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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연가 1

2017.12.01 조회 330 추천 1


 영웅연가 1권
 제1장 그건 개꿈이야!
 
 
 “야! 전육(田六)··· 너 들어봤어?”
 “뭐야?··· 뭘 가지고 또 호들갑이냐?”
 이제 십삼사 세쯤 된 소년이 양지바른 곳에서 상의를 훌렁 벗은 채 이를 잡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처음 입을 연 소년은 뚜렷한 오관을 지니고 있었으나, 걸치고 있는 의복은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망망대해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자랑하는 동정호 변에는 천 년 고도(古都) 악양이 자리잡고 있고, 이곳에는 중원제일루(中原第一樓)라 자타가 인정하는 거대한 객잔인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이를 잡고 있는 소년은 악양루의 점소이 중 하나였고, 처음 말을 꺼낸 소년은 악양루 마장(馬場) 관리인 중 가장 말단인 종칠(宗七)이었다.
 “야! 천무등룡방(天武登龍幇)의 조 방주님이 사실은 고아였대.”
 “그래서?··· 악양(岳陽)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
 전육은 종칠의 말에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야! 조방주님도 우리처럼 고아였는데 천무등룡방이라는 어마어마한 방파의 방주가 되고 무림인들에게서 존경받잖아···”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데?···”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네가?···”
 전육은 종칠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전육··· 이건 내가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건 데···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야.”
 “킬킬킬! 미친놈!··· 네놈이 또 무슨 미친 수작을 부려 장방한테 박살나려고 그러냐?···”
 “아니야! 이번엔 진짜야··· 생각해봐라. 무림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처럼 비천한 생활을 하다 기연(奇緣)을 얻어 고수가 된 사람도 많대···”
 “그래서?···”
 이번엔 전육도 종종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그리 퉁명스런 대꾸는 아니었다.
 “아,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냐?···”
 “없지!···”
 “그렇지, 없지?··· 확실히 없지?··· 그래서 말인데······”
 종칠은 아주 심각한 표정이 되어 누가 들을 세라 전육의 귀에 속삭였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전육의 표정은 볼만하였다.
 마치 썩은 땡감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이, 이런! 미친놈··· 야, 임마! 그건 개꿈이야!··· 너, 지금 누구 죽일 일 있냐?··· 무림인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야아!··· 그래도 말은 되잖아!··· 너 죽을 때까지 점소이로 살 거냐?··· 구 형님, 죽는 거 못 봤냐?··· 점소이 생활 이십 년 만에 모은 것 몽땅 털어, 기원에서 썩고 있는 형수를 데리고 왔는데 한 밤중에 몽땅 들고 튀어버린 거 못 봤냐구?··· 그냥 있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거야··· 너도 구 형님처럼 사내가 질질 짜다 목 매달 거야?···”
 종칠의 말은 사실이었다.
 악양루 점소이 중 구삼(九三)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이십 년 동안 애써 모은 모든 재물을 주고 악양루 부근 천향기원(天香妓院)이란 곳에 있던 호앵(湖鶯)이란 노기(老妓)를 사러 갔다.
 나이가 많아 아무도 찾지 않기에 그 동안 밥만 축내던 그녀를 팔아치운 천향기원의 원주는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른 그녀를 구삼에게 넘겼다.
 구삼은 팔 년 전, 딱 한번 천향기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와 만리장성을 쌓았던 기녀가 바로 호앵이었다. 그녀에게 동정을 바친 것이었다. 그리곤 그녀를 잊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구삼에게 팔려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모든 재물을 털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의 매화부(梅花夫 : 기둥서방)와 짜고 한 짓이었다.
 호앵이 사라지자 구삼은 그녀를 찾아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음먹고 사라진 그녀를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몇 날 며칠을 질질 짜다 급기야 악양루 서까래에 목을 매 자살해 버렸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전육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종칠의 말대로 점소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직업이었다.
 솔찮게 은자가 생기긴 하나 늘 주색잡기로 날리기 일쑤이기에 은자를 모아 악양루같은 주루를 차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야, 그러니까 눈 딱 감고 한번 해보자. 해보다 안되면 까짓 것 그만두면 되지··· 우리야 뭐 손해볼 거 있냐?”
 “야!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해··· 걸리면 박살난다고···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르고···”
 “빙신!··· 사나이로 태어나서 원대한 꿈을 이루려면 자고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야!··· 너처럼 망설이기만 하면 죽도 밥도 안 돼!··· 할거야 말 거야?··· 너말고도 점소이는 많아!··· 그렇지만 나는 너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서 너한테만 특별히 이런 말을 한 거야!··· 시간을 줄게. 딱 하루만 생각해 보고 대답해. 알았지?··· 나는 지금 말똥 치우러 가야할 시간이야!···”
 종칠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마장이 있는 곳으로 향 하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전육의 표정은 그 답지 않게 심각해 보였다.
 조금 전 그가 한 귓속말은 그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전육으로 하여금 객잔에 든 무림인들의 품이나 행낭에서 무공비급을 훔쳐 오라 하였다. 객잔에서 썩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자신들에게 무공을 전수해줄 무림인이 있을 리 없기에 무공을 익히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종칠이 일단 무공을 익히고 나면 자신에게 그것을 고스란히 전수해 주겠다고 하였다. 전육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기에 천하제일의 무공비급을 가져다 준다해도 그것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 후 종칠이니 전육이니 하는 별 볼 일 없는 성명 대신 그럴 듯한 성명과 외호를 하나씩 짓자고 하였다.
 종칠 대신 종영웅(宗英雄)으로, 전육 대신 전호걸(田豪傑)로 바꾸자는 것이다. 종영웅은 천무대제(天武大帝), 전호걸은 광세대협(廣世大俠)이란 외호로 활동하자는 것이다.
 남들이 듣기에는 치기 어린 성명과 외호이건만 왠지 전육의 가슴에는 광세대협 전호걸이란 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 종칠은 장차 무공을 익힌 후 강호로 나가 협행을 하면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무림의 여인들과 아름다운 사랑을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천하각지에서 핍박받는 점소이들을 규합하여 천점방(天店幇)이라는 방파를 만들어 천하를 호령하자 하였다.
 천점방이 장차 점소이들 뿐만 아니라, 기녀(妓女)나 도부(屠夫) 같이 천한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망라하면 천하제패가 결코 꿈만은 아니라 하였다.
 무림인들이 어떤지 너무도 잘 아는 전육은 그에게 그건 개꿈이라고 말하였으나 그 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설레었기 때문이었다.
 객잔에 머무는 무림인들은 경계가 심했으나 유독 점소이들의 출입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허튼 짓을 하면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아는 점소이들이 설마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란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종칠의 말대로 무공이 적혀 있는 비급을 훔친 후 그것을 재빨리 필사(筆寫)한 다음 다시 제자리에 놓으면 될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무림인들도 모를 수 있다 생각하였기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악양루를 찾는 무림의 여인들 가운데에는 보기만 해도 살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꽤 많았다.
 그런 여인들과 장차 사랑을 속삭인다 생각하니 잠이 올 리 만무하였던 것이다.
 이제 겨우 십삼 세 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직 음양의 이치는 모르고 있으나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안목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악양루의 식솔 중 하나가 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전육과 마찬가지로 종칠에게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악양루 주방에서 일하는 소향(小香)이었다.
 종칠이 그녀에게 마수를 뻗친 것은 목표가 된 무림인들이 먹을 음식에 약을 타기 위함이었다. 종칠은 영악스럽게도 벌써부터 먹으면 즉각 잠이 드는 약을 구해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악양의 유명한 약포인 천씨약포(千氏藥?)에서 일하는 하인에게 죽엽청(竹葉靑) 한 병을 주고 구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주방에 있던 소향이 몰래 건넨 것이었다.
 그가 약을 구한 것은 거의 이 년이 다 되어 가기에 아마도 약포의 하인은 그러한 사실조차 잊었을 것이다.
 그녀는 종칠보다 두 살이 어렸으며, 그를 좋아하였기에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소녀였다.
 그녀는 장차 무림 대 협객의 아내가 되어 굶지 않고 살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종칠이 늘 입버릇처럼 이다음에 크면 색시가 되라고 하였던 것이다.
 전육은 악양 외곽에서 도부(屠夫) 노릇을 하는 전경(全景)의 여섯 째 아들이었다. 그는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빠 전육을 악양루의 점소이로 보냈다.
 종칠은 악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있는 육양원(育養院) 출신이었다. 이곳은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추영혜(秋瑛惠)라는 소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천향기원에 몸담고 있는데 추국(秋菊)이라는 기명으로 불렸다. 그녀는 기녀 노릇을 하면서 받은 것들을 모두 육양원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마음씨 고운 소녀였다.
 올해 십칠 세인 그녀 역시 고아 출신이지만 만개한 장미처럼 아름다움을 뿌렸기에 그녀의 청백(淸白)을 차지하려는 사내들이 언제나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유명한 기녀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청백을 차지하였다는 사내가 없기에 더욱 명망(名望)을 높여 가는 중이었다.
 육양원엔 모두 삼십여 명의 고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세 살부터 열두살 까지 어린아이들만 있었다. 종칠의 나이가 가장 많은 셈이다.
 종칠은 그녀가 일곱 번째로 받아들인 고아였다. 처음 받아들일 때 그는 자신의 성만 밝혔다. 그렇기에 종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남달리 영악한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이 년 전 스스로 악양루의 문을 두들겨 지금까지 마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특기는 말을 구별하는 것이다.
 어떤 말이 얼마만큼의 거리를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렸는지를 가늠하여 그에 알맞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데, 제 아무리 아픈 말이라 할지라도 그의 간호를 받으면 적어도 사흘 이내에 차도를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는 악양루 마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었다. 그렇기에 마장의 총책임자인 곽노인은 모든 일을 그에게 일임하고 늘 술에 쩔어 있었다.
 
 ***
 
 현 무림에는 삼강(三强), 삼중(三中), 삼약(三弱)이 있다.
 그 가운데 천무등룡방은 삼강 중 하나로 그 연원이 무척 깊은 방파였다. 올해 세수 칠십인 도룡신협(屠龍神俠) 조자룡(趙紫龍)은 입지전 적인 인물로 유명하였다.
 수십 대를 이어오던 천무등룡방은 천살보(千殺堡)라는 사도방파에 의하여 육십여 년 전에 멸문 당했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도룡신협은 이를 갈고 무공을 연마하여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에 천살보를 멸문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천무등룡방을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성세를 넓혀 삼강에 끼일 정도로 강맹한 방파로 만든 것이다.
 그의 슬하에는 이 남이 있는데, 자면옥룡(紫面玉龍) 조남휘(趙南輝)와 삼수정검(三手正劍) 조남전(趙南篆)이 그들이었다.
 자면옥룡은 어릴 적 괴이한 질병에 걸려 얼굴 색이 자색(紫色)으로 물들었기에 붙은 외호였다. 만일 그의 얼굴이 자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천하제일미남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무(武)보다는 문(文)에 관심이 많아 학문으로 일절(一絶)을 이룬 인물이었다. 그래서 황궁(皇宮)의 학사보다도 더 깊은 학문을 닦은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삼수정검 조남전은 검법에 일절을 이룬 인물이었다. 그는 쌍검을 애용하였는데 어찌나 빠른지 마치 세 개의 검을 휘두르는 듯 하다하여 삼수정검이란 외호를 얻었다.
 조자룡은 천무등룡방의 후계자로 차남인 삼수정검을 지목하였다가 이를 철회한바 있었다. 그가 무공을 익히던 중 상대의 병장기에 고환을 상하는 바람에 후손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자인 자면옥룡은 자신이 천무등룡방의 차기방주로 내정된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길에 너무도 많은 제약이 가해진 까닭이었다. 방주로서의 권리는 절대적이지만 그에 비례하여 책무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자면옥룡에게는 이남일녀가 있는데 귀곡비자(鬼哭比子) 조하운(趙霞雲)과 관옥서생(冠玉書生) 조하무(趙霞武), 그리고 귀면나찰(鬼面羅刹) 조연령(趙娟玲)이 그들이었다.
 조하운은 부친을 닮아 학문에 관심이 많은 자였다. 그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귀곡자와 견줄 정도로 진법(陣法)에 일절을 이뤄 귀곡비자라는 외호를 얻었다. 그의 성품은 너무도 순수하며 예의바르기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둘째인 관옥서생은 부친을 닮아 관옥같이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로 숙부의 무공을 그대로 섭렵한 인재였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도 오만하며 독선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면나찰은 그녀의 외호대로 살벌하게 생긴 외모와 나찰(羅刹)과 같이 잔인한 성품 때문에 귀면나찰이라는 외호로 불리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천상옥녀(天上玉女)처럼 어여뻤으나 어릴 적에 앓던 고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의원을 초빙하였다가 그가 처방을 잘못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외모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를 치료한 의원은 천하제일의 명의로 소문난 주육신의(酒肉神醫) 진규덕(晉揆悳)이었다. 단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그는 조연령을 치료하고 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갔다고 한다. 물론 그녀가 앓던 고질은 말짱하게 치료되었다.
 결국 고질을 치료하는 대신 추면(醜面)을 얻게 된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악양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설사 상대가 악양부를 다스리는 부주라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이는 그녀가 천무등룡방이라는 거대 방파의 장중주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의 학문과 무공 그리고 지혜 때문이었다. 지혜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누구든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언젠가는 철저한 보복을 당해야 하였던 것이다.
 
 천무등룡방이 자리한 악양에는 언제나 신분을 감춘 무림인들이 들끓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조자룡이 지니고 있다 소문난 육허비록(六虛秘錄)이었다.
 그것은 오백여 년 전 천하를 진동시켰던 육허자(六虛子)의 가공할 무학이 담긴 무공비급이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천살보를 멸문시키고 오늘 날 천무등룡방을 세울 수 있었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야! 그러니까 소향이 음식에 수면제를 타서 먹인 무림인들의 품에서 비급만 훔쳐서 네게 건네면 된다는 거야?”
 “그래!··· 너무도 간단하지?··· 별로 위험하지도 않고···”
 전육은 종칠의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어제는 소향에 관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기에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으나 오늘 재차 들어보니 아주 가망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인들은 묶은 때를 벗기기 위하여 오랜 시간 수욕을 하는 습성이 있기에 그들이 수욕을 하는 동안 벗어 놓은 의복에서 비급을 훔칠까 생각하던 그였다. 헌데 종칠이 말한 대로라면 더 쉽게 목적을 이룰 것 같았다.
 “흐으음!··· 그렇다면 한번 해 볼만 한데?···”
 “킬킬킬! 그래··· 너도 이제 무림의 고수가 되는 길로 들어 선거야!··· 마음을 먹었으면 이제 실천에 옮겨야지··· 오늘부터 시작이다.”
 “뭐? 오, 오늘부터?··· 야!··· 며칠 있다 시작하자··· 오늘은 너무 떨려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애!”
 “이런 빙신!··· 오늘이나 며칠 후나 뭐가 달라?··· 이따 저녁 때 들어오는 손님 중에 내가 찍을 테니 너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해!··· 너, 이 다음에 무림의 고수가 되어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아?···”
 종칠의 말에 전육은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밤새 그것 때문에 얼마나 전전반측을 되풀이하였던가!
 “아, 알았어!··· 대신 너무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찍지마!”
 “킬킬!··· 그런 건 걱정하지 말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전육은 종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 보았던 너무도 아름다운 무림 여인의 영상이 떠오르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이러니 장차 무엇으로 성장할지 참으로 귀추가 주목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소향을 찾은 종칠은 그녀에게 어떤 방법으로 수면제를 먹일 것인지를 설명하였다. 오늘부터는 그녀가 내민 음식을 전육이 받아 건네게 될 것이다.
 마장으로 돌아온 종칠은 한바퀴 둘러본 후 서둘러 저잣거리로 나섰다. 무공비급을 필사하려면 지필묵이 필요한데 당장 수중에 지닌 것이 없기에 천향기원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악양의 저잣거리에는 한인(漢人)들 뿐만 아니라 색목인(色目人), 회회인(回回人)들도 제법 많이 돌아 다녔다.
 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사람은 벌써 육십 년째 중원에서만 생활한다는 색목인 점노(占老)였다.
 그는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준다는 때에 쩔어 시커멓게 변한 깃발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과연 지난 육십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점을 보았는지 모르나 그는 늘 비쩍 말라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게 보였다.
 그 다음은 회회인인 대장간 철노(鐵老)가 유명하였다.
 중원에 자리잡은 지 거의 오십여 년이나 된 그는 질 좋은 농기구를 만들어 내기에 제법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하루에 한번은 꼭 악양루에 와서 차를 마시고 가곤 하였다.
 한인들 가운데에서는 서치(書癡) 홍노(洪老)가 가장 유명하였다. 벌써 이백 년이 넘는다는 악양고서점(岳陽古書店)을 운영하는 그는 칠십여 년 전에 그의 부친으로부터 이곳을 물려받았다.
 처음엔 볼품 없이 쓰러져가던 고서점이었건만 그가 맡은 후론 점차 장사가 잘되어 지금은 엄청난 규모로 발전하였다.
 악양고서점에 없는 서책은 중원 어디를 뒤져도 없다는 소문이 나자 천하의 유생(儒生)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의 영업 방침은 상당히 이상하였다. 그럴듯한 의복을 걸친 서생이 오면 은자 열 냥을 하던 서책이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서생에겐 불과 구리돈 한 문에 넘겨졌다.
 다시 말해 재물이 있는 자에게는 비싼 값에 팔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싸게 넘겼다는 것이다. 가난하던 사람이 나중에 고관대작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면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많은 은자를 보내곤 하여 이토록 크게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가난하다하여 누구에게나 이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에게는 아예 부자들보다도 훨씬 비싼 값을 불렀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할 자들이었다. 그래서 서치 홍노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더욱 많은 유생들이 몰려들었다.
 유생들은 혹시 자신이 이 다음에 성공할지 여부를 궁금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요즘엔 여기에 하나 더 유명한 사람이 생겨나려 하였다.
 그것은 바로 천향기원의 추국이란 일개 기녀였다.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거둬 보살핀다 소문이 나자 갸륵한 마음 때문인지 그녀의 기명(妓名)을 모르는 사람들이 드물어진 것이다.
 경국지색의 미모에 높은 학문, 게다가 어디에서 배웠는지 금기서화(琴棋書畵)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녀가 이토록 따뜻한 마음씨까지 지녔기에 만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 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요즘 그녀와 하룻저녁 술을 즐기려면 은자 이백 냥은 족히 있어야 한다 소문나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아직 동기(童妓 : 처녀지신을 유지하는 기녀)이며 매화부(梅花夫 : 기녀의 기둥서방)로 지목된 자가 이제 겨우 십사 세 된 소년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천향기원의 기녀들은 의무적으로 매화부를 지목하게 되어 있었다. 종종 인기 좋은 기녀들을 차지하려는 사내들의 암투가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매화부는 바로 악양루 마장의 하인인 종칠이었다. 따라서 그만은 언제든 그녀가 손님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접견이 허락되었다.
 “하하하! 나야!···”
 언제나처럼 동경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지던 추국은 종칠의 갑작스런 출현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늘 이래왔기 때문이었다.
 “어?··· 너 왔어?···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거야?”
 추국이 일을 나와있는 낮 시간에는 늘 종칠이 아이를 보아왔다. 수중에 은자가 없는 종칠은 아이들이 아파 의원을 찾아야 할 때마다 추국을 찾아와야만 하였다. 악양루에서 받는 보수는 언제나 그녀에게 직접 지급되기 때문이었다.
 “아냐!··· 이번엔 내가 은자가 좀 필요해서···”
 “그래? 얼마나 필요한데?···”
 “음!··· 한 두 냥쯤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래?··· 잠깐만 기다려···”
 은자 두 냥이면 육양원의 모든 아이들이 한끼를 먹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추국은 어디에 쓸 것인지도 묻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서 은자 두 냥을 가지고 나왔다.
 “여기 있어!···”
 “헤헤! 고마워···”
 “고맙긴··· 네가 그 동안 악양루에서 받는 보수 가운데 한푼도 안 썼잖아··· 네 덕에 내가 한결 편해졌는걸··· 난 네가 허튼 데 은자를 허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소향은 어떠니?···”
 “으응!··· 잘 있어···”
 추국은 종칠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가 있음으로 해서 마음 든든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보다는 세 살이나 어리고 육양원의 다른 아이들보다 불과 몇 살이 많을 뿐이지만 종칠은 그들에게 있어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늘 사려가 깊었고, 마음씀씀이가 부드러워 모든 아이들이 그를 따르기에 여간 편한 게 아니었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도 일하러 나와 있는 내낸 불안함에 마음 졸여야 했을 것이다.
 추국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종칠은 그녀의 진실한 신분내력을 알고 있었다. 십칠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비문대학사(秘文大學士) 추송웅(秋松雄)과 그의 아름다운 부인인 연화부인(蓮花婦人) 염영(廉英) 사이의 일점혈육이 바로 그녀였다.
 그들 부부가 칠 년 전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비명에 세상을 뜨자 천하유림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비문대학사가 유림에 남긴 족적이 워낙 깊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열 살이던 그녀를 거둔 것은 바로 서치 홍노였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홍노는 삼 년 전 그녀가 육양원을 건립하고 천향기원에 몸담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언젠가 서치가 술에 취해 그에게 해 주었던 말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알지만 종칠은 단 한번도 자신이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혹여 그녀가 망부망모의 생각으로 슬퍼할까 해서였다.
 종칠은 자신보다 먼저 육양원의 문을 두들겼던 소향의 안부를 묻는 추국에게 싱긋 미소를 지은 후 풀쩍 담을 뛰어 넘었다.
 언제나 다람쥐처럼 날쌘 그의 뒷모습을 보는 추국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그녀의 미소는 믿음직스럽다는 그런 눈빛이 담겨 있었다.
 
 “하하하!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어엉?··· 이게 누구냐?··· 종칠이구나··· 헌데 이번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서치 홍노는 종칠의 살가운 인사를 받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할아버지, 객잔에서 제가 워낙 일을 잘 한다고 안 놔주잖아요.”
 “허허허! 그래?···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혜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났느냐?”
 “하하! 할아버진 그저 혜 누이밖에 모른다니까?··· 이번엔 혜 누이 때문에 온 게 아니고 뭣 좀 구하려고 왔어요.”
 “그으래?··· 허허허! 녀석··· 그게 뭔데?···”
 홍노는 마치 귀여운 손자와 대화하는 듯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혹시··· 여기 있는 서책들 중에 글씨보다는 빈 종이가 훨씬 많은 그런 서책은 없나요?”
 “예끼, 이 녀석아!··· 글씨보다 빈 종이가 많으면 그게 책이냐?”
 홍노는 밤이면 몇 권의 서책을 빌려다보고는 얌전히 제 자리에 놓는 종칠이 대견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나이에 그 힘든 일을 하고도 매일 서책을 가까이 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제 겨우 십사 세에 불과하지만 종칠은 벌써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뗀지 오래였다. 불과 이 년만의 일이다.
 그가 처음 악양에 왔을 때에는 그저 간신히 문자들을 읽을 정도였다. 그에겐 스승도 없건만 그는 놀라운 학습능력을 보여 그것들을 뗀 것은 물론 제자백가(諸子百家)나 춘추(春秋), 예기(禮記) 등을 섭렵하였고, 지금은 웬만한 학식을 지닌 사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거침없이 읽어가고 있었다.
 물론 홍노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곳말고는 서책을 접할 곳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었다.
 “헤헤헤!··· 빈 종이가 있으면 거기다 뭐 좀 써보려고 그래요.”
 계면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종칠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허허허! 녀석도··· 저 안쪽으로 가보면 누군가 책을 만들다 그만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한번 찾아보거라!···”
 “헤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종칠은 기다렸다는 듯 서고(書庫)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홍노의 눈에서는 조금전과는 달리 이상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이는 나이가 구십에 다다른 노인이 보일 수 있는 그런 빛이 아니었다.
 종칠은 고서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서가에서 이것저것을 끄집어 살펴본 후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이 고서점을 찾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종이를 사러 저잣거리를 돌아다녔다가는 나중에라도 발각 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주루에서 일하는 점소이도 아니고 기껏해야 마방에서 일하는 허드레 일꾼에게는 화선지가 필요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둘째는 너무도 아까운 은자를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붓은 마방에 널려 있는 말꼬리를 주워 만든 지 오래였다. 글을 익히기 위하여 그것에 물을 묻혀 서체연습을 수 없이 하였다.
 남은 것은 벼루와 먹이었다. 그것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맹물로 써봐야 마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것만은 은자를 주고 구입해야했기에 추국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구해 모처럼 호사를 부려보려는 것이다.
 수십 번도 더 드나들었지만 이토록 깊숙이 와 본적이 없던 종칠은 서책이 썩어드는 냄새를 맡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서둘러 서책들을 꺼내 본 그는 글씨보다 허연 종이가 많이 보이는 것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예전엔 매우 비쌌기에 누구든 빽빽하게 채우려 하였던 때문이다.
 “이러다 하루 종일 걸리겠네··· 젠장!··· 어디 보자··· 으음!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종칠은 거의 한 시진 동안 수백 권의 서책들을 꺼내 보았지만 도대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제법 두툼한 서책 한 권이 눈에 뜨였다.
 
 < 귀비옥방요결(貴妃玉房要訣) >
 
 쓰여진지 제법 오래되었는지 서책의 표지는 무척이나 낡았으며 제목이 흐릿하게 보였다.
 “흐음!··· 어디 볼까?··· 어엇!··· 이, 이게 뭐야?···”
 놀랍게도 그가 펼쳐 든 서책은 보기에도 낯뜨거운 춘화(春花)로 그득 차 있었다. 사내와 여인이 벌거벗은 채 뒤엉켜 있는 그림은 아직 나이가 어린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그것들은 마치 화인(火印)처럼 그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호기심 때문에 천천히 책장을 넘기던 그는 결국 반 자 두께에 달하는 모든 내용을 보고야 말았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책장을 펼쳤을 때 거기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림은 하나도 없고 깨알만 한 글씨들이 쓰여 있었다.
 
 < 노부는 송(宋) 진종(眞宗) 삼 년에 태어나 만금을 희롱하던 만금대부(萬金大夫) 옥두호(玉斗昊)라 한다.
 선부(先父)로부터 막대한 재화를 물려받은 노부는 일평생 수천 첩을 거느리고 방탕하게 살았으나 오히려 재물은 늘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지나온 세월을 회고해보니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었음을 깨달았다. 노부의 나이 팔십에 이르니 사내로서의 기능이 쇠약해져 더 이상 인생의 낙이 없음에 또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게다가 호시탐탐 노부의 재물을 노리는 악한들이 세상을 풍미하던 시절인지라 노부는 깊고 깊은 심산유곡에 은신한 채 말년을 보내는 참담함 또한 맛보아야 하였다.
 남는 게 시간인지라 노부는 평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여기에 적힌 대로만 한다면 인세에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화락을 맛보게 될 것이다. 후인은 이것을 보고 노부와 같은 전철을 밝지 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기 바란다.
 끝으로 노부의 전 재산은 보름 날 입과 입이 이어져 있으며, 물과 칼과 나무가 있는 산에 있다. 부디 유용하게 사용하여 주기를 바라노라. >
 
 “하하하! 이 할아버지 되게 웃긴다··· 말년에 할 일이 없어 이런 걸 저술했다고?··· 가만있자··· 송조 진종 때면 한 삼백 년 전인데?··· 맞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엄청난 재물을 지닌 만금대부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그럼?··· 이 할아버지가?··· 바로 그 만금대부란 말이야?···”
 종칠은 비웃다말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재물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시절이었다.
 만금대부가 감추어 둔 재물이라면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흐음!··· 보름날 입과 입이 이어지고 물과 칼과 나무가 있는 산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종칠은 만금대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귀의 의미가 무엇일가를 곰곰이 생각하였으나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좋아! 이걸로 하자···”
 종칠은 그림의 여백부분에 얼마든지 글씨를 써넣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그것을 들고 나왔다.
 “허허허!··· 그래 책은 골랐느냐?···”
 홍노는 종칠이 반 자 두께의 서책을 들고 나오자 빙그레 미소지었다.
 “헤헤헤! 예··· 이걸로 할게요. 근데 얼마죠?···”
 “허허! 녀석···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네 녀석이 일해서 번 것들 모두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추국에게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가져가거라···”
 “헤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헌데 쓰고 남은 먹과 벼루 같은 것은 없나요?”
 홍노는 종칠이 서체 연습을 하려는 것인 줄 짐작하고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녀석··· 좋다! 노부가 쓰던 것을 주지. 따라 오너라!”
 홍노는 종칠의 반응도 보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딛고 내려갔다. 종칠은 은자를 아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두말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까지 수십 번이나 들락날락하였던 곳이었건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본적이 없던 그의 눈은 휘둥그래져 있었다.
 조금전 이 부근에서 귀비옥방요결을 뽑아들었었지만 그때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곳은 서가로 교묘하게 가려져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지하는 하나의 석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컸다.
 따로 마련되어 있는 서가들은 습기에도 끄떡없는 자단목(紫檀木)으로 만들었는지 은은한 자색(紫色)을 띄고 있었다.
 높이가 무려 일 장에 달하고, 길이가 거의 삼 장에 달하는 서가는 무려 이백여 개가 늘어서 있었다. 들어선 길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까딱하다가는 안에서 길을 잃기 쉽상인 셈이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깊숙한 곳으로 향하자 거기엔 또 다른 석실이 있었다. 그곳엔 황촉이 밝혀져 있었으며 홍노가 쓰는 듯한 침상 등 집기들이 있었다.
 일개 고서점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희귀한 흑단(黑檀)으로 만든 팔선탁(八仙卓)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보아 적어도 이삼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허허허! 여기 있구나··· 옛다! 이걸 가져다 쓰거라!”
 홍노가 건네는 벼루는 거북이가 납작 엎드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북의 등을 들면 안에는 두 마리 용이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이 양각된 것으로 보아 결코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뚜껑의 안쪽에는 웅야(雄爺)라는 글자가 음각(陰刻)되어 있었다. 이 또한 평범한 글씨체가 아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획마다 힘이 넘쳐흐르는 듯 굵고 기품이 있는 글씨체였다.
 먹은 어린아이 팔목 굵기의 것이었는데 은은한 향이 풍기고 있었다.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이 졸지 말라고 일부러 넣은 듯한 향이었다.
 “할아버지!··· 저, 정말 이 귀한걸 절 주시는 거예요?”
 “허허허! 녀석도··· 그래, 이 녀석아! 네가 귀여워서 주는 것이니 연습을 많이 하여야 한다. 만일 이걸로 연습하였는데도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글씨를 쓴다면 이 할애비가 네 녀석을 혼 구멍을 내 줄 것이야··· 알았지?”
 “헤헤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종칠은 혹시 홍노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먹과 벼루를 품에 안고 뒤도 안보고 도망치듯 고서점을 빠져 나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홍노의 눈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 줄기 정광(正光)이 흘러나왔다.
 마장으로 돌아 온 종칠은 서둘러 모든 것을 감춰두고 재빨리 나와 못 다한 일을 서둘러 마쳤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끌고 온 말들을 면밀히 살폈다.
 무림인들과 상인들이 사용하는 말은 잘 살펴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첫째 무림인들의 말은 대부분 발육상태가 양호하다.
 상인들은 이재에 밝기에 말의 먹이 값도 면밀히 따지지만 무림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을 싣고 다니는 말들에게 거의 대부분 최상급의 먹이를 먹이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무림인의 말은 근육이 좀더 개발되어 있다. 상인들이야 급한 일이 드물지만 무림인들은 늘 말을 달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종칠은 일 년에 한 마리 볼까말까하는 귀한 말인 설리총(雪狸?)을 발견하였다. 이놈은 잡털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백마인데 하루에 천 리를 달리고, 웬만한 늑대나 이리 정도는 우습게 물리칠 정도로 사나운 말이었다.
 처음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색을 하고 있었기에 그것인지 몰랐으나 그것이 바로 수많은 혈전을 거치는 동안 상대의 선혈이 튀어 그런 것임을 알아 본 그는 재빨리 곽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저 말 임자는 대체 누구죠?···”
 “허허!··· 녀석 너도 그 말이 설리총임을 알아본 게로구나?···”
 “그럼 할아버지도?···”
 “허허! 녀석··· 노부가 누구냐?··· 말과 함께 구십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깟 설리총을 못 알아볼 줄 알았더냐?··· 그놈은 아까 붉은 색 피풍(皮風)을 걸친 무림 여인이 끌고 온 말이다. 성질이 사납게 생겼으니 잘 다루어야 할 것이다.”
 말의 주인이 그렇다는 것인지 말이 그렇다는 것인지 구별하기 애매모호한 곽노인의 말에 종칠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알았어요!···”
 재빨리 마장의 일을 마친 그는 주청으로 들어가 붉은 피풍을 걸쳤다는 여인을 찾았다. 그녀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네 놈들이 본 낭자에게 찝쩍거려?··· 네놈들은 눈도 안 달렸느냐?···”
 “으으으!··· 나, 낭자, 잘못했소이다. 한,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주청의 바닥에는 이미 세 구의 시신이 선혈을 뿜고 있었고, 한 사내가 자신의 잘려나간 팔목을 붙잡은 채 애원하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붉은 피풍을 걸친 결코 작지 않은 체구의 여인이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아미를 잔뜩 치켜올리고 있었다.
 이미 죽은 셋과 애원하는 사내는 악양에서도 알아주는 파락호들인 악양사질(岳陽四蛭)이었다. 이들은 어찌나 진드기 같은 지 누구든 이들에게 걸리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따라서 악양의 거의 모든 상인들은 이들에게 매일 일정 금액의 은자를 상납하지 않으면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악양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매일 은자 다섯 냥씩을 주지 않으면 입구에 인분(人糞)을 뿌려 놓거나 손님들이 들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등 그 동안 각종 만행을 저질러온 자들이었다.
 보나마나 이들은 오늘 치 은자를 상납 받으러 왔다가 피풍을 걸친 여인의 미모에 혹하여 찝쩍거리다가 거꾸로 당한 것일 것이다. 이는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능히 짐작되는 일이었다.
 “호호호! 살려 달라고?··· 네놈은 본 낭자가 누구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으으으! 나, 낭자! 정말 잘 못 하였습니다. 소인이 그만 눈이 삐어서 무림의 여협인 날수선자(辣手仙子) 당 여협을 몰라 뵈었소이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악양사질 중 대형인 그가 설마 이토록 저자세를 보이는 날이 있을지 기대도 못하던 종칠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들 둘을 살펴보았다.
 이제 겨우 십칠 세 정도로 보이는 날수선자는 그린 듯한 아미에 오똑한 콧날, 깨물고 싶을 정도의 입술을 지닌 눈에 확 띄는 미녀였다.
 ‘아!··· 혜 누이만 한 미녀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악양제일의 기녀인 추국과 견주었을 때 조금도 뒤쳐짐이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의 눈에서는 차가운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호호!··· 그렇다면 본녀의 규칙도 알겠구나?···”
 “으으으!··· 용서해 주십시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악양사질 중 맏이인 대형의 안색은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사천당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날수선자 당비연(唐飛燕)에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자신에게 함부로 말을 한자는 혀를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본 자는 눈알을 뽑고, 셋째는 자신을 건드린 자는 팔목을 베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감히 자신에게 음심(淫心)을 품은 자는 반드시 목숨을 거둔다는 것이 그녀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악양사질은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와 욕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하룻밤 수청을 들라 강요까지 하였던 것이다.
 “호호호호! 그래?··· 살려만 주면 다시는 나쁜 짓을 안 하겠다고?··· 과연 네놈의 말을 믿어도 될까?···”
 날수선자는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좌우로 저어졌다. 그의 말을 절대 신용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마지막으로 종칠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즉시 엄지손가락이 밑으로 향하도록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들의 만행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 기회에 아예 죽여버리라는 뜻이 명확하였다.
 “으으으! 죽일 놈!··· 네놈을 반드시···”
 종칠을 바라본 악양사질의 대형은 눈을 부라리면서 이를 갈았다. 이를 본 날수선자의 표정은 더없이 냉랭해졌다.
 “흥!··· 이미 결정되었다. 네놈 스스로 자진을 하겠느냐? 아니면 본 낭자가 손을 쓰랴?···”
 “에잇! 죽어랏!···”
 지금껏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품에서 비수하나를 꺼내드는가 싶더니 이내 섬전처럼 날수선자의 신형을 덮쳐갔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신형은 그녀에게 쾌속하게 다가서는가 싶더니 이내 달려오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뒤로 퉁겨졌다. 그런 그의 안면에는 언제 박혔는지 수십 개의 침이 박혀 있었다.
 “호호호! 감히 본 낭자에게···”
 말을 하면서 몇 개의 비침(飛針)을 날리자 사내는 전신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이내 전신을 비비꼬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그의 팔다리는 마치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 이리저리 뒤틀리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청(酒廳)으로 오르는 일단의 발자국 소리가 있었다.
 누군가 살인이 벌어졌다고 신고를 하였는지 관부(官府)에서 보낸 즙포사신과 군졸들이었다. 그들은 죽어 있는 자들이 악양사질임을 알아보고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낭자! 이들을 죽인 것이 낭자이오?···”
 즙포사신의 말에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구하였다.
 “맞아요!··· 이들이 감히 본녀에게 불경하여 손을 좀 봐주었어요. 여기 증인들이 많으니 물어보세요. 본녀는 정당방위였어요.”
 그러자 즙포사신은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명을 내렸다.
 “즉시 이들의 시신을 치우도록 하라!”
 “존명!”
 즙포사신은 평소에 골머리를 앓던 악양사질이 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지 가볍게 포권을 한 후 말없이 내려가 버렸다.
 사실 악양사질은 군졸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군졸로 있을 때부터 상인들의 등을 쳤고, 악양의 파락호들의 대부 노릇을 하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부주는 이들을 파면하였다.
 그런 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날뛰던 이들은 예전의 동료였던 다른 군졸들에게 적지 않은 은자를 뿌려 두었기에 이들을 체포하기가 너무도 힘들었었다.
 체포하러 가기만 하면 언제나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다른 군졸들이 그들에게 정보를 알려준 모양이었다.
 주청이 말끔히 치워지자 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날수선자가 먹던 음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종칠은 재빨리 소향과 전육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음식은 다 식었기에 다시 내오라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조금 전 무지막지한 악양사질을 단숨에 죽여버리는 모습을 본 그들로서는 그녀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야!··· 시키는 대로 안 할래?···”
 가까이 다가간 종칠의 말에 전육은 두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너, 미쳤냐?··· 조금 전에 못 봤어?··· 잘못 건드렸다가는 너도 그 꼴 난단 말이야!···”
 “이런 빙신!··· 그리고도 고추를 달고 다니냐?··· 야, 임마! 이왕 하려면 고수를 선택해야지··· 맨날 하수들만 데리고 놀면 언제 고수가 되냐?···”
 “안 돼! 난 못해!··· 도저히 할 수 없어! 하려거든 네가 해!”
 전육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아예 밖으로 나가버렸다. 할 수없이 소향에게 다가가자 그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 안 돼요! 너무 강해요!··· 그러다 죽어요!”
 “후후! 이 바보··· 강하니까 해야 돼!··· 너는 그저 약이나 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
 소향을 설득하는데 무려 반각이나 걸렸다. 결국 망설이던 그녀는 그의 강압에 못 이겨 약을 타기로 하였다.
 다른 점소이로부터 날수선자가 묶을 후원의 객방을 알아낸 그는 청소를 하려는 시늉을 하며 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날수선자는 요기를 마치고 자신의 객방으로 들어왔다.
 이미 밖은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이었다. 그녀는 소향이 탄 약 기운에 취했는지 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휘장 뒤에서 두터운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숨을 죽이고 있던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객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걸치고 있던 의복을 훌훌 벗는 것이었다. 의복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감에 따라 눈부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나신(裸身)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구름처럼 틀어 올렸던 삼단 같은 머릿결이 풀리자 둔부에 닿을 정도로 치렁치렁하게 늘어졌다. 마치 학의 목처럼 갸름한 목에 이어 둥그스름한 어깨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달려 있는 잔뜩 부푼 두 개의 융기와 그 정상에 달려 있는 연분홍 유실은 뇌쇄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종칠은 밋밋하기만 한 소향의 가슴만 기억하였기에 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낮에 보았던 귀비옥방요결의 그림에서 여인의 부푼 가슴을 묘사해 놓은 것을 보았을 때에는 마치 이상한 그림을 보는 듯 하였는데 실물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개미의 허리처럼 잘록한 세류요(細柳腰)를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발달된 둔부의 곡선은 거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두뇌를 마비시킬 듯한 충격을 준 것은 시커먼 흑림(黑林)이었다. 있어야 할 곳에 아무 것도 없는 그녀의 하복부를 본 종칠은 잠시 혼이 나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옥주(玉柱)는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수백 년 간 공들여 깎아놓은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점차 가늘어졌는데, 사슴의 발목처럼 다소 가냘 퍼 보이는 발목에서 그는 전에 느끼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피풍으로 교구를 가리고 있을 때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던 엄청난 매력을 뿜어내는 너무도 아름다운 몸이었다.
 
 
 제2장 배꼽 옆의 북두칠성
 
 
 강호삼강 중 하나인 구유살방(九幽殺幇)은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부근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부살인(請負殺人)을 주업(主業)으로 삼는 방파이다.
 방주는 천리추살(千里追殺) 계무륵(桂霧勒)이라 알려져 있다.
 그는 추종술의 대가로 누구든 그의 추적술을 피할 수 없다 하였다. 그의 휘하에는 오천에 달하는 살수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살인귀(殺人鬼)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잔인독랄한 심성을 지닌 자들이라 하였다.
 지금까지 누구든 구유살방의 살명부(殺命簿)에 오른 자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 구유살방에 청부를 하면 언제나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살행(殺行)을 나가 몇 번이나 성공하였으며, 죽인 자의 신분 고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게 된다 하였다.
 청부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안 외곽 관제묘에 가서 자시(子時) 무렵에 다섯 개의 향초를 피우고 엎드려 있으면 된다.
 향초가 일시에 꺼질 즈음 살명부에 오를 자의 신분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면 누군가 나타나서 청부를 받는다 하였다.
 살해 대상의 신분고하에 따라 청부금의 달라졌는데 언제나 선금으로 모두 지불하여야만 거래가 성사된다. 청부 대상은 코흘리개 아이부터 당금 천자(天子)까지 누구든 가능하다.
 강호인들은 구유살방의 총단을 찾기만 하면 언제든 박살내려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당한 동문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 사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구유살방에 의하여 동문이나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희생당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구유살방은 현재 무림공적으로 지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총단이 어디에 있는지 또 누가 살수들인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에 아직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유살방은 지금까지 총 십이만칠천구백육십여 건의 청부를 받아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였다.
 그중 가장 강한 자는 전대 무림맹의 맹주였던 창천신협(倉天神俠) 종리궁(宗里宮)이었다. 삼 년 전 그는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있는 무림맹 총단에서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천하제일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무림 최강자를 꼽으라 하면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손꼽히던 고수이며, 만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그는 부인인 모란선자(牡蘭仙子) 옥진진(玉珍璡)과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들이 마셨던 차에는 오보추혼산(五步墜魂散)이 타 있었고, 그들이 만진 찻잔에는 맹독(猛毒) 중의 맹독인 무영마독(無影魔毒)이 묻어 있었다.
 무영마독은 무색무취(無色無臭)이므로 제 아무리 독술(毒術)의 대가라 할지라도 감지할 수 없는 것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전신 내공이 스르르 흩어지게 하며, 종래에는 시력(視力)을 잃고 몸부림치다 목숨을 잃게 하는 지독한 독이었다.
 오보추혼산은 그 명칭처럼 복용한 자는 오 보를 못 넘기고 내장이 녹아 내리게 하는 절독(絶毒)이었다.
 시커먼 선혈을 토하고 죽은 그들의 심장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한 자루씩 박혀 있었는데 손잡이에는 구유살방의 독문휘장인 금오(金烏)가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천하인들은 구유살방이 창천신협 부부를 죽인 흉수들임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을 찾으려는 구파일방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오늘도 구유살방은 청부를 받아 살행에 나서고 있다 하였다.
 
 ***
 
 종칠은 완전히 발가벗은 날수선자의 배꼽 옆에 일곱 개의 작은 점이 마치 북두칠성처럼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젠가 읽었던 천지성복록(天地星宓錄)에 이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천지성복록은 누가 저술한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서책으로 그 두께만 해도 거의 두 자가 넘으며 방대한 분량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밤하늘에 떠 있는 모든 별들이 인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자세하게 쓰여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 개에 대하여 특별히 장문(長文)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당연히 북두칠성(北斗七星)에 대한 것도 있었다.
 만일 이러한 모양의 점을 지닌 여인이 나타나면 이는 천하에 혼란이 일 때 나타난다 하였으며, 이 별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여인은 북두성체(北斗聖體)라 하며, 문일지십(聞一知十) 지혜와 더불어 무공 습득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 신체를 타고난 여인이 천마성(天魔星)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지궐마체(地厥魔體)를 이룬 사내와 결합한다면 천하는 겁난에 휩싸이게 되고, 자미성(紫微星)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천궁성체(天宮聖體)의 인물과 결합하면 태평성대를 이룩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천마성은 아수라(阿修羅)를 상징하고, 자미성은 제석천(帝釋天)을 상징하는 별로 이들 둘은 수만 년 간 지상의 선과 악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하나의 성좌(星座)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만적성(滿赤星)이었다. 이것은 팔백 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별로 시뻘건 빛을 발한다 하였다. 이것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자는 적하사체(赤霞邪體)의 신체가 되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오성(悟性)으로 문일지백(聞一知百)의 경지를 이룬다 하였다.
 그가 만일 북두성체의 여인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천하는 적하사체를 타고 내어난 인물의 손아귀에 들게 될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북두성체의 독특한 효능 때문이었다. 누구든 북두성체의 여인과 음양화합을 하게 되면 내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만일 일개 범인이라 할지라도 그녀와 음양화합(陰陽和合)을 하게 되면 늘 기력이 충만하게 되고, 노화현상도 늦게 나타나며 장수할 수 있게 된다.
 북두성체야 말로 살아 있는 영약이나 다름없는 신체인 셈이다.
 
 종칠이 놀란 것은 설마 이러한 일이 실제로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그 책을 읽을 때에는 누군가 이야기 지어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심심풀이로 지어 낸 줄 알고 이야기책을 읽듯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다.
 모든 의복을 벗은 날수선자가 욕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아직 나이가 어린 종칠이 보기에도 아찔한 모습이었다. 실룩대는 둔부의 모습이 너무도 육감적이었던 것이다.
 욕실의 문이 닫히자 종칠은 살그머니 그녀의 의복 속에서 모든 물건을 꺼낸 후 밖으로 향하였다.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돌아 온 그는 몇 가지 물건 가운데 얇은 양피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귀비옥방요결의 그림 옆 빈칸에 필사(筆寫)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기록한 뒤 다시 객방으로 향하여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킨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제 처소로 돌아와 숨을 몰아쉬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하게 나와 의복이 푹 젖을 정도였다.
 이 모든 일은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이루어졌다.
 후원의 뒤쪽에 있는 작은 개구멍이 곁에 그의 처소가 있었고, 부근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점소이 복장을 하고 있는 그를 주의 깊게 살펴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두근거리던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귀비옥방요결을 펼쳐들고 자신이 필사한 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맥도 통하지 않았고, 단어를 이루는 자도 없었다.
 분명 똑 같이 베껴 쓴 것이건만 도통 이해할 수 없던 그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안색을 환하게 밝힌 것은 열흘이 지난 새벽 무렵이었다.
 오래 전에 쓰였으나 이제는 사문이 되다시피 한 전서(篆書) 삼백육십 자로 이루어졌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경문(經文) 같기만 하던 그것의 비밀을 풀어낸 것이다.
 글자 수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한 글자씩 띄어서 써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맨 앞 글자에 이어지는 다음 글자는 반으로 나눈 후 후반에 있던 맨 앞의 글자였다. 그 다음은 앞에서 두 번째고 그 다음은 일백여든 두 번째 글자였다.
 
 < 여의분심신공(如意分心神功)
 경하하노라! 비밀을 풀어 낸 후인은 분명 범상치 않은 두뇌의 소유자임이 분명할 것이다.
 노부는 진국(秦國) 상국(相國) 여불위(呂不韋)이다.
 천하제패에 성공한 노부는 분서갱유(焚書坑儒) 직전 수천 권에 달하는 무공기서들을 한 곳으로 모아 이를 필사하여 두었고 후일 이것을 바탕으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방법을 연구하던 중 하나의 심공(心功)을 창안하였다.
 이것을 익히면 내공의 성취가 타인에 비하여 적어도 열 배는 빨리 늘어나게 될 것이다.
 천기를 보니 노부에게 자살(子殺)의 괘가 나타나 이제 노부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나 이것을 완성한 기쁨에 기꺼이 죽을 수 있을 것 같구나.
 필생의 염원이었던 천하제패를 이룬 이 마당에 무엇을 더 바라랴! 후인 또한 노부처럼 천하제패라는 원대한 야망을 품어봄이 어떠하겠는고?··· >
 
 “가만?··· 진나라 상국 여불위?··· 그럼, 진시황(秦始皇)의 친부(親父)가 아닌가!··· 설마 이게 진짜 그 사람이 만든 것이란 말이야?··· 그럼, 팔백 년이나 되었다는 말인데··· 우와!··· 이거 정말 오래된 거구나···”
 종칠은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잠깐 감탄하였다. 그가 다시 여의분심신공에 눈을 돌린 것은 일 각 정도 후였다.
 그것은 일반적인 운기토납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은 호흡을 통하여 우주의 기를 체내로 갈무리하는 것인데 반하여 이것은 전신 모공(毛孔)과 한천(汗泉)을 통하여 그것들을 끌어 모으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굳이 결가부좌를 할 필요조차 없고, 굳이 운기조식을 한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하루 종일, 심지어는 자면서도 운기를 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가지 문제라면 이렇게 하기 위해선 적어도 마음을 둘 이상으로 쪼갤 수 있어야 하였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여의분심신공은 모두 여덟 단계로 나뉘어 있는 데 가장 첫 단계가 마음을 둘로 쪼개는 것이다. 그 다음은 셋으로, 그 다음은 넷으로 하는 순서에 의하여 결국 마음을 아홉 개로 나눌 수 있는 심공이었다. 마음을 아홉 개로 나눌 수만 있다면 아마 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그 날부터 종칠은 마음을 쪼개는 연습을 하였다. 손으로는 대학(大學)을 필사하면서 입으로는 예기(禮記)를 외우는 식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무려 이 년에 걸쳐서야 간신히 마음을 둘로 나누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쉬웠다. 그 동안 그는 전육과 소향의 전폭적인 도움(?)을 얻어 적지 않은 무공들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는 여의분심신공에 미치지 못하는 잡학들이었다. 하지만 전육과 소향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몸놀림도 가벼워져 있었고 적지 않은 초식을 익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강호로 나가면 적어도 삼류 무사 정도는 될 실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악양루의 모든 일과가 끝난 후 은밀히 종칠의 처소로 모인 그들은 그에게서 학문과 더불어 무공을 점검 받았다. 이 과정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종칠의 사정없는 매질을 당하여야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은 소향의 종아리가 퉁퉁 부어 올랐고, 다른 날은 전육의 다리가 퉁퉁 부어 올랐다.
 그들과 비교하였을 때 종칠은 어마어마한 고수였다.
 그들 둘에게 아무리 설명하여도 여의분심신공의 오묘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생긴 결과였다.
 불과 이 년이었지만 종칠의 내공은 어느새 이십 년에 가까운 내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만하면 강호에서 이류는 웃도는 수준인 셈이다. 그 동안 성장한 그의 체격은 십육 세 소년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 발달한 상태였다.
 말에게 먹일 건초 더미 등을 운반하면서 붙은 근육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직 앳된 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약관을 넘어선 청년과 같은 몸이었다.
 그는 여전히 악양루의 마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지식을 넓히기 위하여 악양고서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여의분심신공 덕분에 그의 뇌에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지식들을 한꺼번에 담게 되었다. 요즘엔 한꺼번에 두세 권의 서책을 읽을 수 있으며 한번 본 것은 다시는 뒤적일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들키지 않고 무공비급들을 필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여 요즘 전육은 약간 대담해져 있었다. 그래서 전처럼 무서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망치는 일은 없게 되었다.
 한 가지 단점은 그가 너무도 많은 종류의 무공들을 섭렵하느라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육과 소향도 마찬가지였다.
 무공의 근본 원리를 모르는 가운데 그저 종칠이 가르치는 대로만 따라 하였기에 그가 없으면 촌보의 진전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육이야 이 다음에 무림의 미녀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 위한 일념으로 연공을 하지만 소향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종칠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하여 무공연마를 하여 왔기에 진전이 약간 더딘 편이었다.
 
 ***
 
 강호삼강 중 마지막은 패(覇)를 숭상하는 패천보(覇天堡)였다.
 산동성(山東省) 제남부(濟南府)에 자리잡은 패천보의 보주는 올해 사십이 세인 극패천룡(極覇天龍) 초벽강(草碧剛)이었다.
 탐스러운 흑염(黑髥)으로도 유명한 그는 사각 진 얼굴에 당당한 체구를 지닌 호한(好漢)이었다.
 그에게는 일남일녀가 있는데 자전신룡(紫轉神龍) 초염후(草??)는 부친 못지 않은 대단한 고수로 알려졌다. 올해 약관인 그는 후기지수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한 고수였다.
 우연히 얻은 전진교(全眞敎)의 무공비급 덕분에 일약 고수가 된 그는 오만한 것이 단점이었다.
 절염옥녀(絶艶玉女) 초금지(草金芝)는 올해 십육 세로 그녀의 외호에서 알 수 있듯 절염한 아름다움으로 소문난 소녀였다.
 다소 오만한 것이 흠이긴 하나 마음만은 비단결 같이 착하다 하였다. 그러나 세인들은 그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은 당연히 오만하여도 된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흠이 없다는 뜻으로 무결옥녀(無缺玉女)라고도 불렀다.
 그녀는 특히 진법에 일가견을 이루고 있어 전설의 귀곡자(鬼哭子) 이후 최대의 진법가로 소문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적어도 진법에 관한 한 천무등룡방의 귀곡비자 조하운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평하였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녀는 무공을 전혀 익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호삼중 중 하나인 벽력문(霹靂門)은 창건된 지 불과 이십 년 밖에 되지 않았으나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 가는 방파였다.
 운남성(雲南省) 계림(桂林)에 있는 이곳의 문주인 청해뇌룡(靑海雷龍) 엽상군(葉祥君)은 올해 오십칠 세로 원래는 무림인이 아닌 서생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습득한 한 권의 무공기서로 인하여 일약 고수가 되었고 벽력문을 창건한 것이다.
 그에게는 삼남이녀가 있는데 모두다 재기발랄하고 영기가 넘치기에 후기지수에 당당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장자이자 소문주인 장뇌수사(藏雷秀士) 엽수린(葉秀麟)은 올해 삽십이 세로 뇌기를 담은 장력을 발출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누구든 그의 장력에 격중되면 한줌 재로 변한다하여 그와 대적하려는 자가 드물 정도였다.
 둘째인 신기수사(神機秀士) 엽수상(葉秀象)은 이십팔 세로 뛰어난 학문과 더불어 풍운(風雲)을 부릴 줄 안다 소문나 있었다.
 셋째 청해잠룡(靑海潛龍) 엽관무(葉冠武)는 이십삼 세로 세 형제 가운데 가장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으며 무공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하였다.
 장녀인 뇌서시(雷西施) 엽향방(葉香芳)은 올해 십팔 세로 재색을 겸비한 대단한 미녀였다. 그녀는 무공을 익히던 중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는지 특이하게도 신체에서 미약한 뇌기가 방출된다 하였다. 하여 누구든 그녀와 신체 접촉이 이루어지면 찌릿찌릿한 촉감을 느낀다 하여 뇌서시란 별호가 붙었다.
 차녀이자 벽력문의 금지옥엽인 이화요정(梨花妖精) 엽연미(葉娟薇)는 십칠 세로 언니와 더불어 운남쌍미(雲南雙美)로 불린다.
 누구든 그녀의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에 반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녀 역시 무공과 학문에 일절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아이, 공자님!··· 이러지 마세요···”
 “쿡쿡쿡! 뭐라고?··· 이러지 말라고?··· 감히 기녀 주제에 본 공자를 거절해?··· 에잇!···”
 짜악!···
 “어멋!···”
 우당탕탕!···
 추국은 벌겋게 부풀어오르는 뺨을 감싸 안고 나뒹굴었다.
 그녀의 전면에는 관옥같은 용모를 한 약관이 약간 지난 청년이 분개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감히 기녀 주제에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여 거절하다니··· 설마 본 공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
 추국은 부푼 뺨을 감싸 안고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천무등룡방의 둘째 공자인 관옥서생(冠玉書生) 조하무(趙霞武)가 천향기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동안은 부친과 숙부, 그리고 형이 무서워서라도 추국의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감히 기원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못하던 그는 그들이 출타하자마자 온 것이었다.
 당연히 추국을 지명하였고, 몇 번 술시중을 들어 주었다.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는 아주 예의 바른 청년처럼 행동하던 그가 드디어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수청을 들 것을 강요하였다.
 그가 비록 전설의 미남자와 견줄 만큼 뛰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추국은 그의 좋지 않은 인간성이 능히 짐작되었기에 지금까지처럼 부드럽게 거절하였다.
 기녀 생활 육 년 동안 그녀의 화술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에 도달하여 있었기에 거절을 당하면서도 화를 낼 수 없던 그는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한데 오늘은 어디에서 마시고 왔는지 대취한 상태에서 천향기원을 찾았고 즉시 수청을 들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추국은 또 다시 거절하였고, 그와 동시에 뺨을 맞은 것이다.
 정성 들여 틀어 올린 머리는 풀어헤쳐져 있었고, 입술은 터져서 부어올랐으며, 넘어지면서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다.
 “아니?··· 혜 누이 대체 왜 이래?···”
 마침 볼일이 있어 천향기원에 발을 들여놓았던 종칠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다가섰다. 추국의 입가에 흐르는 한줄기 선혈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모습을 본 관옥서생은 분노가 폭발하였는지 폭갈을 내질렀다.
 “네 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본 공자가 하는 일에 끼어 드는 것이냐?···”
 종칠은 문제의 사내가 바로 악양에서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청무등룡방의 이 공자임을 알아보고 즉시 고개를 숙였다.
 “천무등룡방의 이 공자님 아니십니까?··· 대체 무슨 일로 이러시는지 소인에게 말씀해···”
 “뭐라고?··· 하인 주제에 감히 본 공자에게 무슨 일인지 상세히 고하라고?··· 이런, 빌어먹을 놈!··· 에잇!···”
 퍼억!···
 “크으으으윽!···”
 내력을 실어 걷어 찬 관옥서생의 발에 정통으로 옆구리를 격중 당한 종칠은 신음과 함께 한 모금 선혈을 토했다.
 “빌어먹을 놈! 감히··· 본 공자가 물었다!··· 네놈이 대체 누구냐고··· 그런데도 감히 본 공자에게 말을 시켜?···”
 “흐흑!··· 이 공자님, 이 사내는 소녀의 매화부이옵니다.”
 추국은 또 다시 종칠을 걷어차려는 관옥서생의 앞으로 나서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오호라! 이 놈이 네년의 매화부라고?··· 크흐흐흐!··· 그래서 감히 본 공자의 청을 거절했다는 말이냐?···”
 관옥서생은 한낱 객잔의 하인 때문에 기녀에게서 자신이 거절당했다 느끼고 자존심이 상해 분기탱천하였다.
 “이노옴!··· 네놈이 감히 본 공자의 심기를 흐려?···.”
 퍼억! 퍼억! 퍼억!···
 “크흐으윽! 크흐윽! 크으윽!···”
 연거푸 세 번이 나 걷어 채이자 종칠의 신형은 애초에 있던 곳에서 무려 삼 장이나 떨어진 곳에 내 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선혈이 마치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살기를 실은 너무도 강한 타격에 오장육부가 제 자리를 이탈하였고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종칠의 몸이 부르르 떠는 듯 싶다가 혼절한 듯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을 짓이기려는 듯 다가서던 관옥서생은 문득 주변에 있는 많은 시선을 느끼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서 후일이라도 가문이 존장들의 귀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긴다는 것을 짐작한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엎어져 있던 종칠의 모습은 참혹하다는 표현 외에는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내장이 터지기라도 하였는지 그가 쏟아낸 선혈에는 이물질(異物質)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전신은 금방 퉁퉁 부어 올랐다.
 “흐흐흑!··· 흐흐흑!··· 나 때문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추국은 종칠의 신형 위에 엎어져 오열을 그치지 않았다.
 제 아무리 기녀라 할지라도 분명 사람일진대 관옥서생의 처사는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고, 그의 분풀이 대상이 된 종칠이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현재의 그는 그녀에게 있어 단순히 육양원에 받아들인 다른 고아들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그가 없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던 많은 일들을 대신 처리하여 왔기에 그녀에게 있어 든든한 마음의 지주(支柱)였다.
 게다가 이제 십칠 세가 된 그는 도저히 그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려가 깊었고, 깊은 심기로 만사를 처리하여 왔기에 믿음직스런 사내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언젠가 정말 청백을 버려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를 자신의 첫 남자로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가 적시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관옥서생이 주위를 물리쳐 두었기 때문이었다.
 “흐흐흑!··· 흐흐흑!··· 미안해! 미안해!···”
 모든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던 천향기원의 원주가 다가와 황급히 종칠을 그녀의 규방으로 옮기고 의원을 부르는 등 부산을 떨었다.
 따뜻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닦아낸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관옥서생의 발에 걷어 채인 결과였다.
 상의를 걷어 내니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보기에도 끔찍해 보이는 진한 자색(紫色) 멍이 들어 있었고, 부어 올라 제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의원이 다녀가고 종칠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은 꼬빡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 동안 추국은 한 숨도 자지 않고 그의 상세를 돌보느라 지쳤기에 그의 가슴에 엎어져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으으으!··· 으으으으!···”
 “어머!··· 깨, 깨어났어?··· 아프지 않아?···”
 종칠은 자신의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추국의 손길에서 문득 진한 모성을 느꼈다. 만일 자신을 낳아준 모친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이랬을 것이란 생각이 든 그는 아직까지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애써 미소를 지었다.
 “으으으!··· 괜찮아··· 헌데 혜 누이는?···”
 “나는 괜찮아!··· 그런데 아직도 아파?···”
 “으응! 조, 조금···”
 종칠은 전신이 욱신욱신 쑤셔왔지만 애써 미소지었다.
 “흐흑!···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혜 누이의 매화부잖아··· 매화부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설마, 나를 매화부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
 종칠은 애써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하여 자신이 매화부임을 굳이 강조하였다.
 “아, 아냐!··· 그건 절대로 아냐!··· 누가 뭐래도 너는 내 매화부야··· 죽을 때까지···”
 “후후후!··· 고서점의 홍노가 그랬어··· 사내는 모름지기 자신의 처첩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고추를 떼어버리라고 했어!···”
 종칠의 말을 들은 추국은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았어!··· 누가 뭐래도 너는 내 매화부야··· 이제 조금만 더 크면···”
 종칠은 추국이 하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지레짐작한 후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아직도 사내 구실을 못한다고 하려는 건 아니지?”
 “아, 아냐! 그건 절대 아냐!···”
 추국은 종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짐작하였기에 애써 미소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후후후! 그럼 됐어··· 헌데 육양원엔 아무 일도 없어?”
 “일이라니? 무슨 일?···”
 종칠의 말에 추국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육양원에 있는 삼십여 명의 고아들은 그들의 동생들이며 아울러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 공자의 성품은 결코 올바르지 않아··· 그는 편협하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이지. 지금까지 외부로 그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방주와 자면옥룡 때문이야. 헌데 그들이 출타를 했다 돌아오면 필경 오늘 있었던 일을 알게 될 거야. 그러면 자신이 호된 야단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거든. 그래서···”
 종칠은 자신이 무려 삼 일 간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냐!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
 추국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듯 미소지었다.
 “으으윽!··· 되게 아프네··· 나 좀 일으켜 줘!···”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종칠은 옆구리가 무척 결려 스스로 운신할 수 없었다. 추국의 부축으로 간신히 일어나 앉은 그는 시각을 물었고 지금이 아주 깊은 밤인 이 경 무렵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입을 열었다.
 “혜 누이, 미안하지만 나 좀 부축해 줄래?··· 지금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
 “뭐라고?··· 안 돼! 너는 지금 너무 부상이 심해. 나중에 가!”
 “안 돼! 지금 꼭 가야할 일이 있단 말이야!”
 한번 고집을 세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고야 마는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추국은 두말 않고 그를 부축하여 천향기원을 빠져 나왔다. 둘의 신형은 곧 악양고서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지하에 있는 석실로 스며들었다.
 일년 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천하를 유람이나 하겠다며 홀연히 떠난 홍노는 고서점을 종칠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악양루를 그만두지 않고 육양원의 아우 가운데 하나인 양규인(楊揆寅)에게 맡겨 운영하여 왔다.
 이제 겨우 십사 세인 그는 낮에만 있고 밤이면 동생들이 있는 육양원으로 향하였기에 고서점은 비어 있었다.
 지하에 있는 이 석실은 일 년 가까이 고서점을 운영한 양규인 조차 모르는 곳이었다. 홍노가 죽은 후 간신히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 남겨놓도록 서가를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로 왔어?··· 내 방에 있는 것이 더 편할 텐데···”
 황촉으로 간신히 침상 주위의 어둠만 몰아낸 석실을 둘러보던 추국은 마치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진한 어둠이 두려운지 떨고 있음을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 오늘은 여기에 있어!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서··· 내일은 인아를 시켜 동생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모아야겠어.”
 “그, 그래?··· 네가 정 그렇게 원한다면 그렇게 해!···”
 추국은 괜히 종칠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한 후 그를 침상에 눕도록 하였다.
 “혜 누이도 여기 누워!··· 잠도 못 잤을 텐데···”
 “아, 아냐!··· 나는 괜찮아!”
 추국은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종칠이 곁에서 잠을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다 되어 버렸다 느낀 후부터는 한번도 그의 곁에서 잔 적이 없었다.
 “나는 괜찮아!··· 어서 누워!··· 잠을 자야 내일 또 움직이지···”
 “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한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의 곁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종칠의 몸 상태는 아직 완전히 좋아진 것이 아니기에 그는 잠시 후부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추국은 부드러운 입술로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 후 나직이 속삭였다.
 “고마워!··· 너는 나의 영원한 매화부야···”
 그리고는 그녀 역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억지로 몸을 일으킨 종칠은 양규인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에 조바심 때문에 밖으로 향하려는 추국을 억지로 주저앉힌 그는 닫힌 문 밖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 이보게, 자네 들었나?
 - 뭘?··· 천향기원이 몽땅 불타버린 거 말하는 겐가?···
 - 아니, 그거말고··· 육양원도 간밤에 아주 쑥밭이 되었다고 하더군···
 -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거긴 추국이 운영하던데 아닌가? 거긴 훔쳐갈 물건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곳인데?
 - 그러게 말일세!···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나 육양원도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고 거기에 있던 아이들이 몽땅 죽었다고 하네··· 그리고 말이야··· 이건 들리는 소문이긴 한데··· 누군가 계집아이들은 몽땅 간살(奸殺)해 버렸다고 하더군.
 - 뭐? 뭐라고?··· 세상에나··· 말세로군··· 그 어리고 불쌍한 것들한테 도대체 누가 그랬다는 겐가?···
 - 모르네!···
 - 그럼 관부에서는 대체 무어라 하던가?
 - 즙포사신이 보고하기로는 무림인들의 소행이라는 거야.
 - 아니 육양원이 무림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 글세··· 그걸 누가 알겠나?··· 하여간 못된 놈들의 짓인 것만은 분명한데··· 쯧쯧쯧!··· 그 어린것들을··· 대체 어떤 놈들이···
 
 종칠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한 관옥서생의 소행이라는 것을!
 분명 자신과 추국을 비롯하여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죽여 입을 막으면 살인멸구(殺人滅口)가 되기에 자신이 저지른 추태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천향기원으로 먼저 사람들을 보냈을 것이다.
 거기에서 추국과 종칠을 발견할 수 없던 그들이 다음에 간 곳이 바로 육양원일 것이고, 그곳에서도 둘의 종적을 찾지 못하자 사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악양의 곳곳을 누비며 둘의 행방을 쫓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눈에 뜨이기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 당한 후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으으으!··· 간악한 자!··· 사갈 같은 심성을 지닌 개 같은 놈!··· 두고 보아라! 반드시 이 원한을 갚고야 말겠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반드시 네놈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해 주겠다. 으드드드드득!···”
 종칠은 나직이 이를 갈며 눈물을 흘렸다.
 육양원의 아이들은 그에게 있어 너무도 살 가운 아우들이었고,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고아들을 무참히 죽인 관옥서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의 이런 예측은 너무도 정확한 것이었다.
 며칠 후면 돌아올 부친과 형의 질책이 두려워 고민하던 그는 악양의 저잣거리에서 온갖 분탕질을 일삼는 파락호들을 고용하여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천향기원은 완전히 불탔고, 원주 역시 간살(奸殺) 당했다. 몇몇 기녀들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육양원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관부에서 조사하였지만 흉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참을 이를 갈던 종칠은 마음을 가라앉힌 후 지하 석실로 내려갔다. 너무도 걱정되어 손을 비비며 서성대던 추국이 반색을 하며 다가서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아가 말하기를 이 공자의 수하들이 우리를 찾아다닌대··· 이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벌써 그곳에도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오늘밤 되도록 멀리 도망가라고 시켰어···”
 “휴우!··· 다행이네···”
 “천상 우리는 이곳에서 한동안을 보내야 할 모양이야!···”
 종칠은 자신이 이곳에 적지 않은 식량들을 저장해 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객잔을 오가면서 언제든 자신의 삼 푼을 감출 줄 아는 현명함을 지녀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에 그는 이곳에 적지 않은 건량(乾糧)들을 비축해 둔바 있었다.
 원래 홍노가 두었던 것과 합치면 둘이서 적어도 일년은 너끈히 버틸 정도였다. 게다가 석실 곁에는 샘까지 있기에 밖으로 나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라도 무공연마에 몰두할 때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종칠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깊은 밤이 되면 관옥서생에 대한 원한 때문에 이를 갈았다.
 그렇게 지하 석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추국은 그 동안 게을리 하였던 독서를 실컷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여의분심신공 등 무공을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총명한 두뇌를 지닌 그녀는 마치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맹렬한 기세로 무공을 습득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여의분심신공 등 무공이 적혀 있는 귀비옥방요결을 보게 되었다. 종칠이 볼만한 것을 찾겠다며 지상의 서가로 나간 뒤였다.
 기녀 생활을 오래 하였기에 남녀간의 음양화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지 않는 그녀로서도 낯이 뜨거워 도저히 볼 수 없는 춘화를 몇 장 넘기던 그녀는 문득 종칠이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침이면 그의 하의가 불룩 솟아올라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보고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귀비옥방요결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그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종칠이 돌아왔을 때 추국의 두 볼은 마치 잘 익은 능금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혜누이, 대체 왜 그래? 어디 아파?···”
 “으으응! 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추국 아니 추영혜는 재빨리 귀비옥방요결을 감추며 어쩔 줄 몰라하였다. 이런 모습을 본 종칠은 그녀의 등뒤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는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걸 다 본 거야?··· 하긴, 혜 누이는 나보다 세 살이나 많으니 그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군···”
 “아, 아냐! 나, 나도 몰라!···”
 추영혜는 전신에서 식은땀이 샘솟는 듯한 곤혹스러움에 젖어 얼른 대답하였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 놀릴게··· 이것 좀 봐! 내가 위에서 찾은 거야!··· 다른 책들 뒤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거야!···”
 추영혜는 얼른 그가 건네는 서책을 받아들었다. 한시바삐 곤란한 순간을 넘기고 싶어서였다.
 
 < 마화사십팔수(魔花四十八手) >
 
 두터운 양피지로 만들어진 이것은 분명 무공비급임이 틀림없었다. 표지에 쓰인 글자들은 먹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수놓은 것이었다.
 “대충 훑어 봤는데 사내인 나보다는 여인인 누이가 익히기에 더 좋은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
 “아, 알았어! 고, 고마워!···”
 여전히 등뒤에 감추고 있는 귀비옥방요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추영혜는 황망히 대답하고는 재빨리 서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둘이서 함께 무공도 연마하고 독서도 하던 곳이었다.
 종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걸 익히기 전에 내가 가르쳐 주었던 미타금강송(彌陀金剛頌)을 열 번은 외워야 할거야. 그걸 읽다보면 왠지 이상한 마음이 생기거든···”
 “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마타금강송은 불문에 전해져오는 마음을 다스리는 경문이다.
 여전히 귀비옥방요결 때문에 곤혹스런 마음이 든 그녀는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대답을 하고는 미타금강송을 되뇌이는 척 하였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종칠을 곁눈질하고 있었으니 그것의 오의(奧意)를 제대로 음미할 리 만무하였다.
 대충 되뇌인 추영혜는 황망히 비급을 펼쳤다.
 
 < 크으으으!··· 천추의 한을 남기다니···
 무림의 간악한 자들의 손에 의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한 본녀는 사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이 비급을 남긴다.
 본녀는 수천 년 전통을 자랑하던 화문(花門)의 일백이십칠 대 문주인 미요선자(迷妖仙子) 양만정(楊滿情)이다.
 마화사십팔 수를 익히는 후인이 여인의 몸이라면 본문의 일백이십팔 대 문주가 되리라.
 본문은 사내들로부터 핍박받고 천대받으면서 웃음과 노래, 그리고 몸을 파는 기녀(妓女)와 창기(娼妓)들로 이루어진 문파이다.
 본문의 시조는 한(漢)나라 시절 대도(大都)에서 창건되었다.
 당시 천하제일기(天下第一妓)였던 천색요화(千色妖花) 시조(始祖)께서는 핍박받는 기녀들을 위해 본문을 세우셨다.
 본문을 결성한 후 시조께서는 천하의 모든 기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한 가지 일에 착수하였다. 모든 기녀들을 기적에서 빼어 평범한 다른 여인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화락하게 한 평생을 보내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간악한 사내들의 저지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 하략 >
 
 마화사십팔수의 서문에 쓰인 내용은 놀랍게도 천하인들이 모르는 가운데 기녀들로만 이루어진 하나의 방파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화문의 총단은 금릉에 있는 천색궁(千色宮)이라는 기원(妓院)이며 이곳에서는 새로운 문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
 마화사십팔수는 화문의 문주가 익혀야할 사십팔 가지 무공이 기록된 비급이었다. 어떻게 악양고서점에 이것이 있는지를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이백 년 이상 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녀였던 추영혜는 마화사십팔수에 빠져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그 안에는 도산검림인 강호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거의 모든 무공이 망라되어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법과 도법 등 십팔반 병장기로 펼치는 무공과 장법, 지법, 신법은 물론 역용술과 전음법, 은잠법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화문의 문주임을 나타내는 마화검법(魔花劍法)은 너무도 현란한 변식에 미혹된 순간 순식간에 상대의 목숨을 앗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비급의 무공은 마공에서 파생된 무공인지라 속성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미리 훑어 본 종칠은 이것이 그녀에게 가장 알맞다 생각하여 넘겼던 것이다.
 
 ***
 
 강호삼중(江湖三中)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유명한 사천당가(四川唐家)였다. 사천성 한 복판에 자리잡은 이곳은 누구나 알다시피 암기술로 일절을 이루는 문파이자 가문이었다.
 현 가주는 무영수(無影手) 당호문(唐豪?)이었다.
 올해 사십오세인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손놀림으로 수 없는 암기를 발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의 나이 약관 시절 우연히 마주하였던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의 채주들이 그의 일수에 일거에 황천으로 향하였던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였다.
 악행을 일삼던 그들의 만행을 보다못해 나선 그가 날린 암기는 정확히 삼만육천 개라 하였다. 불과 촌각의 시간 동안 날린 암기들은 그들의 전신요혈에 정확히 박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슴도치가 되어 황천행을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와 원한 맺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웬만한 무인들은 당가의 요청이라면 한 수 접어주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다시피 하였다.
 무영수에게는 이남일녀가 있는데, 장남이자 소가주인 소리장도(笑裏藏刀) 당린(唐麟)은 그의 외호처럼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의 표정을 보고 내심을 짐작하려다간 낭패를 당하기 쉽상이다. 그는 언제나 웃는 낯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당가의 모든 가전무학을 전수받아 상당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고는 하나 그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둘째인 철척탑왕(鐵脊塔王) 당종(唐琮)은 팔 척에 가까운 엄청난 신장을 지닌 거한이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었다. 단 한번도 강호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이 바로 날수선자(辣手仙子) 당비연(唐飛燕)이었다. 이제 이십일 세가 된 그녀는 여전히 강호행을 하면서 못된 무리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혼기를 넘긴 나이였건만 그녀의 앙칼진 성격 때문인지 아직 혼사를 논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가의 가규(家規)는 누구든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 한 도발하지 않으나, 만일 누구든 침범하거나 욕되게 하면 즉각 박살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가에 도발을 한 외부 세력이 사라진지 벌써 백여 년이나 되기에 거의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당가의 세력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강호삼중 중 마지막은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 자리잡은 천마궁(天魔宮)이었다. 올해 육십칠 세인 비천마신(飛天魔神) 소인지(蘇吝識)가 이십칠 년 전에 창건한 이 문파는 마도를 지향하는 문파였다.
 정파무림인에 의하여 양친을 잃었다는 그가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힘을 키운 결과 불공대천의 원수인 무당파의 현허진인(玄虛眞人)을 격살한 후 세운 방파였다.
 무림의 태산북두인 무당파에서는 장문인의 사제이자 장로인 현허진인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할말이 없었다.
 비록 비천마신의 양친이 마도인이라고는 하나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을 색마(色魔)로 오인하고 죽였다는 그의 자인(自認)이 있었고, 절대로 복수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기 때문이었다.
 당당히 무당파를 단신으로 방문하여 현허진인을 죽이고 나온 그에게 마도무림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천마궁이 조직되었고 현재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대로 십 년만 두면 능히 강호삼강에 끼일 것이라는 것이 세인들의 추측이었다.
 천마궁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항주에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지 구체적으로 항주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궁도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 비천마신의 가족사항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 있었다.
 
 ***
 
 “으으윽!···”
 마화사십팔수를 익히던 추영혜가 급작스런 신음과 함께 한줄기 선혈을 내 뿜으며 옆으로 쓰러지자 곁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던 종칠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다가섰다.
 “혜 누이! 대체 왜 이래?··· 어디 아파?···”
 마화사십팔수는 종칠의 예측대로 마공(魔功)에 그 연원이 있는 무공이었기에 무공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 하여 추영혜는 반년만에 마화사십팔수 중 무려 삼십여 가지나 익힐 수 있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늘어만 가는 내공의 놀라운 힘을 경험한 그녀는 무리하게 운기를 하던 주 주화입마에 들게된 것이었다.
 “으으으!··· 으으으!···”
 “왜 그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종칠은 주화입마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에 추영혜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이날부터 그녀는 다리를 사용하여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간신히 상반신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종칠이 해내야 하는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
 처음엔 대소변을 받아내는 종칠을 보면서 너무도 부끄러워 싫다고 고함을 치기도 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매일을 울면서 지냈다. 때때로 그녀의 교구는 그의 손길에 의하여 구석구석 씻겨지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반년 가까이 지속되자 결국 그녀는 모든 것에 순응하게 되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서책과 벗삼는 일 이외에는 없었다.
 종칠은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하여 마화사십팔수를 펼쳐드는 수밖에 없었다.
 
 
 제3장 너는 내 매화부잖아!
 
 
 “크흐흐흐! 준비는 다 되어 가느냐?···”
 “그러하옵니다.”
 “좋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즉시 전서구를 보내 이러한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
 “존명!”
 화려한 대전 한 가운데 백호(白虎)의 가죽으로 덮은 호사스런 태사의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안광이 이글거리는 사십이 조금 넘은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염소수염을 기른 문사복(文士服)을 걸친 비쩍 마른 육십이 넘은 듯한 노인이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호안(虎眼)에 우뚝한 코,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과 사각 진 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커먼 흑염(黑髥)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앞의 노인은 창백한 안색에 뱁새의 눈처럼 가로로 길게 찢어진 후 위로 치켜 올라 있었고, 광대뼈가 불룩 튀어 나와 있었으며, 입술은 너무도 얇아 마치 없는 듯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잔인하면서도 간교한 꾀가 많은 그런 인상이었다.
 이곳은 귀주성(貴州省)의 서쪽 끝인 조몽산(鳥夢山)의 산자락에 위치한 장원이었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작다고도 표현할 수 없는 이 장원은 숭문장(崇文莊)이라 불렸다.
 낙향한 고관대작으로 알려진 천기석사(天機碩士) 유몽양(劉?諒)이 바로 장원의 주인이라 하였다. 올해 칠십이 다 된 그가 이곳으로 낙향한 지는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 갔다.
 그에게는 오로지 독자밖에 없었는데 누구도 그의 성명이나 생김생김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에게도 자식들이 있다고는 알려져 있으나 그 역시 비밀에 싸여 있었다.
 숭문장은 늘 굳게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곳은 세인의 관심을 끌 아무런 이유가 없기에 이곳 조몽산 주변에서도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인물은 천기석사의 일점혈육이며 숭문장 내에서는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불리는 유겸용(劉謙庸)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올해 나이 사십삼 세인 그는 강호삼약(江湖三弱) 중 하나인 혈마교(血魔敎) 교주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노인은 과거 중원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노마(老魔) 유령신군(幽靈神君) 관기무(關奇戊)였다. 그는 현재 혈마교의 총관이었다.
 강호 상에는 혈마교라는 문파가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들의 근거지가 바로 이곳이라고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철두철미하게 마치 구름에 가려진 신룡처럼 총단의 위치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유령신군은 사십여 년 전 백여 구의 강시(彊屍)를 강호로 끌고 나와 한바탕 혈겁을 일으켜 무림공적으로 지목 당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기에 은거를 하였거나 누군가에게 죽었다고 소문나 있는 인물이었다.
 혈마교가 강호삼약 중 하나로 분류 된 것은 마도에 떠도는 은밀한 소문 때문이었다. 아직은 세력이 약하나 언젠가 중원마도를 천마궁과 반분하여 대치할 것이라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었다.
 대체 그것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러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직도 중원 마도에 은밀히 전해지고 있었다.
 
 강호삼약 중 하나인 집법전(執法殿)은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 어딘가에 위치한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전주가 누구인지 또 어떤 목적으로 강호상에 횡행하는 마인들을 척살(擲殺)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 역시 하나도 없었다.
 한가지 정확한 사실은 이들에 의하여 지난 육 년 동안 죽어간 마인들의 수효가 오천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알량한 무공을 믿고 양민들을 핍박하거나 그들에게 해코지를 한 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목 없는 시신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양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가렴주구를 일삼던 부패한 관리들 역시 척살대상에 들어 벌써 오백여 명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잘려진 머리는 늘 관부의 정문 지붕 위에 효수되곤 하였다. 제 아무리 철저히 살피고 있어도 언제 그랬는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마인과 관리들의 수급이 내 걸리곤 하였다.
 당연히 그들에게 핍박받던 양민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하지만 마도와 관부에서는 그들의 행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총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을 색출할 수 없었기에 오늘도 부패한 관리들과 마인들은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어야만 하였다.
 
 ***
 
 “흐음!··· 그렇구나··· 그래서 이랬구나···”
 지난 두 달간 마화사십팔수 전부를 살펴본 그는 그 안에서 주화입마의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종칠은 악양고서점 내에 있던 모든 의서(醫書)들을 꺼내놓고 파고든 결과 추영혜가 왜 주화입마에 들었는지를 드디어 알아냈다.
 덕분에 종칠은 의술에 관해서도 일가견을 지니게 되었다.
 화문(花門)은 기녀들의 문파였다. 천하의 기녀들 가운데 청백지신(淸白之身)을 유지하고 있는 기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아마도 일 할에 일 할인 일 푼 정도이거나, 아니면 또 다시 그것의 일 할인 일 리 정도일지도 모른다.
 기녀들이 익히는 무공인 마화사십팔수는 청백지신인 여인이 익히기엔 부적합한 무공이었다. 추영혜가 주화입마에 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화문의 일백이십팔 대 문주가 된 그녀지만 화문에서는 절대로 청백지신인 기녀에게 무공을 전수하여서는 안 된다는 문규가 있다는 것을 알 리 만무하였다.
 이것을 모르고 마화사십팔수 연공에 들어간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두 번째는 무리하게 운기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의서들의 내용을 깊이 고찰한 결과 종칠은 추영혜의 주화입마를 해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차마 그 방법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청백을 거두고 적어도 백여 일 간은 음양화합을 하면서 전신을 추궁과혈하여야 하는 너무도 민망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그래? 오늘따라 왜 그렇게 심각해 있어?···”
 추영혜는 하루종일 깊은 고심에 잠겨 있는 종칠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고 여인의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것을 감지한 것이다.
 “으응?···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빨리 말해봐! 무슨 고민이 생겼어?”
 “아, 아니라니까!···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마!···”
 그녀가 볼 때 종칠의 이런 태도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밝고 쾌활하게 행동하여 자칫 실의에 빠질 수 있는 자신의 기분을 밝게 하려고 애써왔던 것이다.
 “흥!··· 뭔가 감추는 게 있구나?··· 여긴 우리 둘 뿐이야··· 부끄럽지만 나는 네게 볼 거, 못 볼 거를 다 보여줬어··· 그런데도 나한테 감추는 게 있다면 너무 섭섭해!···”
 추영혜는 종칠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 석실은 너무도 무료한 곳인지라 오랜만에 그녀의 호기심이 자극을 받은 것이다.
 “아냐!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니 신경 쓰지마!···”
 “흥!···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얼굴에 ‘난 지금 어떤 걸 감추고 있소’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살았어?··· 이제 난 네 얼굴만 보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훤히 알아!··· 그러니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이야기 해!···”
 추영혜는 집요하다할 정도로 캐물었다. 물론 종칠은 계속하여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지만 결국 그의 입은 열리고야 말았다.
 사흘만의 일이었다.
 “알았어, 말할게!··· 대신 절대로 놀라지 말아야 해! 알았지?···”
 드디어 종칠의 입이 열리자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하였다. 드디어 지난 사흘 간 잔뜩 호기심을 자극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밝혀지려는 순간이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동안 그가 보였던 태도로 미루어 뭔가 대단한 일인 듯 싶었던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소상히 설명하였다.
 모든 설명을 들은 그녀의 안색은 기괴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 동안 자신이 운신을 못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들었기에 궁금한 것이 풀렸다는 후련함과 더불어 그 치료방법이 너무도 민망하다는 것에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던 것이다.
 “휴우! 이제 됐어?···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야!···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그것뿐이고··· 이제 할 수없이 밖으로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왜?··· 왜 나가?···”
 “몰라서 물어?··· 누이를 치료하려면 천상 사내가 있어야 하잖아!··· 나가서 골라와야지··· 이왕이면 준수한 사람으로 고를게. 너무 걱정하지마!···”
 종칠의 말을 듣던 추영혜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무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혹시 생각해둔 사람이라도 있는 거 아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지금 말해. 나가서 그 사람에게 말해볼게.”
 종칠은 추영혜가 기녀 생활을 할 때 자주 들렀던 손님 가운데 하나를 지목하려는 줄 알고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냐!··· 나가지 마!···”
 “무슨 소리야? 이렇게 평생을 지낼 거야?··· 방법을 알아냈으니 하루라도 빨리 치료해야지! 안 그래?···”
 “······!”
 한 동안 추영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종칠의 눈만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그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라 그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가지마!··· 아직 밖에서 관옥서생의 졸개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어떻게 안 나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었어. 제 아무리 지독한 놈이라 할지라도 이젠 잊었을 거야··· 누군지 가르쳐 주기만 하면 후다닥 나갔다 올게. 그러니 빨리 말해!”
 “안 돼! 나가지마!··· 네가 해!··· 너는 내 매화부잖아!”
 추영혜의 급박스런 대답에 종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고?··· 나더러 누이를?··· 말도 안 돼! 어떻게 내가?···”
 “왜, 안 돼?··· 너는 내 매화부잖아. 그건 네 스스로도 인정했던 거잖아. 설마 관옥서생한테 당하고 나서 네 스스로 내 매화부라고 말했던 거 잊었어?··· 네가 해!··· 너 아니면 안 돼!”
 추영혜의 말에 종칠은 그녀가 잠시 어떻게 됐나 싶어 그녀의 봉목(鳳目)을 똑 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는 단호함만 있을 뿐 실성한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봐!··· 내가 아무리 기녀였다고 하지만 내 나신(裸身)을 본 건 이 세상에서 네가 처음이야··· 그리고 그 동안 나를 씻긴다면서 안 만진 데가 없잖아··· 어떻게 그런 몸으로 다른 사내에게 안길 수 있단 말이야?”
 “누이! 그건 사정이 틀리잖아. 누이가 움직이지 못하고 여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냐!··· 그것말고도 이유가 있어··· 그 동안 말은 안 했지만 난 널 사랑해! 그게 이유야! 그러니까 네가 해!···”
 “······!”
 너무도 느닷없는 사랑고백에 그는 또 다시 멍한 상태가 되어 할말을 잊었다.
 “이건 정말이야!··· 그 동안 생각을 많이 해봤어. 내 마음이 어떤지를···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잠든 사이 난 잠든 네 모습을 보면서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만일 네가 이 쓸모 없는 몸을 달라고 한다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주겠다고 결심했어··· 그러니 네가 날 치료해 줘! 부탁이야!···”
 어느 샌가 추영혜의 봉목에서는 한 줄기 이슬이 흐르고 있었다. 여인으로서 너무도 하기 힘든 말을 하는 그녀의 심정은 비장했다. 사실 그 동안 그녀는 여러 번 자진(自盡)을 결심했었다.
 하반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기에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생활을 평생동안 하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고싶은 마음이 수 없이 일었었다. 그러나 너무도 헌신적인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슬퍼할까 봐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기뻤다. 그러는 한편 이 기회에 그와 맺어져야 한다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영영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하였던 말을 어렵게 꺼낸 것이다.
 “누, 누이!···”
 “아무 말도 하지마!··· 그리고 날 꼭 안아 줘!··· 그 동안 말은 안 했지만 네 품에 안겨 있을 때 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널 사랑해! 그것도 미치도록!··· 제발 부탁이야! 네가 날 치료해 줘! 난 정말 네 아낙이 되고 싶어··· 이건 진심이야!···”
 종칠은 너무도 느닷없는 말들에 정신이 없었지만 요청대로 그녀의 교구를 말없이 꼭 끌어안았다.
 “사랑해!··· 널 정말 사랑해!··· 입 맞춰 줘!···”
 일단 마음을 정한 그녀는 너무도 대담하였다. 하지만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마치 비 맞은 참새처럼 할딱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직이 속삭이는 그녀의 교구에서는 사내의 욕정을 자극하는 묘한 향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야?··· 후회하지 않을 거야?···”
 종칠은 그녀의 교구를 씻기기 위하여 발가벗길 때마다 저도 모르게 예전에 보았던 날수선자 당비연의 폭발적인 염기(艶氣)를 뿌리는 교구와 비교하였었다.
 추영혜의 교구는 약간 작기는 하였으나 그녀에 비하여 조금도 뒤쳐지는 구석이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간혹 아랫도리가 불룩 솟는 느낌에 아연실색하며 어떻게든 그것을 감추려 애를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랬다. 비록 그녀의 교구가 발가벗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씻기기 위하여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하초가 불룩 솟아올랐다.
 “응! 정말 후회하지 않을게!··· 지금까지는 네가 내 동생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야!··· 너의 아낙이 되어 네게 기쁨을 주고 싶어. 사랑해!··· 날 좀 꼭 안아 줘!··· 으으읍!··· 으으응!···”
 종칠은 할딱이는 추영혜의 옥용을 내려다보다 그 모습이 너무도 뇌쇄적이라는 느낌이 들자 저도 모르게 용기를 내어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이성을 잃어갔다.
 어느새 그녀의 영사같은 두 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고 혀와 혀는 서로 뒤엉켜 달콤한 타액을 섞고 있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너무도 황홀한 기분에 젖어 세상의 모든 인륜도덕을 잊고 첫 입맞춤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전신이 녹아 내리는 듯한 달콤한 황홀함에 젖은 추영혜는 그의 손이 자신의 앞섶을 풀고 가슴의 융기를 마음껏 더듬고 있음도, 의복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있음도 잊은 채 비음(鼻音)을 내며 열락(悅樂)에 겨워하고 있었다.
 이윽고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엔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불을 스치자 그녀의 전신에서는 오톨도톨한 돌기들이 맹렬한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전율감이 뇌리를 스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봉목은 반쯤 감긴 채 속눈썹만 바르르 떨리고 있었고, 마치 벼락에라도 맞은 듯 연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목덜미에 붉은 입술자국이 여러 개 생겨났을 즈음 그녀의 교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으로 변모하였다.
 약간 마르기는 하였으나 그녀의 가슴에 솟은 융기는 하나도 쳐지지 않은 탄력을 지니고 있었고, 정상의 돌기는 잔뜩 성이 났는지 오똑 솟아 있었다.
 세류요처럼 가느다란 허리의 곡선은 둔부에 이르러서 폭발적으로 발달되어 있었고, 울창한 흑림은 그 안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려는 듯 이러 저리 엉켜 속을 좀체 드러내지 않았다.
 “아아아학!··· 아아아앙!···”
 유실과 유방이 동시에 그의 입안으로 빨려들어 희롱 당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교구는 작살 맞은 능어처럼 파닥이며 연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울창한 흑림(黑林)을 더듬는 교묘한 손길이 느껴지자 숨넘어갈 듯한 교성(嬌聲)과 함께 안 된다는 듯 옥주(玉柱)를 오므리려 하였다. 그러나 하반신이 마비되어 있었기에 이것은 생각뿐 그녀의 옥주는 여전히 넓게 벌려져 있었다.
 양지유를 바른 듯 팽팽한 복부 한 가운데 우물을 더듬는 뜨거운 혀의 느낌에 정신이 없어진 그녀의 섬섬옥수는 그의 머리카락을 굳게 움켜쥐고 뽑아 내려는 듯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태어난 이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너무도 감미롭고 너무도 폭발적인 황홀감에 젖은 그녀의 젖은 입술은 연신 고혹적인 신음과 교성을 내고 있었으며, 교구는 참을 수 없는 쾌감에 경련이라도 일어났는지 부르르 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점점 그의 설육이 밑으로 향하여 도톰한 언덕 위의 흑림을 헤치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움켜 쥔 머리카락을 뽑을 듯 잡아 당겼으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종칠 역시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접하는 여체의 너무도 부드러우며, 탄력이 넘치고, 너무도 말랑말랑한 촉감에 완전히 몰입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고 있었기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귀비옥방요결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였다. 희대의 방중서(房中書)인 그것의 효능은 정말 놀라웠다.
 단순히 입술과 손만으로도 그녀에게 벌써 여러 차례나 엄청난 쾌감의 파도를 선사하여 잠시 잠깐 동안이지만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흑!··· 아아아앙!··· 나, 난 몰라!··· 아흑!···”
 울창한 흑림을 헤치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여리디 여린 꽃잎을 더듬자 추영혜의 봉목에서는 검은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흰자위만 남아 있었고 숨이 막히는지 더 이상의 신음도 내지 못한 채 끅끅거리고만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함에 젖어 있던 그녀의 봉목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그토록 황홀하게 해주던 모든 자극이 잠시 멈춘 후였다.
 그러나 그녀의 봉목은 다시 닫혀야만 하였다.
 종칠이 마치 찢듯이 자신의 의복을 걷어내자 우뚝 솟은 굵은 철주(鐵柱)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족히 한 자는 됨직한 그것은 거의 어른 팔뚝 굵기였고 스스로 생명이라도 있는지 끄덕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엄청난 크기였다.
 “아아흑!···”
 갑작스럽게 무언가 뜨겁기 이를 데 없고, 단단한 것이 여린 꽃잎을 더듬는 느낌이 들자 흰자위뿐인 봉목이 뜨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상체가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자 얼른 영사같은 두 팔로 그의 동체를 끌어안던 그녀는 너무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자 즉시 그것을 밀어냈다.
 “아아아아아아악!··· 아, 아파!··· 그, 그만!···”
 그러나 그 순간 여린 꽃잎이 열리고 그 안으로 굵은 철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입한 뒤였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같은 고아들을 돌보려는 갸륵한 심성을 지녔던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고 여인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한줄기 앵혈(鶯血)이 그녀의 옥주를 타고 흘렀다.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종칠은 서둘러 둔부를 빼려 하였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려해도 통증을 호소하며 그의 둔부를 섬섬옥수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잔뜩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멈춘 채 있던 종칠의 뇌리로는 이제 누이로만 생각하던 추영혜가 자신의 여인이 되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하면 통증을 덜어줄 것인가를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하기엔 하초에서 느껴지는 너무도 따듯하며,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 때문에 생각이 제대로 이어질리 만무하였다.
 잠시 후 그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둔부를 움직였다.
 그때마다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하초로부터 전달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너무도 오묘한 느낌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그렇게도 고통스럽던 느낌대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느낌이 전달되기 시작하자 그녀의 교구에서는 향기로운 땀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또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고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숨넘어갈 듯한 강렬한 쾌감이 그녀의 뇌리를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아아앙!··· 아아흑!···”
 어느새 영사같은 두 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고, 마치 어린아이가 도리질을 하듯 그렇게 고개를 흔들며 고혹스런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때 종칠의 철주는 꽃잎으로 입구를 막아 두었던 태고적 동굴 속으로 깊숙이 진퇴를 거듭하며 양쪽 벽으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이는 귀비옥방비결에 적혀 있는 방법 그대로였다.
 저도 모르게 그의 철주는 구천일심(九淺一深), 좌삼우사(左三右四), 지완지급(止緩止急), 격상연하(激上軟下) 등등의 수법으로 움직이며 동굴 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 동안 무공 연마를 위하여 수없이 비급을 펼쳐보았기에 저도 모르게 모든 내용이 뇌 속에 각인된 결과였다.
 추영혜의 교구는 마치 험난한 파도와 맞서 싸우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끊임없는 신음으로서 그에 대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몸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쾌감의 파도는 너무도 강렬하여 추영혜라는 일엽편주를 수 없이 난파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아아흑!··· 으으으으윽!···”
 빗살처럼 진퇴를 거듭하던 종칠의 둔부가 일시에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동굴 속 깊숙한 곳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을 분사(噴射)시키자 쾌감의 파도는 급작스럽게 거대한 해일(海溢)이 되어 그녀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뇌로 더 이상 강렬할 수 없는 쾌감이 전달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분사가 지속되는 동안 간간이 정신을 찾았던 그녀는 또 다시 정신을 놓아야 하는 일을 반복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청백지신이었던 그녀가 감내해 내기에는 너무도 큰 황홀함 때문이었다.
 “휴우!···”
 긴 한숨과 함께 그녀의 동체 위로 엎어진 종칠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잠시 멍해 있었다. 설마 자신이 너무도 아름답고 현숙한 추영혜의 청백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만족감에 젖어 그녀의 교구를 바짝 끌어안으며 반듯한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였다.
 “아아아! 상공, 사랑해요!···”
 어느새 정신이 든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입맞춤하는 그를 마주 안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런 그녀의 호칭은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이제 종칠을 자신의 영원한 반려(伴侶)로 인정한 것이다.
 “혜 누이!···”
 “아무 말도 말아요!··· 이제 상공은 소녀의 낭군이 된 거예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흐흐흑!···”
 추영혜의 봉목에서는 청백을 잃은 아쉬움 때문인지 영롱한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볼을 타고 흘렀다.
 “사랑해!··· 죽을 때까지 사랑해줄게!···”
 종칠은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옥루를 핥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가 너무도 소중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아깝다는 태도였다.
 “아아아!··· 상공, 입맞춰 줘요!”
 추영혜 역시 격정에 겨워 그의 입술을 찾으며 속삭였다. 곧 둘의 영혼을 하나로 묶는 너무도 달콤한 입맞춤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또 한번의 파정(破精)이 끝나도록 멈출 줄 몰랐다.
 누군가 그랬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그 날부터 종칠과 추영혜는 틈만 나면 서로의 몸을 탐했다. 마치 색정에 미친 탕남탕녀(蕩男蕩女)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색정만은 아니었다.
 음양화합을 하면서 백 일 동안 추궁과혈을 하여야 주화입마로부터 풀려날 수 있기에 행한 일종의 치료행위였다.
 아울러 둘 사이에 지극한 정이 오가는 행위였다. 덕분에 종칠은 귀비옥방비결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추영혜가 종칠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바꿔져 있었다. 비록 세 살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는 내자로서 그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썼다. 처음엔 이를 불편해 하였으나 어느새 둔감해졌는지 요즘 종칠은 그녀의 이런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단 그에게 청백을 바친 그녀는 이제 세상에 나가더라도 다시는 기원(妓院)으로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엔 매화부인 그에게 청백을 준 후 본격적인 기녀로 생활하려 하였으나 마음이 바뀐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를 절실해 깨달았기에 소중한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종칠의 예상대로 추영혜는 다시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 제 발로 걸었을 때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었다.
 너무도 감격스러워서였다. 그러는 한편 그 일로 인하여 소중한 인연이 맺어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
 
 “소녀는 그저 공자님의 뜻에 따를 뿐이에요.”
 “후후후!··· 좋다. 벗어라!”
 천향기원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세워진 만화궁(滿花宮) 최고의 기녀인 옥향(玉香)은 너무도 준수한 관옥서생이 하룻밤 수청을 들라하자 두말 않고 승낙하였다.
 멀리 금릉에서 왔다는 그녀는 천무등룡방의 둘째 공자인 그가 수청들기를 거부하는 기녀와 그 주변 인물들을 해코지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악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다만 천무등룡방에서만 모를 뿐이었다. 그렇기에 순순히 승낙한 것이다.
 “어머! 지금은 환한 대낮인데?··· 설마 지금?···”
 “후후후! 지금이 어때서 그러느냐?··· 본 공자는 너와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눌 생각에 어제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나 관옥서생의 이 말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어젯밤 다른 기녀와 밤새도록 황음(荒淫)을 즐기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던 것이다.
 “호호호! 급하기도 하셔라!···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래도 공자님을 모셔야 하는데 지저분한 몸으로는 안되니까요···”
 옥향이 한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욕실로 향하자 관옥서생의 입에는 음탕한 미소가 어렸다. 어느새 그의 두 눈은 욕정에 젖어 붉게 충혈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 일 년 간 추국과 종칠의 행방을 찾던 그는 그들이 멀리 사라진 줄 알고 마음이 놓였기에 요즘 또 다시 기원 출입을 시작하였다.
 부친과 형은 또 다시 먼 길을 떠났기에 당분간은 누구도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없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요즘은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미 혼례를 올려 내자가 있건만 그는 거의 매일 이곳 만화궁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속살이 훤히 비치는 침의(寢衣)만을 걸친 옥향이 욕실로부터 나오자 그의 입에는 더욱 짙은 음소(淫笑)가 내비쳤다.
 들어갈 곳은 적당히 들어갔고, 나올 곳은 적당히 나온 그녀의 교구는 그의 욕념에 불을 당기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갸름한 목선과 동그스름한 어깨의 곡선, 가슴에 불룩 솟아 있는 융기와 홀쭉한 복부, 개미허리처럼 가는 세류요에서 폭발적으로 발달한 탱탱한 둔부, 그리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옥주와 종아리는 그의 이성에 불을 지르고야 말았다.
 “크흐흐흐! 너의 나신은 일품이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어머! 급하기도 하셔라··· 이것도 인연인데 우선 술이나 한잔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술? 무슨 술?··· 술은 안 마셔도 좋으니 어서 오기나 하여라!”
 관옥서생은 벌써부터 하초가 불룩해지는 느낌에 손짓까지 하며 옥향을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올 생각이 없는지 둔부를 실룩이며 탁자로 향하여 술을 따랐다.
 이 모습 역시 몹시도 고혹적이었기에 그녀의 둔부를 바라보는 관옥서생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호호호! 싫어요··· 어쨌든 오늘 처음 공자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합환주(合歡酒)라도 한잔해야지요.”
 “응?··· 합환주?··· 하하하! 그래! 합환주라면 한잔 마셔야지···”
 관옥서생은 너무도 기분이 좋아 옥향이 내미는 갈색 술의 그윽한 주향(酒香)을 맡으며 단숨에 그것을 마셨다.
 “어머! 공자님은 합환주도 안 마셔봤나 봐?··· 합환주는 둘이서 천천히 나눠 마셔야지요.”
 “하하하! 그런가?··· 되었다. 본 공자가 다 마셨으니 둘이 나눠 먹은 셈치자. 어서 가까이 오너라!···”
 “호호호!··· 급하기도 하셔라!··· 좋아요. 대신 공자님께서 먼저 침상으로 가세요. 소녀는 너무도 준수한 공자님을 모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떨려 한잔 안 할 수 없어요.”
 “크흐흐흐! 좋다··· 딱 한잔만 걸치고 오너라!”
 관옥서생은 옥향의 간드러진 음성과 매혹적인 몸매에 취했는지 순순히 침상으로 향하여 스스로 의복을 벗은 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그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옴을 느끼고 이상하다 생각하고 일어서려 하였으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그의 신형이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옥향의 봉목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냉엄한 빛이 흘러 나왔다.
 “호호호!··· 네놈이 감히 기녀 알기를 개만도 못하게 안다는 바로 그 놈이렸다··· 호호호!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한번 두고 보아라!··· 얘들아!”
 지금까지 음탕하기 그지없는 요부(妖婦)처럼 굴던 옥향의 아미(娥眉)가 찌푸려지며 냉랭한 음성이 터져 나오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네 명의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화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두 면사를 쓰고 있기에 용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들의 영롱한 음색과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보아 결코 이십을 넘긴 나이는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화(四花)! 이자를 즉시 총단으로 압송하라!”
 “존명!···”
 여인들은 발가벗은 관옥서생을 준비해온 포대에 넣은 후 다시 관에 담았다. 그리고 그녀들과 관은 만화원에서 사라졌다. 미시 무렵에 발생한 이 사건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웬일인지 만화원의 모든 식솔들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하하하! 혜매 이제 되었소.”
 “호호호! 시원해요?···”
 “후후! 그렇소. 이제 그만하시오. 힘들겠소!···”
 종칠은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목 주위를 안마하던 추영혜의 섬섬옥수를 잡았다. 그는 요즘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도 현숙하고, 부드러우며, 나긋나긋하고, 육감적이고, 뇌쇄적인 그녀와 매일같이 꿈결 같이 달콤하며, 황홀한 운우지락을 나누고, 담소를 즐기는 그런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가볍게 손짓만 해도 자신의 품에 다소곳이 안기는 그녀의 교구는 그의 손길과 입술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지만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발가벗은 그녀의 교구가 품에 안겨 있었고, 밤이면 그의 뜨거운 유혹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꿈틀거렸다.
 무공연마에도 박차를 가하여 이제 둘은 더 이상 연마할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공만이 문제였으나 여의분심신공 덕분에 하루하루 늘고 있기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둘은 악양고서점을 떠나 밖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더 이상 먹을 식량이 없기도 하였지만 이제 복수를 획책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추영혜는 종칠로부터 천향기원과 육양원의 참화소식을 들었을 때 구슬프게 울었다. 그리고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자신들의 무공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기에 일단은 금릉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화문(花門)의 세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동원해서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만의 생각이었다. 종칠은 관옥서생의 소행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기에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일단 이곳을 벗어나면 전육과 소향을 찾아낸 뒤 그들과 함께 추영혜를 금릉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하하하! 혜매, 이제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오. 막상 이곳을 떠나려하니 왠지 섭섭하구려.”
 “소첩도 그래요. 이곳에서 상공의 아낙이 된 것이 너무도 기뻐요. 복수를 마친 후 다시 이곳으로 왔으면 좋겠네요.”
 추영혜는 너무도 현숙한 내자로 변모해 있었다.
 “후후후! 나중에 모든 은원이 종결되면 그때 이곳으로 돌아옵시다. 고서점을 운영하면 아마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오.”
 “호호호! 소첩은 상공과 함께라면 굶어도 상관없어요.”
 너무도 행복해하는 그녀의 입술은 곧 그의 입술에 의하여 점령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에 그녀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그녀의 의복을 떨어트려 갔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는 또 한번 열락에 겨운 행복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날 이른 새벽,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 악양고서점은 거의 일 년만에 문이 열렸다. 두 인영이 밖으로 나오고 또 다시 문이 굳게 닫혔다. 그리고는 두 개의 인영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뉘어졌다.
 추영혜는 금릉으로, 종칠은 악양루로 향한 것이다.
 그는 그녀를 지난밤 내내 설득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던 그녀는 그가 소향, 전육을 데리고 곧 뒤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간신히 승낙을 하였다.
 
 “쉿! 나야··· 종칠이야!···”
 잠을 자던 소향은 시커먼 인영이 자신의 입을 막으며 나직이 속삭이자 놀라서 일어나려다 잠잠해졌다. 음성만으로도 괴 인영의 정체가 종칠이라는 것을 감지해 낸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이 멈추자 그제야 서서히 손을 뗀 종칠은 와락 품으로 안겨드는 그녀의 교구를 받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얼마나 애태우며 걱정했던 님이던가!
 소향은 지난 일 년간 매일매일 지옥 같은 기다림 속에서 지냈다. 육양원이 참화를 당하던 날 너무도 피곤하여 돌아가지 않은 덕에 그녀는 목숨을 구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는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천향기원과 육양원의 참화소식을 전해들은 그녀는 거의 맨발로 뛰다시피 하여 두 곳을 뒤졌다.
 삼십여 고아들의 처참한 주검을 앞에 둔 그녀의 구슬픈 오열소리는 곁에 있던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절로 눈물이 나게 할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추국과 종칠의 시신을 찾을 수 없던 그녀는 그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한줄기 희망을 가졌다.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거의 일년이 지났다. 매일매일 잠자리에 들면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종칠을 보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지난 일년간 그녀에겐 일각이 여삼추(如三秋) 같이 길고, 지루했다. 만사에 흥미를 잃은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 종칠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밤중에 자신의 처소로 스며들어 멀쩡한 음성을 발하자 너무도 격정에 겨워 그의 품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흐흐흑!··· 왜, 왜 이제야 왔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요?··· 소녀가 얼마나 오라버니 걱정을 했는지 알기나 하세요?··· 흐흐흑!··· 왜, 왜 이제야 왔어요?··· 소녀는 오라버니가 죽은 줄 알고 그 동안 얼마나···”
 종칠은 오열하는 소향의 교구를 보듬고 나직이 속삭였다.
 “미안하다!··· 이 오라비가 잘못했다··· 네가 이렇게 걱정할 줄 뻔히 알면서 소식을 전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흐흑!··· 미안하다면 다예요?··· 소녀의 마음은 기다리다 지쳐 까맣게 타버렸어요··· 흐흐흑!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까맣게 타버린 소녀의 마음을··· 흐흐흑!···”
 “흐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라. 알았지?···”
 “흐흑!··· 정말 뭐든지 소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실 건가요?···”
 눈물 젖은 소향의 옥용은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함초롬히 젖은 배꽃 같은 그녀의 모습은 그러고 보니 일 년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일년 전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이면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무공연마에 힘을 쏟다보니 비쩍 말라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는 훨씬 살이 올라 있었다. 그렇다고 뒤룩뒤룩 돼지처럼 살이 찐 것은 아니었다.
 약간 통통해진 볼 살은 전혀 가꾸지 않았건만 그녀를 너무도 청초하게 보이게 하였다. 만일 가볍게 화장이라도 할라치면 이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게다가 젖 가리개를 하지 않았는지 가슴부위가 뭉클한 것이 여간 탄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이제 울지마! 알았지?”
 “흐흐흑!··· 정말이요?···”
 “그래! 뭐든지 해줄게!···”
 종칠은 여전히 울먹이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는 울먹이던 것을 멈추고 그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지키리라고 믿어요!··· 이제 소녀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소녀와 혼례를 올려주세요.”
 “뭐, 뭐라고?···”
 화들짝 놀란 종칠은 너무도 의외인 그녀의 청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뭐든지 들어주신다고 했잖아요. 그 동안 소녀가 얼마나 오라버니를 기다렸는지 알아요?··· 흐흐흑!··· 기다리는 동안 소녀는 다시는 오라버니를 못 보는 줄 알고 죽으려고 마음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흐흐흑!··· 만일 소녀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그냥 콱 죽어버릴 거예요.”
 말을 하던 소향은 잠자리 아래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꺼내 자신의 목에 들이밀었다. 여차하면 그대로 목을 꿰뚫고 시뻘건 선혈을 쏟을 판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렸을 적엔 친 오라비처럼 다정하게 대해주고, 조금 더 성장해서는 장래를 걱정해주는 그에게 남매의 정을 느끼던 그녀였다. 십오 세부터는 농담처럼 이 다음에 크면 내 색시라 되라던 그의 말에 잠 못 이루던 날도 여러 날이었다.
 무공을 익힐 때에는 너무도 건장한 그의 상체를 보면서 남몰래 낯을 붉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그가 홀연히 사라지자 그녀의 그리움은 너무도 깊은 사랑으로 변모해 버렸다. 만일 그가 다시 나타난다면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기를 수 없이 반복하였다.
 그녀가 차츰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워지기 시작하자 악양루 점소이 중 하나가 그녀에게 흑심(黑心)을 품고 다가선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지금 들고 있는 비수를 들이대며 죽을힘을 다해 앙칼진 반항을 하였다. 결국 그는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물러간 이후 다시는 흑심을 품지 않았다.
 그 후 그리움에 지칠 때면 수시로 비수를 벼르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져갔다. 만일 이 다음에 그를 만났을 때 자신의 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자진하리라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햐, 향매!··· 그, 그거 내려놔!···”
 너무도 놀란 종칠은 금나수(擒拏手)로서 그녀의 비수를 빼앗을 수 있음도 잊고 말을 더듬었다.
 “싫어요!··· 오라버니가 소녀를 내자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어 버릴 거예요. 죽어서 구천 지옥에 가서라도 오라버니하고 맺게 해달라고 염라대왕께 빌 거예요.”
 말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 단호함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본 종칠은 잠시 할말을 잊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휴우!··· 미안해··· 나도 예전엔 향매를 내자로 맞아들이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휴우!···”
 종칠의 고심하는 모습을 본 소향은 그의 답을 듣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다른 사람과 혼례를 올렸나요?··· 좋아요! 만일 그렇다면 소녀를 첩으로 맞아들이세요. 오라버니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어요··· 흐흐흐흑!··· 생각해 보세요. 소녀는 이 세상에 혈육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글자 그대로 천애고아예요··· 그 동안 오라버니만 믿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흐흐흑!··· 아무튼 소녀는 오라버니가 없으면 못살아요. 그러니 대답하세요··· 싫다고 그러시면 잡지 않을게요. 흐흐흑!···”
 격정에 겨워 말을 하며 힘을 주었는지 비수의 끝이 그녀의 여린 살을 뚫고 들어가 작은 상처를 냈고 거기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종칠은 거절하면 소향이 즉시 목숨을 끓으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무엇일가를 궁리하던 그는 일단 그녀를 받아들이는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엔 진정이 되면 그때 가서 진실로 그녀를 사랑해줄 사람을 구해주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휴우!··· 알았다. 네 뜻대로 해줄게. 대신 이제 그거 내려놓고 울지마! 알았지?”
 “흐흑!··· 정말 소녀를 오라버니의 여인으로 인정하시는 건가요?··· 정말이에요? 괜히 소녀를 진정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죠?···”
 “그럼! 내가 왜 거짓말을 해?··· 내가 예전에 그랬잖아! 이 다음에 크면 내 색시가 되라고··· 기억나지?··· 이제부턴 향매를 내 여인으로 인정할게 그러지 이제 그걸 내려놓아! 알았지?···”
 종칠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향은 비수를 내려놓을 줄 몰랐다.
 “흐흑!··· 좋아요. 오라버니의 말을 믿을게요··· 대신 오늘 밤 소녀를 오라버니의 여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뭐라고?··· 그건 안 돼!···”
 종칠이 또 다시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안 된다고 하자 소향의 옥용이 창백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물렸다가 열렸다.
 “흐흑!··· 역시 소녀를 속이시려고 그랬던 거군요··· 알았어요! 이제 오라버니한테 버림받은 이상 더 이상 이 세상을 살 필요가 없어졌어요··· 흐흑!··· 그 동안 소녀에게 잘해주신 것 정말 고마워요. 그 은혜는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을게요. 흐흐흑!···”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굵은 옥루를 흘리던 소향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힘을 가해 비수를 자신의 목에 힘껏 찔러 넣었다.
 “아앗! 안 돼!···”
 쨍그랑!···
 그 순간 종칠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금나수로 그녀의 곡지혈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들고 있던 비수는 힘없이 떨어졌고 그녀의 여린 교구는 그의 품안으로 파고들며 자신의 입술로 그의 입술을 눌러갔다.
 “으으읍!···”
 느닷없는 소향의 이런 행동에 놀란 종칠은 감고 있는 그녀의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보고 이내 그녀의 교구를 굳게 보듬었다.
 만일 추영혜와 그렇게 맺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악양루의 모든 식솔들에게서 축하를 받으며 소향과 맺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담보로 자신과 맺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녀의 진심을 읽은 것이다.
 “으으으으응!···”
 단 한번도 입맞춤의 경험이 없던 그녀는 그저 입술과 입술을 맞대고만 있었는데 종칠이 자신의 입술을 열고 영활한 설육(舌肉)으로 자신의 설육을 끌어가자 전신이 녹아 내리는 듯한 황홀함에 젖어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비음을 냈다.
 종칠은 소향의 미숙함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부드럽게 그녀를 열락의 세계로 인도하여갔다. 엷은 침의만을 걸친 소향의 부드러운 교구는 그의 품에 안겨 처음 겪는 황홀함에 젖어 바르르 떨고만 있었다.
 혀와 혀가 뒤엉키고 타액과 타액이 섞이는 동안 둘의 혼은 하나로 합일되는 듯한 지극한 달콤함에 젖어있었다. 잠시 후 마치 화인을 찍기라도 하는지 그녀의 목덜미를 더듬는 입술에서 뜨거운 입김이 나와 그녀의 귓불을 자극하자 마치 작살 맞은 능어처럼 파닥이는 몸짓 또한 너무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소향의 앞섶은 넓게 벌어져 있었고 종칠의 손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부드러우면서도 말랑말랑하고, 탄력이 넘치면서도 풍만한 그녀의 앞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유실을 슬쩍슬쩍 스칠 때마다 자지러질 듯한 반응을 보이는 소향의 섬섬옥수는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쑤셔 박혀 있었다. 그러면서 연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억지로 신음을 참던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과 비슷한 신음이 터져 나온 것은 그의 입술 사이로 연분홍 유실이 빨려든 직후였다.
 “아아앗!··· 으으흑!···”
 한쪽 유방은 그의 우악스런 손길에 이리저리 찌그러지며 빠져나갈 곳을 찾는지 벌어진 손가락 틈으로 비집고 나가려 하였고, 다른 한쪽은 꺼끌꺼끌하면서도 부드럽고, 축축한 혀에 의하여 거의 미칠 정도의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혀로 부드럽게 간질이는가 싶다가도 슬쩍슬쩍 이빨에 깨물리면 아련한 통증과 더불어 엄청난 쾌감이 증폭되자 전신에서 향기로운 땀을 쏟아내던 그녀가 황급히 옥주를 오므린 것은 그의 손길이 흑림을 헤치고 천혜의 신비를 감춘 음동(陰洞) 가까이 다가서려 할 때였다.
 “아아학!··· 아아앙!··· 어, 어맛!··· 아, 안 돼!···”
 만지면 묻어날 듯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에는 무언가에 놀랐는지 작은 돌기들이 일제히 용솟음치며 돋아났다. 그러나 종칠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 유실을 베어 물며 연신 그녀의 옥주며 둔부를 더듬어갔다.
 보기와는 달리 잘 발달된 둔부는 너무도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넘쳐 그곳에 손길이 맴돌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너무도 야릇한 쾌감에 겨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옥주에 주었던 힘을 풀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이 그 사이로 파고 들었다.
 흑림이 무성한 도톰한 둔덕은 그의 손길에 닿자마자 그녀의 교구가 펄쩍 튀어 오르도록 강한 쾌감을 전달하였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젖은 입술에서 끊임없는 신음을 토하도록 하였다.
 어느새 신비의 음동에서는 달디단 감로수(甘露水)가 샘솟아 동혈의 입구를 온통 적셔놓고 있었다. 잠시 뒤 소향의 봉목에서는 검은자가 사라졌다. 그의 손가락 하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바로 그때였다.
 그때부터 소향은 그의 조그만 손길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악기가 되어 버렸다. 고저장단이 다른 신음과 교성을 번갈아 토해내는 그녀의 반응에 잔뜩 흥분한 종칠은 찢듯이 자신의 의복을 벗고는 이내 그녀의 옥주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으으읍!··· 으으응!···”
 또 한번 길고 긴 입맞춤이 시작되자 소향의 양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고 손가락은 곧추 세워져 그의 등에 깊은 고랑을 파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경악하며 그의 동체를 밀어낸 것은 무언가 엄청나게 굵고 뜨거우며, 단단한 것이 신비를 간직한 동혈 속으로 무자비하게 진입한 직후였다.
 단 한번에 거의 섬전의 속도로 무언가가 침입하자 소향은 그것이 창자를 온통 휘저은 후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한 엄청난 통증에 단말마(斷末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악!··· 그, 그만!··· 아파요!···”
 파과(破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추영혜로부터 전해들은 종칠은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하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향매! 조금만 참아··· 이제 향매는 내 여인이 된 거야!···”
 “아악!··· 아, 아파요!··· 하지만 참을 게요··· 아무리 아파도 참을 게요··· 하지만 조, 조금만 이대로 있어줘요! 너무 아파요!···”
 아미를 잔뜩 찌푸린 소향의 봉목에서는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룬 기쁨 때문인지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종칠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과 함께 오랜 염원을 이루었다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뒤 소향은 열락에 겨워 몸부림치는 한 마리 암캐가 되어 있었다. 워낙 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 백전노장이 된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엄청난 쾌감이 증폭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우는 듯한 기괴한 신음까지 내며 발버둥치듯 경련하던 그녀의 교구가 축 늘어진 것은 쾌속하게 진퇴를 거듭하던 그의 둔부가 일시에 정지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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