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얀 (여백지기 저)

1화

2017.12.07 조회 1,385 추천 7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꼭 이래야 하겠소?”
 
 아나크리온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얀의 결정이 최선이라는 점은 아나크리온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도 얀의 결정에 동조를 하였지만, 내심 얀이 계획을 변경하여 함께 가 주었으면 했다.
 
 “이 길이 최선이라는 것은 아나크리온 님도 이미 동의를 하신 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님에게는 저를 대신하여 잘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아나크리온은 얀의 말에 슬쩍 마법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 깊게 잠들어 있는 미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계획을 알게 되면 분명 미친 듯이 반대를 할 것이 분명했기에 얀은 미리 미야가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몰래 수면 약초를 먹여 둔 상태였다.
 
 “알렉스.”
 
 “예, 아버지······.”
 
 “네가 누구지?”
 
 “알렉스 폰 프랜드. 프랜드 남작 가문의 계승자입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받아라.”
 
 “······?”
 
 “이것은 우리 프랜드 남작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과, 네 외가를 상징하는 도른트 남작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과 인장이다.”
 
 “아버지······.”
 
 “미안하구나. 네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돼서 말이다.”
 
 “아버지······.”
 
 “잘할 수 있겠지?”
 
 “······예, 잘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고맙구나. 그리고 어머니 말도 잘 듣고, 네가 늘 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늘 어머니를 돌봐 줄 수 있겠지?”
 
 “예!”
 
 어머니인 마리안느의 외모를 더 많이 닮아, 부드러운 금발을 지닌, 하지만 성격만큼은 확실히 자신을 더 많이 닮아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강단이 있는 알렉스의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어 준 얀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헤르시온과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헤르시온을 아나크리온에게 건네주었다.
 
 “알렉스가 입을 수 있게 되면 건네주시겠습니까?”
 
 “으음······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님이 깨어나면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내민 것은 제로니모가 우연하게 던전에서 발견한, 바로 그 바람의 숨결이 기록된 바로 그 비서였다.
 
 원본은 전사의 신전에 이미 넘겨준 상태였고, 지금 건네주는 것은 사본이다. 하지만 원본의 내용과 한 치의 다름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동안 자신이 수련해 오면서 얻게 된 지식들까지 꼼꼼히 기록 되어 있어, 어떤 면에서는 원본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이것을 미야에게 건네주라고 한 것은 그녀가 깨어난 이후, 그녀에게 아들인 알렉스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 세상에서 얀을 제외하고 바람의 숨결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가 바로 미야였다.
 
 얀은 미야에게 아들인 알렉스의 장래를 맡기려는 것이었다.
 
 “알겠소.”
 
 “그럼 이만 떠나십시오. 조만간 저도 나가 봐야 하니 말입니다.”
 
 “알겠소. 자! 그만 가자꾸나, 알렉스.”
 
 “······예, 아나크리온 님······.”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그동안 용케도 잘 참아 주었던 알렉스의 커다란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알렉스는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알렉스를 데리고 마법진에 오른 아나크리온은 다시금 얀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나크리온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얀과 그의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법진이 본격적으로 작동하자,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이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어딘가로 이동해 버렸다.
 
 “잘 가거라, 아들아······. 그리고 누님.”
 
 얀은 텔레포트 마법으로 어디론가 이동한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짧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소드 오러를 일으켜 마법진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행여 적들에게 흔적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렵게 마련한 비밀의 장소가 적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흔적을 지운 얀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모두 보냈나?”
 
 “예, 케스케 님.”
 
 “그럼 홀가분하게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래? 다들 그럼 마음의 준비는 끝냈나?”
 
 “하하, 물론이지. 안 그래도 막 지겨워하던 참이었어.”
 
 “맞아, 아마 얀이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내가 들어가서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을 거야. 하하하.”
 
 “하하하!”
 
 “좋아. 자! 그럼 대장! 마지막 명령을 내려줘야지?”
 
 “하하. 흠! 좋습니다. 모두 준비가 됐다니 그럼 마지막으로 저놈들의 심장이 잔뜩 오그라지게 만들어 볼까요?”
 
 “하하하, 좋지!”
 
 “좋지! 아주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그간 여러 마스터들과 함께 한 것은 제 일생일대의 영광이었습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삼사 년을 함께 한 마스터들이었다.
 
 아마도 흑마법사들에 의해 세상이 혼란과 파괴, 살육에 빠지지 않았다면 서로를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갔을 지도 모를 자들이었다.
 
 “우리 또한 마스터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소.”
 
 챙!
 
 챙! 챙! 챙!
 
 “이 세상을 피와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는 악마들을 모두 없애는 그 순간까지!”
 
 “악마들을 모두 없애는 그 순간까지!”
 
 “돌격! 앞으로!”
 
 “앞으로!”
 
 “우와!”
 
 Chapter 1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
 
 
 
 
 
 “헉! 헉! 헉!”
 
 얀은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드와브 마을 주변을 달리고 있었다.
 
 올해 10살인 얀이 이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마을 주변을 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마을에 정착하기 시작한 두 달 전부터였다.
 
 얀은 제로니모 아이겐이라는 자유 기사를 호종하는 아이로, 제로니모가 이곳 도른트 남작의 기사로 머물기 시작했기 때문에 얀도 이곳 도른트 남작성과 가장 가까운 드와브 마을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고아인 얀이 떠돌이 기사인 제로니모 아이겐을 만난 것은 벌써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얀은 제로니모의 호종으로서, 제로니모의 지도에 따라 기사가 되는 수업을 받아 오고 있었다.
 
 이러한 달리기 또한 제로니모가 얀을 수련시키기 위해 시킨 훈련법 중 하나였다.
 
 “후욱! 스읍! 후! 후욱! 스읍! 후!”
 
 달리기를 마친 얀은 역시 제로니모가 가르쳐 준 호흡법을 통해 가빠진 호흡을 조절해 나갔다.
 
 불과 열 살의 나이에 족히 1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달릴 수 있게 된 것도, 그리고 체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게 된 것도 모두 제로니모가 가르쳐 준 호흡법의 수련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역시 아저씨가 가르쳐 준대로만 하면 뭐든 잘된다니까.”
 
 이렇게 달리기를 할 때나, 아니면 힘을 키우는 운동을 할 때, 심지어는 평상시 행동을 할 때에도 반드시 일정한 호흡법을 유지하라는 제로니모의 가르침은 얀이 제로니모를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4년 전 제로니모에게 거두어진 이후 이러한 호흡법을 배우느라 거의 2년을 두들겨 맞으면서 자란 얀이었다.
 
 그만큼 제로니모는 얀이 자신이 일러 준 호흡법에 맞춰 모든 것을 하도록 강제했다.
 
 혹여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제로니모에게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 그가 알려준 방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제로니모에게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았다.
 
 그것도 단순히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며칠씩이나 앓아서 누워야 할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당하거나, 아니면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얀은 매 맞는 것이 싫고 기합 받는 것이 싫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결국 2년 만에 최소한 하루에 10번 혼나던 것을 8번 정도로 줄일 수 있었는데, 이후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혼이 나는 회수가 다시 2, 3번 정도 더 줄어 들은 상태였다.
 
 그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당하거나, 아니면 기합을 받는다면 아마도 오크도 음유시인처럼 서사시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수련을 받았기에 그는 단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그리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어른들도 하기 힘들어 하는 장거리를 달리고도 숨이 차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얀은 슬쩍 어둠속에서 서서히 밝아 오기 시작하는 여명을 통해 보이는 남작성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제로니모가 야간 경계 근무를 담당했기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얀은 아직 성에 있을 제로니모를 떠올리며 성을 바라본 것이었다.
 
 “그럼 슬슬 다음 수련을 시작해야겠구나. 그래야 매를 덜 맞지······.”
 
 “하기 싫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지? 아저씨를 속이는 것은 정말 싫으니까······.”
 
 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고아인 자신을 거둬 준 제로니모가 자신으로 인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매를 때리거나 기합을 줄 때의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설사 그렇지 않을 때라 하더라도 제로니모의 모습은 무뚝뚝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얀에게 있어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 주는 보호자다. 얀은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늘 자신에게 다짐했다.
 
 “웃차!”
 
 체력을 높이기 위한 수련으로 달리기를 한 얀이 다음으로 하기 시작한 수련은 근력을 높여 주는 운동들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얀이 시작한 근력 운동은 누운 상태에서 가슴에 팔짱을 낀 상태로 윗몸을 일으키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근력을 높여 주는 수련을 처음 시작한 것도 처음 제로니모에게 거두어졌던 6살 때였다.
 
 이제 이런 수련은 몸에 완전히 배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근육이 얀의 어린 신체에 가득했다.
 
 이런 식으로 얀은 매일 근력과 근지구력을 높이는 수련을 순서에 맞춰 한 다음, 본격적으로 검술 수련을 했는데, 이러한 아침 수련은 보통 3시간 정도나 계속되었다.
 
 이제 겨우 열 살인 아이의 아침수련으로는 상당히, 아니 불가능해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휴~! 이제 씻고 아침을 준비하면 되겠다.”
 
 아침수련이 끝나고 역시 수련으로 피로해진 근육을 풀기 위한 체조와 함께 마무리 호흡 수련까지 마친 얀의 온몸은 그야말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깨끗이 씻은 얀은 이제 곧 돌아올 제로니모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로니모가 도른트 남작 영지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도른트 남작은 제로니모에게 성안에 있는,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제로니모와 얀이 살기에는 적당한 크기의 주택과 하인 몇, 그리고 식모를 보내 준다고 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다름 아닌 제로니모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한 것이 워낙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제로니모가 어떻게 전쟁고아인 얀을 거두었으며, 지금까지 함께 생활해 올 수 있었는지는 얀이 생각해도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제로니모는 입맛도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기에 그의 식사를 전담하고 있는 얀의 요리 솜씨는 이제 제법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루~! 루~! 루~!”
 
 보글! 보글! 보글!
 
 타타탁! 탁! 탁!
 
 요리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제로니모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얀을 언제나 즐겁게 만들어 주었기에, 얀은 오늘도 콧노래까지 불러 가면서 제로니모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다녀오셨어요.”
 
 “······.”
 
 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제로니모에게 웃음 띤 얼굴로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했지만,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 상대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험해 보이는 제로니모의 얼굴은 일체의 표정 변화가 없었다.
 
 “씻고 오시겠어요? 아니면 먼저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씻고.”
 
 게다가 제로니모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듣기에 거북했다. 마치 쇠를 긁어 대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이는 그가 예전에 마상 창술 시합에서 목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성대가 다치면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에게 있어서는 제로니모의 모든 것이 그저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예, 그럼 어서 씻고 오세요. 그동안 식사 준비를 마저 하도록 할게요.”
 
 “······.”
 
 여전히 대답 없는 제로니모였지만 얀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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