 항상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겨우 알바생이 뭘 안다고 나불대냐.
 ―넌 왜 그렇게 잡생각이 많냐. 시키는 거나 잘해.
 ―어유, 그렇게 박식하신 분이 왜 알바를 하십니까?
 
 사실 몇 번 경험을 해봐서 이번에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올 거란 건 내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망할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지만 그가 일했던 가게의 사장들은 전부 그런 것들을 보지 못했다. 단지 다른 것들을 탓하며 주저앉거나, 현황을 애써 긍정적으로 왜곡하며 합리화를 할 뿐이었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데 왜 항상 안주하거나, 잘못된 선택만 하는 걸까?’
 답답했다.
 너무 답답했다.
 
 홧김에 얼마나 걸었을까?
 앞에 횡단보도가 보였다.
 빨간불. 갈 수 없다는 신호가 나타났다.
 아마 무시하고 달렸다간 차에 치여 험한 꼴을 당하리라.
 기수는 앞에 놓인 횡단보도가 꼭 자기 인생 같다고 느꼈다.
 되는 일 하나 없이, 계속 빨간불만 만나는 인생 말이다.
 ‘썅······. 어떻게 인생 살면서 잘 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냐.’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자니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기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뭐야, 잘못 들었나?’
 갑자기 묘한 섬뜩함이 스쳤으나 바람 때문이거니 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자니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수.
 
 이번엔 제대로 들었다.
 절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도대체 뭐야?’
 짜증을 담아 주변을 훑었으나, 이번에도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 사장이 여기까지 따라와 같잖은 장난질을 치는 건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성큼 도로 위로 발을 옮겼다.
 약 세 걸음 정도 걸었을까?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이기수.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어떤 놈이 장난질······!’
 이번엔 반드시 범인을 잡으리란 마음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반쯤 돌렸을 때······.
 
 욱신!
 
 심장에 쇠못이 박히는 것 같은 격통이 느껴졌다.
 “아······?”
 비명 따위 지를 수도 없었다.
 그저 온몸에 힘이 풀렸고,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나 죽는 거야? 이렇게 허무하게?’
 주마등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언젠가 귀동냥했던 얘기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저승사자가 사람을 데려갈 때 이름을 세 번 부른다고 했······.
 
 쿵―
 
 기수가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옅어지는 의식 사이로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 눈에 이상한 게 보인다
 
 짙은 안개라도 낀 양 흐릿한 세계.
 현실과 비슷하나 모든 움직임엔 긴 잔상이 남고, 마치 모두가 색을 잃은 듯 희미했다.
 그 가운데 색이 뚜렷한 남자 둘이 머리를 긁적였다.
 한 명은 조선 시대에서 온 듯 검은 두루마기, 다른 한 명은 핏이 잘 맞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 남자가 전자기기를 만지기도 잠시.
 “저승차사, 이 사람 진짜 맞소? 확신할 수 있는 거요?”
 “왜 또 그러시오, 이승차사? 보시오. 생사부에도 이기수라 적혀 있지 않소? 이름도 특이하니 동명이인도 아닐 거요.”
 저승차사가 마치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활자를 내밀었다. 거기엔 한글로 정확히 이기수라고 적혀 있었다.
 이승차사는 책을 보곤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그런 거 들고 다니오? 불편하지도 않소?”
 “자네야말로 이승 쪽 일을 자주하다 보니 괴상한 인간 문물에 물든 것 같소만.”
 “쯧, 쓸데없는 갑론을박 그만하고 이거나 보시오. 내 봤을 때 이 사람 아닌 것 같소.”
 이승차사가 들고 있던 전자기기를 보여줬다.
 그곳엔 저승차사의 생사부와 달리 얼굴까지 나왔는데, 어째 기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어······? 이, 이게 뭐란 말이오?”
 이승차사는 한숨을 쉬곤 바코드 찍듯 기수를 훑었다.
 삑 소리와 함께 기수의 정보가 나타났다.
 “이기수. 모 이연수, 부 피승광. 나이 24세. 성씨는 어미 따라갔군. 보시오, 딴 놈 맞네.”
 그렇지 않아도 하얗던 저승차사의 얼굴이 더더욱 하얘졌다.
 “그, 그럼 이놈은 어쩐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름 부르기 전에 확인 좀 하자니까!”
 “이런 이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그러시오?”
 “언제까지 조선 시대에 살 거요? 이제 한국 인구만 해도 어림잡아 오천만이오, 오천만! 동명이인 수없이도 많소!”
 한동안 얼굴 붉히며 국수주의, 사대주의 하는 말이 오가길 잠시. 갑자기 따르릉 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승차사의 휴대 전화였다.
 “여보세요? 예, 강림도령님. 지금요? 오신다고요? 아······ 어······ 예. 아,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지금 오신다고 하셨소.”
 둘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강림도령은 저승삼차(저승사자)의 우두머리로 일 처리가 확실한 자였다. 하지만 지금 둘은 멀쩡히 살아 돌아다녀야 할 사람을 죽여 놓은 상태.
 강림도령이 온다면 입에서 불을 뿜을 게 분명했다.
 “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어떡하긴. 살려야지.”
 이승차사는 품 안에서 괴상한 풀 한 포기를 꺼냈다.
 “뭐요, 서천 꽃밭에 있어야 할 물건이 왜 여기 있소?”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일단 살립시다.”
 이승차사가 기수 위로 풀을 올려놓자, 뚜렷했던 기수의 색이 점차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영계에 왔던 혼이 이승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나저나 이거 퍽 미안하게 됐는데. 그냥 보내나요?”
 “하긴. 괜한 사람을 죽였는데, 그냥 보내는 건 나도 도리가 아닌 것 같소.”
 차사 둘은 고개를 끄덕이곤 기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염원이 무엇이더냐? 내 특별히 하나만 들어 주마.”
 
 ―사람들이 내 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허, 참 소박한 녀석일세.”
 저승차사는 재밌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렇다면 네 녀석이 좋아하는 게 뭔지, 뭐에 관심 있는지. 또 뭐가 되고 싶은지를 한번 보자꾸나.”
 저승차사의 손이 기수의 이마를 덮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저승차사는 많은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업 지재(知財, 정보)라······ 네 녀석은 상업 지재 상인이 되고 싶은 게로구나. 그렇다면 딱 맞는 게 하나 있지.”
 “이보시오, 저승차사. 뭘 줄 생각이오?”
 이승차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허 씨 능력 어떻소?”
 “누구 말하는 거요, 설마 그 허생?”
 “이 녀석이 원하는 바에 알맞지 않소?”
 “상도의 흐름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 거 묘안이군.”
 저승차사는 기수의 눈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기수의 눈이 잠깐 반짝였으나, 말 그대로 잠시였다.
 “편히 다녀오라고 길 삯으로 주는 것이니, 값지게 쓰고 때가 되면 다시 와서 반납하거라.”
 차사 둘은 서서히 옅어지는 기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그런 둘 뒤로 우람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네들 뭐하나?”
 “오, 오셨습니까. 강림도령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사라지는 걸 본 것 같네만.”
 “에이, 잘못 보신 거 아닌지요?”
 차사 둘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요즘 하도 일을 바쁘게 해서 그런가, 눈이 침침한가 보오. 그럼 일이나 마저 하러 가지. 갈 길이 멀군.”
 “다음 사자는 이기수라는 노인입니다. 가시죠.”
 저승사자들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착각도 잠시.
 이내 중압감과 함께 가벼운 상실감이 느껴졌다.
 옅은 의식 속으로 ‘나 죽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처럼 죽고 싶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기에 가볍게 털어버렸다.
 ‘근데 방금 그건 뭐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저승차사네 이승차사네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기에 포기했다.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불안함도 잠깐. 눈꺼풀을 뚫을 정도로 밝은 빛이 느껴졌기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따가운 느낌에 실눈을 뜨고 빛에 익숙해지길 5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인테리어에, 살풍경한 침대.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
 몇 번을 둘러봐도 응급실이었다.
 ‘나 죽은 거 아니었나?’
 죽은 건지, 산 건지 혼란스럽기도 잠시.
 머지않아 지독했던 심장통이 떠올랐다.
 표정이 굳었다.
 자기가 죽은 순간이 떠올랐는데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죽었다고 확신하곤 저승을 훑어봤다.
 깨끗한 환경에 현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저승이라기엔 꽤 거리감이 있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지금은 사람이 우주로도 날아가는 시대가 아니던가?
 만약 신들이 하늘 위에 있었다면 그들도 인간에 맞춰 더 먼 곳으로 가야 했다. 게다가 현세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사후 세계가 멈춰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도 코미디였고 말이다.
 시범 삼아 몸을 움직여 봤다.
 
 뚝, 뚜둑.
 
 사후 경직이라도 된 것처럼 뻐근했지만, 어디 고장 난 곳 없이 잘 움직였다. 하지만 눈은 아니었다.
 ‘굉장히 흐릿하게 보인다.’
 설마 싶어 눈에 정신을 집중하자, 허공에 하늘색 기류가 넘실대는 게 보였다.
 ‘뭐야······?’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그 기류를 눈으로 좇았다.
 기류는 응급실 전체를 빙 돌고 있었다.
 간혹 간호사나 의사에게 연결되어 있기도 했고, 심지어는 기구나 벽 등 이상한 것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눈만 끔뻑이고 있자니,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가 나타났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 기류의 정체
 
 “아, 예. 좀 뻐근하지만 괜찮네요.”
 어깨를 돌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십니까?”
 “저 죽었잖아요. 심장마비로.”
 “아뇨, 살아있습니다. 여기는 낙삼대 병원이구요.”
 “예?”
 “후송 도중 심박이 돌아왔습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럼 여태까지 본인이 겪은 건 뭐고, 어렴풋이나마 저승사자네 뭐네 하고 들려왔던 건 또 뭐란 말인가?
 벙쪄 있자니 의사가 입을 열었다.
 “넘어질 때 발생한 뇌진탕 때문에 잠시 혼란스럽거나, 기억이 엉켰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의사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상하게도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혹시 다른 이상 있는 곳은 없습니까?”
 “일단 아픈 곳은 없는데······ 눈에 이상한 게 보여요.”
 기류를 슥 훑어보며 대답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기류는 정확하게 의사의 머리와 간호사의 손을 관통하고 있었다. 특히 의사에게 연결된 기류는 굉장히 굵었지만, 간호사 손에는 옅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걸 자세히 설명할까 하다 그만뒀다.
 괜히 이상한 소리를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이상한 흐름 같은 게 보여요. 꼭 기류 같네요.”
 의사는 뇌출혈과 환각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를 읊조렸다.
 “혹시 두통은 없으십니까?”
 “음······ 없는 것 같아요.”
 “CT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CT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 몸이 건강하던 편이었기에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지만, 어렴풋이 비싸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동시에 남은 잔고가 떠올랐고,
 당장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 그거 꼭 해야 하나요?”
 “보호자도 없고, 본인 의식도 확실하니 강요는 할 수 없습니다만, 하는 편이 좋겠죠.”
 “안 하겠습니다.”
 괜찮겠냐는 말이 돌아왔지만, 굳이 반대 의견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간단한 검사만 해보죠.”
 이후 의사 권유대로 가벼운 검사를 한 뒤 기다리길 잠시. 결과가 돌아왔다.
 “정상입니다. 눈은 두부 CT 찍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몸에 외적인 이상인 없네요.”
 의사를 뒤로하고 바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
 사실 눈에 뭐가 보인다는 게 신경 쓰여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고 싶긴 했지만, 그러기엔 돈이 부족했다.
 ‘쯧······ 진짜 서러워서라도 돈 벌어야지.’
 병원비를 수납하고 나오는 길.
 그동안 기류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보고 있으니 정말 머리가 작살난 게 아닐까 싶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지만 그것도 잠시.
 
 솨아아― 뚝······.
 
 병원을 나가자마자 기류가 전부 사라져 버렸다.
 ‘뭐야. 잠깐 그러고 만 건가?’
 혹시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았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병원 안에는 기류가 넘실댔다.
 ‘빌어먹을.’
 짜증과 함께 지독한 두통이 엄습했다.
 뇌출혈 때문이 아닌 단순 걱정으로 인한 편두통이었으나, 의사가 했던 말이 계속 떠올라 괜히 불안해졌다.
 ‘그냥 CT 찍을 걸 그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여 검사받는다고 해도, 결과 이상하게 나오면 어쩔 건데. 어차피 나쁘나 좋으나 선택지는 똑같아.’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지워버리곤 길을 걸었다.
 뚜벅, 뚜벅, 뚜벅, 하고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몇 분.
 문득 TV와 인터넷을 통해 봤던 맛집을 발견했다.
 ‘낙삼대 병원 주변에 유명한 국밥집 있다던데······ 저건가.’
 
 꼬르륵―
 
 심각한 마음과 달리 몸은 영양소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어야지. 일단 먹자. 뭐든 간에 배에 집어넣고 생각하자고.’
 예금이 살짝 딸리긴 했지만, 사고가 난 직후라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아 큰맘 먹기로 했다.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배라도 채워놔야 자연 치유가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국밥집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안 보이네?’
 바로 기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혹시 우연히 시야에만 안 잡힌 게 아닐까 싶어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기류로 보이는 건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너무 놀라서 잠깐 헛것을 봤나 보네.’
 급 기분이 좋아져 식당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곤 슬며시 눈만 굴려 주변을 훑었다.
 기수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어딜 가든 성공한 원인을 가늠해 보는 거였다.
 처음엔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생긴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습관이 돼서 어딜 가던 그 이유를 분석하게 됐다.
 ‘어디 한번 볼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바로 식당 분위기와 인테리어였다.
 병원 주변인 만큼 찾는 고객의 폭이 굉장히 넓어 모든 고객에게 준수하게 보일 만한 평범한 모습.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없었다.
 ‘무난하지만 조금 아쉽네. 하지만 어차피 분위기로 승부하는 가게는 아니야. 상관없어.’
 
 다음으로 본 것은 직원들이었다.
 근래에 들어 고용주가 직원을 소모품을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어떤 일이든 결국 일하는 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성공에 있어 직원들이 미치는 영향 역시 엄청났다.
 아니나 다를까 점원들 역시 뛰어났다.
 딱히 통일된 제복도 없고, 필요한 말만 하며 짧게 주문만 받는 모습이 전문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업무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어차피 국밥집이라 고객들도 접대를 바라지 않는다.
 저렇게 속도에 중점을 두는 게 훨씬 좋으리라.
 ‘빠르다. 효율적이야. 차라리 저게 좋지. 괜한 접대 넣어봐야 일만 늘고 종업원 피로도만 높아져. 고객들도 일 처리가 빠르다는 느낌을 받으니 기다리며 느낄 불쾌함도 덜하겠지.’
 
 그 외 밑반찬 맛이나 점포 내에 흘러나오는 노래나 소음 크기 등 여러 가지를 평가하는 사이 음식이 도착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서 엄청 뜨거워 보였지만, 좋은 향에 꿀꺽 침이 넘어갔다.
 한술 떠서 입안에 넣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이 집은 맛으로 승부하는 집이네.’
 성공한 음식점 분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지금처럼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맛 이외의 것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전자로는 지금 같은 음식 그 자체에 집중한 곳이 있었고, 후자로는 인테리어나 분위기를 통해 소비 효용을 만족시켜 주는 곳이나, 싼 가격을 내세우는 곳. 혹은 프랜차이즈처럼 브랜드 후광 효과를 내세우는 곳 등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기수는 알겠다는 듯 씩 웃곤,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쩌억― 텁.
 우적우적.
 
 얼큰한 향이 코를 돌아 뇌를 달짝지근하게 만들고, 밥과 국은 마치 혀를 감싸기라도 하듯 혀에 착 달라붙어 입안 가득 행복감을 선사했다.
 “하― 맛있네.”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눈앞에는 다시 한 번 기류가 보였다.
 좋던 기분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왜 갑자기 나타난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일단 이번에도 기류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기류는 매장 구석구석에 연결되어 있었다.
 가게 외벽, 직원들, 주방, 음식 전부 말이다.
 하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어도 각자 그 굵기와 색이 달랐는데, 음식이나 직원에게 연결된 기류는 굵고 색이 짙었으나 가게 외벽에 연결된 기류는 얇고 색이 옅었다.
 ‘어······?’
 기시감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어디선가 한 번 겪어 본 것 같은 기분.
 ‘뭐야 이거······ 이 가게 장단점이랑 비슷하잖아?’
 정답이었다.
 이 가게의 강점으로 보이는 부분은 선이 짙고 굵은 반면 약점으로 보이는 건 선이 얇고 옅었다.
 ‘이거 설마······ 가게의 장단점이 그대로 보이는 건가?’
 기수는 기류의 본질을 파악하곤 계속해서 기류를 훑었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주방 입구에 놓여 있는 식재료였는데, 기류에 생기가 가득한 주방과 달리 식재료에 연결된 기류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얇고 옅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저건 왜 저래? 설마 원재료가 안 좋은가?’
 호기심 따라 메뉴판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원재료가 중국산이었다. 아마 싼값에 잔뜩 들여온 재료리라.
 ‘쩝······ 아무래도 원가가 싸면 마진이 높아지긴 하지.’
 식재료 중 싸구려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맛이 뚝 떨어졌지만, 일단 배가 고팠기에 식사를 마저 끝냈다.
 “6,500원입니다.”
 계산을 끝내고 밖에 나오자 눈에 엄청난 것이 들어왔다.
 
 솨― 아아아― 솨아아― 솨―
 
 바로 길 전체를 가로지르는 강력한 기류였다.
 “허······!?”
 마치 이 거리의 경제 흐름을 직관화한 것 같은 강력한 시각 정보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마치 서울에 처음 온 시골 청년처럼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슬쩍 쳐다봤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고 해야 옳았다.
 ‘이, 이게 도대체 뭐야.’
 기수의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짙은 기류가 가득 담겼다.
 공중에 강이라도 흐르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대박, 대박이다······.’
 
 
 # 희비 교차, 그리고 새로운 시작
 
 기류가 보인다는 건 참 무서우면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한동안은 뇌에 구멍이라도 난 게 아닐까 무서웠지만, 그것도 잠깐. 시간이 지나자 능력을 확인하는 데 바빠졌다.
 그렇게 이곳저곳 돌아다녀 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 기류는 정신을 집중하거나 흥미를 느낄 때만 나타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두 번째, 기류는 조직의 장단점을 가시화했다. 감정은 굵고 진하게, 약점은 얇고 옅게 나타났다. 그 외에 아주 강력한 부분들은 아예 황금색으로 빛나거나, 금방이라도 없어질 것 같은 회색을 띠기도 했다.
 세 번째, 기류에 문자적인 설명이나 숫자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까닭에 해석은 온전히 기수의 몫이었다.
 
 ‘이거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눈앞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유명 대기업의 사업 다각화로 나타난 회사로, 프랑스식 제빵을 강조한 브랜드였다. 나름대로 프랑스의 맛과 분위기를 표방한 것 같았으나, 기수에게 있어선 그저 맛 대비 가격이 비싼 빵집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곳이었다.
 점포를 슬쩍 훑었다.
 프랜차이즈 공통으로 제공하는 파란색 간판에,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내부에 잘 진열된 빵들과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카페테리아였다.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라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잘 알 수 없었으나, 문제는 없었다.
 기수에겐 기류가 있었으니까.
 ‘이제 한번 제대로 살펴볼까.’
 정신을 집중하자 기묘한 감각과 함께 기류들이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제일 짙은 기류는 간판에 연결되어 있었다.
 강력한 프랜차이즈는 그 특성상 고객 충성도가 각 점포가 아닌 ‘브랜드 전체’에 쌓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수는 ‘유명한 프랜차이즈라 그런가.’ 하고 말았다.
 아직 거기까지 알기엔 지식이 부족했던 까닭이었다.
 다음으로 강한 기류는 갓 구운 빵들이 진열된 매대, 제빵사 순이었고, 그 외 옅은 기류는 점포 내 직원들과 공장에서 가져온 레디-메이드(완제품, 기성품) 브래드가 전부였다.
 ‘갓 구운 빵이라는 이미지가 정말 강력하긴 하지. 그리고 직원들한테 연결된 이유는······ 아르바이트라 그런가?’
 제빵사를 제외하곤 모두 파트타임 워커였다.
 정직원에 비해 실질적인 업무 처리 능력은 조금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인건비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었다.
 ‘효율적이네.’
 대기업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줬기 때문일까?
 전체적인 기류 역시 안정되어 보였다.
 
 강력한 강점은 없지만,
 치명적 단점도 없었다.
 
 과연 목표 고객층이 굉장히 넓은 프랜차이즈다웠다.
 ‘그래. 여러 곳에서 동시에 오픈하려면, 강점을 내세우는 것보다 단점을 최소화하는 게 훨씬 좋겠지.’
 기수는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러자 기류가 전부 녹아들듯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가게들을 훑었을까?
 문득 전에 일했던 와플집이 눈에 들어왔다.
 
 ―고아 새끼 뽑아줬더니 개소리나 하고 말이야!
 ―너희 부모도 네가 이럴 거 알고 버린 거 아니냐고!
 
 순간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이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곤 와플집 쪽으로 다가갔다.
 물론 매출을 1원이라도 올려 줄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가까운 건물에 몸을 기대며 슥 훑었다.
 ‘내 말이 맞나, 당신 말이 맞나 한번 확인해 보자고.’
 점포가 좁은 만큼 기류도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결과는 말 그대로 참담했다.
 하늘색을 띠고 있는 건 기수가 강조했던 가격이 전부.
 그 외에 대부분 다른 곳들은 옅은 회색을 띠고 있었고, 심지어 사장에게는 짙은 검은색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왜 기류에 진흙 같은 게 묻어 있어?’
 여태 회색만 봤지, 저런 검은색은 처음이었다.
 금방이라고 찌꺼기를 뚝뚝 토해낼 것 같은 모습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눈으로만 보였기에 냄새까지 날 리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썩은 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역시 사장이 문제였네.’
 그와 동시에 일하며 느낀 점들을 떠올렸다.
 사장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제로 가게에 끼치는 영향이라곤 부정적인 것밖에 없었다.
 능력 없으면서 일만 잔뜩 벌이는 상사 같은 느낌일까?
 음식점에서 제일 중요한 청결을 소홀히 하거나, 심할 경우 점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등 정말 답이 없는 인간이었다.
 거기다 직원에게 온갖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부모 욕까지 일삼으니 과연 저런 기류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가격이랑 저렴한 이미지 때문에 오는 건데, 점포를 크게 벌리면 백이면 백 망한다. 어차피 저런 마인드로는 뭘 하든 망하겠지만 말이야.’
 허탈해졌다.
 굳이 가서 욕을 해줄 것도 없고, 되갚아 줄 필요도 없다.
 
 이미 사장은 되지도 않는 도전으로 제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것도 있는 힘껏 무리해 핏줄까지 세워가며 말이다.
 
 “내가 옳았다!”라는 말을 해서 굳이 저 빌어먹을 젊은 양아치 사장에게 재고의 여지를 주는 것보다는······.
 ‘말라 죽어라.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아주 천천히.’
 
 경영은 전쟁이었다.
 총과 폭탄만 없을 뿐 지면 죽는다는 건 똑같다.
 한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돈을 날릴 수도 있었고, 잘 잡은 기회 한 번으로도 인생을 역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수는 이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도산이 매복해 있는 위험한 길을 피해가고, 꼭꼭 숨어 있는 기회를 멱살 잡고 끌어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말이다.
 ‘뭐가 옳은지도 모르는 녀석. 그리고 힘없는 알바생 무시하고, 자기 기분 나쁘다고 부모 욕 내뱉는 나쁜 새끼. 너는 지금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거야.’
 
 기수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는 고개를 돌렸다.
 당장 눈앞에 뭐가 문제인지, 뭘 고쳐야 성공할 수 있는지 전부 알았지만······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기로 했다.
 
 기수나, 사장이나 둘 다 성인이었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을 진다.
 사장은 우둔했고 뭐가 옳은지 헤아릴 능력이 없었다.
 이제 긴 시간 동안 출혈 경쟁 속에서 천천히 도산해가며······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그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됐다.
 
 악연을 청산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일까.
 매 걸음걸음이 미친 듯이 통쾌했다.
 “자, 이제 그럼 나는 내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해 볼까······!”
 
 
 # 인연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능력을 개발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능력을 통해 세상을 볼 때마다 마치 신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얼마 못 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돈이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뭔가 둘러보기 위해선 돈을 내야 했다.
 관람료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빵집을 보려면 빵을, 고깃집을 보려면 고기를 사야 했다.
 능력 개발에 투자하기 위해 이것저것 구매 활동을 하다 보니 예금이 줄기 시작한 것.
 “하······.”
 들고 있던 고추 참치를 내려다봤다.
 삼천 원 남짓한 가격.
 살짝 우울해졌다.
 당장 저거 살 돈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이상 능력 개발에 돈을 투자했다간 월세와 식비에 애로가 생길 수 있었다.
 ‘선택해야 한다. 조금 더 능력을 개발해서 사람들에게 신임을 줄 수 있을 정도까지 올리든가, 아니면 지금은 잠시 멈춰서 타협하고 알바와 병행하든가.’
 한숨을 푹 내뱉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기류가 나타나며 편의점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컨설팅을 해주며 돈을 벌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다.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의표를 찌르는 조언을 해주면 믿을까 싶어 매상이 좋지 않은 가게 사장에게 넌지시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돌아온 거라곤 타박밖에 없었다.
 
 ―그쪽이 뭐라고 제가 그 말을 믿어야 합니까?
 ―안 그래도 매출 안 나와서 화나는데, 지금 시비 거냐!?
 
 맞는 말이다.
 와플집 경우야 기수가 직원이었으니 약간의 직언을 할 수 있었다고 쳐도, 저들은 완벽한 ‘타인’이었다.
 도대체 기수를 뭘 보고 믿는단 말인가?
 아무리 기류가 보여도 그건 기수만 아는 정보였다.
 까닭에 아무리 진리가 보인다고 한들 증명할 수 없다면 그건 개소리였고, 헛소리였다.
 그렇다고 기수가 그 개소리와 헛소리를 그럴싸한 설득으로 바꿀 만한 빵빵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멋진 양복도 없고, 그럴싸한 명함도 없다.
 단순 스펙만 놓고 보자면 고졸 알바 경력이 다다.
 믿을 수 없겠지. 아무리 진리를 입에 담는다 한들 화자가 못마땅하면 설득력이 없는 게 당연했다.
 현대에는 정보가 흘러넘쳤고, 사람들에겐 그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정보 진위를 판단함에 앞서, ‘화자’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실제로도 알바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수가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후······.”
 우습고 원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그랬고, 사회가 그랬다.
 ‘대학이라도 가야 하려나······?’
 순간 살인적인 학비가 떠오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게다가 어디 돈뿐이랴? 시간도 필요했다.
 수능에 1년, 대학에 4년, 심하면 석사까지 가야 한다.
 당장 눈에 엄청난 게 보이는 능력을 얻었다. 근데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적게는 4년, 길게는 6년을 대학에 있으라고?
 싫었다.
 시간이 아깝고, 능력이 아까웠으며, 돈이 아까웠다.
 ‘빌어먹을. 나는 내 길을 찾을 거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10년이나 투자할 시간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참치를 내려놓곤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뭘 해서 돈을 벌어야 할까 생각하니 막막했다.
 고아인 까닭에 손을 벌릴 부모님도 없고,
 딱히 돈을 빌릴 만큼 여유로운 친구도 없었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고아원에서 쫓겨나듯 나와 세상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악착같이 살아온 게 4년이다.
 근래까지만 해도 일하며 모아온 돈으로 조그마한 가게를 차릴까 했으나, 그나마도 권리금 사기로 공중분해 됐다.
 남은 돈은 재개발 때문에 이사하느라 보증금으로 모조리 꼴아박았고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푹 쉬곤 컴퓨터를 켰다.
 
 덕 덕 덕.
 
 연식이 굉장히 오래돼 쿨러에 뭔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 순간 컴퓨터까지 고장 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다행히 반쯤 탈색 된 모니터에서 윈도우 화면이 출력됐다.
 기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물론, 한가하게 연예계 뉴스나 뒤적거릴 생각은 없었다. 그의 눈은 ‘카페’란에 고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알림 : 3건.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클릭했다.
 
 ―이지 컨설팅 카페(Easy Consulting).
 
 컨설팅에 관련된 카페였는데, 생각보다 양질의 자료가 많이 올라왔기에 기류를 얻은 이후 활동하던 곳이었다.
 능력을 얻기 전에도 이것저것 살펴봤지만, 능력을 얻고 나선 글도 몇 개 올리기 시작했다.
 익명으로라도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단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는 심정 반, 일기 쓰듯 기억하려는 생각 반으로 적었다. 하지만 회원수가 그렇게 많은 카페는 아니었기에, 조회수 역시 처참했다.
 
 ―제목 :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 분석 및 효율 증진 방안.
 ―조회수 : 49.
 
 저거 외에도 이것저것 올린 글이 벌써 20개.
 꾸준히 올려도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외로운 외침이었으나, 오늘은 독특하게도 반응이 있었다.
 ‘뭐지?’
 일단 첫 번째 반응을 살펴봤다.
 
 ―히어로즈 오브 더 갤럭시! 가입 시 전원 카드팩 증정!
 
 스팸이다.
 크게는 아니어도 기대했었는데, 김이 팍 새버렸다.
 ‘그럼 그렇지······ 다음 거나 확인해 보자.’
 
 ―장문의 내용이라 쪽지로 대신했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이건 또 뭔······?’
 이미 스팸으로 한 번 낚였다. 쪽지로 들어가면 ‘비아구라, 씨알레스’ 뭐 이런 내용이 나올까 싶은 의심도 잠시.
 쪽지에는 의외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From Dr.Sim.
 ―안녕하세요, 수님. 여태까지 올리신 내용 굉장히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수님은 뭐하시는 분일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사업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단순한 친목 도모를 위해 얼굴 보며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쪽지 밑에는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순간 설레긴 했지만, 동시에 의심도 들었다.
 ‘이거 뭐 이상한 거 아니야?’
 예를 들어 네트워크 마케팅(다단계)이라던가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던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겠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Dr.Sim의 쪽지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대충 쓸데없는 내용 걸러내고 보이는 한 문구.
 
 ―낙삼대학교 경영학과 전임교수, 심상호.
 
 낙삼대. 한국 1위 국립대이자,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워너비였으며, 들어가기만 해도 인생이 바뀐다는 그곳. 심지어 기수가 사는 원롬촌 근처에 있는 학교였다.
 ‘근데······ 이런 대단한 사람이 나는 왜?’
 의심 다음엔 궁금증이었으나 넣어 두기로 했다.
 이유야 만나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
 바로 Dr.Sim이라는 유저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Dr.Sim’님. ‘수’입니다. 쪽지 잘 받았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괜찮을까요? 저는 낙삼대 주변에 살고 있습니다.
 
 Dr.Sim이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뜻이었기에, 일부러 문자 끝에 낙삼대 주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붙였다.
 기수는 성격이 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느긋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만날 거라면 빨리 만나는 게 좋았다.
 ‘약속은 대충 잡힐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좋은 일자리나 한번 알아보자. 언제까지 계속 수입 없이 살 순 없잖아.’
 카페 볼일은 끝났기에 슬쩍 구인구직 사이트를 훑었다.
 
 ***
 
 우으으응―
 
 적당히 둘러보고 있자니 진동이 들려왔다.
 
 ―저도 마침 업무차 낙삼대 주변인데, 공교롭네요.
 
 대충 일주일 후쯤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했거늘, 의외로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로 시간을 조율을 위해 이런저런 얘기도 잠시.
 어차피 심 교수도 퇴근 전이니 낙삼대에 있었고, 기수 역시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바로 만나기로 했다.
 
 ―그럼 오후 8시쯤에 낙삼대 쪽문 쪽에서 뵙죠.
 
 
 # 컨설팅 한번 해볼 생각 없습니까?
 
 오후 8시.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익숙한 얼굴이 도착했다.
 카페 닉네임 ‘Dr.Sim’이자, 낙삼대학교 교수. 심상호였다.
 ‘생각보다 젊네. 거기다 동안이야.’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대 후반.
 옛날 사진이거니 했는데, 최근 사진이었던 모양이다.
 슬쩍 모르는 척 기다리고 있자니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며 슬쩍 두리번거리는 척.
 도중에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머쓱하게 웃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수님 맞으시죠?”
 “예, 접니다. Dr.Sim님 맞으신가요?”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으레 인터넷에서 현실로 연결된 만남의 처음이 그러하듯,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심 교수가 손을 내밀었기에, 기꺼이 맞잡고 악수했다.
 
 ***
 
 둘은 가까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굉장히 젊은 분이시네요. 놀랐습니다.”
 심 교수는 의외라는 듯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놀란 건 이쪽이었다. 심 교수의 얼굴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대 후반인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
 능력이 적잖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아직 어려서 배울 게 많습니다.”
 슬쩍 겸손을 떨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처음엔 나이, 이름 같은 것들에 대한 화제였다.
 보통은 직업에 관한 얘기까지 나오지만, 심 교수는 밝히고 싶지 않았는지 굳이 이 화제까진 꺼내지 않았다. 아마 본인이 경영학자라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 바로 카페에 올린 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굉장히 놀랐습니다. 단어 사용을 봤을 때 전문적으로 경영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 안에 있는 내용이 꽤 날카로웠거든요.”
 그럴 수밖에. 기류를 보고 적은 것인데, 날카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보통 이럴 땐, 경영을 배우진 않았어도 직접 자기 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사장님들이신 경우가 많거든요.”
 심 교수는 머쓱한지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기수의 나이는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 자기 제자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재밌고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심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관심 분야가 겹쳤기 때문일까?
 분명 첫 만남인데도 오래 만난 사이처럼 즐거웠다.
 “맞다. 혹시 경영 전략 쪽도 좋아하세요?”
 “글쎄요······ 관심은 있는데 배우질 못해서요. 일단 경영 관련된 얘기는 전부 좋아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수는 전문적으로 경영을 배운 적이 없었다.
 요즘 들어 실생활에 경제―경영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기에, 지나가며 귀동냥한 게 전부였다.
 “그럼 그쪽 관련으로 재밌는 얘기가 하나 있죠. 혹시 경영 전략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말 그대로 뭘 해야 할지 계획 세우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게 다예요. 정확하게 아시네요.”
 뭔 소린가 하고 있자니 심 교수가 말을 이었다.
 “경영학은 실용학문입니다. 순수 연구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나온 거거든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경영 전략을 얘기할 때, 실제 전쟁 전략을 뜻하는 ‘Strategy’를 쓰고요.”
 아직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용히 경청했다.
 “혹시 스페이스 크래프트라는 게임 좋아하세요?”
 이후 뜬금없게도 ‘스페이스 크래프트’ 게임이 언급됐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전혀 없는 굉장히 유명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말이다.
 “게임 전략이랑, 경영 전략이랑 다를 게 없어요.”
 그는 경영 전략은 저런 게임처럼 기업이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책략이 바로 경영 전략이라고 말했다.
 “뭐 말은 이래저래 어렵게 해도, 결국은 저겁니다. 경쟁자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정하는 거. 그게 경영 전략입니다······.”
 “흥미로운 얘기네요. 근데 그 얘기는 왜 꺼내신 건가요?”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직선으로 물었다.
 “기수 씨가 그런 사람처럼 보였어요. 경영학이 좋아하는 말장난 싹 빼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꿰뚫어 보는 싸움꾼. 다들 책상머리에서 고민할 때 직접 뛰며 싸우는 승부사처럼 보였거든요. 참 재밌고 대단했어요. 흥미도 생겼고요.”
 만약 기수가 심상호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면, 허언이나 아부로 들렸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이 사람 참 파격적인 성격이네. 왜 교수를 하고 있지?’
 신기했다.
 보통 교수는 전공만 죽어라 파고들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 외골수가 많았다. 반면 앞에 있는 심 교수는 달랐다.
 거의 열 마디에 한 번씩 파격을 저지름은 물론, 고졸에 경력 하나 없는 기수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인데요, 읽으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고요.”
 툭 튀어나온 칭찬에 머쓱해져 침묵하길 몇 분.
 심 교수가 커피를 호로록거리며 기수를 응시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컨설팅해볼 생각 없으세요?”
 뜬금없는 제안에 마시던 커피를 뿜어낼 뻔했다.
 “······예?”
 평소 파격을 좋아하는 기수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말 앞뒤 다 자르고 갑자기 컨설팅을 하라니?
 사실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긴 했지만, 일단은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으로 나왔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하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만 컨설팅이지, 그렇게 큰일도 아닙니다. 가서 조언만 해주면 됩니다.”
 심 교수에게서 갑자기 박력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뜬금없지 않습니까?”
 “저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기수 씨 정도면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아니라 작은 점포라서요. 물론 무료 봉사는 아닙니다.”
 심 교수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고민하길 몇 초.
 “그렇다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 제안은 기수가 잃을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지금 돈 안 벌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근데 컨설팅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그야말로 기수가 원하던 상황 아니던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심 교수는 씩 웃고는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슥, 스슥― 슥.
 
 “컨설티(컨설팅 의뢰인) 연락처와 주소입니다. 연락은 제가 해놓겠습니다. 내일 바로 가시면 될 겁니다.”
 심 교수는 연락처를 넘겨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수는 복잡한 심경으로 그 연락처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
 
 한편, 심 교수는 카페 밖으로 나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밌는 청년이야. 마치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야.’
 어젯밤 우연히 카페를 둘러보던 중.
 심 교수는 기수가 올린 글들을 주르륵 훑어봤다.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였다. 밀린 일 처리에 앞서 잠시 스트레스를 푸는 그 정도의 여흥처럼 말이다.
 근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고 정독하고 있었다.
 서툰 단어와 정리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굉장히 독특한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었고,
 현대 경영학과는 또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보여줬다.
 
 그 글들을 읽고 있자면 오랜 공부로 인해 조금씩 편협해지던 시선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오히려 내가 배웠어. 저런 접근법도 있다는 것을 말이지.’
 천재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심 교수는 문득 이기수라는 청년이 궁금해졌다.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리고 어느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지. 잘만 하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공정은 돌아가기 시작했어. 원석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갔고, 이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기다려 보면 알겠지.’
 심 교수는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
 
 다음 날 오후 8시. 신림역 7번 출구 부근.
 기수는 메모지를 꺼내 앞에 있는 간판과 비교했다.
 “여긴가?”
 
 ―야동(夜洞), 얼큰 우동.
 
 
 # 정보 수집
 
 ―야동(夜洞), 얼큰 우동.
 
 검은색과 빨간색의 대비, 그리고 이름이 퍽 인상적이었다.
 ‘우동이면 음식점인데, 이름이 뭔······.’
 일단 고객의 시선을 끌기엔 좋았으나, 흥미만 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이름은 아니었다. 비슷한 예로 간판에 ‘엿이나 까 잡숴.’라고 적어놔도 쳐다보기야 많이 쳐다본다.
 단지 보기만 하고 오지 않을 뿐.
 ‘뭐 간판이 전부는 아니지. 그래도 위치는 좋네.’
 심 교수에게 워낙 위치가 좋다는 언질이 들었기에, 신림역에서 나오자마자 시간을 쟀던 기수였다.
 결과는 90초.
 여자 걸음으로 쳐도 2분 안에 올 수 있는 거리였다.
 ‘대로 쪽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굉장히 좋은 입지야.’
 그 외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 살펴봤다.
 ‘번화가라 그런가? 주변에 오밀조밀 뭔가 많다.’
 일단 점포는 주상복합 오피스텔 1층에 위치했다.
 그 외 100미터 안에 쇼핑몰 2개. 나이트클럽, 노래방, 마사지샵, 은행, 소매점 등이 많았고, 한 블록만 이동해도 유명한 모텔촌이 나왔다.
 ‘야동. 이름으로 봐선 밤에 여는 가게다. 그럼 아침 유동 인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밤을 생각해야 한다.’
 아마 밤에 이 골목을 나돌아 다닐 사람을 정리하자면······.
 
 ―쇼핑하느라 저녁을 놓친 배고픈 나들이객.
 ―나이트클럽 및 술 한잔하러 나온 사람.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보도 혹은 호스트.
 ―모텔 거리 건너 원룸촌에 사는 사람들.
 ―모텔로 향하는 커플.
 ―기타.
 
 이렇듯 크게 다섯 종류로 압축할 수 있었다.
 ‘뭐 번화가니까 유동 인구는 당연히 많을 테지.’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한 뒤 가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30대 중반 남자가 나타났다.
 붉은 두건에 앞치마를 두른 상태였는데, 듬성듬성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보아 꽤 거친 사람 같았다.
 “아직 영업 시작 안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수입니다. 소개받고 왔습니다.”
 소개라는 말을 꺼내자 야동 점주가 덜컥거렸다.
 “상호 형님께 내가 조언 좀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점주는 말을 흐리며 ‘근데 너는 도대체 누구고, 뭐하는 놈이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래서 컨설팅하러 왔습니다.”
 “누가요? 그쪽이? 거참 재밌는 소리 하시네.”
 야동 점주는 기수를 품평하듯 위아래로 훑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이런 대우는 몇 번 받아 봤기에 일단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기수였다.
 컨설턴트라고 보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나중에 컨설팅 끝나고도 같은 표정인지 한번 봅시다.’
 속으로 피식 웃으며 칼을 갈았다.
 유명한 드라마에서도 그랬듯, 원래 싸움이라는 건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시간이 지나 때가 오면 치명적인 한 방을 날리면 됐다.
 기수는 적어도 그때까진 고분고분하게 있기로 했다.
 몇 초 정도 서 있었을까?
 이내 야동 점주는 축객령 대신 들어오라는 말을 꺼냈다.
 
 뚜벅, 뚜벅.
 
 안으로 들어가자 10평 남짓한 공간에 잡다한 잡동사니로 데코가 되어 있는 홀이 보였다.
 일단 제일 먼저 기류를 슥 훑었다.
 ‘이건 도대체 뭔······.’
 메뉴판, 바닥, 주방, 소품, 심지어 입구까지.
 그냥 죄다 회색 아니면 검은색이었다.
 덤으로 점포는 좁고 난잡했으며, 불쾌감을 유발했다.
 게다가 홀에서 주방이 들여다보였는데 사람 하나 눕지도 못할 공간이었음에도 굉장히 지저분해 보였다.
 ‘······보통 주방이 보이는 구조는 조리 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어필하는 게 아닌가?’
 TV에서 나오는 걸 생각 없이 따라한 모양이었다.
 아마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으나······.
 청결하지 않아서야 되레 역효과가 더 심했다.
 그 증거로 주방에 연결된 기류도 굉장히 탁했고 말이다.
 ‘후······ 괜찮아. 그래도 여긴 음식점이야. 음식만 괜찮으면 전부 커버 가능해.’
 메뉴판을 슥 쳐다봤다.
 
 ―얼큰 우동 6,000원.
 ―오뎅탕 12,000원
 ―닭도리탕 15,000원.
 ······소주 3,000원.
 ―맥주 3,000원.
 
 ‘뭐야, 여기 우동 파는 분식류 음식점 아니었어?’
 간판을 우동집으로 걸어 놓은 주제에, 정작 속을 까보니 메뉴 중 우동은 하나고 나머지는 죄다 술안주였다.
 ‘도대체 이 잡탕은 뭐야?’
 속으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야동 점주가 음료 병을 하나 따서 권했다.
 “앉으쇼. 그래서 그쪽은 뭐하는 사람이라고?”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머리가 굳었다.
 상황을 보니 심 교수가 별말 없이 “그냥 좋은 사람을 보냈다.” 하고 만 모양이다.
 첫 만남에서 보인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냉대 받는 입장. 괜히 “고졸인데 그냥 컨설팅 공부하는 사람이에요.”라고 했다간 소박을 맞을지도 몰랐다.
 ‘에라 모르겠다.’
 “경영 컨설턴트입니다.”
 일단 막 던져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거의 반쯤은 사기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아무렴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잘 처리하면 문제 될 거 하나 없었다.
 “그래, 얘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뭐가 부족해 보이는데?”
 입이 턱 하고 막혔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이건 예수나 부처 둘 중 하나는 와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컨설팅이라고 해도 대상이 사람이었다.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지식에 대한 답으로 대금 대신 몽둥이나 욕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뭘 어떻게 원하시는지를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냥 전부 말씀드리기엔 너무 포괄적이에요.”
 슬쩍 꽁무니를 빼며 화제를 돌렸다.
 야동 점주는 잠깐 끙 소리를 내다가 입을 열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말이지.”
 은근슬쩍 말을 놓는 점주였으나, 그냥 넘어갔다.
 어차피 나이도 저쪽이 대여섯 많아 보이지 않은가.
 “그럼 일단 여쭙겠습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뭐하긴, 우동 파는 곳이지. 간판에 적혀 있잖아.”
 “메뉴판에는 술안주랑 술도 있네요?”
 “우동만 팔아선 안 될 것 같아서, 같이 팔기로 했어.”
 초보 점주들이 실수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여러 가지를 팔면 그만큼 매상이 오른다’였다.
 아무래도 많은 메뉴를 팔면 각각의 메뉴를 원하는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서였지만······.
 틀렸다.
 야동 같은 경우엔 ‘우동’과 ‘술’을 같이 팔았는데,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음식점에서 술을 팔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안주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만 했다.
 예컨대 순댓국이나 고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여긴 우동집이었다.
 말 그대로 밤에 뭔가 칼칼한 게 당길 때나,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지만 뭔가 먹고 싶을 때.
 곧 요기가 필요할 때 찾아오는 가게라는 뜻이었다.
 ‘근데 술을 같이 판다고?’
 그래.
 팔 수는 있다.
 우동도 소주랑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술을 같이 파는 순간 고객한테는 ‘여기는 술집이네.’라는 인식이 박히게 된다. 특히 젊은 고객한테는 더더욱. 까닭에 우동만 달랑 먹고 가기가 애매해지거니와, 고객의 무의식적인 비교 속에 ‘술집’들과 경쟁을 하게 된다.
 덤으로 이 건물 2층에는 ‘와라가라’라는 프랜차이즈 술집이 있기에 젊은 층은 대부분 거기 갔으면 갔지, 여기는 안 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단순 우동만으로 경쟁한다고 한들······.
 ‘안 돼. 대로 따라 300미터쯤 가면 골목 우동이라고 괜찮은 맛집이 있다.’
 그쪽의 경우 아예 음식으로 집중해서, 가볍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싸우면 무조건 진다.
 ‘그렇다면 결국 술집 쪽으로 잡아야 한다는 건데······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자. 아직 바로 결정하기엔 이르다.’
 결정은 미루되, 마음은 술집 쪽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정보가 조금 부족해 보이네요. 일단 오늘 여기서 있으면서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어차피 테이블 가득 찬 적도 없었으니까.”
 야동 점주는 고개만 까닥였다.
 ‘일단 기본 정보는 거의 다 모았다. 이제 기류를 보자.’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점주가 우동을 내왔다.
 “밥때니까 한번 먹어봐. 맛 괜찮을 거야.”
 “아, 고맙습니다.”
 슬쩍 먹기 전에 기류를 살펴봤다.
 결과는 옅은 푸른색. 흑백 TV처럼 회색 천지에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푸른빛이었다.
 ‘맛 좀 볼까.’
 한 젓가락 후루룩 떠먹어보니, 말 그대로 얼큰했다.
 ‘괜찮네. 육수도 나름대로 신경 좀 쓴 것 같고.’
 슬쩍 옆을 살펴보니 점주는 면을 직접 뽑고 있었다.
 ‘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근데 기계식이랑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총평은 말 그대로 ‘괜찮다.’가 끝이었다.
 딱히 우동이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얼큰해서 그런가, 확실히 소주가 당기긴 하네.’
 
 ***
 
 8시쯤 되자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손님이다.’
 뭔가 필기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훑어봤다.
 첫 손님은 20대 초반 남녀 커플이었는데 수줍어하며 가게를 슥 둘러봤다.
 남자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으나······.
 여자는 지저분한 실내를 보자 살짝 움찔거렸다.
 
 그 순간!
 여자에게 연결되어 있던 기류가 급속도로 탁해졌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고객 반응인가? 남자는 옅은 푸른색, 여자는 방금 짙은 회색으로 변했어.’
 아무래도 20대 초반, 특히 남자 친구와 같이 있는 여자의 경우 청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었다.
 둘은 일단 자리에 앉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갔다.
 아마 여자 쪽에서 나가자고 했으리라.
 ‘보통 남녀 커플이 같이 올 경우, 의사 결정은 75퍼센트 이상 여자 쪽이 한다. 실내가 이래서야 여자한테 어필이 안 돼.’
 뭐······ 지저분한 환경에 너저분한 인테리어.
 어찌 보면 이미 예측된 결과였다.
 
 ***
 
 두 번째 손님은 화려하게 꾸민 40대 초반 여자 둘이었다.
 ‘일반적인 저 나이 여자들은 저렇게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 혹 꾸민다고 해도 여사님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곳은 안 올 테고. 결국 어디 놀러 간다는 뜻이야.’
 순간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2번지’라는 이름의 중년 나이트클럽이 있다는 것을 떠올랐다. 아마 거기 가려는 거겠지.
 ‘일반적으로 클럽이나 나이트의 피크 타임은 오후 11시부터 새벽 3시야. 하지만 중년은 체력적으로 부담되겠지. 더 이를 거다.’
 중년 나이트의 피크 타임은 저녁~자정까지였다.
 아마 여기서 요기를 하고 들어갈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주 이용 고객의 연령대가 높아.’
 
 ***
 
 세 번째 손님은 20대 후반 남자였다.
 주변에 사는 사람인 듯, 편하게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어, 왔어?”
 “예, 사장님. 우동 하나 주세요.”
 주인이랑 안면이 있는 듯, 남자는 우동을 주문하곤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봤다.
 ‘사장님이라고 불렀을 때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냥 주변에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 건물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이리라.
 ‘의외로 점주가 고객 친화력이 높은 모양인데?’
 아니나 다를까 점주에게 연결되어 있던 기류가 아주 잠시나마 아주 밝은 하늘색을 띠었었다.
 ‘호오······ 이것 봐라?’
 이런 소규모 점포의 경우 고객 관리가 굉장히 중요했다.
 마케터들이 착각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소비자가 매우 ‘이성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사실 저 ‘이성적’이라는 건 학문적 가설로나 존재하는 거지, 소비자는 절대로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비자는 사람이고, 사람은 예측하기 어려운 동물이었다.
 의사 결정에 있어 ‘감정’과 ‘경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격, 성능,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제품이 있어도 누군가는 구매하지 않는 게 바로 이 세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쓰는 건 쓰기 싫어.
 ―저게 좋다는 걸 어떻게 믿어?
 ―내 친구는 이거 쓰는데?
 ―계속 쓰던 게 좋아.
 
 이런 이유로 경영에 있어 ‘감성’은 꽤 사용하기 좋은 코드였다. 그리고 이 점포의 특성과 사장의 이미지를 조합하면······.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오겠는데?’
 기수는 급히 메모장에 이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
 
 네 번째 손님은 30대 초반 남자 둘이었다.
 “여기 오뎅탕이랑 소주 한 병이요.”
 둘은 오뎅탕에 소주 2병을 먹은 뒤 나갔다. 아마 2차로 왔거나, 말 그대로 가볍게 마시기 위해 온 것 같았다.
 
 ***
 
 자정이 넘자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오고 갔다.
 ‘거의 20대나 40대다.’
 그중 대부분은 나이트에 가거나, 다녀온 손님. 모텔에 다녀온 장수 커플. 남자 둘이서 온 손님이었다.
 ‘이 가게 피크 타임은 11시부터 새벽 2시인가.’
 기수는 속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30~40대 나이트클럽 사용자.
 장수 커플.
 남자 듀오.
 주변 주민.
 
 위와 같은 고객층이 원하는 술집과 현 상황에서 조금만 바꿔서 이득을 볼 수 있는 모든 조합을 생각해 봤다.
 ‘결국, 그렇게 가야 하나.’
 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짐을 굳혔다.
 하지만 당장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없었다.
 ‘아직 확신하긴 이르다. 주변 상권도 한번 둘러보자.’
 사실 결론은 이미 난 거나 다름없었지만, 조금 더 신경 써서 제대로 굳혀보기로 했다.
 
 
 # 덤벼라, 점주! 한판 붙자!
 
 다음 날.
 기수는 다시 한 번 신림역을 찾아왔다.
 저번에는 컨설팅 대상이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서 찾았다면, 이번에는 주변 환경을 알기 위해서였다.
 ‘점포 하나만 봐선 절대 성공하지 못해.’
 경쟁이 원래 그랬지만, 여기에 자본이 얹어지면 그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 제아무리 잘난 점포라고 한들, 주변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면 반강제로 묻혀버리는 게 일상다반사다.
 ‘일단 우동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동. 면류 요리.
 면류 요리는 보통 점심때 선호되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기보단 말 그대로 요기를 때우는 정도로 먹는다.
 ‘분식으로 봐야 한다.’
 우동 전문점 사장이 들으면 입에 게거품을 물 얘기였지만, 소비자들 인식이 그랬다. 이에 따라 기수는 이번 점포를 ‘분식’으로 놓고 주변 경쟁자를 찾아봤다.
 일단 주변에 분식이라 생각될 만한 것을 모두 찾고는, 그중 기류가 강한 녀석들을 뽑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대충 1킬로미터 반경에 있는 경쟁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역 출구 대로변에 있는 5~6개 되는 분식 포장마차.
 ―해당 점포와 100미터 떨어져 있는 유명 분식류 맛집.
 ―7번 출구 15미터 앞에 있는 줄 서서 먹는 만두가게.
 ―그 외 3번 출구 주변에 있는 먹자골목.
 
 그저 그런 점포까지 합치자면 경쟁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우동을 그대로 끌고 가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젊은 커플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을 게 분명했다, 떡하니 ‘야동’이라고 적힌 가게에 왜 오겠는가. 온다고 한들 호기심이 찾은 이가 대부분이지, 단골이 될 가능성은 낮다.
 주변 가게 점원(모텔 직원 등)은 갈 거면 유명 분식류 맛집을 가지, 굳이 야동까지 오질 않는다.
 그 외 대다수의 사람들은 3번 출구 주변에 있는 먹자골목을 가지, 굳이 여기까지 와서 끼니를 때우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온다고 해도 집에 들어가는 길이거나, 간단하게 마실 나온 사람 정도일 거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본인 우동에 자부심을 가진 야동 점주에게는 미안했지만, 점포가 살아남으려면 우동은 무조건 포기해야 했다.
 ‘그럼 이젠 술집으로 한번 보자.’
 술집.
 번화가인 만큼 미친 듯이 많았다.
 모텔촌으로 들어가는 골목에만 4개가 뭉쳐 있었고, 3번 출구 주변에는 아예 대규모 술집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당장 건물 2층에만 해도 와라가라가 있으니 말 다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젊은 애들은 무조건 3번 출구로 간다.’
 그쪽이 가짓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굳이 모텔촌 주변까지 와서 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렇게만 보면 뭘 해도 망할 것 같지만······.
 ‘틈을 노려야 해. 숨어 있는 고객층이 있다.’
 기수는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틈을 찾아볼 수 있었다.
 씩 미소를 짓곤 다시 한 번 야동으로 향했다.
 
 ***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자 낯익은 얼굴이 드러났다.
 “어, 왔냐. 컨설턴트 양반.”
 대놓고 비꼬는 야동 점주였으나, 어차피 예상한 바였기에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갔다.
 “배고프네요, 식사하셨어요?”
 “아직.”
 “먹죠.”
 찾아오자마자 밥 내놓으라는 태도. 어찌 보면 불량해 보일 수 있었지만, 야동 점주는 그러려니 했다.
 ‘뭐 컨설팅해주는데 밥 한 끼 정도야.’
 점주는 부엌에서 우동 두 그릇을 가져왔다.
 가볍게 호로록 마셨다.
 ‘확실히 괜찮아.’
 조금만 더 맛이 괜찮았고, 주변에 있는 맛집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우동을 남길 수 있었겠지.
 하지만 경영은 전쟁이었다.
 조금만 부족해도 진 건 진 거였다. 슬퍼도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점포 전체가 죽어버린다.
 ‘아마 점주는 우동에 대한 자부심에 눈이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고, 제삼자의 시선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뭣 좀 알아냈어?”
 작게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싸움이다.’
 사실 좋게 넘어갈 방법 따위야 간단했다.
 점주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된다.
 
 ―우동 맛이 정말 좋네요. 우동에 올인하세요!
 
 아마 저 한마디면 얼쑤 좋아라, 그대로 하겠지.
 하지만 저건 죽은 답변이고, 도산으로 가는 낭떠러지다.
 점주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분석으로, 타당한 이유로 그 싫은 소리를 컨설팅으로 바꿔야만 했다.
 
 그게 바로 컨설턴트가 하는 일이었고,
 그게 바로 기수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를 꽉 깨물고 심호흡을 했다.
 여차하면 욕을 진득하게 들어먹겠지.
 그딴 거 안다. 많이 들어봤거든.
 ‘하지만 지금은 옛날과는 달라! 덤벼라, 점주. 한판 붙자!’
 굳은 다짐과 함께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려쳤다.
 
 팡!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었는지 야동 점주가 살짝 움츠렸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 집 우동 괜찮습니다. 근데, 그게 답니다.”
 간단한 심리적 트릭이었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잔뜩 한다고 한들, 마지막에 티끌만큼이라도 나쁜 얘기가 섞이면 그건 ‘안 좋은 얘기’가 된다.
 반면 초반부터 강력한 부정을 넣어 버리면, 추후 긍정적인 내용으로 분위기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뭐, 이 새끼야!?”
 아니나 다를까 점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으나,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대로변에 있는 ‘틈 사이 우동’ 맛집 가보셨습니까?”
 점주는 입을 다물었다.
 
 가 봤다. 먹어도 봤다.
 심지어 밤새 고민하며 분석도 해 봤었다.
 
 본인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자기네 우동이 괜찮다는 거, 하지만 그게 다라는 거.
 
 게다가 대로변 맛집은 24시간 영업하지만,
 야동 얼큰 우동은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다였다.
 덤으로 가격도 야동 얼큰 우동 쪽이 1,000원 비쌌다.
 그깟 1,000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분식류에선 굉장히 큰 차이였다. 숫자만 보면 적었으나, 본디 소비자들은 ‘지출’에 굉장히 민감했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그깟 수수료 약간이 아까워서 기꺼이 1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걷는다. 1,000원은 이 정도로 큰 차이였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야동 점주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이며 물어왔다.
 “업종을 변경하셔야 합니다. 음식점이 아닌 술집으로요. 그냥 바꾸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약간의 트릭이 필요해요.”
 이에 야동 점주는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이 자본주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조삼모사, 가벼운 말장난이 매출을 바꾼다
 
 “······근데 무슨 소리야? 지금도 술 팔잖아?”
 혹여 부시맨을 보는 느낌이 이럴까?
 콜라병 하나로 이거저거 다 하고 있는데, 저걸 어디에 쓰는 물건이라고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이에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간판이 ‘우동’이라고 적혀 있어서, 밖에서 보면 여기가 우동 전문점으로 보여요. 술집이 아니고요.”
 “그럼 간판을 바꾸면 되겠네.”
 반쯤은 맞는 말이다. 아마 저것만 제대로 바꿔도 매출이 20퍼센트는 오르리라. 근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우동을 메뉴에서 빼셔야 합니다.”
 “뭐라고?”
 야동 점주가 불교 벽화 속 나찰 같은 얼굴로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궁금해서 묻은 건 아니리라.
 “대신 말입니다······.”
 야동의 우동은 괜찮다.
 그게 다다.
 이를 조금만 바꿔서 말하자면······.
 
 돈을 주고 사 먹기엔 ‘그럭저럭 괜찮지’만, 공짜로 먹으면 ‘굉장히 좋다’는 얘기가 된다.
 
 일종의 말장난이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들자면, 유명 게임 우와(WOWA)의 피로도 시스템을 볼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게이머의 건강을 위해 일정 시간 이상 접속해 있으면 ‘경험치 획득을 감소시키는’ 시스템을 말했다.
 게이머들은 이 시스템에 짜증을 느꼈다.
 
 ―아니 난 열심히 한 건데 왜 페널티를 받지?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겨우 이거야?
 
 이에 우와 측은 사려 깊게 고민한 결과, 말을 조금 바꾸기로 결심했다. ‘피로도 시스템’에서 ‘휴식 보너스’로 말이다.
 
 과거 피로도가 50퍼센트 ‘이하’일 경우 경험치가 깎였던 것을······.
 (예 : 원 경험치 1500, 피로도 50퍼센트 이하 1000)
 
 피로도가 50퍼센트 ‘이상’일 경우 경험치가 오르게 말이다.
 (예 : 원 경험치 1000, 피로도 50퍼센트 이상 1500)
 
 실제로 얻는 경험치는 같았다.
 단지 말만 바뀌었을 뿐이다.
 근데 플레이어들의 불평불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동집 사례에 게임 얘기가 툭 튀어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요는 말장난이었다.
 
 겨우 말만 바꿨는데, 고객은 만족했고, 매출은 올랐으며, 불평은 사라졌고, 모두가 만족했다.
 
 이에 착안해 기수가 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우동 사이즈를 줄여서 기본으로 내주세요.”
 “아니, 그럼 뭘 팔아서 장사하라고?”
 당연히 안주를 팔아야 한다.
 사람들은 술집에 와서 달랑 소주만 시킨 뒤 기본 안주에 깡소주를 들이키지는 않는다. 그게 상도고, 매너다.
 “대신 안주량은 조금 줄이되, 가격은 똑같이 받습니다.”
 “어?”
 조삼모사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안주량이 줄면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감소한다. 대신 우동을 지급함으로써 그 감소를 채운다.
 “아니, 그럼 달라지는 게 뭔데? 우동 공짜로 주잖아.”
 “아뇨, 사장님. 이렇게 될 경우엔 말입니다······.”
 줄은 안주 양만큼 우동이 대신 나가기 때문에······ 테이블마다 무조건 우동 하나씩 강매하는 효과가 난다.
 “어······ 어라?”
 점주는 그제야 뭔가 잡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제가 유동 인구랑 이 가게 손님들을 찾아봤는데요, 가볍게 술 한잔할 20대. 그리고 40대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상하게 30대는 잘 보이질 않았다.
 아마 자금 적당하고, 가격보단 서비스를 우선시하는(물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30대 입장에선 굳이 여기까지 와서 술을 먹을 필요가 없었던 이유에서겠지.
 반면 40대 이상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세대 자체가 서비스보단 실용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런 가게도 잘 찾아온다.
 “그리고 조명을 조금 어둡게 낮추시고, 드럼통 의자랑 플라스틱 테이블 놔 주세요.”
 드럼통 의자와 플라스틱 테이블.
 포장마차의 상징이자, 패스트 드링크의 상징.
 덤으로 가격도 싸서 바꾸기에 부담도 없었다.
 “지금 있는 테이블이랑 의자가 더 좋은 건데?”
 점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기수는 왜 저 물건들이 필요한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위기 때문에요.”
 20대에게 있어서 ‘포장마차’란 이제는 찾기 힘든 독특한 공간이라는 기분을 주고, 40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공간’이란 이미지를 준다.
 이에 싼 가격, 면류가 기본으로 나오는 술집이라면?
 덤으로 친근한 털보 아저씨가 혼자 일하는 곳이라면?
 시너지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마 지금 같은 잡탕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이에 대해서 점주에게 심도 깊은 설명을 들려줬다.
 
 왜 플라스틱 테이블과 드럼통 의자가 필요한지, 분위기라는 게 어떤 소품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를 통해 얻는 효용과 고객들의 만족 요소는 뭔지, 하나부터 끝까지 자세히 얘기했다.
 
 “이상입니다.”
 말을 끝내고는 작게 날숨을 내쉬었다.
 지식 전달은 끝났다.
 이젠 돌아올 답변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속 시원하네.’
 시원하게 질러버린 만큼 “네 가게 똥 같아.”라고 말한 꼴이 됐기에, 거하게 욕 한 사발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름대로 각오하고 기다리고 있길 몇 초.
 점주의 꽉 닫혀 있는 입술이 열렸다.
 “······그 말대로 하면 진짜 되는 거냐?”
 “선택은 사장님의 몫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마 크게 성공을 하진 못하리라.
 그만큼 이 주변엔 강력한 경쟁자가 많았고, 소비자들의 입맛 역시 까다롭다. 하지만······ 약자에겐 약자만의 생존 방법이 있었다.
 
 강한 상대를 굳이 이기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강자들이 놓친 것들. 곧 틈새 고객만 확보해도 충분했다.
 경쟁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면 됐다.
 그사이 소위 말하는 ‘강자’들은 시대와 경쟁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쓸려나가겠지만, 약자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건 생존 경쟁.
 누가 강하고 약하느냐 따위 상관없었다.
 ‘결국, 살아남는 놈이 장땡이지.’
 
 점주는 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해 볼게.”
 “예?”
 믿지 못해 되물었다.
 “해 본다고. 네 말대로.”
 이에 점주는 굳은 결심이 엿보이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긍정의 말을 내뱉었다.
 “대금은 상호 형님 통해서 줘도 괜찮지? 사실 이렇게 괜찮은 대답이 나올 줄 몰라서, 봉투 준비를 안 해놨어.”
 대금. 그러고 보니 기수는 여태 컨설팅에 심취해 있던지라 돈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아마 상관없겠지. 심 교수가 돈 가지고 장난질할 사람은 아닐 것 같다. 어차피 얼굴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심상호는 낙삼대 교수였다.
 권위직이고 여론에 민감한 자리일 수밖에 없었기에, 푼돈 가지고 장난질 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세요.”
 나름 욕 잔뜩 들어먹을 각오로 얘기했는데, 단 한 번에 납득하니 기분이 멍했다.
 그 멍한 머리 사이로 예전에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고졸 새끼가 뭘 안다고!
 ―일이나 해 이 자식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네 말대로 할게.
 ―고맙다. 잘 들었다.
 ―이렇게 괜찮은 대답이 나올 줄 몰랐다.
 
 성공했다.
 난생처음으로.
 성취감에 잠시 젖어 있자니 점주가 말을 걸었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데, 적어줄 수 있냐······?”
 메모해서 간직할 만큼 소중한 조언이라는 뜻이리라.
 기쁜 마음으로 적어주고는 야동 밖으로 나왔다.
 그냥 보내기 미안했던 걸까?
 야동 점주가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쥐여 줬다.
 “이건 뭔가요?”
 “······갈 때 택시 타고 가. 대금이랑은 별개로 주는 거야.”
 “하하, 괜찮아요. 어차피 가까워서 그냥 갈 수 있습니다.”
 “아냐. 이래야 내가 속이 편할 것 같아.”
 점주는 한사코 거절하는 기수의 손에 지폐를 쥐여 줬다.
 “에이······ 안 주셔도 된다니까······.”
 “됐고. 있잖아, 컨설턴트 양반.”
 “또 왜 그러세요?”
 점주는 쑥스러웠는지 슬쩍 볼을 긁는가 싶더니······.
 “처음에 무시해서 미안했다. 내가 잘못했다. 그리고 고맙다······.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매일매일 뭐가 문젠지도 모르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아. 아마 너 없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거다.”
 점주는 이후 헛기침을 커흠, 커흠, 했다.
 기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등을 돌렸다.
 맨 처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말로는 채 형언할 수 없는 고양감과 쾌감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게 느껴졌다.
 “저도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경영의 귀재』 1-2권에 계속>

댓글(3)

갓드니스    
회사키우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컨설팅만 하넹
2018.01.02 15:19
햄보캄    
34% 감정 -> 강점
2019.12.27 10:34
    
점주들이 하나같이 성격 지랄맞네 반말기본이고 설정이 너무 뭐랄까.. 한숨
2020.10.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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