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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추억의 스타 1권-1

2017.12.01 조회 6,059 추천 56


 응답하라 추억의 스타 1권-1
 
 
 1. 적임자
 
 
 아스팔트가 뜨거운 해와 충돌을 일으켜 힘껏 달아올랐다. 지끈한 열기 위의 차 안에 있는 이들은 에어컨을 틀어놓고는 앞길에 끝도 없이 늘어선 차량이 짜증이 치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차량 중, 낡은 밴에 타고 있는 강류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겹치는 그의 얼굴은 결국 짜증으로 바뀌었다.
 “아······ 진짜. 차 더럽게 막히네.”
 “조금만 참아, 자식아.”
 운전석에 탑승해 있는 매니저 한석훈의 말이었다. 류환은 얼굴을 씰룩이면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오랜만의 스케줄이 생겼다. 오후의 휴식이라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청취율이 그렇게 썩 잘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전국적인 전파를 타는 방송에 출연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왔건만 차량이 막히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류환은 스타다.
 하지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타는 아니었다. 삼류스타.
 그것이 그가 가진 제2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본래 삼류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 과거에는 대한민국을 누비는 일류급 스타였다.
 뛰어난 성량,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가수로서 크게 성공을 했었다.
 더불어 연기도 곧잘 배웠기에 드라마 제의도 속속들이 받아 챈 최정상의 스타였다. 하지만 그를 덮친, 갖가지 것들. 아니 덮쳤다는 표현보다는 그 스스로가 자신을 나락의 끝으로 빠뜨렸다는 말이 맞았다.
 막 일본 진출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폭행혐의로 그는 검찰에 구속되었다. 평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후배 가수 녀석이 있었다.
 매일 자신에게 삐 댔다.
 소위 스타라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자신들이 갖는 긍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룰도 존재하였다. 그것은 후배와 선배 사이의 룰이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후배라 할지라도 선배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런 룰이다.
 하나, 녀석은 못 나가는 것도 아닌 한참 잘 나가는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에 뺨을 한 대 때린 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을 진탕 마셔 때린 것으로 기사가 나고 말았다.
 -가수 강모 씨,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후배 가수, 이모 씨를 폭행.
 물론 뺨 한 대도 폭행에 해당하나, 문제는 그 뺨 한 대 때린 사건이 이산화탄소가 주입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그 한 번의 사건으로 온 국민에게 상당한 이목을 끌었다. 그 일로 인해 얼마간 연예계 활동을 정리하고 일본 진출도 잠시 접어 두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일본 진출을 위해서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 다시 복귀하려는 시기에 속속들이 계속해서 일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과거 철모르던 시절 손을 댔던 마약,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으며 미국에 살던 시절 일삼았던 폭행이나, 여자들과의 관계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 세상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가수 강류환은 일류급 스타에서 상종 못 할 인간쓰레기로 전락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국민들에게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로 박혀 버린 사람이라면 재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개할 수 있다고 한들, 자신의 이미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을 좇아 연예계 활동을 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류환은 당시 그럴 수 없었다. 단지 돈 때문에, 연예인으로 살 수는 없었다. 차라리 TV 속에서 자취를 감추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후회되는 행동 중 하나였다. 나이 서른이 되니, 음악과 연기만 믿고 살던 인생에서 돈벌이가 끊겨 더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흔한 단순 파트 타임 일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알려진 얼굴이었다.
 일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어? 혹시 강류환 씨······?’ 이렇게 말을 걸고, 어색하게 웃으면 뒤에서 그가 과거 벌였던 일들에 대해 뒷담화를 하곤 하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스타로서의 일이다.
 그래서 지금 새로이 세상에 복귀해 지금껏 쭉 삼류스타로 남아 생활하고 있다.
 이번 라디오 출연료가 30만 원이다. 그 30만 원은 또 쪼개질 것이었다. 매니저 수당, 차량 유류비, 생활비.
 까마득하다. 모든 연예인이 일반인들보다 더 잘 살 거라는 선입견을 품은 사람들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실제, TV에서 보기 힘든 연예인들은 일반 직장인들보다도 더 바닥을 치는 인생을 산다.
 그것이 바로 연예인이다. 앞으로는 화려한, 뒤에서는 초라한 인생 말이다.
 전화왔숑 전화왔숑!
 매니저 한석훈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석훈은 강류환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이다. 류환은 그보다 열 살은 더 어리다.
 한석훈은 류환의 데뷔 시절부터 매니저였고, 지금까지도 그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 그가 잘 나가든 못 나가든 그의 옆을 지켜봐 준 사람이다.
 하지만, 류환은 성격상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한석훈 씨!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이제 곧 게스트 출연시간이라고요!
 “아, 죄송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 석훈은 뒷좌석에 있는 류환의 눈치를 흘끗 살폈다. 과거에는 담당 PD 따위가 재촉할 수 있는 스타가 아니었건만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5분 안으로 오지 않으면 방송국에 다른 분들 많으니까, 그분들로 땜빵 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아세요!
 “금방 가겠습니다.”
 담당 PD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룸미러로 류환이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담당 PD지?”
 류환은 지금이나 예나 눈치는 빨랐다.
 “어? 어······ 어.”
 석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천천히 오래, 천천히. 내가 죄송하다니까 괜찮다는데? 캬, 역시 그래도 너란 존재를 알아주긴 한다. 한때 잘 나갔던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강류환 크~.”
 “최고의 가수는 무슨.”
 석훈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류환은 아닌척하면서도 작은 웃음을 머금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그에 반해 석훈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어느새 꽉 막힌 차량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탄 차량도 앞으로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KBC 방송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헐레벌떡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오후의 휴식’이라 쓰여 있는 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송작가, 스태프들, 담당 PD까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강류환이 오자 반기기보다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입니까!?”
 “죄송합니다.”
 “빨리 들어가세요. 곧 입니다, 곧!”
 담당 PD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나마 류환은 늦지는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를 취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김은하’라는 마흔 살의 국민 아줌마 이미지를 심고 있는 이였다. 나이답지 않은 고운 피부와 아나운서 같은 말솜씨로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요즘 한참 뜬다는 아이돌 그룹의 ‘썬’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다. 썬은 훤칠한 키에 황금빛 머리카락, 이국적인 눈동자로 중고등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이돌이었다.
 현재 음악이 나가 고 있는 시점이었다. 류환은 게스트석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가 생수병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의 라디오 방송인지라 목이 타들어 갔다.
 어느새 노래가 끝이 나간다. 류환이 긴장한 기색으로 헤드셋을 착용하였다. 김은하가 부드러운 미소로 차분히 심호흡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에 반응하듯 큰 심호흡을 한 류환은 곧, 방송 시작을 알리는 온에어에 불이 들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김효연 양의 신청곡을 들었는데요. 김효연 양에게는 저희가 선물로 5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턴 최고의! 게스트! 시간입니다.”
 김은하는 최고의! 라고 외치고, 게스트! 부분에서 또 한 번 크게 외쳐 임팩트를 넣어주었다.
 “오늘의 게스트는요, 혹시 썬 씨 아시나요? 널 사랑해~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해에~”
 “미치도록 사랑해에~ 크으, 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곡이죠!”
 은하가 과거 류환이 한참 잘나가던 시절. 히트를 쳤던 노래 ‘미치도록 사랑해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맞받아 잡는 썬을 보면서 류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2008년 1집 앨범 ‘하늘을 향해서’로 데뷔! 2010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당시······.”
 이어 김은하는 류환에 대한 상세설명을 해주었다. 어찌 들으면 거창하나, 그 속은 초라하기만 한 자신의 이력이었다. 한참, 그에 관해 설명하던 김은하는 곧 마무리를 짓고 눈짓을 보냈다.
 류환이 마이크를 향해 입을 가져갔다.
 “안녕하세요. 오후의 휴식 게스트로 출연한 강류환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강류환 씨. 되게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김은하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쉬고 있습니다.”
 “하긴, 천상의 목소리도 늙긴 하나 봐요?”
 “하하.”
 그녀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류환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오늘의 계획은 이러하였다. 게스트로 DJ들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여느 방송 프로그램들처럼 그에게 과거사에 관해 물을 것이다.
 그럼 류환은 그 당시의 일을 설명하고, 힘들었던 점을 말할 것이다. 그 정도면 오늘 하루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며 국민의 관심을 얻는다, 구차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류환에게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몰랐다.
 “김은하 씨는 실물로 보니까 20대인 줄 알았어요.”
 “이거이거, 저는 남편이 있는데 말이죠.”
 “하하.”
 오랜만의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류환은 상당히 잘 이끌어 나갔다. 본래 존재하던 스타성 때문일 것이리라.
 그렇게 이야기는 순탄하게 풀리면서 곧 라디오 방송이 끝이 났다.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출연자 중 현재 삼류스타급인 류환이 프로그램을 함께 한 김은하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가 살짝 묵례를 취해 보이며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내 차차 다른 이들도 안으로 들어와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썬이라는 녀석은 생수통을 따 물을 마시면서 몸을 일으켰다.
 “예전엔 진짜 죽여줬는데, 널 사랑해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해. 지금도 예전처럼 정정하시죠?”
 “그렇지.”
 썬은 빙그레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그 말속에 가시가 돋친 듯했다. 류환은 자신의 업보임을 알았다. 그는 연예계에서 한창 잘 나가던 당시 싹수없기로 소문난 이였다. 선배 연예인들은 물론이요, 동기, 후배들에게까지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자신과 친한 연예인은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 한참 잘 나간다고 말에 가시가 돋아난 썬을 보면서 류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나중에 그처럼 되어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정말 나도 성격 많이 죽었구나.’
 예전 같았으면 벌써 언성을 높이며 녀석에게 후배 어쩌고 하면서 입을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 번 더 터지면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도 끝이다.
 밖으로 나오자, 담당 PD가 썬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연예인들은 담당 PD의 접대대상이건만 그에게는 관심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류환에게 석훈이 다가왔다.
 “수고했다, 그래도 아직 안 죽었어.”
 석훈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의 몸을 흔들 듯 추켜세웠다. 류환이 쓴웃음을 짓다가 배 속이 꾸르륵 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의 촬영이라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형, 나 잠깐 화장실 좀.”
 “그래. 나도 PD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류환이 화장실을 향해 곧장 몸을 돌렸다. 그는 당장 장 밖으로 요동칠 것 같은 그것을 내색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온 류환은 문을 열고 들어와 변기에 앉았다.
 뿌웅.
 제길. 역시나. 나오지 않는다. 변기에 앉았음에도 그의 뱃속 덩어리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스트레스성 변비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류환은 생각보다 꽤 오래 앉아 있었다.
 끼익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 PD님. 진짭니다 진짜, 다음 프로에도 꼭 저 데리고 가시는 겁니다.”
 “알겠다니까 진짜.”
 조금 전 라디오 프로그램 담당 PD와 썬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류환은 왜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뒤쪽으로 몸을 빼는지 알 수 없었다. 곧 두 사람이 소변기 앞에 서자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강류환 씨요. 그 사람 자존심도 없던데요?”
 “무슨 소리야?”
 “아까 살짝 툭 찔렀더니 웃어넘기더라고요.”
 류환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흠칫하면서 더욱더 숨을 죽였다. 썬의 말에 한 PD라는 사람이 실소를 흘렸다.
 “예전엔 진짜 불도저였다더라. 선배 후배, 뭐 이딴 거 없이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뭐하겠냐. 지금 밑바닥 인생인데. 어디 학교에서 뭣 좀 있다 싶어서 불러주면 좋아서 달려가고, 어디 시장바닥에서 축제 같은 거 한다면 기어가고 몇백만 원 몇십만 원 받는 인생 아니겠냐?”
 “역시 사람은 능력이 중요해요, 능력이. 능력에 따라 성격도 변하는 거죠.”
 두 사람의 조소 어린 소리에 류환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쪽팔리고 창피했다. 저딴 녀석들이 자신을 비웃는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더 대박인 건 뭔지 알아?”
 “뭔데요?”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한 PD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다. 썬이 궁금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 사람 매니저 한석훈 씨라고 있어, 아까 그 낡은 신사복 입고 있던 사람, 그 사람이 나한테 얼마나 연락을 해대던지, 한 번만 출연시켜 달라, 그러면 이 은혜는 안 잊겠다. 애걸복걸. 아예 사정사정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내가 그 사람 하는 짓이 불쌍해서 이번 한 번 불렀지. 아니었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어.”
 “어쩌겠어요. 지들 같은 인생 끼리끼리 둘이 뭉쳐야 사는 인생 아니겠어요?”
 끼이익-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류환이 앉아 있던 자리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바지 지퍼를 올리던 두 사람의 시선은 절로 뒤로 돌아갔고 ‘헉’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류환이 바지 지퍼를 올리며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는 욕해도 됩니다. 마약에 폭행에 도박에······ 근데 불쌍한 우리 석훈이 형은 무슨 잘못입니까!”
 “아, 아니 그게 류환 씨 그게 아니라······.”
 류환의 분노가 크게 달아올랐다. 한 성깔 하던 예전의 그것이 올라온 것이다. 자신은 분명 잘못했다. 자신이 행한 것으로 추락하였다. 그 때문에 욕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 착하디착한, 바보 같은 매니저이자 형인 한석훈이 욕을 먹는다는 것에 화가 났다.
 후웅-
 와직!
 류환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그대로 강하게 던져버렸다. 썬과 한 PD 사이의 소변기 틈으로 휴대폰이 부딪치면서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튄 파편에 흠칫하면서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이게 무슨······! 당신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썬과 한 PD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욕을 한 것은 잘못하였으나 이 무슨 막돼먹은 행동이냐는 모습이다.
 “아가리 조심들 하십쇼! 예! 확 제기랄! 잘 나가면 선배고 뭐고 뵈는 것도 없냐?”
 그들에게 성큼 다가간 류환이 목에 핏대를 세워 한 PD에게 말하더니 옆의 썬을 보고는 눈을 부라렸다. 그래도 어린 녀석이라 그런지 키 183㎝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류환이 눈을 크게 뜨자, 눈을 내리깔았다.
 류환이 신경질적으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당신 이러고도 어디 가서 프로그램 하나, 초청 공연 하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PD들이, 다른 관계자들이 당신을 찾기는 할까?”
 뒤쪽에서 한 PD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지금 류환이 한 행동은 더 이상의 생명 연명을 위한 밥줄도 끊는 행위와 같았다. 아무리 작은 프로그램을 맡은 PD라 할지라도 다른 PD들과 연줄이 닿는다.
 아마도 PD들 사이에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하지만 류환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리고는 밖으로 나섰다.
 화장실에 남은 두 사람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
 
 낡은 밴 안에 타고 있던 한석훈은 휴대전화로 뉴스 속보를 보고 있었다. 뉴스 속보에는 대박 기사가 나 있었다. 대한민국, 바로 이 나라에 세계적인 스타인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와 있다는 소식이었다.
 더니앨 레드클리프는, 해리포슨이라는 책으로 세계 각지의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모를 수도 있으나, 해리포슨이 개봉한 나라에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의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사인 그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더니앨 레드클리프가 왔다는 소식에 이어진 그의 방문 이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휴식기를 갖기 위해?”
 우습게도 더니앨 레드클리프가 대한민국에 방문한 이유는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란다. 한석훈이 황당하다는 웃음을 흘렸다.
 세계적인 배우가 휴식 따위나 취하려고 이런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에 온다는 것이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류환이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화가 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룸미러로 확인하는 석훈을 보면서 그를 불렀다.
 “형. 혹시······.”
 그는 무척 화가 난 음성으로 뭔가를 물으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류환은 한석훈이 자신 때문에 그러고 다니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난감해할 것 같았기에 결국 참은 것이다.
 “혹시 뭐?”
 한석훈이 재차 물었다. 그에 류환이 쓴웃음을 지었다.
 “됐다, 형. 오늘 잘됐으니까.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가자.”
 분명 한 PD가 석훈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일에 대해 지랄 하겠지만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한 류환이다. 일단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숨기기로 한 그다.
 
 ***
 
 두 사람이 낡은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류환을 알아본 몇몇 이들이 속닥거리기는 하였지만, 딱히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평소 즐기던 술을 시켰다.
 류환은 한석훈과 술을 한 잔 두 잔 걸쳤다.
 그렇게 어느새 한 병, 두 병이 동났다.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면서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류환이 석훈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
 “형.”
 “응?”
 오늘따라 이유 없이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한석훈은 의아했다.
 “우리 이 짓 그만 때려치울까?”
 “······왜.”
 류환의 말에 석훈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류환은 이 말을 내뱉은 자신이 죄인 같았다. 어쩌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은 자신보다 석훈일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 때문에 이혼까지 하였다. 변변치 않은 수입 때문이리라. 물론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류환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을 떠나지 않는 미련한 사람.
 그 때문에 더욱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게 힘들다.
 “그냥 형이랑 나랑 이런 포장마차 하나 차릴까?”
 “포장마차라······ 이런 거 차릴 돈도 없다야.”
 “큭, 그렇네.”
 석훈의 쓴웃음이 담긴 말에 류환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어느새 술잔이 가득 채워진 술로 인해서 넘쳤지만, 그는 한참이나 더 따르고서야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럼 콱 죽어버릴까? 그럼. 오랜만에 뉴스랑 신문이랑 인터넷이랑 다 내가 정복할 수 있는데.”
 “미친······ 헛소리하지 마라. 니 새끼 죽으면 용서 안 한다.”
 류환의 이어진 말에 석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류환이 고개를 저었다. 장난이라면서 킥킥거리며 웃어 보인다. 석훈이 한숨을 쉰다.
 그가 어느새 고개를 꺾어 술잔을 비운 류환의 잔에 술을 채워줬다.
 “정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해보자. 그렇게 더 해보고 진짜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말해라. 그럼 진짜 대출이라도 받아서 이런 포장마차라도 하나 차려보자.”
 “그래······.”
 그 조금만이 석훈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류환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혹여 다시 명성이라도 얻지 않을까.
 어떻게 변변한 프로그램이라도 하나 잡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그는 가지고 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류환이 다시 술잔을 꺾어 입에 털어 넣었다.
 
 ***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온 두 사람은 술에 만취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어깨동무를 하였다.
 “예전에 우리 좋았잖아! 넌 잘 나가는 스타! 난 잘 나가는 스타 매니저!”
 “그렇취 그렇취!”
 밖으로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면서 순간 술에 취한 기분을 즐겼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웃던 중 비틀거리던 류환이 석훈과 걸쳤던 어깨동무를 풀면서 다섯 발자국 물러났다.
 “이번 2020녀어언! 가요대상은!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두구두구!”
 류환이 시작한 것을 석훈이 재빠르게 같이 한다. 두구두구두구하는 북소리를 두 사람이 같이 입으로 냈다.
 “강류환 씨입니다!”
 “오오오오!”
 류환의 외침에 석훈이 오른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수차례 흔들어 보이면서 환호하였다. 그 모습에 킥킥거리며 웃던 류환이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사랑해 널 사랑해~ 미칠 듯 사랑해. 언제까지나 네가 있던 그곳을 불러봐.”
 비를 맞으면서 비틀비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류환의 모습이 순간 석훈의 눈에 들어왔다. 처량했다. 삼류스타의 모습이. 어찌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비에 젖어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류환에게 석훈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갔다.
 “야야, 2차 가자 2차!”
 “고럼 가야쥐!”
 두 사람이 다시 어깨동무를 하면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길에도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헤어진 두 사람이다. 류환은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그가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11시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직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빗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바람도 세차게 부는 듯 거리의 나무들이 거세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무슨 날씨가 예고도 없이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머리가 벗겨지고, 안경을 낀 택시 운전기사가 혀를 차는 소리를 내었다. 어느새 차량은 마포대교에 진입하여 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계속 창밖을 보고 있던 류환은 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기에서 세워주시겠어요?”
 “여기서요?”
 세워달라는 말에 택시기사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바람이 부는데 이곳에서 세워달라는 말에 의아한 것이다.
 류환이 곧 택시비를 확인하고는 3만 원을 택시기사에게 내준 채, 도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멈추자 바로 내렸다.
 “손님! 손님!”
 택시기사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류환은 비를 추적추적 맞았다. 얼굴을 가득 때리는 빗방울, 거센 바람 때문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술기운으로 다리의 난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간 쪽으로 오는 순간, 그는 머릿속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초라하냐 왜 이렇게.”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화려할 것만 같았던 인생이 지금 그 누구보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렇다면 석훈이 잠시 힘들어하겠지만 그래도 빠르게 자리를 잡겠지, 그리고 아까 그에게 흘리는 듯했던 말처럼 자신이 잠시라도 뉴스를 장악하겠지.
 기사는 ‘비운의 강류환 마포대교에서 자살’ 기자들은, 기사에 평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생활고에 시달려 많이 힘들어하여 자살했다고 적을 것이다.
 그것도 좋구만. 이라고 류환은 어이없는 말을 뱉어냈다.
 그 순간이었다.
 옆에서 어눌한 한국말이 들렸다.
 “반갑습니다, 강류환 씨.”
 고개를 튼 순간 류환은 자신이 잘못 보았나 싶어서 자신의 눈을 한 차례 두 차례, 계속 비볐다. 하지만 자신에게 말을 건 인물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해리포슨의 배우.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서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해리포슨?”
 술김에 그의 본명보다는, 흔히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름이 떠올라 말하였다. 그 말에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작은 웃음을 흘렸다.
 “비가 많이 오네요.”
 어눌한 한국말.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정말 마법처럼,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정말 마법사라도 되는 것처럼 류환과 그 두 사람의 주위에서 오던 비가 멈췄다. 류환은 순간 그에 자신이 술에 극심하게 취했나 싶었다.
 하지만 비를 맞아서 어느 정도 정신은 차리고 있었다. 그가 놀란 눈으로 더니엘 레드클리프를 보았다.
 “마법······? 진짜 마법사?”
 “그렇다고 해두죠.”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긴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해리포슨 때와는 다르게 안경을 벗고 있었으며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는 류환의 어이없는 질문에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해리포슨이 진짜 마법사라니. 내가 미쳤구나 미쳤어.”
 류환은 취하지 않았음에도 취했다고 자신을 애써 설득시켰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들 주위로만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가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껏 비볐다.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있는 것도 자신의 환상 속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얼굴을 비비고 눈을 똑바로 뜨면 앞에 보이는 것은 떨어지는 빗방울, 몸에는 차가운 감촉이 닿을 것이고 제정신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변하지 않고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왜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나는 강류환 씨와 함께 이렇게 있는데.”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난간에 등을 기대어 서서 류환을 보았다. 류환보다는 작은 키였으나, 그의 몸에서 엄습하는 기운은 남달랐다. 대스타.
 대스타의 몸에서 풍기는 그것이었다.
 그것은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다.
 “어떻게 제 이름을······.”
 류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꿈도, 자신이 술에 취해 일어난 현상도 아니다.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자신의 앞에 있으며, 그는 자신과 그 두 사람 주변에 비가 내리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글쎄요. 적임자를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군요.”
 “적임자라니?”
 적임자라는 말에 류환은 의아함을 표출하였다.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의문 어린 시선의 그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You. 바로 당신입니다.”
 “무슨 적임자를 말하는 거죠?”
 “다시 선택할. 그리고 기회를 이용할. 적임자.”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택? 그리고 기회의 이용을 위한 적임자? 그것이 또 자신이다?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선택한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다?
 “죽고 싶죠? 힘들고. 일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고, 일약 대스타였으나 지금 현재는 추락하고. 지금 이곳도. 당신은 이끌리듯 왔겠죠. 어쩌면 죽기 위해서.”
 싱긋하고 다시 웃는 얼굴에서 이번에는 소름이 끼친다. 이 작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또, 더니엘 레드클리프 같은 유명인사가 자신에게 적임자라니, 무슨 헛소리인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너무 실의에 빠지진 마세요. 나도 그랬으니까.”
 더니엘 레드클리프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류환이 의구심 가득 얼굴을 찌푸렸다. 도통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양키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더니엘 레드클리프. 제가 과연 처음부터 해리포슨의 배우였을까요? 과거엔, 나도 당신 같은 실의에 빠진 때가 있었는데.”
 “과거라면 여덟 살? 그때······ 뭐 저처럼 실의에 빠지고 힘들어했다고요?”
 더니엘 레드클리프의 과거라 하면 그때로 생각하는 것이 나았다. 더니엘 레드클리프는 그때쯤 해리포슨의 배우로 뽑혔으니까. 그런 그가 과거에 힘들었다는 것은 여덟 살 즈음일 것이다.
 “아뇨. 저도 서른 살의 때가 있었고,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를 찾아왔죠. 그 사람은 저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적임자라고. 그 후 저는 해리포슨의 주인공이 되었죠. 그거 아시나요? 해리포슨의 원래 배우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류환은 이젠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그가 미쳤다고. 그 말은 마치, ‘그가 다시 태어났다’라는 말로밖에 들리진 않는다.
 “맞습니다. 전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았죠.”
 “헉.”
 자신의 생각을 맞췄다. 그는 생각을 읽어냈다. 류환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미래를 통해 기회를 잡았죠.”
 그가 빙그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를 보면서 류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망치는 게 나을까? 그래, 도망치자 이 알 수 없는, 유명 배우이지만 미치광이인 더니엘 레드클리프의 곁에서 도망을 치자고.
 류환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헉헉.”
 숨이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하나, 한참을 달렸다고 미친 듯이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그는 제자리였다.
 “그래서 당신에게 저는 그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받았던 것처럼, 당신께 드리죠. 다시 태어날 권리. 과거로 돌아갈 기회. 그리고 앞으로 잡을 수 있을 것들. 그것은 정말 달콤한 것이거든요.”
 몸을 돌리자 다시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류환은 털썩 주저앉았다. 무슨 소리인가 도대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적임자’가 되어서 새로 태어나, 기회를 잡은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아. 배우 중엔 애놀드슈왈츠제네거 씨도 그런 분 중 한 사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수 중엔 마이클 젝슨 씨가 있죠.”
 “저를 과거로,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요?”
 류환은 피할 수도, 어찌할 수도 없는 이 현실을 직시하였다. 더니엘 레드클리프를 지금 자신이 피할 수 없다. 그에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을 하고 물었다.
 더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류환이 헛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준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강류환 씨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해드리죠. 아, 새로운 삶이라고 해서, 다른 이의 삶을 사는 건 아닙니다. 오직 당신의 삶에서 시계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니까. 적임자가 되시겠습니까?”
 더니엘이 말하는 적임자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되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
 그는 물어왔다. 적임자가 될 것이냐고. 류환은 그의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헛소리일지도 몰랐다. 과거로 돌아간다?
 이 21세기 세상에서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미쳤다며 돌멩이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기억들이 아닌 새로운 것을 맞아야 하겠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슬픈 것보다 훨씬 큰 기쁨이 그를 엄습하였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적임자입니다.”
 류환의 말에 더니엘은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류환의 몸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기회를 잡으셔야 합니다. 이미 겪어본 것이니, 잘 하실 수 있겠죠. 그리고 적임자에 대한 언급은 하셔서는 안되며, 또한 과거로 돌아간 후 저를 만나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추후에는 다른 적임자를 찾으시면 됩니다.”
 “다른 적임자······.”
 “그것은 본인이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스스로 찾으시면 됩니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하죠.”
 더니엘이 몸을 낮춰서 류환의 다리를 잡았다. 그 순간, 흠칫한 류환이 다리를 잡은 손을 풀려 했으나, 엄청난 무게의 쇠가 다리를 잡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더니엘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그에 류환의 몸도 머리가 바닥 쪽을 향하여 떠올랐다. 마치 사람이 닭의 다리를 잡고 축 늘어뜨린 모습이다.
 이내 더니엘은 망설임 없이 마포대교 밑으로 류환을 던져버렸다.
 “헉! 다, 당신!”
 “부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마포대교 밑으로 류환을 던져버린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본 류환은 자신과 서서히 다가오는 한강 물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속았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퍼졌다.
 ‘차라리 잘됐어.’
 하지만 곧 그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인생. 어차피 자신이 하려 했다면 두려움에 하지 못했을 것을, 남이 대신해 준다는 것에 차라리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곧 그의 몸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 강류환, 회귀하다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극심한 추위가 몸을 감쌌다. 숨 막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몸이 따뜻해졌으며, 숨 쉬는 것이 수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인 자신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류환은 답답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하듯 자신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모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느 여성의 간절함과 다급함이 함께 섞인 목소리였다. 산모라는 말에 류환은 잠시 생각했다.
 산모라면, 애를 밴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조금만 더라면 지금 애를 낳고 있다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류환을 강한 압력이 조여 왔다. 그를 어둠 속에서 빼주기 위해서 계속 강한 힘이 압박을 해왔다. 그 압박 이후, 류환은 자신의 몸이 어느 한 조그마한 벽과 마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그마한 벽에는 작은 통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류환 스스로가 그곳을 나가기에는 너무나 비좁아 보였으나, 압력은 억지로 류환을 그곳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류환의 머리가 그곳에 마치 음식물 찌꺼기가 하수구에 막히듯이 박혀버렸고, 곧 비명이 퍼졌다.
 “꺄아아악!”
 “거의 다 됐습니다. 조금만 더!”
 비명 이후, 다시금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이것이 무엇일까 하며 생각하던 류환의 머릿속 생각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한다.
 과거로 보내준다, 더니엘 레드클리프가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태어난다.
 그것이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면? 지금 이곳은 어머니의 뱃속일 것이었고, 어머니는 분만실에서 자신을 낳기 위해 힘을 주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이 미치는 순간이었다. 류환은 이성적으로 변했다.
 ‘빨리 나가자!’
 이 어두운 공간에서 자신이 나가면 자신도, 어머니도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류환은 자신을 밀쳐내는 압력에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나가기 위해 애를 썼고, 이내 그의 머리 쪽이 강하게 쪼이더니, 쑤욱 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순간, 강한 빛이 그의 눈을 강타했다.
 몸이 빠져나오자 자신의 몸만 한 거대한 손이 자신을 잡아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손은 이내 가차 없이 류환의 엉덩이를 때렸다.
 찰싹찰싹
 “응애애애, 응애애애!”
 그는 자신이 울고 있다고 직시하였다. 그는 세상에 나옴과 함께 엄청난 울음소리를 토해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몸을 뭔가로 닦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는 최대한 눈을 뜨려고 하였으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단지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감격에 겨운 벅찬 흐느낌으로 울고 있었다.
 곧 아버지가 수건에 뒤덮인 류환, 바로 자신을 안아 들고 누군가에게 보여줬다.
 “여보······ 아들이야, 아들!”
 아버지는 아마도 어머니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거다. 젊은 어머니.
 분만 직후라,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힘겹게 손을 뻗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미소가 감긴 눈에서도 보이는 듯하였다.
 ‘정말······ 과거로 온 건가······?’
 그는 더니엘 레드클리프, 해리포슨의 말처럼 과거로 돌아왔다. 1992년. 한태지와 아이들이 ‘넌 알아요’를 발매하면서 대한민국을 한태지 하나로 물들인 그 해. 그때로 말이다.
 
 ***
 
 류환의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 모두는 음악을 하는 이들이었다. 어머니의 경우 성악을 전공해 유명한 악단에 몸담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경우는 어머니보다는 성공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음악가였다.
 아버지는 술집을 운영했었다. 그리고 그 술집에서 가끔 색소폰을 불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는 하였다. 하나 류환은 살면서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가게에서 듣는 색소폰 연주는 정말이지 훌륭하였다.
 그런 놀라운 연주를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도 결국, 한 일의 계기로 인하여 어긋나기 시작한다.
 류환이 열 살이 되던 때 부모님은 이혼하고 말았다. 이혼의 이유는 보증이었다. 아버지의 친한 친구 중 임재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와 개구쟁이 시절 함께 자랐던 오랜 친구. 그는 사업가였다. 무척이나 알아주는 사업가.
 하지만 그런 대단한 사업가인 임재호가 어느 날, 아버지를 다급하게 찾아왔다.
 사업이 부도나기 일보 직전이다, 당장 보증을 서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자금만 막는다면 회사는 다시 크게 설 것이고, 이 은혜는 배로 갚겠다.
 아버지는, 친구인 임재호가 은혜를 배로 갚는다는 말에 현혹되어 보증을 서준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그를 믿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커왔던 자신의 친구를 믿은 것이다.
 하지만 보증을 서준 후, 집에 날아온 것은 가압류 딱지였으며 친구인 임재호의 연락 두절이었다.
 임재호는 그 후로도 평생 류환이 보지 못했으며 아버지도 더 이상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보증을 통해 얻은 돈으로 부도 사태를 막기는 하였으나, 결국 회사가 망하여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게 된 후,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가게를 빼앗겼다. 집을 빼앗겼다. 차를 빼앗기고 자신의 색소폰을 빼앗겼다.
 그 후로 이어진 것은 타락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즐기게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며 티격태격했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지는 것은 흔한 드라마 스토리의 이혼이었으며 그 당시가 류환이 열 살이 되던 때였다.
 두 사람이 이혼하고 류환은 어머니를 따라서 미국으로 갔다. 어머니는 미국 유명한 뮤지컬팀의 제의를 받았고 그에 흔쾌히 수락하며 류환을 데리고 완전히 그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류환이 대한민국에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 살의 나이였으며, 그때는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너무나 늦었을 때였다. 어머니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상황이었으니까.
 쪼옥 쪽 츄르릅
 “하아아······.”
 짙게 빨자 그곳에서 단물이 나오며 목을 축여줬다. 그와 함께 작은 신음이 퍼지면서 몸의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한참이나 빨던 류환이 입을 뗐다.
 “이 녀석, 되게 잘 먹네.”
 류환은 어머니의 유두에 닿아 있던 입술을 떼어내 어머니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어느새 자신은 집에 와 있었다.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먼 시절의 그 집에 말이다. 어머니는 마냥 좋은 것인지 빙그레 웃으면서 안은 팔로 흔들흔들 류환을 어르고 있었다.
 “흐아암!”
 류환이 하품을 쩌억 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자신의 코로 류환의 코를 비비고는 그를 침대로 데리고 갔다. 그녀가 류환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류환이 잠들 수 있게 토닥여주었다. 류환은 잠에 빠지는 것처럼 스르르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몸을 일으키며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류환의 눈이 번쩍 떠졌다.
 후욱!
 류환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몸을 눕혔다.
 ‘시작해 볼까.’
 그는 아직 한 살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연습하고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그는 미래에는 음악에 대한 갖가지 것들을 배워볼 생각이었으며 더니엘의 말처럼 알고 있는 미래를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 무척 매혹적인 일이었으며 정말 대스타가 될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 히트작을 알고 있으니까.
 해리포슨의 배우였던 더니엘은 세계 최고의 히트작, 해리포슨의 본래 배우가 자신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도 미래를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서 해리포슨의 배역을 따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엄청나게 옳은 판단을 해낸 것이었다.
 “후우욱, 수우욱.”
 이제 겨우 한 살. 류환의 아랫배가 부풀더니 그대로 폴싹 꺼졌다. 그리고 다시 아랫배가 부풀고 폴싹 꺼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안다면 모두가 기절초풍할 것이다.
 한 살짜리가 복식호흡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복식호흡.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다.
 사람은 자면서 저절로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 하지만 깨어있을 때는 복식호흡을 취하지 못한다. 또한, 사실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복식호흡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 복식호흡이다.
 류환은 그러한 복식호흡이 사라지지 않게 잡아두는 것이었고, 더욱더 몸에 밸 수 있게 연습하는 것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복식호흡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호흡의 안정성, 음성의 뚜렷함, 고음의 부드러움.
 이 세 가지의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잊어버리고 사는 복식호흡은 충분한 연습으로 인간의 몸에 체득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복식호흡을 류환은 지금 현재 고작 한 살이라는 나이에 몸에 익히려 하는 것이다.
 이미 그는 가수로서 활동한 바가 있는 사람이었으며 정식으로 복식호흡을 터득한 사람이다.
 물론 지금의 그가 복식호흡으로 갈고 닦은 몸이 아닌지라 조금 더부룩한 감이 있기는 하였지만, 곧 이 몸은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 살에 노력했던 것 여든까지 간다면 아마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것이 류환의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뿌웅
 뿌직
 이제 겨우 한 살짜리 아이의 몸이라는 것이었다. 지능은 서른이나, 몸은 한 살.
 간혹 배에 들어가는 힘 조절이 잘되지 않아 장에 트러블이 생겨서 그대로 배설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걸 어쩌나······.’
 몸은 한 살이나, 정신은 서른이요. 그런데 바지에 똥을 싸버렸소. 류환은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할까. 혼자 화장실로 기어가서 치울까?
 말도 되지 않는다. 목소리 한 번이면 끝난다.
 “응애애애애!”
 결국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온 힘을 다해서 복식호흡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가 들어왔다.
 “우쭈쭈, 내 새끼 무슨 일이야~”
 고운 미모의 어머니가 그를 번쩍 들어 안다가 그가 기저귀에 변을 쌌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를 눕히고는 기저귀를 풀었다.
 ‘부끄럽네요, 어머니. 하하······.’
 기저귀가 풀어지자 어머니가 류환의 중심부를 보게 되고, 류환은 그대로 드러누운 상태로 어머니에게 자신의 중요 부위를 훤히 보여주는 상황이 되었다. 그가 부끄러움에 살짝 고개를 틀었다.
 “부끄러워 내 새끼!? 우쭈쭈!”
 어머니가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기저귀를 갈아입히고는 폴싹 끌어와 볼을 비벼 대었다. 항상 누구보다 엄하였으며 차가웠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이 한 살 시절 이렇게 따스할 줄은 몰랐던 류환이었기에 많이 당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보다 많이 적응되었다. 단지, 어머니에게 자신의 중요 부위를 보이는 것과 항문을 닦이는 것 빼고는 말이다.
 ‘이거야 원. 빨리 나이를 먹든가 해야지.’
 일단 나이를 먹어야 했다. 그래야 뭐든 더욱 달라질 것이 아니던가. 지금까지는 딱히 달라진 것 없는 과거사였다.
 
 ***
 
 세 살이 되었다. 세 살이나, 한 살이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할 수 있겠느냐마는 한 살은 말도 하지 못한다. 혼자 걷지도 못한다. 단지 몸이 시키는 대로 싸고 싶으면 싸고, 배가 고프면 울어서 그 고픈 배를 채우고 하는 것이 다일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살은 달랐다. 걸을 수 있었으며, 어물쩍 이지만 의사소통의 표현까지 가능해졌다. 하물며 류환의 경우는 세 살이 되었다는 것이 큰 것을 얻은 것이었다.
 자신은 다른 세 살짜리 아이들과 달랐다. 그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무기를 얻은 것이며 움직일 수 있다는 방패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배움의 폭이 한 폭넓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현재 무엇인 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배움이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한들 어물쩍어물쩍 자신에게 다가서는 미래에 크게 될 것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루하루 더욱 성숙해져야 했다. 그것이 곧 자신을 지탱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는 세 살이 되어 움직이게 되면서 확인한 게 있었다. 그도 더니엘처럼 신비한 힘의 사용이 가능하였다. 류환은 더니엘의 힘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았다.
 자신들 주위로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것, 그로부터 도망치는 류환을 본래의 자리로 끌어다 놓는 것. 이 두 가지 밖에는 보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더니엘은 무척 가볍게 행하였다.
 마치 정말 해리포슨인 것처럼 말이다.
 류환은 일단 현재 자신의 힘을 가늠해본다.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특별한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아마도 나이가 하나둘 더 먹으면서 한두 가지씩 더 찾아질 것이었다.
 그는 거실 방바닥에 앉아서 평소처럼 어머니가 뮤지컬을 하실 때 부르는 노래의 악보를 들춰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현재 음악에 대한, 또한 그와 더불어 연기에 대한 것까지 공부를 거듭하고 있는 그였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악보를 보고 있다. 상당히 재밌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아이러니했다.
 “우리 류환이 또 엄마 책 보고 있네? 엄마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류환이 천부적으로 음악을 좇아간다고 여겼다. 세 살짜리 아이가, TV의 만화보다는 잡지의 가수들과 연주단에 시선이 갔으며, 딸랑이보다는 마이크와 피아노, 그외 기타 같은 악기에 관심을 보였으니 말이다.
 “이고 모야?”
 류환은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묻는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서 옆에 찰싹 붙는다.
 “이건, 레야 레. 도레미파솔라시도~ 의 레.”
 “레레레~ 레레레.”
 류환은 정말 아이라도 된 것 마냥, 레를 연달아 곱씹는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주방으로 간다. 오늘은 유독 평소보다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그래 봤자 그는 이유식이나 먹을 것이었지만, 이렇게 집에서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은 손님이 온다는 뜻이었다.
 오늘 이 집으로 어머니의 형제들이 전부 모인다. 일단 류환의 어머니가 외가 쪽에서 가장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그중 큰 이모 이숙희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전공해 서울에서 큰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악학원가에서 그녀의 이름을 모르면 섭섭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길지 않은 결혼생활 후 이혼을 하였으며 아들이 하나 있었다. 현재의 류환보다 다섯 살은 많았다.
 사실 그는 이 이숙희 이모의 식구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모두 건강하고 이혼도 하지 않았을 때는 류환의 가족들에게 상당히 살가웠다. 하나 아버지가 빚더미에 쫓겼을 때는 은근슬쩍 외면한 이들이다.
 물론 그들을 욕하기만 할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류환이 결정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는 아들인 김태웅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지금 현재 여덟 살이 된 놈. 그놈은 류환이 한참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그램을 점령하던 시절, 자신에게 손을 수차례 벌려왔었다.
 그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분명 류환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음에도 정작 류환이 쫄딱 망해 버렸을 때는 철저히 외면한 파렴치한 사람이다.
 하물며, 한 살이 막 지나고 두 살 무렵 그를 봤었는데, 일곱 살짜리 녀석이 아주 악독했다.
 그 당시 말 못 하던 류환, 그를 다부지게 괴롭힌 것이다.
 둘째로는 이숙현 이모가 있었다. 작은이모는 음악 쪽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작은이모는 중학교의 국어교사였다. 류환은 작은이모와 그 식구들을 상당히 좋아하였다.
 모두가 자신들에게 잘해줬다. 그리고 류환이 성공하였을 때는 무언가를 바랐기보다는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격려의 박수로, 웃음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빚에 힘들어할 때도 가장 크게 도와줬던 이들이기도 하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한 후 얼마간 연락이 통하다가 연락이 끊기긴 하였다.
 하지만 류환에게는 가장 좋은 사람들로 기억되며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로 기억이 남는 이들임은 확실하였다. 작은이모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들은 이제 여덟 살 정재욱으로 커서는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둘째는 정지혜라는 여자아이였는데, 현재는 일곱 살이며 여덟 살에 간암이 발견된다.
 평소 건강하였지만 갑작스럽게 여덟 살이란 나이에 암으로 쓰러지게 된 그녀. 암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때 발견하였다.
 알기로는 외할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머니 세대는 비껴갔지만 그게 정지혜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었다.
 작은이모와 그 남편은 필사적으로 지혜를 살리려고 하였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결국, 지혜는 아홉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때의 슬픔을, 그 당시에 류환은 어렸지만 기억한다. 물론 기억의 끄트머리에 기억하는 것은 단 한 부분이다.
 지혜 누나를 화장시키기 위해 관을 불구덩이로 넣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하물며 지혜는 류환에게 무척 잘해주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류환을 잘 챙겼던 누나로 기억된다. 그 때문에 류환은 지혜의 죽음이 무척 안타까웠었으며 어머니도 그랬던 것인지 간혹 물었다.
 ‘혹시 지혜 누나 기억나?’
 그럴 때마다 류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쁘고 착했던 누나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안타까움 어린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띵동
 벨이 울렸다. 아마도 외가 쪽 가족 중 누군가 도착한 것일 게다.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자. 숙희 이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등장한 김태웅을 보며 류환은 얼굴을 찌푸렸다.
 김태웅이 류환을 보면서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잔인해 보였다. 하지만 류환은 두 살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세 살이다.
 그에게 당하지 않는다, 이젠 말도 할 수 있으며 움직일 수도 있다.
 “언니~”
 “잘 있었어?”
 어머니가 숙희 이모를 보고는 안겼다. 숙희 이모가 품에 안긴 어머니의 등을 두들겨준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고, 태웅은 자연스럽게 류환의 앞으로 다가왔다.
 “잘 있었냐, 동생.”
 태웅이 류환을 보면서 양 팔짱을 끼면서 히죽 하고 웃어 보였다. 과연 저 모습이 여덟 살이 맞나 싶었다. 숙희 이모와 어머니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 만나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태웅은 류환이 보고 있던 뮤지컬 노래의 악보를 보고는 발로 툭 악보를 밀어냈다.
 “네가 보면 알아?”
 류환은 입을 꾹 다물고 그를 올려봤다. 오늘 어떻게 골탕을 먹여줄까 생각 중이다. 이 어리고 잔인한 녀석을 오늘 눈물 쏙 빼도록 혼내 줄 예정이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된장 없는 걸 깜빡했네.”
 “애도 참. 같이 나가자. 할 이야기가 많아.”
 “애들은?”
 “우리 태웅이 다 컸다 얘.”
 집에 된장이 떨어진 것인지 어머니가 된장을 사 오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자 숙희 이모가 뒤따랐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어조에 숙희 이모가 태웅을 보면서 작게 웃더니 휙 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마도 된장 사러 따라 나가 누가 이랬다는 둥 저랬다는 둥 욕을 하러 나간 것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이 나가자 태웅이 류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둘만 남았네.”
 그가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더니 류환이 보고 있던 악보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어디선가 과자를 가져와 그 앞에서 먹기 시작했다.
 “아구아구, 먹고 싶지이이?”
 ‘너 많이 쳐 무라.’
 어린애는 어린애다. 이런 거로 놀리려고 하다니. 그냥저냥 장단에 맞춰준다고 손을 몇 번 저으면서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가 히죽 웃으면서 과자를 주는 척하고는 자기 입에 쏙 넣는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면서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듯이 한다.
 ‘쯧쯧 어린 것.’
 류환은 자신이 뭐하나 싶었다. 이런 어린 녀석이나 상대하고 있다니, 한심스러워진다. 그러다가 태웅이 집을 둘러본다.
 “허쭈? 집에 피아노도 있네?”
 거실에 얼마 전에 어머니가 장만한 피아노가 있었다. 자주 연주를 해주곤 했는데, 가끔 류환을 위해 동요도 쳐주고는 했다.
 “잘 봐라.”
 태웅이 손가락뼈의 마디마디를 풀었다. 그러더니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내가 얼마 전에 학교에서 이런 걸 배웠지, 가보기는 했니. 초등학교? 넌 가려면 앞으로 하아아안참 멀었지롱.”
 그러면서 그가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뭔가 하고 귀를 잘 기울여 봤더니, 도미솔 도미솔 라라라솔. 유치원 때나 치던 그 악보 음이다. 류환이 그것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어린애 중에서 대단한 축에 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르셨다 이거야.
 “어떠냐.”
 연주를 끝마친 태웅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류환이 맞장구치기 위해 손뼉을 쳐주자 으쓱해 보인다. 그러다 류환이 양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피아노를 가리켰다.
 “왜 너도 쳐보고 싶냐? 그래 한번 해봐라.”
 그가 기고만장한 표정이다. 네깟 녀석이 ‘도’나 칠 수 있을 거 같아? 라는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류환을 뒤에서 꽉 껴안아 힘겹게 피아노 의자 위에 앉힌다.
 류환이 앉는 순간, 손가락을 뚜둑 풀었다. 세 살짜리 아이가 손가락을 푸는 모습이 우습다.
 피아노 건반이 조금 높았다.
 하지만 간단한 건 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피아노 건반에 손을 천천히 조심스레 올렸다.
 두웅
 일단은 건반을 상당히 많이 누르고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딴 따단 딴따단 따다다다다다, 딴따다, 딴따다따다다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는 류환이었다. 세 살짜리의 몸인지라 몸이 짧아 상당히 힘들고, 중간중간 음이 끊겼으나,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세 살짜리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친다! 이것은 세계적인 프로그램에 나가도 세계인의 이목을 끌만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는 류환을 보면서 태웅이 기겁을 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이내 엘리제를 위하여를 마지막까지 쳐낸 류환이 의미심장하게 손가락을 다시 한번 뚜둑 풀었다.
 “헉······.”
 태웅이 많이 놀란 표정이다. 류환이 짧은 다리로 힘겹게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가 그에게 다가갔다.
 “씨벌, 이런 것도 못 치면 조용히 해라, 시봉봉! 분유로 마빡을 때려 불까보다.”
 “딸꾹! 딸꾹!”
 류환이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태웅이 놀란 듯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류환이 자리에 털썩 앉아 한쪽 무릎 위에 한 팔을 올리고 한 다리는 쭉 편 채 거만하게 말했다.
 “거기 가만 서 있지 말고 가서 할 것 없으면 우유에 제티나 한 잔 말아봐 자식아.”
 태웅이 짐짓 두려운 표정으로 류환을 돌아봤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와 숙희 이모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류환이 건방진 자세를 풀었다.
 “우아아앙, 엄마아!”
 “우리 아들, 왜 그래?”
 숙희 이모가 들어옴과 동시에 태웅이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다가가 안겼다. 어느새 류환은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서 악보를 보고 있었다.
 “류환이가 막막 피아노를 치더니, 나한테 욕하면서 우유에 제티 안 타오면 분유로 때릴 거라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류환이가 어떻게 그래.”
 숙희 이모가 태웅의 말에 황당하단 반응을 보인다. 어머니도 태웅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류환을 보았다. 그 순간, 류환은 천사 같은 미소로 어머니와 숙희 이모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에이, 저기 저렇게 앉아 있는 이쁜 류환이가? 아들, 잤어?”
 “우아앙, 진짜야, 진짜라고!”
 두 사람 다 믿지 않자, 그가 울음소리를 높이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발길질하면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결국 숙희 이모가 얼굴을 찌푸리셨다.
 “아들! 엄마가 거짓말하면 못쓴다고 했지! 혼나볼래?”
 “우아앙, 진짜란 말이야, 엄마 바보!”
 “이 녀석이!”
 숙희 이모가 결국 태웅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류환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소했다, 과연 그 누가 세 살짜리가 그랬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마 앞으로 더 이상 태웅은 자신을 괴롭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꿀밤을 한 대 맞은 태웅이 한동안 훌쩍이다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류환과 거리를 벌렸다. 류환이 흘끗 바라보면 시선을 피하면서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이젠 류환 위의 태웅이 아니라, 태웅 위의 류환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식탁이 대부분 차려지고 있는 것인지 어머니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작은이모인 숙현 이모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편들은 없는 날이다. 류환의 아버지도 오늘은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이모들의 남편들도 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띵동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투덜거리면서도 반가움의 미소를 걸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숙현 이모와 아들 정재욱, 딸인 정지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류환은 정지혜를 보자마자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는 정말이지 천사 같은 누나로 기억이 남아 있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 그녀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암과 싸움을 했었다.
 어린 시절은 몰랐지만 류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힘이 들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여러 번 집어삼켰었다.
 “언니이이~”
 “왜 이리 늦었어~”
 짝짝짝
 숙희 이모와 숙현 이모 서로가 손뼉을 치면서 반가움을 표출하였다. 곧 넓은 탁자 위에 식구들이 둘러앉았는데, 지혜가 자연스럽게 아기용 의자에 앉아 있는 류환의 쪽으로 왔다.
 “잘 있었어? 왕자님.”
 하면서 덧니 빠진 얼굴로 웃는 모습이 천사 같다. 그녀가 류환의 옆자리에 앉았다.
 “류환이 하고 지혜는 친남매 같애~ 왜 이렇게 친해.”
 “그러게 말이야. 둘이 크면 결혼시킬까?”
 “응! 응!”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 모습이 그저 흐뭇한 건지, 숙현 이모의 말에 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녀는 류환이 이유식을 떠먹으면서 흘릴 때면 계속해서 입가를 닦아주었다.
 아직 자신도 앞가림하기 힘든 나이가 일곱 살이다. 물론 류환의 나이 세 살에 비하면 큰 아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참 장난꾸러기 어린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정함을 이렇게 서른 살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무척 포근하였다.
 애초에 류환은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그녀를 죽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이지 않은가.
 바꿀 수 있다,
 암을 조기에 찾아낸다면 정지혜.
 류환이 아꼈던 사랑하는 천사 같은 누나인 그녀를 살릴 수 있었다.
 “이그, 또 흘렸네.”
 자신의 입가를 닦아주는 지혜를 보면서 류환은 발그레 웃으며 답해주었다.
 지혜 누나의 암에 대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류환이 고작 세 살의 나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말로, 지혜 누나 암 있어~ 이러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실질적으로 가족들은 류환이 현재 유창하게 말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류환이 일부러 숨기고 있다, 괜히 자신이 일반 아이들보다 상당히 특별하다는 것을 밝혀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가령 예를 들어 아까 전처럼 세 살짜리가 피아노를 그것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친다면 세상이 믿겠는가. 신기해하기보다는 진실에 대해서 파헤치기에 바쁠 것이었다.
 최소 스타로서의 재시작을 위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여섯 살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류환이었다. 그전까지는 천재성, 음악에 대한 것, 모든 것을 숨길 계획이었다.
 때문에 류환은 암에 대한 것을 간접적으로 밝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실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류환의 힘은 현재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을 손으로 만지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딸랑이를 자신의 능력으로 끌어와 손에 쥔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 몸속은 어떠할까.
 아직 해본 바는 없으나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것이 류환의 생각이었다. 그는 일단은 가벼운 실험으로 시작해보기로 하였다.
 만만한 상대가 바로 지금 자신을 멀리 경계하면서도 TV에 빠진 태웅이었다.
 태웅은 한참 1995년대에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상으로 빠뜨린 꾸러기 수비대에 열중하고 있었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 진사오미~ 뭉치 키키 강다리 찡찡이 신유술해 우리끼리 꾸러기 꾸러기~”
 자신에게 골탕을 먹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꾸러기 수비대가 방영되자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빠진 그 모습이 역시나 애다. 한 열세 살 이후의 나이만 먹었어도 아마도 세 살짜리가 욕을 하면서 피아노를 쳤던 모습을 평생은 잊지 못할 터인데 말이다.
 그렇게 꾸러기 수비대에 빠진 태웅을 향해서 류환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공격 부위는 장이었다. 그가 최대한 장을 흔든다는 느낌으로 뻗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꾸러기 수비대의 노래를 부르던 태웅이 벌떡 일어났다.
 “으윽!”
 뿌우웅, 뿌지직!
 “으아아앙! 엄마아아!”
 갑자기 장이 요동치자 놀라 배를 움켜잡고, 항문을 막으며 화장실로 튀어가려고 하였던 태웅이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배출해버리고 말았다. 방 안으로 짙은 대변 냄새가 가득 퍼지기 시작하고 태웅이 울음을 터뜨렸다.
 “네 녀석 설마?”
 안방에 어머니와 함께 있던 숙희 이모가 태웅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방에서 퍼지는 냄새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들추더니 이내 꿀밤을 먹였다.
 “나이가 몇 살인데 바지에다 실례니 응!? 동생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아!?”
 “으아앙 갑자기 배가 아프더니 나왔단 말이야!”
 “그걸 못 참어! 그걸!”
 숙희 이모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여덟 살짜리 제 아들이 밤중에 오줌도 아니고, 똥을 쌌으니 아마도 류환의 어머니나 숙현 이모 보기에 상당히 부끄러운 것이었다.
 어느새 숙현 이모의 자녀인 재욱과 지혜도 그것을 보고는 꺄르르 웃었다.
 “재웅이는 바지에 똥 쌌대요, 똥 쌌대요!”
 “꺄르르, 재웅 오빠 자그마치 여덟 살이잖아, 여덟 살!”
 지혜가 손가락을 여덟 개 펼치면서 약 올리듯 웃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태웅은 이때 친인척 사이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공동의 적이었지 않나 싶다.
 곧 숙희 이모가 태웅을 씻기기 위해 화장실로 데려가고 연신 꿀밤을 먹이는 소리, 야단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태웅의 수난의 날인 듯싶다.
 류환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이 먹혀들어 가자 자신감이 붙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였다. 류환은 이번에는 화장실로 들어간 태웅을 보면서도 여전히 꺄르르 웃고 있는 지혜를 향해서 보이지 않게 손을 펼친다.
 이번 충격은 좀 강했다. 위장의 배설물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노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혜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그녀를 살리는 길이었다.
 어쩌면 다른 길도 생각할 수 있었으나 세 살짜리의. 아직은 능력이라곤 물체를 움직이는 그런 것 밖에 없는 류환으로서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흡!’
 류환은 아까보다는 더욱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지혜가 자신의 배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아야, 어, 엄마아아······ 배, 배 아파아!”
 어머니와 숙현 이모가 태웅이 벌인 난장판에 대해서 속삭이다가 갑자기 지혜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숙현 이모는 건강하던 지혜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놀란 표정이다.
 “배 아파아······ 엄마아.”
 지혜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배를 부여잡고는 얼굴이 극도로 붉어졌다.
 “매, 맹장 터진 거 아냐?”
 어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숙현 이모도 혹시나 해서 서둘러서 병원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류환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면 아마 검사를 받게 될 것이었다. 아홉 살에 그녀가 암 중기였으니, 지금쯤 초기로써 암세포가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곧바로 잡아주면 지혜 누나는 죽음까지는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혜야, 곧 의사 선생님들 올 거야, 응?”
 숙현 이모가 초조해하면서 식은땀까지 흘리는 지혜를 안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지혜는 구급대원의 등에 업혀 밖으로 나가고 숙현 이모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다른 가족들은 그런 지혜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딸랑딸랑
 “우리 류환이 깍꿍!”
 “꺄르르!”
 “엄마 없다!”
 “꺄아아!”
 어머니가 딸랑이를 흔들면서 침대에 누운 류환을 향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솔직히 지루하지만 이런 것이 부모님들의 낙이라면 흔쾌히 도와주는 것이 자식 된 도리 아니겠는가, 류환은 하품이 나올만한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즐거움을 위해 기껏 한 몸 희생하고 있는 중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집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람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뭐어? 암?”
 어머니는 암이라고 언급하였다. 그 소리에 류환은 숙현 이모가 드디어 지혜의 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병원에서는 뭐래? 수술받고 항암치료? 생명에는 지장 없다는 거지?”
 어머니의 안도 어린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곧 류환에 대한 답변이었다. 지혜 누나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암 초기 증세이다. 류환은 드디어 미래의 불행 중 한 가지를 바꾸어 개척했다.
 아홉 살에 세상에 떠났던 지혜. 그녀가 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일에 불과했다. 앞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그는 더욱더 많은 것을 바꾸게 될 테니까.
 
 ***
 
 류환은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부모님들에게 과시하기 시작하였다. 네 살에는 가장 기초적인 초등학생 때 배우는 리코더 연주를 완전히 구사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했다.
 부모님은 그에 힘입어 류환에게 더욱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주었다. 집안에 악기 몇 가지를 들이고 그것으로 류환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겨우 네 살짜리에게 음악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겠냐 만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류환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드르릉~
 “이건 도야, 뭐라고?”
 “도~”
 드르릉~
 “이건 레야, 레.”
 “레~”
 어머니는 기타의 음을 치면서 류환에게 그것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이미 구사가 가능한 피아노나, 색소폰, 그 외의 것들을 가끔 연주를 해주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무조건 외우는 교육이 아닌 몸 자체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류환은 그것을 천천히 받아들이듯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가 이미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악기는 많았으나 처음 접하는 악기도 무척이나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수십 수 백 가지는 될 악기들을 다 다루라는 법은 없는 법. 류환도 스타이던 시절 기타나 피아노를 빼고는 대부분 그저 튕기거나 음만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 갖추고 있었다. 그에 반면, 이렇듯 계속해서 악기를 배워간다면 단순히 가수가 아니라 악기적인 부분만으로도 크게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드르릉~
 “이 소리가 뭐라고 했지?”
 어머니는 모든 소리를 한 번씩 다 들려주고 물었다. 류환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것이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파~”
 “여보, 우리 얘기 좀 봐요. 우리 류환이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나봐!”
 아직 네 살의 나이. 그 네 살의 아이가 단 한 번 들려준 것만으로도 기억을 해내자 어머니는 놀라면서 막 씻고 나오던 아버지를 보고는 기쁨에 찬 음성으로 말하였다. 아버지도 곧장 옆으로 붙으셨다.
 “어디 보자.”
 드르릉~
 “이건?”
 “레~”
 “이야······ 이거 우리 둘을 닮았나······?”
 아버지는 멋쩍은 듯 말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류환의 아버지는 목소리가 크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악기를 다루는 데는 능숙했다. 어머니는 악기에는 빼어나진 못하나 목소리만큼은 아름다웠다.
 그 둘을 쏙 빼닮았다고 하면 그리 이상해보일 부분도 없었다.
 “이 녀석 내가 봤을 땐 크게 되겠어!”
 “호호!”
 어머니와 아버지가 류환을 보면서 활짝 웃는다. 류환도 그렇다 여긴다. 이런 식으로 성장해나간다면 본래 가수로서 성공했던 그때의 류환보다도 더욱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가수가 되지 않을까 한다.
 3. 세상에 이러한 일이!
 
 
 1998년 8월이 되었다. 류환의 나이 여섯 살이 되던 해이다. 이제는 부모님이 완전히 류환을 음악 쪽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노력을 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류환은 음악만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음악이면 음악,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그리고 그 외의 것들까지도 모두 잡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나이 먹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아, 그때 공부해놓을 걸, 그때 배웠을 걸, 그때 조금만 더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이것이다. 이미 한 번 경험해봤던 류환으로서는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하물며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인지했다.
 그는 유독 다른 것들이 쏙쏙 머릿속에 빠르게 주입되는 것을 느꼈는데, 서른 살의 두뇌라 가장 기초적인 것을 배울 것이라 빠르게 흡수한다 싶었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류환에게 의문의 마법 같은 힘이 생기면서 머리도 비상해진 것이다. 류환은 자신의 두뇌가 책 한 권을 보면 그 한 권을 다 외우진 못할지라도 열 페이지를 한 번에 외우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모든 것에 능통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 음악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자신이 보기에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그 의문의 힘을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해리포슨에 나오는 마법과 같은 무궁무진함이 존재했다.
 처음 세 살 때 사물을 움직이는 것만 가능하였다. 그리고 네 살 때는 자신의 몸을 이용한 힘을 발휘하였으며 다섯 살 때는 허공을 날았고, 여섯 살인 지금은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익힐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몸이 빨라지고 싶다 하면 몸이 빨라지는 능력이 배워진다. 누구보다 힘이 세지고 싶다 하면 여섯 살짜리에게 프라이팬도 구부러뜨릴 만한 힘을 노력만 하면 갖출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는 본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자신은 이제 완전한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특별함뿐만이 아닌, 세상에 자신을 알릴 첫 과제를 준비 중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 해에 방영을 시작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출현하게 될 계기는 오로지 우연뿐이었다. 올해, 즉 1998년 5월에 방영을 시작한 세상에 이러한 일이. 이것이 TV 프로그램 여타의 것들을 제치면서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게 되었다.
 류환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까 생각 중이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세상에 이러한 일이가 방송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 ‘엄마, 나 저거 나가고 싶어어.’라고 말하자, 어머니도 당황하더니, 곧이어 좋아했다.
 자신의 아들 류환이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나가면 전 국민의 이목을 끌 것은 누구보다 그녀가 확신하였다. 세상에 어떤 천재가 존재해도 아들 류환과 같은 음악적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류환의 어머니였다.
 유명한 뮤지컬팀의 단원인 어머니의 이러한 직감이 빗나가지는 않을 터였다. 하물며, 어머니도 방송 쪽에 아는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단숨에 SBC 세상에 이러한 일이 측에서 출연 제의를 해왔다.
 어머니는 일단 가장 먼저 류환이 피아노를 치는 동영상을 이메일로 보내줬으며,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서 이것이 조작이 아닌 사실이냐며 곧바로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이 방송 한 번으로 류환은 어린아이이지만 전국적 스타가 될 것이었다.
 “우리 류환이 잘하겠지?”
 “그럼.”
 어머니의 우려어린 목소리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나, 어머니 두 분 모두 오늘 류환이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에 한껏 기대감을 껴안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류환은 현재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사실 유치원에서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피아노면 피아노, 기타면 기타, 바이올린이면 바이올린. 아직 일곱 살인 어린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는 어린아이들 수준에 맞춰 주기 위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쳐줬었다.
 아이들의 뜨거운 호응과 예쁘장한 유치원 선생님의 놀랐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 않는 류환이었다. 그 후, 앵콜을 외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상당히 고난도의 곡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쳐줬었다.
 그때 유치원 선생님은 거의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하며 원장실로 뛰어갈 정도였다. ‘원장님, 저희 유치원에 음악 신동이 들어왔어요!’라면서 뛰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띵동.
 벨 소리가 들렸다. 취재진이 도착한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재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카메라맨 한 사람과 무전기처럼 생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인원 한 명이었다. 아직까지는 카메라를 작동시키지는 않으려는 듯 보였다.
 “반갑습니다, ‘빠른 포착 세상에 이러한 일이’ 나종현 기자예요.”
 라고 말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있던 머리를 살짝 길게 기르고 서른 중반의 나이로 추정되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방문한 남성이 어머니에게 명함을 건넸다. 남성은, 그녀가 유명한 뮤지컬팀의 단원인 것을 아는지 상당히 예의를 차려 보였다.
 사실 취재를 하러 다니는 기자들은 많이 힘들다. 특히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은 더욱 그렇다. 이유는 허위 제보, 혹은 방송 불가한 내용들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수천 가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건질 수 있는 것은 세 네 개인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허위 제보가 많았으며 짜고 치는 고스톱도 많았다. 또한 방송 불가의 것도 그 중 상당수 포함되었다.
 허위 제보의 경우는 허탈감에 돌아가고, 짜고 치는 경우는 노련한 눈썰미로 알아채 화를 내며 돌아가며, 방송 불가의 경우는 안타까워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바로 세상에 이런 일이의 기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눈에서 광채가 뿜어내며 기대감 가득 어린 표정을 짓는다. 유명 뮤지컬팀의 자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일단 동영상으로 목격한 바가 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시청률이 대폭 상승할 기회조차 엿보인다.
 “집에 악기가 참 많네요.”
 “아무래도 저나 아내나, 둘 다 음악 쪽 일을 하니까요.”
 아버지가 소파에 앉은 두 취재진을 보면서 한 말이다. 확실히 집에 악기가 상당히 많았다. 이중 류환을 위해서 장만한 악기도 상당수다.
 곧 주방으로 들어갔던 어머니가 오렌지 주스를 들고나와 두 사람의 앞에 놓는다.
 “이야, 이 꼬마가 류환이인가요?”
 취재진이 빙긋 웃으면서 음악잡지를 보고 있던 류환을 보면서 손을 흔든다. 류환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다.
 “혹시요. 어머님, 지금 그 동영상으로 봤던 피아노 연주요.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취재진은 다급했다. 그리고 긴장됐다. 사실일까.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나올만한 아이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류환을 뒤쪽에서 꽉 끌어안아 피아노 의자에 앉히신다.
 “우리 류환이 오늘은 뭘 쳐 볼까.”
 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악보 책을 팔락거린다. 류환은 팔락거리는 악보 책을 보면서 한 부분을 딱 가리켰다.
 “작은 별 변주곡.”
 “흐음······.”
 작은별 변주곡을 짚자, 카메라맨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나종현 기자라는 사람이 그에게 귓속말로 뭐라 속삭인다.
 “아는 거야?”
 “저거 모차르트 건데······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그 곡이에요.”
 모차르트라는 말에 기자의 눈이 반짝인다. 모차르트가 누구던가, 음악 신동이라고 불리는 자이다.
 그러한 사람의 음악을 저 어린아이가 친다? 어쩌면 저 아이는, 자신이 차세대 모차르트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까지 해버렸다.
 곧 피아노 건반 위에 류환의 손이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뜬뜬 뜬뜬 뜬뜬뜬 뜬뜬뜬뜬뜬뜬뜬 뜬뜬뜬뜬뜬뜬뜬-
 곧 류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부드럽고, 명쾌하게 피아노의 흰, 검을 노련하게 어루만지기 시작하였다.
 노래의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나종현 기자와 카메라맨은 황홀한 얼음의 호수에 근접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것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하며 아름답고 나른한 느낌이었다.
 이내 연주가 끝이 났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연주회에 가서 돈을 내고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로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 탄탄한 실력! 그것을 저 어린아이 일곱 살 류환이 보여주었다.
 “바, 바로 촬영 시작해도 될까요?”
 나종현 기자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대박이다, 특종이다! 하물며 미래에 대한민국을 이끌 젊은 인재의 발견이었다.
 기자로서 이러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쾌락의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모를 것이었다.
 곧이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류환의 피아노를 치는 부분을 중심적으로 촬영하였으며 부수적으로, 어머님과 아버지의 인터뷰를 받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들을 쏙 빼닮았다라고 언급하였으며 음악의 악기에 크나큰 관심을 보이는 그를 위해서, 부모로서 배울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답해주었다.
 어느새 촬영이 끝났다. 촬영이 끝나자 나종현 기자의 얼굴은 무척 기분 좋아 보였다. 카메라맨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주 세상에 이러한 일이의 시청률은 30%를 훌쩍 넘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리고 신문이나, 각종 보도매체에서 강류환이라는 아이의 이름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던가.
 “다음 주에 방영될 겁니다. 아마 이번 시청률 꽤 좋을 것 같아요.”
 나종현 기자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악수를 청해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사람이 나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류환을 돌아보았다.
 저 어린 류환에게서 남모를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었는데, 자신들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이날 류환의 어머니는 느꼈다. 자신은 세계적인 뮤지컬팀의 단원이나, 자신의 아이 류환은 그 세계적인 뮤지컬팀의 수 십 명의 인원들보다 홀로 더욱 많은 것을 누리고 뿌릴 것이라고.
 4. 빠른 포착! 세상에 이러한 일이!
 
 
 세상에 이러한 일이의 단골 MC인 두 사람이 가장 눈에 띈다. 김성훈과 임소현이었다.
 두 사람은 첫 시작부터 끝까지 빠른 포착 세상에 이러한 일이를 지켜 온 장본인들이었다.
 빠른 포착 세상에 이러한 일은 2016년, 종영을 맞게 되는 것을 류환은 이미 2020년까지 지켜봤기에 알고 있었다.
 김성훈과 임소현이 능수능란하게 세상에 이러한 일이를 진행하기 시작하고, 곧 화면이 바뀐다. 첫 번째 화면, 생고기를 먹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화면, 집 대문을 번쩍 뛰어올라서 홀로 걸어 잠긴 문을 따는 진돗개의 이야기.
 세 번째, 음악의 신동, 강류환의 이야기였다.
 화면에 류환의 모습이 비춰진다. 류환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노련한 손놀림. 그 음과 함께 타는 몸의 리듬감.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의 절제된 표정.
 모든 것이 프로에 가깝다.
 하물며, 류환은 다른 악기들의 연주까지 선보였다. 아마도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지금 모두가 놀랄 것이다.
 어른들 중 제대로 된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하물며 초등학생 때나 배웠을 리코더, 단소도 못 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한데, 류환은 일곱 살의 나이에 많은 악기를 구사하였다.
 누가 봐도 음악 신동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미래에 그가 세계를 이끄는 스타가 된다면 아마도 갖가지의 프로그램은 그의 음악 신동 때의 모습부터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는 원래부터 음악의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지.
 류환은 이것만으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악기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노래였다. 목으로 내는 악기. 그것이 그가 최종적으로 가장 노리는 부분이었으며 그 다음이 연기였다.
 세계적인 스타. 모든 것을 갖춰야 했다. 그래야 아름답고 화려해지며 어떠한 대중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류환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5. 순풍 정형외과(1)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류환의 이야기가 방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갖가지 TV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문기자, 잡지기자, 혹은 어머니가 알고 있는 지인들, 광고를 기획하는 감독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류환을 찾았다. 달갑다, 이것.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들의 관심이 류환은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 살의 나이를 먹고 추락 할대로 추락했던,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비록 일곱 살의 어린 몸이었지만 기쁨을 감추기 힘들 정도였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승낙하였다. 신문기자의 인터뷰 제의, 잡지기자의 사진 한 컷을 찍자는 제의, 어머니가 알고 있는 지인들의 류환을 보고 싶다는 요청, 광고를 찍는 사람들을 위해서 피아노도 몇 번 쳐줬으며, 뮤직비디오를 찍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피아노를 쳐줬다.
 그가 나온 신문은 모두 팔렸으며, 그가 나온 잡지에는 이번의 ‘HOT’ 기사에 그의 얼굴이 당당히 표지되었고, 지인들은 먼 미래에 류환과의 인맥을 다지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시작하였으며, 광고는 톡톡히 그 효과를 보았고 뮤직비디오는 대박이 났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그리고 류환은 또 하나의 거사를 준비 중이었다. 1998년 세상에 이러한 일이 첫 방영을 시작하였으며, 또한 강동건이 출연한 드라마 ‘그 사랑’이 방영이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웃음으로 빠뜨린 장차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순풍 정형외과가 방영되는데, 류환은 순풍 정형외과를 준비 중이었다.
 류환이 준비하는 순풍 정형외과의 배역, 그것은 다름 아닌 ‘의한’이 역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너의 넥타이 낀 사연 그런 건 말로 못 해
 지하철 문에 핸드백 끼고 내달린 사연 그것도 말로 못 해
 한숨 자고 나니 불빛 하나 없는 종점 황당하단 말도 못 해
 혼자 졸고 있는 저 가로등이나 알까
 태어나서 처음 본 세상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일들’
 
 93년생보다 더 빠른 해에 태어난 이들 중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말이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1998년 방영 당시 집에 TV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노래는 유명하였다. 순풍 정형외과. 대한민국을 웃음바다로 빠뜨린 시트콤의 명작이자 시초, 대작이었다. 이후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트콤이 대부분 순풍 정형외과에 의해 덧씌워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명작 시트콤이었다.
 하물며, 아홉 시쯤에 방영되던 이 프로그램은 평균 25%의 대박적인 시청률을 자랑하던 프로그램으로 1998년을 대표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류환은, 이번에는 연기를 발휘해볼 생각이었다. 이미 음악적 소질은 검증하였다, 물론 천상의 목소리라 칭송받던 그 목소리는 아직 내보이지 않았으나, 그것은 차츰 열 살을 더 넘어가면 세상에 드러낼 예정이었다.
 지금 현재의 주된 목표는 순풍 정형외과로 잡은 류환이었다. 어떠한 것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까 하다가, 그중 류환은 의한이 역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은 그와 가장 나이가 적합하다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이 갔다.
 의한이란 캐릭터는 안경을 쓴 어리버리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시트콤 방영 때는 대부분 미달이라는 역할을 맡은 아이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아이의 역할 하나도 그만큼 기억하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많았다.
 추억의 순풍 정형외과.
 의한이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순풍 정형외과에는 우지명, 김영규, 한혜교, 송인봉, 김창훈 등등 많은 스타들이 나온다. 명대사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영규의 ‘아우, 장인어른 또 왜 그러세요.’ 김영규 특유의 표정으로 우지명을 보면서 뱉어내던 그 말을 많은 이들이 따라 했을 정도이며 우지명이 선녀용녀를 보면서 ‘이야, 용녀용녀!’ 하던 모습이 아직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한 달 후면 이 순풍 정형외과가 방영된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한참 배우들을 뽑고 있을 시즌이라는 것.
 류환이 알기로는 지금 대부분의 배역은 전부 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순풍 정형외과의 아역 삼인방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서 연기가 하고 싶다고 어린 류환은 졸랐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확실히 류환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특별하다고 느낀다.
 다른 아이들처럼 잘 울지도 않고 떼쓰지도 않는 아이, 뭔가를 사달라며 조르지도 않는다.
 단지 조르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이러한 일이에 출현하고 싶어 했을 때, 그리고 지금 순풍 정형외과라는 시트콤에 참여하고 싶을 때였다.
 어머니는 사실, 류환이 연기까지 잘 해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류환은 부모님들 앞에서 그 연기실력을 뽐내지도 않았으며 연기학원에서 연기에 대해 배우는 어린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류환이 시트콤까지 진출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금쪽같은 하나뿐인 외아들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데, 일단은 어머니가 직접 인터넷을 통해 신청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디션 날짜가 다가왔다.
 SBC 본사 방송국이었다. 아이들의 오디션이 한참이었으며, 정중앙에 있는 오디션장의 뒤로 기나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시끄러운 아이들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그런 아이들을 통제하는 부모들의 분주한 손길도 보인다.
 하물며, 스태프들은 죽을 맛이다. 아이들이 수십 명이 몰려오니, 난장판이 되듯이 하니 통제가 잘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중 강류환의 등장은 더욱더 파장을 몰고 왔다.
 물론, 강류환이란 존재가 그렇게 대스타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음악 신동에 대해서 몇 번 들어본 이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어린아이들이 류환에게 관심을 보이고, 부모들이 어머니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류환아, 안녕! 나 너 좋아, 나랑 사귈래?”
 근처에 있던 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말했다. 어린아이다운 당돌함. 처음 보자마자 사귈래라니.
 안타깝게도 정신연령으로 따지면 그녀와 류환이 사귀면 원조교제보다 두 수 높은 급이지 않을까 싶다. 류환이 거침없이 고개를 돌린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은 어머니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 교육을 시키냐며, 어떻게 애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냐면서 말이다.
 류환은, 어린아이이지만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짙지만 느끼하지 않은 쌍꺼풀과 그것과 잘 어울리는 진한 눈썹 오똑하게 솟아날 기미를 보이는 콧날, 부드러운 턱선과 웃을 때 볼 한쪽이 들어가는 보조개. 커서도 한 인물 할 것 같이 생긴 것이다.
 “32번 강류환 어린이.”
 어머니가 주위의 사람들과 수다를 한참 떨다 류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주며 이끌었다.
 오디션장 안에는 SBC의 주요 인물들, 또 PD들 몇몇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이 누군지 류환은 알고 있다.
 다름 아닌 한병욱 PD였다. 한병욱 PD는 전적으로 이 순풍 정형외과를 이끈 장본인이며 추후에도 ‘똑바로 살아라’ ‘미친듯이 하이킥’을 시작해서 그 시리즈를 맡아서 시청률 대박을 터뜨린 장본인이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뒤쪽에 서 있고 류환만 정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들의 눈빛, 그것은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들의 눈빛과 같았다. 많은 아이들이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류환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이미 연기로써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경험이 있는 그였으니까 말이다.
 “음악 신동이 이제는 연기까지 노리네? 하하.”
 통통한 체형을 가지고 안경을 낀 머리가 흐트러진 포근한 인상의 남자의 말이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아이의 몸이지만 정신은 서른 살인 류환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예!”
 우렁찬 대답 소리. 그리고 떨지 않았으며, 수많은 의미가 가득 담긴 눈을 빛냈다.
 “의한이 역이 하고 싶다고?”
 이번엔 한병욱 PD의 물음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류환의 위아래를 흩어보았다.
 인적사항으로 보아 자신들이 원하는 나이와도 흡사하였으며 체구도 비슷하다. 또한 저기에 안경까지 씌우고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게 한다면 의한이의 역할을 해내리라.
 더군다나, 음악 신동이라고 해서 요즘 이슈를 받고 있는 아이이니, 시청률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한병욱 PD의 노련한 생각이었다. 하나 문제는 음악 신동이 연기까지 잘하느냐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보통의 아이들이 이런 오디션 자리에 섰을 때 두 가지다.
 그냥 해보고 싶다고 떼를 쓴 아이들, 어리지만 부모들이 아이를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해 노력을 시킨 아이들.
 이 상황을 보았을 때 한병욱 PD는 류환이 전자와 가깝다 여긴다. 류환은 많은 악기를 다룬다.
 또 요즘 한참 어린아이치고 스케줄이 많을 것이다. 우습지만 그런 아이가 과연 연기를 지도받았을 시간이 있었을까?
 타고남? 연기에 과연 타고남이 존재할까, 음악적 타고남은 존재할지 모르나, 연기는 무작정 슬피 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찍는 카메라에 의해 자신이 슬퍼하고, 어떤 부분에 어느 때보다 더욱 강하게 웃어야 하고를 알아야 진짜 연기가 되는 것이다.
 한병욱 PD는 류환이 연기는 배우지 못했고, 떼써서 나온 어린아이라고 거의 판단을 마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어디 한번 아저씨가 봐도 괜찮을까?”
 한병욱 PD의 말이었다. 지금 현재도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어 놨다.
 기대에 미치기는커녕, 실망만 가득 안은 한병욱 PD다. 자신이 원하는 아역 배우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준다거나 하는 그럴 때는 아니었다.
 냉정한 심사관이 되어야 할 때였다.
 곧 뒤쪽에 서 있던 SBC 직원 한 사람이 류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는 의한의 아버지 역할이었던 강찬성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어린 의한에게 한탄을 하는 장면이었다. 어미 없는 서러움과 미안함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상당히 어린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다독이는 장면이었다.
 “어머니, 좀 도와주시죠.”
 “예? 예.”
 어머니가 한병욱 PD의 말에 당황스러워하시더니, 어색한 웃음으로 류환의 앞에 섰다. 각자 대본 하나씩을 쥐고 있었고 어머니는 대본을 읊었다.
 “아빠가 미안하다, 의한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아빠, 왜 그래?”
 류환은 어머니의 대사에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그리고 곧 어머니는 다시 말한다.
 “엄마 많이 보고 싶지?”
 라는 말에 류환은 써져 있는 지문을 본다.
 지문에는
 -잠시 생각하던 의한. 애써 밝게 웃으며. 그립지 않다는 듯이.
 라고 적혀져 있다. 어린아이가 구사하기 상당히 힘든 시점부터, 웃음과 슬픔이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괜찮아, 아빠. 난 아빠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걸? 아빠만 있어도 이렇게 기쁜걸.”
 류환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생각이 얽혔다. 연기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슬플 땐 슬픈 생각, 기쁠 땐 기쁠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다. 류환의 얼굴에는 웃고 있지만, 눈은 슬픈 그런 표정이 깃든다.
 그리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면서 애써 웃어 보인다. 그 장면에 한병욱 PD가 잠시 멈칫했다.
 그와 함께 류환의 어머니도 상당히 놀라신 표정을 지었다. 아들 류환이 뱉어내는 말 하나하나가 어색하지 않다. 실제 그 상황처럼 느껴진다. 목소리는 웃지만, 그 뜻은 슬프며 자신보다 더욱더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사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어머님.”
 한병욱 PD가 갑자기 어머니의 양해를 구한다. 그러더니,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으로 가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하더니, 그곳에 플로피 디스크를 넣은 후 빼고는 SBC 직원에게 말했다.
 “이 자료 좀 지금 즉시 출력해서 가져와. 두 장이야, 두 장.”
 두 장을 강조한다. 직원이 곧 어딘가로 향하더니, 얼마 후 인쇄물 두 장을 들고 왔다. 한병욱 PD가 눈짓으로 류환과 어머니를 가리켰다.
 두 사람에게 또 하나의 즉석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쥐어졌다.
 이번에는 더욱 슬픈 장면이다. 강찬성이 죽는 것으로 즉석으로 시나리오를 짜왔다. 그리고 의한은 그의 무덤 앞에 서 있고, 다른 지인이 의한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어, 의한아.”
 라고 말하며 어머니는 머쓱하게 류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류환은 시나리오를 보더니 이내 어머니를 향해서 돌아본다. 그리고 눈에서는 당장 눈물이 흐를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아저씨? 아빠 있는 곳으로 같이 가면 안 돼요? 왜 저만 두고 갔어요? 엄마 있는 곳으로 왜 나만 버리고 갔어요?”
 라고 류환은 말했다. 슬픔이 가득 담겼으나, 아직 어리다는 목소리. 원망어린 목소리가 함께 메여 있었다.
 “의한이는 그곳에 가면 안 돼.”
 “왜 안 돼요? 왜요? 왜 안 돼는 건데요.”
 류환이 눈물을 또르르 한 방울 떨어트렸다. 어머니가 몹시 당황하신 표정을 짓는다, 그의 연기를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류환에게 연기의 ‘연’자도 가르친 적이 없건만 류환의 슬픔은 가슴을 찌를 정도로 강렬하다.
 “아······ 아주 잘 봤습니다. 이거······ 하하······.”
 한병욱 PD의 얼굴에 놀란 웃음이 떠오른다. 연이어 류환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경력 있는 PD인 그의 눈썰미가 틀린 것이다. 류환이란 아이 대단하다. 다른 심사관들도 몹시 놀란 표정으로 류환을 보고 있었다.
 “류환아, 아저씨가 질문 하나만 할게. 만약 의한이 역으로 뽑힌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한테는 상당히 예매한 질문이다. 어떻게 하고 싶냐니 뭘? 하지만 이럴 때의 답변을 류환은 노련하게 안다, 하물며 어린애는 어린애다워야 한다.
 “찬성이 아저씨 아들로써 하고 싶어요.”
 “하하하.”
 “호호.”
 그 말 하나에 심사관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맞으면서 어린이다운 말이다.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의한은, 강찬성이라는. 아들을 혼자 키우는 홀애비 역할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곧 류환이 어머니의 손을 꾹 잡고는 밖으로 나선다.
 심사관들이 두 사람이 나서고 속삭인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썩혀두기 아까운 아이가 나온 거 같아.”
 
 ***
 
 일주일동안 연락이 없었다, 류환은 그 때문에 사실 긴장했었다. 혹시나 떨어진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 연락이 왔다. 강류환 어린이는 의한이 역에 합격이다, 방송사에 들러 계약서를 작성하자라고 어머니에게 그랬단다.
 듣기로는 한 아이와 류환을 두고는 경쟁이 붙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한 아이는 원래의 의한이 역할이었던 이성민이었을 것이다. 성민은 본래 방송사에서 생각하던 의한이 이미지와 99% 동일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그 점으로 단단히 심사관들을 잡았을 터이다. 하지만 류환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그의 드라마 데뷔는 시청률 상승에 도움을 준다, 두 사람 중 고민하던 한병욱 PD는 결국은 미래에 큰 가능성이 있는 류환을 선택한 것이다.
 어머니와 류환이 손을 잡고 방송국으로 다시 한번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 한 직원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다. 곧 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는 한병욱 PD가 보였다.
 한병욱 PD는 순풍 정형외과의 자료들을 쭉 흩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류환이 도착하자 몸을 일으키며 반겨주었다.
 “왔니.”
 “안녕하세요.”
 류환이 야무지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한병욱 PD는 그저 웃어 보인다. 얼마 후 어머니와 한병욱 PD가 이야기를 나눈다. 드라마 촬영은 언제인지 혹여 문제가 되는 사항은 없는지 서로 꼼꼼히 따져보고 곧 어머니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시고, 류환도 부른다.
 류환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부분에 꿈틀거리는 글씨로 ‘강류환’이라고 적었다. 이로써 계약 완료였다.
 강류환은 이제 1990년대를 사로잡았던 순풍 정형외과의 의한이 역을 맡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TV에 한껏 그의 모습을 드러낼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쩌지, 류환 본인은 아직도 보여줄게 너무 많은 상황이었다.
 순풍 정형외과는 가장 기초적인 어렸을 때의 이미지를 쌓는 틀에 불과하다. 앞으로 히트작, 히트곡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뉴욕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하는 재미난 생각도 한다.
 그리고 확실히, 앞으로 자신이 벌일 일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 그는 더욱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했다.
 
 ***
 
 촬영 날이었다. 류환은 받아온 대본은 이미 전부 외워 버렸다. 부쩍 비상해진 머리 때문도 있었으며, 어린 의한이 이번 편에서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나 많았다 해도 금방 외웠을 것이다.
 보통 어린 아역 배우들이 가장 고생하는 부분이 대사를 외우는 것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두뇌의 류환이다.
 류환은 자신의 방에서 뭔가를 연습 중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중 대부분을 자신이 원한다면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어떠한 것이 가장 자신에게 효율적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것을 찾아냈다.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것, 집중 시키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내면서 그 목소리에 능력을 더해서 더욱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끄는 것의 연습이다. 분명 일반적으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목소리를 내면 평상시의 목소리만 나온다. 하나 능력을 목소리에 담아 사용하겠다고 하면 웅장한 어떠한 힘이 목소리에서 퍼진다.
 그 힘을, 자신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으로 바꾸고, 원한다면 다른 한 사람에게 집중을 시킬 수 있는 연습을 류환은 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무협지 같은 데에 나오는 음공과 비슷한 것이었다.
 음공은 보통, 눈 코 귀에서 피가 흐르게 하고 강한 압력으로 짓누르게 하는 무서운 무공으로 나온다. 하지만 류환의 것은 정반대로 사람들을 더욱 기쁘게 하고,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아아아아!”
 아버지는 일을 하러 가고 어머니도 잠시 볼일이 있어 외출한 상황이었다. 류환은 자신의 방에서 한껏 목소리를 올렸다. 그 소리는 더욱더 높은 고음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아직 변성기가 시작되지 않았다. 변성기가 시작되지 않은 목소리는 막힘없이 부드러운 고음으로 올라간다. 하물며 한 살 때부터 복식호흡을 해온 몸이다.
 끝없는 음역대를 자랑하면서 류환의 목소리는 올라갔고, 한계치에서 류환은 방 안을 가득 매우는 능력으로 인한 소리의 울림을 느꼈다.
 류환은 그 목소리의 울림을 자신의 앞에 놓인 유리잔으로 집중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지이잉하고 유리잔이 진동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이었다.
 잠시 진동한 유리잔은 다시 평온한 그 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현재로서의 한계였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류환의 목표라 할 수 있었다.
 류환은 계속 유리잔이 순간의 진동만 보이자 계속 연습하였다. 뭐든지 실패한다고 해서 겁먹을 그가 아니다.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게 되리라 그는 굳게 믿었다.
 
 ***
 
 첫 촬영 날이었다. 어머니도 떨리고 류환 본인도 떨리는 날이었다. 류환은 분명, 연기자로도 생활했지만, 그것은 무척 오래전 일이었다. 그가 일류급 스타에서 삼류스타로 떨어진 이후로는 한 번도 드라마나, 영화 어떠한 것도 찍은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일곱 살의 몸으로 연기를 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같이 연기를 하는 이들 중에는 상당한 스타들이 많았다. 일단 연기파로는 선녀용녀, 김영규, 우지명, 송인봉 씨가 있었다.
 그리고 이 순풍 정형외과를 할 당시에는 한없이 볼품없으나, 먼 미래에 크게 터뜨리는 이들은, 한민호란 아역 배우와 한혜교가 있었다. 한민호란 아역 배우는 미래에 ‘옥탑방 왕세자’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배우로 당당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혜교, 미래에 한혜교를 모를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해지는 그녀다. 하물며 그녀는 세계에서 인정한 미모의 여인이 되면서 그 이름을 세계 곳곳에 퍼뜨리는 톱스타가 된다.
 물론 지금은 신인배우였다.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될 배우 말이다.
 촬영장으로 어느새 두 사람이 도착했다. 촬영장에는 이미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촬영준비를 마쳐 놓은 상황이었다. 의한이네 집과 우지명이 사는 집, 등등 이미 꾸며질 곳은 다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서 이미 도착해서 드라마 촬영을 준비 중인 배우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빨리 류환에게 다가온 것은 우지명이었다.
 “이야, 어린 꼬마 배우!”
 하시면서 우지명이 류환에게 다가와 번쩍 안아든다. 이때는 정정하신 모습이다. 하지만 류환이 있던 때는 더 이상 TV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만큼 나이가 들고 힘에 부쳐서 그럴 것이다.
 “안녕하세요.”
 류환이 꾸벅 인사를 해보이자 우지명이 밝게 웃어 보인다. TV속에서 천방지축, 똥고집을 가지고 선녀용녀와 매일 싸움을 하며, 김영규를 향해 말도 안 되는 꼬장을 부리는 역할로 나오나 실제로는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인가보다.
 “네 녀석이 음악 신동이라며? 어디 그럼 꼬추는 얼마나 잘 여물었는가 볼까.”
 라면서 우지명이 장난스럽고 짓궂게 웃어 보인다. 류환은 그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맞받아쳐 주듯 자신의 중심부위를 잡고는 장난스럽게 비명 지른다.
 “안 돼요, 아저씨!”
 “허허, 짜식이!”
 곧 우지명이 류환을 바닥에 내려주고는 이따 보잔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주위의 다른 배우들도 류환을 보고는 몇 관심을 보인다. 그들이 류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거나 한다.
 아마 아직 어린이였기에 이렇듯 선뜻 큰 친근함을 보여주는 것일 거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일반인에게는 조심성이 많다. 연예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장면은, 우지명과 김영규의 장면이다.
 “큐!”
 한병욱 PD의 말과 함께 슬레이트가 쳐지고 연기가 시작된다.
 “야 임마! 네 녀석이 생각이 있는 녀석이야! 없는 녀석이야!”
 “어우, 장인어른 왜 또 그러세요, 왜 저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세요.”
 “이 자식이!”
 김영규의 뾰로통한 표정에 우지명이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면서 성을 낸다. 김영규가 도망을 치듯이 몸을 일으켰다.
 “컷! 다시 한번 갈게요.”
 “예.”
 컷이 쳐지면서 다시 가자는 요청이 들리고, 다시 한번 배우들은 몸을 가다듬고 슬레이트가 쳐졌다.
 “큐!”
 계속해서 이 상황이 반복되었다. 네 번쯤 하자 그제야 감독이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드라마의 한 장면 장면이 만들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시트콤 속에서는 한 장면에 그칠지 몰라도 배우들은 여러 번, 때로는 수 십 번을 반복할 때도 있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류환이 촬영해야 할 때가 왔다.
 의한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밖에서 붕어빵을 사온 강찬성을 보고는 달려들면서 사온 붕어빵에 큰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었다.
 곧 강찬성이 준비하면서 류환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우리 한 번 잘해보자.”
 류환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류환이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의한을 발견했다. 강찬성이 붕어빵을 들어 올려 흔들어 보인다.
 “우아아아!”
 류환이 달려가 아버지에게 안긴다. 찬성이 그런 류환의 볼을 꼬집어 보이면서 소파로 이끌고 가서 두 사람이 다정하게 앉는다.
 “오케이, 두 사람 무척 좋습니다.”
 한병욱 PD가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그가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다른 배우들도 상당히 흐뭇한 표정으로 류환을 본다. 어른들도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기 힘든데, 어린 류환이 해낸 것이다.
 그러다 류환은 세트장으로 들어오는 미모의 여인을 발견했다. 한혜교였다.
 ‘역시 한혜교!’
 라고 류환은 생각한다. 아직 앳된 얼굴의 한혜교가 난감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걸 발견한 한병욱 PD가 한 마디 던진다.
 “한혜교 씨, 다음부턴 시간 좀 잘 지키셔야 할 것 같아요. 이거 자칫 잘못하면 모든 스태프가 다 기다릴 뻔 했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혜교는 옆에 매니저만 낀 채 고개만 꾸벅 숙여 보인다. 지금 현재의 그녀는 신인이었다. 아직 크게 대중들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사람은 아니었다. 한참 배울 때고 한참 뒹굴 때인 것이다.
 곧바로 한혜교가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댓글(2)

검은사하라    
전에 이 글 보다가 접었었는데 1권을 채 다 보기 전에 알 거 같아요 ^^;;;;
2018.04.10 12:34
똑똑0    
일괄대여하고 1권보다 말았음 2권보다말았음 너무재미없다
2018.04.13 06:1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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