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호위무적

1화

2017.12.07 조회 2,112 추천 10


 序
 
 
 
 
 
 
 
 “그래, 금분세수(金盆洗手)할 생각이라고?”
 
 “생각 중이네. 너무 오래해 먹었어.”
 
 “진정한 호위무사 한 명이 사라지겠군.”
 
 “미친 호위무사 한 명이 사라지겠지.”
 
 “오래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네.”
 
 “편히 말하시게.”
 
 “대체 자네가 말하는 훌륭한 호위무사의 조건이 뭔가?”
 
 “그건 어이 묻는가?”
 
 “그간 자네는 훌륭한 호위무사들을 많이 길러 냈네. 하지만 자네 입으로 진정 훌륭하다는 말을 한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지.”
 
 “내 눈에는 그리 보이는 걸 어찌하나. 요즘 것들은 겉멋만 잔뜩 들었을 뿐, 호위에 ‘호’자도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지, 쯧쯧쯧.”
 
 “그래, 말해 보게. 대체 훌륭한 호위무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렵지 않네. 첫째 무공이 뛰어나야 하네. 물론 일반적인 무공으로는 어림없지.”
 
 “신공절학(新功截學)이라도 익혀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 아니지. 호위에는 호위에 특화된 무공이 따로 있네. 그 분야에 달통을 해야 비로소 훌륭한 호위무사의 자격이 되지.”
 
 “그런가? 다음은?”
 
 “성격과 성품도 적합해야겠지. 신중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신속하고 빠르게 상황을 판단, 결정해야 하니까.”
 
 “한마디로 머리가 좋아야겠군.”
 
 “그런 셈이지.”
 
 “계속해 보게.”
 
 “얼굴도 잘생겨야 할 것이야.”
 
 “그건 왜 그런가?”
 
 “호위는 호위무사와 호위 대상자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네. 서로가 서로를 믿어야 하지. 생각해 보게. 만약 호위무사가 혐오감을 주는 자라면 어떠하겠나?”
 
 “허허허, 재밌군. 일리가 있어. 그나저나 또 있나?”
 
 “아직 멀었네. 난 훌륭한 호위무사의 조건을 출위백유(出衛百有)로 정의하지.”
 
 “출위백유라······. 백 가지나 필요한가?”
 
 “암, 그중 절반만 가져도 꽤 쓸 만한 법이지.”
 
 “이보게, 그럼 이건 어떤가? 완벽한 호위무사!”
 
 “완벽?”
 
 “그렇네. 훌륭한 호위가 곧 완벽한 호위인가?”
 
 “······.”
 
 “대답이 늦는군.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보이.”
 
 “그렇네. 그 두 가지는 결코 같지 않네.”
 
 “그럼 말해 보시게. 완벽한 호위무사는 도대체 몇 가지를 가져야 되는가? 출위천유? 출위만유?”
 
 “······.”
 
 “후후후! 자네 꽤 고심하는 눈치군. 그렇지.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없을지도······.”
 
 “틀렸네. 존재하네.”
 
 “그런가?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한 가지뿐이네.”
 
 “응? 한 가지라고?”
 
 “그렇네.”
 
 “이보게, 이상하지 않은가. 훌륭한 호위무사는 백 가지를 가져야 하는데, 완벽한 호위무사는 오직 한 가지가 전부인가?”
 
 “바로 보았네. 다른 것은 다 필요가 없지.”
 
 “어허허! 어렵도다. 허나 어쩌면 다른 백 가지를 얻는 것보다 그 한 가지를 얻는 것이 더욱 힘들지도 모르겠군. 그렇지 않은가?”
 
 “그렇네.”
 
 “그게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나?”
 
 “하하하하. 비밀일세, 비밀.”
 
 “이 사람 나이를 먹더니 그런 농도 다 하는가. 뭐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군. 오직 한 가지만 필요한 완벽한 호위무사라······.”
 
 
 
 황산의 정상.
 
 그리고 두 명의 노인.
 
 문답은 여기서 잠시 그치고 깊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가능한가?”
 
 “필요한가?”
 
 “저기 서천이 꽤 붉군.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네.”
 
 “실없는 소리. 하늘이 어찌 움직이나.”
 
 “모르는 척하지 말게. 하늘이 아니라 그 아래 사람이 그리하고 있겠지.”
 
 “필요한가, 다시 묻네.”
 
 “다 늙은 몸,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다만 그 아이······.”
 
 “그래, 그 아이! 그렇군. 필요하겠군.”
 
 “얼마면 가능하겠나.”
 
 “조금 오래 걸릴지도······.”
 
 “기다리겠네.”
 
 “어쩌면 자네 생전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기다리겠네. 훗날 자네가 그런 자를 만들어 낸다면 반드시 그 아이에게 보내 주게.”
 
 “약조하지.”
 
 휘이이잉.
 
 계곡을 타고 흐르던 바람이 다시 산꼭대기로 치솟아 올랐다. 두 사람의 문답은 그 바람이 사라질 때쯤 그렇게 끝이 났다.
 
 때는 훗날 무림사에 마정혈란(魔正血亂), 혹은 정마대전(正魔大戰)으로 기록될 참혹한 무림 전란 발발 오십 년 전.
 
 무림력(武林力)으로는 786년이었다.
 
 
 
 
 
 
 
 一. 십 년을 날리다
 
 
 
 
 
 
 
 우르르 쾅쾅.
 
 하늘이 노했다.
 
 천둥번개가 번쩍였다.
 
 곧이어······.
 
 쏴아아아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청년은 육 척이 넘는 장신에 그 큰 신장만큼 뒤룩뒤룩 살이 찐 비대한 몸의 소유자였다. 얼마나 살이 쪘는지, 얼굴의 이목구비조차 살 속에 파묻힌, 그야말로 추남 중의 추남.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는 한 장의 서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청아, 너는 오늘로서 천하제일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이 서찰을 가지고 제남 제웅성으로 가거라.
 
 홍지군(洪智君).
 
 
 
 “거짓말, 말도 안 돼.”
 
 청년이 중얼거렸다.
 
 번쩍.
 
 우르르 쾅.
 
 하늘이 또 화를 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지. 영감, 이건 아니잖아.”
 
 청년도 어느 순간 함께 울부짖기 시작했다.
 
 “영감, 이 망할 영감. 어디 두고 보자, 으아아아악.”
 
 중원 서북방의 오지 천수 외이랍(外二拉)의 어느 이름 모를 깊은 산속.
 
 분노한 하늘, 그리고 곱절은 더 분기탱천한 한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 * *
 
 
 
 어둠 속,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비는 그쳤다. 하늘도 맑다.
 
 해가 뜨려는가?
 
 동녘이 뿌옇게 밝아 온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십 년. 개 같은 영감탱이, 그 긴 시간을 감쪽같이 사기를 쳐? 나는 십 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행했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시 울화가 치민다.
 
 지난 십 년. 난 오로지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루하루가 생사고비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분명 난······ 그랬다.
 
 빌어······ 먹을!
 
 
 
 내 이름은 곽청(郭淸).
 
 아버지는 사천(四川) 병곡(屛谷) 깡촌의 시골 의원이었다.
 
 “이놈아, 무림은 무서운 곳이야. 행여 관심 두지 마라.”
 
 무림은 무서운 곳.
 
 나고 자라면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대를 이어 의원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그 무렵 동네에서는 종종 어른들이 내 또래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고는 했다.
 
 “그래, 꿈이 무엇인고?”
 
 “저는 칠존처럼 될 거예요.”
 
 “칠존은 이제 없어! 저는 오왕이 되어 무림을 굴복시킬 거예요.”
 
 칠존(七尊)과 오왕(五王).
 
 다른 대답이지만 실상은 같다.
 
 칠존은 십오 년 전 무림에 군림한 칠인의 지존들이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들은 한날한시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이 사왕일웅(四王一雄)으로 대변되는 무림오왕들이다.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북해(北海)의 만빙왕(萬氷王), 동해(東海)의 흑룡교왕(黑龍狡王), 대막(大漠)의 혈사막왕(血嗣漠王), 서천(西天)의 대마교주(大魔敎主) 마왕(魔王) 등이 곧 사왕이요, 제남(濟南) 제웅성(帝雄城) 성주 장백천(張栢闡)이 일웅이라 불렸다.
 
 이들 다섯 고수는 무림의 왕으로 군림하며 각자의 영역을 구축했고, 그들을 추종하는 수많은 세력들이 다시 지역을 구분하여 서로를 경계하니, 곧 무림오분.
 
 즉, 무림이 다섯 등분된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 시절은 비단 어린아이뿐 아니라 모든 무림인들의 꿈이 곧 무림오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존을 꿈꾸는 것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저는 천하제일의 호위무사가 될 겁니다.”
 
 호위무사.
 
 그냥 호위무사가 아닌 천하제일.
 
 그것은 분명 내 꿈이었다.
 
 “우하하하, 호위무사 따위 뭐가 재밌어.”
 
 “그래. 지존이 되면 호위무사는 얼마든지 부릴 수 있어.”
 
 “곽청아, 꿈은 가능한 크게 가져야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웃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니들은 니들대로 살던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감이 마을에 나타난 것은 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잔뜩 굽은 허리와 남루한 행색. 난 처음에 거지인 줄 알았다.
 
 “그래 호위무사가 되고 싶다고?”
 
 그는 내 꿈을 비웃지 않고 관심을 가졌다.
 
 “물론이죠. 하지만 그냥 호위무사가 아니라 천하제일 호위무사예요.”
 
 “너 천하제일 호위무사가 뭔지나 아느냐?”
 
 “음, 그건, 그건······.”
 
 나는 잠시 말을 더듬거렸다. 영감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어린놈 허세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그 순간 내가 외쳤다.
 
 “모르기는 왜 몰라요. 절대로 안 죽으면 그게 바로 천하제일 호위무사죠.”
 
 영감의 걸음이 뚝 멈췄다.
 
 휙 뒤돌아서서는 다시 물었다.
 
 “뭐라고?”
 
 “안 죽는다구요.”
 
 “그래? 확실해?”
 
 “뭐 대충요.”
 
 원래 영감의 눈은 감았는지 떴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축 처져 있었다. 주름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그때 난 영감의 두 눈에서 엄청난 광채를 보았다.
 
 “노부를 따라가면 네놈의 꿈을 이루어 주마.”
 
 “정말요?”
 
 나는 크게 흥분했다.
 
 사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영감의 개사기질을······.
 
 하지만 난 겨우 아홉 살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영감의 혀는 너무나 유연했다.
 
 월담은 그날 밤 행해졌다.
 
 아버지는 무림의 일이라면 경악부터 하신다.
 
 서찰 하나로 내 의지를 표현했다.
 
 
 
 천하제일 호위무사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곽청.
 
 
 
 * * *
 
 
 
 “으아악, 저, 저게 뭐예요?”
 
 “인사하거라. 네 사형들이다.”
 
 서쪽으로 석 달을 꼬박 걸어 도착한 곳.
 
 험하디 험한 깊은 산중이었다. 낡은 초가 한 채가 산중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인골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영감은 그 인골들을 내 사형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영감이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이미 물이 엎질러진 후였다.
 
 “시작하자.”
 
 영감의 수련은 그날 당장 시작되었다.
 
 하지만 수련이랍시고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네 사형들 옆에 나란히 눕지 않으려면 잘 먹어 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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