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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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7.12.07 조회 3,216 추천 24


 특별한 소리도 그렇다고 모양도 없었다.
 
 단지 하나의 빛 무리가 사내의 검에서 튀어나와 사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꽝!
 
 “으악! 어, 어떻게 일개 금의위(錦衣衛) 백호장(百戶長) 따위에게······. 내가, 천하의 무영도수(無影盜帥)가 믿을 수······.”
 
 스스로 무영도수라 말한 사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릅뜬 눈으로 허물어졌다.
 
 중원의 양상군자 중에서 첫째, 둘째를 다툰다는 도둑 무영도수의 허무한 최후였다.
 
 이름 없는 숲 앞에 쓰러져 있는 그의 가슴은 쩍 벌어진 채 여전히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의외로군. 아니면 조금 방심했나.”
 
 슬쩍 들어 올리는 사내의 왼쪽 소매 끝이 싹둑 잘려 나가 있었다.
 
 무영도수의 앞을 가로막는 순간 섬전같이 날아온 일수를 온전히 피하지 못한 결과였다.
 
 소문에 의하면 무영도수는 특유의 경신 공부와 잠행술에 있어서는 뛰어났지만 가진 바 본신의 실력은 대략 일류의 수준을 조금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부딪혀 본 무영도수는 그 무위에 있어서도 절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사내는 죽은 무영도수의 옆으로 다가가서 행낭을 집어 들었다. 무언가 귀중한 물건이라도 보관한 듯 잔뜩 동여매져 있던 행낭 속에는 적어도 은자 천 냥의 가치는 있어 보이는 보석과 금붙이들이 들어 있었다.
 
 “이따위 것들 때문에 자금성에 난입하고, 궁인을 셋이나 죽였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군.”
 
 무영도수가 이름 난 도둑이라고는 해도 감히 삼엄한 자금성을 뚫고 들어온 목적이 금붙이 따위라는 것이 사내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갯짓을 하며 돌아서던 사내는 무영도수의 갈라진 가슴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보퉁이 하나를 발견했다. 사내는 냉큼 보퉁이를 집어 들었다. 보퉁이 안에는 한 권의 책과 은밀하게 봉서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한 권의 책, 표지에는 영보탁마(影步琢磨, 그림자 걸음을 갈고 닦는다)라 쓰여 있었다.
 
 책에는 여러 가지 운신 절기와 그에 따른 수련 과정의 경험담이 일기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일정한 근거가 없는 도수의 신분이라 아마도 몸에 지니고 다닌 듯했다.
 
 대략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사내는 감탄을 터트렸다.
 
 “세걸이 놈 주면 좋아하겠군.”
 
 사내의 시선은 문득 보퉁이에서 삐져나온 두툼한 종이로 향했다. 한 장의 봉서였다.
 
 “이건 뭐지?”
 
 책을 덮고 봉서를 읽어 보던 사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떤 여인이 정인에게 쓴 장문의 연서였다.
 
 무영도수의 것인지 아니면 이 봉서 역시 무영도수가 누군가의 것을 훔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통 낯간지러운 내용이 가득했다.
 
 실소를 머금었던 사내는 불현듯 책과 연서를 가슴속에 갈무리했다.
 
 “이제야 오는 모양이군.”
 
 여러 개의 기운이 사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곧이어 십여 명의 인형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금의위 복장을 한 사내들이었다.
 
 그중 서른 남짓의 사내 하나가 무영도수의 시신을 일별하고, 아는 체를 했다.
 
 “자네로군 진 백호. 저자가 무영도수라는 자인가?”
 
 “장 천호님이셨구려. 그런 것 같소. 물건은 여기, 그럼 전 이만······.”
 
 “덕분에 발바닥에 땀나는 신세는 면했군. 고맙네.”
 
 금의위 천호인 장원영에게 행낭을 건넨 사내는 더 볼일 없다는 듯이 냉큼 돌아섰다.
 
 “이놈 감히 백호장 주제에 건방지구나.”
 
 갓 스물을 넘겼을까. 그 역시 천호장이었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낯선 천호장을 바라보았다. 스물 남짓의 천호장이 검미를 꿈틀했다.
 
 그때 장원영이 나섰다.
 
 “됐네. 그만하게 유 천호. 그리고 진 백호, 자네는 이만 가 보게 보고는 내가 함세.”
 
 장 천호가 만류하고 나서자 사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걸어서 장내를 벗어났다.
 
 그의 뒤로 여타의 금의위 위사들이 분분히 고개를 숙여 사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한번 쓱 들어 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저, 저런 방자한······.”
 
 장원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유 천호가 발작하기 직전 장원영이 유 천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다시 한 번 만류했다.
 
 “아니 장 천호님, 대체 저놈이 누구인데 이러십니까?”
 
 “이름은 진청원(陣淸原), 나이 이십오 세, 현재 금의위 백호장. 그 친구 이야기일세.”
 
 “글쎄, 일개 백호장 따위가······.”
 
 “이보게, 유 천호. 자네 금의위에 입직(入職)한 지 이제 석 달이라고 했지. 우리 금의위에 이런 말이 있는데 들어 봤나.”
 
 “금의위 영반의 눈 밖에는 나더라도 맹룡(猛龍)과는 척을 지지 마라.”
 
 “헛! 장 천호님, 그럼 저 친구 아니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맹룡입니까?
 
 “그렇다네.”
 
 장원영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다른 금의위 위사들이 안됐다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제기랄.’
 
 퇴청하기 위해 금의위의 위소를(衛所)를 빠져나오던 진청원은 오늘은 유난히 한잔 술 생각이 간절했다.
 
 ‘세걸이 놈에게 전할 것도 있으니 대화루(大華樓)에나 가야겠군.’
 
 “형님, 형님. 같이 가요.”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청원을 부르는 소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방(劉邦)이었다.
 
 팔 척 거한인 유방은 유난히 큰 덩치 탓인지 동작이 워낙 크고, 특유의 소리가 있었다.
 
 “왜 이리 호들갑이냐.”
 
 진청원과 마찬가지로 금의위 백호장인 유방은 진청원보다 두 살 아래였다.
 
 외양과는 다르게 반듯하고 예의 바른 성격의 유방은 금의위 입직 때부터 진청원을 친형님처럼 따랐다.
 
 진청원과 달리 유방은 하급 무관이지만 세관(世官) 출신이었다. 유방의 아버지가 십여 년 전 막북 일 차 원정에서 전사하여 백호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형님, 내일입니다.”
 
 “뭐가 말이냐?”
 
 “이번 천호장 승차 명단 발표하는 것 말입니다.”
 
 황제의 친군인 금의위는 영반인 지휘사(指揮使), 부영반인 동지(同知), 훈련을 맡은 두 명의 진무사(鎭撫使)와 다수의 첨사(詹使)까지는 황제의 직접적인 재가를 통해 교지(矯旨)가 내려온다.
 
 그러나 정오품 이하인 천호장부터는 금의위 자체의 품신에 의해 첩지(牒紙)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형님도 참 무심하십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형님께도 첩지가 내려올 것인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세걸이에게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청원의 마음도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열여덟에 사인(舍人)으로 군문에 들어왔다. 군문에 들어온 지 삼 개월 만에 금의위에 발탁되어 지나온 세월이 칠 년이었다.
 
 숱한 공을 세우고 사선을 넘기를 수십 번이었다.
 
 백호장의 무관이 된 지도 오 년이 넘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백호장이었다.
 
 대화루는 북경의 동직문(東直門) 쪽에 있었다.
 
 대화루의 이 층 계단을 오르려던 진청원과 유방은 이 층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공기에 잠시 멈칫했다.
 
 “형님, 위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 층에는 살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차가운 인상의 청년 하나와 장창을 든 흑색 무복의 사내 다섯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충돌이 있었던 듯 다섯 사내와 같은 복장의 사내 하나가 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차가운 인상의 청년은 전체적으로 윤곽이 선명한 미남형의 얼굴이었지만 차가운 인상 탓에 쉬이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세걸이 형”
 
 대치 상황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진청원과 유방이 이 층으로 올라섰다.
 
 이 층에는 이미 다 내보낸 듯 단 한 명의 손님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형님, 오셨습니까.”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끝내고 술이나 한잔하자.”
 
 이세걸은 진청원을 발견하고 흑의 사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인사부터 건넸다.
 
 진청원 역시 흑의 사내들을 일별하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세걸을 종용했다.
 
 흑의 사내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 모습에 흑의 사내 하나가 분기를 터트렸다.
 
 “야도(野刀) 이세걸, 네놈이 근래 북경 일대에서 제법 명성을 얻은 모양이다만 우리 마가육걸(馬家六傑)을 앞에 두고 너무 방자하구나. ”
 
 “말이 많은 놈들이구나. 그만 나불거리고 덤비려면 빨리 끝내자.”
 
 “이런 육시를 할 놈!”
 
 이세걸의 냉기 어린 대꾸가 도발이 되었다.
 
 하나가 혼절해 다섯이 된 마가육걸은 이세걸을 향해 동시에 덤벼들었다.
 
 실상 다섯 사내는 이세걸의 우군이랄 수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등장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익숙한 동작으로 이세걸을 에워싼 마가육걸은 전면에서 두 명이 이세걸을 향해 단창을 내질렀고, 좌우와 후방을 점한 세 사람도 동시에 이세걸을 향해 짓쳐 들었다.
 
 피할 곳은 공중으로 솟구치는 길밖에는 없는 상황, 그러나 이세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면의 공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진해 들어간 이세걸은 오른쪽 사내가 찔러 오던 창을 발로 차올리고, 동시에 왼쪽 사내의 창은 회선수(回旋手)의 수법으로 감아 돌려 빼앗으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회전 속도에 동체를 실은 이세걸의 팔꿈치가 왼쪽 사내의 턱에 작렬하는 소리와 빼앗은 단창의 창대 부분이 오른쪽 사내의 명치를 가격하는 소리는 동시였다.
 
 퍼벅!
 
 “윽!”
 
 이세걸은 자신의 발에 맞아 공중으로 떠올랐던 창을 유연한 동작으로 오른손에 받아 들었다.
 
 두 손에 각각 단창을 움켜쥔 이세걸은 다시 자신의 지척에 이른 좌우와 후방의 창을 향해 빼앗은 오른손의 창을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창! 창! 창!
 
 이세걸이 휘두르는 단창의 기세에 견디지 못한 세 개의 창이 연이어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여실한 내공력의 차이, 세 사내의 단창을 움켜쥔 양손의 아귀가 터져 나갔다.
 
 “크윽!”
 
 그래도 세 사내는 악착같이 무기를 놓치지 않았다.
 
 이세걸은 다시 왼손의 창을 튕겨져 오르는 세 개의 창을 향해 거세게 수평으로 휘둘렀다.
 
 이세걸이 휘두른 단창의 날카로운 창날 부분이 튕겨져 오르는 세 개의 단창 코등이 바로 아랫부분을 스치듯 지나갔다.
 
 세 사내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단창을 가슴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이세걸이 휘두른 단창을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한 세 사내는 이세걸의 다음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 창을 이세걸을 향해 찌르듯 수평으로 세웠다.
 
 그때였다.
 
 뚝! 쨍그렁!
 
 분명히 부딪치지 않고 스쳐지나간 단창들의 코등이 아랫부분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어진 것처럼 뒤늦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형님,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뭐, 창기(槍氣)라고 해야 하나. 좀 이름이 그렇군. 하하하!”
 
 진청원과 유방의 웃음소리가 일수유의 침묵을 깨웠다.
 
 이세걸이 휘두른 단창의 창날은 단창과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이세걸이 주입한 진기에 의해 도기(刀氣)나 검기(劍氣)와 같은 예기(銳氣)가 발출되어 세 사내의 단창을 여지없이 잘라 놓은 것이다.
 
 어이없이 자신의 병기를 잃어버린 세 사내는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앞서 턱을 가격당한 사내는 이미 혼절해 있었고, 명치를 가격당한 사내는 주저앉아 연방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다섯 사내 모두 이세걸 한 사람에 의해 무장 해제 당한 것이다.
 
 “더 할 터이냐?”
 
 빼앗은 창을 도발적으로 들어 올리며 세 사내를 향해 이세걸이 윽박질렀다.
 
 “우, 우리는 돌아가겠다.”
 
 “그럼 꺼져라.”
 
 세 사내 중 하나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했다.
 
 온전히 서 있는 세 사내가 망가진 세 사내를 사이좋게 한 명씩 업거나 부축한 채 이 층을 내려갔다.
 
 “우리 마가보(馬家堡)는 이 일을 이대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오겠다.”
 
 마지막으로 이 층을 내려가던 사내 하나가 발악하듯 이세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꺼져.”
 
 점소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인 듯 어수선했던 이 층을 정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팔꿈치에 묻은 피 때문에 옷을 갈아입고 온 이세걸에게 진청원이 술잔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냐? 마가보라면 북직례(北直隷, 하북성 지역) 일대에서는 제법 설치는 녀석들일 텐데.”
 
 “별거 아닙니다. 귀시(鬼市)를 노리고 왔다가 제 이야기를 들은 모양입니다.”
 
 귀시라면 북경의 야시장을 말한다.
 
 야시장은 야간에 개시하여 여명 무렵에 철시하는데 노점상들의 유등(油燈)이 꼭 멀리서 보면 귀신불처럼 번뜩인다 하여 귀시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언제나 사람이 모여드는 곳에는 작은 이권을 바라고 달려드는 거머리 인생들이 있었다. 마가보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이세걸은 흑도 무리들로부터 귀시의 소규모 상인들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북경 일대의 하오문들과 흑도 세력들은 수년 전부터 야도 이세걸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 수 양보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거친 칼’이라 불리는 이세걸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직 이세걸과 직접 부딪쳐 본 적이 없는 북직례의 마가보가 어설픈 도발을 하다가 이세걸에게 걸려든 것이다.
 
 “감히 자금성이 있는 북경에서 저런 놈들이 설치다니, 형님 마가보라는 놈들 저희가 한번 혼을 내야 되지 않을까요?”
 
 유방은 내심 아무리 중소 문파에 불과한 마가보라고 하더라도 이세걸 혼자 감당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방의 내심을 읽은 진청원은 미소 지은 얼굴로 한 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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